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자비로운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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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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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I - 격렬한 지류
3. II - 깨어남
4. III - 양형 거래
5. IV - 그들 사이 몇 마디 말


1. 개요[편집]


되살아난 자 시즌 퀘스트 옐브루스 작전을 완료할 때마다 얻을 수 있다.


2. I - 격렬한 지류[편집]


살라딘은 깨어났다. 잠으로부터는 아니었다. 그렇게 온화한 건 아니었다.

죽음으로부터? 아니, 아직은 아니었다. 잃었던 의식을 찾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일어서려 했다. 발이 마찰 없이 떠돌았다. 아래쪽에 지면이 없었다.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 공중에 떠 있었다. 솔잎들이 초록색 연무의 바다처럼 주위를 둘러싸고 한들거렸다. 머리 위로, 빽빽이 밀집한 소나무 가지들이 모여 만들어진 숲의 지붕을 뚫고 쏟아진 햇살이 그를 뒤덮었다. 그의 머리는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파묻혀 있었다.

간헐적인 감정이 그의 빛바랜 방어구 아래 피부를 간질였다. 살라딘은 반사적으로 빈손을 들어 이시라를 소환하려 했다. 먹먹한 감각이 느껴졌다. 공격에 당한 게 분명했다. 그는 숨을 내쉬고 들이쉬며 본능과 이성을 구분했다. 그는 상처를 보려고 몸을 뒤틀었다. 목 신경에 송곳을 꽂아 넣는 듯 타오르는 고통이 느껴졌다. 공포, 아니, 그럴 필요는 없었다. 고통은 견딜 수 있었다. 현실이 명확해졌다.

강철 군주는 뒤쪽으로부터 어깨를 꿰뚫은 10센티미터 굵기의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살라딘은 쏟아져 나온 피가 여러 지류로 나뉘어 팔을 따라 흐르다가 손가락 끝에서 다시 하나로 모여드는 흔적을 따라갔다. 떨어진 핏방울이 60미터가량 아래쪽에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고, 조만간 그 피는 숲으로 스며들어 사라질 터였다. 그 웅덩이 곁에는 회수한 박격포로 만든 로켓 발사기가 쪼개져 있었다. 그가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 떨어진 것이었다. 살라딘은 몸을 움직여 등에 묶어 놓은 도끼를 느꼈다. 그러자 나무가 그의 하중을 지탱하고 있는 쇄골을 떠밀었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 위쪽 절벽을 바라봤다.

불타 버린 초승달 모양 상흔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살라딘의 지상 차량을 노리던 포탄에 맞아 절벽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나간 흔적이었다. 약탈자였을 거라고, 살라딘은 생각했다. 매복 공격이었다. 그는 사건을 의미에 연결했다. 누군가 감히 자기들 영토에 침입해 들어온 군주에게 본보기를 보여 주려 했다. 라데가스트는 강철 군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먼 황야로 도망친 승천자 무리가 있다고 경고했었다. 그는 살라딘에게 그들이 얼마나 공격적인지 이야기했었다. 그들은 무법자였다. 살라딘이 그들을 길들일 것이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절벽 위로 그가 있는 쪽을 바라보는 망원경의 반사광이 눈에 띄었다. 바위 건너편에서 낯선 목소리가 무언가 외치고, 다른 자들의 목소리도 합류했다. 살라딘은 거친 기침 사이로 대여섯 명의 적을 확인했다. 손가락은 얼얼하게 아프고, 폐는 서리로 뒤덮인 듯 따가웠다. 그는 불안정한 숨을 내쉬었다. 잠시 동안 살라딘은 여제 졸더가 요란한 웃음을 터뜨리며 구름을 뚫고 떨어져 내리는 것을 상상했다. 여제가 주저하지 않고 거대한 번개 투창으로 벼랑을 소멸시키는 것을 상상했다. 이름 없는 부랑자들은 죽고, 그녀는 살라딘 또한 웃음을 터뜨릴 때까지 계속 웃는다. 그의 위태로웠던 순간은 모닥불 주위에서 늘 언급되는 부끄러운 이야깃거리가 되고, 또 다른 실수가 그 자리를 차지할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입에 오르내린다. 시선이 흔들리고, 그는 잿가루를 들이마셨다. 폭풍이 다가오는 밤의 공기 냄새를 맡았다. 불의 온기를, 친구들의 따스함을 느꼈다. 오랜 세월에 붉게 물들어 버린 낡은 기억처럼 현실적이었다.

빛이 살라딘의 손가락에 응집되었다. 그가 어깨를 꿰뚫은 가지를 붙잡자 전기가 호를 그리며 뿜어져 나와 껍질을 타고 흘렀다. 나뭇가지는 갈고리처럼 가슴에서 위쪽을 향해 뻗어 나와 있었다. 부러뜨리는 편이 낫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손가락이 가지를 움켜쥐고 불태웠다. 손가락이 서서히 가지 안쪽까지 파고들자, 그는 나뭇가지를 뒤틀었다. 나무가 펑 소리와 함께 폭발하듯 쪼개지는 순간, 총알들이 그의 뒤쪽 소나무 숲의 지붕을 꿰뚫었다. 다시 한번 총알이 날아오고, 이번엔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맞았다. 소총 사격 소리가 벼랑을 타고 흘러내렸다. 살라딘은 손날에 빛을 집중하여 쪼개진 가지를 잘라냈다. 그는 잘려 나간 가지에 매달린 채 달랑거렸다. 그리고 떨리는 숨을 내쉬며 감각이 사라진 다리를 뒤로 내밀어 밑동을 밀어냈고, 체중을 나무에 싣고 가지에 걸린 뼈를 들어 올렸다. 그의 방어구는 피가 흥건해 미끈미끈했고, 뼈가 부러진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견딜 수 있는 고통이었다. 그는 그 말을 주문처럼 뱉었다. 아래쪽 지면으로 떨어지면 위험할 것이다. 살라딘은 나무에서 벗어나 떨어질 준비를 했다.

탄환 하나가 그의 몸통 방어구를 때리며 그의 폐에서 공기를 밀어냈다. 발이 미끄러졌고, 그는 격렬하게 버둥거렸다. 부러진 가지 위에서 몸의 무게 중심이 흔들리고, 쇄골에 강한 충격이 가해져 골절 부위로부터 실금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살라딘은 총성 위로 거칠게 포효하며 자기 어깨를 붙잡았다.

"이시라! 지금 당장 날 이 가지에서 뽑아내라." 그가 으르렁거렸다.

그의 고스트가 앞쪽에 실체화되었다. "저한테 의존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이시라가 그를 꾸짖었다. 그녀는 재빨리 살라딘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아직 죽지 않았으니, 당신 혼자 할 수 있을 거예요."

살라딘은 다시 발을 디디려고 애를 썼다. 그는 고개를 들어 쌕쌕거렸고, 폐가 조금씩 확장되었다. 위쪽으로 커다란 물체 주위에 여러 형체가 모여 있었다. 흐릿한 금속 이미지는 대공포 같아 보였다.

"항복하겠어." 살라딘은 희미하게 웃었다.

"제가 없었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포지? 제가 죽었다면요?" 그의 고스트가 빛의 알갱이로 그의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당신과 당신에게 남겨진 희미한 빛만 여기 남아 있다면 말이에요."

그와 그의 빛만이 전쟁 병기를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냥 인간이었고, 그는 불의 마귀였다.

살라딘은 뼈에서 이지러지는 별의 불길을 생성했다. 마지막 의지의 자취를 빛에 제물로 바쳐 불태웠다. 불길이 이글거리며 그의 육체를 통과해 방출되고, 몸과 방어구 사이의 틈에서 소용돌이친 후, 그대로 옮겨가 나뭇가지를 삼켰다. 주위의 나무에서 수액이 쏟아져 나와 쉬잇 소리를 내며 끓어올랐다. 불길이 가지를 뒤덮고 강철 군주의 방어구에서 피어오르는 불에 합류했다. 잿불의 씨앗이 상승 기류에 실려 위로 올라갔다. 펑, 소리와 함께 그는 자유 낙하를 시작했다.

나뭇가지가 그의 다리에 부딪혀 부러지고, 그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살라딘은 성한 손으로 등 뒤의 도끼를 붙잡았다. 손가락이 손잡이에 닿자, 태양 빛이 도끼를 뒤덮었다. 그는 도끼를 띠에서 풀어내며 그대로 휘둘러 타오르는 도끼날을 나무에 박아 넣었다. 그는 그렇게 낙하 속도를 줄였고, 쏟아지는 불씨와 함께 나무를 길게 쪼개며 숲 지면을 향해 내려갔다. 엄청난 압박감이 그를 찢어발기려 했다. 더는 버틸 수 없는 순간, 그는 도끼를 놓고 마지막 10미터가량을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철퍼덕, 소리와 함께 그의 잔해가 기반암에 떨어졌다.

검게 그은 지면에서 피의 증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그는 다시 깨어났다. 머리 위로 대공포탄과 함께 소나무 숲의 지붕이 폭발했다. 파편들이 휘파람 같은 소리와 함께 주위를 가로지르고, 거친 금속덩어리들이 비처럼 숲에 쏟아져 내렸다. 살라딘은 발치의 나무 밑동을 걷어차서 부서진 몸을 자기 로켓 발사기 위로 굴렸다. 발사기를 어깨에 얹자 근육이 떨어져 나가려 했다. 살라딘은 포효했다. 상처 입은 야수의 마지막 도전이었다. 그는 발사기의 쪼개진 부분을 팔뚝으로 누르고 태양의 열기로 금속을 용접한 후 더듬더듬 방아쇠를 찾았다. 또 하나의 포탄이 폭발했다. 강렬한 충격파 때문에 한순간 빽빽하게 밀집한 소나무 숲 지붕이 갈라져 열렸다. 살라딘은 마루에 이르는 사선을 확보하고, 조준 후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날아가는 로켓을 보며, 대공포탄의 파편이 자기 얼굴을 가르는 것을 느꼈다.


3. II - 깨어남[편집]


타오르는 풀의 냄새가 스멜링 솔트처럼 살라딘의 콧구멍을 채웠다. 그는 꿈틀거리며 심연을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돌아왔다. 열기로 이글거리는 거대한 소나무에 등을 기댄 모습이었다. 살라딘은 눈을 깜빡여 초점을 맞췄고, 그러자 절벽에 로켓이 적중한 지점에 생긴 분화구가 보였다. '좋아.' 그는 판금 흉갑에서 금속 파편을 뽑아내며 생각했다. 이시라가 머리 위 연기를 뚫고 내려와 그의 얼굴 앞에 멈췄다. 빛이 여전히 그녀의 프레임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잘 돌아왔어요. 당신 패배예요." 이시라는 얼음처럼 매끄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승부였어." 살라딘은 일어서서 목에 걸려 늘어진 부적을 더듬었다. 그는 강철로 새긴 휘장을 방어구의 목깃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들은 죽었잖아. 안 그래?"

"약탈자는 백만 명이고 당신은 하나예요." 이시라가 쏘아붙였다. 그녀는 그의 눈높이로 떠올랐다. "무승부는 패배예요. 우리가 그런 걸 용납할 순 없죠."

"우리'라고?" 살라딘은 눈을 가늘게 뜨며 불타 버린 나무 밑동에서 도끼를 빼내 등에 걸쳤다.

"자기가 망가뜨린 건 직접 고쳐요." 이시라는 그 얘기를 이미 몇 번이나 했었다. "여기 오는 길에 주저하지 말고 사격을 개시했어야 해요. 그들은 미끼라고 제가 분명히 경고했잖아요."

"대체 언제까지 그 얘기를 하고 있을 거야?" 살라딘은 신음 소리를 냈다.

이시라는 똬리를 트는 독사처럼 의체를 단단히 여몄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죠?"

"계속 동쪽을 수색하겠어. 방송 코드는 황금기 것이었을지 몰라도, 포착된 신호 자체는 약했어. 멀리 있지는 않을 거야. 정찰대는 우리가 여기 상황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도 돼."

"좋은 생각이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고스트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둥실 떠올라 앞으로 날아갔다.

살라딘은 타오르는 소나무를 보며 건틀릿을 풀어냈다. 붉은 가죽 가닥이 손톱 밑에 박혀 있었다. 그는 장갑을 벗고 손을 나무껍질에 댔다. 이 나무는 수 세기 동안 땅에 뿌리를 박고 당당히 서 있었을 것이다.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더 큰 숲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다른 수많은 나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각자 나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래된 나무들은 수관 기피 현상으로 교묘하게 서로를 피하며 자라나 있었다. 이 숲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나무가 언제나 그렇게 서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위쪽 높이 있는 심재가 타오르며 발생한 열기를 느꼈다. 불씨와 함께 갈라진 나무에서는 여전히 빛이 빠직거리고 있었다. 그의 빛이었다. 그냥 내버려 두면 그 빛이 나무를 내부로부터 삼켜 버리고 말 것이다. 살라딘은 그 빛을 자신의 핵에 연결했고, 나무를 태우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에게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나무는 회복할 것이고, 오늘의 상처는 스러질 것이다. 흉터는 극복한 고난을 상징할 것이고,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익숙한 모습만을 남기고 흐려질 것이다.

"누군가 오고 있어요." 이시라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장했나?" 살라딘이 속삭였다. 그의 손이 재빨리 등에 멘 도끼자루로 향했다.

이시라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거친 아마 옷을 입은 비쩍 마른 사내가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살라딘을 본 그의 얼굴이 공포로 뒤덮였다.

"무, 무기는 없습니다." 그 남자가 짙은 현지 억양으로 말했다. 그가 살라딘의 장비를 바라봤다. "당신… 강철 군주입니까?" 경외감이 그의 얼굴을 뒤덮었다.

이시라가 그와 살라딘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폭발 소리를 못 들었나요? 그 동네에서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가르치는 거죠?"

"길 잃은 개들이 여기에서 싸우는 일이 많습니다." 남자의 시선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다 보면 부스러기가 남는 경우도 많죠. 무기나—"

"남겨진 걸 훔치러 온 거군." 살라딘은 비난했다.

"아닙니다!" 남자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오히려 다른 자들이 우리 마을에서 도둑질을 합니다. 거기 맞서 싸우려고 무기를 찾는 겁니다."

"알겠다." 살라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무전기가 있나요?" 이시라가 물었다.

그 남자는 퉁명스러운 웃음을 터뜨리고 나서야 고스트가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오. 어, 아니요."

"그럼 이건 시간 낭비예요." 이시라가 살라딘에게 속삭였다.

그 남자는 앞으로 나섰다. "기다려 주세요.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그는 넓적다리에 한 손을 짚고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강철 군주는 사람들을 지켜 주지 않습니까. 당신은 괴물들을 물리쳐 주지 않습니까." 그의 눈이 살라딘과 고스트 사이를 오갔다. "비용이 필요하겠죠?"

살라딘은 한숨을 쉬었다. "우린 용병이 아니다."

"그럼 식량을 드릴까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노끈을 엮어 만든 배낭에서 검게 그은 빵을 꺼내 건넸다. "깨끗한 방어구나 옷은요? 담요와 깨끗한 물을 드리고… 따뜻한 불가에서 괜찮은 이야기 상대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 남자는 열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살라딘은 손 안의 작고 퀴퀴한 빵 덩어리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겨울이 찾아온 이 지역에서는 잠복 방사선 때문에 쓸 만한 식량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로 인해 사소한 도둑질도 심각한 중범죄로 간주되었다. 그는 남자가 물자에 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건 그저 절박하기 때문이었다. 폭발 현장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그런 절박함. "이름이 뭔가?"

"아! 케프리, 전 케프리라고 합니다."

"자네 마을에 도둑이 들었다고 했나, 케프리?"

"감당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마지막으로 도둑들이 나타났을 땐, 엘미를 잃었습니다." 케프리가 애써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도둑들을 막지 못하면, 우린 굶어 죽고 말 겁니다."

"안내해라."

남자는 그들을 이끌고 왕래가 잦지 않은 듯한 오솔길에 올랐다. 이제는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낡은 고속도로 표지판과 함께 박아 놓은 말뚝이 길을 표시해 주고 있었다. 남동쪽으로 향하던 일행의 앞에서 나무들이 줄어들고, 진창에 뒹구는 가축과 밀 내음이 솔향을 대체했다. 케프리는 얼기설기 울타리가 쳐져 있는 작은 돼지우리에 다가갔고, 이시라와 살라딘은 몇 걸음 뒤에서 기다렸다. 살라딘은 그 울타리가 사실 돼지 세 마리가 우리를 벗어나는 걸 막는 용도이지, 침입자를 막아낼 만한 것은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그는 돼지우리 옆으로 둥글게 금속 거주지들이 이어지고, 그것들이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는 창고와 공동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까지 빠르게 살폈다. 살라딘이 기다란 공동건물 옆에 있는 초라한 염소 우리 곁을 지나갈 때, 그 안의 염소가 살라딘의 소매를 한가로이 물어뜯었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몇몇 주민 가족들이 진흙투성이 입구로 절벅절벅 들어서는 살라딘과 그 뒤에 떠 있는 이시라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케프리는 둘을 구원자라 소개했다. 살라딘의 귀에는 그 말이 어색하게 들렸지만, 그는 우아하게 사람들과 악수를 하며 도둑들을 찾아내는 근거로 이용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의 표정과 그들이 건넨 하찮은 선물에는 그래도 당당함이 남아 있었다. 빈손으로 시작하여 작지만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의 감정이었다. 살라딘은 그들의 끈기 있는 모습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우리에서 엘미를 납치했습니다." 케프리가 말했다. "우리 염소들에게는 겁을 줬고요. 아들과 제가 추적했지만, 엘미를 데리고 말린 고기 절반까지 들고 달아났습니다." 그는 살라딘의 손을 꽉 잡았다.

"엘미는 돼지 이름이군." 살라딘이 냉랭하게 말했다.

케프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했다. "마을의 유일한 암퇘지입니다. 그 아이가 없으면… 우린 굶어 죽습니다."

이시라는 펄럭거리며 살라딘에게 접근하며 주위 넓은 범위를 스캔했다. "포지, 주민들이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 황금기 교신 장치는 공동주택에서 발신된 신호를 수신하고 있어요."


4. III - 양형 거래[편집]


살라딘은 붕괴된 절벽의 배면 경사로에서 수목 한계선을 돌파했다. 뒤쪽으로는 오래된 숲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여명을 앞두고 숲의 그림자가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었다. 그와 이시라는 케프리의 마을에서 2킬로미터가량 걸어와, 황금기 수신기의 위치에 접근하고 있었다.

봉우리 꼭대기에서 살라딘은 눈앞에 가파르게 가라앉은 분지로 주의를 돌렸다. 지구를 노린 수많은 침공의 압박에 스스로 붕괴된 지역이었다. 무성하게 자란 수풀과 잔해, 파괴된 통신 안테나 사이로 지나간 세월의 녹슨 안테나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흐릿해진 글씨가 안테나를 따라 길게 적혀 있는 게 보였다. '근일점 거점'. 안테나 아래쪽 중앙에는 빛바랜 해치가 보였다.

"공동주택에서 발신되던 신호는 녹음 장치에서 보낸 것이었어요." 이시라는 설명했다. "그 신호를 여기에서 수신하고 있고요."

"도둑이 주민들 모르게 정탐 장치를 심어 둔 거로군." 살라딘은 결론을 내렸다.

"똑똑하게 빈틈을 노리는 거죠." 이시라는 말했다. "게다가 전류도 감지되고 있어요. 저 잔해 아래에 전원 장치가 있는 게 분명해요. 그런 거라면 펠윈터 봉우리에서도 쓸모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녀가 덧붙였다.

"약탈자는 아닌 것 같은데. 마을에서는 아무런 폭력 행위도 없었어. 영역 다툼도 아니고… 게다가 놈들은 다른 것도 아닌 돼지를 훔쳐 갔잖아." 살라딘은 말했다. "오히려 굶주린 동물에 가깝지 않을까."

이시라가 웅웅거리며 그 말을 곱씹었다. "야생 동물이 가축을 해치기 시작하면, 없애 버려야죠."

살라딘은 쿡쿡 웃었다. "야생 늑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면 충직한 사냥개가 되지, 안 그래, 이시라?"

"가끔은 그렇죠. 언젠가는요." 이시라는 한숨을 쉬었다. "여기 사람들을 지켜 주고 싶어요? 뭔진 몰라도 거기 있는 기술로 군주들에게 힘을 부여하세요. 전쟁군주가 통제를 시작하기 전에 질서를 수립하고요. 그들을 길들일 수 있다는 헛된 꿈은 꾸지 마세요."

"운만 따라 주면, 두 가지 다 할 수 있을 거야." 살라딘의 입꼬리가 흔히 볼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올라갔다.

"우리가 운에 의존하지는 않죠, 포지."

안테나 기지에 도달한 살라딘은 해치의 손잡이에서 녹을 닦아낸 흔적을 보았다. 그는 주위의 잔해 더미 구석구석에 있는 공간을 살피며 그중 하나에 매복해 있을 적의 공격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모욕감을 느끼기라도 한 듯 콧방귀를 뀌고는 해치의 손잡이를 돌렸다. 해치는 커다랗게 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살라딘은 썩은 악취가 코로 밀려들자 몸을 움츠렸다. 그는 등에서 도끼를 꺼내 불을 붙였다. 흔들리는 조명이 어두운 통로에 그림자를 흩뿌렸다. 보통 크기의 방이었고, 대부분 잠식해 온 자연으로 뒤덮여 있었다. 단절된 통신을 연결하기 위해 세워진 제어탑의 잔해로 보였다. 오래전 사멸된 언어로 적힌 구호들이 내부의 벽에 적혀 있었다. 그로서는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는 글귀들이었다.

"아무도 없나?" 그가 물었다.

"탄소 농도를 보면 최근까지 몇 명의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보여요. 부패의 흔적이 있긴 한데 전기적 간섭 때문에 수치를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네요."

"그러면 옛날 방식으로 해야겠군." 살라딘은 그렇게 말하며 열린 해치 안으로 들어갔다. 방어구 무게가 실린 발이 쿵, 바닥에 떨어지고, 이시라가 그의 뒤를 따랐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그가 무기를 휘두르려고 준비하는 사이, 작은 형체가 꽥꽥 소리를 내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달려오는 돼지를 그대로 붙잡았다. "엘미," 살라딘은 툴툴거렸다. 버둥거리는 돼지를 붙잡고, 그는 불타오르는 도끼를 휘둘러 방 구석구석을 비춰 보았다. 그리고 멈춰 서서 쓰레기 더미가 쌓인 어두운 구석을 바라봤다.

이시라가 같은 지점으로 날아와 전등을 켰고, 그러자 쓰레기 사이에 반쯤 묻혀 숨은 얼굴과 더러운 어깨, 그리고 총구가 드러났다.

"좋은 돼지야." 맨발의 그 어린 소녀는 그에게 총을 조준하고 있었다. 살라딘은 상대를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기껏해야 14살 정도 되었을 것 같은 야생 소녀는 털가죽과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다.

"총알구멍을 내주겠어." 그녀의 불안정한 목소리가 낯선 어휘를 힘겹게 내뱉었다. "거짓말이 아니야!" 빼빼 마른 소녀의 흐릿한 눈과 엉겨 붙은 머키라카락은 끊임없는 트라우마에 어느새 은빛으로 변해 있었다.

살라딘은 앞으로 나섰다. 그의 거대한 덩치가 야생 소녀에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날 죽일 순 없어, 꼬마야."

"당신이 죽으면 당신 악마는 내가 가질 거야." 소녀는 잠시 주저하다가 소리쳤다. "그게 마법을 준다는 거 알아. 그럼 잭센도 날 무서워하겠지!" 그녀는 경험을 통해 공감 능력을 상실한 게 분명했다. 도덕성이란 문명화된 시대의 사치품이었고, 그녀는 지금껏 그런 걸 경험해 본 적조차 없었다.

이시라가 살라딘 뒤쪽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한번 해 봐요."

소녀는 소총을 이시라를 향해 돌리고 발사했다. 살라딘은 꽥꽥거리는 엘미를 떨어뜨린 후 총알이 고스트에게 닿기 전에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건틀릿 안쪽에서 탄환을 꺼냈다. 손바닥에 새롭게 뚫린 구멍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네가 이 물건들을 훔쳐 온 사람들도 지금은 식량이 부족해."

그녀는 쉭쉭거리고 그를 바라보면서 다급히 더러운 탄환을 다시 약실에 넣으려 했다. 살라딘이 소녀를 향해 달려갔다. 그는 소총을 그녀의 손에서 쳐내고는 꾀죄죄한 옷을 붙잡아 소녀를 들어 올렸다. 그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최후의 일격을 받아들이려 했다.

"이제 얘기가 좀 통하는 것 같으니…" 살라딘은 그녀의 발이 바닥에 닿도록 내려놓았다. "앉아라, 꼬마야."

하얗게 질린 그녀의 표정은 생존의 당혹감에 시달리고 있었고, 놀란 마음에 심장을 두근거리며 헐떡이고 있었다. 살라딘도 그런 각성의 당혹감을 똑같이 느껴 본 적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으로 되살아났던 때.

살라딘은 도둑질의 형벌은 죽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처벌은 최종적인 단절을 의미했다. 그는 잠재력과 법전의 문구를 넘어선 정의, 그리고 자비의 힘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광기의 포화로 전락해 버린 세상에 의지가 되어 줄 의미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름이 뭐지?"

"그냥 죽여요."

"난 전쟁군주가 아니다, 꼬마야." 살라딘은 기사처럼 불타는 도끼를 지면에 꽂았다. 그의 손에서 흘러내린 피가 손잡이에 닿아 지글지글 끓어올랐다. "네게 죽음을 주진 않겠다. 살아가는 방법을 주겠다."

그래도 그녀의 두 눈은 한동안 불타는 도끼 위에 머물렀다. 그녀는 전투식량도 거부했다. 지금껏 더 많은 걸 뜯어내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무엇도 받아 본 적이 없는 듯했다.

"마지막이다. 네 이름은?"

"페라."

"네가 그렇게 굶주렸다면, 마을에서 널 받아줬을 거다. 곧 겨울이 될 텐데 식량을 훔치다니… 너 때문에 주민들이 굶어 죽으면 어떻게 하겠니?"

소녀는 공허한 눈으로 그의 너머를 바라봤다. "잭센이 선물을 가져오라고 했어요. 그러면 동생을 돌려줄 거라고."

이시라가 살라딘의 손을 빛으로 치료했다. "정말 그렇게 했나요?" 그녀가 물었다.

페라의 맥없는 표정이 흔들렸다. 살라딘은 그녀 뒤쪽의 쓰레기 더미를 이시라의 불빛을 비추며 살폈다. 천으로 감싼 아이의 사체가 그 안에 묻혀 있었다.

그는 부드러운 손길로 소녀의 어깨를 감쌌다. "날 잭센에게 데려다다오."

전쟁군주의 공동체로 향하는 길은 북쪽으로 며칠을 걸어야 했다. 그 길에서 살라딘은 소녀에게 함정을 놓아 토끼를 잡고, 먹잇감을 사냥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포식자가 의지를 실행하는 모습을 볼 때면, 빠른 죽음을 선사하는 것이 자비로운 행위라는 걸 설명해 주었다. 그는 늑대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리를 위해 사냥을 한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 홀로 남겨진 늑대는 본능과 굶주림에 떠밀리는 무질서한 잡종견과 다를 게 없었고, 그런 폭력성은 주위로 전파되는 법이었다. 무리의 약속이 있어야만 늑대도 원래의 성품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이 모두를 하나로 묶는 질서였다.

그들은 잭센의 요새 외곽에서 야영했다. 살라딘은 빛나는 손바닥 사이로 힘줄이 많은 고기를 빙빙 돌렸고, 먹음직스러운 토끼 구이 냄새가 그의 코를 간질였다. 페라가 처음으로 튼튼한 함정을 만들어 잡은 사냥감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공유하는 전리품이었다.

"봤지? 함께하면 서로의 식량을 마련해 줄 수 있어." 살라딘은 조리한 토끼 다리를 페라에게 건넸다.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진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이런 거다. 공동체, 질서, 법률. 그런 게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야."

"법률이라는 게 뭐죠?" 페라는 토끼 고기를 입안에 잔뜩 물고 물었다.

"규칙이지.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약속."

"약속은 깨지는 거잖아요…"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음식을 꿀꺽 삼켰다.

"나 같은 사람이 그런 약속이 지켜질 수 있게 유지하지. 너 같은 사람도 그럴 수 있어." 살라딘은 그녀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군주가 자리를 지킬 수 없어 특정 지역을 보호할 수 없을 땐, 우리를 대신할 봉신을 임명하기도 한다."

페라는 묻고 싶은 게 많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떠나 있는 동안 이 숲을 지킬 사람 말이야. 약속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너 같은 사람." 살라딘은 목에 걸린 사슬을 풀었다. "이걸 목에 걸면 너 또한 우리 무리의 일원이 된다, 페라. 너도 늑대가 되고, 우리는 언제나 일족을 지킨다."

"어떻게요?" 그녀는 살라딘이 자기 여린 목에 걸어 준 부적을 손에 꼭 쥐며 물었다.

"너처럼 어딘가 살 곳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거야. 그들을 찾아라. 그리고 네가 물건을 훔치던 그 마을로 데려서, 그곳에서 서로를 지켜 주자고 약속해라. 그러면 된다."

아침이 되자, 페라는 살라딘을 잭센의 주둔지 외곽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숲은 끝나고 바위투성이 언덕과 메마른 사막이 시작되었다. 강철 군주는 그녀에게 야영지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는 잭센의 주둔지에 당당히 걸어 들어갔고, 경보음이 울려 퍼지며 방어병들을 깨웠다. 페라는 숲으로 물러났지만, 그곳을 떠나지는 않았다.

**

페라는 강철 군주가 잔혹하리만큼 효율적으로 육신과 육신을 도륙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피를 들이켜는 야만적인 야수의 모습을. 어린 소녀는 그 야수의 도끼가 지글거리는 진홍빛을 흩뿌리는 폭력적인 이미지를 하나도 빠짐없이 탐닉했다. 그녀는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비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야수의 모습을 보며 기뻐했다. 그녀의 휘둥그레진 눈을 번개와 불길, 유혈이 가득 채웠다. 카타르시스를 주는 균형의 그림이었다. 그녀는 글은 몰랐지만, 복수의 정의로움을 머릿속에 새겼다. 야수는 잭센의 악행에 대한 형벌이었다. 지배를 통해 약속된 질서를 부과했다.

자수정 빛으로 감싸인 전쟁군주 잭센이 나타나자, 페라는 부적을 쓰다듬었다. 한순간 공포가 그녀의 심장에 스며들고, 잭센은 웃음을 터뜨리며 돌진했다. 하지만 그 또한 야수의 천둥 같은 포효가 불러 내린 말살의 번개 기둥에 짓눌려 쓰러졌다. 남은 건 새까맣게 타버린 그의 뼈가 지글거리며 재가 되어 가는 모습뿐이었다.

그녀는 웃었다.

**

살라딘은 잭센의 불타오르는 주둔지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한때 잭센이 서 있던 자리의 번개에 그슬린 땅을 바라보며 이시라를 불러냈다.

이시라는 전투의 여파를 둘러봤다. "좋네요. 그런데 저 소녀는 그냥 보내 줄 건가요? 식량을 훔치고 강철 군주를 공격한 건 사형에 처해야 할 중죄예요. 그런데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이시라에게 소녀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건 명백해 보였다. 그녀가 이 세상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충분히 지켜봐 왔다는 건 살라딘도 잘 알고 있었다. "괜히 시간 끌지 마세요." 그녀는 씩씩거렸다.

"페라는 아직 어리니까 다른 미래를 찾을 수 있을 거다." 살라딘은 이시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시라는 몹시 짜증이 난 듯 윙윙 소리를 냈다. "이 세계에 길 잃은 고아는 한두 명이 아니에요, 포지. 당신이 할 일은 강철의 법률을 수호하는 거지, 애매한 부분을 멋대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고요."

"나는 강철 군주다. 우리 법률은 내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어." 살라딘이 딱 잘라 말했다. "배터리를 회수하고 그녀는 돼지와 함께 케프리에게 데려가겠어." 그의 근엄한 목소리에는 양보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 "더 말할 필요 없다."


5. IV - 그들 사이 몇 마디 말[편집]


겨울 바람이 소나무 숲의 지붕 위를 휩쓸었다. 갓 내린 눈이 나무 꼭대기를 덮고 있었다. 이시라는 소나무가 살라딘이 마지막으로 봤던 때보다 훨씬 더 크게 자랐다고 말했지만, 그는 나무가 나이를 먹는 걸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지금 거기에 있는 것만을 보았다. 그 솔잎 아래에 서서 50년 동안 나무가 성장하는 걸 지켜보았다면, 그도 달라진 점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그가 전쟁군주의 주둔지를 불태웠던 지점은 새롭게 자라난 수풀과 눈으로 덮여 있었다. 그는 머릿속에 그 지점으로부터 오래전 페라를 만났던 봉우리, 그리고 케프리의 마을에 이르는 선을 그었다. 숲과 눈보라 너머 마을 쪽에서는 지금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마 요리를 하고 있겠지. 베이컨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라딘은 절벽 너머 예전에 떨어졌던 지점을 바라본 후 그대로 뛰어내렸다.

진창 같은 눈 아래에서, 살라딘과 이시라는 한때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던, 케프리의 마을로 가는 길을 찾았다. 그 길에서는 아무도 마주칠 수 없었다. 이시라가 스캐너에서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몇 차례 감지하기는 했다. "짐승이겠지." 살라딘은 애매하게 말했다. 나뭇가지의 틈새 너머, 몰아치는 눈보라 사이에서는 점점 더 짙어지는 검은 연기가 뚜렷하게 보였다.

유령 같은 안개 바람이 조금씩 줄어드는 소나무들 사이를 스치고, 둘은 케프리의 마을에 도달했다. 그을린 머리카락과 불타 버린 돼지 냄새가 겨울의 대기를 침범했다. 강철 군주와 고스트는 시선을 교환했고, 이시라는 곧바로 사라졌다. 살라딘은 얼간이 치료제를 뽑아 들고 묵직한 장화로 눈을 짓밟으며 공터로 달려들었다. 그는 잿더미와 눈밭에 스며든 반짝이는 혈흔을 따라 달렸고, 건초가 하나도 없는 텅 빈 우리를 통과하고, 썩어가는 주택의 해골처럼 남겨진 나무 기둥들을 지나갔다. 마침내 그는 말라비틀어진 공동주택의 녹슨 골조를 마주했다. 눈과 잔해를 뒤덮은 나방 사이로 그는 보았다.

무덤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다음에는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그 뒤로는 갓 뒤집은 흙더미가 있었다. 그 너머, 땅을 파낸 구덩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살라딘은 그 뭉뚱그려진 죽음의 개수에 집중했다. 그는 걸음을 옮기며 수를 셌다. 그러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구덩이 가장자리에 서자, 숫자는 모든 의미를 잃어버렸다. 거기에는 끔찍한 학살의 잔류물이 하나로 뒤엉켜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소작 처리된 공포가, 차가운 대기 속으로 지금도 열기를 방출하고 있었다.

살라딘은 검게 타들어 간 얼굴의 텅 빈 눈구멍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케프리의 얼굴이 그를 마주보는 것 같았다. 정말 그였을까? 육신은 모두 불타 버렸고, 처음 만났을 때 이후로 시간도 많이 흐른 뒤였다. 살라딘은 돌아섰다. 이시라가 공동주택 안에서 무언가를 살펴보고 있었다. 두 눈에서 피어오르는 불길 사이로, 그는 검게 탄 늑대의 두개골 안에 놓인, 조악한 강철 인장의 복제품을 보았다.

**

황금기 안테나는 이제 신호를 수신하고 있지 않았다. 구부러져서 직접 신호를 수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하늘을 향해 잡음을 쏘아 올리고는 있었다. 분지 지형을 따라 나무 창으로 울타리가 쳐진 새로운 거주지가 소용돌이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살라딘은 어려움 없이 묘하게 한적한 주둔지로 내려갔다. 한때 해치를 통해 통신소 안쪽으로 내려갔던 곳에는 이제 텅 빈 입구가 그대로 열려 있었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발에 밟혀 땅에 박힌 돌들로 만들어진 길이 안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진홍색 이끼가 돌 사이를 채운 진흙에 뿌리를 내렸다. 이끼는 마치 강어귀 같은 지하의 열린 전당으로 흘러내렸다. 그는 이시라에게 밖에서 기다리며 등 뒤를 지켜 달라고 말했다.

은빛 두 눈이 통신 시설을 개조한 크고 어두운 전당 건너편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라딘은 그 눈에 비친 달빛이 두 마리 요정처럼 춤을 추는 걸 보았다. 두려움을 모르는 그 시선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널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는데, 꼬마야."

"누군가 날 꼬마라고 부른 건 정말 오랜만이군요." 무리의 어미 페라가 전당 뒤편에 고철을 쌓아 만든 왕좌에 앉아 있었고, 여덟 명의 거친 총잡이가 양옆으로 서 있었다. 어느새 성인이 된 그녀의 햇빛에 그은 피부와 주름진 얼굴에는 수십 년의 세월과 폭력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오래전 반쯤 떨어져 나간 후 이제는 아물어 버린 귀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아주 멀리서 오셨네요. 무슨 일이죠?"

"미친 늑대들이 변경 지역을 떠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다." 살라딘은 페라의 곁에 서 있는 남자들을 바라봤다. "네 것이냐?"

페라는 살라딘의 방어구 문장을 향해 음흉한 시선을 던졌다. "내 무리죠. 다른 녀석들은 지금 사냥하러 나갔습니다."

"내가 전쟁군주를 제거했는데, 네가 그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구나." 살라딘의 목소리는 분노로 먹먹했다.

"예전 그대로죠." 페라가 흥얼흥얼 말했다. "당신이 없더라도 누군가는 질서를 유지해야 하니까요."

살라딘은 혐오감 가득한 표정으로 방을 둘러봤다. "이렇게 가르치진 않았던 것 같은데."

페라는 웃으며 동료들을 바라봤다. "그랬던가요? 이들은 숲의 고아들이에요. 나처럼요."

"길을 잃었구나!" 살라딘은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그의 손가락이 총집에 담긴 무기의 방아쇠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페라는 킬킬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 뒤를 따랐기 때문이죠. 난 도둑질한 걸 용서해 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내 귀를 빼앗았어요… 그래서 다음에 만났을 땐, 복수를 해 줬죠. 그런 일이 계속됐고, 결국 그들은 모든 걸 잃었어요." 그녀는 뒤쪽에서 싱긋 웃는 신봉자들과 훔친 물품 더미를 가리켰다.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는 무리에서 결정하는 거니까요."

"강철 군주는 무고한 마을 주민들을 도살하지 않는다. 우린 사람들을 굶겨 죽이지 않는다. 난 아이들은 살해하지 않아." 살라딘이 으르렁거렸다. 피부 아래에서 열기가 쌓여만 갔다.

"전쟁군주가 고개를 숙이지 않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죠? 질서란 강제해야 하는 거잖아요, 머리까지 세 버린 영감 군주님. 혹시 자기가 가르쳤던 걸 전부 잊은 건가요?" 그녀는 의자 위에서 자세를 바꿨다. "당신이 내 손에서 소총을 쳐낼 때 난 그걸 배웠어요. 잭센의 주둔지를 박살 낼 때, 난 깨달았죠."

"네게 자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게 착각이었던 것 같구나." 살라딘은 긴 숨을 내쉬었다.

강철 군주는 재빨리 얼간이 치료제를 꺼냈다. 빠른 점사에 페라의 가장 오른쪽에 있던 늑대가 쓰러지고, 무리는 당황했다. 앞으로 걸어간 살라딘은 페라의 왕좌를 걷어찼다. 그녀와 의자는 물수제비를 뜨듯 건너편으로 날아갔고, 반대쪽 벽에 충돌한 후 의자가 그녀를 짓눌렀다.

페라의 가장 왼쪽에 있던 늑대가 매서운 마체테를 꺼내며 달려들었다. 살라딘은 빈손으로 등에 짊어진 도끼를 꺼내고는 다가오는 도적을 골반부터 정수리까지 깨끗하게 베어 버렸다. 몸의 양쪽 절반이 철퍼덕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피가 바닥에 흥건하게 고이고, 공포에 질린 무리는 얼어붙었다. 페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죽여버려!"

사방의 총구에서 섬광이 번득이고 탄환이 날아들었다. 살라딘은 몸을 돌려 다수의 무리가 모여 있는 곳을 바라봤다. 방어구와 몸에 부딪힌 총알은 달그락 소리를 내며 그대로 튕겨 나갔다. 그는 두 명을 죽였다. 엄폐물은 없었다. 물러날 곳도 없었다. 이건 심판이었다.

주위에서 늑대들이 낑낑대며 죽어갔다. 산탄총 사격 한 발이 그의 어깨를 때렸고, 피가 쏟아지며 그의 권총도 땅에 떨어졌다. 그는 상처의 무게에 짓눌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견장 아래에서 붉은 핏방울이 떨어졌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을 채운 감정 중 고통은 가장 작았다. 그는 불타오르는 빛으로 팔을 뒤덮으며 태양의 망치를 던졌고, 그게 머리에 박힌 공격자는 두개골이 지글거리며 터져 버렸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늑대가 총알이 떨어진 무기를 버리고 달아나려 했다. 살라딘은 전당 반대편에서 도끼를 던져 겁쟁이의 등을 정확히 맞혔다. 그는 불타오르는 도끼자루에 깔려 쓰러지고 그대로 재가 되었다. 살라딘은 허둥지둥 무기를 재장전하는 마지막 늑대를 향해 돌아섰다. 그들은 전당 구석으로 물러나 소총을 들고 탄약을 흩뿌렸다. 살라딘은 총성을 뚫고 돌격했고, 상대를 그대로 벽에 짓눌렀다. 그는 전기가 휘감긴 주먹을 연속으로 날려 적을 꿈틀거리는 넝마로 만들어 버렸다.

살라딘은 여전히 옥좌 아래에 깔려 버둥거리고 있는 페라를 바라봤다. 불타는 잔해가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옥좌를 뒤집은 후, 두 손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에 뼈가 느껴질 때까지 목을 눌러 공기를 빼냈다. 온몸이 아팠다. 그는 잠시 멈춰 숨을 돌렸다. 그녀의 눈에 어린 회한을 보았다.

페라가 그의 손가락 위에 부드럽게 자기 손을 얹었다. "당신 폭력의 대가를 받아낼 자가 나타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그녀는 쌕쌕거리며 말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살라딘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녀는 다른 손으로 가느다란 칼날을 살라딘의 목에 찔러 넣었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그녀의 손에 들린 은빛 금속 조각을 보았다. 살라딘이 다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거기에 공포는 없었다. 그의 손이 다시 조여들고, 결국 뼈가 부러졌다. 그는 손을 풀어 그녀를 그대로 떨어뜨렸다. 그는 그녀의 눈에서 생명이 빠져나가고, 죽음이 가까워지면서 온몸이 덜덜 떨리는 고통으로 바뀌는 모습을 지켜봤다.

살라딘은 보조 무기를 주워 들고 마지막 자비를 베풀었다.

이시라는 거주지의 울타리 근처, 흩뿌리는 눈 사이로 비치는 이른 아침 햇살 속에 작은 그림자로 떠 있었다. 살라딘은 먼 길을 올라가 그녀 곁으로 다가갔고, 고스트는 그의 상처를 치료했다. 이 여정은 정화의 속죄였다고, 그는 혼잣말을 했다.

고통은 견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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