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도둑맞은 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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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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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I - 해빙
3. II - 관할 구역
4. III - 믿음
5. IV - 지역의 규칙
6. V - 확실한 위협
7. VI - 육박전
8. VII - 구원
9. VIII - 여기늘



1. 개요[편집]


우주 해적 시즌 지식이다.


2. I - 해빙[편집]


"몸이 싸늘하구나, 얘야."

에라미스의 세계를 어둠과 고통이 짓누르며 숨통을 조여왔다.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목소리만을 어렴풋이 인식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너에게 맡길 일이 있다."

얼어붙은 파편 덩어리가 그녀의 눈을 뒤덮고 있었다. 여기에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걸까?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찾아주었으면 한다. 잃어버린 어떤 것이지."

목소리는 연기처럼 그녀 주위를 소용돌이치며 정신 속에서 메아리쳤다. 두려웠지만, 그 목소리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나마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였다. 도대체 목소리의 정체는 누구인가?

"대답하라." 위엄있는 목소리가 명령조로 말했다.

에라미스가 멈칫했다. 그에 대한 처벌인 듯, 그녀의 지각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어둠이 다시 그녀를 조여와 으스러뜨렸다. 맞서 싸울 수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제가 책임져야 할 엘릭스니들을 떠올렸다.

그들을 생각하자 고통이 멈췄다.

"너를 따르고, 우리를 섬길 자들을 모아라."

엄청난 환영이 그녀의 머릿속을 메웠다. 칠흑 같은 연기가 촉수처럼 별 사이에서 뻗어 나왔고, 오래전 잊혀진 보물 사이에 숨겨져 있던 단지들이 보였고, 속삭임은 으르렁거리는 포효로 변했다. 거대한 기계가—

"깨어나라."

그러자, 그녀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얼음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아라스크는 자기 범선의 심장부에 앉아 있었다. 화면의 약한 노란색 불빛만이 그를 비추고 있었다. 막사 하나 분량의 위상 유리를 싣고 테미스 성단을 통과하는 여정을 계획하면서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일을 해봤자 항해를 겨우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돈밖에 나오지 않았고, 에테르 저장량도 위험할 만큼 낮았다. 그의 대원들은 얼마나 더 오랫동안—

깜박이는 불빛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래전 사용이 중단된 채널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라스크가 몸을 앞으로 숙이자, 몹시 오래된 의자 가죽이 부드득하는 소리를 냈다. 그는 비틀린 발톱으로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편지는 직설적이고 무자비했다. 그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녀는 여전하군.

오래 방치되었던 통신 시스템이 끽끽거리는 소리를 냈다. 갑판 아래에 뒤섞여 있던 드렉과 약탈자들 무리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의뢰를 받았다." 스피커에서 아라스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옛 깃발을 올려라."

"다시 항해한다!"


3. II - 관할 구역[편집]


"만약 마라가 그의 송환을 요구하면요?" 아이코라는 뒷짐을 지고 자발라를 향해 눈썹을 까닥였다. 두 선봉장은 자발라의 사무실에서, 페트라 벤지의 짧은 서신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러면 기꺼이 협조하면 될 일 아닌가." 사령관이 비꼬는 듯한 미소로 대답했다. "하지만 마라는 다른 데 관심이 있는 것 같네."

"그녀에게 상기시켜 주는 게 좋을지도요." 아이코라가 무심하게 공중으로 떠올랐다. "우리 행동에 정치적 정당성을 줄 거예요."

"그렇겠지." 자발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를 추방한다고 해도, 다시 리프로 보내기는 꺼려지는군."

아이코라가 건조하게 웃었다. "죽는 것보다 더 나쁜 운명이죠. 테키언이 그에게 무슨 짓을 하려 할지 상상도 안 되는군요."

"그것도 그렇지만," 자발라가 말을 받았다. "망명 신청자를 각성자에게 넘기면 괜히 엘릭스니를 자극하는 꼴이 될 수도 있잖나."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목소리를 유지하려 했지만, 내심 이것이 말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맞는 말씀이에요." 아이코라가 으쓱했다. "하지만 거미가 도시에 있다는 것 자체가 도발이에요. 빛의 가문이 도착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셨잖아요. 그 모든 이유 없는 분노를요."

자발라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마지못해 인정했다.

"거미의 경우는, 심지어 그 분노에 정당성도 있어요." 아이코라가 강조했다. 자발라가 다시 이의를 제기하기 전에 미리 입을 막으려는 심산이었다. "거미는 엘릭스니의 재정착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탄약 선물을 퍼부을지도 모르는 인물이잖습니까. 그러면 관계도 1년 전으로 되돌아갈 거예요. 이제 겨우 안정되기 시작했는데."

"그대 말이 맞네." 자발라가 인정했다. "거미는 존재 가치에 비해 골칫덩이지."

아이코라가 한숨을 쉬었다. "제 말이 맞다면 왜 이 문제로 저랑 싸우려 하시죠?"

자발라는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두 가지 이유지. 첫 번째, 거미는 엘릭스니와 인류를 문화적으로 이어주는 존재니까. 대부분의 해안 지역이 전쟁터였을 때도 거미는 수호자들을 환영했잖나."

"거미의 고스트 의체 수집품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세요? 문화 교류라고요?" 아이코라가 불쾌하다는 듯 코를 찡그렸다. "그거, 제 사전에서는 감점 요소거든요."

"나도 그렇다네." 자발라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엘릭스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 나쁜 점까지도 모두 말일세. 앞으로 같이 살아가려면 엘릭스니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네. 거미만큼 양쪽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자는 없어."

"두 번째 이유는요?" 아이코라가 냉큼 물었다.

"우리는 누가 동맹이 될지 알 수 없지 않나." 자발라가 아래쪽의 엘릭스니 구역을 가리켰다. "미스락스가 수년간 수호자들을 얼마나 죽였는지 생각하면…"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이제 미스락스는 최후의 도시를 고향으로 삼고 도시를 위해 싸우지 않나." 자발라가 이어 말하며 아이코라를 향해 몸을 틀었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나. 그리고 아이도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공동 평화에 대한 진정한 희망을 본다네. 그냥 휴전 말고, 진짜 평화 말일세."

자발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한두 세기 안에 거미가 어떤 존재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

아이코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앙다물며 못마땅하다는 기색을 드러냈다. 자발라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승리였다.


4. III - 믿음[편집]


에리스 몬의 작업실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캠프용 휴대 난로. 그을음이 붙은 웍. 달로 다음 보급품이 올 때까지 그녀의 양식이 될 음식이 들어있는 배급 상자. 의료기기가 깔끔하고 조심스럽게 정리된 금속 작업대. 노예의 두개골 반쪽과 그 옆에 놓인 톱. 헌 껍질을 모아둔 더미. 군체 가죽 한 타래.

방랑자는 선반에서 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병에는 죽어서 초록빛이 흐릿해진 군체 눈알 절임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러고 산다고?" 방랑자는 못 믿겠다는 듯 물었다. 에리스가 얼굴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뜻이지? 뭐가 어때서?"

방랑자는 작업실을 손짓했다. 에리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방랑자가 말을 덧붙였다.

"언제는 버려진 지역 보고 쓰레기라며."

에리스는 작업대 위로 드리워져 있는 할로겐램프 하나를 켰다. 빛이 닿는 모든 것에 짙은 그림자가 생겨났다.

"맞잖아."

"그럼 이건 뭐라고 부르는데?" 방랑자는 군체 눈알 병을 흔들었다. 눈알들은 유리병 속에서 구르며 서로 엉켜 부딪히더니 이내 다시 다글다글 가라앉았다.

에리스는 다시 성물함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기묘한 빛을 제외하고는, 안에 든 것이 보이지 않는 수수한 단지였다.

"빛의 가문 서기가 이미 전부 조사한 것 같군. 왜 나한테 하나를 가져다주는 거지?"

"아이도가 어둠 전문가는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그녀는 손에 든 성물함을 이리저리 돌리며 손가락 끝으로 홈과 무늬를 더듬었다. 무언의 질문과도 같은 손길에 어둠이 답하듯 변화하고 전율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인장의 가장자리를 엄지손가락으로 쓸었다.

방랑자가 성물을 준다고 했을 때, 에리스는 그것들을 선물이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정말 손에 들어온 성물을 보니, 자신이 열어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녀는 방랑자를 다시 돌아보았다.

"수호자를 돕기로 한 동기가 뭐지? 이타심이 넘쳐서는 아닐 테고."

방랑자가 모욕이라도 당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 돌릴 줄 알았다. 솔직하게 말해."

방랑자는 잠시 침묵했다.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결국 입을 연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엘릭스니에게는 승리가 필요해." 그가 에리스의 눈빛을 외면하며 말을 이었다. "벡스, 구원, 그리고 다른—그 모든 일이 있었으니, 빛의 가문에 승리가 필요하다고."

"그 승리란 에라미스를 처치하는 것인가?"

"그래. 이번에는 잘 되길 바라야지."

방랑자는 발뒤꿈치로 기대고 서서 싱긋 웃었다. "그리고 마음의 빚을 좀 지게 하면 좋잖아. 거미가 그 부분을 잘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켈 대장은 그럴 거야."

"또 말을 돌리는군." 그녀는 작업 책상에 성물함을 내려놓았다. 방랑자는 성물함을 가져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정말 안 가질 거야?" 방랑자가 다시 물었다.

그의 말은 진심 같았다. 에리스는 잠시 고민했다. 성물을 받을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방랑자의 말 뒤에 숨겨진 감정에 대한 고민이었다. 무언의, 암묵적인 믿음.

"나를 믿나?"

방랑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한 거 아냐?"

그녀의 입가에 아주 옅게,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걸렸다. 기쁨과 가까운 감정이다.

"그럼 여기 있으면서 조용히 하고 내 말을 들어봐. 이것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이 있다."

방랑자는 에리스의 말을 따랐다.


5. IV - 지역의 규칙[편집]


"에테르 피즈 한 잔." 거미가 바 뒤에 서 있는 드렉에게 외쳤다. "용감한 우리 켈에게."

거미는 에테르 탱크 뒤에 있는 임시 왕좌에 앉은 채 그의 작은 영지를 둘러보았다. 그는 미스락스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어찌 영광스럽게 이런 곳까지 오셨는지, 미스락스 켈?" 거미가 인간이 그를 부를 때의 이름을 지나치게 큰 소리로 발음하며 능청스럽게 물었다. "나 같이 보잘것없는 사업쟁이보다 만나봐야 할 중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텐데. 탑 꼭대기에 있는 자들이라든가."

거미가 탑을 언급하자, 무리들 사이에서 날선 비웃음이 오가는 것이 들렸다.

"엘릭스니 구역의 규칙을 제대로 만들려고 한다." 미스락스가 말했다. "오해가… 없도록 말이다."

"물론이지." 거미가 거짓 경의를 표했다. "오해 때문에 뒤에 남겨진… 자들이 있으니. 아무도 그런 건 원치 않잖아."

거미의 뼈있는 도발에 미스락스가 분노를 내비치며 대답하려고 하는 순간, 옆에서 정중하게 말을 거는 소리에 대화가 중단되었다. 내려다보자 바 뒤편에 있던 드렉이 작은 에테르 캔을 내밀고 있었다.

미스락스는 에테르 캔을 재호흡기에 붙이고 쭉 들이켰다. 에테르의 느낌은 매우 놀라웠다. 바로 포만감이 들고 기운이 넘쳐 돌았다. 빛의 가문은 오랫동안 기본 에테르로만 살아왔기에, 에테르 혼합물이 얼마나 기분 좋은지 잊고 있었다. 거미는 켈이 에테르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픽 비웃었다.

"그래서, 규칙이라고?" 거미가 주제를 상기시켰다.

"그렇다." 미스락스가 그르렁거렸다. "우리는 아직 최후의 도시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러니 인간 이웃들을 화나게 하지 않아야 한다."

"동의한다." 거미가 끄덕였다. "인간들 입장에선… 언짢겠지. 심지어 매번 그렇게나 죽이셨으니 말이야."

미스락스는 거미의 도발을 무시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므로 성벽 내에서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여긴 엘릭스니 구역이잖아, 안 그런가?" 거미가 발끈했다. "필요할 때는 엘릭스니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폭력을 아예 쓰면 안 된다고는 하지 않았다." 미스락스가 목소리를 낮추며 중얼거렸다. "성벽 내에서는 일어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미스락스가 한발 뒤로 물러나자 거미도 고개를 끄덕였다. "교묘하구만. 동의하지. 그게 전부인가?"

"아니, 더 있다. 이제부터는, 자네 조직에서도 팔을 자르는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 미스락스는 고갯짓으로 바 뒤의 드렉을 가리켰다. 그의 아래팔 한 쌍이 잘린 자리는 가죽 덮개로 덮여 있었다.

"뭐!" 거미가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회오리 때부터 엘릭스니는 드렉을 만들었어. 이건 전통이라고!" 언성이 높아지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안절부절못하며 소곤거렸다.

"내 가문에서는 안 된다." 미스락스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단언했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미스락스는 무리를 향해 돌아섰다. "내가 켈이며, 나는 빛의 가문 소속인 어떤 엘릭스니도 팔이 잘리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 거미에게 다시 몸을 돌린 그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자네가 예외가 되고 싶다면 어쩔 수 없다만."

거미가 피식 웃었다. "이제야 내가 아는 미스라악스구만." 거미가 교활하게 대화를 끝냈다. "때가 오면 칼을 뽑겠다는 결심만 여전하다면, 우린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6. V - 확실한 위협[편집]


까마귀는 어두운 에테르 탱크 안의 나무 의자에 기대어 앉아, 거미가 꾸벅꾸벅 잠을 설치며 코 고는 소리를 들었다.

이른 새벽 시간이어서 그런지 엘릭스니 구역은 조용했다. 엘릭스니 경비병들이 드문드문 흩어져 나지막이 잡담하는 소리와 거미 상점의 요란한 간판에서 나는 윙윙 전기소리만이 들려 왔다. 까마귀가 빈 바 안으로 슬쩍 들어가는 것은 쉬웠다.

그는 거미가 깨어나면 딱 보이는 위치의 의자에 조심스레 칼을 박아 넣었다.

거미가 잔기침을 했다. 커다란 몸집의 엘릭스니를 바라보며 까마귀는 담담한 표정으로 신중하게 숨을 내쉬었다. 적의 도시에서 혼자 잠자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는 지저분한 바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최후의 도시의 안전을 위해 해안을 탈출할 때 거미가 그러모아 온 잡동사니가 이리저리 걸려 있었다. 이제 그는 방랑자와 미스락스의 관용에만 의존하여 살고 있는 존재였다.

까마귀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고, 의자에서 칼을 뽑아 다시 칼집에 밀어 넣었다. 다시 나가려는데 뒤쪽에서 쉬익 소리가 들렸다.

공중에 나타난 것은 글린트였다. "뭐 하는 거야?" 까마귀가 쉿 하고 주의를 줬지만, 글린트는 이미 거미 쪽으로 쌩 날아가 있었다.

"이봐요!" 글린트가 크게 외치자 거미가 컥 코를 먹으며 잠에서 깼다.

글린트는 눈이 부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빛의 강도를 올려 거미의 얼굴 앞을 공격적으로 맴돌았다. 거미는 움찔하며 팔을 들어서 막아보려 했지만, 글린트는 화난 벌처럼 재빠르게 날아다녔다.

"까마귀는 메시지를 보낼 만큼 신사적이지만," 글린트가 고함쳤다. "전 아니에요!"

"이게 뭐—" 거미가 혼란스러워하며 쿨럭쿨럭 기침을 토해냈다.

"우리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어요!" 글린트가 긴장해 떨리는 목소리로 딱딱거렸다. "선 넘는 짓을 하면, 맹세컨대, 제가 직접 당신을 처리하겠어요!"

작은 고스트가 분노하며 파닥파닥 날아다니는 동안 거미는 숨을 가다듬고 움직임 없이 앉아있었다.

"그러니까… 절대!"

글린트는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거미의 얼굴 면판으로 쿵 돌진하며 박치기를 했다.

"야!"

글린트가 다시 한번 가소로운 박치기를 선보이자 까마귀가 글린트를 막았다. 거미는 너무 놀라 반응도 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거렸다.

"잊지 말아요!" 글린트가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순간 이동을 하기 전 맹렬하게 의체를 휘둘러 거미를 다시 어둠 속으로 빠트렸다.

탑으로 올라가는 리프트로 가는 길에서도 까마귀는 여전히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글린트는 얌전히 주변을 맴돌았다.

"미안해요." 글린트가 사과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글쎄," 까마귀가 손을 뻗어 글린트의 의체를 긁어주며 대답했다. "아주 잘한 것 같은데."


7. VI - 육박전[편집]


엘릭스니 구역, 거미가 세운 에테르 탱크 밖에서 세인트-14과 샤크스 경은 어깨를 맞대고 서 있었다. 두 명 다 방어구를 모두 장착하고 근접전에 사용하는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샤크스는 보조 무기를 빼 들고 총알이 가득 장전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세인트는 바의 입구를 응시하면서 핸드 캐논의 실린더를 박자에 맞춰 느릿느릿 돌렸다. 딸깍, 딸깍, 딸깍.

둘은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두 타이탄이 술집으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이들이 얼어붙었다. 앉아 있는 손님들 위로 우뚝 선 수호자들의 헬멧 속 무표정한 얼굴은 죽음을 예고하는 듯했다. 그들은 천천히 방의 크기를 가늠하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사정거리를 최적화하고 목표물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술집에 있던 인간들은 천천히 출구를 향해 기어나가, 입구를 벗어나자마자 밤거리를 달려 도망갔다. 엘릭스니들은 와이어 소총과 전기 창을 향해 많은 손들을 조심스레 뻗었다.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술집 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엘릭스니들은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드렉은 바 뒤에 웅크리고 숨어있었다.

엉망이 된 술집 한가운데에는 흉물 셋이 전기 에너지가 가득한 주먹을 휘두르는 세인트-14을 상대하고 있었다. 흉물들은 서로 손을 잡은 채 일렬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엄숙하게, 양쪽 끝의 두 흉물이 동시에 손을 뻗어 세인트의 손을 잡았다.

흉물을 둘러싼 천에 지직거리며 전기가 흐르자 전기가 그들을 관통했고, 헬멧의 렌즈도 번쩍거렸다. 그러나 그들은 손을 놓지 않았고, 회로는 계속 유지되었다.

근처 테이블에서 샤크스가 우렁찬 목소리로 카운트를 했다. "…칠, 팔, 구, 십!"

세인트가 서서히 빛을 사그라들게 하자, 흉물들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샤크스가 굵은 목소리로 외쳤다. "승자는… 스키프블레이드!"

수호자를 돕는 반달, 할식스가 흉물들 품으로 뛰어들었고, 넷은 환호성을 지르며 아래위로 방방 뛰었다. 바닥에 누워 있던 엘릭스니가 힘없는 팔을 들어 축하의 몸짓을 보냈다.

"이번 술은," 샤크스가 신나게 외쳤다. "위대한 타이탄, 보랏빛 왕… 세인트가 쏜다!"

세인트-14은 바 뒤에 숨어 불안한 눈빛으로 이들을 훔쳐보던 드렉에게 마지못해 까딱 고갯짓했다. 아직 걸을 수 있는 엘릭스니들이 세인트가 내는 돈으로 술을 마시려고 우르르 바를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할식스는 세인트 옆에 다가가 그의 금속 흉갑을 신나게 두드렸다. 그는 복잡한 폴리리듬을 두드리며 신나게 짹짹거렸다.

"그래, 많이 마셔라." 세인트가 뚱하게 대답했다. "익숙해지지 말라고! 똑같은 계략에 두 번 당하지는 않을 테니까."

"오늘은 자네 역사에 불명예로 남겠구만!" 샤크스가 세인트의 등을 팡팡 치며 선언했다. "여섯 전선의 영웅이 흉물 셋이랑 막술 8리터에 패배하다니!"

세인트가 헛기침하며 웅얼거렸다. "이래서 사람들보다 비둘기가 좋다니까."


8. VII - 구원[편집]


데이터 패드가 세차게 떨리던 아이도의 손에서 미끄러져 텅 소리를 내며 타일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얼른 데이터 패드를 주워 들고 손상이 있는지 확인했다. 스크린에 얇은 금이 가 있는 것이 보이자 그녀의 어깨가 풀썩 처졌다.

아이도는 숨을 들이쉬었다. 재호흡기를 통해 에테르가 쉬익 흘러들어왔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진정하지 못했다.

아이도는 엘릭스니 구역의 반쯤 무너진 어느 방에 서 있었다. 이곳에서 제대로 된 방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이곳이 제일 멀쩡한 방이었다. 아이도는 데이터 패드를 바라보며 그래도 조용한 곳을 찾았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그녀가 서기 일지를 녹음하는 것을 에라미스가 들었다. 또 무슨 내용을 가로채 들었을까? 빛의 가문에서 오간 대화 전부? 도시에 물자를 요청한 것, 에테르 저장고의 거래, 아버지가 가문에 지시한 사항들?

일어나서는 안 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서기 일지는 암호화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안일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다시 숨을 들이켰다. 과거 엘릭스니의 통합을 바라며 에라미스에게 통신을 보냈었지만, 답을 받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에라미스는 그 메시지를 받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메시지에 응답한 것이었다. 서기 일지를 도청당했을 때 들었던 에라미스의 목소리에는 고통이 묻어 있었다. 아이도가 결코 알지 못한— 아버지가 그녀에게서 숨기려고 했던 바로 그 고통.

"아이도." 미스라악스가 문턱에 서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생각이 뒤죽박죽 흐트러진 아이도는 흠칫했다. 아버지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면 어쩐지 생각이 더 엉망이 되었다. 그녀는 움찔 일어나 금이 간 데이터 패드를 뒤집었고, 아버지가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하기라도 할까 싶어 패드를 감췄다.

"네, 미스라악스켈?" 그녀는 딱딱하게 대답했다. 미스라악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도는 무너져가는 폐허 위로 일렁이는 아버지의 실루엣을 바라보았다.

둘 사이에 한참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수호자들이 돌아왔다." 그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다른 성물을 수집했다더군."

지금조차도 아버지가 말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많았다.

"네자렉의 성물 말씀이겠죠." 그녀가 단호하게 말을 마무리했다. 에라미스가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동안 그는 알면서도 거짓말을 했다.

미스라악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도는 모욕당하고 상처 입은 기분이었다. 미스라악스가 아무 사과도 하지 않을 것임을, 아이도도 마음 깊은 곳에서 알고 있었다.

"서기 일지를 끝내두고 연구해 볼 겁니다." 아이도는 그렇게 말하며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곧 아버지의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미스라악스가 떠나자 아이도는 혹시 에라미스가 다시 말을 하지 않을까 싶어 데이터 패드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아무 메시지도 없었다. 아이도는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여전히 요동치고 있었다.

에라미스는 자신이 행한 폭력과 복수는 돌이킬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도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이런 폭력은 켈의 정신과는 먼 것이었다. 과거에 분노하지 않는 에라미스의 모습을 찾아내야 했다. 어둠의 가문 켈에게 미래를 보여주어야 했다.

조용히, 빛의 가문 서기는 다음 은신처로 향하는 좌표를 맞추기 시작했다.


9. VIII - 여기늘[편집]


콘솔이 어두워졌다. 메시지가 끝났다. 다음 메시지는 없을 것임을 에라미스는 알고 있었다.

"돌아와라, 에라미스."

에라미스는 눈을 감았다. 그 말은 켈의 머릿속에 깊이 박혔다. 무겁고 날카로운 말이었다. 그녀는 흐르는 피를 느꼈다. 미스라악스의 칼날이 목에 들어왔을 때, 죽여달라고 그토록 애원했음에도 미스라악스가 베풀었던 자비는 무엇보다도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 상처는, 한 아이의 다정함으로 인한 것이었다.

에라미스는 자신이 돌아갈 곳을 떠올렸다.

그녀가 돌아갈 곳은 거대한 기계로 인해 황폐해진 리이스였다.

그녀가 돌아갈 곳은 행성계를 떠날 때부터 우주선 안에 잠들어 있던 짝, 아스리스였다.

그녀가 돌아갈 곳은 제 짝 옆에 누워 있는, 자신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자라고, 탈피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반짝이는 큰 눈으로 즐겁게 재잘거리며 그녀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모습.

그 눈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가문도 포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도의 눈에서는 온전한 공포의 빛만이 완연했다. 군체뿐만이 아닌, 에라미스를 향한 눈빛에도.

"돌아와라, 에라미스."

에라미스는 살았다— 살아있기에, 엘릭스니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새로운 리이스에 대한 환상은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에라미스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꿈을 손에 쥐고, 가슴 가까이 품어왔다. 그러나 그 꿈은 자신의 손안에서 뭉개져 버렸다. 이제껏 행한 모든 폭력과, 자신이 불러온 모든 죽음에서, 손을 너무 꽉 쥐어버렸으므로.

아이도가 군체와 그들의 부패한 빛 속에 남겨졌더라면 새로운 리이스에 대한 꿈도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도도, 그녀의 아버지도 리이스를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은 잃어버린 것 너머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돌아와라, 에라미스."

에라미스는 알았다. 다른 자들의 눈빛에서는 두려움만 보게 될 거라는 사실을.

에라미스는 알았다. 아이도와 함께 엘릭스니들이 새 터전을 찾을 거라는 사실을.

에라미스는 알았다. 그곳엔 그녀를 위한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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