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암울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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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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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제1장: 혈통
3. 제2장: 떠도는 구도자
4. 제3장: 사라진 탑
5. 제4장: 무방비
6. 제5장: 전능했던 자
7. 제6장: 신뢰의 문제
8. 제7장: 징발
9. 제8장: 이주
10. 제9장: 귀환



1. 개요[편집]




2. 제1장: 혈통[편집]


또 한 번의 잠 못 이루는 밤. 잠이 필요하다는 얘긴 아니지만, 그래야 내가 평범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젠 '평범함'이 뭔지도 모르겠지만.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먹이를 찾는 쥐새끼겠지. 행운을 빈다.

늘 휴식을 취하려고 안전한 장소를 찾아 헤매야 하는 일에 진력이 난다. 물론 최후의 도시가 무너진 후론 모든 사람이 떠나갔지만.

또 소리가 들린다. 조금 시끄러워졌다. 누군가 가까이에 있다.

내가 움직일 기회를 포착하기 전에, 그들이 내 숙소 앞에 나타났다.

나는 까칠한 천을 던져 버리고 바닥에 놓인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몸을 굴려 방을 가로지른 후 공격자를 향해 시공을 발사했다. 적은 내 공격을 피했고, 대신 내 침대가 시간 속에 얼어붙었다. 나는 무기를 발사했고, 탄환은 상대의 어깨를 스쳤다.

"엘시! 잠깐만!"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공격자가 두건을 벗었다. 그녀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많이 지친 모습이었지만, 그 아이였다. 고집스러운 내 동생.

"무슨 짓이야, 아나?! 왜 날 공격한 건데?"

"언니가 공격했잖아!"

마지막으로 동생을 본 건 몇 년 전, 폭격 후였다. 그때의 가족 상봉은 끝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진홍색 선이 팔 아래로 흘러내렸다. "다쳤구나."

"별거 아니야. 괜찮을 거야."

"괜찮지 않아. 그 성가신 각다귀는 어디 있는 건데? 왜 널 고쳐 주지 않는 거냐고?"

"별거 아니라고 했잖아."

무슨 일이 생겼다. 나는 동생을 뚫어져라 바라봤고, 결국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대답했다.

"그 아이는… 떠났어." 아나는 마지못해 인정했다.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어."

놀랍지는 않았다.

"여기서 뭘 하는 거야, 아나?"

"나한테 가르쳐 줘… 언니처럼 시공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언니는 그 힘을 통제하는 법을 알고 있잖아. 그러면서도… 저들처럼 타락하지도 않았고."

동생은 절박한 것 같았다. 나쁜 징조였다.

"이미 했던 얘기잖아. 그럴 순 없어." 나는 말했다. 아나는 똑똑했지만 너무 쉽게 엇나가곤 했다. 지금까지 잘 버텨 온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웠다. 지금 동생의 일에 관여할 수는 없었다.

"나는 하루하루 가까스로 버티고 있어. 빛이 없으면, 여행자가 없으면, 난 주저앉은 드렉이나 다를 바 없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더 큰 문제가 있어."

"가족보다 더 큰 문제야?" 그녀는 내 감정에 호소하려 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나는 가방을 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그냥 가 버리겠다고? 좋아. 다른 사람을 찾아서 시공을 배우고 사바툰을 때려잡아 주겠어."

상황이 얼마나 안 좋길래 아나가 스스로 죽음의 구렁텅이에 뛰어들려고 하는 거지?

"그자가 뭘 했는지 알잖아, 아나. 시공도 널 구할 순 없어. 그건 자살 공격이라고."

"공포에 떨며 살아가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들이 또 있을 거야.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야지."

"좋아. 가서 그 사람들하고 얘기해 봐."

"내 얘기 좀 들어 봐. 빛과 어둠으로 공격해 보자고. 함께 힘을 합쳐서."

"아니면 그냥 숨죽이고 조용히 살아갈 수도 있겠지."

"달리 갈 곳이 없어! 달아나고 싶겠지. 그건 언니가 선택한 길이야. 하지만 난 분명히 얘기할 수 있어. 우리라면 할 수 있다고." 그녀는 가방을 들어 올려 드라이브를 꺼냈다. "우린 지금 도움이 좀 필요해."

"그를… 갖고 있는 거야?" 나는 믿을 수 없어 되물었다.

"그의 잔해야."

전쟁지능. 화성과 함께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전쟁지능에게는 힘이 있었지만, 이건 어리석은 계획이었다. 아나는 무슨 수를 써서든 시공의 힘을 배우려 했고, 라스푸틴과 함께 그럴 생각이었다. 동생이 한번 마음을 정하면, 무엇도 그 아이를 막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아나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아이를 밀어낸다면, 그게 정말 그녀를 위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제는, 그가 지금 이 드라이브에 갇혀 있다는 거야…" 아나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새로운 껍질이 필요해."

아나는 나를 향해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날 유혹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각을 떨쳐 버려야 했다.

동생이 사지로 뛰어들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앞장서."


3. 제2장: 떠도는 구도자[편집]


"단단히 준비해. 저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나는 딥스톤 무덤 입구에 서서 아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연구실을 통과했다. 폭격 이전 에라미스의 공격이 크나큰 상흔을 남겨 놓았다. 그녀는 여기에서 어둠을 찾아냈고, 그걸 역병처럼 온 세상에 퍼뜨렸다. 클로비스도 당시 그와 거의 같은 짓을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앞에서 한참 떨어져야 해. 날 꽉 붙잡아." 난 말했다.

아나는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토록 가까이 접근한 건 100년만이었다. 나트륨 수지의 향취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며칠 동안 씻지 못했다. 아나가 나를 단단히 붙잡았다. 잊었던 느낌이 떠올랐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내 육체는 온기를 느꼈다.

나는 승강기 통로를 따라 내려갔다. 우리는 최대한 조용히 바닥에 내려앉은 후 잠시 동안 가만히 기다렸다. 아래쪽은 죽음처럼 고요했지만 동력은 공급되고 있었다. 누군가 여기 왔었던 게 분명했다. 아직 있을지도 몰랐다.

절개된 연구실을 헤치고 나아가면서, 아나는 모든 것을 흡수했다. 동생에게는 그곳이 왠지 낯익은 것 같았다.

"클로비스는 분명 짐승이었어. 하지만 할아버지가 발견하고 구축한 모든 건 정말이지 경이로워." 그녀는 달뜬 숨을 내쉬었다.

동생이 할아버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처음 듣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함께 있다는 것도 잊은 듯했다. 수백 년 전, 우리의 미래에서 그녀가 했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쪽이야!" 아나는 외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몇 개의 통로를 걸어서 지나간 후, 우리는 익숙한 막다른 길에 도착했다. 아직 거기 있었다. 청명 제어부. 나는 그걸 다시 보기가 두려웠다. 그건 말 그대로 클로비스의 모든 악행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난 어서 빨리 그 곁을 떠나고 싶었지만, 아나는 뚫어져라 바라보고만 있었다. "얘, 이제 됐어? 계속 가야 해." 나는 말했다.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미안."

마침내 우리는 찾아냈다. 엑소가 태어난 장소. 썩은 악취가 우리를 맞이하고, 아나는 코를 쥐었다. 천천히 모퉁이를 돌아가자 콘솔의 레버에 애처롭게 매달린 채 썩어가는 사체가 눈에 들어왔다. "방랑자…" 아나가 말했다. 그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콘솔에서 그의 손을 떼어낸 후 사체를 방 밖으로 옮겨 악취를 줄여 보려고 했다.

"저 사람은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내가 물었다.

"우리랑 같은 거겠지." 아나는 드라이브를 삽입하며 말했다. "하지만 실패했어. 다행인지도 몰라. 그 사람은 두 번째 기회를 누릴 자격이 없으니까."

여기에 혼자 남겨진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니 마음이 언짢았다…

아나는 콘솔을 작동시켰다. "지금 업로드하고 있어. 곧 나갈 수 있을 거야. 저 레버를 잡아."

내가 레버를 당기자 래치가 열리고, 방산충 체액이 근처의 빈 웅덩이로 흘러들었다. 아나는 우리가 방랑자의 사체를 발견한 지점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뭘 다르게 할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녀가 물었다.

언제나 그랬다.

"아니." 나는 대답했다.

"이 모든 죽음과 파괴의 상당 부분이 우리에게, 우리 가문에 기인하고 있어. 클로비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는 거 알아. 어둠을 이 세계로 불러오는 역할을 했으니까."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물었다.

"지난번에 여기 왔을 때 일지를 찾았어. 워낙 낡고 절반은 찢겨 있었지만, 할아버지에 관해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지."

당연히 전에 여기 온 적이 있었겠지. 아나가 내게 모든 걸 털어놓고 있지 않은 건 분명했다.

"또 뭐라고 적혀 있었는데?" 나는 물었다.

"삭제된 메모나 실험 결과 말고도 우리 가문에 관한 이야기와 회상이 적혀 있었어. 모두 할아버지 관점에서 적혀 있었으니, 자기를 악당으로 묘사한 건 없었지. 그래도, 어쩌면 할아버지도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만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어. 나름 우리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더라고."

"정말?"

"좋은 일도 하셨어, 엘시."

"난 거기 있었어, 아나. 할아버지가 한 일을 직접 봤다고. 그 사람은 망상증 환자였어. 당연히 자기가 쓴 기록에는 악당이라고 적어 두지 않았겠지."

우리는 잠시 조용히 앉아 기다렸다.

웅덩이에서 부글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나가 벌떡 일어서자 액체 속에서 매끈한 금속 손이 나타났다. 천천히, 엑소가 일어섰다. 부드러운 액체가 각 부품을 연결하는 촉수에서 방울져 떨어졌다. 한참이 지나고, 엑소는 웅덩이 밖으로 한 걸음 나섰다.

"붉은 거장?" 아나가 소심하게 물었다.

그것이 고개를 돌렸다. 새빨갛게 빛나는 두 눈이 우리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것은 말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어였다.

"잘 돌아왔어, 옛 친구." 아나가 말했다.

본격적으로 움직일 때였다.


4. 제3장: 사라진 탑[편집]


딥스톤 무덤 지하실에 있던 방랑자가 자꾸 떠오른다. 언제쯤 내가 그 모습이 될지 궁금하다. 아나가 날 찾아내지 않았다면, 나도 그렇게 혼자 녹슬어 버린 채 죽어갔을까?

최후의 도시는 내가 기억했던 것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무너진 건물들과 예전의 활기를 잃은 구조물들이 한때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장소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상업 활동, 아이들, 부산한 생명력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날을 생각하면 괴로웠다. 폭격. 우리는 모든 측면에서 동시에 공격받았다. 에라미스, 기갑단, 사바툰. 모두 우리의 성채를 한꺼번에 공격했다. 우리는 회복하지 못했다. 어둠의 수호자들이 에라미스와 기갑단에 합류했을 때, 죽지 않은 이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다.

라스푸틴이 러시아어로 뭔가 말했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나는 웃었다. 다시 친구가 된다는 건 그런 걸까? 한때 탑이 서 있던 자리에 남은 텅 빈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넌 선봉대와 가까웠지?" 나는 물었다.

"가까웠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그냥 같이 일하던 관계지. 그들은 날 믿었어."

"그래도, 좋았겠다. 가족에 가장 가까운 관계잖아."

"자발라가 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나는 말을 끝맺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 얼굴에 번졌다. "우린 어땠을까? 우리 가족은… 이 모든 일이 있기 전에 말이야."

"그건 조사해 봐도 알 수 없었어, 아나?"

"언니는 그들과 함께 있었지… 아니, 우리들이라고 해야 하려나. 어떤 사람들인지 진짜로 알 수 있었을 거 아냐."

"모르겠어. 우리도 그냥 가족이었어."

"날 위해서 좀 더 생각해 봐 줄 수 없어? 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 알잖아. 언니는 그래도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얘기해 줄 만한 게 있겠지. 뭐든지 말이야. 엄마의 머리 냄새는 어땠어?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는 뭐였고?"

"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클로비스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그러면 언니가 아는 걸 뭐든 얘기해 줘." 아나는 애원했다.

"이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

"언니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내게 감출 권리 같은 건 없어. 그건 내 삶이기도 하다고!"

"그만둬, 아나!"

우리 뒤쪽에서 소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나는 날 바라보면서 손가락을 조금씩 무기 쪽으로 가져갔다.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아."

내 손은 시공으로 차갑게 식고, 라스푸틴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여긴 그대들이 있을 곳이 아니야." 소총수가 말했다.

아나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상대를 바라봤다. "자발라?"

나도 돌아서서 그를 바라봤다. 한때 당당했던 선봉대의 사령관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잔뜩 흐트러진 누더기 차림에, 섬뜩한 하얀색 수염이 강철 문처럼 두껍게 자라 있었다. 목발을 짚고 하나 남은 다리로 서 있는 모습은 산들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고스트도 잃은 모양이었다. 빛을 빼앗긴 육신이 퇴화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슬픈 일이었다.

"사령관님! 살아 계셨군요!" 아나가 외쳤다.

그는 소총을 거두지 않았다.

"저예요… 아나…" 그녀는 상처받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사바툰을 꺾을 계획이 있어요. 아이코라 레이와 얘기해야 해요. 혹시 여기 있나요?" 내가 물었다.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 그리고 소총으로 탑의 잔해를 가리켰다. "저 아래 깊은 곳에 묻혀 있네."


5. 제4장: 무방비[편집]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발라를 바라봤다. 그는 사무적이었다. 아무 감정도 없어 보였다. 그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아이코라가 죽었다고요?" 아나가 물었다.

"다른 모든 것과 함께. 뭘 찾으러 왔는지 모르지만, 여기는 없네. 그만 가 보는 게 좋겠어."

"아니, 잠깐만요. 당신 도움이 필요해요." 아나가 애원했다.

그는 돌아서서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며 멀어져 갔다. 아나는 좌절한 듯 두 손을 들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그녀는 라스푸틴과 함께 그의 뒤를 따라갔다.

"사령관님, 모든 게 사바툰 때문이에요. 그녀만 영원히 제거할 수 있어도, 희망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는 멈춰 섰다. "그런 건 없어."

"그냥 그렇게 포기하시면 안 돼요. 아이코라라면 그러지 않을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자발라가 아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대는 늘 아이코라 같았지. 항상 그랬어. 고집스럽고, 독선적이고. 그래서 그녀도 저기 파묻힌 거네." 그는 잔해를 가리켰다. "계속 그러다 보면 그대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거야. 그러면 사바툰도 기뻐하겠지."

"아나, 그래 봐야 아무 소용 없을 것 같아. 그냥 가자." 나는 말했다. 그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는 아나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지 않겠어. 아이코라가 없다면 남은 건 자발라뿐이야!" 아나가 소리쳤다.

"우릴 도우려는 생각이 없잖아!"

"겁쟁이 같으니!" 아나는 자발라를 향해 비명처럼 외쳤다.

"겁쟁이라고? 난 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하지만 우리에게 승산은 없었어. 그대들 두 사람도 그렇고. 그렇게… 우리는 몰락했다." 자발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대들도 그럴 것 같군."

"사령관님…"

"나는 이제 그 무엇의 사령관도 아니네."

그 말에 우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사과할 기회가 없었네.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도 없었어.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으니까. 나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는 말게."

이게 아나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 수 있었다. 젠장. 좋아. 나는 돕기로 했다.

"아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적어도 제가 기억하기로는… 아주 고집스러운 분이셨어요. 전 아버지와 늘 다퉜지만, 아무리 그런 때라도 늘 사랑한다는 말은 잊지 않았어요. 단 한 번 그 말을 하지 못했던 때,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못했죠. 우린 실수를 했어요, 자발라. 우리 모두요. 하지만 이번에는 당신이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함께 싸우기만 하면 돼요." 나는 말했다. 자발라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래, 그대가 그 유명한 엘리자베스 브레이인 모양이군."

"그래요."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

"피라미드가 나타났던 때 말이죠." 아나가 끼어들었다.

"사실, 문제는 그것들이 나타나기 한참 전에 시작됐네." 자발라는 말했다. "그것들은 아주 오래전 심어진 나무의 잎에 불과했어. 예전 검은 정원에서 선봉대는 비밀 첩보 임무를 수행했었네. 검은 심장을 억제하는 임무였지. 하지만 그 심장에 접촉한 수호자가 타락하고 말았어. 그때 이후로 어둠의 수호자가 생겨났고… 어둠이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네."

"전 지금 여기 있어요. 그게 중요한 거죠."

"다른 엑소는 누구지?" 자발라가 물었다.

라스푸틴이 자기소개를 했다.

"전쟁지능과 함께하는 건가? 놀랍군. 그래도… 왜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지? 저 친구만 해도 나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텐데."

"라스푸틴은 무기예요. 우리는 저 무기로 어디를 겨눠야 할지 알아야 해요." 아나가 대답했다.

"그래서 당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활용해서 사바툰을 찾아내야 하는 거예요. 우리는 어둠과 빛의 힘을 함께 이용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요. 독실한 신념만으로는 부족했던 곳에서 적과 동등한 힘을 가져 보는 거예요." 나는 덧붙였다.

"또 그 얘긴가." 그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돕는다고 해도, 전쟁지능만으로는 부족할 걸세. 사바툰의 배후까지 상대하려면 말이야. 그녀 또한 졸개일 뿐이니까."

"무슨 뜻이죠?"

"진짜 마녀를 원한다면, 에리스 몬을 찾아야 하네."


6. 제5장: 전능했던 자[편집]


우리는 자발라와 함께 그의 숙소로 향했다. 오래전 추락한 전능자의 잔해 내부였다.

"기억하나, 전쟁지능? 우리의 위대했던 성공을 보여주는 현장이지." 자발라는 그렇게 말하며 오랜 은둔 생활에 짓눌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지막 승리이기도 하고."

라스푸틴은 콘솔에 다가가 접속했다. "거기엔 내가 아주 오랫동안 해독하려 했던 파일들이 남아 있네. 그대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자발라가 말했다. 그는 불을 피우고 주전자를 얹었다.

"에리스가 그럴 줄은…" 아나는 충격에 휩싸인 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에리스도 특별하지 않았어. 그녀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쉽게 타락했네. 그녀는 달에 있는 피라미드에서 유물을 찾아낸 후 나를 찾아왔고, 우리 모두를 속였네. 폭격 또한 그녀의 솜씨였지. 그건 어둠이 접촉하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네."

여동생은 뭔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을 내게 던졌다. 어딘가 희망이 엿보였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죠? 정확한 기록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어요." 아나가 말했다.

"우리는 역부족이었네. 나를 찾아낸 마녀 여왕은 나를 '불신자'라 부르며 내 다리를 관절에서 뜯어내고 고스트의 빛을 빼앗았네. 그러고는 나를 쓰레기처럼 내버렸지. 아이코라는 더 끔찍했고."

나는 그의 말에 푹 빠진 채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는 아나를 바라봤다. 동생을 달래 주고 싶은 마음이 뱃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나는 그런 감정을 억눌렀다.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여행자를 올려다보며, 이 만행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기를 갈망했네. 하지만, 여행자는… 떠났네.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필요한 그 순간에 우릴 버렸어. 나는 손을 뻗어 붙잡고 싶었네. 곁에 남겨 두고 싶었어. 우리가 믿었던 것처럼 우릴 구해 주기를 바랐지. 하지만 그게 끝이었네. 사라졌어. 기갑단 병력이 나머지 모든 것을 무너뜨렸네."

라스푸틴이 소리를 냈다. "무슨 일이야, 붉은 거장?" 아나가 물었다.

"내가 맞게 들은 건가?" 내 목소리도 밝아졌다.

"가울이 여행자를 구속해서 그 빛을 채취하려 했던 때의 계획, 그때의 청사진이 여기 모두 남아 있다고 했어. 지금 복사하는 중이래."

내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자발라는 지금껏 금광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여행자를 붙잡을 기회가 있을 것 같네요." 나는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끌고 와야 해요. 여행자가 싸우고 빛을 복원하게 해야죠."

"일단 찾아내는 게 먼저지." 아나가 말했다. 어딘가 주저하는 목소리였다. 왠지 이 계획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라스푸틴이 다시 러시아어로 끼어들었다. "뭐라고 하는 거지?" 자발라가 물었다.

"추적할 수 있대요. 여행자요." 내가 말했다. "클로비스가 여행자가 달아나 버리는 사태에 대비하는 안전장치로 그런 기능을 만들어 두었어요."

"붉은 거장이 추적할 수 있다고 해도, 가울과 같은 장치를 만들려면 엄청난 규모의 군대가 필요할 거야." 아나는 비관적인 어조로 말했다.

"아나, 이게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야. 이제 와서 포기하려고 날 여기까지 끌고 온 거야?" 나는 물었다.

"아니야… 언니 말이 맞아. 방법을 찾아낼 수 있겠지."

자발라는 우리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때요, 사령관님? 아이코라를 위해 마지막으로 한번 달려 보시겠어요?" 아나는 언제나 꼭 필요한 말을 했다.

"그런 것 같군." 자발라가 말했다. "이게 세상의 끝이라면, 우리도 신나게 뛰어내리는 것이 좋겠지."

아나의 두 눈에 생기가 돌았다. "그래도 군대는 필요해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군대를 이끌고 있으면서 에리스에게 원한도 있는 사람이 있지." 자발라가 말했다. "마라 소프를 찾아야 하네."


7. 제6장: 신뢰의 문제[편집]


우리는 벌써 며칠째 이동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자발라와의 마지막 교신을 토대로 마라 소프의 위치를 추적했다. 그 신호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멀리서 전송된 것이었다.

"잠깐 시간 있어?" 아나가 내 숙소 입구를 두드리며 물었다.

"그럼."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 나와 함께 와 주고, 자발라를 설득하는 것도 도와준 거 말이야."

솔직히 자발라가 사명감을 되찾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보람찬 일이었다. 비록 그가 추레한 수염을 그대로 놔두겠다고 한 건 정말 안타까웠지만.

"언니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야." 그녀는 말을 마무리했다.

사정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동생과 함께하는 건 즐거웠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동생과 함께할 수 있다는 건 왠지 묘한 기분이기도 했다.

"그냥 내 할 일을 하는 거지." 나는 대답했다.

아나가 시선을 외면했다.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언니에게 부탁할 게 하나 더 있어." 그녀는 말했다.

그러면 그렇지.

"시공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줘. 엘시, 언니는 그 힘이 본질적으로 악하지는 않다는 증거야. 통제할 수 있어. 언니가 나한테 가르쳐 주면, 사람들도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이 문제는 얘기가 다 끝난 것이길 바라고 있었는데.

"나는 그런 운동의 선구자 따위가 아니야, 아나. 시공은 단순히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끊임없이 유혹에 시달려야 해. 나는 아직도 발버둥 치고 있어. 그 힘을 사용하려면 시간이 필요해. 의지도 필요하고. 나조차도 아직 완전하게 지배하지 못했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나는 말했다.

"우린 할 수 있어. 그리고 우리가 성공하면, 그 힘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라질 거야. 우리 세계를 되찾을 수 있어. 우리에겐 그럴 자격이 있다고."

"지금의 현실이 최선인지도 몰라."

"언니는 그렇겠지. 언니가 옆으로 빠져 모든 것이 무너지는 꼴을 지켜보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어."

"넌 아무것도 몰라, 아나. 어둠은…"

"또 핑계만 대네. 언니가 맡은 역할을 해내고 싶어? 그러면 당당히 일어나서 날 도와줘."

"나도 노력하고 있는 거야.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아나?"

"왜 그렇게 몰라 주는 거야."

그녀는 거센 분노만을 남기고 거칠게 내 방을 떠났다. 통로에서 자발라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우리 얘기를 듣고 있었다.

"시공을 사용한다고?" 자발라는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에게도 잔소리를 들어야 하나요?"

"아니, 아니야. 선봉대가 존재할 때만 해도 나는 내가 모든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이 꼴이 된 건지도 모르지만. 사령관에게는 지시를 내리는 것 외에도 다른 사람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의무가 있네. 나처럼 분노에 가득 차 모든 걸 통제하려 해서는 안 돼. 동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게. 왜 그대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지 생각해 보게."

"이미 생각해 봤어요."

"다 왔어요! 이제 접근할 거예요!" 아나의 목소리가 통로를 지나 들려 왔다.

"내 평생 이걸 다시 볼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자발라는 리바이어던을 바라보며 말했다.


8. 제7장: 징발[편집]


"자발라 사령관,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갑군. 남은 게 많지는 않은 것 같지만." 마라 소프 여왕은 우주선에서 내려 리바이어던에 올라타는 우리를 날 선 우아함으로 맞이했다.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일부분은 죽었지. 그래도 그대를 찾아내서 정말 다행이야." 그는 말했다.

"지금은 모든 아군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이야. 게다가 이렇게 브레이 자매들까지 데려와 줬으니 고마운데."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여왕님." 나는 모든 것이 붕괴되기 전 그녀와 함께하는 동안, 여왕이 특히 예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마라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도 그렇다, 친구."

"칼루스는 어디 있지?" 자발라가 물었다.

"그자의 행방은 우리도 알 수가 없다. 나중에 고민할 문제야."

그녀 주위에서는 남은 각성자 군대가 기갑단 및 몰락자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 마라의 공격이 실패한 후 에리스에게 투항한 자들도 있다고 들었다. 모두가 어둠의 군대에 정말 많은 것을 잃은 상태였다.

"여기 벡스가 없다니 조금 놀랍네요." 아나는 무례하게 말했다.

"동생은 유머 감각이 엉망이에요, 여왕님." 나는 아나를 쿡 찔러 여왕에게 예의를 갖추라는 뜻을 말없이 전했다.

"벡스는 우리의 배신자와 어둠의 군대에 의해 시간 속에 갇혔다." 마라가 말했다.

"전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것을 발견했네." 자발라가 라스푸틴을 향해 손짓했다. "전쟁지능이 클로비스 브레이의 추적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여행자를 찾아낼 수 있어. 일단 여행자를 찾고 나면 그걸 붙잡을 방법도 알아냈지만, 구속 장치를 제작하려면 그대의 군대가 필요하네."

"나는 에리스와 마녀 여왕에게 반격할 준비를 하며 조금씩 병력을 모아 왔다. 너희도 우리에게 합류하여 충성을 맹세하게 하고 싶지만, 너희에게서는 어둠의 냄새가 나는구나." 마라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여왕님."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전 시공의 힘을 사용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 목적은 당신과 같아요. 이 상황에서 살아남는 거예요."

여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예전에 넌 내게 한쪽 편을 택하라고 말했었지. 그게 잘못된 쪽이라도 말이야. 말해 봐라. 넌 옳은 쪽을 선택했었나?" 그녀가 물었다.

"그러길 바라야죠. 다시 당신과 함께 서게 되었으니까요."

마라와 자발라는 진중한 시선을 교환했고, 자발라는 고개를 끄덕여 자신의 뜻을 전했다.

"내가 너희를 환대한다고 해서 너희를 믿고 있다고 착각하지는 마라. 내 믿음은 전장에서 얻어내야 할 거야."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여왕의 숙소를 찾아갔다가 자발라의 말을 엿들었다. "…인지하고 있어야 하네. 나도 그녀를 온전히 믿지는 않아. 그녀는 어둠을 갈망하고 있는 것 같네."

"최선을 다해서 그녀를 면밀히 지켜보겠다." 마라가 대답했다.

어떻게 아직까지도 날 믿지 않는 거지?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면, 내가 직접 하겠네. 아나는 내 친구니까." 그도 대답했다.

아.

"무슨 얘기를 하고 있어?" 아나가 속삭이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아니야. 가자." 나는 조용히 말했다.

"여기 첩자가 있는 건가?" 마라가 외쳤다. 충분히 조용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니에요, 여왕님. 우린 그냥 전략 논의라도 하러 왔어요." 아나의 말과 함께 우리는 방으로 들어섰다. 멋진 순발력이었다! "리바이어던을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병력이 지금 구속 장치를 제작하고 있다. 우리 상황이 얼마나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적을 상대할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았어. 에리스 몬은 내가 가늠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강하다. 그녀는 어둠의 잠재력을 모두 발휘하고 있어."

"우리도 똑같이 할 수 있으면 어떨까요… 그 대신 빛을 이용해서 말이에요." 내가 제안했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공간 너머 희미한 빛의 등대가 보였다. 여행자였다.

"거기 있구나." 자발라가 혼잣말을 했다. 마라와 그녀의 오합지졸 군대도 움직일 준비를 했다.

여행자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나는 경외감을 느꼈다. 그게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지 그동안 잊고 있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붉은 거장이 우주선의 고급 기능과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요. 정지된 위성도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아나가 말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이군." 자발라가 긴 숨을 내쉬었다. "엘리자베스…"

갑자기, 자발라가 풀썩 쓰러졌다. 그는 머리를 움켜쥐며 리바이어던 전체가 울릴 정도로 크게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지?" 마라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갑자기 쓰러졌어요." 아나가 대답했다.

그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발작이 차분하게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우리에겐 그대가 필요하네. 돌아와 주게."

뭐지? 혹시… 여행자와 대화하는 건가?

"그대는 우리를 선택했었지. 부디, 한 번 더 기회를 주게."

그는 두 눈을 감고 머리를 문질렀다.

"달아나려 하는군." 자발라가 일어서서 몸을 추스르며 말했다.

"어떻게 하죠?" 아나가 물었다.

자발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되찾아야지. 강제로라도."

"구속 장치를 발사해라!" 마라 소프의 명령에 승무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치가 발사되고, 여행자도 그 사실을 알아차린 듯 눈부신 광휘를 내뿜었다. 너무 밝아서 계속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눈을 가리며 우리 장치가 제대로 제작되었길 바랐다.

리바이어던이 흔들렸다. 나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벽을 붙잡아야 했다.

빛이 스러지고 내 눈도 다시 적응했다. 구속 장치가 마치 따개비처럼 빛의 구체에 들러붙었다. 여섯 개의 팔이 여행자를 단단히 붙잡았다. 리바이어던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나는 아나를 찾았지만 모여든 사람들 속에서 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돌아가겠네, 아이코라." 자발라가 당당히 말했다.


9. 제8장: 이주[편집]


"전에 하신 얘기를 들었어요." 나는 자발라의 숙소에 뛰어들며 말했다. 그는 면도를 하는 중이었다. "아나요. 당신이 그 아이를 죽이겠다고 하셨죠."

그는 칼을 닦아낸 후 얼굴을 씻었다.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지." 그가 말했다.

"왜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시죠?"

"난 오랫동안 아나를 알았네. 뭔가 이상해."

"저한테 동생 말을 들으라고 하시지 않았던가요?"

"그대는 이상하지 않은지 확인하고 싶었지."

"나쁜 사람." 분노가 끓어올랐다.

"난 그저 우리가 승리할 수 있게 하려는 거야."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여기 있지도 않을 거예요. 그 폐허 속에서 썩어가고 있었겠죠."

"끝났나?"

"내 동생이에요. 내 책임이죠. 당신이 결정할 일이 아니에요."

나는 누가 그 짐을 짊어져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 그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그럴 일이 생긴다면, 그대에게 그 일을 완수할 힘이 있기를 바라야지.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야." 그가 말했다.

리바이어던은 고요했다. 집결한 군대가 승리를 향해 돌진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죽음을 향해 가는 행군 같았다. 괜히 사람들을 동요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가만히 아나 옆에 서서 우리가 달에 접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여행자는 구속 장치에 매달려 끌려 오고 있었다.

"각자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알고 있겠지. 이 반대편에서 모두 다시 만나자고 얘기하고 싶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거야. 우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든 에리스 몬을 막아야 한다." 자발라가 말했다.

그와 마라는 시선을 교환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발라는 아무 말없이 우리와 기갑단, 몰락자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도 작별 인사는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도착했다. 다들 준비해라." 여왕이 명령했다. "실수하지 마라. 에리스는 오늘 죽는다."

우리는 리바이어던 조종을 라스푸틴에게 맡기고 수송선으로 달려갔다. 나는 아나와 마라와 함께 지표면으로 향했다.

"아나… 지금까지 난 최선을 다해 해야만 일을 했어. 그러느라 우리를 희생해야 했던 건 정말 미안해." 나는 말했다.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해. 우린 이길 거야."

수송선이 쿵 소리와 함께 지상에 떨어져,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문이 열리자, 노예의 매서운 공격이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는 총을 발사하며 수송선을 빠져나왔다.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진홍빛 요새가 눈에 띄었다. 지표면 아래의 힘을 끌어내고 있는 에리스 몬이 보였다. 어둠의 수호자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우리를 향해 쇄도해 오고 있었다.

나는 인광성 연무에 감싸인 채 빛을 발하고 있는 리바이어던과 여행자를 올려다봤다. 그가 하고 있었다. 자발라는 자신의 몸에 빛을 과충전하고 있었다. 가울의 설계와 기술을 이용하여 여행자의 힘을 흡수하고 있었다. 행운을 빌게요, 사령관님. 고마워요.

아나와 마라는 잔혹하게 군체를 베어 넘기며 다가오는 어둠의 수호자들을 맞이했다. 나는 아나를 찾아 에리스를 향해 손짓했다. 우리는 발을 맞춰 공격을 수행했다. 아나가 헌터를 향해 무기를 발사하는 사이 나는 동생을 엄호했고, 측면에서 공격해 오는 오우거를 시공으로 날려 버렸다. 아나는 그 거대한 발 아래 수류탄을 던졌고, 잠시 후 적은 가루가 되었다. 에리스가 우리를 발견했고, 나는 그녀가 미소를 짓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요새 뒤쪽에서, 군체의 더러운 가시와 휘장으로 뒤덮인 각성자의 함대가 떠올랐다.

지금이야, 전쟁지능.

각성자의 변절자들이 전장을 향해 포문을 여는 순간, 위성 배열의 찬란한 공격이 함선들을 모두 소멸시켰다. 에리스의 좌절감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그때 어둠에 감싸인 에리스가 소환 의식을 수행하는 모습이 보였다.

눈부신 빛줄기가 유성과도 같은 속도로 하늘을 가르며, 진홍빛 요새를 향해 똑바로 뻗어 나갔다.

지옥을 보여 줘요, 사령관님.

그는 아주 작은 균열을 만들어 내며 정밀하게 요새를 꿰뚫었다. 잠시 후, 휘황찬란한 재앙 같은 폭발과 함께 요새는 무너져 내렸다. 귀가 먹먹한 비명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사바툰의 것이 분명했다. 마라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마녀가 약해졌다. 지금 공격해!"

우리가 접근하는 사이 에리스는 다시 일어섰다. "나를 비방하는 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군. 내게 데려와 줘서 정말 고맙다, 아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아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녀는 어느새 칼을 꺼내 마라에게 내밀었다. 나는 동생을 막으려고 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난 제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아나의 힘으로. 그녀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마라 소프를 찔렀다. "고맙다는 얘기는 하지 않아도 돼, 여왕님." 시공과 피가 동생의 손에서 흘러 떨어졌다.

"결국엔, 우리 모두 어둠이다." 에리스는 기쁜 듯 말했다.


10. 제9장: 귀환[편집]


"무슨 짓을 한 거야?!" 무력하게 무너져 내리는 마라 소프의 사체를 보며 나는 비명을 질렀다.

"엘시, 내 얘기 좀 들어 봐. 꼭 필요한 일이었어. 빛의 신봉자가 남아 있는 한, 어둠은 번성할 수 없어. 이 갈등 너머에 새로운 세계가 있어. 같이 가자." 아나가 애원했다.

"이런 식으로는 안 돼!" 나는 그렇게 외치며 시공의 힘을 끌어냈다.

"엘시, 이러지 마. 지금이라도 같이 가면 돼. 가족을 되찾고 싶지 않은 거야?"

이런 식은 아니었다. 죽음과 배신을 통해서는 아니었다. 자발라의 말이 옳았다… 나는 그와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지금껏 내게 모든 걸 감춰 왔던 건 용서할게. 날 지키려고 그랬다는 거 알아. 과거는 잊어.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이제 내가 지켜 줄게." 아나의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이제 이성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나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니, 이미 내 생각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상처를 받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나는 손을 들어 공격하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아나는 내 옆구리를 찔러 핵심 부품의 연결을 끊었다. 내 왼팔이 축 늘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에리스가 차원문을 소환하는 것이 보였다. 그걸 통해 벡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우리 기갑단과 몰락자 군대는 도륙되었다. 벡스 히드라가 리바이어던을 뒤덮고 사격을 시작했다. 내가 울 수 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패배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에리스가 뒤틀린 미소를 지으며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독선으로 가득한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겠나? 넌 보호하려던 거라고 했지만, 아나는 버려졌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넌 공허를 남겼고, 어둠이 그 자리를 채웠다."

"당신에겐 더 큰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요."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귀를 찢을 듯한 소음이 여행자에서 울려 퍼졌다. 여행자의 광휘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걱정되고 혼란스러운 마음에, 에리스는 전 병력에게 어둠의 에너지로 그걸 처치하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될 필요는 없었어." 아나는 다시 한번 내게 칼을 꽂으며 외쳤다. "나와 함께 있었어야지!"

나는 마침내 구속에서 벗어나 시공으로 그녀를 강타했다. 아나는 뒤로 날아가 공중에 우뚝 멈췄다. 그녀가 버둥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나, 저 여자가 널 타락시켰어!"

"아니… 내게 사명을 주었어!"

젠장.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나는 아나의 이마에 입을 맞춘 후 동생의 손에 들린 칼을 돌려 그녀에게 꽂아 넣었다.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예전 동생의 모습이 잠시 돌아왔지만 이내 흐려지기 시작했다.

"엘시…" 그녀는 공허 속으로 스러져 갔다. 내 동생… 에리스는 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에리스가 조작하는 어둠의 에너지가 지상을 온통 뒤덮고 하늘을 향해 뻗어 올랐다. 어둠에 감싸인 여행자는 점점 더 밝게 빛났다. 나는 에리스를 향해 달려갔지만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넋을 잃을 만큼 찬란한 폭발과 함께, 여행자의 빛이 모든 것을 완전히 뒤덮었다.

그리고, 어둠만 남았다.

나는 깨어났다.

탑이 보였다. 그 탑이었다.

나는 지금 최후의 도시에 있었다. 도시는… 번성하고 있었다. 생명력이 넘쳤다.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었다.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서 보니, 케이드-6가 그 중앙에 서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잡은 것 같은데!" 그는 수염이 없는 자발라의 인사를 받으며 외쳤다.

"타닉스는 전에도 죽었던 적이 있네." 자발라가 말했다.

그의 뒤쪽에서 마치 환영처럼 아이코라 레이가 나타났다. "새로운 헌터 선봉대가 기쁨을 만끽하게 해 주시죠.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그 광경은 너무나도 역겨웠다. 내가 동생을 죽인 날 이후로 그런 말을 듣는 것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그날이 처음이었다. 이제는 몇 번인지 헤아리는 것조차 포기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끝은 언제나 똑같았다. 피와 배신. 그리고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바로 여기.

이건 도발이었다. 처벌이었다. 반복되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길이 있을 것이다. 찾아내야 했다.

동생을 구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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