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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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그야말로 서방과의 관계는 총체적 난국이나 반미성향 국가들을 포섭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인 만큼 굉장한 처세술과 매너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외교적인 매너 따위는 개나 줘버린 채로 타국을 모조리 압박하고 이득만 취하려는 형태인 일명 전랑 외교를 취하고 있다. 시진핑 뿐만 아니라 일반 중국인들도 타국에 민폐행위를 저질러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눈쌀을 찌푸렸으나 차이나머니가 너무 달달해서 대놓고 반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서방에 보낸 산업스파이들이 걸리면서 서방 국가들이 적대적으로 바뀌었고, 아프리카에선 일대일로라는 거창한 이름의 식민지화 정책으로 되려 독재성향 국가만 빼고는 아프리카에서도 등돌리고 있는 국가도 있으나 아프리카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국가가 중국 외에는 없어서 남아공을 위시한 일부국가는 경제협력 끈은 놓지 않고 있다.

2020년엔 전세계를 휩쓸어서 팬더믹을 일으킨 코로나19과 코로나19 늦장대응으로 전세계 확산과 책임회피로 그나마 중국을 감싸줬던 러시아마저 껄끄러운 사이가 되어버리면서 세계 각국의 공적이 되어버렸다.

2022년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의 공공의 적인 러시아를 향해 비판이 쏟아질때 중립인척만 하고 뒤에서는 교역강화로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러시아와 밀착하면서도 러시아의 영향력이 감소한 친러국가들을 은근슬쩍 친중으로 갈아타게 하려고 하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미국 달러패권에 일조하던 사우디 왕가가 현 미국 바이든 정부와의 갈등으로 인해 갈라진 틈을 공략하여 사우디를 친중으로 갈아타게 하고 있다.


1.1. 서방[편집]


시진핑은 국가 부주석일 때 멕시코를 방문하여

中国一不输出革命二不输出饥饿和贫困三不去折腾你们、还有什么好说的。

우리는 혁명을 수출한 적이 없고 배고픔을 수출한 적도 없으며 상대를 괴롭히지도 않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한가한 서방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 한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이 개혁 개방 30년을 지나 경제가 계속 발전하면서 중국에 대한 서방의 간섭이 수위를 높여오자 이에 그가 어떻게 대응하려는지 대충 방식을 보여준 셈이다.

제18회 당 대회에서 취임 기자회견 이후 중화 문화의 부흥에 대해서 강조했고, 채택된 내부 정치 보고 문안에서는 '국제적 위치에 맞고 국가 안보와 발전 이익에 부응하는 강한 군대를 건설하는 것이 전략적 임무'라고 명시함으로써 태평양 지역에서 이제는 한국, 미국, 일본, EU, 영국 등 제1세계 국가들에게 중국의 안보(혹은 패권)에 대해서 양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2023년 현재 서방의 압력에 대응하여 침략 전쟁으로 고립된 러시아와 패권공백이 발생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중국의 세력권에 집어넣으려 하고있다.


1.1.1. 미국[편집]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는 오바마가 아시아 쪽에 대한 외교에서 시진핑과 충돌은 하면서도 서로 직접 비난은 자제했다. 그러나 자국 우선주의 가치를 내걸고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완전히 사이가 냉각된 상태가 되었다.

파일:손빼라.gif

가장 유명한 사진이 이 움짤이다. 2017년 한겨울에 미-중 정상회담을 하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으로, 자금성을 관람하던 중 시진핑이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는데 트럼프가 고개를 돌리자 바로 차렷자세로 웃도리에서 손을 빼는 장면이다. 그 후 시진핑의 떨떠름한 표정은 덤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시진핑에게는 자국, 즉 홈그라운드인 자금성에서 벌어진 일이다. 또한, 트럼프의 시선을 주목해 봤을 때 트럼프가 고개를 돌린 것은 눈치를 줄 의도가 아닌 단순히 경치 감상이나 주위를 둘러보려는 목적이었다고 추측되지만 시진핑은 트럼프를 크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이 사건은 시진핑이 대놓고 트럼프의 눈치를 매우 심하게 보고 있음을 증명하고 말았다.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해서 저런 장면을 만들어낸 거라면 그럴 수도 있지 싶겠지만, 트럼프가 중국에 찾아왔는데 호스트인 시진핑이 게스트인 트럼프의 눈치를 보고 호주머니에서 손을 뺀 것누가봐도 명백한 저자세 외교이다.[1] 자신의 자국이자 홈그라운드인 자금성에서도 이런데, 역으로 시진핑이 백악관으로 초청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위의 주머니 사건은 기사로도 났다.

미국-중국 무역 전쟁에서도 시진핑은 트럼프의 공세가 들어올 때마다 제한적으로 보복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고 적극적인 대응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2018년 11월 1일 시진핑이 트럼프한테 먼저 전화를 걸어서 '무역분쟁을 원치 않는다.'며 먼저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하지만 시진핑과 트럼프의 자존심 싸움은 2019년에도 진행됐다. 미국 측에서 화웨이 관련 논란 등의 사안으로 공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시진핑도 희토류 수출 제한 및 미국산 대두 수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며 반격을 시도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손해를 자초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중국산 희토류의 최대 수입국이 미국이기는 하지만 그 이유는 오직 가격 경쟁력 하나뿐이며, 따라서 중국이 희토류 제한 카드를 꺼내들자 미국에서는 자체 인프라를 가동시키는 것으로 화답했다.[2] 미국산 대두 역시 중국이 가장 큰 시장이긴 하지만 미국 측에서는 중국이 아니여도 팔 곳이 많다는 반응. 19년 6월 초 있었던 러시아 방문 과정에서 시진핑이 트럼프를 '내 친구'라 지칭했으므로 2018년과 비슷하리란 전망이었다.

2019년 6월 28일, 2019 G20 오사카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인텍스 오사카를 찾아갔다. 그리고 미국중국은 정상회담 시작 전부터 격렬하게 충돌했다. 미국-중국 무역 전쟁으로 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에 앞서서,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주재한 '디지털 경제 규칙 만들기' 세션에 트럼프와 시진핑이 모두 참가했다. 여기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황금방패 인터넷 검열을 거론하며 중국을 비난하고, 시진핑 주석은 정보통신 기술 및 서비스 공급망 확보에 관한 행정명령에 따른 화웨이 제재에 대해 미국을 비난하는 거친 설전이 오갔다. 기사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장기화하자, 본격적으로 미국과 시진핑 정부와의 극한 충돌이 빚어졌다. 2019년 8월 8일 사건이 터졌다. 중국 공산당 측에서 폭로한 사진에 따르면, 조슈아 웡이 '미국인으로 보이는' 여성 인물과 이야기하는 사진이 찍혔다. 관련 질문이 이어지자, 조슈아 웡2019년 8월 6일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와 만났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조슈아 웡은 미국에게 홍콩 정부에 최루탄을 더 이상 수출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미국에서 논의 중인 '홍콩인권 민주법안' 등에 대해 의견교환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중국 공산당은 홍콩 시위에 대해 미국 정부가 배후라며 공격했다. 기사 중국 공산당 정부는 해당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의 신원, 일정, 가족관계까지 모조리 폭로해버렸다. 미국 국무부는 이런 중국의 조치에 대해 폭력배들이나 할 짓을 중국 정부가 하고 있다며 거세게 비난했다. 기사 덧붙여 조슈아 웡과의 만남과 같은 일은 외교관의 일상적인 업무이며,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폭력배나 할 짓이라는 발언이 파장을 일으켰는데, 미국 국무부에 질문이 폭주하자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내가 그렇게 (중국은 폭력배라고) 세 번 말했다." 하고 확인사살을 했다. 기사

2019년 하반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미국에서 지지하기 위해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을 통과시켰고, 미국 의회에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인권법도 통과시켰다. 홍콩 인권법과 신장 위구르 인권법은 공통적으로 홍콩/위구르 인권 탄압에 관련된 중국인에 대한 미국 비자 발급 제한과 미국 내 자산 동결이라고 하는 경제제재가 들어가 있다. 당연히 시진핑이 미국에 제재를 받게 된다. 2020년에 아예 시진핑을 미국에 입국 금지(페르소나 논 그라타)하는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미중무역전쟁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어떤 제재나 봉쇄(쿼드, 아시아판 나토)도 통하지 않을것이라고 전의를 보였으며, 중국이 항미원조 전쟁에서 승리했고 미국은 패배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코로나 대응 실패와 망언으로 재선에 실패하고 민주당 조 바이든이 취임하였는데 조 바이든은 중국이 가상적국 0순위로 삼고 반도체를 공급하는 TSMC가 위치한 대만을 지키기 위해 밀착하기 시작하자 당연히 시진핑은 주권침해 및 하나의 중국 위반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바이든은 그나마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지만 대만이 홍콩처럼 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대중국에 집중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철수까지 감행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은 중국이 러시아에 자극받아 대만 침공을 벌일까봐 경계했고, 대만 침공시 미군과 동북아시아와 호주 연합군의 즉각적인 참전과 투입을 공언하면서 대전차 무기와 드론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에 시진핑은 연일 날선 비판을 하고 있으며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대만에 방문하자 위협비행과 대만 봉쇄 훈련으로 맞불을 지필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었다.

1.1.2. 영국[편집]


2020년 1월 2일,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영국 런던증권거래소주식, 채권교차거래, 이른바 후룬퉁(滬倫通) 시행을 전격 연기하기로 했다. 후룬퉁 시행을 연기한 이유는 정치적 긴장이라고 적었다. 영국 정부가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고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에 대해 항의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사

2020년 1월 3일,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두고 영국중국 간의 갈등으로 인해, 중국 정부에서 상하이증권거래소런던증권거래소주식, 채권 교차거래인 후룬퉁을 완전히 중단할 것이라고 중국 전문가가 전망했다. 기사

2020년 6월 4일, 중국 정부는 상하이증권거래소런던증권거래소 간 교차상장을 통한 주식 거래를 하는 "후룬퉁" 사업을 5개월만에 재개하기로 결정하였다. 1991년 설립된 보험사인 중국태평양보험을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키는 것으로 후룬퉁 사업을 시작한다.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중국의 고립이 심화되자, 영국한테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내 영중관계 개선을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기사

최근 시진핑이 영국은 홍콩문제에서 빠지라는 식의 발언을 하자, 영국정부는 홍콩인 입국 그리고 2025년 이내에 주영국 대만 대표부의 외교적 지위를 대사관급으로 격상시키고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고 대만의 국제기구 가입을 돕는다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

2022년 10월 말 영국에 위치한 중국 영사관 앞에 시진핑의 독재가 시작되는 것을 조롱하는 피켓물을 동원한 시위가 벌어졌는데 영사관 직원들이 이를 멋대로 제거하는 것도 모자라서 주영국 중국대사가 모자쓰고 신분을 숨긴채 시위대 일부를 영사관 안으로 끌고가 폭행한 일이 벌어졌다. 당연히 영국 정부는 수사를 위해 면책특권을 포기시킬것을 권고하면서 이를 거부시 중국 대사 추방이라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강하게 나왔고 정작 중국은 우리들은 아무런 잘못 없다며 나서면서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1.2. 일본[편집]


아베 신조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일본 민주당 정권 시절 중일 양국이 희토류 무역 분쟁을 빚는 등 최악의 관계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아베 역시 미일관계에서 미일동맹을 강조하며 반중, 친대만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등 여러 가지로 시진핑 입장에서 아베의 일본은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다.

그러던 중 미국-중국 무역 전쟁이 상황을 바꿨다.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계속된 통상 압박을 받자 그 돌파구로 일본을 선택한 것이다. 대가로 시진핑은 엄청난 대일 저자세 외교도 불사했다. 밑에도 나오지만 2018년 10월 26일 시진핑이 아베를 초청해서 한 정상회담의 공동선언문 제목을 일본과 중국의 2018년 베이징 공동선언이라고 할 정도로 나 먼저 원리가 아닌 전격적으로 일본을 앞에 써줄 정도로 체면을 세워준 것이다.

2018년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 왕치산 부주석 등이 아베 신조를 초청하였다. 기사1 기사2 전격적으로 경제협력을 하고, 중-일간 무역분쟁은 빠른 시일 내에 타협, 그리고 미국의 자유무역 지대 복귀를 공동으로 촉구하는 등 중일관계가 급속한 화해의 길로 가고 있다.

2018년 10월 23일10월 26일 발표된 일-중 베이징 공동선언[3]에서는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전면 참여 허용, 중국-일본 공동 인프라 투자펀드 1조 달러 어치 창설, 한화 20조원에 상당하는 기업협력, 중국인민은행일본은행기존의 10배인 한화 35조원 상당(3조 4000억 엔)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등 여러 분야에서 급속한 화해의 길로 가고 있다. 또한 미국이 이탈하여 일본만이 대형 국가로 남게 된 TPP에 중국이 참여를 검토하는 등 급속도로 중일관계가 화해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상한 중일 밀월이라거나, 아베의 친중행보가 트럼프의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라는 기사들이 나왔고, 대만까지 이번 중일회담을 경계하는 양상으로 치닫았다.

하지만 이렇게 중일관계가 화해를 보이는 것도 잠시였다. 2019년 6월 28일 2019 G20 오사카 정상회의 1일차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시진핑 간 중일 정상회담이 있었다. 여기서 아베 신조 총리는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 대해 시진핑과 회담을 했다. 중일정상회담에서 아베는 시진핑한테 홍콩에서 발생한 시위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중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 경고했다.

아베 총리는 시진핑 주석한테 "일국양제 제도 아래에서 홍콩이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번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자유와 인권, 법에 의한 통치와 다른 보편적인 가치들을 보장하는 것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고 밝혔다. 기사 G20 오사카 정상회의 주관국인 일본이 공개적으로 중국한테 홍콩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심리가 기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후 일본에서 대 한국 수출제재를 감행하자 중국 정부가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를 두고 일본의 이번 수출제재 조치가 중국 입장에선 일본이 미국을 따라하는 것으로 보여 중국에서 불편하게 여긴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왕이 외교 국무위원이 고노 외무상을 질타하는 발언을 남기는 등 전반적으로 험로가 예상되는 상황이 연달아 이어졌다.


1.3. 북한[편집]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의 안보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핵 보유[4]에 반대한다는 입장이 단호하고 국제적인 규범을 성실히 이행할 것임을 천명하였지만, 북한의 동향이 줄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이 크므로 북한에 대한 전통적인 외교 경제적인 후견인 역할이 어느 면에서 한국과 안정적으로 공조가 이루어져 변화하고 조정될 수 있는지 주목을 받고 있다.

예전에 "항미원조전쟁은 조선을 도운 중국의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블로그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예전에 비해 제한적이지만, 지속적으로 북한 제재를 조이고 있다. #

2018년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시진핑의 초청으로 김정은이 방중했다. 쑹타오 등 중국공산당의 주요 요인들이 베이징에서 기다린 것이 아니라 직접 단둥역에 가서 김정은을 맞이했고, 김정은이 되돌아갈 때도 고위 간부와 철도 요인들이 단둥역까지 나와 배웅하는 등, 중국 건국 이래 유례가 없을 정도의 규모와 높은 수준의 의전으로 김정은을 맞이했다. 외신에서는 이 의전을 두고 황제급 의전이라 평하기도 했다. 여기에 리설주가 동행했으며 최룡해·박광호·리수용·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및 리용호 외무상 등이 수행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비핵화를 이야기 한 것으로 알려졌다.김정은 "韓美, 단계적 조치하면 비핵화"…시진핑과 한반도 대화

시진핑이 김정은을 초청한 이유에 대해서 언론에서는 중국의 영향력 축소를 우려했고 김정은의 입장에서도 중국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상호 이익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평가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차이나 패싱이 나오자 다롄에서 2차 정상회담을 가졌다.

북미정상회담 끝난 지 일주일 만에 또 다시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초청하여 3차 정상회담을 가졌다. 3개월 사이 북중 정상이 세 번이나 만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2019년 1월 7일,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일시와 장소 발표를 앞두고 김정은을 또 다시 베이징으로 전격 초청하였다.#

2019년 6월 19일, 방북을 하루 앞두고 <중조친선을 계승하여 시대의 새로운 장을 계속 아로새기자>라는 제목으로 북한 로동신문에 기고를 하였다.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는 방안으로 ① 전략적 소통·교류 강화 ② 친선 왕래·실무적인 협조 강화 ③ 대화·조율·협조 강화 등 3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

20일~21일 김정은의 초빙으로, 국가 주석 취임 이래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였다. 북한은 시진핑 주석에게 최고의 예우를 해주었다고 한다. #


1.4. 대한민국[편집]


부주석으로 있을 때 2009년 12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간 공식적인 첫 방한을 하였다. 주석 등극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고, 박준영전라남도지사, 새누리당정몽준 전 의원, 국민의당손학규 고문, 삼성 이건희 회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 포스코 정준양 회장 등 한국의 많은 정·재계 인사들과의 교분도 깊어 지한파로 알려져 있으며, 예전 중국의 지도자들에 비해 한국과의 관계 발전에 더욱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러한 점이 작용했는지 2014년 7월 3일 대한민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중국과의 수교 이후 처음으로 최고 지도자가 혈맹국인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을 먼저 방문하는 케이스가 되었다. 박근혜 역시 한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일반적으로 미국을 처음 방문하고, 그 다음에 일본을 방문하는 관례를 깨고 미국 방문 이후 중국을 먼저 방문하였다.

한편 박근혜가 당선된 이후 '일본에 우호적인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있었고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 악화된 한일관계를 개선할 대통령으로 알려졌으나, 임기 내 계속된 한중관계의 강화로 박근혜가 졸지에 반일 지도자로 제대로 각인되었다.(...) 한국 내의 친미/친서방 성향의 인사들도 지나친 친중 외교를 비판하기도 했다.

2014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APEC에서 시진핑은 박근혜, 버락 오바마, 아베 신조를 만났는데, 아베 총리에게 보여준 표정은 박근혜,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할 때는 사뭇 달라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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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THAAD 한반도 배치에 크게 반발하여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우호적이었던 외교 관계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던 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 이해찬 특사를 만났을 때, 본인은 상석에 앉고 이해찬 특사는 그 주위에 앉게 해서 결례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2017년 여름 북한 문제로 한미일과 대립하자, 급기야 "인민군이 항미원조전쟁에서 승리했다."며 정신승리를 시전했다.

2018년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시진핑의 초청으로 김정은이 방중했고 그 사실을 한국 정부에 미리 통지를 했다. 그리고 김정은이 돌아간 즉시 바로 양제츠 정치국 위원을 한국에 특사로 파견했다.

사실 중일관계 정도의 험악함이 없을 뿐이지, 중국에 바로 인접해있는 한반도 특성상 한국에서는 중국의 계속된 경제적 침공을 경계하고 있으며, 중국도 한국을 미국의 동맹국으로써 눈엣가시로 보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에서는 말은 안하지만 한중간 비즈니스 관계가 청산되는 임계 시기를 재고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중국간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는다면 한국전쟁 이래로 전통적인 친미국가의 길을 걸어온 대한민국 입장상 미국과의 관계를 청산할 가능성은 0에 가깝기 때문이다.[6][7]

2017년 8월 1일 드디어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했다." 라고 강조를 했는데 이쯤되면 정말 정신병자라 보아도 무방하다. 이후 홍콩에 범죄자 신병인도를 시점으로 홍콩을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대중에게 비호감을 쌓더니 결국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전세계에 퍼뜨려놓고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 정부는 한국을 탓 하거나 한국의 방역 정책에 참견을 하는 등 더더욱 비호감이 되는 것은 물론 한국 문화 예속화 정책도 시동을 걸면서 아베 신조저놈보다는 훨씬 낫겠다 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한국에서의 이미지는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으며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편파판정과 반칙, 적반하장에 가까운 영화, 혐한 분위기 적극적 조성, 동북공정으로 인해 시진핑의 한국내 이미지는 그야말로 악의 축에 가까울 정도로 미움 받고 있다.

2022년 3월에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을 축하하기 위해 축전과 함께 부주석 왕치산을 보내 중국측으로 포섭시도를 하면서 중국 우호도를 떠보려는 셈으로 방중요구를 하였으나 윤석열 당선인 측은 이번에는 시진핑 주석이 와줬으면 좋겠다라고 답하면서 포섭에 실패하자 기존 태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임기 초에는 한국에 대해 그럭저럭 호의적으로 대하였다. 그러나 2016년 사드 배치 사태 이후 시진핑은 호의적인 외교 기조에서 한국에 압력을 가하는 노선으로 바뀌였다. 사드 배치 이전까지만 해도 2013~2016년 상반기까지 국내에서는 좌우 이념 상관없이 시진핑과 중국을 비롯해 이미지와 호감도는 그리 나쁜편[8]이 아니였다.

이후 2023년 9월 23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중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30여분간 회동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성숙한 중한관계 발전을 희망한다고 말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안부 인사를 전해달라고도 했다.

1.5. 대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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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과의 양안통일 문제는 역대 모든 중국 최고지도자들에게 있어 중요한 문제였지만, 시진핑의 경우 대만과 마주보고 있는 푸젠성에서 17년간 일하며 성장까지 지내는 등 최고지도자가 되기 전부터 대만과 연관이 깊어 대만 문제에 더욱 관심이 많다는 분석이 있다. 게다가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와는 달리 3연임을 하게 되면서 자신이 마오쩌둥 급의 업적을 남겨서 명분을 만들어낼 필요성이 있는데 시진핑이 그 명분을 바로 대만과의 양안통일로 생각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대만 문제는 내 세대 안에 해결될 것"이라는 발언도 한 적이 있다.

2015년 11월 7일 마잉주 대만 총통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에 대만-중국 간의 정상회담이 66년 만에 싱가포르에서 진행되었다. 이 회담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중화민국 총통'과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간의 첫번째 정상회담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회담이었다. 기사

하지만 2016년에는 하나의 중국 정책에 회의적인 민주진보당차이잉원총통으로 당선되어 사이가 급격히 냉각되어있다.

2018년 8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청 형식으로 차이잉원 총통이 NASA를 방문했다. 대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차이잉원한테 초청장을 보냈기때문에 중국에서는 당연히 하나의 중국 위반, 시진핑도 가본 적 없는 NASA를 차이잉원한테 보여주다니!! 등등으로 방방 뛰고 있다. 그래서 2018년 8월 21일 전격적으로 엘살바도르중화민국과 단교시키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했다. 이로써 대만의 수교국이 17개국으로 하나 더 줄게 됐다. 그러나 정말 대놓고 도널드 트럼프가 차이잉원한테 NASA 초청장까지 써줄 정도라 조만간(2018년-2019년 경) 미국과 대만이 정상회담 하는 것 아니냐는 설까지 돌고 있다.

2019년부터 강경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것이 되려 반중을 자극하는 바람에 차이잉원 지지를 높여주는 꼴을 보여주고 있다.

2020년 제15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제10대 중화민국 입법위원 선거를 앞둔 2019년 8월 8일,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격화하면서 대만독립 성향민주진보당 차이잉원 현 총통의 지지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국 공산당에서는 ECFA를 폐기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 조치가 정말 시행되면 대만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중국 전문가가 위협했다. 기사

결국 차이잉원이 재선하면서 중국몽에 대한 흔들림이 강화되고 있다.

중국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대체 무슨생각으로 대만을 건드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언급하고 있다. 홍콩이야 작은 도시인 데다 명목상으로는 중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중국이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대만은 중국과 다른 체제를 가지고 있는 별개의 나라이다. 대만은 비공식적이나마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의 군사 강국인 대한민국, 일본, 싱가포르를 동맹국으로 두고 있고 자체적인 군사력도 가지고 있다. 특히나 미국은 대만관계법으로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 대만의 방위를 책임지고 있다. 실제로 장쩌민국가주석이던 시절 대만을 압박하기 위해 대만해협에 해군을 주둔시키며 위기감을 조성하자 미국이 나서 7함대를 대만해협에 보내고 F-16 160대를 대만군에게 양도했던 적이 있다. 이때 장쩌민이나 후진타오 모두 무력으로는 애초에 대만을 삼킨다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실질적인 현상유지인 92공식을 맺은 것이다. 시진핑은 이를 간과하고 있으며, 그가 대만을 압박하면 할수록 미 행정부는 대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오히려 대만은 요즘 시진핑의 압박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최신형 무기들을 받아내거나 아니면 기술지원을 받아내고 외교적으로도 미국의 지원을 받기 시작하고 중국에 있던 대만기업들이 대만으로 돌아오기 시작해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하는등 시진핑의 압박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대만 입장에서는 사실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 본인들에게 강경책을 펼치려면 자국 내의 문제도 잡아야 하는데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를 전세계로 퍼트리며 자멸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의 경우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를 초기에 잡는 모습을 보여주며 국가 이미지가 상승했고,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행위를 보여주자 반사이익으로 미국으로부터 공격무기들을 양도받기로 하며 군비 확충에 나서는 등[9] 여러가지로 시진핑은 대만에게 이득만을 안겨주는 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대만에게 외교적으로 완전히 수세에 몰리고 있다 보니 시진핑 역시 대만의 외교적 공세에 열을 받아 무력시위를 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대만과 진짜로 전쟁을 했다간 거꾸로 대만의 동맹국인 미국에게 박살이 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시진핑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며 대만은 이를 이용해 중국에 대한 외교적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대만을 대충 없는 나라 취급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대만이 평화롭기 때문이다. 굳이 외교적으로 대우해 주지 않아도 관심을 가질만한 무력 충돌은 일어나지 않고 대만도 페널티를 받고 있긴 하지만 꾸준히 경제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현재의 균형 상태를 굳이 건드려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지만 정작 대만이 정말로 위험해지게 된다면 제1세계 국가들은 반대로 대만을 다시 국가로 인정하는 급진적인 외교 정책의 변화를 취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어지게 된다.

공산당 원로들 사이에서는 대만에 대한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며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만의 우방국인 미국까지 자극시키며 미국이 대만에 대한 군사적 지원에 나서면서 점점 통일이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시진핑 집권 이후에도 대만의 숨통을 끊을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는데 본인의 외교적 실수로 날려먹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만의 수교국들 중 사실상 대만의 숨통을 쥐고 있는[10] 파라과이나 바티칸과의 수교 기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파라과이의 경우 파라과이 정부가 먼저 수교를 제안했으나 시진핑 본인이 거절했다. 심지어 바티칸과의 수교협상은 간 크게 교황청을 해킹하고 홍콩보안법 강행 같은 짓거리를 하면서 날리는 바람에 스스로 대만을 끝장낼 기회를 날렸다. 이제야 정신이 드는지 파라과이와 바티칸에 접근하고 있지만 2020년부터 미국이 대만의 수교국을 보호하겠다고 나서면서 그조차도 힘들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실책은 홍콩의 자치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모습이라도 보여 어떻게든 일국양제 방식의 통일에 부정적인 대만 내 여론을 불식시켜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일국양제를 스스로 파괴해 평화적인 방식의 양안 통일은 이제 말도 꺼내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1.6. 러시아[편집]


러시아와는 잘 맞는 듯 잘 맞지 않지만 잘 맞는 것 같은 관계다. 블라디미르 푸틴과 서로 훈장을 수여하는 등 양국이 미국에 대한 견제를 같이 하려고 시도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도 경제력은 이미 중국이 매우 월등하고, 1인당 소득 마저 거의 비슷해졌다. 서로 군사력 부분에서도 겨우 한 계단 차이가 나고, 군사력이 동급이 되는 순간 러시아는 패권 측면에서 이전의 상태보다 훨씬 떨어진다. 영토도 딱 붙어있어서 겉으로만 우호적일 뿐 내부적으로는 미국 못지 않게 서로 견제 중이다. 자세한 부분은 중러관계 참고.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관계다. 그래서 러시아는 밸런스 패치 차원에서 중국하고 적대 관계인 인도한테 대놓고 무기를 팔고있다. 덕분에 인도는 제1세계의 돈과 제2세계의 무기를 동시에 빨아먹으며 꿀을 빠는 중이다.

또한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러시아와의 관계도 금이 갈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경제난 악화로 제4차 푸틴 정부가 민심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2020년 개헌 국민투표를 이용해서 영구집권하려던 푸틴한테 코로나로 인한 선거금지라는 초강력 트롤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전부터 바이러스를 주고받는(돼지바이러스로 선빵) 관계기는 했다만...

지금 그 바이러스가 푸틴의 입지를 흔들고 있으며 나발니 지지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미국은 미운 놈이지만 당장 대통령 자리 탄핵시키려고 하는 건 시진핑인지라 푸틴은 아마 고민이 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새에는 러시아를 별로 안좋아하는 바이든이 당선되었음에도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서방은 미사일로 러시아를 위협만 했지 러시아인을 안죽였지만 시진핑은 진짜로 러시아인들을 없애버렸으니 푸틴도 골치가 아플 것이다.

2022년 동계올림픽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였는데 러시아군의 엄청난 졸전과 라스푸티차에 애먹는 등 전쟁시기를 잘못 잡은 것에 대해서 중국 시진핑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벌어진 러시아-조지아 전쟁처럼 흥행 불안요소를 막기 위해서 푸틴에게 전쟁을 좀 미뤄달라고 직접 요청했다고 한다. 당연히 중국 당국의 욕심으로 라스푸티차 시기에 러시아가 전쟁을 감행했으니 러시아로써는 중국의 트롤링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랑 밀착하는 행동을 보이자 친서방들은 일제히 러시아를 지원하면 중국도 제재할 것이라고 협조하지 말라는 압박을 넣는 가운데 겉으로는 지원하지 않겠다이나 교역량이 더 늘어나고 중국에서도 러시아를 응원하자며 러시아 제품 애국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가 이번에 지고 푸틴이 실각되는건 최악의 상황이기에 적극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으며 군사훈련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러시아의 졸전으로 러시아가 불리해지자 친러국가들 중 러시아 영향력이 좀 줄어든 곳에 방문해 은근슬쩍 이들을 자기 편으로 포섭하려는 행동을 보이는 등 상당히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다.


1.7. 중동[편집]



1.7.1. 사우디아라비아[편집]


시진핑 부임시절 사우디 아라비아는 전통적 동맹을 중시하던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아무런 마찰이 없었고 일단 경제대국 2위인 중국의 지도자여서 국빈예우는 해줬으나 어느정도 선을 그으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바마 이후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부터 셰일가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당시에는 환경을 고려 안 한채 원유 자체생산이 가능하다며 미국 경제가 다시 살아나면서 산유국 눈치를 보지 않게 된다. 이때부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불편한 관계가 시작되려고 할 무렵 왕세자이자 당시 부총리인 빈 살만을 비난하던 사우디 출생 출신 미국인 기자 카슈끄지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 내정간섭을 하지 않기위해 넘어갔으나 문제는 현 대통령이자 당시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은 사건 발발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 인권을 앞세워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기 시작. 그렇게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연일 "사우디를 국제적 왕따로 만들어야한다.", "이런 사건을 주도한 빈 살만 왕세자가 죗값을 치르게 해야한다."며 압박하였다. 게다가 F-35 도입마저 무산되면서 사우디 왕가는 점차 미국을 불신하기 시작하면서 차가운 관계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이후 원유값이 요동치고 셰일가스 붐도 꺼지면서 그제서야 바이든은 허겁지겁 빈 살만 압박을 중단하고 바이든의 첫 사우디 방문을 했으나 정작 사우디에서는 바이든에게 형식상 국빈 대우를 하면서 푸대접으로 일관하면서 망신을 줬다.

이런 틈을 놓치지 않은 시진핑은 물 밑에서 사우디와 접촉하였고 그 결과 달러 패권을 자랑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인 원유 거래화폐를 위안화로 받는 것을 포함해 여러 프로젝트 수주하고 이 프로젝트에 화웨이까지 포함된 것, 전략적 포괄 우호국이라는 명칭의 동맹국가가 되면서 사우디를 친중으로 갈아태우는데 상당부분 성공하였다.


1.8. 중앙아시아[편집]


2023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고 G7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중앙아시아 5개국과 시안에서 정상회담을 하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해당 회의에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세르다르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이 참석했다.

2. 관련 문서[편집]


[1] 한 중국 전문가가 말하길 중국은 외교에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일본,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 동남아,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수틀리면 대놓고 깔아뭉개려 하는 동네 양아치같은 태도를 보여 왔다.[2] 미국이 석유를 포함한 주요자원을 수입하기에 국제사회에서 흔히 간과되는 사실이지만, 미국은 중동이나 중국 못지 않게 자원이 넘쳐나는 나라다. 2차대전 후 중동 유전이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었고, 희토류와 같은 광물자원 역시 환경파괴 문제와 단가 문제 때문에 개발을 하지 않을 뿐 엄청난 양을 축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알래스카의 광물자원들과, 미국이 개발한 셰일가스 등을 생각해보면 미국이 자국의 자원을 아끼기 위해 수출과 채굴을 자제해서 그렇지 자원보유량도 어디에 꿀리지 않는다.[3] 중국 측에서 전격적으로 공동선언문에서 나 먼저 원리가 아닌 일본을 앞에 쓰는 것을 허용했다.[4] 2014년 7월 4일 한반도 비핵화라고 언급을 하였으나, 이것은 단순히 북한의 비핵화 뿐만이 아닌 대한민국을 포함한 한반도의 비핵화, 즉 미국의 핵우산 전략 목적에 대한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5] 잘 보면 아베도 제대로 웃지 못하고 있다.[6] 일단 제1세계에 속한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제2세계에 속하고 시진핑의 독재국가로 치닫고 있는 중국 사이에 정치적 간극이 너무나 크다. 더군다나 한미동맹의 존재로 인해 대한민국은 정권이 바뀌어도 언제나 한미관계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전세계로 한창 퍼졌을 때 무상 지원하는 중요 의료 물품들도 대부분 미국 위주로 지원하였다.[7] 코로나 사태 초기 중국에 코로나-19가 대규모로 발병했을 때 한국이 중국에 마스크를 수출하거나 지원한 적이 있으나, 대부분의 국가들이 당시에는 중국에 의료물자를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만 특이했던 건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전세계 국가들은 코로나-19가 범세계적으로 확산될지 예상하지 못했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중국을 지원해서 중국 내부에서 코로나를 퇴치하면 문제 없다고 생각해 자국의 의료물자 비축에 소홀한 면이 있었다.[8] 지금 생각하면 못 믿기겠지만 보수정권인 박근혜 정권은 서방세계중 이례적으로 2015년에 중국 전승절에 참여할 정도로 이때 당시까지만 해도 진보 보수 두 진영에게 좋은 이미지를 지녔었고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커지면서 중국어 공부 열풍도 불었다.[9] 물론 그렇다고 해도 미국이 대만에 대한민국이나 일본과 같이 F-35 스텔스 전투기나 이지스함 같은 최신형 무기만은 판매하지 않으며, F-16V와 같은 한세대 이전의 무기 위주로만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F-16V만 해도 기존 대만이 운영하던 F-16A에 비해 대폭 개량되고, J-20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국 전투기에 비해 성능상 우위를 보여줄 수 있으므로 대만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이득이다.[10] 파라과이는 대만의 수교국 중 가장 면적이 넓고, 바티칸은 면적이 가장 작을지언정 가톨릭의 본진으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다. 나머지 국가들은 팔라우 같은 힘도 없고 좁디 좁은 나라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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