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힘 뢰프/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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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클럽 지도자 시절
4.1. UEFA 유로 2008[1]
4.2.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2]
4.3. UEFA 유로 2012[3]
4.4.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4]
4.5. UEFA 유로 2016[5]
4.6. 2017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러시아[6]
4.7.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7]
4.8. 2018-19 UEFA 네이션스 리그[8]
4.9. 2020-21 UEFA 네이션스 리그[9]
4.10. UEFA 유로 2020[10]
4.12. 마무리
4.13. 여담
5. 근황



1. 개요[편집]


요아힘 뢰프의 생애 중 지도자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클럽 지도자 시절[편집]


1995년에 은퇴한 이후 1995/96 시즌 VfB 슈투트가르트 감독이었던 롤프 프링거 아래에서 수석코치로 부임하며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다. 시즌이 끝난 후 롤프 프링거가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자 1996/97 시즌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지오반니 에우베르, 프레디 보비치의 삼각편대를 앞세워 리그 4위와 DFB-포칼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그 시기에 내한 경기차 첫 방한을 실시했다. 올림픽 대표팀과 A대표팀간의 친선경기를 치뤘다. 그러나 당시 AC 밀란 유벤투스 인터밀란 내한에 잊혔다. 그 다음 시즌 1997/98 시즌에도 역시 리그 4위와 현재는 폐지된 유럽 주요 리그 FA컵 우승팀간의 대회인 UEFA 컵위너스컵 준우승을 차지하며 지도력을 과시했다.

1998/99 시즌에는 터키 쉬페르리그페네르바흐체 SK 감독으로 부임해서 리그 3위를 기록하였으나, 팀의 우승욕구를 해소시켜주지 못해 한시즌만에 짤렸다. 1999/2000 시즌에는 선수시절 몸담았던 팀이자 당시 2부 리그에 있던 카를스루에 SC의 감독으로 부임하나 리그 18위를 기록, 3부리그로 강등시키고 사퇴한다. 그 뒤 6개월동안 휴식을 취하던 뢰프는 2001년 12월 강등권 위기에 있던 터키의 아다나스포르에 부임하나 역시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2001/02 시즌 오스트리아 리그 클럽인 FC 티롤 인스브루크 감독으로 부임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지만, 해당 구단이 시즌 직후 파산해 버리면서 FC 티롤 인스브루크의 마지막 감독이 되었다. 1년간 휴식을 취하던 뢰프는 2003/04 시즌 FK 오스트리아 빈의 감독을 맡았다.


3.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편집]


2003/04 시즌이 끝난 뒤 2004년 독일 대표팀 수석코치로 부임하여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전술적으로 보좌한다. 클린스만과 함께 독일 대표팀의 전술, 수비 시스템, 공격적 철학, 멘탈 코치 도입 등의 개혁을 시작하였고 흑인 귀화 선수인 제롬 보아텡을 대표팀에 발탁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클린스만이 팀의 케미스트리와 훈련 파트 쇄신, 언론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힘썼다면, 뢰프는 전술적인 부분을 보좌하며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독일에서 15득점-5실점을 기록, 부진에 빠졌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승시켰으며,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3위를 기록하며 암흑기에 빠졌던 독일 축구의 부활에 앞장섰다.

사실상 클린스만 감독 시절부터 지금의 독일 대표팀을 만든 감독이라고 평가하는 축빠들도 있다.[11]


4.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편집]



4.1. UEFA 유로 2008[12][편집]


2006 FIFA 월드컵 독일이 끝나고 위르겐 클린스만이 휴식 명목으로 감독직을 사임하자 독일 축구협회는 수석코치인 뢰프를 위르겐 클린스만의 후임 감독으로 승격했다. 임명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클린스만 체제에서의 전술과 축구 철학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로 2008 예선에서는 체코, 아일랜드, 슬로바키아, 웨일스, 키프로스, 산마리노와 같은 조로 편성되었고 조 2위를 기록,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에서는 폴란드,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와 같은 조에 편성되었는데 첫 경기 폴란드에 2-0 승리를 거둔 뒤 크로아티아에 2-1로 져 개최국 오스트리아와 3차전 단두대 매치를 벌였다. 최소 무승부 이상이 필요한 오스트리아전에서 상대팀 감독과 언쟁이 붙어 동반 퇴장을 당하기도 했으나 발락의 프리킥 결승골로 조2위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포르투갈을, 4강에서는 터키를 연속 3-2로 물리쳐 결승에 진출하였으나 결승전에는 스페인에 패하여 준우승에 머무른다. 하지만 이 무렵 케빈 쿠라니와 불화를 겪게 되자, 뢰프는 사실상 쿠라니를 손절했다.


4.2.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13][편집]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유럽 예선에서는 러시아, 핀란드, 웨일스, 아제르바이잔, 리히텐슈타인과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당시 이 시기에 독일이 하도 부진하자 점점 약한 팀과 평가전을 갖게 되었고 심지어는 대학교 아마추어 축구부 선수들과 평가전을 갖기까지 했다. 이 아마추어 축구부를 상대로 독일 국가대표팀은 23:0이라는 대승을 기록했다. 뢰프는 오직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기 위해서 이 평가전을 치렀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감을 회복한 독일은 우여곡절 끝에 본선에 진출했고 본선 첫 경기였던 호주와의 경기에서 4:0 대승을 거두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으나 세르비아에 0:1로 패배해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뢰프는 "다음 경기에서 이기면 되지 뭐."라는 말만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으며 하나도 동요하지 않았다.[14] 그 결과 가나를 상대로 고전했지만 메수트 외질의 결승골로 1:0으로 제압하고 16강에 안착했다.

16강에서 프랭크 램파드의 골이 노골로 처리된 오심이 있었지만 잉글랜드를 무려 4:1로 제압하고 8강에서 아르헨티나와 맞붙게 되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전승 가도를 달리고 있었고 리오넬 메시라는 괴물을 앞세워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팀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뢰프는 "쟤들이 공격적으로 나온다고? 우리도 똑같이 따라하지, 뭐."로 일축했다. 결국 뢰프가 이끄는 독일은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4:0으로 박살냈다. 잉글랜드, 아르헨티나를 연파해 우승을 향해 거침없이 나가던 독일은 4강전 스페인을 상대로 결승 진출을 도전했으나, 카를레스 푸욜에게 헤딩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석패해 끝내 결승 진출은 좌절이 됐다. 독일은 3위 결정전에서 우루과이를 상대로 3:2로 이기며 월드컵을 2연속 3위로 마감했다.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으나, 대회 기간 동안 팀에서 가장 번뜩이는 선수였던 메수트 외질, 주장 미하엘 발락의 부상으로 인한 공백을 효과적으로 매운 사미 케디라, 그외에 토니 크로스, 홀거 바트슈투버 등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을 발굴하며 세대교체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4.3. UEFA 유로 2012[15][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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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예선 무패로 가볍게 유로 2012 본선에 진출한 독일은 포르투갈, 네덜란드, 덴마크와 같은 조가 되어 죽음의 조로 편성되었으나, 뢰프는 역시나 쫄지 않고 "까짓거 그냥 하면 되지 뭐."로 일축하면서 포르투갈전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동선을 완벽하게 파악해서 1:0승리로 이끌었으며, 네덜란드를 상대로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를 최대한 활용해서 역시 2:1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유로 1992에서 치욕을 안겨준 덴마크마저 2:1로 제압하며 3승으로 아예 청소를 해버리고 8강에 올랐다.

그리고 8강에서 그리스를 상대로 2진 선수들 위주로 내보내고도 4:2로 쓸어버리며 손쉽게 4강에 올랐다. 4강 상대는 천적 이탈리아. 이 때 이탈리아는 2년 전 남아공 월드컵에서 2무 1패, 조 최하위로 탈락하는 개망신을 당한데다 이번에도 스페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8강에 올랐다. 또 8강에서도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겨우 4강에 올라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이번엔 독일의 승리가 유력해보였다.

그러나 독일은 거짓말처럼 이탈리아에 1:2로 패배하며 또 다시 아주리 징크스를 넘지 못했다. 뢰프는 이 때 토마스 뮐러 대신 토니 크로스를 넣는 뻘짓을 작렬하면서 패배를 자초했다. 이 경기에서 토니 크로스는 탐욕의 끝판왕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어 역적이 되었다. 여담으로 스코어는 1점 차이였지만, 경기내용은. 3:1 혹은 4:1로 졌어도 할말없는 경기력이라 전세계 축구팬들은 아주리가 왜 독일 천적으로 불렸는지 다시한번 납득하는 분위기였다.[16] 그리하여 최종 순위 3위로 대회를 마쳤다.


4.4.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17][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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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프의 감독 경력상 최고의 리즈 시절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유럽 예선에서는 스웨덴,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카자흐스탄, 페로 제도와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지역예선에서는 전승가도를 달렸지만 스웨덴에게 4:0으로 다 이겨가고 있다가 뜬금포 4:4로 무승부를 거두자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지역예선에서 나머지 경기들을 깔끔하게 이기고 본선에 올라갔다.

포르투갈, 가나, 미국과 함께 죽음의 조G조에 속했다. 지난 대회와는 달리 편안하게 본선에 올라온 독일은 본선 첫 경기였던 호날두의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며 4:0 대승을 거두고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가나 상대로는 하마터면 패할 뻔했지만 2:2 무승부로 틀어막고, 3차전 미국 상대로는 우세한 볼 점유율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공격적으로 밀어붙였으나 골이 나오지 않으며, 어려운 대결 끝에 1:0으로 간신히 이겼다.[18]

16강에서는 알제리를 상대로 연장 혈투 끝에 2:1로 제압하고 겨우 올라왔으나, 그 이후의 대진표는 하늘이 도왔다. 8강에서 만난 상대라는 게 하마터면 지역예선 탈락할 뻔한 프랑스였고, 4강에서는 비록 홈팀이긴 하나 뭔가 나사가 심하게 빠진 스콜라리 감독의 브라질이 상대였다. 프랑스를 상대로는 전반 13분에 터진 마츠 후멜스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 1:0 신승을 거두었다. 브라질 상대로는 무려 7:1이라는 스코어로 너무 심하게 두들겨패고 결승에 안착했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3연속으로 만나게 된 메시의 아르헨티나였다. 4년 전과는 정반대로 이번에는 되려 뢰프의 간담이 서늘했다. 곤살로 이과인이 계속 슈팅을 날려댔고 독일은 사실상의 속수무책 속에서 이과인의 헛발질 덕분에 간간히 위기를 넘기는 형국이었다. 결국 이과인이 골을 넣었고 아르헨티나는 환호했지만 그게 오프사이드로 판정되어 독일은 위기를 넘겼다. 연장 후반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되었지만 뢰프는 신인인 마리오 괴체를 투입하는 강수를 뒀고 그 괴체가 골을 넣어 1:0으로 승리해 독일의 통산 4번째 우승을 달성하게 되었다.

이로써 독일은 만년 우승후보이면서도 24년간 무관의 설움[19]을 딛고 정상을 탈환하며 다시 한 번 축구 강국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요아힘 뢰프도 수많은 논란들을 딛고 드디어 락라인 탈출에 성공한 것은 .


4.5. UEFA 유로 2016[20][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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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UEFA 유로 2016 지역예선에서 폴란드와 아일랜드에 패했다. 이는 독일 공식경기 역사상 최초로 아일랜드와 폴란드한테 패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조 1위를 지키고 깔끔하게 본선에 진출했다. 비록 독일 역사상 최초로 두 나라에게 진 감독이라지만 독일이 2014 월드컵 우승을 비롯하여 2000년대 이후로는 2002년부터 2014년까지 4연속 4강 이상의 기록을 달성했고 그 중에 2002년을 제외한 나머지 3개가 뢰프의 작품인 것을 감안한다면, 결과적으로 독일은 유로2016 24개국 본선에 진출하는 데 성공한 것을 감안하면 두 패배는 그냥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2016년 3월 26일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 벌어진 독일과 잉글랜드와의 친선전에서 2:3으로 독일이 역전패했다. 친선전이라고는 해도 독일로서는 불쾌한 패배이기도 한데, 공교롭게도 이게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8강전과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독일이 0:2로 뒤지던 상황에서 프란츠 베켄바워의 추격골, 우베 젤러의 동점골, 그리고 연장전에서 터진 게르트 뮐러의 역전골로 3:2로 이겼었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바뀌어 독일이 2:0으로 이기고 있던 경기를 잉글랜드가 뒤집었다는 것이고 그리고 결승골이 연장전이 아닌 경기종료 직전의 추가시간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요아힘 뢰프 감독으로서는 유로 2016을 앞두고 예방주사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을테지만 전차군단으로서는 다시 한번 방심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그래도 3일 뒤에 있었던 이탈리아와의 평가전에서 무려 4:1이란 제법 큰 스코어로 승리했다. 이리하여 21년 만에 아주리 징크스를 격파했다.[21]

유로 2016 16강 슬로바키아전에서 독일은 전반 내내 슬로바키아를 몰아 붙였고, 8분 만에 선제골을 뽑아냈다. 전반 8분 크로스의 코너킥이 슈크리니아르의 머리에 걸려 문전으로 흘렀다. 그러나 보아텡이 달려들면서 때린 중거리 슈팅으로 슬로바키아 골망을 흔들었다. 기세를 탄 독일은 4분 뒤 추가골 기회를 잡아냈다. 고메스가 페널티 지역 내에서 스크르텔의 반칙으로 넘어져 페널티 킥을 얻어냈고, 외질이 키커로 나서 슈팅을 때렸으나 골키퍼 코자칙에게 막혔다. 이후 위기를 넘긴 독일은 추가골로 전반전 2골로 앞선 채 마쳤다. 고메스가 전반 43분 드락슬러의 돌파에 의한 패스를 밀어 넣으며 2경기 연속골에 성공했다. 독일은 후반 18분 슬로바키아 추격 의지를 꺾는 골을 터트렸다. 드락슬러가 후멜스와 그레구시와의 헤딩 경합에서 흐른 볼을 발리 슈팅으로 슬로바키아 골망을 흔들었다. 추가골 이후 독일은 경고누적 위험 있는 케디라, 보아텡을 빼고 슈바인슈타이거와 회베데스를 투입하며 8강전을 대비했다. 그리고 8강 상대는 이탈리아.

그리고 마침내 7월 3일에 열린 유로 2016 8강전에서 천적 이탈리아를 승부차기 끝에 6:5로 제압하고 4강에 올랐다. 그간 토너먼트에서 이탈리아만 만나면 짐을 싸야 했던 독일로서는 비록 전적 기록은 무승부이긴 하지만 88올림픽 3:0 승리와[22] 유로 1996에서 이탈리아를 무승부 탈락시킨 이후[23] 메이저 대회 토너먼트에서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탈락시킨 것이기에 그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사미 케디라와 마리오 고메즈의 부상, 마츠 후멜스의 경고누적 등 전력의 누수가 생겼다.

결국 4강전에서 앙투안 그리즈만의 멀티골로 프랑스에게 0 : 2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 사족으로 독일은 58년 월드컵 4강-66년 월드컵 결승전 이후 월드컵-유로 대회에서 개최국에게 진 적이 없었는데 이번 대회에서 50년만에 홈팀에게 무너지는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독일 축구는 정밀한 플레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가만히 보면 독일 축구는 그 자체가 하나의 팀으로 움직인다. 8강 경기 웨일스 vs 벨기에 전에서 당시 벨기에는 일레븐 팀으로 뛰었다는 혹평이 나왔는데 이것의 반대되는 개념이 바로 독일축구다. 독일축구는 선수들이 독일 국가대표팀이라는 국가대표팀이 아닌 분데스리가의 한 소속팀과 같은 개념으로 활동한다. 다시 말해 독일축구팀 선수들은 각각의 소속팀에서 나오긴 했지만 이들이 뮌헨소속인가, 도르트문트 소속인가를 알 수가 없게 만든다. 마치 독일국가대표팀이라는 또 하나의 클럽에 소속된 선수들인 것과 같이 경기를 치른다는 것이다. 국가대항 국제대회를 뛰는게 아니라 분데스리가의 시즌경기를 치르는 것과 같은 경기를 한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플레이를 한다. 위의 씌여진 독일 축구팀의 별칭인 '디 만샤프트'라는 별명이 괜히 나온것이 아니다. 분명 그들은 소속팀과 혈통, 그리고 문화도 다르지만 일단 독일축구대표팀 안에서는 그 팀의 소속선수들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뛰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어떤 팀도 넘보지 못하는 단결력있고 조직력있는 축구를 구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번 대회에서도 역시나 마지막 관문으로 가는 데엔 실패했다. 지난 대회와는 다르게 이번 대회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9명의 키커가 공을 차는 승부차기 끝에 8강전에서 떨궈놓고 프랑스라는 비교적 쉬운 상대를 만나 결승전 진출을 이룰 수 있을 것 이라는 장미빛 희망에 부풀어 있었으나 오히려 일격을 당하여 또 다시 상대팀이 결승전으로 향하는 장면을 목도해야 하는 비운을 맞았다.[24]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파란색을 팀 색상으로 쓰는 팀을 맞이하여 똑같이 한 선수에게 2실점을 허용했던 것까지 지난 대회 4강전과 흡사하다. 더구나 가까스로 만회골을 넣었던 지난 대회와는 달리 이번엔 영패를 당함으로서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었다. 조별리그부터 4강전까지 무수한 기회를 창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무리할 피니셔가 없는게 매우 컸다. 마리오 고메즈가 그나마 이 역할을 해주었지만 미로슬라프 클로제에 비하면 부족한 면이 있었고 부상까지도 당했다.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루카스 포돌스키 등이 대표팀에서 은퇴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세대교체를 가져야할 시기가 찾아왔다.


4.6. 2017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러시아[25][편집]



파일:2017 fifa cofederations cup germany national football team.jpg

뢰프의 마지막 화양연화

기존 레전드급 멤버를 보내기보단 새로운 신예들을 테스트하는 목적으로 뢰프는 말이 1.5군이지 사실상 2군이나 다름없는 스쿼드로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월드컵 디펜딩챔피언으로 출전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나 FIFA 측에서는 뢰프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판이란 말이 무색하게 조별리그에서 칠레와 비긴 것을 제외하고는 전부 이기고 4강, 결승까지 파죽지세로 진출해 결승에서 다시 만난 칠레를 꺾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게다가 앞서 말한 그 1.5 ~ 2군급의 스쿼드로 칠레[26]를 제외한 호주, 카메룬, 멕시코를 상대로 3점 이상을 득점하는 무서운 공격력을 보여주었다.[27]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2군급의 스쿼드로도 이러한 파죽지세를 보여주니까 전세계 축구팬들은 "독일 대표팀은 다른 유럽과는 다르게 아무리 못가도 8강은 갈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8]


4.7.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29][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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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프의 감독 경력 최악의 흑역사
한국전 패배로 충격에 빠진 뢰프 감독

짭태용이 되고 만 대회.[30][31]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유럽 예선에서는 체코, 북아일랜드, 노르웨이, 아제르바이잔, 산마리노와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독일은 이 예선에서 주전은 대거 불참시키고 후보 선수나 신인들로 구성해서 10전 전승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 때 남긴 성적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43득점, 4실점, 골득실 +39, 승점 30이었다.

게다가 이번 월드컵에서는 하늘도 도왔는지, 천적인 이탈리아지역예선에서 탈락하였고, 조 편성도 원래대로라면 독일에게는 꿀조였다[32].

그리고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엔트리 멤버 선발 경쟁에서 결국 마리오 괴체를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는데, 그 이유라는 말이 괴체 때문이 아니라 자책하는 발언을 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결승전에서 괴체에게 괴체야, 네가 메시보다 훌륭하다는 것을 증명해줘라라고 말한 그 마디 때문에 괴체가 지금처럼 망가졌다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메시가 어떤 선수인지는 다들 알 것이고 비록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괴체가 그 말 한 마디에 힘을 얻어 골을 넣어 독일을 그 월드컵에서 우승시켰지만 이후 괴체는 메시의 거대한 포스에 눌려 더 성장할 수 있을 선수가 성장하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본디 어떠한 과정이든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나가야 했는데 뢰프가 괴체에게 요구했던 저 한마디는 이제 갓 국가대표에 들어온 신입생에게 지구 최강의 축구선수를 능가해보이자고 권유를 한, 터무니없는 소리를 했다는 점이다. 학교로 따지자면 이제 중학교 영재 수준의 학생에게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부담을 준 것과도 같다. 뢰프는 이 때문에 괴체의 정신적 부담이 엄청났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기의 잘못으로 괴체가 국가대표에 들어갈 역량만큼 성장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시인하고 말았다. 뢰프는 이것 때문에 괴체를 엔트리에서 추방했음에도 항상 괴체에게 미안해하고 있으며 자신이 너무 월드컵 우승에 눈이 멀었다며 스스로의 행동을 경솔했다고 평가했다.[33]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독일은 아무런 문제도 없이 16강에 가볍게 갈 것이라고 모두들 예상했으나, 그들은 2014년의 그 전차군단이 아니었다.[34] 되레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본선에서는 3경기 모두 우승후보답지 않은 희대의 졸전을 선보였다. 먼저 첫경기에서부터 멕시코에 0 : 1 패배[35], 2차전에서는 이 대회 브라질과 공동 8강팀 스웨덴을 상대로 선취점을 빼앗기고 훌륭한 수비수까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한 끝에 20초 남긴 상태에서 토니 크로스의 기적같은 역전골로 졸전 끝에 2:1 승리를 했고,[36] 마지막 3차전에서는 대한민국에 0 : 2라는 충격패를 당하며 사상 최초로 본선 1라운드 조별리그에서 탈락(22등)[37]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얻게 되었다.[38]

독일이 월드컵에서 무득점 2점차 이상의 패배를 당한 것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게 0:3으로 대패하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0:2로 패배하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0:2로 패배를 당한 이후 12년 후의 일이다. 전술한 팀들은 다 한 축구 하는 강호들이니 변호할 여지라도 있지만, 그런 강호들 축에 들지도 못하는 아사아 대륙 소속의 대한민국에게 무득점에 그것도 다실점 패배라는 세계구급 굴욕을 당했다. 독일 국대가 아시아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버리는 바람에 피해가 막심한 상황이다. 게다가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 대 한국전 패배는 독일이 월드컵 본선에서 아시아 국대에게 최초로 패한 경기이다.[39] 오죽하면 베를린 교통 공사(BVG)가 독일에서 열린 2018년 유럽 버스기사 대회를 앞두고, 요 경기 결과에 빗대 '(아시아 국가인) 한국은 이 대회에 참여하지 않으니 (우리 버스기사가 우승을 차지할) 절호의 기회'라는 식으로 홍보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퇴진을 해야 한다는 75% 가량의 여론 속에서도 독일 축구 연맹(DFB)은 현 시점에서는 뢰프만한 감독이 없다는 판단을 했고 2018년 7월 3일, 독일 축구 연맹은 공식적으로 요아힘 뢰프의 유임을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이미 구두로 예정된 대로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시점까지라고 한다. 다만, 이 소식을 들은 독일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좋지 않다.

결국 뢰프는 이번 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독일을 이끌고 메이저 대회 준결승도 고사하고 16강조차 밟지 못한 상처뿐인 대회가 되었다.


4.8. 2018-19 UEFA 네이션스 리그[40][편집]



파일:뢰프2018.jpg


월드컵이 끝난 이후 뢰프는 "점유율 축구만으로 16강에 진출할 거라고 믿었던 내가 오만했다"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그리고 독일은 2018년부터 실시되는 UEFA 네이션스 리그/2018-19 시즌에 리그 A에 속해 월드컵 우승국 프랑스와 라이벌 네덜란드와 함께 1조에 속했다. 변화와 명예 회복을 다짐하며 치른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독일은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펼쳤으나, 알퐁스 아레올라의 엽기적인 선방쇼에 막히며 아쉽게 0 : 0으로 비겼다.

그러나 페루와의 친선 경기에선 비록 2 : 1로 이기긴 했지만, 마르코 로이스티모 베르너가 최악의 폼을 보여 아직 팀 리빌딩을 하는데 갈 길이 멀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기에 다시 한 번 독일의 부활을 기대해 볼만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잠시나마 뢰프에 대한 여론도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0월 13일 네덜란드와의 네이션스리그 2차전에서 독일은 또 점유율의, 점유율을 위한, 점유율에 의한 애무축구를 했고, 네덜란드의 빠른 역습에 잇달아 허를 찔리며 0 : 3이라는 희대의 스코어로 대패했다. 특히 이 경기에서 토마스 뮐러티모 베르너, 엠레 찬, 율리안 드락슬러 등은 완전히 최악의 폼을 보였고, 모두들 골 넣는 방법을 잊어먹은 것인지 볼 점유율 58% : 42%, 슈팅 수 21 : 14로 네덜란드보다 훨씬 더 앞섰는데도 불구하고 슈팅을 할 때는 아예 영점조정 자체가 안 돼 있었다. 그 탓에 유효 슈팅은 4 : 5로 도리어 네덜란드에 밀렸다.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1차적인 원인은 멕시코전 패배였는데, 멕시코는 그 경기에서 빠른 역습으로 독일을 잡았다. 독일은 또다시 같은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경기마다 쉽게 골을 수컹수컹 잘 넣던 예전 독일의 모습은 다 어디로 갔는지 네이션스리그 2경기 동안 단 1골도 넣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카잔의 치욕 이후 독일 대표팀의 모습은 그야말로 녹슨 전차 시즌 2다. 이에 미하엘 발라크는 "뢰프는 월드컵이 끝나고 자진 사퇴를 했어야 했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 그런데 대표팀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 토니 크로스가 발라크의 말을 듣고 "아무래도 그(발라크)가 대표팀 감독이 되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라고 빈정거리며 내분을 더욱 조장했다. ##

예전 독일 국대 레전드가 몰락한 대표팀의 모습이 안타까워서 쓴소리를 했는데도 이런 모습인 것이다. 현재 요아힘 뢰프의 대표팀은 이미 외부와의 소통과 담을 쌓고 그들만의 원팀을 형성한 상태다. 팀의 주전 멤버인 토니 크로스가 외부의 쓴소리에 이렇게 반응할 정도면 다른 멤버들 심리 상태는 더 볼 것도 없다. 이미 그들은 넉 달 전 월드컵에서 멕시코와 졸전 끝에 패배, 스웨덴과 고전 끝에 신승하는 대표팀의 모습에 쓴소리를 하자 "독일의 조별리그 탈락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길 바라는가?"라는 반응을 보이며 외부의 쓴소리를 고깝게나 받아들였다. 그리고 비판자들이 제기한 문제점을 전혀 고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갔다가 조 최약체라고 무시했던 한국에 0:2 완패를 당하며 사상 처음으로 조별리그에서 조 최하위로 탈락하는 수모를 당하고 만 것이다. 월드컵에서 이런 쓰라린 경험을 겪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이다. 이런 독일 대표팀의 모습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4년 전에 한국의 홍명보호에서 있었던 상황과 같다. 홍명보호의 망령이 독일에서 그대로 되살아난 것이다.

냉정히 독일이 앞으로 좋은 성과를 얻고 싶다면 과감히 뢰프를 사퇴시키고 더 젊은 선수를 등용할 생각이 있는 감독으로 팀의 체질 개선을 해야할 것이다. 그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뢰프 & 선수단은 외부의 비판을 지나치게 개무시하고 자신들의 스타일을 지나치게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건 더 이상 먹히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선수단 구성 뿐만이 아니라 포메이션을 짤 때에도 문제가 있다. 뢰프는 종종 풀백에 센터백이나 기동성이 아쉬운 선수를 선호하는데[41], 이제는 더 이상 이 전술은 현대축구에서 먹히지가 않는 시대착오적 전술이다. 또한 다른 좋은 윙어가 있음에도 베르너 & 뮐러와 같이 국대에서 부진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를 꾸준히 기용하고 있다.

현재 뢰프에 대한 독일 내 여론은 최악이다. 월드컵에서 한국에 0 : 2로 완패한 직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5%가 뢰프의 경질을 원한다고 했는데 네덜란드에 0 : 3 대패를 당한 이후엔 무려 92.4%가 뢰프의 경질을 요구하였다. #3

결국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독일은 또 1:2로 패배하며 1무 2패로 조 최하위로 처졌다. 이제 파이널 진출 가능성은 0%가 되었으며 리그 A 잔류도 산술적으로만 가능할 뿐이다. 독일이 리그 A에 잔류하려면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이겨주고 그 다음 자신들이 네덜란드를 이겨야만 한다. 독일축구협회는 여전히 뢰프를 신임하는 듯하지만 문제는 독일 축구팬들은 뢰프를 이미 버렸다는 것이다. 즉, 현재 독일 대표팀은 축구팬과 팀이 갈라져 버리고 있는 상태다. 다시 말해 그들만의 대표팀이 되고 있는 중이란 뜻이다. 요아힘 뢰프 체제의 독일 대표팀은 현재 독일판 홍명보호로 전락해가고 있다.

2018년 마지막 A매치 2연전 중 첫 경기인 러시아와의 평가전에서는 간만에 시원시원한 독일스러운 경기력을 보이며 3대0 완승을 거두었다. 이 날은 단순히 내용 뿐만 아니라 선수들 역시 유망주와 젊은 선수들을 위주로 선발 라인업을 꾸렸고[42] 후반에도 신예들을 위주로 교체를 했기에 드디어 세대교체를 시작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러시아 역시 다소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을 시험하는 경기여서 결과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뭐하겠지만 드디어 구식 선수들을 제외하고 팀을 개편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침내 믿었던 프랑스가 네덜란드에 완패하면서 네덜란드를 이겨도 B리그강등이 확정되었다는 건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마지막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도 선제골을 넣어놓고도 2골을 마저 지키지 못해 2:2로 비기는 바람에 네덜란드는 준결승에 진출하게 되고, 독일은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2무 2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대회를 마치게 되었다.

결국 2018년은 본인과 더불어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그리고 모든 독일인들에겐 최악의 한 해가 되었다.

그리고 2019년부터 뢰프 감독은 독일 대표팀의 전면적인 세대교체에 들어갈 것을 천명했다. 그 시작으로 3월 6일, 토마스 뮐러, 마츠 후멜스, 제롬 보아텡을 더 이상 국가대표팀에 선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 나중에 본인 스스로 이를 번복하지 않는 한 이 세 명의 선수들은 반강제적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하게 된 모양새가 되었는데, 하필 타이밍이 시즌 말미의 뮌헨의 리그 우승 경쟁 및 챔스에서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벌어졌기에 이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물론 선수 선발 및 구성은 전적으로 감독의 고유 권한이고 향후 책임도 감독이 지는 것이다. 다만, 국가대표팀의 중심으로 활약했던 선수들을 생각하면 이 결정은 갑작스레 벌어졌고, 게다가 사전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뮌헨 훈련장에 방문하여 통보하면서 일을 벌였기에 뢰프가 그동안 고생해준 베테랑 선수들에게 존중이 다소 결여된 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바이에른 뮌헨 또한 이러한 결정을 내린 독일 축구협회와 뢰프의 행동에 불만을 표하고 있으며 #, 뮐러와 훔멜스도 이와 비슷하게 서운함을 내비쳤다.

이 베테랑을 대놓고 안 뽑겠다고 선언한 이후 치뤄진 세르비아와의 평가전에서는 홈에서 1:1 무승부가 났다. 독일과 세르비아의 축구에서의 위상차를 생각해보면 홈에서 무승부가 난 것 자체도 상당히 부끄러운 일인데, 경기 내용면에서도 좋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 전반 12분만에 결정적인 1:1 찬스를 허용해 선제골을 먹힌 것이다. 이후 후반에 레온 고레츠카가 만회골을 넣었는데, 전반전 시작 얼마 안 돼서 선제골까지 먹힌 것은 수비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4.9. 2020-21 UEFA 네이션스 리그[43][편집]


계속해서 승리가 없다. 이뿐만 아니라 2020년 A매치에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무득점에 시달리던 터키에게 3골이나 실점하는 등 불안한 행보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그러다가 10월에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독일 역사상 첫 네이션스리그 승리이자 2020년 A매치 첫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 경기는 이겼다고 하기에 정말 쪽팔리는 경기였는데, 독일보다 명백히 아래 팀인 우크라이나가 이코로나19와 부상으로 무려 15명이나 이탈하는 바람에 4옵션 키퍼를 출전시킬 정도였던 반면 독일은 선수 이탈 없이 1군을 그대로 들고 나왔음에도 겨우 2:1로 이긴 것이다. 다음 경기인 스위스전에서도 졸전으로 일관하며 못 이겨서 일단 뢰프는 짤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지시각 2020년 11월 17일에 치러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는 스페인이 종이인형 2명과 서드키퍼를 끌고 나왔음에도 무려 6-0이라는 희대의 스코어로 참패를 당했다. 당연히 토너먼트 진출은 실패했으며, 1931년 오스트리아에게 6-0으로 패배한 이후 무려 89년만에 6점차 패배를 당하는 불명예를 맞았다. 패배도 패배지만 결과보다도 내용이 더 처참했는데, 독일은 이 경기에서 점유율에서 3대7로 크게 밀렸고 슈팅 숫자는 2 : 23으로 압도적인 열세를 보였다. 심지어 유효 슈팅은 단 하나도 없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경질설이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현지시각 2020년 11월 18일, 프리츠 켈러 독일축구협회장, 올리버 비어호프 대표팀 단장 그리고 뢰프 감독이 한데 모여 논의를 한 끝에 2021년에 치러지는 유로 2020 본선까지 힘을 모으기로 합의했다고 빌트 등 독일의 유수 매체들이 보도했다. 특히 올리버 비어호프 단장은 ARD 채널을 통해 "이 경기가 바꿀 수 있는 건 없다"며 사퇴 압박을 받는 뢰프 감독에 대한 공개 지지를 표명했다.

스페인전 참패 후 독일 축구팬 11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84%는 뢰프가 물러나야 한다고 답했으며, 심지어 24.1%는 이미 감독직에서 은퇴한 하인케스를 다시 불러와야 한다고 답할 정도로 민심이 바닥을 쳤다. # 이게 어느 정도로 심각한 여론이냐면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알제리 참사로 거하게 말아먹은 홍명보가 대회 직후 실시한 일반인 대상 설문조사에서 31%의 사람들만이 즉시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심지어 악질 까들이 대량으로 서식하는 네이버 스포츠의 자체 투표에서도 땅보 사퇴를 외치는 비율은 78%에 불과했다. # 이로 미루어보면 뢰프가 독일 현지에서 엄청나게 비난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12월 1일, 독일축구협회는 뢰프 감독을 유임시키기로 결정했다. 계약 기간은 2022년까지이며, 정황상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까지 유임할 것으로 보인다. 축협 회장이 뢰프에게 여러 번 사퇴를 권유했지만 뢰프 본인이 자신의 공을 어필하며 사퇴하지 않겠다고 버틴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독일 축협 내부에서는 여전히 뢰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44]


4.10. UEFA 유로 2020[45][편집]



4.10.1. 예선[편집]


독일의 예선 1차전 상대는 UEFA 네이션스리그에서 0 : 3 대패의 치욕을 안겨주었던 네덜란드였다. 그 때의 패배에 대해 절치부심한 것인지 독일은 초반부터 네덜란드를 찍어누르며 전반 15분에 리로이 자네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앞서나갔고 전반 34분에 세르주 나브리가 추가골을 터뜨려 2 : 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후반전 들어 갑자기 다시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후반 3분 만에 마테이스 더리흐트에게 만회골을 내주어 1 : 2로 점수가 좁혀졌고 후반 18분에 멤피스 데파이에게 동점골을 허용해 순식간에 2 : 2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수비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뢰프는 일카이 귄도안을 투입해 공수 균형을 잡았고 결국 후반 45분, 니코 슐츠의 결승골로 극적인 3 : 2 승리를 거두며 5개월 전 치욕을 안겨주었던 네덜란드를 상대로 설욕하는데 성공했다. 네덜란드 적지에서 거둔 32년만의 승리였다. 이날 뢰프는 기존의 전술에서 벗어나 빠른 기동력을 지닌 선수 위주로 팀을 꾸렸고, 후반에는 용병술을 통한 승부수로 오랜만에 네덜란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제 관건은 독일이 이런 좋은 모습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시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날 수 있느냐이다.

2차전 상대는 약체 벨라루스이다. 벨라루스를 상대로 2:0으로 승리하며 승점 3점을 추가했다.

3차전 상대는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를 상대로 8:0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이기면서 다득점에서도 우위를 들게되었다. 물론 상대가 상대인지라 아직 이러한 결과로 독일의 부활을 논하기는 이르지만, 네덜란드전을 시작으로 유로 예선에서 다득점으로 3연승을 했다는 것은 분명히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2018년에 13전 4승 3무 6패라는 치욕적인 성적을 거두었던 걸 감안하면 현재는 4전 3승 1무로 작년 이맘때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상황이다. 게다가 독일이 작년에 한 4승 중 3승이 평가전 성적이었고, 올해 독일의 3승은 모두 공식 경기에서 나온 것이다.

4차전 상대는 다시 네덜란드, 하지만 절치부심해서 끌어올린 수비력은 어디다 팔아먹었던지 홈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에 4:2로 대패하며 1위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5차전 북아일랜드 원정에서 2:0으로 승리했다. 물론 경기력 자체가 좋다고 보긴 어려웠지만 조 선두를 상대로 승점 3점을 챙기며 본선 진출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이후 예선 내내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고, 벨라루스와의 7차전 경기에서 4 : 0 완승을 거두며 UEFA 유로 2020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날 독일은 간간히 벨라루스에 위협적인 장면도 내주었지만,[46] 전체적으로 경기를 주도하면서 낙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북아일랜드와의 최종전에서도 6대1 대승을 거두며 조 1위로 진출해 톱시드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본선 조추첨에서는 톱시드가 무색하게 2018 월드컵 우승국 프랑스와 유로 디펜딩챔피언 & 유럽 네이션스리그 우승국 포르투갈과 묶여버리며 조별리그에서 역대급 빅뱅 매치업을 선고받았다.[47] [48] 조추첨 결과에 뢰프를 비롯해 페르난두 산투스디디에 데샹도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4.10.2. 본선[편집]


대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해당 대회를 끝으로 사임한다고 밝혔다. # 또한 자신이 강제로 은퇴시킨 뮐러와 후멜스의 차출 가능성을 열어뒀다. #

본선에서 프랑스에게 1:0으로 졌다. 뢰프의 전술적인 패착은 계속되었으며, 프랑스에게 경기력으로 완전히 쌈싸먹혀 무기력하게 패하고 말았다. 우선 프랑스의 공격에 대비해서 스리백으로 수비 숫자를 늘리는 것은 납득이 갈 만한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중원을 크로스-귄도안 조합으로 간 것은 완벽한 패착이었다. 후반전 막판에 거의 나라를 잃은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두 선수 모두 플레이메이킹이나 패싱 능력은 좋지만 수비적인 면에서는 한참 떨어지는데, 이를 무시하고 어설프게 프랑스와 중원 싸움을 걸어본 것. 당연히 독일은 중원 싸움에서 완패했으며, 수비는 음바페를 위시한 공격진의 역습에 90분 내내 떨어야만 했다. 그렇다고 공격이 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크로스의 고질적인 단점인 기동성은 포그바와 캉테를 내세운 프랑스의 중원에 묻혀버렸고, 귄도안은 제대로 된 공간을 찾지 못해 이도 저도 아닌 위치에서 잉여로 전락해버렸다.[49] 결국 중앙 공격 전개가 하나도 안 되자 독일은 울며 겨자먹기로 측면으로 볼을 계속 돌릴 수 밖에 없었는데, 윙백으로 나선 고젠스와 키미히는 프랑스의 풀백들인 파바르와 에르난데스에게[50] 막혀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없었고, 이들을 제치고 크로스를 올려봤자 아무도 못 받는 저질 크로스만 반복할 뿐이었다.

공격진 3인방은 당연히 이런 크로스들을 어떻게 할 수 없었을 뿐더러, 중앙에서 연계도 안 되고 측면에서 지원도 못 받다 보니 전방에 고립만 되고 말았다. 근데 크로스가 제대로 올라왔어도 안 됐을 가능성이 높았던 게 독일은 제대로 된 9번 공격수 없이 공격형 미드필더인 하베르츠와 뮐러, 그리고 윙어인 그나브리를 전방에 배치하는 제로톱 전술을 썼는데, 스트라이커가 없으면 백날 크로스 올려봐야 아무 소용 없다. 즉 이는 자신의 선수들의 특성을 무시하고 제대로 맞지도 않는 무식한 전술만 몰아붙인 뢰프의 완벽한 실책이다.[51]

여튼 남은 경기들에서 필사적으로 이겨야 16강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다음 상대는 유로 디펜딩챔피언 & 유럽네이션스리그 우승팀이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위시한 황금세대로 무장한 포르투갈인데, 이미 헝가리에 대승을 거둬 사기도 높고 선수들의 개인 기량 역시 독일에 앞서면 앞섰지 절대 뒤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포르투갈 담당 일진 뢰프와 독일이라지만, 프랑스전에서 보여준 한심한 경기력만 보면 포르투갈에도 승리는 고사하고 무승부라도 거두면 기적일 것이다.

그러나 위의 예측과는 반대로 페르난두 산투스가 독일의 윙백들이 날뛰도록 내버려두는 이상한 전술과 더불어 고젠스의 미친 활약으로 포르투갈을 4:2로 잡으면서 메날두 킬러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하여 1승 1패(승점 3점)을 기록한 독일은 포르투갈과 함께 승점에서 동률을 이루었으나, 승자승에서 더 앞섰기에 단숨에 조 2위로 올라가며 16강 진출의 불씨를 살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3차전 헝가리와의 경기에서는 또 졸전 끝에 2대2로 비기며 간신히 16강에 올랐다. 승점은 포르투갈과 같았으나 승자승으로 독일이 조 2위로 진출했다.

3경기 모두 세르주 그나브리중앙 공격수로 두었는데, 2,3차전의 카이 하베르츠와 3차전의 레온 고레츠카의 활약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용병술이다.

16강전에서 3백 전술로 티모 베르너를 톱으로 토마스 뮐러카이 하베르츠가 뒤를 받치며 공격진을 이루었다. 전반전에는 볼을 돌리며 수비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잉글랜드 선수들의 체력을 빼놓고 역습을 하는 전술이라고 팬들은 예상했으나 후반전에도 실점 후 계속 볼을 돌리고 전술을 수정하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으며 특히 부진했던 공격진 티모 베르너, 토마스 뮐러를 빨리 교체해줘야 할 상황에서 경기종료 5분전까지 교체카드를 1장만 쓰는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잉글랜드에 0:2로 패하면서 16강에서 일찍 탈락했고 역대 유로 최저순위 15위로 마감했다. 뢰프의 전술 역시 똑같이 백패스와 어림없는 롱볼만 반복하는 등 전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었다.

잉글랜드전에서 가장 비판받는 부분은 교체 타이밍에서 자말 무시알라를 90분이 넘어서야 교체 투입시킨 것이었다. 무시알라는 어린 나이에 비해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었고, 3차전 헝가리전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 주었기에 패하고 있던 상황에서 부진했던 베르너와 뮐러 등을 빼고 교체투입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뢰프는 그를 90분이 넘어서야 투입시켰고 팬들은 뢰프의 교체 타이밍에 분노했다. 독일 내에서 공신력이 높기로 유명한 SPORT1 기자 플로리안 플레텐베르크는 경기중에 트윗으로 "Why no musiala?????? Time is running..." 글을 남기며 뢰프의 교체타이밍에 분노를 표출했다.[52] 플로리안 플레텐베르크 트윗

결국 잉글랜드에게 56년 만에 메이저 대회 토너먼트에서 패하는 치욕을 당하면서 15년간 이어온 길고 길었던 독일 대표팀 감독 커리어를 마쳤다. 이번 유로에서도 유종의 미는 커녕 답답한 경기를 계속 보여주며 델 보스케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53]


4.11.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편집]



4.11.1. 예선[편집]


3월 26일아이슬란드와의 경기는 3대0 대승, 사흘 후인 3월 29일루마니아와의 경기도 1대0으로 승리하며 출발은 좋았다.

하지만 4월 1일, 유럽 1부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넷뿐인 최약체 북마케도니아한테 1대2 충격패를 당하면서 순식간에 3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마누엘 노이어 대신 출전한 마르크안드레 테어슈테겐이 자동문이 되며 뢰프의 골키퍼 용병술이 큰 화근이 되었고 티모 베르너도 빈 골대에 골을 넣지 못하는 등 뢰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독일에 20년 만에 지역 예선 패배를 선물한 만큼 독일 내부에서의 비판 역시 거세다. 키커는 이번 패배를 “불쾌한 이변”이라고 비판했으며 빌트는 “독일 축구사에 남을 치욕 같은 패배다. 뢰프가 유로 2020까지만 감독직을 맡기로 한 게 천만다행”이라고 꼬집었다. 이 외에도 빌트는 '부끄러운 패배', '믿기 어려운 패배'라는 용어를 사용해 가며 해당 패배를 표현했다. 그리고 뢰프는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크게 실망했다. 졸전이었다”라고 경기를 평가했다.


4.12. 마무리[편집]


유로 2020이 끝난 후 사임했으며 그의 후임은 브라질 월드컵때 수석코치를 맡았던 한지 플릭이 선임되었다.

DFB는 플릭의 첫 A매치 경기 첫날 성대한 퇴임식을 치루려 했으나 뢰프가 그 날은 플릭의 대관식이 메인이 되어야 한다며 공식 작별인사를 미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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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 11월 12일 볼프스부르크에서 열리는 리히텐슈타인과의 예선경기에서 뢰프의 공식 작별인사이자 퇴임식이 이루어졌다. 미로슬라프 클로제, 마리오 고메즈, 루카스 포돌스키, 페어 메르테자커, 마츠 후멜스, 사미 케디라, 베네딕트 회베데스 등 그와 함께했던 선수들이 참석했으며 작별인사를 하였다.[54]

요아힘 뢰프의 작별인사

17년간 독일 국가 대표팀을 맡으면서 메이저 대회에서 호날두의 포르투갈,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전승을 하였고, 브라질을 상대로 7:1 대승을 기록하며, 독일의 4번째 월드컵 우승을 선사했고, 유로 2016에서 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토너먼트에서 승부차기로 탈락시켰고, 유로 2020에서 유로 디펜딩챔피언 & 유럽네이션스리그 우승팀인 포르투갈을 4:2로 격파하는 등 역대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 중 최고승률을 기록한 감독으로서 분명 역사적인 훌륭한 감독인 것은 맞으나 박수칠때 떠나지 못하고 2018년 이후 성적이 좋지 못해서 여러모로 아쉬운 감독이라 볼 수 있다.


4.13. 여담[편집]


뢰브 감독의 독일 대표팀 재직한 시절을 살펴보면 재밌는 사실이 있는데 바로 한지 플릭 감독의 수석코치 시절을 전후로 대표팀의 성적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다. 플릭이 수석코치로 있던 시절에는 유로 2008 준우승, 2010 월드컵 3위[55], 유로 2012 3위[56], 2014 월드컵 우승이라는 호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플릭이 수석코치를 떠난후부터는 유로 2016에서 4강[57], 2017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까지는 좋았지만 2018년 월드컵에서 아시아팀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하며 80년만에 1라운드 탈락을 경험하였고, 네이션스 리그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며 리그B 강등을 당할뻔 하였으며, 유로 2020에서도 16강에서 허무하게 탈락하는등[58] 형편 없는 성적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후 플릭이 뮌헨을 이끌고 트레블을 달성하자 그동안 플릭이 수석코치 시절 전술의 모든 부분을 담당하여 대표팀이 호성적을 거둔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한지 플릭이 국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도 개선되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되어서 이에 대한 설은 쑥 들어갔다. 되려 러시아 월드컵 전까지 좋은 성적을 꾸준히 냈던 것에 대해서 재평가하는 분위기다. 다만 현재 독일 대표팀은 스쿼드가 과거보다 확실히 얇아진 부분도 있기에 감독의 문제도 문제지만 스쿼드 문제도 배제할 수 없다. 즉 플릭의 전술적인 부분이보다는 뢰브의 지휘 아래 플릭의 전술적인 부분과 스쿼드 그리고 조직력 이 삼박자가 맞았기 때문에 대표팀이 호성적이 가능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5. 근황[편집]


21년 12월 페네르바체 SK의 페레이라 감독이 경질되고 차기 사령탑으로 거론되었으나 빌트에서 뢰프는 라리가, 프리미어리그, 분데스리가를 바라보고 있다고 반박했고 이스마엘 카르탈이 페네르바체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해당 링크는 빠르게 식었다.

그러나 2022년 3월, 다시 페네르바체와 강하게 링크되고 있다. 하지만 조르제 제수스 감독이 부임하면서 다시 식었다.

2022년 12월에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독일을 꺾고 16강(9위)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이 선임을 추진 중이라는 루머가 나왔다. 다만 여전히 유럽에서 수요가 있는 감독이기 때문에 정말로 선임이 될지는 미지수. 또한 일본 대표팀의 현직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비록 이래저래 비판은 많이 받을지언정 확실한 경기력과 성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도 굳이 비싼 돈 들여 외국인 감독을 선임할 이유가 부족하기도 하다.

게다가 뢰프가 독일 대표팀 말년에 초라한 모습만 보여준 반면 여러 실책이 있었지만 실용적인 축구로 좋은 성적을 냈다는 평가를 받는 모리야스 감독[59]과 비교해서 명백하게 더 나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일본축구협회에서 모리야스를 2년 더 신임하기로 하면서 일본 대표팀 감독 부임도 없던 일이 되는 모양새.

2023년 3월에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부임설이 나왔다.

4월 23일 한국 감독으로서 분데스리가 선수를 순회하던 위르겐 클린스만작은 정우영을 방문했는데, 뢰브와 함께 나란히 서있는 모습도 포착되었다.# 클린스만의 초청으로 방문한 걸로 추정되며 사단의 상하 관계였던 둘로선 연락은 이어가는 모양이다.

10월 초, 풋볼 에스파냐에서 뢰브가 2002년 대한민국의 거스 히딩크의 사례[60]를 잘 알고 있고, 2018년 월드컵에서 독일을 이기고, 2020년대 이후 대한민국 선수들의 유럽 진출이 많아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해 굉장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현재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는 위르겐 클린스만이 해임될 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11월 말에는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군에도 거론되었다.

[1] 준우승[2] 3위[3] 3위(4강) 유로 대회는 1984부터 3,4위전이 폐지되어서 최종 결과는 4강이다.[4] 우승[5] 4위(4강)[6] 우승[7] 22위(조별리그)[8] 11위, 리그A 조별라운드, 규정 변경으로 강등은 면했다.[9] 8위, 리그A 조별라운드[10] 15위(16강)[11] 이 시기 클린스만 감독이 미국 자택에서 재택 근무를 해서 사실상 뢰프가 독일 현지에서 직접 결정권자였기 때문이다.[12] 준우승[13] 3위[14] 다만 경기 직후엔 물통을 집어던지며 격분하는 모습을 보였다.[15] 3위(4강) 유로 대회는 1984부터 3,4위전이 폐지되어서 최종 결과는 4강이다.[16] 그도 그럴것이, 이 대회에서 사람들이 주목한건, 또한번의 전성기를 맞은 독일이 한창 잘나가는 스페인을 잡느냐 마느냐였지 아주리 징크스를 극복하느냐 마느냐가 아니었다. 전력상 불리했던건 물론 이전 경기력조차 썩 좋지 못했던 이탈리아였다. 예선에서는 그 스페인을 상대로 정말 선전했지만 그 이후 약빨이 다 된 모습을 보였다.[17] 우승[18] 공교롭게도 당시 미국 감독은 뢰프의 전임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이었다.[19] 02년 준우승, 06년/10년 3위.[20] 4위(4강)[21] 이제 국제대회에서 이탈리아를 이긴다면 아주리 징크스를 완전히 격파하게 된다. 자세한 항목은 아주리 징크스 참조. 참고로 이 경기에서의 승리는 통일 독일로서 가진 대 이탈리아전 승리라는 점에서 뜻깊은 경기였다. 다만 정식 메이저 국가 대항전{FIFA 월드컵유로}에서의 성적은 여전히 독일의 무승이므로 이들 무대 중 하나에서 독일이 이탈리아를 이긴다면 아주리 징크스를 정복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탈리아가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22] 당시 올림픽 축구는 A매치였으며,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탈리아를 3:0으로 격파했다.[23] 당시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이탈리아를 0:0 무승부로 탈락시켰고, 이탈리아는 같은 조 체코한테 승자승 원칙에 밀려서 탈락했다.[24] 이탈리아는 몰라도 프랑스는 토너먼트에서 독일에게 약하다. 2승 1무 1패로 독일이 전적에서 앞서고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에서 프랑스에게 패했지만 3/4위전이라는 이벤트성 경기였다. 이 패배가 충격이라는 결정적 이유.[25] 우승[26] 조별리그 2차전 1:1 무, 결승전 1:0 승[27] 호주전 3 : 2 승, 카메룬전 3:1 승, 멕시코전 4:1 승.[28] 심지어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에 해당되는 팀이 독일이었다.[29] 22위(조별리그)[30] 실제로 독일에서는 당시 신태용의 복장을 보고 신태용이 뢰프를 흉내낸다고 신태용을 비아냥했고, 또 신태용 감독과 뢰프 감독이 월드컵 조 추첨 날 처음 만났을때 뢰프가 신태용에게 "짝퉁, 행운을 비네!"라며 비꼬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기 이후 독일 언론에서는 '가짜 뢰프가 진짜 뢰프를 이겼다'고 뢰프를 비난하는 여론이 생기고 말았다.[31] 사실 한국에서도 당시에는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의 패배 때문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어서 경기 이전에는 신태용이 짝퉁 뢰프라는 말에 어차피 반박도 안한다는 반응이었는데 정작 경기 이후에는 뢰프가 오히려 짭태용으로 조롱당하는 역관광이 생겼다.[32] 한국이야 상대적으로 약체였고, 스웨덴은 에이스 즐라탄이 없었는데다 즐라탄 있던 시절에도 운이 지지리도 없어서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는 일이 잦았는데다, 그나마 멕시코가 강팀으로 평가받았지만 뭔가 포스는 약간 부족했다. 대부분의 도박사들도 독일 우승을 점쳤을 정도로 한국과 스웨덴의 미래는 암담했다.[33] 물론 괴체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것은 대사 장애라는 신체적 결함이 크다.[34] 거기다가 디펜딩 챔피언, 컨페드컵 챔피언, 아주리 징크스(독일이나 이탈리아 둘 중 하나가 떨어지면 나머지 하나는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한다는 징크스)까지 안 좋은 징크스만 3개나 걸려있었다.[35] 이 경기 결과로 인하여 F조는 한순간에 진정한 죽음의 조가 되었다.[36] 사실 이 경기도 그다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전반 32분때 스웨덴의 올라 토이보넨에게 선제골을 허용하고 질질 끌려가다가 후반 2분에 마르코 로이스가 동점골로 균형을 맞춘 뒤, 경기종료 추가시간때 크로스의 프리킥으로 역전, 가까스로 승리했던 것이다. 그래도 1명이 퇴장당한 상태에서 역전승을 거두었기에 이제 슬슬 독일의 저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많았다.[37] 역대 본선 최저 순위[38] 엄밀하게 말하면 나치 독일 시절인 (80년 전) 1938 프랑스 월드컵 1라운드 15강(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으로 사라짐) 토너먼트 탈락(10등)이 있었으므로 최초라고 할 수는 없으며, 해외 해설진 역시 "1938년 대회 이후 80년만에 첫 1라운드 탈락"이라고 밝혔고 또한 독일은 1978년 월드컵 당시 2라운드 8강 조별리그에서 탈락(6등)하였던 적이 있다. 다만, 지금과 같이 1라운드 조별리그 이후로 탈락한 경우로서는 최초이다.[39] 해당 항목을 보면 기술돼 있지만 이 한국전 패배 전까지 독일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월드컵 본선 성적 6승 무패로 전승을 기록하고 있었다.[40] 11위, 리그A 조별라운드, 규정 변경으로 강등은 면했다.[41] 대표적으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기동성과 슈팅은 별로 좋지 않다. 슈바인슈타이거의 기동성이 클로제 수준이었으면 애초에 2010년 월드컵 4강에서 스페인한테 패하지도 않았을 것이다.[42] 베테랑으로 칠 만한 선수가 주장 노이어 한 명이었다.[43] 8위, 리그A 조별라운드[44] 그러나 결국 다음 해 3월 초에 유로 대회를 끝으로 감독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45] 15위(16강)[46] 그 위협적인 장면은 전부 마누엘 노이어의 선방에 막혀버렸다. 심지어 페널티킥까지 막혔다.[47] 전 대회 우승국이라는 명예 뿐만 아니라 프랑스는 킬리안 음바페, 탕기 은돔벨레, 토마 르마 등의 신예와 은골로 캉테, 코랑탱 톨리소, 폴 포그바, 앙투안 그리즈만 등 베테랑들이 있어 신구조화가 완벽하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포르투갈 또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는 월드클래스 급 선수를 비롯해 브루노 페르난데스, 베르나르두 실바, 디오구 조타, 후벵 디아스 등 2000년 이후 다시 황금세대가 찾아왔다고 평가받는 팀이다.[48] 2번 포트로 밀어낸 네덜란드는 우크라이나, 오스트리아, 그리고 가장 낮은 랭킹의 북마케도니아 라는 무난한 조 편성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에게 이 지옥의 조 편성을 뽑아준 인물은 다름 아닌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고의 주장 중 한 명인 필립 람이었다.[49]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귄도안을 3선 볼란치로 쓴 과르디올라의 실책과 비슷한 선택이었다.[50]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은 독일 클럽에서 뛰고 있다. 독일전을 자신들의 홈구장에서 치른 것.[51] 물론 그렇다고 선수들이 잘한 것도 아니다. 크로스와 귄도안은 패스만 돌리다가 캉테에게 뺏기기 일쑤였으며, 하베르츠는 볼을 질질 끌다가 뺏기는 것만 반복했다. 고젠스는 그냥 발빠른 쓰레기 그 이상도 아니었고, 키미히는 고젠스보다는 잘했지만 그래도 에르난데스에게 틀어막히며 지워졌다. 심지어 분위기 반전하려고 교체 투입한 베르너와 폴란트마저 눈이 썩는 결정력과 패싱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나마 용서받을 법 한 선수들은 수비진에서 제일 잘한 긴터와 그닥 할 일은 없었지만 음바페의 유효슛을 선방한 노이어, 그리고 자책골을 넣었지만 그래도 헌신적인 수비를 보여준 후멜스 정도였다.[52] 플레텐베르크는 트위터에서 독일 내 관련 이적설, 소식등을 주로 올리며 개인 감정을 드러내는 트윗은 잘 남기지 않는 편이다. 또한 공신력이 높아서 바이언 한국팬들이 질문 DM글을 보내면 친절하게 답해주는 등 점잖은 성격으로 알려져있다. 그런 플레텐베르크가 감정을 표출하는 트윗을 올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시 뢰프의 운영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보여준다.[53] 델 보스케도 뢰프처럼 지난 유로컵 대회 직전에 이번 대회를 끝으로 사임하겠다고 미리 공언하였다. 그리고 경기 내용도 늘 하던대로 패스만 하다가 결국 16강 탈락했다.[54] 주장이었던 필립 람과 부주장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제롬 보아텡은 참석하지 못했는데 람의 경우 아내가 계획한 본인 생일파티(11월 11일은 람의 생일이다)로 인해 불참의사를 전하면서 뢰프에게 사과했고 따로 시간내서 만나자고 했으며 슈바인슈타이거의 경우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자식들이 아파서 불참했다고 한다. 보아텡의 경우 최근 몇년간 뢰프가 보아텡을 강제은퇴 시키고 무시했음에도 볼프스부르크로 와서 국가대표팀 훈련 후 뢰프를 만나 따로 축하해주고 리옹으로 떠났다고 한다.[55] 3,4위전 최종 3위[56] 3,4위전 최종 3위[57] 당시 플릭은 대표팀 스포팅 디렉터를 맡았다.[58] 그마저도 고레츠카의 동점골이 없었으면 조별리그 탈락을 할뻔했다.[59] 대표팀 감독이 된 이후 2018 아시안 게임 준우승(U-23), 2019 AFC 아시안컵 준우승, 2020 도쿄 올림픽 4위(U-23), 2022 FIFA 월드컵 9위(16강) 등의 성과를 냈다. 우승컵을 들지는 못했지만 성과 자체는 꾸준히 낸 셈.[60] 당시 히딩크는 유럽에서 급격히 몰락하고 있는 감독이였으나, 대한민국을 4강까지 끌어올린 것을 계기로 유럽 빅클럽에 복귀할 수 있었다. 다만 그때와 현재의 대한민국 대표팀은 매우 다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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