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5 센티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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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nson L-5 Sentinel
스틴슨 L-5 센티넬
1. 개요[편집]
L-5 센티넬은 스틴슨 사에서 개발해서 1939년에 초도비행한 경비행기 HW-75를 군용으로 개량한 기체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인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총 3년동안 생산해서 미군이 사용하였다. 영국군 역시 렌드리스로 받은 센티넬을 운용하였다.
L-5는 1942년 4월 재명명 이후 미 육군이 부르던 명칭이다. 재명명 전에는 O-62라고 불렸다. 해군과 해병대에서도 사용했는데, 이들은 센티넬을 OY-1, OY-2라고 불렀다. 그리고 1962년에 또 재명명되어 U-19가 되었다.
2. 제원 및 성능[편집]
3. 소개[편집]
임시로 대충 만든 짧은 활주로에 이착륙할 수 있었는데, 이 능력을 살려 여러 임무를 수행했다.
- 항공 정찰: 그냥 육안으로 정찰하기도 했고 항공용 카메라를 달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 구조 및 후송
- 수송: 높은신 분이나 연락장교를 태우고 날아다녔다.
- 전령
- 통신선 부설
- 긴급 항공 보급: 고립된 부대에게 의약품 같은 긴급 물자를 보급했다. 기체가 작아 큰 화물은 수송하지 못했다.
- 그 외 여러가지: 공중에서 아군 위장 상태 확인하기, 지휘관을 태우고 날아올라 지형 파악 돕기, 이동 중인 부대 위에서 날며 무슨 문제 없는지 확인하기...
함께 쓰인 선배 연락기 L-4 그래스호퍼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지녔지만 Bf109나 Fw190을 상대하기는 어려웠다. 이 전투기들과 마주친 불행한 연락기들은 느리게 저공비행하며 뒤쫓는 전투기가 실속하도록 만들거나 아군 방공망에 뛰어드는 식으로 전투기를 쫓아냈다.
독일군의 Fi 156, 일본군의 Ki-76이 비슷한 포지션의 기체였다.
참조
4. 대한민국 공군[편집]
1948년 10월 대한민국 공군이 2대를 도입하며 한국 공군의 두번째 기체가 되었다.[2] 이후 8대를 추가 도입해 6.25 전쟁 발발 당시에는 10대의 L-5가 있었다. 이 L-5들은 제주 4.3 사건 때 사용되기도 하였다.
6.25 전쟁 초반에 대한민국 공군에는 전투기나 폭격기가 없었다. 그 때문에 한국 공군은 훈련기나 연락기 뒷좌석에 탄 사람이 수류탄 및 소형 폭탄을 직접 손으로 들고 어림짐작으로 던지거나 기관총 등의 소형화기를 들고 쏘는 식으로 사용했다. 이는 마치 1차대전 당시 초창기 공군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국방일보에 따르면 김정렬 공군참모총장의 지시로 날개에 바주카를 장착하는 개조를 하기도 했다고.
1954년에 같이 들여왔던 L-4와 함께 모두 퇴역하였다. 현재 삼성화재교통박물관과 공군사관학교 내 박물관에 각각 한 대씩 전시되어 있다.
5. 매체에서[편집]
- 지중해에서 불시착한 이탈리아 왕립 공군 항공기로 등장한다. 연합군에 항복한 이후 시점이기에 오류는 아니다.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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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연락기들은 육군 항공대(AAF)가 아닌 육군 지상군(AGF) 포병 소속이었다. 1944년 항공대의 헨리 아놀드 장군은 육군 연락기는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데다가 포병 관측 외의 활동을 하며 항공대의 권한을 침범하기까지하니 모든 지상군 연락기를 항공대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지상군의 레슬리 맥네어 장군은 중요한건 포병 관측이고, 그건 지상군 연락기가 항공대 연락기보다 더 잘 한다며 변호했다. 미 전쟁부는 지상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항공대와 지상군이 연락기를 놓고 벌이는 알력싸움을 더 자세히 알아보자면 구글 북스에 있는 Organic Aviation in the Ground Arms, 1941-1947의 11장을 보라.[2] 첫번째 기체는 L-4 그래스호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