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r6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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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북한의 현 최고권력자이자 독재자.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고, 청소년기에는 잠시나마 선진국인 유럽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박운'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여 유학생활을 하기도 했다. 2011년 12월 17일에 아버지 김정일의 사망과 함께 수년 전부터 준비된대로 권력을 세습했으며, 2018년 기준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조선로동당 위원장 겸 중앙 군사 위원회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7] , 조선인민군 최고 사령관[8] 등을 겸직하고 있다.[9] 영어권에서는 'Chairman Kim'이라고 불리는 중.
집권 이후 스탈린식 숙청[10] 을 자행하였고, 고모부 장성택과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하였다.[11] 또한 유엔과 국제인권 단체등이 지적한, 북한 전역에서 자행되고 있는 살인, 정치범수용소 운용, 노예제, 고문, 구금, 강간 및 기타 형태의 성폭력, 강제 낙태 등 반인도적 범죄들의 최고 책임자이기도 하다. 북한의 인권상황 2018년 6월 브리핑 보고서, 한국 인권대사 "북한정권 대량학살 자행죄 증거 충분"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상 엄연한 대한민국의 영토인 휴전선 이북 한반도 지역을 불법점거한채로 2500만 주민을 폭력적 수단으로 억압하고있다. 여담으로 친일파의 후손이기도 하다.[12]
2018년,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돕겠다는 깜짝 제의를 한 것을 시작으로 남북정상회담에 나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고 이를 통해 '비핵화'와 '종전'을 약속하면서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 남북관계, 북미관계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 주인공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2024-05-03 05:59:55 현재까지 북측이 비핵화를 위한 유의미한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으며, 정권 차원의 각종 폭압적이고 반인권적인 범죄 행위들이 줄어들지도 않았기 때문에 주목하는 만큼이나 경계해야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2.1. 학창 시절[편집]
김정은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인 'Liebefeld-Steinhölzli Schule'에 다녔다.[13] 스위스 유학 당시 그가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살던 베른 시 당국 조차도 그가 북한 대사관 직원의 아들 '박운'으로 알고 있었다. 학부모 참여 행사가 있을 때면 항상 갖가지 변명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그의 스위스 유학생활에 관해 정확히 알려진 것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스위스 생활에 관한 여러 보도들은 여타 북한 관련 보도들과 마찬가지로 추측으로 가득한 자극적인 가쉽거리였다. 하지만 최근 그의 학창시절 가장 친한 친구였던 포르투갈 출신 이민자 2세인 요리사 주앙 미카일로가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150회에 출연해 김정은의 스위스 생활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들을 처음으로 매스컴에 공개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가쉽성 보도들과 달리 미카일로는 김정은의 가장 친한 친구임이 훗날 평양 초청과 방문에서 보듯 확인되었고, 장시간 인터뷰한 내용이 김정은의 가족관계나 여타 팩트에도 완벽히 부합하기에 김정은의 스위스 시절에 관한 가장 신빙성 있는 정보라고 할 수 있다.
미카일로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은은 여태까지 알려진바와 같이 학교에서 낙제를 겨우 면했다거나, 적응에 실패하여 친구들과 교사에게 안하무인식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조용한 성격으로 친구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수학에 뛰어나며 성적도 꽤 괜찮은 학생이었다. 김정은의 가장 큰 관심은 농구였는데, 그는 축구밖에 모르던 친구들의 흥미를 농구로 돌려놓았다. 농구를 할 때면 항상 이기려는 승부욕을 보였다고 하는데, 미카일로는 그 나이대에는 모두 이기고 싶어한다며 지나친 승부욕은 아니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했다. 김정은은 농구를 할 때면 고급 나이키 농구화와 유니폼을 입고 다녔다고 하는데, 이에 체육 선생님은 김정은에게 '장비는 잘 갖췄는데 실력이 프로가 되려면 멀었다'는 농담을 했고 김정은은 웃어 넘겼다고 회고했다. 또 흥미로운 것은, 김정은은 학교에 다니면서 기본 과목 중 하나인 '고급 민주주의' 과목을 들었다는 점이다. 우엘리 스튜데르 교사는 그의 제자 김정은에게 고급 민주주의 수업을 가르치면서 그가 북한의 노동당 위원장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고 CNN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김정은은 자신과 가장 친한 미카일로와 또 다른 한 친구를 가끔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살던 집은 스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세대 주택으로, 호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조용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학교를 도보로 걸어다닐 만큼 가까운 곳에 있다. 학교와 집이 있는 Liebefeld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베른 구시가지에 대중교통으로 10분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미카일로는 김정은의 집에 갈 때마다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미카일로는 김정은의 집에 갈 때마다 그의 여동생 김여정을 만났고 돌봐주는 어른들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후일 미국으로 망명한 김정은의 이모 고영숙 부부이다. 김정은의 농구사랑은 집에서도 계속됐다고 하며 미카일로는 그와 마이클 조던이 나오는 미국 영화물을 보거나 같이 게임을 즐겼다고 했다. 이외에도 김정은은 이따금씩 스키를 타러 다녔다고 하는데, 마식령 스키장에 큰 공을 들인 걸 보면 스위스 생활이 확실히 큰 영향을 끼친 듯하다.
9학년이 끝날 때쯤 김정은은 북한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미카일로에게 자신이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미카일로는 이 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또 믿을 이유도 없었다고 한다.
2013년 김정은은 미카일로의 언론 인터뷰를 보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던 그에게 대사관 직원들을 보내 그를 평양으로 초청한다. 스포트라이트 측에 제공한 자료들에 따르면 미카일로는 2012년 7월 21일부터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고 김정은을 만나 굉장한 환대를 받았다. 리설주는 물론 김여정도 참여한 식사자리가 있었고 김여정과도 반갑게 재회했다고 한다. 미카일로는 자신이 알던 '박운'이 북한 독재자가 되어서 자신 앞에 서자 어떻게 불러야 할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그는 하던 대로 그를 '운'으로 불렀고 따뜻한 포옹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2.2. 후계자 생활[편집]
김정은 리즈시절. 이후 40kg 이상이 쪄버렸다.
원래 김정은은 초창기에는 별 존재감이 없었다. 일설에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김일성은 김정남을 귀여워했고 김정은은 찬밥 신세였다고. 링크[14] 내용대로라면 김일성은 김정은을 손자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데, 이 기사가 과장이라고 쳐도 일단 김정은의 친모 고용희가 정실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므로 신빙성은 높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장남이며 언론 노출과 해외 출입이 잦았고 더불어 나이와 경력이 있던 김정남을 후계자로 지목하였으나, 김정남은 정식 결혼이 아니라 원래부터 유부녀와의 불륜의 소산이기 때문에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없었다. 김정은은 후처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정식결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정통 다만 김정일 곁에서 요리를 했던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일찍이 저서를 통해 김정운[15] 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을 점쳤다. 동복형 김정철의 경우, "김정일이 '여자아이 같다'는 평가를 내리며 후계자 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출처:후지모토 겐지, 김정일의 요리사, 4장) 후지모토는 김정은이 김정철과 달리 권력욕과 리더십이 있으며 어린 나이부터 부하들을 휘어잡는 능력을 엿보였다고 술회한다.
2010년 1월 8일, 즉 그의 생일, 북한에선 TV에 연간 김일성 출생일, 한국전쟁 휴전일[16] , 공산당 창단일로 딱 3번 트는 행사용 노래 <축배를 들자>를 틀었다. 그의 어릴 적 생일 축가로 지어진 노래 <발걸음> 또한 가사를 개사하여 북한 어린이들 사이에서 자주 불러서 여러 가지로 후계자의 윤곽이 확실하다.
일요시사에 따르면 교육 차원에서 남파 공작원 유자녀 '김철수'로 신분을 속이고 하전사로 입대해 야전 중대에서 굴렀다고 한다. 그때 김정은에게 잘해준 중대장과 부중대장, 분대장은 나중에 김정은의 김일성종합대 추천입학 등으로 초고속 출세를 했지만 가혹행위를 한 소대장과 정치지도원은 강제제대 후 일가족과 노동수용소에 보내졌다고. 훗날 군부 숙청도 이때 경험한 병영 부조리로 인해 군부와 북한군의 능력을 불신하게 된 결과라고 기사는 분석하고 있다.[17]
김정은의 세습에 북한 내부에서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거 순 낙하산 인사인데?" 하는 분위기라는 것. 실제로 2010년 9월에서 10월 무렵엔 김정은 1명뿐만 아니라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일가를 모조리 비난하는 소문이 평양에서 돌았다고 한다. 그 가운데 대한민국에도 동요로 널리 퍼진 <곰 3마리>를 개사한 것이 유명하다. 원수를 빼도 10여 명의 차수가 있는 북한군에서 대장 계급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란 설이 있다.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그 사이 김정일이 중국을 자주 드나드는 것도, 2010년 9월 말의 인민회의에서 소위 '후견인'들을 요소요소에 배치시킨 것도 다 지지 기반이 불안해서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래도 청년 시절에 문화예술계[18] 쪽에서 들이대기 시작하면서 10년 넘게 자기 입지를 강화해 나왔던 아버지인 김정일과 달리 북한에서 아무 경력도 없다가 갑자기 띄워주려다 보니 넣을 게 없어서 별 해괴한 선전을 해댄다고 한다. 3살 때부터 백발백중의 사격실력을 갖췄다든가, 140km 이상의 거리를 승용차로 운전했다든가, 7살 이전에 전차 등의 중장비를 조종했다는 양판소, 무협지 수준의 소설이 북한 측의 선전 내용이라고.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한 국가의 지도자라는 사람이 대국적으로 볼 수 있는 전략적 시야를 갖춘 게 아니고 전차 운전할 줄 알고, 자동차 운전할 줄 알고 사격 잘 하고 해 봐야 별로 의미가 없는 소리다. 그렇게 따지면 대다수 국가에서 가장 지도자에 걸맞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특수부대원, 공작원, 정보기관원이 될 것이다. 일국의 지도자에게 걸맞은 능력은 여러 가지가 있기야 하겠다만 적어도 개인의 전투능력이 아니라 한 사회를 제대로 구성할 수 있는 능력, 전시 전략적 식견을 가져 자신이 속한 사회의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능력, 다른 국가와의 외교적 마찰을 줄여 속한 사회의 구성원이 세계적으로 활약하게 해 줄 수 있는 능력 정도가 필요하다.[19]
그런데 인민은 인민대로 굶기고, 외교적으로 북한을 불신의 대상으로 만드는 지도자에게 '자기 집권을 위한 능력'말고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3살에 운전을 했니 백발백중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선전은, 반대로 말하면 '그것밖에 선전할 것이 없어서'인 것이다. 차라리 저런 황당한 소리를 선전이라고 할 바에야, 어릴 적부터 북한의 나아갈 길을 걱정한 속 깊은 아이였다거나, 오만한 미국인들을 말빨로 꺾었다거나 하는 소잿거리로 선전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20]
그 밖에 김정일이 발에 땀나게 중국과 러시아 등을 오가며 건수를 벌어오면,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의 공이 컸다"는 식으로 밥을 떠먹여주었단다. 안습.
2대 세습이 행해졌던 사례는 다음과 같다.
- 시리아: 하페즈 알 아사드 → 바샤르 알 아사드. 이들 부자 역시 철권통치로 시리아를 50년간 통치하여 사실상 아사드 왕조를 개창한 것과 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 아제르바이잔: 헤이다르 알리예프 → 일함 알리예프
- 콩고 민주 공화국: 자이르의 모부투 세세 세코 정권을 전복시킨 초대 대통령 로랑 데지레 카빌라가 암살당한 이후 그 아들 조제프 카빌라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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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아이티의 초대 대통령인 프랑수아 뒤발리에가 그의 아들 장 클로드 뒤발리에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며 세습에 성공했다. 사실상 이게 가장 김정은과 비슷하며 장 클로드 뒤발리에가 대통령 물려받을 당시의 나이가 고작 19살이였다.
미국의 조지 부시, 존 아담스 부자, 인도의 인디라 간디 모자, 파키스탄의 부토 부녀,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부녀, 대한민국의 박 대통령 부녀처럼 타 민주주의 국가들에도 2대가 나란히 최고집권자에 등극한 경우는 제법 많이 있지만, 이들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부모의 후광만 입었을 뿐 집권 자체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한 것이므로 위의 경우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2.3. 집권 이후[편집]
2.3.1. 2011년 ~ 2017년[편집]
김정은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듯한 김정일의 모습. 이 당시 아들이 뿌듯하다는 듯이 웃기도 하고, 그야말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인간적인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두 부자가 저지른 만행들을 생각하면 한 편의 호러영화가 따로 없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김정은은 세계 최연소 국가 지도자가 되었다.
2011년 12월 19일, 조선중앙TV의 특별 방송에서도 김정일 추모위원회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리면서 권력 서열 1위로 차기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대한민국의 전문가들은 "1994년 당시 김정일의 승계 과정보다 훨씬 불안정하지만 김정일이 구축해놓은 시스템과 중국의 지원으로 체제 붕괴나 내전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김정은의 지지 기반이 미약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김정일이 해왔던 1인 절대 독재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요직에 있는 고모 김경희, 고모부 장성택 등의 심복을 중심으로 하는 당의 세력 분포에 따른 집단 지도 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 과정에서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총살형에 처해졌다는 박남기처럼 내부의 권력 투쟁이 격화하면 많은 숙청이 따를 가능성도 있다. [21][22] 그러나 예측과는 달리 장성택은 숙청되었으며, 유력한 심복으로 지목되었던 김경희 역시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며 사실상 잠적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이 정권 안정을 이제 자신하고 있다는 예측도 있다.
김정은의 상황을 김정일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사망 발표 직후엔 일단은 김정일 장례에 모든 관심이 집중해서 별 탈은 없지만, 장례가 끝나는 순간부터 북한 내 정권들의 존폐 여부에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김정은 초기에 집단 지도 체제 안에서 정권 안정에 변수를 줄 수 있는 건 오극렬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달려있으며, 김정은의 나이가 아직 어리니 이복형 김정남이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른다. 여기에 아버지 김정일의 이복형제인 김평일까지 가세할 수도 있어, 안정적인 승계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정작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의 계승이 순조로운 듯하다. 상중임에도 상당히 빠르게 인사를 정비하는 모습이 보여서다. 대표적으로 25일 군부를 이끌고서 조문을 하는 모습에서 그의 고모부이자 핵심 실세로 예상하는 군부에 아무 직책이 없었던 장성택이 대장 직위를 달고 조문하는 모습이 잡혔다. 이 점은 현재 북한의 실세 장성택이 군부에도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하니 김정은 체제가 군부에도 작용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게 김정일의 생전 지시인지, 아니면 김정은 독단적으로 결정한 행위인지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김정일이 생전 '나와 닮았다'라고 한 발언처럼 김정일만큼의 정치 능력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2012년 4월 11일 열린 제4차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의에서 아버지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자신은 조선로동당 총비서 대신 '제1비서'라는 직책을 신설하여 취임해 조선로동당의 당권까지 장악했음을 공식화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김일성의 직책이던 '국가 주석' 자리를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여 폐지시켰던 전철을 그대로 밟은 것. 그리고 4월 13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아버지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다시 국방위원장 대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했다니 이뭐병. 그런데 북한 사람들 사이에선 어감상 '국방위원장'보다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더 높게 느껴져서 애비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 패륜아라는 소리를 듣는다고…[25]
아버지를 영원한 총비서로 남겨서 자신이 국방위원장에 취임하나란 추측도 했으나, 국방위원장직 역시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만들어버림에 따라 헌법을 바꿔서 총비서가 아닌 제1비서로서 당 중앙군사위원장에 취임한 것에 비추어보면, 향후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당 중심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2016년 5월 6일 36년 만에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개최하였고, 5월 9일 새 직책인 조선로동당 위원장직을 신설하여 여기에 직접 자신이 취임하면서 완전히 당 중심으로 국가운영을 바꿨다. [26]
그리고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하고 국무위원장에 추대되었다.[27]
2017년에는 제6차 핵실험을 통해 마침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을 초토화시킨 리틀 보이와 팻 맨을 능가하는 핵무기 개발 및 실험에 성공했고, 이로 인해 대북 제재가 더욱 강화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몰렸다.
2.3.2. 2018년 이후[편집]
집권 이후 대남 대미 적대 정책으로 일관하다가 180도 돌변하여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은 신년사를 발표하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며 대화의 손길을 내밀었다.[28] 이를 계기로 개회식 당일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과 다음날 친서 전달 등이 이루어지며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2018년 3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특사를 파견했고, 남북정상회담뿐만 아니라 북미정상회담까지도 이어지게 되었다.
2018년 3월 25일부터 3월 28일까지 시진핑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집권 이후 처음으로 태양호를 타고 방중하여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북중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대한민국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더불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섰으며 북중정상회담을 통해 본격적으로 국제 외교에 자신의 모습을 공식적으로 나타내게 되었다.
2018년 4월 27일에 열린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남을 가지며 판문점 선언이라는 성과를 거둔다. 이때 김정은은 북핵(군사적 성취)보다 자신들의 정권 존립이 더 중요하다는 걸 드러냈고 체제 안전만 보장된다면 언제든지 핵무기는 포기할 수 있다며 미국, 대한민국 등에게 핵무기 포기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2018년 5월 7일부터 5월 8일에 이번에는 참매 1호로 재차 방중하여 시진핑 국가주석과 다롄에서 2차 북중정상회담을 가졌다.
2018년 5월 10일에는 방북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편을 통해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3명을 풀어줬다.
2018년 5월 16일 0시 30분에 김정은이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고위급회담을 취소했다.
2018년 5월 26일 15시 판문점에서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며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완화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을 가졌다.
6월 19일부터 6월 20일까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을 받아 1박 2일로 참매 1호로 방중하여 시진핑 국가주석과 베이징에서 3차 북중정상회담을 가졌다. 극비리에 이루어진 3월 1차 방중과 5월 2차 방중과는 달리 첫 공식 방중이었다.
2018년 9월 18일부터 9월 20일까지 2박 3일간 평양에서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여기서 9월 평양공동선언이라는 성과를 냈는데 특히 연내 서울 방문 추진이라는 파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2018년 서울 답방은 무산됐지만, 2019년이나 그 이후라도 만약 김정은이 실지로 서울을 방문하게 된다면 북한의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서울을 공식 방문하게 되는 사례가 된다.
2019년 1월 7일부터 1월 10일까지 시진핑 국가주석의 초청을 받아 지난해 3월 1차 방중에 이어 또다시 태양호를 타고 중국을 방문한다.
3. 행보[편집]
자세한 내용은 김정은/행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통치[편집]
4.1. 개혁·개방[편집]
2012년 4월 김정은은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오른 직후 2개월 뒤 내각 상무조에게 극비 보고를 받은 이후 6.13 방침을 추진하여 개혁개방의 신호탄을 쏘아올렸으며 이때 북한은 일부 지역에 농업개혁을 통한 포전담당책임제가 실시되어 한사람당 1,500평 ~ 3,000평의 농지를 1년동안 분배를 하여 농사를 지어보니 상당한 성과가 나와 500만 톤 이상의 수확을 거두어 상당한 성공을 보고 결국 2013년 8월 15일 북한 전역의 포전담당책임제를 실시하여 몇군데의 협동농장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에 실시가 되어 수확이 상당량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특히 2013년 이후에는 대부분 햅쌀이 풀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어려울때는 군량미를 풀고 대신 수확한 량을 집어넣어 어느정도 위기에 대처할 수 있었으며 특히 2012년 9월에는 상업개혁조치를 취하여 국영상점 및 편의서비스업의 개인투자 및 경영을 허용하여 기관 소속으로 설립을 재허용하게 되어 상당부분이 사실상의 사유화가 되는 원인이 되었다.
특히 2013년 8월 15일에는 8.15 경제개혁조치와 2014년 5월 30일 5,30 경제개혁조치로 인하여 국영기업 설립을 자율적으로 허용하고 고정자산의 매각 및 임대가 허용이 되어 담당책임제로써 기업설립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유휴화폐의 동원을 허용하여 돈주들의 개인투자가 전면 합법화가 되었다.
이때를 계기로 많은 제조업이 살아나게 되었으며 경공업 분야에서 상당부분이 기업소를 설립하거나 무역회사를 통하여 외화벌이 사업소의 설립이 이루어져 특히 돈주들이 장성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특히 2016년 이후에는 만수대텔레비죤의 개국이 전면적으로 허용되고 그전에 앞서서 2010년 이후에는 외국 영화들이 전면적으로 목란광명회사를 통하여 DVD가 발매되어 상당부분이 문화를 즐기는 원인이 되었으며 특히 2016년 이후에는 만방 열람기와 목란 열람기가 상당부분이 개발되고 합법화가 되어 상당부분이 돈만 있다면 구입하여 대부분 즐기는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기사, 기사
그리고 2019년 이후에는 모란봉 게임기가 발매가 되어 목란열람기의 지원과 함께 닌텐도와 비슷한 수준의 게임이 내장이 되어 있어 중국의 시드래곤 캐시디와 같은 게임기를 모태로 삼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LAN도 지원이 되어 ADSL 전화선만 있다면 대부분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기사
사실상의 사유화 비율만 보더라도 지방산업공장은 25.7%의 비율이고 중앙산업공장은 20%, 국영상점은 57%이며 식당은 거의 65% 봉사소는 55%의 비율이고 외화벌이 사업소는 45%의 비율로 사유화가 이루어져 있다고 밝히고 있다.
2018년 4월 27일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싶고, 획기적인 경제 개발을 통해 북한을 동아시아의 주요국으로 부상시키겠다는 야심을 내비쳤다고 한다. 실제로 북한이 그동안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대한 연구 성과를 상당히 축적했다고도 한다.
베트남은 북한, 중국처럼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다. 베트남의 개혁 개방 정책은 '도이머이'(쇄신)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중국처럼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라는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을 개방하고 해외 자본을 유치해 시장 경제 자본주의를 접목시킨 정책이다.[29]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중국보다 자본에 대한 통제가 덜하고,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베트남은 이 도이머이 정책을 통해 연평균 경제 성장률 7.6%라는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젊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아본 경험도 있다. 따라서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고립된 세계 최빈국 안에서만 신으로 숭상 받다가 죽는 전철을 밟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선 경제 문제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김정일과 달리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은 서유럽의 발전상을 보면서 북한 경제에 서구식 제도를 대거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중국의 개혁·개방 경험이 있지만 경제 규모나 국제 사회에서의 지위 등을 감안할 때 북한이 처한 여건이 중국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김정은은 베트남 모델이 더 좋을 것으로 봤다고 전해진다.[30]
또한 김정은은 중국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31] 이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견제와 균형을 취하는 줄타기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32][33][34] 이는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의 사이가 소원해졌을 때 양국 간 줄 타기 외교를 하며 실리를 취하려 했던 행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부적으로는 아버지의 선군정치 덕분에 세력이 비대해진 북한 군부를 반복된 숙청을 통해 약화시키고 길들이는데도 성공한 것 같다. 북한 군부는 우리나라의 안전과 마찬가지로 한반도-동북아 평화와 개혁 개방의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집권 첫 6년 동안 군부를 통제하는 것에 주력했고 이를 위해 선대에 이어 핵무기 실험을 이어 나갔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이 침공해올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라지만, 내부적으로는 핵무기를 앞세우면 재래식 무기의 발언권이 약해진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35][36]
또한 김정은은 그간 군부가 누려온 각종 특혜를 회수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군부의 불만이 있었지만 큰 갈등으로 치닫지 않았다. 이는 김정은이 그런 반발을 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넘기지 않는 냉엄함을 보여주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핵무기 개발로 인한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와, 세계 최강국과 1년 내내 얼굴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김정은은 지난해 5.30 경제개혁조치 이후 경제적으로 꽤 괜찮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해 주목되고 있는데 7일자 중앙일보는, 6일에 서울에서 열린 미국의 CSIS 공동 주최의 포럼에 참여한 정 부위원장이 향후 몇 년 동안 경제 개혁 및 개방 조치를 계속할 것으로 본다며 말했다고 전했다.
정종욱 부위원장은 2015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 성장률은 7.5%로 예측된다고 밝히고 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썬 핵 - 경제 병진 노선을 계속 추구할 여건도 마련돼 있고 김정은에게 의지도 있다고 말했다.기사
2016년 경제 성장률도 한국은행이 발표한대로 따르면 21일 발표한 2016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서 지난해 북한 실질 GDP가 2015년보다 3.9% 증가하여 2015년과 2016년에 연속으로 7.5%와 3.9%로 증가한 것을 본다면 상당히 경제 성장률에서 승부를 보고 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기사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북한은 현재 사회주의 기업 책임 관리제로 인하여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초입에 진입을 하였다고 평가를 내리며 북한은 생산수단 사유화를 제한적으로나마 인정하고 있고 특히 기업들의 의무달성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기업소 지표 즉 계획외 생산도 확대했다.
그리고 향후 개혁 성과에 따라 중국식이나 베트남식 개혁모델을 따라 사회주의 시장경제 개혁을 심화시켜나갈 것이라 밝혔으며 특히 현재는 공산주의가 사실상 붕괴했다는 의견이 대다수다.기사
4.2. 숙청[편집]
할아버지나 아버지에 비해 권력 승계 당시의 불안정한 정치 기반을 의식하여, 자신의 고모부이자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했다고 전해지는 장성택과, 이복 형 김정남으로 대표되는 친족들을 비롯해 많은 군 장성들을 사소한 사유만으로도 목숨을 빼앗는 공포 정치를 펼쳤고, 그 덕에 후계자 수업이 덜 끝난 상태에서, 그것도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최고 권력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권력 세계를 확실히 휘어 잡은 것 같기는 하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도 9만여 명이 직접, 간접 숙청되었다고 전해지는 8월 종파사건이나 2만 5000여 명이 희생된 심화조 사건을 일으키는 등의 무자비한 행보를 보여준 독재자였지만, 김정은처럼 직계 친가족까지 직접 숙청하거나 최고위직의 군 간부들을 며칠 사이에 줄지어 처형하는 등의 행동을 함부로 하진 않았다.
어쨌든 김정은의 무분별 대규모 숙청을 통한 공포 정치는, 그의 정치적 입지가 북한의 건국자인 김일성과, 권좌에 오르기까지 수십 년간을 권력 핵심에서 복무하며 정무 감각을 익히고 세력을 다진 김정일에 비해 비교적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숙청과 처형을 정치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닌, 개인 감정에 근거해 실시하기도 하는 건 아버지 김정일을 닮았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이 권력 전면에 나선 2012년 7월 이후 처형된 고위 간부는 100여 명에 달한다. 전술한 국정원의 발표 소스는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2016년에 발간한 『김정은 집권 5년 실정백서』를 인용한 것으로써 국정원 산하 김정은 집권 이후 총살‧처형된 간부들은 2016년 기준 총 140여 명으로 2012년 3명, 2013년 30여 명, 2014년 40여 명, 2015년 60여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김정일 집권 초기에 김정일이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자행한 심화조 사건에서 희생당한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 숫자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오히려 김정일에 비해 권력 획득 과정이 안정적이거나,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정은의 첫 표적은 김정일 사망 이후 군부 실세로 꼽히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었다. 리영호는 김정일의 죽음이 임박하던 시절, 인민군 총참모장-당 정치국 상무위원-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파격 승진을 했던 인물로, 김정일이 김정은의 사람으로 쓰려고 발탁한 인물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김정은은 2012년 7월 리영호를 ('일신 상의 이유로 모든 보직에서 물러났다'고 표면상 밝혔지만) 해임해 버렸다.
그의 해임은 김정은의 군 통제 강화 과정에서 비협조적 태도를 취한 데 대한 문책성 인사로 알려졌다. 리영호를 포함해 김정일의 장례식 때 영구차를 호위했던 김정각, 김영춘, 우동측 등 ‘군부 4인방’도 김정은 시대 개막 이후 모두 숙청되거나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세종연구소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주최한 2018년 4월 18일의 세종국가포럼의 발표에 의하면, 속칭 영구차 호송 7인방이 숙청된 일화는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한다. 박근혜정부는 김정은의 잔학성을 강조하기 위해 영구차 호송 7인방이 거의 숙청되었다고 말하여 왔다.
이에 따라 다수 언론들은 “거듭된 숙청으로 김정일 사망 당시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점쳐졌던 총참모장 리영호,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등 이른바 ‘운구차 7인방’은 모두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고 주장하면서 ‘운구차 7인방’이 대부분 숙청된 것처럼 왜곡 보도해왔다.
그러나 리영호 총참모장은 과거 군부가 관장하던 외화벌이 사업을 당과 내각으로 이전하는 데 반발하다가 2012년 7월에 해임되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며 김정은은 동년 5월 14일 “군대가 너무 돈 맛을 들였다. 총과 총알은 당과 국가가 만들어 주겠으니 군대는 싸움만 잘 하면 된다”라고도 지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리영호의 해임은 김정은의 1인 지배 체제 강화와는 무관하게 북한 군부를 사정(査正)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숙청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운구차 7인방’ 중 김기남과 최태복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2017년 10월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은퇴했는데 당시 그들의 나이는 각기 88세와 87세였다. 그러므로 이들의 퇴장 사유는 단순한 고령 때문일 것이다.
또한 김영춘은 2013년 4월 인민무력부장직에서 해임되었지만 당 중앙위원회 군사부장직을 맡고 있다가 은퇴했으므로 숙청과는 무관하다. 2013년에 김영춘의 나이가 77세였으므로 당시 그의 인민무력부장 해임도 나이에 따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김정각은 2013년 4월 총정치국 제1부국장에서 인민무력부장으로 승진했다가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후 김정각은 인민무력성 제1부상직으로 다시 이동했다가 2018년에는 인민군 총정치국장이라는 군부 1인자 직책에 잠깐 올랐다가 2018년 5월 평양시 당 위원장을 지냈던 김수길에게 총정치국장 자리를 넘긴 걸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우동측 전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은 2012년 3월 뇌출혈로 쓰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퇴장도 정치적인 숙청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처럼 ‘운구차 7인방’의 운명을 분석해보면 장성택을 제외하고는 김정은의 1인 지배체제 강화를 위해 숙청된 인물은 없다는 것이 세종연구소의 발표 내용이다.[37]
2013년 12월에는 자신의 고모부이자 김정일의 사망 이후 북한 2인자로 군림하던 장성택을 전격 처형,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죄목 중에는 김정은에 대해 ‘왼새끼를 꼬며(딴마음을 먹고)’, 김정은을 추대하는 자리에서 ‘건성건성 박수를 쳤다’는 것도 있었다.
한미 당국이 북한 체제에 커다란 파급력을 낳으며 내부 쿠데타까지 몰고 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장성택의 허망한 죽음이 의외로 그냥저냥 지나가자 북한 체제의 견고함[38] 이 상상 이상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장성택은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자, 김정일 정권 시절에는 비록 실각과 복권을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늘 권력 2인자 자리를 놓지 않았던 최고 실력자 중 한 사람이었다.
세종연구소는 세종국가포럼의 발표 내용에서 장성택이 처형된 이유로 '반혁명적인 종파행위'와 '방탕하고 난잡한 여자 관계'를 들고 있다. 여기서 '종파'(宗派)란 '개인이나 분파의 이익을 추구하며 당과 '혁명운동'을 분열·파괴하는 집단'을 가리킨다. 장성택이 김정은에 대한 반란을 꾀했다는 것으로, 이것이 사실이라면 김정은은 장성택을 제거할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장성택이 정말로 국가 반역에 해당하는 죄를 저질렀는지는 통일이 되어 관련 자료를 직접 조사해 보지 않는 이상 정확한 내막은 알기 힘들 것이다. 심지어 세종연구소는 복수의 소식통으로부터, 장성택이 처형되는 것을 실제로 본 고위 간부는 없고, 그냥 외부 세계에만 장성택이 '만고의 역적'이었고, 죽은 사람이 됐다고만 발표하고 실제로는 그래도 목숨은 붙여놔서 가택 연금 중이라는 정보를 받았다는 내용을 발표하였다.[39] 그러나 현재까지 북한의 발표나 언론의 보도, 국정원의 정보로 볼 때 '공식적으로' 장성택은 처형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2015년 4월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재판 절차도 없이 대공화기인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되면서 김정은의 잔혹성이 국제사회에 다시 한 번 각인됐다. 처형 이유는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에서 꾸벅꾸벅 졸았기 때문’이었다.
현영철의 처형 한 달 뒤인 2015년 5월 김정은은 최영건 부총리도 처형했다. 최영건은 김정은이 추진하는 산림녹화정책과 관련해 불만을 표출하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이유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2월에는 우리 군대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군부 서열 3위)을 처형했다. 죄목은 ‘종파분자 및 세도·비리’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反)김정은 파벌을 구축하고 권력 남용 비리를 저질렀다’는 얘기다.
그러나 2016년 5월, 리영길의 생존이 확인되면서 국정원의 잘못된 정보임이 판명났다.
2017년 2월, 김정은의 이복 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화학무기인 VX 액체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김정남 피살 사건을 참조. 김정은의 잔혹함을 여지없이 전 세계에 드러내버린 사건이었다. 동시에 왕조 국가에서나 볼 법한 친인척에 대한 숙청을 장성택 숙청에 이어 다시 한 번 보여 준 셈이다. 또한 위험한 화학 물질을 해외의 국제 공항에 살포하여 김정남을 암살함으로써, 엄청난 외교적 결례도 동시에 저지르고 말았다.
한편 세종연구소는 2018년 4월의 발표에서 다수의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즉흥적’인 결정에 의해 김정일 시대보다 더 많은 간부들이 숙청되고 있는 것처럼 주장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2016년에 발간한 『김정은 집권 5년 실정백서』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총살‧처형된 간부들은 2016년 기준 총 140여 명으로 2012년 3명, 2013년 30여 명, 2014년 40여 명, 2015년 60여 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김일성 사망 후인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약 3년 동안 이른바 심화조 사건을 통해 숙청된 간부들은 아무리 최소로 잡아도 2,000 명 정도로 추산된다. 김정은 집권 이후 140여 명의 간부가 숙청되었다면 그 숫자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김정일 시대 심화조 사건으로 숙청된 간부들의 약 7% 정도에 불과한 수치다.
게다가 '심화조 사건' 때 최대 25,000여 명이 숙청되거나 유배되었다는 주장도 있기에 이 수치와 비교하면 김정은이 숙청한 숫자는 김정일과 비교했을 때 더욱 낮아질 수 있다. 심화조 사건으로 당시 핵심 실세였던 문성술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본부당 책임비서까지 처형되었으므로 김정일 시대에도 핵심 간부들이 결코 숙청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정부 시기 국정원이 ‘숙청’되었다고 발표한 북한 간부들 중 일부는
향후, 김정은이 아무리 숙청 숫자가 줄었다 해도 이런 식으로 무자비한 숙청을 계속 이어가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어찌됐든 지나친 잔인함은 반드시 부작용과 반대 급부로 돌아오기 마련이고, 2018년 기준으로 김정은은 북한의 오랜 핵무기 개발로 인해 받고 있는 국제 사회의 각종 경제 및 인적 제재를 돌파하고, 북한 경제를 치유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시진핑 국가주석 등과 소위 "정상 국가의 수장"으로서 외교를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자회견 형식으로 선언문까지 냈는데 이는 김정은이 국제 외교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이렇게 되면 인권 문제나 무자비한 숙청 문제에 관한 지적도 정식 외교 무대에서 계속 거론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미국이 원하는 당장의 대가는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모두 없애고, 앞으로도 독단적인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과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미국이 입에 담지는 않고 있지만, 후일 북한의 최대 외교적 숙원인 미국과의 정식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미국에 의해서 북한내 인권 문제가 충분히 거론될 수 있다. 앞으로 북미 간의 협상과 거래의 결과에 따라서 김정은이 저질러 왔던 인권 탄압과 숙청의 강도는 약화될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
아래는 김정은에 의해 숙청당한 것으로 확인된 인물들의 명단이다.
4.3. 선전[편집]
북한 정권이 김정은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바로 2009년에 북한에서 자체 기술을 확보했다는 컴퓨터 수치제어 공작 기계의 핵심 기술인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이다. 북한 언론에서는 이것을 김정은의 치적이라 주장하고, "과학 기술에 능한 지도자"라며 CNC 홍보 노래까지 만들어 북한 주민들에게 전파한다. 해당 노래는 유튜브에서 'CNC Song'으로 검색하면 들어볼 수 있다. 영상 링크
하지만 CNC 기술은 이미 1940년대 말~1950년대[41] 에 미국이 개발해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공작 기계의 기본 기능으로 여길 만큼 매우 보편화 되었다. 물론 미국이 1940년대 개발했다고 이 기계가 만들기 쉬운 건 절대 아니다. 일본은 1967년, 한국은 1977년이 되어서야 자체적인 CNC 개발에 성공했다. 게다가 이것을 못 만드는 나라도 많은데 굳이 안 만드는 이유는 기술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CNC 공작기계를 수입하는 것이 개발하는 것보다 싸게 먹혀서라고 한다.
어쨌든 이 기술을 2010년에 와서야 '과학 기술의 혁명'이라고 선전하는 것을 보면 북한이 시대에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CNC 절삭가공기계 개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생산된 제품의 품질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CNC 양산 가공품보다 더 열악할 것이라 예상된다.
탈북자를 사살하라는 잔혹한 명령을 내렸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때문인지 2010~2011년에는 대한민국으로 입국하는 탈북자 수가 많이 줄었다. 탈출이 힘드니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난 모양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으로 들어오는 사람 수는 줄었지만, 중국으로 탈북하는 숫자는 여전한 듯. 하지만 중국에 탈북자 체포를 강력하게 요청했고, 중국 공안이 빡세게 잡아 들이고 있어서, 섣불리 대한민국으로 가려는 시도 자체를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탈북자가 중국에 계속 정체되고 있는 상황. 이런 중국 공안의 행태가 계속되자 미 의회기구에서 공개적으로 비판 성명을 내기도 했다.[42]
사실 김정은 체제에서 탈북자의 수가 줄어든 것은, 단순히 김정은이 잔혹하게 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2000년대 후반 들어 탈북하는 인물들의 양상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탈북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북한체제 내에서 생계적 곤란함을 겪는 하위계층 위주었다. 말인즉 이들은 애초에 북한에서도 처치곤란이라 잡아도 이득이랄 게 없으니 다소 널널하게 단속해 왔고,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많은 수가 탈북을 시도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그렇다고 대놓고 탈북을 방조하면 자신들의 체제가 실패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니 일단 형식상으로라도 단속은 해왔고, 그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강화가 되자 탈북 과정에도 일정한 비용이 들게 되고, 이러한 비용이 계속 상승하면서 탈북할 수 있는 계층 자체가 점점 한정되게 되었다. 여기에 상기한 대로 김정은의 명령도 있기 때문에, 원 주류 탈북자들인 하위 계층의 탈북은 성공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그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문제는 이번엔 탈북에 소극적이던 중상위 계층이 탈북에 적극적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정치계에 만연한 숙청 등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함과, 더불어 김정은이 도입한 외부 문물의 여파로 이제는 자유 국가들의 문물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다방면으로 북한의 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내부 분위기가 중상위계층 사이에서 점차 팽배해지면서, 이들이 탈북에 앞장서게 됨으로서 탈북자들의 양상이 크게 변화한 것이다.
실제로 2000년대 후반 이후에 탈북한 인물들 상당수는 북한 내에서 중류 계층 이상에 속하는, 원래 북한 체제에서도 경제적 어려움이 크게 없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탈북했다는 건, 과거처럼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사회적 이유로 탈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미래가 없는 사회에서는 잘 먹고 잘 살아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 인간의 근본 욕구가 채워지게 될 경우, 다음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눈을 옮긴다. 이것은 역사를 통해 수차례 나타난 사실이다. 당장 대한민국만 해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을 거쳐 먹고 사는 문제가 해소되는 순간부터, 군부독재를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처럼 탈북하는 계층이 점차 핵심 성분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북한 체제를 사실상 떠받치고 있는 기반 자체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말 그대로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기둥이라, 이들이 떠나면 북한 당국도 곤란해지기 때문에 단속 강도가 엄격해진 것이다. 실제로 체포되거나 송환되는 탈북자들의 처벌이 오히려 경제사회적 계층이 높은 인물들에 대한 처벌의 강도가 높은 것만 봐도, 탈북자에 대한 북한 정권의 인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흡사 과거의 동독을 보는 것과 같은데, 동독도 초창기에는 은근히 자국민의 탈주를 바라는 편이였다. 당시 탈주자들은 대부분 기반이 미약한 하층민이나 근로능력 저하로 노는 노령층 등 생계적 곤란함을 이유로 탈주하는, 동독 당국에서도 처치곤란한 이들이라, "서독에 떠넘겨 노는 입 좀 줄여 보자"는 심보였기 때문. 실제로 초기에는 서독으로 가는 비자를 쉽게 내주는 등 은근히 부추겼(?)다. 그러다 청년층이나 중산층 등 사회지지기반들이 탈주하기 시작하자, 비자 발급 조건을 까다롭게 올리고 적극적으로 단속에 들어가다가 나온 게 베를린 장벽이다.
김정은의 탈북자에 대한 잔혹한 처벌 명령은, 그가 북한 내의 현 탈북자 상황의 의미와 특성을 아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래 3개 치적 건물들은 나름대로 시설이 고급화되어 있다. 문제는 관광객이 오기에는 교통이 아주 불편하며 무엇보다 이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는데 전기 공급부족으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굶주리는 인민들을 먹일 돈으로 이런 것들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다.
4.4. 아동 지원[편집]
특이하게도 아이들을 무척 예뻐한다고 전해진다. 위에 나온 것처럼 조선소년단 대표단 대회를 열면서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부유층이나 중산층만 아니라 하류 계층을 중점으로 모아서 진행했다. 2013~2014년 초반에는 고아원과 유아 복지 시설을 대폭 늘리고 특별히 신경을 써서 운영하도록 별도로 명령을 내리는 등 빈민층 아이도 신경쓰고 있다.
처음에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내세웠던 북한은 공공복지에 투자를 많이 했고, 김정일 때도 고아원을 짓는 등 신경을 썼지만, 나라가 쫄딱 망해가면서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그런데 김정은이 다시 신경을 쓴 것이다. 이에 대해서 탈북자를 지원하던 주성하 기자가 "꽃제비 수가 줄었다"고 말할 정도로 성공적으로, 꽃제비 지원을 할 필요성도 없어진다고 할 정도다. 단순한 쇼 이상으로 무언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어린이날에 해당하는 '국제아동절'을 기념해, 6월 1일에 수도 평양 중심부의 만수대지구에 신설한 경상유치원을 시찰하고 놀이기구도 기증했다. 민심을 얻기 위한 연출이겠지만 어색함이 너무 심하다. 그런데 이 시기 황해도에서는 식량부족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고, 함경도에는 소금이 부족하다고 한다.
도쿄신문에 의하면 해외에 나가 있는 관료들을 들볶아도 벌써 2만 명이 아사한 상황이다. [43]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락시설 시찰이나 하는 행보가 불합리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백두혈통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땅은 평양과 평안도라서 그렇다. 조부 때부터 지지 기반이 되어온 평양, 평안도 지역 주민들의 민심은 극도로 살피고 지원을 쏟지만, 다른 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되든 그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조부 김일성 때부터 계속 그래 왔기 때문에, 과거 통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김정은도 똑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평양에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충성계층만 모아놓은 만큼, 다른 지역 주민들은 믿을 수 없는 동요계층이자 천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은 사진에서 특히 울며불며 매달리는 건
호위총국에서 근무하며 김정일을 근접 경호했던 한 탈북자는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해 완강히 부인하며,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와 함께 사진을 찍을 때는 3차까지 예비 인원을 두고 철저히 준비한다"며 "결코 즉흥적으로 누구를 만나거나 하는 일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참고로 북한에서 지방 거주자가 평양으로 이주할 수 있는 것은, 김일성상 수상자이거나 공훈 혹은 인민 칭호를 받은 경우에 한정한다.
2012년 6월에는 북한 각지에서 뽑힌 수만 명의 조선소년단 대표단을 평양으로 데려와 소년단 창단 66주년 기념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이 행사를 통해 집권 이래 2번째 공개 연설도 했고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개최한 은하수관현악단의 기념 연주회도 관람했다. 이러한 행보는 1990년대에 태어난 청소년 세대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의 발로 같다. 참고로 여기 참여한 상당수 아이들의 부모들이 소년단 창립기념회에 참석하려는 과정에서 하류층으로 서류를 조작하는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가 드러나자 말 그대로 하류층으로 전락했다는 후문이 있다.
선전에서도 지속적으로 어린이와 함께 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도자가 친근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서방이나 한국 등 국가에서도 그렇게 자주 어린이와 만나지 않는데, 김정은은 어린이와 자주 만난다. 당장 이 문서의 김정은 사진을 보면, 의외로 어린이와 함께 하는 사진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아버지 김정일이 선군정치와 비밀주의, 엄숙주의를 바탕으로 근엄함을 내세우며 군 부대를 주로 시찰한 것과 차이가 있다. 단순히 이미지 메이킹으로 그냥 만나 보고 사진만 찍는 게 아니라, 꼭 붙어 있고 웃으면서 대하는 등, 어린이를 좋아하는 건 확실하다.
한편 막 나가는 독재자라도 애들을 좋아하고 관련된 지원을 해주는 타입은 드문 편이 아니니 딱히 선량한 면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참고로 아돌프 히틀러는 동물보호에 아주 관심이 많았고, 나치 독일은 근현대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만들었다.
보육원 어린이에게 한 답변이 화제다. "티비에서 무얼 봤냐"는 질문에 어린이가 "김정은 원수님을 보았습니다"라고 답변하자 "재미는 없었겠구나" 하고 답변했단다.[44]
'백두혈통'과 가까운 관계(김일성의 외가 쪽 친족)였던 강명도 교수의 의견으로는, "김정은 자신이 젊은 나이에 부모를 일찍 떠나 보냈기 때문에 고아들을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아이들에 대한 동정심에 눈물을 흘린 것 같다"고 한다.
5. 특징[편집]
5.1. 성격[편집]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아버지 김정일은 아들인 김정은이 자신을 꼭 닮았다며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스위스 유학 시절 때 포켓몬스터 만화책을 학교에서 본다고 동급생들이 놀리자 바로 책을 집어 던지고 동급생들과 싸우려고 해서, 주변 친구들이 말리자 겨우 진정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그의 성격들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는 다음 이야기가 있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술회에 따르면 김정은을 처음 만났을 때 김정은은 초등학생 정도 되는 나이였는데 후지모토를 대단히 적개심 어린 눈으로 봤다고 한다. 후지모토가 손을 내밀었는데 바로 잡아주지도 않고 아버지 김정일이 '악수해야지?'라고 한 뒤에야 마지못해 손을 잡아주었다고. 후지모토는 개인적으로 "김정은도 분명 반일 교육을 받고 자랐을 테니 자신을 처음 봤을 때 '이놈이 그 말로만 듣던 일본 제국 놈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아주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김정철과 김정은은 서로 팀을 꾸려 농구 시합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고 난 뒤의 모습을 보면 두 형제의 성격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한다. 형인 김정철은 시합이 끝나면 팀원들에게 "수고했다"면서 격려해 주고 웃으며 마무리 했지만, 김정은은 시합이 끝나도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팀원들을 불러 세워놓고 "동무, 그럴 땐 여기가 아니라 저기다 패스를 해야지!"라면서 꼭 짚고 넘어가는 스타일이었다고.
후지모토는 김정은이 10대 시절에 후지모토와 몰래 담배를 피우면서 넌지시 "우리는 이렇게 재밌게 사는데 우리나라 인민들은 어떻게 살까?"라면서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에 관심을 표현한 적이 있다고 한다. 후지모토는 이때 김정은이 고작 지금의 중학생 정도 되는 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일반 주민들의 삶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 제법 인상 깊었다고. 그리고 아버지를 참배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애육원에서 고아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실제로 성격이 약한 편이라는 말도 있고, 연기라는 말도 있다.
'여색(女色)'에 대해선 주장이 엇갈린다. 김정일처럼 똑같이 기쁨조와 같은 미녀들을 뽑아서 즐긴다는 주장도 있지만, 반대로 기존의 기쁨조를 해체하고 비서나 별장 관리 등의 업무를 모두 남자 직원에게 맡겼다는 분석도 있다. 한편 아내인 리설주와는 공식 석상에 함께 등장하는 모습이 매우 자주 나와서 단순히 권력자의 아내가 아니라 마치 공식적인 '퍼스트 레이디'의 위치를 마련해주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일의 아내들이 단순히 가정 내에서 내조만 하거나 비서 수준으로 김정일을 보좌한 정도에 머문 것과는 대조적이다.
5.2. 건강[편집]
2010년경 사진. 이후에 살이 매우 찌고 건강이 매우 나빠져서, 이젠 이 사진이 리즈 시절이 되어 버렸다.[45]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말에 따르면, 김정은의 인상을 "어렸을 때보다 얼굴에 살이 많이 붙었다"면서 김 위원장으로부터 "많이 먹어 관록을 붙이라", "위에 있는(높은) 사람이 가늘어선(말라선)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며, 지도자의 풍채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배불리 먹이고 재워 살을 찌운 듯하다고 한다.[46] 갑작스럽게 살을 많이 찌워서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있으나, 아직 31세 정도로 나이가 젊어서인지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젊은 시절의 방탕한 생활이 바로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김정일, 그리고 현재 그의 형 김정남이 그렇듯이, 중장년이 되고 나서 고생할 가능성도 꽤 된다는 사실.
이러한 관념은 지금도 상당수 후진국에서는 뚱뚱한 사람을 부유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풍조가 있고, 19세기 유럽에서는 비만일수록 고상해 보인다는 이유로 귀족들이 일부러 살을 찌우기도 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70~80년대 까지는 사장님 소리 듣는 사람은 살찐 사람이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살찐사람=잘 사는 사람 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로 잘 사는 집이 아닌한 살찐 사람이 생기기 힘든 시절이었으니깐. 그리고 현대 한국인들은 살 포비아의 공포에 지나치게 빠져 살찐 사람들이 당장 죽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보통은 육체적 건강보다는 사회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지 스모선수처럼 극단적으로 살을 찌우지 않는한 왠만한 비만은 더군다나 현대 의학의 집중적인 케어를 받는 사람이라면 딱히 젊은 나이에 죽을만큼 건강에 치명적인 요소가 아니다. 노년층에서는 오히려 빼빼마른 사람보다는 살이 있는 분들이 잔병없이 더 건강하고 오래사는 경우가 많다.
이 문서의 내용만 보면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으로, 당장 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인간이다. 하지만 김씨 백두혈통 집안만 전문으로 연구해온 전문병원[47] 이 2개나 있는데다가 진짜로 좀 이상하다 싶으면 참매 1호[48] 를 타고 우방국이나 중립국[49] 으로 날아가 그 나라 유명 의료진으로부터 치료를 받기 때문에, 그리 쉽게 죽을 인간은 아니다. 사실 이 집안 족속이 죽었다는 말은, 북한 중앙텔레비전에 리춘히가 검은 상복 입고 나와서 펑펑 울며 발표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믿으면 안 된다. 게다가 김정일도 저 나이 때 저 정도 병은 달고 살다가 죽었다. 김정은보다 더 심했는데, 김정일은 19살 때부터 비만에 지방간을 달고 있었다.
- 2013년 김정은의 신체는 키가 172cm, 몸무게는 90kg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문서 맨 위에서는 168cm이라고 나와 있는데, 이는 기쁨조의 선발 기준 중 하나가 "키 168cm 이상"인 것과, 김정은이 7cm 키높이 구두를 신는다는 것 등 여러 가지 증거가 나와 추정치가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 2014년 5월 8일자 조선일보에서는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이 살이 많이 쪘다"는 기사를 썼다. 고모부를 숙청한 이후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폭음과 폭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00kg으로 추정되던 체중이 120kg으로 불었다고 한다.
- 2013년 기준으로 BMI 지수는 26.12에서 30.42로 추정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정은의 2013년 당시 상태를 과체중으로 보았다. 보통 한국에서는 BMI 지수 25부터 비만으로 보는데, 원래 표준은 BMI 30부터다. BMI 35부터가 고도비만. 즉 2013년 당시의 김정은은 비만으로 볼 소지는 있어도, 고도비만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셈이었다. 하지만 2014년에 나온 위의 기사들을 보면, 2014년 현재 김정은은 국제 기준으로도, 대한민국 기준으로도 고도비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정은의 키를 [50] 170cm라고 두고, 저 위의 기사들이 추정한 체중이 맞는다고 하면, 2014년 5월에 측정한 김정은의 bmi 지수는 41.52. 110kg 정도로 추정해도 38.06이다. 다만 bmi 지수는 피측정자의 체지방량, 근육량을 고려하지 않은 지수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운동선수들은 근육량과 골격 때문에 bmi 지수가 높게 나오고, 내장지방이 있다 해도 체중 자체는 정상인 사람들은 bmi 지수가 낮게 나온다. 하지만 김정은은 운동선수들처럼 키가 크거나 근육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앉은 자리에서 쳐먹기만 하고 남에게 시키기만 하면서 살았으니 가관이라고 하겠다.
- 게다가 김정은은 현대인의 건강을 좀먹는 삼신기인 비만, 흡연, 음주를 모두 지니고 있다. 비만의 경우는 그냥 비만도 아니고 저 젊은 나이에 벌써 고지혈증에 걸려있다.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은은 어린 시절부터 음주와 흡연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만, 음주, 흡연이라는 건강에 안 좋은 삼신기를 모두 장비해서, 젊은 나이임에도 김정은의 건강이 나쁘리라는 분석이 나오는 판국이다. 특히 비만이야 고도비만만 아니면 큰 문제는 없다지만, 음주와 흡연은 이야기가 다르다. 실제로 2014년 신년사 음성을 분석한 결과, 4초 간격으로 숨을 허덕거림을 포착해 건강 이상을 의심받는다. 찍히는 사진마다 뒷짐을 지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데, 이건 숨이 차서 그런 거라고.기사
- 201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20주기 추모식에 나타난 모습을 보면 다리를 저는 모습을 보였으며, 상당히 컨디션이 나쁜 표정으로 등장했다. 또한 이마에 흉터를 입은 것도 노동신문 사진에서 관찰되었는데, 특별히 숨기거나 하지 않는 걸로 보아 어디 넘어지거나 부딪쳐서 생긴 상처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아직까지는 건강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30대 초반의 한창인 청년이 당장 나자빠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김정은이 불편한 몸이라고 언급했다. 관련기사
- 2014년 10월 현재 1달 가까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의 건강이상설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고인민회의에도 불참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듯. 이 때문에 대외적으로 사망설에 쿠테타 설까지 난무하였다. 이런 상황이 북한 입장에서는 꽤나 곤란했던지, 최룡해를 포함한 최고위급 인사가 급작스럽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폐막식에 참가하면서 대외적인 논란을 잠재우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는 김정은 건강이상설에 대해 부인했다. 조총련의장은 "김정은이 매우 건강하다"고 말했다. #
- 생각보다 건강이상이 심각하다고 한다. 최근 김정은을 치료하고 돌아온 독일과 프랑스 의료진이 자국 정보기관에 '다리뿐만 아니라 얼굴에 병색이 완연했으며, 내분비계 및 핵심 장기에 이상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 정부에도 통보되었는데,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김정은의 수명도 그리 길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중병설이 사실이라고 해도 불치병이 아니라면 김정은 본인이 작정하고 열심히 관리하고 치료를 잘 받으면 기대 수명이 늘어나겠으나, 한창 기반을 다져야 할 독재자에게 그럴 여유가 있을지 의문.
- 정신이상설까지 나왔다. #
- 좌골 신경통을 앓고 있다는 설이 있다.
- 급격히 불어난 몸에 이상이 와서 위 밴드 수술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 발목낭종 제거 수술을 했다고 한다. #
- 2018년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함께 백두산을 방문했을 때 차를 타고 오르다 내려 10여분 간 걸음을 걷고는 숨이 차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때 같이 걸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숨을 차지 않자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숨 안 차 하십니다"라고 말을 건넸고, 문 대통령은 "예, 이정도는 뭐..."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52]
5.3. 헤어스타일[편집]
'김정은 헤어스타일 본받아야'…북, 교사들에 강조
김정은의 기괴한 헤어스타일은 북한 내에서는 '패기머리'라고 불리고 있다. 이 헤어스타일은 김정은만의 전유물은 아닌데, 주민들 특히 주로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는 정보가 있다.참조 실제로 2014년 황병서 방남 당시 황병서를 수행한 경호원들이 모두 이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것이 관찰되었다.채널A(동영상)
또 다른 소식통에 의하면, 두발규제 때문에 북한 남학생들은 김정은과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도록 당국에 강요당하고 있으며, 이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지 않으면 바리캉으로 밀어버린다고 한다.데일리NK
이 제한은 학생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교원(교사)에 대한 헤어스타일 통제는 북한 남학생과 맞먹는다. 북한의 '공식 이발소'는 무조건 이 헤어스타일로 만들어버린다. 개인 집 등에서 차린 사설 아발소들은 사용하는 거 불법이고 몇배나 비싸지만 사설 아발소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단 걸릴시 머리를 빡빡 밀어야 된다. 조선일보
하는 방법은 옆과 뒷 머리를 모두 상고로 치고, 앞 머리 기장을 길러서 포마드로 딱 붙이면 된다. 해보면 매우 쉽다.
5.4. 김일성 따라하기[편집]
북한은 성형설을 극력 부인하고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차라리 미남[53] 으로 성형하지 왜 이 짓을 했을까 싶겠지만, 절대군주제의 전제국가 상태로 퇴행한 북한의 상황에서, 북한 민중에게 김정은을 이미 신격화된 예전 지도자의 핏줄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민중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하듯이, 김정은 역시 신격화된 존재로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충성을 강요한다.
역사상 한 왕조의 후계자가 민중에게 존경을 받던 부왕의 복장이나 외모를 흉내내어 민중에게 어필하는 일은 흔하고 특이한 일도 아니며, 몇 세기 이전 왕정 국가에서도 종종 있었다. 21세기인 지금 역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빛나는 전임자의 이미지를 따라 하려는 후임자 등으로 형태가 변형되어 계승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김정은처럼 용모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부족 단위 국가 정도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드문 일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이 때문에 김일성처럼 보이도록 성형한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이며, 확실한 정보는 없다. 피를 물려받은 손자인 데다가, 똑같이 뚱뚱하고 비슷한 머리스타일까지 갖고 있으며, 우리의 편견까지 작용한다면 그 모습이 유독 더 닮아보일 수는 있다. 그런데 2015년 10월경 공개된 연설 장면에서는 예전의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큰 혹이 툭 불거져 나왔다.
5.5. 무명의 후계자[편집]
그동안 세계의 관심 밖에서 있었던 인물인 만큼 초치에는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름이 김정운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그렇게 알려진 당시에도 "김정은을 잘못 쓴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김정은, 김정운, 김정훈' 등이 거론되어 꽤 혼란스러웠다고. 기사.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것임을 예측한 후지모토 겐지도 '김정운'으로 소개하였다. 일본어로는 '은'이든 '운'이든 'ウン'으로 옮기기 때문에 모종의 착각이 있었던 듯. 실제로 그의 저서에서 그가 직접 쓴 한글을 보면, 'ㅜ'와 'ㅡ'가 자주 뒤바뀌어 있다. 북한에서는 이 두 발음이 대한민국에 비해 구별이 힘든 것도 이유 중 하나.[54] 일본에서 2003년 발간된 만화 <김정일 입문> 서두의 계보를 보면 생뚱맞게도 金正雄(김정웅)으로 표기했고 'ウン' 발음으로 되어 있다.[55] 여동생 김여정은 아예 한자 표기도 없던 걸로 보아, 북한 매체는 이름이나 한자 표기는 거의 안 했던 듯하다.
이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한자 이름까지 金正恩으로 보도하자[56] 중국, 일본 언론에서도 종래의 '은'에 해당하는 銀, 殷 대신 恩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57]
일부 일본의 환빠 비스무리한 사람들은 "요코다 메구미가 사실은 김정은의 어머니"라고 주장한다. 요코다 메구미가 덴노의 후손이라 일본의 고귀한 피를 이어받고 싶은 김정일이 요코다 메구미를 납치하여 김정은을 낳았고, 김정은은 그로 인해 한일혼혈이며 일본에 호의적이라는 것.[58] 불쏘시개 책도 있다.
스위스의 한 언론매체는 슈퍼주니어 예성을 김정은으로 만들었다. 사진은 U 활동 당시 앨범 자켓 사진이다. 당시 김정은의 이름을 김정운으로 잘못 알고 있었고, 해당 매체들은 예성의 본명인 김종운과 김정운을 혼동했다. 아마도 발음상 외국인들은 헷갈렸을 수도. 이 때문에 예성은 당시 실시간 검색순위 1위를 굳게 지키기도 했다. 본인도 정말 깜짝 놀랐다고…
6. 평가[편집]
6.1. 긍정론[편집]
결코 미친 자가 아니다. (체제의 생존을 가장 중시하는) 대단히 이성적인 인물이다.
- 2016년 후반 CIA 일부 분석가들의 평가[59]
[60][61]
(과거의 시스템을 답습하는 수준이나마) 최소한 정권을 유지할 만한 능력은 있다는 평가도 있다. 먼저 1년 만에 자신의 지도력을 해칠 만한 노련한 군부실세인 리영호를 숙청하며 군부를 휘어잡고, 별 혼란 없이 당과 장악하는 면을 봐서는 아예 권력장악에 숙맥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장성택을 처형한 뒤, 대규모 체제이탈 망명사태가 벌어지고, 숙청이 벌어지리라는 예상이나 보도가 이어졌고 4월의 당직·내각개편에서도 장성택 잔당 숙청 및 물갈이가 예상되었으나, 도리어 장성택의 심복이라며 숙청설이 나돌았던 여러 인물들(예를 들어 강석주)이 유임되었고 내각도 급격한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민심의 불만도 교묘히 컨트롤하는 노회한 모습도 있는데, 2013년에는 2012년에 대규모 수해로 식량난이 극히 악화해 특히 봄철의 보릿고개에 인민의 불만이 폭발, 김정은 체제가 흔들릴 것이라는 예상이 돌았다. 그러나 2013년 김정은은 고난의 행군으로 수십만을 굶겨 죽였던 김정일과는 달리 신성불가침이었던 군량미를 대규모로 풀어서 인민의 불만을 교묘히 넘겼다. 뿐만 아니라 2013년 초의 박봉주의 시장 개혁조치가 일단 성공적이라 평가받고[62] 식량 생산이 크게 늘었으며, 중국에 헐값으로 자원을 넘긴 뒤에 받아온 외화로 비료를 대규모로 수입하는 등, 김정일처럼 산을 깎는 다락밭 개간 같은 뻘짓 없이 합리적으로 식량 증산에도 힘쓰는 등의 모습이다. 일단 미국의 평가로도 "식량난은 10년 후에는 거의 극복할 것"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김정은이 먹고 사는 문제를 나름 신경 쓰는 것 같다. 미 농무부 "북한 식량 사정 점차 개선"
북한이 사실상 신정 일치 국가인 만큼 내부적으로는 김씨 일가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나 세력이 없고, 외국에서 오래 생활해봤으니 세상 물정에도 그리 어둡지는 않으리라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식량 증산은 아비보다 제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법을 쓰고 있는 듯하다. 1994년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3년 안에 쫓겨나리라고 했지만 되려 죽을 때까지 권좌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김정은도 정권을 처음 10년 정도만 안정적으로 유지하면 선조들처럼 종신 집권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최근 김정은 치하에서 장마당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신흥 부유 세력인 돈주들이 수십만 명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63] 북한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이었던 15년을 제외한 2012~2016년까지 연평균 1.2%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2016년에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3.9%가 성장했다. [64] 이는 김정은이 대외적으로는 대중무역을 확대하고 대내적으로는 시장 경제를 일정 부분 허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인 2012년 6월 '우리 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방침에서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를 확고히 고수하면서 국가의 통일적 지도 밑에 모든 기업체들이 경영 활동을 독자적으로 창발적으로 해나가자"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생산수단은 사회가 소유하고 중앙집권적인 경제 계획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인이나 기업의 자율성을 조금 늘려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농업 분야에서 초과생산분은 개인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공업 분야에도 개인의 투자를 허용하였다. [65] 이 과정에서 신흥 부유층인 돈주들이 등장하여 달러를 축적하였으며 축적한 달러가 시장에 재투자되고, 그럼으로써 장마당 경제가 다시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 돈주들은 유통업이나 건설업, 심지어는 광산 채굴업에도 투자를 하고 있다. 이렇게 성장한 비공식 사경제가 북한주민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을 올리고 있으며 김정은 정권의 명줄을 유지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 외에도 13개 경제특구를 개설하여 외자 유치를 노리고, 일부 경공업 소비재에 한해서 품질 개선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등, 적어도 경제 면에서는 김정은은 나름 성과를 올리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언론 보도는 거의 없었으나,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서 북한의 실상이 차차 알려지는 중이다. 통일 연구원 소속 박영자 박사에 의하면 김정은은 김일성만은 못해도 적어도 이런 경제 성장으로 인해, 김정일보다는 지지를 더 많이 받고 있으며, 특히 젊은 층에게 더 큰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은 대에 부를 축적한 신흥 돈주들이 김정은과 유착관계를 맺으면서 김정은을 지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김정은의 통치력에 대한 부정론에서 주장하는 대로, 적어도 경제면에서는 김정은이 "과거의 시스템을 바꿀 생각은 거의 없고 현상유지에 만족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라고 볼 수는 없다. 김정일이 북한 경제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장마당을 탄압한 것과는 달리, 김정은은 장마당을 대대적으로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은이 소양있고 성숙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북미 정상 회담이후 "김정은은 매우 훌륭하고 똑똑한 협상가"라고 극찬했다. 스포츠 경향[66] 2018년 10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은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을 정도.
무엇보다, 미국과의 대화 과정에서 기존의 입장을 선뜻 뒤집지는 않을지언정 판까지 깨려고 무모한 도발을 감행하는건 자제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파 중 하나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협상 과정에서 방해가 된다는 불만을 내세우면서 정작 그 당사자를 직접 평양으로 보내라는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을 정도. 즉 지 애비 같았으면 진작에 판을 깨고도 남았을 상황에, 자신을 거슬리게 하는 마이크 폼페이오를 직접 만나겠다면서 대화를 이어가려는 의지를 보인건 확실히 그렇게 꽉 막힌 인물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그렇게 만나서 "CIA가 나를 암살하려 시도해온 것을 사과하라."는 말을 한데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가 "(우리는 )지금도 당신을 암살하려 하고 있다."는 독설로 되받아치자 도리어 웃으며 화기애애하게 회담한 것을 보면 더더욱.
6.2. 부정론[편집]
“김정은 준비된 폭군 3세…미국, 선입견 탓에 과소평가한 것 아닐까”
- 美 브룩킹스 연구소 SK한국석좌 박정현 박사[67]
사람 먹을 물도 없는데 자라 공장에서 자라를 키워내라 하는 등 얼토당토하지 않는 명령을 내리고, 명령만 하면 뚝딱 만들어내는 양 생각하는 것을 보면, 세상 물정에 밝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여기에 인민에 대한 실질적인 연결성을 가진 농장과 같은 농업 관련 시설로 주로 현지지도를 나갔던 김일성과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은 인민의 실생활과는 전혀 관계 없는 관광지 또는 사치성 시설에 대한 현지시찰이 대부분이라는 점에도 차이가 난다.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아버지였던 김정일의 능력에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아버지였던 김정일의 개막장처신이 그 첫 번째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여성편력으로 인해 후계자 선정을 어렵게 만든 것은 자업자득인 셈이다. 당장 김씨 가문의 우상화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백두혈통을 내세울 근거를 빼앗아버림으로써 명분면에서도 약했다.
더구나 1980년대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아와 논란은 많았지만 비교적 순탄하게 후계자로 임명받을 수 있었던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은 후계자 수업도 받은 일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건강 악화로 인해 갑작스럽게 지명된 처지라 권력 기반이 약할 수밖에 없었으며, 여기에 결정타는 해외에서 자랐다는 약점이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약한 통치 기반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이미지를 힘입는 소위 호가호위식 정치권력으로 인해 상당한 제한을 받게 되었고, 자신의 독창적 정치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에 인민생활향상이랍시고 내세웠던 정책들이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현실적 필요성을 외면한 정책들이 대부분이어서, 오히려 괴리감만 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에 결정타는, 외교 정책에 있어서 거의 공기와 같이 존재감이 없다 보니 더더욱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1. 김정일 자신의 잘못된 처신과 후계자 선정에 대한 소홀함 2. 김정은 자신의 권력기반 결핍, 그리고 이미지 구축실패와 이에 따른 정책의 독창성 등이 김정은의 통치 능력이 없다고 할 만큼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다.
집권 이후 줄곧 김일성과 김정일이 했던 국내 통치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평안도 지역에만 인프라를 올인하고 민심을 신경 쓰고 공포정치와 널뛰기하는 인사조치까지 똑같다. 이 정도만으로는 개인의 능력을 알 수 없지만 일단 과거의 시스템을 바꿀 생각은 거의 없고 현상유지에 만족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득을 얻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도 김정일 시절보다 험악해졌는데, 최소한 김일성·김정일 라인까지는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면서까지 통제를 무시하려는 듯한 행동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3차 핵실험은 중국에게도 상당한 위협감을 주며 그 사이에도 김정은이 조용조용 지내려는 중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나가니,[68] 일반 중국인부터 중국 공산당 수뇌부까지 북한에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당장 북한의 전혀 가망없는 경제 상황은 중국 정부로서도 골칫거리다. 원조를 한다고는 하지만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도 않고, 계속 악화되는 경제난으로 인해 북한 주민의 탈북이 늘어남으로서 이들의 처리도 고민해야 할 처지다. 물론 지금까지는 체포해서 다시 북한으로 넘기지만, 언제까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이렇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툭하면 도발로 나오는 북한의 태도 역시 중국의 인내심을 점점 한계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다[69] .
대한민국과의 관계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극도의 긴장 상태를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이야 정권 교체와 함께 대북정책이 강경하게 변했다고 해도, 과거 대북지원을 받던 시절에서 10년도 안 지났는데 마치 그런 시절이 없었던 것처럼 호전적인 태도로 돌변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민간인의 생명까지 뺏는 무력도발까지 감행했다. 그나마 북한을 현상유지시키는 통치력을 그나마 능력이라고 과장해서 평가해도 외교능력에 있어서는 도저히 능력이 있다고 볼 수가 없다. UN 상임이사국이라는 위치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현재의 형편상 북한을 언제나 감싸고 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다못해 미국까지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나와 줄 것을 중국에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북한을 그대로 버려두기에는 북한의 붕괴는 중국에게도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현재로서는 북한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대화로서의 협상' 또는 '기권'이라는 형태로서 대응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어그로를 유발하는 북한의 행태를 계속 이런 식으로 대응할 경우, 국제사회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부정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중국이 상당히 곤란한 형편에 놓인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70][71] .
2014년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그동안 중국과 삐걱대던 외교관계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 3차 핵실험 이후 북·중 경제협력사업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급기야 중국이 북한의 항구를 빌려 동해를 통한 물류 통로를 개척하려던 계획을 수정해 러시아의 항구를 이용하려 하고 있다.[72] 대규모 투자를 해봤자 북한이 지금처럼 호전적인 태도를 유지하면 전쟁이 일어나 투자회수를 못할 위험이 높은 데다가 도저히 통제도 안되고 예측도 안 되는 북한보다는 차라리 러시아가 낫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2000년대 북한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던 중국 기업들은 비참할 정도로 열악한 인프라와 북한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정책 때문에 하나 둘 등을 돌리고 있다. 돈 떼먹히는 게 기본이었고, 감시까지 하면서 송금도 제대로 못 하게 막았다고 하니, 중국 기업들의 신뢰를 얻지 못함은 당연하다[73] .
정확히 말하면 통치 스타일은 비슷하나, 정치 능력은 할아버지나 아버지보다 훨씬 떨어지는 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일성은 빨치산 항일무장투쟁 활동을 하며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을 알았고, 김정일은 1970년대부터 정치에 나서기 시작했고 김일성이 죽은 1994년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며 나름의 내공을 쌓았다. 그러나 김정은은... 2010년에 갑툭튀해서 정치감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2011년 겨울, 최고지도자가 된다. 그래서 무식하게 고모부 장성택까지 죽이며 공포 정치로 자신의 정치력을 포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공포 정치 역시 김정은의 자충수로 돌아오고 있는 실정이라는 게 문제가 되고 있다. 현 북한 주민은 할아버지, 아버지 때와 같은 충성심은 많이 희석된 편이고, 간부들 역시 계속되는 공포 정치로 인해 보신주의[74] 가 강해지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간부들은 탈북까지 고려하고 있다. 하다못해 해외주재 북한공관원들은 본국으로의 소환도 거부할 정도이니 말 다한 것이다. 이는 2015년 4월 말에 일어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숙청으로 그 정점을 찍었는데, 심지어 현영철은 김정은 자신이 직접 임명한 인사였음에도 숙청시켰으니, 다른 일반 간부들의 속내는 더 다른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긍정론에 서술된 식량사정 등의 민생 개선도 말 뿐이고 실상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8년 10월 9일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은 보고서를 통해 북한 주민의 40%가량에 해당하는 1000만명 가량이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있다고 경고했다.유엔 “북한 인구 40% 여전히 영양실조”
7. 풍자[편집]
김정은/풍자 참조.
7.1. 별명[편집]
북한
김일성이나 김정일과는 달리 젊은 나이인 채 북한의 지도자에 올라서 그의 어린 점을 비꼬는 별명이 많다. 다만 아래 별명은 일상 생활에서 널리 쓰이지는 못하며, 가정 내에서 극히 드물게 일부만 쓰인다고 보아야 한다.
- 열흘이: 김일성의 지시는 1년을 가고, 김정일의 지시는 1개월이 가지만 김정은의 지시는 10일밖에 안 간다는 점에서 그의 미숙한 정치력을 비꼬는 은어.
- 멍은이: 멍청한 정은이의 준말.
- 18장군: 그의 생일인 1월 8일을 욕설로 비하하여 부르는 말.
- 꼬맹이
- 쇠메: 북한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던 애니메이션 소년장수 주인공의 이름에서 온 별명. 덧붙여 리설주의 별명은 소년장수의 히로인인 국화.
- 설주 남편
- 뜯개문: 물건을 뜯어내는 도구를 가리키는 북한 북부 지역 사투리 '뜯개'에서 딴 유행어. 김정은 지시문이 "주민들로부터 뭔가 뜯어낼 구실을 만들어 준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 #
- 둘째 며느리: 북한 속담 '둘째 며느리를 맞아보아야 첫째 며느리가 무던한 줄 안다.'에서 유래한 별명. 김정은을 김일성, 김정일과 비교해 그보다 못하다는 걸 의미.
- "지도자급" 돼지고기: 북한 장마당에선 비계가 많이 붙은 돼지고기를 "지도자급" 돼지고기라고 한다. 물론 거기에서 지도자라고 하면 누굴 말하는지 잘 알 것이다. 본래 지도자급 어쩌고 하는 단어가, 북한 정부 당국이 김정은 우상화의 일환으로 뭐든지 최고 등급을 뜻하는 유행어로 의도적으로 퍼뜨린 단어라, 저렇게 비하적으로 쓰여도 껀수가 없어 뭐라고 못하고 있다고 한다. #
- 최고존엄: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을 공식적으로 최고존엄이라 부른 것에서 비롯된 별명. 김정은을 김정은이라 안 부르고 그냥 최고존엄이라 부르는 것이다. 한마디로 반어법의 뉘앙스. #
- 제곱 김: 김일성과 김정일을 곱한 것보다 포악하다는 뜻.
- 새끼돼지
대한민국
당연히 온갖 험한 욕설과 조롱이 담긴 여러 가지 멸칭으로 불리며, 그것들을 전부 언급한다면 공백이 모자랄 것이다. 특히 김정은은 김일성의 목 뒤의 혹이나 김정일의 곱슬머리와는 달리 신체적으로 두드러지는 부분이 없으니 그냥 그의 체형을 비꼬아서 부르는 일이 많다.
주로 인터넷 상에선 김정은의 사진을 짤방으로 합성해서 조롱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냥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부자를 한꺼번에 묶어서 욕하는 경우가 많다.[75]
- 김돼지: 김정은+돼지. 바리에이션으로 돼정은도 있다.
- 핵정은/핵돼지
- 꿀꾸리우스/뚱땡이우스: 할아버지는 혹부리우스, 아버지는 뽀그리우스라고 불린 것에서 비롯된 별명.
- 돈종(豚宗): 김정은의 체형을 묘호의 형태로 비꼰 것.
- 어금니: 김정은의 정면사진이 어금니처럼 생겨서 붙여진 별명.
- 주체사상의 돼지: 자본주의의 돼지라는 유명한 어구를 패러디한 것.
- 으니: 정'은이'에서 따온 별명. 문재인을 이니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다. 특이점이라면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김정은에 대한 대한민국 내 여론이 나아진 계기로 나온 별명이라 다른 별명과 달리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76] #
- 우리핵: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우리형이라 부르는 것에 근거해 붙여진 별명. 이 건 딱히 김정은의 행보에서 유래 된 별명은 아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인터넷의 풍자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덩달아 온 갖 커뮤니티의 유머글에 김정은이 기하급수적으로 등장 하는 것에서 비롯 되었다. 하도 짤과 표정이 다양해서 이러다 정 들겠다는 반응까지 나 오고 있다.
한 편 2011년 북한의 선전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 게시판에 희대의 명문 김정일 미친놈 김정은 개새끼가 올라 왔었다. 세로드립을 썼기에 사이트 관계자들의 검열을 무사히 통과 했다고 하며 자세한 것은 우리민족끼리 테러 사건 문서 참조 바람.
중국
- 진싼팡(金三胖, 김삼반): 김씨네 셋째 뚱보
- 싼팡즈(三胖子, 삼반자): 3번째 돼지
중국도 비록 동맹관계이기는 하지만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선 곱게 보지 않는 편이다. 그 이유는 중국의 지도자들은 독재자였어도 피나는 투쟁과 노력 끝에 부강한 현대 중국을 만들었지만, 북한 김씨왕조 패거리들은 후계자가 무능한데도 줄이나 잘 서서 부귀를 누리기 때문이다.
건국자들의 위상부터가 다르다. 마오쩌둥은 수십 년간 투쟁을 한 끝에 중국을 건국하였지만, 김일성은 소련의 필요로 인하여 만들어진 지도자에 불과하였다. 개혁개방을 시작한 덩샤오핑도 마오쩌둥과 같이 혁명과 건국에 참가한 건국원로임과 동시에 마오의 폭정으로 피폐해진 중국을 부강하게 만든 지도자다. 하지만 김정일은 그저 아버지를 잘 만난 무능력자가 정치적인 능력만 좋아서 북한 지도자가 되었고, 북한을 세계 최악의 파탄국가로 전락시켰다.
그리고 중국의 경우, 덩샤오핑 이후로는 권력교체가 10년주기로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장쩌민 1993~2003, 후진타오 2003~2013, 시진핑 2013~. 그리고 현 주석이 일한 지 5년이 되면 다음 주석이 될 후계자가 부주석으로 들어와 5년 동안 밑에서 지도자의 역량을 배운다. 장쩌민이 일한 지 5년째인 1998년부터 후진타오가 부주석을 했고, 후진타오가 2003년부터 주석직을 한 지 5년째 되는 2008년부터 시진핑이 부주석을 했다. 그리고 국가주석의 권력이 분명 독재자만큼 강력하긴 하지만 완전히 1인에게 집중되지는 않으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상무위원들이 서열에 따라 나눠 갖는다. 분명 인권이 열악한 독재국가임에도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는 않으며, 권력의 바통터치는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 어지간해선 2선을 하여 거의 8년을 주기로 대통령이 바뀌는 미국과 어떤 면에선 나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시진핑과 김정은을 비교해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이 펑더화이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숙청당해 낙후된 촌락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고, 이후에도 오랜 관료생활과 정치활동을 통해 노련한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태어나기만 명문가에서 태어났을 뿐, 지금 그가 누리는 권력은 젊은 시절부터 스스로 쌓아 온 경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시진핑 말대로 "그저 부모 잘 만나서 지도자가 된 철없고 막무가내인 애송이"일 뿐이다. 미국 견제라는 전략 때문에 북한을 끝까지 잡고 있을 뿐, 북한이 그렇게 강조하는 북중혈맹은 이미 예전에 사라진 지 오래이다. 제 말을 잘 들어야 할 밑씻개가 통제도 안 되고 능력도 없는 놈들이니... 그 탓에 현 중국에서도 북한과 김씨왕조를 비판과 풍자하는 내용이 돌아다녀도 중국 정부는 이를 단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을 단속해 달라는 북한 요구를 단칼에 거절하였다.
하지만 2015년 10월 진싼팡즈가 허셰당하고[77] 말았다. 그래서 현재 중국 네티즌들은 진팡팡팡(金胖胖胖, 김반반반, 김씨 뚱땡이 뚱땡이 뚱땡이) 우회 검색 한다고 한다. 2017년 2월 13일부터는 다시 검색차단이 해제되었다고 한다.
홍콩에서는 하워드란 대역배우[78] 가 김정은과 매우 닮은 외모를 이용해서 광고 등을 촬영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오바마 닮은 꼴은 길어야 8년이지만, 나는 김정은이 암살당하지 않는 한 평생 해먹을 수 있다'고. 재미있는 게, 이 사람은 2014년 홍콩 우산 혁명 시위에 김정은 차림으로 참여해 '시민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중국 정부는 북한과 다를 바 없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
- 쿠로뎅와(黒電話, 흑전화): 김정은의 패기머리가 마치 옛날 전화기의 수화기를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별명이다. 일본에선 옛날 전화기를 쿠로뎅와(黒電話/검은 전화기)라고 한다.
서방
- 로켓맨(Rocket Man):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쓴 별명이다. 이후에 영어권에서 대대적으로 김정을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별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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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발언[편집]
김정은은 직설적이면서 돌직구를 날리는 발언이 특징이다. 그러면서 연설에서는 무력을 통한 적화통일, 체제유지, 보장 같은 의미는 항상 내포하는 편이다.
한치의 드팀[80]
도, 한 걸음의 양보도 없이 오직 수령님, 장군님식으로 무조건 끝까지 강행하자.- 태양절을 맞아 처음으로 공개한 육성이 담긴 공식연설 中
2015년 조선반도 남반부 공화국을 무력 통일하기 위한 통일대전을 준비하라.
조선 혁명 완수를 위해 적들과 총결사전을 벌이자.[81]
미제와 어떤 형태의 전쟁도 가능하다.
- 2015 열병식 육성연설 중 나온 연설 중 일부
조국 통일 대전, 생각보다 앞당겨질 것.
공장이 어떻게 이렇게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나, 위대한 장군님의 업적을 말아먹고 있다.
- 2014년 공장 시찰 도중[82]
침략적인 외세와 야합하여 동족을 반대하는 핵 전쟁 연습에 매달리는것은 스스로 화를 불러오는 위험천만한 행위입니다.
경제 건설의 성과는 인민 생활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북조선, 청년 강국으로서 세계적 위상을 떨쳤다.
담력과 배짱이 영웅남아답다. (중략) 3살 때 총을 쏘았고, 3초 내에 10발의 총탄을 쏘아 목표를 다 명중시키며 목표를 100% 통구멍낸다. (중략) 3살 때부터 운전을 시작해, 8살도 되기 전엔 굽이와 경사지가 많은 비포장도로를 몰고 질주했다. (중략) 초고속보트를 시속 200km로 몰아, 외국 보트회사 시험운전사를 2번이나 이겼다 ... (중략) ...
-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 혁명활동 교수 참고서 '비범한 천품' 항목 中...
장군님의 넓은 도량이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 2016년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연설 中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다.
-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 완전 파괴 발언에 반발하며 나온 성명 中
새로운 력사의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
-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시작을 앞두고 평화의 집 방명록에 남긴 글.
오기 전에 보니까 오늘 저녁의 만찬 음식 가지고 많이 이야기들을 하던데,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습니다. 가져왔는데, 대통령께서 좀 편한 마음으로 평양냉면, 이렇게 멀리 온,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갓구나... 좀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오전 회의 모두발언 중 일부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하였습니다.
- 9월 평양공동선언 발표 기자회견 중
9. 가족관계[편집]
- 조부: 김일성
- 조모: 김정숙
- 외조부: 고경택
- 고모: 김경희
-
고모부: 장성택[83] - 부: 김정일
- 모: 고용희
- 형제자매: 형 김정철, 여동생 김여정
- 배우자: 리설주
- 자녀: 장남[84] / 장녀 김주애 / 차남
가족으로는 부인 리설주가 있고 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부인 리설주는 선대의 부인들과는 달리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북한 최고 권력자의 배우자로서는 오랜만에 '여사'로 호칭되었다. [85] 여동생 김여정은 조선로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으로서 김정은에 버금가는 위세를 갖고 비서실장 역할[86] 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복 형 김정남 이외에도 동복 형 김정철이 있지만 최고 권력자가 되기에는 성격이 너무 부드러워 동생들과는 달리 권력과 거리를 두며 유유자적하게 산다고 한다.[87]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소장 유성옥 氏에 따르면 1984년 1월 8일 출생으로 추정됐으나 북한에서는 1982년생으로 선전한다. 조작의 이유로는 김일성의 탄생년인 1912년과 끝자리를 맞추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다. 권력승계 뒤에는 생일을 1월 1일로 선전하는 중. 김정일도 원래는 1941년생인데 김일성과 맞추기 위해 1942년생이라고 조작한 전력이 있다.
참고로 어머니 고용희는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의 딸이었고 1960년대 대규모 북송 때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이 때문에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정은의 혈통적 순수성에 흠이 되지 않도록 조총련의 위상이 격하되는가 하면, 고용희의 출신에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하지만 이미 소문은 소문대로 나 버렸고, 현재 김정은의 가장 큰 흠이 되었다. 정실 부인도 아닌 김일성의 허락을 받지 않은 여자, 게다가 북한에서 적대계층으로 취급받는 남조선계 출신(제주도)+재일교포 출신으로서 일반인이었다면 최하위계층 대접을 받을 인물인 것이다. 이미 숙청된 개만도 못한 인간쓰레기 고모부, 김일성 가문의 후손, 즉 백두혈통의 순수한 혈통이 아니라는 점이 김정은에게 큰 약점으로 따라다니고 있다.[88]
자녀로는 첫째인 아들과 둘째인 딸(김주애), 셋째인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기사
그 외의 여자 관계의 경우엔 성격 항목에서 언급했듯이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 일단 공식적으론 김정은이 리설주 외에 '첩'이나 '정부'를 두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10. 여담[편집]
- 어린 시절에는 날씬한 체형이었으나 집권 전후부터 심각할 정도로 비만해지고 있다.[89][90] 목소리는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군사 퍼레이드 행사에서 처음 공개되었는데 어조는 할아버지 김일성을 모사하는 듯하며 의외로 걸걸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연설 시에는 자신이 읽는 대목의 반대방향으로 몸을 흔드는 독특한 버릇이 있으며영상, 선대와 똑같이 오른쪽이 올라가는 형태의 휘갈기는 필체를 구사한다. 사진 취미로 농구를 즐겼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91]
-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 그를 호명할 때에는 '조선로동당 위원장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령도자'라는 칭호가 붙는다. 간략하게 호명할 때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 따위로 불린다.[92] 한편 2014년 기네스북에 '최연소 국가수반'이라는 내용으로 등재되었다.[93] 기사
- 북한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김정은의 이름을 치면 자동으로 볼드 처리가 된다.[94] 참고로 북한에서 볼드처리한 김정은 3글자 전부 PUA 특수문자 처리를 하였고 입력시 자동으로 인식해서 저 문자로 변환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저기서 볼드처리된 문자는 한글이 아니라 개별 특수문자이다. PUA 코드는 U+F120, U+F121, U+F122(김, 정, 은)으로 '' 라고 표기된다. 전용 폰트가 없거나 북한에서 직접 손을 대지 않은 운영체제에선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해당 PDF에서 복사하여 다른 곳으로 붙여 넣어서 확인해 보자.
- 벤츠,렌드로버,람보르기니, 부가티, 코닉세그등 총합 200억대의 럭셔리 카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고 또한 2018년 현재 그의 관용차인 승용차는 벤츠 S600 W221과 롤스로이스 팬텀. 좋아하는 스포츠는 농구.
- 맥주를 매우 즐긴다고 한다. 2013년 양조장을 갖춘 독일 맥줏집 비어가르텐을 평양에 열어달라고 독일 맥주회사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일화가 있고, 독일산 맥주를 꾸준히 구매했다. 행사장에서 북한산 맥주와 대한민국산 맥주를 비교하며 '남조선 맥주는 정말 맛이 없다'라는 평가를 내린 것이 한때 유명해지기도 했다. 담배는 툭하면 어른들에게 떼를 써서 얻어 피웠다. 2019년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할 때도 직접 성냥으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 김정은의 흡연과 관련해 재밌는 일화 하나가 또 공개되었는데, 일본 아사히 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 실장이 서훈 국정원장 등과 함께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났을 때 정 실장이 김정은에게 금연을 권유했다고 한다. 정 실장의 돌발성 발언에 동석해 있었던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의 반응에 대해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러나 딱 한 사람, 김정은의 아내인 리설주만 "평소에도 건강을 생각해 담배를 끊으라고 부탁하는데도 김정은이 안 듣는다"고 하소연하며 뜻밖의 '아군'의 등장에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고 한다.[95] 다만 이후에 김정은이 딱히 불쾌한 감정을 가졌다는 증거는 없고 그냥 지나가는 덕담으로 여긴 듯 하다.
- 2018년 9월 12일 대한민국이 공식 발행한 남북정상회담 기념우표에 문재인과 악수하는 김정은의 사진이 들어가면서, 북한 인물로써는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기념우표에 얼굴이 올라가게 되었다. 아무리 남북관계가 진전된다 하여도 아직도 김정은을 "적대 집단의 수괴이자 독재자"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다만 이 우표 발행을 두고 일부에서는 "수천만의 인권을 유린한 독재자의 얼굴을 대한민국 공식 우표에 집어넣었다"며 "아직 과거에 대한 반성과 화해의 절차가 법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단계에서 김정은의 얼굴을 대한민국 공식 우표에 넣는 것은 몰역사적인 처사"라고 비판했을 뿐 아니라, 2017년에 박정희 대통령 탄생100돌 기념우표 발행이 불발됐던 점을 언급, "'대한민국 전 대통령의 우표'는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발행하지 않고 '대한민국 우표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사람의 우표'를 발행했다"고 비난했다. 아직 통일은 물론 종전 선언에 대한 어떠한 법적 절차도 밟지 않은 상태에서 당연히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96]
-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EBS가 김정은을 미화시키는 듯한 상품을 공개적으로 판매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EBS 독재자 미화 논란 문서를 참조할 것. 또한 비슷한 시기 백두칭송위원회와 위인맞이 환영단이라는 친김정은 집단이 생겨나면서 역시 논란이 되었다.
11. 참고 자료[편집]
- 북한 기업의 사실상의 사유화 - 양문수 | 통일연구 | 2016.10
- 북한 변화 실태 연구 - 홍민 | 통일연구원 | 2018.12
- 북한 외화획득사업 운영 메커니즘 분석 - 임수호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2017.12
- 북한 시장 실태 분석 - 이석기 | 산업연구원 | 2014.12
- 김정은 시대 금융개혁 연구 - 황수민 | 북한대학원대학교 | 2019.06
- 김정은 시대 북한 경제개혁 연구 - 이석기 | 산업연구원 | 2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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