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북아메리카

덤프버전 :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



북아메리카는 미국 외에 플레이 가능 국가가 없다.


1. 파일:미국 국기.svg 미합중국[편집]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지만, 연합국을 구하기엔 너무 늦은 지원이었습니다. 미국은 대서양에서 크릭스마리네의 기세를 꺾어버리고 태평양에서 대세를 역전시키기 시작하며 훌륭한 전쟁을 펼쳤지만 원자폭탄의 발명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연합국에 대한 미국의 승리를 향한 어떤 희망도 꺾어버렸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분열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대침체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지만, 미국 정계는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정부는 아직도 불안한 공화민주연합과 미국의 진보주의자, 사회주의자, 권위주의자의 실패한 연합인 국민진보동맹 사이에서 사로잡혀 있습니다. 민권운동이 정치권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는 가운데, 많은 이들이 60년대가 미국이 가장 큰 위협에 직면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플레이 가능

  • 자유국가기구자유세계의 지도자
  • 집권이념: 침묵의 보수주의 (보수주의, 공화민주연합 - 공화당)
  • 경제: 미국 자본주의/미국 경제권 소속국
  • {{{#!folding 국가 정신
    • 자유의 마지막 보루
미국은 어둠의 세계에서 빛나는 마지막 자유의 빛입니다. 이 연악한 세계에서 다른 민주적인 위대한 국가들은 라이히와 욱일기의 고압적인 파시스트 주먹에 먼지로 변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악마의 거침없는 진격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연합국으로서 미국은 이 새롭고 뒤틀린 시대에 자유의 횃불을 들어야 합니다.
  • 미국의 문제들
미국은 한때 불굴의 의지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그 누구도 정복할 수 없다고 보이는 낙관론적인 풍요와 활기로 가득찼었습니다. 이 생각은 진주만의 원자 폭탄 투하로 끝났습니다. 이제 미국 전역에 걸쳐서 모든 사람들이 국가가 터널 끝의 희미한 불빛만 보일 뿐 완전한 문제의 수렁에 빠져 있다고 봅니다. 기회와 이상주의의 땅은 가난과 불화에 묻혀버렸습니다. 이는 쉽게 극복할 수 없는 구덩이와도 같고, 미국인의 가슴 속에 한때 타들었던 애국심의 불이 언제 다시 지펴질지는 오직 시간만이 알 것입니다.

아니면 그 불이 완전히 꺼져버릴지도 모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5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0%
안정도: -25.00%
전쟁 지지도: -15.00%
재건이 끝난 후, 미국 남부 전역에 잔인한 인종 차별 정책이 들어왔습니다. 인종차별적인 음유시라 할 수 있는 "Jump Jim Crow"(점프 짐 크로)에서 이름을 따온 짐 크로 법률은 흑인과 백인들이 완전히 구분되어 불평등한 삶을 살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흑인들은 버스의 뒤쪽에 타야 했고, 건물에서 따로 있는 입구를 통해 들어가야 했으며, 서로 다른 동네와 학교로 들어가야만 했으며, 완전 다른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이 법은 심지어 흑인이 백인이랑 결혼하거나 같은 음수대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했습니다. 남부에서는 이를 치열하게 지켰지만, 좀 더 점잖은 사람들에게는 소위 자유의 땅에서의 후진적인 잔학행위로 보입니다. 흑인들의 평등에 대한 요구가 점점 거세짐에 따라 미국 정부는 곧 짐 크로를 십자가에 못박을 것인지, 아니면 그의 제단에서 흑인의 미래를 희생시킬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안정도: -10.00%
기타 비용 (십억 달러 기준): +0.10
  • OFN 단결도 - 약간 낮음
자유 국가 기구는 분열되어 있습니다. 불필요한 탄원과 지지부진한 연기로 한때는 확고했던 지지자들 사이에서 성화의 광택이 닳고 있고 의심의 씨앗이 자라고 있습니다. 자칭 연합 내부에서는 정말로 민주 원칙을 발전시키는 수단이기보다는 자기 잇속만 차리는 미국식 디자인의 연장은 아닌지 의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중들은 산적한 국내 문제인 건강 관리, 인프라, 불평등에 대해 투자해야 할 때 왜 다른 나라의 방위에 자금을 대야 하는 것인지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04
소비재 공장: -4.0%
전쟁 지지도: +6.00%
무역 거래에의 평판 획득치: +12.00%
}}}
  • {{{#!folding 플레이 요소
    • 미국의 역사를 4년 주기 선거에 영향을 주어 바꾸고, 법안을 통과시키고, 그리고 상원을 지배하기 위해 경쟁하세요.
    • 공화민주연합과 함께 옛 정치 체제를 지키세요... 또는 국가진보전선과 함께 미국 국민에게 대안을 제시하세요
    • 공작과 대리전으로 해외의 파시즘을 억누르세요
}}}
인물설명>리처드 밀하우스 닉슨은 복잡한 인물입니다. 하원의원으로 시작해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으로, 그는 능숙한 정치적 책략을 통해 의회 내에서 빠르게 승진했습니다. 상원의원 시절 닉슨은 조지프 매카시와 함께 회색공포를 일으켜 정부 내 파시스트로 추정되는 이들을 뿌리뽑기 위해 일했습니다. 매카시 만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닉슨이 반파시스트 십자군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습니다.>>평생을 공화당원으로 보내온 닉슨은 민주당원과 함께 일하는 것을 편하게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가진보전선의 폭넓은 인기가 그래야하도록 만들었고 그가 1960년 선거에서 당선되게 해준 연정은그의 대통령 재임 기간을 생지옥으로 만들었습니다. 쐐기를 박은 것은 존 F. 케네디의 부통령 자리였습니다. 그의 자석과도 같은 카리스마와 놀라운 능력은 스포트라이트가 다시 한 번 닉슨을 떠나게 만들었죠. >>닉슨은 불안정한 독일과 일본의 제국을 약화시키기 위해 해외 정책에 집중하기를 바라지만 국내 현안이 그걸 막습니다. 인종간 긴장에 불이 붙고, 국민드링 어떤 방식으로던지 행동할 것을 요구하자 민권은 무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닉슨은 인종분리와 인종통합 모두 지지하기를 꺼려왔지만, 계속보고만 있기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닉슨은 NPP를 억누르기 위해 할 수 있는일을 하고 있습니다. 좀... 법 영역 밖에 있는 일도 써서요. 사방에서, 심지어 백악관 내부에서까지 도전자가 다가오는 가운데 닉슨은 국가라는 배가 흔들리지 않도록 끔찍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folding 인물설명
>국민의 사람 - 안정도:+10%

조셉 P. 케네디 전 대통령의 장남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는 미국에서 문제가 되거 있는 정치적 유산의 계승자이며, 이에 굴하지 않는 카리스마와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트 코스트에서 마지막 진보적인 민주당 중 한 명인, 케네디는 1960년 리처드 닉슨의 대통령 선거권을 얻기 위한 자연스러운 정치적 선택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그 어수룩한 공화당원을 매력적이고 진보적인 이스트 코스트 민주다원과 결집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부통령은 최근 하와이 미사일 위기 때 일본과의 협상에서 대통령 특사직을 맡으면서 대중과 국회의사당에 자주 그의 상관보다 우위에 있는 점을 부각시키게 되면서, 닉슨 대통령과 케네디 부통령을 위한 선거운동보다 더 어려운 숙제가 됐습니다. 미국 대중의 케데니 숭배는 닉슨 대통령까지 끌어들인 것이 아니며, 두 사람-당내 관계는 눈에 띄게 얼어붙었습니다.}}}
인물설명
변증의 서기 - AI 변동치: 평화 중점: +50%

윌리엄 로저스는 닉슨 대통령 내각에서 대통령 자신이 외교 정책에서 우위를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포트폴리오 전문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특별이 임명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저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법무장관을 역임한 재능 있고 존경받는 법률가지만, 닉슨 대통령은 RDC의 영향 없이 개인적으로 외교 정책을 이끄는 데 관심이 있다고 거듭 표명했습니다. 로저스는 지금까지 닉슨 대통령에 의해 자주 기각되거나 심지어 궁지에 몰린 채, 활기 없는 국무장관으로 일해왔습니다.

인물설명
행정의 천재 - 건설 속도: +5%, 연구 속도: +2%, 공장 생산량: +10%
로버트 맥나마라는 닉슨 대통령의 내각에서 정치인 출신이 아니라 기업가 출신인 외부 인사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육군 항공대의 베테랑이었던 맥나마라는 10년 넘게 포드 자동차 회사의 '위즈 키즈'에서 일하다 정부에 임명됐는데, 재직하는 동안 경영과 사업에 대한 통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법의 혁신적인 응용을 통해 회사를 탈바꿈시켰습니다. 1960년 맥나마라를 포드 회장직에서 뺏어왔고, 닉슨은 맥나마라의 체계성을 디트로이트의 이사회에서 워싱턴 D.C의 연기가 가특한 방으로 옮겨 심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닉슨은 맥나마라에게 국방부와 재무부 장관직 사이에서 선택권을 주었으며, 맥나마라는 공식적으로 재무부 장관으로 있는 동안, 자주 국방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워싱턴에서 그를 더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 연결망을 구축해뒀으니, 그가 바란다면야...

{{{#!folding 인물설명
>연민 어린 신사 - 자원 획득 효율: +1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5%, 안정도: +5%, 공장 생산량: +10%
멜빈 레어드는 위스콘신 출신의 존경 받는 하원의원으로 1953년부터 국방 예산과 조달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하원세출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했습니다. OFN 동맹국들과 함께 방어 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미군의 점진적인 재배치 계획을 옹호하는 국방 문제에 정통하나 레어드는, 보다 적극적인 국방 정책에 대한 통계적이고 결과 지향적인 접근을 추진하는 닉슨의 재무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에 맞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닉슨 행정부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있고,그의 재능이 점점 더 전적으로 의회 업무에만 쓰이게 되면서, 레어드는 1964년 하원에서 다시 출마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잠재적으로 닉슨 행정부의 뒤를 이을 경선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 지휘관
    인물설명
    출생: 1914년 9월 15일 메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 미합중국
    군 경력: 철도 노동자의 아들인 크레이턴 윌리엄스 에이브람스 주니어.는 1936년에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제1기병 사단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탱크 중대 사령관으로 임시로 1 기갑 사단으로 옮겨지기 전에 대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기갑전의 천재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4기갑사단 37기갑연대에서의 활약이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부대의 리더로 활약한 이 부대는 조지 S. 패튼 장군의 군대의 창끝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에 "에이브 대령" 에이브람스는 뛰어났고 1944년 독일의 우월한 부대를 격파한 공로로 공로훈장을 두 번 수여했으며 패튼 장군에 의해 육군 최고의 전차 사령관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전후, 에이브람스는 평시 군대에서도 계급이 높아져 1949년 포트 리번워스의 미국 육군지위참모대학을 졸업하고 그린란드와 카리브해에서 근무한 후 준장으로 진급하고 예비군 부대 참모차장으로 근무했습니다. 1956년 펜타곤에서. 1959년부터 1962년까지 제3기갑사단의 사령관으로, 최근에는 펜타곤에서 작전 부참모장으로 옮겨져 시민권 교란을 위한 여러 국내 배치를 감독했습니다.
    주목할 점: 존경받고, 명예롭고, 널리 사랑을 받는 에이브람스는 미 육군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이지만 정치인 및 방위산업체와 자주 충돌합니다. 그리고 웨스트포인트에서에서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의 동기였습니다.||

    인물설명
    윌리엄 차일드 웨스트모어랜드에 대한 좋고 나쁨에 대해 많은 말을 할 수 있지만 그가 현재 미 육군을 장악하고 있는 권력의 위치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1936년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프랑스가 함락되기 전에 소위가 된 웨스트모어랜드는 잉글랜드 본토를 방어하는 동안 포병 대대 아래에서 발러와 함께 복무했습니다. 미국이 전쟁에서 졌음에도 불구하고 웨스트모어랜드는 완고한 베테랑으로 귀국하여 연합군 이론과 국군 참모진의 향상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했습니다. 그 후 공수 훈련을 마친 웨스트모어랜드는 전후 경력 장교의 계급을 오르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50년대의 나머지 기간 동안 웨스트모어랜드는 미국 지상군의 새로운 방향을 위한 핵심 전략가이자 이론가로 자신을 확고히 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그를 미 육군 사관학교의 총감으로 승진시켰고, 나중에는 미국의 가장 고위 장군 중 한 명이 되어 국방 측면에서 국가의 진로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인물설명
    리먼 루이스 렘니처의 군 경력은 1920년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후 그곳에서 포병 장교로 입대하여 지금은 없어진 미 육군 해안 포병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렘니처는 그의 부대에서 몇 년 동안 복무한 후 결국 그곳을 떠났고, 1926년에 웨스트포인트의 강사로 복귀했습니다. 큰 야망과 조국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렘니처는 미 육군 사령부 및 참모 대학과 미 육군 전쟁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1940년까지 두 학교를 모두 우등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렘니처 대령은 결국 육군의 전쟁 계획 사단에서 복무하게 되었고, 실리온 작전에 맞서 방어하는 육군 지상군을 도왔습니다. 전쟁에서 미국이 패한 후 대담해진 렘니처는 결국 전쟁 대학의 부사령관이 되었고, 그 직책에서 그의 탁월함은 그를 합동참모본부에 임명되도록 했습니다. 현대 군사 교리에서 연합 무기 포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렘니처는 틀림없이 합동 참모의 최고위 구성원이며 개인의 기량과 함께 큰 지혜로 자신의 위치를 뒷받침합니다.
    미 육군 장군. 현실에서는 북아프리카와 시칠리아에서 아이젠하워를 보좌했으며 6.25 전쟁 당시에는 제7보병사단을 지휘했다. 자해공갈 작전인 노스우즈 작전을 제시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인물설명
    DC에서 자라난 얼 길모어 "버스" 휠러는 16세의 젊은 나이에 컬럼비아 특별구 방위군으로 입대했습니다. 여러 번 진급한 후, 그는 결국 명예전역하여 미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간 후 여러 군 연대에서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수학 교수로 잠시 일한 후 그는 결국 훈련을 받고 영국 등지에서 포함하여 여러 보병 사단을 이끌었습니다. 여러 번의 성공과 확고한 지도력 덕분에 그는 나중에 국립 전쟁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마침내 50년대 후반에 미군 참모로 합류했습니다. 그 이후로 휠러는 합동 참모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 중 한 명으로 조직의 섬세하고 통합된 지휘 체계와 긴밀히 협력했으며 현재 육군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휠러의 눈에는 아마도 언젠가 그가 다시 유럽과 아시아의 심장을 질식시키는 파시스트의 위협에 맞서 싸우고 승리해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물설명
    맥스웰 데본포트 테일러는 그의 군 경력에 대해 대담하고 경쟁적인 것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웨스트포인트 4학년 졸업, 일본 외교관, 중국 공관에서의 근무, 매튜 리지웨이의 멘토링, 육군사관학교 소령 졸업, 101공수사단장 진급등을 거쳤습니다. 테일러의 지휘 아래 "울부칮는 독수리"는 영국에서 위대하지만 제한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전쟁에서 패하자 테일러는 웨스트포인트로 돌아와서 교육감으로 일하면서 심지어 현대 명예 규율의 기초를 쓰기도 했지만 나중에 펜타곤의 운영 및 관리 부참모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위치에서 테일러는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결점을 비판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닉슨 대통령 당선자의 동맹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닉슨 행정부에서 합동참모본부로 임명된 테일러는 숙련되고 베테랑인 101연대 사령관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이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지상군에서 특수 작전을 안내할 것입니다.
    서몬드가 대통령이 되면 부통령 자리에 오른다.
    인물설명
    존 "잭" 다니엘 라벨은 충성심으로 정의되는 사람입니다. 1938년 대학을 졸업하고 공군사관학교에 입대해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여기에서 그의 길고 논쟁적인 공군 경력이 시작되었습니다.

    공군 장교까지 진급하면서 그는 점점 대통령 정치에 얽매이게 되었고, 교전 규칙에 대한 대통령의 변덕에 호소하기 위해 공중 교리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레이블이 조종사들에게 "먼저 쏘고 나중에 질문하라"고 지시하고 적에 대해 선제적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는 소문이 펜타곤을 가득 채웠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라벨의 경력은 미국에 대한 완전한 충성심과 헌신이라는 사례의 하나입니다.||
    미 공군 장군. 현실에서는 베트남 전쟁 당시 제7공군 지휘관으로 동남아 내 모든 항공작전을 관리했다. 하지만 1972년 승인 없이 북베트남 폭격을 감행했다는 혐의로 2계급 강등된 소장 계급으로 퇴역한다. 죽은지 약 25년이 지난 후인 2007년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승인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져 대장 계급으로 복원된다.
    인물설명
    찰스 보네스틸 3세는 초창기에는 단순한 이글 스카우트였으나 30년대 초에 웨스트포인트 재학 당시 그의 반에서 옥스포드 대학에서 로즈 장학생이 되면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보네스틸은 태평양에서 여러 고위 행정직을 역임하면서 운명적인 진주만의 원자 폭탄 투하 전에 전쟁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보네스틸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아래 국무장관의 특별 행정 보좌관이 되었습니다. 보네스틸의 현장 경험과 행정경험은 그를 미국에서 가장 고위급 장군 중 하나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 제독
    인물설명
    데이비드 라마 맥도널드는 한때 명문 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기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곳에서 군 경력을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맥도널드는 굴하지 않고 그의 고향 조지아에 있는 리버사이드 사관학교에 입학하기로 선택했고, 이후 해군 전술에 다시 관심을 보인 후 졸업하여 미국 해군 사관학교에 입대했습니다. 1928년에 그곳을 졸업한 후, 맥도널드는 미주리와 콜로라도에서 복무했었고, 후에 해군 항공대 교관이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대서양에서 기장으로 복무했고, 태평양에서 제국 함대에 맞서 USS 에식스에서 복무하였습니다 되었다. 맥도날드는 전후 해군 항공 원칙을 더욱 발전시켜 6함대 사령관이 되기 전까지 다양한 항공모함에서 복무했고, 후에 미국 해군의 전체를 통괄하는 작전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해군 전체에서 가장 어린 4성 장군인 맥도널드는 자유 세계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의 기치 아래 바다를 지배한 그의 수십 년간의 경험을 다시 한번 활용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 토머스 무어러, 4, 3/2/3/4:
    인물설명
    토마스 힌만 무어러의 가족 조상 가계를 올라가보면 혁명 초기까지 미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즉 폭정과의 싸움이 그의 피 속에 있습니다. 그는 앨라배마주의 시골 소년으로 자랐지만 무어러는 미국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33년에 졸업했습니다. 당시는 해군 항공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무어러는 결국 해군 항공 훈련을 완료하고 태평양 전역에서 미국 항공모함에 할당된 비행 중대와 함께 제2차 세계 대전의 대부분을 비행하게 됩니다. 다윈 해안에서 격추당한 후 무어러는 퍼플 하트와 집요함으로 살아남았고, 이는 일본 공군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태평양의 오버런 섬에서 철수하는 데 도움을 준 공로로 더 큰 상을 얻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무어러는 태평양 함대에서 계속 복무하다가 1962년에 중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언젠가는 자신이 아는 가장 강력한 군대를 격퇴한 제국 해군에 복수하기를 희망합니다.
    현실에서는 맥도널드 후임 해군작전부장이었던 인물. 이후 합참의장으로 있었다.
    인물설명
    한때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가난한 학생이었지만 호라시오 리베로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히스패닉 제독이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미 해군 사관학교에 추천을 받은 후 그는 3등으로 졸업하고 중순양함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해군에 다시 입대하기 전에 MIT에서 전기 공학을 마스터하기 위해 공부한 리베로는 태평양 전쟁에서 여러 전함에서 근무하여 해군 상륙 지원 업무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USS 피츠버그에 대한 그의 지휘는 적의 어뢰 공격 동안 갑판에 있는 모든 승무원들을 구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그는 널리 찬사를 받았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리베로는 미 해군의 여러 특수 기관에서 계속 근무했습니다. 이것은 그를 하와이 미사일 위기의 최전선에 놓이게 할 것이며, 그의 확고부동한 집념은 아마도 세계가 폭발하지 않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의 지도력은 그를 제독으로 승진시켜 유리천장을 깨고 그의 지휘 하에 다음에 해군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더 뛰어난 능력을 제공할 것입니다.
    미 해군 최초의 푸에르토리코 출신 4성 장군.
  • 주요도시
    • 워싱턴 D.C
    단순히 워싱턴 D.C를 도시로 묘사하는 것은 완전히 부적절합니다. D.C는 건물이나 도로의 집합체 그 이상이며, D.C.를 정의하는 도시 확장으로 인해 강요된 인간 의지의 융합 이상입니다. 아니, D.C를 가장 잘 정의하는 것은 자유와 안전의 고향인 언덕 위의 건물입니다. 그런 것들을 구하기 힘든 세상에서 말이죠. 이러한 자유는 이 도시의 주민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명백하고 중요한 문제들을 두고 다투며 국가 전체의 미래가 결정되는 국회의사당에서 싸웁니다. 민주주의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미래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러한 민주주의의 자유는 더 이상 자유를 보장하는 수단이 아니라 격동의 시대에 붙잡아야 할 무언가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영원히 보호하기를.
    • 뉴욕
    잠들지 않는 도시라는 정의에 부합하는, 뉴욕시는 매일 엄청난 양의 상업이 지나가는 근면한 개인의 노동의 산물입니다. 1624년 네덜란드인이 뉴 암스테르담으로 처음 정착한 이 곳은 수세기에 걸쳐 주인이 바뀌었고 현재는 항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처럼 미국 자유의 자랑스러운 요새로 우뚝 서 있습니다. 수많은 다른 문화가 도시에 뿌리를 내렸고, 먼 고향의 폭정으로부터 전 세계의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상대적으로 안전한 안식처였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열린 마음만큼 매력적인 것은 개방된 시장이며, 이는 국제 비즈니스 및 금융의 최고의 중심지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력의 가장 큰 과시입니다. 그 대가로 항상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권리를 지불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뉴욕시를 말이죠.
    • 내슈빌
    만일 당신이 내슈빌을 방문하게 된다면, 도착하기 전에 내슈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미국 최고의 컨츄리 음악 히트곡들의 음색부터, 더욱 가까이 들어갈수록 색소폰, 재즈, 소울 음악의 소리가 드럼과 베이스와 함께 휘몰아쳐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음악소리가 점점 커지고 L&C 타워가 눈에 들어온다면 당신은 제대로 목적지에 도착한 것입니다. 수많은 미국의 천재 뮤지션들이 꿈을 품고 이 도시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내슈빌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 군사요새로 처음 건설되었습니다. 컴벌랜드 강의 전략적 입지로 인해 내슈빌은 곧 군사적, 경제적으로 거액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점차 많은 미국인들이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을 건너가면서 이 도시도 폭발적으로 번창해가기 시작했습니다. 남북전쟁 기간동안 도시는 전쟁 초기 연방군의 점령과 1864년 내슈빌 전투를 제외하면 전쟁의 화마를 피해갈 수 있었기에 전쟁 이후의 재건 시대에도 여전히 번영할 수 있었습니다. 의료, 음악, 그리고 밴더빌트 대학, 벨몬트 대학, 테네시 주립대학같은 교육기관들은 도시의 경제와 문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이 도시는 '남부의 아테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부의 아테네는 여젼히 노예제의 원죄로부터 고통받고 있습니다. 인종차별과 분리정책이 내슈빌에 깊숙히 뿌리박혀 있고, 이 도시는 건설될 때부터 노예들의 피와 땀이 배여 있었습니다. 남북전쟁 기간동안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으나, 전쟁 후 재건은 인종적 진보를 가져오진 못했습니다. 연합의 후손들이 이 도시를 본거지로 삼고, 초기 KKK가 이 도시를 본거지로 삼았으며, 에프라임 그리자드가 당해야 했던 린치사건은 이 도시의 길고 험난한 평등권 싸움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민권운동의 물결은 내슈빌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도시는 평등을 향해 나아갔지만 인종차별이 공식적으로,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며,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클럽과 스튜디오에서는 긴장이 점차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내슈빌 시민들은 기대합니다. 의료 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고, 외부의 기업들이 도시에 새로운 집을 짓고 있으며, 테네시주를 향한 음악의 성지길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기타가 연주되고 파이프 오르간이 울리는 한, 음악의 도시의 내일은 밝을 것입니다.
    • 뉴올리언스
    모래사장을 떼지어 이주하고, 휴스턴과 마이애미란 눈부신 메트로폴리탄들이 그 황위를 노리고 있습니다. 한때 뉴올리언스 힘의 원천이었던 거대 항구는 이제 더 가까운 다른 항구로 대체되었으며, 은행업들도 이곳에서 철수하여 더욱 번영하는 해안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럼에도, 뉴올리언스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수평선을 바라봅니다. 여왕의 등에 있는 칼은 날카롭지만, 도심 지역의 양복차림 디자이너, 프렌치쿼터의 초췌한 노인들 모두는 여전히 자신의 주군을 충실하게 섬길 것입니다.
    • 댈러스-포트워스
    누구에게 묻는가에 따라, 댈러스와 포트워스는 극우 엘리트들이 이끄는 화약고, 또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험장이라는 상반된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미국, 남부연합 깃발이 3층짜리 오래된 저택의 창문에서 펄럭이고, 니만 마커스 백화점 밖에서 밍크코트를 입은 여성들이 보석으로 장식된 손가락 사이로 존버치 협회의 팜플렛을 움켜쥔 채 담소를 나누고 있을 겁니다. 대로를 벗어나면, 로마네스크 궁정 건물들과 작별을 고하게 될 것이고, 붉은 벽돌과 매립 콘크리트로 지어진 판잣집들의 물결로 인해 생활용수마저 확보하기 힘든 판자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좀 더 밖을 보면, 포트워스 농장의 기둥에 붙어있는 전단지엔 굵고 검은색의 글씨로 "전미국가전위대에 가입해 고결한 인종을 위해 싸우라!" 라는 로고를 보게 될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 전역의 수많은 미국인들은 테드 딜리같은 인물에게 반대하고 있는데, 테드 딜리의 초 보수적 저작은 닉슨과 케네디를 사회주의, 공산주의, 교황과 동맹을 맺은 자라고 비난하곤 합니다. 심지어, 권위있는 침례교 전도사 W,A,크리스웰은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와 미국 공산당을 미국 사회에 대한 위협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지만, 동시에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교육 제도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거리를 행진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과거 KKK의 본부였던 백인들의 분노 분위기에서 벗어나긴 아직 어려워 보입니다. 곧, 이곳의 급진주의자들은 주장 이상의 행위를 할 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그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디트로이트
    디트로이트는 대공황으로 타격을 받은 이후 2차 세계대전 당시 '민주주의의 병기창'으로 잠시 부흥하기도 했으나, 전후의 흐름은 디트로이트에게 우호적이진 않았습니다. 수요의 변동, 대규모 감원이 노동 운동의 기초가 되었고, 흑인 거주자와 백인 이주자들 사이의 인종적 긴장은 도시를 민권 운동의 최전선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럼에도, 자동차 도시는 버텨내고 있으며, 자유세계를 향해 자동차를 계속 공급하고 있습니다. 희망과, 함정이 디트로이트 내에 동등하게 펼쳐진 지금, 오직 시간만이 모터 시티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 답해줄 것입니다.
    • 라스베이거스
    '신 시티'라 불리기도 하는 라스베이거스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모하비 사막 분지에 위치해 있는 도박꾼, 쾌락주의자, 방랑자들의 오아시스입니다. 네온빛과 활기찬 밤문화는 네바다주 남부의 허허벌판을 밝혀주며, 관광과 도박에 경제적 기반을 둔 도시는 붐비는 관광객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도시의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느슨한 법 체계는 범죄조직들의 관심도 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금이 계속 흐르고 쇼가 계속되는 한, 미국은 이런 사소한 과오를 기꺼이 무시할 수 있습니다. 결국, 베가스에서 일어나는 일은 베가스 내에서만 머무르니까요.
    • 로스엔젤레스
    서해안에서 가장 큰 도시, 그리고 이 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이 도시는 미국, 그리고 거의 틀림없이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본고장이기도 합니다. 로스앤젤레스의 이야기는 논란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 누가 들어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작은 해안 마을에서 시작했던 LA는 19세기 말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하여 제2차 세계 대전과 1950년대일본의 항구 점령 사태를 거치고도 성장세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할리우드의 본거지이기도 한 LA는 현란하고 화려한 곳으로 명성을 얻고 있지만,그 이면에는 성장하는 도시에서 밀려난 다양하고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 미국 민권 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리치먼드
    버지니아의 주도 리치먼드는 미국의 교차로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마을보다는 더 크지만, 미국의 대도시에 비하면 점차 작아지고 있습니다. 이곳은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북동부 지역이 아닌 남부의 외곽 지대일 뿐입니다. 이곳은 점차 진보와 배움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지만, 남부연합 수도로서의 유산은 여전히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의 유산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체감되고 있습니다. 리치먼드는 진보와 기술에 대한 희망, 편협한 시각과 차별에 대한 두려움 즉 미국 자체의 축소판과 같은 도시로 1960년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 마이매미
    1856년 설립된 마이애미는 플로리다 주 최대의 도시 중 하나입니다. 반도의 동쪽 해안에 위치해 있는 마이애미는 활기찬 밤문화, 아름다운 해변, 그리고 정치적 중심지로서 주 선거, 연방 선거에서 중요한 도시가 되기도 합니다. 마이애미엔 상당한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대계 인구들이 존재하며, 특히 풀헨시오 바티스타 치하의 쿠바를 탈출하기 위한 물결로 인해 상당한 규모의 쿠바인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멕시코 만을 출발해 미시시피 강을 올라가면 나무가 우거진 수원지 이타스카 호수가 나옵니다. 그곳에서 시작된 강은 주위의 지형을 결정하며 점차 폭과 유속을 증가시키면서 하류로 휘감겨갑니다. 올드 댄(미시시피) 강 상류엔 쌍둥이 도시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이 위치해, 그 사이를 지나며 도시를 양분합니다. 미니애폴리스는 처음에 군사기지였고, 세인트폴 또한 몇몇 작은 마을의 집합체에 불과했습니다. 사람들은 세인트폴이 동부의 마지막 도시, 미니애폴리스는 서부의 첫 도시라고 말하곤 합니다. 미니애폴리스는 재개발과 현대적 건축 양식으로 도시를 재단장한 반면 세인트폴은 고전적 빅토리아 양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도시는 강으로 인한 물리적 분단으로 여러 측면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상호간의 끊임없는 유대는 두 도시 모두를 번성시킴과 동시에 이 혹한 지대에서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창조해냈습니다. 7번이나 우승한 골든 고퍼스 배구팀, 최근 창단된 바이킹스 축구팀, 명실상부한 야구팀인 트윈스 등은 경제적 번영과 주 정치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만들게 했습니다. 미네소타의 추위 속에서도, 두 도시 사이의 뜨거운 경쟁은 한 도시가 다른 도시보다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경쟁적인 성당 건설, 건축 블랙리스트, 심지어 인구 조사원의 납치 같은 해프닝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각 도시의 내부적 문제는 수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두 도시는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나, 비공식적인 분리와 차별의 뿌리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또한, 두 도시는 인구 감소와 노사분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도시는 미국의 주목받는 중서부 제조업 대도시들 사이에서 자신을 차별화시키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폭설, 토네이도, 파업, 폭동, 공업 쇠퇴와 냉전의 대결이란 풍파 속에서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시민들은 여전히 버텨내고 혁신합니다. 매일 밤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 보면 가장 밝은 별 북극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가 어떻게 되어가던, 쌍둥이 도시는 무슨 일이 일어나건 그 변화에 직면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 보스턴
    메사추세츠 주의 주도이자 뉴잉글랜드 최대 도시인 보스턴은 청교도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해 1630년 설립되었으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중 하나라는 영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도시는 미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잉글랜드 왕가에 대항한 혁명 기간동안 보스턴 학살, 보스턴 티 파티, 벙커힐 전투같은 주요한 사건들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도시는 북대서양에서 가장 바쁜 항구 중 하나로, 미국 사회를 형성한 첫 이주의 물결 중 하나로,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수많은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도착지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보스턴은 하버드 대학이라는 존재와 도시 거주자들의 다문화적 구성을 통해 자유주의의 보루로 남아 있습니다. 보스턴은 아일랜드 이민자들과 그 후손들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들 중 가장 중요한 가문은 조지프 케네디 시니어의 정치 경력 이후 민주당을 지배해 온 케네디 가문입니다. 케네디 시니어는 평가하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지만, 그는 미국에서 자유주의의 불꽃을 살려왔고, 자녀인 존과 로버트도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한 명이 대통령직에 오른다면 보스턴은 미국 최초의 아일랜드계 대통령의 탄생지가 될 것이고, 길고 풍부한 역사를 가진 도시에 크나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 샌프란시스코
    1848년의 골드 러시 이후 샌프란시스코는 북미 서부 해안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이고에 비해 규모면에서 뛰어났지만 미국 금융 및 문화 발전의 중심지로서의 중요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구불구불한 언덕과 철로가 늘어선 거리는 오랫동안 미국의 더 괴상한 요소와 싹트기 시작한 반체제 문화의 고향이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1950년대의 비트 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옆 도시에 곧 닥칠 일에 대한 힌트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시애틀
    퓨전사운드만의 수역, 군도 그리고 입구 아래 자리잡아 있는 중심도시 시애틀은 북서부의 보석입니다. 호황, 불황, 화재와 노동 소요 등을 겪어 온 시애틀은 대공황 기간동안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세계적인 무역 위축, 후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 격렬한 노동쟁의는 한때 번성한 도시의 해운교통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느리게 회복되던 도시는 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중단됨과 동시에 일본계 사회를 박살내버렸지만, 동시에 전쟁은 정부의 계약과 새로운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한때 벌목과 목재의 붐타운이었던 시애틀은 이제 제트기 시대의 산업과 풍부한 정부 계약의 지원아래 다시금 번창하고 있습니다. 새로 건설된 우주 첨탑은 도시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도시의 부수는 여전히 파괴되어 있습니다. 노동 쟁의의 온상이었던 도시는 동아시아 시장으로부터의 고립으로 인해 시애틀의 항구를 대공황 이전의 그림자로 남겨두었습니다.
    • 시카고
    오늘날 시카고는 오대호 지역의 산업과 경제의 중심지로, 미군이 사용할 전차와 비행기, 그리고 미국 시민들이 사용할 자동차와 건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철강이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요는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게 되었고, 시카고는 미국에서 가장 주요한 이민자들의 정착지가 되었습니다. 19세기 이래 시카고는 아일랜드계, 독일계, 동유럽계, 심지어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수집단같은 수많은 이들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면에는 레드라이닝, 블록버스팅같은 흑인 집단 관련 사회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 애틀랜타
    개척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특히, 애틀랜타 출신의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미국 흑인들이 직면해 있는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는 민권투쟁의 전면에 앞장서간 흑인이기도 합니다. 애틀랜타는 인종 문제에 시달리는 남부의 거울이지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할 지도 모르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며, 모든 흑인 시민들은 언젠가 그 도시를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할 수 있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 오마하
    오리건을 향한 오솔길을 개척하는 시기, 동부 사람들은 서쪽으로, 미지로 가득 차 있는 국경지대로 향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주리 강변의 꽃피는 마을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남은 탐험을 떠나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 작은 도시는 서부의 관문인 네브레스카주의 주도 오마하입니다. 오마하는 대평원 지대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도시이며, 30만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고 여전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도매상들로 가득한 협곡의 벽돌 건축 단지는 도시 경제를 주도하는 육류, 농산물 가공 산업이 집중되어 있으며, 오마하의 황금 들판엔 밀, 옥수수 등 다양한 곡물들이 자라나 도시를 감싸고 있습니다. 몇 리 떨어진 곳엔 네브래스카 주 최대 규모의 대학 네브래스카 대학이 있으며, 주의 최대 규모 축구팀 콘허스커스의 본거지이기도 합니다. 대초원에 해가 지면, 오마하를 자신의 고향이라 부르는 상당 규모의 흑인 인구들에 의해 개발된 음악 재즈와 블루스가 극장과 유흥업소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하늘에 뜬 먹구름이 폭우가 임박함을 보여주듯, 오마하는 현재 곤경에 빠졌습니다. 철도, 육류 가공 산업의 개편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며 흑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빈촌 노스사이드 지역의 대규모 해고 물결이 도시를 위협합니다. 네브래스카 주는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이나 노예제도 존재하지 않지만, 도시는 비공식적으로 지역 사회를 분리하는 레드라이닝 정책과 비공식적 협정을 통해 인종분리가 이루어져 왔고 최근에서야 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오마하의 백인-흑인 빈부격차는 전미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며, 인종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민권 운동의 촉매로 언제든지 폭발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1919년의 붉은 여름을 기억하자면, 그 폭발은 폭동, 린치, 유혈, 그리고 죽음을 의미할 겁니다. 오마하는 디트로이트, 톨레도처럼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져가고 있으며, 버밍엄이나 몽고메리처럼 인종 문제에서도 일촉즉발의 상황에 다가갑니다. 오마하의 운명은 도시 자체에 달려 있고, 국가 전체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마하의 미래는 미국이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을 겁니다.
    • 찰스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만큼이나 미국의 역사가 깊게 배여있는 도시는 많지 않을 겁니다. 찰스턴은 영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식민지들 중 하나로, 정착민, 사상가, 노예들이 이곳으로 모였습니다. 이후 미국 독립 혁명에서 최전선을 담당하였고, 남부연합군의 첫 발포를 통해 남북전쟁의 첫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찰스턴은 번영하고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했으나, 억압과 편견이라는 추악한 유산에거 결코 자유롭지 못한 남부의 대도시이기도 합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찰스턴은 갈등의 최전선이 될 것이고, 또다시 미국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될 것입니다.
    • 포틀랜드
    포틀랜드는 태평양 가장자리의 근처 윌라메트 계곡에 위치해 있으나, 이제 그 정체성의 기로에 선 듯 합니다. 이 도시엔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미국을 풍요롭게 함과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아시아계 집단들은 제도적, 사회적 편견 아래 고통받고 있기도 합니다. 포틀랜드 전역에 걸쳐, 백인계 주민들의 불만 조짐이 수면아래 모이고 있습니다. 도시가 점차 진보해가면서, 많은 사람들은 도시의 정체성이 변해가는 것에 불만을 표하고 있습니다. 상록수로 덮여있는 케스케이드 산맥이 시야에 들어올 때쯤, 도시를 돌아본다면 이곳이 성장해 가는 히피 운동의 핫스팟이 되어 있다는 점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겁니다. 포틀랜드의 미래가 어떻게 되건 간에, 분명 특이한 방향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 피닉스
    남서쪽의 비옥한 지역에 자리잡은 피닉스는 콜롬버스 이전 문명의 잿더미에서 일어나 광활한 사막과 인근 산을 향해 날개를 펼친 도시입니다. 한때 소박한 시골 지역에 불과했던 피닉스는 철도, 댐, 군사기지가 건설되고 기술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에어컨, 자동차라는 두 현대의 경이로움의 힘입은 피닉스는 20세기 미국 신도시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고층 빌딩들이 구름 속으로 높이 솟아있고, 들판엔 개발된 주택들이 무한히 뻗어있으며, 많은 집들이 마당과 차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미국의 주요 야구팀들은 프리시즌 날씨를 이용해 스프링캠프 훈련지로 이곳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피닉스는 자유의 땅이 아닌 현대의 형상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합니다. 오래 전 정착했던 부족의 땅은 끊임없이 개발되고, 자동차가 급증하면서 교통체증이 도시의 골칫거리가 되었으며, 골프장 너머에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소외받고 있습니다. 피닉스는 현대 미국의 축소판으로서, 이것이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이를 겁니다.
    • 솔트레이크시티
    1847년, 미국의 양대 기독교 세력인 개신교, 가톨릭으로부터 법적, 비사법적 위협을 끊임없이 받던 후기 성도교회 신도 14000명이 박해받지 않을 땅을 찾아 서쪽으로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월의 추위 속에서, 그들은 노부를 떠나 진흙탕을 헤치고 산을 넘어가면서 미지의 땅을 향한 트래킹을 이어갔습니다. 1847년 7월에, 모르몬 교도들은 솔트레이크 계곡 일대의 수역과 대분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브리검 영이 그 경치를 보자, 그는 자신들의 새로운 터전을 찾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미국은 3년 후 그 개척자들을 따라잡았으나, 몰몬 교도들은 그곳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식량의 부족, 혹독한 날씨, 무력 충돌, 질병 등에도 불구하고 몰몬교도들은 끈질기게 새로운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솔트레이크 시티는 미국 최대의 모르몬교 거주자 도시임과 동시에 후기성도교회의 본부, 그리고 거대한 솔트레이크 성전이 위치한 곳입니다. 이 종교는 해당 지역의 문화, 대학, 정치 등의 분야에서 사람들에게 체감됩니다. 미국의 그 어느 도시도 이곳만큼이나 통합되어있는 예배를 진행하진 못합니다. 그러나 서부의 교차로에 대해 이야기할때, 몰몬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20만 명에 달하는 미국인들의 문화를 무시하는 처사일 것입니다. 계곡 가장자리를 이루는 산맥의 절경은 이를 누리는 스키와 하이킹 장면들과 함께해서 타 지역과 비교 안 될 정도의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 휴스턴
    텍사스의 주도는 공식적으로 오스틴일 수 있으나, 텍사스의 진정한 심장이 어디에 있는 지는 모든 휴스턴 시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번잡한 오스틴도, 수박씨같은 유해 연기를 내뿜으며 시민들을 괴롭히는 지옥같은 댈러스도 아닙니다. 바로 따뜻하고 넓게 퍼진 도시 휴스터입니다. 텍사스 주민들을 이끌고 멕시코의 폭정 족쇄를 깨트린 혁명의 영웅 샘 휴스턴 장군의 이름을 딴 휴스턴은 론스타 주에서 계속해서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휴스턴은 자신을 차별화시킬 수 있는 비밀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900년 갤버스턴 허리케인의 유례없는 대파괴 이후, 폐허가 된 대도시 외곽에서 특이한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바로 석유, 셀 수 없을 배럴의 석유였습니다. 스핀들탑에서 처음 석유가 발견된 이래,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걸프만의 붉은 모래속 매장된 검은 황금을 찾기 위해 이 지역으로 몰려들어 탐욕스레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산업, 광산 도시였던 이곳은 기업가, 하층민, 동무 해안 개척으로 인해 피폐해진 대중들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혼돈과 소음으로 가득한 휴스턴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거대한 동상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낡은 청동 동상, 예술, 바로크, 기타 화려한 장식까지 말이죠. 휴스턴에 필요한 건... 오로지 휴스턴 뿐입니다.
-
【도입부 - 미합중국】

수 년 전, 나치의 폭정과 일본 섬들의 횡포 이야기가 나오기 전, 성조기는 다른 세계적인 아픔과 비슷한 것 위에 올라서 높고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광란의 20년대에 과소평가된 것들, 월스트리트 대폭락의 폭발, 여정을 떠난 대공황의 두려움 등등이 절름발이가 된 미국을 파괴하였습니다. 루즈벨트의 뉴딜 아이디어는 소련의 니콜라이 부하린이 내세웠던 아이디어와 비교되어 인기없고 묻혀지며 잊혀졌습니다. 그리고 민주당의 대표에 앨 스미스가 오르면서 당시 현직 대통령이였던 허버트 후버가 백악관에 계속 머물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36년 미국의 조지프 P. 케네디 행정부는 균형과 고립을 약속하며 연합국의 끊임없는 탄원에도 불구하고 나치가 일으킨 유럽 대륙에서의 전쟁에서 피하려 했습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평화와 고립 기조를 통해 대공황에서의 회복을 꾀하고 미국 경제를 부양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화와 안정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불명예의 날이 된 1941년 12월 7일, 미합중국은 진주만의 미국 함대들이 일본 제국 해군과 공군의 갑작스럽고 또한 고의적인 기습을 받는 것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해군이 퇴각하고 새로운 대통령이 집권하는 가운데,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해 자유의 횃불을 밀고 나갈 것이라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1945년 7월 4일 하와이 섬에서 일순간 섬광과 함께 이전에 공격받았던 진주만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태평양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월 말 역사상 미국의 최초의 대패와 함께 맺어진 일본과의 아카기 협정에서는 하와이 및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의 해군 기지를 일본의 통제 하에 두며, 추축국 가담국에 대한 말도 안 되는 금액의 배상금 지불 및 금수 조치 해제애 관한 항목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혼란스러운 1948년 선거에서 비틀거리는 국가를 두고 토마스 듀이가 당황하는 민주당과 싸웠으며 여기에 미국이 새로운 정치의 향방을 어떻게 시작할 지 다루어야 했습니다. 처음으로 열린 전후 선거에서 분노에 찬 미국인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현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을 비토하였습니다.

공화당을 향한 탈당 기조와 함께 거의 모든 상원 의석을 잃으면서 민주당은 필사적으로 생존할 길을 모색했습니다. 결국 상원의원 린든 B. 존슨과 같이 민주당 출신 공화당 의원의 급진적인 제안으로 대승을 거둔 공화당과 연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두 당이 정쟁 끝에 단결하여 공화민주연합을 결성함에 따라 미국은 잠시 동안 일당제 국가가 되었습니다

나치로부터 영국 방어선을 과감하게 지켜냈던 명장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공화민주연합 소속으로 첫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전세계에서 남은 민주주의 세력으로 경제적, 방어적 동맹인 자유국가기구를 만드는데 힘썼습니다. 하지만 아카기 조약에 반대해 하와이의 연합 재가입을 감독하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마지막 선언과 함께 미합중국은 오늘날 위험한 세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굳혔으며 신흥 정치 스타들이 미국의 가장 강력한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이제 1960년대에 들어서자 리처드 밀하우스 닉슨 대통령과 전 대통령 조지프 P.케네디의 아들인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부통령이 백악관의 지휘봉을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화민주연합은 더 이상 정계에서 도전할 자 없는, 확고한 우위에 선 상황이 아닙니다. 미국의 대공황이 지속되고 민권문제가 대중의 의식 속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일부 미국인들은 그들의 불만을 대변해줄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1947년 헨리 A. 월리스와 글렌 테일러가 창당한 국민진보운동은 진보주의의 등불이 되었으며, 1951년 조지 S. 패튼이 창당한 애국당은 강경 보수주의자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양당 모두 1952년과 1956년 총선에서 주를 석권하고 의석을 차지할 수는 있었지만 공화민주연합을 몰아낼 정도의 힘은 없었습니다. 하나로 합쳐진 반체제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 두 당은 국민진보당으로 합당한다는 대단히 논란이많은 결정을 내려 합쳐졌으며 이 프랑켄슈타인이 정치 운동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는 두고봐야 합니다

현재의 상황:

1962년 현재 리처드 닉슨은 미합중국의 대통령입니다. 참 다행이도 그에게 그가 해야 할 일은 엄청나게 쌓여 있습니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모든 미국인들이 전 계층의 사회 개혁을 원합니다. 적들이 차지하고 있는 하와이에서 공격적인 일본군이 섬 전역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며 새로운 위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민권법에 서명해달라고 애원하는 한편, 수많은 백인 남부인들은 이 법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이 만연해 있습니다. 우리와 독일, 일본 제국 사이 냉전이 다시 한번 뜨거워지기 시작하며 그의 나라를 세계 무대의 정당한 위치에 올려놓는 것이 닉슨 대통령의 일입니다.

자유를 위해!



1.1. 설정[편집]


TNO 세계관 최대의 초강대국. 1962년 시작 시점에서 대게르만국일본 제국의 폭정에 맞선 마지막 자유 민주주의의 보루를 맡고 있으며 OFN(자유국가기구)의 수장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긴 했으나 산업력과 경제, 군사력이 어디 간건 아니라서 항공모함을 무려 28척이나 운용하고 있다.

미국은 TNO 내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국가이다. 또한 정치적인 스펙트럼 역시 일본과 독일이 강경한 개혁 노선을 밟아도 각각 보수주의와 가부장주의가 최대인 반면 미국은 가부장주의부터 진보주의까지, 심지어는 공산주의나 국가사회주의 노선을 타는 것도 가능하다. 개발진 인터뷰에 따르면 선역도, 악역도 아니라고 한다. 어쩌면 마지막 악역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한다.[1]

프랭클린 D. 루스벨트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로 당선되긴 했지만 뉴딜 정책은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부하린의 경제 정책이 실패하는 모습을 보고 미국 국민들이 뉴딜 정책에 소극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공화당이 의석 수를 크게 늘리고 민주당에서는 남부 민주당원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뉴딜은 더 탄력을 잃었다. 이렇게 인기가 떨어진 루스벨트는 8년의 임기는 잘 마쳤지만 3선 도전까지는 무리수라고 생각해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고 대신 자신의 측근 해리 홉킨스[2]를 내보냈다. 박빙의 선거 끝에 공화당 내 온건파 토마스 듀이가 당선되었다. 듀이는 보수적인 정책을 펼쳤지만 경제는 오히려 루스벨트 시절보다 더 망가졌다. 외교적으로도 더 고립된 정책을 내세웠고 지원이 들어가지 않은 영국은 힘든 싸움을 펼쳐야했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을 피하려했지만 전쟁은 미국을 피해가지 않았다. 무너진 경제와 약체화된 영국, 소련, 그외 여러 우연이 겹치며 미국은 힘든 싸움을 지냈다. 1944년 대선에서 듀이 대통령은 전쟁 중에는 지도자가 유지되어야한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민주당이 제임스 A. 팔리[3]를 선출하자 당내 진보파인 헨리 A. 월리스가 진보당을 창당해 분열되며 생긴 어부지리 덕에 아슬아슬하게 재선되었다. 그러나 하와이에 떨어진 핵폭탄으로 미국은 결국 패전했다. 공화당은 패전의 책임으로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했고 특히 듀이가 속한 당내의 자유주의적 온건파는 완전히 멸망했다.

패전 후 미국은 급격한 정치 변동을 겪었다. 1948년 선거에서 민주당은 전쟁의 영웅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영입하며 공화당 로버트 A. 태프트를 상대로 압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지만 좌파는 헨리 A. 월리스의 진보당으로, 남부 민주당류 우파는 조지 S. 패튼의 국민당으로 갈라져나갔다. 아이젠하워의 임기가 끝난 1956년은 그런 혼란의 절정기였는데 민주당의 에스테스 키포버[4]가 승리하기는 했으나 4정당이 모두 선거인단을 얻으며 미국의 전통적 양당제가 완전히 무너졌음이 드러났다. 복잡해지는 정치적 셈법 끝에 공화당은 당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결정으로 옛 적수인 민주당에 접근했고 공동 선거연합인 공화민주연합(Republican Democratic Coalition,RDC)을 결성하게 된다. 이에 공화민주연합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낀 다른 세력들은 하나로 결집했고 반 공화민주연합을 위한 공동 선거연합 국민진보동맹(National Progressive Pact, NPP)을 결성한다. 공화민주연합과 국민진보동맹은 새로운 양당제를 형성한다.
리워크의 결과 대통령 닉슨은 침묵하는 보수주의(보수주의), JFK는 왕조적 자유주의(자유주의)로 변경되었다.[5]

  • 공화민주연합 / RDC: 공화당 민주당의 자리가 다시 현실과 비슷하게 바뀐 것을 제외하면 이전과 비슷하다.
    • 공화당: 현실과 동일하게 보수주의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넬슨 록펠러 류의 리버럴한 공화당원(자유보수주의)은 듀이 덕분에 현실보다 훨씬 빨리 무너졌다[7]. 64년 대선후보 베넷과 68년 대선후보 골드워터 둘 다 보수파고 72년이 되어서야 조지 롬니가 대선 후보로 나올 수 있을 정도. 좀 더 국내에 집중하기 때문에 외교적으로는 소극적인 편.
      • 주요 공화당원: 리처드 닉슨, 월리스 F. 베넷, 배리 골드워터, 조지 W. 롬니, 도널드 럼즈펠드. 넬슨 록펠러[6]
    • 민주당: 현실과 동일하게 자유주의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딕시크랫이 죽진 않았다. 사민주의 계열은 진보당으로, 딕시크랫 계열은 국민당으로 많이 빠지면서 현실보다 정치적 스펙트럼은 좀더 좁아졌다. 외교적으로는 파시즘에 대항해 적극적으로, 때로는 더러운 수까지 써서 해외 개입을 하기도 한다.
      • 주요 민주당원: 존 F. 케네디, 딘 러스크, 린든 B. 존슨[8], 필립 하트[9], 진 커크패트릭[10], 조지 맥거번, 리처드 러셀 주니어[11], 휴버트 험프리
    • 내부 파별
      • 공화당 강경파(공화당): 작은 정부와 주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파별이다. 수장은 베리 골드워터, 골드워터가 대통령이 되면 윌리엄 E. 밀러[12]가 후임 수장이 된다.
      • 책임공화당(공화당): 정부의 책임과 공정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파벌이다. 수장은 넬슨 록펠러. 공민련 내부 4개 파별 중에서 유일하게 수장이 바뀌지 않는 파별이다.
      • 노동민주당(민주당): 뉴딜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파별이다. 수장은 린든 존슨, 존슨 또는 하트가 대통령이 되면 휴버트 험프리가 후임 수장이 된다.
      • 딕시크랫(민주당): 남부의 권익을 옹호하고 인종차별에 우호적인 파벌이다. 수장은 리처드 러셀 주니어, 러셀 이후에는 제임스 이스트랜드가 후임 수장이 된다.

  • 국민진보동맹 / NPP: 공산주의자와 국가사회주의자를 같은 당으로 묶는건 아무리 해도 무리라고 받아들여졌는지 선거 연합 정도로 개편되었다.
    • 미국 공산당: 이전의 좌파. 이념은 공산주의.
    • 진보당: 이전의 중도파. 이념은 진보주의. 헨리 월리스와 버튼 휠러[14][15]등 진보주의자들이 세웠다. 국내적으로는 민주당보다 적극적인 복지를 주장하고, 외교적으로는 개입주의 성향이 강하지만 민주당처럼 무리한 수까지 가지는 않는다.
      • 주요 진보당원: 로버트 F. 케네디[13], 헨리 M. 잭슨
    • 농민노동당: 현실에도 존재했던 미네소타 민주노동당[16]. 카이저라이히에서 민주정당 단일화 후보로 등장하는 플로이드 올슨 미네소타 주지사가 이 당 소속이었다. 민주사회주의와 좌익 표퓰리즘 성향.
    • 노스다코타 무당파 연맹: 노스다코타의 지역 좌파정당. 노스다코타의 농민과 상인들을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현실에서는 1920년대에 공화당과 연대하다가[17] 이후 민주당과 합당해 노스다코타 민주무당파연맹을 형성했다.
    • 뉴욕 자유당
    • 국민당: 이념은 가부장주의. 조지 패튼과 해피 챈들러가 설립자. 주요 계파는 신보수주의파(Neocon)[20]고보수주의파(Paleocon)[21].
      • 주요 국민당원: 커티스 르메이, 필리스 슐래플리, 제리 팔웰[18], 존 B. 앤더슨[19]
    • 주권당: 주의 권리와 인종분리를 중요시하는 딕시크랫.
      • 주요 주권당원: 조지 월리스, 스트롬 서먼드, J. 윌리엄 풀브라이트[22]
    • 루이지애나 진보당: 휴이 롱의 정책에 영향을 받아 복지 확대랑 내셔널리즘을 지지한다. 루이지애나 주권당과 동맹 관계이지만, 인종분리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
    • 뉴욕 보수당: 현실의 뉴욕 보수당. 미국의 유명 보수논객인 윌리엄 버클리[23]제임스 버클리[24] 형제가 이 당의 주요 후원자이자 당원이었다.
    • 전미 국민 돌격대: 이전의 요키파. 국가사회주의.
    • 국민 주권당: 현실에서는 KKK 계열 백인우월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극우 남부 지역정당이었다. 흑인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벌이던 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등, 정상적인 형태의 정당은 아니었고 이 정당의 구성원들이 이후 민주당에 가입해 기득권 세력을 위협하기도 하였다.

1.2. CIA[편집]


전 세계에서 공작을 벌일 수 있는 미국의 첩보 디시전 시스템. 작전을 실행하기 위한 예산은 매년 초 할당되며, 필요하면 추가 예산을 직접 충당하여 넣을 수 있다.

RDC로 플레이할 시 NPP의 지지도를, NPP로 플레이할시 RDC과 NPP의 극단적 정치 세력들의 지지도를 깎을수 있다. 또한 정보 분석 작전을 통해 숙련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
'친미 정서 강화' 작전은 수행 완료 시 소정의 정치력을 얻어오기 때문에 종종 사용되고 있다.
중앙아메리카와 마찬가지로 친미 정서 강화 작전과 미국 기업 이익 수호 작전이 존재하며, 브라질 상원과 대통령 선거에 개입할 수 있는데, 사실상 UDN과 친 OFN인 라세르다를 지원하는 디시전만 쓰이며 리세르다가 100일 위기를 통해 대통령으로 집권하면 OFN에 가입한다[25].
독일 내전시 영국 HMMLR과 노르웨이 저항군, 세르비아 저항군을 지원하며, 이베리아 연방에겐 정권 안정을 위한 자금을 지원한다.
석유 파동 발생시 중동에 있는 친미 세력을 지원하기 위한 작전들이 해금된다.
일본의 자세한 내부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요원들을 파견한다. 대한민국 독립군에게 자금을 보내는 작전도 있다.
말레이,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같은 국가들에 친미 정권을 수립하여 일본판 도미노 이론을 만들수 있다.
호주 정보기관과 협동 훈련을 실시하여 숙련도를 올릴 수 있다.
군벌 국가일시에는 마가단 자유국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다. 말이 자유국이지 사실상 파시스트 국가이기 때문에 해당 국가를 왜 지원하는가 할수 있지만, 마가단 스스로 아무르에 대항하여 미국이라는 새로운 지원국을 선택하였고 하얼빈계 파시스트 세력 중 아무르에 비해서 반독적 성향이 뚜렷했으며 태평양을 경유하여 지원이 용이하다는 특징 때문에 파트너로 선택된 것으로 여겨진다.[26] 이후에 일부 민주 세력이나 기타 반독 성향의 군벌을 지원할 수도 있다. 이외에도 시베리아 흑색연맹(옴스크)를 지원하기도 하는데 이는 시베리아 흑색 연맹의 폐쇄성으로 인해 미국 내에서 '시베리아 흑색 연맹은 민주 세력이지만 일단은 러시아의 안정화와 독일에 대한 저항을 위해 일시적인 군사 독재 체제를 택하는 군벌'이라고 와전되어 알려져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앙시베리아 공화국(톰스크)처럼 진짜로 민주주의 및 자본주의 체제가 돌아가는 친미 국가[27]들은 미국에선 관심 밖이라는 것이다.[28]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영국계 정권을 지지할 수 있다.

현재로는 대부분의 작전들이 실질적 효과를 주는지 명확히 확인이 되지 않아 잘 사용되고 있는 시스템은 아니지만[29], 몇몇 작전이 효율이 있어서 간간히 사용되는 중이다. 예시로 닉슨 대통령 시절의 중점은 대부분 해외 계획 중점 소모에 사용되는데, 이와 관련된 대상국들이 구체적인 지원을 받는 작전 디시전이 해금되어 차후의 분쟁 때 조금의 도움이 될수 있다.

TT 업데이트 이후엔 대리전 시스템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CIA 관련 대리전 이벤트 분량이 크게 추가되면서 중요성이 크게 늘었다. 어글리 아메리칸 업데이트 이후로는 CIA와 대리전 창이 아예 독자적인 UI가 구현되어 디시전 창에서 분리되었다.

1.3. 주요 외교전, 대리전 이벤트[편집]



  • 말레이 내전 - 게임 시작부터 친펑이 이끄는 말라야 항일연합전선과 일본 제25군이 전쟁중이다. 해당 이벤트에서 인도와 미국이 말레이를 지원중이다.[30] 말레이 지원 포커스를 진행시키거나 항일세력이 클랑 항구를 점령하면 자원병을 보낼 수 있으며, 내전에서 승리하면 CIA를 이용해 선거[31]에서 툰 압둘 라작(보수주의)의 친미 성향을 가진 정권을 수립하고 OFN 옵저버로 편입시킬 수 있다. 내전이 장기화되면[32] 처음 판도로 화이트피스를 체결하며 분단되고 경제권에만 가입한다.

  • 2차 말라가시 봉기 - 프랑스령 마다가스카르에서 질 안지아마하주를 중심으로 봉기가 일어난다. 이미 영향력을 상실한 프랑스를 대신해 독일이 개입하여 봉기를 진압하려 하자, 미국은 일본과 함께 이를 방해하기 위해 반군을 간접적으로 지원한다.[33] 전후 개최되는 선거에서 PADESM을 지원하여 이끄는 친미정권을 수립할 수 있으나, 만일 사회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을 시엔 가브리엘 라마난초아를 사주해 쿠데타를 시도할 수도 있다.[34] 이후 석유파동의 직격탄을 맞은 마다가스카르 정부가 미국에 경제원조를 요청하는데, 이를 무시할 시 부분적으로 정부가 말라가시 혁명당에 의해 전복될 수 있다.

  • 필리핀 내전 - 말레이 내전이 끝나고 CIA를 통해 미국 잔당인 USFP과 접촉할 수 있으며 USFP를 지원하여 필리핀 내 일본군을 축출할 수 있다. 내전이 끝나면 필리핀 재건이 시작되며 재건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친미성향을 가진 정권을 포섭하였다면 OFN에 가입한다. 재건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35] OFN에서 탈퇴하고 독재 정권이 들어서며 독자노선을 걷게 된다.

  • 인도네시아 내전 - 디시전을 통해 인도네시아인들의 반란과 투쟁을 지원한 것에 힘입어 인도네시아인들이 친일독재 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게 되자 미국은 인도네시아인들의 반란을 지원하며 일본을 견제하게 되는 대리전 이벤트. 인도네시아와 가장 가까운 동맹국 호주 또한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기 때문에 대리전을 함께 지원한다. 정상적으로 대리전에서 승리할 시 모하맛 하타가 이끄는 친OFN 정부가 들어서나, 내전이 너무 오래 이끌어질시엔 줄키플리 루비스와 수하르토가 쿠데타를 일으켜 내전을 강제로 종료하고 이전에 비해 열강과 관계가 훨씬 데면데면해지는 찝찝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나마 줄키플리 루비스가 OFN에 조금 동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다행일 정도.

  • 푸에르토플라타 침공/도미니카 내전 - 트라움비라투스 붕괴 이후 주요 외교라인이 끊어져 이베리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들에게서 고립된 트루히요 정권에 대해서 미국과 쿠바, 멕시코는 합동으로 반파시즘 용병대인 '카리브 군단'을 투입하여 전복을 꾀하려 한다. 전투에서 승리하고 카리브 군단의 임시정부를 제대로 제어할 시 도미니카에 민주주의 정권을 설립시킬 수 있으나, 패배할 시 군단 소속 미국인들을 구해내기 위해 굴욕적인 협상을 치르거나 승리하더라도 제어를 못할 시 카리브 군단 내 사회주의 쿠데타가 발발해 다 된 밥에 재가 뿌려지는 굴욕적 경험을 하게 된다. 전황이 도미니카에 불리하게 흘러갈 시 도미니카 공화국의 대통령 호아킨 발라게르가 쿠데타를 벌여 트루히요를 제거하고 정전을 요청하는데, 이를 받아들일 시 발라게르의 주선을 통해 이베리아와의 외교적 데탕트가 가능해진다. 다만 이 경우 카리브 군단을 주도하는 국가 쿠바와 멕시코에서 반발이 이는 단점도 있다.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일정 기간 휴전을 거치고 다시 전쟁을 치른다. 아이티가 친미 정권을 유지한 채로 도미니카가 쳐들어올 경우도 있는데 이때 아이티가 승리한다면 도미니카 공화국에 미국 군정이 들어선다.

  • 콜롬비아 내전 - 1954년 호르헤 가이탄 콜롬비아 대통령의 암살 이후 콜롬비아에선 권위주의 정부, 친파시스트 반군 등이 날뛰는 혼란이 벌어진다. 3세력으로 나뉘어진 내전은 일단 1956년 임시 휴전이 맺어지며 잦아드는 듯 했으나, 1964년 12월 일본의 지원을 받는 누에바그라나다, 이베리아의 지원을 받는[36] 콜롬비아 정부군, 그리고 진보 세력을 결집시킨 콜롬비아 혁명연합이 내전을 다시 벌이기 시작하고, 바랑키야를 중심으로 독일의 지원을 받는 국가사회주의 팩션 제2애국군이 내전에 가세한다. 자신들의 앞마당에 또다른 친파시스트 정권이 세워지기 싫어하는 미국은 비록 좌파 성향의 단체이지만 친미 스탠스였던 가이탄의 유지를 이으려 하는 혁명연합을 베네수엘라와 함께 지원하게 된다.[37] 미국의 지원을 받아 승리하면 좀 더 온건적인 사민주의로 스탠스를 바꾸고 OFN에 가입한다.[38] 한편 제2애국군이 내전에서 승리할 시 민주파 세력 잔당들이 규합한 연합민주전선, 아리오크리오이스모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콜롬비아 자유국과 독일식 정통 국가사회주의를 신봉하는 국가사회주의동맹간의 2차 내전이 벌어지는데, 전자 2세력은 임시적으로 휴전을 벌여 공동의 적 국가사회주의 동맹을 우선 이기려 한다 2차 내전에서 이들이 승리하면 3차 내전을 다시 벌인다. 그동안 미국은 연합민주전선에 지원을 보낼 수 있다. 한편 콜롬비아 공화국이 내전에서 승리하면 박살나있던[39] 미국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

  • 아이티 내전 - OFN에 정식으로 가맹해 있지만 부패한 지배층에 의해 비틀거리던 구성국 아이티에서 민족해방인민당(PPLN)이라는 반군이 카프아이시앵 일대에서 봉기한다.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상대 강대국은 없으나, 직접적인 개입이 불가능한 상황 상 간접적인 지원을 통해 디시전으로 치루어지는 수 년간의 내전 컨텐츠를 풀어나가야 한다.

  • 아이티 전격전 - 트루히요 정권이 존속해 있는 경우 도미니카군은 아이티의 혼란한 상황을 기회로 삼아 히스파니올라 섬 전체를 병합할 목적으로 아이티를 침공한다. 미증유의 재난에 미국, 아이티 정부, 민족해방인민당 3세력이 단합하여 도미니카군의 진격을 막아내려 한다. 20일이란 짧은 시간 내에 방위를 성공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 내전을 벌이던 정부군과 민족해방인민당 사이의 타협의 발걸음이 될 가능성도 있다.

  • 서인도 위기 - 푸에르토플라타 개입 이후 서인도 연방의 주요 구성국인 자메이카의 독립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하며, 미국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서인도제도 일대의 미국 패권을 흔들기 위해 일본과 독일이 독립 세력을 지원한다. 독립 유무에 관한 선거를 개최하건 않건, 서인도제도 경제의 가장 큰 기반이 되는 자메이카의 연방 잔류를 위하여 미국은 위기를 조절해야 한다. 끝내 자메이카가 연방에서 탈퇴하면 트리디나드토바고를 중심으로 연방을 개편할 지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으며, 트리니다드토바고마저 탈퇴할 시 나머지 '리틀 텐'을 미국의 종속국으로 연방을 유지시킬지, 좀더 연방을 독립적으로 운용할 지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다

  • 인도 승인 및 지원 - 닉슨 행정부에서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를 승인하고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게 되며 인도에서 사업과 투자를 통해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다. 예전에는 인도 국가들이 내전을 벌였지만 현재는 삭제된 상태라 그 이상의 콘텐츠는 없다.

  • 영국 내전 - 직접적으로 내전에 개입할 수는 없지만 외교전과 일부 사건을 통해 지원할 수 있으며, 저항 세력이 승리하고 정권이 들어서면[40] 얼마 후 OFN 회원국들 간에 투표가 벌어지고 최종적으로 미국이 이를 인정하면 OFN의 독립회원국으로서 가입한다.

  • 남아프리카 전쟁 - 현실의 베트남 전쟁 포지션을 맡고있다. 독일 내전이 발생할 즈음 보어인들이 남아프리카 연방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고 아프리카의 국가판무관부들이 이들을 지원하면서 벌여지는 미국과 독일의 대리전 이벤트. 플레이어는 남아프리카를 다각도로 지원하며 아프리카의 마지막 민주주의 보루인 남아프리카 연방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 미국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경우 아프리카의 국가판무관부들이 붕괴되고 중앙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 일대까지 OFN의 위임통치령이 들어서게 된다.[41] 반대로 남아프리카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 남아프리카 연방은 붕괴되고 미국은 황급히 대사관 직원들과 체류 국민들을 철수시키게 되고 OFN 내에서의 위신도 실추되어 버린다. 한편 독일의 제안으로 보어 공화국의 독립을 보장하는 종전, 또는 전쟁 전의 현상유지성 종전의, OFN 주도의 남아프리카 국경 확장 종전루트도 존재한다.

  • 서아프리카 전쟁 - 남아프리카 전쟁이 종료된 이후 일본의 지원을 받는 범아프리카주의 이념의 카메룬에 대항하여 서아프리카의 패권을 다투는 자유 프랑스를 지원하며, 만일 자유 프랑스가 패배할 시에는 남아있는 친 OFN 성향의 라이베리아와 멘데(시에라리온)국을 지원할지에 대해 선택할 수 있다.

  • 아프리카의 혼돈 - 남아프리카 전쟁 이후 OFN 위임통치령의 통치체제에 불만이 쌓이게 될 경우 벌여지는 반란 이벤트. 직접 플레이해서 아프리카의 국가를 독립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OFN의 통치체제로 AI에게 위임시키면 안정도가 날이 갈수록 감소하고 미국 국내에서도 반대 시위가 일어나면서 디버프를 받는다. 이 때문에 남아프리카 전쟁의 가장 실용적 승리법은 OFN 주도 휴전으로 끝내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아프리카실트가 승리해도 대아프리카 국가령의 경우 무조건 발생하며 이후 일부 국가의 내전에 개입할 수 있다.

  • 콩고 내전

  • 앙골라 내전

  • 이탈리아의 OFN 가입 - 이탈리아가 미국 주도의 OFN과 일본 주도의 대동아공영권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 되자 미국과 일본이 치열하게 외교전으로 영향력 경쟁을 하는 이벤트. 미국이 외교전에서 승리하게 될 경우 이탈리아는 OFN에 가입하고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서게 된다.

  • 프랑스 내전 - 프랑스국이 붕괴하거나 자유 프랑스가 프랑스 본토로 개입하면 프랑스 여기저기에서 레지스탕스가 들고 일어나며 내전이 발생한다.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승리하면 프랑스 공화국을 선포하고 OFN에 가입하며, 자유 프랑스가 서아프리카 전쟁에서 승리했을 경우 자유 프랑스도 레지스탕스를 지원하며 승리 이후 드골이 본토로 복귀한다. 이후 드골이 망명했던 코트디부아르는 독립하며 나머지 서아프리카 국가들과 함께 서아프리카 연방에 참여한다.


  • 2차 프랑스-부르군트 기사단국 전쟁 - 프랑스국이 이탈리아 편을 든 상태에서 이탈리아가 OFN에 가입했거나 자유 프랑스가 프랑스국을 축출하고 OFN에 가입했을 시 70년대에 발생하는 전쟁. 부르군트가 붕괴된 후 사태가 진정되면 얼마 후 독일이 부르군트를 공격하고 곧 프랑스 또한 OFN과 함께 부르군트를 공격하게 된다. 전쟁이 프랑스의 승리로 끝나면 프랑스가 부르군트가 지배하던 지역을 어느 정도 돌려받을지,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지대를 비무장화 시킬지 독일과의 협상을 통해 정할 수 있다. 프랑스가 돌려받지 못한 지역엔 독일이 프랑크라이히 조약판무관부를 세운다. 프랑스국이 이탈리아 대신 독일 편을 들었을 경우에는 프랑크라이히 조약판무관부가 세워지지 않고 독일이 프랑스 영토 대부분을 반환해준다.

  • 석유 파동 - 중동 여러 국가에서 내전이 발생하며 위기가 발생하고 우호적인 국가들에게 각종 지원을 하고 OFN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타 대통령은 중점으로 필립 하트는 디시전으로 차차 완화해 나간 후 최종적으로 제거하는게 가능하다.





  • 수단 공화국 내전 - 수단이 이집트에게서 독립함과 동시에 내전이 발생한다.


  • 이란 내전 - 오일 쇼크가 일어난 이후 이란이 내전에 빠지면 미국이 남부의 이란 민주 공화국에 지원과 의용군을 보낼수 있으며, 도움을 주는 중점도 따로 열린다. 내전에서 승리하면 이란은 OFN에 가입한다.

  • 미일간 조차지 반환 협상 -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일본이 미국에게서 뜯어낸 샌프란시스코, LA 항구의 미국 반환 여부를 두고 벌이는 미국과 일본간의 조차항 협상. 회담 장소를 어디에서 개최할건지에서 시작하여 조차항을 대가로 일본에게 제공할 석유의 양, 조차항의 비무장/무조건 반환의 여부를 정하게 된다. 성공한다면 지지율이 크게 오름과 동시에 석유를 대가로 샌프란시스코, LA 항구를 되찾게 된다. 또한 하와이와 알류샨 열도도 조차항 반환에 성공한다면 2차전 협상을 통해 수복 가능하다. RDC 대통령은 집권 2기에, NPP 대통령은 외교 포커스로 찍을 수 있다.

  • 스테니스 장관의 사망 - 마가렛 체이스 스미스 행정부에서 숨겨진 트리를 간 뒤 Wag The Dog 트리를 탈 시 발생한다. 존 스테니스 장관이 남중국해에서 일본에게 격추당하여 사망한다. MCS 행정부는 일본과 대립하게 되는데 여기서 일본이 먼저 굽히면 NPP - FR의 인기가 늘지만 미국이 먼저 굽히면 요키파의 인기가 늘어나고, 둘다 끝까지 굽히지 않을시 핵전쟁이 발발한다.

  • 아이슬란드 위기

1.4. 민권법[편집]


명실상부 TNO 세계관 미국의 가장 핫한 사회적 이슈. 경제와 더불어 해당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미국 내정의 핵심이라고 보면 된다.

해당 법안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같은 꿈도 희망도 없는 인종분리 국가를 만들 수도, 운터멘쉬? 21세기 현대 선진국에서도 아직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평등 국가를 건설하는 것도 가능하다.

민권법의 배경이 되는 짐 크로우 법은 1876년 남부 11개주를 중심으로 제정된 법으로, 공공장소에서 흑백 분리를 강제하는 법안이다. 여러 논란을 낳으면서도 어찌어찌 생명력을 유지해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커져가는 소수자들과 진보성향 운동가들에 의해 계속해서 공격받았고 그 결과 덮어놓고 지켜보는게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소수자들과 진보 성향 운동가들은 민권법 가결을 통한 짐 크로우 법 철폐를 위해, 딕시크랫등 보수 성향 사람들은 현상 유지를 위해 서로 세력을 과시하며 미국의 국력을 좋지 못한 쪽으로 낭비하고 있는 상황. 이는 '짐 크로'라는 부정적인 국가 정신으로 구현되어 있으며 차후 민권법 제정을 통해 제거할 수 있다. 당연히 민권법이 폐지되면 짐 크로 국가 정신도 부활하게 된다.

RDC와 NPP 대통령 후보자들은 이 상황을 영구적으로 해결할만한 자신만의 방안을 마련해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게임 시작 지점 대통령인 닉슨이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중립을 택한 덕에[42] 구멍이 숭숭 뚫리긴 했으나 아주 기초적인 내용을 다룬 명목상의 민권법이 발의되어 표결을 준비하고 있다.

이후 선출되는 대통령의 행보에 따라 이 민권법을 강화할 수 있고 약화, 또는 폐지할지 결정할 수 있다. 민권법은 1단계인 명목상의 민권법부터 6단계인 혁명적인 민권법까지. 총 6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파시스트인 요키 전용 0단계 민권법과 공산주의자인 홀 전용 7단계 민권법이 더미데이터로 존재하지만 게임상으로 제대로 구현되지는 않았다.

1964년 NPP 대선 후보 조지 월리스는 민권법 폐지를 넘어 아예 인종분리 강제정책을 시행할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LBJ 행정부 때 1964년 미국 연방 민권법을 가결시키며 짐 크로우 법을 무력화시켰다.

  • 명목상의 민권법(1단계)

"민권 문제는 겨우 해결되었습니다. 새로운 민권법은 인종, 피부색, 종교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권자 등록법에서 인종 간의 불평등한 적용을 금지하며 학교, 고용시설, 개인 숙박시설에서 인종분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을 통과시키고 서명함으로써 의회와 대통령은 마침내 수년 전 이루어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을 지지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짐 크로가 패배하였습니다.

불행하게도, 세부 사항의 여지라는 이름에서 악마가 등장하는 법입니다. 이 법의 악마적인 성격은 바로 법에 있는 각 조항을 집행하도록 강제하는 수단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법으로 설치된 평등고용기회위원회는 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수사만 가능하며 이후 소송을 위해서는 법무부에 회부에 소송을 요청해야만 합니다. 이런 관료적인 과정은 굉장히 느리고 민권 집행의 책임을 무감각한 연방 사법부에 맡겨버리는 일입니다. 흑인 사회의 수많은 이들은 이 법이 수 세기 동안 노예제와 인종 차별의 영향을 다루는 데 충분히 효과가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킹 목사님 제발 입 좀 닥치세요"에만 쓰기 위해 통과된 법이라고 취급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아에 이 법이 없는 것보다는 그나마 낫다는 건 다들 동의하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안정도: +5%
기타 비용(% GDP 기준): +0.30%
시작 지점 상원 표결을 눈앞에 두고 있는 법안. 닉슨 대통령의 사회 분야 정책의 화룡점정으로 상원 통과 자체는 확정이지만[43] 닉슨의 거부권 행사라는 마지막 변수가 남아있는 상황.

마틴 루터 킹의 연설 이벤트를 통해 '녀석들에게 꿈이 있습니다.'중점이 자동으로 통과되고 나면 부통령인 케네디 주도로 민권법을 가결시킬지 대통령인 닉슨이 거부권을 행사해 민권법 제정을 막을지 선택할 수 있는데 선택에 따라 1964년 NPP 대선 후보가 자동으로 결정된다.

민권법을 가결시킬 경우 이에 반발한 딕시크랫계열 유권자의 힘이 집중되어 NPP 국민파 소속 조지 월리스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고, 민권법이 부결될 경우 RDC에 실망한 RFK가 RDC를 탈당. NPP 진보파로 당적을 옮기고 대선 후보에 선출되어 RDC와 맞서게 된다.

법안의 취지는 훌륭하지만 분리주의자들과 애매하게 타협하는 바람에 세부 사항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다는 결점이 존재하는 법안이다. 조항의 집행을 강제하는 수단도 거의 없고 법을 어긴다고 해도 수사할 수단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정해놓지 않았다. '킹 목사님 제발 입 좀 닥치세요.'라는 입막음 용도 외에는 의미가 없는 법안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때문에 민권법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민권법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법안이다. 이후 당선되는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기를 쓰고 해당 법안을 개정하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 기본적인 민권법(2단계)

"새로운 민권법은 인종, 피부색, 종교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권자 등록법에서 사람에 따라 불평등하게 적용하는 것을 금지하며 학교, 고용시설, 개인 숙박시설에서 분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법에서는 소수민족의 선거권을 박탈한 이력이 있는 행정 구역은 투표법을 변경하기 전에 미국 법무장관의 승인을 무조건 받도록 하는 조항이 있는 등 흑인의 투표권을 집행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들도 있습니다. 여기에 일시적으로 글쓰기 시험을 금지시켜 조작된 시험을 통해 투표장에 흑인을 배제시키는 방법을 막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이 법은 사회 진보를 위한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효과적이고 강력한 방법을 통해 이제 남부의 학교와 직장에서의 분리가 금지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흑인 사회는 아직 우리들은 해야 할 더 많은 일이 남아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해낸 것으로도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안정도: +5%
기타 비용(% GDP 기준): +0.60%
민권법에 보수적인 대통령 또는 적대적인 상원을 파트너로 하는 대통령이 사회 통합을 위해 마지못해 최소한의 타협을 한 법안. 타협이라고 표현되어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민권법 가결을 막으려는 이들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법안이다. 실망한 진보 측 유권자들이 대거 등을 돌릴 정도.

명목상의 민권법에 더해 소수민족의 투표권을 강력하게 보장해주는 조항이 담겨있다. 흑인 사회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정도만 해도 다행이다라고 여기고 있는듯.

  • 효과적인 민권법(3단계)

"새로운 민권법은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권자 등록법에서 사람에 따라 불평등하게 적용하는 것을 금지하며 학교, 고용시설, 개인 숙박시설에서 분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법에서는 소수민족의 선거권을 박탈한 이력이 있는 행정 구역은 투표법을 변경하기 전에 미국 법무장관의 승인을 무조건 받도록 하는 조항이 있는 등 흑인의 투표권을 집행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들도 있습니다. 여기에 일시적으로 글쓰기 시험을 금지시켜 조작된 시험을 통해 투표장에 흑인을 배제시키는 방법을 막도록 조치하였습니다. 또한 처음으로 수많은 권리장전 조항을 집어넣으면서 미국 원주민에 대한 보호 조치도 같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언어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며 선거 자료는 영어와 스페인어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민권 보호 대상에 여성까지 확대함으로써 많은 분석가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 법이 출산 휴가, 여성의 스포츠 참여, 군 입대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들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법은 학교의 분리 금지를 강력한 방법으로 짜고 있으며 분리된 학군을 통합하기 위한 일정을 짜고 있습니다. 흑인, 미국 원주민, 히스패닉계 미국인들은 이 획기적인 법안에 사회 정의의 승리라고 축하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민권법에 더해 권리장전 조항을 다수 삽입해 아메리카 원주민을 보호하고, 언어 소수자 차별을 없애기 위해 선거 자료에 스페인어등을 포함시키는 조치등이 추가되고 민권 보호 대상에 '여성'을 포함시키는 성과를 냈다. 소수자는 물론이고 여성들까지 이 법안을 사회 정의의 승리라고 축하할 정도.

베넷처럼 타협을 중시하는 대통령이나 상원이 썩 우호적이지 않을 경우 낼 수 있는 중도적인 민권법이다. 너무 급진적이지도 않고 여성을 민권 보호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의 성과를 낸 덕에 게임 내 효과는 차치하더라도 설정상 취급 자체는 좋은 편이다.

  • 강력한 민권법(4단계)

"새로운 민권법은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권자 등록법에서 사람에 따라 불평등하게 적용하는 것을 금지하며 학교, 고용시설, 개인 숙박시설에서 분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법에서는 소수민족의 선거권을 박탈한 이력이 있는 행정 구역은 투표법을 변경하기 전에 미국 법무장관의 승인을 무조건 받도록 하는 조항이 있는 등 흑인의 투표권을 집행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들도 있습니다. 여기에 일시적으로 글쓰기 시험을 금지시켜 조작된 시험을 통해 투표장에 흑인을 배제시키는 방법을 막도록 조치하였습니다. 또한 처음으로 수많은 권리장전 조항을 집어넣으면서 미국 원주민에 대한 보호 조치도 같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언어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며 선거 자료는 영어와 스페인어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법은 특정 거주 지역의 분리화를 원천 차단하며, 특정 교외 지역의 게토화와 백인층의 집단 교외이주와도 맞서기 위한 규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강력한 법은 인종 불평등의 근원에 강력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웃간에 서로 떨어져 사실상 분리되어 살아온 문제를 해결하면서 이제 서로를 고객이나 회사 동료가 아닌 이웃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법으로 새롭게 권한을 부여받은 미국 국무장관은 남부 사회의 모든 지점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진보주의자와 소수계층은 이 법이 미국의 진정한 정의가 나타난 것이라고 환호하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안정도: +7.5%
기타 비용(% GDP 기준): +1.5%
보수적 성향의 대통령이 낼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민권법이자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입맛에 맞게 개정된 민권법.

타협의 산물이 아닌 명백히 진보주의자와 소수자들의 편을 든 법으로 효과적인 민권법에 더해 거주 지역 분리를 원천 차단하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인종 불평등의 근원에 강력한 타격을 주었다'라거나 '서로를 고객이나 회사 동료가 아닌 이웃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등의 긍정적인 묘사가 특징인 법안이다.

  • 급진적인 민권법(5단계)

"새로운 민권법은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권자 등록법에서 사람에 따라 불평등하게 적용하는 것을 금지하며 학교, 고용시설, 개인 숙박시설에서 분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법에서는 소수민족의 선거권을 박탈한 이력이 있는 행정 구역은 투표법을 변경하기 전에 미국 법무장관의 승인을 무조건 받도록 하는 조항이 있는 등 흑인의 투표권을 집행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들도 있습니다. 여기에 일시적으로 글쓰기 시험을 금지시켜 조작된 시험을 통해 투표장에 흑인을 배제시키는 방법을 막도록 조치하였습니다. 또한 처음으로 수많은 권리장전 조항을 집어넣으면서 미국 원주민에 대한 보호 조치도 같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언어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며 선거 자료는 영어와 스페인어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법은 특정 거주 지역의 분리화를 원천 차단하며, 특정 교외 지역의 게토화와 백인층의 집단 교외이주와도 맞서기 위한 규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가로 이 법은 남부만이 아닌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 철폐 조치를 확대하였습니다. 인종차별주의가 남부에서만 일어나는 독특한 현상이 아님을 인식하여 이 법에서는 북부의 학군을 통합하기 위해 강제적인 인종 통합형 버스 통학제를 도입하였으며 북부의 흑백으로 분리된 교외 지역을 하나로 통합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경축받는 만큼 조롱도 받고 있습니다. 중도주의 진보주의자들은 이 법을 평등주의의 승리라고 칭찬하고 있지만, 극우파 및 일부 민주당계는 이 법이 개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법을 백인은 분열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소수계층은 이 법이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를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급진적인 제안이라고 칭송하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안정도: +10%
기타 비용(% GDP 기준): +2.0%
진보적 성향의 대통령이 민권법에 우호적인 상원 환경을 만나야지만 통과가 가능한 민권법. 매우 급진적인 법안인 만큼 통과가 쉬운 편이 아니다. 짐 크로 상태에서 급진적인 민권법을 통과시킬 수 있는 대통령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 예를 들어 RFK의 경우 존슨이 상원의원을 빌려줘 민주당+진보파 50석을 확보하면 '곧장 앞으로 나아가자' 중점이 해금되는데, 이 중점으로 급진적 민권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 이 경우 급진적인 민권법 통과에 무려 400이라는 정치력을 소모한다. 다만 1964년 대통령으로 강력한 민권법까지 뚫어놓고 1968년에 대통령을 교체해 추가로 민권법을 강화하는 식으로 플레이하면 어렵지 않게 찍을 수 있다.

인종차별 철폐 조치가 확대되고 강제적으로 인종 통합형 버스 통학제를 도입하며 흑백으로 이미 분리된 교외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도록 요구한다. 당시 시대상으론 너무나도 급진적인 법안이기 때문인지 강력한 민권법 이하에는 없는 부정적인 표현이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급진적인 민권법을 한번에 통과시킬시 딕시크랫등의 강경 반민권 성향 유권자들이 대거 상대당으로 지지세를 옮긴다.

  • 혁명적인 민권법(6단계)

"새로운 민권법은 범위 면에서 루비콘 강을 넘어섰습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완전한 법적인 인종, 언어, 종교, 성평등과 함께 엄격한 차별 철폐 조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학, 기업, 심지어는 정부 기관들도 이제 최소한의 다양성을 위한 적극적 우대조치인 할당제를 충족해야 하며 이를 만족하지 못하면 강력한 법적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법무장관은 이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거의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북부와 남부 사회의 대규모 인종분리 철폐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많은 백인 미국인들은 이 법이 소수자를 우대하기 위해 백인의 권리를 멋대로 박탈하는 극단적인 정책이라며 지나치게 무리인 일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흑인 공동체의 사람들도 법률을 너무 빨리, 너무 멀리 밀어붙여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렸다며 이 행동에 대해 유보적이까지 합니다.

하지만 바로 한 집단, 요키파는 이 법으로 확실히 혜택을 얻었습니다. 요키파의 지도자는 이 법이 백인 미국인들을 문화를 혐오하는 신세계 질서에 예속시키는 첫 발걸음인 국가의 문화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비주류이지만 이 법의 통과로 지지기반에 충격요법을 주었고 새 추종자들이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였습니다. 바라건데, 이것은 백인 사회가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를 받아들이기 전 나오는 일시적인 반발이기를 바랍니다.

바라건데 말이죠."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안정도: +10%
기타 비용(% GDP 기준): +3.00%
사회 모든 분야에서 완전한 평등과 차별 철폐 조치를 강제하는 말 그대로 혁명적인 민권법. 단순히 차별을 철폐하는걸 넘어 소수자들에게 적극적 우대 조치인 할당제를 시행하도록 강제하고 정부에서 제시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경우 강력한 법적 처벌을 받도록 만드는 등 처벌 조항까지 꼼꼼하게 만들어둔 법안이다.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지난 21세기에도 논란이 되고 있는 할당제를 강제하는 법안인 만큼 TNO 세계에서는 더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해당 법안으로 소수자가 아닌 요키파가 혜택을 보고 있다는 극히 부정적인 표현이 설명란에 등장할 정도.

이렇게 극단적인 법안이다보니 가결이 까다로운걸 넘어 힘든 수준이다. 커스텀패스 없이는 AI는 거의 못 띄운다고 보면 되고 플레이어도 띄우는 방법이 매우 한정되어 있다.
한번에 통과시킬 수 있는 사람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종말을 상징하는 공산주의자 거스 홀뿐이고, 2명의 대통령을 거친다고 해도 3가지 루트밖에 없다.
하나는 베넷으로 강력한 민권법을 가결시킨 후 해링턴으로 강화시키는 것이며, 두 번째는 RFK로 급진적인 민권법을 가결시킨 후 필립 하트로 강화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RFK가 암살당하고 서먼드가 승계하게 되는데, 이 때 민권법을 유지하면 골드워터나 하트로 강화하는 것이다.

1.5. 초기 대통령[편집]


닉슨의 하야 - 케네디의 암살 - 매코맥의 승계까지 고정 이벤트다.

1.5.1. 리처드 닉슨[편집]


닉슨 대통령이 이미 1960년 대선에서 당선되었으므로[44] 게임 시작인 1962년에는 이미 정해진 루트를 따라 가야 한다. 선택 불가능한 중점들은 개발진의 말로는 닉슨이 고를 수 있었던 선택지들을 의미한다.

첫 번쩨 루트는 1960년 대선과 관련된 루트로 모든 중점들이 이미 선택된 상태이다.
  • 깨끗하게 유지하기 - (선택 불가능) : 남부딕시크랫, 서부의 진보주의자, 북부의 기업가들을 끌어들인 후 민주당 출신 및 노조를 포용한다. 최종적으로는 NPP에 대한 표적수사를 벌인다.
  • 다른 손을 더럽히기 - (이미 선택됨): 존 에드거 후버의 지원을 받아 NPP 서류를 훔치고 NPP 당원들의 대화를 도청한다. NPP 분열을 위해 NPP 내 좌우파를 이간질하는 것은 덤. 같은 배를 탄 민주당 역시 견제 대상이다. NPP는 RDC가 더러운 수를 쓰자 자신들도 협박이나 도둑질과 같은 더러운 수로 반격한다. 최종적으로는 저번 대선에서 NPP 당원들의 대화를 도청했던게 폭로되어서 사퇴하게 된다.

두번째는 TNO 세계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 흑인 민권 운동에 대한 대응이다. 이 것도 세 루트로 나뉜다.
  • 통합 시작 - (선택 불가능): 마틴 루터 킹을 포함한 흑인 민권운동가들과 협상하고 남부와 군대 내 인종차별을 철폐한다. 이에 반발한 남부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지만 진압되고 민권법이 통과된다.
  • 분리주의자에게 굽히다 - (선택 불가능) : 민권운동가들을 체포하고 주방위군을 동원해 계속해서 퍼지는 시위를 진압한다.
  • 중립을 지키다 - (이미 선택됨): 민권운동가들을 안심시키고 인종분리주의자를 지원하며 현상유지를 노리다가 전국적 소요사태에 빠진다. 이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이 등장한다. 이후 행보는 두 가지로 나뉜다.
    • 케네디 부통령의 주도로 명목상의 민권법이 통과된다.
    • 닉슨 대통령이 민권법에 거부권을 행사한다.

세번째는 방대한 외교 루트다.
  • 위대한 고립 - (선택 불가능):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 미국을 위한 미국
    • OFN을 강화하다
  • 대륙론 - (이미 선택됨): 두 트리를 동시에 탈 수 있다.
    • 파고드는 거대한 물결: 일본 견제 트리. 인도 공화국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내 저항군을 지원하는 트리.
    • 철의 장막 부수기: 독일 견제 트리. 브르타뉴와 접촉하고 HMMLR, 노르웨이 저항군, 남아프리카 연방, 최종적으로는 슈페어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남아프리카 전쟁이 벌어지면 남아프리카를 구실삼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아프리카 최후의 민주주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군사 고문단과 의용군을 파병해주고 소총, 전투기, 주력전차는 물론 자국 해군 구축함까지의 대규모 지원을 보낸다.

1.5.2. 존 F. 케네디[편집]


  • 집권이념: 왕조자유주의 (자유주의, 공화민주연합 - 민주당)
  • 내각
    인물설명
    변증의 서기 - AI 변동치: 평화 중점: +50%

    윌리엄 로저스는 닉슨 대통령 내각에서 대통령 자신이 외교 정책에서 우위를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포트폴리오 전문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특별이 임명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저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법무장관을 역임한 재능 있고 존경받는 법률가지만, 닉슨 대통령은 RDC의 영향 없이 개인적으로 외교 정책을 이끄는 데 관심이 있다고 거듭 표명했습니다. 로저스는 지금까지 닉슨 대통령에 의해 자주 기각되거나 심지어 궁지에 몰린 채, 활기 없는 국무장관으로 일해왔습니다.

    인물설명
    행정의 천재 - 건설 속도: +5%, 연구 속도: +2%, 공장 생산량: +10%
    로버트 맥나마라는 닉슨 대통령의 내각에서 정치인 출신이 아니라 기업가 출신인 외부 인사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육군 항공대의 베테랑이었던 맥나마라는 10년 넘게 포드 자동차 회사의 '위즈 키즈'에서 일하다 정부에 임명됐는데, 재직하는 동안 경영과 사업에 대한 통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법의 혁신적인 응용을 통해 회사를 탈바꿈시켰습니다. 1960년 맥나마라를 포드 회장직에서 뺏어왔고, 닉슨은 맥나마라의 체계성을 디트로이트의 이사회에서 워싱턴 D.C의 연기가 가특한 방으로 옮겨 심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닉슨은 맥나마라에게 국방부와 재무부 장관직 사이에서 선택권을 주었으며, 맥나마라는 공식적으로 재무부 장관으로 있는 동안, 자주 국방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워싱턴에서 그를 더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 연결망을 구축해뒀으니, 그가 바란다면야...

    인물설명
    연민 어린 신사 - 자원 획득 효율: +1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5%, 안정도: +5%, 공장 생산량: +10%
    #!end >멜빈 레어드는 위스콘신 출신의 존경 받는 하원의원으로 1953년부터 국방 예산과 조달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하원세출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했습니다. OFN 동맹국들과 함께 방어 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미군의 점진적인 재배치 계획을 옹호하는 국방 문제에 정통하나 레어드는, 보다 적극적인 국방 정책에 대한 통계적이고 결과 지향적인 접근을 추진하는 닉슨의 재무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에 맞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 }}}

    닉슨이 사임하고, 부통령인 케네디가 대통령직을 승계받는다.

    케네디의 중점은 남부와 북부의 지지를 얻고 NPP와 관계를 개선하는 트리,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60년대 미국 사회를 통합하는 트리, 복지 정책을 실시하는 트리를 가지고 있지만 2달이 지나기 전에 반드시 암살당해서 몇개 찍질 못한다. 안 그래도 암울한 "미국의 문제들" 국가 정신이 더 암울한 내용의 "미국의 절망"으로 낮춰지는 것은 덤.

    1. 존 W. 매코맥[편집]


    • 집권이념: 자유주의 (자유주의, 공화민주연합 - 민주당)
    • 내각
      인물설명
      변증의 서기 - AI 변동치: 평화 중점: +50%

      윌리엄 로저스는 닉슨 대통령 내각에서 대통령 자신이 외교 정책에서 우위를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포트폴리오 전문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특별이 임명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저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법무장관을 역임한 재능 있고 존경받는 법률가지만, 닉슨 대통령은 RDC의 영향 없이 개인적으로 외교 정책을 이끄는 데 관심이 있다고 거듭 표명했습니다. 로저스는 지금까지 닉슨 대통령에 의해 자주 기각되거나 심지어 궁지에 몰린 채, 활기 없는 국무장관으로 일해왔습니다.

      인물설명
      행정의 천재 - 건설 속도: +5%, 연구 속도: +2%, 공장 생산량: +10%
      로버트 맥나마라는 닉슨 대통령의 내각에서 정치인 출신이 아니라 기업가 출신인 외부 인사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육군 항공대의 베테랑이었던 맥나마라는 10년 넘게 포드 자동차 회사의 '위즈 키즈'에서 일하다 정부에 임명됐는데, 재직하는 동안 경영과 사업에 대한 통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법의 혁신적인 응용을 통해 회사를 탈바꿈시켰습니다. 1960년 맥나마라를 포드 회장직에서 뺏어왔고, 닉슨은 맥나마라의 체계성을 디트로이트의 이사회에서 워싱턴 D.C의 연기가 가특한 방으로 옮겨 심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닉슨은 맥나마라에게 국방부와 재무부 장관직 사이에서 선택권을 주었으며, 맥나마라는 공식적으로 재무부 장관으로 있는 동안, 자주 국방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워싱턴에서 그를 더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 연결망을 구축해뒀으니, 그가 바란다면야...

      인물설명
      연민 어린 신사 - 자원 획득 효율: +1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5%, 안정도: +5%, 공장 생산량: +10%
      #!end >멜빈 레어드는 위스콘신 출신의 존경 받는 하원의원으로 1953년부터 국방 예산과 조달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하원세출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했습니다. OFN 동맹국들과 함께 방어 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미군의 점진적인 재배치 계획을 옹호하는 국방 문제에 정통하나 레어드는, 보다 적극적인 국방 정책에 대한 통계적이고 결과 지향적인 접근을 추진하는 닉슨의 재무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에 맞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 }}}

      케네디 사후 존 W. 매코맥 하원의장이 대통령이 된다.

      매코맥은 의도치 않게 승계받은 짧은 임기 동안 닉슨의 계획을 버리고 RDC의 이미지 쇄신을 시도할 것인지, 닉슨의 유산을 이어받아 남아프리카의 빠른 종결을 위한 도박수를 시도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임시인데다가 임기도 무척이나 짧아 특별한 점은 없다. 그나마 의미있는거라면 남아프리카 전쟁에 약간의 보너스를 준다는 것과 닉슨 옹호 또는 부정 중점을 통해 차후 대선 구도를 원하는 방향쪽으로 유도하는게 가능하다는 것정도.
      NPP를 집권시키고 싶으면 인기 없는 닉슨을 옹호하면 되고, RDC를 집권시키고 싶으면 닉슨을 버려야 한다.

      1. 1964년 대선[편집]



      1.1. 월리스 F. 베넷 (RDC)[편집]


      산업은 부를 생산했습니다. 그 부는 교육기관을 지탱했습니다. 그 교육기관은 산업에 통솔력을 공급했습니다. 이렇게 다음 세대가 더 많은 부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기에 미국은 계속해서 위대해질 수 있었습니다.

      The ascending spiral of greatness in America has risen because industry has produced wealth, which in turn has supported educational institutions, which in turn have supplied leadership to industry in order that with each succeeding generation it might produced more wealth.

      • 집권이념: 자유시장 보수주의(보수주의, 공화민주연합-공화당)
      • 인물설명

        월러스 포스터 베넷은 안정된 미래를 위한 미국의 최선의 선택입니다. 솔트레이크 시티의 독실한 모르몬 신도 가정에서 태어난 베넷의 성장은 부모의 모르몬교 교리에 강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교관으로 잠시 육군에서 복무한 이후 베넷은 모르몬 교회 회장의 막내딸과 결혼해 사업을 시작하였고, 결국에는 포드 대리점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목표를 이룬 야망있는 남자들이 그렇듯이, 베넷은 정계에 뛰어들었습니다. 1951년 베넷은 그의 상대를 비밀 공산당원이라고 비난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타의 연방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내 베넷은 상원에서 작은 정부와 친사업 기조를 확립하였고, 이후 그는 워싱턴에서 보수적 가치를 주도하는 주된 세력이 되었습니다. 미국이 침체된 나날들이 길어질수록 베넷은 국가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확신에 찼고, 그의 신념은 닉슨이 겪은 수치와 그 뒤 미국을 뒤흔든 문제들로 인해 강화되었습니다. 국가진보전선이 미국을 불확실한 길로 인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베넷은 대통령직에 출마하였고, 국가를 더욱 안전하고 안정되며 번영하는 미래로 나아가게 하고자 합니다.

        그가 그의 상대들에 비해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거나 크나큰 이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베넷의 도박은 성공했고, 미국 국민은 국가를 안정시키고 미래를 향한 불확실성을 잠재울 것을 공약한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그가 성공할지 말지는 아직 모르지만, 미국 국민은 그들의 대통령처럼 어떤 옛말을 믿는 듯 합니다. 느리고 꾸준한 것이 결국 경주를 이긴다는 말입니다.

      • 내각
        인물설명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자원 획득 효율 +10.00%

        제럴드 포드 부통령은 1964년에 워싱턴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워싱턴의 권력 브로커들 사이에서 그가 베넷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발탁된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시간 주 하원의원을 차지하기 위해 2차 세계 대전의 훈장을 받은 군 복무 기록을 활용한 포드는 많은 동료들의 여론몰이나 노골적인 정치공작을 피하고, 대신 공화-민주당 통합 후 몇 년 동안 주요 고위층 중 한 명으로 활동하여 '국회의원의 국회의원'이라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존경받는 군 장교로서, 존경받는 하원의원으로서 일한 것과 동료들 사이에서 진실성과 공정성으로 훌륭한 명성을 얻은 포드는 떠들썩한 닉슨 시절 이후 안정과 화해에 대한 베넷의 약속에 자연스럽게 들어맞았습니다. 포드의 민권과 자유주의에 대한 지지도 그의 재정 보수주의가 베넷의 견해와 더 일치함에도 불구하고, 베넷의 북부 내 지지를 확고히 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인물설명
        정치력 획득 +5.00%, 관계 개선 -5.00%, 무역 거래에의 평판 획득치 +25.00%

        국제정치는 치열하고 무자비한 자들만 살아남는 살벌한 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중하고 위험을 회피하는 외교관들만이 가능한,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있는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에드먼드 머스키는 둘 다 할 수 있습니다.

        폴란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메인주 태생인 머스키는 항상 다른 문화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의 정치 경력은 초당적 협력과 미국과 군부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특징지어집니다. 남아프리카 전쟁에 대한 개입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최초의 현직 상원의원 중 한 명으로서, 강하고 대담한 외교 정책에 대한 머스키의 헌신은 그의 개입주의와 반파시즘에 대한 긴 역사의 일부입니다. 이러한 명백한 징고이즘에도 불구하고, 머스키 또한 부분적인 비핵화의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베넷의 행정부는 극단주의와 근본주의에 분명하게 반대하기 때문에, 이러한 차별화된 세계관이 머스키를 국무장관으로 지명하게 된 동기가 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머스키의 임기는 아마도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격동적인 시기의 바로 한가운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베넷의 결정이 옳았다면 역사가 그 심판대가 될 것입니다.

        • 앱샐롬 로버트슨[1] 재무장관 (민주당)
        인물설명
        정치력 획득 +5.00%, 건설 속도 -5.00%, 공장 생산량 -5.00%

        A. 윌리스 로버트슨은 교육을 받은 변호사이고, 사업가의 의원입니다. 하원과 상원에서 모두 30년 이상을 보낸 로버트슨의 오랜 정부 내 역사는 그를 각료직에 대한 특별한 선택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대통령이 남부인이었다면 그렇습니다. 로버트슨의 버지니아에서의 긴 역사는 수십 년 동안 버지니아 주를 지배해 온 정치 기계, 즉 버드 조직에 달려 있습니다. 명목상 더 넓은 당과 연계된 "독립 민주당"으로서의 그의 활동은 남부의 NPP의 부상과 북부의 민권 증진과 함께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오직 그의 상대적인 온건화, 베넷과의 오랜 업무 관계, 그리고 8월의 상원 의원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만이 그의 지명이 흔들리는 것을 막았습니다. 로버트슨의 임명은 정치적 동맹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남부에 대한 화해와 민주당 일각의 딕시크랫이 다시 합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타협이 필요하든 말든요.

        • 클라크 클리포드 내무장관 (민주당)
        인물설명
        정치력 획득 +5.00%, 사단 조직력 -5.00%

        워싱턴의 정치 기계만큼 훌륭하고 복잡한 시스템은 드물고, 꽤 많은 희망적인 개혁가들이 의사당과 그 주변 환경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인해 완전히 효과적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캐피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익 단체, 로비스트, 개인적 불화, 그리고 완전한 부조리의 복합체는 보통 일반적인 사람의 생각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클라크 클리포드는 연방 정치의 문제에 있어서는 완전히 투철합니다.

        캔자스 출신인 클리포드는 수십 년 동안 법률 문제에 관여해 왔습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하고 몇 년 동안 연습한 후, 그는 당시 지배적인 체제의 구조적 실패를 목격한 후 제2차 세계 대전의 여파 동안 정계에 입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대통령 밑에서 수많은 직책을 역임했고, 수년간 그는 베넷과 미국에 대한 그의 야심찬 의제에 확실히 도움이 될 놀라운 지식의 기초를 얻었습니다.


      보수주의 성향의 공화당 유타주 상원의원. 64년 선거에 RDC 후보로 대선에 참여할 수 있지만 전임 대통령이자 같은 당 출신인 닉슨이 거하게 삽질을 하다가 하야를 한 탓에 인기가 그리 많지는 않은 편. 당선이 될 경우 월드 뉴스가 뜨는데 닉슨의 트롤링을 뚫고 대통령에 당선됐다며 놀라워하는 논조를 보인다.

      • 트리: 주요 중점은 크게 경제 부문과 민권 문제이다.

      • 경제 - 은본위제도로 굴러가던 경제가 은의 부족으로 인하여 한계에 도달하기 때문에 은법을 통과시킨다.[1] 그 후에는 군사적 케인스주의[2], 연방준비제도의 독립 등을 시행한다. 그 후에는 OFN을 현실의 북대서양 조약기구 같은 단순한 군사동맹이 아닌 유럽연합과 비슷한 자유 국가 공동체로 만들려고 군 통합, IMF세계은행, 외교 협력, 고정환율제, 관세 개혁 등을 시도하고 투표에 부친다. 마지막으로 브레튼우즈 체제를 만들고 개혁을 실행한다.

      • 민권 - 민권 부문에서는 첫 번째로 초안을 진보적으로 만들지(개혁의 징표), 보수적으로 만들지(배를 흔들지 마라) 결정해야 한다. 법안이 제출되어 통과되면, 그다음에는 민주당 위주의 지속적 민권 기반 사회변화 정책을 진행할지 (진정한 변화 >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다), 공화당 위주의 남부친화적 정책을 통해 민권법의 권한을 형식적으로 만들면서 남부지역의 호감을 살지(안전하게 잘 보관하다 > 공화당의 손을 들어주다) 아니면 법안 통과 이후 타협적으로 갈지(진전의 상징[3], 문을 열어둔 채로 놔두다[4] > 괜찮은 선) 정할 수 있다.

      자유 시장에 근거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무난한 성능의 대통령.

      시장 친화적이고 규제를 철폐하는 쪽의 중점을 가지고 있어 경제를 잘 살린다는 평가가 있지만, 경제 대통령 TT패치 이후 경제가 대거 리워크되면서 직간접적으로 성능이 많이 너프됐다. 예전에는 경제성장률 20%를 달성하며 경제만큼은 독보적 원탑 취급을 받았지만 이제는 다른 대통령보다 약간 더 나은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타협을 중시하는 대통령이라는 특징이 있다. 정치에서 타협이라는게 꼭 나쁜것만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타협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될 수 있다고. 전용 디시전인 '배를 흔들지 마라'를 통해 각 단체와의 관계도를 조절해 정권을 유지하는걸 핵심으로 하고 있고 또 중점을 통해 다른 정당들의 지지를 끌어오거나 법안 통과를 위해 상원 의원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 베넷 플레이에서는 이를 잘 조절해 일차 개혁을 끝내고 다음 RDC 후보에게 정권을 넘겨주는게 목표다.

      경제와 사회 두 부분의 개혁이 베넷 플레이의 핵심이다. 경제는 은법 통과를 놓고, 사회는 민권법 개정을 놓고[5] 다른 세력들과 협상을 하게 된다. 타협적으로 나갈 수도 있고 강경하게 한쪽 입장을 대변할 수도 있는데 타협적으로 나가면 성능도 애매하고 지지도 유지도 애매한 편이고, 한쪽 입장을 대변할 경우 그쪽 입맛에 맛는 정책이 탄생하지만 그 대가로 반대쪽 의원을 NPP로 전향시키게 되며 타협 없이 강경한 태도로 개혁할 경우 차후 RDC 선거가 매우 힘들어진다.

      TT 패치 이전에는 경제 면에서만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는데[6] TT 패치 이후로는 MCS, 골드워터 다음으로 인기가 없어진 대통령이 되었다.[7] 여러 세력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묘미가 남아있는 대통령이긴 하지만 중점 갯수 자체가 적고[8] 줄타기의 배경이 되는 입안 가능 법안 자체도 적고 직간접적인 너프로 인해 '경제 대통령'이라는 장점도 퇴색된 탓이다. 거기에 TT 전에는 베넷은 완역에 가까웠지만 TT 패치에서 배넷이 거의 리워크 수준의 중점 개편을 받으며 번역된 중점이나 이벤트들이 다 날아가고 말았다.

      물론 시장자유주의에 입각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베넷 정부의 특성상 사회를 드라마틱하게 바꾸는 법안들을 입안하는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경제와 민권법 개정과 같은 컨텐츠를 잘게 쪼개 더 자세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이지만 소규모 리워크 소식조차 없어 팬들은 아쉬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1.2. 린든 B. 존슨 (RDC)[편집]


      위대한 사회는 풍요와 모두를 위한 자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난과 인종차별을 끝내야만 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이에 전적으로 헌신합니다. 하지만 이는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The Great Society rests on abundance and liberty for all. It demands an end to poverty and racial injustice, to which we are totally committed in our time. But that is just the beginning.

      -1964년 5월 22일, 미시간 대학교 연설

      • 집권이념: 왕조자유주의(자유주의, 공화민주연합-민주당)
      • 인물설명

        여러 면에서 LBJ라는 이니셜로 종종 언급되는 린든 베인스 존슨은 아메리칸 드림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텍사스 농가에서 태어나 미국의 엘리트들이 자라난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초라한 환경에서 자란 존슨은 겸손한 양육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텍사스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며 몇 년을 보냈지만, 그는 정치에서 자신의 소명을 금방 발견했습니다. 곧 "존슨 치료법"으로 워싱턴에서 널리 알려지게 될 공격적인 설득과 거래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그는 처음에는 의회 보좌관으로 시작하다가 하원과 상원으로 빠르게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10년 동안 공화당과 민주당의 다수당 대표로 군림했습니다. 이제 그는 마침내 미국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LBJ는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곪아온 상처를 치유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인종적,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존슨은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와 동등한 성공의 기회를 갖는 미국 사회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하루가 다르게 혼란에 빠져들고 일본은 자국의 영역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존슨은 통제 불능의 사태가 미국을 다시 세계 전쟁터로 끌어들이기 위해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전선에만 전념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 내각
        인물설명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자원 획득 효율 +10.00%

        에드먼드 식스터스 머스키는 많은 다른 민주당원들이 남부나 더 보수적인 중서부 주 출신일 때, 뉴잉글랜드에서 민주당 내 자유주의 선두 주자들 중 한 명이라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입법자인 머스키와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존슨은 1950년대 상원 원내에서 상당한 규모의 충돌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고 존 F. 케네디와 매우 비슷한 그의 시민권에서의 진전과 미국의 자유주의에 대한 헌신은 그를 위대한 사회의 비전을 발전시키기 위해 의지할 수 있는 민주당으로서 대통령인 존슨 대통령의 자연스러운 러닝메이트로 만들었습니다.

        상원에서의 축적된 경험과 북부 의원들 외에도, 머스키 씨는 종종 지지자들에게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환경 보호 노력의 역할을 하겠다고 주장하면서 환경 문제에 대한 열정적인 옹호자이기도 합니다 - 이 주장은 서부에서 그에게 약간의 지지를 주었지만,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다른 의제들을 주장하는데 더 많은 회의론에 부딪히게 했습니다.

        인물설명
        전쟁 지지도 +5.00%, 관계 개선 -5.00%, 공격 중점 +5.00%

        세상은 불친절한 곳입니다. 손을 잡고 쿰바야를 부르는 것은 계속 다가오는 파시즘의 위협을 막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오직 기름칠이 잘 된 군대의 지원을 받는 타협하지 않는 외교만이 도쿄와 게르마니아의 독재자들에게 맞설 수 있습니다.

        딘 러스크는 국제무대에서 자유의 유일한 보루로서의 미국의 지위를 재확인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층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사다리를 올라 소작인의 아들로부터 아마도 존슨 내각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으로 올랐습니다. 외교 정책에 대한 그의 대담한 입장은 비록 외교에 대한 그의 배짱 있는 접근법이 역효과를 낼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서서히 확산되는 제국주의에 대한 필수적인 해결책일 수 있습니다.

        • 헨리 파울러 재무장관(민주당)
        인물설명
        매일 정치력 획득 +0.10, 건설 속도 +7.00%, 생산 효율성 한도 +7.00%, 필요 소비재 -5.00%

        헨리 파울러는 존슨 행정부에 평생 동안 법률, 공공 정책, 그리고 재정 문제에 대한 경험을 가져다 줍니다. 비록 자신의 선출직은 맡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1932년 예일 법대를 졸업한 후, 파울러는 대공황과 싸우기 위한 공공 사업 프로그램의 합헌성을 방어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2차 세계 대전 동안 전쟁 생산 위원회의 선임 법률 고문으로 일하며 미국이 전쟁 기계를 위해 어떻게 건설하고 지불했는지에 대해 사업과의 친숙함을 얻으면서 2차 세계 대전 동안 전쟁 생산 위원회의 선임 법률 고문으로 일했습니다.

        미국의 패배에 이어 파울러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합병 후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핵심 일원이 되어 새롭게 설립된 OFN의 경제와 군사 정책의 연결을 감독하는 데 전쟁에서 자신의 경험을 활용했습니다. 거의 20년 간의 정부에서의 근무 이후, 존슨 대통령은 파울러에게 재무부에 꾸준한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만약 존슨의 위대한 사회의 비용이 추정치만큼 높다면,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인물설명
        징병 가능 인구 +0.50%, 보병 사단 공격: +5%, 보병 사단 방어: +5%
        로버트 맥나마라는 리처드 닉슨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겸임한 이례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국내에서의 미국 발전에 초점을 맞춘 것을 볼 때, 존슨 대통령은 국방 사업을 검증된 손에 맡길 용의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가정입니다. 그리고 맥나마라는 닉슨 대통령 시절 동안 이미 그의 포트폴리오 이상의 국방 문제에 관여해 왔습니다.

        헨리 파울러 재무장관의 임명으로 존슨 대통령은 숙련된 기술관료들에게 예산과 국방에 대한 통제권을 넘겨주었으며, 존슨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만드는 동안 그들이 사업을 담당할 것이라는 분명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맥나마라는 닉슨처럼 존슨을 섬길 능력과 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의 증가하는 인맥의 네트워크로 인해, 맥나마라는 이제 그만의 정치적 고정관념이 되었고, 그의 야망이 곧 백악관까지 확장될 수도 있다고 속삭입니다.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 텍사스주 상원의원. 주요 중점은 민권, 복지, 교육에 중점을 뒀다. 정책적으로는 현실에서 린든 B. 존슨이 했던 위대한 사회 정책을 참고한 것이 많다.

      위대한 사회의 트리는 다음과 같다.
      • 위대한 사회 준비 - 위대한 사회를 위해 민주당과 협력하거나 진보파와 거래를 할 수 있다.

      • 민권법 - 문해력 시험[9]을 금지하고 투표를 막는 조항들을 철폐하는 투표권 법을 통과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민국적법을 통해 더 많은 이민자가 올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공정주택법을 통과해 인종차별적 주택 임대 및 판매를 금지하고 자유를 누릴 권리를 보장한다.[10]

      • 빈곤 -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보조금 배치, 경제기회국 창설 등을 시작한다. 또한 직업 군단을 통한 직업 교육, VISTA(미국 자원봉사 사업단)에서의 자원봉사를 시작하고 푸드 스탬프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확대한다. 또한 경제기회법을 통과시켜 실업 보조금과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구직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기초생활수급을 인상한다.

      • 복지 - 린든 B. 존슨의 위대한 사회 중 가장 중요한 계획으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주장했었던 사회보장을 입법하려고 한다. 당과 대중을 안심시키고, 공화당과 함께 보수적 지지를 확보할지, 진보적 지지를 확보하고 법안을 확장할지 선택할 수 있다. 소득세 인상 또는 소득세와 사업세 인상을 결정한 후 사회보장법을 통과시켜 연금을 늘린다.

      • 의료 - 해리 S. 트루먼 상원의원이 주장했던 보편적 의료보험을 위해 힐버튼 법을 개정하고, 블루 크로스 블루 쉴드 협회와 협력하며 미국의학협회를 억제한다. 또한 직장의료법을 통과시키고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를 확장하며, 최종적으로는 전 국민 대상 건강보험 체제를 확립한다.

      • 교육 - 끔찍한 교육상태를 개선하기 위하여 헤드스타트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초·중등교육법을 통과시킨다. 또한 학교 자금을 지원하고 교사단체를 창설하며 고등교육법까지 통과시킨다. 마지막으로는 전국적 예술 기부금과 인문학 기부금을 창설하고 PBS의 첫 방송을 개시한다.

      64년 당선 가능 후보 중에서는 가장 미국의 빈곤율을 잘 떨어트린다. [11] 다만 진보적인 아젠다를 내세우느라 보수층은 공화-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온건한 진보주의자들도 지쳐 등을 돌려 70, 72년 공화민주연합의 선거가 매우 어려워진다. [12] 툴박스 패치 이후 경제성장률 올리는 중점이 많아지는 등 상대적인 버프를 받아 상원도 어느 정도 지킬 수 있다. TT3 이후에는 진보파로 선거에서 이기기 훨씬 힘들어져 해링턴의 급진 개혁 등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져 명실상부 미국 최고의 루트가 되었다.

      집권 극초기 대법관 임명 이벤트에서 진보적인 후보를 지명할 경우 서굿 마셜이 임명된다.

      1.3. 로버트 F. 케네디 (NPP)[편집]


      역사를 바꿀만큼 위대한 사람은 적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역사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만든 것은 용기와 믿음에서 나온 수많은 행동입니다. 한 명이 이상을 위해 일어날 때마다, 다른 많은 이들을 위해 행동할 때마다, 불의를 없앨 때마다 작은 희망의 물결이 퍼져나갑니다. 수백만개의 중심지에서 온 이 물결들은 서로를 가로지릅니다. 이 용감한 물결들은 아무리 강대한 억압과 반대의 벽도 쓸어낼 수 있는 흐름을 만듭니다.

      Few will have the greatness to bend history itself, but each of us can work to change a small portion of events. It is from numberless diverse acts of courage and belief that human history is shaped. Each time a man stands up for an ideal, or acts to improve the lot of others, or strikes out against injustice, he sends forth a tiny ripple of hope, and crossing each other from a million different centers of energy and daring those ripples build a current which can sweep down the mightiest walls of oppression and resistance.

      -1966년 6월 6일 케이프타운 대학교 연설

      • 집권이념: 동부진보주의(진보주의, 국민진보동맹-진보당)
      • 인물설명

        로버트 프랜시스 케네디는 확실히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케네디 가에서 몇몇이 사업가이자 정치인이었기에 그의 어린 시절은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는 매사추세츠 교외에서 심오한 미국 가정의 9명의 아이들 중 한 명으로 자랐고 아일랜드와 가톨릭 유산을 높이 평가하도록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대공황을 겪으면서 그는 동포들이 전례 없는 빈곤에 직면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뉴잉글랜드에서 가톨릭 학교에 다녔던 케네디는 1943년 그의 동생 조셉 케네디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해군에서 복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케네디는 대서양과 카리브해에서 조국을 위해 복무했는데, 군 복무 기간이 비교적 짧았던 것이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정치에 입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명예 제대 후, RFK는 언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특히 빈곤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고안된 복지 및 사회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미국과 일본의 평화 회담에 참석했고,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의 광범위한 복지 프로그램에 대해 공부하기해 스웨덴을 방문했습니다. 그의 형 존 F. 케네디가 리처드 닉슨의 러닝 메이트로 떠올랐을 때 케네디는 그의 형이 "내가 빨리 뭔가를 해야 한다면, 나는 바비에게 간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정치적 감각을 빠르게 증명했습니다.

        비극은 곧 이어 닥쳤습니다. JFK의 피살은 로버트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랑하는 형의 죽음으로 인해 대통령이 민권법을 거부했던 RDC와의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당파 정치에 환멸을 느낀 RFK는 국가진보전선에 입당하기로 결심하고, 모든 국민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키기로 결심했으며, 즉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1964년에 취임한 로버트는 희귀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볼 수 없는 미국적 이상주의의 옹호자가 되었으며, 무소유에서의 희망을 믿었습니다.

      • 내각
        • 윌리엄 가이 정부수반(진보당)
        • 클로드 페퍼 외무장관(진보당)
        인물설명
        미국은 파시즘의 바다에 있는 등대, 남아있는 소수의 자유국가들이 어두운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돕는 길잡이 빛을 내뿜는 등대가 되는 것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이 유명한 등대의 지킴이는 다름 아닌 현 국무장관인 클로드 페퍼입니다.

        페퍼는 역대 최연소 상원의원 중 한 명이고, 노동자와 노인을 위한 투쟁에 있어 선구자가 되는 등 획기적인 업적으로 가득합니다. 그의 외교 정책은 대담한 반파시즘 이념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이는 미국이나 미국의 영향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뻗어 있습니다. 반미주의는 단순히 이 행성에 속하지 않으며, 클로드 페퍼는 심지어 가장 작은 미소국가들도 독일과의 동맹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도록 할 것입니다.

        • 마우린 뉴버거 재무장관(진보당)
        인물설명
        사람들은 "재무장관"이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문학사 학위를 가진 여교사를 상상하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우린 뉴버거는 모든 기대를 깨고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 중 하나를 차지한 최초의 여성이 됨으로써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그녀가 정상에 오르는 것은 길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겸손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평생 사랑했던 리처드 뉴버거를 만나기 전까지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며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상원의원으로서, 그는 그녀가 그녀 자신의 경력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연줄이 있었습니다 - 그리고 그녀의 놀라운 재능 덕분에, 그녀는 무서운 속도로 지위를 상승시켰습니다. 1950년, 그녀는 하원의원이 되었고, 1960년 상원의원이 되었고, 1964년, 그녀는 로버트 F. 케네디의 내각의 일원으로 초대되었습니다. 마우린 뉴버거의 미래는 밝으며, 많은 사람들은 이미 그녀의 빛나는 경력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 헨리 무치 내무장관(진보당)
        인물설명
        이런 어두운 시기에, 지속되는 불안을 깨뜨리고 영원한 미국 정신을 되살리려면 영웅이 필요합니다. 헨리 앤드루스 무치는 그에 딱 맞습니다.그가 스코틀랜드 극장에 있는 포로 수용소를 과감하게 해방시킨 것은 전쟁이 역전될 수 있다는 희망을 불러일으켰고, 비록 그것이 전세를 역전시키기에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전설을 만들어냈습니다.

        10명의 자녀를 둔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무치는 한번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의 경력은 미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헌신한 것에 불과하며, 로버트 F. 케네디가 그를 지명한 것은 개인적인 용기가 여전히 미국에서 보상받아야 할 대상임을 의미합니다.


      닉슨이 민권법을 거부하면 공화민주연합에 환멸을 느끼고 뛰쳐나와 진보파의 지지와 함께 NPP 후보로 선출된다. 민권과 복지에 중점을 뒀다.

      • 트리

      • 민권법 - RFK는 먼저 민권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방법을 골라야 한다. LBJ와 협상하거나(문틈에 발 걸치기), 처음부터 강한 요구를 제시하고 협상하거나(면전에서 문 닫기), 지지파로 단독 과반을 채워 민권법을 밀어붙여야 한다(곧장 앞으로 나아가자). 이 중 급진적 민권법을 통과시킬 수 있는 건 밀어붙이기 뿐이다. 그다음은 흑인의 경제적 상황, 불평등한 사법제도, FBI를 처리해야 한다. 경제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흑백 거주 구역 사이의 레드라인[13]을 없애고, 학군을 통합시키고 버싱 정책을 편다. 사법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흑인에게 불평등한 법률을 완화 & 개정시키고 법원의 관행을 감시한다. 그다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인 딕시크랫을 누르고 KKK를 분쇄하려고 한다. [14] FBI 문제에서는 후버의 고삐를 쥐고 경찰력을 감시한다.

      • 복지 - RFK는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가노동관계법을 통과시키려고 한다. 이때 RFK는 최저임금과 공적연금을 골라잡아야 하는데, 최저임금은 노조가 선호하고 연금은 반대한다. 또한 메시지를 퍼뜨리기 위해 기본소득 실험, 빈민 개혁 등을 실시한다. 또한 빈곤과의 전쟁에 들어가게 되는데, 연방 식량 은행과 직업훈련단을 창설한 다음 주택을 보장하기 위해 적정주택법을 시행하게 된다. 또한 아동낙오방지법으로 학생들을 지원하게 되고 경제기회법으로 대규모 빈곤 방지를 위한 정책을 편다. 그다음에는 부양자가 없는 장애인, 실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 사회보장법과 전 국민 대상 무상의료를 위한 국가 의료 보험법을 밀어붙이게 된다.

      베넷처럼 경제를 잘 살리는 것도 아니고, 존슨처럼 빈곤율을 압도적으로 떨어트리는 건 아니지만 대신 다른 사회 발전도를 잘 올리고, 베넷보다는 빈곤율을 잘 살리며 존슨보다는 민권법에서 더 강한 행동을 보이고 지지율이 박살나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

      【스포일러】
      민권법 트리의 마지막 중점은 코인텔프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인데, 문제는 이게 위헌적 방법이고 심지어 사찰 대상은 같은 NPP라는 것이다. RFK는 중지하자는 부통령 윌리엄 가이와 법무부 장관 램지 클라크의 의견도 묵살하고 사찰을 진행한다. 이후 클라크 장관을 협박해서 폭로를 막아야 하는데, 운이 없거나 이벤트 선택을 잘못하면 램지 클라크 장관이 이에 분노해서 코인텔프로를 폭로하게 되고, 전국적으로 NPP의 인기도가 떨어진다.



      1.3.1. 스트롬 서먼드 (NPP)[편집]

      남부의 인종 차별은 정직하고 개방적이며 과장된 것이다. 두 방식, 즉 남부와 북부간의 인종분리 형태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 내 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Segregation in the South is honest, open and aboveboard. Of the two systems, or styles of segregation, the Northern and the Southern, there is no doubt whatever in my mind which is the better.

      -1964년 6월 상원 연설

      • 집권이념: 딕시크랫(가부장주의, 국민진보동맹-주권당)
      • 인물설명

        많은 사람들이 국가진보전선 국민파의 지도자인 스트롬 서몬드가 언젠가는 대통령이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그중 아무도 그가 이런 특수한 상황을 통해 집권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부유하고 유복한 남부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난 서몬드는 빠르게 정치적 감각을 키워 왔습니다. 그의 법학 교육 이수, 뛰어난 군 경력 그리고 넓은 인맥은 그를 주지사 그리고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연방상원의원으로 이끌었습니다. 충실한 인종분리주의자인 그는 브라운 대 토피카 주 교육위원회 판결 당시 남부 의원들의 민주당 이탈을 주도하였습니다. 조지 패튼의 애국당 당수로서, 서몬드는 국가진보전선과의 합당을 성공적으로 주도하여 1957년에는 현재의 국가진보전선을 창설하였습니다.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낙선했지만, 서몬드는 주요한 정치 지도자로 남아 로버트 케네디와 허버트 험프리가 암살당했을 때에는 상원 임시 의장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원의장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사유로 대통령직 승계를 거절하였고, 이후 서몬드 임시 의장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였습니다. 그가 백악관을 향해 가져온 기나긴 야망이 마침내 현실화되었고, 서몬드는 이제 혼란에 빠진 국가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가 작고한 케네디 대통령의 기조를 이어나가겠다고 말하기는 하였으나, 많은 사람들은 서몬드가 미국을 그의 뒤틀리고, 백인우월주의적인 이미지에 맞추기 위해 전임 진보 대통령이 이룩한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선거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체스판에 자리를 잡은 킹은 그의 움직임을 시작했습니다.

      • 내각
        인물설명
        맥스웰 데이븐포트 테일러 장군은 자신이 미국 부통령으로 임명된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는 공직에 출마한 적도 없고, 살면서 공개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취한 적도 없습니다. 그는 서먼드처럼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며, 전임 대통령들이 그에게 명령을 내렸더라면 기꺼이 군에 인종통합을 시행했을 것입니다. 그는 험프리의 직위를 채워달라는 서먼드의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서먼드가 왜 정치적으로 공수부대 사령관이 미국 상원을 주재하기를 원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야망이 없는 사람은 서먼드가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테일러는 서먼드의 정치적 목표를 이해하지 못하며,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 지위의 명성에 감사하며, 서먼드가 요구하는 대로 타이브레이킹이 필요할 때 기꺼이 투표할 것입니다. 킹을 캐슬링하는 루크처럼, 테일러는 그의 주인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고 정치 게임에서 그에게 약간의 우위를 줄 수 있습니다. 곧, 테일러는 서먼드의 궁극적인 야망을 충족시키는 결정적인 표를 던질지도 모릅니다.

        인물설명 (애그뉴)
        미국은 국내 문제와 외교 정책에 있어서 항상 정직함을 자랑해 왔습니다. 미국은 동맹국을 소중히 여기고 모든 조약과 협정을 준수했습니다. 그들이 미국의 입장에 어떤 이익을 주든 간에 말이죠. 세상은 어둡고 비참한 곳이었지만, 미국은 어둠 속에서 진실의 등불이 되어 인류가 여전히 외교에서 설 자리가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제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보세요.

        스피로 시어도어 애그뉴는 불에 맞불을 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친구도 없고 국익만 있을 뿐인데, 이러한 국익은 국제 정치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표방하는 모든 것을 지지하는 국가는 상황이 요구하는 한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혹자는 무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그뉴는 실용적이라고 합니다.

        인물설명
        조지 월리스가 남부 포퓰리즘 정치의 화신이라면, J. 윌리엄 풀브라이트는 남부를 가장 점잖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로즈 장학금 장학생, 전 대학 총장이자 아칸소주 재정부 장관 둘의 아들인 풀브라이트는 교육을 받았고, 국제적이고, 인맥이 좋으며, 주 박람회보다 주 만찬에서 훨씬 더 편안합니다.

        풀브라이트는 OFN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이며, 아마도 다자간 국제질서에 대한 세계의 마지막 진정한 신봉자일 것입니다. 풀브라이트는 미국을 자유세계를 위한 길잡이 빛, 폭정의 바다 속 자유의 마지막 등불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의 학생 교환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지지하며, 그레이 공포 기간 동안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비난을 받았을 때 그들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풀브라이트는 OFN이 극단적으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국가들로까지 회원 수를 확대하고 보다 친근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풀브라이트는 여전히 딕시크랫입니다. 그는 서먼드가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 이후 탈출을 이끌었을 때 민주당과 결별했습니다. 그는 닉슨의 민권법을 필리버스터를 시도한 후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그는 극우세력의 자랑스러운 일원이며, 그의 고향 주에서 월러스를 위해 힘차게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풀브라이트가 해외에서 평화와 국제 협력의 챔피언이 되는 것과 국내에서 짐 크로우를 옹호하는 것 사이의 모순을 본다면, 그는 그것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월리스의 국무장관이 되는 데는 그보다 더 좋은 선택이 없습니다.

        • 윌버 밀스/러셀 B. 롱 재무장관
        인물설명 (밀스)
        윌버 밀스는 월리스의 재무장관에 자연스럽게 선택되었습니다. 카운티 판사로서, 그는 자신의 고향인 아칸소 주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카운티 지원 의료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전 은행원은 세법 전문가였고 재정보수주의와 인도주의적 목표의 균형을 맞추는 데 명수였습니다. 인종분리주의자이자 서먼드의 민주당 탈당자 중 한 명으로서 밀스는 자연스럽게 월리스의 사회 정책에 동조하게 됩니다. 또한, 그는 월리스의 사회 보장 및 메디케어 계획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자 수석 설계자입니다. 그 작은 남자를 도울 수 있는 예산안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밀스입니다.

        밀스의 정치 인생 밖에서, 그 남자는 수수께끼입니다. 그의 사생활에 대한 극도의 비밀은 벨트웨이의 가장 섹시한 스트리퍼들과 폭음과 광란의 파티를 한다는 루머에 불을 지폈습니다. 이 소문의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월리스는 밀스를 주시해야 할 것이고 그가 이 정부를 고통스러운 스캔들로 이끌지 않도록 확실히 해야 할 것입니다.

        인물설명 (롱)
        악명높은 고 휴이 롱 루이지애나 주지사의 아들이자 루이지애나 주 상원의원인 러셀 빌리우 롱은 스트롬 서먼드 내각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다소 진보적인 NPP의 당원으로서, 롱은 사회 프로그램과 경제 정의를 추진하는 데 있어 선구자가 되어 의료 보조금과 복지 확대와 같은 다양한 정책을 지지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미국에 대한 그의 비전은 미국의 약한 구성원들을 돌보는 자선 사회,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는 사회입니다. 놀랍게도, 스트롬 서먼드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물론 받는 사람이 백인이라면 말이죠.

        인물설명 (버드)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로버트 C. 버드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은 월리스 행정부 구성원 중 그 자신을 제외하고 없습니다. 이 전 상원의원은 쿠 클럭스 클랜의 조직원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그가 공직에 출마하도록 가르친 사람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그랜드 드래곤이었습니다. 버드는 독설적인 분리주의자로 명성을 얻었고, 그는 14시간 동안 연설함으로써 1962년 민권법을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언젠가 "이 사랑스러운 땅이 야생의 검은 잡종에게 타락하는 것을 보느니 천번 죽고 옛 영광이 짓밟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말겠다"고 썼습니다.

        한동안, 버드가 정치적 주류로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그의 인종분리주의적 견해를 누그러뜨리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조지 월리스의 당선 이후 그가 인종분리주의 정치에 두배로 집중하면서 그 모든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풀브라이트나 밀스 같은 온건한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버드는 인종분리에 올인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월리스의 내각에서 자리를 얻었고, 그는 새로운 직책을 이용해 행정부에서 짐 크로우의 최고 옹호자가 되었습니다. 요키가 이끄는 아메리칸 국가 전위대의 왼쪽에 겨우 붙어있는 인종 정치와 함께, 버드는 민권법을 폐지하지 않는다면 월리스를 압박할 것입니다.

        인물설명 (리버스)
        전쟁은 민사란 없습니다. 그것은 끔찍하게 소란스러운 일이고, 완전한 승리를 이룰 때까지 인간성을 정지시키는 일입니다. 도덕적 승리는 좋지만, 미국의 마지막 도덕적 승리는 하와이, 두 항구,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루시안 멘델 리버스는 도덕적 승리를 위해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은 모든 전선에서 공격을 받고 있으며 히피, 기자, 그리고 다른 쓸모없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군대를 제지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사치입니다. 이 거머리들은 남아프리카 전쟁에서 핵무기 사용을 옹호했던 전직 하원의원이 이제는 군사행정에 직접 책임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려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아무리 작은 핵이라도 서먼드 자신이 승인해야 할지라도, 리버스는 절뚝거리는 몇몇 소년들보다 확실히 이 문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모든 것이 대통령 집무실의 큰 사람에 의해 승인될 필요는 없습니다. 몇몇 군인들이 마을을 해방시키는 중에 일어나는 일탈같은 사소한 사건들은 분명히 대통령의 책상에 올라갈 만큼 충분히 중요하지 않으며, 리버스는 적어도 50년 동안 관련된 모든 사람이 사망할 때까지 내부 사안을 기밀로 분류하고 보류시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NPP 국가파 소속. 현실에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으로 인종분리주의 지지자였다. 1948년 딕시크랫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으며 1957년 민권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무려 24시간이나 필리버스터를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그에게 숨은 흑백 혼혈 딸이 있었다는 것.

      TNO 세계에서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으로 등장. 여기서는 1954년 대법원이 교내 인종분리를 위헌이라고 결정하자 딕시크랫을 데리고 민주당을 탈당, 조지 S. 패튼의 국민당으로 옮겨갔다. 2년 뒤인 1956년에는 국민당과 국민진보운동의 통합 협상을 진행해 국가진보전선의 형성을 이루어냈다.

      로버트 케네디가 1964년 대선에서 승리한 후 지나치게 급진적인 개혁을 시도하면 암살당하는데, 이때 부통령인 윌리엄 가이 마저 사망해 하원의장이 승계하게 된다. 하지만 하원의장이 게이라는 것을 아는 스트롬 서먼드가 아웃팅하겠다고 협박해 하원의장이 승계를 거부하고 상원임시의장인 서먼드가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이 되면 로버트 케네디의 유산을 되돌리고 짐 크로 법을 강화하려 한다. 이 경우 NPP 중도파 내 인원들이 NPP 극좌파로 이동한다. 또는 케네디의 유산을 부수지 않고 민권법을 유지할 수도 있다.

      1.4. 조지 월리스 (NPP)[편집]


      저는 이 불리한 상황에서 단호하게 반대하며 폭군의 발 앞에 도전장을 던집니다. 제가 말하기를 인종분리는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I draw the line in the dust and toss the gauntlet before the feet of tyranny, and I say segregation now, segregation tomorrow, segregation forever.

      -1963년 1월 14일 앨라배마 주지사 당선 연설[15]

      • 집권이념: 딕시크랫(가부장주의, 국가진보전선-주권당)
      • 인물설명

        조지 C. 월레스는 자신을 고결한 남부 신사이자 진정한 혈기왕성한 미국인으로, 국민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권리와 자유를 지키며 자랑스러운 국가를 재패나치의 위협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사실 그는 뛰어난 기회주의자로 최대한 많은 표를 받아내는데 맞게 자신의 사상을 만드려듭니다. 고향 앨라배마에서 만족할 만한 백인표를 얻으려던 시도는 필연적으로 주의 권리를 약화시키려는 비미국적 제5열을 상대로 모든 방면에서 맞서는 완고한 인종분리적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1948년 민주당이 붕괴하고 "솔리드 사우스" 콘크리트층이 당에게 바치던 충성이 흔들리자 월레스는 기꺼이 리처드 러셀 주니어의 주의 권리당으로, 그 다음에는 애국당으로, 마침내 국가진보전선으로 옮겨탔습니다.

        선거 유세 동안 월레스는 NPP의 프랑켄슈타인 투표층의 지지를 받고, 심지어 전국 표의 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그의 위치를 완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백악관에 앉았고, NPP의 수많은 좌익 성향 당원들과의 편리한 동맹도 빠르게 약해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지배층이 되었는데 지배층에 대한 증오만으로 묶여있는 당을 어떻게 단결시키겠어요? 하지만 월레스는 이 동맹을 더 유지할 계획이 없어보입니다. 대신 합법으로 인종분리를 지원하는데 최대한 많은 시간을 쓸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인종분리를 사실상 뽑아낼 수 없게 되었을 때 고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부의 구원자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 내각
        인물설명
        커티스 르메이처럼 냉전에 이미 영향을 미친 사람이 다시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전략공군사령부 시절 미 공군의 핵전략 개발을 책임졌던 르메이의 공군참모총장 재임 기간은 케네디 부통령, 맥스웰 테일러 장군과의 끊임없는 갈등으로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하와이에 있는 일본 미사일 기지를 폭격하라는 그의 요청은 단호히 거부되었고, 가이아나 개입 기간 동안 극도로 공개적인 사임으로 이어졌습니다.

        르메이의 불길은 선거 유세장에서 사그라지지 않았으며, "아프리카를 폭격해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는 말은 월리스 선거운동에 큰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래로 그는 국가 안보와 관련 없는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눈에 띄게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만약 월리스의 격동의 대통령 임기가 갑자기 끝난다면, 그의 후임자가 어떤 정책을 제정할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습니다.

        • J. 윌리엄 풀브라이트 외무장관
        인물설명
        조지 월리스가 남부 포퓰리즘 정치의 화신이라면, J. 윌리엄 풀브라이트는 남부를 가장 점잖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로즈 장학금 장학생, 전 대학 총장이자 아칸소주 재정부 장관 둘의 아들인 풀브라이트는 교육을 받았고, 국제적이고, 인맥이 좋으며, 주 박람회보다 주 만찬에서 훨씬 더 편안합니다.

        풀브라이트는 OFN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이며, 아마도 다자간 국제질서에 대한 세계의 마지막 진정한 신봉자일 것입니다. 풀브라이트는 미국을 자유세계를 위한 길잡이 빛, 폭정의 바다 속 자유의 마지막 등불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의 학생 교환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지지하며, 그레이 공포 기간 동안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비난을 받았을 때 그들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풀브라이트는 OFN이 극단적으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국가들로까지 회원 수를 확대하고 보다 친근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풀브라이트는 여전히 딕시크랫입니다. 그는 서먼드가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 이후 탈출을 이끌었을 때 민주당과 결별했습니다. 그는 닉슨의 민권법을 필리버스터를 시도한 후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그는 극우세력의 자랑스러운 일원이며, 그의 고향 주에서 월러스를 위해 힘차게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풀브라이트가 해외에서 평화와 국제 협력의 챔피언이 되는 것과 국내에서 짐 크로우를 옹호하는 것 사이의 모순을 본다면, 그는 그것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월리스의 국무장관이 되는 데는 그보다 더 좋은 선택이 없습니다.

        • 윌버 밀스 재무장관
        인물설명
        윌버 밀스는 월리스의 재무장관에 자연스럽게 선택되었습니다. 카운티 판사로서, 그는 자신의 고향인 아칸소 주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카운티 지원 의료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전 은행원은 세법 전문가였고 재정보수주의와 인도주의적 목표의 균형을 맞추는 데 명수였습니다. 인종분리주의자이자 서먼드의 민주당 탈당자 중 한 명으로서 밀스는 자연스럽게 월리스의 사회 정책에 동조하게 됩니다. 또한, 그는 월리스의 사회 보장 및 메디케어 계획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자 수석 설계자입니다. 그 작은 남자를 도울 수 있는 예산안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밀스입니다.

        밀스의 정치 인생 밖에서, 그 남자는 수수께끼입니다. 그의 사생활에 대한 극도의 비밀은 벨트웨이의 가장 섹시한 스트리퍼들과 폭음과 광란의 파티를 한다는 루머에 불을 지폈습니다. 이 소문의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월리스는 밀스를 주시해야 할 것이고 그가 이 정부를 고통스러운 스캔들로 이끌지 않도록 확실히 해야 할 것입니다.

        인물설명 (버드)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로버트 C. 버드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은 월리스 행정부 구성원 중 그 자신을 제외하고 없습니다. 이 전 상원의원은 쿠 클럭스 클랜의 조직원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그가 공직에 출마하도록 가르친 사람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그랜드 드래곤이었습니다. 버드는 독설적인 분리주의자로 명성을 얻었고, 그는 14시간 동안 연설함으로써 1962년 민권법을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언젠가 "이 사랑스러운 땅이 야생의 검은 잡종에게 타락하는 것을 보느니 천번 죽고 옛 영광이 짓밟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말겠다"고 썼습니다.

        한동안, 버드가 정치적 주류로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그의 인종분리주의적 견해를 누그러뜨리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조지 월리스의 당선 이후 그가 인종분리주의 정치에 두배로 집중하면서 그 모든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풀브라이트나 밀스 같은 온건한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버드는 인종분리에 올인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월리스의 내각에서 자리를 얻었고, 그는 새로운 직책을 이용해 행정부에서 짐 크로우의 최고 옹호자가 되었습니다. 요키가 이끄는 아메리칸 국가 전위대의 왼쪽에 겨우 붙어있는 인종 정치와 함께, 버드는 민권법을 폐지하지 않는다면 월리스를 압박할 것입니다.


      NPP 국민파 출신 앨라배마 주지사. 현실에서는 앨라배마 대학교 흑인 등록 거부 사건 당시 직접 친히 나서서 흑인 학생들이 못 들어가도록 길막했으며, 당시 딕시크랫 계파의 수장이었다.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미국독립당 대표로 출마한 인물. 이후 관심종자[16] 아서 브레머에게 총을 맞아 하반신이 마비되고, 이혼과 재혼과 같은 여러 경험을 겪은 후 인종 차별 사상을 버렸다.[17]

      닉슨이 민권법을 승인하면 NPP 대선 후보로 나온다. 친기업적 정치인으로 작은 정부, 인종차별, 주 정부 권리를 확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지지받고 있으며 전용 시스템으로 이 세 계층의 만족도가 있다. 루트에 따라서 정반대로 인종 구분 없는 복지 정책을 시행할 수도 있다.

      • 해외 사업 - 이베리아,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적극적인 무역을 하고 기업을 위해 규제를 철폐하는 등 경제적 자유주의 정책을 펼친다. 그렇지만 월리스는 포퓰리스트고 주요 지지층은 백인 노동자와 남부인지라 노동조합을 지원하는 법을 통과시킨다.
      • 태평양 무역지대 - 오세아니아, 중앙아메리카, 인도를 하나의 무역지대로 묶어 퍼스 조약을 체결해 일본을 견제한다.[18]
      • 사업 - 사업세를 인하하고 기업에 보조금을 준다. 또한 직업 군단을 창설하는데, 강철 벨트에 집중해 노동자 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CCC를 창설하거나, 남부에 집중해 남부에 보조금을 주고 직업 군단을 인종 분리하며 실업급여를 확장할 수 있다.
      • 복지 - 먼저 사회보장과 메디케어를 통과시켜야 하는데, 둘 다 인종분리와 프로그램 확대가 가능하다. 사회보장법은 북부의 국민파와 협력이 가능하며 사회보장법과 메디케어 둘 다 민주당과 협력이 가능하다. 사회보장 문제에서는 국민파는 언제나 협력하지만, 민주당은 인종분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RFK와 접촉해야 하며[19] 메디케어 문제에서도 민주당의 표를 얻으려면 인종분리를 하면 안된다.[20][21] 인종분리를 하지 않으면 딕시크랫 10명이 이탈하고, 하면 진보파가 이탈한다. 통과 후에는 연방의 직접적인 원조를 통해 최저임금을 늘리거나, 주 자체의 지출을 강조할 수 있다.
      • 학교 자금 - 월리스는 기본적으로 보수다 보니 교육 자금을 어느 정도 삭감하려고 한다. 먼저 교육비 삭감/흑인 교육비 삭감 중 선택하고 인종분리적 자금 지원을 강제하며 주 정부에 교사 봉급을 위임한다. 그 후에는 주들에게 교육비를 위임하고 보조금을 삭감하며 보조금을 차별하거나, 연방 교육비를 유지하고 예산을 삭감하며 인종별로 교사 봉급을 차별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헌법에 위배되는 중점이 많으며 대법원을 보수파로 맞추지 않았다면 지지율이 깎일 수 있다.
      • 교육 커리큘럼 - 학교에 기독교 신앙과 인종분리를 되돌리려고 하며 미국의 역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 애국적 교육을 만든다. 여기서 입법을 통한 인종분리 강제나 인종분리주의적 수사 철회를 할 수 있다.
      • 주권 - 주의 권한을 강화하고 주 정체성을 장려하며, 주 경찰을 연방경찰 위에 세우려 든다. 그 후 주 민병대를 복구한다. 인종분리를 주에게 맡기고 반민권 시위를 지원하거나, 정부 주도의 인종분리를 하며 교통수단을 분리한다. 그 후 민권법 폐지가 시작된다.
      • 민권법 폐지 - 민권법 폐지를 위해 전국적으로 순회를 펼치며 법과 질서 수사법을 10배로 늘리고, 의회를 매수하며 흑인 투표를 방해하고 지도자들을 구금한다. 마지막으로는 결국 민권법을 폐지한다.

      경제적으로는 오세아니아, 중미, 인도를 하나의 무역지대로 묶어 일본을 견제한다.[22] 복지 예산, 교육 예산, 주가 받는 연방의 지원금을 삭감하고 기업을 위해 규제를 철폐하는 등 경제적 자유주의를 강하게 밀어주지만 워낙에 기회주의적인 정치인이라서 최저임금을 높이고 의료보험과 사회보장을 증진하며 노조를 돕는 등 친노동자적인 정책을 펼치기도 한다.


      정치적으로는 주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인종분리를 확장한다. 인종분리를 위해 흑인을 차별하는 학교와 인종분리 정책을 실시하는 주에 지원금을 편중시키는 등 치졸한 짓을 하기도 한다. 최종적으로는 민권법을 제거하려 한다. 단 주에 인종 분리를 강제하는 수준까지 가면 연방이 주의 독립권을 침해한다고 여겨 지지자들도 등을 돌린다.

      【스포일러】
      만약에 입법을 통한 인종분리 강제를 탈 경우 아래 국민정신 설명과 같이 디스토피아 낌새가 보이는 동시에 지지자들마저 너무 갔다고 생각해서 대규모로 공화민주연합 지지로 옮겨간다.

      "보편적 인종분리"

      월레스 대통령은 루비콘 강을 건너 상상할 수 없던 일을 해냈습니다. 그는 연합의 모든 주의 학교에서 인종분리를 강제했습니다. 흑인과 북부 진보주의자들은 이 새로운 탄압에 격노하고 있고 그의 지지자 대다수조차 이번엔 그가 도를 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월레스는 주의 권리에 대한 공약을 제시해 당선됐지만 이 새 법은 주 자치권이라는 개념에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이미 북부 도시에서 대규모 집회가 형성되고 있고 요키주의 자경단들이 학교에 가는 흑인 아이들을 "사인체포"하려 하자 미국 전역에서 인종폭동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나요, 대통령 각하?


      교육관련 법안을 시행하다보면 아칸소 주지사인 오벌 포버스가 멋대로 인종분리를 재도입한다. 이에 전에 포버스를 물먹인 적 있었던 리틀록 센트럴 고등학교가 인종분리 재도입을 거부하고, 월리스는 포버스와 함께 대응 방법을 논의한다. 여기서 특정 선택지를 고르면 고등학교를 봉쇄하던 주방위군이 항의하는 학생에게 발포해 탄핵 절차에 들어가는데, 동조자들을 끌어모아 탄핵을 피하지 못한다면 밑에 있는 커티스 르메이가 대통령이 된다.

      반면 고의적으로 민권법 폐지를 회피하거나 인종분리주의적 수사 철회 루트를 타면 국민파의 지지가 대규모로 요키파로 이동한다. 이 경우에도 지지율은 떨어지지만 흉흉한 강경 루트와는 달리 흑인 소녀와 백인 경비원이 학교 앞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거리를 보며 흡족해하는 훈훈한 이벤트가 발생한다.



      1.4.1. 커티스 르메이 (NPP)[편집]

      모든 군인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도덕적 측면을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전쟁은 부도덕한 것이며, 그것이 당신을 괴롭힌다면, 당신은 좋은 군인이 아니다.

      Every soldier thinks something of the moral aspects of what he is doing. But all war is immoral and if you let that bother you, you're not a good soldier.

      • 집권이념: 국민보수주의(가부장주의, 국가진보전선-국민당)
      • 인물설명

        만약 누군가가 1962년의 커티스 르메이에게 그가 몇년 안에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면전에서 그 사람을 비웃고 멍청한 놈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출마한 적이 없었음에도, 커티스 르메이는 조지 월러스의 재앙적인 임기에 뒤이어 대통령직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1964년 선거운동에서 "아프리카를 석기시대로 되돌리자"고 하여 논란이 되었던 전 공군 대장은 걸걸하고 무당파적인 본성 때문에 월러스 선거운동본부의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적 골칫거리로 여겨졌습니다. 그는 한번도 진정한 정치인인 적이 없었고, 월러스 행정부에서 르메이의 주된 역할은 방위 문제, 특히나 미국의 핵능력을 다루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월러스가 떠났고, 르메이는 인종분리주의에 대한 입장을 정해야만 합니다. 잠재적 정적들로 둘러싸여 있고 문제에 빠진 국가를 치유하는 임무를 맡은 르메이에게 푸른 창공은 먼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르메이 대통령은 이 문제들을 매우 침착하게 대처해왔습니다. 그 주변으로 폭풍이 몰려오는 가운데, 그는 미국이 이 문제를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1943년 그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목격하였으며, 중폭격기의 조종석에서 폭풍을 헤쳐나갔고, 이제 그는 마침내 결정적인 행동으로 국가를 치유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앞으로 대통령에게 한가지는 확실할 것입니다. 커티스 르메이의 감시 하에 미합중국은 더 큰 혼란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감히 그럴 수 없겠죠.

      • 내각
        인물설명
        제럴드 포드의 현재 지위는 그의 정치적 능력만큼이나 적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존 맥코맥의 극적인 승리와 여러 차례의 투표로 그의 상관의 몇 배가 탈락한 후에야 국회의장이 되겠다는 그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공명정대하다는 평판 덕분에 적지 않은 성과입니다.

        포드는 공식적 당적의 위에 있는 정치적 동맹을 주도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분리주의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확고한 진보주의자로 확장되는 코커스를 주관하고 있으며, 그의 거추장스러운 다수를 휘두르며 NPP의 입법 의제를 방해하는데 있어 혼합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월리스가 물러나고 르메이 대통령이 자리를 잡으면서 포드는 이제 대통령직 다음 줄에 서서 운명이 그를 어디로 데려갈지 조심스레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 명의 우발적인 대통령으로부터 살아남았습니다. 다른 대통령으로부터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 J. 윌리엄 풀브라이트 외무장관
        인물설명
        조지 월리스가 남부 포퓰리즘 정치의 화신이라면, J. 윌리엄 풀브라이트는 남부를 가장 점잖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로즈 장학금 장학생, 전 대학 총장이자 아칸소주 재정부 장관 둘의 아들인 풀브라이트는 교육을 받았고, 국제적이고, 인맥이 좋으며, 주 박람회보다 주 만찬에서 훨씬 더 편안합니다.

        풀브라이트는 OFN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이며, 아마도 다자간 국제질서에 대한 세계의 마지막 진정한 신봉자일 것입니다. 풀브라이트는 미국을 자유세계를 위한 길잡이 빛, 폭정의 바다 속 자유의 마지막 등불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의 학생 교환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지지하며, 그레이 공포 기간 동안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비난을 받았을 때 그들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풀브라이트는 OFN이 극단적으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국가들로까지 회원 수를 확대하고 보다 친근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풀브라이트는 여전히 딕시크랫입니다. 그는 서먼드가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 이후 탈출을 이끌었을 때 민주당과 결별했습니다. 그는 닉슨의 민권법을 필리버스터를 시도한 후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그는 극우세력의 자랑스러운 일원이며, 그의 고향 주에서 월러스를 위해 힘차게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풀브라이트가 해외에서 평화와 국제 협력의 챔피언이 되는 것과 국내에서 짐 크로우를 옹호하는 것 사이의 모순을 본다면, 그는 그것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월리스의 국무장관이 되는 데는 그보다 더 좋은 선택이 없습니다.

        • 윌버 밀스 재무장관
        인물설명
        윌버 밀스는 월리스의 재무장관에 자연스럽게 선택되었습니다. 카운티 판사로서, 그는 자신의 고향인 아칸소 주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카운티 지원 의료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전 은행원은 세법 전문가였고 재정보수주의와 인도주의적 목표의 균형을 맞추는 데 명수였습니다. 인종분리주의자이자 서먼드의 민주당 탈당자 중 한 명으로서 밀스는 자연스럽게 월리스의 사회 정책에 동조하게 됩니다. 또한, 그는 월리스의 사회 보장 및 메디케어 계획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자 수석 설계자입니다. 그 작은 남자를 도울 수 있는 예산안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밀스입니다.

        밀스의 정치 인생 밖에서, 그 남자는 수수께끼입니다. 그의 사생활에 대한 극도의 비밀은 벨트웨이의 가장 섹시한 스트리퍼들과 폭음과 광란의 파티를 한다는 루머에 불을 지폈습니다. 이 소문의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월리스는 밀스를 주시해야 할 것이고 그가 이 정부를 고통스러운 스캔들로 이끌지 않도록 확실히 해야 할 것입니다.

        • 로버트 버드 내무장관
        인물설명 (버드)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로버트 C. 버드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은 월리스 행정부 구성원 중 그 자신을 제외하고 없습니다. 이 전 상원의원은 쿠 클럭스 클랜의 조직원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그가 공직에 출마하도록 가르친 사람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그랜드 드래곤이었습니다. 버드는 독설적인 분리주의자로 명성을 얻었고, 그는 14시간 동안 연설함으로써 1962년 민권법을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언젠가 "이 사랑스러운 땅이 야생의 검은 잡종에게 타락하는 것을 보느니 천번 죽고 옛 영광이 짓밟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말겠다"고 썼습니다.

        한동안, 버드가 정치적 주류로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그의 인종분리주의적 견해를 누그러뜨리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조지 월리스의 당선 이후 그가 인종분리주의 정치에 두배로 집중하면서 그 모든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풀브라이트나 밀스 같은 온건한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버드는 인종분리에 올인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월리스의 내각에서 자리를 얻었고, 그는 새로운 직책을 이용해 행정부에서 짐 크로우의 최고 옹호자가 되었습니다. 요키가 이끄는 아메리칸 국가 전위대의 왼쪽에 겨우 붙어있는 인종 정치와 함께, 버드는 민권법을 폐지하지 않는다면 월리스를 압박할 것입니다.


      NPP 국민파 소속. 현실 역사에서 미국 공군 참모총장을 맡았다. 2차대전 당시 총력전에서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는 논리로 일본을 무자비하게 폭격한 것으로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실제 역사에서는 1968년 대선 당시 조지 월리스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했었는데, 여기서도 64년 대선에 함께 출마해 부통령을 맡고 있다. 조지 월리스가 탄핵당하면 그의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포커스 트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당과 표를 위해 인종 통합을 매우 느리게 하는 루트와 자신의 정치생명을 버리고 강경한 인종통합을 추진해, 최종적으로 케네디보다 더 급진적인 민권법을 통과시키는 루트가 있다.[23] 후자의 경우 NPP 국민파 내 인종차별주의자를 숙청하는데 숙청당한 이들은 요키파로 이동한다. 전자의 경우 중도파가 좌파로 달아난다.

      여담으로 둘 다 강경한 매파여서인지, NPP 중도파인 헨리 잭슨과 궁합이 잘 맞는듯한 이벤트가 있다.


      2. 1968년 대선[편집]



      2.1. 배리 골드워터 (RDC)[편집]


      여러분께 상기시켜 드리건데 자유를 지키기 위한 극단주의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정의 추구에 있어서 절제는 미덕이 아닙니다!

      I would remind you that extremism in the defense of liberty is no vice! And let me remind you also that moderation in the pursuit of justice is no virtue!

      -1964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연설

      • 집권이념: 자연보수주의(보수주의, 공화민주연합-공화당)
      • 인물설명

        "개신교 신도, 유대인, 조종사, 상원의원이 워싱턴의 한 술집에 들어왔습니다. 바텐더가 물었습니다. "무엇을 드릴까요, 골드워터 씨?"" 배리 모리스 골드워터가 그에 대해 말하는 농담 중 하나입니다. 이는 공화민주연합의 남부와 서부 파벌을 지배하는 자의 다양하고 다채로운 배경을 설명하지요. 애리조나 준주에서 함께 백화점을 경영한 유대인 아버지와 성공회 신도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골드워터는 별볼일없는 삶을 살았으나, 2차대전의 발발 이후 그는 육군항공대에서 예비역 장교이자 수송사령부의 조종사로 근무하였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의 각종 전선으로 보급품들을 옮기며 골드워터는 파시스트 적과 조지프 케네디 행정부의 실패한 평화 정책 모두에 혐오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패전 이후 골드워터의 공격적인 언사와 강건한 사회보수주의는 1953년 은퇴한 민주당 맥파랜드 의원의 뒤를 이어 애리조나의 연방상원의원직을 얻게 해줬습니다.

        골드워터는 공화민주연합의 민주당 세력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까지 부상하였으며, 이동안 그는 아이젠하워와의 개인적 적대감으로 인해 공화당 세력의 유혹을 거부해왔습니다. 국가진보전선 역시 그가 보기에는 일본 하나에게만 너무 몰두해 있었으며, 극단 사회주의 분자들에게 지배되고 있었습니다. 그의 카리스마와 날카로운 존재감은 곧 그를 백악관으로 이끌었습니다.

        이제 골드워터는 강력한 대중의 지지의 파도를 타고 권좌에 올랐으며, 세계는 그 파도를 희망 혹은 걱정에 차 바라보고 있습니다. 미국이 전 세계의 파시스트 적들에 맞서 완전한 군비 무장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 내각
        • 월터 주드 정부수반 (공화당)
        • 칼 커티스 외무장관 (공화당)
        • 도날드 리건 재무장관 (공화당)
        • 로버트 맥나마라 내무장관 (공화당)

      강경 보수주의 성향의 공화당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으로, 현실에서는 1964년 대선 당시 대선 후보로 린든 존슨과 경쟁했으나 낙선했다. 전임 대통령으로 NPP 후보가 당선됐을 경우 출마할 수 있다.

      기본 중점과 전임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바뀌는 추가 중점으로 되어있다.
      밑에 설명되어 있는 중점은 기본 중점에 관한 것으로 추가 중점은 케네디가 대통령일 경우, 월리스가 대통령일 경우 이렇게 2가지로 나뉘어져 있다.[24]
      환경 보호와 극단주의 배격, 노조에 관한 중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제 정책은 OTL의 레이건처럼 여러 보조금을 삭감하고 세금도 경감해 성장에 주력하는 방식을 취한다. GDP는 베넷 다음, 혹은 베넷보다 높은 수준으로 성장시키지만 그걸 대가로 다른 사회/복지면의 성능을 대거 축소시킨다는 단점이 있다.

      • 자연/극단주의 - 환경주의자인 골드워터는 국립공원을 확장하고 연방수질오염관리법을 통과시키며 환경보호청을 설립한다. 그 후에는 극단주의를 막기 위해 NPP의 극좌파나 요키파 하나를 골라 뒷공작을 벌일 수 있다.
      • 경제 - 2가지 계획이 있는데, 도널드 리건[25]의 '리거노믹스'를 수용하여 정부 지출을 대규모 삭감하고 보수적 재정정책을 채택하거나, 모턴 계획을 시행해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 파시스트 국가들과의 무역을 금지하고 OFN 동맹국들과의 무역 관계를 강화하며 금본위제를 부활시켜 달러 가치를 안정화하는 급진적 정책을 채택할 수 있다. 그 와중에 군대도 같이 개혁할 수 있는데, 도널드 럼즈펠드의 계획을 채택해 군대를 정예화하거나 로버트 맥나마라의 계획을 채택해 군대를 확장하고, 은행제도를 개혁할 수 있다.
      • 노조 - AFL-CIO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노조에 대한 표적 수사와 노-정 관계의 조사, 노동조합기준법, 의회와 정부에 있는 부패를 조사한다. 여기서 문제는, FBI를 동원하여 노조를 공격하는 것이라 유출될 시 여파가 커질 수 있다. 상무장관의 보고 이후 합법적인 방법으로 노조를 공격하거나, 위헌적 방법까지 동원할 수 있다. 이후 재판까지 가면 패배/중립/승리/대승까지 나올 수 있다. 재판에서 대승을 거두고 노동조합기준법이 통과될 시 각각 노동조합 법의 단계가 1단계씩 낮아져 최대 관제노조까지 갈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의회에 있는 막대한 부패에 대해서도 전쟁을 펼치게 된다.

      취급은 그리 좋지 않은데, 극단주의의 성능이 좋지 못한 본작의 특성상 극단주의를 극단적으로 배격하는 골드워터 역시 형태는 다르지만 강경 세력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이전에 어떤 대통령을 집권시키건 1972년에 요키와 홀을 취임시키는게 가능은 하지만, 골드워터로 일부러 개막장 플레이를 해서 이 둘을 집권시키는 것이 쉽기에 배리 골드워터가 나치/공산주의 소환 밈 취급을 받고 있다.[26]
      다만 이것은 일부러 홀과 요키를 집권시키기 위해 개막장으로 플레이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정상적인 선택지만을 고르면 극단주의 진영의 비리를 성공적으로 수사하며 세력을 괴멸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RFK같은 대통령도 이와 비슷한 코인텔프로 프로그램을 통해서 위헌적인 방법으로 상대 세력을 수사하는 행위가 있는 등 골드워터와 유사한 행위를 하기도 한다. 물론 RFK등은 급진적 민권법 등 뽕차는 일하지만, 골드워터는 딱히 그런 게 없기에 저평가받는 중.

      2.2. 필립 하트 (RDC)[편집]


      만약 당신이 상원으로 출근했을 때, 조간 신문에 하원의 동료들이 출근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나와 있다면 말입니다. 두 달 동안 무슨 연설이 있을지 아시잖습니까. 우리가 베트남에서 하고 있는 악행에 관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법과 질서에 관한 것일 테지요. 그건 말도 안 됩니다.

      If you come to work in the Senate, and the morning paper shows that your colleagues in the House have not been permitted to get to work. You know what the speeches will be for two months. It won't be about the evil we're doing in the field in Vietnam; it'll be about law and order in America. And that's crazy.


      • 집권이념: 왕조자유주의(공화민주연합-민주당)
      • 내각
        • 쳅 모리슨 정부수반 (민주당)
        • 해리 S. 트루먼/헨리 키신저 외무장관 (민주당)/(공화당)
        • 제인 제이콥 재무장관 (진보당)
        • 에드워드 랜스데일 내무장관 (공화당)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 후보. 현실에서는 미시간 출신의 진보적 상원의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 서부전선에서 복무했으며,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부상을 입고 민주당 활동가로 일하다가, 1954년 선거에서 부지사로 당선되었다.
      그 이후 1959년부터 1976년까지 버싱, 총기 규제 등 진보적인 조치를 지지했으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당파를 초월해 협력하곤 했다. 이런 행보로 인해 "상원의 양심"이라는 호칭까지 붙여졌다.

      하트가 대통령이 되는 방법은 세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RFK 집권 후 노빠꾸 풀개혁을 하다가 암살당하고 스트롬 서먼드를 집권시켜 진보 세력을 민주당쪽으로 집중시켜 당선시키는 방법이고,
      두번째는 RFK 집권 후 NPP 국민당과 타협하며 적당히 개혁하고 암살당하지 않은 채로 RDC에 정권을 넘겨주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조지 월리스를 집권시킨 이후 민권은 손대지 않은 채로 적당히 경제 중점 위주로 타다가 정권을 넘겨주는 방식이다.

      성능 자체는 RFK를 살리는 쪽이 가장 좋다. 국민당과 어느정도 타협한다고는 하나 사회보장법이나 의료보험법, 기본 소득 실험, 최저 임금 개혁, 연방 식량 은행 창설, 직업훈련단 창설같이 RFK만의 유니크한 개혁들을 남기는게 가능하고 상원 선거를 잘 치뤘다면 혁명적 민권법을 찍는 것도 가능하다.[27] 선거가 끝난 이후 야당인 NPP 진보파가 같은당 공화당보다 더 든든한 국정 운영 파트너가 되어 하트의 개혁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게 된다.

      다만 이 루트는 대리전의 승리와 개혁의 성과들로 인해 단단해진 NPP 진보파의 영향력을 쉽사리 뛰어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66년부터 각잡고 RDC 위주 선거운동을 해도 이기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상황에 따라 몇몇 쓸모없는 국가의 대리전을 일부러 패배하고 진보당의 인기를 올려주는 중점을 최대한 늦게 찍는 식으로 대응해야지만 집권이 가능하다. 코인텔프로 중점을 탄 후 일부러 들키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추가로 개혁 드라이브를 밟으며 RFK를 살리는 것도 고역이다.[28] 쿨마다 남부 당원들을 진정시키는 중점을 찍어 당원들을 안심시키고 일부 개혁들은 과감하게 타협해야 한다.

      팁을 하나 주자면 68년 각 당의 대선 후보가 정해지고[29] 대선 구도가 확정되면 RFK 암살 시스템이 비활성화된다. 개혁 관련 중점을 최대한 뒤로 미뤘다가 이때를 기점으로 풀개혁을 하면 헤븐 아메리카와 RFK의 생존. 두마리의 토끼를 모두 챙길 수 있다.

      월리스와 스트롬 서먼드 정부는 반동 정치에 실망한 진보측 유권자들이 대거 RDC로 넘어와 대선 승리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집권 과정에서 미국을 많이 망가뜨리고 또 RFK때에 비해 NPP 국가파의 영향력이 강력한 상태라 대선 이후 개혁이 어렵다라는 단점이 있다. 쳅 모리슨때 개혁안을 지키기도 상당히 어려운 편이기도 하고.
      그래도 스트롬 서먼드는 일부 필요한 중점들만 찍고 퇴행적인 중점들은 찍지 않는 꼼수를 써서 RFK의 유산을 지킬 수 있으니 참고하자.

      어찌어찌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NPP와 RDC중 협력할 대상을 고르는 것으로 중점이 시작된다.
      NPP와 협력할 시에는 청정시가법을 통과시킬 수 있고, RDC와 협력할 시에는[30] 물질중독 및 회복법으로 마약중독자들을 재활시키려는 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타협안인 무료급식소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
      어느 쪽과 협력하든 상관이 없긴 하나 RDC와 협력하는 쪽의 법안이 더 급진적이고 효과가 좋은 편이다.

      급한 법안들을 통과시키고 나면 초반 위기가 끝이 나고 본격적으로 정책 트리가 열린다. 중점들은 네 가지 갈래가 있다.

      • 아이젠하워의 축복 - 교통 개혁 갈래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시작했던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시스템을 대규모로 확장하고 고속도로확장법을 통과해 미국을 이으려고 하고, 차량 산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차량개혁을 시작한다.[31] 이 차량개혁에서는 전통적인 방법을 채택해 차량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거나, 설문조사의 결과에 따라 소비자들을 지원해 아메리카 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라 대규모 공공철도, 즉 암트랙 현대화를 시작하고 결국 USDOT 현대화법을 추진한다.

      •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 - 도시 개혁 갈래이다. 범죄 방지 트리에서는 행정명령 34498호를 선포해 총기범죄 단속에 대한 무당파적 위원회를 설립하고 총기규제 및 등록법을 통과시키며, 경찰을 지원하고 불법 마약에 대해 단속을 하게 된다. 또한 공정무역을 지원하고 노동자와 농민들을 지원하며 기술 발전을 장려하는 등 도시를 발전시키려는 행보를 보인다.

      • 두 번째 미국 혁명 - 교육, 농업 개혁 갈래이다. 퇴역군인을 지원하고 체육을 장려하며 수정헌법 24조를 추진해 투표 나이를 18세까지 낮추는 등의 행보를 보이며, 교육개혁을 위해 무상급식 실시, 사립학교 내 인종분리 철폐부터 시작해 공교육 확장, 도서관 건설 등을 진행하고 마침내 국가시험표준을 만들게 된다. 농업 개혁에 관해서는 비료 등 농업과학 지원을 시작으로 농민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편다.

      • 잉크와 피부 - 정치, 산업, 치안 개혁 갈래이다. 세 갈래중 가장 왼쪽에 있는 부분은 공동체 활성 부분이며 댐 건설과 지역 투자, 스포츠 육성등의 정책들을 펼친다. 가운데는 치안 개혁 관련이고 정책들은 형법 개혁과 마약 단속 방식의 변경 등이 있다. 가장 오른쪽은 '미국을 만들기'라고 하는 갈래이다. 이 갈래에서는 레드라이닝 폐지, 녹색 에너지 발전, 주택법등 정책이 있다.

      70년 상원 선거 도중에 석유 위기가 아닌 하트 정부 전용 경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위기가 발생하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대응책을 사용하다보면 하트가 실행했던 정책의 효과가 완전히 박살나 여태까지 한 개혁들이 물거품이 되고 도시가 완전히 망가지니 위기 자체를 터트리지 않도록 하자.

      암트랙 중점과 하단부에 예산 절감 중점을 찍고, 도시 예산[32]을 표준이상으로 끌어올리면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맨 오른쪽 중점 트리에 예산 관련 중점이 많고 교통 개혁 트리는 경제를 살리는데 도움이 되니 초반부에는 해당 정책들을 찍는걸 추천한다.

      2.2.1. 쳅 모리슨 (RDC)[편집]

      • 집권이념: 왕조자유주의(공화민주연합-민주당)
      • 내각
        • 버치 베이 정부수반 (민주당)
        • 헨리 키신저 외무장관 (공화당)
        • 제인 제이콥 재무장관 (진보당)
        • 에드워드 랜스데일 내무장관 (공화당)
      필립 하트 루트의 엔딩이자 후일담으로, 필립 하트가 건강 문제로[33] 2선 도중 사임하고[34] 쳅 모리슨이 승계하여 하트의 개혁들을 필사적으로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컨텐츠이다.

      승계를 받고 나면 공화당과 NPP 국가파 주도의 추가 입법이 시도된다. 하트의 개혁 입법들의 구멍을 보완하는 활동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트의 개혁들을 무력화하기 위한 입법으로[35] 쳅 행정부는 이 추가 입법들을 부결시키는 데 온 힘을 집중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전까지 하트의 인기가 신기루처럼 느껴질 정도로 가결파(개혁 파기 찬성파)가 많지만 중점을 통해 지지자들의 단결을 성공적으로 이끌 경우 민주당 대다수와 NPP 진보파가 확고한 부결파로 돌아서게 되고, 어찌어찌 부결파 상원 의원을 51명 모으는데 성공할 경우 하트의 개혁을 지켜낼 수 있다.

      초기에는 필립 하트의 개혁이 수포가 되어 버리는 허무한 배드 엔딩 루트밖에 없어 이에 대해 글렌 삭제를 비판[36] 하는 의견이 존재했지만 해당 사항은 버그로 인한 것이었으며, 버그가 해결된 현재는 민주당과 NPP 진보파의 의석 숫자가 충분하다는 전제 하에 모든 개혁들을 지키는 게 가능해졌다.

      여러모로 여운이 남는 엔딩이지만 후반부 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억지로 공화당을 적으로 만들었다라는 비판이 존재한다.[37]

      2.3. 마이클 해링턴 (NPP)[편집]


      옷은 빈자를 보이지 않게 한다....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옷을 잘 입은 빈곤을 가졌다.

      Clothes make the poor invisible.... America has the best-dressed poverty the world has ever known.

      -1962년 출판된 저서 《또 다른 미국》(The Other America)에서


      또 다른 미국

      전후 유럽에 사는 수많은 이들은 앞날이 보장된 미국에서의 삶에 대해 들으며 자랐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미국 땅에 땡전 한 푼 없이 도착하고 나서 몇 년 만에 부자가 되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귀를 기울였습니다. 조국이 미국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잘 찍어내지 않았습니다. 군홧발에 짓밟힌 시민들은 정확한 묘사를 들으려면 친척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국인이 미국이라는 약속된 땅에 빈곤이라는 게 있을까 생각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오늘 마이클 해링턴의 소설 또 다른 미국이 전국의 서점에 발간되었습니다. 미국 내 빈곤 문제에 관해 다루는 이 소설은 많은 수의 미국인들이 빈곤선 밑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폭로합니다. 해링턴은 수많은 빈민이 사회적 고립 속에서 살아가며 중산층과 상류층이 이들을 보는 일은 별로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정치인들에게 완전한 빈곤 해소를 위한 "즉각적인 개선 조치"를 촉구했습니다.

      이 소설을 비판하는 이들은 해링턴의 사회주의적 기질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독자는 개선 조치 촉구에 동의했습니다. 이 책은 이미 부자와 빈민 모두에게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많은 정치인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미국인이 교육과 의료에 더 쉽게 접근할 방법을 생각해내고 있습니다.

      미국의 가장 큰 오해가 드러났다.

      • 집권이념: 민주사회주의(진보주의, 국가진보전선-농민노동당)
      • 인물설명

        마이클 해링턴은 1928년 초 세인트루이스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자라면서 그는 가톨릭 학교를 다니고 그의 부모로부터 보수적 관점을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예일대와 시카고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그는 그가 보기에 평범한 미국인을 착취하는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사회경제적 진보주의를 지지한 기독교적 관점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반집산주의적이었던 이 시각은 그로 하여금 가톨릭 일꾼운동을 위한 글을 쓰고 가톨릭 일꾼운동에 참여케 하였습니다. 전쟁 이후, 그는 가톨릭 일꾼운동과 파시즘에 대한 가톨릭 일꾼운동의 무심함에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더욱 극단주의적 집단에 가입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 그는 트로츠키주의자이며 매서운 반부하린주의자이자 반파시즘주의자인 막스 샤흐트만과 연합하였습니다.

        해링턴은 이후 더욱 좌파적으로 변했고, 이 와중에도 엄격한 집산주의를 계속 반대해왔습니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 그의 민권법에 대한 단호한 시각과 매우 권위주의적으로 변한 미국 사회당에 대한 불호가 그를 부상하는 국가진보전선으로 이끌었습니다. 이제 미합중국 대통령으로서, 마이클 해링턴은 자신의 민주사회주의에 대한 입장을 지지합니다. 만인을 위한 자유와 해방, 경제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 모두에 대해서 말이죠.

      • 내각
        • 어빙 하우 정부수반
        • 글렌 H. 타일러 외무장관
        • 더글러스 프레이서 재무장관
        • 윌리엄 윈터 내무장관
      NPP 진보파 소속 진보주의 성향 정치인. 현실에서는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을 창당했다. 전임 대통령이 RDC 측 인물이거나 서먼드나 르메이인 경우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본래 가톨릭 노동자 운동이나 미국 사회당에서 활동했으나, 이들이 권위주의를 경계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해 NPP에 자리 잡았다.

      OTL의 마이클 해링턴은 트로츠키주의 진영에서 활동하다가 막스 샤흐트만[38]에 합류해 강경성향을 버리고 온건성향을 가지게되었다. OTL에서도 TNO와 동명의 저작인 '또다른 미국'으로 유명세를 탔고, 1980년에는 현직 대통령 지미 카터에 맞서 경선에 출마하려 했으나 테드 케네디가 출마하자 그를 지지하며 출마를 포기했다. 이후 민주사회주의 이념을 정립하고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을 창립하는 등 미국내 좌파운동을 후원하였다. 국내에는 그의 저작중 사회주의 전반의 역사와 그의 개인적인 전망을 다룬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라는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었지만, 현재 절판되었다.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해링턴은 미국이 처한 빈곤 문제와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크게 교육, 의료, 식량, 사회보장 4가지에 대한 개혁을 시도한다. 전용 시스템으로 사회 계층의 인기를 얻는 시스템이 있어서 4가지 계층(부르주아, 중산층, 노동 계층, 하류층)으로 나눠진 미국민들에게서 일정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하고 개혁 법안을 통과시킬 때도 반수 이상의 의석을 얻어야만 한다.

      현 버전의 TNO에서 뽑을 수 있는 대통령 중 가장 급진적인 개혁을 감행한다. 개혁을 가장 강력하게 하면 무상 의료, 무상 교육(대학까지), 식량배급법, 적정 최저임금과 실업보조금, 일일 8시간 노동을 규정하는 사회보장법, 차별배제를 넘어서 소수자 권리를 보장한 '급진적 민권법'까지 진행하게 되는데 대법원이 진보파일 경우엔 어퍼머티브 액션 이벤트가 발동하여 여기에 얹어 차별에 대한 법적인 제재까지 규정한 '혁명적 민권법'으로 업그레이드 된다.[39] 혁명적 민권법은 TNO 상에서 이벤트적인 더미 데이터를 제외하고 일반 영역의 법 중엔 가장 강력한 민권법으로 설명문을 보면 이 법안의 수혜자들마저도 너무나 급진적이어서 부담스러워할 정도. 현 버전에서 해링턴만 가능할 정도로 급진적이다.[40]

      당연하게도 급진적인 개혁일수록 부자들한테서 미움받고 하류층에게서 지지받게 된다. 동시에 개혁 법안을 실시할 때는 다른 당과 협상을 하면 법안이 온건해지고 협상 없이 가장 강하게 들이 받아버리면 다른 당이 싫어하고 NPP의 중도-좌파 의원들이 좋아하며 가장 급진적으로 밀고 나가면 진보파 의원들이 몰표를 줘서 막힘 없이 법안을 통과시켜 버린다. 만약 진보파의 의석이 법안 통과를 위한 50석 넘은 상태라면 진정한 의미의 포퓰리즘 독재가 가능하지만, 의석이 없다면 사실상 진행이 불가능한 수준이 되어버린다. 그 때문에 68년부터 급진적으로 개혁하기보다는 조차지 협상으로 조차지와 하와이를 받아와 NPP 지지도를 끌어 올린 다음 70년 선거에서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면 그때부터 급진 개혁 드라이브를 밟는 것이 좋다.

      현 버전에서는 비슷하게 경제발전과 사회복지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루트인 LBJ와 RFK보다 더 쉽고 강력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LBJ는 빚에 시달리고 RFK는 급진적인 개혁에 나서면 암살당하고 서몬드를 소환하는데 해링턴의 경우에는 64년에 RDC에서 베넷을 집권시켜서 경제만 살리는 선택지를 밟으면서 정치는 신경 안 쓰면 미국 경제는 떡상하고 RDC는 폭망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베넷 행정부에서 IMF 창설까지 달린 다음 68년 선거에서 해링턴에게 넘겨주면 이미 연간 10%를 넘나드는 고도성장 중인 미국의 경제력이 고스란히 넘어가고 RDC가 붕괴해서 공화당 지지자들이 진보파로 넘어가기 때문에 68년에 NPP가 표를 쓸어 담게 된다. 해링턴 1기 행정부에서 RDC와 협력하기로 하고 간단한 개혁을 실시하면서 조차지 협상해서 NPP 지지도를 끌어 올리면 70년 선거에서 법안 통과 요건인 50석을 넘겨서 60석을 넘긴다면 법안 상정 후 통과에 있어서 막힘없이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보장 프로그램들을 실행하는 것에 있어 당연히 상류층들은 싫어하므로 상류층의 호감도는 사실상 포기해야 하지만 법안들을 급진적으로 할수록 중산층은 물론 때때로는 노동 계층에게서도 미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중산층의 호감도를 관리해야 하고 노동 계층, 하류층의 영향력을 올려주는 디시전에 수시로 정치력을 투자해야 하므로 획득 정치력을 줄여버리는 가장 오른쪽 사회보장법 포커스는 가장 마지막에 찍는 것이 좋다.

      급진적 법안을 통과시키게 되면 당연히 지출이 늘어나지만, 베넷 행정부에 의해서 늘어난 경제력 덕에 충분히 감당될뿐더러 해링턴의 개혁 덕에 빈곤층이 줄어들고, 세금도 "탈세 천국"에서 "고소득층 위주"로 개편되어 세수가 늘어서 거의 커버하기 때문에 LBJ처럼 부채가 급증하지도 않는다.

      RFK보다 더더욱 급진적인 개혁을 펼치는데도 RFK와는 달리 암살당할 위험이 없는데 플레이어들의 추측으로는 RFK는 쇼맨십을 위해 전국을 돌며 대중 앞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해링턴은 대중 앞에 나서는 묘사가 많지 않은 것이 이유로 보인다.

      현 버전 기준으로는 경제적으로도 강력하고 복지도 빵빵한 헤븐 갓조국을 만들 수 있는 루트이지만 이러한 급진적 개혁을 진행할수록 미 국민들이 염증을 느끼면서 진보파 지지율은 점점 떨어지고 NPP 내에서도 요키파가 득세하는 등 사회적인 반동이 보이기 시작하여 마지막 경선인 72년 선거까지 가면 전국을 휩쓸듯이 하던 진보파의 의석이 대거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현 버전에서는 이후의 콘텐츠가 없으므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이지만 차후 업데이트에서 70년대가 구현될 경우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2.4.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 (NPP)[편집]


      나는 누군가에게 맞서 대선에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대통령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내 경험과 경력이 발표되거나 발표되지 않은 그 어떤 후보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선거야말로 진정한 도전이고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계속 말한다면, 도전욕이 생기는 법입니다.

      I am running against no one. I'd like to be President. I think my experience and my record are greater than any other candidate or any other of the unannounced candidates. It's a real challenge, and that's one of the paramount things. When people keep telling you that you can't do a thing, you kind of like to try it.

      -1964년 1월 27일, 1964년 대선에 출마할 것을 선언하며

      • 집권이념: 신보수주의(가부장주의, 국가진보전선-국민당)
      • 인물설명

        마가렛 체이스 스미스는 그녀의 일생 전체가 역사의 시발점이었습니다. 연방하원의원과 연방상원의원을 모두 역임한 첫 여성이며, 상원 국방위원회에 재직한 첫 여성이기도 하고, 대통령직에 도전하고, 승리한 첫 여성이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녀의 반대자들은 그녀가 내성적으로 직을 수행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주장해왔으나, 워싱턴에서 20년이 넘는 의원 생활 동안 냉철하고 원칙있는 강경파로서의 명성을 구축한 스미스 대통령은 이들이 틀렸다는 것을 매번 증명해오고 있습니다.

        그녀의 몇 안되는 동지들에게 스미스 대통령은 분열된 국가진보전선의 한결같은 기둥과 같습니다. 그녀의 많은 경쟁자들과 정적들에게 스미스 대통령은 짜증나는 인습타파주의자입니다. 그녀는 조 매카시의 회색분자 사냥을 시민 자유의 침해를 들어 '미국적이지 않다'고 비난함으로써 상원의 공화당 동료 의원들을 놀라게 했고, 진주만의 핵공격 이후 일본에 핵보복을 했을 것이라는 언급으로 일본이 그녀를 '여자의 탈을 쓴 짐승'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녀는 1951년 공화민주연합의 합당 이후 미국의 항복을 설계한 자들과의 협업을 거부하며 당을 탈당하였고, 이후 국가진보전선 국민파의 인종분리주의자들과는 합석을 거부하고 국가진보전선 중도파나 전 공화당 동료 의원들이 파시스트들의 위협에서 관심이 멀어지는 듯 하면 그들을 꾸짖기도 하면서 국가진보전선의 나머지 인원들과도 불편한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스미스는 미국이 파시스트들과의 싸움에 뛰어들고 이겨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그 과정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이제 국가진보전선이, 공화민주연합의 비겁함을 강조하면서도 인종분리주의자들은 저 멀리 내쳐버리면 좋겠습니다만, 그녀 아래 집결한 이상 스미스 대통령은 미국의 다른 사람들에게 외국의 폭정들과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설득하는 엄중한 임무와 함께 국가진보전선의 최악의 극단분자들을 무력화시키는 일까지 떠안았습니다. 이는 스미스 대통령에게 있어 가장 힘든 도전이지만, 이는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 내각

      NPP 국가파 소속 상원의원. 현실에서는 메인주의 공화당 의원으로서 미국에서 처음으로 상원과 하원 의원을 둘 다 해봤다는 유니크한 타이틀을 지닌[41] 거물급 여성 정치인이다. 중도보수 성향의 온건한 공화당원이었으며, 조 매카시에 공적으로 대항해 양심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딕시크랫과 여러모로 반대되는 인물.

      NPP 국가파로 분류되었지만 매카시즘에 당당히 맞서 싸웠고 온건한 성향의 공화당원이었다는 이력이 주목받은 덕에 경제나 사회면에서는 오히려 RDC 민주당이나 NPP 진보파쪽에 가깝다는 특징이 있다.

      전임 대통령이 RDC 측 인물이거나 서먼드나 르메이인 경우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당선될 경우 '동맹의 상태'라는 마거릿 특유의 디시전을 이용해 당내 파벌들의 갈등을 조율한다. 여러모로 '배를 흔들지 마라.' 디시전을 통해 공화당과 민주당간의 간극을 조절하는 베넷과 닮아있다.

      초반 중점을 통해 헤링턴의 진보파와 협력할지, 월리스의 국가파와 협력할지, 아니면 그 중간의 어딘가를 선택할지 고를 수 있는데 루트별로 장단점이 명확하다.
      진보파와 협력시 사회 예산을 증가시키고 빈곤률을 어느정도 개선시킬 수 있지만 국가파의 핵심 지지층인 딕시 계층을 배제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월리스를 고를 경우 군사적으로 약간의 보너스를 받지만 진보파가 등을 돌린다. 그 사이의 타협점을 찾는 것도 가능은 하지만 특별한 강점 없이 NPP의 단결만 올려주는, 상대적으로 밋밋한 중점이다.

      누구와 함께 나라를 이끌지 정했다면 경제, 당의 단결, 군사 부문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경제 중점은 노조와 여성 노동, 직업안전보건청 신설[42], 여러 종류의 보조금을 증액하는 등 사회 안전망을 점검하며,
      당의 단결 중점은 초반 중점에서 이어지는데, 그대로 스트레이트로 밀고 나가는 것도 가능하고 자신이 밀어줬던 진영이 아닌 다른 쪽을 밀어주는 식으로 어느정도 합의점을 찾는 것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군사 부문인데 해군과 공군을 집중 강화한다.

      전술했다시피 미국 내부 정책은 온건한 편이지만 냉전에 있어서 만큼은 강경 매파다. 군사 기반 시설을 정비하고 징병제 확대를 검토하며 미국에 만연한 평화주의를 일부러 낮추기 위한 중점이 존재한다.
      최후에는 전쟁을 준비하며 일본을 강하게 압박. 조차항과 하와이 탈환을 노리는 쪽으로 나아간다.

      필립 하트나 헤링턴급은 아니어도 본인 나름대로 미국의 문제점들을 개혁한다는 점에서는 고평가할만 하지만 냉전에 있어서 만큼은 타협 없이 강대강으로 부딫히려는 마거릿 정부의 특성상 배드 엔딩 루트가 존재한다.
      바로 당의 단결이 박살났을시 나오는 히든 루트인 "wag the dog"트리인데 여기서 잘못 처신할 경우 요키파가 득세하거나(미국이 물러나는 경우),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둘 다 물러서지 않을 경우.)

      3. 1972년 대선[편집]


      1972년 새로 당선되는 대통령들은 실질적인 컨텐츠가 없지만 어떤 인물이고 이야기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암시할 100일간의 중점과 이벤트가 있다. 조지 롬니를 빼면 전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어떤 의미에서든 강경 매파들인데 TNO 세계관이 워낙 어두워 미국의 상황이 극단으로 빠지기 쉬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1. 진 커크패트릭 (RDC)[편집]


      독재자가 사라졌을 때 군대가 무너지는 속도, 관료들이 물러나는 속도, 사회 구조가 사라지는 속도는 미국 정책 입안자들을 자주 놀라게 한다.

      The speed with which armies collapse, bureaucracies abdicate, and social structures dissolve once the autocrat is removed frequently surprises American Policy makers.

      민주당 출신 후보. 현실에선 UN 미국 대사로써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대외정책을 주도했으며 그 탓에 네오콘의 대모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런 인물이 왜 민주당에 있느냐면, 원래 사회주의자로써 사회당에 속해있다가 우경화하면서 민주당, 공화당순으로 당적을 옮겼기 때문. 이 세계에서는 민주당에 잔류한듯하다.

      맛보기 트리와 이벤트에서는 노조를 지원하고, NPP의 극단주의자들을 공격한다. 대외적으로는 CIA 법을 통과시키며 OFN과 협력하거나 이용한 후 대외적으로 자유를 전파시키겠다는 것을 밝힌다.


      3.2. 조지 W. 롬니 (RDC)[편집]


      자유 수호에 있어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지만, 저는 자유를 위태롭게 할 때 이중성, 거짓, 두려움, 폭력 및 위협에 기반한 좌파 또는 우파의 정치적 극단주의를 비난합니다.

      Extremism in defense of liberty is not a vice, but I denounce political extremism, of the left or the right, based on duplicity, falsehood, fear, violence and threats when they endanger liberty.

      공화당 출신 후보. 현실에서는 미시건의 주지사로 재직했다. 온건한 공화당원으로서 베트남 전쟁에도 반대하는 스탠스를 취해 한때 닉슨의 선두주자 자리를 위협할 정도였으나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도록 '세뇌'당했다는 말실수로 경선에서 해보지도 못하고 탈락했다. 또한 그 밋 롬니의 아버지이다.

      맛보기 포커스와 이벤트는 두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 갈래는 자유파와 협력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민권에 초점을 맞추고 에드워드 브루크 법무장관에게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보인다. 이 경우에는 노동민주당 계파와 책임공화당 파벌에서의 인기가 좋아지지만 딕시크랫의 지지는 떨어진다.

      두번째 갈래는 경제적 자유주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 경우엔 자유지상주의자들과 협력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전반적으로 공화당 쪽에서 인기가 좋아진다.


      3.3. 헨리 M. 잭슨 (NPP)[편집]


      국가 안보 문제에서 최고의 정책은 정책이 없는 것이다.

      In matters of national security, the best politics is no politics.

      • 집권이념: 서부진보주의(진보주의, 국가진보전선-진보당)
      • 인물설명

        헨리 마틴 "스쿱" 잭슨은 전국에서 불의와 맞서 싸우며 경력을 쌓았습니다. 극단주의를 극도로 혐오하는 그는 30년간의 정치 경력 동안 국가진보전선 내의 극좌 분자들의 유혹에 굴하지 않으면서도 진보의 횃불을 들어 왔습니다. 스쿱은 항상 그를 미국을 먼저 하고 진보를 두번째로 두는 자로 칭해 왔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내려온 결정들 역시 미국인들의 안녕을 가장 우선으로 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열렬한 반극단주의는 그 자체로도 극단주의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국가진보전선 좌파의 공산주의자들과 요키파를 혐오하며, 어찌 보면 반민주적으로 보일 수 있는 두 집단을 금지하는 공약까지 걸어 왔습니다. 그의 포퓰리즘적이고, 진보적이며, 중도적인 정치적 입장은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진보주의를 상기시키는 독특한 위치에 있게 합니다.

        이제 대통령으로서, 잭슨은 그가 30여년이 넘도록 주장해왔던 꿈을 이룰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자유, 평등, 시민의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일거에 요키파와 공산주의자들을 미국 정치계에서 영원히 몰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념비적인 민권법안과 다른 진보적 법안들을 통과시키고, 일본 제국과 독일 모두가 두려워할 한계를 명확히 정할수도 있겠죠.

      • 내각
        • 시드 맥마스 정부수반
        • 프랭크 처치 외무장관
        • 어거스터스 호킨스 재무장관
        • 알레이 버크 내무장관
      NPP 진보당 후보. "스쿱"이라는 별명으로 주로 불렸다. 현실에서는 워싱턴 주에서 30년간 상원의원을 역임했던 민주당원이었다. 경제적으로는 뉴딜식 자유주의자였지만 버싱에 반대하고 초강경한 외교정책으로 인해 민주당의 온건보수파에 속해있었다.[43] 1976년에는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으나 지미 카터에게 패배했다. 헨리 잭슨의 지지자들과 측근들은 후에 네오콘으로 변화하게 된다.

      OTL의 외교강경파 성향을 본땄는지, 인게임에서는 극단주의를 혐오하는 매운맛 민주주의자로 묘사되며 독일, 일본, NPP 요키파, NPP 좌파 모두 싫어한다.

      맛보기 중점은 복지, 당 규합, 군사력 향상을 다룬다. 복지 부문에서는 미국인들의 복지에 대한 생각을 바꾸려하고 노조를 지원한다. 당 규합에서는 국민파를 견제하는 한편 요키파와 좌파를 NPP에서 추방한다. 군사력 향상에서는 미국이 싸워야 하는 이유를 전방위로 홍보하고 현대적인 군대를 위해 국방비를 증액한다. 이 세 부문이 끝나면 교육의 질과 군사력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군 현대화 계획을 시행한다.


      3.4. 필리스 슐래플리 (NPP)[편집]


      페미니즘은 인간의 본성을 폐지하고 재구성하려는 시도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Feminism is doomed to failure because it is based on an attempt to repeal and restructure human nature.

      • 집권이념: 고보수주의(가부장주의, 국가진보전선-국민당)
      • 내각
        • 존 B. 앤더슨 정부수반
        • 제리 팔웰 외무장관
        • 제임스 L. 버클리 재무장관
        • 맥스웰 타일러 내무장관
      NPP 국민파 후보. 현실에서는 평등권 수정헌법에 맞서는 운동을 펼쳐 결국 평등권 조항을 헌법에 추가시키는 것을 좌초시켰고, 그 외에도 활발한 고보수주의 활동을 펼쳤던 인물이다.

      맛보기 트리와 이벤트에서는 암울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데, 강경한 고보수주의였는데다가[44] 게임에선 음모론까지 합쳐지니 이렇게 나오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외교적으로는 고립주의로 선회하고, 맥나마라와 같이 일했던 국제주의자들을 숙청하고 핵무기 보유고를 늘린다. 국내적으로는 '반미적' 생각을 가르치는 학교에 대한 지원을 즉각적으로 중지하며 보류중인 규제들을 바로 해제하고, 관세를 늘리거나 연금을 삭감한다. 마지막 법으로는 낙태금지법을 의회에 제안한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으세요, 대통령 여사님?같은 말이 중점이 적혀있듯이 별로 좋은 엔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3.5. 거스 할 (NPP)[편집]


      노예제가 진보해 봉건제가 되고, 봉건제의 다음 단계가 자본주의가 된 것처럼, 사회주의는 바로 자본주의의 다음 단계입니다... 미국의 사회주의는 투표함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Just as feudalism was an advance over slavery, and capitalism was the next step after feudalism, socialism is the next step after capitalism... Socialism in America will come through the ballot box.


      "불탄 폐허에서 새 세계를 건설하도록
      큰 힘주는 조합."
      - 전통 민중가요

      -
      연대여 영원하라
      • 집권이념: 공산주의(국민진보동맹-미국 공산당)
      • 인물설명

        거스 할을 칭하는데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지만, "대통령감"이라는 단어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미네소타주의 아이언 레인지에서 아르보 쿠스타 할베리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아홉 명의 형제들과 핀란드어를 말하며 자라났으며,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을 조직하는 일이 끝나고 집에 온 이민자 아버지가 지은 추운 통나무 오두막집에서 살았습니다. 할은 1935년 벌목 캠프에서 일해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였고, 곧 청년 공산주의자 연맹에 가입했습니다. 이들과 합류한 할은 부하린이 통치하는 소련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고, 할은 그곳에서 국제레닌학교에서 공부하며 수 년을 보냈습니다. 1930년대 내내 할은 미네소타와 오하이오 각지에서 벌어진 파업에서 철강 노동자들, 농부들 그리고 트럭 운전사들과 함께 경찰과 사업주들을 노려보았습니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해군으로 복무한 할은 1950년대 대부분을 미합중국 정부 전복을 꾀했다고 주장한 검사들에게 괴롭힘당하며 지냈습니다. 할은 대학 캠퍼스에서의 연설과 생방송 TV에서 보수들과의 토론을 통해 미국공산당의 주요 인원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할은 미국 정계에서 주요한 인물이 되기에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국가진보전선 극좌파의 부상은 그로 하여금 그 불가능을 극복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미국 역사상 가장 가망없어 보였던 정치적 승리를 거둔 할 대통령은 미국의 비천한 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노동계급을 단합하며, 일부만을 위한 것이 아닌 새로운 미국을 창조할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할은 급진적일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회주의적 이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을 넘어 미국 경제에 대한 총체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할 것이며, 반동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에의해 세워진 각종 기관들을 깨끗이 지워버릴 것입니다. 또한 구시대적인 제국주의의 망령은 죽고,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독수리가 세계에 서서 사회주의의 위대함을 널리 알릴 것입니다. 노조는 산업계에서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리를 수복할 것이며, 형평성과 평등을 지지하는 법관들이 임명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보존하고 더 나아가 증진시킬 것입니다. 그것이 미국이라는 체제의 죽음을 의미하더라도 말이죠...

        그는 대통령감이 아닐지는 몰라도, 혁명가를 목표로 함은 분명합니다.

      • 내각
        • 폴 로버슨 정부수반
        • 앨저 히스 외무장관
        • 래리 이틀리옹 재무장관
        • 윌리엄 마틴 내무장관

      NPP 좌파 후보. 현실의 미국 공산당 14대 당수를 맡았으며, 소련식 종신통치원리를 공산당 내에 유입해서 가장 오랫동안 당수직을 맡았다. 권리장전 사회주의라는, 미국 실정에 맞춘 강령을 발표하는등 당을 총체적으로 개혁하려했으나 크렘린을 적극 옹호하는등 유럽공산주의와는 달리 친소적 성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또한 오랫동안 당 지도부를 장악하고 대통령 후보로 계속 출마하는 등 권위적 행보를 보여 당 내에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미국이 큰 위기를 겪고 극단주의가 득세했을 때 출마할 수 있다. ## 하술할 요키와 더불어 미국 민주주의의 몰락으로 취급되어 전용 슈퍼이벤트가 존재하며, 묘사도 요키 다음으로 부정적이다.

      요키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어지간히 개판이 되지 않으면 당선시킬 수가 없기에 특별한 빌드업이 필요하다.

      잘 알려진 공략으로는 민권법 거부 루트로 64년 대선은 NPP가 이기게 한 후에, 케네디-서먼드 루트를 타서 급진적 민권법을 통과시켰다가 작살내는 방식으로 미국 사회 분열을 증대시키고, 68년 대선에서 골드워터를 집권시켜서 극우 탄압을 하게 되면 반대급부로 극좌가 득세하게 된다. 가이아나 전쟁은 일부러 패배해주고 남아프리카 전쟁을 질질 끌어 NPP 좌파 인기도를 올린 후 케네디 때 이기면 중도파가 강력해져서 홀 당선때 유리해진다. 계속 극우를 탄압하면서 권위적 사회주의 지지도를 높이고, RDC 지지도를 깎아먹으면서, 72년 대선 경선 때 권위적 사회주의 지지도가 20%를 넘으면 NPP 후보로 홀이 출마할 수 있게 되고, 그 뒤 선거에서 홀이 이기면 당선하게 된다.

      LBJ를 이용한 집권도 발견되었다. LBJ로 재선은 하되 극좌파 강세를 띄게 하는 선택만 골라서 하면 극좌파가 득세하게 되면서 NPP경선에서 거스 홀이 출마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간단한 집권 방법은 RFK로 2선까지 풀로 개혁을 하다보면 RFK의 개혁으로 인해 진보파 지지도가 최소 30퍼 이상일텐데 결국 암살당하고 이후 서몬드로 RFK의 유산을 박살내고 진보파를 버리는 쪽으로 진행하게 되면 기존 진보파는 사실상 무너지고 지지층들은 마르크스파로 몰리게 되어 진보파의 지지도를 그대로 이어받는다.[45][46]

      월리스로 국가 주도의 인종분리를 실현하고, 입법에 따른 강제적 인종분리를 시작하여 좌파의 인기도를 올리고, 르메이로 보수적 루트를 골라서 좌파의 인기도를 크게 올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지금은 할 수 없다고 한다.

      맛보기 트리와 이벤트에서는 링컨의 유산을 실현시키려 혁명적 민권법을 가결시키고 이전 정권에서 FBI, CIA, NSA, 군대가 벌인 악행과 비행을 전부 폭로하는 방법으로 반정부 정서를 퍼뜨린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과거사 청산 작업 같겠지만 "일부 NPP 중도파가 우리의 대의에 동참하도록 "설득될" 것입니다."나 이벤트에서 나오는 CIA와 FBI가 없어진 뒤[47] 미국의 국가 안보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암시, 그리고 어떤 사법부 재판관이 비밀리에 협박을 당하고 있다라는 이벤트를 보여주며 미국의 미래가 밝지는 않으리라는 분위기를 풍긴다.


      3.6. 프랜시스 파커 요키 (NPP)[편집]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진위의 관계는 없다. 둘 모두 본능이며 동일한 역사적 우위를 가지나 다만 하나는 과거에, 다른 하나는 미래에 속할 뿐이다. 자본주의는 합리주의와 유물론의 산물이며 19세기의 지배 세력이었다. 사회주의는 문화적 제국주의, 권위, 역사철학, 개인을 초월한 정치적 의무의 시대의 형상이다.

      Between Capitalism and Socialism there is no relationship of true and false. Both are instincts, and have the same historical rank, but one of them belongs to the Past, and one to the Future. Capitalism is a product of Rationalism and Materialism, and was the ruling force of the 19th century. Socialism is the form of an age of political Imperialism, of Authority, of historical philosophy, of superpersonal political imperative.

      -1948년 필명으로 출간된 저서 《임페리움: 역사 및 정치의 철학》(Imperium: The Philosophy of History and Politics)에서



      "원칙과 관습의 전면적인 해체는 공통의 적보다 훨씬 확실하게 미국의 자유를 전복시킬 것이다."
      - 새뮤얼 애덤스
      -
      그 일이 일어났구만
      • 집권이념: 국가사회주의(국민진보동맹-전미국가전위대)
      • 인물설명

        프랜시스 파커 요키는 그가 대통령직에 오르리라고는 거의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선거가 끝난 이후, 이 노골적인 파시스트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본래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요키는 1930년대 세계를 휩쓴 권위주의와 파시스트 운동에 매료되었습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그는 아돌프 히틀러의 활동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나치의 반유대주의와 국수주의 사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스스로 명작이라 칭하는 "임페리움 : 역사와 정치의 철학"의 출간에 뒤이어, 요키는 국가진보전선의 초극단적 우파를 창설함으로써 미국 정치에 새로운 움직임을 불어넣었습니다. 국가진보전선의 이들 세력은 처음에는 "전미 국가 전위대"로 자신들을 지칭했으나, 정계의 다른 모든 세력은 곧 이들을 혐오하게 되었고 요키와 그 추종자들을 단순히 "요키파"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정적들의 실패와 신의 섭리로 인해 그의 세력은 이제 미국의 정치 체계에 맞서 승리했습니다.

        요키의 대통령 당선은 쥐새끼 몇마리들 수준을 넘는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미국의 수많은 도시들, 특히나 남부 주들에서 쿠 클럭스 클랜의 두건다린 흰 망토를 입은 자들을 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비슷하게 지난 20여년 간 기념비적인 민권법안의 폐지에 대한 공공연한 논쟁이 벌어져 왔습니다. 흑인들에 대한 린치가 보편화되었고 이는 조사받지도, 발각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짧게 말해서 혐오가 미국 전역에 공공연화되고 있으며, 정치적 기득권층 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이 권위주의적 파동이 어디까지 갈 지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비록 요키가 지구상의 자유 국가중 가장 강력한 국가의 지도자이긴 하나 그의 자유에 대한 입장은 불명확하고 모순되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미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떤 겉치레를 하든간에 그는 여전히 파시스트이며 대통령직의 권위를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요키 스스로는 "문화 파괴자들"을 비난하며 서구 문명을 수호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요키가 그것을 정확히 어디로부터 수호하겠다는 것인지는 모호하나, 프랜시스 파커 요키 대통령은 미국에 그의 의지를 집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내각
        • 루이스 T. 바이어스 정부수반
        • 레빌로 P. 올리버 외무장관
        • 해럴드 키스 톰슨 재무장관
        • 존 G. 크로멜린 내무장관
      NPP의 파시스트 정치인. NPP 내의 파시스트 파벌인 요키파(Yockeys)를 이끌고 있다. 현실에서는 정치철학자였다. 반유대주의자였으며 2차대전 전후로 극우 단체[48]와 신파시즘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오랫동안 FBI의 추적을 받아왔다. 1960년에 위조여권 문제로 잡혀서 끝내 청산가리로 자살했는데 여기선 전반적으로 극단주의가 실제에 비해 활개를 칠 수 있는 환경때문인지 멀쩡히 잘만 있는 형편이다.

      위의 홀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어지간히 혼란에 빠지지 않으면 출마하지 않는다.

      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민권법을 통과시킨 후에 닉슨을 옹호하는 것으로 64년 대선은 NPP가 이기게 한 후에, 월리스로 민권법까지 폐지하고 인종분리적 수사를 철회하면 요키파의 인기가 오르는데, 르메이로 강제로 화합을 하게 해서 국민파를 요키파로 옮기고 68년 대선에서 골드워터를 집권시켜서 극좌 탄압을 하면 반대급부로 극우가 득세한다. 또한 월리스의 유산을 치우는 포커스에서 민권법을 가결시키면 요키파의 인기가 오른다. 계속 극좌를 탄압하면서 국가사회주의 지지도를 높이고, RDC 지지도를 깎아먹으면서, 72년 대선 경선 때 국가사회주의 지지도가 20%를 넘으면 NPP 후보로 요키가 출마할 수 있게 되고, 그 뒤 선거에서 요키가 이기면 된다. 남아프리카 전쟁의 불만도를 파멸적일때까지 질질 끌면 요키파와 좌파의 인기도가 크게 오르기 때문에 당선에 유리해진다.

      또한 골드워터 대신 마가렛 체이스 스미스를 집권시켜서 당을 붕괴시키면 당을 통합시키는 새로운 중점이 열리는데, 여기서 Wag the dog 트리를 타면 요키파의 인기가 오르는 동시에 존 스테니스 장관의 격추 이벤트가 뜬다. 여기서 DEFCON 2 이벤트까지 강경책을 지속한 후 DEFCON 2 이벤트에서 물러서면 MCS가 온건한 태도를 취하는 것에 국민파가 분노하고 요키파로 지지를 옮기게 된다.

      월레스로 2선을 하는 공략법도 발굴 되었는데 이쪽은 기존의 공략처럼 미국을 말아먹을 것도 없이 발전할 거 다해놓고서 72년 대선에서 요키만 뽑을 수 있다. 요약하면 일부러 큰 정부 정책을 계속하여 작은 정부를 원하는 지지자들을 민주당 or 요키파로 빠져나가게 만들고, 정책은 요키파를 늘리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르메이 때 민권법 제정으로 쐐기를 박는 공략이다.

      닉슨으로 뻘짓을 하며 NPP-FR 지지율을 올린 다음 남아공 전쟁, 그 다음 인도네시아 전쟁을 후딱 끝내고 1선 임기 동안 인종구분 없는 복지법을 통과 시키는데[49] 포인트는 작은 정부를 원하는 사람들이 싫어할만한 짓을 계속 하면 NPP-FR 지지율이 민주당과 요키파로 빠져나가게 된다.

      퍼스 조약을 진행하며 경제성장률을 올리고 대일 회담으로 조약항과 하와이를 돌려 받는다. 2선이 시작되면 석유파동이 일어나는 70년 말까지 월리스의 탄핵까지 진행해야 하므로 인종차별은 주 자율로 맡겨 요키파 지지율을 올리고 교육개혁을 진행하면서 리틀록 고교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사건이 일어나면 일부러 뻘짓만 해서 탄핵 당하고 르메이로 갈아탄다면 민권법 강화로 달린다. 석유파동이 일어나면 그 뒷처리를 하고 곧장 달려 민권법 강화를 하면 최종적으로 요키파 지지율이 20%를 여유롭게 넘기기 때문에 72년 선거에서 요키를 후보로 내보낼 수 있다.

      72년 선거에서는 딥사우스, 어퍼사우스, 대호수에서 요키파 의원이 나오기 때문에 이 세곳을 집중적으로 선거운동을 해주면 요키파 의원을 뽑아낼 수 있다. 이 쯤까지 가면 NPP-FR과 요키파의 지지율을 합치면 50%를 넘기기 때문에 72년 대선에서 남부 지역에서는 요키파 의원들이 대거 당선되고 대선에서는 선거인단 올킬이라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승을 거둔 미국민의 선택을 받은 지도자 요키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요키를 대통령으로 만들면 분명 경제는 호황이고, 월리스의 복지정책으로 빈곤율도 15%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외부 분쟁에서도 연달아 승리하여 OFN도 최대 판도를 자랑하고(이탈리아가 민주화 되어 OFN에 가입했다면 더더욱) 르메이로 민권법 통과 후 남는 시간 동안 OFN 결속력을 강화해주는 포커스를 찍었다면 결속력도 매우 높음~불굴 상태가 되어 자유세계는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단결하였는데 정작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는 갖다 버린 자유 없는 자유세계의 지도자가 되는 부조리가 발생한다. 어디까지나 게임이니 현실성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지만 오랜만에 잘 나가던 미국인들이 갑자기 훼까닥 해서 국시였던 자유민주주의를 쓰레기통에 쳐박고 나치빠돌이를 뽑아 파시스트 국가가 된 이유가 고작 흑백차별을 안 해서 흑화했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말이 된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에 영향받았을 가능성이 높으나 이를 감안해도 골수 파시스트를 뽑는단 점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결말.

      파시즘의 대명사인 독일을 흠모해 대통령이 될 경우 '주적'인 일본을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독일과 데탕트를 시도한다. 요키는 미국에게 있어 사실상 최악의 선택지로, 요키가 당선될 경우 상술할 홀과 함께 미국 민주주의의 몰락이자, 한술 더 떠 미국의 냉전 패배나 다름없는 결과를 불러온다.

      요키가 취임하면 뜨는 슈퍼이벤트 때 나오는 미국 국가는 단조라서 처량한 분위기를 낸다. 그리고 요키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성경에 대고 선서하는게 아니라 위에 언급된 저서 임페리움에 대고 선서한다. 본래 미국 대통령 취임식의 선서는 미국의 신과 기독교 정신을 존중하며 충실히 임할 것을 다짐하며 성경에 선서하는데 자신의 정신병적인 정치 저서에 선서를 한단 것부터 제대로 막장인 셈.

      맛보기 트리와 이벤트는 다음과 같다. 요키는 내각 구성 소식을 전하던 월터 크롱카이트충격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충격적인 장관진[50]을 만든다. 투표는 권리가 아닌 특권이 되어 비밀 투표의 원칙은 깡그리 무시되며 한 카운티에서는 정치깡패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표를 탈취하는 일이 일어난다. FBI의 왕이었던 존 에드거 후버 국장과 클라이드 톨슨 부국장은 자리에서 끌어내려지고 FBI 요원들이 나누는 대화도 도청된다. 마지막에는 "선전으로부터 서구 문화-정신을 지키고 선전의 거짓말을 무지한 대중들에게 노출해 파괴하기 위한" SAFE 법이 의회에 올라간다. 국민파와 요키파 외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 이 법안이 만약 가결되면 언론의 자유가 언론 검열로 대체되며 어두운 미래를 예고하며, 부결될 경우에는 대놓고 군대를 의회로 불러오라고 지시하는 것으로 친위 쿠데타를 암시하며 이것 역시 어두운 미래를 예고한다.

      4. 플레이 불가능 국가[편집]



      5. 캐나다[편집]


      플레이 불가

      업뎃 예고[장기간][51]

      • 자유국가기구OFN 독립회원국
      • 집권이념: 자유주의(캐나다 자유당)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미국 경제권 소속국
      • 국가 정신
        • 불확실한 헌법
        캐나다는 현재 불확실한 헌법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실제 캐나다 헌법이 런던의 협력 정부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때문에 캐나다는 본질적으로 애국 없이 존재합니다. 이 때문에 새로운 헌법이 수년 동안 논의되어 왔으며, 주정부의 거부권 또는 하원의 교착 상태를 통해 끊임없이 통과가 실패하였습니다. 이것이 마침내 통과될 때까지 캐나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겁니다. 헌법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나라입니까?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안정도: -10%
        전쟁 지지도: -15%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캐나다는 유럽 국가의 두 주요 수출 파트너 중 하나에 접근할 수 없었고, 캐나다의 수출을 받는 곳은 미국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캐나다 경제는 본질적으로 미국 경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캐나다 또한 그렇습니다. 닉슨 행정부가 달러를 평가 절하하면서 캐나다 경제는 더욱 하락하는 소용돌이에 빠졌습니다. 이미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부 지방은 그 여파가 더 나쁩니다.
        필요 소비재: 10%
        건설 속도: -15%
        생산 효율성 한도: -15%
        생산 효율성 성장: -15%
        GDP 성장률: -5.00%
        • 망명중인 엘리자베스
        신이 여왕님을 보우하시길! 그녀의 아버지인 조지 6세가 사망한 후 엘리자베스 2세는 캐나다뿐만 아니라 오래전에 죽은 영국과 그녀의 없어진 영연방의 여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녀는 영국 제도에 발을 들일 수 없었지만 협력자인 에드워드 8세가 그의 독일 꼭두각시 주인과 함께 런던에 앉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녀의 정당성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섬을 탈환할 실제 방법이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합법적인 엘리자베스 여왕의 복원이 헛된 꿈에 불과합니다.
        안정도: +5%
        전쟁 지지도: +10%
        • 퀘벡 지위
        풍부한 문화를 가지고, 영국 장미 중 프랑스 백합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으로 유명한 퀘벡은 항상 캐나다 정치 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들의 필요가 미국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익사되었다고 느끼면서, 퀘벡은 오타와가 그 땅과 사람들의 유산을 존중하고 그들의 이익이 캐나다의 유산과 동등하다는 요구를 두 배로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이웃 지방. 정부가 평등에 대한 요구를 더 무시한다고 느끼면 폭력적인 변화의 외침으로 목소리를 바꿀 수 있습니다...
        • 이질적인 서부의 지위
        오타와의 관료주의적 술책으로 멀리 떨어진 서부 지방은 온타리오 정치인들의 관심에서 뒷 순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동부가 서부에 비해 재정적 단계에서 더 큰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서부는 그들의 부를 고갈시키는 병든 정책을 추구하는 것과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보다 실용적인 해결책을 추구하는 것 사이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잠재적으로 부유한 이 땅에서 정부의 권위를 훼손하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 내각
        • 레스터 피어슨 지도자
        인물설명
        1897년 온타리오에서 태어난 레스터 B. 피어슨은 그 세대의 가장 위대한 외교관들 중 한명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27년, 캐나다 외무고시를 높은 점수로 합격하며 피어슨의 공훈적인 경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캐나다 고등위원회에서 1935년 영국, 1942년 워싱턴으로 보낸 그의 전보로 그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외교경력의 정점에 도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외교관으로서의 경력을 재앙적인 제 2차 세계대전의 그늘 아래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연합왕국의 붕괴로 캐나다는 외교적으로 포류하게 되었고, 이 대문에 캐나다는 미국에 더 기댈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1946년 암울했던 시기에 자유주의 소속 하원의원으로 의회에 입성한 피어슨은 맥켄지 킹 외교부의 조력자로서의 꾸준한 모습을 보이며 그는 유망한 자유주의 정치가로 촉망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전 외교부는 10년의 기간동안 보수정부의 이념아래 외교부에서 게으름 피우지 않고 미국가의 강한 유대관계를 강조하고 자유세계의 방패로서 OFN을 강화했습니다. 비동맹 국가들에게 캐나다의 입지를 높이려 했던 그의 노력 덕분에 그는 1950년대에 들어서 구 대영제국 출신 정치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1958년 보수주의자들의 패배로 자유주의자들은 다시 사회 프로그램 플랫폼을 복구했고 레스터 B. 피어슨을 중심으로 OFN국가간의 협력을 증진시켰습니다. 전 세계는 과연 그가 캐나다를 더 밝은 미래로 인도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 레스터 피어슨 정부수반
        • 조르주 바니에르 외무장관
        • 윌터 고든 재무장관
        • 레오 카디외 내무장관
      • 지휘관
        • 자크 덱스트라제 원수, 3, 4/2/3/3
        • 잭 밴스 장군, 2, 2/3/2/2
        • 램지 뮤어 위더스 장군, 1, 3/1/1/2
        • 돈. C 라우만 장군, 1, 1/1/3/2
      • 주요도시
        • 밴쿠버
        밴쿠버의 경제는 항상 무역이 지배했습니다. 1886년 도시로 편입된 벤쿠버는 캐나다 태평양 철도와 연결되어 서부 해안의 주요 항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입지는 도시의 문을 국제무역에게 활짝 열게 되었고, 그 부를 통해 도시는 점차 성장해나갔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파시스트-민주주의간의 분단은 벤쿠버의 쇠퇴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미국이 50년대 OFN을 주도하며 공영권에 대한 금수 조치를 취하자, 태평양 무역이 중단되면서 매년 벤쿠버 행구를 들르는 선박의 수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선 정책의 급격한 변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
      지도자는 외교관 출신인 레스터 피어슨.

      영국이 멸망하고 윈저 왕조를 비롯한 영국 망명자들이 눌러앉은 상황에서 미국에게 의존하는 상황. 캐나다인-영국 망명자-퀘벡인 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52]
      좌익 퀘벡 무장단체인 FLQ(퀘벡해방전선)와 우익 퀘벡 무장단체인 FUNQ(퀘벡민족연합전선)가 점점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 원주민 거주구역의 열악한 사정을 협동연방연합이 주 의제로 들고와서 정치적 공세를 벌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부와 서부간의 갈등도 있고 닉슨 쇼크로 인해 작살이 난 경제 또한 문제가 심각한 상황.

      1963년 경 열리는 선거에서 레스터 피어슨을 선택해 자유당 정부를 유지하느냐, 아님 존 디펜베이커가 이끄는 캐나다 진보보수당을 선택할지를 고를 수 있다. 1967년 선거에선 존 터너의 자유당(고전자유주의), 존 디펜베이커/로버트 스탠필드의 진보보수당(보수주의/자유보수주의), 레알 카우에트의 사회신용당(사회신용주의), 토미 더글러스의 연방협동조합당(민주사회주의) 을 선출할 수 있다

      6. 멕시코[편집]


      플레이 불가

      업뎃 예고[장기간][53]

      • 집권이념: 제도적 전제주의(전제주의, 제도혁명당)
      • 경제: 지도주의/경제권 무소속
      • 국가 정신
        • 불완전한 독재
        제도혁명당은 마치 아누스같은 두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억압이라는 얼굴보다는 민주주의적 책임의 가면을 더욱 내세우는 판입니다. 그러나 현재 멕시코 내의 불평등과 불만이 고조되고 있으며. 부패가 횡횡하고 파별주의가 당을 괴롭힘에 따라 당은 점차 당근 대신 채찍을 들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혁명당의 지배기반은 민주주의적 구조라는 환상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영원히 유지될 수는 없을 겁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5%
        안정도: -5.00%
        • 맥시코의 기적
        멕시코는 지난 10년동안 유래없는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습니다. 인구, 중산층, 삶의 질, 공기업과 사기업의 성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수직상승하고 있으며, 이 상승곡선은 지금도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습니다. 거기다 미국과 공영권에서 오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존재는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경제번영에 커다란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순풍이 풍파가 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기적적 신화가 흔들리지 않도록 외국인 투자자와 국내 투자자의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맥시코의 꿈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매월 인구: +5.0
        무역 거래 평판 획득치: +10.00%
        GDP 성장률: +2.50%
        • 농업혁명
        "땅과 자유"라는 혁명 구호 아래, '에히도'라는 집단농장 제도가 탄생했습니다. 이 제도 하에서 토지는 연방의 소유이지만, 이는 집단경작을 하는 농민 공동체들에게 분배됩니다. 이 제도의 본래 목적은 전에 없었던 자치권을 멕시코 농민들에게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현재 허술한 관리체계와 부패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녹색 혁명에 의해 형성된 현대적 농업제도에 비해 그 효율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정도: -10.00%
        납세 인구 요인: -10.00%
        매월 빈곤률 변화: -0.05
        • 레비아탄
        멕시코의 거대한 정당-국가적 관료체제는 수십년동안 이 국가를 지배해 왔으먀, 노동자, 지주, 소작농 계층 모두를 후원관계와 행정관계의 광대한 체계 안에 망라해 왔습니다. 우리는 이 제도 아래에서 국가의 부와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꾸준히 향상시킬 수 있었지만, 동시에 이 제도는 사회 각계에서 부패를 만연하게 하였습니다. 정치적 편의성을 위해 효율성은 끊임없이 희생되고 있으며, 이는 국가의 행정,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연구 속도: -10.00%
        공짜 생산 단위: -5.0%
        민간 사용 부문: +15.00%
      • 내각
        • 아돌포 로페즈 마테오스 지도자
        인물설명
        아돌포 로페즈 마테오스는 멕시코 시티의 치과의사이자 교사의 자녀이거나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멕시코 유산을 가장한 과테말라의 사생아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후기 이론은 그의 반대자들 사이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그러나 1946년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공식 조사에서 그가 제공한 문서는 분명히 그를 의심할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이 작은 과속방지턱은 그가 멕시코 주지사 비서관에서 상원의원이자 멕시코의 주요 집권당인 PRI 의장으로 승진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거기에서 루이즈 코르틴스 대통령을 후계자로 두는 것은 우정과 충실한 헌신의 문제였기 때문에 PRI(제도혁명당)에 비정상적이지 않은 쉬운 선거가 보장되었습니다.

        로페즈 마테오스의 임기는 전반적으로 이전 대통령의 경제적 성공과 안정성의 연속으로 표시됩니다. 농지개혁, 박물관 건립, 의료와 교육의 확대, 전기공업의 국유화 등은 모두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한 멕시코를 공영권와 OFN 사이의 위치에 유지할 수 있었고, 이는 결국 두 나라가 멕시코를 잘 섬기게 되었고, 결국 두 나라 간의 갈등을 막는 결정적 요인으로 인식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 된 것은 아닙니다. PRI의 연합 지원 기반과의 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생 단체는 정부와 충돌합니다. 일부에서는 PRI가 멕시코에서 성공한 정책에서 맹목적으로 도망치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이제 아돌포 로페즈 마테오스는 그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누가 그를 이어 멕시코 대통령으로 승계할 것입니까?

        • 아돌포 로페즈 마테오스 정부수반
        • 루이스 에체베리아 외무장관
        • 라울 살라나스 로자노 재무장관
        • 구스타포 디아즈 오르다즈 내무장관
      • 주요 도시
        • 티후아나
        "두 바다 사이의 심장"은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바하 칼리포르니아의 북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멕시코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이며 북미에서 중요한 건설 센터입니다. 미국과 인접해 있어 캘리포니아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을 포함하여 티후아나에 많은 이점이 있습니다. 금주 기간 동안 도시는 알코올 금지를 피하려는 미국 국민의 목적지였습니다. 오늘날 환상적인 해안 도시로서의 관련성은 미국과 일본의 관심을 끌면서 멕시코인들은 자랑스러워할 아름다운 도시를 제공합니다.
        • 에르모시요
        에르모시요는 소노라 주의 주도이자 가장 큰 도시입니다. 원래 세 개의 분리된 마을이었던 에르모시요는 1828년까지 도시로 선언되지 않았습니다. 멕시코 혁명 동안 판초 비야에 충성하는 군대는 도시에서 축출되었습니다. 1913년 프란시스코 마데로가 암살된 후 베누스티아노 카란사는 에르모시요에서 자신의 입헌주의 운동을 시작하여 이 도시를 "국가의 혁명적 수도"로 불렀습니다. 에르모시요는 경제적으로 멕시코의 나머지 지역 및 세계와 격리되어 있지만 태평양과 미국 국경과의 근접성으로 인해 미국과 일본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져 이 도시를 현대 시대로 끌어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시우다드후아레스
        (설명 누락)
        • 치와와
        용기, 충성도, 환대, 이것이 동명의 주도인 치와와시의 3가지 핵심 가치입니다. 추비스카르 강과 새크라멘토 강이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치와와는 농업의 중심지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미국의 골든 아치로 가는 길의 교역소입니다. 먼지 투성이의 네온으로 물든 도심을 방문하면 발효된 탈출을 광고하는 12피트의 빛나는 간판 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이 도시의 과거와 미래를 개념화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연꽃을 먹는 도시-농촌주의의 기만적인 안개 뒤에 있는 치와와는 베니토 후아레즈의 망명 정부의 수도에서 판초 빌라의 북부 사단 본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미겔 이달고가 처형에 직면했을 때 마지못한 무대이기도 하였니다. 누에바 비스카야의 사실상의 수도였으며, 누에바 비스카야(Nueva Vizcaya)가 정착한 최초의 뉴 스페인 지방입니다. "치와와"라는 이름조차 고대 스페인 정복보다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그것은 나후아틀 언어에서 왔으며 적절하게 "두 물 사이"를 의미합니다. 도시의 역사 속 지금 이 순간, 절망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사막의 소돔이라는 이미지, 이것은 잠시의 당혹감에 불과합니다. 포르피리오 디아스 시대의 은행가와 사업가의 역사적인 도시가 돌아올 것이며, 국경 바로 북쪽(및 그 남쪽에 몇 개의 제조 공장)이 증가하는 미국 사업 기회로 인해 예상보다 빨리 돌아올 것입니다.
        • 두랑고
        두랑고, 공식 명칭으로는 빅토리아 데 두랑고는 멕시코 초대 대통령인 과달루페 빅토리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두랑고 주의 주도입니다. 1563년에 은을 채굴하기 위한 도시로 설립된 이 도시는 대신 세로 데 메르카도의 대규모 철 매장지 주변에서 성장했습니다. 광업 대성황은 도시 중심부에 많은 식민지 시대 맨션을 건설하게 했습니다. 독립 전쟁 동안 1812년 7월 17일 두랑고에서 많은 지도자들이 처형되었습니다. 두랑고는 1911년 멕시코 혁명에 가담했지만 1913년 반군에 의해 점령되고 불타면서 도시는 수십 년 동안의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가뭄과 산업 발전으로 농촌 이민자들이 두랑고로 밀려들면서 회복이 시작되었습니다.
        • 몬테레이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에 있는 이 멕시코 북부 도시는 16세기 스페인 제국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곳은 샌안토니오, 탐피코, 멕시코시티 사이의 중요한 교역소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멕시코인들이 미국인들을 저지했지만 결국 멕시코-미국 전쟁 중에 항복했습니다. 멕시코인들이 프랑스가 개입하는 동안 프랑스군이 퇴각하는 것을 목격한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이 도시는 분쟁의 공정한 부분을 보았지만 오늘날 도시는 멕시코의 철강 및 생산의 중요한 공급원으로 남아 있습니다.
        • 산루이스포토시
        산루이스포토시 시(또는 종종 "SLP"로 불리는)는 당연히 산루이스포토시 주의 수도 역할을 합니다. 도시와 주의 이름은 절반은 프랑스의 성자이자 왕인 루이 9세에서, 절반은 볼리비아 도시 포토시에서 혼동하여 파생되었습니다. (그것의 논리는 인근 광산이 볼리비아 포토시의 유명한 부유한 광산처럼 깊고 풍부해질 것이라는 희망에 근거합니다). 거대한 도시는 멕시코 제조 산업의 일부 핵심 요소의 본거지이자 호스트이며 멕시코 시티, 과달라하라 및 몬테레이가 형성하는 삼각형의 중심에 위치하여 높은 수준의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와 높은 생활 수준의 위치를 확보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토착민들이 스페인의 조류를 거스르는 힘으로 인해 "El Gran Tunal" 또는 "The Great Prickly Pear"로 불렸으며, 도시는 정복자 및 선교사의 시대와는 거리가 멉니다. SLP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도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고개를 높이 들고 있습니다. 산이 많은 멕시코 고원 꼭대기에 위치한 도시가 여전히 활기찬 "시우다드 데 로스 정원"로 알려져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 과달라하라
        바스크 정복자에 의해 처음 정착된 과달라하라는 이 지역에서 상당한 양의 은 매장지가 발견된 후 번성했습니다.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큰 이 도시는 독립 전쟁 기간 동안 멕시코의 첫 번째 혁명 정부가 탄생한 곳 등 역사상 많은 격동의 사건의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도시와 그 주변 지역은 알코올 음료인 데킬라와 마리아치의 상징적인 음악 장르와 같은 멕시코 문화의 몇 가지 주류를 낳았으며 오늘날까지 중요한 문화 및 경제 중심지로 남아 있습니다.
        • 레온
        레온은 과나호토 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입니다. 주도는 아니지만 이 도시는 주의 시정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레온은 3년 동안 프랑스에 점령되었고 1846년 막시밀리안 1세의 방문을 기념했습니다. 도시가 해방된 후 정부군에 의해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거의 100년 후, 보니파시오 살리나스의 선거에 항의한 학생 그룹이 살해되었습니다. 레온은 대부분의 국가 신발이 도시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멕시코의 신발 수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 도시의 산업 확장 가능성에 관심을 표시했지만, 진주의 진주가 가죽보다 더 많은 영향을 미칠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습니다.
        • 푸에블라
        공식적으로 헤리오카 푸에블라 데 사라고사로 알려진 푸에블라의 자유 주의 수도는 인류에서 가장 오래된 계획 도시 중 하나입니다. 멕시코시티에서 대서양의 중요한 항구인 베라크루즈로 가는 길에 위치한 푸에블라 시는 유서 깊은 역사와 다양한 건축물로 인해 스스로를 "아메리카의 유물"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완전히 현대적인 이베로아메리카 대학의 부지에 앉아있는 멕시코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과 함께, 그것은 확실히 가치가 있는 제목입니다. 멕시코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푸에블라가 푸에블라와 교외에서 영원히 기념되는 날짜인 1862년 5월 5일 6,500명의 제2 프랑스 제국의 정예 부대가 600명의 멕시코 군인에게 패배한 장소로 가장 잘 알 것입니다. 이 날은 푸에블라와 미국등에서 싱코 데 마요로 영원히 기념되는 날입니다. 경제 면에서 푸에블라는 멕시코의 많은 주요 도시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제조 붐을 경험했으며 특히 포드 자동차 회사는 최근에 이 도시에서 미국 이외 지역에서 가장 큰 포드 공장을 열었습니다. 멕시코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는 계속해서 부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시우다드멕시코
        공화국, 제국, 총독, 혁명적 군부의 수도 역할을 하는 멕시코시티는 국가 건국 이래로 문자 그대로 멕시코 정치의 상징적 중심지였습니다. 진보적인 이상과 풍부한 문화의 중심지로 전국의 중심 허브입니다. 도시의 지속적인 대규모 인구 증가는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공고히했습니다.

        도시의 정부 청사 내에서 행정관과 대리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정책에 대해 토론하고 부패한 정치 기계 아래에서 갈등합니다. 거리에서는 시장이 번성하고 활동가들이 모여 시위를 합니다.

        멕시코의 미래가 무엇을 가져오든, 이 신성한 수도에서 가장 확실하게 결정될 것입니다.||
        • 아카풀코
        원래는 어촌으로 이름난 항구로 명성이 자자한 곳으로 수년에 걸쳐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지만, 1950년대는 아카풀코에게 좋은 시기였습니다. 대규모 피에 데 라 쿠에스타 해변과 작은 해변, 라 케브라다의 유명한 클리프 다이버 및 방문하려는 모든 사람을 수용하는 수많은 고급 호텔을 자랑하는 효율적인 개선 및 개발을 통해 관광객을위한 고급 여행지가 된 후 더 크게 성장했습니다. 아카풀코는 유명 인사들이 도착하기 시작했을 때 진정으로 고유한 존재가 되었지만 OFN과 공영권 전역의 유명 인사들이 휴가를 위한 장소로 이곳을 선택했습니다. 관광 산업은 곧 붐을 일으켰고 아카풀코는 그 이후로 보상을 받았습니다. 여행자는 멕시코의 잊을 수 없는 조각에 새겨진 천국의 조각에 탐닉하면서 아카풀코의 호화로움을 즐깁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산허리에서 흘러내리는 슬럼가를 무시하는 것뿐입니다. 슬럼가는 해가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 베라크루즈
        베라크루즈("진정한 십자가"라는 의미인)는 원래 멕시코에 도착한 에르난 코르테스 자신이 설립한 미국 본토에 설립된 최초의 스페인 정착지였습니다. 좋든 나쁘든, 이 도시는 역사의 상당 부분 동안 유럽으로부터의 이민과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파시스트 군홧발 부츠가 구대륙의 목에 떨어진 이후로 도시의 재산은 상당히 말랐습니다. 스페인, 토착 및 아프리카-쿠바 문화가 국제적으로 혼합되어 상업 유산을 여전히 느낄 수 있으며 음악, 음식 및 기타 문화적 즐거움의 독특한 용광로를 만듭니다.
        • 비야에르모사
        스페인어로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의 비야에르모사는 타바스코 주의 주도입니다. 원래 "빌라 카모나"라고 명명된 이 도시는 오랜 역사 동안 8번이나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도시의 역사적 중심지는 고딕 양식과 무어 양식이 결합된 식민지 시대 건물로 가득합니다. 비야에르모사는 지난 세기 반 동안 외세, 혁명가, 반군에 의해 여러 차례 침략과 점령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는 투자자들이 도시의 천연 자원을 활용하려고 함에 따라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설탕, 담배, 견목, 술, 시가가 도시의 필수품이지만 비야에르모사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식민지 이전 역사는 도시를 성장하는 관광 명소로 만들었습니다.
        • 메리다
        스페인의 손과 고대 도시 투호우의 폐허 꼭대기에 마야 석조로 지어진 메라다 시는 유카탄 반도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멕시코의 식민 역사를 일깨워주는 곳입니다. 지금도 이 도시의 문화는 지역 식료품, 의복, 심지어는 현지 언어의 측면에서 마야인의 영향의 망령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정복자의 진보에 의해 지워진 사람들의 반항적 유산인 것입니다. 메리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너지고 지금도 자랑스럽게 서있는 많은 정교한 주택을 자랑하는 백만장자와 저택의 건설로 이어진 포르피리아토 기간 동안 개척된 헤네켄 산업의 이점을 여전히 누리고 있습니다. 또한 이제는 문화 및 생태 관광에 대한 관심의 물결을 즐길 수 있으며 관광객들이 위대한 유카탄과 그것이 휘두르는 역사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
      시작지점 지도자는 아돌포 마테오스.
      OFN의 수장인 미국과 이웃인 탓에 정식 회원국은 아님에도 강한 영향을 받고 있지만, 멕시코 정계에서 라이벌 일본을 끌어들이며 어찌어찌 중립 비스무리한 포지션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대내적으로는 보호무역론을 지지하는 정부와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다국적 기업과의 갈등이 있으며, 제도혁명당의 장기집권이 낳은 부패로 인한 만연한 부패 현상이 지방에 산재 중.

      로페즈 마테오스의 임기가 끝나면 내각에 있던 3명의 후임자 중 한명이 대통령직을 잇는다. 친일 성향을 보이는 라울 살리나스 로자노[54] 친OFN성향의 구스타브 디아즈 오르다즈, 중립 성향의 카를로스 알베르토 마드라조가 계승한다.

      7. 서인도 연방[편집]


      플레이 불가

      티저 예고

      • 자유국가기구OFN 의존회원국
      • 미합중국의존국
      • 집권이념: 자유주의(연방노동당)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미국 경제권 소속국
      • 내각
        • 그리틀리 허버트 애덤스 지도자
        인물설명
        최근 서인도연방인 전 섬 식민지의 잡동사니 수집에 문제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그리틀리 허버트 애덤스 총리에 대한 신뢰를 유지해 왔습니다. 모든 면에서 그들의 신뢰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엉클 샘이나 OFN의 노예 같은 애완동물은 아니지만 아담스가 절제된 사람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작은 서인도 제도 바베이도스 출신의 수상은 옥스퍼드 시절부터 헌신적인 자유주의자였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1958년 선거 이후 미국의 감독 하에 세계 시장에 연방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여러 개혁의 지지자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애덤스와 성장하는 카리브해의 좌파 운동이 있습니다. 그는 그들을 단지 미국과 OFN의 섬 식민 총독으로 비난하면서 자신이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 경제적 자유를 되돌리겠다고 위협하는 제멋대로인 급진파로 보여집니다.

        수상으로서 애덤스의 가장 도전적인 임무 중 하나는 연방 내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두 섬인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자메이카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바베이도스도 포함해서요. 연방 전역에서 정치적, 계급적, 인종적 분열에 대한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하면서 그리틀리는 곧 자신과 연방의 패기를 시험에 들게 될 것입니다.

        • (내각 미설정)
      • 국가 정신
        • 부자연스러운 연합
        1945년 이전에는 서인도 제도 연방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한때 강대했던 유럽 강대국들 사이에 분할된 식민 소유의 뒤죽박죽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 강대국은 예전 모습의 그림자이며, 문화, 언어, 경제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정치체로 서로 다른 섬들이 한데 묶여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인도제도 연방은 약한 의회를 가진 관세 동맹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20년 후, 정부는 개별 섬이 법적 회색 영역과 모호성을 사용하여 자체 문제를 관리하고 종종 서로 충돌하게 됨에 따라 이를 관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연맹의 약점이 해결될 때까지는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0
        주간 안정도: -0.10%
        연간 GDP 성장 요인: -25%
        • 지역 민족주의
        처음에 유럽 식민주의의 족쇄가 풀려 카리브 제도가 마침내 자유롭게 숨을 쉴 때 이 열대 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은 새로 찾은 자유를 축하하며 기뻐했습니다. 자랑스럽게 그들은 새로 탄생한 연방을 지지했으며, 유럽이든 아니든 외세의 세력이 다시는 자신들의 업무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최고의 도구라고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연맹이 창립된 지 몇 년이 지났고, 한때 유명했던 아이디어에 대한 환멸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지역 민족주의자들의 주요 불만은 이웃에 대한 섬의 재정적 약속과 연방이 내리는 모든 결정에 드리워진 미국의 압도적인 그림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주의자들은 연방이 그것이 형성된 식민지 제국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부풀려지기 때문에 분리의 전제는 더 이상 예전만큼 터무니없게 보이지 않습니다.||
        안정도: -10%
        전쟁 지지도: +5%
        저항도 증가 속도: +15%
        • 소수민족 권리 투쟁
        서인도 제도 연방은 많은 사람들의 연합입니다. 아프로-서인도인, 동인도인, 백인 유럽 정착민, 중국인 및 아랍인 이민자, 카리브 원주민, 섬 전역에 다양한 언어와 종교가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서로 다른 그룹들 사이의 긴장은 표면 아래에서 불길하게 거품을 일으켰고, 때때로 미국의 시민권 투쟁과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투쟁으로 구멍을 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긴장은 느리고 빠르게 가속되는 끓는점으로 상승한 것 같습니다.

        자메이카 경찰과 라스타파리 사이에 정기적으로 충돌이 일어나 킹스턴 거리를 최루탄과 연기로 질식시킵니다. 흑인 트리니다디아인들이 정부군에 맞서 대표를 위해 행진하며 대규모 파업이 임박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럽 정착민들은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경우에 대비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들의 지역 사회로 깊숙이 철수합니다. 수용 가능한 해결책에 도달할 때까지 소수민족 권리 문제는 계속해서 우리 나라를 괴롭힐 것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3%
        안정도: -5%
      • 주요 도시
        • 킹스턴
        1693년 포트로얄의 잔해로 지어진 킹스턴은 자메이카와 자메이카 사람들의 집념과 헌신을 나타냅니다. 1700년대 말에 이 도시는 섬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가 되었고 1872년에는 모든 정부 기능이 도시로 이전되었습니다. 20세기에 카리브해의 위대한 정치체 중 하나이자 자유 국가 기구의 중요한 전초 기지입니다.
      -
      그랜틀리 허버트 애덤스[55]가 대통령으로 있는 미국의 종속국.

      영국이 만들었던 실제 역사와는 달리 미국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때 애덤스는 미군이 자신의 고향인 바베이도스를 점령하는 것을 보고 격분했다. 이후 미국은 사회주의 정당인 연방노동당을 멋대로 서인도제도 연방의 집권당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애덤스는 미국에 의해 대통령 자리에 앉았다. 애덤스는 섣불리 행동하면 연방이 붕괴될까봐 아무 일도 못 하고 있지만 다른 이들은 그런 모습을 뿌리를 잃고 미국에게 아부하기 바쁜 것이라 여기고 있다.

      미국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통합한 연방답게 정치적 이해관계가 꼬여 있고 연맹에 대한 구심점도 없는 상황이며, 미국 정치인들 또한 이곳에 발령되는 것을 기피할 정도이다. 이미 서인도 위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주 서인도 특명전권대사가 1950년대 세 차례나 교체될 정도.

      연방은 경제를 책임지는 주요 세력인 자메이카와 트리디나드토바고, 그리고 나머지 군소 섬 지역들을 포함하는 "리틀 텐"으로 구성되어 있다. 푸에르토플라타 침공 사건 이후 카리브해 일대의 민심이 요동치기 시작하고, 자메이카 총리인 노먼 맨리는 주 서인도 특명전권대사 로버트 그레이엄 마이너에게 제헌 회의를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 알렉산더 부스타만테를 중심으로 하는 자메이카 노동당 세력이 자메이카 권한이 축소되는것에 반발하여 소란이 일어나며, 미국은 여기서 자메이카의 독립투표를 허가할 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투표 또는 혁명을 통해 자메이카가 연방에서 탈퇴한다면[56] 나머지 구성국들은 트리디나드토바고 총리인 에릭 윌리엄스가 제안한 트리디다드토바고를 맹주로 하는 연방 개편을 시도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트리디나드토바고가 독립하면 나머지 리틀 텐은 미국의 종속을 대가로 하는 지원을 받을지, 독립적으로 연방을 유지해 갈 지 결정하게 된다. 여기서 선택을 잘못하면 이후 다가오는 석유 위기를 통해 연방이 완전히 붕괴될 수 있다.

      연방 내 경제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하는 자메이카는 노먼 맨리가 이끄는 인민민족당, 사촌형 알렉산더 부스타만테가 이끄는 자메이카 노동당이 경쟁하고 있는 형세이며, 지역 내에선 흑인 인권 운동과 라스타패리 성향의 종교단체들이 자메이카 독립요구 위기에 관여한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국민민주당의 지도자가 이끄는 친 OFN 성향의 에릭 윌리엄즈가 정계를 지배하고 있지만[57], 당내 좌익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 '블랙 파워 운동' 세력이 결집하여 마칸달 다가(혁명전선)가 이끄는 연립전선의 혁명으로 윌리엄즈가 실각하면 OFN에서 탈퇴할 수 있다. 이후 서인도 연방이 완전히 붕괴될 시에는 확률적으로 최남단 섬인 그레나다를 합병하기도 한다.

      레게 장르의 음악 창시자인 밥 말리가 자메이카에 거주하고 있다. 선택에 따라 밥 말리는 현실처럼 음악가의 길을 가거나, 또는 격화되는 자메이카 위기에서 음악을 그만두고 좀더 정치적인 일에 발을 들이게 되는 이벤트가 구현되어 있다.

      8. 쿠바[편집]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임시정부(가부장주의, 통합혁명조직)
      • 경제: 지도주의/ 경제권 무소속
      • 내각
        피델 카스트로 지도자
        인물설명
        엘 코만단테: 매일 정치력 획득: +0.20, 전쟁 지지도: +5%

        피델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루스는 1926년 8월 13일 한 부자의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피델은 보수적인 예수회 교육을 받았지만, 무당파적인 쿠바 민족주의자로 남았습니다. 아바나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며 피델의 정치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법학 공부를 때려치우고 세상의 이목을 끄는 학생 혁명가가 된 것입니다.

        1952년 바티스타 장군이 쿠데타를 벌여 쿠바의 연약한 민주주의를 짓밟았습니다. 피델은 무장 투쟁을 벌였고, 1953년 7월 26일 무모한데다가 결말도 좋지 않았던 몬카다 병영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출소한 피델은 7월 26일 운동, 일명 M-26-7의 이름으로 새로운 반군을 조직하고자 멕시코로 도망쳤습니다. 쿠바 상륙은 재앙이었습니다. 하지만 피델과 그의 반군은 산지 밀림으로 도망쳐 6년 동안의 게릴라 전쟁을 벌였습니다.

        M-26-7 도시 파벌이 엄청난 공헌을 했지만 전 세계 신문에 오르내린 것은 피델과 그 알록달록한 털보 반군들이었습니다. 이는 엄청난 위업이자 화끈한 승리였습니다. 피델은 쿠바 내 반 바티스타 저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자, 리버럴, 팔랑헤주의자 모두가 한데 뭉쳐 피델을 지지했습니다. 전세는 바티스타에게 불리해졌습니다. 1959년 첫날, 승리한 피델은 반군을 데리고 아바나에 입성했습니다.

        이제 쿠바 총리가 된 피델은 라틴 아메리카 전통에 다라 현란한 포퓰리스트로서 나라를 통치합니다. 1959년 이후 벌어진 대규모 개혁은 쿠바가 전세계전긴 칭송을 받게 해주었스빈다. 혁명가들은 카리스마와 실용주의로 OFN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혁명 연합은 이념 내분으로 무너지기 직전입니다. 피델은 좌익들의 애매호하한 얼굴마담이 되어 붕괴를 막는 것도 힘들어합니다. 민중이 선거를 외치는 가운데, 피델은 포퓰리즘의 방향을 정해야만 합니다. 그것도 빠르게 말입니다. 피델은 공산주의자일까요? 사회주의자일까요? 그냥 민족주의자일까요? 민주주의 투사가 될까요, 아니면 카우디요가 될까요? 모두가 아는 사실은 이 자칭 호세 마리트의 후계자가 쿠바 역사를 영원히 빚어낼것이라는것 뿐입니다

        • (내각 미설정)
      • 국가 정신
        많은 사람들에게 1959년 1월 1일은 쿠바 혁명의 끝이었습니다. 바티스타는 추방되었고 그의 정권은 무너졌고 그의 정부는 바람에 흩어졌습니다. 우리에게 그 1월 1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쿠바는 지속적인 변화의 시기, 영구 혁명의 시기에 그녀를 억제하고 있는 근시안적인 전통이 국가적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휩쓸려 버렸습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변화의 손길을 거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혁명이 계속되면서 국민들은 기뻐하고 있습니다. 혁명은 국내에서 큰 성공과 인기를 누리며 해외 배우들의 관심을 끌기까지 합니다. 우리 국민은 혁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모든 신조를 지지합니다. ||
        정치력 획득: +10%
        전쟁 지지도: +5.00%
        • 개혁 광풍
        혁명이 시작된 이래로 쿠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거의 매달 새로운 전면적인 변경 사항이 발표됩니다. 농지개혁이든, 의료든, 복지든, 교육이든, 10년 전의 쿠바는 오늘날의 쿠바와 비교하면 거의 알아볼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좋은 것입니다. 혁명 이후 쿠바의 즉각적인 필요 중 많은 부분이 해결되었으며 평균적인 쿠바인의 삶은 불과 10년 전보다 오늘날 훨씬 더 좋습니다. 그러나 일부 선택된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가 너무 빠르고 너무 빠르다고 걱정하고 오래된 쿠바가 풀리면서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우려합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30
        매월 인구: +10.0%
        필요 소비재: +10.0%
        안정도: -5.00%
        • 불확실한 방향
        혁명 이후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뭉친 수많은 파벌들은 한때의 동맹을 계속 이어왔습니다. 통합 혁명 조직(ORI)을 결성한 이 이질적인 파벌들은 쿠바가 변하기를 바라는 열망과 엘 코만단테를 그녀의 머리로 보고 싶어하는 대부분의 열망보다 공통점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극도로 비효율적 정치 현장으로 이어졌고, ORI를 구성하는 다양한 파벌들이 조직을 반대 방향으로 계속 끌어당기면서 쿠바의 미래는 점점 더 불확실해집니다. 카스트로는 점점 더 자신이 쿠바에서 ORI를 지휘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으며, 내분과 분열로 인해 자신의 원대한 꿈이 무너지는 것을 보지 않는 한 곧 이 방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10%
        주간 안정도: -0.20%
        매일 가부장주의 지지도: -0.01
        • 민주주의 문제
        카스트로의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하고 ORI의 많은 사람들은 그의 보다 권위주의적인 경향에 대해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가 그의 힘에 얼마나 편안해졌는지 이야기하고 그가 그것을 포기할 것인지 묻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카스트로 통치의 끝이라는 상상는 점점 더 먼 가능성처럼 보입니다. 공개적으로 거리에서 선거를 요구하는 반체제 인사들과 이 문제에 대한 카스트로의 모호한 발언으로 인해, 호세 마르티가 꿈꿔왔던 민주주의에 대한 오랜 질문이 ORI의 리더십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곧 해결해야 합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안정도: -10.00%
      • 주요 도시
        • 라이바나
        콩키스타도르와 노예주 모두의 눈에 진주인 라 아바나는 전체 카리브해에서 가장 큰 섬에서 가장 큰 도시로 여겨집니다. 오래된 스페인 빌라와 대성당은 신대륙의 중세 이베리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도시는 폭군, 대통령, 독재자의 몫을 보았지만 지금은 카리브해 사회주의의 중심지입니다.

      -
      실제 역사처럼 피델 카스트로풀헨시오 바티스타[58]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했다.

      실제 역사와 달리 미국과의 관계는 좋은 편. 나치 독일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세상이라 친독 성향을 보이던 바티스타를 처리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파시즘을 혐오하는 카스트로는 미국과 좋은 파트너가 되었다.

      Cold Southern Springs 모드가 TNO에 통합된 이후 쿠바의 설정이 약간 변경되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피그스만 침공을 기점으로 급격히 공산화 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해서 당시 카스트로의 이념이 쿠바 민족주의자라는 설정으로 바뀌었고, TNO 모드에서는 이런 피그스만 침공이라는 급격한 관계악화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라는 설정이 삭제되었다. 이 때문에 이념 또한 가부장주의로 변화하였다.

      반 바티스타 연합체로 광범위하게 결집되었던 통합혁명조직 내부의 다양한 공산주의자, 리버럴, 팔랑헤주의 파벌들이 다투고 있으며, 혁명의 높은 인기 뒤에서 민주주의 재개에 대한 의구심이 점차 생겨나는 중이기에 카스트로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어글리 아메리칸 업데이트를 통해 루트가 생성되었다. 멕시코의 영향[59]을 받은 제도적 전제주의의 장기집권 루트를 밟거나, 선거 재개를 통해 정상적 집권, 이후 정상 선거가 치루어지면 1966년 선거에선 호세 안토니오 에체베리아(기독교 자유주의), 카를로스 프리오 소카라스(좌익 협동조합주의)가 집권할 수도 있다.

      9. 영국령 온두라스[편집]


      플레이 불가

      • 자유국가기구OFN 의존회원국
      • 집권이념: 진보주의(인민민주당)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 미국 경제권 소속국
      • 국가 정신
        • 폐허가 된 수도
        벨리즈시티 주민들에게는 허리케인 해티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비바람이 어두운 거리에 불어닥쳤고, 그러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거리가 강으로 변할 때까지 차올랐습니다. 만조까지 닥쳐와 밤에 수천 채의 집을 휩쓸었습니다.

        오늘날 벨리즈시티는 파괴된 지역입니다. 목숨을 잃은 것은 불과 수백 명이었지만 수도에 있는 모든 건물의 70% 이상이 손상되거나 파괴되어 벨리즈와 벨리즈의 경제를 마비시켰습니다. 재건 작업이 천천히 진행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대자연의 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내륙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안정도: -15.00%
        연간 GDP 성장 요인: -25.00%
        매월 빈곤율 변화: -0.02
        매월 행정 효율 변화: -0.25
        • 급진적 독립 운동
        유니언 잭이 불타고 있습니다.

        벨리즈 전역에서 옛 통치에 대한 불만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흑인 민족주의자들은 영국 통치의 잔재에 맞서 집결합니다. 조지 캐들 프라이스와 필립 골드슨과 같은 사람들은 국가를 장악한 낡고 부패한 시스템에 반발합니다. 온 나라가 식민 통치에 대항하여 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남은 문제는 '브리티시 온두라스'가 그 이름에서 얼마나 탈피할 것인지, 이 작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질 것인지, 평화적으로 이뤄질 것인지 아니면 폭력을 통해 이뤄질 것인지입니다.||
        안정도: -10.00%
        종주국과의 추가 무역: -20.00%
        • 포위된 국가
        아마 벨리즈에서 영국의 왕권만큼 크게 다가오는 것이 하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과테말라가 가해오는 지속적이고 압도적인 위협입니다. 브리티시 온두라스를 이제 패배한 유럽 열강에서 분리된 잔재로 남은, 고집 센 하나의 지방으로 간주하는 많은 과테말라 정치인들은 그들의 지도자에게 벨리즈를 침공하고 국경을 복원할 것을 촉구해 왔습니다. 자체 상비군도 없는 상태에서 국가가 미약하게나마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OFN의 안보 보장 덕분입니다.
        전쟁 지지도: +15.00%
        공군기지 건설 속도: +10.00%
        해군기지 건설 속도: +10.00%
        • 식민 공백
        브리튼 제도가 나치 독수리의 날개 아래에 떨어졌을 때 식민제국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벨리즈는 이러한 식민지들 중 하나였으며 이제 거의 20년 전 급하게 고안된 수용 장소에 갇혀 있습니다.

        벨리즈 정부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와 비틀거리는 시체와도 같은 그녀의 왕가에 대해 충성을 맹세하지만, 벨리즈 정부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캐나다 정부에 직접 보고하게 됩니다. 이 불행한 합의는 양 당사자를 불쾌하게 만들고 필사적으로 벗어나길 갈망하도록 만듭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30
        전쟁 지지도: -5.00%
        매월 행정 효율 변회: -0.25
      -
      지도자는 조지 캐디 프라이스. 1961년 허리케인 "해티"가 벨리즈를 강타하면서 수도가 현재 초토화되어있는 상태이다. OFN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수도 벨모판으로 천도하고, 만일 잉글랜드가 본토를 수복하면 OFN 구성국들과 협상을 통해 독립을 선언할 수 있다.[60] 대외적으로는 숙적 과테말라와 영토분쟁을 이어가는 중인데, 이는 벨리즈가 팩션을 탈퇴하지 않고 OFN에 잔류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10. 과테말라[편집]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진보적 민주주의(진보주의, 과테말라 혁명연합(과테말라 혁명당))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 미국 경제권 소속국
      • 국가 정신 없음
      -
      지도자는 루이스 카르도자 이 아라곤. 게임이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구엘 이디고라스 푸엔테스(국민보수주의)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다.

      11. 엘살바도르[편집]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통제민주주의(가부장주의, 민주통일혁명당)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미국 경제권 소속국
      • 국가 정신 없음
      -
      지도자는 호세 마리아 레무스. 친 공영권 성향을 가지는 민주통일혁명당은 당내 부패로 인해 집권력에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1962년 선거에서 당선된 루벤 알론소 로살레스는 민주통일혁명당 출신 마지막 대통령으로, 로돌포 코르돈 세아가 이끼는 쿠데타를 통해 군부 주도 선거로 앉혀지는 훌리오 아달베르토 리베라(귀족적 보수주의), 또는 쿠데타가 없을 시 68년 선거에서 기독민주당의 호세 나폴레온 두아르테 푸엔테스(고전적 자유주의)가 앉혀지면서 친 OFN 노선으로 정책을 전환한다.

      한편 OTL에서도 있었던 축구전쟁은 여기서도 똑같이 재현되는데, 만일 축구전쟁 이후 국가의 안정이 붕괴되면 살바도르 카예타노 카르피오가 이끄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거나, 공산혁명이 실패하면 리베라가 사임하고 피델 헤르난데스(귀족적 보수주의), 카를로스 훔베르토 로베로(귀족적 보수주의)가 정권을 잇는다

      12. 온두라스[편집]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우익 포퓰리즘(가부장주의, 국가개혁당)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 미국 경제권 소속국
      • 국가 정신 없음
      -
      지도자는 아브라함 윌리어스 칼데론.

      66년, 71년 선거로 지도자가 교체되며, 부분적으로 쿠데타가 일어나기도 한다, OTL과 동일하게 축구전쟁 또한 벌어진다.

      13. 니카라과[편집]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민간 독재(전제주의, 민족자유당)
      • 경제: 군사 주도/미국 경제권 소속국
      • 국가 정신 없음
      -
      지도자는 '그 개새끼는 우리 개새끼'로 유명한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의 맏아들인 루이스 소모사 데바일레.


      14. 코스타리카[편집]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진보적 민주주의(진보주의, 민족해방당)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미국 경제권 소속국
      • 국가 정신 없음
      -
      지도자는 호세 피게레스 페레르.

      15. 파나마[편집]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시장자유주의(자유주의, 국민자유당)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미국 경제권 소속국
      • 내각
        • 로베르토 F. 치아리 레몬 지도자
          • 호세 바산 정부수반(자유주의, 순진한 낙관주의자)
          • 리카르도 에스피노사 외무장관(보수주의, 치열한 협상가)
          • 에릭 데바예 재무장관(보수주의, 균형예산주의 경제학자)
          • 볼리바르 파레데스 내무장관(보수주의, 정치적 임명)
      • 국가 정신
        • 높은 의회 부패
        부패가 정치체제 자체가 될 정도로 우리 관료제에 뿌리내렸습니다. 정치인과 관료에게 뒷거래와 개인 '기부금' 없이는 법안, 공공 개발 또는 인수가 이루어 지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조사들은 빛을 보기도 전에 사라집니다.

        우리 정부는 부호들의 족쇄가 채워져 있고, 날이 갈수록 국민들의 신뢰가 떨어지는 굴욕을 맛보고 있습니다.||
        정치력 획득: -20%
        자원 획득 효율: -15.00%
        안정도: -20.00%
        공장 생산량: -20.00%
        • 운하 결재대금
        매일 파나마 운하를 경유하는 경제적 가치는 과소 평가할 수 없습니다. 파나마는 일본과 미국 사이의 항구 봉쇄에도, 위험하고 추운 남대양을 거치지 않고,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관문입니다. 매일 수백 척의 선박이 운하를 통해 넘어가고 있지만, 우리 나라에 제대로 대금을 지불하는 선박은 겨우 25만 척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전략적 중요성은 틀림없지만, 이 이점으로는 가장 적게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정치력 획득: +10%
        소비재 공장: -5.0%
        • 과두정의 영향력 - 극도
        금권 정치가 정확하게 정치 체제로 정의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파나마에서는 사실상 규칙이 되었습니다.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선거 결과와, 정부 계획 수립에 관여하고 있으며, 이들의 자금 세탁 회사가 독점권을 획득하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목소리는 권력층에서 쉽게 무시할 수 있는 희미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으며, 부호의 국가에서는 뒷전입니다.
        정치력 획득: -20%
        안정도: -20.00%
        생산 효율성 성장: -20.00%
        • 연합의 안전성: 낮음
        우리 정부의 모든 관료들이 분열되어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고, 서로의 이득을 위해 짓밟고 있는 와중에, 정치인은 제 몫을 챙기기에 바쁩니다.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정치력 획득: -10%
        안정도: -20.00%
        이념 변화 방어: -25.0%
        • 함께 잘 해나가는 연합
        우리 연합의 일원이 정치조직에서 자립 외에 하나의 목표로 뭉쳤기 때문에, 한때 헛된 꿈이었던 망상이 이제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직 의견 충돌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지만, 파나마는 전체적으로 올바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 지휘관
        • 보리스 마르티네즈 원수, 4, 4/4/3/2
        • 오마르 토리요스 원수, 3, 5/2/2/2
        • 호세 훔베르투 라모스 장군, 3, 3/2/2/3
        • 루벤 다리오 파레데스 장군, 2, 2/2/1/1
      • 주요 도시
        아마도 평범한 외국인들에게 파나마라는 나라는 그것을 둘로 나누는 운하로 정의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태평양 입구의 동쪽 제방에는 평범한 파나마인에게 성공과 실패, 국가의 이야기를 상징하는 도시인 파나마 시티가 있습니다.

        국가의 기원인 파나마시티는 깊고 푸른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유럽 최초의 태평양 정착촌으로 설립된 이 도시의 역사는 파나마 전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 건축물은 스페인 식민지에서 앤틸리스 타운 하우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있는 파나마의 다양성을 상징합니다. 불행히도 미국인들이 운하의 지역을 차단했기 때문에 그 불평등은 또한 국가를 대표합니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파나마입니다.||
      • 멸망 문구
        The Land Divided Forevermore.
        땅은 영원히 나눠집니다.
      -
      지도자는 로베르토 치아리


      16. 아이티[편집]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과두정(가부장주의, 아이티 공화)
      • 경제: 계획경제/미국 경제권 소속국
      • 자유국가기구의 OFN 의존회원국
      • 국가 정신
        • 물라토 정권
        미군이 아이티 공화국에 상륙하여 아이티를 점령하자, 신 정권에서 미국과 협력하는 협력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공화국의 물라토 엘리트층이 되어서 막강한 정치, 경제력 지위를 장악했고, 국가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라토 정권" 이라고 불리는 이 제도는 미국과 그 영향력에 밀접하게 연된되어 있습니다.

        아이티 국민들 사이에서의 이 지위 격차는 레스코 정부가 현상유지와 함께 개혁을 거부하면서 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은 피에르 데조이와 그의 개혁 강령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국가의 경제는 살아나고 있으나, 정치 개혁은 마치 주먹구구식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휘청대기 시작합니다. 많은 국민들은 이미 정부에 대한 희망을 잃고 야당을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안정도: -25.00%
        • 끝없는 점령
        미국의 아이티 점령은 공식적으론 1934년 끝났고, 마지막 미군이 그해 아이티를 떠났으나 미국은 지금까지 국가의 정책을 통제해오고 있으며, 점령자의 영향력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영향력이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 희망했으나,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패배는 이 지역에 관한 미국의 계획을 변경시켰습니다. 미국이 학생들과 대중의 시위를 단속하는 레스코 정부를 지지하였고, 동시에 이 지역을 자신의 영향권 아래 계속 두도록 하면서 이 나라의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친미 과두정부 지지는 많은 야당 단체들이 미국인을 쫓아내자는 구호 아래 정부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을 벌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쿠바 혁명이 성공한 이후, 이 게릴라들의 세력은 더욱 증가하여 아이티 정부는 DFN에게 점점 더 큰 자원의 블랙홀이 되었고, OFN은 이제 외형적인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치안 유지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제 점령자건 그 반대자건 모든 국민들은 이 끝없는 점령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정치력 획득: -25%
        전쟁 지지도: -10.00%
        (미합중국) 종주국과의 추가 무역: +50.00%
        • 루맹의 망령
        수십년 간의 경제, 사회적 불평등 이후, 물라토 귀적들이 국가 전역을 지배하면서, 사회주의와 누아르주의의 이상이 아이티 흑인들의 의식 속에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누아르주의가 야당의 이데올로기가 된 반면, 쿠바 혁명으로 인해 더욱 대담해진 게릴라 성향의 사회주의자들도 득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두 이데올로기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종종 대규모 충돌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계급, 인종 정체성의 문제가 점차 얽힘에 따라 두 이념의 지지자들은 하나의 깃발 아래 단결하고 있습니다. 자크 루맹의 범아프리카주의 이상은 1944년 그와 함께 죽음으로 끝을 내었으나, 자크 스테판 알렉시와 그가 이끄는 인민합의당은 이를 부활시켜 정부에 대항하는 야당 세력을 주도하기 시작하였고, 이들은 미국인과 트루히요 양측을 비난하며 전국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매주 안정도: -0.20%
        납세 인구: -15.00%
        매일 사회주의 지지도: +0.01%
        • 히스파니올라섬 분쟁
        히스파니올라 섬은 이곳에 있는 두 나라가 독립한 이후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아오는 땅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점령이 끝나고, 트루히요의 친구인 엘리 레스코가 당선되면서 상황이 진정되고 두 나라 사이는 평화가 깃든 새로운 시대가 예고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두 독재자는 얼마안가 갈등을 벌이기 시작했으며, 아이티에 대한 미국의 간섭이 증가하면서 양국 사이의 긴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조되었습니다. 국경 충돌이 찾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대규모이고 조직된 도미니카군이 1936년 합의된 국경선을 넘어서서 아이티 땅 일부를 점령했습니다.

        게릴라들이 시골 지역을 장악하면서 아이티군은 간신히 국토를 통제하고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일어난 침략과 점령 사태는 아이티 정부의 거국적인 치욕을 부채질함과 동시에 아이티 정부를 더욱 벼랑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아이티 국민들의 복수심이 많은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고 있기 때문에, 이 섬에서의 전쟁은 조만간 다시 일어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전쟁 지지도: +5.00%
      • 주요 도시
        • 포르토프랭스
        포르-토-프랭스시는 1770년에 프랑스 식민지인 생도맹그의 수도가 되었지만, 최초의 유럽 상륙 이후로도 큰 영향을 미친 곳입니다. 아이티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후, 포르토프랭스는 아이티 사회의 중요한 중심지로 남아 있었고, 통일 후 남부 공화국과 국가 전체의 수도였습니다. 여러 면에서 이 도시는 혁명 이후 유럽의 열강과 제1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의 점령으로 아이티에 부과된 형벌로 인해 여전히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포르토프랭스는 아이티 사람들에게 영원히 고향이자 난로로 남을 것입니다.
      -
      지도자는 루이 데주아.

      TT3 업데이트 예고에서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영토 분쟁 컨텐츠가 예고되었다. 오랜 미국의 강점기에 형성된 물라토 계층의 지배체제와 흑인 하류층간의 갈등은 국가를 병들게 하고 있으나, 끝내 도미니카 공화국의 침공으로 일부 영토를 강탈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아이티는 OFN에 더욱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카리브 군단이 도미니카를 침공하는 시점에도 아이티는 국내 정세가 굉장히 혼란스러워서 고토 수복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카리브 군단의 도미니카 공화국 전복시도인 푸에르토플라타 작전의 여파에 따라 아이티 정계의 지각변동이 시작된다. 루트에 따라 도미니카의 상황이 불안정해질시 내부적 안정을 우려한 정부 내 장관인 프랑크 라보/레옹 캉타브 등이가 대정부 쿠데타를 일으켜 아이티를 개혁/또는 반공 체제로 이끌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와 관련된 미국의 이해관계가 어그러지면서 불가피하게 아이티의 OFN 구성국 자격이 정지되며, 설상가상으로 카프아이시앵 일대에서 자크 스테판 알렉시가 이끄는 PPLN 사회주의 세력이 봉기하면서 수렁과도 같은 내전을 치뤄야 한다. 극도로 취약해진 아이티 정부의 지원국인 미국 또한 이에 휘말리면서 개혁 및 봉기군의 진압을 도와줄 필요가 있다.

      어글리 아메리칸 업데이트 이후 아이티 관련 이벤트가 대폭 추가되었다. 도미니카에 강탈당한 앵슈 영토분쟁을 넘어 군사분쟁이 고조됨에 따라 정계가 변동되는데, OFN 구성국으로서 아이티의 입지가 변동된다거나 또는 일시적으로 구성국 자격이 정지되는 등의 허점이 드러나고, 이를 도미니카 공화국이 노리고 침공을 시도하기도 한다. 도미니카 공화국에 친미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앵슈 영토분쟁을 중점으로 하는 문제 해결의 선택권이 미국에게 넘어가는데, 여기서 적절치 못한 대응을 할 시에는 도미니카-아이티 간의 구성국 간 전면전이 벌어지거나 아이티가 스스로 OFN을 탈퇴하기도 한다.

      여러 모로 OFN 내부의 아킬레스건급 국가로 비중이 크게 늘었는데, 업데이트명인 '어글리 아메리칸'이자 현실에서 미국의 대외개입 정책을 비판하는 소설을 모티브로 아이티에 등장하는 외교관 이벤트를 통해 미국의 부적절한 대외 교섭 내용을 비판하는 이벤트가 추가되기도 하였다.#[61]

      17. 도미니카 공화국[편집]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협동조합주의(파시즘, 도미니카당)
      • 경제: 협동조합주의/이베리아 경제권 소속국
      • 국가 정신
        • 신과 트루히요(Dios y Trujillo)
        라파엘 레오디나스 트로히요 몰리나의 인기는 과소 평가할 수 없습니다. 1920년대의 빈곤과 혼란을 기억할 만큼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국가의 구세주입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그는 미국 제국주의로부터 도미니카 수도회의 수호자입니다. 그를 짐승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신과 트루히요'의 모토는 종종 그의 초상화 아래에 전국적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많은 도미니카인들에게 하나님과 트루히요는 하나이며 동일합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전쟁 지지도: +10%
        • 블랑케아미엔토(Blanqueamiento)
        트루히요 치하의 도미니카 공화국이 진행하는 계획 중 주목할 만한 부분은 블랑케아미엔토, "화이트닝"일 것입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스페인 백인 문화가 이 지역의 원주민들을 문명화시키는 등대로 서 있다고 믿고 있는데, 스페인 내전에서 그가 국민파와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공화파 난민들을 수용하였고, 심지어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의 진격을 피해 도망친 유대인 난민들까지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저 첫 단계일 뿐입니다. 내전이 끝난 이후, 트루히요는 프랑코와 더욱 긴밀한 관계를 추구했으며, 무역, 문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인 반도에서의 이민 협정을 추진했습니다. 이 계획은 성공적인 것으로 증명되었고 이베리아인들이 떼지어 섬으로 이동하고 있으나, 그 수는 여전히 물라토와 흑인 인구비율에 타격을 주기엔 부족했습니다.

        백계 이민자들과 증가하는 긴장에 대한 반동으로 인해, 그의 정권은 아이티에 사는 압도적인 수의 아이티 흑인들에 대한 차별정책을 펼치면서 외국인 혐오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아이티 공동체의 제노사이드와 디아스포라 현상이 일어났고, 그 결과 도미니카 인구비율에서 백인들의 차지하는 비율이 인위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매월 인구: +1%
        안정도: -10%
        매일 파시즘 지지도: +0.01%
        • 증가하는 저항
        외부인에게는 도미니카 공화국 전체가 트루히요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실각되는 것을 보기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1959년 전국적인 탄압으로 대부분의 저항 지도자들이 감옥에 갇힌 후 이들 세력은 약하고 흩어졌습니다. 반군 세포가 존재하는 동안 그들은 목표를 달성합니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안정도: -10.00%
        매일 가부장주의 지지도: +0.01%
        매일 자유주의 지지도: +0.01%
        • 현대화중인 군대
        지난 10년동안 도미니카군은 급속하게 확장되어 왔습니다. 인근 국가들의 적대심과 아이티의 OFN 가입으로 카리브해 국가들 사이에서 고립된 우리는 모든 방면에서 변질된 양키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가 장비를 현대화시키고 전력을 현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은 융자, 구매, 그리고 이베리아와 트라움비라투스의 협력일 것입니다.
        공군 교리 비용: +20.00%
        육군 교리 비용: -20.00%
        공짜 생산 단위: +2.0%
        육군 비용 변동치: -40.00%
        매월 군 전문성 변화: +0.10
        • 히스파니올라섬 분쟁
        히스파니올라 섬은 이곳에 있는 두 나라가 독립한 이후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아오는 땅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점령이 끝나고, 트루히요의 친구인 엘리 레스코가 당선되면서 상황이 진정되고 두 나라 사이는 평화가 깃든 새로운 시대가 예고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두 독재자는 얼마안가 갈등을 벌이기 시작했으며, 아이티에 대한 미국의 간섭이 증가하면서 양국 사이의 긴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조되었습니다. 국경 충돌이 찾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대규모이고 조직된 도미니카군이 1936년 합의된 국경선을 넘어서서 아이티 땅 일부를 점령했습니다.

        게릴라들이 시골 지역을 장악하면서 아이티군은 간신히 국토를 통제하고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일어난 침략과 점령 사태는 아이티 정부의 거국적인 치욕을 부채질함과 동시에 아이티 정부를 더욱 벼랑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아이티 국민들의 복수심이 많은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고 있기 때문에, 이 섬에서의 전쟁은 조만간 다시 일어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전쟁 지지도: +5.00%
      • 주요 도시
        • 시우다드트루히요/산토도밍고
        신대륙의 오래된 유럽인 정착지 중 하나인 산토도밍고는 역사의 파도와 파도에 낯설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도미니카공화국 대통령인 라파엘 트루히요의 이름을 따서 이름이 바뀌었지만, 도시 안팎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전 이름으로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트루히요의 독재 통치를 비난하는 방법으로 수행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섭리로 도시 이름을 바꾸는 것이 다소 촌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산토 도밍고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도미니카 공화국의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중심지입니다.||
      -
      지도자는 라파엘 트루히요. 파라과이가 남아메리카의 왕따 나라라면, 북아메리카의 파시스트 왕따 국가는 도미니카 공화국이다. 트루히요는 OTL의 피델 카스트로처럼 CIA가 수많은 암살시도를 가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62] 1959년 쿠바 혁명으로 인해 유일한 우호국 바티스타 정권이 몰락하자 트루히요 정권은 라틴아메리카의 반미세력들을 닥치는 대로 지원하기 시작하였는데, 어찌어찌 유지되던 정권은 1962년 트라움비라투스의 붕괴로 인해 주요 연줄인 이탈리아와의 관계가 무너지면서 이베리아 연합의 지원을 통해 간신히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위협을 느끼곤 1963년 미국을 주도로 멕시코, 쿠바, 베네수엘라, 코스타리카 등 카리브 인근 민주 국가들이 단합하여 지원한 반파시스트 의용병부대 카리브 군단을 도미니카 공화국에 침투시키며[63] 히스파니올라 섬의 정세는 급변하게 된다.

      카리브 군단이 트루히요 정권을 붕괴시키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군단 내부 사회주의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는데[64]. 사회주의 반란이 성공하면 막시모 안토니오 로페스의 아마조니즘(공산주의) 정권이 출범한다. 그리고 로페스 정권은 트루히요, 파시스트, 자유주의의 잔재를 모조리 추방하고 마르크스-레닌-아마조니즘 원칙에 따른 진정한 공산주의 국가를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문화혁명을 실시한다. 반동 척결이랄지, 적위병이 동원되어 반체제 인사에 대한 숙청과 탄압을 벌인다는 점에서 현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모티브로 한 듯 하다.

      그 외의 루트로는 카리브 군단의 정권 탈환 실패로 인한 트루히요의 유임, 도미니카의 정세가 불리해지면서 2인자 호아킨 발라게르가 트루히요를 제거한 이후 휴전을 선언하고 재건정부의 일원으로 침여하여 당선되거나, 트루히요의 정적인 후안 보스크(좌익 포퓰리즘)의 좌익 대연합, 정권 내 친민주 세력이였던 라파엘 보네이(민족자유주의) 등이 확률적으로 집권한다.

      어글리 아메리칸 업데이트 이후 히스파니올라 침공/도미니카 내전은 국제적인 의미에서 상당히 중요한 이벤트로 격상되었는데, 트루히요를 제거한 이후 집권하는 호아킨 발라게르가 미국과 휴전을 시도하면서 자신을 도와주는 강대국인 이베리아 연방과 미국간의 외교 관계 개선의 물꼬가 되기 때문. 덕분에 아무 관련 없을것 같은 독일 또한 미국-이베리아 우호관계를 막기 위해 내전에 개입하는 컨텐츠가 존재한다.

      18. 파나마 운하 지대[편집]


      플레이 불가

      • 자유국가기구군사정부
      • 미합중국군사정부
      • 집권이념: 협동조합적 가부장주의(파나마 운하 지휘부)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미국 경제권 소속국
      • 국가 정신 없음
      • 주요 도시
        • 앙콘힐(파나마 운하)
        하나의 사람. 하나의 계획. 하나의 운하.

        미국의 모든 학생은 파나마 운하 건설의 진언을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모르는 것은 파나마 운하를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수년간의 집중적인 계획이 있었는지입니다. 태평양의 거센 파도에서 일본 제국의 궁극적인 승리로, 미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바다에서 거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오직 강철로 덮인 것뿐이었습니다. 미국 제국의 주요 동맥은 서양과 동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 고리일 뿐만 아니라 전체 서반구에서 가장 큰 표적이 됩니다. 2차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다면 일본이 파나마를 목표로 삼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수천 개의 대공 무기로 구성된 정교한 방어 그리드에서 잠재적인 상륙을 쓸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수백 줄의 콘크리트 벙커에 이르기까지 정글로 둘러싸인 띠 모양의 땅보다 더 군사적인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 멸망 문구
        The flood gates have opened, and the river of commerce runs red.
        수문이 열리며 무역의 강이 붉게 물듭니다.
      -
      남미 서브모드의 공식도입으로 추가된 국가. 지도자는 로버트 J. 플레밍. 파나마의 독립보장과 군사 통행권이 걸려있다.

      [1] 법안이기 때문에 상원 의석수가 필요하지만 중점상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면서 그리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다[2]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군비 지출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사상이다.[3] 리버럴 민권법 이후 타협 루트[4] 보수적 민권법 이후 타협 루트[5] NPP 진보파, 노동민주당과 함께 개혁을 시도할 경우 강력한 민권법까지 뚫을 수 있다. 실제 역사에서의 베넷이 민권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 유한 태도를 보인 것을 반영한 것이다.[6] LBJ 버프 전에는 베넷-헤링턴 루트가 경제와 사회 발전면에서 가장 성능이 좋았다. 현재는 LBJ 2선과 RFK-필립 하트 루트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RFK 2선도 성능이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7] 1964년 대선 후보 중 LBJ는 위대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개혁을 진행하며 복지국가를 만드는 묘미가 있고, RFK는 형의 의지를 이으면서도 암살을 당하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재미가 있으며, 조지 월리스는 포퓰리스트인 동시에 인종차별주의자, 그로 인해 탄핵이 가능한 대통령이라는 입체적인 면모를 지닌 대통령인데 반해 베넷은 좋게 말해 무난하고 나쁘게 말해 이도저도 아닌 대통령이다.[8] TT3에서 업데이트된 필립 하트는 대부분의 중점이 14일인 반면 베넷은 적으면 28일, 많으면 49일짜리 중점이 즐비해있다. 그나마도 중점 하나 찍었더니 '상원 2명이 법안을 지지하기로 했다.'라고 하며 넘어가는 식이다.[9] 문해력을 시험할 때 흑인들에게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를 내어 투표를 막는 것.[10] 이민국적법은 타협적으로 나가도 되지만 공정주택법은 무조건 LBJ가 하려는대로 타협 없이 가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타협하는 순간 흑인들이 배신감을 느낀다는 이벤트가 뜨며 흑인 유권자들 사이에서 공화민주연합의 지지도가 붕괴되고 진보파로 표심이 옮겨가 이후 선거가 어려워진다.[11] 포커스를 모두 찍고 디시전도 모두 선택할 경우 28%였던 미국의 빈곤율을 최대 2%까지 떨어트린다.[12] 대통령은 선거 운동 외에도 대선 토론 이벤트의 영향력 덕분에 그나마 사수할 수 있지만, 상원을 완전히 뺏겨버린다.[13] 투자에 위험한 것으로 분류되는 지역에 사는 거주민들에 대해 서비스를 거부하는 관행인데, 당연히 이 지역들은 소수인종과 저소득층이 거주하기 때문에 인종차별로 분류된다..[14] 이때 KKK를 직접적으로 부수면 안되고, 비공식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15] "저는 지금 제퍼슨 데이비스가 섰던 곳에 서서 시민 여러분께 맹세합니다. 이곳은 연합국의 요람이자 위대한 앵글로 색슨 남부의 중심입니다. 우리는 우리 선대들처럼 다시 한 번 자유의 북소리를 울려야 합니다. 일어나 우리 몸에 흐르는 자유의 피에 호소합시다. 남부에 사슬을 채운 폭군에게 우리의 답을 전합시다. 지금까지 이 땅을 거닌 위인들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저는 이 불리한 상황에서 단호하게 반대하며 폭군의 발 앞에 도전장을 던집니다. 제가 말하기를 인종분리는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16]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이름을 날리는 게 목표였다. 본래 닉슨 대통령을 죽이려 했지만 안될 것 같으니 꿩 대신 닭으로 경선 후보 월리스를 쏜 것. 트래비스 비클의 모티프 중 하나가 되기도 했으니 목적은 이룬 걸까?[17] 다만 정말로 인종차별주의자였는지는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정치에 나서기 전 판사였던 시절의 월리스는 인종 관련 이슈에 대해 온건한 입장이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월리스의 출생지이자 정치적 활동지인 앨라배마쿠 클럭스 클랜 본거지 일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각했던 곳이었고 맨 처음 주지사 선거에 나섰던 1958년, KKK의 후원을 받는 패터슨의 인종몰이 공격에 당해 낙선한 경력도 있었다. 이후 인종주의적 발언을 일삼다가 총에 맞은 후에는 입장을 바꿨고 1974년에는 오히려 흑인에게 어필하여 흑인의 몰표를 받고 주지사에 당선 되었고 앨라배마에서 인종차별 정책을 없애는데 힘을 쏟았다. 하지만 월리스는 이전에도 여러번 도중에 말을 바꾼 적 있었기 때문에 민권법 통과 이후 스탠스를 바꾼 것 역시 흑인 유권자들에 인기영합 하기 위한 기회주의자였을 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애초에 당시 남부 정치인들은 대부분 포퓰리즘 성향을 가지고있어서 나름 중립적으로 대처하려 했거나(폴 B. 존슨 미시시피 주지사등), 인두세같이 가난한 백인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치는건 반대하거나(스페서드 홀랜드 플로리다 상원의원등), 나중에 전향적 스탠스를 보인 인물들(오벌 포버스 아칸소 주지시, 스트롬 서몬드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등)이 대부분이다. 월리스의 경우 전향후인 1976년에도 법과 질서, 보수적인 사회정책으로 인기몰이를 하는등 순수한 민권 지지자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뜨노에서도 이러한 면모를 반영하여 약속한 대로 인종차별주의와 작은 정부, 친기업적 정책을 펼칠 수 있지만 공약을 생까고 反인종주의적 정책이나 친노조, 복지 정책 등을 밀어붙일 수 있다. RFK가 대통령일 때에는 의료보험법 통과를 위해 지지를 요청할 때 케네디와 험프리는 뭘 빼주면서 협상을 할 지 고민한 것이 무색해지게 "미 국민에게 필요한 법"이라는 발언과 함께 극우파의 무조건적 지지를 약속하기도 한다.[18] 이 과정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중미 국가들을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같은 기업들의 지배에 놓이게 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19] 골드워터는 리버테리언답게 죽어도 협력을 안하고, 인종분리를 하면 RFK는 협력하지 않는다.[20] 인종분리를 하면 존슨한테 욕 들어 먹고 지지를 철회한다.[21] 현 버젼 기준으로 버그인지 존슨과의 협상이 성공하면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의 지지도가 상승한다.[22] 이 과정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중미 국가들을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같은 기업들의 지배에 놓이게 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23] 실제 역사에서도 흑인들도 훈련하면 쪽발이들 죽이는 데 아무 문제 없는데 피부색이 뭐가 중요하냐는 입장이었다.[24] 케네디가 대통령일때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쪽으로 중점이 전개되며 세금을 감면하고 사회 보장 제도를 축소하며 민권법의 존치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반면 월리스나 르메이가 대통령일 경우 인종분리정책을 철폐하며, 민권법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다.[25] 현실의 레이건 정부 시기에 재무부 장관을 맡아 레이거노믹스를 설계했다[26] 정확히는 플레이 동안 극단주의 세력의 지지율이 20퍼센트를 넘으면 경선에 참여할 수 있다.[27] RFK때 곧장 앞으로 나아가자 중점을 찍고 400 정치력이 들어가는 중점을 찍을 경우 급진적 민권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 이후 하트 정부에서 잉크와 피부 중점 갈래 가장 하단부에 민권법 강화 중점이 있는데 이걸 통과시키면 혁명적 민권법이 가능하다.[28] 적당히 개혁하고 말거라면 상관이 없는데 사회보장법과 의료보험법을 찍을 셈이라면 시간이 상당히 빡빡한 편이다.[29] 68년 7월에 RFK가 NPP 대선 후보로 선출된다.[30] 68년 선거에서 RDC가 의석을 최소 50석을 확보해야 한다.[31] 이때 설문조사를 잘 실시하면 아메리'카' 중점을 해금하는게 가능하다.[32] 국가 전체 예산을 말하는게 아니다. 하트 정부 전용 도시 개혁창의 예산을 말하는 것.[33] 실제로 필립 하트는 1976년 12월에 흑색종으로 사망했다.[34] 74년 1월 23일까지 사임 준비를 마치고 사임을 한다. 만약 그 이전에 개혁을 완료하고 위기를 극복했다면 스스로 투병 사실을 밝히고 만인의 염려와 축복 속에 조기 사퇴하며 여생을 보내지만, 23일까지 완료를 하지 못할 경우 말기 암 투병 사실이 언론에 의해 폭로되며 사임 기회를 놓치고 격무를 하다 74년 2월경에 사망하게 된다.[35] 재선에 성공하고 상원의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던 덕인지 개혁 입안을 직접적으로 폐기하는 방식이 아닌 세부 사항을 조절하는 방식(ex: 민영화)을 통해 개혁을 무력화시키려고 한다.[36] 글렌 삭제에 대해 변호하자면 실질적으로 글렌의 최종 컨텐츠인 화성이 정상적 컨텐츠인 8년 임기 내에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였으며, 인종차별가 정치인 또는 전문 정치인으로서 유능한 면모를 보이는 월레스와 같은 다방면의 요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우주개발에만 집중되는 캐릭터성으로 인해 컬트적인 인기를 끌 수는 있으나, 냉전기 정치인으로서의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는 점이 많았기에 삭제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의견도 있다.[37] 강경파뿐만 아니라 온건파 공화당원까지 쳅의 적으로 돌아서 개혁을 무력화시키는 입법에 앞장선다. 오히려 그 이전까지는 적이었던 NPP 진보파가 아군으로 바뀐다. 이 과정이 너무나도 작위적이라는 비판이 있다.[38] 미국내 저명한 트로츠키주의자로, 제3진영을 외치며 연합국과 추축국을 모두 부정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마이클 해링턴, 어빙 하우와 함께 민주사회주의 운동에 힘썼다.[39] 대법원이 보수파일 경우에는 링컨 그림이 그려진 '강력한 민권법'으로 다운그레이드 되니 주의.[40] 정석적인 진행이 아닌 게임의 허점을 노려 파고든다면 해링턴 외에도 가능은 한데 로버트 F. 케네디로 급진적 민권법을 통과시킨 뒤 암살시키고, 서몬드로 민권법만 부수지 않고 대통령을 당선시키면 서몬드 지우기 중점에서 대통령이 민권법을 강화할 수 있는데, 급진적에서 더 강화되어 혁명적 민권법을 찍을 수 있다. 또한 홀의 민권법도 혁명적 민권법인데 게임 텍스트를 뜯어보면 혁명적 민권법보다 위 단계인 더미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차후에 홀 전용 민권법이 추가될 수 있다.[41] 심지어 대선 경선에 출마하기까지 했다. 경선에서 떨어지기는 했지만.[42]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산업 규제를 강화한다.[43] 다만 버싱은 강제성인 데 비해 부작용이 커 흑인 민권에 우호적인 이들도 상당수 반대했다. 전체적인 스펙트럼을 봤을때 잭슨은 휴버트 험프리와 함께 친노조•뉴딜 민주당원으로 분류되었다.[44] 인게임에서도 슐래플리에 대한 인식은 딱히 다르지 않은지 '1850년대에서나 나올법한 생각을 가진 미친 중서부 주부'라는 언급이 나온다(...)[45] TT3 패치로 미국 선거 매커니즘이 변하게 되면서 가능하게 된 루트[46] 하지만 상원의원 선거의 지지율과 대선의 지지율은 별개이기에 상원 확보는 힘들 것 이다.[47] 다른 이벤트에 따르면 홀은 랭글리의 CIA 본부가 콘크리트 폐허로 전락하기를 바란다. 개혁이 아니라 해체를 원한다는 것.[48] 호이나 그 모드를 한다면 잘알만한 오스왈드 모즐리의 Union Movement나 윌리엄 더들리 펠리의 은색 셔츠 군단 등이 있다.[49] 대선에서 해야 하는데 만약 2선이 되었을 경우 공화당 의석이 줄어서 인종구분 없이 복지법을 통과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50] 부통령에 루이스 T. 바이어스(Louis T. Byers), 국무장관에 레빌로 P. 올리버, 재무장관에 해럴드 키스 톰슨, 국방장관에 존 G. 크로멜린. 다들 백인우월주의자에 반유대주의자로 해럴드 키스 톰슨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SS 방첩대 정보원도 한 작자다.[51] 자유당(LIB), 토리당(CP,보수주의-존 디펜베이커), 협동조합연방연맹(CCF,진보주의-토미 더글라스), SCP[52] 대신 카이저라이히에서 미국은 극단주의자들의 준동 등등으로 인해 반드시 내전으로 치닫는데 캐나다 자치령이 직접 미국 내전에 개입해 민주주의 정부가 다시 질서를 확립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고 구 왕립 해군의 5분의 2 가까이 되는 전력이 따라온 데다가 모든 해외 자치령이 왕실에 충성하므로 상황이 낫다고 할 수 있다. 아예 열강 취급인데 인력이 적은 것을 제외하면 왜 열강인지를 알 수 있다.[53] 후계 지도자 3명.[54]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의 부친.[55] 바베이도스의 정치인. 서인도 연방의 유일한 총리이자 바베이도스의 초대 총리이다.[56] 자메이카는 탈퇴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OFN에서도 완전히 탈퇴한다.[57] 트리니다드는 윌리엄즈가 지도자인 경우에는 OFN 소속을 유지한다.[58] 바티스타는 이후 도미니카로 도주. 도미니카 침공이 발발하면 이베리아로 탈출하려 하나 확률적으로 체포당해 공개적으로 처형되는 뉴스가 존재한다.[59] TNO에선 쿠바 혁명이 친파시스트 정권인 바티스타 정권을 몰아내는데 기여한 것이 카스트로인지라 미국과 중남미에서의 대외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으며, 이후 푸에르토플라타 침공에선 멕시코와 쿠바가 협력하는 내용도 나온다.[60] OFN 소속에서 탈퇴하진 않는다.[61] 게임 외적으로도 문제점이 있는데, 단순히 미국 플레이에서의 난이도가 올라간 부분 자체는 어느정도 의도한 것이지만 외교분쟁창이 독립 UI로 격상되면서 게임 플레이에 지장이 갈 수준의 렉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티 내전 컨텐츠는 기본적으로 몇 년 이상을 소모하는 장기성 컨텐츠이라고 언급이 되나, 렉으로 인해 컨텐츠 자체가 종료되지 않는 문제점 또한 발견되었다. 그나마 심각한 버그와 랙 문제는 The Ruin 패치 이후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커스텀패스 일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62] 특이한 점은 OTL에서도 트루히요는 CIA의 후원을 받은 무장괴한에게 암살당했으며, 반공 성향 독재자였음에도 미국과의 관계가 좋은 편은 전혀 아니었다. 굳이 꼽자면 임기 후반의 박정희와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을듯.[63] 푸에르토플라타 침공(Puerto Plata Invasion)이라 불리는데 피그만 침공을 오마주 한 것으로 보인다. OTL과 상황이 완전히 뒤집혀서 백악관의 작전상황실에서 카스트로와 닉슨이 함께 작전을 지휘하는 이벤트도 나오는 것이 압권.[64] 골때리는 점은 기껏 미국이 지원해 준 카리브 군단의 수장 알베르토 바요 또한 이들을 지원하고 있었다는 점.



[1]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며 타국에게 자신만의 정의를 강요한 현실 세계의 미국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2] OTL 상무부 장관. OTL에서도 루스벨트의 후계자로 기대되었지만, 건강 문제로 포기했다. 1946년에 암으로 사망.[3] OTL 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장.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측근이자 그의 행정부에서 우체국장을 역임하며 우표덕후 성향을 발휘하기도했다. 1940년에는 루스벨트의 지지를 받아 차기 대권주자를 기대했지만 그가 3선에 도전하자 실망하며 반루스벨트를 천명했고, 결국 행정부에서 퇴출되고 말았다.[4] OTL 테네시주 민주당 상원의원이였으며, 1956년 대선때 부통령 후보였다. 1952년 민주당 경선에서 대중투표수 1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조직범죄를 때려잡는 과정에서 민주당 지도부와 사이가 안좋아져 평생 대권주자가 되지못한 비운의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그를 풀뿌리 민주주의, 포퓰리즘 정치의 시초 중 한 명으로 보기도 한다.[5] 자유주의와 왕조라는 상반될 것 같은 의미의 단어가 섞여있어 어색해 보일 수 있는데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메디슨에서부터 이어지는 정통 자유주의 계보를 끊기지 않고 계승했다는 의미에서 왕조적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것이다. 미국식 자유주의 주류 계파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6] 현실처럼 온건파 공화당원의 수장이지만 세는 훨씬 약하다.[7] OTL에서는 차츰 쇠락하다가 리버럴 공화당, 중도 공화당과 함께 일하던 닉슨이 워터게이트로 사임하면서 치명타를 입었다. 이후 1976년 대선때 제럴드 포드가 패배하면서 완전히 와해.[8] TT3 시작시에는 노동민주당 파벌의 수장이다.[9] OTL 미시건 연방상원의원. 1965년 이민국적법에 이름이 붙었다. 1972년 조지 맥거번의 러닝메이트로 고려되었으며, 이후 흑색종 말기를 진단받아 정계에서 은퇴했다.[10] OTL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했던 유엔대사. '아메리카 여사(Mrs. America)'로 유명한 대외 강경파이자 전직 사회주의자[11] OTL 조지아의 민주당 상원의원. 남부의 보스 노릇을 했다. TT3 시작시에는 딕시크랫의 수장이다.[12] OTL에서는 1964년 골드워터의 러닝메이트였고, 북부 출신임에도 굉장히 보수적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13] 닉슨의 민권법 거부시[14] 인게임 설정상 아이젠하워의 부통령 이였다. 임기중 그의 진보적인 성향때문에 아이젠하워 임기 내내 불협화음이 있었다고 한다.[15] OTL 1924년, 제3당 진보당 후보얐던 로버트 라폴레트의 러닝메이트였고, 민주당내에서 상당히 급진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후 고립주의를 주장하면서 정치적으로 몰락.[16] 미네소타 민주농민노동당의 전신이기도 하다.[17] 연대했다가 반목했다가를 반복했다. 무당파 연맹에 반대하기위해 '독립 유권자 협회(Independent Voters Association)'같은 단체가 세워지기도 했으며, 이들은 현직 무당파연맹 소속 주지사 린 프레이저를 주민소환해 내쫒기도 하였다.[18] OTL 목사. 소위 '대각성'이라 불리는 현재의 미국 개신교를 만든 변혁을 주도했으며, 허슬러 잡지 대 제리 팔웰 사건으로 유명하다.[19] OTL 일리노이 공화당 하원의원. 본래 기독교 보수파 성향으로, 현실에서는 자유주의적으로 신념이 이동해 1980년 대선에서 당시 카터 행정부에 실망한 진보주의자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TNO에서는 시점상 보수주의적인 성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20] 네오콘. 대외개입을 옹호하고 재정적 보수주의를 추구.[21] 사회적으로 전통주의를 지향하고, 신보수주의와 달리 극단적인 고립주의를 추구하는 계파. 본래는 미국의 극우파 인사 팻 뷰캐넌을 중심으로 90~00년대에 유행했다.[22] OTL 아칸소의 민주당 상원의원. 외교 전문가였고 베트남 전쟁 반전여론에 큰 역할을 했다. 다른 딕시크랫들보다 온건했지만, 그 성향 때문에 정치적인 위기를 많이 겪었다.[23] 1965년 보수당 당적으로 뉴욕 시장 선거에 출마한적 있으며, 원리주의적•리버테리안 보수주의 성향을 가지고있어 다른 보수평론가들과 반목하기도 하였다.[24] 로버트 케네디 사후 열린 상원의원 선거에서 보수당 당적으로 당선된뒤 공화당으로 이적했다.[25] 선거로 인해 집권할 시 중점이 없다. 다른 브라질의 대통령도 100일 위기를 통해 집권하지 않을 시 중점이 없다.[26] 이벤트에서 미국이 우리를 지원해주면 민주적으로 개혁을 하겠다는 논지의 설득도 볼 수 있다.[27] 러시아 일주를 하러 온 미국 대학생을 보자마자 엄청난 학자일지 모른다며 극진하게 대접하는 이벤트도 볼 수 있다.[28] 추측해보자면 주요 국가들에 대한 요원이 잠입해 있지만 중앙시베리아는 고립된 입지상 지원의 손이 닫기 어려운 점도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29] 대부분 작전명이 독일 또는 일본의 작전 수행 방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TT 업데이트 이전부터 존재하전 디시전이였고 일부 사용되는 경우도 있으나 몇몇은 아예 작전명만 존재하고 실제 기능이 없는것으로 여겨지고 있어서 주의를 요함.[30] 인도의 개입은 시스템상 구현되지는 않았으나 이벤트상으로 지원을 암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항일연합전선의 부스타맘이 네루와의 대담을 한다거나, 국토방위후비군단의 수장 툰 후세인 온 등이 인도에 망명해 있다. 이후 인도는 호주와 함께 독립 말레이의 외교적 고립을 어느정도 타파해주기도 한다.[31] 내용을 보면 간접선거임을 알 수 있는데, 노골적으로 뇌물이 투여되는 내용이 나온다.[32] 1964년 이 오기 전 즈음이다.[33] 다른 대리전과는 달리 직접적인 지원이 불가능하다. 직접 지원은 일본과 독일만이 할 수 있다.[34] 유의해야 할 것이 여기서 적정량 이상의 행동을 할 경우 마다가스카르에서 미국과 일본이 손잡아 독일을 몰아내려 했다는게 들통나 국무장관은 사임하고, 공화민주연합이 심각하게 분열되며 닉슨은 탄핵당한다. 하지만 상원에서 충분한 표가 모이지 않아(닉슨이 아예 동귀어진할 기미가 보인다는 맥코맥의 간곡한 설득 끝에 케네디가 오명을 무릅쓰고 닉슨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다.) 진짜 탄핵당하진 않는다. 하지만 말라가시 반군은 완전히 일본이 장악하게 된다. 사실, 미국과 일본은 1946년(!)에 이미 1차 말라가시 봉기를 합동으로 지원한 전적이 있다. 한편 쿠데타를 통한 친미정권 수립 시도도 상당히 더러운 행각을 벌였다는 내용이 나온다.[35] 과거에는 빡빡한 제한시간이 존재했었으나 현재는 제한시간이 없어 널널하게 재건을 할 수 있게 되었다.[36] 피니야 정권일 경우엔 이베리아 또한 누에바그라나다를 지원[37] 브라질의 경우 선택에 따라 모든 정권을 지지할 수 있으며, 직접적으로 구현되지는 않았으나 쿠바 또한 혁명연합에 우호적인 스탠스를 보인다는 내용이 언급된다.[38] 이후 혁명 평의회 내의 권력투쟁에 따라 공산주의 세력이 정부를 장악하면 OFN을 탈퇴하기도 한다.[39] 2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을 유지한데 이어 파시즘의 광풍으로 보수당의 극우세력이 OTL보다 훨씬 우경화되어, 보수당 집권시기인 1956년 공식적으로 미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양국간의 관계가 단절되었다.[40] 정부군이 승리한다고 해서 꼭 친독 정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저항 세력과 미국은 공통적으로 망명해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지지하기에 저항 세력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전이 길어져 피로도가 쌓이면 저항 세력이 승리해도 별 좋은 꼴 못 볼 수도 있다.[41] 이후 관리에 따라 반란에 의해 붕괴되거나 아프리카를 안정화 및 민주화시키며 최종적으로 원주민들에게 주권을 돌려주고 떠난다.[42] 통합 루트, 중립 루트, 분리주의 루트 3개가 존재하는데 시작부터 중립 루트가 선택되어 있어 강제로 중립 루트를 타야한다.[43] 민권법에 우호적인 RDC 민주당이 50석, NPP 진보파가 12석의 의석을 점유하고 있다. 동수가 나올시 1표를 행사할 수 있는 JFK 부통령이 민권법 찬성파이므로 49석(하와이를 일본에게 빼앗겨 상원 정원이 98석이다.)만 확보하면 된다.[44] 전임자 케포버는 재선을 하지 않고 닉슨에게 백악관을 물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