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시대/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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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호평
2.1. 주제의식
2.2. 입체적인 캐릭터들
3. 비판
4. 고증
4.1. 의복 관련
4.2. 무기 및 전투 관련
4.3. 호칭 및 용어 관련
4.4. 기타 사소한 오류
5. 캐스팅
6. 총평


1. 개요[편집]


무인시대의 평가를 정리한 문서.


2. 호평[편집]


무인시대는 사극 중에서도 특히 매니아층이 두터운 드라마로,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극 매니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정통사극 투표 같은 걸 할 때도 <태조 왕건> 등과 함께 상위권에 꼽히는 편이다. 일각에서는 <무인시대>를 <태조 왕건>보다 더 좋게 보는 평도 많은데, <태조 왕건>은 아무래도 삼국지연의를 베꼈다고 볼 정도로 캐릭터 차용을 많이 했고, 이야기 구성과 캐릭터 면에서 문제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외에서도 방영 당시 평가가 좋았는데, 미국에서 방영되었을 때에는 한국 사극치곤 드물게 뼈와 살이 분리되는 액션 신이 적나라한게 꽤 좋은 평가를 들었으며, 현지 한인들 중 일부는 녹화본으로 VHS 여러개를 떠서 돌려봤을 정도였다고 한다.[1] 그 외에 극 중 무인들의 최후나 그들이 마지막으로 나누는 진솔한 대화 장면 등이 많은 이들에게 명장면으로 꼽히기도 하였다.


2.1. 주제의식[편집]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타락. 극의 주제 자체가 "절대 권력은 반드시 타락한다"이다.[2]

대부분의 사극들이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아 영웅이 악을 물리치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과정을 그리는 영웅 서사 구조를 따르는 '서사시' 혹은 '전기' 인 반면, 무인시대는 젊은 시절 세상을 바로 세워보겠다는 큰 뜻을 품었던 호걸들이 점차 권력의 맛에 찌들어 잔인한 권력자로 타락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느와르 내지는 피카레스크의 형식이다. 그리고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각 세대의 집권자들 하나 하나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군상극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피카레스크적 주제와 선 굵은 정통 사극의 조합은 그야말로 미칠듯한 박력을 보여줬고, 무인시대가 종영한 후에도 무인시대 전반부의 박력을 따라 갈 만한 작품이 없을 정도다.[3]

주제면에서도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한 때는 혈기 방장하고 나라의 개혁을 위해 뜻을 가지던 젊은 무신들이 세월이 지나고 권력에 맛을 들이면서 타락 및 파멸을 맞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냈으며, 권력에 대한 무인(인간)들의 고뇌와 성찰, 권력의 속성을 절묘하게 연출해냈다.

심지어 비교적 초반부부터 권력을 탐하는 노장군으로 나오는 정중부마저도 마지막 공예태후와의 대화에서 짤막하게 나오는 젊은 시절에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혈기방장한 무신으로 그려진다. 정중부의 경우 김돈중이 수염을 태우는 장면에서도 젊은 시절이 나온다. 대사가 무음처리 돼서 지나가는 것 치고는 상당한 긴 분량의 고퀄로, 특히 인종이 나와 정중부를 꾸짖는 장면이 인상적. 특히 극 마지막에 최충헌이 젊은 시절 자신의 페르소나에게 난신적자의 평가를 받는 명장면이 이러한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무인 집권자들은 마지막 꿈에 자신이 죽인 자들에게서 꾸짖음을 듣고 깨어나 자신의 지나온 삶을 곱씹는 연출이 나왔으나, 최충헌은 자신이 죽인 동생 최충수와 박진재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죽기 직전에는 젊은 날의 자기 자신에게 면박을 당하고 통곡한다. 경대승이 죽기 직전 자신의 꿈에 죽은 정중부가 나와서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꿈을 꾸었다는 기록을 모티브로 한 연출로 보인다.

최종회에서는 드라마에 등장한 무신집권자들의 삶과 시대를 간략히 돌아보며 무신정권기를 평가한다. 여기서 훗날 조선을 세우는 무인 출신 이성계와 무신집권자들을 비교하며 왜 무신집권자들이 왕이 될 수 없었나에 대한 해설도 덧붙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무신들은 권력을 잡을 줄은 알았지만, 잡은 권력을 가지고 뭘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타락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중 권력에 의해 사람이 변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가령 명종은 극 초반부만 하더라도 뭔가 일이 생기면 눈이 빠질듯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울먹거리는 겁쟁이에 지나지 않았으나, 점차 자존심과 왕좌에 대한 집착, 그리고 자신의 보위를 누군가 노리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강해지더니 이의민 정권 파트에 이르러선 인간불신[4]과 더불어 나름 책임감 있는 모습도 보인다. 5대 집권자 가운데 가장 초심을 지키고자 했던 경대승마저도 권력을 쥐자 두경승이 자네 눈빛이 변한거 아냐고 우려할 정도로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작중 대의명분이나 백성들의 애환을 말하는 캐릭터들이 많았음에도,[5] 그걸 실천할 비전과 도덕성, 정치력이 뚜렷하지 않았기에 죄다 말로가 좋지 못하였다.[6] 이의방, 정중부, 이의민, 최충헌은 결국 난신적자가 되었고, 경대승의 도방은 부자들을 약탈해서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포퓰리즘적 월권 행위를 하는 집단으로 변질되었으며[7], 두두을은 현 고려 황실이 백성을 위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백성을 위해 들고 일어나라며 여러 사람들을 꼬드겼으나 결과론적으론 대부분을 파멸로 이끈 옴므파탈이 되고 말았다.


2.2. 입체적인 캐릭터들[편집]


전형적인 주인공이 많은 다른 사극들과 달리, 5명의 주인공들이 각자 복합적이고 매력적인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무인시대를 수작으로 평가받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호방함 이면에 상당한 통찰력과 교활함을 숨긴 복합적인 성격의 이의방, 무신임에도 왠만한 문신들 뺨칠 정도로 낯짝 두껍고 권모술수와 정치질에 통달한 노회한 늙은 권신 정중부, 이상을 쫓아 살아왔으나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고뇌하는 젊은 무신 경대승, 압도적인 무력과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결국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기믹의 이의민, 냉철함과 냉혈함이 두드러지는 간웅 최충헌 등 5명의 주인공 모두 각자의 특색을 선보였다. 또한 이 인물들의 집권기마다 거의 동등한 회차를 부여하여 균형감 있는 조명에도 성공했다. 주인공들을 매력적인 영웅으로 묘사하면서도 점점 권력에 물들어 타락해가는 부정적인 모습도 잘 묘사했다. 제작진은 이중 경대승만큼은 꽤나 긍정적으로 묘사하긴 했으나, 동시에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 도방 운영 문제, 부하 관리 실패 등 단점도 묻히지 않을 정도로 묘사하는 것으로 경대승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었던 이유도 서술하여 어느정도 균형을 맞추었다. 이 5명의 주인공 뿐만 아니라, 주인공들 못지 않게 드라마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조연들 중에서도 흥미롭고 재밌는 캐릭터들이 많았다. 의종, 명종, 이고, 채원, 정균, 공예태후, 두경승, 문극겸, 조원정, 이광정, 무비, 허승 등이 그러하다.

본작에서 고려 임금들 중 가장 오래 출연한 명종의 경우 이의방이나 정중부, 이의민 등과 같은 권력자들에게는 꼼짝 못하지만, 경대승에게만은 예외로 계속 핍박하고 몰아내려는 성질 나쁜 심술쟁이 왕으로 나오며, 그야말로 김병세의 찌질연기의 극한을 볼 수 있다. 이는 공예태후같은 황실 인물들이 필요 이상으로 경대승을 옹호하거나 경대승을 긍정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8] 그러나 본작에서도 사실 명종 입장에서는 경대승을 경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실제 역사 및 본작의 경대승은 무신정변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復古之志(복고지지)'를 내세웠지만, 무신정변으로 옹립된 명종의 입장에서 그 이전으로 되돌아가자는 말은 역모를 꾸미겠다고 광고하는 꼴이나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9] 이의민도 경대승에게 경인년 거병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이 반역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냐고 비꼬았고, 이로 인해 무신정변을 부정하는 행위는 신망을 잃는다.[10]

작중 명종이 찌질한 소인배인지라 경대승을 유독 핍박한 걸 감안해도 경대승이 대놓고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한 건 맞는데, 작중 도방 군사들이 멋대로 부자들의 재물을 약탈하여 백성들에게 나눠주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적이 있었지만, 경대승은 이를 처벌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옹호하며, 나중엔 본인이 이를 직접 이끌며 사찰들과 벼슬아치들의 재물들을 뺏어다 백성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한다. 이러한 재물들은 높으신 분들이 백성들을 쥐어짜 모은 것들이기도 하며, 뺏은 걸 좋은 데에 쓰기는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행동이 다 사적제재에 황실과 조정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경대승 자신은 황실에 충성하지만, 정작 하는 행동이 살인만 안 할 뿐이지 과정은 이의방과 비슷하다고 명종이 여길 수 있는 것이다.[11] 드라마 자체가 경대승을 띄워주긴 했지만, 자세히 보면 은근히 임금의 입장을 내세우며 경대승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묘사하고 있는데,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만 추구한 결과로 경대승은 모든 신망을 잃고, 오로지 무력으로 억압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12][13] 이렇듯이 본작의 장점은 주인공들과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인물들도 일부를 제외하면 단순히 1차원적인 악인으로 묘사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3. 비판[편집]


명작이라는 평이 많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작품의 박력이 떨어진다. 어찌보면 당연한 게 사실 마지막의 최충헌 집권기는 주요 배역의 퇴장 등으로 그 특성상 앞서의 집권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인물들의 매력과 주목도가 떨어진다.[14] 직전엔 정적들의 경쟁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는데, 여긴 이제 정적들을 다 제거하고 본격 장기 집권의 길을 닦은 판국이니 긴장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쉽게 얘길 하자면, 전작들인 <태조 왕건>이 전투적인 장면들로 인해 시청률이 고공행진이었다가 그 다음 작품인 <제국의 아침>이 정치적인 내용만 다룬 까닭에 낮은 시청률을 보인 것, 같은 시기 SBS <야인시대> 역시 결투씬이 많았던 1부와 달리 정치적 장면들이 많은 2부의 시청률이 떨어진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동시기 KBS 2TV에서 방영된 드라마들이 시청률 저조로 폭망하고, 타 프로그램의 광고 판매율도 떨어지면서 광고 수입이 급감해 KBS가 긴축재정에 들어간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최충헌의 사후까지는 중후한 이야기를 끌어내긴 했지만, 무신정권의 마지막까지 하려던 거에 비해서는 다소 짧은 느낌이 든다.

다시 말해 이러한 부분은 드라마의 자체적인 문제보다도 실제 역사가 그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초반부터 큰 비중을 자랑했던 이의방이나 이고, 정중부[15] 같은 인물들이 여기까지 살아남았더라면 최씨 무신정권이 4대에 걸쳐 이어지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최충헌 시기부터 정국이 어느 정도 안정된 상황이다. 이 때문인지 최충수가 죽고 최충헌이 권력을 독점한 후반부부터는 극의 흐름이 매우 빨라진다. 드라마도 최충헌에서 끝이 나는데, 최우 집권기부터는 드라마 소재로 매력적이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몽고침입을 다루었다면 모를까, 제작비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었다. 이의방 집권기부터 최충헌 집권기까지 한 덩어리이고, 최우 집권기부터 김준 집권기까지가 한 덩어리라고 봐야한다. 물론 드라마 소재로써의 가치는 전자가 후자보다 압도적이다. 실제로 MBC에서 최충헌 말년 시기부터 다룬 <무신>이라는 드라마를 따로 만들었는데 무인시대에 비하여 망한 편이며 역사 왜곡을 하여 비난을 받았다.

총 편수는 원래 예정인 150회보다 8회 긴 158회로 막을 내렸는데, 이는 후속작인 <불멸의 이순신>이 주연 김명민의 촬영 스케줄 지연 등으로 캐스팅 문제가 일어나자 2번이나 연장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상기된 후반부 호흡이 지나치게 길어졌단 비판도 있다.[16] 게다가 1995년 가을 개편 이후로 대하드라마가 9시 뉴스 직후에 방송했었는데, 당시 주 5일제 시행으로 개편작업에 들어가면서 주말 KBS 뉴스 9를 45분에서 30분으로 축소하고 공익성 강화 명목으로 통상적으로 대하사극 뒤에 방영한 시사 프로그램들을 대하사극 전에 편성하는 식으로 개편했다. 이 때문에 2003년 6월 28일부터 시간대도 상당히 늦춰졌고(9:45 → 10:10) 시청률도 타격을 받았는데, 급기야 후반기 동일 시간에는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흥행 대박을 기록하면서 경쟁작이었던 무인시대는 최종회 시청률이 13.6%대에 머물게 된다.[17] 또한 사극 소재로 여러 번 중복 사용된 조선 시대와 달리 사료가 부족하고 생소한 고려시대라는 점[18] 등이 시청률 하락의 원인으로 분석되며, 어쨌든 간에 당초엔 고려 무신정권 중 최씨 정권의 최의 집권까지 다룰 계획도 있었다고 하나 결국 최충헌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연속된 고려사 기획의 흥행 실패로 KBS도 이후 고려사 계획을 완전히 폐기하게 된다.[19]

일단 158회나 되는 장편이므로, 이의방과 무비의 불륜, 임씨와 정균, 이의방의 삼각관계, 경대승과 머루/수안궁주의 비극적인 사랑, 이의민의 장남 이지순의 출생의 비밀, 콩가루 집안 이의민 가문 등, 픽션이 가미된 각종 자극적인 서브 스토리들이 등장한다. 무비의 경우 이의방이 애첩을 취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각색한 것이지만 그 외에 대부분의 서브 스토리들은 자칫하면 막장 드라마로 전락할 여지가 있는 소재인데, 제작진이 이러한 서브 스토리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거나 주요 전개를 이어주는 역할로만 쓴 덕분에 스토리가 극단적으로 늘어지거나 하는 일 없이 정통사극의 틀을 유지하며 일관적인 주제 묘사를 할 수 있었다. 다만 부족한 고려사의 기록을 토대로 제작하다보니 불가피하게 생긴 한계로도 볼 수 있다.

무쌍 묘사에 치중하다 보니, 병사들이 네임드 캐릭터를 상대로 화살을 쏘거나 그물을 던진다는 대응 없이 무작정 근접전을 벌이다가 썰리거나, 캐릭터가 할 말 다하고 죽을 때까지 주변 병사들은 가만히 있는 등의 다소 황당한 묘사도 등장한다. 단 이건 모든 사극이나 전투신이 등장하는 영화 및 드라마의 특징이다. 무예를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가 그저 화살맞고 죽는다면 멋이 없을 것이며, 현실성을 생각해 처음부터 그냥 화살로 쏴버리고 죽인다면 당연히 병사들이야 덜 잃겠지만 정말 멋대가리 없이 장수의 비장미가 살아날 수 없기에 대부분 무장들은 멋있게 죽을 수 있도록 화살은 가능한 죽기 전까지는 꺼내지 않는 게 불문율인 것이다. 실제로 이런 상황은 최충헌이 이의민을 잡을때 노석숭이 "병사들이 다칠 수 있으니 궁수를 부르자"고 말하는 장면도 있지만 최충헌이 거절한다.[20]

그 외에 작중 한 쪽에서 '이러이러하다'라고 말하면, 말을 들은 다른 한 쪽이 '이러이러하다고?"라고 반문하는 식으로 대사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대사가 필요 이상으로 길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이는 고전 KBS 대하드라마의 장편 작품 대부분의 단점이기도 하다. 또한 멸문지화시킬 것이다라는 비문도 많이 나오는 편인데, 이 경우에는 '멸문시킨다'라 하는 것이 옳다.


4. 고증[편집]



4.1. 의복 관련[편집]


여러 방면에서 KBS 대하드라마의 작품 중 가장 고려시대의 복식을 잘 재현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려 임금의 즉위식 장면에서는 대부분 이 드라마의 황제국 세계관에 맞게 검은 의복을 입고 12줄짜리 면류관을 착용하였다. 명종 즉위식의 경우 명종이 9줄짜리 면류관을 쓰고 즉위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9줄은 왕의 격식이고 12줄이 황제의 격식이라서 잘못된 재현으로 볼 수 있다. 그 외에 희종이 태자 책봉을 하는 장면에서는 면류관 한 줄을 제거한 흔적이 보이는데, 이는 태자(세자)가 쓰는 면류관은 8줄짜리라 기존 9줄짜리 왕이 쓰는 면류관에서 한 줄을 제거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극중 고려 임금들은 고려사에 적혀있는대로 황색 용포인 자황포를 평상시의 업무복으로 입고, 팔관회나 연등회 등의 행사 때에는 주황색 용포인 치황의를 입는다. 다만 고려 말기 및 조선시대 왕들마냥 익선관을 쓴 것은 오류인데, 차라리 전작 제국의 아침에서 광종이 쓰고 나온 절상건을 재활용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임금의 즉위식 때 왕 뿐만 아니라 주요 신하들도 면류관을 쓰고 곤복을 입고 있어서 오류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도 사실을 충실하게 반영한 결과물이다. 의종 때 제정한 백관의 복식은 제복·조복·공복·상복으로 구분되는데, 제복의 경우에는 백관의 관품에 따라 칠류면 칠장복·오류면 오장복·삼류면 삼장복·삼류면 일장복·평면 무장복으로 했기 때문이다. 옥구슬을 꿰어 관의 앞뒤로 드리우는 유(旒)의 개수와 옷에 넣는 무늬인 장(章)의 개수로 신분의 고하를 나타낸 것으로, 자세히 보면 신하들이 쓴 면류관의 유의 개수가 7개나 5개로 조금씩 다르다.[21]

고려 임금 및 신하들 외에 여성들의 복식 역시 매우 잘 구현되었다고 호평을 받았는데, 송나라 관복제도와 고려 특유의 화려한 황금 장식을 기반으로 주름 장식, 반비, 왼쪽 및 오른쪽 여밈, 저고리를 치마 안쪽으로 넣는 방식과 바깥쪽으로 빼는 방식 등 다채로운 고려시대의 여성 복식을 풍부하게 표현하였다. 또한 상궁의 머리 장식은 문희귀환도(1200년대 초반)의 여인의 머리 장식과 매우 흡사하며, 기녀의 수발양식도 고려도경(1123)에 묘사된 기녀의 머리형태인 추마계를 잘 재현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평왕후와 무비 등 왕실의 여인들도 화려한 장식과 고계의 수발양식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2. 무기 및 전투 관련[편집]


각각의 무인 장수 캐릭터들이 전투마다 사용하며 다루는 갖가지 병장기들도 웬만한 사극들처럼 검만 쓰는 것이 아니라 철퇴, 언월도, 대도, 쌍칼, 도끼 등의 마치 옛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여러 RPG 게임들 처럼 상당히 각양각색으로 다양해서 이렇게 개성있는 무기들로 인해 전근대 밀덕들에게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22] 대표적으로 이고쌍검[23], 이의방철퇴, 정중부장검[24], 두경승, 채원조원정이춘부대도, 송유인의 맥도(陌刀)[25], 홍두의 , 경대승이영진언월도, 김광립방천화극, 이의민도끼, 박존위비도, 부루양인도, 오척과 준존심의 도리깨형 철퇴 등이 있다. 그 외에 최충헌허승은 그냥 검을 쓰긴 하지만, 대신 허승은 발도술을, 최충헌은 검을 거꾸로 쥐는 독특한 검법을 사용한다.

본작의 전투 장면 자체는 태조 왕건이 묘사한 삼국지연의풍 전투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즉, 장수 캐릭터가 다수의 엑스트라를 상대로 무쌍을 찍는 경우가 많은데, 무인시대는 소규모 전투씬 또는 일대 다수의 싸움씬이 많기 때문에 그런 묘사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무인시대는 캐릭터마다 각자 독특한 무기와 전투 스타일을 부여하였기 때문에, 단순히 무쌍을 찍는 장면에서도 캐릭터의 특색이 드러나곤 하며, 엑스트라 병사들이 스턴트 액션을 보이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삼국지연의풍 무쌍 묘사를 영상으로 보고 싶다면, 연의를 대놓고 표방한 태조 왕건보다는 오히려 무인시대가 더 적합한 면이 있다. 그 외에 당대의 사극들과는 달리, 작중 매복기습이 효과적일지언정 쓰기만 한다면 절대적인 열세를 뒤집을 수준의 만능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고를 잡을 때에 이의민과 두경승이 적의 기습을 끌어들이는 역함정으로 이고의 군대를 전멸시킨 사례가 있었고, 만적의 난에서는 노비들이 안개가 자욱한 지형을 이용하여 진압군을 상대로 의외로 선전했으나, 결국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하였다.


4.3. 호칭 및 용어 관련[편집]


왕족에 대한 경칭으로 쓰이는 마마는 사실상 조선 중기 이후의 궁중 왕족 호칭이라는 사실을 감안해서인지 태후(선왕의 정실), 태비(선왕의 측실), 태자비를 마마라고 칭하지 않고 태후 폐하, 태비 전하, 태자비 전하라고 칭했다.

고려의 군주가 황제의 칭호를 쓰고 있는데, 공식적으로 쓰인 호칭은 '성상폐하(聖上陛下)'이기에 자칫 오류로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 『동국이상국집』을 비롯한 여러 문집에 '황상(皇上)'이라는 표현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무엇보다 현종의 차남인 고려 10대 정종을 가리켜 '황제폐하'라고 표기한 당대 금석문이 1차 사료로써 명확하게 존재하므로 본작에서 황제, 황상 등의 칭호를 혼용하는 것 자체는 오류가 아니다.

황제를 대놓고 자칭하지는 않았더라도 고려에서 황제국의 법도를 따라한 것이 매우 많았던 것은 확실하다. 원나라에게 점령되면서 기존에 쓰던 황제국의 호칭, 작위, 관청, 직책들의 명칭을 제후국의 것으로 격하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공민왕때 탈원 정책을 펼치면서 다시 황제국의 호칭들로 격상시켰다가 명나라 산하로 들어가면서 다시 격하하는등 여말선초에는 호칭과 직책에 상당한 혼란상이 펼쳐지는 것도 이런 이유. 조선 초기에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편찬할 때에도 '고려시대에 황실과 조정에서 황제국의 그것에 해당하는 명칭을 여러가지 쓴 것들을 제후국의 예법대로 격하해 기록할지, 고려가 썼던 그대로 기록할지'에 대해 꽤 치열한 논의를 치뤘으며 결국 고려가 썼던대로 존중해서 기록해주기로 결정했다.

고려시대에는 제2대 왕 혜종의 이름인 '무(武)' 자를 피휘하느라 쓰는 게 금지돼서 전부 '호(虎)'로 바꾸었었다. 따라서 엄격하게 사실을 반영하자면, 극중에서 '무장', '무신', '무인', '무력' 등의 표현은 전부 '호장' '호신' '호인' '호력' 등으로 했어야 한다.[26] 하지만 이렇게 너무 엄격하게 피휘까지 따랐을 경우 이러한 사소한 디테일도 중시하는 소수가 현실 반영이 아주 잘 됐다며 환호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 시청자들이 알아 듣기 힘들고 방송 중 이해를 돕기 위해 매번 자막이나 나레이션 등으로 설명하느라 극의 진행이 산만해졌을 위험이 크다. 따라서 '무' 자의 피휘를 무시한 것은 사정상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극중 무인들이 스스로의 집안을 가리킬 때에 이의방은 '전주 가문', 정중부는 '해주 가문', 경대은도 '청주 가문', 최충헌도 '우봉 가문'이라고 자신의 집안을 지칭하는데, 이들처럼 조상 때부터 이미 관직에 출사한 무인들[27]의 경우 크게 어색하지 않으나 문제는 정중부가 자신의 가문을 '해주 가문'이라 자칭하는 것이다. 정중부는 본래 평민 출신으로서 군역을 수행하기 위해 개경으로 반강제적으로 징발되어 보내진 것으로 보이며, 그 뒤에 인종에게 주목을 받아 출세를 한 경우이기 때문에, 가문을 운운할 여지가 없었다. 물론 평민이라도 가문 자체를 중시했다면 못할 말도 아니며, 본작에서도 정중부가 '자기 대에서 일으킨 가문'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평민이 자기 대에서 정3품 상장군까지 올라갔다면 나름 출세해서 가문을 세웠다고 할 순 있지만, 작중에서 해주 가문이 꽤나 큰 세력인 것처럼 묘사되는 게 다소 어색한 부분이다. 물론 정중부가 집권할 당시 해주 가문에 줄을 댄 자들을 생각하면 작은 세력이라고도 볼 수는 없지만 대부분 정중부의 국문 때 배신했다.


4.4. 기타 사소한 오류[편집]


본작 초반부에 의도적인 오류보다는 촬영 스케줄 때문에 불가피한 부분이지만 초반부인 보현원 사태는 실제로는 음력 8월로 가을철이었으나 드라마에서는 한겨울로 나온다. 실제로 드라마의 맨 첫번째 장면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문신들은 의종과 희희낙락하는 반면 무신들은 그를 호위하며 힘겹게 행군하는 것이다. 다만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겨울의 삭막한 풍경이 당시 무신들이 혹대받으며 고생했다는 내용을 부각시키기에는 더 어울리는 배경이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라면 본작에서 무인들이 거의 항상 갑옷을 입고 다니며 무장을 한 상태로 다닌다는 점이다. 평소 업무가 황실을 호위하는 것인 견룡군 하급 장교들이야 항상 입고 다녀도 자연스럽지만, 상급장교들은 출정을 나갈때가 아니라 평상시 사무 업무를 치를 때에는 편한 관복을 입고 다니는 게 당연한데도 굳이 이렇게 묘사했다. 무장임을 강조하기 위한 연출의 일환이었겠지만, 현대로 치면 육군본부나 합참에서 근무하는 장군들이 평소에도 방탄복을 포함한 완전 군장을 매번 완비하고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격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다분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 외에 몇몇 관료들의 나이나 실제 낙향 시기가 일치하지 않거나 부정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사건을 실제보다 극대화시키는 등의 몇몇 오류가 있다. 또한 시청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언급들도 어느 정도 있다. 극 후반부에 양수척들을 소개할 때 왕건에게 끝내 항복하지 않았던 후백제 출신들이라고 언급하였는데, 한때 이러한 설이 있기는 했었으나 사료에서 확인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여진이나 거란 등 북방 출신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진족 신라인설도 극 중 언급되었으나, 이의민 파트 후반에 두두을과 부용의 말로 잠깐 언급되고 마는 수준이었다. 그 외에 드라마 후반부에 최충헌이 낭장이었는데 별장으로 바뀌는데, 이건 승진이 아니라 강등이다. 별장은 오늘날의 소령급이고, 낭장은 중령급이며, 중랑장이 대령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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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소품 오류들도 은근히 있는데, 원래 이런 소품 부분은 한국 사극에서 당시 시대상에 맞추어 잘 반영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대표적으로 29회에서 당시에 등장하기 한참 전이었음에도 배경에 한글이 나오기도 했다. 촬영 장소인 민속촌에 원래 걸려있다보니 생긴 옥에 티이다. 또한 벽상공신의 화상이 걸려있는 방에 극중 시점보다 후대 인물인 안향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이 초상화들도 절대 당대의 화풍이라고 보기 힘들고 지나치게 현대적인 화풍이라 역덕후들의 웃음을 자아내었다.[28]


5. 캐스팅[편집]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집합하여 절륜한 연기를 선보였다. 우선 주요 집권자들을 보면, 이의방 역에는 서인석, 정중부 역에는 김흥기[29], 경대승 역에는 박용우, 이의민 역에는 이덕화[30], 최충헌 역은 김갑수[31]가 맡았다. 그리고 이런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으로 한편의 연기력 마당을 보여준다.

주인공 격인 5명의 인물들의 캐스팅도 후덜덜하지만, 조연들도 그에 못지 않았다. 등장인물 문서에도 나오지만,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왕들을 보면, 의종김규철, 명종김병세가 맡았으며, 특히 정태우는 이 사극에서도 젊은 나이에 무신들(정확히는 최충헌)에 의해 폐위되는 왕 희종을 맡아 죽지는 않았지만, 짧은 재위 기간을 거쳐 폐위된다.[32]

그 외에도 극 중 설정상 이의방의 동료들[33]이었던 이고 역에 박준규[34]채원 역에 김명국, 강직한 성품으로 존경받았던 무신인 두경승 역에 중견파 배우인 임혁, 정중부의 아들 정균 역에 이민우[35], 정중부의 사위 송유인 역에는 김진태, 조원정 역에 김주영, 경대승의 아버지 경진 역에 김성겸, 경대승의 족형 손석 역에 이계인, 이의민의 멘토 두두을 역에 전무송, 이의민의 의형제 부루 역에 임꺽정으로 유명한 정흥채[36], 최충헌의 동생 최충수 역에 전전 작품이던 태조 왕건에서 신숭겸으로 활약해 유명한 김형일, 최충헌의 사돈 정숙첨 역에 이대로, 최충헌의 가솔 만적 역에 윤승원과 만적의 난 지도부 미조이 역에 정두홍, 최충헌의 심복 노석숭 역에는 선동혁, 최충헌 시대에 등장하는 이규보[37]차광수 등 하나 같이 화려한 배우진들로 이루어졌다.

여성 출연진들은 다소 적지만, 남성 출연진 못지 않게 나름 중량감 있는 배우들이 맡았다. 의종, 명종, 신종의 모후인 공예태후 역에 김윤경[38], 공예태후와 함께 황실의 어른인 선평왕후 역에는 김보미[39], 이의방의 처 조씨 역에 이미지[40], 이의방의 딸이자 강종의 첫 부인 사평왕후 역에 박은빈, 의종의 후궁이자 이의방의 애인이었던 무비 역에는 김성령, 공예태후의 여동생 임씨 역에는 유혜정, 이의민의 부인 최씨장희빈 배역들 중에서 역대급 캐스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정선경, 최충헌의 내연녀 홍련화 역에 추상미, 자운선 역에 류현경, 이의민의 애첩 부용 역에 임채원 등이 맡았다.

이처럼 주연과 조연 할 것 없이 캐스팅에 있어서 두터운 연기파 배우들로 채워진 것이 인상적인 사극이었고 그 외 단역들 중에서도 이후 다른 사극이나 드라마에서 주요 배역으로 나온 배우들이 꽤 있는지라, 드라마 속 숨겨진 배우들 찾아보는 재미도 주고 있다.

이들 외에도 다소 의외의 캐스팅들도 많았는데, 부용과 함께 이의민의 애첩이던 아란 역에 함소원[41]이 맡았으며, 최충헌의 어린 시절을 맡았던 류덕환,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하정우도 신인 시절(당시에는 본명 김성훈으로 활동)에 이 드라마에서 이의민의 불학무식한 막내아들 이지광[42]을 맡았다.(아래 이미지에서 왼쪽 인물.) 개망나니 둘째 형을 보좌하는 망나니 정도의 역할로 형제들 중에선 비중이 큰 역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형과 함께 절륜한 3류 양아치 액션을 선보이며 경대승 파트 말미에서부터 이의민 파트의 최종까지 등장했다. 이후, 영화 배우로 대성한 하정우를 보면 어떤 의미로는 무인시대 출연진 중 가장 출세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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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석이덕화의 작품 인연을 따져보면 꽤 흥미로운데, 우선, 이전 사극들 중 하나였던 <한명회>에서 처음 만났는데, 당시 이덕화가 한명회를 맡았고, 서인석이 수양대군을 맡았다. 그러다가 무인시대 2년여 후 작품인 <제5공화국>에선 서인석이 노태우, 이덕화가 전두환을 연기하는데, 이렇게 보면 이들 두 사람이 세 드라마에서 맡은 인물들이 각각 400년이라는 시간 차이[43]를 두고 역사에 기록된 쿠데타의 주역들이고, 모두 최고 권력자의 지위까지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히 쿠데타 전문 배우라고 해도 좋을 판.[44] 다만, 작중 서열 구도가 서로 바뀌어 <한명회>나 <무인시대>에서는 서인석보다 이덕화의 지위가 낮았지만, <제5공화국>에서는 이덕화보다 서인석의 지위가 낮아서 묘한 대조를 이뤘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교로운 점은 <제4공화국>에서 전두환 역을 했던 박용식도 이 드라마에서 기탁성 역할로 출연했다는 것이다.대머리 때문에 상투를 튼 모습이 꼭 일본 부장 같다는 점이 함정

한편, 이덕화는 임혁과도 사극에서 인연이 깊은 배역들을 이어가는데, 무인시대에서는 무신정변에 가담하고 의종을 시해하고 무인집권자로 군림하는 이의민 역의 이덕화, 원칙을 지켜 정변과 전횡에 반대하는 두경승 역의 임혁이 정치적인 사건에서는 대립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였으며, 이는 <대조영>에서 이덕화의 설인귀, 임혁의 대중상 관계에서도 비슷하게 이어진다. 다만, 더 뒤에 나온 <천추태후>에서는 임혁이 연기한 서희가 이덕화가 연기한 강감찬의 멘토 격인 관계가 되어 대립없이 온전한 동반 관계로 출연한다. 오만석박용우가 맡은 경대승의 수하로 등장하는데, 다만, 이후 두 배우의 관계를 생각하면 묘하다.

최하나는 경대승 편에서 수안궁주와 경대승의 첫사랑 머루의 1인 2역을 소화하기도 했다. 정략적 이용 의도가 전혀 없는 진짜 로맨스는 이게 거의 유일하다.[45] 허나 무인시대답게 결말은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경대승은 이미 죽은 머루를, 수안궁주는 경대승을 연모했으니 당연히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무신 집권자 중 경대승만 죽을 때까지 솔로로 등장하였다. 고은미는 명종의 후궁 순주로도 출연하였는데, 당시에는 스스로 연기력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사극톤이나 연기가 스스로도 맘에 들지 않고 이상해서 여러 번 다시 하자고 조르기도 했다고 한다.

주요 무신 집권자가 5명이라는 점에서 '사극전대'라고 불리기도 하며, 과거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 전작인 <제국의 아침>에서 왕식렴을 연기했던 '김흥기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김흥기는 무인시대 경대승 편의 최종 국면인 경대승의 꿈 속에서 호통하는 장면이 마지막 TV 출연이었고, 그 직후 연극 에쿠우스를 진행하는 도중 쓰러져 2009년 5년의 투병 끝에 영면하였다. 한편, 박용우김갑수에게는 긴 무명시절을 벗고 본격적으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반환점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큰 작품. 박용우는 해당 문서에도 나오지만, 다소 힘든 시절에다 미스 캐스팅 논란도 있었지만, 이 드라마로 기사회생해서 그 해 KBS 연기대상에서 우수연기상[46]을 받았으며, 김갑수의 경우, <태조 왕건>에서 궁예의 모사 종간 역을 맡은 것이 출세작으로 평가되긴 하지만, 종간은 어디까지나 주연이 아닌 조연 비중이었고, 그보다 더 강렬한 궁예 역 김영철의 임팩트에 묻힌 감도 있었기에, 주연으로서 존재감을 내비친건 이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 무사와 자객들이 등장해 열연한 사극으로도 유명하다. 참고로 여자 무사들의 이름은 다 "랑"[47]으로 끝난다. 특히 이의방 집권기에 등장하는 무비(김성령 분)의 호위 무사인 '오랑'과 경대승 집권기에 등장하는 도방의 '소랑'이라는 여성이 상당히 비중있게 나왔으며, 그 외에도 초반에 이고를 제거하려다 실패한 '철랑'이라는 여성 자객도 등장했다. 문제는 이 이후 지금까지도 양산형 사극들이 밑도 끝도 없이 여성 자객, 혹은 여성 호위 무관 등으로 등장시키는 병폐를 낳기도 했다.[48]. 사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여성 캐릭터들을 활용할 방안 자체가 마땅치도 않는게 현실이긴 하다. 황실 인사로 채우거나 이의민, 최충헌 파트의 홍련화(추상미 분), 자운선(류현경 분)[49]처럼 기생 역으로 출연하는 게 다수였다.


6. 총평[편집]


비록 방영 당시에는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하였으나 나중에 재평가되며 제국의 아침 이후 인기가 떨어졌던 KBS 대하드라마를 이어가는 데에 성공한 명작이다. 여러 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극 중 무인들을 실감나게 묘사하였으며, '절대권력은 부패한다'는 타락과 관련된 주제의식을 다룬 덕분에 주로 영웅담을 주제로 삼은 여타 KBS 대하드라마의 작품들과 차별화된다. 사소한 재현 오류도 크게 거슬리는 범주에 들어가지 않고, 역사의식의 경우 민족주의적 재야사학 측의 시각도 가끔 묻어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외부로의 팽창 전쟁을 주장하는 인물들이 극도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등 대한민국민족주의 광풍이 몰아치던 2000년대 초반에 제작된 드라마 치고는 매우 현실주의적인 외교관을 드러내는 편이며, 비슷한 시기 제작된 다른 사극 드라마들에 비해 일견 냉소적으로 보일 정도로 본작은 극중 인물들에 대한 미화나 왜곡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이러한 여러 장점들로 인해 무인시대는 2020년대에도 작품성이 뛰어난 대하사극으로 인정받는다.

[1] 사실 초반부에는 이런 리얼한 참살 묘사로 잔혹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 사극 중에 이렇게 칼부림이 많고 사람 목이 휙휙 날아가는 사극도 드물긴 하다. 그나마도 2회에서는 왕광취의 수급은 천으로 감싸서 얼굴을 가린 식으로 연출하였고, 5회에서는 김돈중의 효수 장면에서 모자이크 처리하는 등 어느 정도 검열은 되어 있었다. 후반부에는 최충헌이 이의민의 수급을 들 때는 상투만 보이게 했고, 박진재가 두두을의 수급을 들고 나타날 때에는 두두을의 뒷모습으로 보이게 거꾸로 드는 식으로 연출하였다.[2] 드라마 무인시대의 홈페이지에서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고 나와 있다.[3] 단, 태조 왕건의 경우엔 궁예를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후자에 가까울 수 있다.[4] 겉으로는 충성을 맹세하나 실상은 국정을 농단하고 황실의 권위를 이용해먹는 무신들에 대한 불신.[5] 심지어 정중부의 아들 정균조차 뇌물 먹고 관직 팔면서 한다는 말이, 뇌물 주는 자들한텐 허울좋은 관직이나 주고, 그걸로 번 돈은 능력있는 (자기) 사람들을 뽑는데 써서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다른 장수들 또한 능력이 있는 자들을 뽑는 것을 우선시하고 차별 받던 천출 출신 무인들의 대한 권리 상승을 주장하는 이들도 많았다.[6] 유일하게 대의명분을 말하지않은 두경승만이 타락하지 않았지만 타락과는 별개로 그 역시 말로가 좋지 못하였다.[7] 그나마도 나중가서는 경대승의 심복 김자격이 경대승 몰래 그를 왕위에 올리는 역성혁명을 꿈꾸게 되면서, 약탈 자금이 곤궁한 백성들에게 돌아가는 대신 역성혁명에 쓸 재물로 착복되기까지 했다.[8] 물론 경대승이 전후 무인집권자들 중 유일하게 명분만으로 임금에게 충성하고, 『고려사』 열전에서 다수의 무인 집권자들이 '반역'편에 서술되는 반면, 경대승만은 열전에 실렸다.[9] 즉, 무신에 의해 옹립된 왕이라는 정통성의 큰 하자가 명종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물론 작중 경대승은 현 황실의 정통성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고 강변하긴 했지만 이미 큰 하자가 있는 왕의 입장에서는 믿음이 갈 리가 없었다. 황태비조차도 경대승의 발언은 명종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이라는 명종의 말이 옳다고 할 정도였으며, 명종이 이를 대놓고 경대승에게 지적한다.[10] 실제로 경대승 집권기 시절 만약 의종이 이의민에게 시해당하지 않았더라면 의종이 복위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명종에게 경대승은 이래저래 불편한 존재였고, 극 중에서도 이를 충실히 재현했는데, 경대승 사후 도방 장사들을 잡아들여 고문할 때 환관을 보내 고문 강도가 센지 약한지를 감시하기도 했다.[11] 그 외에 비록 황실의 분란을 두려워한 조정 및 중방의 부탁이었지만, 명종을 불러내 태자와 억지로 화해시킨 것인데, 작중 명종은 이 화해는 오로지 경 장군이 나에게 부탁했기 때문에 들어주는 거라고 말하며, 경대승을 불신하는 투를 대놓고 낸다.[12] 실제로 본작에서도 경대승 정권의 후반기에 이르면 이미 조정에서도 문극겸만 믿어줄 뿐, 염신약 같이 경대승에 우호적인 이들마저도 돌아서버렸다. 경대승을 신뢰하던 태자조차도 경대승을 가증스러운 위선자라고 여기면서 혐오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 지경이 됐다.[13] 정중부의 꿈을 꾼 직후 경대승이 오열하며 "나는 무인일 뿐이야."라고 하는 것 역시 이런 의미가 있다. 무인일 뿐이기에, 결국 이상을 품더라도 그것을 이뤄낼 방법을 몰랐기에 모든 것이 망가진 것을 의미한다. 경대승 사후 잠깐 권력을 쥔 조원정은 이를 두고 황제에게 충성한 경대승의 말로가 어땠냐며 현 황제는 겁박해야 들어먹는다는 식으로 비웃기도 했다.[14] 이의민과 두경승 등 드라마 초반부터 이야기를 이끌어 온 주조연들이 차례로 몰락하면서 최충헌의 숙적이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 이의민 집권기가 끝나며 모두 퇴장했으며, 아우이자 정적이라 할 만 했던 최충수는 세력의 규모 자체는 컸으나 본인과 부하들의 성미가 급하고 단순한 탓에 제대로 된 일전도 못 벌이고 허망하게 쓰러졌다. 반대로 최충헌의 라이벌이라고 할 만한 인물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희종 같은 경우 나름대로 치밀한 신경전을 벌이기는 했지만 세력의 규모 자체가 비할 바는 못됐다.[15] 다만 정중부는 이미 보현원에서부터 60세를 넘긴 노인이어서 최충헌 시기까지 살아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16] 제작비 부족도 눈에 띄게 드러나는데, 후반부 거란의 침입을 다루는 파트를 보면 나름 큰 전쟁이었는데도 전투씬은 없다시피하고 등장인물들의 탁상공론과 내레이션으로 분량 대부분을 떼운다. 거란군과 대치하는 부분에서는 초중반에 비해 엑스트라 수가 엄청나게 줄어든 것이 확연하게 보인다.[17] 지금 보면 결코 낮은 시청률은 아니지만, 케이블이 막 생겨나고 종편도 없던 당시 지상파 3사(KBS, MBC, SBS) 시대 시청률 기준에선 결코 높다고 볼 수도 없는 수치였다.[18] 물론 진부하지 않은 신선함을 오히려 흥미 요소로 끌어낼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했던 점은 연출진들의 능력 부족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19] 이후 2009년에 다시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천추태후>가 나오긴 했지만, 드라마 문서나 상술하다시피 작품성이 호평받지는 못했다.[20] 여러 사극에서도 위의 이유로 그냥 두는데 "무인으로써의 예우를 지켜준다" 등의 이유로 체력이 다 떨어질때까지 그냥 무쌍을 찍도록 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21] 참고로 의복과는 별개로 이상하게도 왕광취를 비롯해 극에 등장하는 모든 환관들에게 수염이 붙어있다. 아마도 제작진이 고려시대 내시에 대해 착각한 듯한데, 1회에서도 상장군 정중부가 내시부 소속인 기거주, 즉 문관인 한뢰를 '개도 안 물어가는 환관놈'이라고 부르는 잘못 재현된 장면이 있다. 내시가 환관과 동의어처럼 불리게 된 것은 내시부 관직을 거의 모두 환관으로 채운 조선시대의 영향이고, 고려시대 때는 전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내시는 '안에서 모신다'는 뜻을 지녀서 성불구자 여부와는 상관이 없는 용어라 고려시대에는 문관들이 주로 맡았고, 환관은 단어 자체가 '성불구자인 관리'라는 뜻의 단어다.[22] 덕분에 검이나 창 같은 천편일률적인 무기를 사용하던 웬만한 사극들에 비해 캐릭터들의 전용 무기들이 개성적이고 은근히 다채로워서 각자의 여러 무기들로 싸우는 전투장면들이 훨씬 더 흥미롭게 만들며 그런 다양한 병장기 무기템들의 액션을 보는 맛이 재미와 스릴을 더더욱 크게 높여주기도 하였다. 다만 무기들이 대체로 금속제가 아닌, 딱봐도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소품이라는 티가 확 나는 것은 옥의 티인데, 사실 이의민의 거대 도끼와 같이 초월적인 용력을 가진 이들이 사용한다는 무기는 정말 금속으로 만들었다간 배우가 들 수 없을 뿐더러 들었다 쳐도 그걸 잘못 휘두르면 대형 사고가 벌어질 것이 뻔하므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23] 캐스팅부터 야인시대의 쌍칼이었던 박준규니 말 다했다.[24] 다만 실제로 백병전을 벌이거나 결투를 하는 장면은 없다. 극 초반부에 김돈중의 목을 베었거나 집에서 수련을 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사용 장면. 오히려 정중부를 상징하는 아이템은 지휘용 철선으로 지위가 지위인 만큼 직접 나서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부려 목표하는 바를 얻는 노회함이 그의 포인트인데, 지휘관을 상징하는 철선은 그런 캐릭터성과 잘 어울린다.[25] 맥도가 저런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26] 즉, '무장', '무신', '무인', '무력' 등의 표현은 고려 멸망 후 조선 태조 때부터 다시 쓰이게 된 셈이었다.[27] 이의방은 이미 아버지 이용부가 대장군을 지냈고 그 조상도 대대로 전주의 호장이라는 호족들 중에서도 세력이 큰 자들이 대물림하는 벼슬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어색함이 없고, 경대승과 최충헌도 각각 아버지 경진과 최원호가 상장군까지 지낸 가문이라 이런 표현을 써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28] 그래도 이런 사소한 오류와는 별개로 실내 황궁 세트장의 경우 공포와 대들보, 인방재와 화반 등을 재현하여 후대의 사극들에 비하면 매우 신경을 쓴 모습을 볼 수 있다.[29]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출연작이 되었다. 촬영 이후, 연극 <에쿠우스> 공연이 끝나고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 끝에 2009년 사망. 그래서 마지막 회 에필로그에 다른 무인 집권자 및 동료들이 말을 타고 올 때, 유독 정중부 집권기 인물들은 보이지도 않았다.[30] 다만 이덕화는 제5공화국에 캐스팅 되었을 때에 인터뷰를 보면 본인은 이 작품에서 완전한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진 않은 듯 싶은데, 본인은 이의민을 가리켜 주인공 노릇할 때 쯤에 죽어버렸다고 말하였으며, 본작이 생각보다 시청률이 잘 안 나온 것에 대하여 아쉽다는 반응을 보인 적도 있었다. 참고로 본작에서주군과 책사로 연기를 한 이덕화전무송동학농민운동을 주제로 한 사극들에서 최시형을 연기하기도 하였다.[31] 이전에 태조 왕건종간을 연기하였고, 이후 연개소문양제를 연기하였는데, 모두 완전히 다른 인물상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를 선보여 호평받았다.[32] 사실 희종은 환갑이 다 된 때인 1237년에 57세로 사망했기 때문에 요절은 아니다. 더군다나 지금이라면 모를까 당시 57세면 충분히 살 만큼 산 것이다. 그리고 극 중에서도 희종은 폐위되는 것까지만 나왔으니 극 중에서 숨진 건 아니다.[33] 본작에선 아예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처럼 의형제와 다름없게 묘사되었는데, 실제 역사에서도 이 정도로 친밀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당시 태조 왕건 등의 장편 한국 사극에 만연했던 삼국지 패러디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34] 사극에 익숙치 않아 사극에 나오는 어휘, 발성을 잘 몰라 고생했다고 한다. 본인은 미국에서 살다와서 그렇다고 해명했지만 사실 미국에서 산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35] 무인시대를 마치고 군에 입대해 마지막 회 클로징 부분에 다른 세력들의 인물들이 말을 타고 등장하는 것과 다르게 과거 장면만 나왔다. 얄밉고 짜증나면서도 비중이 나름 있는 정균이라는 인물을 아주 잘 연기했다는 평이 많았으며, 심지어 현재도 무인시대 최고의 캐스팅이라는 평이 보인다.[36] 이 캐릭터 등장 초기는 말을 못했다는 설정으로 인해 수화로 연기했고, 음성은 별도로 녹음했다.[37] 동명왕편을 지은 그 이규보.[38] 해당 문서 맨 처음에 나오는 1949년생 여배우로 동명이인의 후배 여배우들과는 달리 2010년대 이후로는 활동이 없는 편이다.[39] 명성황후에서 홍 상궁 역을 맡았다.[40] 전전 작품인 태조 왕건에서는 아자개의 후처인 남원부인을 맡았다. 당시 의붓아들로 증오의 대상인 견훤 역의 서인석과 이번엔 부부 역할을 한 것은 아이러니.[41] 사실 데뷔 직후에 여러 단막극, 드라마 등에서 단역으로 연기를 했던 경험이 있긴 했으나, 사실상의 본업이라 하기에는 약간 애매한 수준이었으며, 당시 가수 활동과 더불어 누드사진집을 내며 반짝 이슈몰이하던 스타 정도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그전에 했던 작품들과 달리 비중이 꽤 큰 역할이었는데, 하필 그녀의 파트너인 이의민 역의 이덕화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경쟁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이의민 부인 최씨 정선경, 부용부인 임채원, 이의민에게 마음을 품고 있던 기생 홍련화의 추상미는 말그대로 연기력이 완벽하게 검증된 전문 연기자들이었던 만큼 당연히 함소원의 애매한 연기력(특히 감정선이 격해지는 장면에서 더더욱 연기력의 부족이 눈에 띈다.)은 더더욱 비교가 되어 까일수 밖에 없었다. 다만, 그와는 달리 발성 부분은 비교적 호평을 받은 편이며, 애초에 큰 기대를 걸만한 연기력이 아니었기에,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네 수준의 평가를 받았다.[42] 쌍도자(雙刀子)라 불리며 그의 형과 함께 패악질을 일삼은 것으로 기록된 인물.[43] 무신정권의 시작인 보현원 참살이 1170년, 계유정난1453년, 12.12 군사반란1979년인 점을 감안하면 얼추 각각 400년, 보현원 참살과 12·12사태 사이를 보면 약 800년 차이가 난다.[44] 여담으로 같은 드라마에 나오는 송용태, 김주영 역시 쿠데타 전무 배우이다.[45] 이의방과 무비는 말할 필요도 없고 정균도 임씨 부인을 종국에는 이의방을 제거하는데 이용했으며, 최충헌은 내연녀 홍련화를 이용해 군자금을 모으고 이의민을 제거했다. 부용과 이의민의 관계도 진심어린 사랑이었지만 애초에 부용이 이의민을 찾아간 것은 그가 계림의 황룡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으며, 두두을과 더불어 이의민에게 황룡의 대업이라는 포부를 심어주기도 했다.[46] 여담으로, 당시 무인시대 출연진들 중에서 유일하게 수상한 인물이기도 하다.[47] 아가씨 낭()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역사상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서도 계랑(이매창), 조선시대 기생출신 여류시인 홍랑 등이 대표적인 일례라 볼 수 있다.[48] 사실, 무인시대에 등장했던 3명의 여성 무사들은 실제 배우 출신이거나, 아예 전문 무술인(철랑 역)이 배정받았기 때문에 걸크러시로서의 매력이 있던 배역이다 보니 혹평 받을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걸크러시 매력에 과도하게 감정들이 이입되어 이후에 등장하는 각종 사극의 여성 무장들은 주로 본업이 배우가 아닌 연기로의 외도를 하려 했던 연예인들(예 : 마야, 김현정(대왕의 꿈))이나 첫 사극 연기에 도전하는 수준의 연기자들(예 : 김정화(광개토대왕), 심은진(대조영))이 주로 맡아 온다는 또 다른 병폐를 낳기도 했다.[49] 참고로 자운선은 실제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기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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