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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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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제20·21대 국회의원으로 지역구는 서울 강북구 을이며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정치 생활의 시작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 몸담았던 PD 계열 진보 성향의 정치인이었다.[3] 그러다 이후 민주통합당에 합류한 후 2016년 20대 총선 때 비로소 원내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즉,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진보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4] 현재 민주당 내부의 세대교체론인 97세대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며, 당내 주류 의견에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반이재명파로 분류된다.
2. 약력[편집]
- 1984. 서울화계국민학교 졸업
- 1987. 신일중학교 졸업
- 1990. 신일고등학교 졸업
- 1997.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학사
- 1998. 국민승리21 대변인실 언론부장
- 1998. 청년실업해결을 위한 운동본부 상황실장
- 2000. 민주노동당 서울 강북구 을 지구당 위원장
- 2001. 민주노동당 전국집행위원
- 2004.7. 민주노동당 대변인
- 2005.11. 민주노동당 대변인
- 2010.10. 진보신당 부대표
- 2011. 혁신과 통합 강북구 추진 위원회 위원장
- 2011. 시민통합당 지도위원
- 2012.3. 민주통합당 대변인
- 2013. 성균관대학교 국정관리대학원 행정학과 석사
- 2013.5. 민주당 대변인
- 2014.1. 민주당 홍보위원장
- 2014.3. 새정치민주연합 홍보위원장
- 2015.8.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부의장
- 2015.12.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 2016.4.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비서실장
- 2016.5.30. ~ 2020.5.29. 제20대 국회의원 (서울 강북구 을 / 더불어민주당)
- 2016.6. 제20대 국회 전반기 정무위원회 위원
- 2017.4.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 대변인
- 2017.5.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 2017.5. 제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운영위원회 위원
- 2017.8. 제20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 2017.9.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위원
- 2017.11. 더불어민주당 이건희 등 차명계좌 과세 및 금융실명제 제도 개선 TF 간사
- 2018.7. 제20대 국회 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2018.7. 제20대 국회 후반기 교육위원회 위원
- 2018.10. 제20대 국회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간사
- 2020.5.30. ~ 현재. 제21대 국회의원 (서울 강북구 을 / 더불어민주당)
- 2020.7. 제21대 국회 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2020.7. 제21대 국회 전반기 정무위원회 위원
- 2021.10.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선 후보(4위)
- 2021.11. 대한민국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거대책위원장
- 2022.8. 더불어민주당 제5차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2위)
- 2023.6. 제21대 국회 후반기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3. 생애[편집]
자세한 내용은 박용진/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비판 및 논란[편집]
자세한 내용은 박용진/비판 및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대권주자로서의 장단점[편집]
자세한 내용은 박용진/대권주자로서의 장단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여담[편집]
- 2018년 성균관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사건 당시에 성균관대 총학생회 선배로서 같은 성대 총학 출신 민주당 의원인 기동민과 함께 총여학생회 폐지에 반대서명을 한 바 있다. 사실상 래디컬 페미집단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 빼도박도 못할 흑역사이지만, 박용진 본인의 인지도가 낮아서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 정의당의 대선평가 좌담회 때문에 진보정당 원로들이 국회 의원회관에 모인 것을 보고 밥값을 계산하고 나왔다고 한다.[5] 참고로 현직 정치인들이 아니라서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설사 김영란법에 해당되더라도 사진 속 메뉴 가격을 보면 1인당 3만원이 절대 넘을 수 없는 수준이다.
- 재벌 문제와 관련해서는 진보적인 시각이 매우 강하지만, 의외로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는 보수적인 시각도 가지고 있다. 한국 재벌가의 대표격인 삼성 도 많이 저격하지만, 기업 자체에 대해서는 한국 경제 발전의 주축으로 고평가하기도 했다. 사실 이는 정의당 같은 진보 정당도 거의 비슷한 입장이다. 오너 일가에 대한 논란이 더 많은 대한항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국민의 기업이라 여기며 애증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우수한 기업을 사유화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주된 목적임을 몰라주는 언론이 야속하다"고 평해 왔다. 즉, 오너 일가의 비리와 기업의 존속은 별개로 간주하는 것.
-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참패 이후 일부 초선 의원들이 조국 책임론을 제기한 뒤 비판에 직면하자 이들을 옹호하는 입장을 보였다.
- 진중권, 우석훈 등과 함께 진보인사임에도 불구하고 보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년정치학교에 자주 참석하고 있으며, 대선 싱크탱크 세미나를 오신환 전 의원이 운영하는 HOW's 카페에서 열기도 했다.
- 배우 임원희가 신일고 21회 동기다. 이런 인연으로 임원희가 유튜브 채널 박용진TV에도 출연하였다.
- 젊은 이미지를 강조하는 편이다. 박 의원은 1971년생으로 2022년 기준 만 51세인데, 이는 20대 대선 경선후보 중 제일 어리며, 법적으로 대통령 출마 가능한 최소 연령이 만 40세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젊은 편이다.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본인 틱톡에서 롤린 춤을 추기도 했다. 이외에도 편의점 음식 먹방이나 젤리 챌린지 등 별별 컨텐츠를 업로드하기도 한다.
- 2022년 국정감사에서 2022년 한국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운영 미숙 파동를 언급하며 카카오를 강하게 질타했다. 남궁훈 카카오 각자대표의 질의응답 도중 우마무스메 사태를 거론하며 "우마무스메 사태 당시 카카오게임즈 대응이 무능을 넘어 주식회사 의무를 망각했다." 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에 남궁현 대표는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왔던 발언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으며 상처받으셨을 유저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고 사과했다. 관련 기사
- 21대 총선에서 자신의 장남과 동명이인인 후보자가 다른 당 소속으로 부산 남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 20대 총선 당시 회계책임자가 홍보 문자메시지 발송과 관련하여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박용진이 범행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판단해서 회계책임자만 기소했다. #
- 키가 180cm로, 상당히 큰 편이다. 한국 남성 50대 평균 키가 170.47cm인데, 180cm로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로 박용진을 본 사람들은 한동훈(181cm)과 비슷하거나, 한동훈 보다도 더 큰 거 같다는 느낌이라고 한다.[7]
7. 선거 이력[편집]
8. 소속 정당[편집]
9. 둘러보기[편집]
[1] 당시 경찰공무원이었던 부친이 번암파출소에 근무할 때 번암파출소 건너편 관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2] 이후 초등학교 시절은 전주시에서 보내다가 서울특별시 강북구로 이사한다.[3] 당시 노회찬 전 의원을 보좌하던 사진도 남아있다.[4] 민주당 정치인들 중 보수언론과 가장 많은 인터뷰를 한 것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중도보수라고 오해를 사곤 하지만, 이는 조국 사태 등 민주당 내부의 잘못에 대해 비판을 다루는 매체가 보수언론이다 보니까 그런 것으로, 실제 박용진 의원의 자서전 등에 적힌 내용을 보면 좌우 이념으로 명확히 분리할 수 있다기보다는 실용주의적 노선이 많이 보인다. 단순히 당내 의견에 반대한다고 해서 중도보수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5] 마지막 사진 왼쪽부터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천영세 전 비대위원장, 권영길 전 대표, 단병호 전 의원, 강기갑 전 대표. 이수호는 신일고 국어교사 시절 박용진과 사제의 연을 맺은 바 있으며, 이수호가 전교조 활동으로 투옥되었을 당시 박용진이 앞장서 구명활동에 나선 바 있다.[6] 그래도 보수정당의 공격에 마냥 손 놓고 있는건 아니라, 문재인 정부 시기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 씨의 예술지원금 논란에 대해 야당이 아무 잘못 없는 문준용에게 공세를 한다고 야당을 비판하기도 했다.#[7] 배우로는 이동규가있다[8] 2000년, 2008년 선거는 비록 낙선했지만 진보정당 이름을 달고 지역구에서 이 정도 득표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진보정당의 한계를 느꼈는지 민주당으로 갔지만, 진보진영에서도 그의 당선을 축하하는 분위기.[9] 3번의 선거 중 첫 당선.[10] 서울 당선인 중 2번째로 높은 득표율.[11] 민주노동당 창당을 위한 정당 해산.[12]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13] 시민통합당 창당을 위한 탈당.[14] 민주당과 신설 합당.[15]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