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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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
Aden | عدن

파일:예멘 아덴 인장.png
로고




국가
[[예멘|

예멘
display: none; display: 예멘"
행정구
]]


아덴 주
면적
760㎢
인구
863,000명 (2017년)
인구밀도
1,100명/㎢

파일:external/yementhroughoureyes.files.wordpress.com/sam_06682.jpg
파일:external/nationalyemen.com/Aden-city.jpg
파일:예멘 아덴.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den,Yemen_Port.jpg

1. 개요
2. 역사
3. 명소
4.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예멘 남부의 항구 도시. 남예멘의 수도(1967~1990)이자, 한때 예멘 정부의 임시수도(2015~2018)였다가[1], 구 남예멘 분리주의세력의 거점(2018~). 아덴 주의 주도이다. 구약성서의 에스겔, 가톨릭 표기로 에제키엘 서에는 티레(두로)와 무역을 하던 도시 가운데 하나인 칸네와 함께 언급된다.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도 유명하다.


2. 역사[편집]


아덴은 원래 아디나라고 불렸는데 이는 '기쁨의 땅'이라는 뜻으로 성서에 나오는 '에덴동산'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서기 3세기까지 아덴은 아라비아만 향료 무역의 종점 역할을 했다. 소말리아유향과 하드라마우트의 몰약 등을 주로 거래했다고 알려진다. 서기 25년 아우구스투스의 명을 받은 이집트 총독 아엘리우스 갈루스가 예멘 (아라비아 펠릭스) 원정에 나섰을 때에 로마 함대에 의해 파괴당하기도 하였다. 중세에도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고 12세기 주라이 왕조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라술 왕조의 지배를 받던 1421년엔 정화의 명나라 함대가 당도하여 선물을 교환하기도 하였다.

15-16세기에는 예멘 타히르 왕조가 아덴을 중심으로 흥기하였다. 대항해시대에 이르러 1513년 포르투갈의 제독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의 공격을 받았지만 격퇴해내었고 1517년 맘루크 왕조에게 예멘 서부를 빼앗긴 타히르 왕조가 아덴을 마지막 거점으로 삼았다. 그에 대한 맘루크, 포르투갈의 공격은 모두 실패했으며, 이후 고산 지대의 자이디 이맘의 포위를 당하였다. 포위된 타히르 지도부는 1538년 홍해로 파견된 오스만 선단에 도움을 청했는데, 그 제독은 그들을 선박으로 초대한 후 교수형에 처하였다. 이로써 아덴은 다른 예멘 도시들과 함께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 놓였다.

1547년 오스만 지배에 반란을 일으킨 아덴 주민들은 포르투갈 측에 도움을 청하였다. 이로써 약 2백여 포르투갈 수비대가 파견되었지만, 도시는 1548년 2월 피리 레이스 휘하의 오스만 해군에게 점령되었다. 한세기의 오스만 지배 후[2] 1645년 아덴은 예멘을 통일한 자이디 이맘국에게 점령되었다. 80여년이 흐른 1728년, 현지 압달리 부족장인 파들 이븐 알리가 자이디 총독을 죽이고 자립하였다. 이로써 세워진 라헤즈 술탄국은 처음엔 자이디 이맘에게 복속했으나 18세기 중반 독립하였다.

1802년 라헤즈 술탄은 영국과 술탄이 보호 협약을 맺었는데, 그럼에도 영국 선박들에 대한 해적질을 계속하다가 1839년엔 영국의 압력으로 도시를 넘겼다. 1846년 라헤즈 술탄의 아덴 공격은 격퇴되었고, 오히려 1873년부터 아덴은 영국의 보호 하에 놓였다. 한편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과 함께 아덴은 중요한 요충지로써 석탄 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영국령 인도 제국에 속해있다가 1937년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었다.

1962년 15개의 토후국이 연합하여 남에미리트 연방이 만들어지고 예멘 왕국에서 공화파의 쿠데타로 인해 북예멘이 건국되자[3]1963년 영국은 아덴 식민지를 해체시키고 아덴을 남에미리트 연방에 편입시켜 남아라비아 연방으로 개칭했다.

1963년부터는 민족해방전선(NLF), 남예멘해방전선(FLOSY)가 영국에 대항해 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해서 1967년에 아덴에서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 당시 적지 않은 수의 영국군이 사망했고 이로 인해 영국군은 원래 예정[4]보다 빠른 1967년 11월에 철수하면서 영국의 보호국이었던 남아라비아 연방이 붕괴하고 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이 건국되었다. 이때부터 아덴은 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남예멘)의 수도가 되었다.

1990년 예멘이 통일되면서 아덴은 수도 지위를 상실했다가 1994년 구 남예멘 관료들이 '예멘 민주 공화국'으로 남예멘의 독립을 선언하면서잠시 수도 지위를 회복하였었지만 북예멘이 남예멘을 다시 멸망시키면서 수도 지위를 다시 상실하였다.

2015년 2월, 예멘 사태가 악화되자 하디 대통령이 사나를 탈출, 여기로 피난해 임시수도로 삼았다. 4월초 후티 반군이 아덴까지 점령했으나 7월에 사우디아라비아의 개입에 힘입어 정부군이 재탈환했다. 하지만 2018년 2월 들어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이 아덴을 점령하였다. 2019년 8월 들어 정부군이 탈환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2022년 현재는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의 거점이 되어 있다.


3. 명소[편집]


런던빅 벤과 비견되는 시계탑 빅 벤 아덴이 있다. 영국인들이 19세기에 세웠다. 엘리자베스 2세1954년 방문한 적이 있다.


4. 대중매체에서[편집]


대항해시대 4에서는 웃딘 시나리오에서 소코트라와 함께 점유율 100%이면 나갈플이 두 곳을 떼달라고 말하며, 웃딘은 잔머리를 굴려서 나갈플을 알거지로 만들어버린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이 도시에 의뢰 중개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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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멘 내전으로 수도 사나후티 반군에 점령되었다.[2] 그런데 이 시기에도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그다지 확고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게, 오스만 제국의 최대강역을 표시한 대부분의 지도들에는 아덴이 누락되어 있다. # 혹은 다르푸르 술탄국 같은 예시처럼 현지인들은 본인들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들어갔다고 인식하고 있는데 막상 콘스탄티니예에서는 해당 지역에 대한 지배권이 전혀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해괴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깽판을 치고 다니던 "터키인"들 중에는 법적으로 본인의 국적만 오스만 제국일 뿐 사실상 콘스탄티니예 정부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있는 인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3] 영국은 왕당파를 지원했었다.[4] 원래 영국은 1968년에 영국군을 철수시키고 남아라비아 연방을 독립시키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