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서울 선거구)

덤프버전 :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중구(서울특별시)/정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의 폐지된 선거구


파일:국회휘장.svg

중구
중구 전역
中區
Jung

선거인 수
136,063명 (2012)
상위 행정구역
서울특별시
관할 구역
[ 펼치기 · 접기 ]
중구 전역
명동, 필동, 소공동, 회현동, 장충동, 광희동, 동화동, 황학동, 중림동, 소공동, 신당동, 다산동, 약수동, 청구동, 신당5동, 을지로동

신설년도
1988년
폐지년도
2016년
국회의원

[[국민의당(2016년)|
파일:국민의당(2016년) 흰색 로고타입.svg
]]

정호준



1. 소개[편집]


중구 지역을 선거구로 하는 19대 국회의 서울지방의 선거구중 하나이다. 서울특별시청숭례문, 명동 등이 위치한 만큼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지역구였다.

통합 되기 전까지, 이 지역구의 마지막 소속의원은 국민의당 정호준 의원이었다. 정호준 의원의 아버지인 정대철 의원과 조부인 정일형 의원이 모두 이곳에서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2. 선거구 변동 역사[편집]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는 서울특별시 제1선거구 중구로 선거가 진행되었으나, 제2대 국회의원 선거 들어 갑구와 을구로 분리되었다. 6대 국회에서 다시 통합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구 획정에서는 인구 미달로 인해 성동구와 통합되어, 중구·성동구 을로 조정되었다. [1]

3. 역대 국회의원 목록과 역대 선거 결과[편집]


파일:국회휘장.svg 서울 중구 역대 국회의원
대수
의원명
당적
임기
비고
중구
제헌
윤치영

[[한국민주당|
한국민주당
]]

1948년 5월 31일 ~ 1950년 5월 30일

중구 갑/을
제2대
원세훈

[[민족자주연맹|
민족자주연맹
]]

1950년 5월 31일 ~ 1954년 5월 30일
중구 갑
정일형

[[무소속|
무소속
]]

중구 을
제3대
윤치영

[[대한국민당(1949년)|
대한국민당
]]

1954년 5월 31일 ~ 1958년 5월 30일
중구 갑
정일형

[[무소속|
무소속
]]

중구 을
제4대
주요한


1958년 5월 31일 ~ 1960년 7월 28일
중구 갑
정일형
중구 을
제5대
주요한
1960년 7월 29일 ~ 1961년 5월 16일
중구 갑
정일형
중구 을
중구
제6대
정일형

파일:민주당(1963년) 흰색 로고타입.svg

1963년 12월 27일 ~ 1965년 8월 7일
[2]
신인우

[[민중당(1965년)|
파일:민중당(1965년) 흰색 로고타입.svg
]]

1965년 11월 10일 ~ 1967년 6월 30일

제7대
정일형

[[신민당(1967년)|
파일:신민당 벽보글씨.svg
]]

1967년 7월 1일 ~ 1971년 6월 30일
제8대
1971년 7월 1일 ~ 1972년 10월 17일
종로구·중구
제9대
장기영

[[민주공화당|
파일:민주공화당_글씨만.png
]]

1973년 3월 12일 ~ 1977년 4월 11일
[3]
정일형

[[신민당(1967년)|
파일:신민당 벽보글씨.svg
]]

1973년 3월 12일 ~ 1977년 3월 22일
[4]
오제도

[[무소속|
무소속
]]

1977년 6월 10일 ~ 1979년 3월 11일

정대철
제10대
정대철

[[신민당(1967년)|
파일:신민당 벽보글씨.svg
]]

1979년 3월 12일 ~ 1980년 10월 27일
민관식

[[민주공화당|
파일:민주공화당_글씨만.png
]]

제11대
이종찬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1981년 4월 11일 ~ 1985년 4월 10일
김판술

[[민주한국당|
파일:민주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제12대
이종찬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1985년 4월 11일 ~ 1988년 5월 29일
이민우

1985년 4월 11일 ~ 1987년 11월 6일
[5]
중구
13대
정대철

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14대

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15대
박성범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16대
정대철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17대
박성범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18대
나경원
2008년 5월 30일 ~ 2011년 9월 28일
[6]
19대
정호준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4. 중구 (6대~8대)[편집]



4.1. 제6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서울특별시 제2선거구
서울 중구 일원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노중신(魯重信)
619
5위

1.07%
낙선
2
김경석(金景錫)
408
7위

0.70%
낙선
3
김재인(金在寅)
993
5위

1.71%
낙선
6
손원일(孫元一)
6,123
4위

10.60%
낙선
8
정일형(鄭一亨)
19,278
1위

33.37%
당선
9
신태악(辛泰嶽)
15,307
2위

26.50%
낙선
7
이몽필(李夢弼)
713
6위

1.23%
낙선
11
경춘하(景春夏)
349
8위

0.60%
낙선
12
박인각(朴仁珏)
13,966
3위

24.18%
낙선

선거인 수
100,839
투표율
64.58%
투표 수
60,715
무효표 수
2,959

제헌 총선때부터 두개의 선거구로 나누어진 중구 선거구가 하나로 합쳐진뒤 치러진 선거이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때부터 중구 을 선거구에서 4선의원을 지낸 정일형 후보가 당선되었다.


4.2. 1965년 재보궐선거[편집]


서울특별시 제2선거구
서울 중구 일원[7]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김원갑(金元甲)
1,840
5위
[include(틀:추풍회)]
7.70%
낙선
3
신인우(申仁雨)
6,465
1위

27.04%
당선
5
박상원(朴商源)
4,965
3위

20.77%
낙선
6
유철(兪徹)
5,077
2위
[include(틀:자유당(1963년))]
21.23%
낙선
7
신효순(申孝舜)
1,667
6위

6.97%
낙선
8
우봉운(禹鳳運)
3,055
4위
[include(틀:정민회)]
12.78%
낙선
11
성보경(成輔慶)
841
7위

3.52%
낙선

선거인 수
95,290
투표율
26.13%
투표 수
24,902
무효표 수
-

민중당 정일형 의원이 한일기본조약 채결에 반발해 의원직을 사퇴함에 따라 치러진 선거이다.

4.3. 제7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서울특별시 제2선거구
서울 중구 일원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2
신인우(申仁雨)
3,800
3위
[include(틀:자유당(1963년))]
7.05%
낙선
4
경춘하(景春夏)
-
-
[include(틀:정의당(1967년))]
-
등록무효
6
정일형(鄭一亨)
27,361
1위
[include(틀:신민당(1967년))]
50.80%
당선
7
박인각(朴仁珏)
21,035
2위
[include(틀:민주공화당)]
39.05%
낙선
8
박상원(朴商源)
1,664
4위
[include(틀:한국독립당(1963년))]
3.08%
낙선

선거인 수
85,621
투표율
67.98%
투표 수
56,818
무효표 수
2,958
해당 선거까지 후보자 이름 순서대로 기호순서가 배정되었다.

4.4. 제8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서울특별시 제2선거구
서울 중구 일원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박인각(朴仁珏)
19,899
2위

40.68%
낙선
2
정일형(鄭一亨)
28,685
1위

58.65%
당선
3
한덕순(韓德淳)
169
3위
[include(틀:국민당(1971년))]
0.34%
낙선
5
김동렬(金東烈)
152
4위
[include(틀:민중당(1967년))]
0.31%
낙선

선거인 수
77,840
투표율
63.34%
투표 수
49,860
무효표 수
955
국회 의석 순서대로 후보자 기호가 배정된 첫 선거이다.

5. 종로구·중구 (9~12대)[편집]


종로구·중구 문서 참조.


6. 중구 (13~19대)[편집]



6.1. 제13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중구
서울 중구 일원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장기홍(張基弘)
27,617
2위

28.59%
낙선
2
김중태(金重泰)
20,721
3위

21.45%
낙선
3
정대철(鄭大哲)
38,228
1위

39.58%
당선
4
문창탁(文昌鐸)
8,935
4위

9.25%
낙선
5
김명주(金明珠)
240
6위

0.24%
낙선
6
이세춘(李世春)
837
5위

0.86%
낙선

선거인 수
137,878
투표율
70.60%
투표 수
97,346
무효표 수
768

6.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중구
서울 중구 일원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장기홍(張基弘)
36,944
2위

42.08%
낙선
2
정대철(鄭大哲)
46,810
1위

53.32%
당선
3
진성범(陳成範)
4,027
3위

4.58%
낙선

선거인 수
129,783
투표율
68.46%
투표 수
88,849
무효표 수
1,068

6.3. 제15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중구
서울 중구 일원[중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박성범(朴成範)
34,238
1위

52.93%
당선
2
정대철(鄭大哲)
27,825
2위

43.01%
낙선
3
김유진(金裕珍)
2,284
3위

3.53%
낙선
4
이수만(李秀萬)
-
-

-
등록무효
5
김명주(金明珠)
333
4위

0.51%
낙선

선거인 수
105,053
투표율
64.2%
투표 수
67,449
무효표 수
2,769


6.4. 제16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중구
서울 중구 일원[중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박성범(朴成範)
26,796
2위

44.69%
낙선
2
정대철(鄭大哲)
29,414
1위

49.05%
당선
3
최팔용(崔八龍)
903
5위

1.50%
낙선
4
이병희(李秉熙)
350
6위

0.58%
낙선
5
김준오(金俊吾)
1,101
4위

1.83%
낙선
6
윤영대(尹英大)
1,392
3위

2.32%
낙선

선거인 수
98,572
투표율
61.43%
투표 수
60,549
무효표 수
593

6.5. 제17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중구의 터줏대감이던 정대철 전 의원이 일선에 물러나면서 아들인 열린우리당 정호준 후보가 지역을 관리해왔다. 하지만 정대철 전 의원이 물러난 것이 양상불법대선자금 등 비리 혐의로 구속된 것이기 때문에 여론이 좋지는 않은 상황.

한나라당 후보는 박성범 전 의원으로, KBS 9시 뉴스 앵커와 보도본부 본부장을 지냈다. 15대 총선에서는 정대철 전 의원을 누르고 당선되었으나, 16대 총선 재대결에서는 패했다.

여기에 11년간 내리 세 번 중구청장을 지낸 새천년민주당 김동일 후보가 출마를 선언했다. 3번이나 중구청장을 한만큼 이름이 알려져 있어 애초 대결은 박성범 후보와 김동일 후보의 2파전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탄핵 역풍 등으로 정호준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 3파전 양상이 되었다.

중구는 대기업 본사가 많아 재정자립도는 높은 편이지만 주거환경이나 교육환경은 열세인 지역으로, 박성범 후보는 "특목고 및 강북 공항터미널 유치" 등을 공약했고, 15대 의원일때 명동·동대문 관광특구 유치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김동일 후보는 "11년간 중구청장으로 일한 클린 정치인"임을 강조했으며, 정호준 후보는 삼성전자 출신임을 알리며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성을 부각시키고 탄핵 심판론을 앞세웠다. 이 지역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최재풍 후보 역시 재래시장과 평화시장 피복노조에 지지를 호소했다.
중구
서울 중구 일원[중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박성범(朴成範)
29,837
1위

45.93%
당선
2
김동일(金東一)
11,662
3위

17.95%
낙선
3
정호준(鄭皓駿)
19,478
2위

29.98%
낙선
4
조윤행(趙允行)
263
7위

0.40%
낙선
5
최재풍(崔載豊)
2,523
4위

3.88%
낙선
6
윤영대(尹英大)
181
8위

0.27%
낙선
7
이형석(李炯錫)
592
5위

0.91%
낙선
8
이희준(李熙俊)
104
9위

0.16%
낙선
9
황병희(黃炳熙)
313
6위

0.48%
낙선

선거인 수
106,012
투표율
61.91%
투표 수
65,631
무효표 수
678
결과는 박성범 후보가 45.93%를 득표, 2위 정호준 후보를 15.95% 차이로 크게 누르고 당선되었다.

6.6. 제18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한나라당이 서울 송파구 병 출마를 준비하던 나경원 전 대변인을 전략공천하면서 관심 지역구로 떠올랐고, 한나라당을 탈당했던 박성범 의원의 부인인 신은경KBS 9시 뉴스 앵커가 중구 출마를 선언하였다. 신은경 후보는 자유선진당 대변인으로 선임되며 선거 체제로 돌입했지만 여론조사는 나경원이 크게 앞선 상황. 이때 통합민주당에서 정범구 전 의원을 이 지역구에 전략공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범구 전 의원 역시 CBS, KBS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경력이 있어 세 후보 모두 대중에게 어느정도 이름이 알려진 상황. 정범구 후보는 17대 총선에서는 불출마 선언을 하고 이후 창조한국당에서 문국현 후보를 돕다가 이견을 보여 탈당, 4년 만에 친정인 통합민주당으로 돌아온 것이다. 중구에서는 정대철 전 의원이 터줏대감이었던 만큼 역대 선거결과가 좋았던 만큼 나경원 후보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언론에서는 나경원 후보와 신은경 후보의 대결을 '미모 대결' 같은 표현을 쓰며 가쉽거리로 만들기도 했다. 정범구 후보는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사업를 비판하며 정권 심판을 강조하였고, 나경원 후보에 대운하 사업 맞장토론을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중구
서울 중구 일원[중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정범구(鄭範九)
14,146
2위

27.60%
낙선
2
나경원(羅卿瑗)
23,609
1위

46.07%
당선
3
신은경(申恩卿)
10,531
3위

20.55%
낙선
4
김인식(金仁植)
1,111
4위

2.16%
낙선
6
오형석(吳炯錫)
1,506
5위

2.93%
낙선
7
한만억(韓萬億)
341
5위

0.66%
낙선

선거인 수
106,880
투표율
48.25%
투표 수
51,571
무효표 수
327
그러나 접전지역일 것이라는 언론의 예측과는 달리 결과는 나경원 후보의 싱거운 승리. 2위인 정범구 후보를 18.47%, 3위인 신은경 후보를 23.45% 차이로 크게 누르고 당선되었다.

6.7. 제19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나경원 의원은 이후 한나라당 최고위원까지 올랐으나 2011년 재보궐선거를 이유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심지어 서울시장 선거 당시에 각종 부정적 이미지가 생기면서 불출마로 이어진다.

새누리당 정진석 전 의원과 민주통합당 정호준 후보의 대결. 정진석 후보는 자유민주연합에서 한나라당에 입당해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정호준 후보는 노무현정부 행정실 비서관 및 18대 대선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기획본부 부본부장으로 일했다.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이 이 지역에 출마를 고려했다가 정호준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철회하였다.

이 지역은 정치인 2세들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정진석 후보는 내무부장관을 지냈던 6선 고 정석모 전 의원의 아들이며, 정호준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렸던 8선 정일형 전 의원의 손자이자, 5선 정대철 전 의원의 아들. 중도 하차한 조순형 역시 조병옥 전 의원의 아들이다.

정진석 후보는 3선 국회의원에 국정경험(청와대 정무수석)을 갖춘 사람으로 어르신 복지와 상권 활성화를 위해 중앙예산을 끌어올 수 있는 후보임을 강조했으며, 특성화중학교를 유치하고 성동고를 자율형 기숙학교로 전환해 중구 교육에 힘쓰겠다고 공약했다.

정호준 후보는 40년 중구 토박이임을 강조하며, 서초구로 이전 예정인 국립중앙의료원을 존치시켜 서민·중산층의 의료공백을 막고 남산고도제한을 완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중구
서울 중구 일원[중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정진석(鄭鎭碩)
28,904
2위

46.32%
낙선
2
정호준(鄭皓駿)
31,364
1위

50.27%
당선
3
조순형(趙舜衡)
-
-

-
사퇴[8]
6
장준영(張浚暎)
1,120
3위

1.79%
낙선
7
오정익(吳政益)
1,000
4위

1.60%
낙선

선거인 수
115,376
투표율
54.43%
투표 수
62,798
무효표 수
410

19대 총선 서울 중구 개표 결과
정당


격차
투표율
후보
정진석
정호준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28,904
(46.32%)

31,364
(50.27%)

-1,630
(▼1.97)

54.50%
소공동
48.02%
51.09%
▼3.07
67.82
회현동
58.89%
40.74%
18.15
60.89
명동
51.08%
48.52%
△2.56
66.10
필동
51.34%
48.16%
△3.18
69.94
장충동
44.13%
55.47%
11.34
72.61
광희동
54.09%
45.52%
△8.57
67.27
을지로동
58.73%
39.82%
△19.91
62.75
신당1동
48.43%
51.17%
▼2.74
68.05
신당2동
44.94%
54.75%
▼9.81
71.21
신당3동
49.72%
49.87%
▼0.15[9]
73.70
신당4동
47.47%
52.13%
▼4.66
76.75
신당5동
46.19%
53.32%
▼7.13
71.02
신당6동
49.98%
49.68%
△0.30[10]
77.53
황학동
47.76%
51.85%
▼4.09
71.32
중림동
47.54%
52.02%
▼4.48
72.03
후보
정진석
정호준
격차

국외부재자투표
57.12%
42.53%
14.59

국내부재자투표
47.78%
51.05%
3.27


결과는 정호준 후보가 정진석 후보를 3.95% 차이로 제치고 당선, 17대 총선에서 낙선했던 정호준 후보는 두번째 도전에 당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3대가 무려 14선 국회의원을 한 정치 명문 집안이 탄생했다.


[1] 갑 선거구는 순수 성동구로만 구성되어있고, 중구와 성동구 일부가 합쳐진 선거구가 을 선거구이다.[2] 1965.8.7 의원직 사퇴 (한일 기본조약 체결 반대)[3] 1977.4.11 임기 도중 사망[4] 1977.3.22 의원직 사퇴[5] 1987.11.6 의원직 사직[6] 2011.9.28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로 인한 사퇴[7] 명동, 필동, 소공동, 회현동, 장충동, 광희동, 동화동, 황학동, 중림동, 소공동, 신당동, 다산동, 약수동, 청구동, 신당5동, 을지로동[중구] A B C D E 명동, 필동, 소공동, 회현동, 장충동, 광희동, 동화동, 황학동, 중림동, 소공동, 신당동, 다산동, 약수동, 청구동, 신당5동, 을지로동[8]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9] 불과 17표 차이였다.[10] 불과 22표 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