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노 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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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멀티 엔터테이너.
싱어송라이터,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15] , 편곡가, 음악 프로듀서, 비트메이커이며, 배우, 문필가, 라디오 DJ, 방송인, 유튜버[16] 이다.
배우와 음악, 집필, 이 모든 분야에서 인디 및 무명 생활을 다 거쳐[17] 당시 대중가요 및 연예계를 꽉 잡고 있던 일본 아이돌 시장의 튼튼함 속에 파죽지세로 올라와[18] 음악, 배우, 방송인, 작가 이 모든 부분에서 상을 타고 메가히트친 대표작들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모두 다 성공해본 입지전적형 멀티 엔터테이너이다.
상당히 암흑기였던 '2010년대 일본 음악'의 국민적 팝 아이콘 중 한 명이었고, 그 당시를 이야기할 때 호시노 겐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력이 상당했었던 인물이라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샤라웃을 받고 있으며, 요네즈 켄시와 함께 일본 솔로 싱어송라이터 입지 확립의 재시작을 열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2019년 종합 33만명을 동원한 '5대 돔 투어'를 예매 당일 전석 매진시키며 일본 내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 중 한 명[19] 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부터는 음악 및 배우 활동에 이전과 다른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으며, 2021년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을 발표해 큰 화제가 되었고, 2023년 현재도 메이저 멀티 엔터테이너 중 한 명의 입지[20] 를 가지고 있다. 호시노 겐의 라디오 청취자가 10대부터 60대까지 있을 정도로 청년층부터 중장년층까지 고루고루 팬이 많은 연예인이기도 하다.
2. 음악가[편집]
그가 2000년대에 데뷔한 후 그의 음악들은 당시 일본에 자리잡혀있는 대중적 음악과는 항상 거리가 계속 있고 변화를 추구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암울했던 2010년대의 팝 아이콘이 되었었고,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력이 상당했었다. 이후로도 Official髭男dism, 요네즈 켄시, YOASOBI, Creepy Nuts, imase 등 여럿 후배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에게 샤라웃을 받고 있다.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발매한 그의 대표적인 앨범들인 정규 4,5집 YELLOW DANCER와 Pop Virus 앨범은 2010년대 J-POP 메인스트림 팝 씬에서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졌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 이 두 앨범 모두 상업적 성공을 크게 이룬 동시에 뮤직 매거진이 선정한 역대 일본음악 명반 순위에 각각 95위, 138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다만, 앨범 판매량[21] , 차트 성적, 그리고 음원 다운로드 수[22] 에 비해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엄청나게 낮다. 그의 최전성기가 음원 다운로드 시대의 후반부 끝자락이었기도 하고, 해외보다는 일본 내에서만 크게 히트친 것 또한 한 몫하지만,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마치 뮤직비디오를 앨범 광고로 쓴 듯한, 노래를 건너뛰고 대신 나오는 중간 앨범 광고[23] 와 곡이 끝나고 나오는 호시노 겐의 개인 코멘터리.[24]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손꼽아 기다리는 컨텐츠가 되었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음악가 측면에서, 恋(사랑, 2016), Pop Virus(2018), 그리고 스파이 패밀리 애니메이션 1기 1쿨 엔딩곡인 喜劇(희극, 2022)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조금 더 깊게 파고들면, SUN, アイデア(아이디어), 不思議(불가사의), Week End 등이 그 다음으로 유명한 편이다.
그러나 음악가적인 측면으로만 한정한다면 2020년대인 지금 한국에서의 선호도는 그가 쌓아온 음악적 커리어에 비해 적은 편이다. 전반적인 일본 문화를 잘 알고 있던 한국인들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J-POP이 가장 인기없을 때 일본 내에서 메가히트친 뮤지션이고, 그가 하는 음악이 전반적으로 '2020년대 한국 J-POP 붐 이후에 한국에서 생긴 메이저 J-POP 주요 소비층'의 전반적인 수요에 잘 맞지 않는다[25] 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2.1. 생애 및 활동[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생애 및 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음악적 특징[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음악적 특징 및 가치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아래 나온 내용들은 분리된 문서의 일부 발췌 또는 요약이다.
솔로로서 지금까지 발표한 극히 일부 곡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곡들과 음반들을 직접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했다.[26]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이기도 하고, 인디 밴드 SAKEROCK의 프로듀서 역할을 하기도 했었으며, 이후로도 전반적인 편곡 및 프로듀싱을 담당하다보니, 호시노 겐 본인이 다룰 수 있는 것만 하더라도 2023년 기준, 기타, 마림바, 만돌린, 드럼, 삼선, 밴조, 베이스 기타, TR-808, 건반 악기, 신디사이저, MPC, DAW 등 다양하다. 다룰 수 없는 현악기와 관악기 등은 편곡할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는 편.
가장 먼저 시작한 악기가 드럼이라 기본적으로 리듬과 비트를 중요시하며, 전체적으로 음악의 사운드와 악기와 리듬을 상당히 복잡하거나 컬러풀하고 풍부하게 사용하면서도 여유롭거나 부담없이 들을 수 있다[27] 는 큰 특징이 있다. 애초에 그의 맨 처음 활동 시작 및 데뷔 초기(2000년) 장르는 이지 리스닝의 하위 장르인 엑소티카(Exotica)[A] 와 마치 작은 오케스트라를 연상케 하는 얼터너티브한 팝 음악, 그리고 영화 및 무대에 사용되는 음악인 오리지널 스코어였기도 하다. 인디 밴드 시절의 곡들이 전반적으로 복잡하고 여러 장르가 섞여있으며 뭔가 어깨 힘 빠진 분위기의 곡들이 많았는데[28] , 그 이후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서는 다양한 악기가 변칙적으로 들어가거나, 미묘한 변화를 계속 주면서 곡이 진행되지만 곡이 쉽게 술술 들리는 안정감을 준다.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인 건강함과 담백함 속, 그의 고집이 담겨있는 리듬과 비트와 이색적인 사운드'가 그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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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야기가 너무 암울하고[29] 설명을 나열하는 듯한 가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가사에 본인의 과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넣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하며, 그 대신 '본인의 이야기에 기반하여 생성된 가치관'으로, 본인이 느끼는 풍경과 세상을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치 시처럼 특정 주제에 대해 그가 바라보는 이미지(심상)을 떠올리게 한다. 문인다운 시적인 가사로 '문과 여고생들의 아이돌'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팝 적이면서도 댄스 음악의 요소를 넣어 몸이 가볍게 움직이는 곡들은 많지만, 그 중 일부에는 특색이 강한 춤 또는 안무가 들어가 있다. 일본의 국민 춤 중 하나로 자리잡혀 수많은 커버 영상을 파생시킨 유명한 2016년의 '코이댄스' 외에도 여러가지 예시가 있다.[30] 이와 관련하여 가사에 '춤추는, 춤추자'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시적인 정취나 메세지성/상징성을 내포한 가사가 많기에 이 단어 또한 특정 뜻을 함축한 표현으로 종종 쓰인다.
본인이 직접 언급했듯이 가창력이 좋은 보컬리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음악 생활을 계속 해오며 점점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음역도 넓어졌다. 고음은 대체로 가성으로 처리하고, 보컬이 고음을 질러 대중들에게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노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읽어주기 창법'을 자주 사용한다.[31] 중저음이 꽤나 편안하게 다가오는 음색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가성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청중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다른 의미로 보컬의 기량이 사용되는데, 대체로 가수가 악기 중 하나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목소리를 포함한 코러스를 상당히 다양하게 사용할 때가 많은데, 호시노 겐은 예전 밴드에서 트롬본과 마림바의 음색을 돋보이게 해주는[32] 코러스(서브 보컬)을 자주 했기도 하고, Dead Leaf 등이나 (최근의 작업물 중에서는) 異世界混合大舞踏会(이세계혼합대무도회)나 生命体(생명체)에서 그 예시가 뚜렷하고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 외에도 자주는 아니지만 반주의 박자와 보컬의 박자가 다른 경우가 가끔 있어 어긋나게 부르면서도 상술한 그의 특징 때문에 이지 리스닝으로 작용할 때도 있으며, 라이브할 때 자신의 목소리 음량을 곡의 진행에 맞춰 줄일 때도 종종 있다. 전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악기나 사운드에 더 집중하는 곡들이 많은 편.
깨끗한 음질로 전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 노이즈가 맞는 곡이라면 음악에 일부러 잡음이나 노이즈를 남기거나, 역재생을 넣을 때가 있다. 특정 물건의 소리나[33] , 녹음 및 믹싱을 잘못했을 때의 그 이질적으로 튀는 공기 소리 같은 것[34] 이나 악기나 여러 사운드들의 역재생[35] 이 자세히 들어보면 군데군데 숨어있다. 그 외에도 여러 실험적인 요소도 집어넣는 경우가 많은데, 밴드 시절부터 생활 소음이나 여러 효과음과 함께 녹음해보는 건 물론이고, 도입부를 본인의 핸드폰으로 녹음한 걸 곡에 그대로 쓰거나, 노래 중간에 기타 솔로 대신 기타 튜닝 소리를 넣는다던가, 대화소리를 넣어본다는 등이 있다.
솔로 초기 음악적 변화의 첫 번째 과도기를 거쳐서부터는 긍정적인 태도와 밝고 희망찬 사운드에 맞는, 전체적으로 보면 즐거움을 나타내거나,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밝고 긍정적인 메세지를 주는 노래가 많아졌다. 그러나 그 건강한 사운드 속에는 상당히 어두운 부분이 계속 숨어있다. 마냥 '낙관적인 밝음'이 아니라, 밝음 이면의 어두움을 인정하고, 암울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가사를 통해,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밝은 사운드 속 어두움을 암시하거나, 밝음을 진지하게 다루거나 부각시키기 위해 어두움을 표현하거나, 어두움과 밝음은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라 궤를 같이 한다 등을 이야기한다.[36]
R&B, 소울, 힙합 등 블랙 뮤직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J-POP에 녹여내어 「옐로우 뮤직」이라는 자신의 장르를 개척해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블랙 뮤직을 그대로 재현하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필터를 거쳐서, 일본인에게 친숙한 음악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옐로우 뮤직' 이라는 장르를 독자적으로 창출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Pop Virus 이후로 그는 '옐로우 뮤직'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편협한 시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무지했음을 인정하며, 현재는 더 이상 이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현재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계속 현재 시대상을 반영하여 그가 영향을 받은 다양한 음악 장르를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재해석하거나 계승하고 있다.
자신의 히트 친 음악을 반복하는 걸 '뭔가 설레지 않는다'며, 비록 대중적인 반응이 좋지 않더라도, 여러 음악적 도전 및 도전하는 방향성의 다양화를 좋아하며 꾸준히 많이 하고 있다. '시대는 항상 변화하고 있고, 내가 하는 음악이 똑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걸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의 가치관이 반영된 부분.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같은 '가볍게 춤추기 좋은 팝 적인 곡'으로 의뢰가 들어와 제작에 착수했던 恋(코이)와 異世界混合大舞踏会(이세계혼합대무도회)는 전혀 다른 사운드를 보여주고 있다.
2.3. 음악 스타일 변천 과정[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음악 변천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23년인 지금까지 호시노 겐의 음악 활동은 23년, 솔로 음악 활동은 약 13년 정도로, 처음 나올 당시에 '슈퍼 루키'나, '천재'는 전혀 아니었다. 시대가 계속 변화함에 따라, 제자리에 안주하는 걸 싫어하고 변화를 계속 추구하는 그의 음악적 가치관 특성상 그의 음악적인 스타일은 계속 변화해왔다.
그의 곡들은 세부적으로 본다면 아주 다양하게 섞여있지만, 아주 최소한으로 간략화해보자면 전체적으로 호소노 하루오미, 재즈, 펑크, 디스코, 힙합, 모타운, 네오 소울, R&B 등 다양한 장르 및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받고, 오키나와 음악, 엔카 등 J-POP의 특징을 넣으며 다음과 같은 수순을 밟고 있고, 더 나아가 2020년대 이후 최근에는 더욱 더 여러가지 변화를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37]
2.4. 디스코그래피[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디스코그래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관련 문서: SAKEROCK/디스코그래피
2.4.1. 작품 참여곡[편집]
솔로 명의만 포함. (그 작품에 배우 또는 출연진으로도 출연한 경우는 연도 옆에 ★ 표시)음악의 역할이랄까, 예를 들면, '주제가가 뭘까?'라고 묻는다면 프로모션을 위해서는 사실은 아니고. 그때까지 있었던 모든 것을 그 악곡을 들으면 생각이 나서, 자기 안에서 정착시키고, 그 작품을 자기 안에 도입하는 작용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무엇인가? 라고 하면 물론 스태프분들을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엔딩 크레딧에 왜 주제가가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그 악곡만 들어도 그 영화나 작품의 여러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고... 그러니까 저의 악곡이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작품이) 이전보다 더 자리 잡겠죠. 그래서 그게 전체적으로 작품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건 넷플릭스가 가진 미디어 특성에 매우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넷플릭스 프로그램 라이트하우스에서 음악 제작 결정을 직접 한 이유에 대한 호시노 겐의 대답
+2 {{{#!wiki style="margin-bottom: -1.5%"
'''드라마 OST'''}}}
- WATER BOYS(후지 테레비, 2003)★
「夏を休んでる場合じゃねぇ(여름을 쉬는 경우도 아닌데)」
「記号の世界(기호의 세계)」
「モテたくてシンクロナイズド(인기 끌고 싶어서 싱크로나이즈드)」 작사ㆍ작곡
- 未来講師めぐる(미래강사 메구루) (테레비 아사히, 2008)
「ぉ前達ァヵデミナール(너희들의 아카데미날)」 작곡
- 11人もいる!(11명이나 있어!) (테레비 아사히, 2011)★
「家族なんです(가족이에요)」 작곡
- 逃げるは恥だが役に立つ(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ED (TBS, 2016)★
「恋(사랑)」
- 과보호의 카호코(過保護のカホコ) (닛폰 테레비, 2017)
「Family Song」
- 半分、青い。(절반, 푸르다) (NHK, 2018)
「アイデア(아이디어)」
- 着飾る恋には理由があって(꾸미는 사랑에는 이유가 있어) (TBS, 2021)
「不思議(불가사의)」
+2 {{{#!wiki style="margin-bottom: -1.5%"
'''애니/영화 OST'''}}}
- 딱따구리와 비 (2012) 「フィルム(필름)」
- ぱいかじ 남해작전 (2012) 「パロディ(패러디)」
- 세인트☆영멘 극장판 주제가 (2013)★ 「ギャグ(개그)」
- 지옥이 뭐가 나빠 (2013)★ 「地獄でなぜ悪い(지옥이 뭐가 나빠)」
- 모라토리움의 타마코 (2013) 「季節(계절)」
- 모리야마 중학교 교습소 (2016) 「Friend ship」
- 극장판 도라에몽 : 진구의 보물섬 (2018) 「ドラえもん(도라에몽)」, 「ここにいないあなたへ(여기 없는 당신에게)」
- 도라에몽 OP (2019.10.05 ~ ) 「ドラえもん(도라에몽)」
- 108~海馬五郎の復讐と冒険~ (2019) 「夜のボート(밤의 보트)」
-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2021) 「Nomad」[39]
- 큐브 (2021) 「CUBE」
- 스파이 패밀리 1쿨 ED (2022, TV TOKYO) 「喜劇(희극)」
- 고스트북 오바케즈칸 (2022) 「異世界混合大舞踏会 (이세계혼합대무도회)」
- 극장판 스파이 패밀리 코드: 화이트 (2023)「光の跡(빛의 흔적)」
+2 {{{#!wiki style="margin-bottom: -1.5%"
'''기타'''}}}
- みいつけた!(NHK) 「なんかいっすー」, 「すわるぞう」, 「おっす!イスのおうえんだん」, 「グローイング アップップ」작곡[40]
- おじゃる丸 スペシャル 銀河がマロを呼んでいる 〜ふたりのねがい星〜 (2012, NHK) 엔딩 「ある車掌」
- J-WAVE 봄의 캠페인송 (2014) 「桜の森(벚꽃 숲)」
- 메자마시 테레비 (2015, 후지) 「Week End」[41]
- 스카파 「리우 패럴림픽 전문 채널」 (2016) - 나레이션, 테마송 「Continues」
- 논스톱 (2016, 후지)[42] 「Nonstop」
- 올 나이트 닛폰 50주년 기념 징글 곡 작곡(2017)
-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5주년 CF (2020)「創造(창조)」
- UCC 우에시마 커피 CF (2021)★「Beyond the Sequence」
- 올 나이트 닛폰 55주년 기념 징글 곡 작곡(2022)
- 2023 부다페스트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2023, TBS) TBS계열 주제가 「生命体」
- 라이트하우스 (2023, Netflix)★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LIGHTHOUSE
- 오도리의 올 나잇 닛폰 in 도쿄돔 주제곡 「おともだち」(오토모다치)
- 일본중앙경마회(JRA) 70주년 CM곡 「一瞬」(일순간)
2.4.2. 노래방 수록 목록[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노래방 수록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5. 콘서트 및 이벤트[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공연 및 행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6. 이야깃거리[편집]
2.6.1. 흑인음악과 일본대중음악의 일체화[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음악적 특징 및 가치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블랙뮤직을 흡수하거나 차용하거나 해서 고유의 음악적 정체성으로 구축하는, 일본 비주류 및 인디음악씬에서 왕성하게 불고 있던 움직임'에 호시노 겐 또한 그 일원이었다. 그보다 더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음악작품들은 인디씬에 많지만, 호시노 겐은 '옐로우 뮤직'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기존 블랙뮤직에서 그만의 필터를 통과시켜 일본의 대중음악 및 상업음악적 색채까지 적절하게 추가해 일본의 일반 대중들과 매니아적인 음악팬들을 모두 고려한 최대공약수적인 음악을 개척해나갔다.
30대 중반부터 진행된 그의 음악 생활인 YELLOW DANCER부터 Pop Virus까지의[44] 그 결과물들은 꽤나 성공적이었고, 당대 일본의 아이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중적 네임드 팝 아이콘이 되었으며, 여럿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주거나 샤라웃을 받는 뮤지션이 되었다. 그는 현재, 이전까지 자신이 내세웠던 '옐로우 뮤직'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편협한 시각이었다는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지만, 이 단어와는 별개로 실제로 이 당시 그의 작업물들은 상업적 대중 음악씬은 물론이고, 인디 음악씬을 포함하여 설명할 때도 종종 사용되는 예시이다.
cero의 「Obscure Ride」와 호시노 겐의 「YELLOW DANCER」, 이 2편은 양자의 디스코그래피에 있어서 분명한 전환점이며, 블랙뮤직의 흡수에 크게 방향을 튼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라고 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중략)
호시노 겐의 『YELLOW DANCER』와 더불어 cero의 『Obscure Ride』의 선행곡의 제목이 'Yellow Magus'였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인 동시성 현상이지만, 옐로우라고 의식적으로 자칭함으로써 블랙뮤직에 대한 거리감을 강제로 해방시킨 것, 또 그 대담함과는 달리 사운드 창조를 쿨하게 마주한 것, 양자의 그러한 도전이야말로 돌파구가 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일본 팝 음악의 지평을 개척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Obscure Ride』와 『YELLOW DANCER』에 깃든 반J-POP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악곡 전개나 사운드 메이킹, 전자에 감도는 도시·도쿄의 느낌이나, 후자에 달라붙는 가요의 맛이 동거하는 모습은, 지극히 앰비밸런스[45]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2023) 연이어 출현하는 카오틱하고 팝적인 소리를 내는 젊은 음악가들의 삐뚤어진 작품을 접하면 이 당시 갑자기 생겨난 이질적인 작품군이 상기되는 것이다. #
호시노 겐이 POP VIRUS(2018)로 그린 '팝'은 혁신적인 것이다. 타이틀 곡인 'Pop Virus'에서 적은 '새기는 한 박의 영원을'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작품은 비트가 음악을 형성한다는 것에 특히 의식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블랙 뮤직을 독자적인 해석으로 자신의 음악에 도입하면서, '옐로우 뮤직'을 만들어 나간다고 하는 호시노 겐의 대처. 그 블랙뮤직 자체가 애초에 시대와 함께 변해가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옐로우 뮤직' 또한 진화해가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호시노 겐은 당연한 듯 힙합 비트를 민감하고도 자연스럽게 팝과 댄스 뮤직에 도입해 왔다. (중략)
시대를 비추며 변화를 거듭해 온 비트의 트렌드. 그러나 거기에는 변함없는 블랙 뮤직의 유전자가 이어져 오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전세계에 계속 확산되는 '팝'의 '바이러스'라고도 할 수 있다. POP VIRUS는 그러한 마음이 담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순수종보다 잡종이 생명력이 강하도록, 「YELLOW DANCER」를 거쳐 탐욕스럽게 하이브리드의 사운드를 요구해 가는 것으로, 이번에 호시노 겐이 확산하려고 하고 있는 바이러스는 앞으로도 또 변이, 진화, 강화해 나갈 것이 약속되어 있는 소리다. #
또한 지금의 인디 음악씬의 융성을 세세하게 살펴보면, SAKEROCK도 포함한 그 시기 작품의 영향이 많은 동시에, 최근에는 cero 등의 밴드 색채를 풍기는 밴드가 일반적이 되었으며, 호시노 겐이 2000년대 데뷔 극초기부터 항상 이야기해왔었던, 호소노 하루오미의 영향을 이야기하는 젊은 밴드가 증가했다. 이는 '호시노 겐이 한창 활동할 당시에 항상 이야기했으나 잘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생각이 이제는 점차 일반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호시노 겐이 몇 년 전 YELLOW DANCER(2015)와 POP VIRUS(2018)를 통해 부단히도 J-POP과 블랙뮤직의 일체화를 꾀했던 것처럼, TOMOO의 첫 정규작 TWO MOON(2023) 역시 이 리드미컬한 음악적 유산을 자연스럽고도 사뿐히 일본의 정서 위에 덧대어 놓는다. (후략)
- 황선업 대중음악평론가 #
2.6.2. 상당한 작업량과 행동력[편집]
모두 중학교 때부터 (연습하기) 시작했던 일들 뿐. 그렇지만 본인은 재능이 넘친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고.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게 되고 싶었습니다." (중략)
음악, 연극 등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 보면 걸음이 느려진다. 같은 세대의 배우에 비하면 출연 편수는 적고, 작품 내용도 한정된다.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한다.
"뭐든지 자기 하기 나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고 싶습니다."
호시노 씨가 만드는 곡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나갈까. 사람의 성장을 보는 듯한 즐거움이 그의 노래에는 있다.
Heroes File Vol.67 (2012)
그가 이때까지 걸어온 행보 때문에 세간에서는 그의 끈기와 행동력 자체를 그가 원래 가지고 있는 예체능적 재능보다 더 크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 #호시노 겐은 어떤 사람인가? 우선 무엇보다 정말로 폭넓은 재능의 소유자입니다. 제가 대표로 있는 KAKUBARHYTHM에서는 겐군의 음악 전반의 일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에 한정된 이야기를 하자면, SAKEROCK으로 만난 2003년 경부터, 겐군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매번 놀랍고, 들을 때마다 다른 각도로 여러가지 정경을 떠올리게 해 주고 있습니다. (중략)
정말 음악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어요. 그다지 열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마음은 굉장한 부글거림과 하고싶은 일이 넘쳐나곤 합니다. 옛날에도 "카쿠바리씨, 이런 걸 하고 싶어요"라고, 당시의 우리에게 있어서는 조금 큰 목표도, 실제로 곧바로 달성해 오거나, 정말 아이처럼 기뻐하고, 아이처럼 "다음에는 이런 것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다가, 그것도 실현해 버리거나 해요. (중략) 그리고 옛날부터의 마음을 지속하고 있어요.
솔로 데뷔 후에도 순조롭게 인기가 생긴 것 같지만,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요. 재능도 물론이지만 자신 안의 목표를 넘어서려는 노력과 행동력과 확고한 의지가 있습니다.
정말 잇달아 아이디어도 나오고, 작품을 재미있게 하는 것, 작품으로서 얼마나 좋게 할 것인가 하는 데에 타협은 일절 하지 않습니다. 작품이 좋아진다면, 토가 나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딪힙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기쁘게 받을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전해져 가는 것의 중요성도 이해하고 있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작년 9월 정도에 뮤직비디오 촬영을 밤새 한 후 아침의 '데니스'에서, 겐 군과 '궤도 수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겐군은 "역시 끝까지 해낼 수 있지만, 그만큼, 냉정하게 궤도 수정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해서, 이 밸런스 감각이야말로 호시노 겐이라고, 소속사 사장이 소속사 아티스트를 너무 칭찬하는 감상이지만(웃음), 굉장히 감탄하며 영향을 받아 '담대하게 하면서, 궤도 수정도 확실히!'를 사훈으로 했던 것입니다(웃음).
POPEYE 2013년 3월호
여러 일을 하는 멀티 엔터테이너로서 연예계에 자리잡았음에도 불구하고, 타 전업 아티스트들이나 싱어송라이터들의 작업량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작업량이 많으며, 일본 내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 중 한 명이 되어버린 이후에도 계속해오고 있다.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을 직접 계속 하고 있고, 라디오 진행, 집필, 본인이 진행하는 여러 방송, 영상 기획 및 연출,
더군다나 연기 활동은 그 배역에 대한 해석과 몰입 때문에 머릿속에 있는 풍경과 이미지를 담아내는 그의 음악 제작 활동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喜劇(희극)을 만들고 있었던 당시 '17세의 제국'이라는 짧은 드라마에 참여했는데 이 드라마 촬영 당시에는 희극 악곡 제작을 하나도 잘 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喜劇(희극) 속 풍경 및 인물들과 17세의 제국에서 그가 맡았던 '타이라 키요시' 배역은 완전히 정반대의 성향인 것도 한몫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으로 솔로 데뷔 13년 차인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리믹스나 피쳐링, 콜라보, 음원으로 내지 않은 CM음악 등을 제외하고 '정규 5개[47] 에, EP같은 곡 횟수를 가진 싱글 13개, 디지털 EP 2개, 디지털 싱글 9곡'이다. 물론 싱글 수록곡 중 일부가 정규 앨범에 포함되기도 하지만. 인디밴드 활동을 포함하여 20년을 보면 여기에다가 밴드 명의로 발매한 '정규 6개, 미니 앨범 1개, 사운드트랙 EP 5개'가 추가되는 셈이다. 거기다가 현재까지도 1년에 한 곡은 어떻게든지 무조건 만들어야하는 소소한 이벤트도 있다.
또한 호시노 겐의 초~중기 싱글 수록곡들 중에는 'House ver.'이라고 표시된 곡들이 존재하는데, 음악 장르의 하우스가 아니라 '집에서 혼자 하루만에 만들었다'는 표시이다. 솔로 초기 예산이 없었을 때 '어떻게 하면 싱글 앨범의 곡 수를 늘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노 게런티로 집에서 혼자 만들어본다는 게 하우스 버전의 기원이며, 하룻밤 사이에 순발력으로 만드는 그런 걸 자신만의 룰로 정했다고 한다. 이 시리즈의 곡들은 극초기 곡들을 제외하면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TR-808소리가 같이 나온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48]
호시노 겐은 뜨기 전까지 '재능이 없다'와 '하나에만 집중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었지만, 그때 당시 소속사에는 '이런 일이 직접 왔다' 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스스로 직접 발로 뛰며 일을 찾고 일을 하고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다만 이런 행동력이 그에게 있어 안 좋은 영향을 끼칠 때도 있었는데, 그가 솔로 데뷔 초중반에 걸렸던 지주막하출혈은 3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수면 시간을 엄청나게 줄여가며 몸을 혹사시키고 여러 방면의 작업과 일을 계속할 때 걸린 병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예전 노래들 가사들을 보며 심적으로 위안을 받고, 여러 다른 노래들을 들으며 투병생활을 견뎠고, 이 지주막하출혈 투병생활 이후 그의 인생관은 변화를 맞이하고 메이저 히트 가수로 점점 올라가게 되는 작용이 되었기도 하다.
그의 실천력은 YELLOW DANCER와 Pop Virus로 음악적 측면, 상업적 측면 모두 대히트치고, 참여한 여러 드라마가 히트치며 30대 중후반에 뒤늦게 성공한 이후에도 계속되는데, 2019년 번아웃 증후군이 왔을 당시 '그것을 타파할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는 그 결과물로서 Same Thing EP를 발매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또한 2020년 코로나 사태로 대외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오히려 이 코로나 사태의 위기를 기회삼아 40살에 DAW와 MIDI 작곡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고 그 작업에 몰두하며 그에게 있어 또 다른 새로운 재시작을 표방하는 여러 작업물을 냈다. 실제로 호시노 겐의 2021년 이후 노래는 DAW로 제작된 것이 많은 걸 감안하면, 그의 전성기 때 만큼은 아니지만, 그가 10~20살 차이나는 후배들과 같이 아직까지 현역으로 계속 뛰게 만들어준 또 다른 발판이 된 셈.
2021년에는 결혼까지 해서 작업시간이 더 줄어들었고, 40대가 된 2020년 이후부터 본인만의 오리지널 곡들보다는 의뢰형식의 곡들을 많이 만들고 있으며, 생활에도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작업량은 줄어들었지만, '의뢰를 받아 일을 만들면 곡을 더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의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가장 위험했을 때 光の跡(빛의 흔적) 악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면서 극복해나갔고 이후 꽤 건강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2.6.3. 빛 속의 어둠과 고독[편집]
관련 문서: SUN(호시노 겐)
솔로 초기 음악적 변화의 첫 번째 과도기를 거쳐서부터는 긍정적인 태도와 밝고 희망찬 사운드에 맞는, 전체적으로 보면 즐거움을 나타내거나,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밝고 긍정적인 메세지를 주는 노래가 많아졌다. 그러나 그 건강한 사운드 속에는 상당히 어두운 부분이 계속 숨어있다.빛 속에 어둠이 있는 호시노 겐
음악적 특징 문단에 상술했으나, 마냥 '낙관적인 밝음'이 아니라, 밝음 이면의 어두움을 인정하고, 암울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가사를 통해,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밝은 사운드 속 어두움을 암시하거나, 밝음을 진지하게 다루거나 부각시키기 위해 어두움을 표현하거나, 어두움과 밝음은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라 궤를 같이 한다 등을 이야기한다.[49]
무명시절 주변의 모든 것을 증오하고 꼭 성공하고 말겠다는 다짐부터 시작해서, 솔로 데뷔 초기부터 Pop Virus까지 그는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 혼자 작업해오고, 혼자 셀프 프로듀싱을 계속해오며 결국 그는 (뮤지션으로 치면 상당히 늦은 나이에) 큰 성공을 맛보게 된다. 그는 사람들 앞에 서는 기쁨,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재미 등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된 성취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고독했던 동시에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계속 밝은 스타로 대우받고 평가받는 것에 지긋지긋함을 느꼈다. 이는 그가 이때까지 긍정적인 태도와 건강하고 밝은 사운드 속 쓸쓸함과 외로움을 남몰래 녹여냈던 이유일 것이기도 하고, Pop Virus 앨범을 중심으로 한 5대 돔 투어와 월드투어 종료 직후 목표와 음악의 순수함을 잃어버리며 걸린 번아웃 증후군의 요인 중 하나였으며, 그가 새로운 자극을 찾아 새로운 음악 및 재시작을 하게 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Same Thing EP를 거치면서 2020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작업물들을 내며 대중들의 머릿속에 자리잡혀있었던 '팝 아이콘'이 아닌, 새로운 재시작과 변화를 끊임없이 내세웠다.호시노 겐은 「恋(사랑)」의 히트 이후, 혹은 그보다 전부터, 스타로서의 중압과 싸워 왔다. 2015년 'SUN'에서 노래한 스타의 고독. 인류를 비추면서도 아무도 곁에 있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고독했던 태양(SUN)과 같은 마이클 잭슨에 대해 노래했던 호시노 겐은 스스로가 스타가 되어 결국 그 비극을 맛보게 되었다.
호시노 겐의 2015년 곡 「SUN」은, 이 히트로 홍백 첫 출장을 완수했을 정도로 캐치하고 즐거운 음악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고독이 새겨져 있다. 'SUN(=태양)'이라고 나타낸 것은 마이클 잭슨을 말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을 비추면서도 아무도 곁에 다가가지 못하는 팝스타의 고독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2018년 'アイデア(아이디어)'에서는 1절에서 스타로서 대중들이 보는 겉모습을, 2절에서 숨겨진 자신의 진심을 노래하며 그 마음에 쌓인 고민을 풀어냈다.
'さらしもの(사라시모노)'에서는 세상에 자신을 제멋대로 해석받는 스타의 입장이 지긋지긋한 그의 내면을 쏟아내고 있다. 엄지손가락이나 가운뎃손가락을 세워 자기 마음대로 평가하는 청중. "나는 태양이 아니야, 빛나 보이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봐주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
그렇게 세대 교체 또한 빠르게 가속화되면서 이제 호시노 겐은 국민적 팝 아이콘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지게 되었고, 그의 작업물들은 변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대중들을 설득시키는데에 전부는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내면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나는 다시 태어났어 / 몇 번이고의 재시작은 / 다시 한 번 따분한 이 세상에서 놀기 위해서야
-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살아난[50]
이 의미는 / 그저 사는 게 아닌 노는 데에 있어(2021)
2.7. NHK 홍백가합전[편집]
순서 항목의 경우 NHK 홍백가합전에 출장한 가수 자체의 순서가 아닌 특별기획으로 구성된 특별무대를 포함. 호시노 겐의 출장과는 별개인 오겐상의 홍백가합전 무대는 이 문서를 참고.
3. 배우[편집]
3.1. 연혁[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생애 및 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 필모그래피[편집]
3.2.1. 무대[편집]
- Penguin Pull Pale Piles vol.2 「워크인 타임머신」(2001)
- 시어터 코쿤 온 레퍼토리 2003 「인간 파산」(2003)
- Penguin Pull Pale Piles vol.8 「246번지의 분위기」(2004)
- 어른계획 우만리브 vol.8 토도로키텐 VS 미나토 카오루 (2004)
- M&O plays 프로듀스 「아이스크림맨」(2005)
- 어른계획 우만리브 Vol.9 「일곱 명의 연인」 (2005)
- 어른계획 우만리브 「우먼리브 선생님」 (2006)
- PARCO 제작 뮤지컬 「카바레」 (2007)
- PARCO 제작 「LOVE LETTERS 2008 SPRING SPECIAL」(2008)
- 시어터 코쿤 「여교사는 두 번 안겼다」(2008)
- 어른계획 우만리브 vol.11 「일곱명은 나의 연인」(2008)
- 어른계획 「삿짱의 내일」 (2009)
- PARCO 제작「텍사스-TEXAS-」(2012)[52]
- 시스 컴퍼니 「미야자와 겐지가 전하는 것」(2012)
- 大人の新感線[53] 「라스트 플라워」 (2014)
3.2.2. 영화[편집]
- 「新しい予感(새로운 예감)」[54] (2002)
- 「69 Sixty Nine」 (2004) - 나카무라 조(中村譲)
「69 Sixty Nine」 - 「논코 36세(ノン子36歳)」 (2008) - 마사루(マサル)
- 「소년 메리켄사쿠(少年メリケンサック)」 (2008) - GOA[55] 기타 보컬
- 「묻지마 사랑(箱入り息子の恋)」 (2013) - 아마노시즈쿠 켄타로(天雫健太郎)
영화 티저영상 - 「지옥이 뭐가 나빠(地獄でなぜ悪い)」 (2013) - 하시모토 코지(橋本公次)
- 「러브 앤 피스(ラブ&ピース)」 (2015) - PC-300 (목소리 출연)
- 「이사 다이묘!(引っ越し大名!)」 (2019) - 카타기리 하루노스케(片桐春之介)
「이사 다이묘!」 웹사이트 - 「죄의 목소리(罪の声)」 (2020) - 소네 토시야
3.2.3. 드라마[편집]
3.2.4. 애니메이션[편집]
3.2.5. 나레이션[편집]
- + COLOR (2005년 4월 3일-9월 25일, 후지TV)
- 나의 10가지 룰 (2009년 4월 7일 - 9월 22일, TBS)
- 야자와 에이키치 & 이토이 시게사토 ~아마추어 사장 두 사람 지금이야말로 ... 돈 이야기 ~ (2010년 8월 1일, NHK E)
- 과외수업 어서오세요 선배님 (2011년 4월 9일, NHK종합)
- 여행의 힘 '내슈빌 28세의 테네시 왈츠 가수 우에무라 카나' (2011년 9월 13일, NHK BS 프리미엄)
- No Smoking (2019)
3.3. 이야깃거리[편집]
배우로서도 2013년에 좋은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 일본 아카데미상 신인상[57] 을 비롯한 여러 신인상을 받았고, 이후로도 시청률 20% 이상을 돌파하고 사회현상을 일으킨 드라마에 주연으로 참여했으며, 2017년에는 장래 유망한 배우들에게 주는 엘란도르상을 수상[58] 했을 정도로 배우로서 자리잡았고, 오구리 슌, 아야노 고 등 여러 배우들과도 여러 합을 맞췄기에 배우로도 일본에 잘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같은 세대의 전업 배우들에 비하면 참여 작품은 조금 적은 편이지만, 다른 배우들에 꿀릴 것 없는 커리어와 코믹부터 시리어스까지 소화하는 연기 스펙트럼과 팬을 가지고 있어, '배우 호시노 겐'을 먼저 알게 되거나, 혹은 '음악가 호시노 겐'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연기에 대해서는 대중들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배우이다.[59] 연기와 캐릭터 해석에 있어서 호시노 겐만의 색채가 있다는 평가도 꽤 있는 편. 이와 관련하여, 감독 츠카하라 아유코는 그의 연기에 대해 감독 또는 각본가의 눈높이에 가깝다며 그 시선으로 대본을 깊고 세세하게 파해치고 같이 여러가지 의논한 것이 꽤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연기력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그가 맡은 역들에 대해서 '음악가 호시노 겐은 배우 호시노 겐의 배역들을 표현할 수 없고, 그의 배역들도 하나같이 캐릭터가 다 다르다'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다른 배우들이 자신의 강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밑바탕과 배경을 만들어주면서도 동시에 자기의 개성을 챙기는 역할이 많다. 상대 배우나 주인공의 옆에 존재하는 역할, 평소에는 우유부단하거나 순박하거나 가벼우면서도 한없이 진중할 땐 진중해지는 경향의 역할, 분위기를 띄우는 캐릭터, (호시노 겐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 된 인물'[60] 의 역할, 어둠이나 사연 등을 숨기고 있는 듯 하면서 특정 인물의 행보에 대해 지켜보거나 남몰래 반응하는 역할 등이 꽤 많은 편이었다.
순박한 초식계 너드남과 능력이 뛰어난 냉혈한 형사를 보여준 그의 대표작들에 비해 한국에서는 팬들을 제외하고 다른 필모그래피가 그닥 많이 돋보이지는 않지만, 2020년 이전까지 개성이 넘치는 배역이나, 비주류적인 감성, 또는 배우로서 상당히 부담스럽거나 망가지거나 다사다난한 배역을 많이 맡았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여럿 보다보면, 피칠갑되는건 기본이고, 코미디적으로 망신당하거나 알몸이 노출되는 장면은 꽤나 흔할 뿐더러, 격한 키스씬과 베드신 연기 유경험자이기도 하고, 심지어 마약 하는 연기 유경험자이기도 하다. 하나같이 대역없이 이루어진 걸 보면
2020년 이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는 않지만, 마음 속에 깊은 어둠을 가지고 있는 배역들이 많아졌는데, 그래서 전반적으로 '조용하면서도 내면의 어둠과 슬픔을 표현하여 압도하거나 휘몰아치는 눈빛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아졌다. #1 #2
일본 내에서 평가가 좋은 각본가인 노기 아키코와의 합이 좋기도 하다. 당장 그가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한 노기 아키코 극본의 작품만 하더라도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MIU404, 죄의 목소리이다. 호시노 겐의 신인 시절을 제외하고, 그의 배우 대표작 및 그가 신인상 이후 받았던 연기 관련 상들이 대부분 다 이 작품들에서 나온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이 작품들 모두 노기 아키코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기도 하다.[61]
여담이지만, 팬들로부터 '호시노 겐의 악역이나 하라구로나 사이코패스 역할을 한번 보고 싶다'고 꽤 종종 들었다고 하며, 호시노 겐 본인 또한 그런 빌런 역할을 해보고 싶은데 그런 배역이 들어오는 일이 2024년인 지금까지도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4. 작가[편집]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전하는 것이 서툴렀기 때문에 22,23살(2003년) 때 '문필을 계속 하면 혹시 억지로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편집자를 찾아다녔고 잡지의 난외에 100글자나 200글자로 잡문을 쓰는 일을 노개런티로 맡게 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당초에는 쓰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점차 부탁되는 글자 수가 증가하고, 2009년에는 첫 에세이집 『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를 집필한다.
여러 에세이집이 30만 부 이상이 팔리고, '생명의 차창에서'는 여러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 북로그 에세이 부문 대상을 받으며 한국에서도 공식적으로 번역판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2023년인 지금까지도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것을 이어오고 있다.
4.1. 저서 / 대담집[편집]
4.2. 연재[편집]
- シアターガイド 「나의 이번 달」
- Quick Japan 「식물인간도 춤출 수 있는 음악」, 「오늘의 사이타마」
- 소년문예 「빙글빙글 파아코」
- 미래창작 vol.1 단편소설 「찻주전자」
- bounce.com[65] 「호시노 겐의 노래하는 소설」
- H (에이치) 「우메보시의 픽션 대마왕」
- 텔레비전 브로스「호소노 하루오미와 호시노 겐의 지평선의 상담」[66]
- TSUTAYA 프리 페이퍼 "VA" 「호시노 겐의 그리고 SAKEROCK은 계속된다」
- 매거진하우스 "ウフ"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 POPEYE 「무릎 위의 영화관」[67] , 「호시노 겐의 12명의 무서운 일본인」
- GINZA 「긴자철도의 밤」
- 다빈치
- 「호시노 겐의 잠자코 나를 따라와」 (2012 ~ 2013)
- 「생명의 차창에서」 (2014 ~)
- AERA
- 「음악 이야기를 하자」
- 「단둘이 이야기하자」
5. 미디어 활동[편집]
5.1. 예능 / 교양[편집]
음악방송 출연 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 곳을 참고. 고정출연인 경우는 연도 옆에 ★ 표시.
- 보스의 ○○시간 (ファミ通(패미통)WaveDVD)
- 우리들과 호시노 군과 미소(俺たちとほしのくんと笑顔) (2008. 02.)
- 우리들과 SAKEROCK과 재밌는 얼굴(俺たちとSAKEROCKとおもしろい顔) (2009. 01.)
- 우리들과 호시노 군의 미소를 다시(俺たちとほしのくんの笑顔を再び。(2010. 03.)
- LIFE!〜인생에 바치는 콩트(人生に捧げるコント)〜 (NHK, 2012 ~ 2017)★
- 사노 모토하루의 더 송라이터스 시즌4 (NHK E) - 2012. 11. 02. / 09.
- 2015년 11월 23일
- 2017년 9월 28일 (호시노 겐 스페셜)
- 2021년 6월 24일
- 2022년 6월 16일
- 호소노 하루오미의 옐로 매직 쇼 2
- 호시노 겐 스페셜, 월드 투어 라이브&인터뷰 (NHK) - 2020. 02. 15
- 게임 게놈(ゲームゲノム) (NHK) - 2021. 10. 15.
- 호시노 겐의 음악 공론(星野源のおんがくこうろん) (NHK E, 2022)★
5.2. 라디오[편집]
- All Night Nippon Creators Night (2008, 닛폰 방송)
- RADIPEDIA (2011 - 2014, J-WAVE)
- 호시노 겐의 Radical Hour (2013, NHK-FM)[68]
-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2016 - , 닛폰 방송)
[7] 그 중에서도 플랫 만돌린은 만돌린이 현대적으로 개량되어 컨트리 등지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악기이다. 밴드 시절 '일본풍' 느낌을 내기 위해 자주 쓴 악기로, 殺すな(죽이지 마라), 慰安旅行(위안여행) 등의 악곡에서 볼 수 있다. 호시노 겐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싼 값에 샀던 플랫 만돌린은 아직까지 집에 고이 놔두고 있다고 한다.[8] 컨트리 장르 등지에서 자주 사용되는 악기이다. 灰空(잿빛 하늘), 七拍酒(칠박주) 등의 악곡에서 볼 수 있다.[9] 19세 때부터 4년 정도, 삼선의 명수로 알려진 주인장 선술집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 그는 매일 오키나와 민요를 듣고 류큐 무용을 배웠다. 밴드 시절에도 이 악기를 종종 사용했으며, 그의 솔로 곡에서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YELLOW DANCER」에 수록된 인스트루멘탈 곡인 Nerd Strut에서 이 악기를 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10] 호시노 겐이 가장 먼저 시작한 악기가 드럼이다.[11] 호시노 겐이 20살 무렵, SAKEROCK와는 다른 레게 밴드의 여성 보컬에게 불려 그 밴드의 베이스 담당이 될 것 같았지만, 그 밴드가 자연 소멸해 실현되지 않았다.[12] 호시노 겐의 음악 공론에서도 이 머신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호시노 겐 본인이 엄청 좋아하고 귀엽다고 느끼는 머신이라고 한다. 호시노 겐의 다른 여러 곡들 외에도 집에서 하루 안에 혼자 곡을 만들어본다는 호시노 겐의 시리즈인 'House ver. 시리즈'에서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아주 자주 쓰이는 머신이기도 하다.[13] 기본 피아노나 신디사이저, 오르간, 토이 피아노 외에도 월리처 일렉트릭 피아노 등을 종종 쓴다. 그 악기가 사용된 대표적인 예시가 Sapiens. 또한, 2020년부터 DAW 곡 제작을 시작하고, 2021년 '不思議(불가사의)' 이후 작품을 거듭할수록
5.3. 광고 / CF[편집]
- 피에트로 「피에트로 드레싱」 - CM
- 제일생명보험 「知っておいていただきたいこと・風景(알아두었으면 하는 것・풍경)」 (2012) - 「生まれ変わり(환생)」 CM
- 시세이도 아넷사 「미소가 반짝(笑顔キラリ)」 편 (2012) - 나레이션, 「夢の外へ」 CM
- 아사히 맥주 「ノンアルコールビールテイスト(무알콜 맥주 테이스트)」 (2016) - 나레이션, 「SUN」 CM
- AC 재팬 「ライバルは、1964年」 (2016) - 나레이션, 「Hello Song」 CM
「ライバルは、1964年(라이벌은, 1964년)」 - 스카파! 「리우 2016 패럴림픽 전문 채널」 - 나레이션
- 일본중앙경마회(JRA) 70주년 CF 「未来へ、走り続ける。」(2024) - 「一瞬」(일순간)
직접 출연한 동시에 악곡이 타이업 된 경우도 포함
- 맥도날드 「朝マック」 (2006)
- 오츠카제약 「ファイブミニ」 (2007 - 2008)
- 도쿄가스 「長男の結婚」 편 (2012)
- 시세이도 마키아쥬 웹무비 「Snow Beauty」 (2015)
- u-can 통신강좌 (2016) - 「時よ」 CM
- 하우스 우콘노치카라 (2016 - 2017)
「Drinking Dance」 - 닛신식품 「日清のどん兵衛(닛신의 돈베에)」 (2017 ~ 2022)[69]
[ CM목록 펼치기 · 접기 ] - 닛신 돈베이 CM 「どんぎつね 篇 (돈베이 여우편)」
닛신 돈베이 CM 「どんぎつね出てきません 篇 (돈베이 여우가 나오지 않습니다 편)」
닛신 돈베이 CM 「どんぎつねの嫉妬 篇 (돈베이 여우의 질투 편)」
닛신 돈베이 CM 「耳は正直 篇 (귀는 정직해 편)」
닛신 돈베이 CM 「編んでいる 篇 (뜨개질하는 편)」
닛신 돈베이 CM 「ふっくらマフラー 篇 (통통 머플러 편)」
닛신 돈베이 CM 「一番好きなもの 篇 (가장 좋아하는 것 편)」
닛신 돈베이 CM 「ツキを招く月見そば 篇 (츠키오 초래 달맞이 소바 편)」
닛신 돈베이 CM 「月見ポケット 篇 (달맞이 포켓 편)」
닛신 돈베이 CM 「大晦日のうそ 篇 (섣달 그믐 날의 거짓말 편)」
닛신 돈베이 CM 「恋七味 篇 (사랑 양념 편)」
닛신 돈베이 CM 「いつもと違うどんぎつね 篇 (평소와는 다른 돈베이 여우 편)」
닛신 돈베이 CM 「そばにキミ 篇(곁에 그대 편)」
닛신 돈베이 CM 「レシート 篇 (영수증 편)」
닛신 돈베이 CM 「煩ぎつね 篇 (번여우 편)」
닛신 돈베이 CM 「寝言 篇 (잠꼬대 편)」
- 삿포로 맥주 블랙라벨 「大人エレベーター(어른 엘리베이터)」 제28탄 (2017)
- NTT docomo (2018 ~ 2021)[70]
- 닌텐도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5주년 기념광고 (2020)[71]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5周年 TVCM - UCC 우에시마 커피 (2021~)
- 「COFFEE CREATION」シリーズ (2021.11~) 특설 사이트
- 「UCC GOLD SPECIAL PREMIUM」(2022.09~)
- 기린 맥주 담려 그린 라벨 (2023~)
- 세키스이 하우스 GRANDE MAISON (2023~)
5.4. 잡지 표지[편집]
호시노 겐 '잡지 표지 모델' 일람 사이트 (일부)
멀티 엔터테이너이다보니 록킹 온 재팬, 롤링 스톤 재팬, MUSICA 등 음악 잡지는 물론이고, '다빈치'같은 도서 잡지, '키네마 순보'같은 영화 잡지 등 여러 방면의 잡지 표지에 오르는 경우도 많으며, 더 나아가 anan, ELLE 재팬, NYLON 재팬, GQ 재팬 등 패션잡지의 표지에 올라간 경우도 있다.
2018년 3월에는 일본의 패션잡지인 「装苑(장원)」에 1936년 1월 창간 이래 사상 처음으로 남성 단독 표지에 올랐다. # 덧붙여 호시노 겐 표지 및 특집으로 발행한 다빈치 2018년 12월호는 며칠만에 완판점이 속출해 잡지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중판(重版) 결정이 나기도 했다. #
- 촬영 비하인드 유튜브 영상 (일부)
5.5. YELLOW MAGAZINE+[편집]
자세한 내용은 YELLOW MAGAZINE+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수상 경력 및 음반 주요 기록[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수상 경력 및 기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연예계의 돌연변이[편집]
배우를 하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 다양한 재능을 구사하고 다양한 표현을 하는 사람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몇 명 알고 있다. 하지만 호시노 군의 표현 스타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뉴타입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이상한 자기주장이나 시비가 없는 것, '나, 뭐든지 해버리니까 멋있지'라고 하는 기운이 전혀 없다. 실로 냉정하게 행동하면서, 주위의 상황을 판단하고, 그러면서도 표현은 뜨겁게 하는 이상적인 표현자인 것이다. (중략) 그러면서, 마음의 뿌리 부분에는 걸쭉한 마그마가 끓고 있다.
뮤지션으로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때로는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연기해 시청자를 감동시키고, 또 어떨 때는 문장이나 토크로 독자적인 세계관을 발휘해 매니악한 민낯을 밝힌다. 멀티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간단하지만, 실로 다채로운 재능을 그 몸에 지니고 있다. (중략)
마찬가지로 음악 활동을 계속하면서 배우로서도 활약하는 인물로서 후쿠야마 마사하루나 나가세 토모야 등을 들 수 있지만, 그러한 미남 타입과 호시노 겐은 다르다. 어느 쪽인가 하면 옆집에 사는 평범한 오빠 스타일. 이렇게 말하면 실례지만, 도저히 코미디를 연기하거나,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의 스테이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호시노의 매력이다.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아무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해치워 버린다는 갭. 스위치가 들어온다고 하는 게 맞을까. 언뜻 보면, 초식계로 보이는 외모와 내용물과의 갭이 그의 큰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후략)
호시노 겐은 왜 사랑받고 있을까? (2016)
그의 신체적인 조건은 일반적인 타 연예인들과 비교해봤을 때 키도 엄청나게 작으며, 얼굴도 잘생기지는 않았고, 몸매도 그다지 좋지는 않으며, 가창력도 좋지 않았고, 타 메인스트림 뮤지션들에 비해 30대라는 꽤나 늦은 나이에 메인스트림 뮤지션으로 올라와 히트쳤으며, 상당히 초식계처럼 보이는, 거의 일반인이다.[73] 개그맨이나 실력파 배우가 아닐 경우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하는 연예계에서 이는 치명적인 단점이며, 신체적 조건으로 인해 혜택을 하나도 볼 수 없었고 오히려 불이익을 볼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호시노 겐은 여러 꽃미남 배우들과 아이돌들이 한창 활동할 당시에 그 시장 속에서 몸집이 커졌기 때문에 더더욱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음악가, 배우, 문필가」등의 직함으로 활동하는 멀티 엔터테이너. 중학생 때 음악과 연극을 동시에 시작해, '어느 쪽으로 좁히는 것이 좋다'라고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양립을 계속해, 게다가 (20대에) 문필도 시작해 현재의 성공을 쟁취했다.
그런 호시노의 원동력이 되고 있던 것은, 주위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며 자각도 하고 있던 '재능이 없다'는 것. '처음부터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할 수 없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능이 없는 사람이 성공하면 굉장하다', '뛰어난 재능이 없으니까 여러가지 도전을 해 보자' 등의 생각이, 멀티 엔터테이너 호시노 겐을 만들어냈다.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그의 다채로움은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재능이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행동했기 때문에 길러진 셀프 브랜딩에 의한 것이 아닐까. (중략)
호시노 겐이 현재와 같은 멀티 엔터테이너가 된 요인 중 하나로서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것은, 전례없는 행동력. (중략) 온화한 서 있는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행동력을 보여 왔다. (중략)
10년 전을 되돌아 보면, 서브컬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을 뿐[72]
전국적인 지명도는 없어 일본 전역의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는다기보다는 마니아틱한 팬들로부터 사랑받는 타입일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그런 견해를 뒤집어, 불과 10년간 일본 전역의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사이 2012년과 2013년에 2번이나, 지주막하출혈의 진단을 받고, 활동 휴식기를 피할 수 없게 된 것. 생명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활동의 폭을 좁히지 않고, 멀티 엔터테이너로 계속 되고 있었다.
레이와 시대에 들어와서 흔들리지 않는 호시노 씨의 활동 스탠스를 드디어 시대가 따라잡고, 코로나가 찾아옴으로써 그 대단함이 돋보인 것은 아닐까? '부담없이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은 친근감을 풍기면서, 막상 일이 되면, 다양한 스킬을 발휘해 간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호시노는, 엔터테이너 뿐만이 아니라 비즈니스 퍼슨에 있어서도, 레이와 시대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호시노 겐은 인기와 경력이 어느정도 쌓이기 전까지 '하나에만 제대로 집중해'라는 소리를 주변에서 계속 들을 정도로 상황이 그렇게 좋지 못했다. 음악과 연기의 연습을 중학교 때부터 같이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20대 배우생활은 순탄하지 못했으며, 30대가 되어서야 여러 신인상을 받으며 배우로서 인정받게 되었고[74] , 그가 메인스트림 싱어송라이터가 된 것도 30대 이후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넓은 연령층의 고정 팬층이 꽤 존재하며, 연예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방송이나 고정출연, 그리고 광고를 여럿 찍었을 정도로 일본의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이다. 당시 연예계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사례여서 힐난하는 안티들도 꽤 있었으나, 호시노 겐이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1명의 성과라고 보기에는 힘든 그의 다양한 성과와 작업물, 그의 '노력하는 재능'에 기반한 실행력과 태도, 연예계에서의 좋은 평판과 그걸로 쌓아온 방송계의 인맥들, 멀리서 보는 잘생긴 연예인이 아니라 호시노 겐만의 차별화된 사랑받는 매력, 그의 여러 직업 사이의 차이에서 나오는 그의 매력 등 여러 작용이 있었을 것이다.
8. 배우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편집]
아라가키 유이와는 2016년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에 함께 출연했으며, 이후 2020년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SP를 촬영할 때 재회한 것을 계기로 촬영을 모두 마친 후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시작했다고 한다. 결혼 발표 회견은 별도로 하지 않았고, 결혼식이나 피로연 일정도 현재는 미정이다. 아직 입적은 하지 않았으며, 향후 시기를 보고 입적할 예정이라고 한다.#배우란 힘든 직업이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남이 쓴 대사를 읊는다. (중략) 늘 거짓말을 한다. 인기를 얻으면 주변사람들이 떠받들어 주면서 누가 주의를 주지도 않는다. 그런 환경 속에서 다른 경쟁 배우들과 밑도 끝도 없는 의자 뺏기 게임을 치열하게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정신상태로 '보통'의 감각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기가 올라갈수록 정신은 고립되고, 분주함에 비례하여 에고 또한 비대해진다. 안 그려려고 노력해도 방자해지고 주변을 살피지 않게 된다. (중략) 점점 더 보통에서 멀어진다.
10대 때부터 활약해 온 그녀에게는 틀림없이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으리라. 아마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터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일터에서 성취할 수 있는 성실함을 찾았고, 더 나아가 웬만한 배우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보통'이라는 상태를 스스로 손에 넣었다. (중략)
그래서 여기에 몰래 글로 칭찬하려고 한다. 부디 그녀가 크랭크업까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당신은 정말로 근사한 보통 사람이야.
호시노 겐의 에세이, 생명의 차창에서 중
2023년 4월, 아라가키 유이가 메자마시 테레비에서 호시노 겐을 언급할 때 '남편'이라는 호칭을 써서[75] 화제가 되었었던 적이 있다. # 호시노 겐도 2023년 라이트하우스에서 아라가키 유이를 '아내'라는 호칭을 써서 언급했다.
8.1. 관련 이야깃거리[편집]
일본을 강타한 히트 드라마에서의 인연이 현실에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까지 크나큰 화제가 되어 여러 이야깃거리나 일화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호시노 겐의 에세이나 라디오에서 아내와의 일화가 종종 나오고 있다.
+2 {{{#!wiki style="margin-bottom: -1.5%"
'''결혼 전'''}}}
- 호시노 겐은 살면서 여자에게 먼저 고백받은 적은 없고 항상 자기가 먼저 고백했다고 한다.
- 2016년 10월 말 라디오에서 '10년 정도 후의 장래희망은?'이라는 질문에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바라건대 아이가 있고, 크고 못난 개와 살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 결혼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으로서 '욕을 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를 통해 사랑이나 결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결혼에 대한 열망이 전혀 없었다고.
- 이후 2020년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SP를 촬영할 때 재회한 것을 계기로 촬영을 모두 마친 후 결혼을 전제로 아라가키 유이와의 교제를 시작했는데, 그렇다보니 예능 등지에 같이 나올 때 교제 사실을 숨기고 예능을 찍는 경우가 많았었다.
+2 {{{#!wiki style="margin-bottom: -1.5%"
'''결혼 후'''}}}
- 결혼 발표 이후에 많이 나온 이야기 중에 하나는 사귀기 시작한 시점이 최소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SP 촬영 종료 시점보다 더 이전이라는 이야기다. 참고로 2018년에 이미 호시노 겐이 아라가키 유이가 사는 맨션[76] 으로 이사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호시노 겐이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2018년 이사 당시에는 아라가키 유이가 살고 있는 맨션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었다고 해명했다.#
- 두 사람이 2021년 5월 19일 결혼을 발표하면서,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자산 가격이 급락하여, 암호자산 시가총액 1조달러(당시 환율로 약 110조엔)가 순식간에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각키 쇼크'라는 도시 전설이 생겨나기도 했다.[77]
- 호시노 겐은 사고가 날 것 같아 무서워서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 그래서 그런건지 아내가 새벽에 차타고 데리러 오는 경우도 있었다.
- 일본 유명인 부부 '공동 출연 CF 출연료'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78]
9. 사건사고[편집]
9.1. 아베 신조 총리 관련 피해[편집]
관련 문서: うちで踊ろう
2020년, 호시노 겐은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코로나 때문에 실제로 만날 순 없지만, 마음이라도 그러한 기분을 내는 컨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50초 분량의 이 노래를 자신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업로드하였고 해당 영상을 자유 저작권으로 풀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해 노래, 춤, 악기 연주, 일러스트 등 여러가지를 시도해달라고 권장했다. 그리고, 일본 국내에서 이 악곡과 호시노 겐의 얼굴을 합성한 다수의 쇼츠나 릴스 등이 파생되어 나왔다.
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가 코로나 사태 대처 미흡으로 많은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SNS에 호시노 겐의 노래와 함께 자신의 일상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게시해 외출 자숙을 호소했다. #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가 유유자적한 모습을 공개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올라왔으며, 호시노 겐의 영상과 본인의 영상을 함께 올려버려서 호시노 겐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와 함께 비난을 받는 피해를 겪었다. 일부 네티즌들이 '호시노 겐이 아베 총리를 지지한다'고 오해한 것이다. 이에 '호시노 겐에게 무슨 민폐냐'며 아베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 호시노 겐 본인이 직접 동영상에 대해 입장을 밝혔는데 아베 측은 자신과 소속 사무소에 사전 연락이나 확인은 사후도 포함하여 일절 없었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
호시노 겐은 해당 영상을 자유 저작권으로 풀었고, 네티즌들에게 이를 활용해 2차 창작을 해달라고 했다는 면에서 '원칙적으로는' 아베 총리가 사용한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 뮤지션의 이벤트를 정치인도 참여한다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정치인의 입장과 지위 때문에 어떻게든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 호시노 겐이 굳이 입장을 밝힌 이유는 일부 네티즌들이 자신이 아베 총리를 지지한다고 오해하자 이를 해명하기 위함과 동시에,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아베 신조 씨(安倍晋三さん)'가 아무 연락이나 허락없이 노래 영상을 퍼갔듯이 노래 영상은 누구나 퍼가도 좋다'고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다. 확실하게 선을 그은 것.
10. 어록 및 평가[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어록 및 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여담[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여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