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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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대한민국 대통령

1. 개요
2. 기록


1. 개요[편집]


대한민국 대통령의 각종 기록을 모은 문서.


2. 기록[편집]



  • 최초로 시신이 국립묘지 이외 장소에 안장된 대통령은 윤보선이다.

  • 최장기 재임 대통령은 박정희로, 1963년 12월 17일 취임해서 1979년 10월 26일 피살당할 때까지 장장 16년 간 집권했다.[1] 최단기 임기자는 최규하로, 1979년 12월 6일 취임 후 1980년 8월 16일 사퇴하여 8개월간 집권했다.

  • 공식 취임 당시 기준으로 최연소 대통령은 박정희로, 1963년 취임 당시 46세(1917년)였다. 최고령 대통령은 김대중으로, 74세(1924년 생)였다.[2]

  • 사망일 기준으로 가장 장수한 대통령은 윤보선(1990년 92세 사망)이며, 가장 단명한 대통령은 박정희(1979년 61세 사망)이다.[3]

  • 퇴직 과정의 경우 다음과 같다.
    • 만기퇴임: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
    • 임기 중 사임: 이승만, 윤보선, 최규하
    • 임기 중 파면: 박근혜
    • 임기 중 사망: 박정희

  • 정계 입문 전의 출신 직업으로는 사업가&기업인(김대중, 이명박)[4], 법조인(노무현, 문재인, 윤석열), 언론인/교육자(이승만), 외교관(최규하, 이승만), 군 장교(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있다. 윤보선[5], 김영삼[6], 박근혜[7]는 사회 진출을 정치로 시작해서 정치로 끝낸 전문 직업 정치인들이다.

  • 대통령 중 여성인 대통령은 박근혜가 유일하며, 나머지는 전원 남성이다.

  • 미혼인 대통령도 박근혜가 유일하며, 나머지는 모두 기혼자이다. 영부인 목록은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 문서를 참고할 것.

  • 기혼임에도 자식이 없는 대통령은 윤석열이 유일하다.

  • 미혼인 박근혜와 기혼임에도 무자녀인 윤석열을 제외한 다른 대통령들의 자녀 여부는 이승만만 유일하게 이 전혀 없이 아들만 있으며, 다른 대통령들은 딸과 아들을 1명 이상씩 두었다.

  • 대통령 중 자살로 일생을 마친 대통령은 노무현이 유일하다. 더불어 대통령 중 질병이나 노환 외의 사유로 서거한 대통령은 박정희와 노무현 단 둘 뿐이다. 거기다 60대에 사망한 대통령 역시 박정희와 노무현 두 명뿐이다. 다만 박정희는 임기 중에 사망했으나, 노무현은 임기 후에 사망한 점이 다른 점이다.


  • 병역 사항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 장교로 복무한 직업군인 출신 대통령은 박정희[8], 전두환[9], 노태우[10]가 있으며, 노무현[11]과 문재인[12]은 대한민국 병역 의무에 따른 일반 사병 출신이다. 김영삼도 병사로 복무 경험이 있지만,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육군 정훈병)으로 간 것이므로 엄밀히 따지면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전원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 이승만, 윤보선, 김대중, 최규하는 징병제가 아닌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고, 박근혜는 여성이라 병역 의무가 없었고, 이명박은 기관지 확장증으로 병역면제 되었으며, 윤석열은 부동시전시근로역 처분을 받았다. 군복무를 한 경력이 있는 역대 모든 대한민국 대통령 모두 군종은 육군이다.


  • 정계에 진출해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가장 오래 걸린 대통령은 김대중으로, 1954년에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한 지 43년 후인 1997년 12월 18일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반면 정계에 진출해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가장 짧게 걸린 대통령은 전두환으로, 같은 1980년 5월 18일에 정계에 진출해서 고작 3개월 후인 1980년 8월 27일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제6공화국 이후 문민 대통령들 중에는 정계 진출 1년도 안 되어[13] 당선된 윤석열이 가장 짧다.

  • 대통령 선거에 출마 경험이 가장 많은 대통령은 5번의 박정희(5-9대 대통령 선거)이고 그 다음은 4번의 이승만(1-4대), 김대중(7대, 13-15대)이다. 단, 박정희의 경우 8대와 9대는 10월 유신으로 인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체육관 선거'였고 이승만의 제4대 대통령 선거는 부통령 부정선거 적발로 인해 무효 처리되었으므로, '정상적인' 선거 출마로 한정하면 김대중이 최다이다. 가장 낙선 경험이 많던 대통령은 김대중(7대, 13-14대). 출마 경험이 가장 적은 상태로 직접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은 1번의 윤석열(20대)이다.[14]

  • 최규하와 윤보선은 임기 시작부터 임기 종료까지 무소속이었던 유일한 대통령이다.

  • 박근혜는 소속 정당에서 강제로 출당당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출당시킨 장본인이 친박의 정적 중 하나였던 홍준표 대표였다.

  • 재임 기간 동안 소속 정당이 바뀐 대통령은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3당 합당)의 노태우,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신당 창당 후 합당, 즉 재창당 수준의 개편)의 김대중,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의 노무현이 있다. 이 중 아예 별개의 정당으로 소속 여당을 바꾼[15] 인물은 사실상 노무현이 유일하다. 그 외에는 단순히 임기 중 여당의 명칭이 바뀐 형태이다.


전반적으로 대통령들의 신장이 동시대의 일반인들 평균 신장보다는 큰 것을 알 수 있다. 남성 대통령 중 최단신이라는 박정희조차도 당대의 일반인 평균 정도는 되었으며, 다른 대통령들은 모두 평균 키 이상이다. 이는 미국 같은 외국에서도 해당되는 사항인데, 사람들이 대체로 은연 중에 체격이 큰 사람들을 리더로서 선호하는 심리가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 외 일본 총리나 중국 최고지도자들도 대부분 자국민 펑균키보다 크다.

최규하는 키가 182cm로 대한민국 역대 최장신 대통령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180cm를 넘는 사람이 대다수인데, 한국 대통령들은 최규하를 제외하고 전원 180cm 이하이다.[16][17] 최규하는 퇴임 후에는 키가 줄었지만, 역대 대통령 회동 영상을 보면 고령임에도 불구, 다른 대통령들을 압살하는 장신의 키를 자랑한다.
박정희의 경우 신장이 164cm로 역대 남성 대통령 중 최단신의 키였다. 반면에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키 170cm로, 당시에 웬만한 여자 배구선수와 견줄만한 큰 키를 가진 장신이었다. 허나 박정희 본인은 이 신체적 특징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지, 연설이나 모임 때 육영수 여사와 동석하는 자리에서 청와대 직원 중 한 명이 두툼한 방석을 박정희의 의자에 놓자, 방석을 곧바로 치워버렸다고 한다.
노태우의 경우 178cm로 1930년대생 치고는 꽤나 큰 키지만, 노태우의 아버지 노병수는 키가 189cm인 엄청난 장신으로 아들보다도 더 크다.

  • 역대 영부인의 키는 손명순이 152cm로 역대 영부인 중 최단신이며, 육영수가 170cm로 역대 영부인 중 최장신이다.

  • 김대중, 노무현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의 학력이 전부 대졸이다.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소학교 졸업(초졸)이 보편적이던 일제강점기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걸 감안한다면 학력이 하나같이 가히 초엘리트 수준이다. 또한 김대중과 노무현은 고졸 출신이지만 김대중은 목포상업고등학교 수석 입학, 노무현은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사법시험 합격 등으로 준엘리트 대우를 받았다.[18] 고졸 이상을 기본 학력으로 보는 현 청년 세대가 기득권이 될 즈음에는 고졸보다 저학력자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더더욱 희박해질 것이다.


  • 공교롭게도 참여정부 때부터 대통령 임기 기간 동안 범세계적 유행성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징크스도 있다. 참여정부 첫 해인 2003년에는 SARS[19] 이명박 정부 재임 중이던 2009년에는 신종플루,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에는 메르스, 문재인 정부 집권 후기에 들어선 2020년에는 코로나19가 발생해 현 윤석열 정부까지 이어지고 있다.


  • 수도권 출신 대통령은 2023년 기준 서울특별시 출신인 윤석열이 유일하다.[21] 그 외에 대구를 제외한 나머지 , 경기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제주특별자치도, 세종특별자치시 역시 대통령을 아직까지 전혀 배출하지 못했다. 이 중 제주특별자치도 출신의 대권주자급 인물로는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이 있다.

  • 가장 동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오사카시에서 태어난 이명박이며, 가장 남쪽에서 태어난 대통령 역시 이명박이다.[22] 가장 북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황해도 평산군 출신의 이승만, 남한, 즉 대한민국 실효지역으로만 따지면 서울특별시 출신의 윤석열이다. 가장 서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 출신의 김대중이다.

  • 대통령을 3명 이상 배출시킨 정당은 아래와 같다.
    • 민주당(1955년): 윤보선, 김영삼, 김대중
    • 신민당(1967년): 윤보선[23], 김영삼[총재], 김대중
    • 통일민주당: 김영삼[총재], 김대중, 노무현
    • 민주자유당: 노태우[총재], 김영삼[총재], 이명박
    • 새천년민주당: 김대중[총재], 노무현, 문재인

  • 전두환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순서는 취임 순서의 역순이다.[24] 공교롭게도 영부인의 나이도[25] 대통령 취임 순서의 역순이다.

  • 징크스로, 역대 대통령들은 안경을 쓰지 않은 사람이 당선되는 경우가 많고[26], 직전 대통령의 유고로 인해 치러진 선거에서는 안경을 쓴 사람이 당선되었다.[27] 또한 1, 2위 기준 안경을 쓴 후보 vs 안경을 안 쓴 후보의 대결에서는 항상 안경을 안 쓴 후보가 승리하는데, 문재인의 경우 2위 후보도 안경을 쓴 홍준표였기 때문. 또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이재명에게 승리하면서 이 징크스가 유지되었다. 정치학계에서는 심리학적 분석과 여론조사를 근거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성향이 평소에는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고 이는 안경을 쓰지 않은 사람에게서 더 두드러진다는 점을 이유로 본다. 반면 직전 대통령의 유고 등 정치 혼란기에는 국민들이 안정을 원하기 때문에 지혜롭고 차분해 보이는 지도자를 원하며, 이는 안경을 쓴 사람에게서 두드러지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28]

  • 또다른 징크스로는, 역대 대통령 중 2명씩은 성이 같은데, 이에 해당하는 경우로는 이승만 - 이명박, 윤보선 - 윤석열, 박정희 - 박근혜, 노태우 - 노무현, 김영삼 - 김대중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징크스에 따르면 앞으로 최씨, 전씨, 문씨 혹은 아예 다른 성씨를 가진 이가 대통령이 될 것이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만약 이재명이 승리했다면 최초로 같은 성을 가진 대통령이 3명이 되는 사례, 또한 가족관계 외의 본관이 중복되는 사례(이명박과 이재명 둘 다 경주 이씨이다.)가 발생할 뻔했으나 윤석열이 당선되면서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기다리게 되었다. 다만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전체의 10%가 안 되는 성씨들이 전 인구의 3/4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언젠가는 이 징크스가 깨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역대 대통령 중 경선 탈락자 출신은 김영삼박근혜 둘 뿐이다. 김영삼은 제7대 대통령 선거 신민당 경선에서, 박근혜는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경선에서 탈락했다.


[1] 나머지 2년은 국가재건최고회의장 및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았다.[2] 다만 퇴임했을 때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60년 4.19 혁명으로 인해 하야했을 당시 85세(1875년 생)로 퇴임 당시 최고령이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24일 퇴임했을 당시에 79세였다.[3] 다만 평균 수명 대비로는 노무현이 가장 단명했다. 박정희는 그 당시 평균 수명보다 오래 살았다.[4] 김대중은 목포시에서 해운회사와 '목포일보'라는 신문사를 경영하였고, 이명박은 평사원으로 시작해서 현대건설 사장이 되었다.[5]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일한 전력이 있으며, 이후 임정을 떠나 영국 유학을 다녀온 뒤에 칩거했다. 당시가 일제강점기라 일본의 협력 요구를 거절한 사례이고, 해방 후에 바로 정계에 투신했다.[6]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장택상의 비서로 활동했다.[7] 서강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후 1974년 ~ 1979년까지는 청와대에서 모친 육영수 여사의 빈자리를 대신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다.[8] 1944년 만주군 장교 임관, 1945년 만주군 해체로 중위 전역. 1946년 대한민국 육군 장교 임관, 1963년 대장 전역.[9] 1955년 대한민국 육군 장교 임관, 1980년 대장 전역.[10] 1955년 대한민국 육군 장교 임관, 1981년 대장 전역.[11] 육군 상등병 만기전역. 만기전역 인데도 상병인 이유는 그 당시에 병장 계급은 분대장이나 월남 파병간 병사들만 달 수 있었다.[12] 육군 병장 만기전역.[13] 2021년 6월 29일 대선 출마 선언(다만 당시 본인은 정치 참여 선언일 뿐이라고 변명했다.), 2021년 7월 30일 국민의힘 입당. 선언 기준으로는 8개월, 입당 기준으로는 7개월밖에 안됐었다.[14] 심지어 윤석열은 이게 대선뿐만 아니라 전체 선출직에 처음으로 나가서 처음으로 당선된 경력이다. 대통령 당선 이전에는 선출직 출마 경력조차 아예 없었다.[15] 이것 때문에 노무현은 탄핵 소추를 당하게 된다.[16]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이후에 재임한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 해리 S. 트루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지미 카터 제외하고는 모두 180cm를 넘기 때문에(그나마 이들도 170cm는 넘어서 단신은 아니다.), 한미정상회담을 할 때면 항상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보다 더 컸다. 최규하 재임 시절에 미국 대통령은 최규하와 키가 비슷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었는데, 최규하는 윤보선과 더불어 한미정상회담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대통령이기 때문이다.[17] 다만 미국 대통령 평균키가 유독 크긴하다. 영프독 총리, 대통령의 평균키는 미국보다 작다.[18] 대선 후보까지 확장해 보면 초졸이 은근 많다. 정주영, 백기완 등. 이재명은 초졸 후 소년공으로 근무하다가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대졸했다.[19] 다만 질병 자체는 김대중 대통령 임기 당시이던 2002년 가을쯤에 처음 발견되었고, 전세계적으로 확산하여 국내에 유입된 때가 2003년이다. 게다가 다른 전염병들과 달리 국내에서는 초기 방역에 일찌감치 성공하여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20] 국군기무사령부 및 현재의 국군방첩사령부의 전신.[21] 다만 박근혜 같은 경우는 출생지 자체는 대구광역시이지만, 성장기 대부분은 아버지직업이 직업이었는지라 서울특별시광주광역시를 오가며 자랐다. 본인은 충청도 억양이 섞인 서울말을 구사하는데, 이는 충청북도 옥천군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22] 대한민국 영토로만 따지면 가장 동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출신의 노무현이지만, 그래봤자 경도를 따지면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출신의 김영삼과 얼마 차이가 안 난다.[23] 대통령직을 마친 후 신민당 창당에 함께 했다.[총재] A B C D E [24] 그 이유는 노무현을 제외하면 동년배들인 전두환, 노태우부터 김대중까지는 나이가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다. 출생 년도는 노무현을 제외하면 김대중(1924년), 김영삼(1927년), 전두환(1931년), 노태우(1932년) 순이다.[25] 노무현의 배우자 권양숙은 제외.[26]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다만 전두환과 이명박도 임기 중반부터는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27] 윤보선(장면), 최규하, 문재인.[28] 이오름 (2021)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안경 착용 여부와 심리 분석 및 여론조사로 살펴본 리더십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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