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세대(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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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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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FIFA 월드컵 러시아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한 로멜루 루카쿠, 에덴 아자르, 티보 쿠르투아[1]

축구 용어로 국가대표팀에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동세대에 다수 등장할 때 쓰는 용어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참가하는 최대의 행사인 FIFA 월드컵이 4년 주기로 개최되기에 아무리 우수한 선수여도 월드컵에 참가 가능한 횟수는 결코 많지 않다. 때문에 국가대표팀에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 전성기 폼으로 최대한 많이 월드컵에 참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시기가 잘 맞아 떨어져서 훌륭한 선수들이 동세대에 배출되어 우수한 전력을 보유했을 때를 황금 세대라고 부른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국가별 축구협회들은, 사실상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대표팀인 A팀의 경기력과 뎁스구축 및 원활한 세대교체를 목표로 유스시절부터 자국의 유망주들을 관리한다. 자국, 타국의 유스팀을 가리지 않고 장래 국가대표가 될 유망주들은 유스팀 시절부터 U12~U19까지 연령별 대표팀에 소집해 국제 경기 경험을 쌓고 동년배 선수들과 손발을 맞추게 된다.

이 때문에 10대때부터 여러 클럽팀에 분산되어 있는 유망주들이라 할 지라도, 앞서나가는 선수는 일찌감치 연령별 대표팀에서 한팀으로 뛰면서 차세대 국대 시험대상이 되거나 유스 대표팀 대회에 출전하며 축구협회는 물론 팬들도 이렇게 연합한 유망주들의 연령별 국제 대회 출전 성과를 중시하게 된다. 이런 구조에서 비슷한 나이대 우수 선수들이 몰려 나와서 유스때부터 국제 대회 성적이 좋은 세대는 황금 세대, 그렇지 않으면 골짜기 세대나 끼인 세대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일반적. 혹은 황금 세대라 불렸음에도 기대 이하의 저조한 성적만 연속으로 기록하면 도금 세대라는 조롱도 받는다.

선수를 사오는 것이 가능한 클럽과 달리 국가대표팀은 철저히 해당 국가에서 태어나는 선수에 의존하게 된다.[2] 따라서 아무리 축구협회가 육성에 힘을 쏟더라도 그에 걸맞는 역량을 지닌 선수가 태어나지 않으면 전력 상승이 어렵다. 이 때문에 황금 세대는 귀중할 수밖에 없다.

2. 예시[편집]



2.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대한민국은 1954년 최초의 월드컵 참가 이후 32년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으며 1986년 월드컵부터 1998년 월드컵까지 4번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으나 단 한번도 승리를 거둔 적이 없다. 그 중 직전 월드컵인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마르세유의 비극을 격으며 세계와의 격차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2002년에 개최국 자격으로 1포트로 본선 티켓을 얻었으나 당시 황금세대 였던 포르투갈과 미국, 폴란드라는 강호들과 한 조가 되면서 홈 경기임에도 비관적인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을 필두로 이번에 작정하고 오랜시간 철저하게 준비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대한축구협회에 엄청난 지원과 K리그의 희생을 토대로 조적력을 끌어올리고 훈련체계 정리, 선수단 체계적 관리, 상대팀 분석, 의무팀 전속 계약 등 모든 시스템을 체계적이고 선진적으로 바꾸면서 한국 축구에 쇄신이 단행되었고 강한 동기부여와 홈 이점을 등에 업은 한국 대표팀은 월드컵 직전 단행된 유럽 강호들과의 평가전에서 놀라운 성적을 내며 월드컵에 대한 기대치를 끌어올린다.

그리고 시작된 월드컵에서 폴란드를 2:0으로 격파하며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승리를 얻어냈고 미국과 1:1 무승부, 우승 후보였던 황금세대 포르투갈을 박지성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잡으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한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대표팀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이탈리아전 2:1승, 스페인전 승부차기 승리로 4강 진출의 신화를 써냈다. 아쉽게 독일에게 1:0으로 졌지만 한국 축구는 이 시점을 기점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4강 신화의 영광 이후 오만쇼크, 도하 참사 등 좋지 못한 일들을 연달아 겪었다. 2006 월드컵에서 원정 첫 승을 따내기는 했지만 대회 직전에 조 본프레레 감독이 사퇴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지라 경기력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웠고 그렇게 영광의 시간이 끝나는 줄 알았다.
2010년 월드컵에서는 새롭게 구성된 황금세대로 반전을 성공한다. 박지성,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으로 구성된 양박쌍용을 필두로 사상 첫 원정 16강의 쾌거를 이뤄낸다. 별도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양박쌍용 라인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손꼽히는 수준의 공격-중원 라인으로 네 선수 모두 탈아시아급의 역량을 지닌 선수들이었고, 2010년 시기에는 각 포지션에서 재능이 만개한 상태였다.

그러나 2011년 아시안컵이 끝나고 지난 10년 간 한국 축구를 이끈 박지성이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은퇴하였고 그 이후 한국 축구는 10년 간의 암흑기에 도래하게 된다. 뒤이어 박주영이 아스날 FC로 이적한 이후 폼이 점점 하락하더니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최악의 활약을 보였고, 이청용은 2011년 선수 인생이 좌우될 최악의 부상을 당하면서 2010년의 황금 세대 주축인 양박쌍용은 해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이어진 이 암흑기 속에서 한국에 또 하나의 황금세대가 고군분투하며 팀을 이끌었는데 그것이 바로 기성용, 구자철로 대표되는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들로 구성된 런던 세대라 불리는 선수들이다. 그리고 암흑기 와중에도 2015 AFC 아시안컵 호주 준우승 주역이 되고, 카잔의 기적에 기여하는 등 나름대로 업적을 남기는 데에도 성공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암흑기의 정점을 찍었지만, 성과가 없었던 세대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런던 세대로 대표되는 구자철과 기성용이 국가대표에서 은퇴하고, 이청용, 김보경, 지동원 등의 기존 주축 선수들도 국가대표와는 멀어지면서 세대교체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대한민국은 92라인과 96라인을 필두로 세대교체를 이뤄낸다. 프리미어 리그 최상위권 윙어로 자리매김하고 2021-22 시즌 득점왕을 차지한 손흥민을 필두로 리그 1에서 두 시즌 연속 10골 이상을 집어넣은 황의조, 2. 분데스리가 탑급 미드필더로 거듭나고 분데스리가에서도 완전히 정착한 이재성이 있는 92라인과 중국 슈퍼 리그를 거쳐 유럽에서도 강팀인 페네르바흐체 SKSSC 나폴리에서 세계 최강의 축구클럽 중 한 팀인 FC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민재를 필두로 유럽 중상위 리그에서 부동의 주전으로 자리잡은 황인범,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의 활약으로 빅 리그에서 뛰고 있는 황희찬이 있는 96라인이 팀의 새로운 주축이 되었고, 여기에 K리그에서 뛰는 김영권, 김진수 등 베테랑, 조규성, 김문환 등 젊은 선수들, 여기에 라리가에서 2022-23 시즌 절정의 폼을 보여주며 파리 생제르맹 FC으로 이적한 이강인까지 끼면서 좋은 스쿼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의 확고한 철학에 이들이 잘 녹아들어 근 두 대회에서 고전했던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편하게 통과하는 데 성공했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12년 만에 역대 두 번째 원정 월드컵 16강을 만들어낸다. 특히 유럽에서도 우수한 수준에 도달한 손흥민과 김민재가 공격과 수비 양면을 담당하고 한국 대표팀 감독 중 최장기로 재임한 파울루 벤투의 탄탄한 전술까지 결합되어 완성도가 높은 전력의 팀이 되었다. 당장 소속팀의 네임벨류와 선수의 가치만 보더라면 이 시기가 최고라고 할수 있고, 호사가들은 전성기 맨유의 박지성과 스완지의 기성용이 이 시기에 뛰었더라면 하는 바램이 있을정도다.


2.2.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황금 세대(축구)/포르투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3.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월드컵에 가끔씩 나오긴 했지만 사실 벨기에를 강국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1930년 초대 월드컵에 처음으로 나왔지만 무려 40년 동안 1승도 없었고, 처음으로 16강 진출을 이뤄내는 데에는 52년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물론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는 4위까지 오르기도 했지만,[3] 이를 제외하면 벨기에의 월드컵 최고 성적은 16강이었다. 유로 또한 1980년 대회에서의 준우승을 제외하면 조별 라운드 탈락이 전부였다. 1972년, 3위에 오르기는 했지만 당시 참가국은 겨우 네 국가였다. 말만 3위지 하위권이었던 셈이었다.

그런 벨기에에 황금폭포가 쏟아지기 시작한 건 2012년 경이었다. 벨기에가 전 포지션에 걸쳐 스타급 선수들을 길러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최전방을 엄청난 피지컬을 소유한 영건 공격수 로멜루 루카쿠가 담당했다. 무엇보다 2선 아래 라인에서 EPL 최정상급 플레이어 에덴 아자르, 케빈 더 브라위너가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이외에 크리스티앙 벤테케, 마루앙 펠라이니도 있었다. 수비 라인은 다니엘 반부이텐, 뱅상 콤파니, 얀 베르통언, 토비 알더웨이럴트, 토마스 베르마엘렌 등 베테랑과 젊은 수비수들이 조화를 이루었다. 골키퍼 역시 티보 쿠르투아시몽 미뇰레 등이 자랐다. 그러던 중에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이 시작되었고, 벨기에는 8승 2무를 기록하며 압도적으로 1위에 올랐다. 벨기에 때문에 크로아티아가 2위로 밀리는 바람에 플레이오프로 가야 했고, 세르비아웨일스예선에서 탈락해야 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는 알제리, 러시아, 대한민국과 함께 H조에 편성된다. 세 경기를 모두 승리한 벨기에는 1위로 16강에 올랐지만, 경기력 자체는 선수들의 이름값에 비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알제리 전은 선제골도 내준 경기를 겨우 뒤집은 경기였고, 러시아 전 역시 90분 내내 한 골을 넣지 못하다가 막판에 극적 골로 겨우 승리한 경기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세 경기 모두 1점 차 승리였다. 그래도 결과에 있어서는 3전 전승으로 16강에 올랐으니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16강에서 만나게 된 상대는 옆 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을 탈락시키고 온 미국이었다. 벨기에는 미국과도 연장전까지 가는 초접전 끝에 데 브라위너와 루카쿠의 골로 앞서가며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미국의 줄리안 그린에게 한 골을 내주긴 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벨기에는 28년 만에 8강에 올랐다. 8강에서는 아르헨티나를 만났지만, 전반 8분에 곤살로 이과인에게 결승골을 내주고 0-1로 패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벨기에는 뛰어난 것은 맞지만 역시 우승 근처까지는 못가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월드컵이 끝난 이듬해, 유로 2016 예선이 시작되었다. 벨기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웨일스 등과 함께 편성된 B조에서 7승 2무 1패, 이번에도 쉽게 1위를 지키며 16년 만에 유로 복귀에 성공한다. 유로에서는 이탈리아아일랜드, 스웨덴을 차례로 만나는 어려운 일정을 만나게 되었다. 이탈리아와의 첫 경기에서 0-2로 완패하며 매우 불안한 스타트를 끊었으나 아일랜드 전과 스웨덴 전을 내리 3-0, 1-0으로 승리해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헝가리를 만난 16강에서는 4-0으로 승리하며 이탈리아 전은 단순 폼의 저하로 인한 부진으로 보였다. 그러나 웨일스를 만난 8강에서 벨기에는 선제골을 넣고도 세 골을 내주며 1-3 역전패를 당하며 8강에서 탈락하고 만다. 나름 우승까지 노리고 나온 벨기에에게는 너무도 이른 탈락이었다. 결국 황금세대를 이끌고도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마르크 빌모츠 감독은 해임되었다.
빌모츠의 후임으로는 '생존왕'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감독이 선임되었다. 더불어 프랑스의 레전드 티에리 앙리도 수석 코치로써 벨기에와 함께 했다. 마르티네스 감독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벨기에를 이끌고 9승 1무의 결과물을 내며 예선 1위로 월드컵에 직행하는 등 스타 군단을 잘 이끌어내는 듯했다. 그러나 마르티네스 감독은 선수들과 갈등을 빚어내며 불안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케빈 더 브라위너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해 선수와 언쟁을 하기도 했고, 라자 나잉골란과는 아예 불협화음을 내는 바람에 나잉골란은 결국 러시아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제외되며 국가대표를 은퇴하고 만다. 경기력과 결과에는 크게 문제가 보이지 않았지만 내부로는 조금의 트러블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벨기에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파나마, 튀니지, 잉글랜드와 함께 G조에 편성된다. 파나마와의 첫 경기에서 초반 어려움을 이겨내고 3-0 완승을 따냈고, 이어 튀니지 전 5-2 대승까지 더해 이번에도 두 경기 만에 16강에 오르게 되었다. 뒤이어 잉글랜드와의 1위 결정전 역시 1-0으로 승리했고, 16강에서는 일본을 만나 후반에 두 골을 먼저 내줬지만 베르통언의 행운의 골과 교체되어 들어간 펠라이니와 샤들리가 만들어낸 두 골로 역전승을 만들며 8강까지 오른다. 8강에서는 네이마르브라질을 만나는데, 벨기에는 전반전에만 페르난지뉴의 자책골과 케빈 데 브라위너의 골로 두 골을 만들어내며 완벽하게 경기를 지배했다. 결국 브라질까지 떨어뜨리며 32년 만에 준결승까지 오른다. 준결승에서는 프랑스를 만나 0-1로 패했지만, 3,4위 순위 결정전에서는 조별 라운드에서 만난 잉글랜드를 다시 상대해 이번에도 2-0으로 승리, 최종 3위를 기록했다. 이는 벨기에의 월드컵 최고 기록으로 남았다. 파나마와 튀니지 등을 상대로는 클래스로 압도하며 쉽게 승리를 따냈고, 잉글랜드와 브라질 등을 상대로는 끈끈한 조직력까지 앞세웠다. 일본 전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마르티네스 감독의 전술 변화와 기지가 빛났다. 4년 전에 비하면 훨씬 완벽한 붉은 악마로 진화한 것이다.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뒤, 벨기에는 여러 A매치에서도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FIFA 랭킹 1위까지 오른다. 어느 덧 세계 정상에 오른 벨기에의 황금 세대는 계속 빛날 줄 알았다.

그러나 2020년 이후 뱅상 콤파니의 은퇴와 토비 알더웨이럴트, 얀 베르통언의 노쇠화로 수비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8 월드컵에서 맹활약하는 등 팀의 에이스이자 상징이었던 에덴 아자르가 폼이 급격히 하락해버렸고, 주포 로멜루 루카쿠도 첼시 이적후에 폼이 상당히 안좋아졌다. 이렇게 주축 선수들이 점점 노쇠화나 폼하락이 오면서 황금세대가 서서히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결국 2022년 4월에 브라질에게 피파랭킹 1위자리를 내주었다.

벨기에의 황금세대는 맴버자체는 화려하지만 실제 메이저 대회 성적이 그에 비하면 못 미치는 편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제외하면 모든 메이저 대회에서 8강에서 탈락을 했다. 이때문에 우승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팀이며 도금세대라는 오명을 쓰기도 한다. 사실 월드컵에서의 성적은 경쟁팀들의 전력을 감안할 때 받아들일 만한 편이지만, 유로 대회에서의 결과는 매우 아쉬운 수준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벨기에는 캐나다, 크로아티아, 모로코와 함께 F조에 편성되었다. 비록 황금세대가 노쇠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긴 했지만, 벨기에는 피파랭킹 2위였기에 못해도 16강에 진출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캐나다와의 1차전부터 졸전 끝에 1:0으로 신승을 거두었다. 전반 초반부터 알폰소 데이비스에게 페널티 킥 실점을 허용할 뻔 하는 등 경기력적인 측면에서 아예 캐나다에게 밀린 경기였다. 그리고 이런 불안감은 2차전에서 터지고 만다. 모로코와의 2차전에서 0:2로 패배하며 조별리그 탈락 위기까지 내몰리고 말았다. 더불어 16강을 자력으로 확정짓기 위해서 무조건 이겨야만 했던 크로아티아와의 3차전을 0:0으로 비기며 1승 1무 1패를 기록, 조 3위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직전 월드컵 3위팀이 조별리그 3위 팀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3차전에서 루카쿠가 단 한골만 넣었으면 황금세대의 종말은 벨기에가 아닌 크로아티아였다. 이로써 2010년대 벨기에의 황금세대는 허무하게 종말을 알렸다.

2.4.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백업까지 두터웠던 팀이라 조별리그 3차전에서는 로테이션을 아주 적절하게 돌렸고, 알짜배기 강팀들과 맞이한 8강부터는 이 라인업으로 고정시켰으나 4강전에서 블랑이 퇴장당하여 결승전에는 블랑 자리에 No.3 센터백 프랑크 르뵈프(당시 첼시)가 들어갔다. 앙리는 당시에 윙어로서 16강까진 주전이었으나 이후 포메이션이 바뀌며 교체 자원으로 밀려났고, 트레제게는 주전 공격수 기바르쉬, 뒤가리가 다치면서 조별리그와 16강전까진 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전경기 출전했으나 8강부턴 앙리와 마찬가지로 후반 교체자원으로 투입되었다. 16강전까진 4-2-3-1 진형으로 3선에 2명을 배치했으나 8강부터는 4-3-2-1로 3명을 배치하고 데샹, 프티, 카랑뵈로 고정시켰다. 이들의 백업은 알랭 보고시앙(당시 삼프도리아)였으며 백업의 백업은 파트리크 비에라였다.

월드컵을 차례나 들어올린 프랑스도 현재 이름값과는 달리 과거에는 월드컵에는 간간이 나오기만 하는 그저 그런 나라였다. 1998년 우승컵을 들어올리기 전까지 프랑스는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3위 말고는 엄청 눈부신 결과물을 낸 적도 없었다. 물론 3위도 잘한 것이지만, 프랑스 정도 되는 나라가 월드컵에서 결승 한 번 오르지 못했다는 건 조금 놀라운 일이다. 1990년대 초중반 사이에는 에릭 칸토나장 피에르 파팽, 다비드 지놀라 등의 클래스 있는 선수들로도 두 번이나 연속으로 월드컵 예선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우승컵을 들어올린 1998년 월드컵이 프랑스 입장에서는 12년 만에 출전한 월드컵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로에서는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0에서 꼴찌, 그리고 24년 동안 유로에 출전도 못했다. 그리고 UEFA 유로 1984에서 미셸 플라티니원맨쇼로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그 뒤로는 또 다시 UEFA 유로 1988 예선 탈락, UEFA 유로 1992에서도 조별 라운드 탈락하며 약을 먹은 듯 죽어갔다.

그러던 프랑스 축구는 1996년부터 살아나기 시작했다. UEFA 유로 1996에서 프랑스는 스페인, 루마니아, 불가리아를 만난 B조에서 1위로 8강에 올랐고, 8강에서는 네덜란드를 잡고 준결승까지 오르며 간만에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1998년, 프랑스는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위해 디디에 데샹유리 조르카에프, 로랑 블랑, 지네딘 지단, 에마뉘엘 프티, 마르셀 드사이, 비셴테 리사라수, 릴리앙 튀랑, 파비앵 바르테즈 등의 정상급 선수들을 이끌고 나섰다. 그 결과 조별 라운드 세 경기에서 모두 승리, 16강과 8강에서도 파라과이이탈리아를 잡고 12년 만에 준결승까지 올랐다. 준결승 상대는 첫 출전에 준결승까지 올라온 크로아티아였는데, 프랑스는 크로아티아까지 잠재우며 월드컵 최초로 결승전까지 오른다. 결승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브라질. 호나우두베베투, 히바우두, 둥가, 카푸, 호베르투 카를루스 등이 선발로 나온 브라질을 상대로 프랑스는 전반에만 지단의 두 골로 앞서 나갔고, 막판에는 프티의 쐐기골까지 터지며 3-0으로 승리하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2년의 침체기 끝에 들어올린 사상 첫 월드컵 트로피였다. 캡틴 데샹과 마에스트로 지단을 중심으로 한 이 세대는 2년 뒤 유로 2000에도 이어졌다. 조별 라운드에선 네덜란드에 밀려 2위로 8강에 올랐지만, 8강에 올라서는 스페인을, 준결승에서는 포르투갈을 잡으며 다시 결승에 올랐다. 그리고 결승전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2-1로 역전승을 따내며 월드컵에 이어 유로까지 제패했다. 그리고 이듬해, 프랑스는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까지 제패하며 막을 이 하나 없는 세계 최강국으로 이름을 떨친다.

그리고 이듬해 열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는 조별 라운드에서 세네갈, 우루과이, 덴마크를 만난다. 누가 봐도 프랑스가 당당히 1위에 오를 것으로 보였다. 프랑스는 지난 월드컵 우승을 이루어낸 디디에 데샹과 로랑 블랑 등이 떠났지만 지네딘 지단, 에마뉘엘 프티, 릴리앙 튀랑, 비셴테 리사라수, 마르셀 드사이, 파비앵 바르테즈, 티에리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 파트리크 비에라 등이 여전히 건재했고, 원조 마지우개라 불리는 클로드 마켈렐레도 이번 월드컵을 통해 메이저 대회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조별 라운드 첫 경기, 동시에 대회 개막전이기도 했던 세네갈 전에서 프랑스는 뜻밖에도 0-1 패배를 당하고 만다. 점유율도, 슈팅도 세네갈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음에도 한 골을 넣지 못해 당한 끔찍한 패배였다. 후유증이 컸던 탓인지, 다음 경기인 우루과이 전에서도 프랑스는 졸전 끝에 0-0으로 비기고 말았고, 꼭 이겨야 했던 덴마크 전은 오히려 0-2로 져버리고 말았다. 누구도 막지 못해 보였던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가 월드컵 짬찌에게 막혔고, 물이 고일 대로 고인 왕년의 챔피언을 상대로 끙끙대더니 4년 전 월드컵 조별 라운드에서 이겨 본 상대에게까지 패배하며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조별 라운드에서 초라하게 탈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프랑스의 광탈을 시작으로, 유럽 출신의 월드컵 우승국은 다음 대회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한다는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가 유행하게 된다.[4]

끔찍했던 한일 월드컵이 끝나고, 유리 조르카에프와 에마뉘엘 프티는 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이듬해, UEFA 유로 2004에서 나선 프랑스는 조별 라운드에서 1위로 8강에 오르며 다시 살아나는 듯 싶었지만, 8강에서 그리스에게 0-1로 패하며 탈락한다. 그리고 유로 2004가 끝난 뒤, 비셴테 리사라수와 마르셀 드사이도 은퇴를 선언했다.

2년 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 나선 프랑스는 스위스대한민국, 토고를 G조에서 만났다. 당시 프랑스에는 티에리 앙리와 다비드 트레제게, 패트릭 비에이라, 클로드 마켈렐레, 파비앵 바르테즈 등 영광의 선수들이 몇몇 남아 있었고, 프랑크 리베리에릭 아비달, 윌리엄 갈라스, 플로랑 말루다 등 젊은 선수들도 새로이 함께 했다. 그래도 대표팀 상황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결국 대회 한 달 전인 5월에 선수 은퇴를 선언했던 지네딘 지단과 릴리앙 튀랑이 월드컵을 위해 다시 복귀하기까지에 이른다. 이렇게 든든하게 선수진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첫 경기 스위스 전을 0-0 무승부로 그쳤고, 대한민국 전에서는 앙리의 골로 앞서가다가 후반 35분 경에 박지성에게 동점골을 내주어 1-1로 비기며 또다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마지막 토고 전을 꼭 이겨야 했는데, 지네딘 지단이 경고 누적으로 그 경기에 나오지 못하게 됐다. 이는 마치 대회 직전 지단이 부상을 당해 패배했던 세네갈 전이 떠오르는 불길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도 프랑스는 비에이라와 앙리의 골로 2-0으로 승리해 16강에 오른다. 16강에서는 스페인을 만났는데, 1-1로 맞붙다가 막판에 비에이라와 지단이 골을 넣으며 3-1로 승리한다. 8강 상대는 의 브라질. 이번에도 프랑스는 지단이 원맨쇼를 선보이며 브라질을 털고 다녔고, 지단의 도움을 받은 앙리의 결승골로 준결승에 올랐다. 준결승에서는 포르투갈을 1-0으로 잡으머 8년 만에 다시 결승에 올랐고, 결승에서는 이탈리아에게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배하며 두 번째 우승에는 실패한다. 대회 전 쌀쌀맞기만 했던 평가와는 달리 그래도 결승까지 오르며 체면치레를 하는 데에는 성공한 프랑스였다.

그러나 프랑스에는 다시 침체기가 도래하고 만다. 지네딘 지단이 완전히 은퇴한 뒤, 프랑스의 진짜 문제점이 제대로 드러난 것이다. 팀 내에서 파벌이 갈라져 하나가 되지 못한 데다, 이들을 잘 이끌어야 했던 레몽 도메네크 감독은 이에 대해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방치해 두고 만 것. 결국 프랑스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가득 떠 안고 UEFA 유로 2008에 나섰다가 조별 라운드에서 1무 2패, 조 꼴찌로 탈락하게 된다. 유로 2008 뒤로 비에이라, 마켈렐레, 사뇰 등이 대표팀을 은퇴를 선언했지만, 프랑스는 유로 2008과 같은 사건이 있었음에도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는지 이를 해결하려는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결국 레몽 도메네크 감독이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프랑스를 끌고 가게 되었고, 이에 다비드 트레제게 역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베테랑들이 모두 빠지고 선수들은 서로 싸우기 바쁜 가운데 프랑스는 예선부터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결국 세르비아에 밀려 플레이오프로 향하게 된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아일랜드를 만났는데, 종합 점수 1-1로 연장전에 돌입한 상황에서 앙리가 신의 손으로 갈라스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프랑스는 겨우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하게 된다.

결국, 단합도 되는 선수들이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무능한 감독이 함께 한 프랑스의 남아공 월드컵은 두말할 것도 없이 시원하게 망해버리고 만다. 우루과이와 0-0으로 비기고, 멕시코남아공에게 각각 0-2, 1-2로 패배하며 이번에도 조 꼴찌로 탈락하는 치욕을 맛본 것이다. 그나마 한일월드컵 때보다 나은 것이라곤 1득점을 했다는 점 하나 뿐. 결국 도메네크 감독은 해임당했고, 티에리 앙리 역시 은퇴를 선언했다. 프랑스의 레전드 센터백인 로랑 블랑이 감독으로 선임됐지만, UEFA 유로 2012에서도 8강에서 탈락하며 무너져 내린 프랑스를 막지 못하고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3년 즈음부터 성공적인 세대 교체로 맞이한 데샹 키즈들이 새로운 황금 세대로 떠올랐다.
이 때 등장한 감독이 1998년 월드컵 우승 당시 주장으로 함께 했던 디디에 데샹이었다. 데샹 감독은 초반에는 블랑과 같이 방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전열을 가다듬는 데 성공했고, 블랑 감독이 실패한 4-3-3 전술을 성공적으로 이식시키면서 팀을 완성해갔다. 그런 덕분에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프랑스는 8강까지 올라갔고, 점점 예전의 맹위를 조금씩 되찾았다.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뒤, 데샹 감독은 일부 선수들에 거쳐 세대교체 또한 진행했는데, 물의를 빚은 카림 벤제마마티유 발부에나 등을 빼고 앙토니 마샬은골로 캉테 등을 대표팀에 불러들였다. 그 결과 프랑스는 신구가 적절히 섞인 완벽한 팀으로 진화했고, 최고의 선수단을 꾸려 UEFA 유로 2016 만을 벼르고 있었다. 유로 2016에서 프랑스는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16강에 오른 뒤부터는 그야말로 최고의 경기력을 뽐냈다. 아일랜드에게 2-1로 역전승했고, 16강에서 잉글랜드를 잡고 올라온 아이슬란드를 상대로도 5-2로 대승하는 등 막강 화력을 뽐냈다.[5] 준결승에선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 독일을 만나서 경기력으로 압도한 끝에 2-0으로 승리했고, 16년 만에 유로 결승에 올랐다. 유로 결승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포르투갈을 만났다. 그러나 프랑스는 호날두가 경기 도중 부상으로 빠진 포르투갈을 상대로 결정력 저하 때문에 골을 터뜨리지 못해 결국 경기는 연정전으로까지 이어졌고, 연장 후반 4분 포르투갈의 에데르에게 한 골을 내주며 위기에 몰렸다. 다급해진 프랑스는 포르투갈에게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지만, 페페가 버티는 포르투갈의 수비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결국 경기는 포르투갈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프랑스는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어도 성공적인 세대 교체로 지단 세대의 뒤를 잇는 두 번째 황금 세대를 이루어냈다.

유로 2016이 끝나자마자 진행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프랑스는 7승 2무 1패를 기록하며 월드컵으로 향하였다. 유로에서 결승에 갔던 선수들에 킬리안 음바페, 우스망 뎀벨레, 코랑탱 톨리소, 벵자맹 파바르 등 어린 선수들이 중심을 이룬 프랑스는 매우 빠르고 파괴적이었으며, 무려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3위를 기록한 네덜란드까지 프랑스에 밀려 예선에서 탈락할 정도였다. 월드컵에서는 호주, 페루, 덴마크와 한 조에서 만났는데, 앞선 두 경기를 모두 승리하며 두 경기 만에 16강에 진출했다. 덴마크 전에서는 볼을 돌리기만 하면서 졸렬하게 무득점 무승부를 따냈고, C조 1위가 된 그들은 D조 2위 아르헨티나를 만나게 된다. 아르헨티나 전에서는 대회 최고의 명경기를 만들어내면서 4-3으로 승리했고, 8강에서는 우루과이를 만나 2-0으로 승리하며 12년 만에 준결승에 오른다. 준결승에선 브라질을 잡고 온 벨기에를 만났고, 이번에도 1-0으로 승리해 결승까지 올랐다. 그리고 결승에서는 크로아티아에게 4-2 승리를 따내면서 20년 만에 월드컵을 들어올렸다. 디디에 데샹 감독은 선수와 감독으로써 모두 월드컵 우승을 이루어낸 세 번째 감독이 되었고, 킬리안 음바페는 신인상과 함께 월드컵 결승에서 골을 터뜨린 두 번째 10대 선수가 되는 등 개인적인 경사도 많았다. 폴 포그바는 우승 멤버들과 함께 월드컵 우승 반지까지 맞추며 우승에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뒤 프랑스는 여러 A매치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였다. UEFA 네이션스 리그/2018-19 시즌에서는 결승 진출에 실패해 챔피언 체면에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우수한 유망주들을 계속 배출해내고 있는 마르지 않는 황금샘 프랑스이다.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는 2승으로 일찌감치 16강을 확정지으며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를 깨부순 건 물론, 상대한 폴란드-잉글랜드-모로코를 연파하며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아르헨티나를 만나서 3:3으로 비긴 끝에 승부차기에서 패배했지만 2회 연속 결승에 오르면서 황금세대의 막강함을 증명해내고 있다.[6]

2.5.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스페인은 화려한 선수들을 여럿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대회, 특히 월드컵에만 나서면 작아진 나라였다.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뜻밖의 국가들에게 점수를 따내지 못한 탓에 조별 라운드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조별 라운드에서 잘 풀려도 이름값에 비해서는 높게 가지 못하던 나라가 바로 스페인이었다.[7] 특히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는 나이지리아와 파라과이에게 밀려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했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는 개최국 대한민국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해 8강에서 탈락하는 등 1990년대에 들어서는 자신들보다 몇 수는 아래인 나라들을 상대로도 이해할 수 없는 패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던 스페인에게 서광이 든 때는 바로 UEFA 유로 2008이었다.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의 지휘 아래 다비드 비야, 페르난도 토레스,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샤비 알론소, 세스크 파브레가스, 다비드 실바, 카를레스 푸욜, 카를로스 마르체나, 알바로 아르벨로아, 세르히오 라모스, 이케르 카시야스 등의 스타 선수들이 전 포지션에 퍼져 훈련을 받았고, 마침내 상대방에게 공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패싱 축구 전술 티키타카를 장착한 본선에서 조별 라운드를 전승으로 통과, 토너먼트에서도 이탈리아, 러시아, 독일을 차례로 때려눕히며 44년 만에 유로 정상에 올랐다.[8] 오랫 동안 토너먼트 중간에서 이변의 먹잇감이 되기만 하던 스페인이, 간만에 메이저 대회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전성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로 2008을 마지막으로 아라고네스 감독에 이어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 스페인을 이끌게 되었고, 유로 우승 주역들이 대거 함께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예선을 10전 전승으로 통과하며[9] 2년 전의 우승이 요행이 아님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그렇게 이번 월드컵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평가 속에 그렇게 스페인은 본선에 나섰다. 첫 경기에서 스위스에게 뜻밖의 0-1 패배를 당하기는 했지만, 남은 두 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따내며 조 1위로 16강에 올랐고, 토너먼트에서는 포르투갈, 파라과이를 차례로 1-0으로 잡으며 60년 만에 준결승에 올랐고, 준결승에서도 독일을 1-0으로 잡으며 최초로 월드컵 결승까지 오른다. 결승전 상대는 이번 대회 본선에서 6전 전승을 달리던 네덜란드였고, 스페인은 마침내 그 네덜란드마저 연장 접전 끝에 이니에스타의 결승골로 물리치고 사상 첫 월드컵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2년 뒤, UEFA 유로 2012에서는 대거 멤버 변화가 일어났다. 포메이션은 과거의 4-2-3-1이 아닌 4-3-3, 그것도 제로톱에 가까운 4-3-3으로 바뀌었고, 선수진 역시 공수의 핵이라고 해도 이견이 없는 다비드 비야와 카를레스 푸욜이 떠나고 알바로 네그레도조르디 알바, 후안프란 등 이전에 불리지 못했던 선수들이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그럼에도 스페인은 여전히 건재했고, 조별 라운드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만 비겼을 뿐, 아일랜드와 크로아티아를 연파하며 이번에도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올랐다. 8강에서는 프랑스를 2-0으로 잡았고, 준결승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의 라이벌 포르투갈을 만나 승부차기 끝에 승리해 4년 전에 이어 다시 한 번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 상대는 대회 첫 상대였던 이탈리아였고, 스페인은 첫 경기에서 이기지 못한 아쉬움이라도 토해내듯 이탈리아에게 융단폭격을 쏟아내며 4-0으로 승리, 4년 전에 품은 앙리 들로네 컵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스페인이 유로 역사상 최초의 2연속 우승과, 세계 축구 역사상 최초의 메이저 대회 3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작성하는 순간이었다.


2.6.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우루과이는 월드컵의 첫 주인공이자, 현재까지도 남미의 강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루과이에게도 암흑기가 있었는데, 바로 1990년부터이다. 우루과이는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 16강에 오른 뒤로 무려 20년 동안이나 조별 라운드는 커녕 예선도 뚫지 못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총 네 번의 월드컵 중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만 본선에 올랐을 뿐, 나머지 대회는 나오지도 못하던 게 우루과이였다. 나름 월드컵을 들어올린 적도 있는 우루과이로써는 아픔이 아닐 수가 없던 시간이었지만, 2010년 오스카 타바레스 감독이 우루과이의 영웅으로 등장해 이 암흑기를 끝내고 만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륙간 플레이오프 끝에 겨우 나선 우루과이는 끔찍한 조 편성을 받는다. 호스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16강은 기본으로 간다는 멕시코, 거기에 지난 대회 준우승국 프랑스까지 끼어 있어 우루과이의 16강 가능성은 크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우루과이는 프랑스와의 첫 경기에서 프랑스를 완전히 압도하고도 그 한 골을 못 넣어 무재배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남아공을 상대로 한 다음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자블라니 마스터 디에고 포를란이 중거리 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렸고, 그 뒤로도 포를란의 페널티킥 골과 알바로 페레이라의 끝내기 골까지 더해 3-0 대승을 따낸 것. 이 승리로 우루과이는 마지막 경기를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1위로 갈 수 있는 아주 좋은 위치를 가져가게 된다. 멕시코를 상대로 한 마지막 경기에서도 우루과이는 루이스 수아레스의 결승골로 기어이 승리했고, 그 무시무시한 조에서 1위로 20년 만에 16강에 올랐다.

16강 상대는 원정 첫 16강을 이뤄낸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을 상대로 우루과이는 상당히 어려운 경기를 펼쳤지만, 수아레스가 두 골을 터뜨리며 2-1로 승리해 8강에 올랐다. 16강에 이어 8강까지 오르니 축구 팬들 역시 우루과이가 어디까지 더 올라갈 수 있을지 주목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8강에서 우루과이는 가나를 만나 치열한 접전을 벌였고, 승부차기 끝에 승리해 준결승까지 올랐다. 참고로 우루과이가 마지막으로 준결승에 오른 건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대회로, 무려 40년 전 일이다. 40년 만에 준결승까지 오르자 우루과이 팬들은 난리가 났고, 우루과이는 준결승에서 네덜란드를 만나게 된다. 네덜란드를 상대로 상당히 잘 싸웠지만 우루과이는 아쉽게도 2-3으로 패해 결승에 오르는 데에는 실패했고, 3,4위 결정전에서도 독일에 2-3으로 패해 4위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우승에는 실패했을 지라도 그 뒤로 우루과이는 지금까지도 두 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조별 라운드를 뚫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공수에 비해 미드필더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이 역시 로드리고 벤탄쿠르, 루카스 토레이라, 페데리코 발베르데 등 젊고 잠재력도 뛰어난 미드필더들이 등장해 메우는 등 세대교체도 문제없이 이루어내고 있는 우루과이이다.

2022년 기준 루이스 수아레스, 에딘손 카바니, 디에고 고딘등 기존의 주축 선수들은 30대 중반에 접어 들었고, 이들의 빈자리는 우루과이의 신성 다르윈 누녜스, 로날드 아라우호, 페데리코 발베르데 등이 채우게 된다. 이들이 모두 출전한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우루과이는 조 3위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2010년대 황금 세대의 종언을 고했다.

2.7.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사실 칠레는 남미에서 약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였다. 자국에서 열린 1962 FIFA 월드컵 칠레에서 3위에 오르기는 했지만, 그 뒤로는 36년 동안 월드컵에 몇 번 나오지도 못한 게 칠레였다. 예선을 통과한 대회에서도 결과는 조별 라운드 탈락이었고,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는 조별 라운드 세 경기를 모두 비기고도 기적적으로 2위로 16강에 오르기는 했지만 16강에서 브라질에게 1-4로 깨지는 등 그리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던 칠레였다.

그런 칠레가 바뀐 건 미치광이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 국적의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이 부임하고 나서부터였다.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는 이른바 닥공 축구로 중무장한 비엘사 감독의 칠레는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예선에서 브라질에 이어 2위로 본선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알렉시스 산체스아르투로 비달, 호르헤 발디비아 등 젊은 선수들이 등장해 칠레의 닥공 축구에 힘을 실었고, 이들의 급진주의적 전략은 월드컵에서도 제대로 통했다. 칠레는 조별 라운드 첫 경기에서 온두라스를 상대로 1-0 승리를 따냈고, 스페인을 첫 경기에서 잡으며 이변을 준비하던 스위스마저 1-0으로 잡으며 조 1위 자리를 지켰다. 마지막 경기에서 스페인에게 패해 2위로 밀리기는 했지만, 16강에 오른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16강에서는 12년 전 패배를 안긴 브라질을 다시 만났지만, 이번에도 0-3으로 패했다. 공격에 비해 무르디 무른 수비가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칠레는 자국에서 열린 2015 코파 아메리카 칠레에서 에콰도르를 상대로 2:0 승리, 북중미 강호 멕시코를 상대로 3:3 무승부, 약체 볼리비아를 상대로 5:0 대승을 거두면서 조별리그 2승 1무로 무난히 8강에 진출하고, 8강에서도 남미의 최대 강호중 하나인 우루과이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면서 4강에 진출한다.[10] 그리고 두 대회 연속 4강에 진출한 페루를 상대로 4강전에서 2:1 승리를 거두고, 결승전에서는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 준우승 팀이자 최고의 선수 리오넬 메시가 버티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0:0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4:1의 스코어로 아르헨티나를 꺾으면서 칠레는 사상 첫 코파 아메리카 우승 트로피를 획득한다.

이후 2016년 코파 아메리카 100주년 기념 대회이자 북중미의 강호들도 참여한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도 칠레는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에게 2:1로 패하지만 이후 볼리비아를 상대로 2:1 승리, 파나마를 상대로 4:2 승리를 거두며 2승 1패로 8강에 진출하고, 8강에서는 북중미의 강호 멕시코를 상대로 7:0 대승을 거두고, 4강에서는 콜롬비아를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며 2년 연속 코파 아메리카 결승 진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결승전에서는 다시 만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이번에도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고, 승부차기 끝에 4:2로 2년 연속 아르헨티나를 꺾으며 2년 연속 코파 아메리카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2018년 월드컵, 2022년 월드컵에 두 번 연속으로 진출에 실패하고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2019년과 2021년 우승은 각각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게 내 주면서 황금 세대는 내리막을 걷고 있다.

2.8.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브라질 월드컵 이전, 콜롬비아의 마지막 월드컵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였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월드컵에 단 한 번도 나오지 못하던 콜롬비아였지만, 호세 페케르만 감독과 이 세대의 등장으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콜롬비아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을 아르헨티나에 이어 2위로 뚫으면서 16년 만에 월드컵으로 복귀하는데 성공했고, 이 과정에서 보여준 파괴력으로 FIFA 랭킹 또한 4위까지 치솟아 월드컵 조편성에서 톱시드까지 꿰차게 된다.[11]

조편성 결과 콜롬비아는 그리스, 코트디부아르, 일본과 C조에 편성된다. 그런데 월드컵 직전, 앞서 부상으로 끙끙 앓던 콜롬비아의 간판 스트라이커 라다멜 팔카오가 끝내 월드컵에 나올 수 없게 되면서 콜롬비아의 전력에 큰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 브라질 월드컵이 개막하고, 콜롬비아는 그리스와의 첫 경기에서 3-0으로 대승하면서 다시 분위기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 뒤로도 1위를 다툴 것으로 예상되던 코트디부아르에게 2-1로 승리하며 두 경기 만에 16강에 올랐고, 마지막 경기에서는 일본을 완벽히 농락하며 4-1 대승을 따내며 3전 전승, 1위로 16강에 오른다. 그리고 조별 라운드에서 하메스 로드리게스는 세 경기 세 골을 터뜨리며 팔카오의 빈자리를 메울 특급 스타로 우뚝 선다. 24년 만에 오른 16강 상대는 우루과이였고, 우루과이는 루이스 수아레스가 조별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이탈리아의 조르조 키엘리니를 깨물어 받은 징계 때문에 나오지 못했다. 콜롬비아로써는 기쁜 소식이기는 했지만, 그렇다 해도 4년 전에 준결승까지 갔던 우루과이가 쉽게 무너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콜롬비아는 우루과이를 빈틈없이 압도했고, 우루과이는 콜롬비아를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특히 하메스는 이번에도 왼발로 대회 최고의 골을 터뜨린 것을 시작으로 후반 헤딩 추가골까지 더해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그렇게 하메스가 네 경기 다섯 골로 득점 선두로 올라섬과 동시에, 콜롬비아는 입때껏 한 번도 오르지 못한 8강에 올랐다. 8강에서 호스트 브라질을 만난 콜롬비아는 부진하던 브라질이 이 경기에 한해서 부활하는 바람에 1-2로 패했고, 준결승까지 올라가는 데에는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하메스는 그 와중에도 만회골을 터뜨리며 대회 여섯 골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는 결승전까지 뒤집히지 않아 결국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대회의 득점왕이 되었다.

그리고 콜롬비아는 1년 뒤 열린 2015 코파 아메리카 칠레에서도 8강에 올랐고,[12] 이듬해 열린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는 3위에 올랐다.[13]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도 칠레가 탈락한 남미 예선을 뚫고 올라왔고, 조별 라운드에서는 첫 경기를 일본에 패하기는 했지만 남은 두 경기를 내리 무실점 승리로 장식하며 4년 전에 이어 이번에도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16강에서는 잉글랜드와 연장전에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를 치렀지만, 세상에서 제일 승부차기를 못한다는 잉글랜드에게 사상 첫 승부차기 승리를 내주면서 8강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오랫 동안 콜롬비아를 이끈 호세 페케르만 감독이 물러나면서 페케르만 키즈는 저물고 말았다. 후임은 국내 팬들에게 이란을 맡았던 감독으로 잘 알려진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맡게 되었는데, 콜롬비아가 새 감독 아래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는 지켜봐야 알 것이다.

그러나 케이로스 감독은 팀을 제대로 망친 끝에 경질되었으며, 이후에도 뒷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콜롬비아는 2022년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조 6위로 탈락하고 만다.


2.9.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헝가리가 어언 32년 동안이나 월드컵에 나오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들의 이름이 월드컵 역사에서 거론되는 이유가 바로 1950년대의 매직 마자르 군단이다. 페렌츠 푸스카스, 산도르 코츠시스, 히데그쿠티 난도르, 졸탄 치보르, 요세프 보직, 그로시치 줄러 등 신화적인 인물들이 이끈 이 세대는, 1949년부터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결승전까지 무려 5년 동안 32경기에서 무패를 달리고 있었다. 결승전에서 패하는 바람에 준우승에 그치기는 했지만, 당시 헝가리는 조별 라운드부터 결승까지 5경기 동안 무려 27골이나 넣는 등 앞으로 깨지지 않을 대기록을 수립했다.

하지만 이 세대는 헝가리가 공산권에 들어가면서 서방과의 교류가 단절되면서 쇠락했다. 그와 동시에 헝가리 대표팀 역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는데, 1962 FIFA 월드컵 칠레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에서만 8강에 올랐을 뿐 나머지 대회에서는 조별 라운드도 뚫지 못했다. 중간중간에는 예선도 뚫지 못해서 월드컵 진출조차 못한 대회도 있었고, 결국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가 현재까지 헝가리의 마지막 월드컵으로 남아 있다.


2.10.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지금은 월드컵에 마지막으로 나온지도 벌써 16년이나 다 되어가는 체코이지만, 과거에는 체코도 강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였다. 두 번째 월드컵이었던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 준우승까지 이뤄냈었고, 1962 FIFA 월드컵 칠레에서도 결승까지 올랐던 바가 있다. 마지막 경기에서 패해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이것으로도 과거 체코슬로바키아가 얼마나 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전력에 비해 체코슬로바키아는 월드컵에 그리 많이 출전하지 못한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초대 월드컵부터 1994 FIFA 월드컵 미국까지 15번의 월드컵에서 체코슬로바키아는 8번 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두 번의 준우승 말고는 8강 두 번, 나머지는 모두 조별 라운드 탈락이었다. 그 중에서도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 체코슬로바키아는 8강에 오르며 건재함을 보여줬는데,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해체로 과도기를 겪어야 했다. 결국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연합한 채로 예선에 나섰지만, 끝내 떨어지며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월드컵 예선은 탈락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이듬해, 체코는 유로 1996에 나오게 되었다. 체코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회자되는 파벨 네드베드가 메이저 대회에 데뷔한 것이 바로 이 대회였으며, 카렐 포보르스키 또한 마찬가지였다. 체코는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와 함께 C조에 편성되는데, 첫 경기에서 체코는 독일에게 0-2로 패배하고 만다. 그러나 이탈리아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고, 마지막 경기에서는 러시아와 3-3으로 비겼다. 승점은 이탈리아와 같았지만, 승자승 원칙이 적용되며 체코가 2위로 8강에 오른다. 8강 상대는 루이스 피구후이 코스타 등이 버티던 포르투갈이었는데, 체코는 이들마저 포보르스키의 결승골로 잡으며 준결승에 올랐다. 준결승에서는 프랑스를 만났고, 경기는 연장전까지도 승부가 나지 않아 승부차기에 돌입, 6-5로 승리하며 결승까지 올라간다. 결승에서는 조별 라운드 첫 상대였던 독일을 다시 만났고, 체코는 선제골까지 넣으며 독일을 몰아 붙였지만, 올리버 비어호프에게 동점골과 역전골을 내리 내주며 패배하고 만다. 그럼에도 체코는 이번 유로 대회로 하여금 과거 강국의 이미지를 조금은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체코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스페인유고슬라비아에 밀려 예선에서 탈락한다. 그런가 하면 유로 2000에서도 조별 라운드에서 네덜란드와 프랑스에 밀려 3위로 탈락했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역시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벨기에에게 패해 출전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다시 체코 축구는 긴 침체기에 빠지는 듯했다.

그러던 중 유로 2004가 시작되었다. 당시 체코는 농익을 대로 농익은 네드베드와 포보르스키, 그리고 캡틴 토마시 갈라섹얀 콜러, 마렉 얀쿨로프스키, 즈데넥 그리게라 등이 등장했고 젊은 밀란 바로시, 토마시 로시츠키, 그리고 페트르 체흐까지 들어오며 간만에 황금 세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조별 라운드에서 독일과 네덜란드, 라트비아를 상대로 3전 전승을 따내며 8강에 올랐다. 1996년과 2000년에 각각 아픔을 줬던 독일과 네덜란드에게 빚을 갚은 건 덤이었다. 그리고 8강에서는 2000년에 승리했던 덴마크를 만나 3-0으로 승리하며 8년 만에 준결승까지 오르게 된다. 준결승에서는 그리스를 만나게 되었는데, 체코는 그리스를 강하게 몰아붙이고도 결국 그리스의 늪에 빠져 8년 전처럼 결승에 오르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그래도 황금 세대 덕분에 체코 축구계는 간만에 행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듬해 2006 FIFA 월드컵 독일 예선도 뚫으며 체코슬로바키아 해체 13년 만에 월드컵에 나서게 되었다.

월드컵에서 체코는 이탈리아, 가나, 미국과 함께 E조에 편성되었다. 강한 나라들만 모인 죽음의 조였지만, 그래도 체코가 이탈리아는 몰라도 가나와 미국은 손쉽게 요리하고 16강에 오를 것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체코는 미국과의 첫 경기를 콜러의 선제골과 로시츠키의 멀티골로 3-0 승리했다. 그러나 두 번째 경기에서는 가나에게 5분 만에 선제골을 내주더니, 후반에는 중앙 수비수 토마시 위팔루시가 퇴장당하는 어려움까지 겪게 된다. 결국 이 경기에서 체코는 한 골을 더 내주며 0-2로 패하고, 이탈리아와의 마지막 경기 역시 0-2로 패해 1승 2패, 조 3위로 탈락하고 만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까지 체코의 마지막 월드컵으로 남아 있다.

파벨 네드베드와 카렐 포보르스키가 독일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체코는 유로 2008에 출전했지만 이번에도 1승 2패로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만다. 그리고 그 해 체코의 캡틴 토마시 갈라섹 역시 은퇴룰 선언했고, 1년 뒤에는 얀 콜러와 마렉 얀쿨로프스키, 즈데넥 그리게라 등도 은퇴를 선언하면서 체코의 황금 세대는 해체되고 말았다. 물론 페트르 체흐와 토마시 로시츠키, 밀란 바로시 등이 남아있기는 했고, 이들은 유로 2012에서 8강에 오를 때 함께 하기도 했지만 그 뒤로는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지 못하다가 은퇴를 선언했다.


2.11.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사실 가레스 베일아론 램지가 등장하기 이전의 웨일스는 영국 연방 중 최약체였다. 이전에 이안 러쉬, 마크 휴즈, 라이언 긱스, 크레이그 벨라미 등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메이저 대회에는 단 한 번도 올라오지 못할 정도였다.[14] 스코틀랜드가 메이저 대회에 나오기만 하면 광탈하기로 유명하기는 했다지만, 웨일스는 그 메이저 대회에 나가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웨일스가 유로 2016 예선에서 조금씩 금빛을 찾기 시작했다. 벨기에에게 밀려 2위에 그치기는 했지만, 2위까지는 본선에 직행이었으니 웨일스로써는 사상 첫 유로 진출을 이루어낸 것이었고, 이 과정에서 1위라는 벨기에를 상대로도 1승 1무를 따냈다. 유로 2016에서는 잉글랜드, 러시아, 슬로바키아와 함께 B조를 배정받았는데, 첫 경기 슬로바키아 전부터 가레스 베일과 할 롭슨-카누의 득점으로 2-1 승리를 거두며 자국 역사상 첫 유로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다음 경기에서 잉글랜드에게 라스트 미닛 골을 내주며 패하기는 했지만, 러시아를 상대로 한 마지막 경기에서 또 다시 3-0 승리를 따내며 2승 1패, 웨일스 전 말고 나머지 경기를 졸전 끝에 비기며 1승 2무에 그친 잉글랜드를 2위로 밀어내고 1위로 16강에 올랐다. 16강에서는 북아일랜드를 만나 자책골을 유도해 승리했고, 8강에서는 예선에서 만났던 벨기에를 만나 3-1로 역전승하며 첫 유로에서 준결승까지 올랐다.

준결승전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버티는 포르투갈에게 0-2로 패해 웨일스의 첫 유로 도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웨일스의 경기력은 전 세계를 매료했고, 앞으로 더욱 강해질 웨일스를 기대케 했다.

하지만 웨일스의 전성기는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았다. 2018년 월드컵에서는 유럽 예선에서 세르비아, 아일랜드에 밀려 조 3위로 탈락해 본선에 가지 못했으며 유로 2020 본선에는 진출했으나 이번에도 16강에서 그쳤다. 그나마 2022년 월드컵에는 플레이오프에서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나를 연달아 꺾고 진출해 베일, 램지 등이 황금 세대 마지막을 불태울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나 1무 2패로 조 최하위 탈락을 받아들여야 했다.


2.12.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2005년, 코트디부아르는 내전을 치르고 있었다. 2002년에 종교 간의 갈등으로 시작된 내전으로 인해 코트디부아르는 쉬지 않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폐허가 되어버렸고, 그런 와중에 코트디부아르의 전쟁을 멈추기 위해 나선 스트라이커가 바로 드록신, 검은 예수라 불리는 디디에 드록바였다.

코트디부아르는 2006 FIFA 월드컵 독일 예선에서 마지막 수단 전을 앞두고 카메룬에 승점 1점이 밀려 2위에 머물러 있었다. 1위만이 월드컵에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코트디부아르로써는 수단을 무조건 잡고 카메룬이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하기를 바라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코트디부아르는 수단을 3-1로 잡았고, 카메룬은 이집트와 1-1로 비기는 바람에 코트디부아르는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에 나서게 된다. 당시 코트디부아르의 주장 드로그바가 월드컵 출전에 성공한 뒤 월드컵 기간 동안만 전쟁을 멈춰달라며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 그러나 월드컵에 처음 나선 코트디부아르의 조별 라운드 상대들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가 한 조에 들어왔고, 유럽 예선에서 스페인을 2위로 밀어내고 온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까지 코트디부아르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 누가 봐도 코트디부아르의 꼴찌가 예상되는 조였다. 그리고 코트디부아르는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를 만난 2연전을 모두 패해 두 경기 만에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상대한 마지막 경기만큼은 두 골을 먼저 내주고도 3-2로 역전승하며 사상 첫 월드컵 승리에는 성공한 코트디부아르였다.

그리고 4년이 지나, 코트디부아르는 또 다시 월드컵에 나서게 되었다. 4년 전에 비해 훨씬 농익은 드로그바에 세계 최고 미드필더의 반열에 오르고 있던 야야 투레, 그 외에도 살로몬 칼루제르비뉴, 셰이크 티오테 등도 합류한 코트디부아르는 대회 전 준결승 전력이라는 평가까지 받는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 놈의 대진운이 코트디부아르에게 장난을 치고 만다.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에 이어 이번에는 월드컵 최다 우승국 브라질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포르투갈을 한 조에서 만나고 만 것. 북한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16강에 가기 위해서는 브라질과 포르투갈 중 하나를 떨어뜨려야 하는 극강의 난이도였다. 결국 코트디부아르는 포르투갈과의 첫 경기에서는 비겼지만, 브라질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1-3으로 패하면서 또 다시 16강 진출이 어려워진다.[15] 결국 마지막 경기에서 북한을 상대로 3-0 완승을 따내기는 했지만, 동시에 치러진 브라질과 포르투갈의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면서 이번에도 코트디부아르는 3위로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만다.

4년 뒤 코트디부아르는 더욱 강해진 전력으로 월드컵에 등장했다. 야야 투레와 칼루, 제르비뉴 등은 여전했고, 드로그바가 예전만 못하기는 했지만 그를 대체할 스트라이커로 윌프리드 보니가 있었다. 물론 수비는 콜로 투레의 노쇠화로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코트디부아르는 8년 전, 그리고 4년 전과 달리 해볼만한 상대들과 한 조에서 만나게 된다. 16년 만에 월드컵에 나온 콜롬비아와 월드컵에서 16강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리스, 그리고 입만 산 일본의 조합은 두 번이나 죽음의 조에서 고생만 하다가 나가 떨어진 코트디부아르로써는 너무도 맛있는 조였다. 역시 과거 코트디부아르의 상대들이 너무 강했던 것인지, 코트디부아르는 첫 경기부터 일본에게 2-1로 역전승하며 세 번의 월드컵 만에 처음으로 첫 경기에서 승리를 가져갔다. 다음 경기에서는 콜롬비아와 명경기를 만들어 냈지만, 1-2로 아쉽게 패했다. 하지만 마지막 상대는 승리는 커녕 한 골도 못 넣고 최하위로 떨어져버린 그리스였고, 코트디부아르는 그들을 상대로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가는 좋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코트디부아르는 전반 종료 직전, 티오테의 실수로 그리스에게 한 골을 내주며 위기에 몰린다. 이대로라면 그리스가 2위로 뛰어오르고 코트디부아르는 또 다시 3위로 떨어져 지난 두 차례 월드컵의 전철을 밟는 그림이었다. 반드시 동점골이 필요했던 코트디부아르는 계속해서 그리스를 공격한 끝에 마침내 보니의 동점골로 다시 2위에 올랐다. 동시에 펼쳐진 콜롬비아와 일본의 경기는 콜롬비아의 4-1 승리로 이미 끝났고, 코트디부아르는 이 점수를 지키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경기 종료를 3분 앞둔 후반 막판, 그리스의 요르고스 사마라스가 코트디부아르의 지오바니 시오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주심은 곧바로 페널티킥을 찍었고, 페널티킥을 이끌어낸 사마라스가 이를 성공시키면서 경기는 또 다시 뒤집히고 만다. 결국 경기는 이대로 종료되고 말았고, 코트디부아르는 또 다시 3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드로그바와 투레 형제 등, 코트디부아르 황금 세대를 이끈 베테랑들의 마지막 월드컵이었기에 더욱 끔찍한 결말이었다.

2.13.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모로코 대표팀은 1986년 월드컵에서 아프리카의 첫 토너먼트 진출을 성공시킨, 아프리카권에서는 물론 세계에서도 나름대로 강팀이었으나 2022년에는 1930년의 미국, 2002년의 대한민국에 이어 유럽과 남미를 제외한 대륙에서 4강에 오르는 대기록을 쓴다.

월드컵을 앞두고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을 경질한 모로코였지만 후임 왈리드 레그라귀 감독이 팀 분위기를 살려내고 할릴호지치 감독 휘하에서 국가대표 소집에 응하지 않았던 지예시와 마즈라위를 다시 대표팀으로 불러왔다. 하지만 레그라귀 감독의 경험이 많지 않기에 모로코의 호화로운 스쿼드와는 별개로 불안감을 숨길 수는 없다는 평가 또한 있었다.

그러나 본선에서 모로코는 크로아티아와 무승부를 거둔 데 이어 1포트 벨기에를 잡아내는 이변을 썼고, 이미 탈락이 확정된 캐나다까지 꺾으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이어 16강에서는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공격적으로 나오던 스페인을 늪에 빠지게 하며 승부차기까지 경기를 이끌어 갔고, 부누 골키퍼가 2슈팅을 막아내며 끝내 8강 진출까지 해냈다. 그리고 8강에서 만난 포르투갈까지 1:0으로 꺾으며, 아프리카 역사상 최초의 4강 진출을 이뤄낸다.


2.14.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최근에도 축구 강소국으로 주목받는 크로아티아지만 독립 직후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한 멤버들이야말로 크로아티아 축구의 원조 황금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 팀의 일원 대부분이 1987년 열린 U-20 세계 선수권의 유고슬라비아 U-20 대표팀 우승 멤버였을 정도로 떡잎부터 남달랐던 선수들이었는데, 2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조국이 독립했고 월드컵에 나갈 기회를 얻으면서 빛을 본 것이다. 월드컵 2년 전 열린 UEFA 유로 1996 대회에서도 8강에 오르며 만만치 않은 팀임을 전 유럽에 알린 이들은, 첫 월드컵 참가에 첫 본선 진출을 이뤄낸 것도 모자라 16강에 진출한 후 8강에서 독일, 3-4위전에서 네덜란드를 이기는 등 기존의 강호들까지 때려잡으며 세계 축구계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지리나 인구수로 따지면 1998년의 초호화 황금세대가 다시 올까 싶은것이 바로 크로아티아이다. 실제로 프랑스 월드컵 이후 2002 한일월드컵, 2006 독일월드컵 모두 조별리그에서 떨어졌고, 2010 남아공월드컵은 아예 본선 진출마저 좌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 탈락의 쓴잔을 맛본 크로아티아였다. 그러나 즐라트코 달리치 감독 부임 이후 러시아 월드컵에서 20년전 선배들의 업적을 넘어버리는 레전드를 써내려 갔다. 우선 그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무려 3:0으로 격파했으며 그 이후 펼쳐진 16강 덴마크, 8강 러시아전은 승부차기, 4강 잉글랜드 연장전에서 승리하며 3경기 모두 연장전에 돌입하는 희귀한 대기록을 세웠다 그 이후 결승에선 프랑스에게 4:2로 패배하긴 했지만 승부차기까지 끌고갔던 전 경기들의 피로도도 있었을 것이며, 과연 크로아티아가 아르헨티나를 상대했던 기량으로 프랑스를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을 정도로 조별리그에서의 포스는가 매우 강력했던 팀이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열리기 전 이반 라키티치, 마리오 만주키치 등 여러 주축 선수들이 은퇴하고 주전 맴버들도 대거 변화했으나 요슈코 그바르디올, 도미니크 리바코비치 등 새로운 선수들의 활약과 루카 모드리치 라스트 댄스로 지난대회에 이어서 다시한번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아르헨티나에게 져서 4강에서 탈락했지만 3•4위전에서 돌풍의 팀 모로코를 꺽고 3위를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다만 크로아티아의 2차 황금세대는 성과는 휼룡하지만 계속 우승컵 근처에서 미끄러진 적이 많아 2% 아쉬운 느낌이 들기도 하는 팀이기도 하다. 특히 월드컵 직후에 펼쳐진 2023 네이션스리그 결승에서 스페인에게 패해 또다시 준우승에 그치게 되며 아쉬움을 삼켜야했다. 크로아티아 대표팀이 그동안 낸 성과를 생각하면 참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상황.

3. 관련 문서[편집]


[1] 로멜루 루카쿠는 브론즈 부트를, 에당 아자르는 실버 볼을, 티보 쿠르투아는 야신상을 수상했다. 이때의 벨기에는 월드컵 3위를 하면서 황금 세대의 절정기를 맞이했었는데, 이후 이들은 4년 뒤에 허무하게 몰락했다.[2] 물론 국적 변경도 가능은 하지만 어쩌다 한 두명 수준이고, 귀화를 통해 국가대표팀의 전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사례는 해당 국가만의 특수한 역사적 이슈가 있지 않은 이상 흔치는 않다.[3] 당시 주요 멤버는 캡틴 얀 쾰레만스를 필두로 에릭 헤러츠, 조르주 그륀, 엔조 시포, 프랑키 페르카우테런 등이 있었다.[4] 2002년 한일 월드컵 우승국인 브라질은 남미 출신이었고, 다음 월드컵에서 그나마 8강까지는 진출했다.[5] 대표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주어야 할 앙투안 그리즈만을 위해 기존의 4-3-3 포메이션이 아닌 4-2-3-1 포메이션의 세컨스트라이커 역할을 부여했고 그리즈만은 조별리그와는 달리 토너먼트에서 연일 맹활약을 펼쳤다.[6] 특히 벤제마, 포그바, 캉테, 킴펨베, 은쿤쿠가 부상으로 낙마했는데도 이뤄낸 성과이다.[7] 실제로 스페인이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우승하기 이전까지 그들의 최고 성적은 4강이었고, 현재와 같은 규칙이 적용된 뒤의 최고 성적은 8강에 불과했다.[8] 44년 전 대회인 유로 1964는 자국에서 열린 대회였기 때문에, 사상 첫 원정 유로 우승이었다.[9] 당시 같은 조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벨기에, 터키 등 만만찮은 나라들이 있었음에도 전승으로 유럽 예선을 통과했다.[10] 단 이 경기에서 칠레의 곤살로 하라가 우루과이의 에딘손 카바니에게 항문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려는 듯한 행위를 하면서 성추행을 시도한 것은 큰 비판을 받았다.[11] 참고로 브라질 월드컵 톱시드 국가들 중 4년 전 대회인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참가하지 못한 나라는 콜롬비아 와 벨기에 둘뿐이었다. 말 그대로 4년 동안 폭풍성장한 것.[12] 조별 라운드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승리하기도 했지만, 8강에서 아르헨티나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고 만다.[13] 준결승에서 디펜딩 챔피언 칠레에게 0-2로 패.[14]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에 딱 한 번 나가서 헝가리를 탈락시키고 8강까지 오르기는 했지만, 앞서 말한 선수들이 이루어낸 결과물은 아니다. 게다가 이 역시 무려 60년 전 일이다.[15] 당시 승점 1점이던 코트디부아르가 16강에 가기 위해서는 마지막 경기에서 포르투갈이 브라질에 패하고, 코트디부아르가 북한을 잡고 득실차에서 포르투갈에 앞서야 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이 북한을 무려 7-0으로 완전히 압살해버린 탓에 코트디부아르는 사실상 16강이 막힌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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