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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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올림픽에 야구가 시범 경기로 채택된 것은 오래되었으나 대한민국 대표팀이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본선에 진출조차 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으나 2000 시드니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2번의 메달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보면 알겠지만 의외로 본선에서 성적을 낸 것은 2000년, 2008년 대회뿐이며 나머지는 탈락하거나 본선에서 부진한 모습을 연이어 보여주었다. 거기다 2000년의 경우에도 미국의 오심이 있었지만 예선에서는 부진의 부진을 거듭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 상세[편집]



2.1.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편집]


국제대회가 축구, 농구, 배구에 비해 거의 없는 야구에서 올림픽이 가지는 위상은 상당히 높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나 WBSC 프리미어 12가 출범하기 이전인 2005년까지 그나마 야구 국제대회라고 쳐주는 것은 아마추어들이 참가하는 아시안 게임 혹은 IBAF 야구 월드컵이 전부였던 상황이었다. 또한 스포츠에서 국위선양이라는 이름으로 밀어주는 국제대회가 올림픽이었던 만큼 한국 야구계도 올림픽에 대한 열망이 강렬했다.

단판토너먼트로 이벤트전에 가까웠던 1964년까지 올림픽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아니 정확히는 하지 못했던 대한민국 대표팀은 1984 로스앤젤러스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토너먼트 제도를 도입하게 되자 처음으로 참가를 신청했고 대표팀을 구성해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되었다.

대한야구협회는 한미대학야구 선수권대회 및 LA올림픽 대표팀에 포함될 예비엔트리 32명중 20명을 1984년 5월 19일에 개최하는 백호기선수권대회[1]를 통해서 발탁할 것이라 밝혔다. 대회를 마친후인 5월 27일, 대한야구협회가 발표한 한미대학야구 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코치진과 25인 엔트리는 다음과 같다.

감독김청옥
코치김충, 배성서, 오지섭, 주성노
투수선동열, 박노준, 박동수, 오명록, 이상군, 한희민, 차동철, 김용수, 윤학길
포수김영신, 서효인, 장호익
내야수김형석, 강기웅, 김건우, 김용국, 류중일, 백인호, 안언학, 이재성
외야수강기문, 이순철, 이강돈, 최계영, 박흥식, 이종두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은 1982년 야구 월드컵 MVP였던 선동열(고려대학교)을 비롯해 김용수(한일은행), 류중일(한양대학교), 이순철(연세대학교)등 당대 아마최강 선수들로 꾸려져 참가했다.

하지만 대한야구협회는 갈팡질팡 하며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6월 23일부터 열릴 한미대학야구 경기를 통해 20명을 뽑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대한야구협회의 이런 발표가 있고 단 이틀만인 6월 2일에 최종 발표한 올림픽 명단에 포함되있던 오명록, 최계영을 빼고 이상군, 이종두로 교체된 것이다.이를 비판하는 기사 미국에서 미국대학팀과 일본대학팀과 평가전을 가지며 전술을 다듬었지만 실력 차이로 인해 1승 5패 1무를 기록하며 처참하게 깨졌다.

그리고 시작되니 본선에서 대회전 예상을 깨고 준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미국을 맞이한 준결승에서 2:5로 패배, 동메달결정전에서는 대만에게 0:3으로 패배하며 빈손으로 귀국해야 했다.[2]

  • 코칭스태프
이름보직소속팀
김청옥감독농협 감독
김충코치상업은행 감독
배성서코치한양대학교 감독

  • 선수
이름포지션투타소속팀
김용수투수우투우타한일은행
박노준투수좌투좌타고려대학교(3학년)
박동수투수우투우타동아대학교(4학년)
선동열투수우투우타고려대학교(4학년)
오명록투수우투우타동아대학교(3학년)
윤학길투수우투우타상무
김영신포수우투우타동국대학교(4학년)
장호익포수우투우타연세대학교(1학년)
강기웅내야수우투우타영남대학교(2학년)
김용국내야수우투우타한양대학교(4학년)
김형석내야수좌투좌타중앙대학교(4학년)
류중일내야수우투우타한양대학교(2학년)
백인호내야수우투우타동국대학교(3학년)
안언학내야수우투우타고려대학교(4학년)
강기문외야수우투우타한국전력
김성수외야수좌투좌타농협
박흥식외야수좌투좌타한양대학교(4학년)
이강돈외야수좌투좌타건국대학교(4학년)
이순철외야수우투우타연세대학교(4학년)
최계영외야수우투우타건국대학교(3학년)


2.2. 1988 서울 올림픽[편집]


1984 LA 올림픽 이후, 한국야구계는 홈에서 열리는 1988 서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거기에 당대 아마 최강 쿠바도 참가를 거부하자 우승의 적기라 판단한 대한야구협회는 당시 아마야구 슈퍼스타들을 강제로 프로야구단이 아닌 실업야구단에 입단 시켰다. 올림픽에는 프로선수가 참가하지 못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는데, 이 규정으로 인해 당대 최고의 아마추어 투수였던 송진우(세일통상)와 조계현(농협), 강기웅(한국화장품)등이 대학 졸업후 각자 실업야구단에서 강제로 1년을 뛰고 참가해야 했다. 그나마도 송진우는 4개월만에 구단이 날라가면서(...) 무소속으로 대표팀에 참가했다.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미국전 3:5 패배, 호주전 2:1 승리, 캐나다전 5:3 승리로 (3전 전승의 미국에 이어) 조별 예선 2위를 기록했지만, 준결승에서 후루타 아츠야(팀 도요타), 노모 히데오(신일본제철 사카이) 등 내로라하는 사회인야구선수들이 참가한 일본을 상대로 1:3 패배를 기록하며 동메달결정전으로 내려갔고,[3] 푸에르토리코를 상대로 0:7 완패를 당하며 빈손으로 대회를 마무리 지었다

  • 코칭스태프
이름보직소속팀
김병우감독제일은행 감독
강문길코치단국대학교 감독
황동훈코치중앙대학교 감독

  • 선수
이름포지션투타소속팀
김기범투수좌투좌타한국화장품
박동희투수우투우타고려대학교(3학년)
(롯데 자이언츠 기지명)[4]
송진우투수좌투좌타무소속(前 세일통상)[5]
(빙그레 이글스 기지명)
이강철투수우투우타동국대학교(4학년)
이광우투수우투우타원광대학교(4학년)
조계현투수우투우타농협
(해태 타이거즈 기지명)
김동수포수우투우타한양대학교(3학년)
김태형포수우투우타단국대학교(3학년)
강기웅내야수우투우타한국화장품
(삼성 라이온즈 기지명)
강영수내야수우투우타한국화장품
권택재내야수좌투좌타상무[6]
김경기내야수우투우타고려대학교(3학년)
송구홍내야수우투우타건국대학교(2학년)
최해명내야수우투우타무소속(前 세일통상)
황대연내야수우투우타고려대학교(4학년)
노찬엽외야수좌투좌타농협
(MBC 청룡 기지명)
백재우외야수좌투좌타상무[7]
윤혁외야수좌투좌타고려대학교(3학년)
이석재외야수우투우타제일은행
최훈재외야수좌투좌타단국대학교(4학년)


2.3.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편집]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는 대한야구협회에서 다시금 의욕을 불태웠다.

일단 5월말 첫번째 엔트리(상비군)에는 정민태(한양대), 구대성(한양대), 위재영(인하대), 문동환(연세대), 강성우(단국대), 임수혁(고려대), 양준혁(영남대), 안경현(연세대), 이종범(건국대), 류지현(한양대), 동봉철(중앙대), 심재학(고려대) 등 지금으로 보면 프로야구 올스타가 되는 초유망주들이 대거 포함되었다.##[8]

그렇지만 6월 한국 IBA회장배 야구대회, 7월 스페인 대륙간컵을 거치면서 엔트리가 점점 추려졌고, 9월 최종엔트리에는 문동환, 임수혁, 양준혁, 안경현, 동봉철 등은 제외된다.

이 과정에서, 직전해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때까지 부동의 대표팀 주전이었던 4학년 양준혁(영남대)과 당시 대학최고타자 중 한명인 4학년 동봉철(중앙대) 대신, 3학년 이용석[9](단국대)ㅡ2학년 김광현(단국대)ㅡ1학년 심성보(단국대) 등 단국대 3인방이 대표팀에 나란히 발탁되면서 또 한번의 논란을 불러일으켰고,[10] 이는 결국 대표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돌아온다.[11]

그리고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바르셀로나 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겸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일본대만에 이은 3위에 그치며 본선진출에 실패했다.[12] 참고로 당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정식 종목 25개 종목 중 대한민국 선수단은 야구와 농구를 제외한 23개 종목에 참가했다.

  • 코칭스태프
강문길감독단국대학교 감독
김정택코치상무 감독
주성로코치인하대학교 감독
김보연코치한양대학교 감독

  • 선수
정민태투수우투우타한양대학교(4학년)
구대성투수좌투좌타한양대학교(3학년)
지연규투수우투우타동아대학교(4학년)
김홍집투수좌투좌타단국대학교(3학년)
위재영투수우투우타인하대학교(1학년)
김도완투수우투우타경희대학교(2학년)
강성우포수우투우타단국대학교(4학년)
장광호포수우투우타한국화장품
권택재내야수좌투좌타제일은행
심성보내야수좌투좌타단국대학교(1학년)
이종범내야수우투우타건국대학교(3학년)
류지현내야수우투우타한양대학교(2학년)
손차훈내야수우투우타한양대학교(3학년)
황일권내야수우투우타한국화장품
심재학외야수좌투좌타고려대학교(1학년)
강상수외야수우투우타고려대학교(2학년)
김광현외야수우투우타단국대학교(2학년)
공의식외야수우투우타동국대학교(3학년)
이창대외야수우투우타한국전력
이용석외야수좌투좌타단국대학교(3학년)


2.4. 1996 애틀랜타 올림픽[편집]


직전 대회에서 올림픽 본선도 밟지 못한 충격으로 인해 이번 대표팀에는 대학야구 선수뿐 아니라 실업야구의 최강팀이던 현대 피닉스 선수들도 합류했다. 이번엔 다르다!를 외치며 출진한 1996 애틀란타 올림픽에서는 본선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만다.

일본 사회인 야구 대표팀에게 4:14라는 점수로 콜드게임 패배를 당하는가 하면, 이탈리아, 호주 등에게도 패배하며 1승 6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복귀해야 했다.

  • 코칭스태프
이름보직소속팀
김충남감독연세대 감독
장순조코치경성대 감독
조두복코치고려대 감독
최한익코치현대 피닉스 감독

  • 선수
이름포지션투타소속팀
김선우투수우투우타고려대(1학년)
(OB 베어스 기지명)
김영수투수좌투좌타인하대(4학년)
문동환투수우투우타현대 피닉스
(롯데 자이언츠 기지명)
손민한투수우투우타고려대(4학년)
오철민투수좌투좌타영남대(4학년)
임선동투수우투우타없음[13]
(LG 트윈스 기지명)
전승남투수우투우타중앙대(4학년)
조진호투수우투우타원광대(3학년)
조인성포수우투우타연세대(3학년)
진갑용포수우투우타고려대(4학년)
강필선내야수우투우타현대 피닉스
(쌍방울 레이더스 기지명)[14]
강혁내야수좌투좌타한양대(4학년)
(OB 베어스 소유권 보유)
김수관내야수우투우타한양대(3학년)
백재호내야수우투우타동국대(4학년)
안희봉내야수우투우타상무 야구단
(태평양 돌핀스 기지명)
이동욱내야수우투우타동아대(4학년)
채종국내야수우투우타연세대(3학년)
이병규외야수좌투좌타단국대(4학년)
조경환외야수우투우타상무 야구단
(롯데 자이언츠 기지명)
최만호외야수우투우타단국대(4학년)


2.5. 2000 시드니 올림픽[편집]


파일: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 승리 직후.jpg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주성로 당시 인하대 감독이 차기 올림픽본선 진출을 이끌 1999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감독으로 낙점되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열린 1999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중국-대만-일본을 격파하며 2000 시드니 올림픽 본선 티켓을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이 대회 당시 대표팀은 드림팀2로 일컬어진다.

이후 주성로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놓고[15] 본선을 지휘할 선장으로는 김응용 당시 해태 타이거즈 감독이 선임되었다.[16]

사상 처음으로 프로가 참가한 올림픽 대표팀으로, 정대현(경희대)을 제외하면 모두 프로선수들로 채워져, 1998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과 1999 서울 아시아선수권 대표팀에 이어 드림팀3로 명명되기도 했다.

전통의 아마야구 강국 쿠바뿐 아니라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최고 유망주였던 로이 오스왈트, 밀워키 브루어스의 초유망주 벤 시츠가 원투펀치로 참가한 미국, 그리고 헤이세이의 괴물(平成の怪物)이라 불리던 마쓰자카 다이스케[17] 등이 참가한 일본 등 대회수준이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던 대회에서, 초반 호주-쿠바-미국에게 연달아 패배하며 탈락 위기에 놓여지기도 했으나 가까스로 3연승을 달성하며 준결승에 진출, 이후 동메달결정전에서는 일본을 잡아내며 동메달을 따내는데 성공,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주성노호/1999년, 김응룡호/2000년 항목 참조.

  • 코칭스태프
이름보직소속팀
김응용감독해태 타이거즈 감독
강병철코치SK 와이번스 감독
김인식코치두산 베어스 감독
주성노코치인하대 감독

  • 선수
번호이름포지션투타소속팀
15구대성투수좌투좌타한화 이글스
30김수경투수우투우타현대 유니콘스
59박석진투수우투우타롯데 자이언츠
61손민한투수우투우타롯데 자이언츠
21송진우투수좌투좌타한화 이글스
10이승호투수좌투좌타SK 와이번스
54임선동투수우투우타현대 유니콘스
39임창용투수우투우타삼성 라이온즈
19정대현투수우투우타경희대(4학년)
(쌍방울 레이더스 기지명)[18]
20정민태투수우투우타현대 유니콘스
35진필중투수우투우타두산 베어스
26박경완포수우투우타현대 유니콘스
22홍성흔포수우투우타두산 베어스
18김동주내야수우투우타두산 베어스
6김태균내야수우투우타삼성 라이온즈
5김한수내야수우투우타삼성 라이온즈
31박종호내야수우투양타현대 유니콘스
7박진만내야수우투우타현대 유니콘스
36이승엽내야수좌투좌타삼성 라이온즈
11김기태외야수좌투좌타삼성 라이온즈
62박재홍외야수우투우타현대 유니콘스
9이병규외야수좌투좌타LG 트윈스
1장성호외야수좌투좌타해태 타이거즈
8정수근외야수좌투좌타두산 베어스


2.6. 2004 아테네 올림픽[편집]


파일:external/photo-media.hanmail.net/3cx82003_4.jpg
2003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가 아시아 예선을 겸임한 대회로 아시아에서는 이 대회 상위 2개팀이 올림픽에 참가할수 있게 되었다. 당시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를 제외한 정민태, 이종범, 이승엽등 프로야구 정예 멤버로 꾸려졌으나 대만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1승 2패로 광탈하며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다.

자세한 내용은 삿포로 참사 항목 참조.


2.7. 2008 베이징 올림픽[편집]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우승 포토타임.png
2007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한 김경문 당시 두산 베어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올림픽 지역 예선을 겸한 대회인 2007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참여했으나 일본에게 발목이 잡히며 대륙간 최종예선에 진출, 가까스로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이때만 해도 큰 기대가 적었으나 신구조화가 완벽했고 김경문 감독의 용병술도 빛을 발하며 9전 9승으로 금메달을 획득, 본격적으로 프로야구 전성시대를 열어젖혔다.

자세한 내용은 김경문호/2007년, 김경문호/2008년 항목 참조.

  • 코칭스태프
이름보직소속팀
김경문감독두산 베어스 감독
김광수수석코치두산 베어스 코치
김기태타격코치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
김민호수비코치두산 베어스 코치
김용일트레이닝코치삼성 라이온즈 2군 코치
김태형불펜코치두산 베어스 코치
유승안벤치코치한화 이글스 감독 (KBO 기술위원)
조계현투수코치삼성 라이온즈 코치

  • 선수
등번호이름포지션투타소속팀
11오승환투수우투우타삼성 라이온즈
13장원삼투수좌투좌타우리 히어로즈
17김광현투수좌투좌타SK 와이번스
21정대현투수우투우타SK 와이번스
22한기주투수우투우타KIA 타이거즈
28윤석민투수우투우타KIA 타이거즈
47권혁투수좌투좌타삼성 라이온즈
51봉중근투수좌투좌타LG 트윈스
91송승준투수우투우타롯데 자이언츠
99류현진투수좌투우타한화 이글스
20진갑용포수우투우타삼성 라이온즈
37강민호포수우투우타롯데 자이언츠
3고영민내야수우투우타두산 베어스
7박진만내야수우투우타삼성 라이온즈
8정근우내야수우투우타SK 와이번스
10이대호내야수우투우타롯데 자이언츠
14김민재내야수우투우타한화 이글스
18김동주내야수우투우타두산 베어스
25이승엽내야수좌투좌타요미우리 자이언츠
15이용규외야수좌투좌타KIA 타이거즈
29이택근외야수우투우타우리 히어로즈
35이진영외야수좌투좌타SK 와이번스
39이종욱외야수좌투좌타두산 베어스
50김현수외야수우투좌타두산 베어스


2.8. 2020 도쿄 올림픽[편집]


제2대 전임감독으로 김경문NC 다이노스 감독이 선임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김경문호/2020년, 김경문호/2021년 항목 참조.

  • 코칭스태프
이름보직소속팀
김경문감독NC 다이노스 감독
수석코치 코치
김재현타격코치SPOTV 해설위원
이종열수비코치SBS Sports 해설위원
트레이닝코치 코치
정대현불펜코치동의대 코치
벤치코치
최일언투수코치LG 트윈스 투수 인스트럭터

  • 선수
등번호이름포지션투타소속팀
61최원준투수우투우타두산 베어스
1고영표투수우투우타kt wiz
19고우석투수우투우타LG 트윈스
11조상우투수우투우타키움 히어로즈
63한현희[사퇴]투수우투우타키움 히어로즈
32박세웅투수우투우타롯데 자이언츠
18원태인투수우투우타삼성 라이온즈
55김민우투수우투우타한화 이글스[19]
21오승환[20]투수우투우타삼성 라이온즈
23차우찬투수좌투좌타LG 트윈스
48이의리투수좌투좌타KIA 타이거즈
15김진욱[21]투수좌투좌타롯데 자이언츠
25양의지포수우투우타NC 다이노스
47강민호포수우투우타삼성 라이온즈
50강백호내야수우투좌타kt wiz
44오재일내야수좌투좌타삼성 라이온즈
2박민우[사퇴]내야수우투좌타NC 다이노스
53최주환내야수우투좌타SSG 랜더스
10황재균내야수우투우타kt wiz
2오지환내야수우투좌타LG 트윈스
3김혜성내야수우투좌타키움 히어로즈
13허경민내야수우투우타두산 베어스
37박건우외야수우투우타두산 베어스
22김현수외야수우투좌타LG 트윈스
51이정후외야수우투좌타키움 히어로즈
17박해민외야수우투좌타삼성 라이온즈


2.9.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편집]



3. 역대 성적[편집]


연도결과순위경기득점실점
1984[시범종목]4강4위5231217
1988[시범종목]4강4위5231119
1992예선 탈락
1996조별예선8위7164059
20004강동메달9544530
2004예선 탈락
2008우승금메달9905026
20204강4위7343335
2028
합계출전 4회 / 우승 1회422220191186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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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야구, 실업야구 선수들이 총 출동해 우승팀을 가리던 토너먼트대회였다.[2] 동메달결정전 대만전 당시 한국의 등판투수는 오명록-한희민-선동열-윤학길 순이었다.[3] 준결승 일본전 당시 한국의 등판투수는 김기범-박동희 순이었다.[4] 고교 졸업 당시에 이미 1차지명을 받은 상태였다. 당시 1차지명은 팀당 10명.[5] 세일통상은 1988년 1월에 창단해 5월에 해체된 팀이었다. 송진우를 올림픽에 출전시키기 위해 강제로 프로데뷔를 늦추게 했다.[6] 원 소속은 제일은행. 경북고 야구부의 마지막 전성기였던 1981년도의 주요 멤버 중 1명으로, 연고 구단 삼성의 콜을 거절하고 실업야구에 남았다.[7] 원 소속은 한국전력. 실업야구의 마지막 해인 2002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8] 기사 중 투수 항목에 있는 지운규지연규의 오자, 내야수 항목에 있는 안강현안경현의 오자, 외야수 항목에 있는 동봉돈동봉철의 오자이다.[9] 1993년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지만 별다른 활약없이 은퇴한다.[10] 무엇보다 단국대 3인방인 이용석, 김광현, 심성보는 대표팀 강문길 감독의 소속팀(단국대) 제자들이었다. 요새로 치면 엔트으리 논란.[11] 특히 심성보는 9월 본대회에서 (당시 대학 1학년 신분임에도) 무려 주전 4번타자의 중책을 맡지만, 결선리그(2차 풀리그)에서 10타수 무안타에 그치며, 당시 야구전문잡지였던 <주간야구>에서 소속팀 스승이기도 한 강문길과 엮여서 혹독하게 비판받는다.[12] 당시 아시아지역 올림픽티켓은 2장.[13] 3중계약 파동으로 한편으로는 법정 공방 중이었으며 엄밀히 말해 아직 연세대 소속이었다. 졸업 이수 학점 미달로 졸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14] 현대 피닉스에서 2년을 보내고 상무에 입대. 전역 무렵 쌍방울이 지명권을 현대 유니콘스에 양도하면서 프로 입단은 현대로 했다.[15] 대신 코치로써 대표팀에 남는다.[16] 2000년 5월 정식선임.[17] 마쓰자카는 이미 직전해인 1999년에 (올림픽 지역예선을 겸해서 열린)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일본 야구 역사상 역대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후루타 아쓰야와 배터리를 이뤄서 일본의 올림픽티켓에 공헌한 바 있다. 이듬해인 2000년 올림픽 본선에 마쓰자카는 또다시 참가하지만, 대신 후루타 아쓰야는 소속팀의 불허로 올림픽 참가가 무산된다.[18] 쌍방울이 해체되면서 지명권이 SK 와이번스로 넘어왔다. SK는 쌍방울과는 별도의 신생팀이었지만 선수단 대부분을 승계했고 지명을 받고 대학에 진학한 선수들의 지명권까지 모두 얻었다. 또한 이 때 병역특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이미 군 면제 상태였다.[사퇴] A B 2021년 KBO 리그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인해 자발적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했다.[19]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정은원강재민이 올림픽 엔트리에 뽑히지 않아서 논란이 있었다.[20] 원정숙소 무단 이탈 논란으로 한현희가 사퇴하자 추가로 엔트리에 합류하게 됐다.[21] NC 다이노스 원정숙소 방역수칙 위반 사건으로 박민우가 사퇴하자 추가로 엔트리에 합류하게 됐다.[시범종목] A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