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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오 이글레시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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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스페인의 축구선수, 가수
스페인 대중음악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본국인 스페인에서는 과언이 아니라 팝의 프랭크 시나트라, 엘비스 프레슬리급의 위상을 가진 국민가수이며 스페인 국내뿐만 아니라 스페인어를 공유하는 라틴 아메리카권에서도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다.
2. 내용[편집]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1] 의 골키퍼 출신였으나, 교통사고를 당해 은퇴해야 했다. 그는 의사로부터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으나 2년간의 혹독한 훈련 끝에 결국 다시 걷게 되었다. 축구를 엄청 좋아하며 당연히 레알 마드리드 광팬이라고 한다
1968년 6월 18일에 열렸던 바인도른(Beindorn) 가요제에 참가하여, 그의 곡이 그랑프리가 되어,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칠레 해변가요제에도 출전하여 입상했으며, 1970년에는 <Gwendolyne>란 곡으로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에 출전하였고,[2] RCA레코드와 전속 계약을 맺고 활동 무대를 미국으로 옮길 수가 있었다.
1980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Hey>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믹스하여 제작한 앨범으로, 스페인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중남미에서부터 반응을 시작하여 전 세계로 확대되어,4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1935년에 콜포터가 발표했던 <Begin The Beguine>을 스페인어로 리바이벌시켜서 현대 감각에 맞게 편곡하여 불러 주고 있기도 하다.
1982년에 <De Nina A Mujer(소녀에서 여인으로)> 란 앨범을 발표한다. 1982년 1월 20일자 캐시 박스지 표지 모델로 미국 가수가 아닌 외국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실린것이다.
1983년 에 발표한 앨범 <Momentos>에서는 <Natalie>, <La Paloma>, <Amor> 등 많은 히트곡이 수록되어 있다.만 3년만에 석 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수많은 싱글로, RCA 레코드사에 소속되어 있는 아티스트 중에 가장 돈을 잘 버는 가수로 등극한다.
3. 여담[편집]
- 엘비스 프레슬리의 전처 프리 실라와 약혼을 발표하여 전 세계 팝 팬을 놀라게 했다.
- 1981년 12월에 아버지가 납치범에 의해 유괴되었을 때는 스페인의 모든 경찰력을 동원시켜 범인을 찾게 했다.
- 아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도 세계적인 가수인데, 훌리오의 전성기를 봤던 사람들은 이분이 아버지보다 못하다는 평을 하기도 하지만, 2023년 기준으로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라틴팝 가수가 되었으며 빌보드 라틴차트 1위곡이 무려 23곡이나 되는 스페인의 국민가수이다.[3] 늦둥이가 많은데 그중 막내가 무려 2007년생이다.[4]
4. 대표곡[편집]
제목은 몰라도, 들어보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명곡들이 다수 있다.
- Hey : 지금까지도 가장 인기있는 그의 대표곡
- 'Nathalie'
- 'Con La Misma Piedra'
- 'Manuela'
- 'La Paloma'
- La Mer
- 'Crazy'
- When I Need You : 셀린 디옹외 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한 명곡
5. 엄친아[편집]
한국에서 그의 스펙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엄친아계의 최고봉
-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남 아버님이 이런 분이심
-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남
- 변호사를 목표로 스페인의 마드리드 대학교 법대 졸업
- 뛰어난 축구실력으로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의 골키퍼로 활약
- 1963년 10월 22일 자동차 사고를 당하여 투병하는 동안 기타를 연주하여 음악의 길로 접어듬
- 음악으로 라틴팝 최고의 자리에 오름
- 미남
- 자식농사 잘 지음
- RCA 레코드사에 소속되어 있는 아티스트 중에 가장 돈을 잘 버는 가수
6. 기타[편집]
1989년에 한국에 내한공연을 가졌는데 되려 일본인들이 더 많이 왔다. 일본에도 와서 공연했는데 한국 당시 공연관람비는 일본의 20%도 안되다보니 일본인들이 엄청 왔다는 것. 당시 영화월간지 로드쇼가 간략 인터뷰와 취재를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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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저브팀이다.[2] 우승했다고 기술되어 있었으나 종합 4위에 그쳤음.[3] 아버지 훌리오가 스페인어권 대중음악의 전설이라 아들 엔리케의 업적이 폄하되기 쉽긴 하지만, 엔리케는 제니퍼 로페즈, 리키 마틴, 마크 앤소니, 샤키라와 함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라틴팝 열풍의 주역이기도 했으며 최근 라틴팝 시장의 규모가 세계2위 수준으로 올라오면서 유튜브 조회수 10~20억은 쉽게 기록하기도 했다.[4] 그의 아버지인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시니어는 더욱 대단하다. 불임치료전문의로 스페인에서 이름을 날린 시니어는 무려 89세에 셋째 아이를 낳았다. 가수 훌리오와는 61세 차이다. 시니어는 2005년 90세로 사망하고 그 다음해 유복자 막내딸이 태어났는데 이쪽은 63살 차다. 늦둥이 낳는 게 이 집안의 가풍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