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생애/재위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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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2022년
2.1. 9월
2.2. 10월
2.3. 11월
2.4. 12월
3. 2023년
3.1. 1월
3.2. 2월
3.3. 3월
3.4. 4월
3.5. 5월
3.6. 6월
3.7. 7월
3.8. 8월
3.9. 9월
3.10. 10월
3.11. 11월
3.12. 12월



1. 개요[편집]


영국영연방 왕국의 국왕 찰스 3세의 즉위 후 주요 행보를 다룬 문서다.


2. 2022년[편집]



2.1. 9월[편집]


선왕이자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직후인 9월 9일 런던 버킹엄 궁으로 복귀해 리즈 트러스 총리와의 접견으로 국왕으로서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당일 저녁 6시에는 여왕에 대한 추모, 국민에 대한 다짐을 담은 대국민담화가 발표되었다. 이 연설에서 공식 책봉까지 몇 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아들 윌리엄 왕자와 며느리 캐서린 미들턴웨일스 공과 공비로 칭하며 윌리엄 왕자의 왕세자 책봉을 공식화했다.



즉위 후 첫 담화
왕궁 개방을 더욱 확대하고 필요하면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허락해 왕실 재정 수지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궁정 관리들에게 표명했다고 한다. 텔레그래프는 찰스 3세가 국가 또는 왕실 소유의 수많은 궁전과 거주시설을 모두 왕실이 차지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으며, 선왕이 마지막에 머물렀던 스코틀랜드밸모럴 성을 국가에 돌려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왕세자 시절에 밝혔던 버킹엄 궁전박물관으로 개조해 국가에 헌납하고, 윈저 성을 왕실 거주지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는 듯 하다.

즉위하자마자 왕세자 시절 함께 일했던 직원 수십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오보다. 실제로는 이들의 고용계약서에 '군주가 사망하면 고용(engagement)이 끝난다(terminate).'는 조항이 처음부터 있었기 때문에 계약에 따라 자동적으로 이루어진 조치이다.#

다수의 영국 언론들은 찰스 3세가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와 달리,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표명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1] 정치적, 사회적으로는 다소간의 자유주의 성향이 엿보인다는 세간의 평도 존재한다. 전기작가 페니 주너는 "찰스 3세가 명백히 드러나는 방식으로 정치에 간섭하지는 않겠지만 정당하게 총리를 만나는 자리에서 선왕보다는 훨씬 분명하게 자기 의견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왕실 구성원들이 누리던 특권의 범위도 대폭 축소할 예정이며, 그동안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종교 지도자와의 만남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에 오랫동안 참여해왔던 기후 변화 및 유기농 농업에 대한 활동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헌법 전문가인 버논 보그다노 교수는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대중은 캠페인을 벌이는 군주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찰스 3세도 2018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며 "군주가 되는 것과 의견 표명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즉, 왕세자 시절처럼 활발하게 정치적인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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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 선언문에 서명하는 찰스 3세
추밀원 즉위식
9월 10일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윌리엄 왕세자, 카밀라 왕비, 존 메이저,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보리스 존슨 전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즉위 서약을 하여 공식적으로 국왕으로 선포되었다. 이 장면은 역사상 최초로 국민들에게 방송되었다. 즉위식 연설, 즉위 서약문 내용이다.



버킹엄 궁 앞에서 국민들과 만나는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
영국 현지에서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무려 70년 214일 동안 왕좌를 지켜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공백을 메울 새 국왕에게 힘을 실어주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모아지고 있는 것과 64년간의 왕세자 생활을 거치며 평생동안 국왕에 필요한 자질을 충분히 갖춰온 것이 주요히 반응한 것이다.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여왕의 죽음으로 인해 향후 왕의 역할과 의미를 둘러싸고 상당한 혼란기가 될 수도 있는 왕위 계승기를 맞이했음에도 차질 없이 역할을 소화하면서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또한 그동안 왕세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였던 덕분에, 영국인들이 갖고 있는 찰스 3세에 대한 이미지도 다이애나 비 사망 시점에 대비하여 매우 좋아진 편이다. 불륜 행각으로 대중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부인 카밀라 파커 보울스가 최종적으로 왕비 작위를 받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찰스 3세 부부에 대한 영국 대중들의 인식이 예전보다는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9월 11~12일 영국의 여론조사기관 yougov에서 시행한 설문에 따르면, 전체 영국인들 중 63%는 새 왕의 리더십에 긍정적으로 응답한 반면, 부정적인 응답자의 비율은 15% 정도였다. 특히 보수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긍정적인 응답이 77%에 달했고, 부정적인 응답은 7%에 그쳤다. 노동당 지지자들의 경우 긍정적인 응답이 55%, 부정적인 응답이 20%였다. 여왕 서거 이후 찰스 왕의 행보에 대한 긍정 응답비율 또한 73%에 달해 5%정도의 부정응답과 21%의 모름 응답비율을 크게 앞섰다. #

다만 즉위식에서 보좌관에게 짜증을 내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물건을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치우라고 손짓으로 지시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으며, 책상 앞에 앉으려다가 또 다시 책상 위에 놓여있던 잉크 병과 만년필 통을 치우라는 듯 수행원을 쳐다보며 손을 휘저었다. 이번에도 짜증 섞인 표정이었고 수행원은 곧바로 물건을 가져갔다. # # 이 물건을 준비해준 사람은 윌리엄 왕세자로 알려져 있다.[2]

다만 이 짜증에는 이유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당시 만년필은 동네 문구점에서도 볼 수 있는 싸구려 Vpen으로, 우리나라로 치자면 중요 공식석상에 1000원 짜리 모나미펜이 나온 꼴#이라는 것이다.[3] 또한 사실상 '논란'이랄것도 없는게, 유독 한국 언론에서 기사 제목에 '짜증'이라는 표현을 써서 관심을 끈 것이지, 정작 영국 언론은 '찰스 3세가 펜을 치우라고 손짓했다.'라고만 썼으며, 사람들의 반응도 '이게 왜 뉴스거리냐', '솔직히 문서에 비해 책상이 너무 작긴 하다.'는 반응이다. 또한 '내가 왕실 지지자는 아니지만, 얼마 전에 어머니를 잃은 사람한테 너무 과하다.' 등 오히려 언론들의 과잉 보도에 초점을 맞춰 비판하는 댓글들이 많은 추천을 받고 있다. 거기에 찰스 3세는 평소 달걀 7개를 삶으면 그중에 가장 잘 삶아진 것 같은 한 개만 먹을 정도로 강박적인 성격을 가졌기에 저런 반응이 오히려 그답다는 의견도 있으며, 또한 인파에 둘러싸여 이동하던 중 한 시민이 갑자기 '맥주 마시러 가자'라고 외치자 '어디서 마실건지 알려줘야지'라며 여유롭게 농담도 할 줄 아는 모습이 방송을 타면서 언론이 또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여겨지고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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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체적인 여론과 별개로 영국 내의 공화주의자들이 여왕의 사망을 기회로 보고 활발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12. 오프라인에서도 산발적인 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며 소셜미디어에서도 '#Notmyking' 해시태그 캠페인이 벌어지는 중이다.

정식 즉위는 했지만, 대관식 거행은 내년 상반기 정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관식은 단순한 왕실 행사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세금이 투입되고, 그만큼 정교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윈저 왕조 선대 왕들의 대관식이 보통 5월~6월 사이에 열렸던 것을 감안하면, 날짜는 5월이나 6월 중 하루가 될 가능성이 높다.[5] 선왕이자 모친인 엘리자베스 2세도 즉위 후 1년 4개월이 지나서야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예외적으로 외할아버지 조지 6세는 즉위 후 6개월 만에 대관식을 치렀는데, 조지 6세의 형이자 찰스 3세의 큰외할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가 대관식이 준비되던 도중에 결혼 문제로 갑작스레 퇴위하여 원래 형이 할 예정이었던 대관식을 본인이 그대로 이어받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생긴 특이한 사례였다. 결국 찰스 3세의 대관식 날짜가 2023년 5월 6일 토요일로 발표되었다.

영국 ITV는 새 국왕이 "더 짧고, 더 작고, 더 저렴하게" 대관식을 치를것이라고 전망했다. 왕실 소식통은 "왕은 현대 영국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대관식이 과거의 오랜 전통에 따라서 올바르고 충실하면서도, 현대의 군주제를 잘 반영할것”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현대 영국에 맞게 규모는 대폭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공무에 참여하는 왕족의 수를 7명[6]으로 제한해 왕실 구성원에 투입되는 비용을 대폭 줄일 것이라고 한다.

9월 13 ~ 14일 yougov 조사에 따르면, 찰스 3세 즉위 이후 왕실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4달 전에 비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왕실이 영국에 좋다는 응답은 56%에서 62%로 늘어난 반면, 영국에 좋지 않다는 응답은 12%에 머물렀다. 특히 보수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긍정적인 응답이 86%에 달했고, 부정적인 응답은 3%에 그쳤다. 노동당 지지자들의 경우 긍정적인 응답이 48%, 부정적인 응답이 21%였다. 또 영국이 왕실을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 또한 62%에서 67%로 늘어난 반면, 왕실을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2%에서 20%로 줄어들었다. 특히 보수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왕실을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88%에 달했고,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6%에 그쳤다. 노동당 지지자들의 경우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53%, 왕실을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34%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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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 후 첫 공식 업무 사진
9월 24일 버킹엄 궁전은 새 국왕의 첫 공식 업무 사진을 공개했다. 지난주 버킹엄 궁전의 18세기 방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영국의 주요 정부부처 장관, 영연방 국방 대표의 중요 문서가 들어있는 레드박스가 오른쪽에 놓여있다. 집무실 책상 위에는 아버지 필립 공과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의 사진이 놓여있다.#


2.2. 10월[편집]


당초 11월에 이집트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참석이 국왕으로서 첫 해외 순방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10월 1일, 버킹엄 궁은 찰스 3세가 COP27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왕세자 시절 COP26에 참석하는 등 왕성한 기후변화 활동을 펼쳐온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이례적인 결정이다. 이는 리즈 트러스 총리 내각의 권고를 받아들인 결정인데, 이집트의 국내 상황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7] 왕세자에서 국왕으로 신분이 바뀌며 국제사회의 주목도가 올라갔기 때문에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후위기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다른 방법으로 COP27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이집트의 국내 정치 상황이 COP27 연설 무산의 배경이지만, 찰스 3세와 트러스 총리의 정치적 노선 차이로 인한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트러스 총리는 찰스 3세와 달리, 기후위기 대응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에너지 요금에 부과된 ‘녹색부담금’을 면제하겠다고 공언했고, 원자력발전소 건설에도 찬성한다. 영국의 새 내각에는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줄이는 이른바 탄소중립 목표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장관이 다수 포함돼 있다. 따라서, 찰스 3세의 기후위기 대응 지지가 내각에서는 다소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 한편, 왕실과 정부 측 은 상호가 합의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하며 '불화설'로 번지는데 선을 그었다.

10월 3일 버킹엄 궁전은 11월 22일부터 24일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가 국왕의 초청으로 국빈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찰스 3세가 즉위한 이후 처음으로 주최하는 국빈 방문 행사이다. 장례식 이후 첫 외교 행보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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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 수낙 총리 임명 장면
10월 25일, 리즈 트러스의 조기 퇴진으로 신임 총리가 된 리시 수낙을 접견했고, 관례에 따라 새 내각 구성의 권한을 부여했다.


2.3. 11월[편집]


11월 4일 버킹엄 궁전에 리시 수낙 총리,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 알록 샤르마 COP 의장 등 약 200명의 정치인과 환경 운동가들을 초청해 기후 변화 대처를 논의하기 위한 리셉션을 개최했다. 당초 COP27 참석을 반대했던 트러스 총리가 사임하면서 COP 관련 활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국왕 즉위 후 첫 환경운동 행보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는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도 참석했다. 찰스 3세가 평소 친분이 있던 스텔라를 반갑게 맞이하며 양쪽 뺨에 키스를 하자, 매카트니가 "폐하, 이젠 이렇게 해야할 것 같군요. 집에서 연습해 왔어요."라고 말하며 커트시(무릎절)를 해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오는 5월 6일 열리는 대관식에 최근 왕실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아들 해리 왕자 부부를 초대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의 원칙 중 하나였던 용서의 모습과 침착함의 태도를 이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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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이 영국을 국빈 방문했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빈으로 방문한 후 3년만에 열린 국빈 방문 행사로, 찰스 3세가 즉위한 후 처음 열린 국빈 방문 행사였다.[8]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는 전통에 따라 호스 가즈 퍼레이드에서 라마포사 대통령을 맞이했으며, 버킹엄 궁전으로 이동할 때는 마차 행렬이 있었다.# 저녁에는 버킹엄 궁전 대연회장에서 국빈 만찬이 성대하게 열렸다.#


2.4. 12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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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버킹엄 궁전에서 영국 주재 해외 대사들을 초청한 연례 외교 리셉션 행사를 주최했다. 찰스가 즉위한 후 처음 열린 연례 외교 리셉션으로, 2019년 이후 3년만에 열린 행사였다. 이 자리에는 카밀라 왕비윌리엄 왕세자, 캐서린 왕세자비 부부가 함께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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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은행이 공개한 찰스 3세 시대 지폐 디자인
12월 19일 5월 영란은행에서 찰스 3세의 초상화 이미지가 있는 새 지폐 디자인을 공개했다. 해당 지폐는 2024년 중반부터 유통될 예정이며,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화가 있는 기존 디자인의 지폐 역시 계속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12월 22일 버킹엄 궁은 국왕의 생일 기념 축하 행사인 트루핑 더 컬러(Trooping the Colour)의 날짜를 2023년 6월 17일로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찰스 3세의 실제 생일은 11월이지만, 오랜 전통에 따라 국왕으로서의 생일 기념 행사는 초여름인 6월에 치루는 것이다.[9] 1,400명 이상의 군인과 200여마리의 말, 400명에 달하는 군악대가 퍼레이드에 참여할 예정이다. 퍼레이드는 전통에 따라 왕실 가족들이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서 왕립 공군 비행을 지켜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한편 찰스 3세는 며느리 캐서린 미들턴 왕세자비를 아일랜드 근위대 대령으로,[10] 왕비 카밀라 파커 보울스를 척탄병 근위대 대령으로 임명하면서[11] 왕실 여성들에게 군 직함을 부여했다. 윌리엄 왕세자는 기존에 찰스 3세가 보유했던 웨일스 근위대 대령 직함을 물려받는다.#



2022년 크리스마스 연설
2022년 12월 25일, 국왕 즉위 후 첫 크리스마스 연설을 발표했다. 이전 국왕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는 TV 등 영상 대중매체의 시대 이전에 즉위한 왕이었기 때문에, 1957년에 처음 영국 국왕의 크리스마스 TV 연설이 방영되었을 때부터 쭉 엘리자베스 2세가 맡았었다. 따라서 영국인들 입장에서는 TV를 통해 다른 국왕의 크리스마스 연설을 보는 첫 연설이 되었다. 잉글랜드 버크셔주 윈저성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촬영되었는데, 지난 9월 사망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언급했고, 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국민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윌리엄 왕세자캐서린 왕세자비가 최근 웨일스를 방문해 공동체 정신의 예를 보여줬다고 했다. 왕실을 떠난 뒤 폭로전을 이어가고 있는 차남 해리 왕자메건 마클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날 각 방송사에 중계된 국왕 연설은 약 1070만 명이 시청했다. 작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연설의 시청자 수인 896만 명보다 많았고, 시청자가 1000만 명 밑으로 떨어지기 전인 1990년대 중반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번 연설에서는 공공 서비스 인력의 헌신을 치하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공동체 정신을 강조했으며, 다양한 종교를 존중했다. 두루뭉술한 화법의 엘리자베스 2세와는 달리 정치적인 사안들을 직접적으로 다뤘다. 데일리메일은 서두에 밝힌 공공 인력의 헌신에 대해 "파업 중인 영국 공공 노조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3. 2023년[편집]


찰스 3세의 즉위 2년차. 특히 5월에는 그의 치세를 본격적으로 대내외에 선포할 대관식과 즉위 이래 첫 의회 개원식 연설[12]이 있다.


3.1. 1월[편집]


1월 19일, 해상풍력발전단지 신규 임대 수입 연 10억파운드(1조5천억원) 중 왕실 몫을 받지 않을 테니 공익을 위해 써달라고 내놨다. 크라운 에스테이트(Crown Estate)[13]는 최근 왕실이 소유한 해저 부동산 6곳을 연 10억파운드에 해상풍력단지로 임대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BP 등 주요 에너지 업체들이 짓는 6개 풍력단지에선 700만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기가 생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임대료는 건설단계에선 최소 3년은 연 10억파운드, 이후엔 풍력발전 수익에 따라 결정된다. 이에 찰스 3세는 임대 수입을 왕실 수익으로 돌리지 말고 폭넓게 공익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왕실 교부금 비율을 낮춰달라고 정부에 제안했는데, 왕실이 포기하는 수익은 수백만 파운드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당시의 에너지와 생계비 위기를 고려한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14]

데일리 미러의 보도에 따르면, 대관식을 앞두고 BBC와 단독 인터뷰를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인터뷰 내용은 통치에 대한 철학과 군주제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개적인 언론 인터뷰를 가진 적이 없는 엘리자베스 2세와는 다분히 차별화된 행보다.[15] 최근 해리 왕자가 회고록 '스페어'를 출간하는 등 왕실과의 공개적인 폭로전을 벌이고 있어 관련된 내용이 인터뷰에 등장할지도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대관식 기념 단독 인터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생활비 위기와 외로움에 직면한 지역 주민들에게 따뜻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자신의 사유지인 스코틀랜드 메이 성과 덤프리스 저택, 하이그로브 저택의 오차드 룸을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3.2. 2월[편집]


2월 2일, 윤여철 주영한국대사를 만나 신임장을 제출받았다. 찰스 3세는 신임장을 받으며 윤 대사에게 한국에 다시 방문하고 싶으니 초청해달라는 의사를 전달했으며,[16] 북한 문제와 기후 변화에 대한 한국의 대응에 관심을 보이며 질문했다고 한다. 윤 대사가 올해 한영 수교 140주년과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에 관해 소개하자, 참전용사들에게 존경심을 표할 기회를 찾아봐야겠다면서 관심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또 "영국에 한국 식당이 많고 한국 음악이 인기가 있다"고 언급하는 등 한류에 관해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버킹엄 궁전에서 영국 내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출신 주민 공동체를 격려하기 위한 리셉션을 주최했는데, 이 자리에는 탈북자이자 북한 인권운동가인 박지현 ‘징검다리’ 공동대표도 참석했다. 박 대표는 “찰스 3세는 내 이야기, 그리고 북한의 암울한 상황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2월 8일, 찰스 3세의 이미지가 들어간 새 우표의 디자인이 공개되었다. 새 우표는 찰스 3세의 옆 얼굴과 바코드 등이 있는 간결한 디자인이며, 왕관 문양과 같이 왕실 상징이 들어가지 않았다.#

유튜버 영국남자와 만났다.# 영국 내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출신 주민 공동체를 격려하기 위한 리셉션에 영국남자가 초대되었으며, 찰스 3세를 직접 알현했다.[17] 찰스 3세가 영국남자에게 "유튜브에서 일하세요?"라고 묻자, 영국남자가 "아니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찰스 3세가 "오, 영국남자 맞죠?"라고 반응하며 영국남자에 대해 알고 있음을 밝혔다. 한국 음식을 먹어본 적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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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악수하는 찰스 3세
2월 8일 영국을 깜짝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버킹엄 궁전에서 만나 짧은 환담을 가졌다.

2월 14일 런던시리아튀르키예 커뮤니티 구성원들을 직접 만나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국왕은 튀르키예 취약계층을 위한 구호물품을 전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만났으며, 시리아 국민들을 위해 트라팔가 광장에 설치된 임시 텐트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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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일 밀턴 케인즈를 방문했을 때 공화주의 단체 '리퍼블릭'의 구성원 20여명이 찰스 3세 앞에서 군주제 반대 시위를 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God Save the King을 부르며 찰스 3세를 환영하는 인파들로 인해 현장에서 큰 소동이 벌어지지는 않았으며 찰스 3세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2월 20일, 영국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만났다. # 2월 24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용기와 회복력에 경의를 표하고, 러시아를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 우회적인 방법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밝혀왔던 엘리자베스 2세와는 다르게 훨씬 더 직설적이고 분명하게 입장을 밝혔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북아일랜드와 관련한 새로운 브렉시트 합의가 타결되어가는 가운데 찰스 3세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25일 윈저 성에서 면담하려 했던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합의에 대한 반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리시 수낵 총리가 찰스 3세를 이용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영국 언론에 따르면, 총리실에서는 아예 이번 합의를 '윈저 합의'라고 명명해 강경 브렉시트 파와 북아일랜드의 연방주의자들에게 국왕의 승인 사안이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했다고 한다. 즉, 국왕을 민감한 정치 문제에 끌어들이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날 예정되었던 면담은 최종 무산되었다.#

하지만 2월 27일, 찰스 3세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이날 오후 윈저 성에서 만날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버킹엄 궁전은 "국왕은 영국을 방문하는 세계 지도자들을 만나면 기뻐하며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조언"이라고 밝혔다. BBC데일리 메일은 두 사람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 변화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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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악수하는 찰스 3세
결국 이날 오후 윈저 성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만났다. 새로운 브렉시트 합의안이 이미 발표된 직후에 만났음에도 정치 개입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 하지만, 정부에서는 이번 면담이 EU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변화 대응 등 공동 과제에 대해서만 논의했다고 밝히며 정치 개입설에 선을 그었다.


3.3. 3월[편집]


3월 3일 버킹엄 궁전에서 찰스 3세카밀라 왕비가 3월 26일부터 31일까지 양국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독일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찰스 3세가 즉위한 후 국왕으로서의 첫 국빈 방문이다. 왕실 측은 이번 국빈 방문이 프랑스, 독일과의 관계를 기념하고 공통적인 역사, 문화, 가치를 기릴 것이라고 밝혔다. 찰스 3세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을 만나며, 역대 영국 국왕들 중 처음으로 프랑스 상원독일 연방의회에서 연설을 할 예정이다.

프랑스에서는 보르도 지역을 찾아 지난해 산불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영국 영사관 개관식과 태양열을 이용하는 유기농 포도밭을 방문한다. 또한 마크롱 대통령이 주최하는 국빈 방문 만찬이 베르사유 궁전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 궁이 아닌 베르사유 궁전에서 국빈 방문 만찬이 개최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카밀라 왕비는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함께 오르세 미술관을 찾아 이번에 새롭게 단장한 에두아르 마네에드가 드가 전시관의 개관식에 참석한다.#

이후 3월 29일 독일 베를린에 도착해 독일 국빈 방문 일정을 시작한다. 함부르크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 폭격 80주년을 맞아 기념관에 화해의 의미를 담은 화환을 전한다.[18] 베를린에선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일정을 시작하고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만난다.# 이번 국빈 방문은 브렉시트 이후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대관식 이전 첫 국빈 방문을 영연방 왕국 국가들 대신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을 선택했다는 점도 의미가 깊다.

3월 7일 에식스주의 콜체스터 성을 방문했을 때 또다시 군주제를 반대하는 시위대를 마주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찰스 3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왕실 지지자들은 여전히 찰스 3세를 지지하는 반응을 보이는 등 저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날 찰스 3세는 어린아이로부터 '최고의 왕'이라고 적힌 그림을 받았으며, 올해 초 콜체스터 동물원에서 태어난 흰색 코뿔소에 스와힐리어로 '아름다운 것'이란 뜻인 '다라'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3월 13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영연방 기념식에 참석해 연설했다.#

3월 24일 프랑스 엘리제궁에서 찰스 3세의 국빈 방문을 연기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 찰스 3세와 마크롱 대통령이 이날 오전 통화를 한 후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최근 마크롱 대통령이 정년 연장을 골자로 한 연금 개혁안을 발표한 이후 프랑스 전역에서 반대 시위가 격해지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19] 따라서 즉위 후 첫 국빈 방문 장소는 프랑스가 아닌 독일로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유럽연합 정상회의 참석차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중인 마크롱 대통령이 "초여름쯤 새로운 국빈 방문 일정을 잡는 방안을 영국 측에 제안했다"고 밝혔으며, 왕실 역시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가 "가능한 날짜를 찾는 즉시 프랑스를 방문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3월 28일, 찰스 3세엘리자베스 2세의 뒤를 이어 영국 육군 왕립 공병대 연대장으로 임명되었다는 내용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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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 후 공개된 첫 초상화

3월 29일, 즉위 후 처음으로 찰스 3세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공개되었다. 공식 초상화는 아니지만, 찰스 3세가 직접 의뢰한 그림이라고 한다. 초상화를 그린 화가는 왕의 개인적이고 친밀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예복이 아닌 정장을 입은 모습을 그렸다고 밝혔다.# 오른쪽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아마존 원주민 지도자가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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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즉위 후 첫 국빈 방문지인 독일에 도착했다. 도착 후 찰스 3세는 독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의장대의 사열을 받았으며, 대통령 궁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거리에는 역사적인 순간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한편, 찰스 3세는 환영 만찬에서 연설을 통해 영국독일 양국이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와 단결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특히 독일이 우크라이나 난민을 대거 수용했다는 것과 관련해 찬사를 보냈다. 아울러 기후 변화를 비롯한 직면 현안 극복을 위해 우정을 바탕으로 독일과 함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설에 앞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찰스 3세가 어린 시절 아버지 필립 공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만찬에는 앙겔라 메르켈독일 총리, 제임스 클레벌리 영국 외무장관 등을 비롯한 양국 고위 인사들이 참석했다. #


국빈방문 이틀째인 3월 30일에는 역대 영국 국왕 중 최초로 독일 연방의회에서 연설했다. 연설을 통해 찰스 3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에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왔고 유럽의 안보는 민주주의적 가치만큼이나 위협에 처했다"면서 "독일영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 최대 지원국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고 말했다. 또한 "독일과 영국은 단호하게 대응하고, 예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면서 "우크라이나에 커다란 군사적 지원을 하기로 한 독일의 결단은 지극히 용기 있고, 중요하며,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사의를 표했다. 아울러 환경 보호에 있어서 양국 간 협력과 기후친화적 기술 개발을 위한 양국의 노력을 강조했다.

한편, 독일어를 유창하게 하는 덕분에 이날 연설은 독일어와 영어를 번갈아 사용했다.[20] 연설에 앞서 연방 하원 의석은 꽉 찼으며, 독일 내각도 전원 참석해 연설을 경청했다. 연설 중간에는 박수가 이어졌으며, 마지막에는 본회의장에 있는 전원이 기립박수를 치며 찰스 3세를 환송했다.

이날 연설에 앞서 찰스 3세베를린 비텐베르크 광장의 장터를 방문한 뒤 연설 이후에는 베를린 옛 테켈 공항 터에 마련된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소를 들렀다. 이어 베를린 외곽 브란덴부르크주의 독일 영국군 공동 전차 지원대대생태마을 브로도원을 방문했다.

국빈 방문 마지막날인 3월 31일에는 함부르크를 방문했다. 이동 도중에는 차량 대신 대중교통인 인터시티익스프레스를 이용했다.[21] 영국 왕실 공식 SNS를 통해 열차 이동 도중 찰스 3세카밀라 왕비가 서류를 읽고 있는 모습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함부르크에서 국왕 내외는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부부와 성 니콜라이 기념관을 둘러보고 헌화했다. 이후 기념사를 통해 "국가와 국가를 가르는 증오는 없애야 한다"고 말하며 화해 의지를 강조했는데, 앞서 독일 연방의회에서 한 연설과 같은 맥락이다. 찰스 3세는 환영을 하러 나온 독일 시민들과 격의 없이 인사를 나누고 손도 붙잡는 등 소탈하고 서민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번 독일 국빈 방문 이후 국가원수로서 외교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22]


3.4. 4월[편집]


4월 6일, 카밀라 왕비와 함께 요크민스터에서 열린 로열 마운디(Maundy. 성목요일) 예배에 참석했다.[23] 국왕 내외는 요크민스터에 도착해 스티븐 코트렐 요크 대주교 등의 환영을 받은 후 74명의 남성과 74명의 여성들에게[24] 마운디 머니(Maundy Money. 성목요일 헌금)를 전달했다.[25] 이는 뛰어난 기독교적 봉사와 지역 사회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수령인은 영국 전역의 성공회 교구 등에서 선발했다고 한다.#

가디언지의 보도에 따르면, 찰스 3세윌리엄 3세 시절 왕실이 노예무역에 개입한 흔적을 조사하는 연구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고 한다. 연구는 찰스 3세의 즉위 직후에 시작됐으며, 영국 왕실이 노예 무역 역사 연구에 공개적인 지지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왕실은 17∼18세기 선대 국왕들과 노예무역 간의 고리를 밝히는 연구를 지지하며, 왕실 자료 등을 제한 없이 개방할 예정이다. 왕실은 국왕이 조상들의 노예무역 과거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으며, 사안의 복잡성을 감안하면 최대한 샅샅이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앞서 찰스 3세는 지난해 영연방 정상회의 개회사를 통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해야 공통된 미래의 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바 있다.#

4월 13일 시사주간지 타임이 발표한 '2023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었다.#

4월 14일 국왕이 된 후 처음으로 샌드허스트의 영국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찰스 3세는 졸업 생도들의 가족들에게 "두 졸업생의 아버지[26]로서 가족들이 느낄 엄청난 자부심을 잘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생도들을 격려하는 연설을 했으며, 영국군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정부의 대응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관식을 앞둔 시점에서, 찰스 3세와 군주제에 대한 영국 내부의 지지 여론은 상당히 공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4월 20일 발표된 데일리 미러와 Deltapoll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52%가 찰스 3세의 대관식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주제에 대한 생각을 물은 결과 23%만이 공화국으로 전환하기를 원했으며, 64%는 찰스 3세가 훌륭한 왕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1%는 군주제가 50년 후에도 여전히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으며, 28%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찰스 3세가 불륜과 여러 사건으로 이미지가 엄청 안 좋았다가 시간이 지나 어느정도 수습된걸 감안하면, 여전히 군주제가 공고하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이미지가 더 좋은 윌리엄 왕세자가 즉위하면 여론이 더 좋아질지도 모를 일이다.[27]


3.5. 5월[편집]


5월 6일 선왕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 후 8개월만에 국내외의 주목 속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성 에드워드 왕관을 수여받으며 대관식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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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3세 공식 초상사진
5월 8일 대관식을 마치고 버킹엄 궁전에서 촬영한 공식 초상 사진이 공개되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빌 클린턴, 마이클 잭슨 등 전세계 유명 인사들의 사진 촬영을 담당해온 사진작가 휴고 버낭이 촬영했다.[28]

5월 9일 케임브리지 대학교 휘틀 연구소 기공식 방문으로 대관식이 끝난 후 첫 공식 일정을 수행했다.#

5월 17일 카밀라 왕비와 함께 코벤트가든을 방문하며 대관식 이후 첫 부부 동반 일정을 수행했다.# 두 사람은 지역 사회 구성원과 시장 상인 등을 만났으며, 가정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을 지원하는 지역 사회 단체와 만났다. 저녁에는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프린스 트러스트(Prince Trust)[29] 기금 선정 시상식의 수상자와 관계자들을 초청한 리셉션 행사에 참석했다.#

5월 18일 사망한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를 대신해 2023년도 '엘리자베스 여왕 기념 영국 디자인상'(The Queen Elizabeth Award for British Design)[30]에 참석해 시상을 진행했다.#

5월 22일 카밀라 왕비와 함께 첼시 플라워 쇼를 방문했다. 찰스 3세는 한국의 황지해 정원 디자이너가 출품한 '백만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를 관람했으며, "멋지다"고 감탄하면서 호평을 보냈다. 원래는 정원 바깥에서 설명을 들은 후 자리를 떠날 예정이었지만, 정원에 큰 관심을 보인 찰스 3세가 직접 안으로 들어가 구석구석을 둘러봤다고 한다. 이후 악수 이상의 스킨십은 하지 않는다는 관례를 깨고 황지해 작가의 포옹 요청에 화답해 눈길을 끌었다.#

5월 24일 대관식이 끝난 후 처음으로 카밀라 왕비와 함께 북아일랜드를 깜짝 방문했다. 순방의 첫 일정으로 두 사람은 뉴타운애비에 새로 조성된 대관식 기념 정원 개장식에 참석했다.# 정원을 관람한 뒤에는 성 에드워드 왕관을 모티브로 제작한 왕관 모양의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정원을 방문한 시민들과 일일히 악수했다.# 이후 힐스버러 성에 도착해 대관식 벤치 디자인 대회에 참가한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을 만나고, 크리스 히튼 해리스 북아일랜드 장관을 접견했다. 접견이 끝난 후에는 북아일랜드 지역 인사들을 초청한 가든 파티에 참석한 뒤 대관식 기념수를 식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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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와 카밀라를 만난 찰스와 카밀라
5월 25일 세인트 패트릭 아일랜드 대성당을 방문해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북아일랜드 순방 이틀째 일정을 시작했다. 예배가 끝난 후에는 암스트롱 초등학교 학생들의 환영을 받았는데, 종이로 만든 왕관을 쓰고 있었던 찰스와 카밀라라는 이름의 어린이를 만났다.# 이후 에니스킬런 성에 방문해 전통 무용 공연과 전시 등을 관람하고, 여러 시민들을 만나는 것으로 북아일랜드 순방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5월 30일 윈저 성에서 열린 퍼레이드 행사에 참석해 엘리자베스 2세장례 행렬에 참여했던 약 150명의 해군 군인들에게 왕립 빅토리아 훈장을 수여했다.##


3.6. 6월[편집]


6월 2일 루마니아를 개인 자격으로 방문했다.[31] 찰스 3세는 코트로체니 궁전에서 클라우스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의 영접을 받았으며, 환영 리셉션 전 양자 회담을 가졌다. 양자 회담이 끝난 후에는 루마니아를 기리는 연설을 했는데, 특히 전쟁 속에서 우크라이나를 돕는 루마니아의 행보에 찬사를 보냈다.# 이번 방문에는 카밀라 왕비가 동행하지 않았으며, 찰스 3세는 루마니아에 있는 개인 휴양지에서 짧은 휴가를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32]#

6월 8일 윈저 성에서 카밀라 왕비와 함께 벨기에 필리프 국왕과 마틸드 왕비를 만났다.#

6월 15일 마르셀루 헤벨루 드 소자 포르투갈 대통령과 함께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수교 650주년 감사성찬례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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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군인 1400여명, 말 200여 마리가 참여한 가운데 국왕이 된 후 첫 공식 생일 행사인 군기분열식(Trooping the Colour)이 열렸다. 찰스 3세는 말을 타고 영국군 근위대의 사열을 받은 후 행진했는데, 공식 생일 행사에서 국왕이 말을 타고 참석한 것은 37년 만이었다.[33][34] 또한 여왕이 아닌 왕의 공식 생일 행사가 열린 것 역시 1951년 이후 72년 만이었다.[35]##

6월 19일 윈저 성에서 열린 '가터 데이(Garter Day)' 행사에 가터 기사단장으로서 참석했다.#[36]

6월 20일 카밀라 왕비, 앤 공주, 마이크 틴달[37], 피터 필립스, 베아트리스 공주, 에도아르도 마페라 모치[38], 톰 파커 보울스[39]와 함께 왕실 경마대회인 '로열 애스콧(Royal Ascot)'에 참석했다.# 이후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제2차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한 각국 정상들을 만났다.#

6월 22일 BBC에서 방송된 윈드러시(Windrush)[40] 75주년 기념 다큐멘터리에 직접 출연해 인터뷰를 가졌다.# 찰스 3세는 윈드러시 생존자들을 위한 초상화를 직접 의뢰했으며, 생존자들을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리셉션 행사에 초대했다.# 이후 윈저 성에서 윈드러시 생존자들을 기리는 감사성찬례를 드렸다.#[41]

6월 27일 카밀라 왕비와 함께 잉글랜드 파운더리[42]를 방문했다.# 두 사람은 퀸 마더 광장에 설치된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의 동판 제막식에 참석했으며, 에든버러 공작 기념 정원 개장식에 참석해 필립 공 흉상을 관람했다.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 왕자, 에든버러 공작부인 소피와 함께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국왕의 기업상(King's Award for Enterprise)' 수상 기업인 초청 리셉션에 참석했다.#


3.7. 7월[편집]


7월 3일 스코틀랜드를 방문했다. 찰스 3세카밀라 왕비는 홀리루드 주간을 맞아 일주일 동안 에든버러홀리루드 궁전에서 머무르며, 가든 파티와 훈장 수여식을 포함해 다양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특히 7월 5일에는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에서 찰스 3세가 스코틀랜드의 왕관을 수여받는 봉헌식과 퍼레이드가 예정되어 있으며, 카밀라 왕비의 엉겅퀴 기사단 기사 서임식 역시 열린다.# 홀리루드 주간의 첫 일정으로 폴커크를 방문해 시민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이후 홀리루드 궁전에서 찰스 3세가 에든버러시의 열쇠를 건네받는 전통 의식이 열렸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전시되어 있는 옛 왕실 전용 요트인 HMY 브리타니아를 관람했다.[43]#

7월 4일 카밀라 왕비와 함께 NHS 75주년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 이후 2022년 엘리자베스 2세플래티넘 주빌리를 맞아 홀리루드 궁전에 새로 설치된 문을 공개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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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자 유사프 스코틀랜드 행정수반과 악수하는 찰스 3세
홀리루드 궁전에서 훔자 유사프 스코틀랜드 행정수반과 앨리슨 조스톤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의장을 접견했다.#

카밀라 왕비앤 공주가 참석한 가운데 홀리루드 궁전의 정원에서 스코틀랜드 지역 인사들을 초청한 가든 파티가 열렸다.#

7월 5일, 카밀라 왕비윌리엄 왕세자, 캐서린 미들턴과 함께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에서 열린 봉헌식에 참석해 스코틀랜드의 왕관을 수여받았다.# 봉헌식을 전후로 에든버러 시내에서 퍼레이드가 이어졌으며, 에든버러 성에서는 봉헌식을 축하하는 축포가 발사되었다.# 이후 홀리루드 궁전으로 돌아와 영국 공군의 편대 비행을 지켜봤다.# 이날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 앞에는 군주제 반대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Not My King'을 외치며 시위를 하는 소동이 일어났지만, 군주제 지지자들에 비해 수가 적었다.#

봉헌식이 끝난 후 홀리루드 궁전에서 훈장 수여식이 열렸다.#

7월 10일, 윈저 성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두 사람은 지난해 9월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 이후 처음 만났다. 찰스 3세와 바이든 대통령은 영국군 근위대 웰시 가드의 사열을 받은 후 기념 촬영을 가졌다.# 두 사람은 기후 기금 포럼 관계자들과 만나 티타임을 가졌으며, 미국과 관련된 왕실 소장품들을 함께 관람했다.# 이로써 바이든 대통령은 두 명의 영국 국왕을 만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7월 11일, 윈저 성에서 훈장을 수여했다.#

7월 12일, 클래런스 하우스에서 열린 웨일스 공 자선 기금(The Prince of Wales's Charitable Fund)[44] 4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재분배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푸드뱅크 사업인 대관식 푸드 프로젝트(Coronation food project) 사업이 발표되었다.#

7월 13일, 카밀라 왕비와 함께 세인트 아이브스에 방문했다.#

7월 18일, 카밀라 왕비, 글로스터 공작 부부, 에든버러 공작부인 소피와 함께 윈저 성에서 열린 셰익스피어 희곡 전집[45] 출판 40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했다.#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 마거릿 공주 역할을 맡았던 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와 만나기도 했다.

7월 20일, 카밀라 왕비와 함께 웨일스를 방문했다.#

7월 24일, 잉글랜드의 링컨셔를 방문했다. 1918년부터 4대째 운영중인 치즈 공장을 직접 둘러봤으며, 공군 기지에서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을 만나 티타임을 가지며 채스티스 작전[46] 80주년을 기념했다.

7월 26일, 카밀라 왕비와 함께 제140회 샌드링엄 플라워쇼를 방문했다.


3.8. 8월[편집]


8월 10일, 카밀라 왕비윌리엄 왕세자, 캐서린 왕세자비 등 고위 왕족들에게 새로운 군 명예 직함을 수여했다. 찰스 3세는 HMS 엘리자베스의 후원자, 영국 육군 왕립 스코틀랜드 용기병 근위대 연대장과 왕립 기갑 연대 연대장, 왕립 포병 연대 연대장, 왕립 포병 중대 명예 중대장, 스코틀랜드 왕립 연대 연대장, 영국 공군 RAF 마함 명예 준장과 RAF 연대 준장직을 새로 맡게 되었다.

8월 12일, 하와이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에 대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위로 서한을 보냈다.

8월 16일, 2023 FIFA 여자 월드컵 호주·뉴질랜드 결승전에 진출한 잉글랜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에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8월 21일,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왕실 별장인 밸모럴 성에 도착했다. 성문 밖에서는 국왕의 방문을 환영하는 전통 의식이 열렸으며, 국왕을 보기 위해 성 주변으로 몰려든 시민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날 찰스는 스코틀랜드의 전통 의상인 킬트를 입고 등장했다.#

8월 24일, 찰스 3세카밀라 왕비가 9월 20일부터 22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프랑스를 국빈 방문할 예정이라고 발표되었다.# 지난 3월 프랑스 내부 상황으로 인해 국빈 방문이 취소된 후 6개월 만이다.

8월 26일, 카밀라 왕비와 함께 밸모럴 성에서 열린 'The Ballater Color' 행사에 참석해 근위대에 새 연대 깃발을 수여했다.#


3.9. 9월[편집]


9월 1일, 영국의 최고령 남성인 111세 존과 최고령 여성인 114세 에델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영상을 통해 공개되었다. 각각 1912년생과 1909년생으로, 무려 조지 5세에드워드 7세의 재위 기간에 태어났다.[47]#

밸모럴 성 휴가에 리시 수낵 총리를 초대했으며, 총리 부부는 9월 첫째주 주말에 성을 방문하기로 했다. 현직 총리를 밸모럴 성 휴가에 초대하는 엘리자베스 2세 시절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다수의 왕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휴가 기간동안 윌리엄 왕세자 부부와 회담을 열어 군주제와 영연방의 미래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9월 2일,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서 열린 'Braemar Gathering'[48] 행사에 카밀라 왕비앤 공주, 티머시 로런스와 함께 참석했다.#

9월 8일, 즉위 1주년을 맞았다. 엘리자베스 2세의 기일인 만큼 별도의 공개적인 행사는 갖지 않았다. 찰스 3세는 공식 성명문을 통해 "올 한 해 동안 여러분 모두에게 봉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안 저와 아내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지지에 감사드린다"라고 즉위 1주년을 맞은 소회를 짧게 밝혔다.#

이후 비공개로 진행된 엘리자베스 2세 서거 1주기 기념 추모 감사성찬례에 카밀라 왕비와 함께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엘리자베스 2세의 조카이자 마거릿 공주의 자녀들인 스노든 백작 데이비드와 사라 차토, 마가리타 암스트롱존스, 다니엘 차토, 사무엘 차토, 아서 차토 등이 참석했다.#

현지시각으로 오후 1시에는 명예포병중대가 런던 타워에서 엘리자베스 2세의 기일을 추모하는 예포 62발을 발사했으며,# 왕립 기마 포병대는 런던 하이드 파크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성, 북아일랜드 힐스버러 성, 웨일스 카디프 성에서 찰스 3세의 즉위 1주년을 기념한 예포 41발을 동시에 발사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는 즉위 1주년을 기념해 종을 울렸다.#

9월 13일,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 있는 최고도 지역을 방문해 지역 주민들과 초등학생들을 만났다.#

9월 15일, 스코틀랜드 킨로스 데이 센터(Kinross Day Center)를 방문해 지역 주민들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자선단체 'Broke Not Broken'의 관계자들을 만났다.#

9월 16일, 덤프리스 하우스[49]에 새로 문을 연 맥로버트 농업 및 농촌 기술 센터 개관식에 참석했다. 재생 농업과 목초지 방목에 관한 교육 섹션 중 동물 사료 영양의 중요성에 관한 워크숍을 관람했다. 이후 교육용 헛간과 양과 소의 방목시설을 견학했으며, 센터를 공식적으로 개장한다는 명판을 공개했다.#

경마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카밀라 왕비와 함께 잉글랜드의 덩커스터 경마장을 찾았다. 국왕이 스코틀랜드 체류 기간 도중 잉글랜드를 방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 세인트 레저 스테이크스[50]에 출전한 찰스 3세 소유의 말 데저트 히어로(Desert Hero)를 응원하기 위해 방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찰스 3세의 기대와는 달리, 이날 데저트 히어로의 성적은 3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9월 20일, 카밀라 왕비와 함께 프랑스를 국빈 방문[51]했다. 즉위 이후 2번째 국빈 방문으로, 찰스 3세는 2박 3일 동안 파리보르도를 방문하고 프랑스 상원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또한 베르사유 궁전에서의 국빈 만찬 역시 예정되어 있다.

이날 전용기를 타고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한 후 영국과 프랑스 양측 대표와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로부터 영접을 받았다. 이후 개선문에서 열린 국빈 환영식에 참석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내외를 만나 무명용사 묘에 헌화하고, 의장대의 사열을 받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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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하는 찰스 3세
기마병의 호위를 받으며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행진한 후 엘리제 궁전도착해 마크롱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가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찰스 3세에게 찰스 3세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는 황금 메달과 베르사유 궁전에서 가져온 참나무, 소설 '천국의 뿌리(The Roots of Heaven)' 초판 원본을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베르사유 궁전 참나무는 프랑스 주재 영국 대사관저의 정원에 심겨질 예정이다. 찰스 3세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두 사람의 모습이 담긴 사진 앨범과 프랑스 작가 볼테르의 전작 전체를 선물했다.[52]

엘리제 궁전에서 회담을 마친 후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영국 대사관저를 향해 도보로 이동했다.# 두 사람은 대사관저 정원에서 기념식수 행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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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국빈 만찬은 이례적으로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에 기여한 유명인사 160여명이 초청되었는데, 믹 재거베르나르 아르노, 아르센 벵거, 휴 그랜트 등이 초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찰스 3세는 만찬 시작 전 영어와 프랑스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12분간 연설했다.#

9월 21일, 역대 영국 국왕 중 처음으로 프랑스 상원에서 연설했다. 찰스 3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도발되지 않은 공격"이라고 언급하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동맹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확고한 연대를 갖고 있다. 우리는 함께 우크라이나가 승리하고 우리의 소중한 자유가 승리할 것이라는 결심을 하고 있다."고 밝히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 메시지를 전했다. 연설에서는 평소 찰스 3세의 관심사인 기후변화에 대한 언급도 있었는데, "지구가 직면한 도전은 크고 심각하지만, 정부와 국민, 그리고 점점 더 많은 민간이 취하는 조치들을 보니 점점 더 고무적이다"라고 밝혔다. 이날 연설은 영어와 프랑스어로 진행됐다.#

카밀라 왕비,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함께 2023 럭비 월드컵 프랑스 경기가 열리고 있는 생드니를 방문했다. 찰스 3세는 파리 생제르맹 FC 회장 나세르 알 켈라이피로부터 파리 생제르맹 티셔츠를 선물받았으며, 프레스넬 킴펨베디디에 드록바 등 전현직 축구선수들을 만났다. 이후 지역 청소년 스포츠 선수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마크롱 대통령 부부와 함께 2024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복원 중인 노트르담 대성당둘러봤다. 이후 국립 자연사 박물관에서 기후와 생물 다양성을 주제로 한 연설을 했다.#

2014년 엘리자베스 2세가 방문했던 파리 플라워 마켓을 방문했으며,[53] 샤넬의 메종 르사주를 방문해 전통 직물과 수공예품을 만드는 장인과 견습생들을 만났다.#

9월 22일, 국빈 방문의 마지막 일정으로 보르도를 방문했다.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는 원래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보르도로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경호상의 문제로 인해 비행기를 탑승해 이동했다. 보르도 메리냐크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군무장관으로부터 영접을 받았다.

도착 후 첫 일정으로 보르도 시청을 방문해 군중들을 만났다. 시청에서 찰스 3세는 웨일스 공 시절인 1977년 방문 당시의 사진과 1992년 엘리자베스 2세 국빈 방문 당시 사진과 기념품을 둘러봤다. 찰스 3세와 카밀라는 방명록에 서명한 후, 기념수를 식수했다.

이후 보르도에 정박해 있는 HMS 아이언 듀크를 방문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염두에 둔 일정으로, 프랑스와 영국의 군사 협력을 강조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트램을 타고 영국 홍보 캠페인인 'GREAT'의 홍보 행사장에 도착했다. 이때 주변으로 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이후 프랑스와 영국 농산물 기념 축제에 참석해 직접 보리로 만든 위스키를 시음하고, 노점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오후에는 지난해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을 방문해 당시 구조대원들을 만나고 복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을 둘러봤으며, 마지막 일정으로 보르도의 특산품인 와인이 만들어지는 유기농 포도원을 방문했다.

9월 26일, 오는 11월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영수교 140주년을 맞아 찰스 3세의 초청으로 영국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라고 발표되었다.[54] 찰스 3세가 즉위한 후 두 번째로 주최하는 국빈 방문으로, 한국 대통령이 영국을 국빈 방문하는 것은 2013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 이후 10년 만이다.#

한 유튜버가 밸모럴 성 영지에서 자전거를 타던 도중 우연히 주변을 산책하던 찰스 3세와 마주쳐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영상으로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해당 영상은 9월 28일 기준으로 조회수 138만회를 넘겼다.

9월 29일, 애버딘의 글로벌 수중 허브(GUH: Global Underwater Hub)를 방문해 교육용 아웃리치 프로그램과 수중 원격 운행 차량이 운행되는 모습을 직접 살펴봤다.[55]#


3.10. 10월[편집]


10월 3일, 스코틀랜드 애버딘의 목재 공장을 방문해 작업복과 안전모를 착용하고 공장의 시설을 둘러봤다.# 왕실 측에서는 목재 공장 방문을 기념해 찰스 3세가 어린시절인 1958년 밸모럴 성의 목공소에서 찍은 미공개 사진을 새로 공개했다.[56]#

10월 6일, 이탈리아 베니스 인근에서 발생한 버스 추락 사고에 대해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애도 메시지를 보냈다.#

10월 10일, 버킹엄 궁전에서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가 이달 31일부터 11월 3일까지 케냐를 국빈 방문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찰스 3세의 즉위 후 첫 영연방 국가 방문 일정으로, 케냐의 독립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루어진다.[57]#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후, 이스라엘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과 요르단압둘라 2세 국왕과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찰스 3세는 중동의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전했으며,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과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개인적인 기도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이어 대변인을 통해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야만적 테러 행위에 경악하며 규탄한다"고 밝혔다.#

10월 12일, 버킹엄 궁전의 화이트 드로잉 룸에서 2022년 및 2023년도 엘리자베스 여왕 공학상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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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회브리 회중 에프라임 미르비스 최고랍비와 만난 찰스 3세
버킹엄 궁전에서 연합 회브리 회중의 에프라임 미르비스 최고랍비와 만나 종교간 화합을 지속하고 국제적인 평화를 유지하는 방안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10월 18일, 케냐 국빈 방문을 앞두고 아프리카 출신 기업인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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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카밀라 왕비와 함께 즉위 후 처음으로 시티 오브 런던을 공식 방문했다. 찰스 3세와 카밀라는 도착 후 시티 오브 런던 시장의 영접을 받았으며, 시장으로부터 진주 검을 수여받았다.[58] 저녁에는 시티 오브 런던 시장과 금융부문 관계자, 시 의회 의원 등과 만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찰스 3세는 연설을 통해 즉위 1주년과 대관식을 맞은 소회를 밝힘과 동시에 '문명화된 논쟁"을 억누르는 소셜 미디어의 '악의와 실랄함'을 극복할 것을 촉구했는데, 즉위 초기 논란이 되었던 '만년필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농담을 던져 화제가 되었다.#

10월 19일, 엘리자베스 2세장례식대관식 준비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버킹엄 궁전에 초청해 만찬을 베풀었다. 이 자리에는 카밀라 왕비앤 공주, 에든버러 공작부인이 함께 참석했다.#

10월 24일, 케냐 국빈 방문을 일주일 앞두고 영국에 거주중인 케냐인들을 버킹엄 궁전에 초청해 리셉션을 가졌으며, 케냐와 관련한 왕실 소장품들을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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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 미샬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왕세제와 악수하는 찰스 3세
10월 25일, 미샬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쿠웨이트 왕세제를 버킹엄 궁전에서 만났다.

같은 날 버킹엄 궁전에서 훈장 및 기사 작위 수여식이 열렸다.

10월 26일, 영국 적십자사의 총재로서 가자 지구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 활동중인 자선단체의 관계자들을 버킹엄 궁전에 초청해 인도주의적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다.

이후 아프리카카리브 지역 출신 인사들을 접견해 그들의 업적을 기렸다.#

잉글랜드 노퍽주 노리치에 새로 문을 연 호스피스를 방문해 환자와 가족, 직원, 자원봉사자들을 만났다.#

10월 30일, 카밀라 왕비와 함께 케냐를 국빈 방문했다. 국빈 방문 기간동안 수도 나이로비에서 케냐의 기업가와 청년들을 만나고 국빈 만찬에 참석할 예정이다. 또 동아프리카의 역사 박물관을 방문, 케냐가 독립을 선언한 우후루 정원에 있는 무명 전사의 무덤에 화환을 놓을 계획이다. 이후 항구도시 몸바사로 이동해 자연보호구역을 방문하고 다양한 종교 대표들을 만난다.#

왕실 측에서는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가 케냐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서류를 읽고 있는 모습을 영상으로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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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과 만난 찰스 3세
10월 31일, 케냐 국빈 방문의 첫 일정으로 나이로비 대통령 관저를 방문해 윌리엄 루토 대통령과 레이첼 루토 여사를 만났다. 찰스 3세의 방문을 기념해 21발의 예포가 발사되었으며, 관저 앞마당에서 의장대의 사열을 받았다.# 이후 우후루 정원에 있는 무명 전사의 무덤을 방문해 헌화했다.# 헌화를 마친 후에는 자신이 직접 설립한 자선단체인 'Prince's Trust International'의 도움을 받고 있는 투르카나 지역 청년들과 만남을 가졌으며, 도심 농장을 방문해 농장의 시설을 둘러봤다.#

카밀라 왕비와 함께 매슈자 박물관을 방문해 케냐 독립 영웅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대통령 관저에서 열린 저녁 국빈 만찬에 참석했다. 만찬사에서 찰스 3세는 "과거의 잘못은 가장 큰 슬픔과 가장 깊은 후회의 원인이다. 독립과 주권을 위한 고통스러운 투쟁을 벌이는 케냐인들에 대해 혐오스럽고 정당하지 못한 폭력 행위가 자행되었으며, 이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하며 과거 식민 지배 역사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59] 또 "우리의 역사를 더 솔직하고 개방적으로 다루면 아마도 오늘날 우리 우정의 힘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11. 11월[편집]


11월 1일, 카밀라 왕비와 함께 영연방 연합군 기념 묘지를 헌화하는 것으로 케냐 국빈 방문 이틀째 일정을 시작했다. 헌화를 마친 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용사들을 만났으며, 마우마우 봉기[60] 당시 저항군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기 위해 영국으로부터 수훈받았던 훈장을 스스로 없앤 117세 최고령 참전용사에게 다시 훈장을 수여했다.# 이후 윌리엄 루토 대통령 부부와 함께 나이로비의 카루라 숲을 방문해 관계자들을 만나고, 기념수를 식수했다.#

영연방의 수장으로서 UN 나이로비 사무소를 방문해 유엔환경계획과 유엔 인간 주거 계획의 활동에 대해 논의했다. 이후 나이로비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관저를 방문해 기업가, 혁신가, 환경 운동가, 과학자, 교육자, 스포츠 인물, 정치인, 공무원, 지역 사회 지도자 등과 만나 리셉션을 가졌다.

카밀라 왕비와 함께 나이로비 국립공원을 방문해 케냐 전역의 야생동물과 보호 구역을 관리, 보존하는 위탁 사업체의 활동에 대해 들었다. 야생 코끼리를 만나 직접 먹이를 주기도 했다.#

같은날 영국에서 개회한 AI 안전 정상회의에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11월 2일, 몸바사의 해군기지를 방문해 영국군과 케냐군의 연합 해상 훈련을 참관했다.# 이후 해양 보존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 청년들을 만났다.

11월 3일, 몸바사 대성당에서 종교 지도자들과 만남을 가졌으며, 나흘간의 국빈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영국으로 귀국했다.

비록 과거 식민지배 역사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마우마우 저항군으로 활동하다가 영국 군대와 경찰의 모진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후손과 만남을 가지고 국빈 만찬에서 독립운동 무력 진압 등 영국의 폭력 행사에 대해 “가장 깊은 유감”(deepest regret)을 표시하는 등 옛 식민지 국가를 대하는 태도에서 엘리자베스 2세보다 훨씬 진전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3년도 영국 의회 개원 연설
11월 7일, 영국 의회 개원식에 참석해 머리에 제국관을 쓰고 개원 연설을 했다. 여왕이 아닌 남성 국왕의 의회 개원 연설이 진행된 것은 1951년 조지 6세의 연설 이후 72년 만이었으며, 제국관을 착용하고 연설을 하는 과거의 전통을 되살렸다.[61] 찰스 3세는 이날 연설 서두에서 작고한 여왕에 대한 경의를 표했으며, 북해 석유·가스 신규 개발 승인, 미성년자 흡연 억제, 중대 형사범죄 처벌 강화 등 리시 수낙 내각이 이번 회기 통과를 추진하는 21개 법안의 개요를 설명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지지와 가자 인도적 지원 등을 포함한 영국의 대외정책 방향과 계획을 밝혔으며, 이달 말로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 내외의 국빈 방문을 언급했다.# 버킹엄 궁전웨스트민스터 궁전을 오고갈 때는 지난 대관식 당시에 탑승했던 다이아몬드 주빌리 기념 마차를 탔다.

이후 저녁에는 NHS 75주년을 기념해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돈키호테 공연을 관람했다.#

11월 8일, 뉴 몰든의 한인 타운을 방문했다. 영국 왕실 인사가 한인 타운을 방문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국빈방문을 앞두고 이루어졌다. 뉴 몰든 감리교회에서 지역사회단체들로부터 한국 문화에 대해 듣고 한영수교 140주년 기념 전시회를 관람했으며, 교회에 전시된 한국 음식들을 둘러보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케이크와 팥빙수 가게를 방문해 한국 요리를 소개받았다. 또 현대무용 공연과 한국인 합창단의 '아름다운 강산' 공연을 관람했다. 북한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탈북자 출신 남성을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며, 75세 생일을 앞두고 김치와 김치 요리책을 선물받았다.[62] K팝 음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며 질문했으며, K팝 공연을 실제로 보지못해 아쉽다고 말했다고 한다.#

저녁에는 자선단체 관계자와 모금활동가, 난민 등을 버킹엄 궁전에 초청해 리셉션을 가졌다.#

11월 9일, 수정의 밤 85주년을 맞아 '킨더 트랜스포트(Kindertransport)'[63] 생존자들을 만났다.

3.12. 12월[편집]


[1] 지난 2004~2005년 농업, 유전자 변형, 지구온난화, 사회적 소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 편지와 메모를 정부 각료와 의원들에게 보낸 사실이 몇 년 뒤 언론 보도로 밝혀져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2] 이날 행사에는 윌리엄 왕세자도 증인 자격으로 부왕과 함께 즉위 선언서에 서명했다.[3] 한국의 사례를 인용하자면 문재인 정부 시절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의전실에서 합의서에 서명할 때 본래의 만년필 대신 모나미 네임펜이 등장해 의전 미비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4] 찰스 3세가 직후 이 시민과 담소를 나눴는데, 얼마 전 어머니를 잃었으니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기분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훌륭한 젊은이다, 등 덕담을 나누고 헤어졌다. 아쉽게도(?) 진짜로 맥주를 마시지는 않았다.[5] 조지 5세는 1911년 6월 22일, 조지 6세는 1937년 5월 12일, 엘리자베스 2세는 1953년 6월 2일에 대관식을 거행했다. 에드워드 8세는 대관식이 열리기 전 퇴위해 대관식을 치루지 않았다.[6] 찰스 3세 본인과 카밀라 왕비, 윌리엄 왕세자, 캐서린 왕세자비, 프린세스 로열 앤 공주, 웨식스 백작 에드워드 왕자, 웨식스 백작 부인 소피 리스존스. 여담으로 다른 남동생인 앤드루 왕자와 차남 해리 왕자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생전에 왕실 업무에서 배제되었다.[7]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군인 출신으로 2014년 대선에서 승리해 벌써 8년 이상 장기집권 중이다. 그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를 4년 넘게 유지함으로써 국민의 인권을 탄압했다는 국제사회 비판을 받아왔다. COP27를 앞두고선 ‘이집트가 환경운동 단체들의 활동을 심각하게 억압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국왕 즉위 후 첫 해외 순방인 만큼,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군사 독재국가에 방문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8] 다만 방문 자체는 찰스 3세가 즉위하기 이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즉, 원래는 엘리자베스 2세가 주최해야 할 국빈 방문 행사였던 것.[9] 엘리자베스 2세도 실제 생일은 4월 21일이었지만, 생일 기념 행사는 초여름에 치뤘다.[10] 이전에 윌리엄 왕세자가 보유했던 군 직함이다.[11] 이전에 앤드루 왕자가 보유했던 군 직함이다.[12] 앞서 웨일스 공 시절인 2022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의회 개원식에 불참한 엘리자베스 2세를 대신해 연설을 한 적이 있다.[13] 영국 왕실의 자산(내탕금)을 운용하는 기관이다. 여기서 발생한 수익은 국고에 귀속되고 있으며, 이 중 버킹엄 궁전 보수 비용 10%를 포함한 25%를 왕실이 교부금 형태로 돌려받고 있다.[14] BBC더 타임스 등 영국 언론은 찰스 3세가 작년 성탄절 연설에서 서민들의 생계난과 에너지 위기를 언급한 상황에서 왕실 수입이 크게 늘고, 특히나 그것이 전기요금 관련이라면 무척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지적했다.[15] 엘리자베스 2세가 단독 인터뷰를 가진 적이 딱 한번 있었는데, 그마저도 대관식 65주년을 기념해 당시 대관식 행사를 회고하는 내용이 전부였다. 1992년 다큐멘터리 출연 당시 간단한 나레이션을 한 적도 있지만, 인터뷰 형식과는 거리가 멀었다.[16] 찰스 3세는 왕세자 시절인 지난 1992년 11월에 방한했던 바 있다. 당시 방한은 전처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별거하기 불과 1개월 전이었고, 두 사람이 부부 동반으로 공무를 수행한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17] 아내 국가비도 함께 초청받았다. 이날 알현은 리셉션 참석자들 중에서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만 참석했다고 한다.[18] 괴벨스가 피해자 수를 10배 뻥튀기해서 선전한 드레스덴 폭격에 묻혀서 그렇지 영국 공군이 1943년 7월 25일부터 8월 2일까지 실시한 함부르크 폭격은 5만명의 시민 사망자와 함께 함부르크의 60%를 초토화 시키며 영국 공군이 독일에 무차별 폭격으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폭격 중 하나이다.[19] 특히 찰스 3세가 방문할 예정이었던 보르도 시청은 시위대의 방화로 불탔으며,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가 트램을 탑승하는 행사도 철도 노동자들이 모두 파업해서 무산될 정도였다. 또한 국빈 방문 만찬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릴 예정이었는데, 이런 엄중한 상황속에서 화려한 만찬을 여는 것은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만 줄 것이 뻔한 상황이다.[20] 아버지 필립 마운트배튼 공은 어머니부터가 독일인이었고 독일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어서 네이티브 수준의 독일어 실력을 갖고 있었다. 독일어 실력은 부전자전인 셈.[21] 일반 승객들과 함께 열차에 탑승했으며, 국왕 부부가 탑승했다는 안내가 별도로 이루어지지 않아 탑승자들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찰스 3세와 같은 열차를 탔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22] 역시 오랜 기간동안 웨일스 공으로 재임하면서 풍부하게 쌓아온 외교, 국빈 방문 경험이 크게 작용한 덕분으로 평가받는다.[23] 기독교 사순시기의 마지막 목요일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고(세족식) 최후의 만찬을 거행한 것을 기리는 의미를 갖는다.[24] 숫자 74는 찰스 3세의 나이를 상징한다.[25] 영국 왕실에서 매년 성목요일에 전통적으로 행하는 관례다. 드라마 튜더스에서도 아라곤의 캐서린 왕비가 전달하는 장면이 나온다.[26]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 모두 이 사관학교를 졸업했다.[27] 여론조사 결과대로라면 군주제에 대한 여론이 계속 악화되더라도, 막상 국민투표에서 공화국 전환에 표를 던질 사람들은 23%밖에 안된다는 뜻이된다.[28] 2005년 찰스 3세카밀라 왕비의 결혼식 공식 사진 작가로 왕실과 처음 인연을 맺은 후 왕실 전담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11년 윌리엄 왕세자의 결혼식 공식 사진도 이 사람이 촬영했으며, 2017년에 촬영된 찰스 3세의 공식 프로필 사진 촬영도 맡았다.#[29]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인 1970년대에 주창하여 설립되었는데, 빈곤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자활, 창업 지원을 수행한다.[30] 영국 디자인 산업 진흥이라는 취지 아래, 엘리자베스 2세가 2018년에 창설했다.[31] 국빈 방문이나 공식 방문이 아닌, 개인적인 목적의 방문으로 모든 일정은 비공개로 이루어진다.[32] 찰스 3세는 현재 루마니아에 최소 10개의 개인 부동산과 휴양지를 보유하고 있다.[33] 엘리자베스 2세는 60세였던 1986년까지만 말을 타고 공식 생일 행사에 참석했으며, 이후에는 고령을 이유로 말을 타지 않고 마차를 탑승하고 생일 행사에 참석했다. 찰스 3세는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말을 타고 행진했을 때보다 10여살이나 더 많은 나이에 첫 공식 생일 행사를 치르게 된 것이다.[34] 찰스 3세는 젊은 시절 폴로를 즐길 정도로 말타기에 익숙한 편이며, 덕분에 70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말을 탄 상태로 군기분열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실제로 찰스 3세가 버킹엄 궁전 정문 앞에서 행진하는 근위대원들을 향해 경례할때 말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말을 진정시켜 별다른 소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울러 자신의 즉위 후 첫번째 군기분열식이라는 상징적 측면에서도 말을 타고서 거행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35] 당시 조지 6세는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으며, 공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가 선두에 서서 생일 축하 행사를 이끌었다.#[36] 매년 군기분열식 행사로부터 며칠 후 윈저 성에서 열리는 연례 행사로, 국왕이 직접 새로운 가터 기사단 기사를 임명하는 자리다. 왕족들이 기사단 예복을 갖추어 입은 것을 볼수있는 몇 안되는 행사이기도 하다.[37] 앤 공주의 사위, 자라 틴달의 남편[38] 앤드루 왕자의 사위, 베아트리스 공주의 남편[39] 카밀라 왕비의 장남[40] 지난 1948년 카리브해 출신의 영연방 주민 수백여명이 거주권을 인정받고서 '엠파이어 윈드러시' 호를 타고 영국으로 이주하였다. 하지만 영국 내의 반이민 여론이 가시화되자 당시의 이주민과 후손 세대들은 배척받았고, 영국과 중남미 카리브해 국가들 사이의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윈드러시 스캔들을 참고할 것.[41] 종합해보면 찰스 3세와 영국 왕실의 윈드러시 관련 기념행사 주최는 다문화 국가로서 영국의 정치-사회적 개방성을 대내외에 확인시키는 동시에, 윈드러시 세대의 모국인 카리브해 국가들과의 외교 문제까지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42] 콘월 공국 내에 있는 도시로, 1989년에 출간된 찰스 3세의 저서 'A Vision of Britain'에 나온 도시 계획의 원칙에 따라 설계되었다.#[43] 1953년부터 1997년까지 왕실 요트로 사용되었으며, 왕족들의 생활 공간과 각종 리셉션과 만찬이 열리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필립 공은 브리타니아를 즐겨 찾았으며, 밸모럴 성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휴양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1997년 선박 노후화로 인해 퇴역한 이후 현재는 일반 대중들에게 전시되고 있다. 선박 퇴역 당시 엘리자베스 2세가 눈물을 보여 화제가 되었는데, 여왕이 공식석상에서 눈물을 보인 몇 안되는 사례이다.# 이후에도 엘리자베스 2세는 새 왕실 요트를 마련하기 위해 의회에 지속적으로 로비를 벌였으나, 번번히 실패했으며 결과적으로 재위 기간동안 브리타니아 이후 새 왕실 요트를 갖지 못했다.[44] 찰스 3세가 웨일스 공 시절 설립한 자선 기금으로, 문화유산 보존과 교육, 건강, 복지, 환경 등 다양한 자선 사업을 벌이고 있다.[45] 일명 '퍼스트 폴리오(First Folio)'로, 셰익스피어가 사망하고 7년 후에 출간되었다.[46] 영국 공군의 폭격기가 1943년 5월 독일 루르 강의 수력발전소를 공격, 붕괴시킨 작전. 영화 '댐 버스터'(1955년작)로도 알려졌다. 지난해에 당시 작전에 참전했던 마지막 생존자가 별세하였다.[47] 영국 왕실에서는 국왕과 왕비의 이름으로 100세 이상의 영국 국민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며, 매년 10,000장 이상의 축하 메시지가 전달된다고 한다.[48] 매년 9월 첫째주 토요일에 열리는 페스티벌로, 엘리자베스 2세는 매년 이 행사에 참석했다.[49]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저택으로, 여러번 주인이 바뀌면서 외국에 팔릴 뻔했다가 2007년 찰스 3세가 매입해 개인 별장으로 리모델링한 다음, 대중들에게 공개했다.[50] 왕실 종마가 이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1977년 엘리자베스 2세 소유의 말이 우승한 것이 마지막이다. 이후 46년간 이 대회에서 왕실 종마가 우승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51] 지난 3월 독일과 함께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상술했던 프랑스 내 파업으로 인해 연기되었다.[52] 볼테르 재단의 이사이자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인 니콜라스 크롱크가 1968년 편집을 시작해 2022년 4월에 완성했으며, 총 20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53] 사실 찰스 3세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 아닌데, 1948년 5월 엘리자베스 2세가 찰스 3세를 임신한 상태에서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54] 또한 윤 대통령은 영국 방문 직후인 12월 초 네덜란드에도 국빈 자격으로 방문할 예정이다. 시기상 11월 말로 계획된 2030년 엑스포 개최지 발표 일정에 맞춰진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에게는 2022년 9월 엘리자베스 2세 장례식 참석 이후 1년만의, 재임 중 두번째 영국 방문이다.[55] 참고로 찰스 3세는 수중 다이버 자격증을 가진 최초의 왕족이다. 1975년 캐나다의 북극 빙하 아래에서 30분 동안 다이빙을 했으며, 1982년 인양된 메리 로즈호를 수중 탐사한 경력도 있다.[56] 사진의 왼쪽 끝에는 엘리자베스 2세의 모습도 함께 찍혔다.[57] 케냐는 영국 왕실과의 인연이 각별한 곳이기도 한데, 1952년 2월 이곳을 방문중이던 엘리자베스 2세조지 6세의 서거로 인해 이곳에서 여왕으로 즉위했다.[58] 1392년 리처드 2세의 재위 시기부터 이어져온 의식으로, 국왕이 시장으로부터 검을 수여받은 다음 다시 검을 되돌려주며 시장의 권위를 인정해주는 의식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역시 1953년 대관식 이후 시티 오브 런던을 방문해 진주 검을 수여받았으며, 1977년 실버 주빌리와 2022년 플래티넘 주빌리 당시에도 같은 의식을 치렀다.[59] 다만 케냐 인권위원회에서 요구한 공식 사과는 이루어지지 않았다.[60] 1952년부터 1960년까지 케냐에서 벌어진 무장 투쟁 독립 운동이다.[61] 엘리자베스 2세는 고령을 이유로 2016년 이후로는 더 이상 제국관을 착용하지 않았으며, 제국관을 왕좌 옆에 놓고 연설을 했다. 또한 예복이나 망토 대신 정장을 입으며 드레스 코드 역시 상당히 간소화시켰는데, 올해 개원식은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가 모두 예복을 착용하고 참석했다.[62] 찰스 3세는 김치를 전달받으며 "(먹으면 매워서) 머리가 터질까? (머리가) 남아 있을까?"라며 썰렁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본인이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날 선물로 전달된 김치는 고춧가루를 절반으로 줄이는 등 가능한 한 매운 맛을 덜하게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63] 1938년부터 1940년까지 나치 독일에서 영국으로 유대인 어린이들을 구출한 작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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