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력기원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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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원년의 오류
4. 표기
5. 서력기원이 비주류인 국가들
6. 기타


1. 개요[편집]


서력기원(西 / Anno Domini), 또는 서기(西)는 그리스도교의 창시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다고 추정한 [1]를 기원으로 하는 기년법을 말한다. 서구 문명의 영향력이 전세계로 퍼지면서 현생 인류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연호가 되었다.


2. 역사[편집]


서구 문화권에서는 해(年)를 표기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병용되었다.

마치 동양에서 임금의 재위년을 기준으로 연도를 헤아렸듯이, 유럽이나 중근동의 고문서들이나 금석문에서도 로마의 황제집정관, 또는 지역의 권력자가 재임했던 시기를 기준으로 연도를 설명하곤 했다. A지역의 금석문에 'A지역의 로마 총독으로 아무개가 취임한 이듬해'라고 쓰는 식이다. 기원전 1세기 리비우스가 쓴 <로마사> 1권 52장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sub Tullo res omnis Albana cum colonis suis in Romanum cesserit imperium.

(로마의 3번째 임금) 툴루스 시절, 식민지를 포함하여 알바나의 모든 것이 로마 지배권에 들어왔다.

2세기 중엽에 쓰였다고 추정하는 초대 교회의 문서 <폴리카르포 순교록>(Martyrium Polycarpi)에서는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포가 순교한 해를 "트랄레스(Tralles)[2]의 필립푸스(Philippus)가 대사제이고, 스타티우스 콰드라투스(Statius Quadratus)가 전 집정관이었을 때"라고 설명했다.[3] 성서에서도 이런 식으로 연대를 표시했다.

이렇게 권력자의 재임시기로 연대를 표기하는 것은 유럽이나 중근동에서 가장 널리 쓰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해당 권력자가 누군지 잘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때인지 금방 감이 오겠지만, 모르는 사람이라면 언제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고대 로마가 건국했다고 전하는 서기전 753년을 원년으로 삼아 연도를 헤아리는 방법도 있었다. 라틴어로는 'Ab Urbe Condita(로마 도시가 세워진 이래)'라고 썼는데 약칭하여 'AUC'라 한다.[4]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로마에게 정복된 해를 기준으로 연도를 헤아리기도 하였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림피아 제전연도표기에 사용하기도 했다.

로마 제국의 동남쪽, (오늘날 이집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교회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 재위)가 즉위한 해(284)를 원년으로 삼은 순교자기원(Anno Martyrum)을 4세기부터 사용하기도 했다.[5]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황제로 재위하던 시절에 마지막으로 대규모 그리스도교 박해를 행했기 때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직접 통치한 이집트에서 박해가 강력해서 순교자들이 많이 나왔던 점도[6] 알렉산드리아 교회가 순교자기원을 만들고 사용한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순교자기원은 알렉산드리아 등 동로마에 있는 교회 일부에서 사용했을 뿐이었고, 서로마 교회에서는 결코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라틴어로 인딕티오(Indictio)라는 것도 연대를 표기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쓰였다. 인딕티오는 본래 '포고령' 또는 '공고'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로마 제국에서 15년마다 한 번씩 토지세 계산 목적으로 대규모 재산평가를 하라고 황제의 명으로 포고령을 내리던 것을 가리킨다.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재산평가 포고령 주기로 연대를 표기하는 방법을 도입했는데, 로마의 일반 역법과는 달리 시작일을 9월 1일로 잡았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회계연도' 개념이었다. 예를 들어서 secundus annus indictionis(포고령의 두 번째 해)라고 하면 포고령이 내리는 해의 이듬해를 가리켰다. 포고령이 내리는 당년은 primus annus indictionis(포고령의 첫 번째 해)라고 표현했다.

나중에는 인딕티오가 15년 주기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처럼 쓰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주기의 두 번째 해를 secunda indictio(두 번째 포고령)이라고 표현하는 식이었다. 인딕티오 방식은 동양권에서 60갑자만으로 연도를 표기하는 것과 비슷해서 '몇 번째 포고령 주기'인지는 무시하였다. 그래서 서양의 고문서에서 인딕티오 방식으로 연도를 표기했다면, 그것이 정확히 어느 해를 뜻하는지는 따로 계산해야 한다.

서기 525년,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라는 소스키티아(Scythia Minor)[7] 출신 동로마 수도자가 교황 요한 1세에게 요청을 받아 서기 532년부터 626년까지 95년간의 부활절 날짜를 계산하여 표를 만들었다.

이전에도 부활절 계산표는 있었지만, 동방에서 만들어 연도를 주로 순교자기원으로 표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디오니시우스는 근거를 밝히지 않고 로마기원(AUC) 754년을 예수의 탄생년으로 잡아 자기가 만든 부활절 계산표에서 연도를 표기하는 기준으로 사용했다. 서력기원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했다. 디오니시우스가 순교자기원을 거부한 이유는 박해자 황제의 즉위년을 기준으로 연도를 표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로마교회는 그가 제작한 표를 받아들였지만 연대를 적는 방법까지 수용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서력기원은 유럽에서도 오랫동안 대중화되지 못했다.

서기 691년부터 정교회권에서는 창세기 내용을 따져서 세계가 창조된 해라고 생각한 서기전 5509년을 원년으로 삼는 '우주력'을 사용하였고, 988년 동로마 제국키예프 공국은 우주력을 공식 연호로 채택하였다.

서기가 비로소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8세기부터이다. 영국 베네딕토회 수도자이자 당대의 저명한 학자인 가경자 베다(Venerable Bede)는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만든 부활절 계산표를 디오니시우스의 방법에 따라 이후의 시대까지 확장하여 725년 저서 《시기계산론De temporum ratione》에 수록했다. 당연히 디오니시우스가 만든 '서력기원'을 잘 알고 또 익숙했다.

베다는 731년 즈음에 탈고한 저서 <앵글족 교회사>[8]를 집필하며 서력기원을 채택했다. 물론 다짜고짜 서기로 연대를 표시하면 당대의 독자 대부분이 감을 잡지 못할 테니, 책의 첫 부분에서 잠깐 AUC와 서기를 병행하다가 이후로는 서기만 사용하였다.

Verum eadem Brittania Romanis usque ad Gaium Iulium Caesarem inaccessa atque incognita fuit; qui anno ab Urbe condita DCXCIII, ante vero incarnationis Dominicae tempus anno LXmo, functus gradu consulatus cum Lucio Bibulo.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키우스 비불루스와 함께 집정관이던 때, (로마) 도시가 세워진 지 693년, 주께서 육화肉化하시기 60년 전까지 브리타니아는 로마인들이 온 적도 없었고 전혀 알려지지도 않았다.[9]

<앵글족 교회사> 1권 2장 첫머리에서

베다는 <앵글족 교회사>에서 서기를 사용하며 Anno ab incarnatione Domini(주의 육화肉化한 이래의 해), 또는 Anno incarnationis Dominicae(주의 육화肉化의 해)라고 표현했다. 역사서에 처음으로 서기를 도입해서인지 표현도 고정하지 않았고 줄임말도 쓰지 않았다. 베다의 책을 읽은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서기는 참신하면서 또 편리해 보였던 모양이다.

영국의 베네딕토회 수도자 요크의 알쿠인(Alcuin of York)은 베다보다 약간 후대 사람으로, 생전에 베다를 만난 적은 없지만 같은 노섬브리아 출신이었으므로 베다의 저작을 읽고 명성을 익히 들었음이 분명하다.[10] 알쿠인은 훗날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서 카롤루스 대제와 만나 그의 조언가로 노릇 했는데, 아마도 800년 즈음에 서력기원으로 연대를 표시하는 방법을 그의 조정(朝廷)에 알려주었다. 카롤루스로부터 카롤루스 왕조가 서기를 사용했던 것이 유럽에서 서기가 퍼지는 한 가지 계기가 되었다. 서기는 이렇게 영향력을 넓히다가 11–14세기쯤에는 서유럽에서 대중화되었다. 서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포르투갈이 마지막까지 별개의 연대표기방법을 사용하다가 1422년에야 겨우 받아들였다.

서기가 서유럽에서 대중화되는 와중에도 서기 원년 이전 시대까지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년 전'이라고 기술하는 방식은 잘 나타나지 않았다. 가경자 베다가 이미 <앵글족 교회사>에서도 '주께서 육화하시기 전'이라는 표현을 한 번 사용했는데도 말이다. 서력기원 이전 시대도 서기 원년에서 거슬러 세는 방식을 대중화한 서적은 17세기 프랑스 예수회 신학자 겸 역사가인 데니 페토(Denis Pétau)가 1627년 출판한 《시대주장론De doctrina temporum》이라고 한다.[11]

1453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로는 정교회권도 점차 서력기원으로 대체되어 1728년에 이르자 우주력을 버리고 서력기원만을 사용하였다. 이후 식민지 개척과 함께 비그리스도교권에도 퍼져 서력기원이 지구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연호가 되었다.

3. 원년의 오류[편집]


기년법은 서기 525년,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예수가 탄생했다고 추정한 해를 기원(紀元)으로 한다. 이 해에 대해서는 서기 1년 문서 참조.

디오니시우스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근거로 예수의 탄생년이 로마기원 754년이라고 판단했는지는 그가 밝히지 않았으므로 모른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추정하며 약간 오류를 범했고, 예수가 아마도 서력기원(西曆紀元) 원년이 아닌 기원전에 출생했다고 여긴다. 헤로데 대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다는 성경의 기록, 헤로데가 기원전 4년에 사망했다는 점을 결합해 기원전 4년이라는 설이 가장 대중적이다. 국내에서 출판되는 대부분 역사 교과서 부록에는 기원전 4년으로 서술했다.

가톨릭에선 헤로데가 예수를 죽이려 하자 요셉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헤로데가 죽자 이스라엘로 돌아왔단 서술을 적용해 그보다 좀 더 전인 기원전 6년쯤이라는 설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그 외에도 기원전 7년이라는 둥 여러 주장이 있지만, 대부분 학자들은 기원전 6년–기원전 4년 사이로 본다. 하지만 학자들도 3–4년 사이로 오차를 좁혔을 뿐 정확한 출생연도를 특정한 것이 아니거니와, 이제 와서 원년을 바꾼다면 터무니없는 사회적 비용이 소모되므로 현재 그대로 서력기원을 사용한다.


4. 표기[편집]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표준 기년법이므로, 아무런 표시 없이 연도를 표기하면 서력기원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아시아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연호를 사용했지만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은 서력기원을 단독 표준으로 결정했고, 자체 연호를 계속 사용하는 나라도 서력기원과 병행해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어권에서 기원후는 라틴어 약자인 AD(Anno Domini)[12], 기원전영어 약자인 BC(Before Christ)를 주로 써왔다.[13] AD는 현재 라틴어 문장 내에서 쓸 때에는 주로 장음 표시 악센트인 마크론(¯)을 덧붙인 'annō Domini'로 표기하기도 하며, 영어 인쇄물이나 컴퓨터 문서에서는 이탤릭체로 입력하는 경우가 많다. Anno Domini의 뜻은 '주님의 해[年]에서'이며, 영어로는 'in the year of our Lord'로 번역한다. 과거 영어권 국가에서는 'in the year of our Lord', '(the) year of our Lord', '(in the) year of our Lord Jesus Christ(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해)'와 같은 표현이 대신 쓰이기도 하였다. 비영어권 서유럽에서도 기원후는 흔히 AD를 쓰지만, 기원전은 저마다 자국어에서 유래한 다른 약자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이란 뜻으로 av. J.-C. 또는 라틴어로 AC(Ante Christum)를 사용한다.

현대 영어권에서는 AD와 BC를 CE와 BCE(Before CE)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CE는 Common Era, 또는 Christian Era의 약자인데, 일반적으로 쓰이는 Common Era라는 표현은 이 역법이 현재 종교와 지역에 무관하게 전 세계에 퍼졌다는 점을 감안해 종교적 의미를 완전히 제거한 것이다. 반대로 Christian Era는 Anno Domini 같은 특정 종교에서만 사용되는 숭배의 어감을 배제하고 '그리스도교의 연호'라는 뜻을 담았다. 그러나 이러한 CE, BCE는 아직까지 AD와 BC를 대체할 만큼 보급되지는 않았고 주로 영어권 학계를 중심으로 사용된다. 학자들조차도 그냥 AD, BC라고 쓰는 사례도 여전히 많다. 대중문화에서도 영어권에서는 CE/BCE가 AD/BC와 함께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들 문화권을 벗어나면 CE/BCE의 사용 사례가 줄어든다.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서력기원'이란 표현은 서양에서 온 기년법이라는 뜻이라 종교적 색채가 전혀 없기 때문에 영어권의 동향에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보통은 서력기원을 약칭하여 서기(西紀)라고 한다. 서력기원 이전은 '기원전'이라고 하고, 서기 원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후 시대에 한정하여 '기원후'라고 적는 경우도 있다.[14] 기원전을 가리키는 '서기전'이란 낱말도 국어사전엔 있지만 '기원전'에 비하면 잘 안 쓰인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서적 등에서 서기 이후를 주후(主後)라, 서기 이전을 주전(主前)이라 칭한다. 한국 천주교대한성공회는 한잣말을 많이 쓰는 시절에 서기를 천주강생(天主降生)으로 번역했는데, 현대에는 의도적으로 예스러운 표현을 쓰고자 하는 경우에만 사용한다. 역사가 오래된 천주교 성당이나 성공회 성당에 가면 머릿돌에 '천주강생 19○○년' 하고 표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신교에서도 대한제국 시대와 일제강점기에 구주강생(求主降生)이라는 번역을 쓰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거의 주후(主後)가 대체하였다. 북한에서는 정말 알기 쉽게 기독교년대(基督敎年代)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도 西暦紀元(서력기원)이라고 하나, 줄임말로는 한국과는 달리 西紀(서기) 대신 西暦(서력)이라는 표현을 널리 사용한다. 일본식 발음은 세-레키(せいれき).

중화권에서는 기독기년(基督纪年), 또는 기독기원(基督纪元)이라고 하다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1949년부터 법정 연호로 채택하여 공력기원(公曆紀元)·공력(公曆)·공원(公元)이라 하였는데, 국제사회에서 공용하는 연호란 뜻으로,[15] 따라서 보편적 시기란 뜻인 Common Era와 비슷하다.[16] 그렇다고 중국어에서 서력기원이란 말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중화민국(대만)에서는 서원(西元)이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중국 대륙은 서력기원이 공식 기년법이지만, 중화민국(대만)은 민국기년이 공식 기년법이기 때문이다.


5. 서력기원이 비주류인 국가들[편집]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민국기년을 사용하며, 민간 부문에서도 서기에 비해 민국기년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심지어 中華民國(중화민국) 또는 民國(민국)이라는 연호를 붙이지 않고 연도만 적은 경우 기본값이 중화민국 기년법인 무시무시한 나라라 서기를 병기하는 자비심도 베풀지 않는다. 따라서 대만을 장기간 방문한다면 올해가 중화민국 몇 년인지 정도는 알고 가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식품 포장에 써있는 유통기한도 109[17]. 04. 01.식으로 연도를 민국기년으로만 적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걸 모르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 2011년 대만의 컴퓨터에서 Y1C 문제가 발생할 우려도 있었다. 간단하게 서기에서 1911을 빼면 된다. 예컨대 2022년민국 111년이다.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주체연호를 1997년부터 사용 중인데, 우연히도재수없게도 위의 민국기년과 원년이 같다.(...) 심지어 원년이 일본의 다이쇼 연호와도 같다. 다만 북한은 대만과 달리 '주체 109(2020)년' 하는 식으로 괄호 안에 서기 연도를 병기하는 것이 공식이다. 다만 김정은 집권기에 북한에서 공개한 명령서 등을 보면 아예 서기만 쓰고 있다.

일본은 천황 즉위년을 원년으로 하는 일본의 독자적인 연호가 있으며, 널리 쓰이고 있다. 근대화 이후로도 서기보다 연호를 널리 사용해왔으나, 2차대전 패전 이후 점차 서기도 보급되었다. 현재 일본에서 발행하는 많은 공문서에는 연호와 서기가 병기돼 있으나, 그래도 연호만 표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일본에 장기간 거주한다면 본인의 출생년도나 자기가 머무는 그 해가 일본의 연호로 몇 년인지 정도는 알아두어야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2019년부터는 정부 차원에서 '컴퓨터 시스템상으로는' 서기를 사용하되, 종이 문서로는 여전히 연호를 사용하기로 했다. 2022년레이와 4년이다.
민간에는 연호와 서기를 모두 사용하여 복잡하다. 대만보다는 확실히 서기를 더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군주의 즉위를 원년으로 한 동양 전통식 연호는 미래 연도를 표기할 때 쓸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서기를 병용한다. 예를 들면 식품의 유통기한도 연호가 아닌 서기로 써 있고,[18] 일본 만화나 소설 등도 원서를 보면 출간년을 연호로 표시한 책도, 서기로 쓴 책도 있다. 일본 운전면허증은 연호와 서기를 병기한다. 한 문서에서도 어디선 서기로, 어디선 연호로 연도를 표기할 정도로 짬뽕. 2019년에 일본국민을 대상으로 연호와 서기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 설문조사를 한 결과도 정확히 반반이 나왔다.

불기를 법정연호로 사용한다. 그러나 전통의 차이 때문에 한국에서 쓰는 불기보다 1년이 늦는다. 아무튼 이렇기에 태국어 위키백과에서도 연도를 불기로 표현한다.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가 주류인 나라인데, 특이하게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서력기원과 7–8년이 차이나는 독자적인 기년법을 사용한다. 이것 역시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한 기년법이기는 한데, 에티오피아에서는 예수탄생이 서력기원전 7년이라고 보고 이를 기준으로 한 독자적인 기년법을 쓰기 때문이다. 즉 서기 2022년은 에티오피아력으로 2014–15년이다. 서력기원과 7년이 아니라 7–8년이 차이나는 이유는 에티오피아에서는 1년이 13개월인 독자적인 역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에티오피아의 달력에는 사용의 편의를 위하여 그레고리력과 에티오피아력을 병기하는 편이다.

서력기원과 그레고리력 대신 태양력식 헤지라 기원[19]이란(페르시아)력을 사용한다. 즉 서기 2022년은 1400–1401년이 된다.
  • 중동 국가들
이슬람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국가[20]라 할지라도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하면 달력에 이슬람력만 표기하지는 않고 서력기원과 그레고리력을 병기한다.

비크람력을 사용한다. 비크람력의 기원은 기원전 57년이다.

6. 기타[편집]


  • 천문학에서는 연도를 양수와 음수로 표현하기도 한다. 기원후는 양수로, 기원전은 숫자 절댓값에서 1을 뺀 후 음의 부호를 붙인다. 기원전 1년은 0년, 기원전 2년은 -1년, 기원전 1000년이면 -999년. 기년법에는 0년이 없기 때문에 덧셈과 뺄셈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 조선 헌종실록에는 1846년과 47년에 각각 어떤 이양인들이 문서를 전했다고 기록하며 그 내용을 수록했는데,[21] 여기서 '구세(救世)'라는 명칭으로 서기를 사용했다. '救世一千八百四十六年(구세 1846년)'이라는 식이었다. 명칭이 서기는 아니지만 서력기원이 실록에서 쓰인 첫 사례이다.

  •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서기가 소개된 때는 1883년 11월 30일이다. 이후 일제강점기, 미군정기를 거쳐,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1961년 12월 「연호에 관한 법률」을 법률 제 775호로 개정하여[22] 이듬해(1962년) 1월 1일부터 이전까지 사용했던 단기를 법정 연호에서 폐지하고 서기를 새로운 법정 연호로 채택하여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 조선에서는 1637년부터 1894년까지 공적으로 청나라 연호를 사용했다. 1894년부터[23] 조선왕조가 개창된 서기 1392년을 원년으로 한 개국 연호를 사용했고 1896년부터 잠깐 건양 연호를 제정했다가(1896~1897, 건양 1~2) 1897년 광무개혁으로 광무 연호를(1897~1907, 광무 1~11), 1907년 순종 즉위부터 경술국치까지 융희(순종) 연호를 사용했다(1907~1910 융희 1~4).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천황의 연호를 사용하다가[24] 일본이 패전하자 제헌국회에서 단기를 채택해서 1961년(단기 4294년)까지 사용했지만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법을 바꾸어 1962년부터는 서기를 사용 중이다. 다만, 일부 학교는 졸업앨범에 서기와 단기를 병기하기도 했다.

  • 서력기원으로 인한 컴퓨터 문제가 바로 Y2K 문제인데, 당시 컴퓨터는 연도를 2자리로 표기했기 때문.
[1] 엄밀히 말하면 정확한 예수의 탄생년도를 기원년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원년의 오류 문단을 참고할 것.[2] 오늘날 터키의 아이딘(Aydın)시이다.[3] <폴리카르포 순교록>은 폴리카르포가 언제 순교했는지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애썼지만, 그런데도 순교년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의문이 있다. 대부분 학자들은 순교록의 기록에 근거하여 155–160년쯤으로 본다.[4] 로마 기원은 기원전 1세기 로마 학자 마르쿠스 바로(Marcus Terentius Varro)가 로마 공화정이 수립된 첫 해를 가리켜 ab urbe condita CCXLV(로마기원 245년, 기원전 509년)라고 쓴 데서 유래했다. Anno Urbis conditae(도시의 건설의 해), 또는 Anno Urbis(도시의 해)라고 쓰기도 하였다. 약칭은 AUC, 또는 AU.[5] 오늘날에도 이집트 콥트 교회가 순교자기원을 사용한다.[6] 디오클레티아누스사두정치 체제를 도입해서 제국을 분할통치했다. 여기에 대해선 사두정치 항목 참조.[7] 오늘날 루마니아 남동쪽 흑해에 면한 도브루자(Dobruja) 일대를 말한다.[8] 베다는 라틴어로 책을 썼다. <앵글족 교회사> 역시 원제는 라틴어로 '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앵글 민족 교회의 역사)이다. 우리말 서적에서는 이 책의 제목을 '잉글랜드 교회사' 또는 '영국 교회사' 등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9] 베다는 이 부분을 4세기 초 사람 파울루스 오로시우스(Paulus Orosius)의 오류 많은 저작을 보고 쓰느라 잘못된 정보를 기술했다. 이 구절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로마기원 693년, 즉 기원전 61년에 루키우스 비불루스와 함께 집정관이 되었고 브리타니아를 공격했다. (베다는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를 공격함으로써 비로소 로마인들이 영국 땅을 밟았다는 전제로 서술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처음 집정관이 된 때는 기원전 61년이 아니라 기원전 59년이었고, 함께 집정관으로 당선된 이는 루키우스 비불루스가 아니라 루키우스의 아버지 마르쿠스(Marcus Calpurnius Bibulus)였다. 또한 카이사르가 처음 브리타니아를 공격한 때는 기원전 55년이었다.[10] 알쿠인에게 학문을 가르친 선생들 중에는 베다의 제자도 있었다고 하므로 모를 리가 없었다.[11] 데니 페토와 동시대, 또는 이전 시대의 다른 서유럽 학자들의 책을 보면, 기원전을 논하면서 로마기원(AUC)이나 창세기원(Anno mundi)을 병용하기도 하였다.[12] After Death가 아니지만 영어권 사람들도 이렇게 잘못 아는 경우가 많다. AD를 AC라고 하지 않음은 영어에서 비슷한 약자들이 많은 데다, 비영어권 유럽인들은 오히려 라틴어로 '기원전(Ante Christum natum)'의 약자라고 헷갈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13] 라틴어로 기원전을 가리키는 표현은 고정되지 않았지만, 보통은 Ante Christum natum(그리스도 탄생 이전)이라고 쓰며, 약자로는 A.C.N. 또는 a.Ch.n. 등으로 쓴다.[14] 예를 들어 누군가 서적에서 '기원전 10년–5년'이라고 적었다 해보자. 여기서 5년이 기원전인지 기원후인지 헷갈리기 때문에 오해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15] 중화권에서는 서양에서 유래했지만 국제적으로 쓰이는 것에 흔히 공(公)자를 붙인다. 예를 들어 킬로그램이란 뜻으로 공근(公斤), 미터라는 뜻으로 공척(公尺)이라고 한다.[16] 다만, 중국에서 공력(公曆)이라는 단어는 역법으로서의 그레고리력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사용하므로 기년법임이 명확히 드러나는 공원을 더 선호하는 편.[17] 서기 2020년[18] 유통기한은 미래의 날짜이므로, 연호를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만, 대만의 민국기년은 엄밀히 말해 동양식 연호가 아닌 기년법이므로 과거·현재·미래에 제한 없이 쓸 수 있다. 원년을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2년으로 잡았을 뿐 용법은 서력기원과 동일하다. 조선의 개국기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한민국 연호도 마찬가지.[19] 이슬람교의 한자어식 표기인 회교에서 유래하여 '회기'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으나 올바른 표현은 아니다. 페르시아력은 다른 이슬람권과 달리 태양력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춘분이 지난 경우 서기에서 621을 빼서 연도를 계산할 수 있다.[20] 튀르키예나 중앙아시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세속국가들은 전혀 해당 없다.[21] 그 이양인들은 프랑스의 해군 함장인 장바티스트 세실, 오귀스탱 드 라피에르였다. 세실은 조선에서 프랑스인 신부들을 처형한 사태(기해박해)의 책임을 추궁하는 서신을 보냈고, 라피에르는 그 서신에 대한 답신을 받기 위해 조선으로 갔다가 난파를 당해서 조선측에 구호를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세실의 서신과 답신의 내용은 병인양요 항목에 있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다른 프랑스인 신부에게 보낸 편지 참조.[22] 대외적으로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박정희)이 1961년 11월 30일 연호를 바꾼다는 문서를 정부에 보내고 12월 1일 내각에서 의결한 뒤, 2일에 행정부에서 공포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연호법 개정은 국가재건최고회의의 포고령에 들어가지 않는다. 당시 문서를 보면 '연호에 관한 법률 공포의 건'에 서명한 사람은 대통령 윤보선, 문교부 장관 문희석(文熙奭), 내각사무처장 김병삼(金炳三)이다.[23] 다만 고종실록에 따르면 이보다 18년 전인 1876년에 처음 등장한다.[24] 다만 1919년 기존의 군주정과 단절된 공화정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대한민국 연호가 사용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일 때도 대한민국 30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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