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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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 지방 경마(우라와) 출신으로 중앙에 진출해 GI 2승과 8세(현 7세)의 일본 조교마로서 사상 처음으로 GI 우승을 기록했다.
2. 혈통[편집]
1988년에 라 세느 원더가 고령이었기에 수태 확률을 높이기 위해 젊고 근친교배를 피하는 아웃브리드[1] 를 만족하는 말을 찾아 다이나 코스모스[2] 가 선택되었다. 거기에 원래 생산 목장의 교배 목표였던 종부료가 싸고 마일 ~ 중거리 혈통인 조건까지 충족했다.
3. 생애[편집]
3.1. 데뷔 전[편집]
1989년 5월 10일 플랫 목장에서 라 세느 원더의 15번째 새끼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터 키우는데 손이 들지 않고 말도 잘들었지만 발굽을 깎거나 혈액 검사를 할 때는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자영업자 이시자카 히사유키와 몬베츠쵸 목장 대표 후지모토 테루오가 설립한 유한회사 아리마사의 이시자카 히사유키가 조교사 츠카네자와 마사오와 목장을 찾아 1000만엔에 구입했고 트로트 썬더란 경주마명을 갖게 되었다.
성장해 2세(현 1세)가 된 트로트 썬더는 마체가 충실해서 이시자카는 우라와 경마가 아니라 중앙 경마(JRA) 데뷔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몬베츠쵸 목장에서 육성 중 3세가 된 트로트 썬더는 크게 마르고 과거의 몸을 잃어버렸다. 결국 우라와의 조교사 츠카네자와 마사오에게 맡겨진다. 츠카네자와는 우선 트로트 썬더를 방목해 마체의 회복에 전념시켰고 4세 봄에 드디어 본격적인 조교를 개시했다.
3.2. 지방 경마 시절[편집]
4세가 된 1992년 7월 1일 우라와 경마장에서 데뷔해 우라와 더트 1400m의 5경기를 모두 도주로 완승을 거두며 데뷔 시즌을 5연승으로 마쳤다. 다음해의 첫 경기는 2착으로 첫 패배를 기록했지만 이 후 2경기를 연승하며 이제 오이나 카와사키의 원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 후 뒷다리 구절 골절이 판명되었고 경주 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를 큰 부상이었지만 완치를 목표로 후지모토의 목장에서 방목하며 1년 이상 전선을 이탈했다.
전선 이탈 중 유한회사 아리마사의 설립 멤버 간 균열로 실질적인 소유자가 아닌 중앙 마주 자격을 가지고 있었던 후지모토 테루오가 트로트 썬더의 중앙 경마 이적을 검토하게 되었다. 후지모토는 우선 우라와의 조교사 츠카네자와 마사오와 상담 없이 JRA의 조교사 아이카와 카츠토시와 소속 구무원에게로 이적을 약속했다. 6세가 된 1994년 5월 23일, 15개월 만에 복귀한 아야메 특별에서 4 마신차의 승리를 거두고 부활한 트로트 썬더를 본 조교사 츠카네자와 마사오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뻐했고 다음 경주 일정을 짜려했지만 중앙 경마 이적 이야기를 그제서야 듣게 되었다. 당시 JRA 규정상 6개월 이내에 경기 기록이 없는 경주마는 중앙으로 이적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후지모토에게 이 경기는 그저 규정을 충족하기 위한 출전에 불과했다. 후지모토는 트로트 썬더를 소유하고 있던 유한회사 아리마사의 대표 이시자카 히사유키로부터 구입했다고 발표하고 곧 후지모토 테루오 명의로 JRA 경주마 등록을 실시했다.
3.3. 중앙 경마 시절[편집]
미호의 조교사 아이카와 카츠토시 마방에 들어갔고 요코야마 노리히로가 기수로 결정되어 이후 중앙의 모든 경주를 기승하게 된다. 첫 잔디 경기에서 2착을 거둔 후 양 앞다리 요골 골막염으로 4개월간 휴양하고 12월 미호 특별에서 승리하며 중앙 첫 승을 거두었다. 7세가 된 1995년 1월 21일 하츠후지 스테이크스에서 승리했지만 첫 중상 도전이었던 나카야마 기념에서는 7착을 기록했다. 다음 경주 조건전에서 승리로 다시 중상에 3번 도전했지만 승리를 거두지 못해 오픈으로 내려간 아일랜드 트로피에선 우승했고 이 승리로 11월 19일 마일 챔피언십에 GI 첫 도전을 하게 된다. 트로트 썬더는 비코 페가수스, 히시 아케보노, 도지마 무테키에 이은 4번 인기로 나왔다. 1000미터를 57.6초로 통과하는 하이페이스 속에서 선두였던 히시 아케보노를 목표로 직선주로에서 말각을 발휘해 제쳐냈고 메이쇼 테조로의 추격을 따돌리며 우승, 이적 후 10경기만에 중상 첫 승리, GI 첫 도전으로 GI 첫 승리를 거두었다.
1996년 8세의 첫 경기 도쿄신문배에 단승 확률 2.2배의 1번 인기로 나와 후방에서 대기하다 직선에서 스퍼트 해 목차로 승리를 거두었다. 다음 경주 케이오배 스프링컵에선 타이키 블리자드에 이은 2번 인기로 나와 후방 대기로 직선으로 향했지만 진로가 잠시 보이지 않아 결국 작년의 야스다 기념 우승마인 두바이 조교마 하트 레이크가 우승, 타이키 블리자드가 2위 트로트 썬더는 3위로 들어왔다. 기수 요코야마 노리히로는 이 경기를 기승 미스로 되돌아 보고 있다.
목표였던 마일 춘추제패의 경기인 6월 9일 야스다 기념에는 17마리 중 GI 우승마가 8마리[3] 인 호화 멤버 속에서 1번 인기로 나왔다. 트로트 썬더는 후방에서 대기하다 직선 주로에서 선두 히시 아케보노를 바깥에서 추격해 선두에 나섰으나 타이키 블리자드가 쫓아왔고 결승점을 나란히 통과했다. 사진판정 끝에 단 14cm 차이로 트로트 썬더의 승리가 결정 되었고 8세(현 7세)마에 의한 GI 우승은 1986년 재팬 컵 영국 조교마 주피터 아일랜드 이래 2번째, 일본 조교마로서 사상 최초의 기록이었다.[4] 이 후 하코다테 경마장에서 여름 휴양을 보낸 후 9월 초 미호에 돌아와 마이니치 왕관 - 천황상(가을)의 경주일정을 잡고 있었다.
3.4. 마주의 명의대여 발각에 따른 은퇴[편집]
트로트 썬더의 지방 경마 마주 유한회사 아리마사는 중앙 경마의 마주 자격을 소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적 시에 그 소유권이 중앙 경마 마주의 후지모토 테루오로 옮겨졌다고 했다. 그러나 JRA 데뷔로부터 1년 반 동안 실질적인 소유권은 유한회사 아리마사에 있었고 후지모토는 명의대여를 하고 있었다. 1996년 1월에야 마침내 소유권이 후지모토 테루오로 옮겨져 명의대여 상태는 해소되었지만, 같은 해 가을에 명의대여의 과거가 있었던 것을 제3자가 JRA에 제보했다. 이 당시 명의대여는 암암리에 횡행하고 있었고 JRA도 적극적으로 처분에 나서지 않았지만 GI 우승마의 트로트 썬더는 너무 이름값이 높아졌기에 결국 문제가 될 수밖에 없어 본보기로 처분이 이루어졌다.
JRA는 마주 후지모토 테루오를 일본 중앙 경마회 경마 시행 규정 제11조 제4호에 의거해 9월 27일자로 마주 등록의 취소 처분을 내렸고 명의대여 사실을 몰랐던 조교사 아이카와 카츠토시는 일본 중앙 경마회 경마 시행 규정 제126조 제1호 및 제19호에 의해 조교 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트로트 썬더 또한 9월 26일자로 JRA 경주마 등록 말소 처분이 내려져 결국 경주마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3.5. 종마 생활[편집]
은퇴 다음 해인 1997년부터 홋카이도 우라카와쵸의 히다카 스탈리온 스테이션에서 종마로서 공용되어 지방 경마에서 활약한 우츠미 조던(ウツミジョーダン) 외에 이렇다 할 성적은 내지 못했다. 2004년 8월 1일자로 종마에서 은퇴했고 그 후의 양육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경주마의 고향 안내소에 의하면 같은 해의 11월에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4. 여담[편집]
- 마일 경기에선 8전 전승(중앙 6승, GI 2승, GIII 1승)의 성적으로 THE PERFECT MILER의 부제를 단 DVD도 나왔다.
5. 경주 성적[편집]
[지방] [중앙] [1] 5대 내에 동일한 조상을 갖지 않는 조합[2] 1986 사츠키상 우승마[3] 트로트 썬더 (1995 마일 챔피언십 ), 하트 레이크 (1995 야스다 기념), 히시 아마존 (1993 한신 3세 암말 스테이크스, 1994년 엘리자베스 여왕배), 플라워 파크 (1996년 다카마쓰노미야배), 제뉴인 (1995 사츠키상), 댄스 파트너 (1995 오크스), 야마닌 파라다이스 (1994 한신 3세 암말 스테이크스), 히시 아케보노 (1995 스프린터스 스테이크스)[4] 등급 제도 이전의 GI급 경주를 포함하면 1970년 아리마 기념의 스피드 심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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