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타쿠 헬리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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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인기로 팔리면 배당률을 읽기라도 한 마냥 반드시 진다. 예시장에서 난장판을 벌이는 날은 정작 레이스에서 강하고, 예시장에서 얌전하면 오히려 레이스를 망친다.
질 때는 입을 벌리고 씨익 웃으면서 직선에서 화려하게 침몰하는데, 이길 때는 도주나 강선행을 하다가도 거기서 재차 가속해 멋지게 승리한다.
'레이스에 폭풍을 부르는 사나이', '신문을 읽는 말', '웃으며 달리는 말', '다이이치 루비를 사랑한 말', '바보 콤비(with 메지로 파머)' 등의 숱한 별명이 따라다녔던, 그 숱한 기행과 이야깃거리로 경마인들의 기억 속에 짙게 남았던 개성파 경주마이다.
부계로는 바이얼리 터크-헤로드의 직계인 투르비용(Tourbillon)-제벨(Djebel)-루티에(Luthier)계[2] 로 비이클립스계 영세 혈통에 속하는 경주마였다. 다이타쿠 헬리오스의 증조부 루티에는 프랑스 로스차일드 가문 소유의 경주마로 1984년 개선문상 우승마 사가스(Sagace) 를 배출하였으며 1976년, 1982년, 1983년, 1984년 프랑스 리딩사이어를 차지한 적이 있다. 부마 비젠 니시키는 심볼리 루돌프의 무패삼관 레이스에서 최대의 적수가 되었던 말이었는데, 거리적성에 덜미를 잡혀[3] 패배한 뒤 가을 마일 챔피언십을 노리다가 트라이얼에서 부상으로 은퇴한 비운의 경주마였다.
광기의 하이페이스, 살인 랩, 광기의 도주마라는 별명이 붙었던 카부라야 오[4][5] 와 같은 모계혈통을 지닌 경주마. 카부라야 오와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모두 미스 난바 이치반(ミスナンバイチバン)이라는 경주마를 조모로 가진다.
다이타쿠 관명을 쓰는 마주 나카무라 마사이치에 의해, 릿토의 조교사 우메다 야스오 마방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큰 기대를 받지 못해 조건전을 3연속으로 출주해 가까스로 승리하고 '89 데일리배 3세 S 4착, 상금 400만 이하 조건전인 사잔카상에서 1착, 바로 그 다음주 열리는 한신 3세 S까지 석 달 동안 여섯 경주를 내리뛰는 막나가는 로테이션을 치룬다.
이러는 동안 주전 기수인 키시 시게히코와의 미묘한 불협화음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좋은 경주를 한 사잔카상과 한신 3세 S에서는 각각 타지마 요시야스와 타케 유타카가 대타로 기승했던 것이다. 신마전에서 거둔 승리도, 헬리오스가 제멋대로 폭주하는 바람에 키시가 고삐를 놓아버렸던 경기였다. 스승인 우메다 조교사가 실적이 나쁜 자기 휘하에서만 타지 말라는 뜻으로 외부 기승 의뢰를 받아준 것이지만, 자기를 태우고는 실력발휘를 하지 않는 헬리오스는 키시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었다.
이후 클래식에 도전하다가 기세가 꺾이고 단거리-마일 노선으로 전환한 후, 처음으로 1번 인기에 올랐지만 아쉽게 2착을 기록한 '90 6월의 뉴질랜드 트로피까지 9개월간 총 12전을 기록하고 휴식기를 가진다. 복귀전으로 G1 마일 챔피언십에 도전하지만 17착으로 대패하고, 연말의 타즈 S까지 그럭저럭 건투하며 클래식 시즌을 마친다.
고마가 된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헬리오스의 별스러움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우선 주전 기수 키시 시게히코와의 문제가 두드러졌다. 대타 기수가 탔을 때만 우승[6] 하며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의 이맛살을 주름지게 했다.
이 극명한 대조가 키시의 기수로서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있었고, 그 사실을 안 우메다 조교사도 타카마츠노미야배 이후 더 이상의 대타 기승은 없음을 선고하며 결의를 다지게 한다.
이 기간 동안 성격적 문제도 부각됐다. 천성이 진지하기 짝이 없어 다른 말이 자신을 제치는 것을 못 봐주고 선두에 서면 완급이라곤 없이 무작정 페이스를 올리는 버릇이 나타난 것이다. 오버페이스를 지켜볼 수 없어 고삐를 당기려 해도 재갈을 물지 않고 입을 벌린 채 달리기 일쑤였는데, 이 버릇에서 유래한 별명이 '웃으며 달리는 말'이다. 궁여지책으로 코굴레를 조여 입을 벌릴 틈을 주지 않는 등, 어떻게든 제어를 시도했다.
이렇게 단단히 준비하고 출정한 마일 챔피언십. 단승 11.8배로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받던 뱀부 메모리보다도 아래인 4번 인기를 달고 나섰다. 하지만 교토의 살인적인 3코너 언덕에서부터 건 폭발적인 스퍼트가 제대로 경쟁자들의 허를 찔러 2마신 반 차로 완승을 거두고, 키시는 2년간의 고락에서 드디어 풀려나게 된다.
92년 시즌부터는 마일과 중장거리를 오가며 커리어 마지막 시즌을 불태웠다. 익히 알려진 메지로 파머와의 '바보 콤비' 시즌도 이 때로 타카라즈카와 추계 천황상, 아리마 기념 등 굵직한 그랑프리에 모두 출주해 파머의 양대 그랑프리 정복을 뒷받침했다(?). 헬리오스 자신도 마일 이하에서 G1 2승, G2 1승을 거두는 등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커리어 마지막 시즌을 마치고 현역에서 은퇴한다.[7]
조교사에게는 "끝까지 알 수 없었던 말", 기수에게는 "솔직히 은퇴해서 안심"이라는 농담 섞인 축복을 받으며 은퇴한 헬리오스는 씨수말로도 적당적당한 성과에 만족했다.
은퇴 후로는 당세마 시절의 내성적인 분위기로 돌아가, 경주마 시절의 기성난을 떠올리며 잔뜩 쫄았던 농장 스태프들은 맥이 풀렸다는 후문이다. 지방의 여러 중상에서 승리하는 자마를 내다가, 2008년에 수태율 감소 및 고령의 나이로 씨수말 생활을 은퇴 후 공로마로 여생을 보냈다. 그러나 은퇴한 그 해 12월에 21세의 나이로 죽었다.[8] 중앙의 중상/G1을 승리한 자마는 2000년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를 우승한 다이타쿠 야마토가 유일.
출처
91' 시즌 마일 전선에서 암말 다이이치 루비와 나눈 라이벌리는 만화가 요시다 미호가 우마나리 1펄롱 극장에서 묘사한 커플링에 의해 세기의 로맨스로 포장되어 화제를 부르기도 했다.
헬리오스 5 : 루비 3의 전적[9] 으로, 둘이 얽히지 않은 다른 경주에 비해 헬리오스가 고점을 자주 찍는 것을 본 요시다가 '헬리오스는 루비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만 진심을 내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자신의 "1펄롱 극장"에 실은 것.[10] 1년을 불태운 둘의 단마 전선은 92년 루비의 쇠퇴와 함께 끝을 맺는다. 종마로 넘어간 뒤에는 루비의 혈통이 워낙 훌륭했기 때문에[11] 둘의 후사를 볼 수는 없었다는 모양.[12]
[각주]
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지상의 난적
그 녀석에게는 다가가지 마라
정면으로 도전하면
작열하는 화염에
불태워질 것이다
그렇지만 신중하게
거리를 두면
어느 샌가 봐라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이 정도로 성가신
적은 그렇게 많지 않다
JRA 명마의 초상
1번 인기로 팔리면 배당률을 읽기라도 한 마냥 반드시 진다. 예시장에서 난장판을 벌이는 날은 정작 레이스에서 강하고, 예시장에서 얌전하면 오히려 레이스를 망친다.
질 때는 입을 벌리고 씨익 웃으면서 직선에서 화려하게 침몰하는데, 이길 때는 도주나 강선행을 하다가도 거기서 재차 가속해 멋지게 승리한다.
'레이스에 폭풍을 부르는 사나이', '신문을 읽는 말', '웃으며 달리는 말', '다이이치 루비를 사랑한 말', '바보 콤비(with 메지로 파머)' 등의 숱한 별명이 따라다녔던, 그 숱한 기행과 이야깃거리로 경마인들의 기억 속에 짙게 남았던 개성파 경주마이다.
2. 혈통[편집]
부계로는 바이얼리 터크-헤로드의 직계인 투르비용(Tourbillon)-제벨(Djebel)-루티에(Luthier)계[2] 로 비이클립스계 영세 혈통에 속하는 경주마였다. 다이타쿠 헬리오스의 증조부 루티에는 프랑스 로스차일드 가문 소유의 경주마로 1984년 개선문상 우승마 사가스(Sagace) 를 배출하였으며 1976년, 1982년, 1983년, 1984년 프랑스 리딩사이어를 차지한 적이 있다. 부마 비젠 니시키는 심볼리 루돌프의 무패삼관 레이스에서 최대의 적수가 되었던 말이었는데, 거리적성에 덜미를 잡혀[3] 패배한 뒤 가을 마일 챔피언십을 노리다가 트라이얼에서 부상으로 은퇴한 비운의 경주마였다.
광기의 하이페이스, 살인 랩, 광기의 도주마라는 별명이 붙었던 카부라야 오[4][5] 와 같은 모계혈통을 지닌 경주마. 카부라야 오와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모두 미스 난바 이치반(ミスナンバイチバン)이라는 경주마를 조모로 가진다.
3. 생애[편집]
다이타쿠 관명을 쓰는 마주 나카무라 마사이치에 의해, 릿토의 조교사 우메다 야스오 마방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큰 기대를 받지 못해 조건전을 3연속으로 출주해 가까스로 승리하고 '89 데일리배 3세 S 4착, 상금 400만 이하 조건전인 사잔카상에서 1착, 바로 그 다음주 열리는 한신 3세 S까지 석 달 동안 여섯 경주를 내리뛰는 막나가는 로테이션을 치룬다.
이러는 동안 주전 기수인 키시 시게히코와의 미묘한 불협화음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좋은 경주를 한 사잔카상과 한신 3세 S에서는 각각 타지마 요시야스와 타케 유타카가 대타로 기승했던 것이다. 신마전에서 거둔 승리도, 헬리오스가 제멋대로 폭주하는 바람에 키시가 고삐를 놓아버렸던 경기였다. 스승인 우메다 조교사가 실적이 나쁜 자기 휘하에서만 타지 말라는 뜻으로 외부 기승 의뢰를 받아준 것이지만, 자기를 태우고는 실력발휘를 하지 않는 헬리오스는 키시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었다.
이후 클래식에 도전하다가 기세가 꺾이고 단거리-마일 노선으로 전환한 후, 처음으로 1번 인기에 올랐지만 아쉽게 2착을 기록한 '90 6월의 뉴질랜드 트로피까지 9개월간 총 12전을 기록하고 휴식기를 가진다. 복귀전으로 G1 마일 챔피언십에 도전하지만 17착으로 대패하고, 연말의 타즈 S까지 그럭저럭 건투하며 클래식 시즌을 마친다.
고마가 된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헬리오스의 별스러움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우선 주전 기수 키시 시게히코와의 문제가 두드러졌다. 대타 기수가 탔을 때만 우승[6] 하며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의 이맛살을 주름지게 했다.
이 극명한 대조가 키시의 기수로서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있었고, 그 사실을 안 우메다 조교사도 타카마츠노미야배 이후 더 이상의 대타 기승은 없음을 선고하며 결의를 다지게 한다.
이 기간 동안 성격적 문제도 부각됐다. 천성이 진지하기 짝이 없어 다른 말이 자신을 제치는 것을 못 봐주고 선두에 서면 완급이라곤 없이 무작정 페이스를 올리는 버릇이 나타난 것이다. 오버페이스를 지켜볼 수 없어 고삐를 당기려 해도 재갈을 물지 않고 입을 벌린 채 달리기 일쑤였는데, 이 버릇에서 유래한 별명이 '웃으며 달리는 말'이다. 궁여지책으로 코굴레를 조여 입을 벌릴 틈을 주지 않는 등, 어떻게든 제어를 시도했다.
이렇게 단단히 준비하고 출정한 마일 챔피언십. 단승 11.8배로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받던 뱀부 메모리보다도 아래인 4번 인기를 달고 나섰다. 하지만 교토의 살인적인 3코너 언덕에서부터 건 폭발적인 스퍼트가 제대로 경쟁자들의 허를 찔러 2마신 반 차로 완승을 거두고, 키시는 2년간의 고락에서 드디어 풀려나게 된다.
92년 시즌부터는 마일과 중장거리를 오가며 커리어 마지막 시즌을 불태웠다. 익히 알려진 메지로 파머와의 '바보 콤비' 시즌도 이 때로 타카라즈카와 추계 천황상, 아리마 기념 등 굵직한 그랑프리에 모두 출주해 파머의 양대 그랑프리 정복을 뒷받침했다(?). 헬리오스 자신도 마일 이하에서 G1 2승, G2 1승을 거두는 등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커리어 마지막 시즌을 마치고 현역에서 은퇴한다.[7]
3.1. 은퇴 후[편집]
조교사에게는 "끝까지 알 수 없었던 말", 기수에게는 "솔직히 은퇴해서 안심"이라는 농담 섞인 축복을 받으며 은퇴한 헬리오스는 씨수말로도 적당적당한 성과에 만족했다.
은퇴 후로는 당세마 시절의 내성적인 분위기로 돌아가, 경주마 시절의 기성난을 떠올리며 잔뜩 쫄았던 농장 스태프들은 맥이 풀렸다는 후문이다. 지방의 여러 중상에서 승리하는 자마를 내다가, 2008년에 수태율 감소 및 고령의 나이로 씨수말 생활을 은퇴 후 공로마로 여생을 보냈다. 그러나 은퇴한 그 해 12월에 21세의 나이로 죽었다.[8] 중앙의 중상/G1을 승리한 자마는 2000년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를 우승한 다이타쿠 야마토가 유일.
3.2. 라이벌 다이이치 루비[편집]
출처
91' 시즌 마일 전선에서 암말 다이이치 루비와 나눈 라이벌리는 만화가 요시다 미호가 우마나리 1펄롱 극장에서 묘사한 커플링에 의해 세기의 로맨스로 포장되어 화제를 부르기도 했다.
헬리오스 5 : 루비 3의 전적[9] 으로, 둘이 얽히지 않은 다른 경주에 비해 헬리오스가 고점을 자주 찍는 것을 본 요시다가 '헬리오스는 루비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만 진심을 내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자신의 "1펄롱 극장"에 실은 것.[10] 1년을 불태운 둘의 단마 전선은 92년 루비의 쇠퇴와 함께 끝을 맺는다. 종마로 넘어간 뒤에는 루비의 혈통이 워낙 훌륭했기 때문에[11] 둘의 후사를 볼 수는 없었다는 모양.[12]
4. 기타[편집]
- '역배 토템'의 면모를 알 수 있는 기록으로 다이타쿠 헬리오스가 뛴 29전의 중상 경주에서 1번 인기를 받은 말이 우승한 경주는 1989년 데일리배 3세 스테이크스의 야마닌 글로벌, 1990년 키사라기상의 하쿠 타이세이와 스프린터스 스테이크스의 뱀부 메모리 3경기 뿐이다. 다이타쿠 헬리오스 자신이 1번 인기를 받은 6경기에서 우승한 것은 400만 이하 조건전인 사잔카상 하나다. 이 기간에 휘말려든 말들만 91년 아리마 기념[13] 의 메지로 맥퀸, 92년 아리마 기념의 토카이 테이오, 뱀부 메모리의 90년 마일 챔피언십 - 91년 야스다 기념 - 케이오배 스프링컵 등. 가히 배당판에 폭풍을 몰아오는 말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일대기였다.
- ‘암말을 울리는 말’ 이라는 평가도 있었는데, 1991년 타카마츠노미야배(현 타카마츠노미야 기념)에서 1번 인기였던 다이이치 루비를 꺾고 우승하며 잇토 - 하기노 탑 레이디 - 다이이치 루비로 이어지는 모계 3대 타카마츠노미야배 제패라는 위업을 막아버렸고, 커리어 내 둘 뿐인 G1승리인 마일 챔피언십 2연패 당시에도 대회 1번 인기 경주마들이 모두 암말이었기 때문. 1991년 마일 챔피언십의 1번 인기마는 바로 그 다이이치 루비, 1992년 마일 챔피언십은 오카베 유키오 기수의 신코 러블리가 1번 인기였으나 모두 헬리오스가 꺾고 우승했다.[14]
5. 경주 성적[편집]
[A] A B 당시에는 2000m G2 경주였다.[1] 유일한 중상 산구이자 2000년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G1) 우승마다. 허나 은퇴 후의 말년이 결코 순탄치 못했다. 참고[2] 일본에 도입된 파르홀론계와는 루티에와 파르홀론의 공통 부계 조상인 제벨로부터 분화되었다. 현대 헤로드계의 한 축인 유럽의 아호누라(Ahonoora)계와는 루티에의 아비인 Klairon 대에 루티에와 아호누라의 아비인 Lorenzaccio로 분화되었다.[3] 하필 비젠 니시키의 원래 주전기수가 둘 중 루돌프를 택한 오카베 유키오라 비젠 니시키의 버릇을 속속들이 알고 있던 것도 한몫했다.[4] 카부라야 오의 별명은 사츠키상에서 같이 레이스를 달린 다른 말의 기수가 울면서 했던 인터뷰에서 비롯되었다. 자기 말은 카부라야 오의 페이스를 따라가다 골절당해 결국 안락사시켜야 했는데, 정작 카부라야 오는 초반 1000m를 58초 9라는 정신 나간 페이스로 완주하고도 쌩쌩한 걸 보고 '저 녀석은 말이 아니라 괴물이다.'라고 울면서 인터뷰 했던 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고속마장화가 진행된 현대엔 전반 1000m를 카부라야 오 이상의 페이스로 달린 말은 가끔 있지만, 그러면서 우승까지 한 말은 드물다.[5] 카부라야 오는 살벌한 어감의 별명과 달리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라, 다른 말 근처에서 뛰기 싫다고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타입의 도주마였다고 한다. 일명 '퍼지지 않는 트윈 터보'. 어찌나 겁이 많은지, 골 앞에서는 스퍼트하며 쫓아오는 후행마에게 따라잡힐까 무서워 급격하게 수 미터를 사행하는 버릇이 있을 정도였다. 조교사와 기수들은 카부라야 오가 현역 시절에는 약점을 찔리게 될 것을 우려해 이 성격을 발설하지 않았고 은퇴 후에는 더비까지 제패하고 부상당해 은퇴한 카부라야 오의 명예를 위해 철저히 이 사실을 함구했기 때문에, 카부라야 오의 소심하고 겁 많은 성격은 은퇴한 지 10년이 넘은 뒤에야 밝혀졌다(...).[6] 마일러스 컵 1착 타케 유타카, 타카마츠노미야 기념 1착 카요 타다시.[7] 원래 12월 20일의 스프린터스 스테이크스 경기를 끝으로 은퇴하려 했으나 당시 입원 중이었던 마주가 병실 TV로 다시 다이타쿠 헬리오스가 뛰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해서 급하게 일주일 뒤인 아리마 기념에 나가게 되었다.[8] 목장 관계자 말로는 아침에 방목하려 나갈려다 갑자기 쓰러져서 죽었다고.[9] 이들 중 91 '타카마츠노미야배(이 경기는 다이이치 루비의 모계 3대 제패가 걸린 경주였다.), 91' 마일 챔피언십, GII 스완 스테이크스, 92' 마일러즈 컵, 92' 케이오배 스프링 컵은 다이이치 루비가 단승 인기 1위였던 경주. 도박사들은 늘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10] 둘이 뛰는 경주에 늘 한다리 걸치고 있던 뱀부 메모리가 향단이와 방자 롤을 맡는다.[11] 아비가 다름아닌 TTG의 일원중 하나였던 "천마" 토쇼 보이이고, 어미는 1980년 오카상, 엘리자베스 여왕배 우승마인 "화려한 일족" 하기노 탑 레이디(ハギノトップレディ)이다.[12] 이 두 말의 관계는 애니메이션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2기 애니메이션에서 다이타쿠 헬리오스가 나무구멍에 대고 "아가씨가 차가워!"라며 불만을 표하는 장면으로 간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했다.[13] 14번 인기 다이유우사쿠의 1착은 단승 137.9배로, 역대 아리마 기념 최대 기록이다.[14] 신코 러블리는 니시노 플라워의 동기인 아일랜드산 외산마로, 훗날 타이키 셔틀이나 근래의 그란 알레그리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명마를 담당한 명 조교사 후지사와 카즈오의 초기 걸작이다. 외산마라 티아라 전선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커리어 동안 1400~1800m대의 혼성 중상에서 오카베 유키오 기수와 함께 여러 수말들을 때려 눕힌 강자였다. 1992년 다이타쿠 헬리오스에게 고배를 마신 신코 러블리는 다음 해인 1993년, 최악의 불량 마장속에서 마일 챔피언십을 제패하며 아름답게 커리어를 마쳤으며 이는 후지사와 카즈오 조교사에게도 첫 G1 승리가 되었다.[15] 당시에는 암수 혼성 경주였고, 관서 지역의 주니어 최강자전 역할을 했다.[16] 2005년을 마지막으로 폐지, 2006년부터 오션 스테이크스로 대체[레코드] A B C D
[각주]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1 07:39:57에 나무위키 다이타쿠 헬리오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