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SD/원인 및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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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전쟁 등 대규모 폭력 유혈 사태
3. 사고, 자연 재해
3.1. 사고를 목격한 사람
4. 고의로 벌어진 폭력
5. 직업 특성상 일어나는 트라우마
5.2. 교도관(교정직 한정), 사형집행관
5.8. 장의사 등 시신을 처리하는 직종
5.13. 택시 · 버스 · 트럭기사, 대리운전 등 운전관련 업종
5.14. 교사 등 아동청소년을 상대하는 직업
5.15. 연예인, 운동선수 등 공인들
5.16. 수리기사, 정비기사, 전기기사 등 일부 3D 업종
5.17. 비행기, 헬기 등 항공기 파일럿
5.18. 항해사, 선원, 어부 등 선박 관련 업종
6. 그 외




1. 개요[편집]


<트라우마>의 저자 주디스 허먼은 PTSD 환자를 크게 1) 학대, 폭력에 의한 경우2) 전쟁이나 재해, 대규모 사고[1]에 의한 경우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PTSD는 알코올 중독이나 우울증, 조현병으로 발전될 확률이 다분하며, 후에 자해, 폭력, 사회부적응, 불면 등의 문제로 나타난다. 허먼은 1)의 환자가 2)의 환자보다 극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진단한다.

그 이유는 2)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PTSD의 존재를 좀 더 쉽게 드러낼 수 있어 전우회 같은 단체에서 전역한 병사들이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고 아픔을 이해하는 과정을 겪을 수 있고 이것이 치료에 좀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성폭력, 폭력, 학대 피해자들은 사건 자체의 법적 처리와는 별개로 상당 수의 경우 피해자에 대한 후속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미흡한 경우가 많으며 특히, 매우 심각한 피해를 남기는 가정내 학대, 성폭력 피해자는 가장 안전해야할 장소인 “집”에서, 가장 친근해야할 “가족”에게 피해를 당하는 만큼 아픔을 호소하거나 위로받을 기회가 거의 없어 영구적인 상처를 남기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대로 치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 비교적으로 신체적 약자인 1)의 환자들은 자해나 가정내 폭력처럼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를 일으키는 케이스가 많으나 군사훈련을 받은 2)의 환자들은 크게 눈에 띄는 대형 사고를 치는 수가 있고, 이는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기가 쉽다.

개인뿐만 아니라 한 국가에 국민들이 감당하기 힘든 재앙, 가령 전쟁이나 재난 같은 국가적인 비상사태 등이 일어날 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대규모로 PTSD에 시달릴 수 있다.

비록 본 문서에서 전쟁에 의한 PTSD를 중점적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그것은 람보 등의 대중매체에서 여러 번 다룰 정도로 전쟁의 폐해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성폭력 및 가정폭력 등 사회적으로 쉬쉬하고 묻히기 쉬운 (전쟁보다는 개인적인 차원의) 요인으로 생겨난 PTSD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떤 종류의 PTSD라도 그것을 겪는 사람에게 미치는 폐해는 매우 심각하다.


2. 전쟁 등 대규모 폭력 유혈 사태[편집]




람보(영화)에서 묘사된 PTSD에 시달리는 람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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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over, Johnny. It's over!
트라우트만: 다 끝났어, 조니... 다 끝났다고!

Nothing is over! Nothing! You just don't turn it off!
람보: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어! 아무 것도! 말 돌리지 마십쇼!

It wasn't my war. You asked me, I didn't ask you!
이건 내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당신네들이 원했던 거지, 내가 원했던 게 아니라!

And I did what I had to do to win, but someone wouldn't let us win.
승리 하나만 보고 그 짓거리를 했는데, 정작 아무도 내가 이기지 못하게 했잖아요!

And I come back to the world, and I see all those maggots at the airport, protestin' me, spittin'. Callin' me baby killer and all kinds of vile crap!
내가 막 귀국했을 때, 공항에서 그 벌레 같은 놈들을 만났어요. 항의하고, 침 뱉고. 날 영아 살인범이라며 온갖 욕을 해대던 그 인간들!

Who are they to protest me, huh? Who are they?
걔네들이 뭔데 나한테 항의를 해? 어? 누구길래?

Unless they've been me and been there, and know what the hell they're yellin' about?
그 사람들이 나였었고, 거기 있었고, 자기네들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알기나 했다면!

It was a bad time for everyone, Rambo. It's all in the past now.
트라우트만: 모두에게 끔찍한 시간이었다, 람보. 이젠 다 지나간 일들이야.

For you! For me, civilian life is nothing! In the field, we had a code of honor. You watch my back, I watch yours. Back here, there's nothing!
람보: 대령님한테나 그렇겠죠! 나한테 민간인의 삶 같은 건 아무 의미도 없어! 전장의 우리에겐 명예가 있었습니다. 전우는 나를, 나는 전우를 지킨다. 돌아와보니 그딴 거 없었지만!

You're the last of an elite group... don't end it like this.
트라우트만: 넌 이 엘리트 부대의 마지막 생존자다... 부디 이렇게 끝내버리지 마라.

Back there I could fly a gunship, I could drive a tank! I was in charge of a million dollar equipment! Back here, I can't even hold a job parking cars!
람보: 전장에서 난 건쉽도 탱크도 몰 수 있었어요! 내게 수백만 달러짜리 장비들을 맡겼단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주차 대신 해주는 일조차도 못해!


전쟁은 PTSD의 가장 유명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에 인용된 미군이 자체적으로 병사들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평범한 병사들의 98%는 첫 교전을 겪은 뒤 어떻게든 충격을 받는다'고 나와있다. 이 98%라는 비율에는 전장을 겪은 장교들도 동의했다. 사실 이런 연구 결과가 있기 전에도 일선 지휘관들은 첫 교전을 겪은 뒤 병사들이 겪는 충격에 대해 (본인들이 먼저 겪은 만큼) 십분 이해하고 있었으며, "충격을 전혀 받지 않는 병사들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일기에 적은 경우도 있었다. 나머지 2%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나의 생존이나 이득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게 왜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하는 자들로 드러났는데, 쉽게 말해 타고난 사이코패스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2] 관련해서 남북전쟁 당시의 한 미군 장군은 "전장에서 10명 중 9명은 첫 전투를 치르고 어떤 식으로든 충격을 받는데, 나머지 1명은 정상인이 아닌 것 같기 때문에 가능하면 상대하고 싶지 않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 미국의 경우 이라크 참전 군인들에게서 폭넓게 PTSD가 나타나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009년 미국의 랜드 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160만 명의 장병 중 30만 명이 PTSD의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의 일부인 제2차 팔루자 전투에서 나온, 말보로맨이라 불리는 유명한 사진의 주인공 제임스 블레이크 밀러 또한 전역 뒤 PTSD로 인해 여러 고통을 받아야 했다.
  • 국군 또한 연평도 포격전 이후로 해군과 함께 연평도 장병들의 PTSD 검사를 실시했으나 다행히 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몇몇을 빼고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 몇몇 카투사들은 이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라크 내지는 아프가니스탄 참전 경험이 있는 미군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PTSD에 걸려있기 때문. 어떤 사람이 카투사에서 아프간 참전용사라는 미군을 만나 무용담을 기대하고 전쟁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했는데, 그 장교가 대번에 그런 소리하는 거 아니라며 노발대발했다던 얘기도 있다. 미군들에겐 이런 질문이 무척 실례인게 상식이고[3] 전쟁의 참상을 자기가 직접 봤기 때문에 PTSD와 관계없이 어이없어 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아프간 이라크 등에 다녀온 미군 부사관이 그러길, 사실 전쟁 관련해서 자기가 몇킬들 했네 어쩌네 라고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람이라면 실제로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거나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한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일화나 그러한 공적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는 있지만 살인 행위 그 자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은 멀쩡한 참전병 중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PTSD라고 해서 당장 폐인이 되거나 24시간 공포에 떠는 모습만 보이는 건 아니니 겉으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친해지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잘 보면 PTSD 신고를 한 미군들은 하루에 3번씩 6알의 안정제를 먹어가며 일하고 있으며, 밤에는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술을 마신다.
  • 문제는 전쟁으로 인한 군인의 PTSD인 경우 고문, 성범죄 피해자에 비해 그 피해자가 '훈련받은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전쟁에서 저걸 걸려왔다는 건 일단 전쟁터에서 뛸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갖고 군사훈련을 받았다는 뜻이고, 반드시는 아니지만, 치열한 전쟁에서 생존자들은 일반적으로 신체능력이 더 좋은 경우가 많다. 미국과 중국에도 특급병사고문관 등을 별도로 관리하는 제도가 있는데, 전쟁터에서 생존률은 확연히 특급병사들이 높다. 결국 신체능력 하나만은 자타가 공인하는 병사들이 PTSD로 인해 분노조절장애나 충동억제장애 등의 증상을 겪는 경우 엄청난 사고를 치는 경우가 다반사다.[4]
    • 이러한 참전 미군의 PTSD 후유증으로 인한 범죄로 현재 주목받는 곳이 바로 워싱턴 주 타코마에 있는 루이스-매코드 기지다. 이 중 육군 기지인 포트루이스에는 3개의 스트라이커 전투여단이 주둔하고 있는데, 이 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신속기동여단 자체가 전선에서의 빠른 투입과 전개가 목적이기 때문에 여러 번 아프간에 파병되어 실전에 투입된 바 있어 대부분의 부대원이 참전 경험이 있다고 한다. 신속기동여단의 특성상 위험한 곳이란 위험한 곳은 다 돌아다녔기 때문에 같은 참전군인들 사이에서도 이 부대 출신들이 더 극심하게 PTSD를 겪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선에서 돌아온 장병들이 벌인 갖가지 사건사고로 해당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동네는 말 그대로 지옥이라고. 음주운전, 가정폭력, 강도, 총기사고, 살인, 자살 등등 각종 사건사고가 다발하며, 미국 전역을 뒤져도 찾아보기 힘든 유별나게 잔혹한 범죄가 벌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항상 두려움에 떨며 부대의 파병 스케줄을 체크하는 등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때문에 타지로 이사가려는 사람들이 증가해 이 지역 인근 집값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한다.
    • 문제는 동두천에 주둔한 주한미군의 제2보병사단 예하에 2, 3, 4 스트라이커 여단이 소속되어있으며, 당연히 이라크 아프간 등 전선에 투입되고 있다는 것. 앞서 상기에 언급한 아프간에서 16명의 민간인을 살해한 하사 역시 주한미군 근무 경력이 있을 정도. 존 D. 존슨 미8군 사령관은 한국과의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 주한미군 장교들은 거의 100% 이라크나 아프간에서 1년 이상 주둔하면서 극한의 전쟁 상황을 경험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주한미군의 대응 능력은 훨씬 커졌다"며 주한미군 병사들 대부분이 참전 경험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알게 모르게 동두천 마포 등지에선 주한미군으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가 다발하고 있다. 특히 2007년 4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일어났던 성폭행 미수 사건의 용의자인 해당 부대 소속의 한 병사는 법정에서 실제로 PTSD와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하 주한미군의 PTSD 의심 사건사고는 여기에서 확인할 것.
  • 대한민국에서는 6.25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들이 겪는 일이다. 일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국군 참전용사는 40년이 지나서도 악몽 때문에 신경정신과 치료를 10년 넘게 받고 교회나 절이나 성당도 가고 자살미수까지 하기도 한다. 참전군인들 가운데 이 증세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있었으며 이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PTSD 전반에 대한 인식 미흡으로 거론도 되지 않고 묻혔다가 530GP 사건 이후 알려졌다. 대부분 의병 제대를 한 생존자들이 PTSD 증상을 나타내면서 의병 제대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자 예비역이라는 작자들이 '큰 일 겪은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꾀부리면 안 되지'라는 막장스런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5]
사실 참전용사들 중에 PTSD를 겪지 않은(적어도 외형이나 성격상으로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해서 이런 말이 나오는 면도 있다. 한국 전쟁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조국수호를 위한 전쟁이었고 베트남 전쟁도 최소한 대한민국 국내에는 반공이라는 매우 강력한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6] 애국심과 애향심이 매우 강한 편에 속하는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PTSD의 기억을 상당부분 떨쳐버릴 정도의 명분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PTSD가 발생했다. 상기 언급되었던 종교의 PTSD 경감 효과와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아래 글에 잘 설명되어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미군 참전군인들은 비교적 PTSD 증세가 덜해보이는 반면 그 후 전쟁들의 참전군인들은 PTSD 증세가 더 심해보이는 이유가 설명된다.[7] 2020년 기준 70년이 넘었는데도 그 당시 학도병, 어린 아이들이었던 70대~80대 이상 어르신들도 그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다.
  • 2010년 8월 27일 국군방송의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PTSD에 대한 이야기를 한 바 있었다. 한국군 내에서도 최근 들어서 신경을 쓰고 있지만 아무래도 미군과 중국군보다는 덜하다는 게 문제다. 2010년 10월 1일 해병대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병사와 천안함 사태의 생존자 1명이 해당 문제로 의병 제대했다고 알려져있으며 여전히 천안함 격침의 생존자 4명은 약물로 PTSD 치료를 받고 있어 추가 의병 제대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 천안함 생존자중 하나인 어떤 부사관은 낮에는 그나마 정상적이나 밤만 되면 술을 먹으며 비어있는 곳을 향하여 넋두리를 지속하는 전형적인 PTSD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 직접 전투 참전이 아닌 무인항공기 조종사들의 PTSD도 문제시되고 있다. 미군의 무인기 프레데터의 담당병들이 헬파이어 미사일 등을 이용한 공습 작전 시 자신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고해상도 카메라에 잡힌 목표 대상, 어쩌면 오폭으로 인한 주변 민간인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걸 목격하며 극심한 스트레스 증상을 호소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그걸 끝까지 지켜보며 영상을 남기는 것이 임무 중 하나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미군내에서도 일명 "땡보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서 그 심각성이 실제보다 폄하되는 경우가 잦은 편.[8][9]
  •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실제 모델이 된 네이비 씰의 저격수 크리스 카일도 전역 이후 PTSD를 겪는 전직 해병대원의 재활을 돕던 중 해당 해병대원이 PTSD로 인한 발작을 일으키는 바람에 총을 맞고 숨졌다.
  • 미국의 경관 카일 딩켈러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앤드류 브래넌에게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 가해자인 앤드류 브래넌은 베트남 전쟁 당시 유능하고 명망높은 군인이었으나, 전역 후 PTSD 증세를 보이더니 결국 양극성 장애 판정을 받았는데, 사건 당시 능숙한 은엄폐와 정확한 사격술을 보이며 PTSD를 겪는 참전용사와 그 위험성을 알리게 됐다.
  • 참전자 전원이 군 제대 후나 전후에 PTSD로 고통받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마다 정신세계는 다르기 때문에 전후 자신의 행위에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고, 일부는 심지어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반복되던 심리적 충격에 길들여져 전쟁 중엔 괜찮았다가 제대 후에야 과거의 기억에 죄책감을 느끼며 PTSD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다만 대다수의 참전자들은 (PTSD를 겪었건 안 겪었건) 자신이 대했던 심리적인 충격 때문에 전장에서의 기억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거나 관련 증언이나 회고를 꺼리며 전쟁을 영웅시하고 미화하는 사람들을 개념 없다고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참전 경험이 있는 군 출신 인사가 정계나 사회 인사로 활동하면서 반전 운동을 펴거나, 전쟁을 최대한 피하고 온건 외교 정책을 주장하는 반면 참전 경험이 없는 인사가 전쟁을 주장하는 이른바 '치킨호크'란 개념도 있다.
  • 1980년 5월 18일에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발생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로 투입된 계엄군들은 M16 소총과 대검으로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거나 총을 발포했는데 이로 인하여 당시 이를 목격한 시민들(40대 이상) 중 일부 시민들은 아직도 길거리에서 군복을 입고 지나가는 군인들을 보거나 총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폭죽소리를 들으면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 5.18 민주화운동 당시 피해를 입은 시민들뿐만 아니라, 의외로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되었던 특전사들 중 일부가 PTSD 증세를 겪는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당시 투입된 군인들은 이미 민주화 운동의 실상을 직접 보고 인지했기에 주변 인식을 떠나 교전 경험 직후 큰 충격에 시달려왔다. 영화 박하사탕5.18 민주화운동당시 투입된 청년이 PTSD로 인해 인생이 망가져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래서 일부 계엄군 출신 출신 중에는 오히려 하나회전두환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사죄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러나 5.18 계엄군 출신자들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대외적인 인식은 그냥 인간 쓰레기들이라 계엄군 출신자들이 PTSD를 앓는다고 하면 임산부에 초등학생까지 쏴죽이고 화풀이 학살까지 저질러댄 싸이코 살인마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나 한다며 싸늘한 반응만 가득한데, 이렇게 된 데에는 이경남이나 최영신 같은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계엄군 출신자들이 비이성적인 수준으로 5.18의 의의를 부정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 들었기 때문이다.[10] 안 그래도 계엄군 출신자들에 대한 매우 안 좋은 인식으로 인해서 치료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곤란한 판에, 특전동지회가 5.18에 대해 다룬 방송사와 방송인들에게 명예훼손 고소드립에 종북몰이를 한다던가, 화려한 휴가 같은 영화가 거짓이라고 주장하거나, 7공수여단 출신 최영신이 주남마을 학살의 진실을 증언하자 그에게 협박은 물론 심지어 테러까지 가한다던가 하는 등의 반성 따윈 전혀 없는 적반하장스러운 작태들을 보이면서 계엄군 출신자들의 이미지를 더 더욱 시궁창으로 만들고 다니며 사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더 암울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계엄군이 성폭행까지 저질렀다는 풍문이 근거없는 헛소문이 아닌 사실이었음이 확인되고, 2018년 5월 19일에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 중 "잔혹한 충성 제 2부 '학살을 조작하라'" 편에 나온, 전혀 반성 없는 계엄군 출신자들의 여러 망언들[11] 덕분에, 현재 시점에서 5.18 계엄군 출신자들의 이미지는 과장 안 보태고 인두겁을 쓴 악마들, 인간 미만의 무언가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덕분에 정보를 얻기 힘들었던 예전과 달리 인터넷에서 5.18 계엄군들도 시대의 피해자라는 말을 꺼냈다 하면 온갖 욕설이나 비웃음만 듣기 딱 좋은 상황이 되어 버렸고, "(위에서 그렇게 말하길래) 광주 시민들이 정말로 빨갱이인 줄 알았다"라는 계엄군 출신자들의 해명도 말 같지도 않은 핑계라고 비웃는 사람들도 더 많아 졌다.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도 대립하거나 심지어 주먹다짐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 일본군 역시 PTSD와 이로 인한 정신질환 문제가 심각했다. 일본의 항복 이후 일본 정부는 징집된 장병들을 소집해제시켜 사회로 돌려보냈지만 심각한 심신미약 상태의 환자들은 소집해제를 유예하고 일본군 신분을 유지한 체 국립 요양병원에 수용해 국비로 치료했다. 이들이 PTSD를 앓게 된 요인 중에는 전쟁으로 참상 외에도 일본군 특유의 경직된 상하관계에서 온 무의미한 똥군기와 병영부조리도 큰 원인으로 작용하게 있었다. 대전기 일본군부는 이들을 국가의 수치로 여겨 불문에 붙였고, 패전 후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집계한 일본군 내 심신미약 환자는 3만에 육박하는 2만 9천여 명에 달했으며 패전 이후 40여년에 다다른 1980년 기준으로 1100여명이 퇴원(소집해제)하지 못하고 치료를 받고 있었다. 시마네 현에 거주하고 있던 마지막 생존자2021년 1월 9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 여담으로, 셀 쇼크와 같이 전쟁으로 인한 PTSD는 처음으로 '남성에게도 정신적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심리학계에서 인지시킨 사건이다. 그전까지 정신질환은 주로 여성과 연관되어 생각되었으며[12] 정신질환을 앓는 남성은 나약하고 정신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돌연변이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양차대전을 겪으면서 참전 병사들이 집단적으로 '셀 쇼크'라고 불리는 PTSD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정신질환의 대상이 여성에서 인간 전체로 확장되어 연구되는 계기가 되었다.

3. 사고, 자연 재해[편집]


단순히 물에 빠지거나 골절상을 입을 정도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비교적 소소한 안전사고부터, 자연재해와 천재지변같은 대규모 재해로 피해를 받은 사람들 역시 전쟁 못지 않은 PTSD 증상을 보인다. 피해는 물론이고, 결과적으로 사고자 본인도 자신으로 인해 사고가 일어났다는 충격으로 인해 이런 PTSD를 겪을 수 있다. 또한 사고 피해자를 구조하고 현장을 수습하는 소방관이나 의료진, 자원봉사자 등 중에서도 이런 현장에서 장기간 활동할 경우 PTSD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한 생존자도 교량을 건널때 최대한 빨리 건너려 하고 정체가 되면 다른 길로 돌아간다. 또한 대구 지하철 참사의 경우 당시 불탄 1079호와 1080호에 타고 있었거나 중앙로역에 있어 사고를 직접 겪은 일반 대구 시민들 중에서는 아직도 지하철 타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때문에 대구지하철공사는 대구도시철도공사로 이름을 바꿨다.

교통 분야에서 이런 PTSD가 발생하는 분야 중 하나로 철도 기관사가 있다. 충돌사고나 자살사건이 발생하면 말 그대로 자신의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하기 때문이다.[13] 게다가 열차의 특성상 급격한 방향 및 속도 전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느끼는 충격은 더욱 크다.[14] 과거 철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람을 친 기관사가 운전실에서 엎드려 있는 사진이 퍼진 적도 있었다. 다만 같은 사업소의 동료 기관사들이 부정적 의사를 밝혀 와 원문은 삭제된 상태.

2016년 경주 지진, 2011년 도호쿠 지진과 같이 전혀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일 경우 트라우마로 남을 확률이 상당히 크다. 위와 같은 강력한 지진을 겪은 후 조금만 쿵쿵거리거나 쾅 소리가 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놀라게 된다.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은 별 것 아닌거에 예민해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트라우마의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주위에 지진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놀리거나 가볍게 여기지 말고 잘 공감해 주자. 또한 자신이 트라우마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병원에 찾아가서 정신 상담이나 약물치료를 비롯한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를 권장한다. 트라우마는 절대 의지로 이길 수 있는것이 아니다. 괜히 강한 척 하지말고 전문가와 상담을 받고 잘 치료할 수 있도록 하자.

이외에도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인해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고를 겪은 사람들중 이후 다시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119 신고접수 사례중 화재 다음으로 많은 사유가 엘리베이터 갇힘 사고이다보니 그만큼 엘리베이터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또한 개물림 사고를 겪은 사람들이 이후 개만 보면 견종을 불문하고 패닉에 빠지는 것 또한 여기 해당하며, 이외에도 곰한테 습격받아 구사일생으로 생존한 어린아이가 환경단체로 부터 곰인형을 선물받자 패닉에 빠진 사례도 있다.

사고 당시의 비명소리를 들은 사람은 함성소리에 패닉을 느끼기도 한다. 타이타닉 침몰 사고의 생존자들이 함성을 두려워 했다고 한다.

3.1. 사고를 목격한 사람[편집]


자살이건 타살이건 교통사고를 목격하든, 사고 현장과 시신을 목격한 사람들 또한 그것이 심한 트라우마로 남곤하는데, 특히 최초 목격자일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대표적으로 9.11 테러를 뉴욕 맨해튼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크고 작은 PTSD에 시달리고 있다.[15] 또한 1986년 일어난 첼린저호 폭발 사건, 2003년 컬럼비아호 공중분해사건 역시 우주왕복선의 특성상 많은 관람객들이 지켜보기 때문에 이들이 받은 트라우마가 엄청났다.

2002년 중국국제항공 129편 추락 사고 때 고등학생을 구조작업에 투입하였었는데, 나중에 이를 비판을 받게 된 원인 중 하나가 '학생들의 PTSD 발생 가능성' 때문이었다. 사고 당시에는 PTSD에 대한 개념이 없었지만, 지금 고등학생을 투입한다고 하면 크게 비판을 받는다. 물론 김해고등학교 학생회장 등 학생회 간부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소수만 갔기 때문에 여파는 크지 않았다.

무술감독 정두홍은 2014년 정글의 법칙 출연 당시, 지속적으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1996년에 스턴트맨 선배가 입수 장면을 촬영하다가 사망하는 것을 봤으며, 그 이후로는 해당 사고가 생각나 물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당시 사고 이후 18년만에 바다 수영을 했으며, 이 때 잡은 해산물로 출연자들이 첫 끼니를 해결했다.

이태원 압사 사고의 경우에도 사망자들의 시신 사진이 모자이크 등의 가림 처리 없이 그대로 트위터 등 SNS에 유포되면서 PTSD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였고, 결국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사고 당시 촬영된 영상과 사진의 유포를 중단할 것을 요청하는 성명을 냈다.# 심지어 사진을 본 사람들이 아닌 아예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PTSD의 정도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으며, 현장에 투입된 구조대원들, 경찰들, 군인들, 병원으로 이송된 사망자를 눈 앞에서 본 의료진들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 여고생 추락사 사건이나 일본 여고생 2인 동반 추락사 사건에서는 투신자살을 하는 모습을 각각 인스타그램트위터 생중계로 보여주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해당 생중계를 본 사람도 PTSD가 올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실제로 목격한게 아닌 인터넷으로 목격해도 PTSD가 올 수 있다. 아폴로 1호사건[16] 에서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시신 사진이 나오고 심지어 컬러 사진으로도 그대로 피까지 찍혀있다. 제일 끔찍한건 시신 사진에 얼굴이 녹아 고통을 호소하는 얼굴이 찍혀 PTSD가 심하게 올 수도 있다.

4. 고의로 벌어진 폭력[편집]


제2형 트라우마에 해당한다.


4.1. 체벌폭행, 집단폭행[편집]


적극적이고 활발했던 사람이 체벌이나 폭행, 집단폭행을 겪은 뒤로 그 영향으로 인해 삐뚤어져서 범죄자가 된다던지, 악몽에 시달리거나 적극적이고 활발했던 모습이 사라지는가 하면 공황장애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조차 못하게 되는 사례들이 많다. 예시로 광주 집단폭행 사건 피해자의 경우, 집단폭행 직전까지만 해도 친구를 구하기 위해선 직접 싸움도 할 정도였지만 집단폭행을 겪은 뒤로는 공황장애와 함께 정상적인 일상생활도 불가능해졌다고 하며, 신창원, 지존파의 경우도 집안 경제문제로 촌지를 못냈거나 준비물을 못가져왔단 이유로 교사한테 체벌 받은 것을 계기로 삐뚤어지기 시작해서 결국 범죄자가 되었다. 체벌이 위험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자신을 체벌했던 교사를 오랜만에 만나 폭행을 하거나 살해하는 보복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상당하다.

심지어 윤일병 사건의 경우도 피해자는 생전에 대학내 대표적인 여초학과인 간호학과에서 남자임에도 과대표가 되었을 정도로 사회성이 좋았고, 입대 후에도 초반엔 활발했지만 지속적인 가혹행위와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 결국 사망하기 전부터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고 이전의 활기찬 모습이 없어졌는데, 가령 죽지않고 살아서 제대했어도 활기찬 모습이 사라지고, 심할 경우 정신마저 이상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4.2. 고문[편집]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 당시 이근안에게 심하게 고문받고 2011년 12월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육체적 후유증뿐만 아니라 PTSD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고문 후유증으로 비염과 기관지염을 달고 살았는데도 이비인후과에 못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치과 가서 치료대에 누웠다가 고문 장면이 떠올라 치료도 포기하고 바로 나올 정도였다. 증언에 의하면 고문의자가 치과의자와 똑같이 생겼다고 한다. 많은 고문 생존자들이 병원을 찾는 것만으로 잠재 기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결국 후유증을 계속 안고 살다가 비교적 젊은 나이인 64세에 사망했다.

김근태 전 장관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에 종사했다가 고문을 당해 폐인이 되거나 정신이상이 된 사람이 꽤 된다. 김지하 시인이 유신 시대 이후 이래저래 좌충우돌하는 이유를 고문으로 인한 PTSD로 보는 사람이 많다. 1990년대 한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했던 한 정신과 의사의 회고에 의하면 민주화 운동 당시 고문에 의한 후유증으로 추정되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종종 입원한 일이 많았다고 한다. 제대로 진행된 PTSD는 치료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에서 이들 대부분은 지금도 크고 작은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시대를 겪은 중노년층이 하는 ‘남산이나 남영동에 갔다 오면 폐인이 된다, 미쳐서 돌아온다’는 말이 괜한 헛소문은 아니다.

그 외에 1969년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 때 납북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송환된 37명 중 일부 역시 PTSD로 폐인 혹은 정신질환자가 되었다.

4.3. 성폭력[편집]


성폭력강간, 성추행, 불법촬영, 성적인 문화충격 등 성을 매개로 하는 모든 가해 행위를 포괄한다.

강간 피해자 뿐만 아니라 성추행, 불법촬영, 성적 문화충격 등 성폭력[17] 피해자나 문화충격이 극심한 상태에서 폭력적인 경험을 할 경우 그 충격으로 PTSD에 걸릴 수 있다.

성폭력 트라우마는 전쟁 트라우마와 맞먹을 정도로 충격이 크고 오래 간다고 한다. 또한, 통신매체이용음란 피해불법촬영 피해 혹은 통제가 강하고 성적 수치심이 극단적으로 강화된 체제에 사는 무슬림 여성의 경우 머리카락을 가린 히잡를 강제로 벗기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고 PTSD에 걸릴 수 있다. 불법촬영 피해나 성폭력 피해 뒤에 따라오는 사회적인 소외를 겪을 경우 그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한데, 피해자가 자살하는 등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해당 기사, 참고로 이런 트라우마는 여러가지가 중첩되면 될수록, 가해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2차 가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사회적 매장이 가해질수록 더욱 심해진다. 특히 성적인 의도가 아닌 경우라도 사회적 매장은 단순한 신체접촉을 내용으로 하는 성범죄보다 심각한 피해를 주는데, 이 경우 단순한 성적 수치심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사람들에게 쏟은 모든 애정 그 자체를 잃어버린 것과 같은 정신적 충격을 준다. 이는 군대 등 명예와 충성을 요하는 사회에서 불명예스러운 고통을 당할 경우 자살은 물론이고 실어증까지도 겪는다는 점에서 성폭력 이후 2차적인 성적이지 않은 사회적 따돌림은 성범죄 그 이상의 피해를 줄 수도 있다. 특히 논란이 많고 과도한 신체적 수치심과 가혹한 자존심을 강조하는 사회나 집단 내에서 성과 관련된 PTSD의 증상이 더 쉽게 발현되며, 그 정도가 심하고 오래간다.

참고로 이런 트라우마는 당연히 남성피해자여도 비슷하게 일어난다. 실제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 미스틱 리버에서는 팀 로빈스가 소년 시절 납치되어 강간을 당한 기억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그 충격을 이기지 못 하고 폐인이 된 주인공 역을 맡고 있다. 실제로 여기에 나온 사건사고는 가상으로 만든 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게다가 이런 트라우마로 인해 성범죄자나 연쇄살인범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정남규. 예전 보다는 훨씬 줄었으나 성범죄 피해자는 주로 여성이라는 통념이 아직까지 잔존해 자신이 여성에게 성범죄를 당했는데도 성범죄 피해자라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해 피해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거나 오히려 가해자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 넘길 수 있지만 성적인 지식이 늘어 성범죄 피해자라는 사실은 물론 자신이 그런 행위를 당하고도 좋아했다(혹은 그냥 넘겼다)는 수치심, 혹은 당시에도 기분이 나빴으나 범죄가 아니라 그저 재수없는 일에 휘말렸다 생각하고 넘겨 처벌할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억울함으로 훨씬 심각한 정식적 피해를 받을 수 있다.[18] 물론 이는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여성은 성범죄를 당했을 경우 이를 인지하고 대처하는 경우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많다.[19] 반대로 피해 사실을 토로하고 싶어도 이러한 통념으로 말하면 오히려 공감을 못사고 고민을 인정하지 않을까봐 말을 못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설령 용기내 말해도 여성에 비해 공감을 못받는 경우도 많다. 성범죄 가해자 여성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이용해 더 대담하게 범죄를 저지른 사례도 있고, 이들 중 일부는 되려 '남자들이 하길래 그대로 했다.'는 개소리적반하장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20] 남성은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이는 곧 여성 역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될 수 있다는 뜻임을 명심하자.

어쩌면 남성, 여성 사이의 성범죄 보다 피해자가 억울할 수 있는 경우는 동성끼리 발생한 성범죄다. 그중에서도 쟈니스 사무소 설립자 쟈니 키타가와연습생 성착취 파문[21] 비롯하여 남성이 다른 남성 친구에게 포경 여부로 희롱을 당하거나 여성이 다른 여성 친구의 가슴을 잡고 크기를 평가하는 등 학창시절에 남중/남고, 여중/여고에서 흔히 벌어지는 장난이 있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가볍게 이루어진 성범죄의 경우는 아무리 기분 나빠도 여성이 남성에게 가해를 가한 것 이상으로 피해 사실을 공감받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정말 친한 친구끼리 장난으로 여긴다면 당연히 성범죄가 아니지만 일방적인 성적 장난은 아무리 동성이라도 엄연한 범죄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동성애자양성애자는 같은 동성을 좋아하는데 일부 성소수자는 동성 성범죄가 이성간 성범죄 보다 가볍게 다뤄지는 것을 이용하여 장난을 가장한 성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22] 동성끼리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가해자 쪽을 피해자 쪽의 반대 성별이라고 가정하면 훨씬 쉽게 범죄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논란이 빈발하면서 과도한 수치심과 가혹한 자존심의 기준을 강조하는 문화는 PTSD를 더욱 악화시킨다. 또한 강간, 성추행 등 성폭력은 매우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성범죄의 후유증은 불감증이 된다든가, 성에 대한 인식이 나빠져 성행위를 피하거나, 반대로 성을 남발하든가[23] 하는 성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자존감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문화적으로 자존심과 신체적 수치심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나라인 경우 정신적 충격이 더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 또는 도구 취급당하는 스스로의 자아가 묵살되는 느낌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나이가 어릴수록 후유증은 더 크다. 때문에 아동 성범죄를 중죄로 취급해 우발적인 살인죄에 준하는 수준으로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한 예로 미국과 중국에서 간혹 나오는 엽기적인 형량은 사법거래 등을 하지 않고 큰 소리를 치는 일부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괘씸죄가 적용된 경우가 많다.[24]

일본군 위안부의 생존자들도 당시 끔찍한 상황을 증언하고 나면 그날 밤에 잠을 제대로 못자고 날을 꼴딱 샌다고 한다. 이도 심각한 PTSD 증상의 하나이다.


4.4. 가정폭력[편집]


가정폭력의 경우 피해자를 구제하는 과정도 아직 제도화되어있지 않으며 최후의 안식처인 가정이 지옥이란 점에서 그 환경에서 벗어난 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폭력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아동의 경우 독립심에 손상을 받아 독립 과정에서 마찰을 겪는 경우가 많으며, 가족을 꾸리는 데 회의적이라 독신주의가 되는 이들도 있다. 결혼의 두려움 혹은 자신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결혼의 행복한 모습보다 안 좋은 모습을 보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또 가정폭력을 당한 아이가 부모가 되어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는 폭력의 대물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여기에서 더 최악은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자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인 사람이 더 약한 자녀나 다른 사람에게 폭언과 폭력을 저지르게 된다. 그러면 다시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에 대한 극단적인 사례로 이은석[25]이 있으며 이 외에도 막장 부모 문서에서도 사례를 몇 개 찾을 수 있다.

4.5. 집단괴롭힘[편집]


왕따 혹은 은따 피해를 당하는 것은 PTSD의 큰 유발 원인 중 하나다. 피해자는 자신이 부적응자라고 느끼게 되며 새로운 환경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고 모든 사람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게 된다. 게다가 가해자는 절대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를 만나면 아는 척을 하면서 또다시 괴롭히기 일쑤, PTSD는 더욱 심해진다.

학교에서라면 집단괴롭힘, 학교폭력, 군대에서라면 병영부조리, 직장에서라면 직장생활 부조리, 인터넷상의 악플, 마녀사냥도 이쪽에 해당된다. 과거에 인터넷 여론에 크게 시달렸던 문희준은 방송에서 최근까지도 정신적으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여기다 어른의 사정[26]이 가미되면 상급자가 처벌받는 것을 막고 사건의 해결을 거부하여 오히려 피해자를 괴롭히고 피해자를 욕하는 식[27]으로 묻으려 들기 때문에 피해자는 두 번 더, 혹은 그 이상 고통을 받는다.

게다가 왕따를 당하는 대상은 대부분이 학생과 같은 일반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은 경찰관, 소방관, 군인, 교도관 등과 같이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 대비하고 훈련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한 번 PTSD에 걸리면 더 큰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위에서 이미 말했듯이 가해자는 절대로 반성하지 않고, 때로 피해자를 조현병이나 망상증과 같은 정신질환의 이름을 들어 비난하는 등의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몰이는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회복을 늦추거나 불가능하게 만들며, 심하게는 앞서 언급한 정신질환을 비롯한 장애를 실제로 야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집단적인 괴롭힘의 존재는 온라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문희준과 같은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상에서도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시비를 걸거나 루머를 퍼뜨려 한 사람을 고립시키는 일들 역시 여전히 성행한다. 최근에는 악성 댓글과 사이버 괴롭힘에 대한 여론이 더 나빠지고 처벌도 강화되어 사정이 나아진 편이라고는 하지만, 이를 가볍게 여기는 막장 커뮤니티나 누리꾼들이 건재하므로 여전히 쉽게 다룰 문제는 아니다.


5. 직업 특성상 일어나는 트라우마[편집]



5.1. 경찰관[편집]



경찰•소방관 순직보다 자살 많아
연합뉴스
경찰관이나 강력계 형사의 경우도 범죄자 체포과정에서 전투를 치루거나 테러 진압에 투입될 경우 그 과정에서 PTSD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특히 직접 범죄자와 전투를 벌일 일이 많은 강력계 형사의 경우 PTSD에 걸리는 비율이 비강력계 형사보다 높아 강력계는 아무나 할 수 없다.

가장 노출 위험이 높은 직군은 경찰특공대를 위시한 SWAT, 즉 경찰 내 대테러 특수부대로 미국 같은 곳에서는 매년마다 굉장한 수준의 PTSD 환자가 나온다.

두번째로 노출 위험이 높은 직군은 과학수사대같은 현장 조사 요원들. 이들은 사람의 시신을 사실상 맨날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자주 보는 것도 모자라 그 시신이 끔찍하고 심각하게 훼손되어있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 이외에도 화재 등의 각종 참혹한 사고 현장 등에 자주 출동할 수 있어서 PTSD에 걸리기 쉽다.

그러면 경제팀이나 사이버팀 등등 지적인 수사가 중심이 되는 수사부서는 편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라서, 이 쪽은 온갖 범죄자들의 궤변과 이성을 잃은 범죄피해자들의 감정적인 진술들을 일일이 조서로 남기면서 들어줘야 하는 업무부담이 상당하다고 한다.

지구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들도 PTSD가 생길수 있는 상황을 많이 마주하는데, 고독사, 자살, 살인현장 등등 초동조치를 대부분 이곳에서 근무하는 경찰들이 하기 때문에 시체를 꽤나 많이 보게 된다. 또한 지구대는 국민들의 일상에 제일 근접해 취객의 보호나 정신이상자의 난동 등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그로부터오는 욕설이나 인신공격, 폭력에 시달리게 되어 발생되는 정식적 고통은 이루말할 수 없다.

게다가 사고현장이나 화재현장에 출동하는 경우에도 희생자들을 눈 앞에서 보면서 PTSD가 생기기도 한다.


5.2. 교도관(교정직 한정), 사형집행관[편집]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교도관들 중에서 PTSD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교도소의 특성상 업무의 강도가 상당하고 온갖 극단적인 인간군상을 목격하다 보니 이로 정신적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형 제도가 있는 국가의 사형 집행 임무를 맡는 교도관들은 아무리 범죄자라 하지만 직접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다 보니 정신적 충격이 더욱 크다.

물론 교도관 나름대로의 직업의식이나 신념 등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예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사형수를 직접 목베어서 죽이는 참수형을 시행하는데, 이 일을 하는 사형 집행인에겐 두둑한 보수와 각종 처우가 보장되며 신앙심으로 마음을 다스리지만 그럼에도 정신적인 충격이 대단해서 자신의 자녀들에겐 절대 직업을 계승하지 않으려 하고 이슬람권에서 금지하는 음주도 암묵적으로 허락받을 정도라고 한다.[28]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를 도입한 이유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사형수에 대한 인권 문제였지만, 잦은 처형으로 인한 집행인들의 피로와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았던 데다 무엇보다 사형이 즉각 집행되니 집행인의 죄책감이 덜했기 때문이다.[29]

그래서 버튼을 누르면 의자나 발받침 떨어지는 교수대는 버튼이 여러개이며 교도관들이 카운트다운 후 동시에 누른다. 이중 진짜는 단 하나이며 나머지는 가짜. 누구것이 진짜인지 교도관들은 모르므로 죄책감이 덜 하다. 이는 군인의 사형인 총살형도 비슷하게 사수 여럿을 일렬로 세워 놓고 실탄과 공포탄 또는 왁스탄을 섞어 지급한다.[30] 이유는 동일하다. PTSD 문제가 대두되기 전에는 그냥 죄다 실탄으로 장전해서 쐈다. 북한은 머리.배.가슴.다리 총 6발~9발을 실탄으로 쏜다고 하며, 한국군은 죄다 실탄으로 장전해서 쏜다.[31]

옛날부터 있던 참수형 집행을 전담하는 망나니들 역시 PTSD에 시달리며 살았다. 이들이 맨날 술에 절어 사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으며, 괜히 매체에서 참수형을 집행하는 망나니들이 거하게 술 마시고 뿜어대는 모습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반면에 미국과 중국에서는 사형 집행 시 그 사형수가 저지른 범죄 피해자 본인이나 유가족을 참관인으로 초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형수의 사형 모습을 참관하는 것이 피해자나 유가족, 집행 교도관이 앓는 PTSD의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정의가 실현되었고 피해자의 원한이 조금이나마 풀렸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도관 역시 사형수가 죽는 것에 위안을 얻는 피해자, 유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많이 덜 수 있다.


5.3. 군인[편집]



극심한 PTSD에 노출될 위험성이 가장 높은 직업. 군인들의 경우 전쟁터를 다녀왔거나 최소한 전쟁터까진 아니더라도 위험지대에 다녀온 것만으로도 PTSD가 생기곤 하는데, 당장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미군들 중에도 PTSD로 인해 정상적인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이 알려져 있다.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용사는 PTSD로 인해 순찰중인 경찰과 총격전을 벌여 경찰관이 순직했고, 이라크전 참전용사는 흉기로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는 끔찍한 일마저 발생했다.

이들의 경우에는 단순히 폭력사태나 사람이 죽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법을 집행하는 것을 넘어, 본인들이 적들을 죽여서 목표를 이루고자 죽음 자체가 일상인 전쟁이라는 최대, 최악, 최흉의 폭력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이기에 그 어떤 직업보다도 PTSD의 발생 빈도와 강도가 높다. 그 중에서도 직접적인 전투에 깊숙히 연관된 병과일수록 그 피해가 더더욱 극심하다. 당장 훈련소도 같이 나오며 동고동락했던 전우들이 눈 앞에서 오체분시되어 한순간에 고깃덩어리가 되고, 머리가 박살나 뇌와 머릿뼈 파편을 질질 흘리며, 민간인들은 어린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가리지않고 남자들은 고문당하고 부녀자들은 강간당한 후 온갖 내장이 끄집어내진 채 처참하게 죽어있는, 곳곳마다 비명소리와 시체 썩는 냄새로 가득한 생지옥을 눈앞에서 목격하니 도저히 안 걸릴래야 안 걸릴 수가 없는 환경이다. 실제 전장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것보다 수천배, 수만배는 더 잔인하다. 아무리 열심히 훈련받은 최정예 군인이고 인간흉기일지라도 눈 먼 총탄 한방에 허무하게 죽어나가고 폭격 한번에 수십명의 목숨이 갈려나가는걸 보면서 염세적인 성향으로 바뀌게 되는건 덤. 친했던 전우가 자신의 눈 앞에서 허무하게 전사하는 경우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탓하거나, 더 나아가면 자신이 전우 대신 죽는 게 나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생존자의 죄책감(Survivor's Guilt)까지 겪게 된다.

보병이나 기갑, 포병, 저격, 특수부대 등이 PTSD에 시달리는건 워낙 대표적이라 말할 것도 없고, 조금이라도 전투현장에 연관된 이들은 모조리 잠재적 고위험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중에서도 보병/포병/기갑 등 육군은 개인이 직접적으로 격렬한 전투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가장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육군 뿐만 아니라 해군의 전투함/잠수함 승조원, 해/공군의 전투기/수송기/헬기/무인기 조종사들도 PTSD에 몹시 취약하다. 이들은 배와 비행기를 다루며 제해권/제공권을 장악해 육지에 화력 지원을 하는 것이 주 목적이기에, 전시에는 다수가 기본적으로 1주일동안 총 수면시간이 10시간도 안 되는 수준으로 혹사당하며, 이로 인해 각성약물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아 정신적으로 몹시 피폐해진다고 한다. 해군 잠수함의 경우에는 몇달동안 햇빛도 못 보고 깊은 심해에서 작전을 해야하니 말 할 것도 없다.

의외로 무인기 운용 요원들도 PTSD가 극심하게 걸릴 가능성이 높다. 타 직종의 군인들과는 다르게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 근무하긴 하지만 오히려 이게 역설적으로 정신적 쇼크를 주는데 일조하고 있으며, 비교적 멀리서 함포나 미사일로 공격하고 철수하는 함선이나 유인전투기의 승무원/조종사와는 달리 자신이 조종하는 UAV나 드론으로 목표물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장비에 내장된 카메라를 통해 적이 끔찍하게 죽어나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고스란히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죄책감과 고통에 시달린다.[32]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로, 무인기는 민간인 거주지역에도 은밀하게 침투가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비공식적인 더러운 임무에 활용되어 민간인이 오폭으로 사망하는 과정까지 실시간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것. 거기에 이런 고충을 제대로 이해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후방에서 의자에 앉은 채로 편하게 임무를 수행한다면서 들려오는 "CHAIR FORCE" 따위의 조롱은 덤이다.[33]

특수전 요원들의 경우에는 전쟁에 깊숙히 관여하는 특성상 더더욱 위험도가 높다. 과거 2차세계대전 당시부터 저격수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그 저격이 그저 수 많은 특기 중 하나에 불과하며, 심지어 위 무인기 조종사들의 UAV/드론 활용 능력도 이들의 주 특기 중 하나다. 오퍼레이터 개인이 수많은 전문특기를 익히고 있는지라 작전가능 역량이 워낙에 방대하기 때문에, 그 수요에 따라 이곳저곳 불려다니며 수많은 임무에 관여하다보니 자연스래 노출될 위험성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전술/전략전 차원에서의 임무 뿐만 아니라, 높으신 분들로부터 직통으로 의뢰받은 정치적인 목적의 극비 작전을 수행하며 종종 민간인 학살과 고문 등의 매우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일을 하기도 하고, 극비 사항을 매일 접하며 전쟁의 더러운 내막이나 그 이면 또한 잘 알게 되는만큼 정말 극심한 PTSD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34]

당장 본 문서 전쟁 문단의 예시로 있는 존 람보베트남전에서 대활약했던 그린베레 출신의 최정예 대원이고, 현실에서도 DEVGRU 요원들이 시체에 카누잉을 하거나 하며 각종 전쟁범죄에 연루되기도 한다.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도 크리스 카일이 PTSD로 고생하는 내용을 다루는데, 수축기 혈압이 무려 180을 넘는 모습을 보이니...

또한 군 인원들의 PTSD는 케어하기가 가장 까다롭다. 그냥 건장한 성인 남성이 정신병에 걸려 날뛰어도 관리하기 엄청나게 힘이 드는데, 전투훈련을 받았으며 실전경험도 있는 인간흉기들이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폭력으로 인해 정신이 매우 심각하게 붕괴된 만큼 치료하기가 무척 까다롭고, 사고를 치면 그 위험성과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 윗 문단에 링크된 카일 딩켈러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 증상이 도지자 바로 차량에서 M1 카빈을 꺼내와 말도 안 되는 전투력으로 경관 하나를 농락하며 매우 잔인하게 살해했다.


참전 후유증 시달린 美 30대 한인 존속 살해
YTN 뉴스

전쟁에 겪지 않더라도 부조리 등으로 인해 PTSD에 노출될 가능성은 높다. 징병제 국가인 대한민국을 예로 들면, 성인 남성들 대부분이 군 복무 경험이 있다보니 희석되어서 받아들여지지만 사실 대한민국 남성의 대다수가 PTSD의 환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억압적이고 통제적 환경에서 사회와 단절된 공간에서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험필연적으로 정신적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와 2010년대의 군 내무생활 격동기를 거치며 최근에는 많이 나아졌지만, 21세기 이전에 군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대다수가 정말 무자비한 구타와 가혹행위, 부조리와 얼차려에 시달렸던 사람들이다. 그 세대 사람들에게 군대 관련해서 질문하면 보통 이를 바득바득 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 사회에선 유머로 통하지만 남자들이 꾸는 최악의 꿈이 재입대, 군대 꿈이라는 것은 전형적인 PTSD 증상이다. 러시아군의 데도브시나가 대표적인 예.


5.4. 소방관[편집]



PTSD에 대한 소방관들의 이야기
소방청
위험한 곳을 찾아가는 직업 특성상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정신적 피해가 극심하다. 본인들이 눈 앞에서 구하지 못해 죽어간 민간인들과 환자들, 화재현장에서 순직한 동료들과 같은 죽음을 수 없이 겪으며 엄청난 수준의 PTSD 증세를 보이나, 직업군 특성상 별 다른 지원을 받지 못 하며 혼자 삭이는 안타까운 상황이 많이 보인다.

화재진압과 구조의 업무를 담당하는 소방관들은 건물이 무너지면서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같이 있던 여러 명의 동료를 한 번에 잃는 참사를 경험하기도 하며, 화재로 인해 중증화상을 입은 환자들이나 극단적으로는 아예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손상된 시신을 목격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내가 좀 더 빨리 도착했으면...” 등의 죄책감을 느끼며 정신적 손상은 배가 된다. 또한 문개방 출동이 걸려서 문을 열었더니 목 매단 시체가 부패되어 있었다거나, 교통사고로 자동차 밑에 깔린 사람을 목격하는 등 복합적인 정신적 타격을 많이 입는다.

응급구조사의 경우 일반적으로 더 심하다. 심정지 환자는 예삿일이고, 출혈이 심해 온몸이 피범벅이거나 아예 신체가 절단된 상황 등 정말 반죽음 상태의 환자를 이송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생기며 이것에서 받는 시각적 충격이 상당하다. 이송 중 구급차에서 사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니면 현장에 가니까 피구조자가 이미 죽어 있거나. 이런 걸 자주 보진 않더라도 1년에 한 번 이상은 보게 된다. 심정지로 오락가락 하는 환자를 온갖 응급처치를 동원해서 살려보겠다고 다짐하고 병원으로 이송해도, 알음알음 그 환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몰려오는 죄책감과 자괴감에 무너지는 경우도 많고, 죽은 사람이 계속 꿈에 나온다던가, 간혹 유족들의 오열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는 환청 증세를 겪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의 행복이나 즐거움보단 고통과 죽음에 가까운 직업으로, 이곳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이들을 정신적 고통, 더 나아가 정신질환으로 이끌어 가는 것의 주범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고 죽음에 거리낌을 느끼고, 이것이 안 되는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라는 명칭으로 따로 불린다. 이 사람들은 애초에 소방시험 인적성검사에 걸려 소방관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누군가의 고통이 나의 일상이 된다면, 그것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충격이 단순한 것도 아니고 복합적으로 계속 축적되어 가고, 겉으로는 티 내지 않고 점점 무뎌지지만 내부로는 처음 봤을 때와 별반 다를 거 없는 충격을 받기 때문에 PTSD를 앓고 있는 소방관들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장 활동에서 우수한 실적을 보이다가 PTSD가 찾아와, 어쩔 수 없이 내근으로 빠지는 사람도 많다. 그나마 이 케이스는 그럼에도 끝까지 소방관으로 남아있고 싶은 사람들에 한정이다. 아예 정년 못 채우고 그만 두는 안타까운 사례도 종종 있다.


5.5. 도축업자[편집]


조선시대백정이라고 불렸던 도축업자도 예나 지금이나 만만찮은 PTSD에 시달려왔다. 도축업자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요즘 도축업자는 일도 고되고 무엇보다 '고기'라는 고수요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돈도 많이 벌지만 조선시대의 백정은 최하층 신분인 천민으로 분류되어 다른 계급은 당연하고 같은 계급 내의 다른 직업인 가문과의 혼인에도 어려움을 겪는 등 차별이 엄청났으며,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고도 관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은 탓에 일제강점기로 넘어간 시점에서도 형평운동이 벌어질 정도로 멸시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도 도축업자를 향한 시선에는 그러한 차별의 잔재가 약간이나마 남아 있다. 비록 인간의 필수 식자원인 고기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목숨을 빼앗는 것도 단지 금수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멸시 속에서 생명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로 고통을 받는 도축업자도 매우 많다. 도축업자의 대우가 나은 편인 유럽이나 중국 북부지역, 도축이 집안일인 유목민족과 유목민 출신이었던 유대인, 아랍권은 그나마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은 변함이 없어서 많은 문화권에서 사냥이나 도축 전에 종교 의식을 행하는 경우가 많다.

결정적인 이유는 살생이 불가피하며 일도 고되다는 게 크다. 부담감도 상당히 크며 술과 담배를 안 하는 도축업자가 사실상 없다. 수산시장 등처럼 어류에 대해서는 부담감이 덜하지만 도축업자는 사람과 엇비슷한 신체구조를 가진 포유류조류를 죽여야 하는 일이므로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상당히 힘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도축업자들중 불교를 믿거나 불교성향인 이들은 이번 생에서 도축된 동물이 부디 다음 생에서는 가축이 아닌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로 태어나고 주인도 잘만나서 행복한 을 살거나 아니면 아예 인간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위령제도 열기도 한다. 개신교 신자인 도축업자도 개신교에 맞게 기도를 올리곤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PTSD를 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성경과[35] 불경에서조차 '직접 키운 짐승을 도살하지 말라'라는 내용이 있다. 식용 가축이라고 해도 직접 키운 짐승을 도살할 경우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는 지식은 수천년 전부터 있었다.


5.6. 수의사[편집]


전술된 의사와 후술될 도축업자의 중간에 있는 직종. 수의사는 크게 비임상, 임상 수의사로 나뉘며, 비임상 수의사는 주로 제약회사나 연구기관에서 실험동물을 다루거나 공무원을 하게 되고, 임상 수의사는 닭·돼지·소·말 등의 산업동물을 진료하는 대동물 수의사나 개·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을 진료하는 소동물 수의사로 나뉜다. 어느 쪽으로 진출하든 간에, 수의사인 이상 동물을 자의로 죽여야 하는 경우가 잦다. 수의사가 사람 다루는 의사와 가장 다른 점은 최종 목표가 아픈 동물을 살려 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의 생명은 가치가 무한대이지만, 동물은 아니므로 경제적인 이유 등 여러 이유로 치료에 드는 노력과 비용이 그 생명의 가치를 초과한다 판단되면 치료 포기, 살처분 또는 안락사로 이어진다.

소동물 임상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사람보다 열악한 진료 환경 때문에 이유도 모르고 환축(아픈 짐승. 동물은 환자가 아님)이 죽는 경우가 잦다. 비보험이기 때문인지 수의사들도 의사 못지 않게, 아니면 의사보다 더 심하게 돈을 밝히는 직업으로 인식되어 있는데, 자신의 환축이 죽는 것을 방치하거나 즐길 수의사는 없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같은 수의사끼리도 싸이코라고 욕할 정도지만, 환축이 죽을 경우 보호자들은 그저 돈에 환장한 수의사들이 돈만 뜯어가다가 동물이 죽은 것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 경우 수의사들은 열악한 진료 환경과 자신의 부족한 지식(전 축종을 완벽히 알기는 힘드니.), 또 동물의 생명이 내 손에서 떠났다는 점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데, 보호자들까지 돈독 오른 놈으로만 취급하니 상당한 스트레스가 된다, 심지어는 보호자들이 반려동물의 노환을 이유로, 혹은 자신의 여건을 이유(집이 좁아요, 알러지 때문에 힘들어요, 아이를 가지게 됐어요 등)로 동물들을 안락사 해 주기를 요청한다. 당연하지만 유기견 보호소 등의 시설에서 근무하는 수의사도 일정 기간이 지난 보호 동물을 안락사 시켜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대만 보호시설의 한 수의사가 자살한 일화는 수의사들 사이에서 매번 회자될 정도로 동물이 죽고, 또 내 손으로 죽여야만 하는 경우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PTSD는 수많은 수의사들이 공감하는 점이기도 하다.

실험동물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동물들을 죽이는 것이 일상이다. 마우스나 래트와 같은 설치류를 죽이는 것은 물론이요, 수의사가 실험동물로 다루는 축종에는 돼지, 토끼, 원숭이, 개를 흔히 포함하게 된다. 문제는, 특히나 실험동물을 다루는 경우에는 수의사가 시설책임자이기 때문에 사육 과정에도 참여를 하는 경우가 잦은데, 경우에 따라서는 정이 들기도 한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정이 드는 것은 둘째의 일이고, 전살·경추탈골·색전유발·마취제투여·흉강절개 등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이는 법을 배우다보면 내가 왜 수의사가 됐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 정도다. 실험동물 수의사의 경우는 한술 더 뜨는게, 동물실험이라는 것이 사람에게는 하지 못하는 in vivo 실험을 대신하는 것이다보니, 해당 질환을 의도적으로 유발하거나 화학약품의 안정성을 보기 위해 동물들에게 약품 처리를 하는 과정까지도 진행해야 한다. 의사가 치료하기 위해 연구하는 난치성 질환들과 심각한 외상 등은 동물에서 먼저 모델이 만들어지고 난 후의 연구[36]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의사가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을 치료하고자 수의사가 되었으나, 동물을 아프게 하고, 실험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관리와 비용의 이유를 들어 마치 못 쓰게 된 물건을 버리듯이 안락사 시켜서 의료폐기물 통에 담다보면 정말 못할 짓이다 싶은 생각 뿐이다.

대동물 임상이나 공무원은 수의사 PTSD의 극한이라고 할만한 분야인데, 매년 연례 행사로 터지는 구제역(FMD)과 조류독감(AI) 때문에 돼지, 소, 닭, 오리 등을 살처분하다보면 받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다. 아마 살처분 전 농민들의 반응과, 동물들을 산 채로 파묻으며 들어야 하는 동물들의 비명 소리와 구덩이를 뛰쳐나오는 동물들을 다시 밀어넣는 일을 경험한 수의사 중에 살처분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 한 동안 고기를 입에 못 대서 일시적 혹은 영구적 채식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이 분야는 축산업자·공무원축산직렬의 고질적인 병폐로 인해 수의직의 인력도 부족할 뿐더러, 그나마도 공중보건의사와 같이 공중방역수의사로 대체복무하는 수의사들이 대부분이다보니 살처분의 업무 강도는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PTSD 이전에 과로사하는 수의사가 나올 정도로, 정말 어마어마한 양을 예방차원에서 살처분 시키고, 다시 방역 교대근무까지 서는 상황이다. 때문에 수의사회·보건복지부·농림축산부에서 수의사들에게 PTSD 치료를 지원할 정도이다. 이 두 부처는 소관부처라 할지언정 행정안전부까지 나서서 방역·검역으로 인해 PTSD를 겪는 수의사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정도이다.

당연하지만 병리부검을 진행하는 수의사도 정상적이게 죽은 동물을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이쯤 되면, 수의사의 전 분야가 스트레스의 온상인 셈으로, 어찌 보면 사형집행인과도 비슷하다. 다만 죄가 없는 동물들을 죽여야할 뿐이다.

공부도 어느 정도 해야하는 직업임은 분명하고 동물을 사랑해서 수의사를 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이지만, 학생들은 학부생부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해부학, 약리학, 생리학 등의 각종 기초수의학 실습과 각종 임상수의학 실험을 위해 사용되는 개, 래트, 마우스, 토끼, 돼지, 닭 등은 아마 수의대생이라면 한 번쯤은 자기 손으로 죽여봤을 정도로 수의사들은 학부시절부터 살생에 노출되어 있다. 사람을 치료하고자 의대에 진학한 의사가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여야한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이 때문에 수의대 실습 중에는 항의를 하거나 실습 후에 우는 학생이 동기 당 한 명 이상은 존재하며, 6년의 과정을 수료하고도 수의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택해서 나가는 이들이 많은 직업이다.

전혀 다른 분야지만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 당시 소련의 우주공학자들도 비슷하게 겪었다고 한다. 유리 가가린이 우주에 나가기 이전에 수 많은 동물들이 우주로 먼저 갔고 무사히 성공적인 비행을 마친 동물도 많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동물들이 귀환에 실패해 엄청난 고통속에서 죽어갔기 때문이다. 우주공학자들은 인류 문명을 위해 희생당해야하는 동물들을 보내며 많은 죄책감을 느꼈다고 하며 실례로 라이카를 보내고 엄청난 고통속에서 죽어갔다던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참여했던 학자들이 심적고통을 많이 받았다고 하며 후에 한 학자는 라이카에게 꼭 미안하다고 하고 싶다라 말했다.


5.7. 의사, 간호사[편집]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과 간호사들 중에서도 PTSD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응급실이 딸린 중/대형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 대상이다. 이런 병원의 특성상 업무의 강도가 상당하고 응급실의 경우 교통사고나 심한 화상, 심하면 신체 절단이나 음독 자살 시도자 등등 온갖 극단적인 상태의 환자들을 목격하다 보니 이로 정신적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을 어떻게든 살려내야 하는 게 의사의 의무인데 환자의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병원에 입원하고도 가망이 없어서 그대로 사망할 경우 담당의사의 정신적 충격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온갖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고도 환자가 죽어서 유가족들에게 돌팔이라 욕먹고 손가락질 받으며 심지어는 주먹으로 얻어맞기까지 하는 등의 고초를 겪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눈앞에서 죽게된다면 순간적으로 이성을 놓아버리는 경우는 현실에서도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다가, 그 분을 풀 대상으로 의사를 꼽는 경우도 흔하고, 만약 100%의 비율로 의사나 의료진의 과실로 그 사람이 죽은 것이라면 누구나 그럴 상태이기에, 사실은 완전히 틀린 말이라 보기엔 어렵다. 사고 등으로 인해 심하게 훼손된 인체와 직면하는 것으로 발생하는 정신적 충격은 직접적으로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 쪽에서 더 흔하게 발생하는 문제로 약 처방 위주로 진행되는 내과쪽은 비교적 덜하다. 물론 마취과 등 수술에 투입되는 의사들의 경우는 또 다르지만.


'공포'의 응급실 MBC 뉴스

물론 의사 나름대로의 직업의식이나 사명, 신념 등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예로 화상병동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죽어나가는 환자들을 보면서 의사들이 가끔 멘탈붕괴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살려내서 무사히 퇴원시키면 이보다 더한 성취감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반대로 환자가 사망하면 절망감은 그 이상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사진 중에 자신이 진료하고, 집도했던 19살 소녀가 죽자, 살려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병원 밖으로 뛰쳐나와 주저앉고 우는 의사의 사진이 유명한 사례.

온갖 방법으로 망가진 인간의 육체를 매일같이 보면서 이를 원상복구시키는 일을 하는 직업인지라 의사들은 계속 망가진 육체를 보면서 PTSD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의사가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직업이지만 알고 보면 엄청나게 가혹한 직업이다.

물론 의사들도 전부 케바케다. 평범하게 동네 병원으로 개원하여 진료할 수도 있고 강남에서 미용 전문 성형외과피부과로 돈 좀 만질 수도 있고 응급실에서 감기환자부터 심정지 환자에 취객까지 온갖 사람을 대하거나 중증외상센터에서 온몸이 찢어지고 짓이겨진 육체만 보는 일을 할 수도 있다. 물론 후자는 워낙 환경이 열악한데다 돈도 못 벌어 해당 분야의 인력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어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37]

또한 위의 전쟁, 자연 재해와 같은 대규모 재난으로 인해 사상자가 한꺼번에 발생하면 의료진은 트리아지에 따라 사상자를 분류해야 하는데, 이 것도 PTSD와 연관이 된다.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환자의 일부를 명백히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이것이 PTSD로 연결되는 것.

정신과 의사들의 경우 온갖 정신질환자들을 접하며 그들의 궤변과 뒤틀린 인지도식을 일일이 의무기록으로 남기며 들어주는 것이 직업이다보니 어느새 정신상태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정신과의사들은 동료끼리 정기적으로 서로를 검진해줄 정도이며 특히나 대형병원의 정신과 의사들은 타 과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에 비해 PTSD에 걸리기가 더욱 쉽다.


5.8. 장의사 등 시신을 처리하는 직종[편집]


장의사, 유품 청소부 등 시신과 사망 현장을 처리하는 직종 종사자들도 PTSD에 걸리기 쉬운데, 특히 시신을 닦는 일의 경우 꿈 속에서도 나오는 경우가 적잖게 있다고 한다.[38][39]

자살이나 타살, 사고로 인해서 죽은 사람의 시신을 직접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PTSD가 걸리기 쉬운데 아예 시신을 처리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PTSD에 걸릴 확률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높다. 게다가 단순히 병사한 시신의 경우 그나마 형태가 온전히 보존되지만 자살부터 시작해서 사고사의 경우 시신이 피칠갑(피투성이)이 된 시신을 직접적으로 다뤄야 하기에 시신을 처리하는 직종을 아무나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40] 물론 그 일이 천직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방부처리 안 하고, 염을 다 하고 나면 시신이 보이지 않기에 대충(?) 수습하는 한국과 달리 서구 쪽은 시신에 방부처리 하느라 동맥을 절개해 피를 빼고 방부액을 주입하고 복부 가스를 빼는 등 작업이 있으며, 관에 눕힌 채로 사람들에게 보여야 할 얼굴과 목은 꿰매고 붙이고 화장하는 등 여러 기술을 총 동원해서 생전 멀쩡한 모습으로 복원하여야 하기에 훨씬 더 할 일이 많고 충격 받을 일도 많다.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는 유품 청소부의 경우 흔히 인터넷에 "월 1000만원 대 수익 보장"이라는 글에 현혹되어 무턱대고 따라갔다가 썩은 피가 고이고 온갖 벌레가 난무하는 비참한 현장을 보고 바로 그만 두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고독사라는 말 자체가 주변 연락 없이 혼자 지내다가 지병 등의 이유로 사망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므로 악취와 벌레가 상상이상이며 이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이 매우 크기에 유품 청소부의 일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직업이라고 김새별 등의 유품 청소부들은 강조하고 있다.


5.9. 조련사사육사[편집]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 서커스단에서 일하는 조련사들이나 사육사들도 해당하는데 이들은 직업 특성상 야생동물들을 접할 일이 많은데다, 특히 단순 야생동물을 넘어 맹수를 접할 일이 유독많은 서커스 조련사들은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자신이 관리하는 동물한테 자신 또는 자신의 동료가 죽거나 다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관람객이 그런 일을 당하는 걸 목격했을 경우도 그러하다.
이들도 트라우마로 인해 이 일을 못하게되는 경우가 있다.


5.10. 철도 기관사[편집]



"심장이 오그라든다"
지하철 사고에 지치는 기관사들 JTBC 뉴스
빛이 보이지 않는 지하구간에서 귀를 때리는 소음, 높은 운행 속도와 업무의 중압감[41], 좁은 운전실에 홀로 있는 근무특성 등 여건상 PTSD에 매우 취약한 환경이다.


열차-승용차 충돌.. 어머니-아들 숨져
KBS 뉴스

철도기관사가 PTSD를 겪는 가장 큰 경우는 열차가 운행하는 선로에 침입한 장애물과의 충돌, 특히 선로로 투신하는 사람을 치는 사상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이다. 열차의 무게는 1량 기준으로 전동차 약 40t,[42] 기관차는 88t[43]에서 132t[44]에 이를 정도로 육중하며 운행속도 또한 굉장히 높아 충돌에너지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크다. 기관사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두 눈으로 사람이 자신의 운행중인 열차에 치어죽는 것을 생생히 보게 되어 그 충격은 이루말 할 수 없으며, 사람을 발견한 직후 기적[45]을 취명하면서, 비상제동을 체결하는것이 최선이고, 사람을 피해갈수는 없기에 그 순간 기관사가 느끼는 무력감과 사고의 충격음과 진동, 사고 장소, 심지어는 당시 날씨 등과 같은 사고 순간의 요소가 PTSD가 되어 기관사를 미칠듯이 끈질기게 괴롭힌다. 또한, 사고현장을 확인하러 가서 처참한 시신의 모습을 보고난 뒤에도 PTSD 증상이 심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다시는 열차 운전실에 오르지 못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같은 내용의 설문지로 작성 된 조사에서 철도기관사가 위험군 판정을 받은 경우는 소방관의 3배, 일반인의 33배의 유병률이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하단 영상 참고.


사고 겪은 기관사들 심리상담도 없이 다시 현장으로..
연합뉴스

최근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비교적 사상사고에 대한 기관사들의 부담이 조금은 적어졌으나, 아직도 지상구간이 많은 광역철도일반철도에서는 선로무단침입자나 극단적 선택자로 인해 끊임없이 위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5.11. 인터넷 방송[편집]


물론 각종 악플러가 존재하는 인터넷 방송인에게 없는것도 아니다. 예시가 대정령 뒷담화 사건이며 이것으로 인해 대정령은 고의로 군대에 들어가서 군자살을 시도할려고 한적 있었고 그 사건에 당한 머독은 뒷담화 사건이 있었던거 때문에 대정령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극대노까지 해가며 벙어리를 줄 정도로 심각한 모양. 또한 이게 심해지면 Etika의 사례처럼 지속적인 악플러들의 공격으로 우울증을 얻어 자살한 사례도 있을 정도.

스트리머 갤러리처럼 허위사실을 진실처럼 퍼뜨리거나 메일 등으로 훈수 혹은 비난을 퍼붓는 시청자들로 인해 고통받는 경우도 있다. 예시로 징버거는 과거 악성 메일들이 쏟아져 온 것을 처음 접했을때 한동안 자신의 시청자들이 뒤에서 자신을 저격할까 두려워 시청자들을 믿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이후 자신감 하락까지 이어져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실력마저 의심하기도 했다.[46]

결국 Etika의 사례처럼 한국에서도 잼미님이 자살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자세한건 잼미님 사망 사건에 참고.


5.12. 사회복지사, 간병인, 요양보호사[편집]


사회복지사들의 경우, 특히 장애인들을 담당하는 복지사들은 장애인들의 공개적인 자위행위, 성희롱, 성추행, 강간 등 성폭력이나 이유없는 폭행이나 자해, 괴성지르기 등 돌발행동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겨서 복지사 일을 더 이상 못하게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상술했듯이 장애인들도 성욕은 있으나, 특히 지체장애거나 발달장애일 경우 성욕을 제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보니 생겨나는 일이기도 하다.

간병인과 요양보호사들의 경우도 특히 치매환자를 담당할 경우, 치매환자의 폭행이나 성추행 등으로 인해 역시 트라우마가 생겨 간병인과 요양보호사 일을 더 이상 못하게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사회복지사들이나 간병인들 요양보호사들이 장애인이나 치매노인을 폭행하는 사례들중 알고보니 이 장애인들이나 치매노인들이 먼저 지속적으로 위해를 가했고, 사회복지사들이나 간병인들 요양보호사들이 상대가 장애인, 치매노인이란 이유로 참다참다 결국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서 폭행을 저지른 경우도 많다.


5.13. 택시 · 버스 · 트럭기사, 대리운전 등 운전관련 업종[편집]


택시기사, 버스기사, 트럭기사 등의 운전 관련 업종 종사자들은 높은 확률로 교통사고와 관련된 PTSD를 겪게 된다. 밤이든 낮이든 그 어떠한 시간, 장소, 날짜를 예측 할수 없는 도로위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일단 사고가 나면 온전히 사고에 그대로 노출된다.

고속도로에서 동물을 친 경우 즉 로드킬이라면 PTSD 발병확률이 좀 낮을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무시할 수 없다.[47] 하물며 눈앞에서 고의가 아닌 실수로 사람을 친 경우라면? 고속도로에서는 자동차는 그야말로 살인도구가 따로없으며 부딪힌 사람은 바로 앞에서 최소 생명이 위독한 경우 정도로 가며 그경우가 아니라면 온몸이 피철갑이 되며 즉사할것이고 사고를 낸 사람의 피해도 결코 만만치 않으며 자신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본인이 사고를 당하지 않더라도 교통사고로 동료를 잃는 상황을 목격하거나, 혹은 소식을 전해 듣고서도 PTSD가 생겨, 자신도 언젠가 죽을수도 있겠다는 불안한 마음에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은근히 많다.

또한 일부 투신 자살자들은 달리는 버스의 정면에 몸을 던지는 방법으로 자살하는 경우도 있는데, 자신이 운전하는 버스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사람이 나올 경우, 그 트라우마는 매우 크다. 상술한 철도 기관사들의 경우도 이런 투신 자살자들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 부분은 버스 기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버스의 경우, 승객이 창문 밖으로 팔을 내밀었다가 해당 승객이 끔찍한 사고를 당하는 일도 간혹 일어나다보니 자신이 운행하는 버스에 탄 승객이 버스 운행중 사고를 겪는것도 버스 기사들한텐 트라우마를 주기 좋다.

그 외에도 택시나 버스의 경우, 취객이나 정신질환자, 지적장애인, 그 외 진상 고객이, 다른 승객이나 기사를 상대로 갑자기 시비를 걸거나 직접 위해를 가하는 등 돌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보니 이로 인해 PTSD가 생기기도 한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 절차가 복잡해진데다, 지적장애인들의 경우도 장애인시설의 탈시설화로 인해 격리가 필요할만큼 일반적으론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한 지적장애인들도 격리가 안되고 있다보니 언제 어디서 어떤 돌발행동을 저지를지 모르는 정신질환자들이나 지적장애인들이 거리를 버젓이 활보하고 있고, 개중엔 버스를 타기도 하다보니 이 문제가 심각하다.


5.14. 교사 등 아동청소년을 상대하는 직업[편집]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주업무인 직업의 특성상 이에 따른 PTSD도 만만치 않다.

2010년대 들어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는 지자체가 많아지면서 학생 인권은 크게 향상되었지만 이에 반비례해 교권은 추락했다는 주장이 많다. 많은 학생들이 이 학생인권조례에 따른 체벌 금지를 악용하여 교사를 업신여기고 심지어 폭행까지 저지른다는 것이다. 급기야 2023년 양천구의 모 초등학교에서 6학년 남학생이 담임 여교사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자 피해 여교사는 PTSD 진단을 받아 다시는 교사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울먹였고 교사 2천여 명이 탄원서까지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에 내 자식만 제일이라는 일부 학부모들의 이기심과 치맛바람도 교사들을 정신적으로 힘들게 한다. 특히 2010~20년대의 학부모 세대들은 학창시절 학교에서 교사로부터 가혹한 체벌을 당했거나 이를 목격한 PTSD가 남아있기 때문에[48] 내 자녀만큼은 건강하고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하게 해 주고 싶은 욕망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학교생활 중 학생 누군가가 다친다면 해당 학생의 담임교사는 학부모의 민원이 제기될 것을 벌써부터 두려워하기도 한다. 또한 학생 누군가가 다치는 순간을 목격한 교사는 자신이 그 아이를 잘 보살피지 못해 아이가 다쳤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특히 아동 학대로 신고당한 교사는 사안의 경중이나 유무죄 여부에 관계 없이 직위해제되어 아이들 앞에 설 수 없게 된다. 그 피해는 해당 교사뿐만 아니라 그 교사를 잘 따라 온 다른 아이들에게로 돌아간다. 신체적 학대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에게 말로 훈계한 것조차도 정서적 학대라고 주장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많기 때문에 교사는 평생직업을 잃을 것과 교사로서의 위신이 실추될 것이 두려워 소신껏 학생들을 지도할 수 없게 된다.

성범죄 누명을 쓰고 신고를 당한 교사들, 특히 남교사들의 PTSD도 만만치 않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수직적 관계이기 때문에 교육청과 수사기관은 다른 성범죄보다 여학생들의 성범죄 피해 주장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고, 이에 지목된 남교사는 그 여학생의 주장만으로 교육청과 수사기관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된다. 설령 조사 결과 무혐의가 나왔다고 해도 교사는 성범죄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쓸지 모른다는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되며, 이것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가 상서중학교 성추행 의혹 교사 자살 사건이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많은 남성들이 교사라는 직업을 기피하게 되고, 자연히 교단은 여초 현상이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5.15. 연예인, 운동선수 등 공인들[편집]


상술한 인터넷 방송인들과 마찬가지로 악플로 인한 트라우마가 크며, 악플을 못견디고 자살하는 사례도 많다.


5.16. 수리기사, 정비기사, 전기기사 등 일부 3D 업종[편집]




5.17. 비행기, 헬기 등 항공기 파일럿[편집]


이들 또한 항공기 조종중 직접 사고를 겪거나 사고를 목격하게 되면서 트라우마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여객기 조종사의 경우, 까닥 한번 잘못하면 본인도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수십~수백 명 인원이 같이 죽어나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책임지는 만큼 심적 부담이 작지 않다. 헬리콥터와 같은 회전익기의 경우에도 고정익기보다 사고가 잦은만큼 조종사의 심적 부담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신체 건강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담배는 가까이하면 절대 안되고, 술도 피해야 한다. 비행기 탑승 전 최소 12시간, 권장 24시간 이내로는 음주하면 절대 안 되기 때문에 오직 맨정신으로만 그 각종 부담감을 버텨야 한다. 현대인들중 평소 술이나 담배 덕분에 직장생활을 버티는 사람들도 많은걸 생각하면 어찌보면 남들 다하는 힐링마저 허용이 안되는 셈이다.[* 물론 정상인에게 과도하지 않은 음주는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이지만, 신경증 및 정신증이 있는 사람은 음주를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 관리에 좋다.


5.18. 항해사, 선원, 어부 등 선박 관련 업종[편집]


역시 선박사고나 해상사고를 겪거나 목격하면서 트라우마가 생기곤 한다.

특히 배는 어마어마한 중량체로 이를 작동하는데 필요한 요소만 해도 밧줄이나 로프 등은 물론 유압, 초고압 고전류 전기, 고압증기, 암모니아등의 독성 냉매, 그리고 여러 위험한 탄화수소등에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거대한 산업재해가 종류별로 다 모여서 망망대해 위에 뱃사람들을 가둬놓은채로 떠있다고 보면 된다.

특히 을 내릴때 사용하는 로프나 선박을 선착장에 정박시킬때 쓰는 홋줄은 상상도 못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장력이 걸려있기 때문에 끊어지면 음속도 돌파할 정도로 순식간에 채찍처럼 사람들을 여럿 내려쳐서 사람의 상하체를 두동강내거나, 종아리에 맞아서 다리가 잘려나갔는데도 운동량의 전달을 못버틴 인체가 어마어마한 관성으로 바다나 선체에 날려져서 터져버리거나, 혹은 그대로 대여섯명의 두개골을 터트리는등의 엄청난 위력을 낸다. 당연히 이런 끔찍한 광경을 목도하는 이들은 PTSD와 직업적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매체에서는 홋줄에 맞더라도 기껏해야 실신하는 정도지만 실제로는 신체절단이 일어나는데, 이는 마치 매체에서는 소총에 맞아도 관통상으로 끝나거나 총알이 박히는 정도지만 실제로는 맞은 부위가 날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홋줄이 채찍이 되어 주변을 내리치게되면 범위내에 차량이 있을 경우 차량 파손도 가능하다.

밧줄의 경로상에 있는 경우 신체부위가 끼어서 분쇄골절도 잦고, 가스에 질식하거나 산업용 칠러가 문제가 생겨 암모니아 냉매가 터져나와서 사람이 질식하거나 녹아서 죽는 등의 위험도 대단하다.

세월호 사고 직후 밝혀진 바에 의하면 사건에 투입되었던 해경들 중에도 PTSD 증세를 겪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6. 그 외[편집]


트라우마는 거대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마음의 상처가 없는 사람이 드문 것처럼, 누구에게나 크고작은 트라우마는 존재하기에 다양한 일로 인해 초래될 수 있으며, 사람마다 성격이나 가치관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소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를 안기는 중대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입시, 고시, 기타시험 등에 계속되는 실패나 후술할 실연, 자취생활 중 외로움 등 일반적이고 누구나 겪을 법한 사건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도 있고, 또 누군가는 모기를 죽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살에 이를 정도로 심한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

다만 PTSD는 이러한 트라우마 중에서도 1) 실제적인 죽음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들, 혹은 심한 부상, 자신과 다른 사람의 신체적 온전성에 대한 위협을 경험, 목격하거나 직접 직면하는 사고를 겪은 후 발생하는 심적외상인 경우, 2) 외상적 상황에 대해 개인의 반응이 강한 두려움, 무력감, 혹은 공포를 포함하는 경우, 3)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가리키기에, 일상생활에서 가볍게 생기는 트라우마 등은 배제하고 탈북경험처럼 생명을 위협받았거나 누구나 이해가능한 원인을 기초로 한 심적외상 케이스를 아래에 적는다.

6.1. 실연[편집]


연인, 혹은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큰 실패감을 경험한 경우.

실연의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했거나 자해를 하는 것을 우울증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실연 후 다른 사람을 만나도 지속적으로 우울증과 옛 연인에 대한 꿈을 꾸고 현재 연인을 옛 연인의 대체로 인식하며 옛 연인에게 했던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완벽함을 보이려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49] 물론 위의 상황은 평범한 헤어짐이 아닌 오랜 기간 옛 연인에 대한 심각한 상처가 남은 경우다.[50]

배우자와의 사별, 이혼, 반려동물을 잃는 펫로스의 경우도 PTSD의 원인이 될 수 있다.[51]


6.2. 탈북자[편집]


탈북자들 중 탈북 과정에서 죽을 뻔 했거나 함께 탈북하던 사람이 눈 앞에서 죽는 것을 목격한 경우, 탈북해서 한국이나 제3국가에서 살 때도 잠만 자면 탈북할 당시의 기억이 악몽으로 계속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특히 해방 직후의 초창기 탈북자들의 경우 제3국을 가거나 혹은 제3국을 거쳐서 한국이나 제4국으로 가는것이 아니라 바로 물길을 건너 한국으로 넘어오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이 경우 물길을 건너다 경비대에 발각되어 총격을 당해 죽는 일이 많았고, 함께 탈북하던 사람이 눈앞에서 총격으로 사망하는 것을 보곤 했기에 탈북할 당시의 상황이 꿈에 나오는 악몽을 매일 꾸는 게 더욱 심하다고 한다.

탈북자 외에도 베트남 보트 피플이나 혹은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어 있었던 시절 동독을 탈출해 서독이나 그 외 비공산권 국가로 망명했던 사람들 등 공산권 국가에서 비공산권 국가로 탈출했던 사람들 중에도 탈출 과정에서 동행자가 죽는 걸 보게 되어 트라우마가 생긴 사례들이 많이 있다.


6.3. 범유행전염병[편집]


코로나19, 신종플루 같이 범유행전염병가 일어날 때에도 종종 일어난다. 특히 코로나19는 감염 범위가 광범위하고, 감염 속도도 빠르다 보니 다른 질병보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트라우마가 크다. 특히 이런 건 확진판정 받았다가 완치된 사람들에게도 관찰된다. 그 밖에는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봉쇄조치를 시행한 국가들의 경우 봉쇄의 장기화로 인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폭주하는 등 정신질환자들이 급증하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로인해 특히 유럽 국가들의 경우 봉쇄를 조기해제하고 있을 정도이다. 경제문제보다 더 큰 문제로 인해 봉쇄를 조기해제 하는 것인데 자국민들중 정신질환자가 급증하는 문제의 경우 그들중 상당수는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PTSD가 계속 남게되면 정상적인 일상생활조차 불가능 하기에 그러한 PTSD 환자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또한 의료진의 PTSD 치료도 필요하다.


6.4. 사이비 종교[편집]


사이비 종교에 세뇌당하고 세뇌가 풀려 탈퇴 이후에도 후유증으로 남기도 한다. 특히 부모님이 신경을 쓰게 만들거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 이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사이비 종교 신자 시절에 특히 여성들중 섹스 포교를 했던 경험이 있을 경우, 그로 인한 후유증이 생기기도 한다. 섹스 포교 특성상 여러 남자들한테 몸을 허락한 상황인데다, 포교 이전에도 해당 종교내 수뇌부 내지는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자로부터 포교 교육 명목으로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이나 남성 동료를 상대로 섹스를 한 경험이 있기 마련이라 후유증이 생길만도 하다. 매춘부가 되어 돈 받고 몸을 판 경우도 아니고 사이비 종교에 세뇌되어 포교 및 포교 교육이랍시고 몸을 허락한 상황이니 당연한 결과.


6.5. [편집]


먹고 살기 위해서 또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게 돈이다 보니 돈을 많이 빼앗기거나 자연 재해로 인해 재산을 잃는 경험을 겪으면 이런 충격으로 인해 PTSD 증상이 극심해져서 신경과민 증세를 보이거나 정신 이상이 올 수도 있다.

요즘에 보이스피싱, 스미싱, 몸캠피싱 등 금융 사기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 이 사건의 트라우마로 남게되어 보이스피싱 예방법을 배우거나 배우려는 피해자가 적지 않다. 안 배우면 큰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학창시절에 불량배강자 또는 선배한테 폭행이나 협박을 당해 돈 빼앗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학교폭력 피해자도 있다. 돈 빌리다가 약속 저버리면서 돈 안 갚는 사기꾼도 존재한다. 상대방을 믿고 큰 돈을 빌려주었다가 상대방이 약속을 저버려서 이것의 트라우마로 남는 피해자도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돈 빌려달라는 사람한테 돈 없다 또는 돈 빌려줄 수 없다고 과민한 반응을 보이거나, 전화/메시지 또는 SNS(카카오톡, 페이스북 메신저, 인스타그램 DM) 등으로 돈 빌려달라는 상대방을 가차없이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

금전적 큰 피해를 입다가 운 좋게 인생 끝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충격으로 인해 오죽하면 세월이 흘러도 "나는 인생 끝났다" 또는 "인생 끝날 거 같다"는 망상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다. 돈은 무엇보다 목숨이나 다름 없으니까. 계속 망상에 사로잡히다가 잘못되면 정신적 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이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몰려 범죄에 손을 대는 경우도 존재하니 주의하자.

6.6. 음식 관련[편집]


특정음식을 트라우마 때문에 먹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대표적인 경우로 닭고기달걀을 못먹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경우 특히 어렸을때 이런 트라우마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어른들이 을 잡는 것을 목격하곤 닭고기를 먹지 못하게 된 경우, 알에서 병아리메추리가 부화하는 것을 본 이후 달걀을 먹지 못하게 된 경우가 적잖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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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JR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2] 다만 말 그대로 가능성만 높을 뿐이며, 사이코패스라도 PTSD를 안 겪지는 않고 반대로 일반인도 PTSD를 무조건 겪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개인차의 영역이라는 뜻.[3] 사상자 다수에 동료들까지 희생된 참혹한 화재 현장을 진압한 소방관에게, 살아남은 비결이 뭐냐며 영웅담을 들려달라 하는 꼴이다.[4]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2012년 3월 11일에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주 판지와이 지구의 미군 기지에 근무하던 39세의 하사가 근처 현지인 마을에서 민간인 16명을 살해하고 돌아와 자수한 사건이 발생했다. 미 국방부 대변인의 발표에 따르면 이 병사는 2011년 12월 아프간에 파병되어 전장에서 4번째로 임무를 수행중이었다 한다. 이 사건에 대해 아내와 두 아이를 둔 평범한 가장이 잔혹한 살인사건을 저지른 배경 역시 PTSD일 것이 거의 자명해보인다고 익명의 미군 군의관이 밝혔다. 단, 양형에서 고려는 되지 않았다. 칸다하르 학살 사건 문서로.[5] 소설 하얀전쟁이 이러한 것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6] 또한 한국 전쟁 당시 한국을 도와준 미국에 대한 의리론까지 등장하여 미국과는 달리 파병에 대한 국민 여론도 나쁘지 않았다.[7] 여담이지만 한국전쟁은 전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세대에겐 집단 트라우마를 남겼는데 극단적인 레드 컴플렉스와 자신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빨갱이라 몰아 붙이는 사회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8] 안 그래도 공군 자체부터 놀고먹는 부대라는 이미지가 강한 미군에서 무인기 파일럿들은 “Air Force 중에서도 ‘Ch’air force다(의자에 앉아만 있는다)”라며 비난받고, 무인기 파일럿들이 별을 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꽤 있다. 무인기 파일럿들이 아무리 PTSD를 호소해도 다른 장병들이 땡보직 주제에 말이 많다고 무시하는 이유.[9] 무인기 파일럿들의 고통과 번민은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 '드론전쟁: 굿킬'에서 잘 나타난다.[10] 자기들은 빨갱이 때려잡았다며 정당화를 넘어 아주 자랑스럽게 떵떵거리고 다니는데, 이 역시 PTSD로 인하여 발생하는 행동이라는 해석도 있다. PTSD를 오래 앓다보면,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어떻게든 해당 사건에 대해 본인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종교, 선행,봉사등으로 위안을 얻으려는 수준을 넘어 철학, 심리학, 선전물 등을 찾아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당위성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의미부여나 합리화를 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대부분 자기 자신은 속일 수가 없고, 어딜 뒤져도 답이 상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기에 억지로 답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여전히 가해자, 피해자 틀에 갇혀 고통 속을 헤멘다. 그래서 계엄군 출신자들 중에서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대는 뻔뻔한 부류의 전직 계엄군들이 누가 봐도 "빨갱이 무장간첩"으로 보이지도 않는 피해자들(여고생, 노인, 임산부, 초등학생)을 살해해 놓고 빨갱이를 잡은 거라고 우기는, 보는 사람 입장에선 어이가 없는 짓거리들을 해대는 것. 상식의 틀 안에서 답이 나오는 거였으면 진작에 PTSD에서 탈출했다.[11] "나도 피해자다. 군인은 피해자 없냐. 죽지만 않았을 뿐이다. 군인이 장교로 진급 못하면 피해자지. (계급장) 하나만 더 달았어도 내가 이렇게 고생 안한다. 그때 연금만 탔어도" "내가 무슨 사람을 죽이라고 하나. 헬기 요청을 했는데 헬기가 끝났다. 우린 철수해야 한다. 헬기도 없고 철수하는데 못하니까 '난 못하니까 데려가라' 그런거다. 주머니에서 실탄이 나왔다. 그건 분명히 폭도다. 우리가 북한하고 전쟁 붙었다. 그럼 총으로 쏴야 하냐, 맞아 죽어야 하는거냐. 선의의 피해자가 있을 수 있지만 할 수 없다. 이해해야 한다. 38년 됐으면 끝났지 않냐. 6.25도 다 캐고 다니는거냐. 나도 피해자다" (민간인 처형을 지시한 장교 출신자의 망언) "아무것도 없는데 사살 당했다? 선의의 피해자다. 우리는 반은 선의의 피해자다" (당시 11공수 간부 출신자의 망언)[12] 한때 정신질환 전반을 의미했던 '히스테리'라는 단어는 '자궁'이 어원이다.[13] 일반적인 차량과의 충돌보다 더욱 심한 게, 열차는 보통의 차량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고 무겁다보니 비슷한 속도로 달린다 해도 그 운동에너지는 차량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크기 때문에 열차에 치인 사람의 몸은 말 그대로 산산히 찢겨나간다. 쉽게 말하자면 수박을 바닥에 던져 산산조각이 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된다.[14] 시사프로에서 이들의 증언을 들으면 왜 하필이면 자신이었냐고 울부짖는다. 그리고 불안해서 운전을 잘 하지 못한다고.[15] 당시 고층에서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열을 이기지 못하고 밑으로 뛰어내렸는데, 거리에 있던 시민들은 이들이 투신해 시신이 처참하게 훼손되논 모습을 지켜봐야했다.[16] 우주선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 우주선 전체가 폭발한 사건.[17] 강간이 성폭행만을 가리키는 반면, 성폭력은 강간, 강제추행 등 모든 유형의 성범죄를 나타낸다.[18] 아이러니한 것은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의 교육이나 지식이 되려 트라우마를 촉발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19] 흔히 통계상으로 여성의 피해 사례가 많은 것을 근거로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으나 이는 엄밀히 말해 비논리적인 말이다. 여성 피해자가 많이 집계되었다는 말은 실제 범죄가 일어났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해를 인지하고 신고한 빈도가 높아서 나온 결과이기도 하다. 즉, 남성이 기분이 나빠도 자신의 피해를 인지하지 못해서 신고를 할 생각 자체도 하지 못해 남성 성범죄 피해자가 실제 보다 적게 집계된 자료는 남성은 여성 보다 가해 확률이 높다는 말의 큰 모순이다.[20] 미러링은 피해자가 가해자한테 해야 공감을 얻지 자기가 설령 한 집단의 구성원이 다른 집단의 구성원에게 범죄를 저질렀다고 가정해도, 특정 집단한테 피해를 입었다고 그 집단의 엉뚱한 사람한테 범죄를 저지른 것은 서로 피해, 가해 둘 다 가한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인 가해, 피해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실제로 성범죄 피해를 당해 미러링한 경우는 동기라도 납득 가능하지만 피해자도 아닌데 피해자와 같은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로 저지른 미러링은 사실상 자기가 단순히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범죄를 저지른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21] 해당 피해를 감내일부 피해자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지만, 대부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처럼 2차 가해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중에는 자살한 사람도 있다. #[22] 물론 성소수자가 잠재적 성범죄자라는 뜻은 아니며, 이들도 언제든 성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이성애자에게 성적으로 수치를 당할 가능성도 있다.[23] 드물긴 하지만 아베 사다와 같이 얼마 든지 있는 경우로 언급된 자존감의 훼손 때문이다. 자신은 이런 일을 당한 더러운 몸이니 앞으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빠지는 것. 아베 사다가 "내가 더이상 처녀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이런 사실을 숨기고 시집가기도 싫고, 그렇다고 다 털어놓고 시집가기는 더욱 싫다. 더는 아무데도 시집 못 가는 몸이라 생각하니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다."고 한 게 그러하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성적으로 폐쇄적인 사회에서 자주 보이는 양상이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더럽혔다거나, 시집은 다 갔다는 식의 시선을 받다보니 자포자기하게 되는 것. 대한민국만 해도 옛날엔 성폭행 피해자가 윤락녀가 되었다느니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꽤 비일비재했다. 다른 나라라고 예외가 아니다. "여성 포르노 배우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 부모나 친척, 친구들로부터 '진짜' 강간을 당한 것이 포르노 배우가 된 진정한 계기라고 주장했다. 가장 믿었던 남성에게 강간당하고도 이를 폭로하여 사법 처리할 용기가 없었던 그들은 결국 극심한 자폐층에 빠진 채 자신을 '버린 몸'으로, 또 남성의 성적인 폭력을 '불가피한 현실'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정신·신경 질환으로 말미암아 정상적으로 배우지도 못하고 직장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그들은 결과적으로 포르노 산업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자유결정권'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경험한 남성들의 성폭력이 그들에게 선택 아닌 선택을 강요한 것이다."(『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 한겨레출판, 2002, pp. 167~168)[24] 대부분의 경우에는 20년 정도의 형량으로 한국이나 유럽과 큰 차이가 없다. 사법거래와 피해자를 압박하는 변호사의 변론으로 결국 낮은 형량을 받는 경우도 많다. 이를 비판하는 작품으로는 성범죄 전담반이랑 모범시민이 있다. 모범 시민 말미에 살인자와 성범죄가 절반이 낮은 형량이나 그냥 나온다고 말하는데 법의 헛점과 인식을 말한다.[25] 아동학대를 받은 아들이 부모를 살해한 사건. 살해당한 이은석의 부모 역시 자신들의 부모에게 학대를 당했다.[26] 어른의 사정이라는 단어를 쓴 것에 대해 학교폭력을 예시로 들자면, 1) 가해자 학생이 공부나 힘 둘 중 하나, 혹은 둘 모두가 뛰어나거나 어느 쪽도 아니더라도 학급내에서 높은 지위를 갖고 있어 교사가 본인 편리를 위해 가해자의 부당행위를 눈감아주는 경우(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2) 가해자 학생 부모가 돈이나 지위 등의 요소로 학교 내 재단이나 학부모들의 모임에서 큰 위치를 가진 경우 3) 교사가 담임으로서의 활동에 별 관심이 없거나 자신의 학급에서 일어난 폭력과 부조리로 인해 책임자인 자신에게 돌아갈 불이익을 두려워하는 경우 등이 있다. 당연히 다수의 예시가 겹치는 경우도 있다.[27] "네가 당할 짓을 해서 당한거야.", "별 것도 아닌 거에 왜 혼자 과민반응이니?" 등[28] 이와 관련한 일화로 종교경찰이 술 마시는 사람을 잡았더니만 사형 집행인이었고 그 사형 집행인이 "댁이 나 대신에 사형 집행을 할 수 있냐"고 묻자 아무 말 못하고 풀어줬다고 한다.[29] 또다른 이유로는 당시 참수는 귀족들만의 형벌이었는데 귀족과 평민 모두의 평등한 형 집행을 위하여서 이기도 하다.[30] 대부분 3인 1조로 집행한다. 1명은 실탄, 1명은 공포탄, 1명은 고무탄.[31] 고무탄을 사용하지 않은 사례로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총살형이 있다. 이때는 루마니아 국민들의 차우셰스쿠에 대한 원망이 사람을 죽인다는 거부감을 압도하여, 군인들 중에 자원자를 뽑아 실탄으로 두당 한 탄창씩 연사했다. 이마저도 지원자가 워낙 많아 선발하는 과정을 거칠 정도.[32] 타격한 것이 적이 맞는지, 적이라면 정말로 잡고자 한 그 목표가 맞는지 오랫동안 지켜봐야 하며, 무기를 발사했다면 이게 제대로 명중했는지까지 계속 지켜봐야 하며, 적외선이나 레이저로 유도하는 경우 계속 목표물에 지시용 장비를 비춰줘야 한다. 그리고 이 지시용 장비는 당연히 사람이 봐야 하므로 카메라도 같이 붙어 있다.[33] 이는 과거 저격수들이 겪었던 고충과도 유사한데, 그나마 현대에 들어서면서 저격수들의 고충과 그들의 중요성이 적극적으로 알려지면서 저격수들에 대한 아군의 멸시와 혐오는 크게 줄어들었지만, 무인기 조종사의 경우는 아직 본격적으로 활약한지 얼마 안된 신생직종인데다가, 하다못해 전장에 직접 참여라도 하는 저격수와는 다르게 아예 후방에서 편하게 무인기나 조종하면서 꿀을 빤다는 인식으로 인해 멸시를 받는다는 차이점이 있다.[34] 이게 얼마나 치명적이냐면, 적어도 명분과 신념이 있으면 PTSD에 걸릴 확률이 덜 하다.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일본 제국 등의 파렴치한 전범국들과 싸우던 장병들, 6.25 전쟁 당시 국가를 침략했던 공산당에 맞서던 참전용사들이 향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비교적 적은 이유이다. 본인들이 하는 일에 정의가 있다는 명백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국가를 지킨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알고보니 "우리가 정치인들의 선거 놀음과 돈을 이유로 아무 트집이나 잡아서 쳐들어온 침략군이었다"거나, "내가 죽여온 사람들이 그냥 무고한 민간인이었다."라는걸 향 후 알게되었다고 치자. 그 당사자는 어마어마한 후유증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근데 특수부대원들은 이걸 임무를 수행할 당시부터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더욱 상위 부대(미국으로 치자면 티어 1 체계 특수부대)로 갈수록 극비작전을 수행하며 이런 더러운 일들을 본인들이 직접 계획하고 실행하게 되기 때문에, 대원들의 상당수는 인류 평화와 존엄성이니 공공의 도덕이니 하는 인류애 가득한 장밋빛 시각을 처음부터 가져다버리는 인간들도 많다. 괜히 정보기관 같은 곳의 요구 덕목 중 하나가 "냉정하게 국제 정세를 바라보는 능력"인게 아니다. 말 그대로 세계가 돌아가는 이면에는 온갖 더러운 일들이 판을 치는 정글이기 때문.[35] 성경에 직접 키운 짐승을 도살하지 말라는 내용은 없으며, 오히려 직접 키운 짐승을 도살하는 내용들이 상당히 많을 뿐만 아니라, 속죄를 위한 제사에서는 자신이 키운 가축을 스스로 도살하고, 성경에 명시된 부위대로 각을 떠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36] 실제로 수의대에서 연구를 하다보면 의대 팀과 조인하여 특정 질환 모델을 유발시켜 전임상 실험을 진행하는 경우가 상당히 잦다.[37] 정부에선 여전히 별 신경을 안 쓰고 있다. 수많은 멸종위기 교수들이 몇십 년 뒤면 의사가 없어 수술받으러 해외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을 하지만...[38] 장의사를 소재로 한 웹툰도 있다.[39] 학생이 학교 가는 꿈, 직장인이 회사에서 일하는 일상이 재현되는 꿈과 같다. 문제는 그 일상이 즐겁지 않다는 사실.[40] 모 장의사의 경우,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 희생자들을 염습하고 나서 한동안 일을 못 했다고 한다.[41] 철도 체계의 경우 ATC, ATS와 같은 철도신호체계를 사용함으로서 철도관련법과 규정에 따른 정확한 운전이 요구되며, 위법운전에 대한 처벌과 불이익이 크다. 또한, 엄청난 인명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크게 요구된다. 열차가 지연되거나, 객실 내 승객 넘어짐이나, 출입문 끼임등 민원이 발생한다면 그에 따른 불이익과 징계로 까지 이어질 정도이다.[42] 코레일 311000호대 전동차[43] 8200호대 전기기관차[44] 8500호대 전기기관차, 특대형디젤기관차[45] 철도관련법에서는 경적이 아닌 기적으로 표기한다.[46] 2023년에 들어선 다행히 여러 커버곡 활동으로 자신감을 되찾은 상태이다.[47] 시속 100km로 쌩쌩달리는 도로에서 어느인간이 10~20m 코앞에 있는 동물을 인지하고 최소 1t에서 최대 30t이라는 무게를 가지면서 시속 80~100km로 달리는 쇳덩어리를 멈출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만으로 자신의 손으로 생명을 해쳤다는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으며, 충돌 자체가 강렬한 경험으로 남을 수 있다.[48] 이들 중에서도 교직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49] 상대방이 이를 하나의 애정 표현이자 사랑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받아들인다면 큰 문제가 안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은 되려 이를 부담으로 느끼고 거리를 두다가 연락을 점점 뜸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밀어낸다. 연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 상대방이 실연으로 인한 큰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챈다. 이에 동정심을 느껴서 마지못해 연인이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를 상당한 부담으로 느끼고 밀어낸다. 당사자 입장에서 더욱 심각한 트라우마가 남는 건 덤.[50] 불면증과 우울증 감정 조절이 스스로 힘든 경우엔 정신과에 가는 것이 좋다. 보통 두 달을 기준으로 잡으며, 2~30대에는 특히 실연으로 인해 상담에 찾아오는 사람이 아주 많다.[51] 배우자는 아니지만, 조선의 순조아들과 자녀들이 일찍 죽은 후, 왕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고 한다. (순조실록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