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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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 출신 정치인. 대한민국의 제21대 국회의원 으로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며 지역구는 대전광역시 대덕구이다.
2. 생애[편집]
1964년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송정리에서 태어났다. 대전대신고등학교, 충남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충남대학교 재학 중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부의장 등을 지냈다.
3. 정계 활동[편집]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때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정책보좌역으로 활동하였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임명되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덕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2위로 낙선한다. 같은 해인 2006년 충남대학교병원 상임감사에 임명되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에서 다시 대덕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당시 한나라당 정용기 대덕구청장에게 밀려 3위로 낙선한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대전광역시 대덕구청장 선거에 세번째 출마하였으나 이번에는 새누리당 박수범 후보에 밀려 낙선하며 대덕구청장 선거에서 3전 전패를 당한다. 약 한 달 뒤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이번에는 국회의원 선거로 또 대전광역시 대덕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정용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또 출마하였으나 또다시 새누리당 정용기 후보에 또 밀려 낙선하였다. 이로써 정용기에게 4번, 박수범에게 1번으로 무려 12년동안, 5번이나 대덕구민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낙선하였다. 역대 선거 중 가장 아쉬웠던 건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인데 겨우 383표차.
이처럼 대덕의 낙선왕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는데(...) 대덕구가 대전에서 가장 보수화된 지역구이긴 하지만 경상도나 서울 강남권 지역구도 아니고 계속된 낙선에는 본인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열심히 지역조직을 다져오긴 했지만 지역 내 경쟁자와 끝내 화합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당장 첫 선거인 2006년 지방선거만 해도 현직 구청장이었던 김창수가 공천불복하고 탈당하는 바람에 패했는데 둘의 표를 합쳤으면 약 3%p차로 정용기에 이겼다. 결국 이 둘은 정계개편 와중에 서로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다 2014년 재보궐선거 공천 때 또 충돌했고, 결국 다시 헤어졌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둘이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로 나와서 단일화 논의까지 하다가 파토내어 의석을 정용기에게 내주고 말았다.
권선택 전 대전광역시장[2] 이 2016년 정무특보에 임명하고 링크,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제도개선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 임명되었다. 링크
2018년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하고 대전광역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링크 또한 4월 13일에 현역 4선 의원 이상민을 제치고 경선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파란을 연출했다. 지역구가 유성구 기반이라 표가 갈리는 이상민, 허태정과 달리 대덕구 쪽이라서 대덕구의 온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문재인 정부 행정관으로 일한 경력도 도움이 됐다는 평. 그리고 이상민이 자유선진당 입당 경력 때문에 민주당 지지층들에게는 큰 호감을 사지 못하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4월 17일에 열린 결선투표에서 허태정 후보에게 패배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허태정 대전시장이 당선된 후 정무부시장으로 부임하였다.
3.1. 21대 국회[편집]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전광역시 대덕구 선거구의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여 대덕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고, 출구조사도 꺾고 현역 미래통합당 정용기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무려 6수만에 정치 인생 처음으로 당선이 되었다. 그 중에 정용기 후보랑 붙은 것만 5번인데, 다섯번째 대결만에 승리한 것이다. 물론 이는 정용기의 엄청난 망언들도 한 몫 하였다.
대전혁신도시 전도사와 청와대 행정관, 정무부지사로서 혁신도시 유치를 위해 노력했고, 2020년 연축동 지구에 혁신도시 유치를 성공시킴으로써 1호 공약을 이행했다. 홍문표, 장철민 의원과 함께 큰 정치적 이득을 보게 되었다.
4. 비판 및 논란[편집]
4.1. 현존 건조물 방화 미수, 집시법 위반, 근로기준법 위반 전과[편집]
1989년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을 점거, 현존 건조물 방화 미수, 집시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돼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2001년에는 사업을 하다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벌금 150만원이 확정됐다.#
4.2. "북한에서 쓰레기가 왔어!" 막말 발언 논란[편집]
2023년 9월 6일,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민주당의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 미비를 비판하며 "여러분, 이런 것이 바로 공산 전체주의에 맹종하는 것"이라고 발언하자, 태영호 의원에게 "북한에서 쓰레기가 왔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자리에서 태영호를 비난한 민주당 의원이 여러 명이었으나, 태영호는 '쓰레기' 발언을 한 자로 박영순을 지목하고는 그를 국회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영순 의원은 김구 선생, 홍범도 장군 비하, JMS 민주당 등 저속한 발언을 일삼던 태영호 의원이 먼저 이런 모욕에 대해 사과한다면 자신 또한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태영호 의원은 자신의 보좌진이 'JMS민주당'이라고 SNS에 게시한 내용을 발견하고 즉각 삭제 지시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SNS를 통하여 직접 사과글을 올린 바 있으나#, 박영순 의원은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사과한 바가 없다.#
4.3.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 연루 의혹[편집]
2023년 8월 4일 조선일보가 지난 4일 윤관석·이성만 민주당 의원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렸을 당시 검찰이 돈 봉투를 수수한 정황이 포착된 같은 당 의원 19명의 명단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현역 의원을 대상으로 한 돈 봉투 수수 행위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먼저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4월 28일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송영길 후보 지지 국회의원 모임에 참석한 의원 10명에게 300만 원짜리 봉투를 1개씩 전달했다.
문제는 이 모임에 박영순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도되었는데, 박영순 의원 측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박 의원 측 관계자는 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수수 사실이 없다고 분명히 해명했음에도 기사화해 의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엄중한 법적 대응을 포함해 모든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5. 여담[편집]
1995년 정계 입문 이후 25년만인 2020년에 첫 당선됐다. 물론 1985년부터 출마해 12전 12패를 하고 있는 백철이 끝판왕이긴 하나, 그 쪽은 공약이 없어서 그렇게된 거고, 박영순은 대덕구에서만 구청장 3번 낙선, 국회의원 포함하면 5번이나 떨어졌다. 오랫동안 선거에 도전했다 떨어진 것 때문에 경쟁력이 없다고 간주돼 공천에서 탈락할 뻔 했던 적도 있고, 2020년에도 단수공천이였다가 경선 지역으로 되어버려 공천이고 뭐고 못 나올 뻔 했다(...) 때문에 이 때는 유세팀 이름까지 죽기살기로 정하고 더욱 악착같이 임했다고 하며, 휠체어 사용자인 이상민을 제외한 지역 선배 의원들이 모두 와서 지원 유세를 해 주기도 했다.# 4년 전에는 공천에서 탈락한 정청래의 지원을 받았다.#
티는 잘 안나는데 덩치가 엄청나게 크다. 더불어민주당의 유튜브 채널 씀에 출연해 키가 180cm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리가 짧아 앉은 키가 커 뒷사람의 시선을 자꾸 가리게 돼 영화관에 잘 못 간다고 한다(...) 그리고 목소리도 울림통이 큰 데다가 굉장한 저음이다. 그래서인지 본인이 노래를 잘 못한다고 생각해서 술을 마시지 않고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대전선 철도 위에서 허가없이 사진을 찍었다고 장철민, 황운하와 함께 과태료를 25만 원씩 문 적이 있다(...)#
대전에서는 상당한 유명세를 가지고 있다. 2020년 1월 자서전 <박영순의 길>을 냈다. 정계 인사들을 포함해 무려 1,500여 명이 왔다고(...)[3] 정치인들의 축사만 1시간 걸렸다고 한다.
4.7 재보궐 선거의 패배 원인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민주당 내의 개혁파 초선의원 중 한 명이다. 초선 5인(오영환·이소영·전용기·장경태·장철민) 수준의 인지도는 없지만, 연판장에는 꾸준히 이름이 올라오고 있다. 특히 21. 6. 4 청와대를 방문한 민주당 초선의원 68명 중에 포함되어 이 같은 인식이 더 강해졌다. 그리고 옆 동네 황운하를 따라 처럼회에도 합류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결선으로 가야 한다며 이낙연 곁에 선 국회의원들 중 한 명이다. (자세한 내용은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 7.2 사퇴 후보 무효표 처리 논란 참고) 친문 지지자들에게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들이받았던 초선족 중 한 명으로 인식되고 있었는데[4] 이재명이 아닌 이낙연을 밀었기 때문. 특히 이재명이 수락 연설을 한 이후 대다수의 민주당 의원이 이재명에게 줄을 대고, 송영길·정세균·김두관 ·우원식·이광재·안민석 등 고참 의원들은 경선 승복하라고 전방위적으로 이낙연을 압박, 이낙연 곁에 남은 사람은 고작 19명에 불과하기에 더욱 눈에 띈다.[5]
하지만 이후에는 결과에 승복하고 이재명을 지지하며 선거 유세에도 참여하며 유권자들에게 이재명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6]
페이스북 SNS 계정을 3개나 돌려쓰고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자주 쓰던 계정을 2022년 2월자로 폭파시키고 남은 두 계정 중 하나로 대체했다.
6. 선거 이력[편집]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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