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덤프버전 :

분류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동명이인에 대한 내용은 박주영(동명이인) 문서
박주영(동명이인)번 문단을
박주영(동명이인)#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조수혁 · 3 장시영 · 4 이상혁 · 5 임종은 · 6 박용우

VC
· 7 윤일록 · 8 보야니치 · 9 마틴 아담
10 바코 · 11 엄원상 · 13 이명재

VC
· 15 정승현

C
· 16 김성준 · 17 루빅손 · 18 주민규
19 김영권 · 21 조현우 · 22 김민혁· 23 김태환 · 24 이규성

VC
· 26 조현택 · 27 이청용 · 28 설현빈
29 황재환 · 30 강윤구 · 31 아타루 · 36 이재욱 · 44 김기희 · 66 설영우 · 77 민동환 · 91 박주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홍명보 · 파일:일본 국기.svg 이케다 세이고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상록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경수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조광수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양지원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주영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세준

* 이 표는 간략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울산 현대 스쿼드에 변동이 있으면 두 틀 모두를 수정해주세요.




박주영의 역임 직책

[ 펼치기 · 접기 ]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박지성
(2008~2011)

박주영
(2011)


곽태휘
(2012~2013)


박주영의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파일:23시즌 91. 박주영.png

울산 현대 No. 91
박주영
朴主永 | Park Chu-Young[1]
출생
1985년 7월 10일 (38세)
대구광역시 동구 각산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함양 박씨[2]
신체[3]
182cm / 체중 75kg / AB형
포지션
스트라이커
주발
오른발
등번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10번
FC 서울 - 10번, 91번[4]
AS 모나코 FC - 10번
아스날 FC - 9번, 30번
RC 셀타 데 비고 - 18번
왓포드 FC - 20번
울산 현대 - 91번
학력
대구반야월초등학교 (졸업)
청구중학교 (졸업)
청구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학 / 석사)
소속 구단
FC 서울 (2005~2008)
AS 모나코 FC (2008~2011)
아스날 FC (2011~2014)
RC 셀타 데 비고 (2012~2013 / 임대)
왓포드 FC (2014 / 임대)
알 샤바브 FC (2014~2015)
FC 서울 (2015~2021)
울산 현대 (2022~ )
지도자
울산 현대 (2023~ / 플레잉 코치)
국가대표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68경기 24골 (대한민국 / 2005~2014)
가족
배우자 정유정, 딸(2012년 8월생)
병역
예술체육요원[5]
종교
개신교[6][7]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1. 개요
4. 지도자 경력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통산 기록
5.3.1. 클럽
5.3.2. 국가대표
6. 플레이 스타일
8. 별명
9. 여담
10. 관련 문서
11.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 국적의 울산 현대 소속 축구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클럽에서는 2005 시즌 FC 서울에서 18골을 득점하며 신인왕을 수상했고 2008년, 리그 1AS 모나코 FC로 이적했다. 2010-11 시즌에는 소속팀이 강등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12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국가대표로서는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환상적인 프리킥 골을 넣어 2-2 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국가대표 주장을 역임했으며 일본과의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골을 기록해 대한민국의 사상 첫 올림픽 축구 메달 획득에 기여하기도 했다.


2. 클럽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주영/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주영/국가대표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지도자 경력[편집]


선수 경력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2014년 잠시 무소속일 때 AFC C급 지도자를 이수하여 일찌감치 지도자 자격을 땄다. 2021년에는 본인 인스타그램에 AFC A급 지도자를 취득하고 수료증을 업로드 하기도 했다. A급은 국내 프로축구 리그에서 코치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데, 박주영은 2023시즌부터 소속팀 울산 현대에서 플레잉코치를 맡으면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선수로서 은퇴한 것은 아니기에 당분간 선수 생활과 병행하게 된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 아스날 FC (2011~2014)
    • FA컵: 2013-14[8]






5.2. 개인 수상[편집]


  • AFC U-19 챔피언십 MVP: 2004
  • AFC U-19 챔피언십 득점왕: 2004
  • AFC 올해의 청소년 선수: 2004
  • AFC 아시아 베스트 XI: 2011
  • K리그 영플레이어상: 2005
  • K리그 베스트 XI: 2005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득점왕: 2008
  • AS 모나코 이달의 선수: 2008년 10월, 2010년 11월, 2011년 12월
  • 카타르 8개국 초청 국제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MVP: 2005
  • 카타르 8개국 초청 국제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득점왕: 2005
  • 대구 MBC배 고교축구대회 득점왕: 2003
  • 금강대기 전국 중고축구대회 득점왕: 2003
  •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 득점왕: 2003
  • 추계 중고축구연맹전 득점왕: 2003
  • 자황컵 체육대상 프로선수상: 2005
  •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신인상: 2005
  •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인기 선수상: 2005, 2006
  •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득점왕: 2005
  •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선수상: 2005
  • 일간스포츠 - 아디다스 프로축구대상 신인왕: 2005
  • 일간스포츠 - 아디다스 프로축구대상 골든슈: 2005
  • 일간스포츠 - 아디다스 프로축구대상 골든볼: 2005


5.3. 통산 기록[편집]



5.3.1. 클럽[편집]


* 2022년 6월 26일 기준

시즌

소속 리그
리그
협회 컵
리그 컵
대륙 대항전
총합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2005
FC 서울
K리그
19
12
3
2
0
1
11
6
1
-
-
-
32
18
5
2006
26
7
1
2
2
0
4
1
0
-
-
-
32
10
1
2007
11
2
0
1
0
0
3
3
0
-
-
-
15
5
0
2008
13
2
4
-
-
-
4
0
0
-
-
-
17
2
4
4시즌
합계
69
23
8
5
2
1
22
10
1
-
-
-
96
35
10
시즌

소속 리그
리그
협회 컵
리그 컵
대륙 대항전
총합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08-09
AS 모나코 FC
리그 1
31
5
5
3
0
1
1
0
0
-
-
-
35
5
6
09-10
27
8
3
5
1
0
1
0
0
-
-
-
33
9
3
10-11
33
12
0
-
-
-
2
0
0
-
-
-
35
12
0
3시즌
합계
91
25
8
8
1
1
4
0
0
-
-
-
103
26
9
시즌

소속 리그
리그
협회 컵
리그 컵
대륙 대항전
총합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11-12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1
0
0
-
-
-
3
1
0
2
0
0
6
1
0
13-14
-
-
-
-
-
-
1
0
0
-
-
-
1
0
0
2시즌
합계
1
0
0
-
-
-
4
1
0
2
0
0
7
1
0
시즌

소속 리그
리그
협회 컵
리그 컵
대륙 대항전
총합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12-13
RC 셀타 데 비고
(임대)
라리가
21
3
1
4
1
0
-
-
-
-
-
-
25
4
1
1시즌
합계
21
3
1
4
1
0
-
-
-
-
-
-
25
4
1
시즌

소속 리그
리그
협회 컵
리그 컵
대륙 대항전
총합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13-14
왓포드 FC
(임대)
풋볼 리그 챔피언십
2
0
0
-
-
-
-
-
-
-
-
-
2
0
0
1시즌
합계
2
0
0
-
-
-
-
-
-
-
-
-
2
0
0
시즌

소속 리그
리그
협회 컵
리그 컵
대륙 대항전
총합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14-15
알 샤바브 FC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7
1
0
-
-
-
-
-
-
-
-
-
7
1
0
1시즌
합계
7
1
0
-
-
-
-
-
-
-
-
-
7
1
0
시즌

소속 리그
리그
협회 컵
리그 컵
대륙 대항전
총합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2015
FC 서울
K리그 클래식
23
7
2
1
2
0
-
-
-
-
-
-
24
9
2
2016
34
10
3
5
0
4
-
-
-
10
1
2
49
11
9
2017
34
8
3
1
0
0
-
-
-
4
2
0
39
10
3
2018
K리그1
22[9]
4[10]
1[11]
-
-
-
-
-
-
-
-
-
22
4
1
2019
35
10
7
1
2
0
-
-
-
-
-
-
36
12
7
2020
23
4
2
2
1
0
-
-
-
6[12]
4[13]
1
31
9
3
2021
17
0
0
-
-
-
-
-
-
-
-
-
17
0
0
7시즌
합계
188
43
18
10
5
4
-
-
-
20
7
3
218
55
25
시즌

소속 리그
리그
협회 컵
리그 컵
대륙 대항전
총합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2022
울산 현대
K리그1
3
0
0
-
-
-
-
-
-
4
1
0
5
1
0
1시즌
합계
3
0
0
-
-
-
-
-
-
4
1
0
7
1
0
통산
382
94
40
27
9
5
30
11
1
26
8
4
465
122
50


5.3.2. 국가대표[편집]


  • 2017년 9월 5일 기준.

  • 출전 기록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71d27 0%, #FF2E3C 20%, #FF2E3C 80%, #b71d27)"
소속 대표팀 }}} ||
연령
[1] AS 모나코로의 이적 전에는 주를 Chu로 표기했지만, 모나코 이적 이후 Chu를 Ju로 바꿨다. 그러나 FC 서울 복귀 이후, 영문 마킹이 되어있는 ACL 전용 유니폼에는 Chu로 마킹이 되어있고, 해외 중계에도 Chu로 나온다.[2] 밀직공파 32세손 영(永) 항렬[3] 울산 현대 공식 프로필[4] 2015시즌에는 에벨톤이 10번을 쓰고 있어서 91번을 썼다. 9+1=10이라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5] 2012 런던올림픽 축구 동메달[6] 기도 세리머니가 유명하다. 출석하는 교회는 고향에서는 대구동광교회를 다녔고 서울에서는 불명.[7] 대구 교회가 이단 논란이 있는 다락방 교회이다. #[8] 13-14 FA컵 당시 3라운드 교체 명단에 포함되어 우승멤버이다. Transfermarkt에서도 박주영의 수상 실적에 아스날 시절 FA컵 우승을 포함시켰다.[9] 승강 P.O. 2경기 포함[10] 승강 P.O. 1골 포함[11] 승강 P.O. 1도움 포함[12] ACL 예선 1경기 포함[13] ACL 예선 1골 포함
경기 }}} ||
득점
대한민국
U - 17
0
0
U - 20
26
18
U - 23
30
12
A 대표
68
24
통산
124
54

  • 골 기록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71d27 0%, #FF2E3C 20%, #FF2E3C 80%, #b71d27)"
날짜 }}} ||
장소
상대팀 }}} ||
결과
대회명 }}} ||
2005년 6월 3일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타슈켄트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우즈베키스탄
1-1
2006 FIFA 월드컵 독일예선
2005년 6월 8일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4-0
2006 FIFA 월드컵 독일예선
2006년 1월 21일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리야드
파일:그리스 국기.svg 그리스
1-1
친선경기
2006년 1월 25일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리야드
파일:핀란드 국기.svg 핀란드
1-0
친선경기
2006년 3월 1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서울
파일:앙골라 국기.svg 앙골라
1-0
친선경기
2008년 2월 17일
파일:중국 국기.svg 충칭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3-2 (2득점)
2008 동아시안 컵
2008년 5월 31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서울
파일:요르단 국기.svg 요르단
2–2
2010 FIFA 월드컵 예선
2008년 6월 7일
파일:요르단 국기.svg 암만
파일:요르단 국기.svg 요르단
1–0
2010 FIFA 월드컵 예선
2008년 11월 19일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리야드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사우디 아라비아
2-0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예선
2009년 6월 6일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두바이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UAE
2–0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예선
2009년 8월 12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서울특별시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파라과이
1-0
친선경기
2009년 9월 5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서울특별시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3–1
친선경기
2010년 5월 24일
파일:일본 국기.svg 사이타마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2–0
친선경기
2010년 6월 23일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더반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나이지리아
2–2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2011년 3월 25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서울특별시
파일:온두라스 국기(1949-2022).svg 온두라스
4–0
친선경기
2011년 6월 3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서울특별시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세르비아
2–1
친선경기
2011년 9월 2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고양시
파일:레바논 국기.svg 레바논
6–0 (3득점)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
2011년 9월 7일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1–1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
2011년 10월 11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수원시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UAE
2–1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
2011년 11월 11일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두바이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UAE
2–0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
2014년 3월 5일
파일:그리스 국기.svg 아테네
파일:그리스 국기.svg 그리스
2–0
친선경기

6. 플레이 스타일[편집]


한때 '천재'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았던 선수로, 황선홍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원톱을 이끌었던 공격수다. 특히, 이전까지의 한국 축구의 공격수들은 골대 앞에서 잔뜩 힘이 들어간 플레이를 하기가 일쑤였는데, 신인이던 당시 언론으로부터 "한국 축구 최초로 골대 앞에서 침착함을 갖춘 천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골대 앞에서의 플레이가 여유있던 선수였다.[14] 특히 팀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나 빈 공간으로의 쇄도, 2선에서의 침투 능력에는 발군의 기량을 자랑했다.

상황 예측과 판단이 빨라서 라인 브레이킹에 능하다. 이 때문에 박주영이 스피드가 좋은 선수라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실제 주력은 100m를 12초 대에 주파할 정도로 2002년 이영표, 송종국, 황선홍과 비슷한 수준. 순간 속도도 뛰어났으며 민첩성은 아주 좋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상술한 상황 예측 및 판단력으로 커버했다.

뛰어난 키핑력도 가지고 있었고 점프력도 뛰어나[15] 182cm라는 키에 비해 상당한 제공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점프력을 이용한 정확한 포스트 플레이도 수준급이었다.[16] 실제로 폼이 완전히 망가진 2014년 월드컵 당시에도 제공권 분야에서는 끝판왕급이던 김신욱급은 아니어도, 당시 폼을 감안하면 불가사의할 정도의 공중볼 경합 능력을 보여줬을 정도.

커리어 초기에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을 바탕으로 판타지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볼 키핑은 초년병 때부터 매우 뛰어났고 세계 레벨에서도 어느 정도 통했기 때문. 등진 상태나 회전하면서 다음 동작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힘 좋은 유럽 수비수들 사이에서 비비면서 약간의 틈만 보이면 바로 돌아 들어가서 벗겨내려 들어 수비수들의 골치 좀 썩혔다.

드리블의 경우 전성기 때에는 뛰어난 예측력을 기반으로 한 번에 확 치고 나가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즉 일단 공을 잡아놓고 상대 수비수가 마크하러 오면 수비수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서 반대 방향으로 순간적으로 확 치고 나가는 유형. 볼 키핑력과 예측력이 있기에 가능한 스킬이었는데 나이를 먹고 무릎 부상을 포함한 피지컬 하락을 겪으면서 평범한 수준이었던 순간 속도나 가속력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드리블은 잘 시도하지 않는다.

위치 선정도 뛰어난 편. 특히 유럽 진출 전 선수 생활 초기에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타다가 침투해서 득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 진출 이후 피지컬을 보완하면서 버티고 공중볼을 따내는 스타일로 변모했지만, 몸싸움이 부족한 커리어 초기에는 라인 브레이킹을 통해 침투해서 골을 넣거나, 나와서 공을 받고 수비수를 제껴서 넣는 이지선다형 공격수였다.

프리킥도 상당히 뛰어나다. 페널티 박스 왼쪽 약간 바깥에 프리킥이 걸리면 여지없이 골이나 유효슛으로 연결했다. 프리킥을 도맡아서 주구장창 난사하는 스타일인 이천수 김치우 등에 비해서 정확도나 킥의 질이 훨씬 좋았음에도 국가대표 초기에는 본프레레나 아드보카트 같은 감독들에게 저평가당하며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17] 반면 귀네슈 감독 시절 fc서울이나 허정무 감독 시절 대표팀에서 주축으로 활약하던 시기에는 박주영이 전담 키커를 맡았다. 특히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행을 결정지은 나이지리아전 프리킥은 박주영의 프리킥 능력을 잘 보여주는 장면으로 나이를 먹고 노쇠화가 진행된 이후에도 발끝은 어느 정도 살아 있는지 가끔씩 환상적인 프리킥을 보여준다.

커리어 초기 가장 큰 약점은 몸싸움. FC 서울 1기 시절의 박주영은 높은 키핑력과 발재간, 센스가 돋보였지만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는데, 당시 정교한 패스로 상당수의 골 기회를 제공해 주었던 히칼도 역시 몸싸움이 약했다. 이 시기 박주영이 잘 나가던 것도 냉정히 얘기했을 때 데뷔 시즌 전반기까지일 뿐, 후반기 시즌에 들어서며 이미 박주영 공략법이 나왔다는 말이 다른 팀 수비수들의 인터뷰에서 흘러나옴과 동시에 박주영의 성적도 곤두박질쳤다. 상대가 터프하게 마크해오면서 후기리그에 FC 서울의 성적이 크게 하락하는 원인이 되었고, 2006년에도 2005년 후반기 시즌처럼 수비수에게 패턴이 읽혀서인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2007년 세뇰 귀네슈가 부임한 이후에는 스트라이커가 아닌 사이드 미드필더로 뛰면서 경기력을 크게 회복했지만, 데뷔 시즌 말고는 스탯 생산력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모나코 이적 후 한동안 피지컬에 눌리고 스피드와 라인 브레이킹에만 의존해야 해서 다소 저조한 커리어를 기록했지만, 그대로 도태되는 대신 스스로를 갈고 닦아 몸싸움과 제공권 능력을 크게 보완해 주축 공격수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했다. 모나코 2년차인 09-10시즌부터 박주영은 한국에서 독보적인 중앙 공격수로, 이 시기 박주영이 골을 많이 넣는 뛰어난 스코어러는 아니었지만 현대 축구에서 필수적인 원톱 역할, 수비진과 경합하며 골문 부근에서 공을 따내고 지키는 공성추 역할로서는 대체 자원이 없었다. 물론 그 반동으로 청소년 대표 때의 화려한 모습은 다소 잃었지만 세계 무대에서 언더독인 한국에게 포스트 플레이로 제공권을 확보하고 1선과 2선을 연계해 공격을 풀어나갈 수 있는 박주영의 존재감은 다른 공격수보다 뚜렷했다.

현대 축구에서는 대체적으로 원톱이 득점만큼이나 상대 수비수의 집중력과 시선을 분산하면서 2선 공격수들에게 공간을 열어주는 연계력도 중요한데, 박주영은 동 시기 대표팀 공격수로 발탁되었던 이동국, 이근호, 정성훈, 김신욱, 지동원 등보다 이런 면에서 우위였다.

다만 플레이 스타일이 변하면서 골 결정력은 언제나 지적받는 요소였다. 아스날에서 박주영을 영입할 때 모나코 팬들은 아스날 팬들에게 기술이 뛰어나고 영리하지만 1:1 결정력이 약한 선수라고 소개했는데 기복이 있어서 컨디션에 따라 결정력이 들쭉날쭉했다. 최순호에게 "10점 만점에 늘 8,9점을 찍어야 하는데 7점 이하로 떨어질 때가 있다."라는 평을 받을 정도.

집중력과 투쟁심 부족도 큰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침착하게 경기 내내 흐름을 유지하는 건 좋지만 페이스를 확 끌어올려야 할 지점에서도 본인의 페이스와 리듬만 유지하다 템포를 못 따라가 오는 패스를 멍하니 있느라 놓친다거나, 간단한 패스를 트래핑 실수로 못 받는 등 안일하거나 어이없는 플레이가 나오곤 한다. 수비가담에 대한 의지 부족도 자주 지적된다. 지금은 나이 때문에라도 상대 수비를 압박하거나 재빨리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서 수비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지만 전성기 때도 수비가담과 압박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약팀과 경기하는 아시아권 대회에서 맹위를 떨쳐야 함에도 최용수나 황선홍, 이동국처럼 상대를 압살하는 플레이는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는 이미지도 있다. 실제로 아시아 예선에서도 박주영이 최고의 기량을 펼친 것은 최종예선이 아니었다. 아스날 이적 직후 아주 좋은 폼을 보여주었던 것은 맞는데 최종예선은 아니었고 최종예선 시기에는 아스날에서 못 뛰면서 좋지 않았다. 또한 아시안게임에서도 와일드카드로 참여한 황의조가 대회를 지배했던 것과는 달리, 박주영은 와일드카드로 참여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그저 그런 활약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아시안컵에 참가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쉬울 수 있으나, 아시아 예선도 그렇고 특히 와일드카드로 참가한 아시안게임에서의 그저 그런 활약이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주영의 최대 흑역사가 된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2015년 K리그로 돌아온 이후에는 신체 능력이 크게 죽어버린 대신 유럽 진출 이전 보여주었던 키핑력과 경력이 쌓이며 나아진 시야와 패스 능력을 바탕으로 2선 공격수로 주로 뛰고 있다. 간혹 최전방 원톱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신체 능력이 많이 죽어서 K리그에서도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기에 조커로 쓰이거나 몸 상태가 좋은 시즌 초반에나 잠깐 투입되는 수준이었다.

2015년 K리그로 돌아오면서 또 플레이 스타일이 달라졌다. 최전방에서 2-3선까지 내려오면서 연계 중심적인 경기를 펼치다가 서서히 톱으로 올라가고 팀이 약간 내려가 있는 상태에서라면 단숨에 치고 올라가 논스톱으로 슛을 때린다던가 혹은 중거리 슛. 전성기와는 다른 타입이 되어버렸다. 좋은 헤더 및 제공권 장악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릎 부상의 여파에 따른 후유증으로 2018년부터는 코너킥 시 헤더가 아닌 키커를 담당하는 등 점차 킥과 키핑, 연계력을 바탕으로 뛰는 테크니컬한 플레이스타일로 바뀌었다.

위에서도 길게 설명했지만 가시적인 박주영의 능력치만 놓고 말하자면, 전형적인 육각형 스트라이커이자 최순호와 황선홍의 뒤를 잇는 만능 공격유닛은 맞는데, 기복이 있고 뭔가 능력치가 고르게는 분포하지 않은 살짝 작은 육각형 공격유닛에 가깝다.[18]

감독들 입장에선 전술적으로 상당히 편안한 스트라이커가 된다. 박주영은 세계 기준으로라면 몰라도 한국 기준이나 아시아 기준으론 많은 능력치가 상당히 뛰어난 공격수며 몇몇 능력은 세계 기준으로도 평균 이상이다. 이 말은 즉 소화할 수 있는 전술폭이 매우 넓다는 의미도 된다. 전성기에는 활동반경도 상당히 넓어서 공격작업을 하다가도 또다른 골대 앞에서 아군 센터백 뒤를 커버쳐주기도 하는 등 현대 축구에 충실하게 따른 공격수였다. 골대 앞에서 주워먹는 포처뿐만 아니라 점프해서 뜬공을 동료한테 떨궈주는 타겟맨, 2선에서 1선을 지원하는 처진 스트라이커 같은 공격수부터 수비라인에서 공격라인으로 공을 몰고 가는 플레이메이커같은 공미 역할도 어느 정도 수행 가능했으며, 심지어 상대 수비수들을 중원으로 몰고 다니며 공간을 창출하고 공미들의 공격 가담을 지원하하기도 하고 공격수로 수행해야 하는 대부분의 플레이가 가능했다.

이러한 넓은 전술폭은 만약 박주영이 골을 넣지 못한다 해도 팀에 확실한 도움이 되는 점이었다. 대표팀에서도 박주영이 상대 수비수들을 몰고 다니며 공간을 창출하는 동안 박지성, 이청용이나 구자철이 전방으로 뛰어들고, 이들이 득점하면서 팀이 승리하는 패턴이었는데, 다시 말하지만 당시 한국 프로선수 전부 통틀어 전방에서 이런 플레이가 가능했던 건 박주영밖에 없다.[19][20] 선수 커리어 내내 국대에서 박주영은 항상 원톱 고정이었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그 시기에는 박주영을 원톱 자리에서 밀어낼 정도로 박주영보다 잘하던 원톱이 한국에서 없었다는 얘기도 된다. 박주영의 원톱 자리에서 유일한 경쟁자라 할 만한 선수는 이동국과 김신욱밖에 없었는데, 김신욱은 좁은 전술폭과 키에 비해 포스트 플레이를 못해서 감독들이 선호하는 선수가 아니었고, 이동국은 전술폭의 문제와 멘탈, 유리몸의 문제가 겹쳤다.[21]

다만 이러한 능력들이 유럽 최상위 티어 무대에서 먹힐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유럽 무대의 2티어 정도라고 볼 수 있는 프랑스 리그[22] 정도까지는 충분히 한 시즌을 믿고 맡길 만한 스트라이커로 활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의 1티어 리그인 EPL, 그것도 상위권인 아스날 정도의 팀에서 박주영이 가진 장점은 상대적으로 평범 내지는 그 이하가 될 수밖에 없었고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한 시즌을 맡기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당시 아스날에 공격수 자리에는 -드디어- 부상 없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하던 로빈 반 페르시가 버티고 있었다.[23] 결국 박주영은 영입되자마자 2옵션, 3옵션을 놓고 경쟁하는 처지로 내몰리게 되고 끝내는 후보 경쟁에서도 탈락하여 많지 않은 나이에 전성기가 끝나버리고 만다.[24][25][26]

워낙 기복이 심했고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는 기간도 짧았기에 박주영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지만 청소년 대표 때부터 탑급 스트라이커이자 인기스타로 데뷔했고 대한민국의 축구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공격수라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그의 선수 생활이 황혼기에 접어든 2020년대에 와서도 박주영이라는 이름 석 자는 축구팬들 사이에서 잊을만 하면 계속 언급되고 있다.

2014년을 마지막으로 박주영의 국가대표 커리어가 사실상 끝난 후 황의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국대 스트라이커 계보가 끊겼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 사이에 수많은 스트라이커들이 대표팀을 거쳐갔지만 그 누구도 전성기의 박주영과 같은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27] 그리고 황의조 역시 벤투호의 새로운 원톱으로서 수많은 득점을 만들어냈으나 2019 아시안컵과 2022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는 등 임팩트 면에선 아직 박주영을 뛰어넘지는 못했다.[28][29] 박주영 얘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황의조가 못해서라기보다 국대급 무대에서는 한 방 펀치력이 부족한 건 박주영도 마찬가지고 사실 청대 때부터 워낙 스타였기 때문에 미디어 노출이 그만큼 오래됐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7.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주영/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별명[편집]


인지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엄청 까이는 인물이다 보니 별명이 무식하게 많다.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으니 추가 시 유의 바람. 야구김별명 같은 항목에서 명확하게 영향을 받아 생겼으며, 김별명 등 이 위키의 별명 항목은 까는 별명이고 좋은 별명이고 아주 무차별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위키 전체적으로 볼 때 박주영만 이상한 항목이 아니다. 그리고 김별명 문서와 마찬가지로 스포츠 덕후들 특유의 억지 밈이 매우 많이 들어 있으니 90% 정도는 걸러 들어야 한다. 실제로 쓰이는 별명은 이중 두 세 개, 많이 쳐줘도 너댓 개정도가 끝이라고 봐야 옳다. 밥줘, 주멘, 박따봉 정도가 많이들 아는 별명이고, 겨유득과 같은 것이 좀 애매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축팬들은 찰떡같이 알아듣지만 아닌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 외에 박시탈이나 모나코 박 등이 영주권 논란이나 런던 올림픽 시기 직후에 일시적으로 쓰인 정도다.

  • JYP: 원래 영문 표기는 Chu-Young Park 이었으나, 모나코 이적 후 마킹을 J. Y. PARK으로 달기로 하면서 진짜 JYP가 되었다.
  • 관중영: 경기에 계속 나가지 못해서 관중이나 다름없는 신세라 관중+(박주)영.
  • 겨유득: 겨레의 유일한 득점 루트. 2012년 셀타 임대 당시 걸렸던 박주영 팬카페의 메인화면. #
  • 공원: 성인 박씨(Park)로 인해 쓰이는 별명인데 워낙 흔한 명사라서 박주영의 화제도가 한창 상종가를 칠 때나 좀 쓰였지 별로 잘 쓰이지도 않았다.
  • 도주영: 몇몇 이적 과정에서 구단의 통수를 치고 도주하듯 이적했다 하여 붙은 별명.
  • 동팡주영: 비슷한 맥락에서 한 때 맨유에 존재하기만 했던 중국인 공격수 동팡저우에 빗대.
  • 따봉 또는 박따봉 또는 꿀엄지: 유래는 너무도 명확하다.
  • 따봉(-蟲)[30]
  • 모나코왕자: 타 별명과 달리 박주영이 모나코에서 잘나가던 시절의 별명이다.
  • 모나코인, 모나코박: 병역기피 시도 후에 한국 브라운관에 자주 비치기는 하는데, 한국 스포츠계 초유의 국적미상 상태의 선수라 이 선수의 국적이 도대체 어디인지 논란이 분분했던 가운데 일부 인물들은 그가 모나코인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다만 지금은 박주영의 전성기 시절을 지칭하는 별명으로 정착되어 있다.
  • 무슈 팍: 만약 그가 모나코인이라면 마땅히 프랑스어를 사용해서 불러야 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남성 호칭인 무슈를 활용하였다.
  • 무적의 스트라이커: 말 그대로 무적(無籍)의 스트라이커였기 때문에.
  • 박시탈: 런던올림픽에서 일본 상대로 선제골을 터트려서 얻은 별명.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인 각시탈에 빗대어 등장한 멋있는 별명이다. 당시 런던 올림픽에서 대회 내내 경기력이 저조하다 일본 상대로만 선제골을 박은, 마치 항일 암살자 같았던 박주영의 모습을 빗대는 측면도 있다.
  • 밥꼼수: 병역과 관련해서 일반인들은 듣도 보도 못한 온갖 법조항 사이를 누비는 모습을 보고 붙은 비아냥. '밥'은 박주영의 다른 별명인 '밥줘영'에서 유래.
  • 박나모토: 아스날에 잠시 소속되었던 일본 축구선수 이나모토 준이치와 같다 하여. 이나모토는 아스날이 경제적 목적으로 영입한 후 출전시키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 박코치: AS 모나코 시절 한창 폼이 좋았을 당시 팀 공격진 중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생긴 별명. 축구를 배우러 갔는데 오히려 가르친다고 한다.
  • 박힐러, 프리스트 박: 박주영이 아스날을 떠난 이후 몇몇 선수가 박주영 아스날 재직시에는 건강했으나 그 전후에는 부상에 시달리던 선수인 것이 발견, 박주영의 존재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팬들이 환호하며 찬양하기 위해 붙인 별명. 사실 박주영은 벤치에서 힐과 버프를 주며 선수들을 회복시키는 역할로 기용한 벵거의 혜안이었음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박주영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종교적인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며 성공한 별명이다.
  • X발: 일부 입이 거친 사람들이 지나친 비속어를 사용하여 이렇게 잠시잠깐 불렀다. 당연히 평소에는 한국 축구에 관심 없고 앞으로도 없을 월드컵 냄비들이다. 왜냐면 2014년 발효된 별명인데 그 전까지의 행보를 고려해 볼 때 월드컵에서 똥 쌀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병역기피 등등의 행적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사실 어찌 보면 일반명사에 가까운 비속어들로 특정인물을 호칭하기에는 대한민국에 박씨가 너무 많다.
  • 밥줘, 밥줘영: 박주영의 이름을 비슷한 발음으로 웃기게 비튼 것.[31] 줄여서 '밥줘'라고도 한다. 깔 때 쓰기도 하지만 그냥 쓰는 팬도 많으며 사실상 박주영의 주요 별명 중 하나로 정착했다. 알샤밥으로 이적하며 알샤밥줘영, 알샤밥줘, 알밥샤줘영 등의 바리에이션이 생겼다. 그러나 알 샤밥 시절에서 별다른 임팩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바람에 알샤밥줘영 등은 조용히 묻혔다. 여담으로 K리그에 복귀한 이후 팀 동료들이나 후배들에게 밥을 잘 사줘 진짜 '밥줘'형으로도 불리고 있다.
  • 버블팍: 아스날 입단 후 여러모로 거품(버블)에 가까운 모습이 보여지며 붙은 별명. 발음 자체는 현아의 히트곡인 Bubble Pop!의 패러디이다. 기사 댓글에서 주로 "버블버블 팍팍"[32] 하면서 조롱할 때 자주 쓰였다. 곡의 연차가 오래되고 박주영의 거품도 꺼지면서 점차 생명력을 잃었다.
  • 봉와주영: 소위 황제훈련 도중 봉와직염을 앓으면서 유래했다. 많은 남성들이 군대 시절 행군과 함께 접하게 되는 병명이다. 대부분의 남성은 군생활 도중 행군경험이 있으므로 약간의 위생관리만으로도 발병을 억제 가능함이 널리 알려진 바이며, 주로 더럽고 게으른 고참이나 게으르진 않지만 바짝 쫄아붙어 있는 이등병들이 자주 걸리며 모두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병으로 유명하다.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짜증스러운 주제였기 때문에 수많은 네티즌들은 프로 축구선수의 위생관리에 대한 의문과 함께 위생상태 불량에 관한 혐오감을 표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더러운 질병이라 생명력이 길 수 없는 별명으로 잠시잠깐 반짝했다.
  • 벤치영: 경기에 계속 나가지 못해서 벤치에 앉아 있는 신세라 벤치+(박주)영.
  • 사우디박: 사우디 시절 종종 사용되던 별명이다.
  • 선례왕(先例王): 합법적 병역 연기 및 면제 등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해서 비아냥거리는 별명.
  • 스텔스박: 브라질 월드컵에서 공격수인데 마치 스텔스기와 같이 적의 시야에 잡히지 않았다. 엄지를 들어올릴 때 빼곤 아군의 시야에도 잘 잡히지 않았던 것은 덤이다.
  • 스티붕밥(박): 모나코 장기 체류를 통한 병역 연기한 모습이 같은 예체능계에 종사하던 90년대 가요계의 전설적 댄스 가수 스티브 유와 같다 하여 그의 별명 '스티붕 유'에서 이름을 따와 사용되었다. '밥'은 밥줘영에서 온 것이다.
  • 승부사: 2010년 국가대표 훈련시 한 동영상에서 "야 형 승부사야 임마" 하면서 코너킥 위치에서 골대 안으로 공을 집어넣은 것에서 유래. # 이후 인생의 분수령이나 갈림길마다 귀신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면서 재조명. 골결정력과는 전혀 관계 없음. 이따금 박주영의 경기력이 좋았을 때 신문 기사에서도 박주영을 승부사라고 호칭하며 이 별명의 영향인지 그 빈도가 다른 선수들보다는 조금 더 많은 것처럼 보이긴 하나 그 날 경기 폼이 좋으면 종목 불문하고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에 크게 구별될 정도의 의미는 없다. 결국 기막힌 승부수를 던지고 연이어 성공한 그의 인생역정과 관계가 깊은 별명이다.
  • 썬더: 남아공 월드컵 때의 아디다스 광고문구 '모든 팀에는 썬더가 필요하다'에서 유래. # 물론 비꼬는 의미이다.박썬더 벤치썬더 등으로 응용된다.
  • 영박: 아스널 홈페이지에서 박주영의 성명을 영박으로 표기하는 바람에 생긴 별명.주 영박
  • 일류: 브라질 월드컵 종료 당시 힘들 때 웃는 게 일류라는 이상민의 발언이 그의 과거 행적과 대비되며 비꼬는 의미로 이너넷에서 한창 유행하고 있었다. 때마침 벨기에전이 종료된 후 손흥민이 울고 있는데 박주영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의 사진에서 유래하였다. 이후 귀국 사진에서도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의 사진들이 찍히며 잠깐 유행했다. 2017년까지도 어리석은 족쟁이들이 승부 같은 것에나 집착하면서 울고불고하지만 박주영이 여유로운 모습을 과시하거나 할 때 가끔 쓰인다.
  • 일본킬러: 유독 일본만 만나면 강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골도 여러 번 터트렸었다.
  • 주님영: 주멘보다는 좀 비꼬는 성향 이 덜하지만 어쨌든 종교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박주영의 행태를 눈꼴시게 보는 일부 인물들이 이렇게 부른다.
  • 주님요: (기도 세리머니→)주님 + 브라질 축구스타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패러디. 당연히 이 별명은 비꼬는 맥락에서나 쓰이며, 주님영보다 귀염성이 덜하다.
  • 주멘: 박주영의 주요 별명 중 하나. 유래는 박영(또는 별명에서 유래한 님) + . 별 의미 없이도 잘 쓰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주영 또는 주멘으로도 불린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는 뜻으로도 쓰이며 야구의 종범과 비슷한 의미. 요즘은 K리그 공식 인스타그램, 인터넷 댓글, 심지어 구자철이 박주영 인스타그램에서 주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그냥 애칭 및 찬양의 의미로 쓰이는 듯 하다. 피파 온라인4에서도 12KH 시즌의 고성능 카드가 나오면서 대한민국 국대를 하는 유저들에게도 자주 나오는 별명이 되었다.
  • 주영신(갓주영): 비꼬는 의미로 더욱 많이 쓰이나 가끔 가다 현실이 되기도 한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 골을 넣고 잠시 이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가끔이라고 하기도 뭐한것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동메달 결정전 딱 한 순간뿐이고 그 이후에는 없다.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2017년까지도 가끔 축구 사이트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집중포화를 맞고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슈틸리케호 말기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진이 너무나도 심했기 때문에 자조적인 의미로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착각을 심하게 한 나머지 진지하게 주영신 같은 얘기를 과도하게 하면 집중포화를 맞고 버로우하게 되니 한계를 명확히 알고 주의하자. 박주영은 국대에서 잘 나갔던 시절은 정확히 말해 08-12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08년 동아시아컵부터 남아공시절엔 주전력으로 뽑혔고 본인도 피크시절 능력치지만 11년을 기준으로 터키 세르비아 가나 폴란드 는 평가전이었고[33]브라질 예선은 최종예선 같이 한국과 호각을 이룰만한 팀들이 아니었다.[34]하지만 알다시피 13년은 이적실패와 벤치를 달구면서 월드컵에서 주적이 되고 부진한것은 부정할수 없다.
  • 주젊공, 공원, 젊은 공원: 구글 번역기로 번역하면 박주영의 박이 공원으로 영이 젊다로 해석되어 주 젊은 공원이라는 해괴한 이름이 나오는데 이를 생략했더니 말맛이 생겨서 주로 쓰였다. 해외에서 돌아오고 나서 조금씩 사용빈도가 줄어들더니 현재는 잘 쓰이지 않고 있다.#
  • 쪼꼬형: SNS에 부인이 준 발렌타인 초콜릿을 인증하면서 쪼꼬라고 하는 바람에 쪼꼬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제는 FC서울 공식 인스타그램에서도 박주영을 쪼꼬형이라고 부른다...
  • 토템, 토템박, 토템풋볼, 토템사커: 2011년 아스널 이적 후 생긴 별명으로, 당시 아스널에는 부동의 주전 스트라이커 로빈 판페르시가 있었는데 판페르시는 매년 크고 작은 부상 때문에 경기 출장수가 그리 많지 않은 전형적인 유리몸 선수였다. 그래서 한국 팬들은 박주영이 그 빈자리를 메워 빅클럽인 아스널에서 주전급으로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큰 기대를 품었지만 하필이면 그 해에 판페르시는 리그 38경기 전경기 출전에 30골이라는 대업을 이루면서 박주영은 출전 기회를 거의 잡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전 시즌까지 유리몸으로 유명했던 판페르시가 강철몸, 일명 풀페르시가 된 건 벤치에 앉아 있는 주멘의 가호 때문이라는 우스개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당시 인기있었던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주술사가 토템으로 아군에게 각종 힐과 버프를 넣어주는 것에 빗대어 토템이라는 조롱성 별명이 붙여졌다. 그리고 이 별명은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추태로 인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주로 퐈이야와 짝지어 불린다.[35] 이들 둘은 필드에 서 있을 때는 무용지물이지만 벤치에 앉고 나서야 마치 옥침대와 같이 이로운 영향력을 은은하게 발휘하기 때문이다.
  • 합법줘: 합법적으로 병역을 연기했다며 비꼬는 의미에서 나온 별명. '줘'는 다른 별명 '밥줘영'에서 유래. 한국프로야구를 통해 이미 정착돼 있던 합법드립에다가 '밥줘영'을 결합했다. 물론 원래의 합법드립은 진짜 합법인 건 아닌데 합법화됐다고 오해해서[36][37] 비꼰 것이 정착된 것이지만, 박주영의 병역 연기는 진짜로 합법이었다는 점이 다르다.[38]


9. 여담[편집]


  • 피파 온라인 4에서는 차두리, 이범영과 함께 대한민국 팀컬러의 악명을 드높인 사기 캐릭터이다.[39] 이 사실은 슛 포 러브에 출연하여 2022 FIFA 월드컵에 동행하면서 본인도 알게 되었다. 관중석에서 한 팬의 TKL 박주영 카드를 7카로 대리 강화에 성공한 뒤 동행한 슛 포 러브 관계자에게 TKL보다 12KH가 더 사기라는 언급을 들었다. 이 때 골 먹고 형(박주영)한테 욕하는 유저가 많다는 대답에 박주영의 반응은 "본인도 쓰면 되잖아?"(…)#

  • 청구고등학교 시절 체력을 키우기 위해 자신의 집에서 청구고까지 1시간 30분 거리를 뛰어서 등하교했다고 한다.

  • 고교 시절 또 다른 일화로 고교 축구 대회에서 본인이 해트트릭을 넣고 32강에서 패했는데 동료들은 대회가 끝나서 뒷풀이로 향했지만 박주영 혼자 훈련장에 남아서 밤늦게까지 훈련했다고 한다.

  • A매치 전대륙 상대 득점자다. 득점 순서대로 보면 2005년 6월 3일 우즈베키스탄(아시아), 2006년 1월 21일 그리스(유럽), 2006년 3월 1일 앙골라(아프리카), 2009년 8월 12일 파라과이(남미), 2009년 9월 5일 호주(오세아니아), 2011년 3월 25일 온두라스(북중미) 순이다. 다만 호주의 경우 OFC 소속이 아닌 AFC 소속일 때 기록한 득점이라 논란[40]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2022년 현재까지 이 기록은 황선홍, 박주영, 이동국, 손흥민만 보유하고 있다.

  • 기자들이 무척 싫어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한창 박주영으로 뜨거울때 인터뷰 요청을 안 받아주고 피해다녀서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는 셀타 비고 이적 후에도 저런 태도로 일관해서 현지에서도 비난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박주영의 인터뷰 거부에 대한 관련 글 공식 인터뷰는 피한 적이 없지만 이건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고, 공식 인터뷰라는 것도 몹시 드물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적 인터뷰 제의를 다 거절하면 좋은 소리는 못 듣는다. 그의 성격 자체가 한 몫했고 어린 시절 국내 기자들에게 시달리다보니 그렇게 된 듯.[41]#

  • 박주영과 포항 스틸러스 간의 분쟁은 K리그 팬이 아니면 잘 모르던 사실인데, FM 제작사인 스포츠 인터랙티브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2006버전부터 포항 스틸러스의 싫어하는 인물에 박주영을 넣어놨다. 그것도 FM21 기준 혐오도 100에 영구적으로 혐오 체크까지. 실은 한국 FM 평점 주는 것은 한국 사람이 한다. 그래서 이영표 선수가 싫어하는 선수에 이임생들어가 있을 정도. 하지만 주관적인 평가가 많이 개입되면 나중에 제작사에서 모든 데이터를 취합한 뒤 상식껏 조정을 한다고 한다.

  • 풋볼매니저에서의 능력치는 K리그 시절에는 유럽 주요 리그를 제외한 타 리그는 스카우터를 파견하지 않고 리그의 수준에 맞춰 랜덤 포텐[42]으로 대신하게 되어있는지라 선수의 능력치를 잘 표현을 못했으나 유럽리그인 AS 모나코 이적 이후에는 활약에 맞추어 능력치가 개편되었다. 개편 이후 2010까지 양발은 유지한 채 포워드의 능력치는 전체적으로 좋아졌으나 그에 맞춰 구단 내의 위상이 핵심 선수로 변경됨에 따라 초기 시작 시기에 영입을 타진하려면 400억 이상의 영입료를 지불해야 한다. 2011버전에 또다시 개편되어 양발 사용이 오른발 사용으로 바뀌면서 그에 비례해 전체적인 능력치가 올라갔다. 하지만 아스날에 가면서 제대로 출전하지 못한 탓인지, 2012에서는 골결정력이 11로 내려가는 등 폭풍 하향을 먹었다. 2013에도 골결정력이 또 10으로 내려갔으나 AS 모나코 시절의 능력치가 높게 평가되었는지 신체적 능력, 퍼스트 터치[43], 정신적 능력은 그리 너프되지 않아 감독의 전술적 역량에 따라서는 다득점을 노릴 수 있다. 2015에서는 월드컵에서의 엄청난 활약과 아스날의 강제 방출 및 무적기간 덕분에 전작의 유럽 하부리그 준주전급 선수에서 유망주급 능력치로 변경되어 엄청난 너프를 먹었다.##. 모나코 시절까지는 중간은 가던 프로 의식도 아스널에서의 먹튀 행각과 셀타비고 임대 시절 보여준 워크에식 때문인지 FM 2018 기준으로 멘탈갑 수준의 6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발로텔리와 동급이다. 멘탈갑의 전설들 테베스는 2, 아드리아누와 카사노는 3. FM20까지도 100 남짓한 어빌을 보여주는데, 사실 박주영의 몇 시즌 활약을 감안하면 너무 박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44]

  • 피파에서는 K리그 시절 초기에는 상당히 좋아서 피파 2006 기준 82였으나 그 다음부터 부진해 능력치가 유망주 급으로 변화. 모나코 이적후 70대 중반의 아시아인치고는 상당히 쓸 만한 능력치로 둔갑했다. 피크 시절에는 80까지도 올라가며 아시아 최강 포워드로서 이름을 날렸으나 아스날에서 셀타로 이적할 때 약간 능력치가 하향되었다. 전체적으로 뛰어나고 결정력이 좋은 포워드임에도 셀타에서 한 삽질이 반영되어 아스날 재복귀시 70대 초반으로 다운되어 버렸다. 월드컵에서 삽질 후 60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15년 FC서울 복귀시엔 능력치가 60대 중반까지 너무 다운돼 대표팀에서도 써먹기 힘든 레벨까지 떨어졌다. 16년에 60대 후반까지는 복귀했으나 데얀(77) 아드리아노(72)에 비하면 조커 이상으로 쓰기 힘든 능력치가 되었다. 능력치로 보는 그의 일대기 피파온라인 시리즈에서도 특별히 스탯이 뛰어나고 그러지는 않았으나, 박주영의 은퇴가 가까워진 2021년에 피파온라인 4에서 2012년 런던 올림픽 선수단 카드를 출시하면서 당시 박주영의 활약상을 반영해 무시무시한 스탯으로 출시하면서 대한민국 국대 스쿼드의 핵심 공격수로서 떠오르기도 했다.[45]

  • 위닝일레븐에서는 데뷔 때부터 20살 주제에 80대에서 70대 중반 능력치를 주렁주렁 달고 나오는데다 마스터리그에서 키우면 괴물이 되는 존재로 만들어 놓고 모나코 이적 후로는 피지컬에다 헤딩능력도 80대로 설정되어 대표팀과 팀내 에이스급 선수로 설정되었다. 너프를 잘안시키는 위닝 특성상 브라질 때까지도 손흥민에 이어 넘버2의 한국인 능력치를 받았으나 다음해부터 현실을 반영해 70대 초반으로 엄청난 너프를 받았다. 2017에서 약간 상승했으나 전성기에 비하면 부족한 능력치다. 그러나 피파시리즈와는 달리 이동국에 비해 언제나 높은 능력치를 자랑한다.[46][47]능력치는 2015국대 전체 능력치 참조

  • 고려대 졸업 당시 서울 동북고등학교에 교생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당시 동북고등학교 학생들이 축구하고 있었는데, 박주영이 나와서 학생들 공을 뺏고 드리블 하던 도중, 학생들에게 공을 빼앗기고 마는데...당황한 박주영은 다시 공을 빼앗아 중거리 슛을 날려 골을 넣었다는 일화가 있다.

  • 2004년 청소년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나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정기전 출장으로 이탈, 언론에서 뭇매를 때렸고 연대 학생들은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고 벼르고 있었으나...연세대와의 정기전에서 연세대 수비진을 완전히 농락, 고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그것을 본 고려대 학생들은 다음 해 고연전 축구를 매우 기대했지만 정작 결과는 무승부. 그것도 끝나기 5분여 전 극적인 동점골을 내주며 무승부를 맞이했다.

  • 모나코의 구단주이자 모나코 공국의 공작 알베르 2세에게 초청장을 받은적이 있다고 한다. 모나코에서도 프리킥 연습을 빠지지 않고 하고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감독이 프리킥 찰 기회를 안준다. 모나코TV에서 니마니와 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근데 니마니는 박주영에게 패스를 안 한다. 니마니는 결국 박주영과의 주전경쟁에서 패해 프리미어 리그 번리로 임대갔다.

  • 잘 안 알려져 있지만, 패션테러리스트다. 꼭 유니폼 팔 사이즈를 조금 크게 입어서 소매가 손을 덮고 있다. 소매로 손등 덮기는 어지간히 캐주얼한 옷을 입지 않는 이상 여자가 해도 드물게나마 지탄받을 수 있는 패션이다.

  • 골을 넣으면 항상 기도 세레머니를 하는데 이에 대해서 항상 많은 말이 있다. 하지만 정작 팀동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 애초에 세레머니 후에 멀쩡히 동료들과 교류를 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리그앙 시절, 스타드 렌 FC와의 리그경기에서는 골을 터뜨리고 세레머니를 할때 오히려 동료들이 장난을 치는걸 보면 그들도 즐기는 듯. 여담이지만, 웨인 루니의 슬라이딩 세레머니에선 아무말도 없다가 박주영의 세레머니에선 무릎다친다고 까는 해축팬들도 간혹 있다. 본인은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세레모니하다가 부상 당하는 선수들도 있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괜히 애먼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줬는데... 2010년 12월 25일,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부상으로 무릎에 크게 무리가 가서, 아직까지도 훈련장에서 무릎찜질을 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며, 비시즌 기간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 2012년 즈음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탓에 까들의 활동이 부쩍 늘었다.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다음 해축게에서 공개적으로 타 사이트 공대를 모집하고 있을 정도.참고. 이런 무개념 박까들의 난입으로 개소문닷컴의 청정지대(?)[48] 중 한 곳이었던 축구 게시판이 이미 큰 피해를 입었다.

  • 박주영이 병역 논란 당시 귀국 후 최강희 감독의 기자회견 제의를 거절하고 최강희 감독은 물론 축협 등의 모든 연락을 거부하며 잠수 탔을 때 이를 비꼬는 사람들이 투명하다,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다며 비꼴 때 사용되는 인터넷 은어 종범 대신 이제 대세는 주영이라며 대체하려고 했다. 은어로 쓰이는 종범 자체가 워낙 광범위하게 퍼진 말이라 대체되진 않았지만 그 후에도 이따금씩 사용례가 발견되곤 한다. 그런데 종범이 지역감정 문제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것도 있고 은퇴하면서 존재감이 낮아진 반면 박주영은 아스널서 절정을 찍고 있기에 주영의 점유율이 치솟는 중.

  • 2017년 들어 박주영의 토템설이 입증이 되었다는 의견이 해외축구판에서 늘었다. 우선 첫 유럽 리그 진출팀인 AS 모나코는 박주영이 뛰던 당시에는 잘 하는 팀은 아니었지만, 2016-17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과 리그 우승을 이루었고, 셀타 비고는 이후 이아고 아스파스, 놀리토 등의 활약으로 유로파 리그에 진출했으며, 왓포드 FC는 15-16시즌 EPL에 승격한 이후, 트로이 디니등의 활약으로 중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 2006~2008년 사이에 '너구리알'이라는 사람이 제작한 박주영을 주인공으로 육성 시뮬레이션 플래시 게임인 '축구왕 박주영'이 있었다. 박주영을 키워 프로선수로 만드는 게 목적이고 중간 중간 '불멸의 이순신' 플래시 게임이 들어가있었지만 축구협회측에서 합의한 초상권 협의 종료로 결국 모든 자료가 소실된 상태 관련 사진.

제작자 너구리알은 이 게임을 제작 한 이후 입대를 하고 군복무 중 지만원에게 불멸의 이순신 플래시 게임의 내용 중 허위 사실 관련으로 고소크리 맞고 이후 이 게임을 포함 자신이 만든 게임을 전부 삭제했다. 제작자는 이 일로 국군교도소를 다녀왔다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이후 불멸의 이순신 게임은 해당 인물을 모자이크 했지만 이건 별개로 다신 올라오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2017년 9월 경 중세게임 갤러리에서 원본 플래시 파일을 찾아냈다. 해당 링크

  • SNS는 일절 하지 않다가 2016년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였다. 그런데 계정을 파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광주 FC로 이적한 정조국과 농담따먹기를 하며 돌 찾으러 갔냐는 말을 하는가 하면, 상주 상무로 입대하는 후배 박희성의 사진을 올리며 비웃고 외모를 조롱하는 포스팅으로 크게 논란이 되었다. 3월엔 태국으로 이적한 김진규가 그립다는 최용수 감독의 인터뷰를 올려놓고 ㅋㅋ를 연타하고, '푸하하', '짝사랑' '뭥미', '뜬금포' 등의 해시태그를 덧붙이면서 마치 감독의 인터뷰를 디스하는 듯한 뉘앙스를 남겼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안티들이 논란을 만든거고 당사자들끼린 잘 지낸다. 최용수 감독과는 10번 가지고 농담 주고받고 15시즌 중반 최 감독이 중국 장쑤의 오퍼를 받자 가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고 FC 서울 동료들과도 친분이 깊다. 전북의 심판매수로 흉흉하던 시절 여유롭게 동료들과 야유회 나온 사진을 올려서 서울 팬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된 바 있다.


  •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득점, 특히 멋지게 들어간 득점이나 팀의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골을 넣고도 운이 좋았다. 식의 코멘트로 길게 언급하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다.

  •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마치고 귀국 당시 부진한 성적으로 비난 여론이 들끓었을때 선수단 전체에게 을 투척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엿의 내용물이 없는 포장지만 덩그러니 바닥에 놓인게 포착되었고, 이걸 먹었던 사람으로 때마침 질겅거리는 듯하는 입모양을 보여준 박주영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비난 여론에도 꿋꿋하고 멘탈이 튼튼한 박주영으로선 꽤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했으나, 직접 까먹은 물증도 없을 뿐더러 정황상 앞뒤가 엇나간 부분도 존재했고[49] 박주영 본인도 크게 기억나지 않다는 반응으로 보아 끼워맞추기식 해프닝으로 추측된다. 다만 먹으라면 먹을 순 있었을 것 같다고 밝히긴 했다.

  • IQ 150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한국의 IQ 뻥튀기식 발언을 생각하면 그가 정말 상위 0.3~1.5% 수준의 IQ를 지니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나, 평소 행동이나 축구 지능을 보면 최소한 머리가 나쁘지는 않다. 축구천재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 중 하나.

  • 카메라를 극도로 싫어하는듯 하다. 구자철이 오프시즌에 FC서울 락커룸에 놀러갔을때 박주영을 찍으러 갔을때 극단적으로 카메라를 피할려고 하여 이런것 좀 찍지마!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구자철의 유튜브 채널명을 디스했던건 덤 슛별은 나의 친구 이런것 좀 하지마 슛별은 나의 친구라니 최악이야 진짜 그런데 2022년 울산에 입단해 이젠 이 분의 카메라를 받아드려야 한다

  • K리거들이 뽑은 매너가 가장 좋은 선수 1위에 선정되었다.
파일:KLMRT5.jpg

  • 유독 언론 매체나 미디어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선수다. 그도 그럴 것이, 박주영에 관한 여러 수식어들 중 한가지는 '언론이 망친 천재'라는 타이틀이 있을 정도로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많은 언론매체와 스포츠 기자들이 그를 괴롭혀댔다. 2010년 초부터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여 병역혜택을 받기 직전까지 그를 '모나코박' 혹은 '병역기피자' 취급해댔다. 이렇게 언론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그이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누구보다 끝까지 남아 팬들에게 인사해주고 손 흔들어주고 싸인도 해주며 가장 늦게까지 남아 팬서비스 해주는 선수로 유명하다.

  • 리오넬 메시가 막 데뷔했었을 때 박주영보다 못할거라는 이불킥스러운 반응이 남아있기도 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재까지 리오넬 메시의 어시스트를 받아 골을 기록한 아시아 출신의 축구선수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박주영 단 한 명 뿐이다. 그런데, 이게 바로 다름아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기록한 자책골 되시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박주영은 유투브 채널 슛 포 러브에 출연해서 "(역대 한국 선수 중에서) FIFA 월드컵에서 양 쪽 진영에다 골을 다 넣어본 한국 선수는 저 밖에 없는 것 같다. ㅋㅋㅋ" 라고 당시 자책골을 넣었을 때의 상황을 자조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박주영의 진짜 월드컵 첫 득점은 남아공 월드컵의 나이지리아전이다.
파일:메시밥줘.png

  • 올림픽 축구에서는 반드시 언급되는 남자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손흥민이 온두라스전 부진으로, 2021 도쿄 올림픽에서는 황의조가 영 시원찮은 활약으로 8강에서 패퇴할 때 온갖 축구 커뮤니티에선 박주영을 그리워하는 반응이 언제나 빠지지 않는다. 사실 런던 올림픽 골이 한국 축구 역사상으로도 역대급 득점인지라 모두의 머리속에 깊이 새겨지는건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

  • 2021년 가을중에 SNS 댓글로 안익수 감독을 디스한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을 써올려서 코어 팬덤에선 살짝 논란이 되었다. 사실 골수팬들은 대부분 다 아는 사실이지만, 박주영은 분란을 일으키는 성격은 아닐지언정 좋은 리더감도 아니다. 최용수 때 가위 일화, 팀이 나락으로 간 2018년에 계속해서 명단제외가 되자 같이 제외된 선수들을 데리고 고연전을 관람하고 인증샷을 올리는 등 생각보다 삐딱선 타는 일이 잦았고, 감독한테 고분고분한 사람도 아니어서 대하기 피곤한 유형이다.[50] 반면 후배들이나 동료들에게는 다정하고 살가운 성격으로 보이는데 후배들에게 밥을 잘 사주는 것으로 보이며 위에서 매너가 좋은 선수 1위로 뽑힐 정도면 성격이 나쁜 편은 아니다. 단 너무 동료를 챙기는 마음이 안 좋게 이어진 적이 없는 건 아니다.

  • 홍명보의 남자라고 불릴 정도인 홍 감독과의 인연은 말년이라고 여겨지는 2022년 울산 현대로 이적하며 다시 조명받았다.

  • 유망주 시절 슈팅 각도가 호나우두와 비슷하다는 방송으로 인해 짤방까지 제조되기도 했다. 여기에 어떤 대전 팬이 인천 유나이티드의 마스코트 유티를 폭행하는 장면이 추가된 버전도 있기는 하다. 훗날 조광래호 바르셀로나 비교[51]와 더불어 기레기들의 억지 갖다붙이기의 대표 사례로 뽑힌다.

  • 친정팀 FC 서울의 창단 40주년 축하 영상을 찍었다.


10. 관련 문서[편집]




11. 같이 보기[편집]





[ 펼치기 · 접기 ]
울산 현대 2023 시즌 스쿼드

파일:1. 조수혁.png


파일:울산 현대 엠블럼.svg


파일:울산 현대 엠블럼.svg


파일:5. 임종은.png


파일:6. 박용우.png

1
3
4
5
6 (VC)
조수혁
Jo Su-Huk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GK
1987.03.18.
188cm, 83kg
장시영
Jang Si-You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DF
2002.03.31.
174cm, 69kg
이상혁
Lee Sang-Hyeok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DF
2001.01.06.
185cm, 76kg
임종은
Lim Jong-Eu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DF
1990.06.18.
192cm, 88kg
박용우
Park Yong-Woo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MF
1993.09.10.
186cm, 80kg

파일:7. 윤일록.png



파일:63. 마틴 아담 2022.png


파일:10. 바코.png


파일:11엄원상(2022).png

7
8
9
10
11
윤일록
Yun Il-Lok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MF
1992.03.07.
178cm, 65kg
보야니치
Darijan Bojanić
파일:스웨덴 국기.svg | MF
1994.12.28.
182cm, 74kg
마틴 아담
Ádám Martin
파일:헝가리 국기.svg | FW
1994.11.06.
190cm, 87kg
바코
Valeri Qazaishvili
파일:조지아 국기.svg | MF
1993.01.29.
174cm, 74kg
엄원상
Eom Won-Sa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MF
1999.01.06.
171cm, 63kg

파일:13. 이명재.png


파일:22_정승현_수정.png


파일:18. 김성준.png


파일:울산 현대 엠블럼.svg


파일:울산 현대 엠블럼.svg

13 (VC)
15 (C)
16
17
18
이명재
Lee Myung-Jae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DF
1993.11.04.
182cm, 68kg
정승현
Jung Seung-Hyu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DF
1994.04.03.
188cm, 82kg
김성준
Kim Sung-Ju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MF
1988.04.08.
174cm, 68kg
루빅손
Gustav Ludwigson
파일:스웨덴 국기.svg | FW
1993.10.20.
182cm, 75kg
주민규
Joo Min-Kyu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FW
1990.04.13.
183cm, 83kg

파일:19. 김영권.png


파일:21. 조현우.png


파일:울산 현대 엠블럼.svg


파일:23. 김태환.png


파일:24. 이규성.png

19
21
22
23
24 (VC)
김영권
Kim Young-Gwo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DF
1990.02.27.
185cm, 78kg
조현우
Jo Hyeon-Woo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GK
1991.09.25.
189cm, 75kg
김민혁
Kim Min-Hyeok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MF
1992.08.16.
183cm, 71kg
김태환
Kim Tae-Hwa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DF
1989.07.24.
177cm, 72kg
이규성
Lee Kyu-Seo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MF
1994.05.10.
174cm, 68kg

파일:울산 현대 엠블럼.svg


파일:72. 이청용.png


파일:28. 설현빈.png


파일:14. 황재환(배경제거).png


파일:울산 현대 엠블럼.svg

26
27
28
29
30
조현택
Cho Hyun-Taek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DF
2001.08.02.
182cm, 65kg
이청용
Lee-Chung-Yo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MF
1988.07.02.
180cm, 70kg
설현빈
Seol Hyun-Bi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GK
2001.08.07.
190cm, 78kg
황재환
Hwang Jae-hwa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MF
2001.04.12.
170cm, 60kg
강윤구
Kang Yun-Gu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MF
2002.04.08.
175cm, 73kg

파일:울산 현대 엠블럼.svg


파일:울산 현대 엠블럼.svg


파일:44. 김기희.png


파일:66. 설영우.png


파일:77. 민동환.png

31
36
44
66
77
아타루
Ataru Esaka
파일:일본 국기.svg | MF
1992.05.31.
175cm, 68kg
이재욱
Lee Jae-Uk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DF
2001.03.09.
170cm, 65kg
김기희
Kim Ki-Hee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DF
1989.07.13.
188cm, 80kg
설영우
Seol Yeong-Woo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DF
1998.12.05.
180cm, 72kg
민동환
Min Dong-Hwa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GK
2001.01.12.
187cm, 78kg

파일:91. 박주영.png

91
박주영
Park Chu-You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FW
1985.07.10.
182cm, 75kg
구단 정보
대표이사: 김광국 / 감독: 홍명보 / 홈구장: 울산문수축구경기장
출처: 울산 현대 웹 사이트 / 마지막 수정 일자: 2023년 1월 31일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9 22:12:32에 나무위키 박주영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4] 사실 이건 지금도 드물지만 더더욱 축구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언론인이 드물었던 당시 수준에서, 하여튼 문전 앞에서의 침착력 문제 or 정신무장의 부족 or 조직력 부재 or 기술의 부족 등등 정형화된 몇 가지의 레퍼토리만 가지고 있던 축구 언론인들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즉 옛날 축구 언론인들이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축구관으로 때려맞추다 보니까 나오는 평가였기 때문에, 옛날의 신인들은 종종 이런 평을 듣곤 했다.[15] 모나코 피지컬 테스트에서 점프 기록 1M를 달성하였다.[16] 초창기에는 피지컬도 약했고 포스트 플레이 및 제공권도 좋지 못했다. 천재라고 하지만 가능성 수준이었고 무시무시한 노력으로 보완하여 만들어진 장점이라 볼 수 있다.[17] 국대팀이 지역예선 광탈직전이었던 우즈벡전에서 극적인 버저비터로 팀을 구해내고 쿠웨이트전 선제골 등 박주영이라는 선수의 최대 수혜자로서, 업고다녔어도 모자랄 인간이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는 망언이나 해대다가 얼마 못가 경질당했다. 아드보카트 또한 공격 성향의 박주영을 키커는 커녕 수미로 내려놓고-제정신인가- 조재진에게 로빙볼이나 띄우는 역할을 시켰다. 그 결과는 스위스전 0대2 완패. [18] 국가대표에서도 많은 능력치가 최고라고 할 수는 없어도 그 다음 가는 그룹쯤에는 무난하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민첩성, 결정력, 집중력 등 아시아 무대를 압살하는데 필요한 능력치가 부족하기는 하다. 하지만 제공권이나 시야, 볼터치, 드리블, 축구감각 등 축구강국과 대결하기에는 적합한 능력치를 갖춘 선수라고 할 수 있다.[19] 허정무, 조광래 때 붙박이 주전이었던 건 맞지만 최강희 때는 아니었고, 홍명보 때는 홍명보의 아집이었다. 그렇지만 홍명보 최강희 때를 굳이 넣을 필요까지도 없을 정도로 정점에서의 플레이는 괜찮았다.[20] 박주영의 국가대표 전성기라 할 수 있는 08~12 정도의 사이에서 한국인 스트라이커들 중에서 이런 플레이가 박주영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국가대표, 최소한 아시아 정상급들 사이에서 이런 플레이가 안정적으로 가능했던 것은 박주영뿐인 것은 맞다.[21] 이동국 항목에도 있지만 K리그에서의 능력치를 그대로 가지고 가면 국대에서도 붙박이 주전이지만 06년 무릎부상으로 인한 월드컵 낙마 이후 국대만 가면 본인 스스로가 조급해져 본실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는데다 유망주 시절 지나친 혹사로 스피드도 빠르지 않다. 또한 30대 이후에도 국가대표에서 뭔가 풀릴 만할 때도 자꾸 잔부상이 생기면서 탄력을 받지 못했다.[22] 박주영이 모나코에서 뛰던 당시에는 파리생제르망에 중동의 거대 자본이 들어오기 전이었다.[23] 애초에 부상만 아니라면 진작에 정상급 공격수로 활약할 것이라고 평가받던 반 페르시였는데 그 로빈 반 페르시가 정말로 부상없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진짜 클래스를 발휘하기 시작하자 당시 아스널의 그 어떤 공격수도 반 페르시를 대체할 수 없었다.[24] 당시 아르센 뱅거 감독이 박주영을 언급했을 시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는 있으나 플레이에 자신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하다못해 후반기부터 미야이치처럼 볼턴등 하위권 팀에 임대라도 갔었더라면 다른 결과가 있었지 않았나 싶다.[25] 이뿐 아니라 아스널의 코치진들도 박주영이 감독과 코치의 지시 자체는 충실히 이행하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결국 결과적으로 실력이 없는 선수는 아니나 아스널에서 뛰기에는 부족했다는게 중론.....[26] 사실 중소리그나 빅리그 중하위권 팀에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다가 빅리그 우승권팀에서는 주전경쟁에서 밀려 그저그런 선수로 분류당하는 경우는 흔하기는 하다......[27] 이동국이 마지막 불꽃을 태웠지만 부상으로 아시안컵에서 낙마했고, 이정협도 잠깐 좋았지만 이후에는 오르락내리락 했고, 김신욱은 활용 문제 때문에 국가대표팀과 잘 맞지 않았으며 이근호, 지동원 등도 소속팀에서의 포지션상 혹은 부상 등으로 좀 그랬다. 그 외의 다른 선수들은 사실 뭐라고 말하기도 그렇다.[28] 물론 이건 황의조가 혹사를 심하게 당한 탓도 크다. 황의조는 2021년 도쿄 올림픽을 기점으로 엄청난 혹사를 당해 폼이 급격하게 떨어져 클럽과 대표팀 모두 부진했고 발목 부상과 햄스트링 부상을 입기도 했다. 월드컵 본선 출전경험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큰 경기에서 활약한다면 이러한 평가를 반전시킬 수 있었겠지만, 생애 최초로 출전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서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며 최종예선에서의 하락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조별리그 첫경기 우루과이전 빅 찬스미스 이후 주로 후반 교체선수로만 출전했다. 2023년 기준 만 30세의 나이를 생각해볼 때 다음 월드컵 출전 가능성이 없는건 아니지만 전성기는 지난 시점일 가능성이 높다.[29] 박주영이 국대에서 임팩트가 없다는 글이 있었지만 이건 틀린말에 가깝다.이미 국대 데뷔전 우즈벡전에서 0-1로 패배할 시합을 추가시간에 극적으로 동점골을 넣으면서 화려하게 데뷔했고 잠시 슬럼프에 빠졌다가도 08년 동아시아컵 중국전 2골부터 다시 이미지를 확실하게 가저간게 박주영이다. 단지 폼이 가장 좋았을때 여러가지 이유로 국대도 본인 자신도 한번에 폼이 내려간게 아쉬울 따름이다.[30] 이 말은 페이스북 유저 비하 표현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의 추천 버튼인 '좋아요'(영어로는 'Like') 버튼에 그려진 아이콘이 엄지를 치켜드는 것(따봉)이기 때문이다.[31] 사실 이는 상상플러스에서 네티즌 별명중 '축구스타 밥줘영'에서 나온 것이다.[32] Bubble Pop!의 가사 'Bubble Bubble Pop! Pop!'의 패러디.[33] 그렇다고해서 이걸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다. 전에 문서 작성에 세르비아는 2진 시차적응 등을 문제삼는 댓글이 있었으나 이런걸로 따지면 13년 스위스는 시합전날 입국했고 17년 콜롬비아는 3-4일전 입국해 더운데 사는놈들 추운데서 이겼다고 승리가 평가 절하될 이유는 없다.가나는 주전력은 빠졌지만 기안이나 월드컵 주전은 대부분 출전했다[34] 레바논이 그나마 최종예선까지는 왔지만 주전력이 약하고 결국 최종예선에서 하위권 팀이었다[35] 월드컵에서의 정성룡은 좀 억울한 바가 있다.[36] 야구 드립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합법드립은 김동주 간통 사건으로 생긴 드립이다. 이 드립이 생겼을 당시 간통은 형법상 불법이었지만, 이때 사람들이 간통이 합법이 된 줄 오해하고 김동주한테 비아냥거린 것에서 합법드립이 시작됐다. 물론 현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간통이 비범죄화되었다. 다만 이제는 간통을 저지르면 형사 처벌을 안 받는다는 거지 여전히 민사상 책임은 질 수 있다.[37] 앞 각주에 조금만 더 보강 설명을 하면, 야갤러들이 간통죄에 대한 위헌 청구 심판이 올라온 것을 보고 “이거 김동주가 올린 거 아니냐”라는 식으로 조롱한 것이 합법 드립의 시초인데 그 청구가 실제로 받아들여져서 진짜 합법이 된 것이다.[38] 합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개념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어쨌건 국가에서는 박주영으로 인해 빈틈을 인지하고 바로 병역법을 개정하기는 했다.[39] 정확히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의 활약을 반영하여 출시된 12KH 시즌 박주영이 해당한다. 양발에 빠른 속력, 무시무시한 결정력, 민첩한 드리블과 안정적인 피지컬이 합쳐져 스트라이커로서 엄청난 성능을 자랑한다.[40] 정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게 김도훈의 경우 오세아니아만 득점이 없는데 소속은 AFC지만 지리적으로는 오세아니아로 볼 수 있는 을 상대로 골을 기록한 적이 있다.[41] 2019년 최용수 감독의 발언에 의하면 후배들과 워낙 털없이 지내고 해서 아주 낙관적인 성격으로만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크한 성격이라고 한다.[42] 첫 등장인 06버전에서 -9포텐, 07에서는 -8포텐[43] 정식 발매판에서는 볼 트래핑[44] 다만 이는 유독 박주영만 짜게 준다기보다는 2010년 후반 시리즈 들어서 K리그 선수들의 평균 어빌이 하향된 게 크다. 국대에서 경쟁이 전혀 불가능하다 싶은 선수들은 죄다 110 미만의 어빌을 받고 있다.[45] 사실 그 전에 출시된 LH시즌 박주영도 출중한 체감 때문에 스탯 대비 평가가 괜찮았는데, 아예 스탯까지 사기인 12KH 카드가 나오면서 단숨에 국대 탑티어 공격수로 발돋움한 것.[46] K리그만 놓고보면 이동국의 스탯은 박주영이 비교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피파시리즈에서는 이동국의 능력치가 그리 나쁘지 않다. 국대 레벨에서도 쓸만하고[47] 그러나 위닝에서는 얘기가 달라지는데 상당히 능력치가 편중되어 있다. 헤딩이나 몸싸움은 그럭저럭인데 연계 쪽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되었는지 슈팅력과 헤딩은 뛰어나나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반대로 박주영은 디펜스 골기퍼 스킬 빼고는 거의 모든 능력치가 70대 이상이다.[48] 사실 여기도 파고들어 보면 문제가 많은 곳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서로간에 심한 욕은 안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청정지대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개소문닷컴에는 이것도 안 되는 지대가 많다.[49] 실제 영상에선 엿테러를 받은 즉시 대표팀 전원이 자리를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는데, 주워 먹을 여유는 없었다는것.[50] 감독은 아니나 국대에서 박지성도 비슷한 말을 한적이 있다. 어느 방송에서 박지성에게 박주영 선수에게 격려의 한 마디를 이라고 했다가 제발 말좀 들어! 라고 한적이 있어서 윗사람 말에 고분고분한 타입은 아닌 걸로 추청된다. 서울 시절에서도 최용수감독과는 궁합이 좋은편이었지만 후속 감독들이었던 황선홍, 이을용 등과는 상당한 마찰이 있었다는걸 감안하면 감독들과 상성이 안 좋을시에 상당히 다루기 힘든 존재가 된다. 반대로 그런 박주영을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홍명보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기도 한다.[51] 여기서는 박주영을 무려 메시에 대입하는 짓을 저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