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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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11년 4월 27일에 치러진 재보궐선거. 해당 선거구는 38개로, 국회의원 3명, 광역자치단체장 1명, 기초자치단체장 6명, 광역의원 5명, 기초의원 23명을 뽑는 선거였다. (투표율: 39.4%)
2. 선거 지역[편집]
- 24개 선거구 : 당선 무효로 인한 재보궐선거
- 14개 선거구 : 당선인 사망이나 국회의원 피선거권 상실, 사퇴 등으로 인한 재보궐선거
보다시피 선거구도 많이 걸렸고, 정치 쟁점이었던 강원도지사나, 여야의 거물들이 출마한 지역구 등으로 미니 총선, 대선 전초전으로 거론되었다.
3. 출구조사[편집]
3.1. 세대별 예상 득표율[편집]
(YTN, 단위는 %)
- 성남시 분당구 을
- 20대 강재섭 39.7 - 손학규 58.2 - 이재진 2.1
- 30대 강재섭 27.1 - 손학규 72.0 - 이재진 0.9
- 40대 강재섭 30.4 - 손학규 68.6 - 이재진 1.0
- 50대 강재섭 51.2 - 손학규 47.4 - 이재진 1.4
- 60대이상 강재섭 76.2 - 손학규 22.2 - 이재진 1.6
4. 선거 결과[편집]
4.1. 국회의원[편집]
4.1.1. 경기 성남 분당 을[편집]
4.1.2. 전남 순천[편집]
4.1.3. 경남 김해 을[편집]
4.2. 광역자치단체장[편집]
4.3. 기초자치단체장[편집]
4.4. 광역의원[편집]
민주당 김종담 후보가 당선되었다.
4.5. 기초의원[편집]
보수 강세지역답게 한나라당 안영철 후보가 과반 득표로 당선되었다.
5. 화젯거리[편집]
출발은 서로 정책선거, 공명선거를 내걸었으나 선거일이 임박해 오면서 현실은 시궁창. 정책선거, 공명선거는 어디로 가고 금권선거, 흑색선전, 상호비방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유권자들의 선거 열기는 상당히 뜨거웠다. 전국 평균 투표율이 39.4%를 찍은 것. 특히 분당 을의 경우 퇴근 시간대 직장인들의 투표율이 높아서 최종 투표율 49.1%을 찍었다. 국회의원 재보선과 강원도지사 선거 투표율은 평균 40%가 넘어가는 엄청난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전까지의 재보선 투표율이 고작 20~30%대였다는 걸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라 볼 수 있다. 정치권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높은 수치라고 한다.
그리고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의 패배. 김해시 을 선거구를 제외한 모든 주요 선거구에서 패배했다.
5.1. 분당대첩[편집]
가장 관심을 받은 지역구는 성남시 분당구 을 보궐선거로 강재섭 vs 손학규의 빅매치가 성사되면서 양 당의 거물급 인사들이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양쪽 다 정치생명 운운할 정도로 치열했고 이쪽도 당 수뇌부급간의 대결이라 이기는 쪽은 당 내 입지가 강해지고 지는 쪽은 당 내 입지가 약해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선거 승패의 기준을 "분당을 +1"이라 표현했을 정도였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분당은 "천당 아래 분당", "경기도의 강남"이라는 별명처럼 수도권에서 강남3구에 버금가는 텃밭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1기 신도시 재건축, 리모델링 문제, 신분당선 미금역 문제, 판교 분구 논란, 성남-광주-하남 통합 추진 논란 등으로 보수 지지층이 많이 얇아졌다고 판단, 여론조사에서도 오차범위 내에서 어떤 조사는 강재섭 후보가, 어떤 조사는 손학규 후보가 앞서면서 초박빙 지역으로 급부상하였다.
하지만, YTN 출구조사 결과에서 손학규 후보가 여유있게 승리하는 것으로 나왔고 결국 손학규 후보가 극적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선거가 마무리되었고 민주당의 이변같은 승리는 "분당대첩"(혹자는 "성남대첩")으로 불리면서 회자되고 있다. 참고로 이 지역에서만 출구조사가 실시됐다.
선관위에 따르면, 오전에는 출근하는 직장인의 표심[3] 으로 손학규가 이기다가 오후부터 점차 장,노년층의 여당표로 뒤집어졌는데, 다시 퇴근시간의 재버프[4] 로 손 대표가 이긴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강재섭은 패배 이후 사실상 정계은퇴를 하게 된다.
5.1.1. 야권 내 입지 변화[편집]
민주당, 진보정당 등 대권 후보들의 입지 변화가 두드러졌다. 재보선 직전 야권 내에서의 지지율이 두자리수로 선두를 달리던 유시민/한명숙의 지지율은 소폭 내린 반면, 분당 대첩에서 승리한 손학규 대표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다. 야권 내에서 41.4%, 여야 후보를 모두 아우르는 조사에서도 11.5%를 기록하며 야권 대표주자 위치를 굳혀간다. 정치인 손학규의 마지막 전성기가 찾아온 셈이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내 대표주자였던 박근혜와의 가상 양자대결에서는 52.3% vs. 손학규 33.1%(...)로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고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에 공감하는 여론이 61.9%에 달했음에도 인물론에서 박근혜를 이길 수 있는 야당 후보가 없었다.
5.2. 강원도 / 엄기영 선거법 위반 사건[편집]
분당을 다음으로 이슈가 된 지역은 강원도지사 보궐선거다. 이 동네가 중앙정계로부터 이렇게 관심받은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사실 이 지역은 이광재의 당선 무효형 때부터 논란이 있었으며, 지방선거 직전까지도 친야권 인사로 분류되던 엄기영 후보의 여당 입당으로 예전부터 관심이 높았던 지역이었다. 심지어 MBC를 좌빨 방송이라고 까던 한나라당의 보수파쪽에서도 여당의 엄기영 영입을 깠다. 엄기영 후보가 왜 한나라당으로 입당했는지 항목 참조.
민주당의 경우, 재보궐선거가 결정나면서 홍천횡성 재선의원 출신인 조일환 의원과 동해삼척 출마를 준비중이었던 동해출신의 이화영 의원, 춘천 출신 최문순 의원 등이 도지사 선거에 도전했다. 이후 최문순 의원이 도지사 후보로 결정된다.
엄기영 후보가 여당으로 입당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광재 전 지사와 최문순 전 의원[5] 은 후보양보까지 거론하며 말렸고, 이후에도 정치적 배신 행위, 야합이라면서 깠다. 정파 문제를 떠나 이전부터 출마 안 한다, 지방선거에서의 한나라당 후보 방문은 단지 인사차였다라고 하던 엄기영 후보로서는 콩처럼 신나게 까였다.
이전까지는 한승수 전 총리가 거론되어 김태호 후보, 분당을 후보로 거론되던 정운찬 전 총리와 함께 "총리 벨트"(;;)가 결성되려고 했다고 한다. 여하간 누가 나왔어도 뜨거웠을 곳이다.
일단 여야의 두 후보가 MBC 사장 출신이며 춘천고 선후배 지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 된 이광재 전 지사의 당선 무효 크리로 여야는 이광재 책임론vs이광재 동정론 구도로 흘러갔다. 여기에 민주당이 이광재 전 지사의 전임자인 김진선 전 지사의 일까지 들고 나오면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너 죽고 나 살자라는 식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이러다 보니 양 측이 현실성 없어보이는 공약들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다른 지역들도 이런 선심성 공약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강원도의 경우에는 다른 지자체보다 재정도 빈약한데다 알펜시아 실패로 빚도 엄청난 상황인데 경제적 논리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개발했다가는….
여론조사 공표 시한인 4월 20일까지 나온 여론조사들에서는 엄기영 후보가 10%p 이상 최문순 후보를 앞서고 있는 걸로 나왔으나 엄기영 후보 측에서 불법 선거사무소가 운영되었던 초대형 부정선거 사건이 터졌다.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의 경우 후보자는 선거본부사무소 이외에도 각 기초자치단체별로 연락소(지역 선거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는데, 미등록 불법 사무소를 차려놓고 유권자들에게 지지전화를 돌리는 것이 적발된 것. 엄 후보측은 선거법을 몰랐다고 해명하였다.
엄 후보와 한나라당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최 후보측이 22만명의 불특정 다수에게 SBS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 1% 초박빙이라는 내용의 실제 보도와는 다른 내용의 허위 문자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아내 반격카드로 활용하였다. 이번에는 최 후보 쪽에서는 담당자가 잘못 알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런데 또 엄기영 후보 측에서 문제가 터졌다. 지역주민들에게 식사 등의 향응을 제공했다가 선관위에게 걸린 것. 이에 민주당 측에서는 이처럼 막판까지 불법과 부정을 저질러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이런 소동 덕에 강원도는 오랜만에 방송 3사 뉴스의 머릿기사를 장식했고, 평소라면 핵폭탄급 이슈가 되었을 김해 을 특임장관 개입 건은 묻혀버리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이 꼬라지 보면 강원도지사 재선거 또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기도. 선거 결과에 영향을 가장 중대하게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뚜껑이 열리자 득표 양상은 영서 vs 영동의 구도로 확연하게 갈렸다. 그리고 강릉시 등지에서의 상당한 분전에도 불구하고, 춘천시와 원주시를 위시한 영서에서 밀려버린 엄기영 후보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선거 결과는 최문순 후보의 당선.
한편 강원도 태백시의회 재보궐선거에서는 1위를 기록한 유태호 후보와 2위 심용보 후보의 표차가 5표로 갈렸다. 이후 두 후보는 2014년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맞붙는다.
5.3. 김해 을[편집]
김해, 특히 김해을 지역구는 민주당, 한나라당, 국민참여당 세 당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이곳은 한나라당 전통 텃밭인 경남이면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기 때문에 민주당, 특히 국민참여당에게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곳이었다. 민주당에게는 원래 최철국의원의 지역구였다.
한나라당에서는 경남도지사 출신인 김태호를 후보로 내보냈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단일화 끝에 국민참여당 이봉수 단독출마로 결론이 내려졌다.
분당 을이 수도권 거물급 인사들의 충돌, 강원도지사가 MBC, 춘천고 동문들의 맞대결로 관심이 쏠려 있어 김해을의 선거는 단일화 이후 상대적으로 묻히는 감이 있었다.
지방선거에서 김두관이 경남도지사에 당선되는 등 경남 민심이 한나라당에서 이반되었다는 징후가 역력했고, 여기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동남권 신공항이 3월 30일 전면 백지화 되면서 반 정부 정서에 불을 붙였다. 여기에 친노계통의 정신적 수도이미지까지 더해져서 후보도 내지 않은 순천을 제외한다면 한나라당이 가장 불리한 지역이라는 평까지 나오고 있었다. 때문에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 혼자서 고군분투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선거기간 내내 김태호 후보는 홀로 자숙형 유세를, 이봉수 측은 유시민의 지원 유세와 함께 쐐기를 박자는 공세형 유세를 감행했다.
거기다가... 4월 24일 이재오 특임장관이 김해을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돠면서 난리가 났다. 국민참여당은 특임장관 휘하 공무원들의 수첩을 김태호 후보 측 사무실 근처에서 발견했다면서 이것이 특임장관이 선거에 불법으로 개입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엄기영 후보 측의 불법선거사무소 논란이 터진 지 얼마 안 되어서 이런 일이 발생하자 크게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참여당은 특임장관 및 부하직원 4인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러가지 한나라당의 악조건, 민주당 지역구였다는 점, 또 여론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선거결과는 이봉수 후보의 석패. 김태호 후보가 경남도지사 경력이 있던 인물이였던 반면 이봉수 후보는 김해 출신인거 빼면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결정타였다.[6] 거기에 주촌면, 진례면, 회현동에서 자그마치 20% 이상이라는 격차를 허용한 것도 패인이 되었다..)[7] 김해을 투표자의 10%도 안되는 곳에서 승부가 갈린 것이다.(오히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유면이나 내외동의 경우 1~2% 격차밖에 안나 승부를 가르지는 못했다. 거기에 단일화 후보를 낸 지역 중 유일하게 패배한 곳. 국민참여당은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패배 이후 또 통합후보를 내놓고 지면서 사실상 생명이 끝났다고 여겨지고 있다.[8] 하지만 정작 타 지역에서의 야당 승리는 유시민이 적극적이었던 야권단일화의 열매였으니 유시민은 자신의 철학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놓고도 남 좋은 일만 한 셈.
반면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당선된 김태호 후보는 한나라당에서 입지를 상당히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언론 등 대부분의 평가는 김해는 한나라당의 승리가 아니라 김태호의 개인기로 이겼다는 것. 때문에 재보궐선거에서 실질적으로 한나라당이 거둔 승리는 1승도 없다는 것이 주된 평가이다. 실제로 한나라당에서도 김해의 승리로 위안을 삼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투표율이 41.9%로 비교적 낮았던 것도 원인이었다.[9]
다소 외람된 얘기지만 김태호가 인물이 훤칠하다는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얘기도 있다. # 하지만 이 점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키 크고 잘생긴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호감을 준다는 건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겉모습만으로 표를 주는 건 아니지만 투표는 결국 사람이 한다는 점에서 호감도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에 틀림없고, 다른 조건이 비슷하거나 부동층이 많다면 이게 의외로 결정적 차이가 될 수 있다.
선거 당일에 '창원터널 디도스'라는 사건이 발생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5.4. 순천[편집]
전라남도 순천시의 경우 민주노동당의 김선동 후보가 야당 단일 후보가 되었고, 민주당이 무공천을 표명했으나 민주당 소속 지역 정치인들이 대거 반발, 무려 8번부터 13번까지 6명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민주당은 박지원 원내대표, 정동영 전 장관까지 동원되면서 야권 단일후보를 지지했고, 성과를 내고 있는 분위기지만 무소속 후보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모양. 사실 이곳도 광주 남구 등에 이어 세번째로 치러지는 비민주당 후보들의 호남 재보선이지만 석패, 3등에 이어[10] 계속 패배하고 있는 만큼 귀추가 주목된다. 민주당내 반발이 작은 이유는 "안 될테니, 차라리 지금 주고 총선 때 막아내는게 낫다"라는 정서라고도. 민주당 입장에선 이래저래 골치 아픈 곳. 한나라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선거 결과는 민노당 통합 후보의 승리. 민노당은 야권연대에서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5.5. 태안[편집]
충청남도 태안군은 자유선진당 텃밭이다가 지난 지방선거에 무소속 김세호 후보가 당선된 곳인데 선거법 위반크리가 걸려버렸다. 다시 또 부활한 삼파전.. 민주당은 정권 심판, 한나라당은 태안시 드립을 쳤지만 결국 원래 주인(?)이던 자유선진당의 진태구 후보가 거뜬히 군수 자리를 먹었다. 이미 두 차례 당선 경험이 있는 후보답게 이 후보의 전통적 지지층인 어업 관계자들의 버프를 받은 듯. 또한 태안읍과 안면읍의 소지역주의도 크게 작용했다.[11] 다만 선거 중간엔 33%, 33%, 33%인 개표현황이 나와 "역시 충남은 삼분지계로구나" 라는 반응이 나왔다.
5.6. 그 외[편집]
충청도의 경우는 다른 지역과 달리 진보는 그냥 묻히고 대체로 보수/중도 지향 정당끼리 경합하는 양태를 취하게 되었으나 이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서 가장 굵직한 선거구인 태안군수에서 과반 가까운 높은 지지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누르고 자유선진당 진태구 후보가 낙승하였다. 그 외에도 충청남도 의회의원 선거구 4곳 중 3곳에서 승리함으로써 이 지역에서 자유선진당의 영향력이 건재함을 확인시켰다.
울산광역시에서는 민주노동당이 동구청장을 가져감으로써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의 아쉽게 석패한 것을 되갚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의회의원 선거구에서는 거제도에서 1석, 안성시에서 1석을 획득함으로써 꽤 약진했다. 순천에서의 승리는 야권연대 효과라 그렇다 치더라도(그리고 득표율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나머지 3석은 거의 민노당 혼자 힘으로 쟁취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군소정당으로서는 무서운 약진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민주당은 울산 중구에서 첫 당선자를 낼 기회였으나 아쉽게도 3% 차이로 졌다. 이는 울산 중구의 보수 강세를 고려하면 대단한 성과다.[12]
진보신당은 이번에 아무 당선자도 내지 못했다. 국민참여당은 그나마 이슈라도 끌어보고 졌는데...
결과적으로 이번 재보궐선거 결과로 한나라당 지도부가 전원 사퇴하였으며 이명박 정부의 개각 폭도 커질 전망으로 나왔는데, 실제 해당 선거 이후에 교체된 부서는 5월 31일 환경부(이만의→유영숙)와 고용노동부(박재완→이채필), 국토해양부(정종환→권도엽)였고, 며칠 뒤인 6월 2일 기획재정부(윤증현→박재완)와 농림수산식품부(유정복→서규용)의 장관이 교체되었다.
5.7. 보기 드문 재보궐선거 출구조사[편집]
분당 을 출구조사 결과 화면
성남 분당 을에서는 재보궐선거로는 보기 드물게[13] , 밀레니엄 이후로는 최초로 출구조사가 실시됐다.[14] YTN-한국리서치 공동으로 출구조사를 실시했는데, YTN은 작년 지방선거에서 굴욕을 맛본 적이 있지만, 이번 출구조사에서는 피했다. 출구조사에서는 손학규의 득표율이 실제보다 3.2% 높게 나왔다.[15] 즉, 당선 여부만 맞춘 것이었고 오차는 제법 컸다.
[야권단일] A B C D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단일 후보[1] 트로트 가수 박상철과는 동명이인으로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서대문구 을 지역구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정두언 후보에게 석패한 바 있다.[2] 아이러니하게도 이 선거 이후 김경재는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함과 동시에 새누리당에 입당했고, 이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기독자유통일당 테크(...)를 타며 8.15 광복절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에 참석하기까지 한다.[3] 오전 6~9시 동안 10.9%[4] 마지막 2시간(오후 6시~8시) 동안 투표율이 9.1% 상승[5] 선거를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한다.[6] 김해을 지역은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게 큰 장점이 되지는 못했다. 실제로 김해을 선거구에 고향을 둔 시민은 20%에 불과하다고 한다.[7] 실제 이 세지역에서의 표차만 1,857표로 김태호와 이봉수의 표차인 1,773표보다도 많다![8] 이로부터 1년 후에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은 본 재보선에는 불출마 선언을 했던 김경수 노무현재단 사무국장을 영입해 김태호와 맞붙었다. 결과는 이봉수보다 더 큰 격차로 낙선... 재보궐 패배로 독불장군 이미지를 뒤집어쓴 유시민이 억울할 만하다.[9] 물론 비교적이라는 거지, 재보선 투표율이 40%대면 낮은 건 아니다.[10] 이경우는 야4당 단일후보가 무소속에 이어 2위를 했다. 민주당은 3위를 기록했고.[11] 한나라당과 민주당 후보는 모두 태안읍 출신이고 자유선진당 후보는 안면읍 출신인데, 태안읍의 표는 분산되고 안면읍의 표는 몰렸기 때문에 자유선진당 후보가 당선되었다.[12] 다만 이것이 임동호 후보가 낸 최고 득표율이였다.[13] 1997년 7월, 9월 재보선때 MBC에서 출구조사를 실시한 전례가 있고, 과거에 몇 차례 있긴 했다.[14] 출구조사는 10개 투표소에서 유권자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오차범위는 ±1.8%p였다.[15] 출구조사 54.2%, 개표 결과 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