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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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대 기록
2. 본선 진출 이전
3.1. 32강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 0 : 1 패
3.2. 32강 조별리그 크로아티아전 - 0 : 1 패
3.3. 32강 조별리그 자메이카전 - 1 : 2 패
4.1. 32강 조별리그 벨기에전 - 2 : 2 무
4.2. 32강 조별리그 러시아전 - 1 : 0 승
4.3. 32강 조별리그 튀니지전 - 2 : 0 승
4.4. 16강전 터키[A]전 - 0 : 1 패
5.1. 32강 조별리그 호주전 - 1 : 3 패
5.2. 32강 조별리그 크로아티아전 - 0 : 0 무
5.3. 32강 조별리그 브라질전 - 1 : 4 패
6.1. 32강 조별리그 카메룬전 - 1 : 0 승
6.2. 32강 조별리그 네덜란드전 - 0 : 1 패
6.3. 32강 조별리그 덴마크전 - 3 : 1 승
6.4. 16강전 파라과이전 - 0 : 0 무 (PSO 3 : 5 패)
7.1. 32강 조별리그 코트디부아르전 - 1 : 2 패
7.2. 32강 조별리그 그리스전 - 0 : 0 무
7.3. 32강 조별리그 콜롬비아전 - 1 : 4 패
8.1. 32강 조별리그 콜롬비아전 - 2 : 1 승
8.2. 32강 조별리그 세네갈전 - 2 : 2 무
8.3. 32강 조별리그 폴란드전 - 0 : 1 패
8.4. 16강전 벨기에전 - 2 : 3 패
9.1. 32강 조별리그 독일전 - 2 : 1 승
9.2. 32강 조별리그 코스타리카전 - 0 : 1 패
9.3. 32강 조별리그 스페인전 - 2 : 1 승
9.4. 16강전 크로아티아전 - 1 : 1 무(PSO 1 : 3 패)


1. 역대 기록[편집]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29위

대회
결과
순위
경기
승점



득점
실점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1930년 우루과이
불참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1934년 이탈리아
불참
파일:프랑스 국기.svg
1938년 프랑스
기권[1]
파일:브라질 국기.svg
1950년 브라질
출전 금지[2]
파일:스위스 국기.svg
1954년 스위스
본선 진출 실패[16개국][3]
파일:스웨덴 국기.svg
1958년 스웨덴
불참
파일:칠레 국기.svg
1962년 칠레
본선 진출 실패[16개국][4]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966년 잉글랜드
불참
파일:멕시코 국기.svg
1970년 멕시코
본선 진출 실패[16개국][5]
파일:독일 국기.svg
1974년 서독
본선 진출 실패[16개국][6]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1978년 아르헨티나
본선 진출 실패[16개국][7]
파일:스페인 국기.svg
1982년 스페인
본선 진출 실패[24개국][8]
파일:멕시코 국기.svg
1986년 멕시코
본선 진출 실패[24개국][9]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1990년 이탈리아
본선 진출 실패[24개국][10]
파일:미국 국기.svg
1994년 미국
본선 진출 실패[24개국][11]
파일:프랑스 국기.svg
1998년 프랑스
조별리그
31위
3
0
0
0
3
1
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2002년 한일
16강
9위
4
7
2
1
1
5
3
파일:독일 국기.svg
2006년 독일
조별리그
29위
3
1
0
1
2
2
7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2010년 남아공
16강
9위
4
7
2
1
1
4
2
파일:브라질 국기.svg
2014년 브라질
조별리그
29위
3
1
0
1
2
2
6
파일:러시아 국기.svg
2018년 러시아
16강
15위
4
4
1
1
2
6
7
파일:카타르 국기.svg
2022년 카타르
16강
9위
4
7
2
1
1
5
4
파일:캐나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멕시코 국기.svg
2026년 북미









합계
16강 (4회)
7/22[12]
25
27
7
6
12
25
33

2. 본선 진출 이전[편집]


일본은 1936 베를린 올림픽 남자축구 8강 8위[13]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축구 동메달 3위를 기록하는 등 옛날부터 메이저 대회에서 성적을 간간히 내 왔으나, 전세계인들의 대축제인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은 지역예선에서 늘 라이벌 대한민국에게 발목을 잡혀서 국가의 네임밸류 치고는 상당히 늦었다. 1회 대회인 1930 우루과이 월드컵 ~ 1938 프랑스 월드컵까지는 당시 열악했던 세계 교통 수단의 경제적인 이유 및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불참하거나 기권했고, 4회 대회인 1950 브라질 월드컵에는 독일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추축국이라는 책임을 물어 아예 출전권 자체가 박탈되었다.[14] 그래서 1 ~ 4회 대회까지는 아예 지역예선조차 치르지 못했다.

일본이 처음으로 월드컵 지역예선 참가 신청을 한 것은 1954 스위스 월드컵이었다. 당시 아시아는 지역예선 13조에 편성되어 있었는데, 이때 아시아 팀들 중에서 참가 신청을 한 나라는 일본과 더불어 대한민국, 대만이 있었다. 그런데 예선전을 치르기 직전에 대만이 먼저 기권을 선언하면서 결국 예선전은 한일전으로 압축되었다. 본래는 홈 & 어웨이로 진행되어야 했으나 1954년 당시 한국과 일본은 미수교 상태였고, 골수 반일주의자였던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왜놈들이 이 땅을 밟게 할 수는 없다!"라고 강경하게 한국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을 반대했고 결국 2경기 모두 일본에서 치렀다.[15] 그리고 1차전에서 일본은 홈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1:5로 대패를 당했고, 2차전에서 반드시 이겨야 3차전 플레이오프를 할 수 있었으나[16] 2:2 무승부에 그치며 결국 아시아예선 탈락하여 16개국 본선 진출 실패했다. 이 때문인지 다음 대회인 1958 스웨덴 월드컵에는 다시 또 불참했다.

1962 칠레 월드컵FIFA의 노골적인 대륙 차별이 있었던 대회였다. 전세계 단 16장의 본선 진출권 중 유럽이 9장을 가져갔고, 아시아, 아프리카는 대륙 플레이오프로 2장을 추가 획득할 수 있도록 했으며, 남미도 개최국 칠레, 디펜딩 챔피언 브라질, 그리고 지역예선을 통해 얻는 3장의 출전권과 북중미와 대륙 플레이오프로 1장을 추가 획득할 수 있도록 했다. 즉, 플레이오프를 빼고 유럽과 남미가 무려 14장이나 독식하고 있었다. 사실상 유럽과 남미 단 둘이서만 즐기겠다는 심보였다. 아시아는 0.5장만이 분배되었는데 아시아 지역에서 1위를 해도 유럽과 플레이오프를 해야 했다. 즉, 그냥 나오지 말란 소리나 다름없었다. 당시 아시아 팀 중에서 출전 신청을 한 건 일본과 더불어 대한민국, 인도네시아였다. 그런데 인도네시아가 돌연 기권을 하면서 8년 전과 마찬가지로 또 다시 한일전으로 압축되었다. 서울에서 열린 1차전에서 일본은 또 대한민국에 1:2로 패배하였고, 2차전 도쿄에서 열린 홈 경기에서도 0:2로 패배하며 또 다시 대한민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지역예선 탈락했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는 북한과의 맞대결을 피할 목적으로 또 다시 불참했다.

1970 멕시코 월드컵에는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두 대륙을 묶어서 1장의 16개국 본선 진출권이 부여되었다. 일본은 1차예선에서 대한민국, 호주와 함께 한 조에 편성되었다. 1차예선은 서울에서 풀 리그 형식으로 치러졌다. 1차전 호주와의 경기에서 일본은 졸전 끝에 1:3으로 패배했고, 2차전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도 2:2 무승부에 그쳤다. 3차전 호주와의 경기에선 1:1 무승부에 그쳤고, 4차전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도 0:2로 패배하며 2무 2패로 조 최하위에 그쳐 또 다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1974 서독 월드컵 역시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두 대륙을 묶어서 1장의 16개국 진출권이 부여되었다. 이 대회의 지역예선은 A지역과 B지역으로 나눠서 진행했는데, B지역은 2개 조로 나누어 조별리그를 치러 각 조 1위 팀끼리 대결을 거쳐 승리한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A지역은 2개 조로 나누어 조별리그를 치러 각 조 1, 2위 팀이 준결승전에 진출해 1조 1위 - 2조 2위, 2조 1위 - 1조 2위끼리 대결한 다음 승자가 결승전을 치러 우승한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그리하여 A지역 우승자와 B지역 우승자끼리 대결하여 이긴 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일본은 A지역에 속했는데 홍콩, 남베트남과 함께 1조에 속했다. 일본은 1차전에서 남베트남을 4:0으로 이겼으나 2차전에서 홍콩에 0:1로 패해 1조 2위로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준결승 상대는 이스라엘이었는데, 이스라엘에 0:1로 패배해 결국 또 예선 탈락했다.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역시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두 대륙을 묶어서 1장의 16개국 본선 진출권이 부여되었다. 이번에는 참가 신청한 팀들을 5개 조로 나누어 조별리그를 치른 후 각 조 1위 팀이[17] 최종예선에 진출해 풀리그로 진행하여 1위를 차지한 팀이 본선에 가는 방식이었다. 일본은 대한민국, 북한, 이스라엘과 함께 2조에 속했다. 그러나 예선 직전에 북한이 돌연 기권을 선언하며 대한민국, 이스라엘과만 경기하게 되었다. 일본은 1차전에서 또 이스라엘에 0:2로 패배하며 불안한 출발을 했고, 2차전에서도 또 이스라엘에 0:2로 패배했다. 3차전 대한민국과의 홈 경기에서 0:0으로 비겼지만 4차전 원정 경기에선 또 0:1로 패배하며 결국 1무 3패에 그쳐 조 최하위로 예선 탈락했다.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선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두 대륙을 묶어 2장의 24개국 본선 진출권이 부여되었다. 이 대회 지역예선은 좀 특이하게 진행되었는데, 1차예선은 참가 신청을 한 20개 나라를 4개 조로 나누어서 조별리그를 치르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4조만 특이하게 그룹 결정전을 거쳐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의 1, 2위가 준결승전을 치러 그 승자가 또 결승전을 치러 우승한 팀을 4조 1위로 결정했다. 일본은 북한, 중국,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와 함께 4조에 속했다. 그룹 결정전 상대는 싱가포르였고, 일본이 1:0으로 승리해 A그룹에 속했다. 일본은 1차전에서 중국에 0:1로 패배했지만 2차전에서 마카오를 3:0으로 꺾어 조 2위로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준결승 상대는 북한이었는데,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결국 북한에 0:1로 패배하며 또 다시 지역예선의 벽을 넘지 못했다.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선 비로소 아시아 단독으로 2장의 24개국 본선 진출권을 부여받았다. 이 대회 지역예선은 3단계로 나뉘어 치러진다. 1라운드는 4개의 그룹로 국가를 나누고, 각 포트의 국가들을 A와 B로 조를 편성해 각 조의 1위 팀, 총 8개 팀이 2라운드로 진출한다. 2라운드에서는 8개 팀들을 또 다시 추첨해 두 팀씩 홈 앤 어웨이 경기를 치러 네 팀이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다. 최종 라운드에서는 진출한 네 팀을 2라운드처럼 두 팀씩 나누어 홈 앤 어웨이 경기로 승리한 두 팀이 월드컵에 진출하게 된다. 일본은 4그룹 B조에 속했다. 같은 조에 속한 팀은 북한과 싱가포르였다. 일본은 1차전에서 싱가포르를 3:1로 꺾고 2차전에서 북한을 1:0으로 꺾으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리고 3차전에서 북한과 0:0으로 비겼고, 4차전에서 싱가포르를 5:0으로 대파하며 3승 1무로 조 1위를 차지해 2차예선에 진출했다. 2차예선 상대는 홍콩이었는데, 일본은 1차전 홈 경기에서 3:0 대승을 거두었고 2차전 원정 경기에서도 2:1로 승리해 합산 점수 5:1로 홍콩을 누르고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최종예선 상대는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1차전 홈 경기에서 1:2로 패배했고, 2차전 원정 경기에서도 0:1로 패해 결국 또 대한민국의 벽을 넘지 못하며 본선 진출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역시 아시아에 2장의 24개국 본선 진출권이 부여되었다. 이 대회 지역예선은 2단계로 치러지는데, 1차예선에서는 총 22개 팀을 6개 조로 나누어 조별리그를 치러 각 조 1위를 한 팀이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그리고 최종예선은 풀 리그 형식으로 치러지는데 거기서 우승(1위)과 준우승(2위)를 한 팀이 본선에 오른다. 일본은 1차예선에서 북한, 인도네시아, 홍콩과 함께 6조에 속했다. 일본은 1차전 상대 홍콩과 2차전 상대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각각 0:0 무승부에 그치며 불안한 출발을 했다. 3차전에서 북한을 2:1로 이기고 4차전에서 인도네시아를 5:0으로 대파하며 다시 본 궤도에 오르는 듯했으나, 4차전에서 또 홍콩과 0:0으로 비겼고 5차전에서 북한에게 0:2로 완패해 2승 3무 1패에 그쳤다. 그리고 북한이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기고 조 1위를 차지하면서 결국 조 2위에 그쳐 또 다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90월드컵 24강 본선에 대한민국이 아시아 예선 우승 진출, UAE가 준우승 진출 하였다.

1994 미국 월드컵 역시 아시아에는 우승팀(1위)과 준우승팀(2위)의 2장의 24개국 본선 진출권이 부여되었다. 예선 방식은 지난 대회와 같이 1차예선에 참가하는 28개 팀을 6개 조로 나누어 조별리그를 치른 후 각 조 1위를 한 팀이 최종예선에 진출하고,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이 6개 팀이 풀 리그로 경기를 치러 1, 2위를 차지한 팀이 본선에 진출한다. 일본은 1차예선에서 아랍에미리트, 태국,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와 함께 6조에 속했다. 약체 팀들이 속한 조인지라 일본은 7승 1무의 성적을 거두며 2위 아랍에미리트를 승점 2점 차로 간신히 따돌리고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최종예선 상대는 대한민국,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였다. 일본은 1차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0:0 무승부를 거두었고, 2차전에선 이란에게 1:2로 패해 불안한 출발을 했다. 그러나 3차전에서 북한을 3:0으로 대파하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4차전에선 번번이 본선 진출의 꿈을 좌절시켰던 숙적 대한민국을 미우라 카즈요시의 골 한 방으로 1:0으로 격침시켜 2승 1무 1패의 성적으로 단숨에 조 1위까지 올라갔다. 이제 거의 본선 진출 직전까지 온 상황이었다.

마지막 경기를 앞둔 시점에서 최종예선 순위는 일본이 2승 1무 1패(승점 5점)[18]였고, 사우디아라비아가 1승 3무(승점 5점)로 승점은 동률이었으나 골득실에서 일본이 2골 더 앞서서 일본이 1위, 사우디아라비아가 2위였고 그 뒤로 대한민국과 이라크가 1승 2무 1패(승점 4점), 이란이 2승 2패(승점 4점)로 동률이었으나 골득실에서 대한민국이 +2, 이라크가 0, 이란이 -2였으므로 대한민국이 3위, 이라크가 4위, 이란이 5위였다. 그리고 6위가 1승 3패(승점 2점)를 기록한 북한이었다. 북한은 최종전에서 대한민국을 큰 점수 차로 이겨도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승점을 넘을 수 없기 때문에 탈락이 확정되었고 나머지 5팀 모두 본선 진출의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인 일본 vs 이라크, 대한민국 vs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vs 이란은 사전 담합 및 승부 조작 방지를 위하여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다른 경기장에서 동시에 치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일본이 24강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라크를 1점 차로라도 이겨야 했다. 만약 비기게 된다면 북한이나 이란이 무승부 이상의 성적을 내야만 본선 진출이 가능해진다. 혹여나 이라크에게 지게 된다면 계산할 것도 없이 그 즉시 탈락이다. 이렇게 경기가 시작되었다. 갈 길이 급한 일본은 초반부터 이라크를 강하게 몰아붙였고, 전반 5분 만에 미우라 카즈요시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1:0으로 앞서갔다. 기세를 탄 일본은 계속해서 이라크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지만 마음이 급했는지 좀처럼 쐐기골이 터지지 않았다. 그렇게 전반전은 1:0으로 마쳤다. 같은 시각 대한민국 vs 북한의 경기는 아직 0:0이었고, 사우디아라비아 vs 이란의 경기는 2:1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앞서고 있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날 경우 일본의 본선 진출이 확정된다. 하지만 쐐기골을 넣어야 할 때 못 넣었던 대가는 실로 참혹했다. 후반 9분 만에 일본은 이라크의 역습에 허를 찔리며 라디 셰나이실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같은 시각 대한민국 vs 북한의 경기는 대한민국이 고정운황선홍의 연속골로 2:0으로 앞서가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3승 1무 1패로(승점 7점) 우승(1위) 통과, 대한민국과 일본은 승점은 2승 2무 1패(승점 6점)로 동률이지만 골득실에서 대한민국이 +4, 일본이 +3으로 한 골 뒤져서 대한민국이 24강 본선에 올라가게 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은 다시 공세를 펴나갔다. 같은 시각 대한민국 vs 북한의 경기는 하석주의 쐐기골로 3:0까지 벌어졌는데 아직 일본 vs 이라크의 경기는 스코어가 1:1이었다. 이대로 가면 탈락인 상황에서 후반 35분, 나카야마 마사시가 기대하고 기대하던 추가골을 터뜨려 다시 스코어를 2:1로 벌렸다. 다시 실시간 순위에서 일본은 3승 1무 1패(승점 7점)로 조 1위로 앞서갔다. 이제 이대로 경기가 끝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90분이 다 지나갔고 추가시간이 적용되었고, 다른 경기장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 vs 이란의 경기가 사우디아라비아의 4:3 승리로 끝이 나며 결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아시아예선 우승하여 사우디의 첫 월드컵 24강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뒤이어 대한민국 vs 북한의 경기는 대한민국의 3:0 승리로 끝이 났다. 그리고 아직 이 경기는 1분의 추가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상황에서 이라크의 마지막 코너킥 찬스가 주어졌다. 이것만 막아내면 일본이 드디어 월드컵 24강 본선 진출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 이라크의 마지막 코너킥 찬스에서 움란 자파르에게 헤더 동점골을 허용하며 결국 2:2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대한민국과 일본은 2승 2무 1패(승점 6점)로 동률을 이루었지만 골득실에서 대한민국이 +5, 일본은 +3에 그쳐 2골이 더 앞선 대한민국이 아시아예선 준우승(2위)으로 24강 본선에 올라갔고 일본은 아시아예선 3위로 또 다시 아시아예선에서 탈락했다. 1분 사이에 눈앞에 온 본선 티켓을 놓쳐버린 일본은 이 사건을 도하의 비극으로 불렀으며, 반면 대한민국에선 극적으로 준우승하여 24강 본선 진출에 성공해서 이 사건을 도하의 기적이라 부른다.


3. 1998 프랑스 월드컵[편집]


1994 미국 월드컵 24강 본선 진출까지 실패하면서 일본은 2002년 월드컵 유치 경쟁에서 크게 불리해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다른 개최국 후보인 대한민국은 이미 4번이나 월드컵에 진출했지만, 일본은 아직 1번도 못 가봤으니 "돈으로 월드컵 유치권을 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노골적으로 일본 개최를 지지했던 당시 피파 회장 주앙 아벨란제는 한 발 물러서서 한국과 일본의 공동 개최를 제안했고, 결국 한국과 일본의 공동 개최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제 일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성공해야 했다. 만약 이마저도 탈락하면 세계 최초로 '월드컵 개최로 첫 본선에 진출한 팀'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기 때문이었다.[19]

이 대회는 최초로 32강 본선으로 확대된 대회였다. 그래서 아시아에도 출전권이 늘어나 3.5장의 출전권이 부여되었다. 이 대회 지역 예선은 AFC 소속 36개 팀을 10개 조로 나누어 1차 예선을 치른 후 각 조 1위 팀이 최종 예선에 진출한다. 그리고 최종 예선에 오른 10개 팀을 5개 팀씩 2개 조로 나누어 조별리그로 경기를 치르고 각 조 1위 팀은 본선에 직행하며 각 조 2위 팀은 그들끼리 플레이오프를 치러 승자는 본선에 직행하고 패자는 오세아니아 지역 1위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치러 이겨야만 본선에 직행하게 된다. 일본은 1차예선에서 오만, 마카오, 네팔과 함께 4조에 속했다. 일본은 1차전에서 오만을 상대로 1 : 0 신승에 그치며 불안한 출발을 했지만 2차전에서 마카오를 10 : 0으로 대파했고 3차전 네팔 원정 경기에서도 6 : 0 대승을 거두어 3승으로 일찌감치 크게 앞서갔다. 그리고 4차전에서 마카오를 또 다시 10 : 0으로 크게 이겼고 5차전에서 네팔을 3 : 0으로 이기며 최종 예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마지막 오만과의 홈 경기는 1 : 1로 비겨 5승 1무(승점 16점)으로 1차 예선을 마무리했다.

최종예선에 오른 일본은 B조에 속했다. 같은 조에 속한 상대는 대한민국, 아랍에미리트,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이었다. 1차전 우즈베키스탄과의 홈 경기에선 미우라 카즈요시가 혼자서 4골이나 터뜨리는 원맨 쇼를 보인 끝에 6:3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2차전 아랍에미리트 원정 경기에선 0:0 무승부에 그쳤다. 이제 3차전 대한민국과의 홈 경기가 열렸다. 당시 경기를 먼저 치른 아랍에미리트는 2승 1무(승점 7점)로 조 1위였고 그 뒤를 이어 2승(승점 6점)인 대한민국이 2위, 1승 1무(승점 4점)인 일본이 3위에 있었다. 일본으로서는 대한민국과의 홈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조 1위로 치고 나갈 수 있었다. 팽팽한 균형이 이어지던 중 후반 22분에 터진 야마구치 모토히로의 선제골로 일본이 1 : 0으로 앞서갔다. 후반 35분을 넘어서자 일본의 가모 슈 감독은 굳히기에 들어가며 수비를 강화했으나 오히려 이는 한국의 공격을 되살려주고 말았다. 그리하여 후반 38분에 서정원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불과 3분 후인 후반 41분에 이민성에게 역전골을 허용해 1:2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 사건을 대한민국에선 도쿄 대첩으로 부른다. 결국 이 경기로 인해 일본의 감독이었던 가모 슈는 경질되었고 오카다 다케시가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했다. 4차전 카자흐스탄 원정 경기에서 일본은 1:1 무승부에 그치며 가시밭길을 걷게 되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B조의 순위는 대한민국이 4전 전승(승점 12점)으로 조 1위였고 아랍에미리트가 2승 1무 1패(승점 7점)로 2위, 일본이 1승 2무 1패(승점 5점)로 3위, 카자흐스탄이 2무 2패(승점 2점)로 4위, 우즈베키스탄이 1무 3패(승점 1점)로 조 최하위에 있었다. 일본은 5차전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했으나 또 다시 1:1 무승부에 그쳐 승점 1점을 얻는데 그쳤다. 같은 날 카자흐스탄 원정 경기를 떠났던 대한민국도 1:1 무승부에 그치며 전승 가도에 제동이 걸렸다. 그리고 일본이 휴식을 취할 때 우즈베키스탄 VS 대한민국, 카자흐스탄 VS 아랍에미리트의 경기가 열렸다. 이미 대한민국은 일본과 승점 차가 7점이나 났기 때문에 일본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고 반드시 아랍에미리트가 비기거나 져야만 희망이 생겼다. 예상대로 대한민국은 우즈베키스탄을 5:1로 대파하고 본선 진출 및 조 1위를 일찌감치 확정지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아랍에미리트가 카자흐스탄 원정 경기에서 0:3으로 대패하고 말았다. 이제 아랍에미리트와 승점 차는 1점으로 좁혀졌다.

6차전 경기는 사실상 이 조 2위 결정전이라 할 수 있는 아랍에미리트와의 경기였다. 일본은 반드시 이 경기를 이겨서 순위 역전을 해야 했지만 또 다시 1:1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현재까지 B조의 순위는 대한민국이 5승 1무(승점 16점)로 조 1위, 아랍에미리트가 2승 2무 2패(승점 8점)로 2위, 일본이 1승 4무 1패(승점 7점)로 3위, 카자흐스탄이 1승 3무 3패(승점 6점)로 4위, 우즈베키스탄이 1승 2무 4패(승점 5점)로 최하위에 있었다. 즉, 대한민국만 독보적으로 1위를 하고 있었고 2~5위까지 승점이 불과 3점 차밖에 나지 않는 것이었다. 일본의 7차전 상대는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일본으로선 만약 이 경기마저도 비기거나 진다면 그 땐 또 다시 본선 진출이 물 건너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생결단의 자세로 나온 일본은 결국 대한민국을 2:0으로 꺾고 승점 3점을 추가했다. 같은 날 아랍에미리트는 우즈베키스탄과 0:0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이로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탈락이 확정되었고 일본이 승점 10점, 아랍에미리트가 승점 9점으로 순위가 역전되었다.

이제 마지막 8차전 경기가 열렸다. 일본 VS 카자흐스탄, 아랍에미리트 VS 대한민국의 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가 또 뒤집힐 수 있었다. 일본으로선 반드시 카자흐스탄을 이겨야 했다. 만약 카자흐스탄과 비길 경우 반드시 대한민국이 아랍에미리트를 상대로 무승부 이상의 성적을 내주어야 했다. 패배할 경우엔 반드시 대한민국이 아랍에미리트를 이겨주어야만 했다. 최종전에서 일본은 카자흐스탄을 5:1로 대파하며 3승 4무 1패(승점 13점)의 전적으로 마무리 하며 조 2위를 확정해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아랍에미리트 VS 대한민국의 경기는 대한민국의 3:1 승리로 끝이 나며 결국 아랍에미리트는 2승 3무 3패(승점 9점)로 조 3위에 그쳐 탈락이 확정되었다.

조 2위 팀 간 플레이오프 상대는 이란이었다. 이란과의 단판 승부에서 승리하면 일본은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의 꿈을 이루게 되고, 패배하면 오세아니아 지역예선 1위인 호주와 대륙 플레이오프를 치르러 또 가야 한다. 그렇게 일본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의 명운을 건 승부가 말레이시아조호르바루에서 펼쳐졌다. 일본은 전반 39분에 나카타 히데토시의 스루 패스를 받은 나카야마 마사시의 슈팅으로 선제 득점에 성공하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란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후반 시작 25초 만에 알리 다에이의 슈팅이 튕겨져나가자 호다다드 아지지가 그대로 밀어넣어 다시 승부를 1:1로 되돌렸다. 그리고 후반 14분에는 알리 다에이가 헤딩으로 역전골을 성공시키면서 스코어를 2:1로 뒤집었다. 이리하여 또 다시 4년 전처럼 본선 티켓이 눈앞에서 날아가는 듯 했다.

이에 오카다는 미우라 카즈요시와 나카야마를 교체하고, 와그너 로페스와 조 쇼지를 동시에 투입시킨 뒤 3백으로 전술을 변화시켰다. 후반 31분 나카타의 크로스를 조 쇼지가 헤딩골로 연결시키면서 승부는 원점이 되었고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오카다는 연장전 시작과 동시에 키타자와 츠요시를 빼고, 최종예선 출전 경험이 한 번도 없는 공격수 오카노 마사유키를 투입했다. 준족인 오카노를 통해 체력이 떨어진 이란 수비진의 뒷공간을 털어보겠다는 계산이었는데, 오카노는 나카타의 적절한 패스와 자신의 스피드를 활용해 여러 차례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었지만 연달아 득점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연장 후반 13분, 나카타가 드리블 돌파에 이어 날린 슈팅을 골키퍼가 쳐내자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오카노가 바로 리바운드 득점하며 골든골을 터뜨려 3:2 역전승을 거두며 첫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 사건을 일본에서는 조호르바루의 환희라고 부른다.

첫 본선에 오른 일본은 조 추첨에서 아르헨티나, 크로아티아, 자메이카와 함께 32강 H조에 속했다. 전통의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를 뺀 나머지 3팀은 일본까지 포함하여 모두 월드컵에 처음으로 올라온 팀들이었다. 특히 자메이카는 일본 내에서 가장 강력한 '1승 제물'로 꼽혔다. 이 조 편성 결과를 받아든 오카다는 '1승 1무 1패'를 목표로 삼았다. 아르헨티나는 도저히 이기기 힘든 상대니 일단 제끼고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1무를 거둔 후 1승 제물인 자메이카를 잡아서 조 2위로 16강에 가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오카다의 계획을 들은 일본인들은 그를 향해 "야망이 없다!"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이왕 본선 진출에 성공했으면 되든 안 되든 원대한 목표를 잡고 해야 하는데 소심하기 짝이 없는 목표라고 깐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일본은 결전의 땅 프랑스로 향했다.


3.1. 32강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 0 : 1 패[편집]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H조 제1경기
1998년 6월 14일 14:30(UTC+1)

스타드 뮈니시팔 (툴루즈, 프랑스)
주심: 마리오 판 데르 엔더 (네덜란드)
파일:일본 국기.svg
0 : 1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일본

아르헨티나

-
득점자
28′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관중: 33,500명

일본의 1차전 상대는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였다. 전력 차이가 큰 두 팀의 대결이었기에 아르헨티나의 압승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수비 축구의 신봉자였던 오카다는 상대를 적극적으로 압박하며 패스 줄기를 끊는 수비 축구로 아르헨티나를 크게 고전시켰다. 일본의 탄탄한 수비에 공격 축구로 이름난 아르헨티나 선수들도 크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고전해도 아르헨티나는 아르헨티나였다. 실력 차이는 도저히 넘을 수 없었고, 결국 전반 28분에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대포알 슛 한 방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러나 월드컵 데뷔전에서 강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1점 차 석패를 했기에 일본은 많은 찬사를 받았다.

한편, 하루 먼저 경기를 치렀던 대한민국은 멕시코를 상대로 하석주프리킥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갔지만, 불과 2분 후에 백태클을 하며 퇴장당해 수적 열세에 몰린 끝에 후반전에 3골을 뭉텅이로 얻어맞으며 1:3 역전패를 당했다. 그런데 일본은 멕시코보다 한 수 위의 팀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선전했으니 이와 비교를 당하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멕시코는 적어도 조별리그에선 세계구급 강호들도 곧잘 꺾어넘기는 강력한 팀이었고, 퇴장으로 인한 불운도 있었던 경기였지만 일본의 선전 때문에 원래보다 더 나쁜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일본이 월드컵에 못 올라왔을 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이제 일본이 월드컵 무대에 등장하게 된 이상 한일 간 성적 비교는 태극전사들이 짊어져야 할 운명이 되어버렸다.


3.2. 32강 조별리그 크로아티아전 - 0 : 1 패[편집]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H조 제3경기
1998년 6월 20일 14:30(UTC+1)

스타드 드 라 보주아르 (낭트, 프랑스)
주심: 라메시 람단 (트리니다드 토바고)
파일:일본 국기.svg
0 : 1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일본

크로아티아

-
득점자
77′ 다보르 슈케르
관중: 35,500명

일본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크로아티아였다. 크로아티아는 1991년까지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원으로서 출전했으나,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치른 끝에 4개의 나라로 쪼개지면서 독립해 이번 대회에 첫 출전한 팀이었다. 과거 유고슬라비아는 동유럽에서 알아주는 축구 강호였으나 각자 나라가 쪼개진 현재는 실력이 미지수였다. 오카다는 이 경기를 승점 1점을 얻을 경기로 삼았다. 실제로 일본은 이 경기에서 1점이라도 얻어야 16강 진출의 길이 열렸다. 만약 이 경기마저도 패배하면 일본은 즉시 탈락이 확정된다.

일본은 크로아티아를 상대로도 끈적한 수비로 잘 버텼다. 그러나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이다. 골을 넣지 못하고 버티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일본은 잘 버티긴 했지만 골을 넣지 못했다. 전반전~후반 중반까지는 잘 버텼지만 간간이 찾아온 역습 찬스에서 도무지 골을 넣지 못했고, 결국 후반 32분에 크로아티아의 주포 다보르 슈케르의 한 방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크로아티아에게도 0:1로 석패하며 결국 2패로 일찌감치 탈락이 확정되고 말았다. 하지만 크로아티아가 이 대회에서 전차군단 독일을 무려 3:0으로 대파하고 4강까지 올랐고, 3위 결정전에서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를 2:1로 제압하며 3위를 차지했기에 패배하긴 했어도 잘 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잘 싸웠어도 결국 진 건 진 것이었다. 2패를 기록했기에 16강 진출은 할 수 없게 되었고, 다음 대회를 준비해야 했다. 잘 싸웠지만 아직은 뭔가가 부족한 모습을 보인 일본은 이제 마지막 경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나.....


3.3. 32강 조별리그 자메이카전 - 1 : 2 패[편집]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H조 제5-2경기
1998년 6월 26일 16:00(UTC+1)

스타드 드 제를랑 (리옹, 프랑스)
주심: 귄터 벤쾨 (오스트리아)
파일:일본 국기.svg
1 : 2

파일:자메이카 국기.svg
일본

자메이카

74' 나카야마 마사시
득점자
39′, 54' 시어도어 휘트모어[20]
관중: 39,100명

일본의 조별리그 3차전 상대는 자메이카였다. 조 추첨 직후 일본에서는 자메이카를 강력한 1승 제물로 삼았다. 실제로 이 대회에서 자메이카는 첫 출전한 팀답게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이며 1차전에서 크로아티아에게 1:3으로 패배했고,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에게 0:5로 대패하며 2패로 일찌감치 탈락이 확정되었다. 게다가 탈락도 탈락이지만 실점에서도 보여졌듯이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았다. 그렇기에 더욱 손쉬운 상대로 보였다. 일본이나 자메이카나 둘 다 탈락이 확정되었지만, 일본 입장에선 1승 제물 자메이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했다.

하지만 2차전까지 비실거리던 자메이카는 3차전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강력한 모습으로 돌변했다. 대다수가 흑인 선수들로 구성된 자메이카는 흑인 특유의 탄력적인 기술을 앞세워 일본을 괴롭혔다. 그리하여 전반 39분에 시어도어 휘트모어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1:0으로 앞서갔다. 쉬운 상대라고 여겼던 자메이카에게 정통으로 일격을 당한 것이다. 그 때문인지 일본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시종일관 자메이카에게 난타당했다. 그나마 자메이카의 골 결정력도 썩 좋은 편이 아니라서 간신히 1점만 내준 채로 버틸 뿐이었다.

전반전을 0:1로 뒤진 채 끝낸 일본은 반격을 노렸지만, 자메이카 역시 1승을 향한 집념을 강하게 드러냈다. 오히려 후반 9분에 휘트모어가 추가골을 터뜨리며 스코어를 2:0으로 벌렸다. 일본은 좀처럼 자메이카의 골문을 열지 못하고 쩔쩔맸다. 후반 29분에 간신히 나카야마 마사시가 일본의 첫 월드컵 골을 터뜨렸지만 거기까지였고, 결국 일본은 자메이카에게도 1:2로 패배하며 3전 전패 31등이라는 쓴 잔을 들이켜야 했다. 이 경기의 패배로 인해 2차전까지의 선전으로 얻은 찬사는 한 방에 날아가 버렸고, 패배 직후 오카다는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고 결국 오카다는 일본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꿈을 이루고도 사퇴해야 했다.


4.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편집]


일본은 이 대회 개최국이었기에 공동 개최국인 대한민국, 전 대회 우승국인 프랑스와 더불어 지역예선을 면제받고 자동으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오카다가 떠난 후 일본 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인물은 프랑스 출신의 필립 트루시에였다. 본래는 일본통으로 유명한 아르센 벵거를 영입하려 했으나, 벵거 본인의 철칙이 "국가대표팀 감독은 맡지 않는다."여서 거절당했고 대신 트루시에를 적극 추천해서 영입이 성사된 것이다. 트루시에는 성인 대표팀뿐만 아니라 U-23 대표팀, U-20 대표팀까지 모두 겸임했다. 즉 거의 전 연령대별 대표팀을 일원화해서 대회를 준비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출범한 트루시에호는 순조롭게 항해했다. 먼저 U-20 대표팀은 1999 FIFA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2000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한 U-23 대표팀은 브라질에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슬로바키아를 연파하며 2승 1패의 성적으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에서는 미국과 2:2로 비겼으나 승부차기 끝에 4:5로 석패하며 역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일으켰다. 또 성인 대표팀 역시 2000 AFC 아시안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시기 라이벌 한국은 U-20 월드컵에서는 1승 2패에 그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U-23 대표팀 역시 시드니 올림픽에서 일본과 똑같이 2승 1패를 기록하고도 골득실에서 밀려 조 3위에 그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또 2000 AFC 아시안컵에서도 조별리그부터 고전하더니 결국 4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게 1:2로 패배해 우승에 실패했고, 3위 결정전에서 중국을 간신히 1:0으로 꺾고 3위를 하는 데에 그쳤을 뿐이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내에선 일본에 밀리고 있다는 여론이 팽배해졌고, 결국 대한축구협회는 허정무 감독을 해임하고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를 영입했다. 반면 일본 내에선 이제 한국은 우리 상대가 안 된다는 식의 여론이 팽배해졌다.

그리고 월드컵 1년 전에 치른 예비전 성격의 대회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에서 일본은 1차전 상대 캐나다를 3:0으로 크게 이긴 뒤 2차전에서 카메룬마저 2:0으로 꺾어 가장 먼저 4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3차전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도 0:0으로 비기며 조 1위를 확정지었다. 그리고 4강에서 호주를 1:0으로 꺾어 사상 최초로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 진출에 성공했으나, 결승전에선 파트리크 비에이라의 한 방에 무너지며 결국 프랑스에게 0:1로 패배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렇지만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공동 개최국인 대한민국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프랑스에 0:5로 대패했고 이후 멕시코와 호주를 각각 2:1, 1:0으로 이기긴 했으나 골득실에서 밀려 조 3위에 그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 때문에 일본 내에선 더더욱 한국 축구가 일본 축구보다 실력이 뒤처진다고 여겼다.

2001년 12월, 부산광역시의 벡스코에서 열린 조 추첨식에서 일본은 벨기에, 러시아, 튀니지와 함께 H조에 속했다. 이 당시 기준으로 피파랭킹 20위 안에 드는 팀이 한 팀도 없어서 거의 꿀조나 다름없는 조에 편성된 것이다. 반면 한국은 포르투갈, 폴란드, 미국과 함께 D조에 속했는데, 당시 포르투갈은 루이스 피구를 비롯해 황금세대들이 즐비한 우승후보였고, 폴란드 역시 유럽 지역예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저력이 있는 팀이었으며, 미국 역시 멕시코에 묻혀서 그렇지 이래봬도 나름 북중미의 강호여서 상당히 까다로운 조였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내에선 일본의 조 편성 결과를 상당히 부러운 시각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대회의 막이 올랐다.


4.1. 32강 조별리그 벨기에전 - 2 : 2 무[편집]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H조 1경기
2002.06.04.(화) 18:00 (UTC+9)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일본,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
주심: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윌리암 마투스
파일:일본 국기.svg
2 : 2
파일:벨기에 국기.svg
일본
벨기에
59′ 스즈키 타카유키
67′ 이나모토 준이치
득점
57′ 마르크 빌모츠
75′ 피터 반 데르 헤이덴
관중: 55,256명
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일본 국기.svg [[이나모토 준이치|{{{#ffffff 이나모토 준이치}}}]]
일본의 조별리그 1차전 상대는 원조 붉은 악마 벨기에였다. 사실상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일본이 상대할 팀 중 가장 강력한 팀이라고 할 만했다. 물론 이 당시 벨기에는 지금과 달리 세대교체 실패로 암흑기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1980~1990년대 벨기에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슈퍼 스타 엔조 시포가 지난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을 은퇴한 이후 그를 대체할 만한 스타가 나오지 않아 암흑기에 접어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암흑기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벨기에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야생 멧돼지라는 별명을 가진 마르크 빌모츠를 앞세운 벨기에는 사정없이 일본을 몰아쳤고, 일본은 전반전 내내 벨기에의 공격에 밀리며 수비하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전반전은 어렵게 0:0으로 비겼다. 그리고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후반전에도 경기 양상은 벨기에의 공세, 일본의 수세였다. 이렇게 밀리던 경기를 하던 일본은 결국 후반 12분, 빌모츠에게 선제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하지만 선제골을 넣은 벨기에는 그 이후 갑자기 라인이 흐트러지고 말았고, 불과 2분 후 일본은 절묘한 스루 패스를 통한 스즈키 타카유키의 동점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동점골이 터지자 일본의 사기가 충천해졌고, 벨기에가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후반 22분, 이나모토 준이치가 단 한 번의 제침으로 벨기에의 뒷공간을 열어젖혀 역전골을 뽑아냈다. 이제 첫 승이 눈 앞에 다가온 듯했으나, 벨기에는 그렇게 쉽게 무너질 팀이 아니었고 결국 후반 30분에 피터 반 데르 헤이덴이 다시 동점골을 터뜨리며 2:2 무승부에 그쳤다. 이로서 일본은 4경기 만에 월드컵 첫 승점을 따냈으나, 다 이긴 경기를 놓쳤기에 아쉬움을 남겼다. 더군다나 라이벌 한국이 2시간 뒤에 열린 경기에서 폴란드를 2:0으로 이기며 월드컵 첫 승을 따냈기에 이젠 오히려 일본이 한국을 부러워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한편 벨기에는 이 경기마저 비기면서 지난 대회에서 대한민국에게 무승부 탈락당한것에 이어 일본한테도 무승부로 승점 1점을 헌납하여 4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4.2. 32강 조별리그 러시아전 - 1 : 0 승[편집]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H조 3경기
2002.06.09.(일) 20:30 (UTC+9)

요코하마 국제 종합경기장 (일본,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주심: 파일:독일 국기.svg 마르쿠스 메르크
파일:일본 국기.svg
1 : 0
파일:러시아 국기.svg
일본
러시아
51′ 이나모토 준이치
득점
-
관중: 66,108명
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일본 국기.svg [[이나모토 준이치|{{{#ffffff 이나모토 준이치}}}]]
일본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러시아였다. 1차전을 마친 후 H조의 순위는 1승을 거둔 러시아가 조 1위였고, 1무를 거둔 일본과 벨기에가 공동 2위, 1패를 기록한 튀니지가 최하위였다. 16강에 가기 위해서 일본은 반드시 러시아를 이겨야 했다. 경기 당시 양 팀의 피파랭킹은 러시아가 27위, 일본이 32위로 전력 차가 크게 나진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렇게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러시아는 초반부터 강력한 공격 축구로 일본의 기를 죽이며 사정없이 몰아붙였고, 러시아의 공격 축구에 기가 눌린 일본은 전반전 내내 수비로 버티기에만 급급했다. 그렇게 전반전은 0 : 0으로 버티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후반전이 되었다. 러시아의 공격을 끊어낸 후 후반 6분, 일본의 역습 상황에서 야나기사와 아쓰시가 전방의 이나모토 준이치를 향해 스루 패스를 넣었고 그 스루 패스를 받은 이나모토가 곧바로 골문 밖 12m 좌측 지점에서 왼발 강슛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냈다. 하지만 이나모토의 위치는 명백히 오프사이드였다.


파일:Screenshot_20221216-043554_Gallery.jpg

https://m.youtube.com/watch?v=ebzXz-dHlos
[21]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야나기사와의 패스가 가는 시점에 이나모토의 왼발이 분명히 러시아 최종 수비수보다 앞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주심 메르쿠스 마르크는 이걸 그대로 득점으로 인정하는 오심을 범했다. 그렇게 일본이 1:0으로 앞서갔다.

러시아는 남은 시간 동안 사정없이 공격을 퍼부었으나, 일본은 남은 시간 동안 전원 수비로 버티는 극악의 늪 축구를 구사했다. 그리하여 경기는 결국 일본의 1:0 승리로 끝났고, 일본은 이렇게 월드컵 첫 승을 거두는 데에 성공했다. 일본은 1승 1무(승점 4점)의 성적으로 조 1위로 올라섰고, 러시아는 1승 1패(승점 3점)에 그쳐 조 2위로 내려왔다. 하지만 오심으로 얻은 찜찜한 승리였기에 뒷말이 많았고, 이 억울한 패배에 러시아 축구팬들은 격렬하게 분노했고 결국 모스크바에선 폭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4.3. 32강 조별리그 튀니지전 - 2 : 0 승[편집]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H조 5-1경기
2002.06.14.(금) 15:30 (UTC+9)

나가이 육상경기장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심: 파일:프랑스 국기.svg 질 베시에르
파일:일본 국기.svg
2 : 0
파일:튀니지 국기.svg
일본
튀니지
48′ 모리시마 히로아키
75′ 나카타 히데토시
득점
-
관중: 45,213명
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타 히데토시|{{{#ffffff 나카타 히데토시}}}]]
일본의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는 조 최약체로 지목된 튀니지였다. 2차전까지 H조의 순위는 일본이 1승 1무(승점 4점)로 1위, 러시아가 1승 1패(승점 3점)로 2위, 벨기에가 2무(승점 2점)으로 3위, 튀니지가 1무 1패(승점 1점)로 4위에 있어 산술적으로는 4팀 모두 16강 진출의 가능성이 있었다. 튀니지는 16강에 가기 위해선 반드시 일본을 2점 차 이상으로 이긴 뒤 벨기에가 러시아를 이겨주어야 했다. 한편 일본은 이기거나 비기면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혹여나 패배할 경우엔 경우의 수가 좀 복잡했다. 경우에 따라선 탈락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일본은 튀니지를 상대로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섰지만, 튀니지는 의외로 그렇게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이 경기를 이기면 역시 16강에 올라갈 수 있는 튀니지도 사생결단으로 일본과 맞서 싸웠다. 결국 전반전은 0:0으로 끝이 났다. 후반전이 되자 후반 3분 만에 모리시마 히로아키가 그토록 기다리던 선제골을 뽑아냈고, 이 골로 인해 승부는 급격히 일본 쪽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후반 30분에 나카타 히데토시가 추가골을 넣으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일본의 2번째 골이 터지자 튀니지 선수들은 전의를 상실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경기는 일본의 2:0 승리로 끝났고, 일본은 2승 1무(승점 7점)를 기록해 H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같은 시각에 열린 벨기에 VS 러시아의 경기는 벨기에가 3:2 신승을 거두며 1994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네덜란드를 1 0으로 이긴 뒤 무려 8경기 만에 첫 승을 거두며 1승 2무(승점 5점)의 성적으로 간신히 조 2위를 차지해 8년 만에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하여 일본은 16강에서 C조 2위 튀르키예와 맞붙게 되었고, 벨기에는 C조 1위 브라질과 맞붙게 되었다.


4.4. 16강전 터키[A]전 - 0 : 1 패[편집]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16강 7경기
2002.06.18.(화) 15:30 (UTC+9)

미야기 스타디움 (일본, 미야기현 미야기군)
주심: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피에를루이지 콜리나
파일:일본 국기.svg
0 : 1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일본
터키
-
득점
12′ 위미트 다발라
관중: 45,666명
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알파이 외잘란|{{{#ffffff 알파이 외잘란}}}]]
일본의 16강 상대는 바로 1954 스위스 월드컵 이후 무려 48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한 터키였다. 16강 상대로 터키가 당첨되자 일본은 아주 손쉬운 경기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 이유는 5년 전인 1997년에 일본의 홈에서 치른 기린컵에서 터키를 1:0으로 이긴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다행스럽게도 브라질과 맞붙지 않게 된 것도 있었고. 하지만 그때까지 일본은 기린컵 따위의 친선경기와 FIFA 월드컵은 천지 차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물론 조별리그에서 보인 터키의 모습도 그렇게까지 인상적이진 않았다. 1차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접전 끝에 1:2로 석패한 뒤, 2차전에서는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후반 11분에 엠레 벨로조글루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후반 41분에 윈스톤 파르크스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1로 비겨 다 잡은 승리를 놓쳤다. 그리고 3차전에서는 승점자판기 중국을 3:0으로 꺾고 1승 1무 1패(승점 4점)를 기록해 코스타리카와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득실에서 터키가 +2, 코스타리카가 -1을 기록하며 3골이 앞선 덕분에 간신히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그렇기에 만만해 보였을 법도 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안에서부터 썩어가고 있었다. 16강 진출에 성공한 후 트루시에는 "이제부터 다시 새롭게 진군하자!"라며 선수들을 독려했지만, 나카타 히데토시를 비롯한 일본 대표팀 주전 선수들은 "목표도 달성했으니 이제 쉬엄쉬엄 합시다."라며 나태해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22] 한편 FIFA는 조별리그 2차전 러시아전에서 일본이 심판의 오심으로 1:0 승리를 거두었다는 여론을 의식했는지 이 경기의 주심을 이탈리아 출신의 명심판 피에를루이지 콜리나로 배정했다.

공정하기로 유명한 콜리나는 일본에게 홈 어드밴티지 같은 건 전혀 주지 않았다. 일본은 경기 내내 터키와 대등하게 주고받는 듯했지만, 전반 12분에 터키의 세트피스 찬스에서 수비수 위미트 다발라의 헤더 한 방에 무너지고 말았다. 일본은 남은 시간 동안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으며 동점골을 노렸지만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으로 인해 좀처럼 터키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터키는 지능적인 수비로 잠그기에 돌입하며 시간을 질질 끌었고, 결국 일본은 0:1로 패배하며 16강에서 탈락했고 16강 9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16강 9위도 일본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성적이었기에 트루시에는 나름대로 명장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5시간 뒤 한국의 대전광역시에서 열린 16강 마지막 경기 대한민국 vs 이탈리아의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전반 18분에 크리스티안 비에리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43분에 터진 설기현의 동점골과 연장 후반 12분에 터진 안정환골든골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8강에 진출하자 슬슬 트루시에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흘 뒤 열린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대한민국은 0:0으로 120분을 버텨낸 뒤 승부차기 끝에 스페인마저 제압하고 4강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는데, 이에 며칠 전까지 명장이었던 트루시에에 대한 평판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일본인들은 "한국은 우리보다 늦게 감독을 선임했고 대진도 우리보다 더 빡셌는데도 4강 갔는데 트루시에 넌 왜 16강밖에 못 가니?"라면서 트루시에를 향해 온갖 질타를 보냈다. 당시 일본의 전력을 볼 때 16강 9위도 매우 훌륭한 성적이었는데도 라이벌 한국이 4강 4위의 고지를 찍은 것에 대한 열등감과 부러움, 그리고 질투 때문에 그 사실을 모르고 트루시에에게 비난을 가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대회가 끝난 후 트루시에는 일본과 거의 접촉을 하지 않고 있다. 히딩크가 변함없이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수시로 한국을 방문하며 친분을 과시하고 있는 반면, 트루시에와 일본은 이 대회 이후로 지금도 어떤 접점도 없다. 결국 대회가 끝난 후 트루시에는 일본인들을 향해 "사요나라."라는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5. 2006 독일 월드컵[편집]


트루시에가 떠난 후 공석이 된 일본 대표팀 감독은 '하얀 펠레'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브라질 출신의 스타 플레이어 지쿠가 맡게 되었다. 이렇게 야심차게 출범한 지쿠호는 초반에는 그럭저럭 순항했다. 2004 AFC 아시안컵 중국에서 이란, 오만, 태국과 함께 D조에 속해 1차전에서 오만을 1:0으로 꺾고 2차전에서 태국을 4:1로 완파하며 일찌감치 8강 진출을 확정지었고, 3차전에서 이란과 0:0으로 비겨 2승 1무(승점 7점)로 조 1위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토너먼트에선 크게 고전했다. 8강에서는 요르단에게 크게 고전하며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까지 갔지만 간신히 4:3으로 꺾고 4강에 올랐다. 그리고 4강에서도 바레인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며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4:3으로 간신히 이기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는 개최국 중국을 만나 깔끔하게 3:1 승리를 거두며 2회 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이번 대회의 지역예선은 총 3단계로 치러졌는데, AFC에 소속된 39개 팀이 출전하는데 2003년 10월 기준 피파랭킹이 낮은 14개 팀이 참가하는 1차예선은 두 팀이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경기를 하여 승자가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방식이었다. 2차예선에서는 1차예선에서 올라온 7팀과 나머지 25개 팀까지 32개 팀이 네 팀씩 여덟 개의 조로 나뉘어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경기를 하여 각 조의 1위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된다. 3차예선에서는 2라운드에서 올라온 8개 팀이 두 조로 나누어 각 조의 1, 2위 팀은 월드컵 본선에 직행하게 되고, 각 조 3위 팀간에 플레이오프를 거쳐 승리팀이 북중미카리브 지역 예선 최종라운드의 4위 팀과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펼쳐 0.5장의 티켓의 향방을 가리게 된다.

일본은 2차예선부터 시작했다. 2차예선에서 일본은 오만, 인도, 싱가포르와 함께 3조에 속했다. 일본은 1차전에서 오만을 1:0으로 이기면서 순조롭게 출발했고, 2차전에서 조 최약체 싱가포르를 맞아 좀 고전했지만 2:1로 이겼다. 그리고 3차전 인도와의 홈 경기에서도 7:0 대승을 거두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3조의 순위는 일본이 3전 전승(승점 9점)으로 1위, 오만이 2승 1패(승점 6점)로 2위, 인도가 1승 2패(승점 3점)로 3위, 싱가포르가 3전 전패(승점 0점)로 최하위에 있었다. 그리고 4차전 인도 원정에서 일본은 4:0 대승을 거두었다. 한편 오만 역시 싱가포르 원정에서 2:0 승리를 거두어 계속 승점 3점 차를 유지했다. 이제 5차전 오만 원정 경기가 열렸다. 현재까지 일본의 승점이 12점, 오만의 승점이 9점이었으므로 일본이 만약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최종예선 진출이 확정된다. 이 경기에서 일본은 크게 고전했지만 결국 오만을 1:0으로 이기며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마지막 싱가포르와의 홈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며 깔끔하게 6전 전승(승점 18점)으로 2차예선을 마무리했다.

일본은 최종예선에서 이란, 북한, 바레인과 함께 B조에 속했다. 1차전 북한과의 홈 경기에서 일본은 전반 5분 만에 오가사와라 미쓰오가 선제골을 넣으며 순조롭게 출발했으나, 이후 북한의 공세에 고전하며 후반 16분에 남성철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다. 1:1로 끝나기 직전에 간신히 북한 골키퍼 심승철의 펀칭 미스를 오구로 마사시가 캐치해 결승골을 터뜨리며 간신히 2:1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2차전은 아자디 징크스로 악명 높은 이란 원정 경기였는데, 일본은 살벌한 아자디 스타디움의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1:2로 패배하고 말았다. 3차전 바레인과의 홈 경기에서도 일본은 비실비실한 모습을 보이다 후반 27분에 터진 상대 수비수 모하메드 살민의 자책골 덕분에 간신히 1:0 승리를 거두었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 지쿠에 대한 여론이 슬슬 나빠지기 시작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B조의 순위는 이란이 2승 1무(승점 7점)로 1위, 일본이 2승 1패(승점 6점)로 2위, 바레인이 1승 1무 1패(승점 4점)로 3위, 북한이 3전 전패(승점 0점)로 최하위에 있었다. 4차전 경기는 바레인 원정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일본은 1:0 승리를 거두며 승점을 9점으로 추가했다. 한편 같은 날 이란이 북한을 홈에서 1:0으로 이기면서 승점을 10점으로 추가했고 북한은 본선 직행이 불가능해졌다. 5차전 경기는 북한 원정 경기였는데, 본래 이 경기는 평양김일성경기장에서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3차전 이란과의 홈 경기에서 북한 관중들이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품고 난동을 일으킨 탓에 피파의 징계를 받아 제 3국인 태국에서 무관중 경기로 치러졌다. 일본은 5차전에서 북한을 2:0으로 이겼고, 결국 일본의 본선 진출과 북한의 예선 탈락이 확정되었다. 같은 날 이란 역시 바레인을 1:0으로 이기면서 이란의 본선 진출과 바레인의 조 3위가 확정되었다. 마지막 이란과의 홈 경기는 사실상 순위 결정 이외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경기였다. 5차전까지 이 조의 순위는 이란이 4승 1무(승점 13점)로 1위, 일본이 4승 1패(승점 12점)로 2위였다. 6차전에서 일본은 이란을 2:1로 이기며 다시 순위 역전에 성공해 1위로 최종예선을 마무리했다.

한편 예선을 치르는 사이에 일본은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독일에 참가했다. 일본은 브라질, 멕시코, 그리스와 함께 B조에 속했다. 일본은 멕시코와의 1차전에서 야나기사와 아쓰시가 전반 12분에 터뜨린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이후 2골을 내리 실점하며 결국 1:2 역전패를 당했다. 2차전 그리스와의 경기에서는 후반 31분 오구로 마사시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1차전에서 브라질에게 0:3으로 대패했던 그리스는 이 경기마저 패배하며 결국 탈락이 확정되었고, 멕시코는 브라질마저 1:0으로 이기며 2승으로 4강 진출을 확정했다. 이제 3차전 브라질과의 경기는 단두대 매치가 되었다. 브라질과 일본은 모두 1승 1패(승점 3점)를 기록했으나, 골득실에서 브라질이 +2, 일본이 0이었기 때문에 브라질은 비기기만 해도 4강에 올라갈 수 있지만 일본은 브라질을 반드시 이겨야만 4강에 올라갈 수 있었다. 일본은 예상 외로 브라질과 대등한 승부를 펼쳤으나, 결국 2:2 무승부에 그쳤고 골득실에서 밀려 아쉽게 조별리그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결과였기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5년 연말, 일본은 월드컵 조 추첨에서 브라질, 크로아티아, 호주와 함께 F조에 편성되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좀 까다로운 조였다. 그나마 호주가 해볼 만한 상대이지만, 호주는 지난 대회에서 대한민국을 4강까지 올려놓은 네덜란드 출신 명장 거스 히딩크를 영입해 전력이 급상승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냥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쿠는 무려 "일본에게 월드컵 우승컵을 안겨주겠다."라며 큰소리를 뻥뻥 쳤는데, 특히 월드컵 직전에 치른 평가전의 성적들은 일본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5월 30일에 레버쿠젠에서 치렀던 마지막 평가전 독일과의 경기가 그랬다. 이보다 앞선 2004년 12월에 일본은 요코하마에서 독일과 사상 첫 A매치를 치렀는데, 그때는 무기력하게 미로슬라프 클로제미하엘 발락의 투맨 쇼에 농락당하며 0:3으로 대패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독일의 홈 경기였지만 오히려 일본이 후반 9분과 20분에 터진 다카하라 나오히로의 멀티골로 2:0으로 앞서갔다. 하지만 뒷심 부족으로 인해 후반 31분에 클로제에게 만회골을 허용했고, 몇 분 후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2:2로 비겨 다 잡은 승리를 놓쳤다. 그러나 불과 1년 6개월 전에 0:3으로 참패한 팀을 상대로 이만한 결과를 보였기에 일본 대표팀의 자신감은 크게 상승했다. 그래서 지난 대회 한국의 4강 신화를 능가할 만한 신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품었다. 그러나.....


5.1. 32강 조별리그 호주전 - 1 : 3 패[편집]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svg
2006 FIFA 월드컵 독일 F조 제1경기
2006년 6월 12일 15:00(UTC+1)

프리츠 발터 슈타디온 (독일, 카이저슬라우테른)
주심: 에삼 압델 파타 (이집트)
파일:일본 국기.svg
1 : 3
파일:호주 국기.svg
일본
호주
26′ 나카무라 슌스케
득점자
84′, 89' 팀 케이힐
90+2′ 존 알로이지
관중: 46,000명
Man of the Match: [[팀 케이힐|{{{#000000 팀 케이힐}}}]] (호주)
일본의 조별리그 1차전 상대는 사커루 호주였다. 호주는 1974 서독 월드컵 때 한 차례 월드컵 무대에 오른 후 번번이 대륙 플레이오프의 벽을 넘지 못해 30년이 넘도록 월드컵 무대에 등장하지 못했다. 그래서 야심차게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했고, 대륙 플레이오프에서 남미 5위 우루과이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고 32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23] 일본에서는 호주를 강력한 1승 제물로 취급했다. 물론 호주의 감독이 히딩크이고 플레이오프에서 우루과이를 이겼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3팀 중에선 가장 전력이 처지는 팀이고 월드컵 경험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편 히딩크는 이 경기를 앞두고 "한국은 내게 있어서 제 2의 조국이다. 제 2의 조국 한국을 위해 일본을 반드시 이길 것이다."라고 일본을 도발했다. 사실상 또 다른 의미의 한일전이 된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양 팀은 치열하게 맞붙었다. 1승 제물이라고 여겼던 호주는 생각보다 그렇게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렇게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이어지던 중 전반 26분, 호주 진영 우측에서 고마노 유이치가 나카무라 슌스케에게 백패스를 건넸고 나카무라는 호주 진영 페널티 박스 우측 외곽에서 전방으로 볼을 띄웠다. 이 때 호주의 골키퍼 마크 슈워처가 앞으로 나와 캐칭을 시도했으나 다카하라 나오히로와 충돌하며 볼을 놓쳤고, 공은 그대로 땅에 맞은 뒤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명백핮 골키퍼 차징이었지만 주심은 호주 측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일본의 득점으로 인정했다. 기세등등해진 일본은 이후 추가골을 노렸지만 골 결정력 부족으로 추가골을 만들지는 못했고, 전반전은 1:0으로 일본이 앞선 채 끝났다.

호주 입장에서도 일본이 1승 제물이었기 때문에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다음 경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후반전이 되자 히딩크는 먼저 후반 8분에 수비형 미드필더 마크 브레시아노를 빼고 공격형 미드필더 팀 케이힐을 투입했고, 후반 16분에는 센터백 크레이그 무어를 빼고 공격수 조슈아 케네디를 투입했다. 마지막으로 후반 30분에는 루크 윌크셔를 빼고 공격수 존 알로이지를 투입해 공격수 숫자를 늘리면서 공세를 강화했다. 일본은 후반 30분을 넘어서자 서서히 잠그기에 돌입하며 1골 차 리드를 굳히려고 했다. 그러던 중 후반 39분, 호주의 공격 상황에서 루카스 닐이 일본 진영 좌측에서 길게 스로인을 했다. 가와구치 요시카쓰 골키퍼가 앞으로 나와 펀칭했으나 볼이 호주 선수의 발 앞에 떨어졌고, 슛을 날렸으나 일본 선수의 몸에 맞고 튕겨나왔다. 이 볼을 가와구치가 미처 골문으로 복귀하지 못한 틈을 타 케이힐이 제차 슛을 날려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후반 44분, 호주의 역습 찬스에서 케이힐이 페널티 박스 중앙 외곽에서 강력한 중거리 슛을 날려 역전골을 뽑아냈다. 90분이 다 지나가고 추가시간이 적용되던 중, 추가시간 2분에 호주의 역습 찬스에서 존 알로이시가 자신의 개인기로 일본 수비수를 간단히 제치고 중거리 슛을 날려 쐐기골을 넣었다. 불과 8분 사이에 3골을 터뜨리며 승부를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결국 일본은 막판 8분을 버티지 못하고 3골을 뭉텅이로 얻어맞으며 1:3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당시 호주는 이 대회까지 OFC 소속으로 치렀는데[24], 이 경기는 오세아니아 팀이 월드컵에서 거둔 첫 승리가 되었다. 아울러 일본은 월드컵에서 세계 최초로 오세아니아 팀에게 패배한 팀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그 이후로 2019년 현재까지 오세아니아 팀이 월드컵에서 1승을 거둔 사례가 없으므로 결국 일본이 현재까지 오세아니아 팀에게 패배한 유일한 팀으로 남게 되고 말았다.

경기가 허무하게 역전패로 끝나자 일본은 문자 그대로 멸망했다. 가장 쉬운 상대인 호주에게 졌으니 이보다 더 강한 크로아티아나 브라질을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쿠에 대한 여론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반면 이 경기에서 가장 기뻐한 것은 라이벌인 한국 축구팬들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앙숙이었고, 축구에서도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기에 한일 간 성적 비교는 1998년 이후 매 대회마다 이어졌다. 그런데 일본이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자멸했으니 크게 기뻐한 것이다. 호주 선수들이 골을 넣을 때마다 마치 한국 선수들이 득점한 양 환호하며 기쁨을 누렸다.[25] 아울러 히딩크에 대한 우호도는 더욱 높아졌다.


5.2. 32강 조별리그 크로아티아전 - 0 : 0 무[편집]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svg
2006 FIFA 월드컵 독일 F조 제3경기
2006년 6월 18일 15:00(UTC+1)

프랑켄 슈타디온 (독일, 뉘른베르크)
주심: 프랑크 더 블레이케러 (벨기에)
파일:일본 국기.svg
0 : 0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일본

크로아티아

-
득점자
-
관중: 41,000명
Man of the Match: [[나카타 히데토시|{{{#000000 나카타 히데토시}}}]] (일본)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칸센 대탈선슛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일본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크로아티아였다. 양 팀은 8년 전에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크로아티아가 1:0으로 승리했다. 크로아티아는 1차전에서 브라질과 접전 끝에 0:1로 석패했고, 일본 역시 1차전에서 호주에게 1:3으로 완패해 양 팀 모두 승점 3점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었다. 전체적으로는 크로아티아가 공세, 일본이 수세인 상태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그러던 중 전반 21분, 크로아티아의 공격수 다도 프로쇼가 일본 진영 페널티 박스로 진입할 때 일본 주장 미야모토 쓰네야스가 백태클로 쓰러뜨렸다. 주심은 곧바로 페널티킥을 선언하고 미야모토에게 경고를 주었다. 크로아티아의 킥커는 다리요 스르나였다. 크로아티아로서는 절호의 득점 찬스였고, 일본으로선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스르나는 골문 오른쪽 하단 구석을 향해 낮고 빠른 슛을 날렸으나 가와구치 요시카쓰 골키퍼가 극적으로 선방하며 실점 위기를 넘겼다. 이후 양 팀은 계속해서 공방전을 주고받았지만 모두 한심한 골 결정력을 보이며 지루한 경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전반전은 0:0으로 끝났다.

후반전에도 경기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후반 중반에 다카하라 나오히로와 라이트백 가지 아키라가 원투 패스를 주고받다가 다카하라가 아크 정면에서 우측의 가지 아키라에게 킬 패스를 건넸고, 아키라는 페널티 박스에서 좌측의 야나기사와 아쓰시가 노마크 상태인 걸 확인하고 재빨리 패스를 넣어주었다. 이제 야나기사와가 발만 갖다대면 그대로 골인 상황에서, 야나기사와는 정확하게 골키퍼 다리 사이를 지나 골문 우측 바깥으로 향하는 개그 슛을 날려버렸다. 이런 야나기사와의 개그 슛에 빵 터진 한국 축구팬들은 이 슛을 '신칸센 대탈선슛'이라고 명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은 경기 중간에 수비수와 가와구치 골키퍼 간의 백패스 사인 미스로 자책골을 넣을 뻔한 상황까지 만드는 최악의 모습까지 보였다.

결국 양 팀 모두 한심한 모습을 보인 끝에 경기는 0:0 무승부로 종료되었다. 다음 날 열린 브라질과 호주의 경기에선 예상대로 브라질이 2:0으로 승리하며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2차전까지 F조의 순위는 브라질이 2승(승점 6점)으로 1위, 호주가 1승 1패(승점 3점)으 2위, 크로아티아와 일본이 각각 1무 1패(승점 1점)로 동률이었으나 골득실에서 크로아티아가 -1, 일본이 -2였기 때문에 크로아티아가 3위, 일본이 최하위에 있었다. 이제 일본이 16강에 가기 위해선 마지막 상대 브라질을 반드시 2점 차 이상으로 꺾고 호주와 크로아티아의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야 했다. 하지만 일본이 브라질을 이긴다는 것부터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라 사실상 탈락이 확정된 분위기로 흘러갔다.


5.3. 32강 조별리그 브라질전 - 1 : 4 패[편집]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svg
2006 FIFA 월드컵 독일 F조 제5-1경기
2006년 6월 22일 21:00(UTC+1)

베스트팔렌 슈타디온 (독일, 도르트문트)
주심: 에리크 풀라 (프랑스)
파일:일본 국기.svg
1 : 4
파일:브라질 국기.svg
일본
브라질
34' 다마다 게이지
득점자
45+1', 81' 호나우두
53'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59' 지우베르투
관중: 65,000명
Man of the Match: [[호나우두|{{{#000000 호나우두}}}]] (브라질)
일본의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는 삼바 군단 브라질이었다. 양 팀은 1년 전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독일에서 맞붙어 2:2 무승부를 기록한 바 있었다. 그 때문에 일본은 그때의 선전했던 기억에 의존해 일말의 희망을 걸었다. 또 지쿠가 브라질 사람이니 동포를 위해서 뭔가 아량을 베풀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브라질은 일본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이미 16강이 확정된 브라질은 이 경기를 체력 안배용으로 쓰겠다는 듯 주장이자 라이트백 카푸 대신 후보 선수 시시뉴를 투입했고, 레프트백 역시 호베르투 카를루스 대신 후보 선수 지우베르투를 투입했다. 중앙 미드필더 역시 주전인 이메르송제 호베르투를 빼고 후보인 지우베르투 시우바주니뉴 페르남부카누를 투입했다. 그리고 공격수에도 아드리아누 대신 후보 호비뉴를 투입했다. 즉 베스트 11 중 5명을 후보 선수로 바꾸고 내보내는 여유를 선보인 것이다. 반면 브라질을 2골 차 이상으로 이겨야만 16강 진출에 일말의 희망이 보이는 일본은 라인업에 약간의 변화를 준 채 경기에 임했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자 이번 경기에서 결장한 호베르투는 편안하게 그라운드에 말년병장 자세로 드러누워 게임을 하며 볼 정도로 일본을 무시하며 엄청 여유를 부렸다. 일본으로서는 속이 상할 일이겠지만, 아무리 1.5군이라도 브라질은 브라질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호나우두 - 호비뉴 - 카카 - 호나우지뉴로 이어지는 브라질의 무시무시한 공격 라인에 일본은 정신없이 난타당했다. 간신히 가와구치 요시카쓰 골키퍼의 뛰어난 선방으로 실점만 안 하고 버틸 뿐이었다. 그렇게 일본은 어렵게 0:0 스코어를 지켜나갔다. 정신없이 난타당하던 일본은 전반 34분, 브라질에서 귀화한 산토스 알레산드르가 전방의 다마다 게이지가 노마크 상태인 걸 확인하고 곧바로 킬 패스를 찔러주었고 다마다는 브라질 수비의 허점을 틈타 페널티 박스 좌측에서 강슛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냈다. 예상과 달리 일본이 앞서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기적이 일어나는 듯했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브라질은 그 이후로도 사정없이 공격을 퍼부었으나, 호나우두의 슛도, 호나우지뉴의 슛도 이상하게 골문을 외면했다.

그렇게 전반전 45분이 끝나고 추가시간이 적용되었다. 같은 시각에 열린 크로아티아와 호주의 경기는 1:1로 전반전을 마쳤기에 일본으로선 2골을 더 넣어야 16강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추가시간 1분에 위태롭게 버티던 일본은 끝내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다. 브라질의 공격 상황에서 호나우지뉴가 우측의 시시뉴가 노마크 상태인 걸 확인하고 시시뉴에게 로빙 패스를 건넸고, 시시뉴는 헤더로 중앙의 호나우두를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시시뉴가 호나우지뉴의 패스를 받을 때까지는 호나우두가 일본의 2번째 수비수인 나카자와 유지보다 반 발짝 앞서 있었기 때문에 오프사이드였다. 그런데 시시뉴가 호나우지뉴의 패스를 받아 다시 헤더로 크로스를 할 때 나카자와가 갑자기 안으로 들어가 버리면서 오프사이드 트랩이 깨져버렸다. 다시 온사이드가 된 호나우두는 곧바로 시시뉴의 헤더 패스를 그대로 다시 헤더로 재차 연결해 동점골을 뽑아냈다. 나카자와의 어이없는 실책으로 인해 동점골을 내주고 만 것이다. 그렇게 전반전은 1:1로 끝났다.

전반전에 의외로 고전한 브라질은 후반전이 되자 일본을 철저하게 박살내 버리겠다는 듯 더욱 공격적으로 나섰다. 사정없이 공격을 퍼붓던 브라질은 후반 8분, 주니뉴 페르남부카누가 노마크 상태에서 30m 무회전 중거리 슛을 날려 역전골을 뽑아냈다. 스코어가 2:1로 뒤집어지자 승부의 추는 브라질 쪽으로 급격하게 쏠렸다. 지면 그 즉시 탈락인 일본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고, 그래서 라인을 끌어올리고 브라질을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라인을 끌어올린 탓에 이번에는 또 수비가 헐거워졌다. 후반 14분, 하프라인에서 호나우지뉴가 오버래핑한 레프트백 지우베르투에게 패스를 찔러주었고, 지우베르투는 절묘하게 일본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며 수비 배후 공간으로 침투해 허허벌판을 달리며 일본 진영 페널티 박스 좌측에서 논스톱 슛을 날려 쐐기골을 뽑아냈다. 스코어는 3:1로 벌어졌다.

브라질의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감독은 이만하면 됐다는 듯 후반 26분에 호나우지뉴와 카카를 체력 안배를 위해 불러들이고, 제 호베르투와 후보 선수 히카르지뉴를 투입했다. 하지만 브라질의 화력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후반 36분에 공격에 가담한 브라질의 센터백 주앙이 호나우두와 원투 패스를 주고 받으며 일본의 수비벽을 허물었고, 호나우두는 아크 정면에서 오른발 강슛을 날렸다. 이 슛은 그대로 일본 골문 우측 구석으로 빨려들어가며 호나우두는 멀티골을 기록했다. 그렇게 스코어는 4:1로 벌어졌다. 2차전까지 호나우두는 체중 관리 실패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는데, 이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세간의 비판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즉 일본이 호나우두의 부활에 크게 도움을 준 것이다. 파헤이라는 점수가 3골 차까지 벌어지자 후반 37분에는 골키퍼 지다를 빼고 후보 골키퍼 호제리우 세니를 교체 투입하는 여유까지 부렸다. 한 마디로 "너희는 우리가 후보 골키퍼를 넣어도 절대 골 못 넣는다."라는 무시의 의미인 것이다.

일본은 경기 종료 전까지 다카하라 나오히로에 오구로 마사시까지 투입하며 어떻게든 수를 써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결국 경기는 브라질의 4:1 대승으로 끝났고 일본은 1무 2패(승점 1점)의 전적에 그치며 조 최하위 대회 29등으로 탈락하고 말았다.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일본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다 못해 우스꽝스러웠기에 '대회 최고의 개그팀'이라는 오명만 뒤집어썼다. 차라리 3전 전패한 31등 코스타리카나 32등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더 인상적이었을 정도였다. 이렇게 지난 대회와는 대조되게 아주 형편없는 모습을 보인 탓에 지쿠는 불명예스럽게 쫓겨나듯이 일본을 떠나야만 했다.


6.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편집]


지쿠가 불명예스럽게 대표팀을 떠난 후 일본 대표팀 감독 자리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출신의 이비차 오심 감독이 부임했다. 오심은 월드컵에서 1무 2패에 그치며 나락에 빠진 일본을 빠르게 추슬러 팀을 회복해 나갔고, 그렇게 오심의 일본 대표팀은 2007 AFC 아시안컵에 출전했다. 일본은 개최국 베트남과 더불어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와 함께 B조에 속했다. 그런데 일본은 1차전에서 카타르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더니 결국 1:1 무승부에 그치는 굴욕을 당했다. 2차전에서는 아랍에미리트를 3:1로 완파했고, 3차전에서 개최국 베트남을 상대로 전반 8분에 수비수 스즈키 게이타가 자책골을 넣는 불리한 경기를 했지만 4:1로 완파하며 2승 1무(승점 7점)의 준수한 성적으로 조 1위를 차지해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 상대는 1년 전 월드컵에서 1:3 역전패의 수모를 안겨준 호주였다. 물론 호주는 이번에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월드컵에서처럼 허무하게 무너지진 않았다. 1:1로 틀어막은 일본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호주를 제압하며 설욕에 성공하고 4강에 올랐다. 4강 상대는 중동의 왕자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이전까지 일본은 아시안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치고받는 접전을 벌인 끝에 결국 2:3으로 패배하며 3회 연속 우승의 꿈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3위 결정전으로 향했고, 상대는 라이벌 대한민국이었다. 일본은 대한민국의 끈적끈적한 늪 축구에 고전을 면치 못하며 결국 0:0으로 비겼고, 승부차기에서 5:6으로 패배해 결국 4위로 대회를 마감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대회 종료 이후 오심은 뇌경색으로 쓰러져 더 이상 감독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오심은 자진 사퇴했고 오카다 다케시가 10년 만에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했다.

이번 대회 지역예선은 총 4단계로 이루어졌다. 1차예선은 43개 팀 중 3차예선에 직행하는 5개 팀을 제외한 38개 팀을 19개 그룹으로 나누어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르게 되어 있는데, 1차예선의 승자 19개 팀 가운데 상위 11개 팀은 3차예선에 직행하게 되고, 2차예선에 진출한 하위 8개 팀은 다시 4개 그룹으로 나누어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 2차예선의 승자 4개 팀은 3차예선에 진출하게 된다. 3차예선은 20개 팀(1차예선 승자 11개 팀, 2차예선 승자 4개 팀, 3차예선 직행 5개 팀)을 5개 그룹으로 나누어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르는데, 각 조의 1, 2위를 기록한 10개 팀은 최종예선에 진출하게 된다. 최종예선은 3차예선을 통과한 10개 팀을 2개 조로 나누어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르는데, 각 조 1, 2위를 기록한 4개 팀은 본선에 직행하게 된다. 각 조 3위를 기록한 2개 팀은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며, 플레이오프의 승자는 오세아니아 예선 1위 팀과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대륙 플레이오프를 치르는데 대륙 플레이오프의 승자는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일본은 3차예선부터 경기를 치렀다. 일본은 태국, 오만, 바레인과 함께 2조에 속했다. 일본은 1차전 태국과의 홈 경기에서 4:1로 가볍게 승리를 따냈다. 하지만 2차전 바레인 원정 경기에서 밀란 마찰라 감독[26]이 이끄는 바레인에게 0:1 충격패를 당했다. 3차전 홈 경기에선 오만을 3:0으로 꺾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조 1위는 3전 전승(승점 9점)을 한 바레인이었고, 일본은 2승 1패(승점 6점)로 조 2위에 그쳤으며, 1승 2패(승점 3점)의 오만이 3위, 3전 전패를 한 태국이 최하위였다. 4차전 오만 원정 경기에서 일본은 또 충격적인 1:1 무승부를 당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바레인 역시 태국과의 홈 경기에서 1:1 무승부에 그쳐 승점 차는 3점으로 유지되었다. 그리고 5차전 태국 원정 경기에서 일본은 3:0으로 승리했고, 같은 날 바레인과 오만의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이 났다. 그리하여 1경기 남은 시점에서 2조 순위는 3승 2무(승점 11점)를 한 바레인이 1위, 3승 1무 1패(승점 10점)를 한 일본이 2위를 하여 바레인과 일본의 최종예선 진출이 확정되었고 오만과 태국은 탈락이 확정되었다. 마지막 바레인과의 홈 경기에서 일본은 고전 끝에 후반 45분에 터진 우치다 아쓰토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해 설욕에 성공했고 조 1위로 3차예선을 마무리했다.

최종예선에 오른 일본은 호주, 바레인, 우즈베키스탄, 카타르와 함께 A조에 속했다. 1차전 상대는 3차예선에서 충격패를 안겨주었던 바레인이었다. 일본은 바레인 원정 경기에서 전반 18분에 터진 나카무라 슌스케의 선제골과 44분에 터진 엔도 야스히토페널티킥 골, 그리고 후반 40분에 터진 나카무라 켄고의 쐐기골로 3:0으로 앞서나갔으나, 승리에 도취된 것인지 그때부터 급격히 무너져 후반 42분에 살만 이사에게 만회골을 허용하고 불과 1분 뒤에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자책골까지 집어넣어 버리면서 똥줄 타는 경기를 한 끝에 3:2 신승을 거두었다. 그 충격 때문인지 2차전 우즈베키스탄과의 홈 경기에서는 충격적인 1:1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3차전 카타르 원정 경기에선 다시 3:0 승리를 거두었지만, 4차전 호주와의 홈 경기에선 또 호주 징크스에 막혀 0:0 무승부에 그쳤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A조의 순위는 호주가 3승 1무(승점 10점)로 1위, 일본이 2승 2무(승점 8점)로 2위, 바레인과 카타르가 1승 1무 2패(승점 4점)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득실에서 바레인이 -1, 카타르가 -4를 기록했기 때문에 바레인이 3위, 카타르가 4위였고 1무 3패(승점 1점)에 그친 우즈베키스탄이 최하위였다.

그리고 5차전 바레인과의 홈 경기에서 일본은 1:0으로 승리하며 1경기 덜 치른 호주를 승점 1점 차로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다음 일본의 휴식 차례에 호주가 우즈베키스탄을 2:0으로 이기면서 다시 1위를 되찾았다. 이 시점에서 A조의 순위는 호주가 4승 1무(승점 13점)로 1위, 일본이 3승 2무(승점 11점)로 2위, 바레인이 2승 1무 3패(승점 7점)로 3위, 우즈베키스탄과 카타르가 승점 4점으로 동률이었으나 골득실에 앞선 우즈베키스탄이 4위, 카타르가 5위에 있었다. 카타르는 5번 슬롯에 있어서 다른 팀들보다 경기를 먼저 치러 2경기밖에 안 남았는데 조 2위인 일본과 승점 차이가 7점이었으므로 본선 직행이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6차전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에서 전반 9분에 터진 오카자키 신지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킨 일본은 4승 2무(승점 14점)의 전적으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같은 날 호주도 카타르 원정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두며 4승 2무(승점 14점)의 전적으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로서 바레인, 카타르, 우즈베키스탄 3팀은 모두 본선 직행이 불가능해졌다.

7차전 경기에서 호주는 홈에서 바레인을 2:0으로 이겨 승점을 17점까지 올린 반면, 일본은 홈에서 카타르와 1:1 무승부에 그치는 바람에 승점을 1점 추가하는 데에 그쳤다. 어쨌든 이 경기를 끝으로 카타르의 탈락이 확정되었다. 8차전 호주 원정 경기는 사실상 조 1위 결정전이었다. 이 경기에서 호주가 이기거나 비기면 조 1위가 확정되고, 일본은 반드시 이겨야만 조 1위를 할 수 있었다. 일본은 툴리오가 전반 39분에 터뜨린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후반전에 또 팀 케이힐에게 연달아 2골을 실점하며 또 1:2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로서 호주가 6승 2무(승점 20점)로 조 1위를 확정지었고, 4승 3무 1패(승점 15점)에 그친 일본은 조 2위로 최종예선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같은 날 바레인과 우즈베키스탄의 대결에선 바레인이 1:0으로 승리해 3승 1무 4패(승점 10점)의 전적으로 조 3위를 지키며 아시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009년 연말에 열린 조 추첨식에서 일본은 심히 껄끄러운 조에 편성되었다. 일본은 E조에 속하였는데,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와 북유럽의 강호 덴마크, 불굴의 사자로 불리는 카메룬과 한 조에 속해버린 것이었다. 하나같이 부담스러운 상대들이었다. 그런데다 일본은 조 추첨이 열리기 3개월 전에 치른 네덜란드 원정 평가전에서 0:3으로 대패했던 바가 있었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선 16강 진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해졌다. 그 뿐만 아니라 평가전의 성적도 매우 나빴다. 특히 2010년 2월, 자국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일본은 중국과 졸전 끝에 0:0으로 비긴 뒤 2차전에서 홍콩을 3:0으로 이겼으나, 3차전에서 라이벌 대한민국을 상대로 1:3으로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특히 당시 대한민국은 전 경기에서 중국에게 0:3으로 완패해 사상 최초로 공한증이 깨져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일본은 한국에게 완패를 당한 것이다. 그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오카다 불신론이 팽배해졌고, 급기야는 오카다를 경질하라는 목소리까지 높아졌다.

또 2010년 5월에 출정식을 겸해서 다시 한 번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한일전을 치렀는데, 전반 5분 만에 한국의 주장 박지성에게 선제골을 얻어맞았고 박지성이 일본 관중들을 노려보며 경기장을 도는 산책 세레머니를 지켜봐야 하는 굴욕을 당했다. 그리고 종료 직전에 박주영의 페널티킥 골까지 얻어맞으며 또 0:2로 완패했다. 경기가 이렇게 끝나자 일본 여론은 대폭발하여 오카다를 즉시 경질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한국도 못 이기는 주제에 무슨 월드컵이냐? 때려치워라!"라며 아예 월드컵을 포기하라는 극단적인 여론까지 들끓기 시작했다. 6일 후 치른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선 전반 7분만에 툴리오가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갔고, 경기 중반에 프랭크 램파드가 찬 페널티킥을 골키퍼 가와시마 에이지가 선방해내는 기염을 토했으나 막판에 수비수 2명이서 번갈아 자책골을 넣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인 끝에 1:2 역전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코트디부아르와의 마지막 평가전 역시 패배로 끝났고, 연이은 졸전에 일본 축구팬들은 해탈하여 아예 월드컵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6.1. 32강 조별리그 카메룬전 - 1 : 0 승[편집]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E조 제2경기
2010년 6월 14일 16:00(UTC+2)

프리 스테이트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블룸폰테인)
주심: 올레가리우 벤케렌사 (포르투갈)
파일:일본 국기.svg
1 : 0
파일:카메룬 국기.svg
일본
카메룬
39′ 혼다 케이스케
득점자
-
관중: 30,620명
Man of the Match: [[혼다 케이스케|{{{#000000 혼다 케이스케}}}]] (일본)

일본의 조별리그 1차전 상대는 과거 아프리카의 제왕이었던 카메룬이었다. 20년 전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소련 출신 명장 발레리 니폼니시의 지도와 불굴의 사자 로저 밀러의 맹활약으로 8강 신화를 쓰며 아프리카의 챔피언에 올랐던 카메룬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며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고 이때는 전성기에서 많이 내려온 상태였다. 사실상 사무엘 에투 원맨 팀이나 마찬가지였다. 한편 카메룬과의 경기가 열리기 이틀 전에 라이벌 대한민국이 그리스를 2:0으로 제압했는데, 이 경기를 본 오카다는 "한국의 경기를 보고 깊은 영감을 얻었다."라고 말하며 전술 스타일을 바꿀 것임을 암시했다. 기사 참조.

국민들의 기대감이 극도로 떨어진 상태에서 경기에 나선 일본은 오카다가 예고한 대로 전술 스타일을 싹 바꾸고 나왔다. 이전까지 연습한 소위 '스시타카'를 버리고 중원을 강하게 압박하는 한국 스타일로 전술을 바꾸었다. 경기 초반부터 일본은 라인을 극도로 끌어내리고 잠그며 수비에만 전념했고, 카메룬 선수들이 공을 잡으면 날파리처럼 귀찮을 정도로 달라붙으며 공격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안 그래도 조직력이 모래알이었던 카메룬 선수들은 일본 선수들의 귀찮을 정도로 달라붙는 날파리 수비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거기다가 공인구 자블라니에 적응이 전혀 안 되었는지 실속 없는 공격을 할 뿐이었다.

이렇게 전반전 내내 수비를 하며 잠그던 일본은 단 한 번의 역습으로 카메룬의 골문을 열어젖혔다. 전반 39분, 우측 윙어 마스이 다이스케가 카메룬 진영 우측에서 올린 크로스를 혼다 케이스케가 받았고, 카메룬의 수문장 술레마누 아미두가 전진한 틈을 타 잽싸게 왼발로 밀어넣으며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카메룬 수비수들이 공중볼 경합을 제대로 못한 데다 혼다를 노마크 상태로 방치한 게 화근이었다. 1골을 넣은 일본은 또 다시 잠그기에 들어가며 극악의 늪 축구를 선보였다. 거기다가 카메룬 선수들은 조직력은 어디다 갖다 팔아먹은 것인지 자신들의 개인기에만 의존하며 전혀 효율적인 공격을 하지 못했다. 덕분에 경기는 하품이 쩍쩍 나올 정도로 지루해졌다. 얼마나 지루한 경기였던지 참새가 한가롭게 그라운드 위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장면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재미 대신 실리를 택한 일본은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극악의 수비로 1골 차 리드를 지켜나갔고, 결국 경기는 일본의 1:0 승리로 끝났다. 이것은 일본이 원정 대회에서 거둔 첫 번째 승리였다. 한국을 비롯한 제 3국 언론들은 이런 지루하고 맥빠지는 경기에 온갖 혹평을 보냈으나 당사자인 일본 축구팬들과 언론들은 기뻐했다. 기대하지도 않았건만 승리를 거두었기에 오카다에 대한 여론도 서서히 호의적으로 반전되기 시작했다.


6.2. 32강 조별리그 네덜란드전 - 0 : 1 패[편집]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E조 제3경기
2010년 6월 19일 13:30(UTC+2)

모지스 마비다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
주심: 엑토르 발다시 (아르헨티나)
파일:일본 국기.svg
0 : 1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일본
네덜란드
-
득점자
53′ 웨슬리 스네이더
관중: 62,010명
Man of the Match: [[웨슬리 스네이더|{{{#000000 웨슬리 스네이더}}}]] (네덜란드)

일본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였다. 일본은 2009년 9월에 네덜란드 원정 평가전에서 0:3 대패를 당한 바 있었다. 전력상 네덜란드가 월등히 앞서있었고, 또 결정적으로 네덜란드는 유럽과 남미 이외 다른 대륙 팀에게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팀이었다. 그렇기에 애초부터 이 경기는 네덜란드의 압승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네덜란드의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감독은 일본과의 경기를 앞두고 "일본은 한 5:0쯤으로 이겨주어야 한다."라며 큰소리를 뻥뻥 쳤다. 일본 내에서도 카메룬은 운 좋게 이겼지만 네덜란드는 이기기 힘들 것이라고 예측하며 경기를 포기했다.

일본은 이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로 극악의 늪 축구를 선보였다. 노골적으로 라인을 끌어내리고 잠그기에 들어가니 네덜란드 선수들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 경기에서 일본은 거의 공격은 반쯤 포기하고 수비에만 전념했다. 사실상 전원 수비로 들어가니 공격을 할 공간이 나오지 않았고, 마땅히 골이어야 할 슈팅들도 일본 선수들의 몸에 맞고 튕겨나가며 골문 밖을 벗어나버린 것이다. 그렇게 강력한 수비로 일본은 네덜란드의 공세를 잘 버텨내며 전반전을 0:0으로 마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공격은 하지 않고 수비하고 버티기만 해서는 비길 수는 있어도 이길 수는 없다는 걸 일본은 알았어야 했다.

이렇게 전반전을 잘 버틴 일본이었지만, 후반전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후반 8분, 웨슬리 스네이더가 일본 진영 좌측에서 전방에 있던 주장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에게 패스했고, 판브롱크호르스트는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일본 센터백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디르크 카윗을 제치고 한 발 먼저 볼을 따내 헤더로 걷어냈으나, 공은 멀리 가지 않았고 바로 옆의 로빈 반 페르시에게 갔다. 반 페르시는 뒤에서 쇄도하던 스네이더가 노마크 상태인 걸 확인하고 바로 스네이더에게 볼을 건넸고, 스네이더는 페널티 박스 좌측 외곽에서 오른발로 대포알 중거리 슛을 날렸다. 슈팅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가와시마 에이지가 볼을 치긴 했지만 전혀 방향도 바꾸지 못했고 그대로 골문 우측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렇게 네덜란드가 1:0으로 앞서갔다.

막힌 혈이 뚫린 네덜란드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으나, 일본 수비진들의 협력 수비와 가와시마의 선방쇼에 막히며 추가골을 넣는 데에는 실패했다. 경기 막판에 일본의 역습 찬스에서 오카자키 신지가 좋은 득점 기회를 잡았으나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며 아쉽게 날렸다. 그렇게 경기는 네덜란드의 1:0 승리로 끝났다. 물론 이기기 힘든 상대였고 질 게 뻔하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던 상대였다. 예상대로 졌긴 했지만 그래도 잘 버텨내서 1점 차로 패배했기에 나름대로 잘 치른 경기라고 만족할 수 있었다. 한편 같은 날 열린 카메룬과 덴마크의 경기는 덴마크의 2:1 역전승으로 끝이 났다. 이리하여 네덜란드는 본선 진출 32개국들 중 가장 먼저 16강 진출이 확정되었고, 반면 카메룬은 가장 먼저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었다. 이제 3차전 경기 결과에 따라 일본과 덴마크 중 누가 네덜란드와 함께 16강에 합류하느냐의 여부가 결정된다.


6.3. 32강 조별리그 덴마크전 - 3 : 1 승[편집]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E조 제5-2경기
2010년 6월 24일 20:30(UTC+2)

로열 바포켕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루스텐버그)
주심: 제롬 데이먼 (남아프리카공화국)
파일:일본 국기.svg
3 : 1
파일:덴마크 국기.svg
일본
덴마크
17′ 혼다 케이스케(FK)
30′ 엔도 야스히토(FK)
87′ 오카자키 신지
득점자
81′ 욘 달 토마손
관중: 27,967명
Man of the Match: [[혼다 케이스케|{{{#000000 혼다 케이스케}}}]] (일본)
일본의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는 '대니쉬 다이너마이트' 덴마크였다. 덴마크는 이때까지는 월드컵 진출 횟수는 단 4번에 불과했지만, 진출하기만 하면 단 한 번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해본 적이 없는 팀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의 덴마크는 1998 프랑스 월드컵 당시 8강 신화를 썼던 전성기에 비선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우선 모르텐 올센 감독이 장기집권을 하면서 팀 전체가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세대교체까지 실패해 당시 30대 중반이라 전성기의 날카로움을 잃은 욘 달 토마손과 역시 30대인 데니스 롬메달 등이 아직도 주포로 기용되고 있을 정도였다. 8년 전 한국에서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2:0으로 발라버렸던 그 때의 덴마크와 비교하면 심히 약해진 상태였던 게 일본으로서는 그나마 행운이었다.

2차전까지 E조의 순위는 네덜란드가 2승(승점 6점)으로 조 1위를 차지하여 16강 진출을 확정지었고, 일본과 덴마크가 1승 1패(승점 3점)로 동률이었으나 골득실에서 일본이 0, 덴마크가 -1을 기록해 일본이 2위, 덴마크가 3위에 있었다. 그리고 2패(승점 0점)를 기록한 카메룬은 이미 탈락이 확정되었다. 즉 이 경기는 E조 2위를 결정지을 단두대 매치였던 것이다. 골득실에서 1골 더 앞선 일본은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올라갈 수 있었으나, 덴마크는 반드시 이겨야만 올라갈 수 있는 입장이었다. 이틀 전 라이벌인 대한민국이 B조 2위로 8년만에 16강에 진출했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우리도 질 수 없다."며 반드시 덴마크를 잡고 16강에 가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다. 그렇게 일본과 덴마크의 단두대 매치가 열렸다.

경기 시작 전 인터뷰에서 덴마크의 감독 모르텐 올센은 일본이 강한 피지컬로 밀어버리는 축구에 약점을 보이는 걸 안다는 듯 "피지컬로 찍어누르겠다."라고 했지만, 정작 경기에서는 패스 플레이를 통해 점유율을 높이는 점유율 축구를 했다. 즉 자신들의 장점을 갖다 버린 것이다. 올센은 일본을 격파할 방법이 버젓이 나와있는데도 그걸 전혀 모르고 활용을 못한 것이다. 어쨌든 이런 전술 덕분에 경기 자체는 덴마크의 공세, 일본의 수세로 이어졌다. 극악의 늪 축구로 전술 스타일을 바꾼 일본은 이 경기에서도 덴마크 공격수들을 향해 귀찮은 날파리떼들처럼 달라붙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미 전성기의 날카로움을 잃은 덴마크의 주포 욘 달 토마손은 수시로 찾아온 득점 찬스를 어이없는 슈팅으로 날려먹으며 땅을 쳐야 했다.

그렇게 수비적으로 잘 버티던 일본은 전반 17분, 덴마크 진영 우측에서 결정적인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킥커로 나선 이는 혼다 케이스케였다. 혼다는 왼발 무회전 킥을 날렸고, 이 슛은 빨랫줄처럼 덴마크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 덴마크의 수문장 토마스 쇠렌센은 평소에도 프리킥 선방에 약점을 보이는 선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방향 예측에 실패하며 역동작에 걸려 속절없이 실점하고 말았다. 그렇게 일본이 1:0으로 앞서갔다. 1골 차로 뒤진 덴마크에 남은 선택은 오로지 공격 뿐이었다. 하지만 덴마크의 공격은 점유율만 높았을 뿐 계속해서 일본 수비진에 막히며 효율적으로 공략하지 못했다. 그러다 전반 30분, 페널티 박스 정면 외곽에서 또 일본이 프리킥 찬스를 잡았다. 이번에 킥커로 나선 이는 엔도 야스히토였다. 엔도는 오른발 감아차기로 절묘하게 덴마크의 수비벽을 우회했고, 이 킥도 정확하게 덴마크 골문 우측 구석을 관통하며 스코어는 이제 2:0으로 벌어졌다. 쇠렌센 골키퍼는 이번에도 방향 예측에 실패하며 또 역동작에 걸려 실점했다. 덴마크로서는 골을 넣어야 할 때 골을 못 넣었다가 프리킥 두 방을 맞으며 무너진 것이다. 그렇게 전반전은 일본이 2 : 0으로 앞선 채로 끝이 났다.

비겨도 안 되고 패해도 안 되는 덴마크로서는 남은 후반전 45분 동안 어떻게든 3골을 넣어서 경기를 뒤집어야 했다. 하지만 세대 교체 실패로 노쇠한 공격수들 투성이었던 덴마크는 좀처럼 득점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오히려 엔도에게 또 프리킥 실점을 당할 뻔했다. 엔도가 찬 프리킥을 쇠렌센이 쳐냈으나 손에 빗맞으며 골문 쪽으로 날아갔는데 다행히도 골대 맞고 안 들어갔다. 만약 이것마저 들어갔다면 0:3으로까지 더 벌어질 뻔했다. 그렇게 아까운 시간들이 계속 흐르던 중 후반 36분, 일본의 주장 하세베 마코토가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덴마크의 다니엘 아게르를 손으로 미는 반칙을 범했고 주심은 즉시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페널티킥 킥커로 나선 이는 욘 달 토마손이었다. 토마손의 페널티킥을 가와시마가 막아냈지만 토마손이 세컨드볼을 재빨리 다시 차넣어 결국 스코어를 2:1로 좁혔다.

이제 약 10분 정도 남은 시점에서 어떻게든 2골을 더 넣어야 했던 덴마크는 계속해서 라인을 올리며 공격에 나섰다. 우루과이의 명장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은 "축구는 짧은 담요와 같아서 머리를 덮으면 발이 드러나고 발을 덮으면 머리가 드러난다."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과연 덴마크의 배후 공간은 이 때문에 텅 비어버렸다. 덴마크의 공격 상황에서 볼을 가로챈 일본은 곧바로 혼다와 오카자키 신지가 역습에 나섰다. 혼다는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덴마크의 데니스 롬메달을 피해 뒤의 오카자키에게 패스했고, 오카자키가 그대로 3번째 골을 꽂아넣으며 덴마크를 완전히 격침시켰다. 그리하여 경기는 일본의 3:1 완승으로 끝났고, 2승 1패(승점 6점)를 기록한 일본은 조 2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덴마크는 사상 최초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렇게 덴마크를 효율적인 축구로 잡아낸 일본은 외신들로부터 갖은 찬사를 받았고, 일본 내에서도 오카다에게 "그동안 미안했다."라며 사과하고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이런 오카다의 전술은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를 빗대 '오카나치오'라는 애칭을 얻었다. 또한 한국인들도 일본의 16강 진출을 축하해 주는 훈훈함을 보였다.


6.4. 16강전 파라과이전 - 0 : 0 무 (PSO 3 : 5 패)[편집]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16강 제7경기
2010년 6월 29일 16:00(UTC+2)

로프터스 버스펠트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리토리아)
주심: 프랑크 더 블레이케러 (벨기에)
파일:일본 국기.svg
0 : 0
(PSO 3 - 5)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일본

파라과이

-
득점자
-
관중: 36,742명
Man Of the Match: 혼다 케이스케 (일본)

승부차기
국가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파라과이
점수
3
5
순서
후축
선축
1
엔도 야스히토
O
에드가르 바레토
O
2
하세베 마코토
O
루카스 바리오스
O
3
고마노 유이치
X
(골대)
크리스티안 리베로스
O
4
혼다 케이스케
O
넬손 발데스
O
5
-
-
오스카르 카르도소
O
당초 일본이 16강에 진출할 경우 대결 상대는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가 유력했으나, 예상 외로 이탈리아가 심히 비실거리는 모습을 보인 끝에 2무 1패의 성적을 기록하며 조 최하위로 탈락했고 파라과이가 조 1위를 차지하며 결국 파라과이로 정해졌다. 일본과 파라과이 두 팀 모두 수비는 강력하지만 반대급부로 공격은 매우 빈약한 팀들이었다. 이렇게 수비가 강력한 두 팀이 토너먼트에서 만나면 얼마나 최악의 시너지를 발휘하게 되는지 이때까지는 미처 몰랐다. 일본은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을 그대로 들고 나왔는데, 문제는 파라과이 역시 이 전술에 제대로 당한 덴마크를 교훈삼아 일본과 같은 전술을 가지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 축구팬들의 악몽은 시작되었다.

과연 양 팀의 수비력은 대단했으나, 공격력은 막장 수준인 데다가 애초에 두 팀은 공격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일본은 덴마크전과 마찬가지로 프리킥 찬스를 얻으려 했지만, 파라과이는 그것을 알았는지 초반 2연속 프리킥 골에 무너진 덴마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수비 템포를 조절하고 일본의 카운터에 대비하여 몇 차례 찬스를 제외하고는 적극적으로 공격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결과는 아주 루즈한 무재배 경기. 거의 슈팅이 15분에 1번 꼴로 나올 정도로 굉장히 지루하고 맥빠지는 경기였다. 이런 재미도 없는 경기 탓에 축구팬들은 하나 둘씩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SBS에서 이 경기를 중계하던 차범근 해설위원도 처음엔 양 팀의 수비를 칭찬했으나 "120분 동안 계속 수비를 칭찬하는 것도 지친다."라고 말했고 "경기가 지루하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혼다 케이스케를 필두로 한 일본 공격수들은 파라과이의 협력 수비에 꽁꽁 묶여 아무것도 못했으며, 로케 산타 크루즈를 중심으로 한 파라과이 공격진 역시 빈약한 골 결정력을 드러내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렇게 전후반 90분이 다 가도록 양 팀은 스코어 0:0의 균형을 깨뜨리지 못했고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연장전에서도 양 팀의 맥빠지는 경기는 계속되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거의 없을 정도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야말로 수면제 경기였다. 일본과 파라과이 모두 절망적인 골 결정력을 보이며 좀처럼 상대의 골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연장전 30분이 다 가도록 승부를 가리지 못해 대회 첫 승부차기를 치르게 되었다. 120분 동안 펼친 경기보다 오히려 승부차기가 더 기억날 장면이 많을 정도로 정말 형편없는 경기였다. 일본으로선 J리그 최우수 골키퍼였던 가와시마 에이지의 선방에 기대를 걸었고, 파라과이 역시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의 후계자 후스토 비야르에게 희망을 걸었다.

승부차기는 파라과이의 선축으로 시작되었다. 파라과이의 1번 킥커 에드가르 바레토는 오른발 땅볼 슛으로 정확히 골문 좌측 구석을 갈랐다. 뒤이어 일본의 1번 킥커 엔도 야스히토도 파라과이 골키퍼 후스토 비야르의 눈을 속이고 골문 오른쪽으로 정확히 차 넣었다. 이어서 파라과이의 2번 킥커 루카스 바리오스 역시 오른발 땅볼 슛으로 골문 우측 구석으로 차 넣었다. 가와시마가 방향은 읽었으나 킥이 너무 빨라 캐치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일본의 2번 킥커 하세베 마코토 역시 골문 좌측 상단으로 정확히 차 넣었다. 후스토가 방향은 읽었으나 킥이 높아 잡아낼 수 없었다. 그 다음 파라과이의 3번 킥커 크리스티안 리베로스도 가와시마의 눈을 속여 반대쪽으로 땅볼 슛을 차 넣으며 스코어를 벌렸다. 이어서 일본의 3번 킥커 고마노 유이치가 나섰다. 그러나 고마노의 킥은 크로스바를 강타하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뒤이어 파라과이의 4번 킥커 넬손 발데스도 가와시마의 눈을 속이며 반대쪽으로 차넣었다. 이제 일본이 다급해졌다. 4번 킥커 혼다 케이스케가 실패하면 그대로 경기는 끝나게 된다. 다행히도 혼다는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이제 파라과이의 5번 킥커 오스카르 카르도소의 발 끝에 8강 진출 팀이 결정된다. 카르도소는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달려와서 가와시마의 움직임을 보고 왼발로 반대편 골문 구석을 향해 찼다. 그리하여 결국 승부차기 5 : 3으로 파라과이가 승리해 8강에 진출했고, 일본은 또 다시 2002 16강 9위에 이어 2010남아공월드컵에서도 16강 9위에 그치고 말았다.


7. 2014 브라질 월드컵[편집]


남아공 월드컵이 종료되고 일본축구협회는 오카다에게 재계약을 제안했지만, 오카다는 "농부가 되고 싶다."라며 제계약을 거부했다. 결국 새 감독을 뽑아야 했고, 새로 감독이 된 인물은 이탈리아 출신의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었다. 자케로니가 이끄는 일본은 초반에는 순항했다. 데뷔전이 바로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이었는데, 이 경기에서 놀랍게도 일본이 아르헨티나를 1:0으로 제압한 것이다. 그때부터 자케로니에 대한 평판은 수직상승했다. 그리고 오카다 시절 단 한 번도 못 이겨봤던 라이벌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서울 원정 경기였는데도 한 수 위의 경기력을 보이며 0:0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리고 첫 번째 국제 대회인 2011 AFC 아시안컵에서 조별리그 1차전은 요르단과 졸전 끝에 1 : 1 무승부를 거두며 불안한 출발을 했지만, 2차전에서 시리아에게 고전 끝에 2 : 1로 승리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리고 3차전 경기는 '미리 보는 결승전'으로 불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였다.[27] 지난 대회에서 일본은 사우디아라비아에 2 : 3으로 패배해 결승 진출이 좌절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오카자키 신지해트트릭과 마에다 료이치의 멀티골에 힘입어 5 : 0 대승을 거두며 4년 전 패배를 설욕했다.[28] 8강전 상대는 개최국 카타르였다. 이상하게 일본은 아시안컵에서 카타르를 만나면 고전하는 징크스가 있었다. 이전까지 총 3번 맞붙었지만 2무 1패로 전적 열세에 있었다. 이번에도 고전하긴 했지만 후반 45분에 터진 이노하 마사히코의 결승골에 힘입어 3 : 2 역전승을 거두고 4강에 올랐다. 4강전 상대는 라이벌 대한민국이었다. 일본은 대한민국을 맞아 상당히 고전했고 120분 간 연장 혈투를 치른 끝에 2 : 2 무승부를 거두었다. 결국 승부는 승부차기로 가려야 했다. 지난 대회에서 일본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승부차기 5 : 6으로 패배해 4위에 그쳤지만 이번엔 가와시마 에이지 골키퍼의 선방쇼에 힘입어 3 : 0으로 꺾고 설욕에 성공했다. 결승전 상대는 바로 호주였다. 90분 간 대결에서 양 팀 모두 상대의 골문을 열지 못하며 결국 승부는 연장전으로 흘러갔고 연장 후반 4분에 재일교포 이충성의 결승골로 호주를 1 : 0으로 제압해 4번째 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우승으로 일본은 '아시안컵 최다 우승국'이란 타이틀을 가져가게 되었다. 아시안컵 우승으로 자케로니 감독에 대한 평가는 더욱 올라갔다.

그리고 2011년 가을부터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이 시작되었는데, 이번 월드컵 지역예선은 지난 대회와 같은 방식으로 치러졌다. 다만 대륙간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경우 남미 지역예선 5위와 치른다는 게 다르다. AFC 소속 43개국이 출전했는데 1차 예선팀과, 2차 예선 자동진출팀은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결과로 결정되고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던 대한민국, 북한,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최종 예선 3위 팀간의 AFC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했던 바레인은 최상위 시드로 선정되어 3차 예선에 자동 진출하였다. 일본은 3차 예선에서 북한,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29]과 함께 C조에 속했다. 일본의 1차전 상대는 북한이었다. 일본은 홈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피지컬과 체력을 앞세워 극단적인 수비전술로 임하는 북한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치르면서도 좀처럼 북한의 골문을 열지 못해 쩔쩔매다가 경기 종료 직전에 요시다 마야가 간신히 결승골을 터뜨려 1 : 0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2차전은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도 전반 8분만에 세르베르 제파로프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가다가 후반 20분에 오카자키 신지가 간신히 동점골을 터뜨려 1 : 1 무승부에 그쳤다. 하지만 3차전 타지키스탄과의 홈 경기에선 모처럼 화력쇼를 선보이며 5명이 골고루 득점한 끝에 8 : 0 대승을 거두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C조의 순위는 일본과 우즈베키스탄이 2승 1무(승점 7점)로 동률이었으나 골 득실에서 일본이 +9, 우즈베키스탄이 +2였으므로 일본이 1위, 우즈베키스탄이 2위였고 뒤를 이어 북한이 1승 2패(승점 3점)로 3위, 타지키스탄은 3전 전패(승점 0점)로 최하위였다.

4차전 경기는 타지키스탄 원정 경기였다. 현재 조 3위인 북한이 2위 팀과 승점 4점 차이이므로 일본으로선 타지키스탄을 꺾고 같은 날에 우즈베키스탄이 북한을 이기면 자동적으로 최종예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4차전 경기에서 일본은 타지키스탄을 4 : 0으로 크게 이겼고 같은 날 우즈베키스탄이 홈에서 북한을 1 : 0으로 이기면서 결국 2경기 남은 시점에서 일본과 우즈베키스탄의 최종예선 진출이 확정되었고 북한과 타지키스탄의 탈락이 확정되었다. 5차전 경기는 북한 원정 경기였는데 이미 최종예선 진출이 확정된 일본과 탈락이 확정된 북한의 경기라 승패에 크게 관계 없는 경기였다. 하지만 양국 간에 얽힌 역사 때문에 일본 축구팬들 입장에선 반드시 북한을 이겨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평양 원정 경기에서 일본은 김일성경기장의 살인적인 홈 텃세에 맥을 못 추다가 결국 후반 4분에 박남철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 : 1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잠시 자케로니 감독에 대한 평판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경기는 우즈베키스탄과의 홈 경기였는데 사실상 조 1위 결정전이었다. 하지만 이 경기가 중요했던 이유는 바로 최종예선 시드 배정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종예선 시드 배정은 2012년 3월 피파랭킹을 토대로 결정하는데 2월 랭킹이 일본이 30위였고 대한민국이 34위였다. 이대로 순위가 유지될 경우 일본은 최종예선에서 톱 시드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비기거나 질 경우엔 톱 시드를 대한민국에 빼앗길 위험이 존재했다. 일본은 우즈베키스탄과의 홈 경기에서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으로 좀처럼 우즈베키스탄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골을 넣어야 할 때 못 넣었던 대가는 참혹했다. 결국 일본은 후반 9분에 우즈베키스탄의 역습 상황에서 알렉산드르 샤드린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 : 1로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3차 예선을 3승 1무 2패(승점 10점)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같은 날 B조의 대한민국이 쿠웨이트를 2 : 0으로 꺾고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로 인해 3월 피파랭킹에서 대한민국이 30위로 뛰어올랐고 일본은 33위로 떨어져 다 잡은 톱 시드 자리를 대한민국에 헌납해야 했다.

최종예선에 오른 일본은 호주, 요르단, 이라크, 오만과 함께 B조에 속했다. 일본은 2번 시드였기 때문에 본래는 2번 슬롯에 배정을 받아야 했으나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라질 출전을 이유로 경기를 먼저 치르는 5번 슬롯으로 가겠다고 자청했다. 그리하여 5번 슬롯으로 배정을 받아 경기를 치렀다. 1차전 경기는 오만과의 홈 경기였다. 일본은 오만을 상대로 3 : 0으로 깔끔하게 승리를 거두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2차전 경기는 요르단과의 홈 경기였는데 이 경기 전까지 일본과 요르단의 상대 전적은 3전 3무로 3번 붙어서 단 1번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래서 난관이 예상되었으나 혼다 케이스케해트트릭에 힘입어 무려 6 : 0 대승을 거두어 요르단전 무승 징크스를 끊어냈다. 3차전은 호주 원정 경기였다. 일본은 설욕을 다짐했으나 역시 안방 챔피언 호주의 위엄은 대단했고 결국 1 : 1 무승부에 그치며 또 다시 호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4차전 이라크와의 홈 경기에서도 고전했지만 1 : 0으로 승리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B조의 순위는 일본이 3승 1무(승점 10점)로 1위, 호주와 오만이 1승 2무 1패(승점 5점)로 동률이었으나 골 득실에서 호주가 더 앞서서 호주가 2위, 오만이 3위였으며 요르단이 1승 1무 2패(승점 4점)으로 4위, 이라크가 2무 2패(승점 2점)로 최하위에 있었다. 의외로 톱시드 팀인 호주가 상당히 비실거려서 일본의 본선 진출이 탄탄대로가 되었다.

5차전 경기는 오만 원정 경기였다. 일본은 이 경기에서 1차전과는 달리 조금 고전했지만 그래도 2 : 1 승리를 거두며 승점을 13점으로 추가해 조 1위 자리를 지켜나갔다. 같은 날 이라크가 요르단을 1 : 0으로 꺾고 첫 승을 기록하면서 요르단이 조 최하위로 떨어졌고 호주, 오만, 이라크 3팀이 승점 5점으로 동률이 되었다. 1위와 2위 간 승점 차가 무려 8점이나 나는 것이다. 6차전 경기는 요르단 원정 경기였다. 이 경기가 열리기 전에 호주 VS 오만의 경기가 열렸는데 이 경기에서 호주가 오만을 상대로 2 : 2 충격적인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호주의 승점은 6점에 그치게 되었다. 일본의 승점은 13점이었기에 요르단과 비기기만 해도 본선 진출이 확정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일본은 지독한 요르단의 침대축구와 홈 텃세에 시달린 끝에 1 : 2 충격패를 당하고 말았다. 일본을 잡아낸 요르단은 순식간에 조 2위로 도약했다. 7차전 경기는 호주와의 홈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일본은 비기기만 해도 본선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호주는 아무리 쇠락했어도 여전히 강한 상대였고 후반 36분에 토미 오어에게 선제골을 먹으며 불리한 경기를 했다. 하지만 종료 직전에 혼다 케이스케의 페널티킥 골로 간신히 1 : 1 무승부를 거두며 4승 2무 1패(승점 14점)의 전적으로 본선 진출 및 조 1위 자리를 확정지었다. 같은 날 오만이 이라크를 1 : 0으로 이기면서 조 2위로 도약했다. 이 때 B조의 순위는 일본이 4승 2무 1패(승점 14점)로 1위, 오만이 2승 3무 2패(승점 9점)로 2위, 호주와 요르단이 각각 1승 4무 1패(승점 7점), 2승 1무 3패(승점 7점)로 동률이었으나 골 득실에서 앞선 호주가 3위, 요르단이 4위였다. 그리고 이라크가 1승 2무 3패(승점 5점)로 최하위에 있었다. 8차전 경기는 이라크 원정 경기였는데[30] 이 경기에서 일본은 1 : 0 승리를 거두며 5승 2무 1패(승점 17점)로 예선을 마무리지었고 이라크는 탈락이 확정되었다. 같은 날 호주는 요르단을 4 : 0으로 대파하며 조 2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에서 호주는 이라크를 1 : 0으로 격파해 3승 4무 1패(승점 13점)로 간신히 조 2위를 기록해 본선에 진출했고 플레이오프 결정전이 된 요르단과 오만의 경기는 요르단의 1 : 0 승리로 끝이 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고 오만은 탈락이 확정되었다.

예선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치른 일본은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라질에 출전했다. 이 때 일본은 개최국 브라질,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 그리고 북중미 최강자 멕시코와 함께 A조에 속했다. 1차전 상대는 개최국 브라질이었다. A매치에서 단 1번도 브라질을 이겨본 적이 없었던 일본은 예상대로 브라질에 0 : 3으로 대패를 당했다. 하지만 2차전 상대 이탈리아를 맞아선 매우 선전하여 크게 고전시켰고 아쉽게 3 : 4 역전패를 당했다. 심지어 일본이 전반전엔 2 : 0으로 리드하고 있기까지 했다. 이 경기 때문에 라이벌 한국의 축구팬들은 크게 부러워하며 당시 침체기를 걷고 있던 한국 대표팀을 향해 성토,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31] 하지만 암만 잘 싸웠어도 진 건 진거고 2패를 기록했으니 탈락은 확정되었다. 3차전 상대 멕시코를 상대로 일본은 별 좋은 모습을 못 보여준 채 치차리토에게 2골을 먹으며 1 : 2로 패배해 3전 전패로 탈락했다.

이후 평가전에선 좀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네덜란드와 2 : 2 무승부를 거두고, '흥 강호로 떠오른 벨기에를 3 : 2로 꺾어버리면서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그리고 또 이후 2013년 연말에 있었던 조 추첨식에서 일본은 콜롬비아, 코트디부아르, 그리스와 함께 C조에 속했다. 비교적 무난한 조 편성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특히 그리스는 지난 대회에서 대한민국에 0:2 패배를 당한 바 있었고, 2014년 3월에 치른 평가전에서도 당시 암흑기를 걷고 있던 대한민국을 상대로 홈에서도 0:2로 패배할 정도로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그리스를 강력한 1승 제물로 여기고 있었다. 잇다른 평가전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일본의 자만심은 더욱 높아져 갔고, 이번에도 또 '4강 드립'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은 평가전과 월드컵은 천지 차이이며 모의고사를 백 날 잘 쳐도 수능을 망치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걸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일본 선수들은 결전의 땅 브라질로 향했다.


7.1. 32강 조별리그 코트디부아르전 - 1 : 2 패[편집]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_좌우.svg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C조 2경기
2014. 06. 14.(토) 22:00(UTC-3)[32]

아레나 페르남부쿠 (브라질, 헤시피)
주심: 엔리케 오세스 (칠레)
파일:일본 국기.svg
1 : 2
파일:코트디부아르 국기.svg
일본
코트디부아르
16' 혼다 케이스케
득점자
64' 윌프리드 보니
66' 제르비뉴
관중 : 40,267명
Man Of the Match: [[야야 투레|{{{#000000 야야 투레}}}]] (코트디부아르)

일본의 조별리그 1차전 상대는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였다. 경기 초반에는 코트디부아르가 공격적으로 나서며 일본을 사정없이 밀어붙였으나 일본의 수비에 막혀 골문을 열지 못했다. 특히 윌프리드 보니가 일본 진영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슛을 날렸으나 일본 수비수 모리시게 마사토의 몸에 맞고 볼이 굴절되어 버리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한동안 촘촘한 수비로 잘 버티던 일본은 전반 16분, 스로인 찬스에서 레프트백 나가토모 유토카가와 신지에게 스로인을 했고, 카가와는 코트디부아르의 셰이크 티오데가 수비하러 달려오는 걸 보고 다시 나가토모에게 패스했다. 나가토모는 페널티 에어리어에 노마크 상태로 있던 혼다 케이스케를 보고 곧바로 킬패스를 건넸고, 혼다가 그 볼을 받아 왼발 강슛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냈다. 그렇게 일본이 1: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코트디부아르는 4년 전 일본이 상대했던 카메룬과는 급이 다른 상대였다. 1골을 실점하자 코트디부아르는 맹렬한 기세로 공격을 퍼부으며 주도권을 되찾아왔고, 일본은 촘촘한 수비를 세우며 버티기에만 급급했다. 하지만 일본이 그나마 수비를 촘촘하게 잘 세운 덕에 코트디부아르도 골을 넣지 못하고 쩔쩔맸다. 아르튀르 보카의 멋진 프리킥도 골문을 살짝 벗어나며 땅을 쳐야 했다. 일본은 수비적으로 경기하면서도 간간이 역습을 하면서 코트디부아르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경기 전 부상으로 출전이 불투명했으나 괴물 같은 회복력으로 회복해 선발 출전한 야야 투레도 아직 몸이 덜 풀렸는지 크게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렇게 전반전은 일본이 1:0으로 앞선 채로 끝이 났고, 일본의 아프리카 불패 기록이 이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후반전이 되자 경기 양상은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후반전 초반까지는 일본이 앞선 채로 코트디부아르의 공격을 지칠 때까지 받아준 후 틈을 엿보아 추가골 한 방을 노리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코트디부아르가 후반 17분, 세레이 디에를 빼고 디디에 드록바를 투입하자 경기가 급격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후반 19분, 중원에서 투레가 오른쪽에 있던 라이트백 세르주 오리에에게 패스했다. 오리에는 우측에서 크로스를 올렸는데, 일본 수비수들은 드록바에게 시선이 쏠리면서 뒤에서 들어오는 보니의 움직임을 완전히 놓쳤다. 보니는 곧바로 페널티 에어리어로 침투해 헤더로 정확하게 연결하며 동점골을 터뜨렸다. 그리고 불과 2분 후, 일본 진영으로 드리블을 해오던 제르비뉴가 중앙의 보니에게 패스했고, 보니는 우측의 오리에에게 절묘한 스루 패스를 넣었다. 이때도 일본 수비수들은 드록바에게 현혹되어 또 그에게만 3명이 달라붙었고 다시 페널티 에어리어로 침투하는 제르비뉴의 움직임을 놓쳤다. 오리에가 다시 중앙으로 크로스를 했고, 그걸 제르비뉴가 노마크 상태에서 프리 헤더로 연결하면서 역전골을 터뜨렸다. 스코어는 그렇게 불과 2분 사이에 2:1로 뒤집혔다.

1골을 뒤지게 된 일본은 다시 남은 시간 동안 2골을 넣어야 했으나 뭐가 그리도 여유로운지 패스나 돌리고 있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다. 답답해진 자케로니가 직접 선수들을 불러서 공격수는 전방에 올라가 있고 패스 돌리지 말고 그냥 볼을 전방으로 띄우라고 지시했으나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피지컬적으로 열세였던 일본 선수들은 코트디부아르 선수들을 제대로 뚫지 못했다. 경기 막판이 되자 코트디부아르 선수들은 전원 수비로 경기에 임했는데, 드록바가 코너 플래그에서 공을 등지면서 내주지 않는 수비를 펼치자 일본 선수들은 힘 한 번 못 써보고 나가떨어질 정도로 형편없었다. 일본의 고질적인 약점인 피지컬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에 오른 순간이었다. 그렇게 경기는 일본의 1:2 역전패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마치 8년 전 호주전의 재림이었다.


7.2. 32강 조별리그 그리스전 - 0 : 0 무[편집]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_좌우.svg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C조 4경기
2014. 06. 19.(목) 19:00(UTC-3)

아레나 다스 두나스 (브라질, 나타우)
주심: [[호엘 아길라르|{{{#000000 호엘 아길라르}}}]] (엘살바도르)
파일:일본 국기.svg
0 : 0
파일:그리스 국기.svg
일본
그리스
-
득점자
-
-
퇴장자
38′ 코스타스 카추라니스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관중 : 39,485명
Man Of the Match: [[혼다 케이스케|{{{#000000 혼다 케이스케}}}]] (일본)

일본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그리스였다. 당초 일본에서는 그리스를 강력한 1승 제물로 꼽았다.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그리스는 대한민국에게 0:2 패배를 당했고, 몇 달 전 홈에서 열린 평가전에서도 하향세를 타고 있던 대한민국을 상대로 또 0:2 완패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본 방송에서는 일본이 3:1 혹은 4:1 정도로 그리스를 크게 이길 것이라며 자신만만해했다. 라이벌 한국 축구팬들도 "일본이 그리스도 못 이기면 앞으로 축구 접어야 한다!"라고 반응할 정도로 그리스를 저평가했다. 일본은 1차전에서 코트디부아르에게 1:2 역전패를 당했고, 그리스 역시 1차전에서 콜롬비아에게 0:3 대패를 당한 처지라 16강에 가기 위해선 두 팀 모두 승점 3점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렇게 양 팀의 16강 진출의 명운이 걸린 경기가 열렸다.

경기가 시작되자 일본은 70% 이상의 점유율을 가져가며 그리스를 강하게 질식시켰고 쉴 새 없이 슈팅을 날리며 그리스의 골문을 위협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리스의 골문은 좀처럼 열릴 줄을 몰랐다. 전반전에 일본이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었고 킥커로 혼다 케이스케가 나섰다. 일본 축구팬들은 모두 지난 대회 덴마크전 때와 같이 멋진 혼다의 프리킥 골을 기대했지만, 그리스 골키퍼 오레스티스 카르네지스는 토마스 쇠렌센이 아니었다. 카르네지스는 혼다의 무회전 프리킥을 선방해 위기를 넘겼다. 그리스도 마냥 수비만 하지 않고 일본의 패스 미스를 가로채 간간이 역습으로 득점 기회를 만들어갔지만 마무리 능력이 부족했다. 그런데 전반 38분, 일본에 호재가 찾아왔다. 그리스의 주장 코스타스 카추라니스가 쇄도하는 일본 주장 하세베 마코토를 백태클로 걸어 쓰러뜨려 경고를 받았다. 그런데 카추라니스는 이미 전반 27분에 경고를 받았기에 결국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고 말았다. 일본은 수적 우세를 짊어지게 되었다. 전반전은 일단 0:0으로 끝마쳤다.

후반전에도 일본은 계속해서 짧은 패스를 돌리며 점유율을 높여 공격했고 그리스는 수비로 버틴 후 역습에 나섰다. 10명이 뛰는 그리스는 5-3-1 대형의 두 줄 수비를 갖추어 한 발 더 뛰는 수비로 일본의 맹공을 분쇄했다. 자케로니는 후반 12분에 부진했던 오사코 유야를 빼고 카가와 신지를 투입했다. 그리고 후반 23분, 중원에서 카가와가 전방으로 쇄도한 라이트백 우치다 아츠토를 향해 긴 패스를 넣었고 우치다가 페널티 에어리어로 쇄도해 노마크로 있던 좌측의 오쿠보 요시토를 향해 절묘한 스루 패스를 날렸다. 이제 오쿠보가 발만 잘 갖다 대면 그대로 골인 상황이었는데, 오쿠보는 그만 후지산 대폭발슛을 갈겨버리고 말았다.[33]

이후로 양 팀은 계속해서 지루한 공방전을 벌였지만 좀처럼 골을 넣지 못했고, 결국 경기는 충격적인 0:0 무승부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일본은 볼 점유율에서 74%:26%, 패스 숫자 553:177, 슈팅 숫자 18:9로 그리스보다 훨씬 더 앞섰으나 정작 유효슈팅은 4:4로 동률이었다. 즉 일본은 볼만 오랫동안 소유했을 뿐 전혀 그리스를 상대로 효율적인 공격을 못했던 것이다. 그리스로서는 카추라니스의 퇴장으로 인해 잔뜩 불리해졌지만 한 발 더 뛰는 수비로 귀중한 무승부를 챙겼기에 나름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경기는 그리스가 월드컵에서 기록한 최초의 무실점 경기였다.

몇 시간 전에 열린 콜롬비아 vs 코트디부아르 경기가 콜롬비아의 2:1 승리로 끝나면서 2승을 거둔 콜롬비아의 16강 진출이 확정되었다. 2차전까지 C조의 순위는 콜롬비아가 2승(승점 6점)으로 1위, 코트디부아르(승점 3점)가 2위, 일본과 그리스가 각각 1무 1패(승점 1점)로 동률이었으나 골득실에서 일본이 -1, 그리스가 -3이어서 일본이 3위, 그리스가 4위였다. 이 때문에 일본의 계산은 한층 복잡해졌다. 16강에 가기 위해선 반드시 콜롬비아를 2점 차 이상으로 이겨야 했고, 동시에 코트디부아르와 그리스의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거나 그리스의 3점 차 이하 승리로 끝나야 했다. 일본이 콜롬비아를 2점 차 이상으로 이긴다는 전제 하에 코트디부아르와 그리스가 비길 경우 일본과 코트디부아르는 1승 1무 1패(승점 4점)로 동률이지만 골득실에서 일본이 +1 이상, 코트디부아르는 0이므로 일본이 올라갈 수 있다. 또 그리스가 3점 차 이하로 코트디부아르를 이길 경우 일본과 그리스는 1승 1무 1패(승점 4점)로 동률이 되지만 골 득실에서 일본이 +1 이상, 그리스는 0 이하가 되므로 역시 일본이 골 득실에서 앞서서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계산이라도 해보기 위해선 반드시 콜롬비아를 2점 차 이상으로 이겨야 한다. 8년 전과 같은 상황에 놓인 것이다.


7.3. 32강 조별리그 콜롬비아전 - 1 : 4 패[편집]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_좌우.svg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C조 5-1경기
2014. 06. 24.(화) 17:00(UTC-4)

아레나 판타나우 (브라질, 쿠이아바)
주심: 페드로 프로엔사 (포르투갈)
파일:일본 국기.svg
1 : 4
파일:콜롬비아 국기.svg
일본
콜롬비아
45+1' 오카자키 신지
득점자
17' 후안 콰드라도(PK)
55', 82' 잭슨 마르티네스
89' 하메스 로드리게스
관중 : 40,340명
Man Of the Match: [[잭슨 마르티네스|{{{#000000 잭슨 마르티네스}}}]][34] (콜롬비아)

일본의 조별리그 3차전 상대는 콜롬비아였다. 이미 2승으로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콜롬비아는 이 경기를 주전 체력 안배용으로 썼다. 콜롬비아의 호세 페케르만 감독은 우선 포메이션부터 4-2-3-1에서 4-4-2로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수비 라인에서 주전 센터백인 크리스티안 사파타 - 마리오 예페스 듀오 대신 후보인 카를로스 발데스 - 에데르 발란타를 선발 출전시켰고, 주장 완장은 골키퍼 다비드 오스피나가 대신 찼다. 라이트백 역시 주전인 후안 카밀로 수니가에게 휴식을 주고 후보 산티아고 아리아스를 투입했다. 오직 레프트백 파블로 아르메로만 그대로 투입했다. 미드필더 라인 역시 후안 콰드라도 1명만 남기고 모두 후보 선수인 후안 킨테로, 프레디 구아린, 알렉산데르 메히아로 교체했고, 공격진 역시 원톱을 보던 테오필로 구티에레스를 빼고 잭슨 마르티네스 - 아드리안 라모스 투톱을 세웠다. 즉 선발 라인업을 무려 8명이나 바꾸고 내보낸 것이다. 사실상 2군을 투입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다 페케르만은 이전 두 경기와는 전혀 다른 전술을 들고 나와 일본을 괴롭혔다. 공격적인 축구로 나섰던 지난 두 경기와 달리 이번 경기에서 콜롬비아는 선 수비 후 역습 전략을 들고 나왔다. 일본 선수들과의 1:1 대결에서 우위에 있다고 본 페케르만은 상대 진영에는 최소한의 공격 숫자만 남겨두고 하프라인 아래에 견고한 수비벽을 쌓은 뒤, 일본 선수들의 볼을 탈취하면 허리를 생략하고 곧바로 전방의 공격수들에게 찔러주어 공격수와 골키퍼의 1:1 상황을 유도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간단한 전략에 일본은 우왕좌왕하며 맥을 못 췄다. 전반 17분, 잭슨 마르티네스가 아드리안 라모스를 향해 패스를 건넸고, 라모스는 일본의 페널티 에어리어로 쇄도했는데 이때 센터백 곤노 야스유키가 무리한 태클로 라모스를 쓰러뜨리면서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킥커로 후안 콰드라도가 나섰고, 깔끔하게 해결하면서 콜롬비아가 1:0으로 앞서갔다.

비겨도 패해도 무조건 탈락인 일본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무조건 2점 차 이상으로 이겨야만 했기에 무조건 남은 시간 동안 3골을 넣어야 했다. 그리하여 일본은 계속해서 콜롬비아 진영으로 밀고 올라와 패스를 주고받으며 공격했고, 콜롬비아는 수비로 버틴 후 역습으로 득점 기회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일본도 콜롬비아도 계속해서 좋은 득점 기회를 놓치며 1:0의 스코어가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그리고 전반 종료 직전에 콜롬비아 진영을 쇄도하던 혼다 케이스케가 페널티 박스 우측 외곽에서 크로스를 올렸고, 이걸 오카자키 신지가 다이빙 점프로 정확히 헤더로 연결해 동점골을 뽑아냈다. 스코어는 다시 1:1 원점이 되었고 일본은 실낱같은 희망을 되찾았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이 났고, 다른 구장에서 열린 그리스 vs 코트디부아르의 경기는 의외로 그리스가 1:0으로 앞선 채 끝이 났다. 그리스 vs 코트디부아르의 경기가 그대로 끝난다면 일본은 이제 2골을 더 넣어 콜롬비아를 3:1로 이겨야만 16강에 올라갈 수 있었다.

후반전이 되자 페케르만은 이 경기를 마냥 버릴 생각이 없는 듯 부진했던 후안 킨테로를 빼고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투입했고, 콰드라도도 빼고 카를로스 카르보네로를 투입했다. 하메스가 투입되자 콜롬비아의 역습은 좀 더 날카로워졌다. 후반 10분, 콜롬비아의 역습 상황에서 일본 수비수 5명이 하메스에게만 우르르 몰려갔고 좌측의 잭슨 마르티네스를 노마크 상태로 풀어놓았던 게 화근이었다. 하메스는 곧바로 마르티네스에게 패스했고, 마르티네스는 곧바로 왼발로 강슛을 날려 스코어를 2:1로 벌렸다. 이제 3골을 더 넣어야 하는 일본은 골키퍼 가와시마 에이지 1명만 자기 진영에 남고 나머지 필드 플레이어 10명 전원이 콜롬비아 진영으로 올라가며 공격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후반 37분에 혼다가 카르보네로에게 볼을 뺏기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카르보네로는 곧바로 하메스에게 패스하며 콜롬비아의 역습으로 이어졌다. 하메스는 전방으로 쇄도하는 마르티네스에게 패스했고, 뒤늦게 마르티네스에게 일본 수비수들이 붙었지만 마르티네스는 공을 딱 한 번 접으며 우치다 아츠토의 마크를 벗겨내고 왼발 강슛을 날려 추가골을 뽑아냈다. 스코어는 3:1로 벌어졌다.

2골 차로 벌어지자 페케르만은 골키퍼 다비드 오스피나까지 빼고 43세의 후보 골키퍼 파리드 몬드라곤을 교체 투입하는 여유를 부렸다. 그리하여 파리드 몬드라곤은 이전까지 월드컵 최고령 출전 선수였던 카메룬의 로저 밀러의 기록[35]을 갱신해 새로운 최고령 출전자가 되었다.[36][37] 그리고 후반 44분에 또 다시 콜롬비아의 역습 상황에서 일본은 수비 뒷공간이 뚫리며 후방을 허허벌판으로 내주었고, 아드리안 라모스가 좌측의 하메스가 노마크 상태인 걸 확인하고 절묘한 스루 패스를 넣었다. 하메스가 페널티 에어리어로 쇄도하자 일본의 센터백 요시다 마야가 끝까지 마크를 시도했으나, 하메스는 개인기로 요시다를 제치고 왼발로 가볍게 볼을 찍어 차 쐐기골을 터뜨렸다. 그렇게 스코어는 4:1로 벌어졌다. 결국 일본은 콜롬비아에게 1:4로 대패하면서 1무 2패(승점 1점), 2득점 6실점을 기록하며 조 최하위로 탈락하고 말았다.

이 경기 역시 8년 전 2006 독일 월드컵 브라질전과 거의 비슷했다. 전반전에 나름 선전해서 1:1로 마친 뒤 후반전에 3골을 왕창 실점하며 무너진 것, 상대 센터 포워드가 2골을 터뜨린 것, 상대 팀에서 경기 막판에 후보 골키퍼로 교체한 것 등 선제골을 일본이 아닌 콜롬비아가 넣었다는 것만 빼면 완벽하게 똑같았고 2006대회와 똑같이 2014브라질월드컵 29등으로 탈락했다. 잇단 평가전에서의 호성적에 잔뜩 기대감이 부풀어 자신 있게 4강 진출 드립을 쳤건만 4강은 커녕 8년 만에 또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대회 29등으로 탈락하여 체면과 자존심만 잔뜩 구기고 돌아왔다. 거기다 8년 전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상대 팀이 후보 골키퍼로 골키퍼를 교체하는 여유를 부린 꼴을 또 지켜보게 되자 일본 내에선 "우린 상대한테 2번이나 무시당했다!"라며 성토하는 여론이 줄을 이었다. 결국 자케로니는 처음과 달리 쓸쓸하게 일본을 떠나게 되었다.


8. 2018 러시아 월드컵[편집]


자케로니가 떠난 후 새로운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멕시코 출신의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이 부임했다. 그러나 아기레는 일본에 그리 오래 머물 팔자가 아니었다. 아기레가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치른 국제 대회는 2015 AFC 아시안컵 호주였다. 당시 일본은 이라크, 요르단, 팔레스타인과 함께 D조에 속했다. 1차전에서 일본은 팔레스타인을 4:0으로 대파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리고 2차전에서 이라크를 상대로 고전했지만, 혼다 케이스케페널티킥 골에 힘입어 1:0으로 제압하였으며 3차전에서 요르단을 2:0으로 이기며 3전 전승으로 가볍게 8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8강 상대로는 다행히도 막강한 이란이 아닌 조금 약한 아랍에미리트를 만났다. 일본의 낙승이 예상되었지만, 의외로 일본은 아랍에미리트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38] 오히려 전반 7분 만에 알리 맙쿠트에게 선제골을 먹으며 불리한 경기를 했으며, 이후 일본은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지만 좀처럼 아랍에미리트의 골문을 열지 못하고 계속 0:1로 끌려갔다. 그러다가 후반 36분에야 시바사키 가쿠의 동점골로 간신히 승부를 1:1로 되돌렸다. 그러나 연장전에서까지 포함하여서 120분 동안 무려 35개의 슈팅을 날리고도 단 1골밖에 넣지 못하는 빈공을 보인 끝에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고 승부차기에서 오마르 압둘라흐만에게 파넨카킥을 얻어맞는 수모를 보인 것도 모자라 혼다가 후지산 대폭발슛을 날리고, 카가와 신지신칸센 대탈선슛을 날린 끝에 승부차기에서 4:5로 패배하며 결국 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이후 19년 만에 8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아기레는 스페인 라리가에서 감독을 하던 시절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려 기소되었고, 결국 일본축구협회는 아기레를 경질했다.

새 감독으로는 지난 대회에서 알제리를 이끌고 한국을 울렸던 보스니아 출신의 바히드 할릴호지치가 부임했다. 이번 대회 지역예선은 1차예선부터 2차예선까지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예선과 겸하며, 최종예선과 플레이오프는 별도로 치뤄진다. 1차예선에는 아시아 축구 연맹 가입국 46개국 중 중 FIFA 랭킹이 낮은 12개국이 참가하며, 6개국이 2차 예선에 진출한다. 2차예선은 1차 예선을 통과한 6개의 국가와 나머지 34개국을 합친 40개국이 시드 배정과 조 추첨을 통하여 5팀 8개 조로 나누어 팀당 8경기를 치른다. 각 조 1위 8팀과 각 조 2위 중에서 성적이 좋은 4팀을 합한 12팀이 월드컵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또한 이 12팀은 2019년 AFC 아시안컵 본선에도 진출한다. 최종예선에 진출한 12팀은 6팀 2개 조로 나뉘어 4.5장의 본선 티켓을 놓고 경쟁을 하게 된다. 각 조 2위까지는 월드컵 본선에 직행하며, 3위 팀 중 승자는 북아메리카 지역 예선 4위 팀과의 대륙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일본은 2차예선에 직행해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싱가포르, 캄보디아와 함께 E조에 속했다. 1차전은 싱가포르와의 홈 경기였다. 전력 차가 엄청나게 크게 나는 두 팀 간 대결이라 당연히 일본의 압승이 점쳐졌지만, 일본은 무려 35개의 슈팅을 날리고도 단 1골을 넣지 못하며 싱가포르와 0:0으로 비기는 치욕을 당하고 말았다. 이른바 사이타마 쇼크. 잔뜩 체면을 구긴 일본은 2차전 캄보디아와의 홈 경기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간신히 3:0 승리를 거두었다. 3차전 아프가니스탄 원정 경기[39]에서는 모처럼 화력 쇼를 뽐내며 6:0 대승을 거두었다. 4차전은 시리아 원정 경기[40]는 사실상 조 1위 결정전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시리아는 3전 전승(승점 9점)으로 조 1위를 달리고 있었고, 일본은 2승 1무(승점 7점)으로 조 2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경기에서도 일본은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결국 시리아를 3:0으로 꺾고 순위 역전에 성공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E조의 순위는 일본이 3승 1무(승점 10점)로 1위, 시리아가 3승 1패(승점 9점)로 2위, 싱가포르가 2승 1무 1패(승점 7점)로 3위, 아프가니스탄이 1승 3패(승점 3점)로 4위, 캄보디아가 4전 전패(승점 0점)로 5위에 있었다.

일본이 휴식할 때 싱가포르가 캄보디아를 2:1로 이기고, 시리아가 아프가니스탄을 5:2로 이기면서 5전 전패를 기록한 캄보디아는 일찌감치 탈락이 확정되었다. 뒤이어 5차전 싱가포르 원정 경기에서 일본은 홈에서 당한 치욕이 어지간히 이가 갈렸는지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지만, 이번에도 고전을 면치 못하며 3:0으로 어렵게 이겼다. 6차전 캄보디아 원정 경기에서도 일본은 캄보디아의 밀집 수비에 고전을 면치 못하며 전반전을 0:0으로 비긴 뒤, 후반전에야 상대의 자책골과 후반 45분에 터진 혼다의 골로 간신히 2:0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날 시리아가 싱가포르를 1:0으로 이기면서 싱가포르와 아프가니스탄의 동반 탈락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7차전 아프가니스탄과의 홈 경기에서 5:0 대승을 거두면서 1경기를 남기고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8차전 시리아와의 홈 경기에서 5:0 대승을 거두며 2차예선을 7승 1무(승점 22점)의 전적으로 조 1위로 마쳤다.

일본은 최종예선에서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태국과 함께 B조에 속했다. 1차전 상대는 지난 아시안컵에서 승부차기 끝에 일본을 울렸던 아랍에미리트였다. 홈에서 열리는 만큼 반드시 설욕을 다짐했다. 그러나 일본은 전반 11분에 터진 혼다의 선제골로 앞서가고도 전반 20분과 후반 9분에 아흐메드 칼릴에게 멀티골을 허용하며 충격적인 1:2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특히 후반 9분에 터진 아흐메드 칼릴의 페널티킥 골은 또 파넨카킥이었다. 이때까지 1차전에서 패배한 팀이 본선에 오른 전례가 없었기에 일본 내에서는 서서히 예선 탈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차전 태국 원정 경기에서도 일본은 고전을 면치 못하며 간신히 2:0 승리를 거두었다. 3차전 이라크와의 홈 경기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경기 종료 직전에 야마구치 호타루의 결승골로 2:1 승리를 거두었는데, 심판의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어서 썩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4차전 호주 원정 경기에서도 전반 5분 만에 하라구치 겐키의 선제골로 앞서가며 호주 원정 징크스를 깨는가 했는데, 후반 7분에 밀레 예디낙에게 페널티킥 동점골을 허용해 1:1로 비기며 또 징크스 탈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5차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2:1로 깨뜨리면서 분위기가 서서히 반전되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B조의 순위는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가 3승 1무 1패(승점 10점)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 득실에서 일본이 +5, 사우디아라비아가 +4를 기록해 일본이 1위, 사우디아라비아가 2위를 기록했다. 뒤를 이어 호주와 아랍에미리트가 각각 2승 3무(승점 9점), 3승 2패(승점 9점)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 득실에서 호주가 +3, 아랍에미리트가 +1을 기록해 호주가 3위, 아랍에미리트가 4위를 기록했다. 뒤를 이어 이라크가 1승 4패(승점 3점)로 5위, 태국이 1무 4패(승점 1점)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6차전 아랍에미리트 원정 경기에선 홈에서 당한 패배에 이가 갈렸는지 사정 없이 몰아붙인 끝에 2:0으로 승리하며 드디어 설욕에 성공했다. 7차전 태국과의 홈 경기에서도 4:0 대승을 거두며 계속해서 조 1위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8차전 이라크 원정 경기[41]에선 시종일관 고전한 끝에 1:1로 비기며 상승세가 주춤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순위 경쟁을 하던 사우디아라비아가 호주에 2:3으로 패배하면서 승점 격차를 1점 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9차전 호주와의 홈 경기에서 일본은 2:0 완승을 거두었고 같은 날 2위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랍에미리트에 1:2로 덜미를 잡히면서 1경기 남은 시점에서 승점 차가 4점으로 벌어져 결국 일본의 본선 진출과 조 1위가 확정되었다. 마지막 10차전 사우디아라비아 원정 경기에선 이미 본선 진출이 확정되어 마음이 풀어졌는지 다소 형편없는 모습을 보였고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의 개인기에 농락당할대로 농락당한 끝에 후반 18분, 알무왈라드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패배해 유종의 미를 거두진 못했다. 이 승리로 사우디아라비아가 12년 만에 본선에 직행하는데 성공했다. 어쨌든 일본은 첫 스타트는 삐끗했지만, 나름대로 예선을 잘 치러서 한국에 이어 아시아에서 2번째로 6회 연속 본선 진출이란 기록을 쓰는데 성공했다.

이후 2017년 겨울, 러시아 월드컵 조 추첨이 열렸는데, 조 추첨 당시 일본은 4포트에 속했다. 4포트에 속한 국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 → 세르비아 → 모로코 → 호주 → 나이지리아 → 파나마 순으로 호명되었고[42], 이제 한국과 일본 단 둘만 남아 있었다. 비어 있는 조는 F조H조였다. 그런데 F조에 속해있는 팀들은 피파랭킹 1위 & 디펜딩 챔피언 요아힘 뢰브 감독의 독일, 매 대회마다 꾸준히 16강 15위권에 가는 멕시코, 지역예선에서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를 떨구고 올라온 58월드컵 준우승팀 스웨덴이었고, H조에 속해 있는 팀들은 톱시드 중 최약체로 꼽혔던 폴란드, 16년 만에 본선에 컴백한 아프리카의 세네갈, 4년 전에 비해선 전력에 조금 하락세가 온 콜롬비아였다. 누가 봐도 H조가 F조보다 더 쉬워보였다. 조 추첨식을 지켜보던 한국 축구팬과 일본 축구팬 모두 서로 "네가 F조로 가라!"라고 마음 속으로 읊조렸으나, 얄궂게도 조 추첨자 파비오 칸나바로가 한국을 먼저 호명하면서 그만 한국이 F조에 들어가 버렸고 마지막으로 남은 일본은 자동으로 H조에 들어가게 되었다.[43] 대한민국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수월한 조에 들어갔기에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조 추첨이 확정된 이후 일본은 침체기를 걸었다. 일본에서 열린 2017 EAFF E-1 풋볼 챔피언십 대한민국전 대역전패가 그 시발점이었다. 물론 초반 분위기는 좋았다. 1차전에서 북한을 상대로 고전했지만 종료 직전 결승골 한 방으로 1:0으로 승리해 최초로 북한전 무승 징크스를 깼다. 그리고 2차전에서 중국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며 내용은 안 좋았어도 어쨌든 2연승을 거두었기에 우승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경기는 사실상 결승전이었던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과의 경기였다. 홈팀 일본은 이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우승할 수 있었는데, 그만 김신욱에게 일방적으로 농락당한 끝에 1:4로 대패[44]를 당했고 할릴호지치 감독은 대한민국에게 2014브라질월드컵에서 알제리로 4:2 참패를 안긴 복수를 당하고 말았다. 이 대패로 인해 할릴호지치 감독의 입지는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하지만 간신히 재신임을 얻어 일단 월드컵까지 가는 듯했고, 더군다나 일본은 그 대회가 있기 전 열린 조 추첨에서 나름 괜찮은 조에 걸렸기 때문에 한가닥 희망을 걸어볼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피지컬 싸움을 중시하는 할릴호지치는 일본 축구의 스타일을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고 오히려 일본은 이도저도 아닌 모습이 되고 말았다.

후유증은 2018년에도 계속되어서 일본은 3월 말 친선경기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며, 결국 참다 못한 일본축구협회는 대회 개막 2달 전에 할릴호지치를 전격 경질하고 기술위원장이었던 니시노 아키라를 급하게 감독으로 선임했다. 물론 일본 내 여론은 안 좋았다. 해고 시기가 최악이었던데다 니시노는 오랫동안 현장에서 떨어져 있었기에 월드컵 사령탑이란 중책을 맡기기에는 능력이 검증이 안 됐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니시노는 "다시 일본 고유의 스타일로 돌아가겠다!"라고 선포하며 할릴호지치 체제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옛날 일본 축구 스타일로의 회귀를 모색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평가전에서는 잇단 졸전이 계속되었고 점점 본선에서의 불안감이 싹텄다. 그렇게 일본은 잔뜩 불안감을 안고 결전의 땅 러시아로 향했다.


8.1. 32강 조별리그 콜롬비아전 - 2 : 1 승[편집]


파일: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로고_좌우_White.svg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H조 1경기
2018.06.19.(화) 15:00(UTC+3)

모르도비야 아레나 (러시아, 사란스크)
주심: 다미르 스코미나 (슬로베니아)
파일:일본 국기.svg
2 : 1
파일:콜롬비아 국기.svg
일본
콜롬비아
5′ 카가와 신지(PK)
73' 오사코 유야
득점자
38' 후안 킨테로(FK)[45]
-
퇴장자
3′ 카를로스 산체스 모레노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관중 : 40,842명
Man of the Match: 오사코 유야(일본)

일본의 조별리그 첫 상대는 지난 대회에서 1:4 대패라는 치욕을 안겨주었던 남미의 콜롬비아였다. 일본은 이 경기 전까지 콜롬비아와 총 3번 맞붙어 1무 2패를 기록해 단 1번도 이겨보지 못한 징크스를 갖고 있었다.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 징크스를 깨야만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때 콜롬비아는 4년 전 그 때에 비해선 조금 전력이 약화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희망이 생겼다.

경기가 시작되자 일본은 지난 대회의 대패를 설욕하기 위해 초반부터 강공으로 나섰다. 그리고 전반 3분, 역습 상황에서 오사코 유야가 절묘하게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고 콜롬비아의 배후 공간으로 침투해 슛을 날렸지만 다비드 오스피나 골키퍼가 선방했다. 그러나 세컨드 볼을 카가와 신지가 따냈고, 카가와가 재차 슈팅을 날렸으나 콜롬비아의 중앙 미드필더 카를로스 산체스 모레노의 팔에 맞았다. 주심은 '고의로 슛을 손으로 건드려 골을 방해한 것'으로 판단하고 즉시 카를로스 산체스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고 일본에게 페널티킥을 주었다. 그리고 킥커로 나선 카가와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1:0으로 일본이 앞서갔다.

하지만 콜롬비아는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콜롬비아의 호세 페케르만 감독은 전반 31분, 후안 콰드라도를 빼고 윌마르 바리오스를 교체 투입해 공수 균형을 잡으면서 다시 흐름을 되찾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콜롬비아가 공세를 펴고 일본이 수세에 몰리면서 수적 열세를 안고 있다는 게 전혀 실감이 안 날 정도로 오히려 일본이 밀리는 경기를 했다. 이후 전반 39분, 콜롬비아가 일본 진영 페널티 박스 우측 외곽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킥커로 후안 킨테로가 나섰고 킨테로는 일본 수비수들이 점프하는 것을 역이용해 낮게 깔아찼다. 가와시마 에이지 골키퍼가 정확히 읽고 몸을 날렸으나 이미 볼이 먼저 골 라인을 통과했기에 그대로 콜롬비아의 동점골로 인정되었다. 그렇게 다시 승부는 1:1 원점으로 돌아갔다. 전반전은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1:1로 끝이 났다.

후반전이 되자 페케르만은 후안 킨테로를 빼고 하메스 로드리게스까지 투입하며 승리에 대한 집념을 드러냈다. 그러나 후반 20분을 넘어서자 경기 초반부터 10명이 뛰면서 체력 소모를 심하게 한 콜롬비아 선수들은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고, 일본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후반 25분, 니시노는 카가와를 빼고 혼다 케이스케를 투입했다. 그리고 3분 후, 일본의 코너킥 찬스에서 혼다가 찬 코너킥을 오사코 유야가 헤더로 받아 넣으며 결승골을 터뜨렸다. 2:1로 다시 앞서간 것이다. 체력이 소모될 대로 소모된 콜롬비아 선수들은 더 이상 뛰지를 못하며 퍼져버렸고 니시노는 아껴뒀던 교체 카드 2장을 쓰면서 굳히기에 들어갔다. 그렇게 경기는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일본이 콜롬비아를 2:1로 이기며 지난 대회에서의 치욕을 설욕하는 데에 성공했다. 아울러 '남미 팀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 아시아 팀'이란 타이틀까지 가져가게 되었다. 이 경기가 일본이 A매치에서 처음으로 콜롬비아를 이긴 경기였다.

하루 전날, 한국은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유효 슈팅 1개도 기록하지 못한 졸전 끝에 0:1로 패배했는데, 일본이 콜롬비아를 이겨버리자 한국팬들은 일본과 비교하며 태극전사들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되버렸다. [46] 물론 일본한테 운이 따라준 점은 있다 우선 콜롬비아의 카를로스 산체스가 전반 3분 만에 퇴장당한 덕분에 87분을 11 : 10으로 싸웠으며, 그 때문에 콜롬비아 선수들의 체력이 빨리 닳아버려서 큰 승리요인이긴 했다. 실제로 콜롬비아 선수들은 후반 25분을 넘어서면서 아예 일본 진영으로 진출하는 것도 힘들어할 정도로 퍼진 모습이 보였다. 그렇지만 운을 제대로 활용해 결과를 내는것도 실력이긴 하다. [47]

8.2. 32강 조별리그 세네갈전 - 2 : 2 무[편집]


파일: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로고_좌우_White.svg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H조 3경기
2018.06.25.(월) 20:00(UTC+5)

예카테린부르크 아레나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주심: 지안루카 로키 (이탈리아)
파일:일본 국기.svg
2 : 2
파일:세네갈 국기.svg
일본
세네갈
33' 이누이 다카시
77' 혼다 케이스케
득점자
10' 사디오 마네
70' 무사 와구에
관중 : 32,572명
Man of the Match: 사디오 마네(세네갈)
일본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아프리카의 세네갈이었다. 일본이 콜롬비아를 2:1로 이겼을 때 세네갈 역시 톱시드 팀인 폴란드를 2:1로 이겼다. 즉 두 팀은 이 조의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팀을 상대로 비교적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상하게 세네갈을 상대로는 1무 2패로 전적 열세를 기록하고 있었다. 즉 콜롬비아전과 마찬가지로 세네갈을 상대로도 A매치 무승 징크스를 깨뜨려야만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 경기에서 일본이 세네갈을 잡아내고 폴란드가 콜롬비아를 이기지 못하면 일본은 즉시 16강 진출이 확정되며, 일본이 세네갈을 이겼는데 같은 날 폴란드가 콜롬비아를 이기게 되면 3차전 결과에 따라 3팀 모두 2승 1패 동률이 되어 일본이 탈락할 수도 있다. 비기거나 지면 3차전까지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경기가 시작되자 세네갈이 먼저 경기를 주도했다. 전반 10분, 중원에서 우측의 바두 은디아예가 중앙의 알프레드 은디아예에게 패스했고, 은디아예는 좌측의 이드리사 게예에게 패스했다. 게예는 한 번에 긴 패스로 전방의 이스마일라 사르에게 볼을 건넸고 사르는 페널티 박스 우측 외곽에서 볼을 잡았다. 사르는 페널티 박스에 있던 음바예 니앙에게 패스했고 니앙은 우측의 무사 와구에에게 패스했다. 와구에는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고, 이걸 수비에 가담한 하라구치 겐키가 헤더로 클리어링을 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고 그 볼은 유수프 사발리의 발 앞에 굴러갔다. 사발리는 즉시 슈팅을 날렸고 가와시마 에이지 골키퍼가 펀칭했는데, 그 볼은 바로 앞에 서 있던 사디오 마네의 무릎을 맞고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일본은 가와시마의 어이없는 실책으로 인해 세네갈에게 0:1로 끌려갔다.

선제골을 어이없게 먹은 일본은 다시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세네갈의 전력은 강했고 일본은 좀처럼 반격의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전반 33분, 중원에서 센터백 요시다 마야시바사키 가쿠에게 볼을 건넸고, 시바사키는 센터 서클에서 전방으로 볼을 길게 띄웠고 이 볼을 오버래핑한 레프트백 나가토모 유토가 받았다. 나가토모는 무사 와구에의 마크를 이겨내며 볼을 뒤따라 페널티 박스로 쇄도해 들어온 이누이 타카시에게 흘려주었고, 이누이가 골문 우측 구석을 향해 땅볼로 감아찼는데 그게 기막히게 들어가면서 동점골이 터졌다. 다시 승부는 1:1 원점으로 돌아갔다. 세네갈 선수들이 페널티 박스 내에서 적극적으로 이누이를 마크하지 않았던 게 실점의 원인이었다. 이후 10여 분 간 계속 공방전이 오갔지만 소득은 없었고 전반전은 1 1로 끝이 났다.

후반전에도 양 팀은 치열하게 격돌했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이어지던 중 후반 26분, 유수프 사발리가 일본 선수의 마크를 이겨내며 뒤의 게예에게 패스했고 게예는 좌측 전방에 있던 마네에게 패스했다. 마네는 다시 페널티 박스로 쇄도한 사발리에게 가볍게 찍어차는 패스로 볼을 건넸고, 사발리는 대지를 가르는 스루 패스로 오른쪽에서 쇄도하던 와구에에게 볼을 건넸다. 그리고 와구에가 논스톱 오른발 슛으로 다시 골을 터뜨리며 스코어를 2:1로 벌렸다. 이누이가 끝까지 와구에를 쫓아가 마크를 시도했지만 전혀 피지컬적으로 위협을 주지 못했다. 일본의 고질적인 피지컬 싸움에서의 약세가 다시 한 번 드러난 장면이기도 했다. 패색이 짙어지자 니시노는 후반 27분에 카가와 신지를 빼고 혼다 케이스케를 투입했고, 후반 30분엔 하라구치 겐키를 빼고 오카자키 신지를 투입해 공격의 칼을 갈았다. 그리고 일본은 후반 33분에 교체 카드의 결실을 보았다. 오카자키가 패스를 받아 오사코 유야에게 패스를 했고, 오사코는 세네갈 수비수들을 등지면서 볼을 지켜낸 뒤 페널티 박스 우측 외곽에서 다시 전방으로 쇄도하는 오카자키를 보고 볼을 띄웠다. 그리고 오카자키와 세네갈 수문장 카디마 은디아예가 공중볼을 경합하다 서로 충돌해 넘어져 버렸으나, 볼은 엔드라인을 넘어가기 전에 이누이가 살려냈고 이누이는 노마크 상태로 있던 혼다에게 패스했고 그대로 혼다가 빈 골문을 향해 왼발 슛을 날려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렇게 스코어는 2:2 다시 원점이 되었다. 경기 종료 직전에 세네갈이 마지막으로 세트피스 찬스를 얻었으나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서 결국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이 났고 양 팀 모두 사이좋게 승점 1점씩을 나눠 갖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같은 날 뒤이어 열린 폴란드 VS 콜롬비아의 경기에선 콜롬비아가 3:0 대승을 거두며 다시 16강 진출의 불씨를 살린 반면, 폴란드는 톱시드라는 것이 무색하게 2패를 기록하면서 일찌감치 탈락이 확정되었다. 톱시드 팀들 중에서 단 2경기 만에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건 폴란드가 유일했다. 애초부터 폴란드가 톱시드 팀으로 선정된 것에 여러 비판의 목소리가 오갔기에 폴란드로서는 자신들이 톱시드를 받을 만한 실력이 있음을 증명해야 했지만 그 이유를 전혀 증명해내지 못한 것이었다. 2차전까지 H조의 중간 순위는 일본과 세네갈이 1승 1무(승점 4점), 4득점 3실점을 기록해 승점, 득실차, 다득점까지 똑같았지만 이번 대회부터 도입된 페어플레이 점수[48]에서 일본이 -3, 세네갈이 -5를 기록해 일본이 1위, 세네갈이 2위를 기록했으며 뒤를 이어 1승 1패(승점 3점)인 콜롬비아가 3위, 4위는 2패를 기록한 폴란드였다. 이미 탈락이 확정된 폴란드를 제외하고 나머지 3팀이 모두 16강 진출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한편 전날 F조에서는 라이벌 대한민국이 멕시코와 먼저 경기를 치렀는데, 치열하게 맞서 싸웠지만 주심 밀로라드 마지치의 오심이라는 불운과 장현수의 치명적인 실책으로 인해 1:2 석패를 하고 말았다. 라이벌 한국이 2패로 주저앉자 일본에서는 조롱이 끊이질 않았다. 일본 언론은 "2경기에서 47개의 반칙을 범한 대한민국은 3경기를 치른 모로코(62개), 크로아티아(55개), 러시아(51개) 다음으로 워스트 4에 속해 있다"라며 "이 추세라면 모로코를 제치고 조별리그 가장 많은 반칙을 기록할 수 있다"라며 말 그대로 한국을 실력도 없으면서 반칙만 거칠게 하는 팀으로 비하했다. 한국 축구팬들로서는 분하기 그지없었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일본의 이런 여유가 사라지게 된 건 정말 한순간의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바로 3차전 폴란드전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다.


8.3. 32강 조별리그 폴란드전 - 0 : 1 패[편집]


파일: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로고_좌우_White.svg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H조 5-1경기
2018.06.28.(목) 17:00((UTC+3)

볼고그라드 아레나 (러시아, 볼고그라드)
주심: 재니 시카즈웨 (잠비아)
파일:일본 국기.svg
0 : 1
파일:폴란드 국기.svg
일본
폴란드
-
득점자
59' 얀 베드나렉
관중 : 42,189명
Man of the Match: 얀 베드나렉(폴란드)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H조/일본 vs 폴란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일본의 조별리그 3차전 상대는 톱시드 팀인 폴란드였다. 폴란드는 명색이 톱시드라는 것이 무색하게 일찌감치 탈락이 확정된 상태였고, 일본은 최소한 무승부라도 해야 16강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만약 패배하게 된다면 그때는 계산에 들어가야 한다. 패배하게 된다면 반드시 콜롬비아가 세네갈을 이겨주어야만 했으며, 그때도 골득실, 다득점 등을 계산해야 한다. 그런데 이때 일본에게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는데, 바로 전날에 2차전까지 2패를 하면서 정말 별 볼 일 없는 모습을 보였던 라이벌 대한민국이 3차전에서 기적적으로 전차군단 독일을 2:0으로 격침시킨 것이다. 갑자기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임팩트 있는 승리를 거둔 것은 일본에게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만약 일본이 16강 진출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묻히게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카가와 신지는 "한국의 경기를 보고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 반드시 폴란드를 이기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그런데 니시노는 이 경기에서 엄청난 도박을 감행했다. 아직 16강 진출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주전 선수를 6명이나 쉬게 하는 여유(?)를 부린 것이다. 전반전 초반 10분 동안에는 양 팀 모두 제대로 된 공격 기회를 잡지 못하며 조심스러운 경기를 펼쳤다. 그 이후 일본이 경기를 주도하며 공격했으나, 잇달아 폴란드 골키퍼 우카시 파비안스키의 선방에 막히며 득점 기회를 날렸다. 전반 30분을 넘어서 폴란드도 다시 반격에 나섰고 전반 32분, 하프 라인 부근에서 그제고시 크리호비아크의 패스를 받은 라파우 쿠자바가 일본 진영으로 쇄도해 들어갔으나 일본의 우사미 다카시가 백태클로 볼을 걷어냈다. 그러나 볼은 다시 우측에 있던 아르투르 옝제이치크의 발 앞으로 굴러갔고 옝제이치크는 크로스를 올렸다. 그리고 그 크로스를 카밀 그로시츠키가 헤더로 연결했으나 가와시마 에이지 골키퍼가 가까스로 쳐냈다. 이때 폴란드 선수들은 공이 골 라인을 통과한 이후에 골키퍼가 선방했다고 항의했으나 골 라인 판독 결과 공이 라인에 걸쳐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49] 전반전은 그렇게 0:0으로 끝이 났다. 같은 시각 사마라에서 열린 세네갈 VS 콜롬비아의 경기도 0:0으로 전반전을 마쳤다.

후반전이 되자 양 팀은 다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그리고 후반 14분, 폴란드의 역습 상황에서 라파우 쿠자바가 일본 진영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 지역에서 일본 수비수 야마구치 호타루에게 반칙을 당해 프리킥 찬스를 얻었고, 쿠자바가 찬 프리킥을 공격에 가담한 폴란드 수비수 얀 베드나레크가 논스톱으로 오른발 슛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냈다. 그렇게 경기는 폴란드가 1:0으로 앞서갔다. 그러자 관중석에 있던 일본 관중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사마라에서 열리는 세네갈 VS 콜롬비아의 경기는 여전히 0:0 스코어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날 경우 세네갈이 1승 2무(승점 5점)로 조 1위를 차지해 16강에 오르게 되고 콜롬비아와 일본은 1승 1무 1패(승점 4점)로 동률을 이루게 되는데, 골득실에서 콜롬비아가 +2, 일본은 0이 되기 때문에 콜롬비아에게 골득실에서 2골이 뒤져 조 3위로 탈락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일본 관중석은 적막감에 휩싸이며 스마트폰으로 세네갈 VS 콜롬비아 경기 결과를 주시하기 바빴다.

어떻게든 무승부라도 거두어야 16강에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었던 일본은 동점골을 넣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좀처럼 폴란드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오히려 후반 28분에 공격하다가 태클로 볼을 빼앗겼는데, 일본 선수들은 주심이 파울을 선언할 줄 알고 잠시 멈칫했으나 주심은 그대로 플레이를 진행시켰고 곧바로 폴란드가 빠르게 역습을 전개해 나갔다. 일본 진영 우측을 쇄도해 들어가던 카밀 그로시츠키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노마크 상태인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크로스를 날렸고, 레반도프스키는 볼을 받아 지체없이 슛을 날렸으나 어이없게도 볼이 허공으로 떠버리며 추가골을 넣을 찬스를 놓쳤다. 마치 2002년 당시 최용수의 '독수리 슛'을 연상하게 했다. 그러던 중 사마라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콜롬비아의 예리 미나가 후반 29분에 선제골을 넣어 콜롬비아가 1:0으로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콜롬비아가 2승 1패(승점 6점)를 기록해 조 1위로 올라가게 되고 일본과 세네갈은 1승 1무 1패(승점 4점), 4득점 4실점을 기록해 승점, 득실차, 다득점까지 모두 동률이지만 페어플레이 점수에서 일본이 -4점, 세네갈이 -6점을 기록해 일본이 2점 더 앞서서 조 2위로 16강에 가게 된다. 이 사실을 확인한 일본 관중들은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었다.

후반 35분에 폴란드 진영에서 날아온 롱패스를 받은 카밀 그로시츠키가 일본 진영 우측에서 받았고, 바르토시 비아우코프스키에게 패스했다. 비아우코프스키는 다시 전방으로 쇄도하는 그로시츠키에게 패스했고, 그로시츠키가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에서 슛을 날렸으나 일본 수비수 마키노 도모아키가 발을 갖다대며 막아내는 듯했는데 오히려 이것이 일본 골문 쪽으로 향했고 하마터면 자책골이 될 뻔했으나 가와시마가 극적으로 쳐내 1:0 스코어를 유지하게 되었다. 만약 정말로 자책골이 들어가 버렸다면 일본은 다시 3위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이어진 코너킥 찬스에서 옝제이치크가 헤더 슛을 연결했으나 골문 위로 벗어났다. 그리고 이 슈팅을 마지막으로 두 팀은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플레이를 하게 되는데, 실시간 순위에서 일본이 조 2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니시노는 '안전한 플레이'를 일본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그 '안전한 플레이'란 바로 자기 진영에서 볼을 돌리며 시간을 끌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후반 37분 경부터 일본은 니시노의 지시에 따라 자기 진영에서 볼을 돌리며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처음에 폴란드 선수들은 사마라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 알지 못했는지 적극적으로 볼을 탈취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으나, 후반 40분 이후부터는 더 이상 볼을 탈취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며 그저 일본의 패스 플레이를 멀거니 서서 구경이나 하게 되었다. 이 시각 사마라에서 열린 세네갈 vs 콜롬비아의 경기는 여전히 콜롬비아가 1:0으로 앞서고 있었다. 현재 이 스코어만 그대로 유지만 된다면 일본은 16강 진출에 성공할 수 있게 되고, 폴란드도 2패를 당해 탈락이 확정되었지만 마지막에 1승을 거두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이렇게 경기 중간에 두 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후반 40분을 지난 이후부터 일본과 폴란드는 서로 패스 연습 구경이나 하며 시간을 끌기 시작했고, 이에 관중들은 하나같이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선수들은 그런 관중들의 야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진영에서 볼을 돌리며 시간을 끌었고, 폴란드 선수들도 이런 일본의 플레이를 구경이나 하고 있었다.

후반 45분, 폴란드의 아담 나바우카 감독은 마지막 남은 교체 카드 1장을 쓰려고 16번 야쿠프 브와슈치코프스키를 투입할 준비를 했으나 좀처럼 볼이 터치라인 밖으로 나가지 않아 브와슈치코프스키는 3분 동안 터치라인에서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하염없이 교체 투입만을 기다렸다. 주심은 두 팀의 시간 지연 행위에 짜증이 났는지 결국 추가시간 3분이 되자마자 바로 종료 휘슬을 불었고, 교체 투입을 기다리던 브와슈치코프스키는 교체 투입되지 못한 채로 경기가 그대로 끝나버렸다. 이렇게 경기는 폴란드의 1:0 승리로 끝났지만, 같은 시각 사마라에서 열린 세네갈 vs 콜롬비아의 경기가 콜롬비아의 1:0 승리로 끝난 덕분에 페어플레이 점수에서 2점이 앞선 일본이 조 2위를 유지해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세네갈은 억울하게 최종 17위로 16강에 실패했다. 이 경기를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있었던 히혼의 수치에 빗대어 '볼고그라드의 수치'라고 부른다. 종료 휘슬이 울리는 동안 볼고그라드 아레나에는 야유가 울려퍼졌다.

이 어이없는 경기 내용 때문에 일본은 16강 진출에 성공하고도 욕만 잔뜩 퍼먹었다. 심지어 일본 국내에서조차 "솔직히 수치스럽다. 한국은 멋있게 탈락했는데 일본은 부끄럽게 진출했다."라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경기는 본질적으로 히혼의 수치와는 차이가 있었다. 히혼의 수치 당시엔 조별리그 3차전 경기가 동시에 치러지지 않았다. 서독 vs 오스트리아의 경기가 열리기 전에 먼저 알제리 vs 칠레 경기가 열렸다. 그리고 알제리가 3 : 2로 칠레를 이긴 것을 보고 서독과 오스트리아 두 팀은 전적 계산을 했을 때 둘이 같이 올라가려면 서독이 1 : 0 정도로만 이기면 알제리를 떨구고 사이좋게 게르만 형제 둘이서 올라갈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래서 서독의 호르스트 흐루베쉬가 선제골을 넣으며 스코어가 1 : 0이 된 이후로 80분 동안 시간을 질질 끌었다. 이 같은 사전 담합의 대가는 둘이 같이 12강(당시 12강이었다.)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의 일본은 어땠는가? 볼을 돌리고 시간을 질질 끌어봤자 폴란드는 1승을 거두어 체면치레라도 한다는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게 되지만 일본은 16강에 진출한다는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100% 장담이 없었다. 더군다나 일본이 이기고 있거나 비기고 있는 것도 아니고 명백히 지고 있지 않던가? 예리 미나가 선제골을 넣은 시점은 후반 29분이었고 추가시간을 고려할 때 약 20분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도대체 이 시간 동안에 세네갈이 동점골을 못 넣을 것이란 보장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니시노 본인은 볼고그라드에 있었고 사마라에서 일어나는 경기는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경기였다. 아무리 볼고그라드에서 볼을 돌리고 시간을 질질 끌며 0:1의 스코어를 지켜봤자 세네갈이 기습적으로 동점골을 넣는 데에 성공하면 그동안 해온 짓은 모두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린다. 한 마디로 니시노는 얼토당토 않은 도박을 감행한 것이다. 콜롬비아가 남은 시간 동안 실점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모든 걸 운에 맡긴 얼토당토 않은 무리수인 것이다. 이 점이 히혼의 수치와 같은 듯 다른 부분이다. 이 경기가 더욱 비판을 받은 건 '자신의 경기 결과를 남에게 의존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이 같은 수준낮은 경기 때문에 "페어플레이 점수 제도에 대해 재검토하라!"라는 비판이 해외언론에서도 제기됐지만, 피파가 이 비난을 묵살하면서 차기 대회에서도 이 제도를 악용한 제 2의 일본과 그로 인해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제 2의 세네갈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결국 이 경기로 입증된 것은 "조별리그 3차전을 동시에 치르게 하는 것만으로는 히혼의 수치 같은 사건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1차전에서 콜롬비아의 카를로스 산체스 모레노가 경기 초반에 핸드볼 파울로 퇴장당하면서 자멸해준 것부터 해서 3차전에서 폴란드에게 0:1로 졌지만 같은 시각에 세네갈 역시 콜롬비아를 상대로 동점골을 못 넣은 것까지 일본에게는 여러모로 운이 많이 따라주었다. 결과적으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지만 실력보다는 좀 운이 많이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8.4. 16강전 벨기에전 - 2 : 3 패[편집]


파일: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로고_좌우_White.svg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16강 6경기
2018.07.02.(화) 21:00(UTC+3)

로스토프 아레나 (러시아, 로스토프)
주심: 말랑 디에디우 (세네갈)
파일:일본 국기.svg
2 : 3
파일:벨기에 국기.svg
일본
벨기에
47' 하라구치 겐키
52' 이누이 다카시
득점자
69' 얀 베르통언
73' 마루앙 펠라이니
90+4' 나세르 샤들리
관중: 43,472명
Man of the Match: 에덴 아자르(벨기에)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16강/벨기에 vs 일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일본의 16강 상대는 G조 1위 벨기에로 정해졌다. 두 팀의 A매치 상대 전적은 의외로 일본이 2승 2무 1패로 근소하게 우세에 있었다. 전력 자체는 벨기에가 강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상하게도 일본에게는 별로 좋은 결과를 못 가져왔던 것이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이번이 2번째였다. 첫 번째 맞대결은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이었는데, 그때 일본과 벨기에는 서로 장군멍군을 주고받은 끝에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일본으로선 앞서 조별리그 3차전에서 졸전 끝에 폴란드에게 0:1로 진 것도 모자라 온갖 추태란 추태는 다 부렸기에 반드시 이 경기에서 만회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이 경기에서도 앞선 폴란드전처럼 개떡같은 경기를 보인다면 더더욱 웃음거리가 될 터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라이벌 대한민국이 비록 32강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여 1승 2패 대회 19위로 16강에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아시아 최초로 원정 월드컵에서 피파랭킹1위 &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2 : 0으로 잡아내는 엄청난 이변을 일으키고 떠났기에 일본으로서는 16강에 갔지만 그에 준하는 이변을 하나 일으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졌다.

경기가 시작되자 전반전은 양 팀 모두 비교적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을 했다. 전체적으로는 일본이 예상을 깨고 좀 더 날카로운 공격을 보이긴 했지만 골을 넣지 못했고, 벨기에 역시 간간이 득점 기회를 만들어 갔지만 역시 일본의 골문을 여는 데는 실패했다. 전반 43분에 공격에 가담한 일본의 레프트백 나가토모 유토가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 지역에서 슛을 시도했고, 이 슛이 절묘하게 골문 앞에 서 있던 오사코 유야의 발에 맞고 굴절되었으나 공은 힘없이 티보 쿠르투아 골키퍼에게로 갔다. 이때 쿠르투아는 볼을 줍다가 뒤로 흘리는 실수를 범했으나 골 라인을 넘기 직전에 다시 볼을 잡아내 가까스로 실점 위기를 넘겼다. 전반 종료 직전에 에덴 아자르가 다시 한 번 중거리 슛을 시도했으나 가와시마 에이지 골키퍼의 품에 안겼다. 그렇게 전반전은 0:0으로 마쳤다.

그리고 후반전이 되었다. 일본은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서며 벨기에를 위협했고, 마침내 후반 3분, 일본의 시바사키 가쿠가 센터 서클에서 한 번에 긴 스루 패스로 하라구치 겐키에게 볼을 건넸고 이 과정에서 볼을 가로채야 할 벨기에의 센터백 얀 베르통언은 어이없게 헛발질을 하며 그대로 스루 패스가 하라구치에게 가는 것을 방치하고 말았다. 페널티 박스에서 볼을 잡은 하라구치는 패스를 하는 척하면서 쿠르투아와 베르통언을 농락한 뒤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아냈다.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일본이 1:0으로 앞서가기 시작한 것이다. 뜻밖에 선제골을 실점하자 벨기에도 공격의 피치를 높이기 시작했다. 후반 4분, 일본 우측 진영을 쇄도해 들어간 드리스 메르텐스가 중앙에서 오는 아자르에게 패스를 건넸고, 아자르는 지체없이 오른발 논스톱 슛을 날렸으나 골대를 맞추고 말았다. 일본으로선 행운의 순간이었고 벨기에로서는 불운이 따른 순간이었다.

그리고 후반 7분, 다시 일본의 역습 찬스에서 카가와 신지악셀 비첼의 마크로부터 공을 지켜낸 후 뒤의 이누이 타카시에게 백패스를 건넸고,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볼을 받은 이누이는 벨기에 수비벽의 허점을 틈 타 오른발로 강력한 중거리 슛을 날렸고 이 슛은 벨기에 골문 우측 구석에 그대로 꽂히며 골이 되었다. 일본이 벨기에를 상대로 2:0으로 앞서가기 시작한 것이다. 관중석의 울트라 닛폰은 사상 첫 8강 진출이 눈 앞에 왔다는 생각에 열광했고 벌써부터 승리에 도취된 모습을 보였다. 만약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일본은 1966년의 북한, 2002년의 대한민국에 이어 아시아 팀으로선 3번째로 8강 진출에 성공하는 팀이 된다. 드디어 기대하고 기대하던 8강 티켓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한편 2골 차로 끌려가게 된 벨기에도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벨기에의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감독은 후반 20분에 야닉 카라스코와 드리스 메르텐스를 빼고 마루앙 펠라이니나세르 샤들리를 교체 투입했다.

후반 24분, 벨기에의 코너킥 찬스에서 샤들리가 헤더로 공을 받았으나 로멜루 루카쿠가 받기 전에 가와시마가 먼저 펀칭으로 쳐냈다. 그러나 볼은 멀리 가지 못했고, 페널티 박스에서 토비 알데르베이럴트와 이누이가 볼을 경합하다 볼이 공중으로 높이 튀어올랐고 이 공은 좌측에 있던 베르통언에게 날아갔다. 베르통언은 머리로 공을 받아 중앙으로 패스하려고 했는데, 이 공은 운이 좋게도 일본 골대의 파 포스트 안으로 빨려들어가며 그대로 골이 되었다. 가와시마는 낙하 지점 예측에 실패하며 그대로 어이없게 1골을 헌납하고 말았으며, 그렇게 스코어는 1:2 한 점 차로 좁혀졌다. 1점 차로 좁혀지자 일본 역시 공격의 고삐를 당겼고 후반 26분, 오버래핑을 한 나가토모가 토마 뫼니에의 마크를 이겨내고 크로스를 넣었고, 중앙의 오사코 유야가 받으려 했으나 알데르베이럴트가 한 발 먼저 걷어내며 실점 위기를 막았다. 뒤이어 벨기에도 칼을 뽑았다. 후반 27분, 아자르가 페널티 박스 외곽 지역에서 케빈 더 브라위너에게 패스를 건넸고 더 브라위너가 슛을 날렸으나 일본 센터백 쇼지 겐이 미끄러지면서 막아냈다.

후반 29분, 일본 좌측 진영에서 더 브라위너의 패스를 받은 아자르가 오사코의 마크를 따돌리고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고, 그 볼을 194cm의 장신 미드필더 펠라이니가 마크를 시도하던 일본 주장 하세베 마코토와 센터백 요시다 마야를 그대로 찍어누르며 헤더로 우겨넣어 동점골을 터뜨렸다. 20분 만에 0:2로 끌려가던 벨기에는 2:2로 다시 승부의 균형추를 맞추었다. 2골 차 리드가 사라져 버리자 이제 되려 일본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스코어가 원점으로 돌아가자 일본은 다시 거세게 반격을 시도했으나 벨기에 수비진은 뒷문을 더욱 굳게 걸어잠그며 후반 초반처럼 호락호락하게 골을 내주지 않았다. 경기가 이렇게까지 흐르자 니시노는 후반 36분에 시바사키 가쿠하라구치 겐키를 불러들이고 야마구치 호타루혼다 케이스케를 교체 투입해 맞불을 놓았다. 양 팀 모두 결승골을 넣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골키퍼의 잇단 선방에 막히며 스코어는 계속해서 2:2로 유지되었다.

어느덧 후반 45분도 다 지나갔고 4분의 추가시간이 적용되었다. 후반 추가시간 2분, 일본이 프리킥 찬스를 얻었고 혼다가 멋진 무회전 프리킥을 날렸으나 쿠르투아가 펀칭으로 선방해냈다. 볼이 골 라인 밖을 벗어났으므로 다시 일본에게 코너킥이 주어졌다. 혼다가 중앙으로 코너킥을 붙였으나 쿠르투아가 한 번에 볼을 잡아냈고, 그때부터 벨기에의 번개 같은 역습이 전개되었다. 경기 종료 30초 전, 볼을 잡아낸 쿠르투아는 곧바로 더 브라위너에게 볼을 손으로 굴려주었고, 일본 선수들은 자기 진영으로 복귀를 시도했으나 미처 복귀하기 전에 더 브라위너가 준족으로 먼저 하프라인을 넘었고 센터 서클을 지나서 우측의 뫼니에에게 패스를 건넸다. 뫼니에는 나가토모의 마크를 피해 중앙의 루카쿠에게 패스했고, 루카쿠는 볼을 받는 척하면서 뒤따라오는 샤들리에게 흘려주었다. 뒤따라오던 일본 센터백 쇼지 겐이 태클을 시도했으나 샤들리가 먼저 왼발로 잽싸게 밀어넣으며 결승골을 터뜨렸다. 이때 골이 터진 시각은 정확히 후반 추가시간 3분 43초로, 경기 종료까지 불과 17초가 남은 시간이었다.

스코어가 3:2로 뒤집히자 벨기에 선수들은 얼싸안고 환호하였고 일본 선수들은 허탈함에 그라운드에 드러눕거나 주저앉고 말았다. 1분 간 벨기에 선수들의 골 셀레브레이션이 끝난 뒤 다시 킥오프가 시작되었고, 킥오프를 하자마자 말랑 다에디우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면서 벨기에의 3:2 역전승으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일본은 부실한 수비로 인해 결국 2골을 먼저 넣고도 3골을 내리 헌납하며 다 잡은 승리를 놓치고 또 다시 16강의 벽에서 주저앉아야 했다. 참으로 허무하기 짝이 없는 역전패였다. 일본이 월드컵에서 역전패를 기록한 건 이번이 벌써 4경기째였다. 결국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도 상대 선수들보다 뒤지는 피지컬 능력과 체력을 재확인하며 16강에서 퇴장하게 되었고 일본 역대 16강 성적 중 가장 낮은 16강 15위로 마감하였다. 당초 예상했던 결과보다는 충분히 잘 나온 결과였고, 해외파 전력을 바탕으로 유럽 강팀 벨기에와 남미 콜롬비아 상대로 밀리지 않는 경기를 보여줬기에 나름 저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일본 대표팀 특유의 체력과 피지컬의 한계와 운도 많이 따라 준 대회인것은 사실이다.


9.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편집]


니시노 아키라 감독이 떠난 후 일본 축구 대표팀 감독 자리는 모리야스 하지메에게로 넘어갔다. 일본 축구협회는 모리야스 감독에게 성인 대표팀 뿐 아니라 U-23 대표팀 감독도 함께 맡겼다. 초반 모리야스 감독 체제의 일본은 큰 탈이 없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에서 라이벌인 대한민국에 패배해 은메달에 그치고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에서도 승승장구하다가 카타르에 1 : 3으로 완패해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그런대로 무난한 평을 받으며 순항하고 있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일본은 2차 예선부터 치르게 되었는데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미얀마, 몽골과 함께 F조에 속했다. 1차전 미얀마 원정 경기에서 일본은 다소 고전하긴 했으나 나카지마 쇼야미나미노 타쿠미의 릴레이 골을 묶어 2 : 0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2차전 상대는 조 최약체인 몽골과의 홈 경기였다. 일본은 6명이 골고루 득점을 하는 훌륭한 조직력을 보이며 몽골을 6 : 0으로 대파하며 2연승을 거두었다. 3차전 타지키스탄 원정 경기에서 일본은 전반전 내내 타지키스탄의 밀집 수비에 막히며 고전했지만 후반전에 터진 미나미노 타쿠미의 멀티골과 아사노 타쿠마의 골을 묶어 3 : 0 완승을 거두며 3연승을 달렸다. 그리고 4차전 키르기스스탄 원정 경기에서도 일본은 2 : 0 완승을 거두며 4연승을 달렸다.

반환점을 돌 당시 F조의 순위는 일본이 4전 전승(승점 12점)으로 1위,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이 2승 2패(승점 6점)로 동률을 이뤘으나 골 득실에서 키르기스스탄이 +5, 타지키스탄이 0을 기록해 키르기스스탄이 2위, 타지키스탄이 3위를 차지했다. 또 몽골과 미얀마가 1승 3패(승점 3점)로 동률을 이뤘으나 골 득실에서 몽골이 -7, 미얀마가 -9로 몽골이 4위, 미얀마가 5위를 차지했다. 일본이 휴식을 취할 때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서로 1 : 1 무승부를 거두었고 미얀마가 몽골을 상대로 1 : 0 승리를 거두어 지난 패배를 설욕했다. 그리하여 순위는 일본이 여전히 조 1위,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이 각각 2, 3위를 기록했으며 미얀마가 4위, 몽골이 5위로 내려왔다.

그리고 2020년. 이 때 지구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라는 범지구적인 전염병이 돌았다. 그 때문에 예선 일정이 한 동안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그러나 무한정 경기를 중단할 수는 없었기에 AFC는 이 조에 속한 국가 중 그나마 경기장이 잘 갖춰져 있고 방역 통제가 되고 있던 일본에서 잔여 경기를 치르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2021년 3월에 다시 경기가 재개되었다. 3월 25일에 열린 경기에서 타지키스탄이 몽골을 3 : 0으로 이기며 승점을 9점으로 끌어올렸으나 3월 30일에 일본이 몽골을 무려 14 : 0이라는 스코어로 박살을 내버리며 승점 15점으로 한 걸음 더 달아났다. 그리고 5월 28일에 일본은 미얀마를 상대로 10 : 0 대승을 거두며 승점 18점을 기록해 최종예선 진출을 가장 먼저 확정지었다.그리고 6월에 열린 경기에서 일본은 타지키스탄을 상대로 4 : 1 완승을 거두었고 키르기스스탄과의 최종전 역시 5 : 1 완승을 거두며 2차 예선을 8전 전승(승점 24점), 46득점 2실점이라는 엄청난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최종예선에 오른 일본은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오만, 베트남과 함께 B조에 속했다. 이로서 일본과 호주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지역예선 이래로 무려 4연속으로 재회하게 되었다. 당초 조 추첨이 끝난 후 일본에서는 대한민국을 빼고 모두 중동 팀으로 떡칠된 A조보다 훨씬 낫다며 당연히 조 1위를 호언장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승점자판기 팀이 무려 2이나 있었기 때문에 일단 12점은 기본으로 확보하고 나머지 호주와 사우디아라비아, 오만을 상대로 6경기에서 10점 정도만 확보해도 여유 있게 본선에 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일본 축구팬들은 머나먼 중동 팀을 홀로 상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한국을 동정하는(?) 여유를 부릴 정도로 기고만장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본의 여유는 초장부터 어긋났다. 일본의 1차전 상대는 5포트에 있었던 중동의 오만이었다. 역대 전적에서 일본은 오만에 9승 2무를 기록하여 단 1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 경기는 일본 홈에서 열리는 경기였고 일본은 필승을 위해 부상 중인 미나미노 타쿠미를 제외하고 유럽에서 뛰는 해외파 선수들을 총 집합시킨 상황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일본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일본은 오만과의 경기에서 볼 점유율만 높았을 뿐 좀처럼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겉돌았다. 오히려 오만이 적은 볼 점유율로 효율적인 역습을 펼쳐 일본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장면을 많이 만들어냈다. 결국 이렇게 오만에 밀리는 경기를 하던 일본은 후반 43분, 이삼 알 사브히에게 결승골을 헌납하며 0 : 1로 충격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른바 일본판 오만 쇼크였다. 일본이 오만에 패배를 당한 건 이번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로 인해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의 입지는 크게 좁아지기 시작했다.

2차전 상대는 4포트 팀인 중국이었다. 일본도 홈에서 오만에 0 : 1 충격패를 당했듯이 당시 중국도 브라질 출신 귀화 선수를 출동시키고도 호주를 상대로 단 1개의 유효 슈팅도 날리지 못하고 0 : 3 참패를 당해 위기에 몰린 상황이었다. '멸망전\'이라는 명칭까지 나올 정도로 이 경기는 외나무 다리 맞대결이 되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일본은 중국을 상대로 높은 볼 점유율로 질식시키다시피 하며 단 1개의 유효 슈팅도 허용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골 결정력이 문제였다. 일본은 중국을 상대로 숱한 골 찬스를 날리며 형편 없는 모습을 보인 끝에 전반 40분에 터진 오사코 유야의 결승골로 간신히 1승을 거두었다. 9월 경기가 끝난 후 B조의 순위는 호주와 사우디아라비아가 2연승(승점 6점)을 거두며 나란히 조 1, 2위를 차지했고 오만과 일본이 1승 1패(승점 3점), 골 득실 및 다득점까지 동률을 이루었으나 승자승에서 오만이 앞서 오만이 3위를 차지했고 일본은 4위라는 충격적인 순위에 자리하게 되었다.

3차전 상대는 3포트 팀인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역대 전적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9승 1무 4패로 우세를 기록 중인 일본이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안방에서는 천하무적인 그야말로 안방 챔피언인 팀이었다. 제다의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일본은 역시나 형편 없는 졸전을 벌이며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시종일관 밀리는 경기를 했다. 그러다가 후반 26분에 시바사키 가쿠가 하프라인에서 어이없는 백 패스 미스를 범했고 이걸 20세의 사우디아라비아 신성 스트라이커 피라스 알 부라이칸이 가로채는데 성공해 그대로 골문으로 질주하여 결승골을 터트렸다. 그리하여 일본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0 : 1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당연히 시바사키 가쿠는 말 그대로 역적으로 전락했으며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 역시 경질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다. 4차전 호주와의 홈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모리야스 감독의 거취를 정리하겠다는 엄포까지 나올 정도였다. 위기를 느낀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호주와의 홈 경기에서 기미가요가 연주되는 동안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른바 '선즙필승' 작전이 먹힌 것인지 일본은 후반 43분에 터진 호주 수비수 아지즈 베히치자책골에 힘입어 간신히 2 : 1 승리를 거두며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순위 경쟁자(?)인 오만이 베트남을 상대로 3 : 1 완승을 거두어 버리며 순위를 올리지 못했다. 4차전 종료 후 B조의 순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4전 전승(승점 12점)으로 1위를 굳혔으며 호주가 3승 1패(승점 9점)로 2위, 오만과 일본이 2승 2패(승점 6점)로 동률을 이뤘으나 오만이 5득점 5실점, 일본이 3득점 3실점을 기록하여 다득점에서 오만이 앞서 3위를 차지했고 일본은 여전히 4위에 머물러 있었다.

5차전 상대는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이었다. 이 경기보다 앞서 열린 호주 VS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가 0 : 0 무승부로 끝나며 일본은 2위 도약이 불가능해졌다. 다만 순위 경쟁자인 오만을 따돌리고 3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무조건 베트남을 큰 점수 차로 꺾어야 했다. 이 운명의 경기에서 일본은 답답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인 끝에 전반 16분에 터진 이토 준야의 결승골로 간신히 1 : 0으로 승리하는 것에 그쳤다. 그리고 순위 경쟁자인 오만이 중국과 1 : 1로 비기며 일단 반환점은 3위로 돌게 되었다. 6차전 상대는 바로 홈에서 0 : 1 충격패를 안겨준 그 철천지 원수 오만이었다. 일본은 이 경기에서도 형편 없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좀처럼 오만의 골문을 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다가 후반 36분에 터진 이토 준야의 결승골로 간신히 1 : 0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날 중국이 호주에 제대로 고춧가루를 뿌려 1 : 1로 비기면서 B조의 순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5승 1무(승점 16점)로 1위를 굳혔고 일본이 4승 2패(승점 12점)로 2위에 올랐고 호주가 3승 2무 1패(승점 11점)로 3위, 오만이 2승 1무 3패(승점 7점)로 4위, 중국이 1승 2무 2패(승점 5점)로 5위, 베트남이 6전 전패(승점 0점)로 최하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호주와의 승점 차가 고작 1점 차여서 여전히 불안한 입장이었다.

해가 바뀌어 2022년이 되었다. 7차전 상대는 중국이었다. 일본으로선 반드시 중국을 이기고 호주와 사우디아라비아가 무너져야 승점 차를 벌리며 2위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일본은 중국을 맞아 90분 동안 쉴 새 없이 몰아붙이며 전반 13분에 터진 오사코 유야페널티킥 선제골과 후반 16분에 터진 이토 준야의 쐐기골로 2 : 0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같은 날 호주가 베트남을 4 : 0으로 대파하며 승점 차를 여전히 1점 차로 유지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또한 피라스 알 부라이칸의 결승골로 오만을 1 : 0으로 꺾으며 일본과의 승점 차를 4점으로 유지해 여전히 불안한 2위가 유지되었다. 7차전 종료 후 B조의 순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6승 1무(승점 19점)로 1위였고 일본이 5승 2패(승점 15점)로 2위, 호주가 4승 2무 1패(승점 14점)로 3위를 차지해 3파전 구도로 정립되었다. 오만은 2승 1무 4패(승점 7점)로 4위를 유지했으며 중국은 1승 2무 3패(승점 5점)로 5위에 그쳤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은 7전 전패(승점 0점)를 기록하여 결국 남은 경기에서 모두 이겨도 3위 호주의 승점을 넘을 수 없기에 탈락이 확정되었다.

8차전 상대는 바로 조 선두 사우디아라비아였다. 만약 이 경기에서 일본이 패배하고 뒤이어 호주가 오만을 이겨버리면 일본은 또 다시 3위로 떨어지게 된다. 반면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경기를 이기면 바로 본선 진출이 확정되며 호주가 오만을 상대로 이기지 못하면 조 1위 확정까지 한 큐에 해결된다. 그러므로 쉽지 않은 경기일 것으로 예측되었다.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진 끝에 일본의 추운 날씨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한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이 얼어 있던 틈을 타 전반 32분에 미나미노 타쿠미가 본인의 최종예선 첫 골이자 귀중한 선제골을 기록해 1 : 0으로 앞서갔다. 그리고 후반 5분에 해결사 이토 준야가 쐐기골을 뽑아내며 2 : 0 귀중한 승리를 이루었다. 그리고 뒤이어 호주가 오만의 고춧가루를 제대로 얻어맞아 2 : 2 무승부를 기록하는데 그치며 한결 유리해졌다. 8차전 종료 후 B조의 순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6승 1무 1패(승점 19점)로 1위, 일본이 6승 2패(승점 18점)로 2위, 호주가 4승 3무 1패(승점 15점)로 3위를 기록했으며 이 3팀은 모두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획득했다. 뒤이어 오만이 2승 2무 4패(승점 8점)로 4위, 중국이 1승 2무 5패(승점 5점)로 5위, 베트남이 1승 7패(승점 3점)로 최하위를 기록했는데 이 3팀은 모두 예선 탈락이 확정되었다. 이제 최종예선 구도는 사우디아라비아 VS 일본 VS 호주 3파전 구도로 압축되었다. 일본이 만약 9차전에서 호주를 상대로 승리하면 3위 호주와 승점 차를 6점으로 벌리게 되므로 바로 본선 진출이 확정된다. 만약에 비기거나 지게 될 경우엔 10차전까지 지켜봐야 한다. 대진 순서는 호주보다 더 유리한 상황이지만 만약 2경기를 내리 패배하고 동시에 호주가 2경기를 모두 이기면 순식간에 3위로 추락해 플레이오프로 떨어질 가능성까지 있다.

사실상 단두대 매치가 된 호주 원정 경기에서 일본은 시종일관 경기를 지배하고도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으로 인해 좀처럼 호주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그러다가 종료 직전에 미토마 카오루가 2골을 몰아치면서 2 : 0으로 격파하고 7회 연속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아시아 팀이 FIFA 월드컵 본선에 7회 연속으로 진출한 것은 대한민국에 이어 2번째였다. 그리고 같은 날, 경쟁자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 원정 경기에서 뜻밖에도 1 : 1 무승부에 그치며 승점 1점 차로 역전에 성공해 조 1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마지막 홈 경기에선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과의 경기에서 전반 20분에 세트피스 찬스에서 응우옌 타인 빈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0 : 1로 끌려가다가 후반 9분에 요시다 마야가 간신히 동점골을 넣으며 1 : 1로 무승부를 거두는 데 그치며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같은 날 사우디아라비아가 호주를 홈에서 1 : 0으로 이겼다. 그리하여 B조 최종 순위는 7승 2무 1패(승점 23점)를 거둔 사우디아라비아가 조 1위로, 7승 1무 2패(승점 22점)에 그친 일본은 조 2위로 통과했다. 호주는 4승 3무 3패(승점 15점)로 조 3위에 그치며 지난 대회에 이어 2연속으로 플레이오프 행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4월 1일 카타르에서 진행된 조 추첨 일본은 포트 3에 속했다. 포트 3에 속한 팀은 이란 → 세네갈 → 폴란드 → 세르비아 → 튀니지 순으로 호명이 되어 대한민국, 일본, 모로코 이 3팀이 마지막까지 남았다. 남은 조는 E조, F조, H조였다. 그런데 E조엔 포트 1에서 스페인이 걸렸고 포트 2에선 모든 팀이 피하고 싶어했던 독일이 있어 사실상 톱 시드가 2팀인 조였다. E조 추첨 차례가 되자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한국과 일본 양국 축구팬 모두 "니가 가라 E조"를 마음 속으로 읊조렸다. 이번엔 한국이 웃었다. 포트 3 추첨자 아델 아흐메드 말알라가 일본을 호명하면서 일본이 E조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F조엔 모로코가 들어갔고 마지막까지 남은 대한민국은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 등과 함께 H조에 속했다. 그나마 포트 4에는 코스타리카[50]가 오게 되어 한시름 덜긴 했지만 그래도 최악의 조 편성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 동안의 월드컵에서 조 편성이 대부분 나쁘지 않았던 일본이었지만[51] 이번엔 제대로 적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 보면 28년 전 이라크 때문에 뺏겨버린 조를 돌려받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 해 도하의 기적 때문에 일본이 못 나가고 한국이 나갔는데, 그 한국이 만난 조에 스페인, 독일이 있었다. 너무 숙성시켰더니 볼리비아가 코스타리카가 되었다.

여하간 당시에는 대다수가 결국 강호들에게 포위당한 일본 국대가 비참하게 린치당하고 짐을 싸게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9.1. 32강 조별리그 독일전 - 2 : 1 승[편집]



파일: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로고_좌우_White.svg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E조 1경기
2022.11.23(수) 16:00(UTC+3)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카타르, 도하)
주심: 이반 바르톤 (엘살바도르)
파일:일본 국기.svg
2 : 1
파일:독일 국기.svg
일본
독일
75' 도안 리츠
83' 아사노 타쿠마

득점자
33' 일카이 귄도안 [[페널티킥|{{{#00f (PK)}}}]]
Player of the Match: 곤다 슈이치(일본)
관중: 42,608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E조/독일 vs 일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2. 32강 조별리그 코스타리카전 - 0 : 1 패[편집]



파일: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로고_좌우_White.svg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E조 3경기
2022.11.27.(일) 13:00(UTC+3)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카타르, 아라얀)
주심: 마이클 올리버 (잉글랜드)
파일:일본 국기.svg
0 : 1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일본
코스타리카
-
득점자
81' 케이셰르 풀레르
Player of the Match: 케이셰르 풀레르(코스타리카)
관중: 41,479명


9.3. 32강 조별리그 스페인전 - 2 : 1 승[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E조/일본 vs 스페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4. 16강전 크로아티아전 - 1 : 1 무(PSO 1 : 3 패)[편집]



파일: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로고_좌우_White.svg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16강 5경기
2022.12.05.(월) 18:00(UTC+3)

알자누브 스타디움 (카타르, 알와크라)
주심: 이스마일 엘패스 (미국)
파일:일본 국기.svg
1 : 1
(PSO 1 - 3)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일본

43' 마에다 다이젠
득점자
55' 이반 페리시치
Player of the Match: 도미니크 리바코비치(크로아티아)
관중: 42,52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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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A B 2022년 국호 외국어 표기를 Turkey(터키)에서 Türkiye(튀르키예)로 변경하였으나 편의상 경기 당시 국호로 표기한다.[1] 당시 일본은 중일전쟁이 한창이라 축구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2] 추축국으로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책임을 물어 서독, 동독과 함께 대회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다. 물론 당시 일본 전력상으로는 아쉬울 것도 없었다.[16개국] A B C D E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3] 일본 도쿄에서 치러진 아시아 예선에서 대만도 기권하고 대한민국과 1,2차전을 치렀으며, 도쿄에서 대한민국한테 1차전 1:5 참패, 2차전 2:2무승부로 탈락하여 결국 54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 실패했다.[4] 1라운드 대한민국과의 홈(2-0), 원정(1-2) 2패로 탈락하였다.[5] 1차예선에서 호주, 대한민국에 이어 3위로 탈락.[6] 1라운드 A조 준결승에서 이스라엘에 패하였다.[7] 1라운드 2조에서 대한민국, 이스라엘에 밀려 최종예선에 오르지 못했다.[24개국] A B C D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8] 1라운드를 4개조로 나눠 각조 1위가 최종 예선에 오르는 방식이었는데, 4조 준결승에서 북한에 패하여 최종예선에 오르지 못했다.[9] 최종예선에서 대한민국에게 1차전 2:1패, 2차전 0:1패하여 24강 본선 진출 실패했다.[10] 1라운드 6조에서 북한에 밀려 최종예선에 오르지 못했다. 홍콩과의 두경기를 0-0 2무로 마무리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11] 예선 때 도하의 비극이 일어났다. 경기 종료를 10초 남겨두고 이라크에게 동점골을 헌납했고 대한민국과 승무패가 같았으나 득실차에서 밀려 아시아 3위로 탈락하여 24강 본선 94월드컵에 진출 실패[12] 월드컵 본선 진출 비율[13] 아시아 최초의 당시 A대표 메이저 대회 2라운드 진출.[14] 그런데 희한한 건 같은 추축국인 이탈리아는 출전이 허용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이탈리아가 연합국에 먼저 항복하며 전범 재판조차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15] 현대에는 이렇게 했다가는 피파의 제재를 받아 출전권이 박탈되는데 이는 피파에서 정치가 축구에 개입하는 것을 엄금하기 때문이다.[16] 당시에는 합산 점수 제도가 없었다. 그냥 전적만 비교해서 동률이면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고 거기서 무승부가 나면 추첨으로 뽑았다.[17] 예외로 1조는 한 조에 속한 팀이 많아서 2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18] 이 당시엔 승리 시 승점이 2점이었다. 1994년부터 3점으로 상향 조정되었다.[19] 물론 1934 이탈리아 월드컵 개최국 이탈리아가 '월드컵 개최로 첫 본선 진출한 팀'의 진짜 최초인데, 그 대회는 2회 대회였고 1회 대회인 1930 우루과이 월드컵은 당시 세계 대공황의 여파, 여객선을 타고 원정을 가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유럽 팀들이 의도적으로 대거 불참했기 때문에 크게 의미가 없다.[20] 2019년 현재 자메이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21] 파일:Screenshot_20221216-044418_Gallery.jpg 특히, 한국은 3,4위전 터키전에서 안정환이 득점을 하였으나 이천수가 오프사이드라인에 있어서 득점이 오프사이드로 득점 인정을 못 받았다.[22] 참고로 한국도 일본처럼 16강 진출을 달성하고 나태해진 모습을 보였으나, "I'm still hungry.(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라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일침에 바로 정신을 차렸고 그 결과는 알다시피...[23] 더 놀라운 건 이때 히딩크는 호주 대표팀 감독과 PSV 아인트호벤 감독을 겸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루과이를 꺾고 본선 진출을 성공시킨 것이다.[24] 물론 AFC 이적 자체는 2006년 1월에 했지만, 지역예선은 엄연히 OFC 소속으로 치렀기에 이 대회에서는 엄연히 오세아니아 소속으로 출전했다. 호주가 아시아 소속으로 출전한 건 다음 대회인 2010 남아공 월드컵부터다.[25] 게다가 6.25 전쟁 때 대한민국을 도우러 참전한 점, 베트남 전쟁에도 한국군과 같이 참전한 점 등의 역사적 배경도 함께 작용하였을 것이다.[26] 오만 쇼크, 바레인 쇼크 당시 오만, 바레인을 이끌었던 체코 출신 감독으로 '한국 킬러'로 유명한 감독이었다.[27] 물론 어디까지나 조 추첨 직후에 있었던 이야기다. 막상 경기를 치러보니 사우디아라비아가 너무도 비실거리면서 1차전에서 시리아에 1 : 2로 패배하고 2차전에서 요르단에도 0 : 1로 패배해 이미 2패로 탈락이 확정되어 '맥 빠진 경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28] 이 패배로 인해 나세르 알 조하르 사우디 감독은 선임된 지 불과 9일 만에 다시 해임되었다.[29] 본래는 시리아의 자리였으나 시리아가 1차 예선에서 부적격 선수를 출전시킨 게 뒤늦게 적발되어 타지키스탄과의 경기는 전부 0 : 3 몰수패 처리를 당하고 타지키스탄으로 대체되었다.[30] 단, 이라크 국내 사정이 좋지 않은 관계로 실제 경기는 카타르에서 했다.[31] 하지만 크게 부러워할 건 없었다. 3골을 넣었어도 4골을 먹으면 지는 게 축구다. 일본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2 : 0으로 앞서고 있다가도 3 : 4 역전패를 당했다는 건 결국 일본의 수비가 허약하다는 증거였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뛰어난 스트라이커가 없는 팀이었기에 강력한 수비의 힘으로 적은 득점으로도 승리를 가져와야 했다. 그런데 일본은 2경기에서 벌써 7골이나 내줄 정도로 수비가 허약했다. 이런 허약한 수비로는 좋은 결과를 낼 수가 없다. 벌써 이 때 일본의 월드컵 실패가 드러난 것이다.[32] 조별리그 경기 중 가장 늦은 시간에 실시되는 경기이다.[33] 이때 슛이 뭔 불꽃놀이라도 하듯이 그대로 수직 상승했다.[34] 잭슨 마르티네스의 활약도 무척 빼어났지만, 후반전에만 1골 2도움을 기록한 하메스 로드리게스의 미친 활약도 돋보였다.[35] 만 42세 1개월. 그러나 월드컵 최고령 득점 기록은 여전히 로저 밀러가 갖고 있다.[36] 만 43세 3일[37] 이때 몬드라곤이 세운 기록은 다음 대회에서 이집트의 에삼 알 하다리 골키퍼가 만 45세 161일에 사우디아라비아전에 출전하면서 또 다시 갱신되었다.[38] 사실 이게 함정이었다. 일본은 그동안 아시안컵에서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강한 팀들을 상대로는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오히려 그보다 약하다고 생각되는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같은 팀들한테는 이상하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즉 이란을 만났어야 더 잘 풀렸는데 오히려 아랍에미리트를 만난 게 꿀이 아니라 독이 되어버린 것이다.[39] 아프가니스탄 원정 경기는 아프간 사정이 좋지 못해 이란에서 열렸다.[40] 시리아 원정 경기 역시 시리아 사정이 좋지 못해 오만에서 열렸다.[41] 이라크 원정 경기는 국내 사정이 좋지 못해 이란에서 치렀다.[42] 원래 파나마가 30번째로 호명되어서 순서대로라면 F조로 가야 했으나, 유럽 대륙이 아닌 다른 대륙 소속 국가들은 같은 대륙 국가들끼리는 한 조를 형성할 수 없는 대륙별 안배 원칙과 같은 대륙의 멕시코가 거기에 있으므로 거기로는 갈 수가 없었고, 대신 G조로 들어가서 벨기에, 튀니지, 잉글랜드와 한 조를 형성하게 되었다.[43] 이때 할릴호지치는 "나는 처음부터 우리가 H조에 들어갈 줄 알았다. 왜냐하면 할릴호지치의 H이기 때문이다."라며 아재개그를 선보였다.[44] 1954스위스월드컵 아시아예선 일본 홈경기에서 한국에게 1:5 참패 이후 63년만에 일본 홈에서 한국에게 4골 3점차 완패[45] 이번 대회 베스트 골 2위를 기록했다![46] 다만 신태용호는 불운한 면이 없지는 않았다. 신태용호 문서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문서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참조 바란다. 아시아 최종예선 내내 어수선한 감독 선임 과정과 선수들에게 찾아온 부상 악령 여러 가지 악재가 찾아 온데다 이미 최종예선 과정에서 졸전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완전히 식어버린 상태에서 출전했던 대표팀이었다.[47] 상대가 퇴장 당해도 퇴장당한 팀이 내려앉은 수비를 뚫지 못해 비기는 사례가 종종 있는게 축구이고, 상대가 강팀인 경우에는 수적우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는 경우도 있는거에 비하면 일본은 따라준 운을 잘 활용해 승리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진짜 일본 대표팀이 모든게 운빨인 팀이었으면 퇴장당한 콜롬비아 상대로 이기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48] 옐로카드, 레드 카드 받은 횟수를 토대로 매기는 점수이다.[49] 축구에서 골은 골 라인을 완전히 통과해야 골로 인정된다. 라인에 조금이라도 걸쳐있으면 골이 되지 않는다.[50] 코스타리카 역시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대회 최대 다크호스로 평가받는 캐나다를 꺾는 등 지역에선 마지막 7경기에서 6승 1무로 무패행진을 달렸기 때문. 특히 승리를 거둔 6경기에서 7골, 즉 경기당 1골씩만 더 득점했다면 미국을 밀어내고 월드컵 직행 티켓을 거머쥘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51] 특히 일본은 지난 6번의 월드컵에서 단 1번도 유럽 출신 월드컵 우승국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한꺼번에 2팀이나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