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U-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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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가 지휘한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을 정리한 문서.
2008 베이징 올림픽이 폐막한 이후로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은 따로 사령탑 및 코칭스태프 인선을 하지 않았으며 2009년이 되었다. 한편 전임 박성화호에서 수석코치를 맡았던 홍명보는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이 되었으며 2009 FIFA U-20 월드컵 이집트에서 1983년 4강 이후로 26년 만에 8강에 진출(6위)하는 성과를 거뒀다. 8강전 이후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U-20 감독인 홍명보를 2012 런던 올림픽에 나설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 코칭스태프는 홍명보 감독이 U-20 8강을 지휘했던 코치진을 그대로 앉혔으며 김태영, 서정원, 신의손 코치가 선임되었다. 이는 1989~1990년생을 잘 아는 홍명보 감독을 선임하여 그들이 만 23세가 되는 2012년에 런던 올림픽에서 승부수를 띄우려는 협회 차원의 장기적인 팀 구성으로 풀이된다.
홍명보는 공식적으로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었으나, 취임 이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도 겸임시키기로 함에 따라 아시안 게임도 지휘하게 되었다.
홍명보호의 출범 후 첫 경기는 2009년 12월 19일 일본 올림픽 대표팀과 홈 평가전이다. 홍명보 감독이 지난 U-20 월드컵에서 발탁한 선수들은 거의 다 뽑혔다.
두 번째 경기는 무려 반 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간 뒤에나 잡혔다. 이 경기는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치룬 마지막 평가전이다.
홍명보 감독은 와일드카드로 2010 FIFA 월드컵 출전자 중에서 병역 특례라는 동기부여가 확실한 미필자를 고려하고 있음을 밝혔다. 당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전자 중에서 병역 미필자는 박주영, 염기훈, 조용형, 정성룡, 김영광, 오범석, 강민수가 있었다. 2010년 9월 17일에 최종 엔트리 20인을 발표하였는데 와일드카드로 공격수 박주영과 미드필더 김정우[3] 단 2장만 활용하였다. 당초 조용형도 와일드카드로 뽑으려고 하였지만 소속팀 알 라이얀 SC에서 차출을 거부하였다고 한다.[4] 이외에도 기성용은 당초 명단에 있었으나 소속팀 셀틱 FC의 차출 거부로 윤빛가람으로 대체하였다.
선수 선발에 아쉬움이 남았다. 짧은 소집 기간과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대비하여 팀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자신이 성과를 낸 2009년 FIFA U-20 월드컵 대표팀 위주로 선발했다. 그 때문에 K리그 2010 시즌 득점왕 유병수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 이승렬, 프로 선수였던 김신욱은 아시안 게임 나이 제한인 23세 이하의 검증된 공격수임에도 2009년 U-20 대표팀이 아니었기 때문에 탈락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U-20 대표팀이 아니었다고만 단정하기에는 팀 전술 문제나 개인 문제 등의 이유를 댈 수 있었다. 유병수는 박주영과 스타일이 겹쳤다. 하지만 박주영, 유병수와는 다른 스타일의, 피지컬이 강점인 원톱 공격수로는 대학선수였던 박희성보다 프로선수였던 김신욱이 더 나은 옵션이었고, 실제로 아시안 게임에선 박희성보단 지동원이 훨씬 더 중용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제대로 쓰지도 못한 박희성보단 김신욱을 뽑았어야 했다. 2010년 이후로도 박희성과 김신욱의 기량 차이는 점점 더 벌어졌다. 김신욱은 2014년 월드컵 엔트리에도 포함되고[5] 2018년 월드컵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린 반면에 박희성은 프로 선수가 된 후에도 K리그에서도 그다지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위 명단에서 당시 선수들의 연령과 U-23 팀 출전 기록을 보면, 와일드카드로 뽑힌 선수들을 제외하면 U-23 출전 경력이 거의 전무할 정도로 U-20 팀에서 갓 올라온 1989년생과 1990년생 선수들이 주축이었다. 게다가 아시안 게임을 대비한 평가전이 고작 2경기[6] 뿐이어서 안 그래도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인데 손발을 맞춰볼 실전 경기 마저도 적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이전에 U-23 대표팀 출전 경험이 있는 김정우[7] , 박주영[8] , 신광훈[9] , 조영철[10] 을 제외한 선수 중에서 U-23 출전 기록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선수가 2경기이고, 이 평가전마저도 출전한 적이 없는 선수들은 0경기인 것이다.
이 시기 고려대 대선배인 차범근 전 감독이 사퇴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루머가 떴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한국 축구의 유망주들을 위해 정중히 거절했다.
결과도 결과였지만 내용도 문제였는데, 압박이 좋고 몸싸움에 능한 UAE 대표팀을 상대로 공격 템포 변환이나 빠른 볼배급을 통한 속공을 전혀 시도하지 않고 느려터진 공수 전환에 볼을 이리저리 돌리며 확실한 공격루트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다 상대 수비에 번번히 막혀버렸다. 쉽게 말해 지나치게 완벽하고 예쁘게 공을 차는데만 집중하다 제대로 망해버렸다는 것. 이 날 경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전반전에는 후반전을 생각하고 후반전에는 연장을 생각하고 연장에는 승부차기를 생각하다[13] 경기를 그르쳤다. 더구나 이 날 UAE는 수비적인 전술운영을 하긴 했지만, 중동팀이 허구한 날 구사하는 침대축구도 구사하지 않았는데도 이랬다.
UAE 대표팀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부족했고 플랜A가 막혔을 때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14] 연장 후반 선수들이 불필요한 항의로 아까운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때도 코칭스태프는 그저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그야말로 '본인의 팀'을 만들어 출전해서 결과의 책임도 오롯이 다 몰렸다.
그래도 런던 올림픽 동메달 이후에는 인식이 바뀌었지만, 아시안 게임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살벌하게 욕을 먹었다. 그리고 런던 올림픽 때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선수 선발을 본인 맘에 드는 사람만 한다는 시각이 많다.
유명한 박주영의 논산 1, 논산 2 슛이 탄생한 경기이기도 하다. 경기 내내 박주영 찬가를 부르던 허정무조차도 말문을 잇지 못하고 박주영 비판을 하게 만들 정도의 장면이었다.[15]
경험이 적은 선수들을 뽑은 탓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경기였다. 118분 경 한국의 선제골이 들어가는 듯했으나 오프사이드 선언을 통해 골이 취소되었다. 그 이후 한국 선수들이 혼란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틈을 타 UAE의 롱볼 역습을 얻어맞고 패한 경기였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한국 선수들의 경험이 있었거나, 침착했거나, 좋은 리더가 있었다면 이 흐름대로 갔다 하더라도 승부차기까지는 갔을 수도 있는데 연장 후반 선제골 취소의 흥분과 혼란을 가라앉히지 못하다가 패배하고 말았다.
설상가상 야구 국가대표팀이 축구와는 대조되게 금메달을 따면서 상대적으로 여론이 나빴는데, 이란과 3·4위전이 끝나고 인터뷰에서 "남들이 피자, 햄버거 등을 섭취할 때 우리는 스스로 컨트롤했다."[16] 언급했고 극적인 銅 홍명보 감독, "포기 안한 선수들 고맙다" 몇몇 선수들은 자신들의 미니홈피에 무난하게 금메달을 딴 야구대표팀을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의 글을 올려 파문이 일었다. 일부 亞축구대표 "햄버거 먹고 쉽게 金" 야구 비하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금메달을 따서 병역을 해결할 수 있는 상당히 좋은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놓친 인상이 있다. 특히 감독의 실책이 두드러지는 대회였다.
4년 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광종호와 비교해 보면 당시 이광종호는 당연히 연령대에 맞는 91, 92가 주축이었으며 93 아래로는 단 한 명의 선수도 소집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광저우 홍명보호도 당연히 87, 88이 주축이어야 한다. 하지만 광저우 홍명보의 연령대 구성은 87과 88이 각각 한 명에 불과했다. 89가 7명, 90이 8명, 91이 1명이라는 몹시 파행적인 구성을 보여주었다.[17] 축구를 반드시 나이로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나이대의 한국 선수들은 아직까지도 신체적으로 전성기에 들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차기 아시안게임에 가능한 91년생부터는 당시 10대였다. 외국에서는 10대의 선수들이 해외리그를 누비는 것과 다르다고 선수 출신들은 얘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U23이면 당연히 그 나이대에 맞는 선수들을 소집해야지 신체적으로 좋은 팀을 만들 수 있는데 그것을 홍명보가 무시한 것이다.
물론 소집된 선수 중 단 한 명뿐인 91이 지동원이고 활약을 했다는 점에 있어서 좋은 소집이라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전체적으로 87과 88이 각각 1명에 불과한 것은 파행적인 구성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하나하나 들여다 보면 홍명보호의 89와 90년생 멤버들의 이름값은 좋아서 뽑힐 만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 뭉쳐놓은 것은 무리수였다고밖에 할 수 없다. 또한 이런 와중에 와일드카드를 2장밖에 사용하지 않은 것 역시 실책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특히 당시 이미 왼쪽 수비수로 포지션 변경을 했던 홍철은 뽑아놓고 드문드문 왼쪽 공격수로 주로 사용했는데 김민우도 뽑아놓은 마당이면 둘 중 하나는 87, 88 가운데에서 좋은 윙어를 뽑던가 아니라면 이 자리야말로 한 장 남은 와일드카드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홍명보의 이런 윙어경시 성향은 이 대회에서 두드러졌는데, 김보경 홍철 서정진 조영철 김민우 등을 윙어로 돌려 가면서 기용했다. 서정진을 제외하면 다 뭔가 느리다거나 윙어로서는 수비력에 강점이 있다거나 전문 윙어라고 보기에는 뭔가 좀 그렇다거나 하면서 공격적인 면에서는 애매하고 중앙지향적이거나 수비적인 강점이 있는 자원들이었다. 또한 그 외의 중앙자원들도 그렇게 빠르지 않은 선수들이 많은 등 전반적으로 점유율, 수비를 중시하는 성향이 그대로 드러났고 그 결과 우즈벡과의 경기에서 연장까지 간다거나, 북한에게 패한다거나, UAE에게 4강 탈락한다거나 하는 이름값으로 보면 있기 어려운 일이 3번이나 나온 대회였다.
와일드카드 자원도 고대 후배인 박주영, 그리고 김정우인데 실력적으로야 차고 넘치는 인물들이지만, 와일드카드의 중요한 역할인 리더십 부분에서는 의문점이 드는 인물들이다. 박주영이 리더십은커녕 다루기 힘든 선수인 것은 정평이 나 있고 홍명보 본인도 2012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박주영 병역 문제와 연관되어서 큰 곤욕을 치렀으며[18] 김정우 역시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으로 하루에 몇 마디 정도 말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 대회에서 박주영이 후배들에게 했다는 몇 마디도 그냥 박주영이 했으니까 먹힌 거지 선수들에게 합격점을 줄 만한 멘트도 아니다. U23으로서도 어린 선수들을 뽑았단 걸 생각해 보면 잘 이끌어줄 와일드카드가 반드시 한 명 더 필요했는데 뽑지 않고 금메달 달성에 실패한 것은 홍명보 본인의 실책임에 분명하다.
또한 다시 한 번 박희성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백업 수비수들이야 그렇다 치고, 다른 공격수들과 미드필더들은 다 어느 정도 활용하고 써먹었지만 박희성은 패배한 북한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써먹지 않았으며 공격수 대체로는 지동원도 있는데 4231을 쓰는 주제에 20명 엔트리에서 지동원, 박희성, 박주영 3명이나 뽑아놓는다는 것은 실로 엔트리 낭비였다. 앞서 말했지만 빠른 공격수가 서정진 한 명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 명이라도 더 빠른 공격수를 쓸 수 있다면 훨씬 쉽게 갈 수 있었을 것이다.[19]
홍명보가 조금이라도 선수 구성의 묘를 더 살릴 수 있었다면 충분히 금메달까지 노릴 수 있는 대회였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회이다. 아무리 뭐 셀틱이 기성용을 차출해주지 않았느니 어쨌느니 해도 최고의 엔트리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명백하게 실패한 대회였다.[20]
여담이지만 허정무의 정제되지 않은 쓰레기같은 해설이 돋보이던 대회이기도 한데 조영철이 잡고 슛해서 빗나갔을 때 아! 박주영 선수였더라면! 이런 식의 해설을 하는 등 그야말로 감스트보다 못한 정제되지 않은 쓰레기같은 해설을 선보인 대회였다.[21]
당시 국가대표팀에서 각각 골키퍼와 최전방 공격수에서 주전으로 기용되었던 박주영과 정성룡은 올림픽 대표팀에서 취약 포지션을 메워줄 선수로 애초에 합류가 유력했으며, 병역을 해결하지 못한 군미필자이기 때문에 올림픽 성적에 따라서 동메달 이상을 획득한다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예선 당시 주장으로서 김영권과 함께 주전 센터백으로 나섰던 홍정호가 대회 직전 리그 경기에서 십자인대 파열로 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되자, 홍명보 감독은 당시 국가대표 주전 센터백이던 이정수를 마지막 와일드카드 최우선 순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군면제를 받았고 소속팀 역시 해외 구단인 알사드였기 때문에 이정수를 차출할 명분이 없었고 결국 이정수 차출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게다가 또 다른 국대 주전 센터백 곽태휘 역시 군면제에 중동팀 알힐랄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명분이 부족했고 역시 실패할 것을 예상한 홍명보 감독은 결국 또 다른 취약 포지션인 우측 풀백에서 와일드카드를 뽑기로 선회했다. 결국 홍명보 감독은 당시 국대에 이름을 오르내리던 여러 선수들 중 왼쪽 풀백도 소화가 가능하고, 군문제가 코앞에 놓여있으며, 4년 전 올림픽에서 직접 지도해본 김창수를 선발하며 와일드카드 선정을 마무리했다.
여담으로 홍정호와 홍정호의 대체 자원으로 발탁되었다가 역시 부상으로 낙마한 장현수, 그리고 본선 첫 경기 직전에 부상이 발견된 한국영은 팀이 올림픽에서 입상하며 병역혜택을 아쉽게 놓쳤지만 추후 병역을 해결했다. 홍정호는 당시 당했던 부상으로, 한국영은 2017년 각각 십자인대 수술로 병역을 면제 받았고, 장현수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주장으로서 금메달을 따며 예술체육요원으로 복무했다.
자세한 내용은 홍명보호/U-23/올림픽 예선 이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메달빛 전망을 쏟아내는 국내언론과는 다르게, 해외 도박사들은 한국이 멕시코를 꺾을 가능성이 적다고 전망했다.
2012년 7월 27일, 멕시코와 벌인 16강 본선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0:0으로 비겼다.
경기장이 비에 젖어 미끄러웠다. 대한민국은 과감한 롱 패스로 좋은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멕시코가 전반전 영혼의 10백까지 써가면서 몸을 사렸는데 과감히 모험을 걸지 못한 점, 또한 후반전 멕시코가 빠르게 선수 교체를 가져가면서 승부수를 띄운 반면 교체가 한박자씩 늦었던 점 등 내용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말이 무승부지 후반 막판에 멕시코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허용했는데 멕시코 선수의 슈팅이 골대를 빗나가서 망정이았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본선 조별리그 최대의 난적[24] 을 만나 소중한 승점 1점을 얻었다는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경기력 면에서도 아쉽긴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급기야 스위스와 가봉이 1:1로 비기면서 네 팀 모두 승점 1점을 획득해, 헬게이트가 열렸다.
한국시간으로 2012년 7월 30일 새벽, 스위스와의 16강 본선 조별리그 2번째 경기를 2:1 승리로 이끌었다! 후반전에, 그것도 짧은 순간에 3골이 한꺼번에 터졌다. 먼저 박주영이 다이빙 헤딩으로 선제골을 터뜨렸으나, 몇 분도 안 돼서 박주영이 넣었던 경로와 똑같은 헤딩골을 허용하면서 1:1 상황이 되었다. 이 상황을 깬 것은 김보경. 구자철의 슛팅이 수비수 몸 맞고 나왔는데, 이 루즈볼을 김보경이 놓치지 않고 논스톱 발리슛을 때려넣어 다시 경기를 뒤집는 데에 성공했다. 이 점수를 잘 지켜 승리를 따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 오심으로 얼룩진 스위스와의 리매치라 더 값진 승리다.[25] 박주영, 김창수와 같은 와일드카드는 물론 상대적으로 볼터치가 말끔한 김보경, 백성동, 구자철, 기성용 등을 중심으로 플레이를 풀어나갔다.
그 다음 본선 조별리그 3차전, 가봉과의 경기. 만약 가봉으로서는 이 경기에서 이기면 올라갈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선수비 후역습 전략으로 나오면서 공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에 잘 대응하면서 득점없이 비기면서 한국은 0:0 무승부를 거두고 1승 2무 조 2위의 호성적으로 8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경기 내내 한국이 몰아치다시피 했지만 골을 넣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일부 축구팬들이 결정력 부족에 대해 우려했다. 또 가봉이 골대를 맞추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도 있었다. 사실 가봉 상대로 못 이겼다는 점에서 '이런 경기력으로 영국 이기기는 틀렸다' 생각이 드는 등, 이때까지만 해도 상황은 한국 쪽에 암울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다음 경기인 8강전 상대는 단일팀 영국. 도박사, 전문가들은 대부분 홈팀 영국의 승리를 점쳤다. 라이언 긱스, 크레이그 벨라미, 다니엘 스터리지, 아론 램지, 톰 클레버리 등 EPL에서 뛰는 훌륭한 선수들이 많고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이 그 이유라는 것. 국내 팬들도 이 점을 우려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리고 드디어 2012년 8월 5일 한국 시간 3시 30분 영국과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홍명보는 김보경을 빼고 영국 현지 경험이 많은 지동원을 대신 투입하는 전략을 썼는데, 많은 불안과는 다르게도 이런 홍명보의 용병술이 먹혀들어 지동원 선수가 선제골을 넣으면서 1:0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잠시 후, 수비수 오재석의 핸들링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해 아론 램지가 넣으면서 1:1 상황이 되었다. 몇 분 되지도 않아, 또다시 황석호가 페널티 에어라인 내에서 스터리지에게 파울을 범하는 바람에[26]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하지만 정성룡 키퍼의 선방으로 더 이상의 추가 실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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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김창수와 정성룡이 모두 부상을 입어 교체카드를 2개나 미리 쓰게 되는 불리한 상황이 이어졌지만,[27] 한국의 조직적인 압박에 박혀 영국은 영양가 있는 공격을 하지 못 했다. 오히려 역습으로 한국이 더욱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기는 연장전까지 돌입하게 되었고 결국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연장전도 득점 없이 끝났다.
그리고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한국과 영국은 4:4의 팽팽한 상황을 만들었다. 참고로 한국 키커의 순서는 차례대로 구자철, 백성동, 황석호, 박종우였다.
그리고 영국의 마지막 키커인 다니엘 스터리지의 슛을 이범영 선수가 볼의 진로를 읽어내 막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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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국의 5번째 키커 기성용이 마무리 골을 멋지게 성공시키며[28] 홈팀이었던 영국을 꺾게 된다. 이로 인해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축구 4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재밌는 건 영국전의 전개가 홍명보 감독이 10년전 대표팀 주장으로 뛰었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의 대한민국 vs 스페인전과 흡사했다는 것.
스터리지의 실축과 이범영의 선방은 2002년 당시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선방한 이운재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기도 했으며[29] , 우리나라쪽의 키커 5명 모두가 1명도 실패하지 않고 슛을 성공시킨 점도 같다. 역사적인 승부차기 보러가기.
게다가 한쪽은 월드컵, 또 한쪽은 올림픽에서 사상 첫 4강을 이룩하게 된 의미있는 대결이기도 하다.
2002년 스페인전 당시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이자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홍명보가 2012년에는 감독으로서 그 때의 감동을 재현해준 셈이다.
그리고 2012년 8월 8일 한국 시간 새벽 3시 30분. 브라질과의 4강전을 가졌으나 3:0으로 패하여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전반 초반까지는 거세게 밀어붙였으나, 우려했던대로 수비진의 패스 미스를 브라질이 가로 채 그 한 번의 찬스를 골로 연결시켰다. 이 때부터 서서히 경기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 전후로 페널티킥 찬스가 두 번 있었지만 심판이 보지 못 했는지 둘 다 넘어갔다.
이 후, 후반전엔 조직력이 속절없이 붕괴되더니 추가로 2골을 허용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브라질은 16강 본선 조별리그부터 이 경기까지 경기당 3골을 몰아넣는 화력팀이었고, 한국은 그런 공격력을 이기지 못 했다. 브라질은 경기 내내 개인 기량에 의한 돌파로 계속해서 찬스를 만들어냈고 한국은 그것을 막기에 바빴다. 어렵사리 한국이 공격 기회를 잡아도 적극적인 전진 압박에 막혀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했다. 박주영, 정우영, 백성동이 교체 투입되었으나, 효과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경기를 치룬 멕시코가 일본에게 3:1로 이기면서, 다음 경기인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일전이 성사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2012 런던 올림픽/축구(남자)/동메달 결정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무려 FIFA 1위 스페인을 격파한 일본을 2:0으로 가볍게 격파하여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대한민국 축구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로써 대표팀 선수 모두 병역 면제를 받게 되었다.[30]
전반 37분경, 수비 4명을 달고 들어가면서 침착하게 박주영이 골을 성공시켰다. 이어서 후반 11분, 구자철이 침착한 퍼스트 터치에 이은 쐐기골을 터뜨렸다. 홍명보 본인이 박주영이 군대 안가면 자기가 대신 간다고까지 하면서[31] 감싸준 박주영이 결정적인 순간에 큰 활약을 하는 등, 이번 올림픽에서 대표팀이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으므로 인터뷰에 따르면 홍명보 본인은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고 한다.
올림픽의 성과로 당시 한국 축구 대표팀은 10년 전의 영광을 재현할 정도로 긍정적인 바람이 불었다.
홍명보 감독은 2012 AFC 올해의 시상식 감독상 후보에 올랐고, 이 팀은 올해의 대표팀 부문 후보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홍명보는 김호곤 감독에 밀려 수상에 실패했지만, 홍명보호는 AFC 올해의 대표팀상을 수상하며 성과를 거뒀다.
대신 홍명보 감독은 2012년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감독 부문 15위에 선정될 만큼 국제적인 관심을 한몸에 받는 감독이 됐고, 자연스레 임시 감독을 보유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유력 후보가 됐다.
한편, 회의적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한 감독이 유스부터 국대까지 멤버를 일관되게 끌고가는 팀 운영'을 홍명보 감독에게 바라고 있는데,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그런 장기 비전에 걸맞는 팀이 아니었다. 지역 예선 전용 감독으로 최강희 감독을 선임해둔, 매우 괴상한 팀이었다.
또한 올림픽팀의 수비 조직력은 뛰어났으나 공격력은 한일전 단 한 경기를 제외하자면 시종일관 불만스러웠고, 그나마도 한일전도 '일본은 피지컬로 찍어눌러야 제맛'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써먹었고 여기에 보태서 박주영, 정성룡, 김창수라는 와일드 카드 3인방에 기성용, 구자철, 지동원, 김영권 등 역대 최고의 세대라 불리던 선수들이 매우 잘해줬을 뿐 홍명보 특유의 색깔은 보이지 않았다. 즉 감독으로서 아직 성장할 여지가 많은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커리어를 걸고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다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2013년 1월 홍명보는 은사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있던 안지 마하치칼라에 5개월 무급 어시스턴트로 임명된다. 즉, 히딩크 인맥을 사용한 코치 인턴인 셈. 안지에서 연수가 끝난 후 홍명보는 우려대로 국가대표 감독이 됐고, 최악의 결과를 맞이한다...
한편 당시 이 세대는 가히 대한민국 축구사 전체를 놓고 봐도 역대 최고의 세대라 불리기 충분했다. 당시 A대표팀 핵심 멤버였던 와일드 카드 박주영과 정성룡은 차치하더라도, U-23팀에 이미 A대표팀 주전이 수두룩했다. 기성용, 구자철, 지동원, 김영권, 윤석영은 이미 당시 A대표팀 주전이었고, 김보경은 이미 2년 전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였으며 남태희 역시 A대표팀 2년차 선수였다. 게다가 대회 직후 와일드카드였던 김창수를 비롯해 황석호, 박종우, 김기희, 이범영이 A대표팀으로 콜업됐고, 백성동은 홍명보 감독 부임 후 A대표팀에 데뷔했다. 이외에도 오재석과 정우영은 3-4년 뒤 A대표팀에 승선했으며 그 중 정우영은 거의 10년 가까이 A대표팀에서 살아남아 있다. 결국, 김현성을 제외하면 18인 중 17명이 A매치 출전 경험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부상으로 낙마한 홍정호, 한국영, 장현수 모두 월드컵과 아시안컵 모두 참가하는 등 커리어를 쌓으며 A대표팀에서 화려한 커리어를 쌓은 선수들이다. 이외에도 해당 대회 엔트리에 낙마한 명단을 살펴보자면, 김태환, 이승렬, 조영철, 김동섭, 김민우, 이명주, 홍철, 김승규, 윤빛가람, 정동호 등 K리그와 대표팀에서 엄청난 커리어를 쌓은 선수들이 수두룩했다...
여담으로 이때 올림픽 본선에서 득점한 박주영, 김보경, 지동원, 구자철은 물론 정성룡, 기성용, 윤석영, 김창수, 이범영, 김영권, 황석호, 박종우 그리고 부상으로 낙마했던 홍정호와 한국영이 2년 뒤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관련 문서: 홍명보/지도자 경력
1. 개요[편집]
홍명보가 지휘한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을 정리한 문서.
2. 선임 과정[편집]
2008 베이징 올림픽이 폐막한 이후로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은 따로 사령탑 및 코칭스태프 인선을 하지 않았으며 2009년이 되었다. 한편 전임 박성화호에서 수석코치를 맡았던 홍명보는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이 되었으며 2009 FIFA U-20 월드컵 이집트에서 1983년 4강 이후로 26년 만에 8강에 진출(6위)하는 성과를 거뒀다. 8강전 이후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U-20 감독인 홍명보를 2012 런던 올림픽에 나설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 코칭스태프는 홍명보 감독이 U-20 8강을 지휘했던 코치진을 그대로 앉혔으며 김태영, 서정원, 신의손 코치가 선임되었다. 이는 1989~1990년생을 잘 아는 홍명보 감독을 선임하여 그들이 만 23세가 되는 2012년에 런던 올림픽에서 승부수를 띄우려는 협회 차원의 장기적인 팀 구성으로 풀이된다.
3. 활동[편집]
3.1.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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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는 공식적으로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었으나, 취임 이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도 겸임시키기로 함에 따라 아시안 게임도 지휘하게 되었다.
3.1.1. 아시안 게임 이전[편집]
3.1.1.1. vs 일본 (친선경기) 1:2 패[편집]
홍명보호의 출범 후 첫 경기는 2009년 12월 19일 일본 올림픽 대표팀과 홈 평가전이다. 홍명보 감독이 지난 U-20 월드컵에서 발탁한 선수들은 거의 다 뽑혔다.
- 굵은 글씨는 홍명보 감독과 함께 지난 2009 FIFA U-20 월드컵 이집트 본선에 출전한 선수이다.
3.1.1.2. vs 말레이시아 (친선경기) 0:1 패[편집]
두 번째 경기는 무려 반 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간 뒤에나 잡혔다. 이 경기는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치룬 마지막 평가전이다.
3.1.2. 아시안 게임 본선[편집]
3.1.2.1. 엔트리[편집]
홍명보 감독은 와일드카드로 2010 FIFA 월드컵 출전자 중에서 병역 특례라는 동기부여가 확실한 미필자를 고려하고 있음을 밝혔다. 당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전자 중에서 병역 미필자는 박주영, 염기훈, 조용형, 정성룡, 김영광, 오범석, 강민수가 있었다. 2010년 9월 17일에 최종 엔트리 20인을 발표하였는데 와일드카드로 공격수 박주영과 미드필더 김정우[3] 단 2장만 활용하였다. 당초 조용형도 와일드카드로 뽑으려고 하였지만 소속팀 알 라이얀 SC에서 차출을 거부하였다고 한다.[4] 이외에도 기성용은 당초 명단에 있었으나 소속팀 셀틱 FC의 차출 거부로 윤빛가람으로 대체하였다.
선수 선발에 아쉬움이 남았다. 짧은 소집 기간과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대비하여 팀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자신이 성과를 낸 2009년 FIFA U-20 월드컵 대표팀 위주로 선발했다. 그 때문에 K리그 2010 시즌 득점왕 유병수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 이승렬, 프로 선수였던 김신욱은 아시안 게임 나이 제한인 23세 이하의 검증된 공격수임에도 2009년 U-20 대표팀이 아니었기 때문에 탈락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U-20 대표팀이 아니었다고만 단정하기에는 팀 전술 문제나 개인 문제 등의 이유를 댈 수 있었다. 유병수는 박주영과 스타일이 겹쳤다. 하지만 박주영, 유병수와는 다른 스타일의, 피지컬이 강점인 원톱 공격수로는 대학선수였던 박희성보다 프로선수였던 김신욱이 더 나은 옵션이었고, 실제로 아시안 게임에선 박희성보단 지동원이 훨씬 더 중용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제대로 쓰지도 못한 박희성보단 김신욱을 뽑았어야 했다. 2010년 이후로도 박희성과 김신욱의 기량 차이는 점점 더 벌어졌다. 김신욱은 2014년 월드컵 엔트리에도 포함되고[5] 2018년 월드컵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린 반면에 박희성은 프로 선수가 된 후에도 K리그에서도 그다지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위 명단에서 당시 선수들의 연령과 U-23 팀 출전 기록을 보면, 와일드카드로 뽑힌 선수들을 제외하면 U-23 출전 경력이 거의 전무할 정도로 U-20 팀에서 갓 올라온 1989년생과 1990년생 선수들이 주축이었다. 게다가 아시안 게임을 대비한 평가전이 고작 2경기[6] 뿐이어서 안 그래도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인데 손발을 맞춰볼 실전 경기 마저도 적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이전에 U-23 대표팀 출전 경험이 있는 김정우[7] , 박주영[8] , 신광훈[9] , 조영철[10] 을 제외한 선수 중에서 U-23 출전 기록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선수가 2경기이고, 이 평가전마저도 출전한 적이 없는 선수들은 0경기인 것이다.
이 시기 고려대 대선배인 차범근 전 감독이 사퇴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루머가 떴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한국 축구의 유망주들을 위해 정중히 거절했다.
3.1.2.2. 경기 목록[편집]
3.1.2.2.1. vs 북한 (조별리그 1차전) 0:1 패[편집]
비교적 만만한 팀들이 출전하는 대회였으나 첫 경기부터 북한한테 패배하는 등 불안한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3.1.2.2.2. vs 요르단 (조별리그 2차전) 4:0 승[편집]
3.1.2.2.3. vs 팔레스타인 (조별리그 3차전) 3:0 승[편집]
3.1.2.2.4. vs 중국 (16강전) 3:0 승[편집]
3.1.2.2.5. vs 우즈베키스탄 (8강전) 3:1 승[편집]
3.1.2.2.6. vs 아랍에미리트 (준결승전) 0:1 패[편집]
그래도 초반에는 승리을 이끌며 토너먼트까지 무사히 안착했으나 4강전에서 UAE에 패하였다.
결과도 결과였지만 내용도 문제였는데, 압박이 좋고 몸싸움에 능한 UAE 대표팀을 상대로 공격 템포 변환이나 빠른 볼배급을 통한 속공을 전혀 시도하지 않고 느려터진 공수 전환에 볼을 이리저리 돌리며 확실한 공격루트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다 상대 수비에 번번히 막혀버렸다. 쉽게 말해 지나치게 완벽하고 예쁘게 공을 차는데만 집중하다 제대로 망해버렸다는 것. 이 날 경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전반전에는 후반전을 생각하고 후반전에는 연장을 생각하고 연장에는 승부차기를 생각하다[13] 경기를 그르쳤다. 더구나 이 날 UAE는 수비적인 전술운영을 하긴 했지만, 중동팀이 허구한 날 구사하는 침대축구도 구사하지 않았는데도 이랬다.
UAE 대표팀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부족했고 플랜A가 막혔을 때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14] 연장 후반 선수들이 불필요한 항의로 아까운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때도 코칭스태프는 그저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그야말로 '본인의 팀'을 만들어 출전해서 결과의 책임도 오롯이 다 몰렸다.
그래도 런던 올림픽 동메달 이후에는 인식이 바뀌었지만, 아시안 게임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살벌하게 욕을 먹었다. 그리고 런던 올림픽 때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선수 선발을 본인 맘에 드는 사람만 한다는 시각이 많다.
유명한 박주영의 논산 1, 논산 2 슛이 탄생한 경기이기도 하다. 경기 내내 박주영 찬가를 부르던 허정무조차도 말문을 잇지 못하고 박주영 비판을 하게 만들 정도의 장면이었다.[15]
경험이 적은 선수들을 뽑은 탓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경기였다. 118분 경 한국의 선제골이 들어가는 듯했으나 오프사이드 선언을 통해 골이 취소되었다. 그 이후 한국 선수들이 혼란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틈을 타 UAE의 롱볼 역습을 얻어맞고 패한 경기였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한국 선수들의 경험이 있었거나, 침착했거나, 좋은 리더가 있었다면 이 흐름대로 갔다 하더라도 승부차기까지는 갔을 수도 있는데 연장 후반 선제골 취소의 흥분과 혼란을 가라앉히지 못하다가 패배하고 말았다.
3.1.2.2.7. vs 이란 (3·4위전) 4:3 승[편집]
이란과의 3위 결정전에서 4:3 역전승을 하면서 동메달을 따내며 유종의 미는 거두게 되었다.
설상가상 야구 국가대표팀이 축구와는 대조되게 금메달을 따면서 상대적으로 여론이 나빴는데, 이란과 3·4위전이 끝나고 인터뷰에서 "남들이 피자, 햄버거 등을 섭취할 때 우리는 스스로 컨트롤했다."[16] 언급했고 극적인 銅 홍명보 감독, "포기 안한 선수들 고맙다" 몇몇 선수들은 자신들의 미니홈피에 무난하게 금메달을 딴 야구대표팀을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의 글을 올려 파문이 일었다. 일부 亞축구대표 "햄버거 먹고 쉽게 金" 야구 비하
3.1.3. 총평[편집]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금메달을 따서 병역을 해결할 수 있는 상당히 좋은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놓친 인상이 있다. 특히 감독의 실책이 두드러지는 대회였다.
4년 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광종호와 비교해 보면 당시 이광종호는 당연히 연령대에 맞는 91, 92가 주축이었으며 93 아래로는 단 한 명의 선수도 소집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광저우 홍명보호도 당연히 87, 88이 주축이어야 한다. 하지만 광저우 홍명보의 연령대 구성은 87과 88이 각각 한 명에 불과했다. 89가 7명, 90이 8명, 91이 1명이라는 몹시 파행적인 구성을 보여주었다.[17] 축구를 반드시 나이로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나이대의 한국 선수들은 아직까지도 신체적으로 전성기에 들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차기 아시안게임에 가능한 91년생부터는 당시 10대였다. 외국에서는 10대의 선수들이 해외리그를 누비는 것과 다르다고 선수 출신들은 얘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U23이면 당연히 그 나이대에 맞는 선수들을 소집해야지 신체적으로 좋은 팀을 만들 수 있는데 그것을 홍명보가 무시한 것이다.
물론 소집된 선수 중 단 한 명뿐인 91이 지동원이고 활약을 했다는 점에 있어서 좋은 소집이라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전체적으로 87과 88이 각각 1명에 불과한 것은 파행적인 구성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하나하나 들여다 보면 홍명보호의 89와 90년생 멤버들의 이름값은 좋아서 뽑힐 만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 뭉쳐놓은 것은 무리수였다고밖에 할 수 없다. 또한 이런 와중에 와일드카드를 2장밖에 사용하지 않은 것 역시 실책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특히 당시 이미 왼쪽 수비수로 포지션 변경을 했던 홍철은 뽑아놓고 드문드문 왼쪽 공격수로 주로 사용했는데 김민우도 뽑아놓은 마당이면 둘 중 하나는 87, 88 가운데에서 좋은 윙어를 뽑던가 아니라면 이 자리야말로 한 장 남은 와일드카드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홍명보의 이런 윙어경시 성향은 이 대회에서 두드러졌는데, 김보경 홍철 서정진 조영철 김민우 등을 윙어로 돌려 가면서 기용했다. 서정진을 제외하면 다 뭔가 느리다거나 윙어로서는 수비력에 강점이 있다거나 전문 윙어라고 보기에는 뭔가 좀 그렇다거나 하면서 공격적인 면에서는 애매하고 중앙지향적이거나 수비적인 강점이 있는 자원들이었다. 또한 그 외의 중앙자원들도 그렇게 빠르지 않은 선수들이 많은 등 전반적으로 점유율, 수비를 중시하는 성향이 그대로 드러났고 그 결과 우즈벡과의 경기에서 연장까지 간다거나, 북한에게 패한다거나, UAE에게 4강 탈락한다거나 하는 이름값으로 보면 있기 어려운 일이 3번이나 나온 대회였다.
와일드카드 자원도 고대 후배인 박주영, 그리고 김정우인데 실력적으로야 차고 넘치는 인물들이지만, 와일드카드의 중요한 역할인 리더십 부분에서는 의문점이 드는 인물들이다. 박주영이 리더십은커녕 다루기 힘든 선수인 것은 정평이 나 있고 홍명보 본인도 2012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박주영 병역 문제와 연관되어서 큰 곤욕을 치렀으며[18] 김정우 역시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으로 하루에 몇 마디 정도 말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 대회에서 박주영이 후배들에게 했다는 몇 마디도 그냥 박주영이 했으니까 먹힌 거지 선수들에게 합격점을 줄 만한 멘트도 아니다. U23으로서도 어린 선수들을 뽑았단 걸 생각해 보면 잘 이끌어줄 와일드카드가 반드시 한 명 더 필요했는데 뽑지 않고 금메달 달성에 실패한 것은 홍명보 본인의 실책임에 분명하다.
또한 다시 한 번 박희성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백업 수비수들이야 그렇다 치고, 다른 공격수들과 미드필더들은 다 어느 정도 활용하고 써먹었지만 박희성은 패배한 북한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써먹지 않았으며 공격수 대체로는 지동원도 있는데 4231을 쓰는 주제에 20명 엔트리에서 지동원, 박희성, 박주영 3명이나 뽑아놓는다는 것은 실로 엔트리 낭비였다. 앞서 말했지만 빠른 공격수가 서정진 한 명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 명이라도 더 빠른 공격수를 쓸 수 있다면 훨씬 쉽게 갈 수 있었을 것이다.[19]
홍명보가 조금이라도 선수 구성의 묘를 더 살릴 수 있었다면 충분히 금메달까지 노릴 수 있는 대회였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회이다. 아무리 뭐 셀틱이 기성용을 차출해주지 않았느니 어쨌느니 해도 최고의 엔트리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명백하게 실패한 대회였다.[20]
여담이지만 허정무의 정제되지 않은 쓰레기같은 해설이 돋보이던 대회이기도 한데 조영철이 잡고 슛해서 빗나갔을 때 아! 박주영 선수였더라면! 이런 식의 해설을 하는 등 그야말로 감스트보다 못한 정제되지 않은 쓰레기같은 해설을 선보인 대회였다.[21]
3.2.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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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엔트리[편집]
당시 국가대표팀에서 각각 골키퍼와 최전방 공격수에서 주전으로 기용되었던 박주영과 정성룡은 올림픽 대표팀에서 취약 포지션을 메워줄 선수로 애초에 합류가 유력했으며, 병역을 해결하지 못한 군미필자이기 때문에 올림픽 성적에 따라서 동메달 이상을 획득한다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예선 당시 주장으로서 김영권과 함께 주전 센터백으로 나섰던 홍정호가 대회 직전 리그 경기에서 십자인대 파열로 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되자, 홍명보 감독은 당시 국가대표 주전 센터백이던 이정수를 마지막 와일드카드 최우선 순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군면제를 받았고 소속팀 역시 해외 구단인 알사드였기 때문에 이정수를 차출할 명분이 없었고 결국 이정수 차출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게다가 또 다른 국대 주전 센터백 곽태휘 역시 군면제에 중동팀 알힐랄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명분이 부족했고 역시 실패할 것을 예상한 홍명보 감독은 결국 또 다른 취약 포지션인 우측 풀백에서 와일드카드를 뽑기로 선회했다. 결국 홍명보 감독은 당시 국대에 이름을 오르내리던 여러 선수들 중 왼쪽 풀백도 소화가 가능하고, 군문제가 코앞에 놓여있으며, 4년 전 올림픽에서 직접 지도해본 김창수를 선발하며 와일드카드 선정을 마무리했다.
여담으로 홍정호와 홍정호의 대체 자원으로 발탁되었다가 역시 부상으로 낙마한 장현수, 그리고 본선 첫 경기 직전에 부상이 발견된 한국영은 팀이 올림픽에서 입상하며 병역혜택을 아쉽게 놓쳤지만 추후 병역을 해결했다. 홍정호는 당시 당했던 부상으로, 한국영은 2017년 각각 십자인대 수술로 병역을 면제 받았고, 장현수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주장으로서 금메달을 따며 예술체육요원으로 복무했다.
3.2.2. 경기 목록[편집]
3.2.2.1. 본선 이전[편집]
자세한 내용은 홍명보호/U-23/올림픽 예선 이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2.2. 조별리그[16강][편집]
3.2.2.2.1. 16강 조별리그 1차전 멕시코전 0 : 0 무[편집]
메달빛 전망을 쏟아내는 국내언론과는 다르게, 해외 도박사들은 한국이 멕시코를 꺾을 가능성이 적다고 전망했다.
2012년 7월 27일, 멕시코와 벌인 16강 본선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0:0으로 비겼다.
경기장이 비에 젖어 미끄러웠다. 대한민국은 과감한 롱 패스로 좋은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멕시코가 전반전 영혼의 10백까지 써가면서 몸을 사렸는데 과감히 모험을 걸지 못한 점, 또한 후반전 멕시코가 빠르게 선수 교체를 가져가면서 승부수를 띄운 반면 교체가 한박자씩 늦었던 점 등 내용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말이 무승부지 후반 막판에 멕시코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허용했는데 멕시코 선수의 슈팅이 골대를 빗나가서 망정이았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본선 조별리그 최대의 난적[24] 을 만나 소중한 승점 1점을 얻었다는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경기력 면에서도 아쉽긴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급기야 스위스와 가봉이 1:1로 비기면서 네 팀 모두 승점 1점을 획득해, 헬게이트가 열렸다.
3.2.2.2.2. 16강 조별리그 2차전 스위스전 2 : 1 승[편집]
한국시간으로 2012년 7월 30일 새벽, 스위스와의 16강 본선 조별리그 2번째 경기를 2:1 승리로 이끌었다! 후반전에, 그것도 짧은 순간에 3골이 한꺼번에 터졌다. 먼저 박주영이 다이빙 헤딩으로 선제골을 터뜨렸으나, 몇 분도 안 돼서 박주영이 넣었던 경로와 똑같은 헤딩골을 허용하면서 1:1 상황이 되었다. 이 상황을 깬 것은 김보경. 구자철의 슛팅이 수비수 몸 맞고 나왔는데, 이 루즈볼을 김보경이 놓치지 않고 논스톱 발리슛을 때려넣어 다시 경기를 뒤집는 데에 성공했다. 이 점수를 잘 지켜 승리를 따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 오심으로 얼룩진 스위스와의 리매치라 더 값진 승리다.[25] 박주영, 김창수와 같은 와일드카드는 물론 상대적으로 볼터치가 말끔한 김보경, 백성동, 구자철, 기성용 등을 중심으로 플레이를 풀어나갔다.
3.2.2.2.3. 16강 조별리그 3차전 가봉전 0 : 0 무[편집]
그 다음 본선 조별리그 3차전, 가봉과의 경기. 만약 가봉으로서는 이 경기에서 이기면 올라갈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선수비 후역습 전략으로 나오면서 공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에 잘 대응하면서 득점없이 비기면서 한국은 0:0 무승부를 거두고 1승 2무 조 2위의 호성적으로 8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경기 내내 한국이 몰아치다시피 했지만 골을 넣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일부 축구팬들이 결정력 부족에 대해 우려했다. 또 가봉이 골대를 맞추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도 있었다. 사실 가봉 상대로 못 이겼다는 점에서 '이런 경기력으로 영국 이기기는 틀렸다' 생각이 드는 등, 이때까지만 해도 상황은 한국 쪽에 암울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3.2.2.3. 토너먼트[편집]
3.2.2.3.1. 8강전 영국전 1 (A.E.T. 4 : 5 PSO) 1 무[편집]
다음 경기인 8강전 상대는 단일팀 영국. 도박사, 전문가들은 대부분 홈팀 영국의 승리를 점쳤다. 라이언 긱스, 크레이그 벨라미, 다니엘 스터리지, 아론 램지, 톰 클레버리 등 EPL에서 뛰는 훌륭한 선수들이 많고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이 그 이유라는 것. 국내 팬들도 이 점을 우려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리고 드디어 2012년 8월 5일 한국 시간 3시 30분 영국과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홍명보는 김보경을 빼고 영국 현지 경험이 많은 지동원을 대신 투입하는 전략을 썼는데, 많은 불안과는 다르게도 이런 홍명보의 용병술이 먹혀들어 지동원 선수가 선제골을 넣으면서 1:0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잠시 후, 수비수 오재석의 핸들링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해 아론 램지가 넣으면서 1:1 상황이 되었다. 몇 분 되지도 않아, 또다시 황석호가 페널티 에어라인 내에서 스터리지에게 파울을 범하는 바람에[26]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하지만 정성룡 키퍼의 선방으로 더 이상의 추가 실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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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김창수와 정성룡이 모두 부상을 입어 교체카드를 2개나 미리 쓰게 되는 불리한 상황이 이어졌지만,[27] 한국의 조직적인 압박에 박혀 영국은 영양가 있는 공격을 하지 못 했다. 오히려 역습으로 한국이 더욱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기는 연장전까지 돌입하게 되었고 결국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연장전도 득점 없이 끝났다.
그리고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한국과 영국은 4:4의 팽팽한 상황을 만들었다. 참고로 한국 키커의 순서는 차례대로 구자철, 백성동, 황석호, 박종우였다.
그리고 영국의 마지막 키커인 다니엘 스터리지의 슛을 이범영 선수가 볼의 진로를 읽어내 막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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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국의 5번째 키커 기성용이 마무리 골을 멋지게 성공시키며[28] 홈팀이었던 영국을 꺾게 된다. 이로 인해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축구 4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재밌는 건 영국전의 전개가 홍명보 감독이 10년전 대표팀 주장으로 뛰었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의 대한민국 vs 스페인전과 흡사했다는 것.
스터리지의 실축과 이범영의 선방은 2002년 당시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선방한 이운재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기도 했으며[29] , 우리나라쪽의 키커 5명 모두가 1명도 실패하지 않고 슛을 성공시킨 점도 같다. 역사적인 승부차기 보러가기.
게다가 한쪽은 월드컵, 또 한쪽은 올림픽에서 사상 첫 4강을 이룩하게 된 의미있는 대결이기도 하다.
2002년 스페인전 당시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이자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홍명보가 2012년에는 감독으로서 그 때의 감동을 재현해준 셈이다.
3.2.2.3.2. 준결승전 브라질전 0 : 3 패[편집]
그리고 2012년 8월 8일 한국 시간 새벽 3시 30분. 브라질과의 4강전을 가졌으나 3:0으로 패하여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전반 초반까지는 거세게 밀어붙였으나, 우려했던대로 수비진의 패스 미스를 브라질이 가로 채 그 한 번의 찬스를 골로 연결시켰다. 이 때부터 서서히 경기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 전후로 페널티킥 찬스가 두 번 있었지만 심판이 보지 못 했는지 둘 다 넘어갔다.
이 후, 후반전엔 조직력이 속절없이 붕괴되더니 추가로 2골을 허용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브라질은 16강 본선 조별리그부터 이 경기까지 경기당 3골을 몰아넣는 화력팀이었고, 한국은 그런 공격력을 이기지 못 했다. 브라질은 경기 내내 개인 기량에 의한 돌파로 계속해서 찬스를 만들어냈고 한국은 그것을 막기에 바빴다. 어렵사리 한국이 공격 기회를 잡아도 적극적인 전진 압박에 막혀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했다. 박주영, 정우영, 백성동이 교체 투입되었으나, 효과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경기를 치룬 멕시코가 일본에게 3:1로 이기면서, 다음 경기인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일전이 성사되었다.
3.2.2.3.3. 동메달 결정전 일본전 2 : 0 승[편집]
자세한 내용은 2012 런던 올림픽/축구(남자)/동메달 결정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무려 FIFA 1위 스페인을 격파한 일본을 2:0으로 가볍게 격파하여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대한민국 축구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로써 대표팀 선수 모두 병역 면제를 받게 되었다.[30]
전반 37분경, 수비 4명을 달고 들어가면서 침착하게 박주영이 골을 성공시켰다. 이어서 후반 11분, 구자철이 침착한 퍼스트 터치에 이은 쐐기골을 터뜨렸다. 홍명보 본인이 박주영이 군대 안가면 자기가 대신 간다고까지 하면서[31] 감싸준 박주영이 결정적인 순간에 큰 활약을 하는 등, 이번 올림픽에서 대표팀이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으므로 인터뷰에 따르면 홍명보 본인은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고 한다.
3.2.3. 총평[편집]
올림픽의 성과로 당시 한국 축구 대표팀은 10년 전의 영광을 재현할 정도로 긍정적인 바람이 불었다.
홍명보 감독은 2012 AFC 올해의 시상식 감독상 후보에 올랐고, 이 팀은 올해의 대표팀 부문 후보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홍명보는 김호곤 감독에 밀려 수상에 실패했지만, 홍명보호는 AFC 올해의 대표팀상을 수상하며 성과를 거뒀다.
대신 홍명보 감독은 2012년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감독 부문 15위에 선정될 만큼 국제적인 관심을 한몸에 받는 감독이 됐고, 자연스레 임시 감독을 보유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유력 후보가 됐다.
한편, 회의적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한 감독이 유스부터 국대까지 멤버를 일관되게 끌고가는 팀 운영'을 홍명보 감독에게 바라고 있는데,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그런 장기 비전에 걸맞는 팀이 아니었다. 지역 예선 전용 감독으로 최강희 감독을 선임해둔, 매우 괴상한 팀이었다.
또한 올림픽팀의 수비 조직력은 뛰어났으나 공격력은 한일전 단 한 경기를 제외하자면 시종일관 불만스러웠고, 그나마도 한일전도 '일본은 피지컬로 찍어눌러야 제맛'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써먹었고 여기에 보태서 박주영, 정성룡, 김창수라는 와일드 카드 3인방에 기성용, 구자철, 지동원, 김영권 등 역대 최고의 세대라 불리던 선수들이 매우 잘해줬을 뿐 홍명보 특유의 색깔은 보이지 않았다. 즉 감독으로서 아직 성장할 여지가 많은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커리어를 걸고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다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2013년 1월 홍명보는 은사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있던 안지 마하치칼라에 5개월 무급 어시스턴트로 임명된다. 즉, 히딩크 인맥을 사용한 코치 인턴인 셈. 안지에서 연수가 끝난 후 홍명보는 우려대로 국가대표 감독이 됐고, 최악의 결과를 맞이한다...
한편 당시 이 세대는 가히 대한민국 축구사 전체를 놓고 봐도 역대 최고의 세대라 불리기 충분했다. 당시 A대표팀 핵심 멤버였던 와일드 카드 박주영과 정성룡은 차치하더라도, U-23팀에 이미 A대표팀 주전이 수두룩했다. 기성용, 구자철, 지동원, 김영권, 윤석영은 이미 당시 A대표팀 주전이었고, 김보경은 이미 2년 전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였으며 남태희 역시 A대표팀 2년차 선수였다. 게다가 대회 직후 와일드카드였던 김창수를 비롯해 황석호, 박종우, 김기희, 이범영이 A대표팀으로 콜업됐고, 백성동은 홍명보 감독 부임 후 A대표팀에 데뷔했다. 이외에도 오재석과 정우영은 3-4년 뒤 A대표팀에 승선했으며 그 중 정우영은 거의 10년 가까이 A대표팀에서 살아남아 있다. 결국, 김현성을 제외하면 18인 중 17명이 A매치 출전 경험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부상으로 낙마한 홍정호, 한국영, 장현수 모두 월드컵과 아시안컵 모두 참가하는 등 커리어를 쌓으며 A대표팀에서 화려한 커리어를 쌓은 선수들이다. 이외에도 해당 대회 엔트리에 낙마한 명단을 살펴보자면, 김태환, 이승렬, 조영철, 김동섭, 김민우, 이명주, 홍철, 김승규, 윤빛가람, 정동호 등 K리그와 대표팀에서 엄청난 커리어를 쌓은 선수들이 수두룩했다...
여담으로 이때 올림픽 본선에서 득점한 박주영, 김보경, 지동원, 구자철은 물론 정성룡, 기성용, 윤석영, 김창수, 이범영, 김영권, 황석호, 박종우 그리고 부상으로 낙마했던 홍정호와 한국영이 2년 뒤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4. 전적[편집]
- 32전 19승 8무 5패 58득점 23실점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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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A B [1] 만 23세 초과선수.[GK] A B 골키퍼인 경우, 실점.[A] A B C 성인대표팀[B] A B C D E F G H I 리그선발팀[C] A B C D E F 이후 국군체육부대에서 병역을 수행하였다.[D] 이후 경찰 축구단에서 병역을 수행하였다.[E] A B 이후 십자인대 파열로 병역을 면제받았다.[2] 주장.[F] 이후 상근예비역으로 K3리그에서 병역을 수행하였다.[3] 당시 광주 상무 소속 현역 일병이었다. 금메달을 딸 경우 최초로 현역 복무 중 병역특례 자격을 얻어 조기 전역을 하는 축구선수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으나 팀이 동메달을 따서 무산되었다. 이후 이 타이틀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남자축구 금메달을 차지한 당시 아산 무궁화 소속 의무경찰인 일경 황인범이 가져간다. 2022년까지 상무 소속으로 조기 전역한 축구선수는 아직까진 없다.[4] 여담으로 조용형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최종 엔트리 발표 전까지 병역 미필 상태였다. 그러나 병역 소송을 제기하여 최종적으로 2010년 11월에 군 면제를 받았다.[5] 어쨌든 아시안 게임에는 뽑아주지도 않았고, 월드컵에서도 별로 기용하지 않은 걸 보면 어지간히도 맘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6] 2009년 12월에 있었던 일본과의 홈 평가전, 2010년 7월에 있었던 말레이시아와의 원정 평가전.[7] 2004 아테네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 출전.[8]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2008 베이징 올림픽 출전.[9] 2008 베이징 올림픽 출전.[10] 2008 베이징 올림픽 출전.[11] 광저우 시티 홈 구장[12]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홈 구장[13] 골키퍼를 교체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김승규를 이범영으로 교체한 이유는 김승규의 손목 골절 부상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아시안 게임이 끝난 후 몇 달 동안 경기에 뛰지 못하고 소속팀에서 장기 결장했다. 골키퍼 김승규의 부상만 없었다면 공격적인 선수로 교체하는 것도 가능했다.[14] 그리고 이 부분은 끝내 보완되지 않았으며, 그의 대표팀 감독 커리어가 흑역사로 마무리되는 단초가 된다.[15] 물론 잠깐 비판을 했을 뿐 다시 찬가를 불렀다.[16] UAE와 4강 경기전에 축구대표팀 쇠고기 회식으로 15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중국에선 쇠고기보다 햄버거가 더 비싸긴 하다. 단, 중국산 쇠고기라는 전제 하에 대한민국에서 고기를 공수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17] 89~90년생까진 그래도 차기 아시안게임에 불가능해서 출전하는 경우가 있지만 91년생 이하는 차기 아시안게임도 가능하니 거의 대부분 출전시키지 않고, 당시 아직 10대이다.[18] 본인도 입대하겠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도 많이 했고.[19] 물론 홍철, 김민우 등도 느리지 않지만 전문 공격수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20] 뭐 기성용 김정우 구자철에 김보경과 윤빛가람 등이 서브면 대표팀 1군급 중원이므로 와일드카드가 한 명 있네 없네 빠른 전문 윙어가 서정진뿐이네 어쩌네 해도 아시안게임은 박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기성용이 들어오면 윤빛가람이나 김보경 둘 중에 한 명이 빠지고 빠른 전문 윙어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므로 안일함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21] 허정무의 해설은 시간에 따라 나아지기는 한다.[22] 만 23세 초과선수.[교체1] 장현수 → 김기희.[23] 주장.[교체2] 한국영 → 정우영.[24] 실제로 멕시코는 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갔고, 올림픽 무대에서 정말 강적(2연속 디펜딩 챔피언이었다)인 아르헨티나가 이번에는 지역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였고, 그나마 강호라 여겨졌던 스페인, 우루과이 등도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해 사실상 멕시코와 브라질이 최강인 상태였다. 그러나 브라질은 결승전에서 멕시코에게 패배하면서 결과적으로 이 대회에서 멕시코가 유일하게 이기지 못한 상대는 대한민국 뿐이었다.[25] 이번 경기에서도 상당히 많은 할리우드 액션이 난무했기 때문에 더더욱… '박주영 장풍'을 한 번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밟히지도 않은 반대쪽 발을 잡으면서, 엄청난 오버액션을 떨면서 쓰러졌다. 심판은 즉시 엘로카드를 꺼내들었고 박주영은 밀지도 않았는데 억울한 경고를 받게 되었다.[26] 사실 이는 할리우드액션 오심이다.[27] 그러나 이 부상 때문에 2명의 후보 선수가 출전할 수 있게 되어 결과적으로 올림픽 축구대표팀 전원이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었다.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28] 나중에 기성용이 예능에서 말하길, 1번부터 4번 키거 모두 왼쪽 방향으로 차서 성공시켰는데, 이제는 변화를 줘서 오른쪽으로 차야 할지, 그대로 반전의 반전으로 왼쪽으로 차야 할지 고민하다 왼쪽으로 찼는데 골키퍼가 그 방향으로 다이빙을 해서 순간 흠칫했다고 한다. 다행히 속도가 강해서 막아내지 못하고 성공.[29] 한 가지 다른 점은 호아킨 산체스는 한국 수비진을 도륙내는 엄청난 활약을 하고도 불운으로 골이 들어가지 않아 울어야 했지만 스터리지는 경기내내 삽질했다.[30] 이 때 박종우가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돌아다니는 세레머니를 하는 바람에 박종우의 동메달 획득이 잠시 보류되었다. 사실 구자철도 세레머니를 할때 같이 독도는 우리땅을 외치려 했으나, 이 쪽은 주변에서 말리는 바람에 그냥 만세만 부르고 끝났다. 만약 구자철까지 실행에 옮겼더라면 단체로 메달이 보류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지지부진하게 전개되었던 메달 보류사태는 FIFA가 박종우에게 소액의 벌금과 A매치 몇 경기 출장 금지라는 경고 수준의 처벌을 내렸으며, 남은 건 IOC의 결정만이 남은 상태. IOC는 축구 문제는 FIFA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주의라서 메달인증서는 받긴 했지만, 메달 수여가 역시 문제 쟁점이다. 그 이외는 전원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그 후 올림픽이 끝난지 8달 뒤에 박종우도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처벌은 벌금으로 끝났다고 한다.[31] 참고로 홍명보 감독의 저 발언은 말 그대로 재입대였다. 본인은 이미 상무에서 군생활을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