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연(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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鄧淵
북위의 관료로 자는 언해(彦海). 안정(安定) 출신. 당나라 때 편찬된 북사에서는 고조 이연의 이름을 피휘해서 자를 이용했다.
등익의 아들로 태어났다. 등연은 성품이 올곧고 순박했으며, 여러 책을 읽었고 주역의 복서(卜筮)에도 뛰어났다. 북위의 도무제 탁발규가 중원을 평정한 뒤 등연은 저작랑(著作郞)으로 발탁되었다. 등연은 포구현령(蒲丘縣令)으로 전출되어 도적들을 진압하였으며, 입조하여 상서이부랑(尙書吏部郞)이 되었다.
등연은 제도에 해박했고 고사를 많이 알고 있어서 상서 최굉과 함께 조정의 의례, 율령, 음악을 제정하였다. 등연은 뒤에 도무제가 평양(平陽)을 평정할 때 종군하여 한창현자(漢昌縣子)에 봉해졌다가 하박현자(下博縣子)로 봉해졌으며, 중루장군(中壘將軍)이 더해졌다. 도무제가 등연에게 국사의 편찬을 명했는데, 등연은 10여 권을 완성했지만 연월과 재위기에 따른 사건만 기록했다. 등연은 조정의 사무에 신중해서 도무제를 거스른 적이 없었다.
등연의 사촌동생인 등휘(鄧暉)는 상서랑(尙書郞)을 지냈는데, 용맹하고 의협심이 강한데다 기이한 것을 좋아했고 정릉후(定陵侯) 화발과 친하게 지냈다. 403년, 화발이 죄를 저질러서 처형된 뒤 화발의 자제들은 장안(長安)으로 달아났는데, 누군가가 도무제에게 등휘가 이들에게 도망칠 기회를 줬다고 고발하였다. 이로 인해 도무제는 등연이 사정을 알고도 알리지 않았다고 의심해서 결국 등연을 사사시켰지만 등연이 죽은 뒤 이를 후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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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鄧淵
북위의 관료로 자는 언해(彦海). 안정(安定) 출신. 당나라 때 편찬된 북사에서는 고조 이연의 이름을 피휘해서 자를 이용했다.
2. 생애[편집]
등익의 아들로 태어났다. 등연은 성품이 올곧고 순박했으며, 여러 책을 읽었고 주역의 복서(卜筮)에도 뛰어났다. 북위의 도무제 탁발규가 중원을 평정한 뒤 등연은 저작랑(著作郞)으로 발탁되었다. 등연은 포구현령(蒲丘縣令)으로 전출되어 도적들을 진압하였으며, 입조하여 상서이부랑(尙書吏部郞)이 되었다.
등연은 제도에 해박했고 고사를 많이 알고 있어서 상서 최굉과 함께 조정의 의례, 율령, 음악을 제정하였다. 등연은 뒤에 도무제가 평양(平陽)을 평정할 때 종군하여 한창현자(漢昌縣子)에 봉해졌다가 하박현자(下博縣子)로 봉해졌으며, 중루장군(中壘將軍)이 더해졌다. 도무제가 등연에게 국사의 편찬을 명했는데, 등연은 10여 권을 완성했지만 연월과 재위기에 따른 사건만 기록했다. 등연은 조정의 사무에 신중해서 도무제를 거스른 적이 없었다.
등연의 사촌동생인 등휘(鄧暉)는 상서랑(尙書郞)을 지냈는데, 용맹하고 의협심이 강한데다 기이한 것을 좋아했고 정릉후(定陵侯) 화발과 친하게 지냈다. 403년, 화발이 죄를 저질러서 처형된 뒤 화발의 자제들은 장안(長安)으로 달아났는데, 누군가가 도무제에게 등휘가 이들에게 도망칠 기회를 줬다고 고발하였다. 이로 인해 도무제는 등연이 사정을 알고도 알리지 않았다고 의심해서 결국 등연을 사사시켰지만 등연이 죽은 뒤 이를 후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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