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隋書)
|
[ 제기(帝紀) ] ||<tablewidth=100%><tablebgcolor=#2B0B30><width=33%> 1·2권 「문제기(文帝紀)」 ||<width=33%> 3·4권 「양제기(煬帝紀)」 ||<width=33%> 5권 「공제기(恭帝紀)」 || ||<rowbgcolor=#fff,#191919> 양견 || 양광 || 양유 || ||<-3><width=1000> 36권 「후비전(后妃傳)」 || ||<-3><bgcolor=#fff,#191919> 독고황후 · 소황후 ||
※ 6권 ~ 35권은 志에 해당. 수서 문서 참고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 제기(帝紀) ] ||<tablewidth=100%><tablebgcolor=#2B0B30><width=33%> 1·2권 「문제기(文帝紀)」 ||<width=33%> 3·4권 「양제기(煬帝紀)」 ||<width=33%> 5권 「공제기(恭帝紀)」 || ||<rowbgcolor=#fff,#191919> 양견 || 양광 || 양유 || ||<-3><width=1000> 36권 「후비전(后妃傳)」 || ||<-3><bgcolor=#fff,#191919> 독고황후 · 소황후 ||
※ 6권 ~ 35권은 志에 해당. 수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37권 「이목등전(李穆等傳)」
| 38권 「유방등전(劉昉等傳)」
| 이목 · 양예
| 유방(劉昉) · 정역 · 유구 · 황보적 · 노분
| 39권 「우의등전(于義等傳)」
| 40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 우의 · 음수 · 두영정 · 원경산 · 원웅 · 두로적 · 하약의
| 양사언 · 우문흔 · 왕의 · 원해 · 왕세적 · 우경칙 · 원주
| 41권 「고경등전(高熲等傳)」
| 42권 「이덕림전(李德林傳)」
| 고경 · 소위
| 이덕림
| 43권 「하간왕홍등전(河間王弘等傳)」
| 44권 「등목왕찬등전(滕穆王瓚等傳)」
| 45권 「문사자전(文四子傳)」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웅
| 양찬 · 양정 · 양상 · 양지적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46권 「조경등전(趙煚等傳)」
| 조경 · 조분 · 양희상 · 장손평 · 원휘 · 위사 · 양이 · 소효자 · 이웅 · 장경
| 47권 「위세강등전(韋世康等傳)」
| 48권 「양소전(楊素傳)」
| 49권 「우홍전(牛弘傳)」
| 위세강 · 유기
| 양소(素)
| 우홍
| 50권 「우문경등전(宇文慶等傳)」
| 51권 「장손람전(長孫覽傳)」
| 52권 「한금호등전(韓擒虎等傳)」
| 우문경 · 이예성 · 원효구 · 곽영 · 방황 · 이안
| 장손람 ,장손치, ,장손성,
| 한금호 · 하약필
| 53권 「달해장유등전(達奚長儒等傳)」
| 54권 「왕장술등전(王長述等傳)」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왕장술 · 이연 · 이누겸 · 전인공 · 두정 · 이철 · 최팽
| 55권 「두언등전(杜彥等傳)」
| 두언 · 고매 · 이주창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후막진영
| 56권 「노개등전(盧愷等傳)」
| 57권 「노사도등전(盧思道等傳)」
| 노개 · 영호희 · 설주 · 우문필 · 장형 · 양왕
| 노사도 · 이효정 · 설도형
| 58권 「명극양등전(明克讓等傳)」
| 명극양 · 위담 · 육상 · 두대경 · 신덕원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59권 「양제삼남전(煬帝三男傳)」
| 60권 「최중방등전(崔仲方等傳)」
| 61권 「우문술전(宇文述等傳)」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 최중방 · 우중문 · 단문진
| 우문술 · 곽연
| 62권 「왕소등전(王韶等傳)」
| 63권 「번자개등전(樊子蓋等傳)」
| 왕소 · 원암 · 유행본 · 양비 · 유욱 · 조작 · 배숙
| 번자개 · 사상 · 원수 · 양의신 · 위현 · 유권
| 64권 「이원통등전(李圓通等傳)」
| 이원통 · 진무 ·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심광 · 내호아 · 어구라 · 진릉 · 왕변
| 65권 「주라후등전(周羅睺等傳)」
| 주라후 · 주법상 · 이경 · 모용삼장 · 설세웅 · 왕인공 · 권무 · 토만서 · 동순 · 조재
| 66권 「이악등전(李諤等傳)」
| 이악 · 포굉 · 배정 · 유장 · 원사 · 낭무 · 고구 · 장건위 · 영비 · 육지명 · 방언겸
| 67권 「우세기등전(虞世基等傳)」
| 68권 「우문개등전(宇文愷等傳)」
| 우세기 · 배온 · 배구
| 우문개 · 염비 · 하조
| 69권 「왕소등전(王劭等傳)」
| 70권 「양현감등전(楊玄感等傳)」
| 왕소(王劭) · 원충
| 양현감 · 이자웅 · 조원숙 · 곡사정 · 유원진 · 이밀 · 배인기
| 71권 「성절전(誠節傳)」
| 유홍 · 황보탄 · 유원 · 풍자명 · 장수타 · 양선회 · 독고성 · 원문도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 72권 「효의전(孝義傳)」
| 육언사 · 전덕무 · 설준 · 왕반 · 양경 · 곽준 · 전익 · 유회 · 유사준 · 낭방귀 · 적보림 · 이덕요 · 화추 · 서효숙
| 73권 「순리전(循吏傳)」
| 양언광 · 번숙략 · 조궤 · 방공의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유광 · 왕가 · 위덕심
| 74권 「혹리전(酷吏傳)」
| 사적사문 · 전식 · 연영 · 조중경 · 최홍도 · 원홍사 · 왕문동
| 75권 「유림전(儒林傳)」
| 원선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 76권 「문학전(文學傳)」
| 유진 · 왕규 · 최표 · 제갈영 · 손만수 · 왕정 · 우작 · 신대덕 · 왕주 · 유자직 · 반휘 · 두정현 · 상득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유빈
| 77권 「은일전(隱逸傳)」
| 이사겸 · 최곽 · 서칙 · 장문후
| 78권 「예술전(藝術傳)」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위정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허지장 · 만보상 · 왕영언
| 79권 「외척전(外戚傳)」
| 여씨 · 독고라 · 소규
| 80권 「열녀전(列女傳)」
|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 81권 「동이전(東夷傳)」
| 고려 · 백제 · 신라 · 말갈 · 유구국 · 왜국
| 82권 「남만전(南蠻傳)」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 83권 「서역전(西域傳)」
| 토욕혼 · 당항 · 고창 · 소그드인 · 강국 · 안국 · 석국 · 여국 · 언기 · 구차 · 소륵 · 우전 · 발한 · 토화란 · 읍달 · 미국 · 사국 · 조국 · 하국 · 오나갈 · 목국 · 파사 · 조국 · 부국
| 84권 「북적전(北狄傳)」
| 돌궐 · 서돌궐 · 철륵 · 해 · 거란
| 85권 「우문화급등전(宇文化及等傳)」
| 우문화급 ,우문지급, ,사마덕감, ,배건통, 왕충 · 단달
|
|
|
[ 본기(本紀)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
수나라의 대신 고양문절공(高陽文節公) 許善心 | 허선심
|
작호
| 고양군 개국공(高陽郡 開國公)
|
시호
| 문절(文節)
|
성
| 허(許)
|
이름
| 선심(善心)
|
자
| 무본(務本)
|
부친
| 허형(許亨)
|
출생
| 562년[1] 진서에서 허형이 570년에 사망하였다는 점과 허선심이 9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기록을 감안하여 적용한 연도이다. 수서에서는 558년으로 나온다. ~ 618년
|
본관
| 고양군(高陽郡) 북신성현(北新城縣)
|
국적
| 진(陳) → 수(隋)
|
남북조시대 진나라,
수나라의 인물로 자는 무본(務本).
삼국시대 조위의 인물인
허윤의 후손이라고 한다.
허선심은 562년에 남조 진나라에서 허형과 범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래 본적은 고양군 북신성현이었으나, 남도하면서 집안이 항저우에 정착했고, 대대로 강남 왕조에서 관직을 맡았다. 허선심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인 범씨의 손에 길러졌다. 허선심은 총명한 인물이었고, 아버지의 친구였던 서릉은 허선심이 신동이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허선심은 관직을 신안왕 법조참군으로 시작하였고, 강총이 허선심을 수재로 선거하면서, 탁지랑중(度支郞中)으로 제수되었고 시랑(侍郞)으로 전임되었으며, 찬사학사(撰史學士)로 보임되었다. 588년에는 통직산기상시가 되어
수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는데, 허선심이 수나라에 머무르고 얼마 뒤인 589년에 진나라가 멸망하였다. 진나라의 멸망 소식을 들은 허선심은 통곡하였고, 이 모습을 본
수문제 양견은 허선심을 진정한 충신이라고 칭찬하였다. 허선심은 수나라에서 우부낭중으로 제수되었고, 문제가 재위한 동안 비서승, 황문시랑, 태복소경을 역임하였다.
604년에
양제가 즉위하고, 허선심을 암주(岩州) 자사로 제수하였는데,
양량이 중도에 반란을 일으켜서 암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허선심은 605년에 예부시랑으로 전임되었는데,
우문술이 허선심을 매우 증오하였고 그에 의해 참소를 당하였다. 이후 허선심은 급사랑으로 좌천되었고, 뒤에는 건절위, 조산대부, 통의대부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618년에 우문술의 아들이
우문화급이 양제를 시해하였다. 이때 양제를 따라 강도에 피난해있던 관원들은 우문화급에게 만세를 불렀는데, 허선심은 홀로 나아가지 않았다. 우문화급은 허선심이 자신에게 축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국에는 허선심을 살해하였다. 허선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 범씨는 “국난을 위해 죽을 수 있다니, 나에게는 정말 좋은 아들이었구나.”라며 허선심의 죽음을 슬퍼하였고, 식음을 전폐하다가 10여 일 뒤에 죽었다.
사후에
월왕 양동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허선심을 고양군 개국공으로 추봉하고, 문절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당나라의 간신이었던
허경종은 허선심의 아들이었다. 허경종의 행적에 대해, 당대의 인물들은 “허선심이 죽고, 허경종이 춤을 추어 제 살길을 찾았다.”고 평가를 내렸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6 10:40:25에 나무위키
허선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