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황후 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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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태종 명원제 탁발사의 추존 황후. 사후 진동대장군, 양평경왕(陽平景王)으로 추존된 두표의 딸. 양평왕 두초(杜超)의 여동생.
초기에 지체높은 집안의 여자아이 중에서 제왕(齊王)의 비로 선발되어 태자궁(太子宮)에 들어갔고, 그 당시 제왕이던 탁발사의 총애를 받아 탁발도를 낳았다.
영흥 원년(409년) 10월, 탁발사가 도무제 탁발규를 시해한 탁발소를 제거하고 황제로 즉위하자, 두씨를 귀빈으로 삼았다.
태상 5년(420년) 6월, 명원제 탁발사가 장남인 태평왕 탁발도를 황태자로 삼고, 정전(正殿)에 거주케 하여 조회 때마다 참석하도록 하였다. 이후 명원제는 탁발부의 정실 부인 즉, 황후의 아이가 아닌 자가 후계자로 선정되면 그 어머니는 죽어야 하는 자귀모사(子貴母死) 풍습에 따라 두씨를 사사하고, 운중금릉(雲中金陵)에 안장하였다. 시호는 '밀귀빈(密貴嬪)'.
태상 8년(423년) 11월, 명원제가 승하하고, 태무제 탁발도가 황제로 즉위하였다. 태무제는 어머니인 밀귀빈 두씨를 '밀황후(密皇后)'로 추존하고, 태묘에 배향하였다. 또, 밀황후의 고향인 업(鄴)에 사당을 세워 그 곳의 자사(刺史)로 하여금 사시사철 제사를 올리게 하였다. 여기에 더해서 위군(魏郡) 백성들의 조세와 부역을 면제시켰다.
태화 19년(495년) 8월 9일, 상주자사(相州刺史) 고려(高閭)가 효문제 원굉에게 상소를 올려 밀황후의 사당을 철폐할 것을 건의했다. 효문제는 조서로 화답하여 밀황후 사당의 철폐는 불허했으나 더이상 제사만은 지내지 않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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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추존 황후 密皇后 | 밀황후 | |
시호 | 밀귀빈(密貴嬪) → 밀황후(密皇后) |
성 | 두(杜) |
출생 | 미상 |
사망 | 420년 |
능묘 | 운중금릉(雲中金陵) |
본적 | 위군(魏郡) 업현(鄴縣) |
부친 | 부친 두표(杜豹) |
부군 | 태종 명원황제 (太宗 明元皇帝) |
1. 개요[편집]
북위의 태종 명원제 탁발사의 추존 황후. 사후 진동대장군, 양평경왕(陽平景王)으로 추존된 두표의 딸. 양평왕 두초(杜超)의 여동생.
2. 생애[편집]
초기에 지체높은 집안의 여자아이 중에서 제왕(齊王)의 비로 선발되어 태자궁(太子宮)에 들어갔고, 그 당시 제왕이던 탁발사의 총애를 받아 탁발도를 낳았다.
영흥 원년(409년) 10월, 탁발사가 도무제 탁발규를 시해한 탁발소를 제거하고 황제로 즉위하자, 두씨를 귀빈으로 삼았다.
태상 5년(420년) 6월, 명원제 탁발사가 장남인 태평왕 탁발도를 황태자로 삼고, 정전(正殿)에 거주케 하여 조회 때마다 참석하도록 하였다. 이후 명원제는 탁발부의 정실 부인 즉, 황후의 아이가 아닌 자가 후계자로 선정되면 그 어머니는 죽어야 하는 자귀모사(子貴母死) 풍습에 따라 두씨를 사사하고, 운중금릉(雲中金陵)에 안장하였다. 시호는 '밀귀빈(密貴嬪)'.
태상 8년(423년) 11월, 명원제가 승하하고, 태무제 탁발도가 황제로 즉위하였다. 태무제는 어머니인 밀귀빈 두씨를 '밀황후(密皇后)'로 추존하고, 태묘에 배향하였다. 또, 밀황후의 고향인 업(鄴)에 사당을 세워 그 곳의 자사(刺史)로 하여금 사시사철 제사를 올리게 하였다. 여기에 더해서 위군(魏郡) 백성들의 조세와 부역을 면제시켰다.
태화 19년(495년) 8월 9일, 상주자사(相州刺史) 고려(高閭)가 효문제 원굉에게 상소를 올려 밀황후의 사당을 철폐할 것을 건의했다. 효문제는 조서로 화답하여 밀황후 사당의 철폐는 불허했으나 더이상 제사만은 지내지 않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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