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황후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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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현조 헌문제 탁발홍의 추존 황후. 남군왕(南郡王) 이혜의 딸.
이혜는 양성왕(襄城王) 한퇴(韓頹)의 딸 한씨와 혼인하여 두 딸을 얻었는데, 장녀인 이씨 덕과 아름다움이 있었고, 나이에 비해 성숙하였다. 이씨는 18살에 동궁(東宮)에 들어가 태자 탁발홍에게 시집갔고, 탁발홍이 황위를 계승하자 그의 부인이 되었다. 그리고 황흥 원년(467년) 음력 8월 29일에 탁발홍의 장자 탁발굉을 낳았다.
황흥 3년(469년) 6월, 헌문제 탁발홍이 황자 탁발굉을 태자로 세우고 북위의 자귀모사(子貴母死)법에 따라 부인 이씨를 사사하니, 위아래로 슬퍼하지 아니하는 자가 없었다. 이씨는 사후 운중금릉(雲中金陵)에 안장되었다.
승명 원년(476년) 7월, 효문제 탁발굉이 어머니 이씨를 '사황후(思皇后)'로 추시하고 태묘에 배향하였다. 그러나 이씨 사후에도 외척인 남군왕 이혜 가문의 위세를 경계하던 풍태후가 이혜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참살하고 그 일가족을 처형하였다. 심지어 이씨의 외할아버지인 양성왕 한퇴도 죄를 지어 작위랑 관직이 모두 박탈당하면서 이씨의 집안은 외가까지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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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추존 황후 思皇后 | 사황후 | |
시호 | 사황후(思皇后) |
성 | 이(李) |
출생 | 미상 |
사망 | 469년 6월 27일 |
능묘 | 운중금릉(雲中金陵) |
본적 | 중산국(中山郡) 안희현(安喜縣) |
부모 | 부친 이혜(李惠) 모친 한씨(韓氏) |
부군 | 현조 헌문황제 (顯祖 獻文皇帝) |
아들 | 고조 효문황제 (高祖 孝文皇帝) |
1. 개요[편집]
북위의 현조 헌문제 탁발홍의 추존 황후. 남군왕(南郡王) 이혜의 딸.
2. 생애[편집]
이혜는 양성왕(襄城王) 한퇴(韓頹)의 딸 한씨와 혼인하여 두 딸을 얻었는데, 장녀인 이씨 덕과 아름다움이 있었고, 나이에 비해 성숙하였다. 이씨는 18살에 동궁(東宮)에 들어가 태자 탁발홍에게 시집갔고, 탁발홍이 황위를 계승하자 그의 부인이 되었다. 그리고 황흥 원년(467년) 음력 8월 29일에 탁발홍의 장자 탁발굉을 낳았다.
황흥 3년(469년) 6월, 헌문제 탁발홍이 황자 탁발굉을 태자로 세우고 북위의 자귀모사(子貴母死)법에 따라 부인 이씨를 사사하니, 위아래로 슬퍼하지 아니하는 자가 없었다. 이씨는 사후 운중금릉(雲中金陵)에 안장되었다.
승명 원년(476년) 7월, 효문제 탁발굉이 어머니 이씨를 '사황후(思皇后)'로 추시하고 태묘에 배향하였다. 그러나 이씨 사후에도 외척인 남군왕 이혜 가문의 위세를 경계하던 풍태후가 이혜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참살하고 그 일가족을 처형하였다. 심지어 이씨의 외할아버지인 양성왕 한퇴도 죄를 지어 작위랑 관직이 모두 박탈당하면서 이씨의 집안은 외가까지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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