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황후(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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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추존 황후 昭成皇后 | 소성황후 | |
시호 | 소성황후(昭成皇后) |
성 | 모용(慕容) |
출생 | 미상 |
사망 | 360년 |
능묘 | 운중금릉(雲中金陵) |
부친 | 모용황(慕容皝) |
부군 | 고조 소성황제 (高祖 昭成皇帝) |
자녀 | 8남 |
1. 개요[편집]
북위의 고조 소성제 탁발십익건의 추존 황후. 전연의 태조 문명황제 모용황의 딸.
2. 생애[편집]
건국 4년(341년) 9월, 대왕 탁발십익건에게 시집간 모용황의 여동생 모용씨가 사망하자, 그로부터 2년 뒤인 건국 6년(343년) 7월에 탁발십익건은 다시 전연에 혼사를 청하였다. 이에 연왕 모용황은 말 1,000필을 조공으로 보내주면 혼례를 받아들이겠다 하였는데, 탁발십익건은 거만하게 굴면서 사위로서의 예를 지키지 않았다. 분노한 모용황이 왕세자 모용준, 전군사 모용평을 보내 대나라를 침공하니, 탁발십익건은 무리를 거느리고 재빨리 달아나버렸다. 모용준의 군대는 탁발십익건의 뒤를 쫓아 텅 빈 들판만 가로지르다가 허탕만 치고 연나라로 돌아갔다.
건국 7년(344년) 정월, 모용황이 대내라와 우호를 다지기 위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자, 탁발십익건은 대인(大人) 장손질(長孫秩)을 연나라로 파견해 모용황의 딸인 모용씨를 처로 맞이하였다. 모용황은 탁발십익건에게 시집가는 딸을 국경까지 배웅하고 돌아왔다.
모용씨는 총명하고 눈치가 빨랐으며, 침착하면서도 결단력이 좋아, 궁 내의 일을 전문적으로 처리하였다. 한번은 탁발십익건이 유위진의 형 유실물기(劉悉勿祈)를 흉노의 철불부로 돌려보내자, 일찍이 유위진을 경계하던 모용씨는 유실물기가 떠나기 전에 그에게 경고했다.
과연 유실물기 사후, 유위진이 그 뒤를 이은 유실물기의 아들을 죽이고 철불부를 장악하였으니, 모용씨의 예상대로 되었다. 그녀의 이런 총명함 덕에 탁발십익건의 총애를 받아 아이를 많이 낳았으며, 이 중 장성하게 되는 아들만 여덟이었다.[1]"너는 돌아가거든 반드시 유위진을 경계하라. 유위진은 간사하고 교활하여 결국에는 널 멸망시킬 것이다."
헌명제 탁발식, 진명왕 탁발한(拓跋翰), 탁발얼파(拓跋閼婆), 탁발수구(拓跋壽鳩), 탁발흘근(拓拔紇根), 탁발지간(拓跋地干), 탁발역진(拓跋力眞), 탁발굴돌(拓跋窟咄).
건국 23년(360년) 6월, 모용씨가 사망하였다. 훗날 태조 도무제 탁발규가 즉위하여 탁발십익건을 소성황제로 추존할 때, 모용씨도 '소성황후'로 추봉하고 태묘에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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