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실존인물/동양 (r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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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실존인물 중 한국사를 제외한 외국인들 중 동양의 유언을 정리한 항목. 인물들의 사망 시점을 기준하여 국적, 시대순.

한국사의 인물에 관해서는 유언/실존인물/한국 문서를 참조.

2. 상세[편집]



2.1. 중국[편집]



2.1.1. 기원전[편집]


기원전
유언
인물
생몰년
나는 가더라도 아버지의 목숨을 보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버지가 목숨을 구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는데 가지 않으면 한이 될 것이고, 뒷날 치욕을 씻지 못한다면 마지막에는 천하의 비웃음을 들을 것이다. 너는 가거라. 너라면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돌아가 함께 죽겠다.
오상[1]
?~BC522
초나라 군신은 장차 전쟁으로 괴로울 것이다.
오사[2]
?~BC522
내 무덤에 가래나무를 심어라. 이 죽으면 그 나무로 관을 만들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 내 눈을 뽑아 도성 동문에 걸어 놓아라. 월나라 군사들이 들어와 나라가 망하는 꼴을 볼 것이다!
오자서
?~BC484
구천을 살려두어 부왕의 원수를 갚지 않은 것이 하늘이 나를 버린 까닭이로구나! 죽어서 오자서를 무슨 낯으로 본단 말인가. 내가 죽으면 내 얼굴을 비단으로 감아 가리도록 하라.
부차
?~BC473
보아라! 군자는 죽어도 관[3]을 벗지 않는 법이니라!
자로
BC543~BC480
하나라 사람은 죽으면 관을 동쪽 계단에 세우고 주나라 사람은 서쪽 계단에 세우며 은나라 사람은 두 개의 기둥 사이에 세운다. 어젯밤 나는 꿈에서 내가 두 기둥 사이에 앉아 있는 꿈을 꾸었다. 나는 원래 은나라 사람이로다!
공자[4]
BC551.9.28~BC479.4.11
내가 비로소 지하에 계신 지백께 보답할 수 있게 되었노라.
예양
?~BC 453?
내 너희들에게 군사 쓰는 법을 보여주마! 신하들이 왕을 침범했다!
오기
?~BC 381
드디어 그 꼬맹이가 천하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구나!
방연
?~BC342
제가 죽거든 시체를 거열형에 처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구경시키면서 소진은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를 모반했다고 선포하십시오. 그러면 저를 찌른 범인이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소진[5]
BC380~BC284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 모양이 되었단 말인가…? 아아, 그렇구나.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에서 항복한 40만 포로를 생매장하였으니 이것만으로도 나는 죽어 마땅하다!
무안군 백기[6]
?~BC257
나는 조나라 병사를 부리고 싶다.[원문]
신평군 염파[7]
? ~ ?
실패인가. 진왕을 산 채로 잡아 협박하여 땅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어 태자에게 보답하려 했기 때문이다 .
형가
?~BC227
군대는 몽염에게 맡기고, 태자 부소는 함양으로 돌아와 짐의 유해를 맞으라.
진시황[8]
BC259~BC210.8.11
나의 죄는 진실로 죽어 마땅하다. 임조에서 공사를 일으켜 요동까지 이어지는 장성[9]이 일만여리가 되었으니, 그 가운데는 지맥[10]을 끊은 것이 한둘이겠는가. 이것이 바로 나의 죄다!
몽염[11]
?~BC210
내 너와 함께 다시 한 번 황견[12]을 끌고 상채[13]의 동문으로 나가 토끼사냥이라도 하고 싶었거늘 이젠 다 틀렸구나.잘 가거라, 아들아.
이사
?~BC208
한왕이 내 머리를 얻는 자에게는 천금을 상으로 주고 식읍 1만 호를 내린다고 했다 들었다. 그럼 동향인 에게 공로를 주겠다. 이 목 너에게 주마
서초패왕 항우[14]
BC232~BC202
유방이 초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자네 밑에 내가 있기 때문이네. 그런데 자네가 나를 죽여 유방에게 바친다면 다음엔 자네 차례라는 걸 명심하게. 자네의 생각이 그 정도라니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네. 좋아, 그럼 내가 죽어주지.
종리말
?~BC201
내 진작의 괴철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 꼴이 되지 않았을텐데 고작 아녀자의 계략에 넘어가 죽는 것도 천명이란 말인가!
회음후 한신
?~BC196
그 다음은 당신이 알 바가 아니오!
유방[15]
BC256~BC195.6.1
나는 이제껏 흉노와 7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싸움을 했다. 이제 다행히도 대장군을 따라 출격하여 흉노의 군사와 접전하려고 했는데, 대장군이 나의 부서를 옮겼기 때문에 길을 돌아가게 되었고 더구나 길을 잃어 늦어버렸다. 실로 천명이 아니겠는가? 내 나이 예순이 넘었으니 새삼 지금에 와서 말단 관리[16]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이광[17]
?~BC119

2.1.2. 1세기[편집]


1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하늘이 내게 덕[18]을 주셨다. 한나라 군사가 나를 어찌하겠는가.
왕망[19]
BC45~AD23.10.6

2.1.3. 2세기[편집]


2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죽음이란 것은 선비에게 있어서 항상 있는 것이다. 나는 은혜를 입어 높은 관직에 있었지만 간신의 교활함을 미워하면서도 죽이지를 못하였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여인이 나라를 기울이고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하였지만 금하지 못하였으니 무슨 면목으로 다시 해와 달을 보겠는가? 내가 죽으면 잡목(雜木)으로 관을 짜고 포(布)로 한번만 쌀 것이며 몸만을 덮으고 조상의 무덤 옆으로 운반하지도 말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
양진[20]
54 ~ 124
나 이고는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고 그래서 나라의 팔다리와 같은 역을 하여 죽음을 돌아보지 않고, 뜻으로 왕실을 보존하여 문제선제 때보다 융성하게 만들려 하였소, 공들은 어찌하여 하루 아침에 양씨(梁氏)에게 미혹되어 허리를 굽혀 길상이 흉조로 변하였고, 이루어질 일이 실패하도록 하였소? 한나라의 쇠미(衰微)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될 것이오, 공들은 나라에서 넉넉한 봉록을 받았지만 넘어져도 부축하지 못하고 오히려 큰일을 기울게하여 무너트리니 후세의 역사가들은 어찌 사사로이 평하겠소? 나 이고의 몸은 끝났지만, 의(義)에서는 얻은 것이 있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소.
이고[21]
94 ~ 147
개 같은 놈, 네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
혹은 여... 여포 네가...
동탁[22]
?~192.5.22
단지 국가를 편안히 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오. 그렇지 못한다면 몸 바쳐 죽으리다. 조정의 어린 임금이 나를 의지하는데 어려움에 임했다고 구차하게 벗어나려 하는 건 내가 차마 못할 짓이오. 그대는 노력하여 관동의 여러 공들과 협력하여 나라를 위해 힘써주시오.
왕윤
137~192
죄를 받는구나, 죄를 받는구나. 유공조가 귀신을 불러왔어!
호진[23]
?~?
무릇 효(孝)로써 천하를 다스리려는 자는 남의 부모를 해치지 않고, 인정을 베풀려는 자는 남의 후사(자손)를 끊지 않는다 하였다. 나는 이미 패장인 몸, 죽기만을 바랄 뿐이다.
진궁
?~198
저 귀 큰 아이가 가장 믿지 못할 놈이다!
여포
?~198
예전에 공손찬님이 출진하는 것을 막지만 않았다면 꼭 실패한다고만 볼 수는 없었던 것을... 내가 듣기로 군자는 남을 위험에 빠뜨리면 필히 자신도 그 고난을 함께 한다 했으니 어찌 홀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관정[24]
?~199
이 원술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구나!
원술[25]
?~199
강동의 병력을 이끌어 결단을 내려 천하의 영웅들과 다투는 것은 네가 나만 못하지만, 현인을 선발하고 능력있는 자를 등용하여 강동을 지키는 것은 내가 너만 못하다.
손책[26]
175~200
승패는 하늘이 결정했을 뿐 어찌 질문에 의미가 있겠는가.
순우경[27]
?~200
주공이 겉으론 관용이 있지만 속으로는 의심이 많아, 만약 승리했다면 기쁜 마음에 자신을 사면하겠으나 패배하여 날 볼 면목이 없을 테니 자신은 더 이상 살 희망은 버려야 할 것.
전풍
?~200

2.1.4. 3세기[편집]


3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내 주군께서 북쪽에 계신다(我君在北).
심배
?~206
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나 7척 칼을 지니고 천자의 계단에 올라야 하거늘, 아직 그 뜻을 실현하지 못했는데 난 어찌하여 죽는 단 말인가!
「丈夫生世, 當帶七尺之劍, 以升天子之階。今所志未從, 奈何而死乎!」.
태사자
166~206
죽지 않는 동안 추위를 견딜 수 없으니 자리를 마련해줌이 어떨지.
원상
?187?~207
길고 짧은 것이 인생이니 진실로 애석해할 거리도 못됩니다. 다만 제 작은 뜻을 펼치지 못하고 주군의 명을 다시는 받지 못함이 한스러울 따름입니다. 현재 조조와 적이고 유비는 가까이 공안에 있으며 변방 지역과 가까이 있고 백성들은 아직 귀의하지 않았으니, 응당 훌륭한 장수를 얻어서 진무시켜야만 합니다. 노숙은 지혜와 지략이 있어 이 일을 맡기에 충분하니 저를 대신하도록 해주십시오. 제가 죽은 그 당일이라도 해도 걱정할 일 따위는 없을 것입니다.
주유
175~210
장군의 임무를 맡아 이곳에 있으면서 적을 방비하는데, 어찌 버리고 가겠는가! 감히 다시 이처럼 말하는 자는 참수하겠다!
동습[28]
?~?
노신(老臣)은 끝내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
장임
?~213?, 214?
꼬마야, 어찌 항복 따위를 논하느냐! 위왕께는 정병 백만이 있으며, 위의를 천하에 떨치고 계신다. 네 유비 따위는 범재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대적이나 가능할 줄 아느냐! 나는 나라를 위해 귀신이 될 생각이니, 적의 장수 따위가 되지는 않을 셈이다.
방덕
?~219
이 성은 내가 쌓은 성이니 공격할 수 없다.
관우[29]
?~219
주연은 대담함과 지조에 있어서 남음이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를 임용할 만합니다.정작 주연은 진짜 후계자가 등장해서 그가 죽을때까지 2인자가 되었다.
여몽
178~219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못해 옛 법을 따를 수 없으니 장례가 끝나면 모두 상복을 벗으라. 군을 이끌고 주둔하는 자는 주둔지를 떠나지 말고 관리들은 각자 직임을 다하라. 평상복으로 염[30]하고 금은보화를 묻지 말라.
조조
155~220.1.23
신의 종족 2백여 명이 맹덕(조조)에게 주살당해 거의 다 없어지고 다만 종제 마대가 남았으니 미천한 종족을 위해 제사가 이어질 수 있도록 폐하께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 외에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마초[31]
176~222
오(吳)나라 개들아! 한(漢)나라 장군으로 항복하는 자가 어찌 있겠는가!
부융[32]
?~222
나는 군대에 있으면서 적 때문에 도망하는 것을 아직 익히지 못했다.
정기
?~222
착한 일을 작다고 아니 하면 안되고, 악한 일은 작다고 하면 안된다.[33]/오직 어질고 덕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따르게 할 수 있다. 이 아비는 덕이 부족하니 나를 본받지 말아라.
유비
161~223.6.10
병법에서 성을 포위할 때는 반드시 출로를 열어두고, 퇴각하는 군사는 쫓지 말라 했습니다.
장합[34]
?~231
성도에 뽕나무 8백 그루가 있고 메마른 땅 열다섯 경(頃)이 있으니 자제들이 입고 먹기에는 스스로 넉넉합니다. 신이 밖에서 임무를 받들 때는 따로 조달할 것 없이 제 한 몸의 먹고 입는 것은 모두 관부에 의지했으므로 따로 생활의 방도를 차리게 하여 적은 양을 보태지는 않았습니다. 신이 죽었을 때 안으로 여분의 비단이나 밖으로 남은 재산이 있어 폐하를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제갈량
181~234
난 매번 내 충성을 의심받았는데 사마사, 사마소 너희들은 열심히 충성해라.
사마의[35]
179~251
손화에게 내가 너무 심했던 것 같은데, 다시 태자로 삼자.
손권[36]
182~252
갑자기 복통이 있어서 조정으로 들어갈수 없습니다.[37] 혹은 어린애 같은 녀석들이 무얼 어쩌겠는가? 바로 술이나 식사를 통하여 사람들을 중독시킬까만 걱정할 뿐이오[38]
제갈각[39]
203 ~ 253
내 싸움엔 항상 방법이 있었는데, 지금 이처럼 병이 깊으니 진실로 천명이구나!
유찬
183~255
신은 폐하께 과분한 은총을 받았으며 하늘의 은총을 받아 이렇게 군사에 참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양주를 평정한다면 국경 밖에서 지키는 일을 할 것이고 이기지 못 하면 이 몸을 죽여서라도 은혜에 보답할 것 입니다.
장억
?~254
모반하는 신하가 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오.
여거
?~256
대장부가 주군의 명령을 받아서 병사를 이끌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고 왔는데, 이미 이길 수 없게 되고 또 적에게 손이 묶이게 되었으니, 나는 그렇게 할 수 없겠다.
우전
?~258
원컨대 저를 교주로 유배보내 주십시오./그럼 원컨대 저를 관가의 노비로 만들어 주십시오.
손침[40]
231~258
나는 장수로 일생을 살았으나 그게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던 듯 싶다. 내가 싸울 때 여러번 남의 무덤을 파헤쳐 돌과 나무를 취해 싸움도구로 썼었기에 후장하는 것이 죽은 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너는 반드시 나를 평소 입던 옷으로 염하거라. 사람이 살아있을 때 처소가 있을 뿐 죽은 이가 따로 어디에 있으리? 내 묘는 동서남북 어디든 네가 마음대로 정하도록 하거라.
학소
?~?

2.1.5. 4세기[편집]


4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너도 이제 서른이 넘었구나. 이제 새 후궁을 찾아야겠다.
진효무제[41]
362~396.9


2.1.6. 5세기[편집]


5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불교에서는 자살한 사람은 내세에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없다고 했네. 그러니 그냥 죽이게.
동진 공황제 사마덕문
386~421
너희의 만리장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냐![원문2]
단도제[42]
?~436
내세에는 천자의 집안에 태어나지 않기를…[원문3]
유송 순제 유준[43]
469.8.8~479.6.23

2.1.7. 7세기[편집]


7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움직이지 마라. 내 스스로 독주를 마시고 자진하겠다. 어쨌든 내가 천자였으니 내 시신만은 건드리지 말아 다오.[44]
수양제
569~618.4.11

2.1.8. 8세기[편집]


8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내가 그대들을 군대에 모집한 것은 반란을 진압한 다음 크게 상을 내리려 함이었다. 그러나 적의 기세가 성하므로 잠시 여기까지 후퇴한 것이고, 이 후퇴는 동관을 고수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대들이 천자께 상주하고 그렇지 않다면 당장에 억울하다고 외쳐 달라!
고선지[45]
?~756.1.24

2.1.9. 10세기[편집]


1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유인공 부자가 나를 배신하고, 거란의 야율아보기 또한 나와의 맹약을 배신했다. 주전충은 나에겐 원수와도 같은 존재이다. 내가 너에게 주는 3개의 화살 중 첫 번째는 유인공에게, 두 번째는 거란에게, 세 번째는 주전충을 멸망시킬 때 각각 사용하거라. 이것이 내가 희망하는 소원이다.
독안룡 이극용
856~908

2.1.10. 11세기[편집]


11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송나라와 맺은 맹세는 마땅히 준수하여 과실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라.
요성종[46]
972.1.16~1031.6.25
내 자손들이 벼슬을 하여 부정부패를 저지르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그들이 죽은 이후에도 우리 포씨 집안의 선산에 묘를 쓰지 못하도록 하라.
포청천
999.4.11~1062.5.20
우리 앞에 있는 길은 넓고도 좁으이. 스스로도 발을 딛고 서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소옹
1011.1.21~1077.7.27

2.1.11. 12세기[편집]


12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강을 건너라! 강을 건너라![원문4]
종택[47]
1060~1128
결백한 나의 마음은 하늘의 태양처럼 빛날 것이다.[원문5]
악비[48]
1103.3.17~1142.1.27
이 황제가 되었다고? 그 녀석을 먼저 처리했어야 하는데!
해릉양왕
1122.2.24~1161.12.15

2.1.12. 13세기[편집]


13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짐은 금자광록대부[49]가 된지 10년이었고 , 태자가 된지 10년이었고, 황제가 된지 10년이었는데, 스스로 큰 과오와 악행을 저지른 적이 없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조종[50]으로부터 100여 년간 이어온 국통이 짐에 이르러 끊어져 옛날의 황음무도한 군주와 똑같이 망국의 군주가 되었으니 이것이 홀로 마음에 서글플 뿐이다. 예로부터 망하지 않는 나라가 없는데, 망국의 군주는 남에게 갇히고 혹은 구속되어 승리한 나라의 궁정으로 끌려가 모욕을 당하기도 하였고 빈 골짜기에 유폐되기도 하였다. 짐은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니 경들은 보라. 짐의 뜻은 결정되었다. 짐은 몸이 둔해 말을 타고 잘 달리지 못하네. 그대는 몸이 날래고 전략을 잘 아니 도망쳐 국운이 끊기지만 않게 하면 되네. 이것이 짐의 소원일세.
애종[51]
1198.9.25~1234.2.9
폐하께서 승하하셨는데, 내가 더 이상 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적병 따위에게 죽을 수 없다. 나는 지하로 가서 폐하를 끝까지 모시겠으니, 제군은 남은 계책을 잘 세우도록 하라
완안중덕(完顏仲德)[52]
?~1234.2.9
내가 할 일은 이제 다 끝났다[원문6]
문천상
1236.6.6~1283.1.9
다시는 제왕의 핏줄로 태어나지 않겠다!
소제(송)[53]
1272.2.12~1279.3.19

2.1.13. 14세기[편집]


14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위기에 대한 근심 걱정으로 하루도 게으름을 피지 않고 부지런히 죽였다
주원장
1328.10.21~1398.6.24
서촉은 험하고 고립되어 있으니 좌우 측근과 세자가 한 마음으로 협력하면 능히 지킬 수 있다. 그렇지 아니하면 후사를 알 수 없다
명옥진
1362 ~ 1366

2.1.14. 16세기[편집]


16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이 마음이 광명하니 무슨 말을 하겠느냐?
왕양명[54]
1472~1529
지금까지 짐이 한 짓들은 전부 짐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니 너희들은 짐의 행동을 보고 근신하며 이후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무종 정덕제
1491~1521


2.1.15. 17세기[편집]


17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짐이 등극한 지 17년, 역적이 경성을 핍박하니 짐의 보잘 것 없음과 박덕함을 하늘조차 꾸짖는구나. 선조들이 이룩한 나라를 내가 부덕하여 이런 지경으로 이끌었으니 죽어 지하에서 조상을 뵐 면목이 없으니 짐의 의관을 벗겨 얼굴을 가려라, 명의 백성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명에 대한 그대들의 분노는 나의 시체에만 풀어주길 바란다.
숭정제[55]
1611.2.6~1644.4.25


2.1.16. 19세기[편집]


19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광동이란 지방은 좋은 곳이 아니라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호남에서 당 선생과 더불어 공부해 수재가 되고 싶을 따름이다.
홍천귀복
1849.11.23~1864.11.18


2.1.17. 20세기[편집]


20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인재를 키우고도 나라를 망쳤으니 그야말로 후회스럽도다![56]
이홍장
1823.2.15~1901.11.7
남북 통일은 내가 평소 뜻하던 바이다. 여러 벗들은 부디 작은 일로 국가를 그르치지 말라.
쑹자오런
1882.4.5~1913.3.22
그 놈[57]이 날 해쳤어![58]
위안스카이
1859.8.20~1916.6.6
저는 이제 일흔이나 되었습니다. 신해년에 죽어야 했는데 죽지 못했습니다. 정사년에도 죽어야 했는데 살아남았습니다. 지금 너무나 늦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제가 죽는다고 어찌 저의 고통이 끝나겠습니까? 아아! 황은의 만분의 일도 갚지 못했습니다.[59]
장쉰
1854.9.16~1923.9.11
평화, 투쟁, 중국을 구하라.[60]
쑨원
1866.11.12~1925.3.12
나는 대의를 부르짖고 일어섰으나 힘에 부쳐 죽음으로 이별하게 되는구나.[61]
궈쑹링
1883~1925.12.25
내 상처가 너무 심하다. 잘못될 염려가 있으니 쉐량이를 빨리 펑톈으로 오도록 해라.[62]
장쭤린
1875.3.19~1928.6.4
장례식을 위해 어떤 기념행사 비슷한 짓도 해서는 안 된다. 나의 일은 잊고 각자의 생활에 정신을 돌려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바보다.
루쉰
1881.9.25~1936.10.19
민족의 생존과 쓰촨인의 영광을 쟁취하기 위해, 적군을 국경 밖으로 내쫓지 않으면, 우리 쓰촨군은 하루도 고향에 돌아오지 않겠다.
류샹
1888.7.1~1938.1.20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고, 눈물을 흘려도 말할 수 없고, 법이 있어도 바르지 않고, 용서받고 싶어도 누가 해주랴.[63]
카와시마 요시코
1907.5.24~ 1948.3.25
나는 단지 마오 주석이 한마디 말만 해주기를 바라오. '허룽은 나의 동지였다'.[64]
허룽
1896.3.22~1969.6.8
누명을 쓰고, 근거 없이 죄를 날조해 많은 죄명을 붙였다. 죽더라도 포기할 수 없다. 나는 죽더라도 체념할 수 없다. …… 나는 폐인이 되었다.
펑더화이
1898.01.24~1974.11.29
대륙을 다시 공격해서…동포를 구한다. 대륙을 다시 공격해서…중국을 구한다. 대륙을 다시 공격해서…중국을 구한다.[원문7]
장제스
1887.10.31~1975.4.5
다 죽어가는 나 따위는 돌보지 말고 다른 아픈 동지들을 돌보시오. 시신은 화장해서 뼛가루를 대륙 곳곳에 뿌려주시오.
저우언라이[65]
1898.3.5~1976.1.8
당신이 일을 맡아준다면 나는 안심하겠다.
마오쩌둥[66]
1893.12.26~1976.9.9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민은 마오쩌둥 주석의 영도 아래 국민당 반동분자들을 물리쳤으며 혁명의 승리를 쟁취했다. 오늘날 혁명은 덩샤오핑, 펑전, 양상쿤 등의 수정주의 도당들에 의해 도둑맞았다. 주석은 류사오치를 제거했으나 덩샤오핑은 제거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인민과 국가에는 끝없는 재앙이 펼쳐졌다. 마오 주석, 당신의 제자이자 전우였던 제가 이제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장칭[67]
1914.3.19~ 1991.5.14
내 이름을 찾아와라.
와룡생[68]
1930~1997.3.31
엄마, 난 아빠랑 엄마가 너무 좋아. 난 정말 아빠, 엄마, 상관이[69]랑 헤어지는 게 괴로워. 만약 내가 죽으면 꼭 다시 날 낳아 줘.
주대관[70][71]
1987.10.29~1997.5.18


2.1.18. 21세기[편집]


21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항공모함 취역을 보지 못하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겠다.[72]
류화칭
1916. 10~2011.01.14
당신은 잘 살아야 하오.[원문8][73]
류샤오보
1955.12 .28~2017.07.13
건강한 사회에서는 한 목소리만 있어서는 안 된다.[74]
리원량[75]
1986.10.12~2020.2.7

2.2. 일본[편집]


사세구/일본 문서도 참고 바람

2.2.1. 7세기[편집]


7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진실로 황위에 계셔야 하는 분은 천자님이십니다! 저에게 죄는 없습니다! 이런 처사를 하는 것이 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소가노 이루카
?~645.6.12


2.2.2. 12세기[편집]


12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긴 말 할 것 없다. 무네모리에게 천하를 맡긴다.
타이라노 키요모리
1118~1181.3.20
보아야할 것은 모두 보았다.
타이라노 토모모리[76]
1152~1185.4.25


2.2.3. 15세기[편집]


15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당가 멸망![원문9]
오타 도칸[77]
1432~1486.7.26


2.2.4. 16세기[편집]


16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우리 가문은 판도의 보존만 원하고 천하는 바라지 않는다.
모리 모토나리[78]
1497.4.16~1571.7.6
대부분 땅에 맡겼으니 몸을 쉬고 싶다. 꾸밀 것 없이 내 인생은 풍류였다. 또는 내일은 세타(교토 근처)에 우리 다케다의 깃발을 세워라!
다케다 신겐[79]
1521.12.1~1573.5.13
어쩔 수 없군.[원문10]
오다 노부나가
1534.6.23~1582.6.21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나니와의 영화여, 꿈 속의 꿈이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80]
1537.3.17~1598.9.18
큰 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몸을 아껴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시다 미츠나리[81]
1560~1600.11.6

2.2.5. 17세기[편집]


17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나는 장이 썩어들어가서 뒈졌다고 오고쇼님[82]께 전해라.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1548~1606.6.19
묘의 내 몸을 서쪽으로 향하게 해서 안치하라.
도쿠가와 이에야스[83]
1543.1.31~1616.6.1
지금까지 만든 기강 법령이 아직 완비되지 않아서 곧 개정하려고 생각했으나, 불행하게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죽은 후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점이 없도록 개정한다면 그야말로 내 뜻을 잇는 효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쿠가와 히데타다[84]
1579.7.30~1632.3.14
전장이 그립구나…
호소카와 타다오키
1563.11.28~1646.1.18
나는 죽어서도 할아버님을 모시고 싶다. 내가 죽으면 할아버님 곁에 묻어 달라.
도쿠가와 이에미츠[85]
1604.8.12~1651.6.8


2.2.6. 19세기[편집]


19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재미있을 것도 없는 세상을 재미있게…[원문11]
타카스기 신사쿠
1839.9.12~1867.5.17
이시카와! 칼은 없는가![86]
사카모토 료마
1836.1.3~1867.12.10
사이고, 이제 적당히 좀 하지 않겠나.
키도 다카요시(카츠라 코고로)[87]
1833.8.11~1877.5.26
신돈, 신돈, 이쯤이면 되겠지.[원문12]
사이고 다카모리[88]
1828.1.23~1877.9.24
무례한 놈!
오쿠보 도시미치[89]
1830.9.26~1878.5.14

2.2.7. 20세기[편집]


20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묘를 세울 돈이 있으면 동생에게 맛있는 것이라도 사주세요.
후루카와 리키사쿠 [90]
1884.6.14~1911.1.24
괜찮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91][92]
나쓰메 소세키
1867.2.9~1916.12.19
이해할 수 없어.
노구치 히데요
1876.11.9~1928.5.21
봉천으로!
아키야마 요시후루
1859.2.9~1930.11.4
기다려, 총은 언제든지 쏠 수 있네. 말로 하면 알아듣네! [93]
이누카이 쓰요시
1855.6.4~1932.5.15
지치부노미야 전하 만세![94]
안도 데루조[95]
1905.2.25~1936.7.12
아, 앉습니까? 좋군요. 예수나 사쿠라 소고 같이 서서 당하는 것은 좋지 않겠지요. 앉는 것은 괜찮군요.[96]
기타 잇키
1883.4.3~1937.8.19
도대체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사이온지 긴모치
1849.12.08~1940.11.24
내가 제군보다 먼저 적진에서 사라지는 일이 있다 해도 제군이 지금까지 바친 공훈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지금 일본은 싸움에 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국민들이 충군 애국정신에 불타오른 제군의 훈공을 칭송하고, 그 영혼을 위해 눈물 흘리며 묵도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제군은 편안하게 나라를 위해 순교해야 한다.[97]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98]
1891.7.7~1945.3.25
군부의 압력으로 인해 겪었지만 모든 곤궁과 결핍에 견딘 10년 동안의 전쟁 체험은 반드시 여러분께 무언가를 줄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일본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우리 같은 과거의 유물인 군인, 혹은 아첨과 추종을 하는 절조 없는 정치가, 침략전쟁에 합리적 기초를 부여한 어용학자 따위를 결코 참가시켜서는 안 됩니다.
야마시타 도모유키
1885.11.8 ~ 1946.2.23
자아! 오너라!!!
혼마 마사하루
1887.11.27~1946.4.3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다자이 오사무
1909.6.19~1948.6.13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99]의 곁으로 가는 기쁨이여.
도조 히데키
1884.12.30~1949.12.23
적중 돌파로 분리된 부대를 어떻게든 장악해야 한다.
미야자키 시게사부로[100]
1892~1965.8.30
내가 잘못한 게 아냐. 부하들이 잘못한 거야![원문13][101]
무타구치 렌야
1888.10.07~1966.08.02
아버님, 어머님, 3일 참마[102]는 맛있었습니다. 말린 감떡도 맛있었습니다. 토시오 형님, 초밥은 맛있었습니다. 카츠미 형님, 포도주와 사과는 맛있었습니다. 이와오 형님, 차조기밥과 난반즈케[103]는 맛있었습니다. 키쿠조 형님, 포도즙과 양명주는 맛있었습니다. 또 언제나 빨래 감사드립니다. 유키조 형님, 왕복차에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오징어는 맛있었습니다. 마사오 형님, 번거롭게 해 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유키오 군, 히데오 군, 미키오 군, 토시코 양, 히데코 양, 료스케 군, 미요코 양, 유키에[104] 양, 미츠에 양, 아키라 군, 요시유키 양, 케이코 양, 유키에[105] 군, 유 양, 키 양, 세이지 군, 훌륭한 사람이 되세요. 아버님, 어머님, 고키치는 이제 지쳐서 더는 달릴 수 없습니다. 아무쪼록 용서해 주세요. 쉴 틈 없이 고생하고, 걱정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고키치는 부모님 곁에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106]
츠부라야 고키치[107]
1940.5.13~1968.1.9
오오우치 선생님, 부탁해요.
스즈키 모사부로
1893.2.7~1970.5.7
아버지, 열반에서 기다리겠습니다.[108]
오키 마사야
1952.6.12~1983.6.28
이젠 끝이야![원문14]/or기수 올려! 기수 올려! 파워![원문15]
타카하마 마사미[109]
1936~1985.8.12
올리고 있습니다![원문16]
사사키 유카타[110]
1946~1985.8.12
스트로베리 쥬스가 먹고 싶어요.
오카다 유키코[111]
1967.8.22~1986.4.8
부탁이니 일하게 해줘…
데즈카 오사무
1928.11.3~1989.2.9
(마사하루는) 일찌감치 경영을 단념하고 가능한 빨리 경영에서 손을 떼라.
마쓰시타 고노스케
1894.11.27~ 1989.04.27
평생 동안 자동차를 만든 내가 교통 정체를 일으켜 서민들에게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다. 절대 장례식은 치르지 마라!
혼다 소이치로
1906.11.17~ 1991.08.05
이겨낼 수 있으려나... 미안해.
오자키 유타카
1965.11.29~1992.4.25
이제 눈감아도 좋겠지.
사카이 사부로
1916.8.26~2000.9.22[112]

2.2.8. 21세기[편집]


21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아직 못 본 비디오가 있는데 말이야.
미야자키 츠토무
1962.8.21~2008.6.17
몸이 움직이지 않아.
미사와 미츠하루
1962.6.18~2009.6.13
거대 쓰나미가 옵니다. 고지대로 대피해 주세요!
엔도 미키[113]
1987~2011.3.11
오늘은 3월 29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2주 지났습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픕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힘을 다해 병마와 싸우고 있지만 어쩌면 못 이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천국에서라도 피해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뭔가를 하고 싶습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 여러분, 긴 세월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행복한 인생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란 씨, 미키 씨[114] 고마워요. 너무 좋았습니다. 언젠가 사회에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가즈 씨[115], 그날까지 안녕히[116].
다나카 요시코[117]
1956.4.8~2011.4.21
다시 한 번 나로 태어나고 싶어. 엄청 행복했으니까.
야마구치 노보루
1972.2.11~2013.4.4
친가입니다. 무서울 정도로 시골이지만 풍경만큼은 아름다웠어요. 여기도 내일 모레면 이별입니다.[118]
후지와라 코코아
1983.4.28~2015.3.31
'어른이 되니깐 매력이 없어졌어'라. 어른이 되면 안 될 것 같네요.[119]
시이나 모타
1995~2015.7.23
지금은, 이런 상황입니다만, 올해도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저로 태어나서 행복합니다.[120]
마츠키 미유
1977.9.14~2015.10.27
이 나라에 '전전[121]'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은 확실하다.[122]
노사카 아키유키[123]
1930.10.10~2015.12.11
선라이즈 페스티벌에 가고 싶지만 몸이 아파 갈 수 없다.
마츠 토모히로[124]
1972.10.13~2016.05.02
일하러 가고 싶어.
미즈타니 유코
1964.11.04~2016.05.17
코칭스탭 회의에는 나갈 수나 있으려나.
호시노 센이치
1947.01.22~2018.01.04
레이와, (이름이) 예쁘네~[원문17]
wowaka
1987.11.4 ~ 2019.4.5[125]
배우로서 계속해 나갈 자신이 없다.[126]
후지키 타카시[127]
1940 ~ 2020.09.21
내가 혹시 폐렴인가?[128]
하타 유이치로
1967.7.29~2020.12.27

2.3. 기타 아시아 국가[편집]



2.3.1. 기원전[편집]


기원전
유언
인물
생몰년
다른 누구로도 말고, 오직 스스로를 등불로 삼으라.
내 몸뚱아리는 화장하라
석가모니[129]
BC563?~BC483?

2.3.2. 7세기[편집]


7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신이여, 죽음과 싸울 때는 나와 함께 있어 주시기를, [130] 오오, 알라여! 천국의 빛나는 주민들 사이에서도 나와 함께 있어 주시기를!
무함마드[131]
571?~632.6.8

2.3.3. 12세기[편집]


12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멍리크! 나는 자식들이 어리다. 어린 고아 조카들을, 과부 형수를 네가 보살펴주기 바란다. 내 아들 테무진을 빨리 가서 데리고 오너라. 멍리크!
예수게이
?~1171
그 말이 맞다. 나는 그 분을 믿는다. 드디어 유수프가 그의 감옥에서 해방되는구나!
살라흐 앗 딘[132]
1138?~1193.3.4

2.3.4. 13세기[편집]


13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죽음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충분한 잠을 잤구나.
칭기즈 칸
1162~1227.8

2.3.5. 14세기[편집]


14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아들아, 다른 모든 일보다 종교에 관한 일에 주의를 기울이거라. 종교의 계울이 강한 나라를 만드느니라. 종교에 관한 임무를 부주의하고, 신앙심 없고, 죄 지은 사람이나 방탕하고 무관심하거나 경험없는 자에게 맡기지 마라. 또 나라의 행정을 그런 자들에게 맡기지 마라. 이 세상을 만드신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그분의 창조물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큰 죄를 짓고도 죄를 계속 짓는 자는, 충성스럽지 않은 법이다. 학자들, 덕 있는 자들, 예술가들, 문인들이 국가 조직을 움직이게 하느니라. 그들을 친절하고 명예롭게 대하거라. 덕 있는 자에 대한 소문을 듣는다면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부를 주며 정치와 종교에 대한 일을 맡기거라. 내 말을 명심하거라. 내가 유약한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는 지위에까지 이른 것은, 신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니라. 내 행적을 따라 무함마드의 가르침과 그 신자들, 너를 따르는 자들을 보호해라. 신과 그 추종자들의 권한을 존중하거라. 이 가르침을 네 후계자들에게도 반드시 전하거라. 신께 의지하며 모든 일에서 공평무사함을 추구하고, 잔인하게 하지 말거라. 네 백성들을 적의 침입과 학대로부터 보호하거라. 누구든 공평하지 않고 적합하지 않게 행동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백성들을 만족시키고, 그들의 모든 이익을 보호하거라.
오스만 1세[133]
1258~1326.7.29


2.3.6. 16세기[편집]


16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요새가 저렇듯 타오르고 있는데도 승리의 북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는도다.[134]
쉴레이만 1세
1494.11.6~1566.9.5

2.3.7. 17세기[편집]


17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죽게 되는 건가? / 알라의 뜻대로...[135]
카라 무스타파 파샤[136]
1634/1635~1683.12.25

2.3.8. 18세기[편집]


18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낮설구나. 내가 빈 손으로 이 세상에 왔었다니... 이제 큰 죄를 짊어지고 떠나는구나. 어디를 보든 신밖에 보이지 않아. 어떤 벌이 나를 기다릴지 알 수가 없구나.
아우랑제브
1618.12.4~1707.3.3

2.3.9. 19세기[편집]


19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모든 외국인을 사형에 처하라.
소치제
1807.6.16~1847.11.4
잠자리에 들고 싶지 않아
창 벙커[137]
1811.5.11~1874.1.17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군,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138]
엥 벙커[139]
1811.5.11~1874.1.17
잘 있거라! 나의 사랑하는 조국이여, 사랑받는 태양의 고향이여...
호세 리살[140]
1861.6.19~1896.12.30

2.3.10. 20세기[편집]


20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지금 몇 시인가?[원문18]
케말 아타튀르크
1881.3.12~1938.11.10
오, 신이시여![원문19]
마하트마 간디[141]
1869.10.2~1948.1.30
튀르크여 영원하라! 나아가 내 죽음은 언젠가 억울함이 밝혀질 것이다!
아드난 멘데레스 [142]
1899~1961.9.17
만약 앞으로 넘어지면 흉한 것이다. 그 때는 해외로 망명하라. 하지만 뒤로 쓰러진다면 우리들의 투쟁은 승리하고, 결국 평화를 맞이할 것이다.[143]
틱광둑
1897~1963.6.11
내가 죽더라도 동상을 세우지 말고 화장한 뼛가루를 국토에 골고루 뿌려달라.
호찌민[144]
1890.05.19~1969.9.2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카메라를 끄지 말고 계속 촬영하세요.
베니그노 아키노[145]
1932.11.29~1983.8.21
구두 3,000개 아깝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1917.9.11~1989.9.28



2.3.11. 21세기[편집]


21세기
유언
인물
생몰년
이란을 믿지 말라. 그리고 종파적인 감정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선생. 남성용이네[146]
이 코란을 반더라는 사람에게 주어라.
사담 후세인
1937.4.28~2006.12.30
나는 죽으면 알라에게 천벌을 받을 것이오. 아름답던 내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으니...
모하마드 자히르 샤[147]
1914.10.15~2007.7.23
Help people until you live on earth. (살아 있는 동안 사람들을 도와라.)[148]
Narayana Reddy
1946~201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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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자서의 형[2] 오자서의 아버지. 오자서가 무사히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남긴 말. 이 이후 오상과 함께 처형된다.[3][4] 사기 공자세가에서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말. 이 말을 남기고 일주일 후에 죽었다고 한다. 이 말은 흔히 자신이 죽으면 은나라의 예법대로 장례를 치르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5] 이후 소진이 사망하고 황제가 그의 말을 따르자 정말로 소진을 찌른 범인이 나타나서 자신이 그를 죽였다고 밝혔다. 물론 그 범인은 잡았다 요놈 곧바로 처형당했다.[6] 전국시대 진나라 명장. 장평 전투에서 조괄의 40만 조군을 발라버린 것으로 유명하다. 유언에 남긴 것처럼 장평에서 생매장한 현장이 발굴되었으며 최소 수십만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진나라 소양왕의 명을 받고 자결하는데, 자결하기 직전 남긴 말.[원문] 我思用趙人[7] 간신 곽개의 농간으로 위(魏)나라로 망명 후 다시 초나라 옮기지만 중용되지 못하고 죽으면서 한 말이다.[8] 근데 유언을 듣고있는 사람들이 조고, 이사라서 망했어요. 참고로 저 둘은 진시황이 사망하자마자 유서를 위조해 몽염과 부소를 자결시키고 둘째 호해를 황위에 앉혔다. 이후 진나라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된다.[9] 長城[10] 地脈[11] 하지만 그 직후 사마천은 "몽염의 진실된 죄는 무리한 장성 축성을 시황에게 간하지 않고 그의 명에 부합했던 것이었기에 벌을 받은 것"이라고 혹평했다.[12] 黃犬[13] 上蔡: 이사의 고향[14] 오강의 마지막 전투에서 옛 친구이자 한군의 대장이었던 여마동을 보자 그를 보며 한 말. 이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을 쳐 자결했다.[15] 그 직전에 "지금의 정무는 소하에게 전권을 주고 그 다음은 조참에게, 그 다음은 왕릉에게 맡기시오. 그러나 왕릉이 고지식하므로 진평이 돕도록 하는 것이 좋소. 진평은 충분한 지혜를 가지고 있지만 혼자 큰일을 맡는 것은 어렵소 그 다음은 주발에게 맡기시오. 주발은 글재주가 없으나 강인하여 유씨 왕실을 안정시킬 자이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여태후가 계속 그러면 다음은요?이라고 묻자 유방이 대답한 말. 과연… 훗날 여씨 일파가 왕릉을 숙청하고 전횡을 일삼자 과연 진평과 주발이 여씨 일족을 쓰러뜨리고 유씨 왕조를 다시 세웠다.[16] 刀筆之吏[17] 전한의 명장. 한의 비장군(飛將軍)이라는 이명으로 흉노인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 인물로 중국사를 대표하는 명궁이기도 하며 여포의 별명인 한 '비장'의 유래이자 수호지의 명궁 화영의 별명 '소이광'의 유래가 된 인물이다. 뛰어난 용맹으로 많은 공을 세웠으나 평생 운이 정말 없었는데, 흉노를 토벌하려 가던 도중 한무제의 밀명을 받은 대장 위청 때문에 부서를 옮긴 데다가 그 때문에 행군 방향이 바뀌어 길을 잃은 바람에 약속기일 내에 합류지점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문책을 받게 되자 자결했는데, 자결하기 직전 남긴 말이다.[18][19] 한의 신하로 제위를 찬탈하고 신(新)을 세웠으나 온갖 뻘짓으로 일관. 결국 자신이 기거하는 궁궐에 반군이 몰려오자 한 말. 그 직후 그의 목에 눈이 뒤집힌 폭도들에 의해 죽음.[20] 후한의 대신으로 번풍의 모략에 의해 태위직이 박탈되자 짐독을 마시고 자살하기전에 남긴 말이다.[21] 양기의 모함으로 옥에 갇히자 죽기 직전에 호광조계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22] 죽기 전 여포에게 남긴 말. 출전은 자치통감.[23] 삼국지연의에서 보면 알겠지만 화웅의 지나가던 부장으로 알려진 인물이지만 실상은 역으로 화웅이 호진의 부장이다.[24] 사실 관정은 아부을 잘해 주변에게 미움을 받을 정도의 간신배이다. 다만 군자라는 단어를 언급한 걸로 보아서 비록 학자 출신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도 나름대로 유교적/전통적인 미덕을 의식하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25] 꿀물을 찾지 못하고 좌절하면서 죽는 말이다.[26] 죽기 전 손권에게 후사를 부탁하며. 출전은 정사 오서 손책전.[27] 연의과 달리 순우경은 원소에게 팀킬을 당하지 않고 오소에서 조조에게 저항하다가 코가 베인 채로 생포되어 항복을 거절하고 죽음을 맞이했다.[28] 유수구 전투때 함선으로 진군 중에 폭풍에 휩쓰려 죽기전에 말한 말.[29] 정사에서 관우의 마지막 말. 유언은 있겠지만 관우전에서 죽기전에 관우가 남긴 말이 이것 뿐이라 유언이라 봐도 무방하다.[30][31] 마초에게는 성도에 와서 새로 가정을 만들어서 마승과 유비의 아들 유리에게 시집간 딸도 있다. 다만 그들이 엄청나게 어려서인지 마대가 제사를 맡은 모양이다.[32] 부첨의 아버지로 이름이 오역인 부동으로 알려진 그 인물.[33] 명심보감과 소학에서도 나온 구절이라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다.[34] 연의과 달리 사마의가 장합에게 제갈량의 추격을 명령하여 장합이 반대하지만 어쩔수가 없이 추격하다가 제갈량의 매복에 걸려 사망한다.[35] 하지만 사마의의 유언과 달리 사마사와 사마소는 황제를 폐위하고, 죽였다. 애초에 이들의 목적 자체가...[36] 사실 이 유언은 252년이전의 251년에 남긴 말인데, 이때 손권이 이궁의 변 이후에 약간 정신차리고 말한 말이지만 손노반등 반 손화파에게 반대당해 사실상 유언라고 무방하다.[37] 제갈각전 본전에서 출처[38] 오력 출처[39] 이후 제갈각은 손량의 명을 받은 손준에게 살해당한다.[40] 제갈각을 죽인 손준의 사촌동생. 손준이 일찍 사망하고 그 뒤를 이어 손량을 폐위하고 제갈탄의 난 때 멋대로 퇴각하여 전투에서 패하는 졸장에 간신이다. 결국 자신이가 옹립한 손휴정봉을 이끌고 손침을 처단한다. 손침이 이렇게 말하자, 손휴는 "경은 어찌하여 등윤과 여거를 유배보내지 않았는가?", "경은 어찌하여 등윤과 여거를 관가의 노비로 만들지 않았는가?"라고 답하고 바로 손침을 처단했다.[41] 술자리에서 같이 있던 후궁 장귀인에게 한 말. 취중 농담이었지만 장귀인은 이걸 진담으로 알아들었고, 연회가 끝난 후 취해서 잠자리에 든 효무제를 질식시켜 죽여버렸다.[원문2] 壞汝萬里長城[42] 남북조시대 송나라의 명장. 병법 36계의 창안자라는 설이 유력한 인물이다. 지용을 겸비한 명장으로 명망이 높았으나 이를 경계한 유의륭에 의해 제거되었다. 참형되기 직전에 유의륭을 노려보며 한 말.[원문3] 願後身世世 勿復生天王家[43] 이 인물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망국군주의 운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비감한 발언이다.[44] 정작 교살당해 사망. 원래 목을 베려고 했다.[45] 고구려 출신으로 당에서 활약한 장수. 참형당하기 직전에 한 절규. 이 절규를 들은 병사들은 일제히 "왕(枉: 중국어로 '억울하다, 원통하다')!"이라고 따라 외쳤다고 한다.[46] 죽기 직전 아들 흥종 야율지골에게 남긴 말. 무리한 정복전쟁보다는 송나라와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데 힘쓰라는 소리다.[원문4] 過河! 過河![47] 송의 장군. 북송 멸망 직후에 금과의 싸움에서 맹활약한 인물로 악비한세충도 그의 휘하에 있었다. 임종을 앞두고 황하 이북의 금을 정벌하지 못함을 한스러워하며 남긴 말.[원문5] 天日昭昭, 天日昭昭。[48] 진회의 손에 죽기 직전 악비가 벽에다가 손가락으로 써 놓은 말.[49] 金樂光福大夫[50] 祖宗[51] 애종은 수개월째 채주성에서 몽골군에게 포위된채 갇혀 있었다. 절망한 애종이 채주성 함락 직전, 자신을 따르는 신료들을 모아놓은곳에서 자신의 인척(혹은 아들)인 완안승린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채주성 탈출을 부탁하면서 한 말이다. 제위를 물려준 애종은 목을 메어 자결했다.[52] 애종의 자결 소식을 들은 후 유언을 남기고 물에 뛰어들어 자결.[원문6] 吾事畢矣[53] 남송의 마지막 황제로 몽골 제국과의 애산 전투 패배 이후 바다에 뛰어들며 남긴 말. 이 말을 남길 당시 나이는 겨우 8세에 불과했다. [54] 제자들이 유언으로 남길 말이 있느냐고 묻자.[55] 목을 메어 자결하기 전, 자신의 도포에 써 놓은 유서. 이 글을 읽은 이자성도 크게 감탄했다고 한다.[56] 유언을 하고 바로 죽진 않았고, 눈을 감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서 하루 정도 더 살아있었다고 한다. 주위에서 "공이 이루지 못한 것을 저희가 이루겠습니다." 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눈을 감았다 한다.[57] 위안스카이가 말한 '그 놈'의 정체가 누구인지는 아직까지 불명확한데, 위안스카이 일가는 홍헌제제를 부추긴 장남 위안커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58] 죽기 바로 전에 남긴 말. 정치적 유언은 1914년 신약법 29조에 의거하여 리위안훙을 대총통으로 삼는다는 내용이었다.[59] 병석에 누웠을 때 선통제가 어의를 보내자 남긴 말. 이 말을 남기고 바로 죽지는 않았고 잠시 회복되는 듯 하다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하였다.[60] 이건 죽기 직전에 한 말이고 따로 유언을 남겨 두었다.[61] 반봉사건 실패 후 총살 직전에 남긴 말. 함께 처형된 아내의 유언은 '남편은 나라를 위하여 죽고 나는 그 남편을 위해서 죽는다. 우리 부부는 더 이상 여한이 없다.' 였다.[62] 황고둔 사건 당시 중상을 입고 후송된 병원에서 남긴 말. '쇼와 육군'에 의하면 여섯째 아들을 불러오라는 말이었다고도 한다.[63] 사형 집행 직후 옷자락에서 발견된 절명시.[64] 문화대혁명 당시 옥사하며 아내에게 남긴 말.[원문7] 反功大陸…解救同胞…反功大陸…救中國…反功大陸…救中國…[65] 저우 총리의 뼛가루는 유언대로 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중국 대륙 전역에 뿌려졌다. 이 작업을 이행한 사람이 덩샤오핑이다.[66] 화궈펑은 마오쩌둥의 기대대로 4인방을 숙청하지만, 덩샤오핑에 밀려 5년만에 모든 실권을 내주게 된다. 이후 화궈펑은 마오의 생일인 12월 26일과 기일인 9월 9일에는 항상 마오의 묘를 찾았으며, 개혁개방에 대해서 단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은 채 2008년에 숨을 거두었다.[67] 유서이다.[68] 와룡생은 생전에 필명을 매각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항목 참조.[69] 동생.[70] 외래어표기법에 따른 이름 표기는 '저우다관'이나, 후술하는 '내게는 아직~'이 '주대관' 명의로 발매되었으므로 이를 따른다. 1987년 대만에서 태어나 만 아홉살에 소아암으로 짧은 생을 마쳤다. 대관은 이 말을 한 바로 다음 날 새벽 사망하였다. 대관이 암과 싸우면서 쓴 시들은 <내게는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我還有一隻脚)>는 이름의 시집으로 출판되어 현재 세계 여러 나라의 어린이에게 읽히고 있다.[71] 죽기 3개월 전 남긴 유서는 다음과 같다. "아빠, 엄마, 동생아. 내가 죽으면 내가 온 힘을 다해 암과 싸웠다는 것을 암에 걸린 다른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 전해 주고, 그들에게 용기와 강한 의지를 갖고 암이라는 악마와 맞서 싸워 달라고 전해 주세요."[72]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제독들이 반드시 내년에는 항모를 취역시키겠다고 약속하자 그제서야 눈을 감았다고 한다.[원문8] 好好活下去。[73] 부인인 류샤에게.[74] 입원 중 언론 인터뷰에서[75]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처음으로 외부에 알린 의사. 향년 33세[76] 위의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사남으로, 헤이케의 실질적인 총사령관. 단노우라 전투의 패전 후 이 말을 남기고 물 속으로 뛰어든다.[원문9] 当方滅亡[77] 무로마치 시대의 무장. 오오기가야츠 우에스기가를 섬기며 에도성을 축성한 인물이다. 문무를 겸비한 무장이었으나 그를 질투한 데다가 야마노우치 우에스기가의 모략에 넘어간 주군 우에스기 사다마사에 의해 참살당하며 남긴 말인데, 자신을 죽이면 주군 가문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로 던진 말이다. 위의 단도제의 유언과 비슷한 어감의 유언이다.[78] 정확히는 '유언이라고 알려진 말'. 정확한 표현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이렇게 영지를 지키는 것에 힘쓰라는 요지의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79] 첫 번째 말은 사세구, 두 번째 말은 가신 야마가타 마사카게에게 했다는 말. 영화 카게무샤에서는 두 번째 말을 하고 죽었다.[원문10] 是非に及ばず。[80] 나니와는 지금의 오사카를 말한다.[81] 죽는 마당에 물을 달라고 하자 형리가 대신 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미츠나리가 "감은 몸에 좋지 않다."라고 거절하자 "곧 죽을 자가 무슨 건강을 걱정하느냐?"라고 형리가 되물었고, 그 대답.[82] 이에야스[83]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야 도쿠가와에 충성하게 된 도자마 다이묘(外様大名)들은 도쿠가와 쇼군가에 의해 일본의 서쪽 지역에 영지를 하사받았다. 즉 죽어서도 이들을 경계하겠다는 의미. 비슷한 동기의 유언으로 클레망소의 유언이 있다.[84] 죽기 직전 아들 이에미츠에게 한 말.[85] 이 유언대로 이에미츠는 이에야스의 무덤 근처에 묻혔다. 위험했던 후계자 자리를 지켜줘서 그랬는지 실제로 할아버지 이에야스를 대단히 존경했다고 한다.[원문11] おもしろき こともなき世を おもしろく[86] 이미 일격을 받아 이마에 자상을 입은 상태에서 남긴 말. 정말로 칼을 찾은 것이 아니라 같이 있던 나카오카 신타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가명으로 외친 것이다. 나카오카는 중상을 입은 채 토사 번에게 구조되는데 성공했지만 이틀 뒤에 사망했다.[87] 사이고 다카모리가 당시 서남전쟁을 일으켜서 일본은 이 때 내전상태였다. 다카모리에게 직접 한 말은 아니고 그냥 병상에서 죽기 직전에 한 말.[원문12] 晋どん、晋どん、もう、ここいらでよか。사츠마벤으로 표준어로 고치면「 もうここらでよかろう。」다.[88] 서남전쟁에서 허벅지와 복부에 총탄을 입고 자결을 결심하기 직전에 카이샤쿠를 맡은 벳푸 신스케에게 내뱉은 유언. 이후 덴노가 있는 동쪽을 향해 정좌를 하고 할복했다.[89] 암살자들에게 습격당할 때 마차에 타고 있었는데, 암살자들에게 마차에서 끌어내려지자 이렇게 일갈했다고 한다. 그러나 곧 전신에 16군데의 자상을 입고 현장에서 즉사. 칼을 거의 머리에 맞아서 시신이 매우 참혹한 상태였다고 한다.[90] 대역 사건에 연루되어 고토쿠 슈스이와 함께 처형당한 무정부주의자. 아버지에게 남긴 유언으로, 먹고 살기 힘든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널리 퍼졌다.[91] 마지막 말은 잠옷의 가슴을 풀어 헤친 채 외친 "여기에 물을 뿌려 줘. 죽으면 곤란하니까"였다고 한다. 하지만 4녀 아이코가 울자 그것을 아내 쿄코가 주의를 줄 때 소세키가 달래며 한 이 말이 사실상의 유언으로 여겨진다.[92] 아들 나쓰메 신로쿠의 저서 '아버지 소세키와 그 주변'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문득 눈을 뜬 아버지의 마지막 한 마디는 '무언가 먹고 싶다'라는 이제는 이룰 수 없는 식욕에 대한 절실한 바람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의사의 조치로 포도주 한 숟갈을 드리게 되었는데, '맛있다.' 아버지는 마지막 바람을 이 한 숟갈의 포도주와 함께 맛보고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93] 실제 최후의 말은 결국 총을 맞고서는 암살자들이 떠난후에 하녀가 달려왔을때 하녀에게 아까의 젊은이들을 다시불러와라 잘 이야기 해보겠다. 라고 말한게 최후의 말이라고 한다.[94] 함께 사형당한 청년장교들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으나 안도 데루조는 천황에 대한 배신감으로 외치지 않은 듯하다.[95] 2.26 사건의 주동자 중 한 명[96] 함께 처형된 니시다 미쓰기가 '천황 폐하 만세 삼창을 제안하자 '아니, 나는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는 것은) 하지 않겠네.'라고 답한 뒤 처형대로 이동했다. 앉아서 총살 당할 수 있도록 형무소측에서 배려해주자 이에 대해 평한 것이 최후의 유언.[97] 사실 이오지마 수비대의 마지막 돌격은 반자이 돌격과는 거리가 있다. 쿠리바야시는 이오지마 전투에서 반자이 돌격을 금지했고 마지막 돌격조차도 철저한 기습으로 실행했다.[98] 이오지마 전투의 일본측 지휘관. 마지막 야습 직전 남긴 훈시가 생환자의 증언으로 알려졌다..[99] 彌咤, 부처님 곁[100] 그는 항년 73세로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챙기지 못한 부하들을 걱정하였다. 아래의 인물과는 엄청나게 차이난다.[원문13] 私は悪くない、部下が悪い![101] 이게 얼마나 밑도 끝도 없이 뻔뻔한 말인지는 무타구치 렌야 항목과 임팔 작전 항목을 같이 참조할 것. 여기서 잘못은 전쟁을 뜻한다. 그는 연합국의 승리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군의 간첩이다.[102] 정월 3일에 먹는다고 해서 3일 참마이다.[103] 난반즈께는 튀긴생선, 구운생선, 그밖에 야채를 난반지에 절인 음식물이다.[104] ゆき江[105] 幸栄[106]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107] 1964 도쿄 올림픽 육상 마라톤 동메달리스트.[108] 그가 남긴 유서의 내용 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문장이다.[원문14] もう だめだ![원문15] あたま上けろ! あたま上けろ! パワ![109] 일본 항공 123편의 기장.[원문16] 上げてます![110] 일본항공 123편의 부기장.[111] 이 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했다.[112] 2000년은 20세기에 속하며 21세기는 2001년부터이다.[113] 미나미산리쿠의 동사무소 여직원. 도호쿠 대지진 당시 주민들을 위해 끝까지 대피방송을 하다가 실종, 안타깝게도 2011년 5월 8일 시신이 발견되었다. 2012년 4월에는 사이타마 현의 도덕교과서에 '천사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그녀의 이야기가 실렸다.[114] 캔디즈 멤버[115] 남편[116] 2011년 3월 29일,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하고 미리 녹음해둔 조문객들에게 보내는 인사말.[117] 70년대 일본을 풍미했던 아이돌 그룹 캔디즈의 멤버. 수우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118] 마지막으로 트위터에 남긴 말. 원래는 이사를 가게 되었다며 남긴 트윗이었으나, 이 트윗을 남기고 사흘 후 사망하여 세상과 이별하게 되었기에 안타까움을 더했다.[119] 상동. 역시 해당 트윗 내용 때문에 팬들에게 더욱 안타까움을 주었다.[120] 급성 폐렴으로 인해 병원에서 생일 파티를 해야 했던 상황에서, 생전 마지막으로 적었던 블로그 말미에 적혀있던 부분.[121] 戰前·통상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기 전 시기를 의미[122] 사망 몇시간 전인 9일 오후 4시께 출판사인 신초샤(新朝社)에 보낸 잡지 연재 마지막 원고의 말미에서.[123] 반딧불의 묘의 원작 작가[124] 아빠 말 좀 들어라!의 작가.[원문17] 令和きれいだー。[125] 급성 심부전으로 급사하기 4일 전 올린 마지막 트윗 내용. 트윗이 올라올 당시인 2019년 4월 1일은 일본의 새 연호이자 5월 1일부터 적용될 레이와가 막 발표된 시점이었다.[126] 자택에서 발견된 유서.[127] 1959년 가수로 데뷔했다가 1962년 가수직을 은퇴한 가수 출신 배우.[128] 차를 타고 가다가 이 말을 하고 바로 의식을 잃었고,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사망했다. 사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감염된 것이 밝혀졌다.[129] 대반열반경에 따른 정확한 여운은 다음과 같다. "아난다(부처의 제자)여, 그러나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아난다여,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 머물고 남을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가르침을 섬으로 삼고 가르침을 의지하여 머물고 다른 것을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내가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과정이다.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게으르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130] 그리고는[131] 이슬람교의 시조.[132] 유수프는 살라딘의 본명이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비오는 날 바깥을 시찰했다가 병이 악화되었다. 아픈 그를 두고 옆에서 성직자가 끊임없이 코란을 읽어주었다고 하는데 신이 신도를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대목에서 미소를 지었고 얼마 있지 않아 이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133] 출처는 위키백과 영문판(https://en.wikipedia.org/wiki/Osman_I). 아들이자 뒤를 이어 2대 베이가 되는 오르한에게 남긴 말로 전해지지만, 길이가 꽤 긴 탓에 정말 유언이라기보다는 훈요십조처럼 후대의 군주들에게 남기는 가르침으로 보는 게 옳을 듯 싶다.[134] 사망 수시간 전, 쉴레이만 1세가 평생을 기록했던 일기에 남긴 마지막 기록. 46년의 치세 동안 열 세 차례의 군사원정을 단행한 쉴레이만은 세상을 떠나는 1566년에 친히 군대를 이끌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고 있던 헝가리를 공격했는데(실질적인 지휘는 재상이 하고, 자신은 가마를 타고 갔다), 여기에서의 '요새' 는 시겟바르 요새를 일컫는다. 갑자기 병환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기에, 숨을 거둔 날의 일기가 남아있는 것. 시겟바르 요새는 쉴레이만이 사망한 다음 날에 함락되었으며, 그로부터 2년 뒤인 1568년에 체결된 에디르네 조약에서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만 제국에 3만 두카토의 연공을 바친다는 내용의 강화를 체결했다.[135] 첫번째 말은 처형 집행인에게 자신을 처형하러 온 것이냐고 묻는 말, 2번째 말은 처형이 집행되기 직전에.[136] 오스만 제국의 재상이자, 제2차 빈 포위 당시 오스만 제국군의 총사령관. 빈 공격을 주장, 주도하였으나 대패했고, 그 죄로 처형되었다.[137] 태국의 유명한 샴쌍둥이인 벙커 쌍둥이의 형. 팔과 다리는 따로였으나, 몸통이 붙어 있었다. 동생의 이름은 앵 벙커[138] 창이 죽은 것을 보고[139] 창이 죽고 3시간 후에 죽었다.[140] 필리핀의 독립 운동가. 처형 직전 여동생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애국시 '마지막 인사(Ultimo Adios)'의 첫 구절. 이 시의 첫 구절은 모든 필리핀 국민이 즐겨 읊는 대목이다.[원문18] Saat kaç?[원문19] He Ram! - 직역하면 "아, 라마여!"[141] 암살자의 총탄에 맞아 쓰러질 때.[142] 터키의 정치가이자 총리. 1960년 쿠데타로 축출되어 재판 끝에 국고횡령과 낭비 및 부패 혐의로 교수형 당했는데 그 직전에 크게 외쳤던 유언. 세월이 지나 복권되면서 결국 터키에선 아드난 멘데레스 대학까지 세워져 그의 유언이 이뤄졌다.[143] 소신공양 전에 제자들에게 이러한 말을 남겼다… 소신공양 중에 불길이 거세지자 쓰러질 듯 앞으로 기울어졌으나, 마지막 혼신의 힘을 쏟아 다시 가부좌 자세로 정좌하여, 결국은 뒤로 쓰러졌다.[144] 그러나 말 안듣는 베트남 정부는 몇몇 공산국가들이 그렇듯이 그의 시신을 하노이 바딘(Ba Dinh)광장 앞에 묘를 짓고 안치하여 참배객들이 시신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죽어서도 편하게 쉬지 못하는 호치민[145] 필리핀의 정치가, 민주화 운동가. 자신이 암살될 것을 예감하고 비행기에 동승한 카메라맨에게 이 말을 했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암살범의 총에 맞아 숨졌다. 카메라맨도 아키노의 말대로 계속 촬영해서 아키노의 암살 장면이 고스란히 녹화되었다.[146] 사담 후세인이 교수대를 보고서 한 말이다.[147] 아프가니스탄의 전 국왕.[148] 힌디어를 영어로 번역한 자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