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최근 편집일시 : 2024-03-12 09:10:29

분류



바둑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파일:바둑 픽토그램.svg 파일:바둑 픽토그램_다크.svg
바둑
Baduk(Go, Weiqi)[1]


바둑을 두는 모습
종류
보드게임(추상전략게임)
경기 방식
19✕19, 361줄의 격자로 이루어진 바둑판에서 두 명이 번갈아 흑과 백의 돌을 놓아 '집'이라 부르는 빈 공간[2]을 더 많이 만드는 쪽이 승리
경기 장소
실내
참여 인원
2명(1대 1)
신체 접촉
불가
국제 대회 정보
올림픽
미채택
아시안 게임
정식 종목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정식)
(2014~2018 미채택)[3]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정식)

1. 개요
2. 특징
2.1. 난이도
2.2. 자유도와 복잡성
2.3. 두뇌 게임
2.4. 중독성
3. 명칭
4.1. 한국 바둑 스포츠토토 도입
6. 규칙
6.1. 사전 규칙
6.2. 대국 규칙
6.5. 서양식
6.6. 기타
7. 바둑의 역사
7.1. 중국
7.2. 한국
7.3. 일본
8. 여성 바둑
8.1. 남녀 실력 격차
8.2. 여성바둑의 높은 시청률
9. 바둑과 병역
9.1. 예술체육요원 자격 부여
9.2. 예술 분야에서 체육 분야로 변경
9.3. 해군의 바둑 특기자 모집
13.1. 위기십결(圍棋十訣)
13.2. 바둑에 관한 격언들
14. 바둑을 소재로 한 창작물
15. 관련 커뮤니티
16. 그 외
16.1. 특수한 형태의 바둑
16.2. 각종 분쟁
16.3. 사건·사고
16.4. 고전 바둑 묘수풀이 학습서



1. 개요[편집]


바둑은 두 사람이 흑백의 바둑돌을 나누어 가지고 바둑판 위에 번갈아 하나씩 두어 가며 승부를 겨루는 보드 게임이다.[4]

보드게임 중에선 진입장벽이 높다는 인식이 있지만[5], 사실 매우 간단한 오목 룰과도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본인의 돌을 전개해서 승리 조건을 이루고 방해하는 적을 쳐내는 방식이다.


2. 특징[편집]


주로 한국, 일본,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많이 즐긴다.

가로세로 19줄[6], 361개 교차점에 돌로 에워싼 빈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빈 공간을 바둑 용어로 '집'이라고 한다. 바둑의 승리 조건은 단 하나, 상대방보다 더 집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돌을 많이 따는 게임이 아니다. 맞수끼리 두는 호선(互先)에서는 먼저 두는 흑의 유리함을 상쇄시킬 목적으로 규칙에 의해 흑을 잡은 사람이 상대방보다 7집(한국/일본), 8집(중화권) 이상 더 만들어야 이긴다.[7] 반면에 실력 차이가 나는 사람끼리는 하수가 흑을 잡고 흑돌 몇 점을 미리 깔고 두는 방식인 접바둑을 할 수 있다. 으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하여 '수담(手談)'이라는 별칭이 있다.

승리 조건도 단순하고 사용하는 기물도 바둑판을 제외하면 서로 다른 2가지 색깔의[8] 아무런 특징없는 돌들뿐일 정도로 간단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창조해 낸 가장 심오한 보드 게임 가운데 하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동양장기에 대응하는 서양 게임은 체스가 있지만, 바둑에 대응하는 서양 게임은 찾기 어렵다. 바둑은 동양 고유의 보드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테마게임과 유로게임이 꽉 잡고 있는 보드게임긱 순위에서 200위 안에 들어가는 유일한 고전 추상전략 보드 게임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인기 있는 오락거리였으나[9], 21세기 들어선 바둑 말고도 컴퓨터 게임 등 여러가지 오락거리가 많아져서 젊은 층에겐 점점 외면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원이나 바둑 학원이 줄어들면서 아예 바둑을 둘 줄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졌는데, 이에 바둑계도 SNS 홍보나 토토 도입 등 여러 자구책을 통해 해결책을 찾고 있다. 국가별 현황 항목도 참조.

바둑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인 바둑학이 존재하는데, 세계에서 바둑학을 전공할 수 있는 대학교는 한국의 명지대학교[10] 세한대학교뿐이다. 지구상에서 둘뿐인 곳이라 그런지, 중국인 교수와 유학생들도 많이 있다.


2.1. 난이도[편집]


바둑은 인류가 낳은, 가장 높은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보드 게임 가운데 하나이다.[11] 따냄 규칙, 착수금지 및 패의 규칙, 계가 공식(집 세는 법)이 의 전부라 할 만큼 바둑의 룰 자체는 하루만 배워도 다 알 정도로 간단하지만,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까워 매우 다양한 전략을 구상할 수 있다 보니 상대와 제대로 겨루기 위한 진입장벽은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틱택토는 일종의 '이미 정복된 게임'으로서 모든 수를 사람들이 계산했고 끝냈지만,[12] 바둑은 여전히 정복은 커녕 더 연구할 것이 많은 게임이다.

특히 다른 보드게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집'의 개념은 논리적이라기보단 감각적인 이해가 필요한 영역이라 체득하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린다. 즉 바둑은 입문도 어렵고 숙달하기도 어려운 게임이다. 숙달이 어려운 이유라 하면 바둑은 정답을 찾아가는 게임이 아닌 안목을 키워나가는 게임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프로 기사라 할지라도 완벽하게 모든 상황에 대한 최선의 답을 찾아낼 수 없으며 숙련된 감각을 통해 최선에 가까운 수를 두어나가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룰만 익혔다고 실전 바둑을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사활, 정석, 포석, 행마, 끝내기 등의 다방면에서 기초를 조금씩이라도 익혀야 비로소 무의미하지 않은 대국을 시작해볼 수 있다.

바둑이 오랜 시간동안 연구되어 오면서 초반에 어떻게 돌을 깔아야 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는데 정석, 포석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이드라인'일 뿐이며, 절대적 최선의 수가 아님을 알아야 하고, 초보자에게 가르칠 때는 변화도가 적은 방식을 가르치기 때문에 실력을 쌓고 난 후 더 좋은 수를 배울 수도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경우의 수가 사실상 무한대에 달하는 바둑에서 절대적 최선의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공지능 연구가 진척되면서 2020년대에는 일부 수에선 오히려 1960~70년대 일본 프로바둑 형식이 더 낫다고 회귀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을 정도.

그리고 대국이 진행되면 필연적으로 여기저기서 전투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내 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혹은 상대 돌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상당히 연구되었는데, 행마와 맥이 그것이다. 돌이 서로 얽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내 돌을 살리거나 상대 돌을 죽이는 것에 관한 연구도 이루어졌는데, 바로 사활이다. 이렇게 기본적인 정석·포석법, 기초 행마, 기초 사활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 초심자 딱지는 뗐다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여기까지 올라가기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정석과 포석법만 해도 수십가지가 넘으며, 사활 문제로 가게 되면 수천가지 경우는 가볍게 넘는다. 물론 이런 경우를 전부 외우는 건 불가능하고, 바둑을 두다 보면 주변 형세를 파악해서 유리한 수를 짚는 안목이 어느 정도 생기게 된다.

이렇게 바둑은 한 수 한 수를 깊이 생각하면서 두어야 되는 게임이기 때문에 한 판 두는 데 걸리는 시간이 굉장히 긴 편이다. 현대 프로바둑 기준으로, 가장 짧은 편인 TV 방송용 속기전의 경우도 한 판에 1시간은 족히 걸리고, 한국 프로 기전같은 경우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1인당 3~4시간은 주는 편이라 한 판에 거의 하루가 꼬박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일본 프로 기전같은 경우는 아예 각각 6~8시간씩(!)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틀에 걸쳐서 바둑을 두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일본 프로 기전에서는 봉수라는 룰도 만들어서 사용하는 중. 한국이나 중국 기전, 심지어 응씨배에서도 점심시간이 있는 경우에는 봉수를 한다. 현대 바둑에서 기록된 최장시간 대국은 1938년 일본의 바둑 명인 혼인보 슈사이기타니 미노루(木谷實)[13]의 대국으로, 각각 40시간의 제한시간을 부여받았으며 그 중 슈사이는 19시간 57분, 기타니는 34시간 19분을 사용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대국이 일반 대국처럼 한 판을 진득하게 잡고 쭉 둔 게 아니라 찔끔찔끔 두는 바람에 무려 158일에 걸쳐서 간신히 완성되었다는 점. 거의 반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봉수도 15번이나 행해졌다고.


2.2. 자유도와 복잡성[편집]


바둑은 체스나 장기와 달리 게임 시작에 돌(말)이 전혀 없고 돌을 어느 곳이든 스스로 자유롭게 두며 싸우는 턴 제 땅따먹기 게임이다. 비유하면 체스나 장기의 말들을 매 수마다 스스로 만들어가며 싸우는 게임이고, 상대 또한 마찬가지다. 체스나 장기는 게임 시작부터 배치된 말들의 개성이 명확하고 구조가 대칭돼 있어 적과 자신의 1:1 대립 구도가 명확하며, 말의 움직임이 한정돼 있어 그에 따라 최선의 효율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을 구상한다. 하지만 바둑은 아예 아무 것도 없이 돌을 놓아가며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매 승부마다 보드 게임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바둑 돌 한 개를 갑자기 상대 쪽 한복판에 놓아도 바둑에서는 전혀 룰 위반이 아니며 오히려 흥미로운 수로 꼽히기도 한다.

번갈아가며 바둑판에 돌을 얹어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고 상대의 바둑돌을 포위하면 잡는다는 매우 간단한 룰을 갖고 있지만, 정해진 방법이 없는 만큼 활동이 자유롭다는 것이 게임의 승부를 가르며 어려움을 내포한다. 따라서 귀, 눈, 덤, 뜀, 맥, 변, 빅, 집, 축, 패, 계가, 고목, 공배, 굳힘, 궁도, 단수, 미생, 빈축, 사석, 사활, 삼삼, 삼패, 쌍립, 소목, 속기, 악수, 오오, 옥집, 완생, 외목, 우형, 잇기, 장생, 장문, 착수, 천원, 판빅, 팻감, 포석, 행마, 호구, 화점, 환격, 화국, 가일수, 귀곡사, 귀 8궁, 끝내기, 날일자, 눈목자, 마늘모, 만년패, 버림돌, 빈삼각, 불계승[14], 빵따냄, 수상전, 수읽기, 순환패, 양단수, 양자충, 옥집삶, 접바둑, 초읽기, 촉촉수, 치받음, 패싸움, 호리병, 회돌이, 후절수, 꽃놀이패, 대궁소궁, 만패불청, 매화육궁, 오궁도화, 유가무가, 육사팔활, 좌우 동형, 착수 금지, 천지대패 등 무궁무진한 용어가 파생될 만큼 심오한 보드게임이다.

2016년 1월 20일에 19x19 바둑판에서 가능한 배치의 수가 완전히 계산되었다.#[15] 총 208,168,199,381,979,984,699,478,633,344,862,770,286,522,453,884,530,548,425,639,456,820,927,419,612,738,015,378,525,648,451,698,519,643,907,259,916,015,628,128,546,089,888,314,427,129,715,319,317,557,736,620,397,247,064,840,935가지로, 대략 10의 171제곱의 수이다. 이걸 계산하는데 15TB 용량, 8~16코어, 192GB의 램을 가진 서버가 몇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반상 위의 우주라는 바둑의 이명이 제대로 들어맞는 부분.

가능한 경기의 수는 구골을 뛰어넘는다고 하며[16], 똑같은 방법으로 계산한다. 그러나 패와 따낸 자리에 다시 둘 수 있는 룰을 적용하거나 착수 포기 등의 방법으로 바둑판을 전부 메우고 다시 따낸다면 또 다시 둘 곳이 360개 생기므로 무한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자유도와 복잡성 때문에 바둑은 재미를 알기까지 무척 오래 걸린다. 진입 장벽이 상당한 데다가 다른 놀이 문화가 발달한 현재, 바둑 인구는 점점 줄어만 간다. 할 만한 놀이가 정말 귀하던 70~80년대에 바둑이 인기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2.3. 두뇌 게임[편집]


이전에도 그런 의견이 어느 정도 있긴 했었지만, 알파고의 등장 이후 바둑은 응용수학의 한 갈래라는 점이 확실히 증명된 상태다. 최선의 수순을 찾는 것은 본질적으로 경로 찾기 문제와 동일하고, 형세 판단이란 곧 승률 계산, 확률 계산이다. 이외에도 바둑의 여러 부분들을 종합하여 고려한다면, 바둑 자체가 이산수학을 게임화한 것이다.

바둑은 현대에 양산되는 많은 보드 게임과 달리 철저한 실력 게임이다. '땅따먹기'라는 지극히 단순한 목표로 승패를 가르며, 그러다 보니 전략전술과 수단이 자유롭고(돌을 두는 방식이 자유롭고) 이기기 위한 방법을 찾는 길이 한둘이 아니다. 따라서 고도의 정신적인 인내력과 판단력을 요구하며, 수읽기와 끝내기의 과정을 찾아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 어려운 두뇌회전의 과정을 참고 견뎌내야만 실력이 늘어난다. 당연히 바둑을 배우는 과정에서 고수들에게 양민학살을 당하기도 쉽다. 여기서 못 견디면 실력은 절대로 안 늘어나고 흥미를 붙이기도 어렵다. 그래서 처음 배울 때부터 제대로 배워야 하기에 판돈이 걸리지 않은 판[17]은 상수가 봐주는 경우가 많다.[18]

초보자들끼리는 장난스럽게 둘 수 있지만, 전문적인 프로 기사들간의 대국은 그야말로 피를 토하다가 병사할 정도로 치열한 수의 전쟁이다. 이런 대국을 '토혈국'이라고 칭한다. 19x19 판 아래서 자신의 수와 상대의 수를 한 수 한 수 예측하며 온갖 변수를 고려한 뒤 최대의 효과를 이뤄내야 하는데 심지어 게임이 변칙적이라 매 번 새롭게 계산해야 한다. 쉬울 리가 없다. 옛날엔 몇 번 사례가 있으나 현대에는 피를 토하는 지경까지 갈 일은 없다. 옛날에 비해 인류의 영양상태도 많이 좋아졌고 옛날 바둑은 초읽기도 없이 대국 한 번이 몇날 며칠씩, 길면 몇 달까지도 이어지는 초장기 게임이었기 때문. 그날 대국이 다 안 끝나면 종이에 '여기에 두겠다.' 적은 뒤 판을 봉수하고 다시 만나서 대국을 이어갔다. 물론 헤어진 뒤에도 집에서 계속 그 판을 생각하며 머리를 쥐어짜고, 그러다가 결국엔 피를 토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혼인보 조와 명인과 아카보시 인테쓰 七단의 대국이 꼽힌다. 이노우에 겐난 인세키는 이노우에 가의 11세 당주로 혼인보 조와가 명인이던 당시 八단이었다. 인세키는 명인이 되고 싶었고, 이노우에 가문이 흥하기를 바랐다. 조와와 인세키의 대국이 성사되었고, 인세키는 대국에서 이기면 조와를 명인에서 끌어내릴 심산이었다. 대국일이 다가오던 어느날, 지방에 나갔다가 돌아온 제자 아카보시 인테쓰와 연습 바둑을 두었는데 네 판을 모두 졌다. 인세키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七단인 인테쓰가 조와를 이기면 명인의 위상에 더욱 흠집이 날 것이다. 인세키는 조와와의 대국에 제자를 내보냈다. 첫 날에는 인테쓰가 우세했다. 숨겨두었던 가문의 비밀 수법을 사용했다. 둘째 날에 불리하던 조와에게서 묘수 3개가 터졌다. 셋째 날에 대세는 백에게 넘어왔고, 3일 후 마지막날에 인테쓰는 돌을 던졌다. 승부가 끝난 뒤 몸를 일으키던 인테쓰는 입을 가렸고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아카보시 인테쓰는 두 달 후에 세상을 떠났다.

상대방이 아주 가끔 양보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면 상대가 더 기분이 나쁘다. 이건 무조건 자신이 승리한 걸 알고 조금의 손해는 볼지언정 극도로 안전하게 두느라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수를 통칭 "계산서 나왔다"고 말한다. 이창호가 전성기 때 초반부터 다른 선수들을 압살하는 바둑기보를 양산할 때, 중국 바둑계에서 "하늘은 어째서 마샤오춘을 낳고 또 이창호를 낳았는가."라는 곡소리를 할 정도였다.

알파고와 맞붙을 당시 이세돌은 태어난 이래 인생에서 가장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물론 이건 이세돌이 워낙 자신을 비관하는 비관파[19]이기 때문이고, 대표적인 낙관파박영훈 九단은 아무리 결과가 안 좋고 고통스러워도 "그냥 넘기면 되지" 정도로 훌훌 턴다. 박영훈은 지나치게 긍정적이라서 문제지만. 이세돌은 "안 받아도 될 스트레스까지 받는다"고, 박영훈은 "받아야 할 스트레스도 안 받는다"고 보면 된다.


2.4. 중독성[편집]


옛날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산 속 깊이 들어갔다가 우연히 동굴을 발견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길이 점점 넓어지고 훤해지면서 눈앞에 두 백발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무꾼은 무심코 서서 바둑 두는 것을 보고 있다가 문득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세워 둔 도끼를 집으려 했는데 도끼자루가 바싹 썩어 집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마을로 내려와 보니 마을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한 노인을 만나 자기 이름을 말하자, 노인은 그분은 저의 증조부 어른이십니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20]

[21]

다양한 오락거리가 개발되어 바둑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지만, 바둑은 여전히 많은 인구가 즐기는 보드 게임이다. 바둑에 제대로 맛을 들이면 일상생활은 물 건너 간다. 자기가 두는 게 아니라 바둑TV를 통해 프로 바둑기사들이 두는 것만 봐도 재밌게 보인다고 한다. 여기서 더욱 심해지면 그냥 동네 바둑에 끼어서 훈수도 두고, 아예 자기가 그 동네 바둑에 참여하다가 말기엔 밤에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알아서 격자가 그려지고 흑돌과 백돌이 놓이는 지경이 된다. 다른 여가가 생각이 안 날 정도.

한 번 제대로 배우기 시작하면 폐인을 여럿 양성할 수 있는 유서깊은 막장제조 게임이다. 고사에 "신선이 바둑 두는 것을 보다가 도끼자루 썩을 정도로 시간을 보냈다"고 하듯[22][23], 실제로 한 중생은 군대에서 한 번 바둑을 배워보겠다는 생각으로 상병 때 바둑을 할 줄 아는 후임을 앉혀놓고 아주 기초 중의 기초만 배웠는데 바둑을 두다보니 어느새 제대 날짜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축구, 장기와 함께 성행하는 군대 3대 스포츠다.

유머글 중에서는 바둑에 중독된 목사가 강단에 섰는데 예배에 참가한 사람들의 검은 머리와 흰 머리가 바둑돌처럼 보여서 기도를 올리다가 마지막에 '아멘'이라고 말한다는 게 그만 '아다리'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다리는 '맞다'를 뜻하는 일본어 あたる(当る)가 명사형인 あたり(当り)로 바뀐 것. 바둑 용어로는 한 수만 더 두면 상대의 돌을 잡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단수(單手)'로 순화. 게임 회사 아타리의 어원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바둑이 5단 이상이면 가정, 집, 직업 중에 하나는 없다고 한다.

재미를 알면 진짜 무섭다.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상기한 대로 행동(바둑용어로는 '행마')이 자유롭기 때문에 다음 번엔 누가 무슨 수를 둘 지, 그리고 어떤 수를 두면 다음엔 이걸 어떻게 풀어나갈지 생각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바둑에 한번 맛을 들여보면 남들은 재미 없어하는 바둑 대국 방송을 하루종일 누워서 보고 있는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들을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실학자 이덕무는 자제들에게 가르치지 못하게 할 것 4가지에 바둑을 넣기도 했다. 나머지 3개는 소설, 담배, 여색. 심지어 바둑을 가리켜 죄의 괴수라고 하거나 바둑두는 소리가 나는 집은 난잡한 집안인 걸 알 수 있다고 까지하고, 당시 왕 정조도 승정원에서 바둑판을 두고 종종 두던 걸 없앴다고 하며 비슷한 의견을 내는 등 지금의 게임규제론자들이 게임을 보는 시선과 유사한 말이 많이 남아 있다. 뭐, 이와는 반대되는 언급으로 공자의 어록 중 "아무것도 안 하느니 차라리 바둑이라도 두는 것이 낫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적당히 즐길 경우 괜찮은 취미 생활이라 인증받기도 했다. 유성룡은 국수급의 바둑 실력으로 유명했고, 이순신난중일기에 바둑을 두었다는 내용이 자주 나오는 등 조선에도 바둑을 즐긴 위인이 많이 있다.

현존하는 기보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중국 후한말의 군벌 손책여범과 같이 둔 바둑 기보가 있다. 바둑학 교수인 문용직(前 프로 四단)은 이 기보를 위작이라고 단정했다. 왜냐하면 정사 삼국지나 자치통감, 각종 당대의 기록에서 손책과 여범이 바둑을 두었다는 시기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고, 기보에서는 당대에 개념조차 잡히지 않은 포석이라는 것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문용직은 해당 기보는 18세기에 일본에서 작성되어 손책과 여범이 둔 기보라고 위장되었다고 주장했다.

중국 후한말의 장군 관우는 팔의 독을 제거하기 위해 뼈를 깎이면서도 마량과 바둑을 두어서 주변을 서늘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만큼 배짱이 두둑하고 대담한 관우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지만 마량조차 그 일에 신경쓰지 않고 무덤덤하게 바둑을 두었다 하니 바둑의 무서움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즐겼던 게임이었으니 각종 숙어들에도 바둑 용어가 쓰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초읽기에 들어가다", "이런 호구 같은 자식", "자충수를 두다", "신의 한 수"[24], "승부수를 던지다" 등이 있다. 언론에서 많이 쓰는 대마불사라는 표현도 바둑에서 나왔다. 또한 바둑은 도박의 왕이기도 하다. 실제로 조선시대 내내 바둑은 엄청난 인기를 지닌 도박이었고 꽤나 사회적 문제도 많이 일으켰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 기원을 세운 조남철 九단이[25] 내기 바둑을 강력히 반대한 덕분에 현재 바둑은 도박에서 꽤 거리를 두었다. 바둑을 내기로 배우면 깊이가 없어지고 꼼수를 익히는 안 좋은 습관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게임이 그렇듯 (즐기는 선에서는) 돈이 걸리면 몰입도가 확 달라진다. 프로 공식 기전은 내기 바둑이 아니지만 아직도 기원 등지에서는 대부분 대국이 내기 바둑이다. 물론, 짜장면 내기 등 소소한 내기도 많다.


3. 명칭[편집]


언어별 명칭
한국어
바둑[26]
바독[27], 오로(烏鷺), 혁기(奕・奕)
중국어
/(wéiqí)
일본어
(ご[28]), (いご)[29]
영어
Go[30]
Baduk, Weiqi
베트남어
C vây (碁圍)
에스페란토
Goo

영어 표기로 한·중·일 삼국이 각각 'Baduk', 'Weiqi', 'Go'를 사용한다. 일본 바둑을 먼저 접한 북미 및 유럽에서는 일본식 발음인 'Go'라는 표기가 일반적. 중국이 발원지지만 20세기 구미권은 주로 일본을 통해 동아시아 문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일본어 "고"가 대표하게 되었다.[31]

다만 바둑 자체가 서양권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으면서 'Go'가 '가다'라는 너무 자주 사용되는 일반동사라서 일상생활에 혼동이 많이 오는 관계로, 'Baduk', 'Weiqi'라는 표현을 쓰는 곳도 있다.[32] 한국기원이 미국 등 외국에 바둑 보급 사업을 하면서 쓰는 영문 명칭도 한국식 표기 그대로인 'Baduk'이다. 바둑 세계화를 위해 여러 보급사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Baduk'이라는 영문 표기도 조금씩 퍼진 것이다.[33] 다만 아직은 'Go'가 더 대중적이긴 하다.

학자간 견해차는 있지만, 한국어 명칭 '바둑'의 옛 어형은 '바독'이었고[34], 방언형으로는 '바돌' 등이 있었다고 본다.[35] 이는 (石)의 옛말인 '돓'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라도 방언 등에서는 지금까지 '돌'을 '독'이라 한다. 앞의 '바-'는 '밭'에서 비롯되었다는 의견이 가장 우세하다. 줄이 그려진 바둑판이 마치 경작한 밭처럼 보인다는 것에서 착안했을 수도 있으며, 집을 짓는 모습이 밭담을 쌓는 모습과 유사하다 생각했을 수도 있다.[36]


4. 국가별 현황[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바둑/국가별 현황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바둑 애호가는 전세계적으로 분포하지만, 과거에는 정식으로 프로 기사를 배출하는 국가가 한국/중국/일본/대만까지 단 4개국, 기원으로는 겨우 여섯 곳 뿐이었다.[37]

200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의 바둑 보급 사업에 따라 유럽연합을 관할하는 유럽바둑협회가 정식으로 창립되고 프로 입단제도[38] 및 대회가 시작되었다. 2016년에는 유럽연합선수권, 라쇼드퐁(스위스), 함부르크(독일), 암스테르담(네덜란드) 바둑대회가 개최되고, 한국 바둑기사들이 유럽 프로기사들을 지도하고 제자로 받아주는 등 사업을 하고 있다.

한중일 기사들이 주축이 되어 개최되는 대회를 국제대회 정도면 몰라도, 세계 대회라고 말하기도 좀 민망한 상황이다. 애초에 본격적으로 하는 나라가 동아시아 빼고는 없다. 그 외 지역 기사들은 실력이 넘사벽으로 한중일 기사들에게 처진다. 동남아나 유럽지역 기사들은 한국기원 단수로 初단 - 三단, 한국랭킹으로 300위 미만 수준.


4.1. 한국 바둑 스포츠토토 도입[편집]


이전부터 바둑에는 구경꾼들이 경기의 승패를 두고 돈을 거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이전부터 스포츠토토를 도입하면 좋지 않을까? 라는 의견은 계속 있었다. 이에 바둑에 스포츠토토를 도입하면 엄청난 돈이 들어오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실제로 공청회도 열었다. 할지 말지 아직 정식 발표가 나오지 않았고 논란도 있다.

다만 2013년에 와서는 그냥 흐지부지 된 듯하다. 스포츠토토 바둑 적용의 제일 큰 문제는 바둑은 승부조작이 너무나 쉽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로 사설토토는 바둑 쪽으로도 범람해서 문제가 된다. 승부조작의 마수가 언제든 뻗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가 2017년, 대한바둑협회한국기원이 다른 데에서는 반목을 하다가도 유소년 바둑인구 증가를 위한 예산 마련을 위해 바둑토토 추진을 서로 합의했다. 이에 2018년 한국기원 프로기사회에서 기사회 총투표를 시행하여, 찬성 101 vs 반대 59로 가결시켰다. 찬성의견, 반대의견, 투표결과 한국기원 이사회의 최종 승인을 거쳐서 문화체육관광부에 의견이 전달되면 실제로 바둑토토를 발행하게 된다. 바둑토토를 발행하는 것은 2019년으로 예정되었으나, 2023년까지도 소식이 없다.

사실 대다수의 바둑 사이트에서는 특정 대국에 대한 게임머니 베팅을 이미 시행해왔다. 이 때문에 한큐바둑 등 여러 바둑 게임이 19금 판정을 받았다.


5. 기사[편집]


기사(棋士)는 바둑이나 장기를 잘 두는 사람. 또는 직업으로 하여 전문적으로 두는 사람을 말한다. 기사에 대한 설명 및 연구생, 입단, 승단에 대한 설명 일체는 기사(바둑) 문서를 참조. 국내 바둑기사 랭킹은 이곳 참조.


6. 규칙[편집]


룰 자체는 의외라면 의외로 모든 보드게임 류를 통틀어도 쉬운 편이다. 하지만 실제 게임에서 발생하는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하여 고수가 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세한 룰은 여기를 참고.

의외로 입문자들이 많이 혼동하는 규칙은 '대각선으론 활로가 연결될 수 없다.'는 것. 대각선 5줄이 인정되는 오목에서 입문한 사람들이 자주 혼동한다.

동아시아를 위주로 한 비교적 좁은 저변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룰을 관장하는 협회가 부재해 사소하지만 한/중/일/대만간에도 계가 방식 등 룰 차이가 존재한다. 물론 한국식 바둑룰에 익숙해진 사람이 중국 룰이나 응씨배 룰을 기초로 한 대만 룰로 못둘 정도는 아니지만 반집승부가 많은 탑 프로 레벨에서는 유의미한 승률차가 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제한시간 룰 간격이 점차 짧아진 각국 흐름과 달리 지금도 국내 기전은 5시간 이상씩 주는 경우도 있다. 다만 국제기전에서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져서인지 이후엔 한중과 비슷한 시간대의 기전도 늘리고 있다.


6.1. 사전 규칙[편집]



바둑 경기 규정

제 1 장 경기용 도구

제 1 조 (바둑판)

가로·세로 각 19줄을 그린 평면으로 가로 42cm, 세로 45cm의 나무판을 사용하는 것이 표준이다. 경기용 바둑판의 두께는 일반적으로 2.5~7.5cm로 한다.

제 2 조 (바둑돌)

흑과 백으로 구분되어 있다.

흑은 181개, 백은 180개가 표준이다.

제 3 조 (바둑통)

바둑돌을 담는 도구이다.

통의 뚜껑은 잡은 돌을 보관하는데 사용한다.

제 4 조 (계시기)

계시기는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공인한 것으로 사용한다.

계시원이 담당하는 경기일 때, 주최 측과 계시기 종류와 방법을 협의할 수 있다.

제 5 조 (경기용 탁자와 의자)

탁자와 의자는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공인한 것을 사용한다.



6.2. 대국 규칙[편집]


  1. 흑과 백을 쥔 사람이 한 수씩 번갈아 가며 둔다. 이때 선공은 무조건 흑을 쥔 사람이 한다.[39] 단, 접바둑은 백을 쥔 사람이 선공을 한다.
  2. 돌이 놓이는 위치는 선과 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3. 선과 선이 교차하고 돌이 놓이지 않은 지점이라면 어디든지 돌을 놓을 수 있다. 단, 아래의 8~9와 같은 예외가 존재한다.
  4. 일단 놓인 수는 무르거나 움직일 수 없다. 단, 온라인 대국에서는 제한적으로나마 무르기를 인정한다. 조작 실수로 엉뚱한 곳에 착수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
  5. 집(家)을 많이 지은 쪽이 이긴다. 집의 개념은 다음 문서를 참조하자
  6. 중도에 기권할 수 있다. 기권을 흔히 '돌을 던진다' 또는 '돌을 거둔다'라고 표현한다. 또한 기권승은 불계승, 기권패는 불계패로 표기한다.[40][41]
  7. 상대방의 돌로 둘러싸인 돌은 죽은 돌이 되며 둘러싼 쪽의 대국자가 들어내야 한다. 잡힌 돌은 계가할 때에 상대의 집을 메운다.
  8. 사방이 다른 색 돌로 둘러싸인 곳에는 착수할 수 없다. 단, 둘러싼 다른 색 돌 중 끊어진 부분이 있어서 단수가 되어있을 때는 착수가 가능하다. 물론 단수가 된 그 다른 색 돌은 잡힌다.
  9. 동일한 패의 형태는 반복될 수 없다. 즉, 패가 나서 자신의 돌이 잡히면 그 바로 다음 수에는 다시 잡아낼 수 없고 다른 곳에 한 번 이상 둔 후에야 다시 잡아낼 수 있다(패의 규칙).

규칙 자체는 간단하나 제한된 바둑판 위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여태껏 수많은 수와 이론, 정석들이 연구되어 있으며 상대와 자신의 수 하나하나에 엄청난 변수가 생기기에 많은 생각과 계산을 필요로 한다. 흔히 바둑을 배운다고 하는 건 얼마나 효율적으로 5번을 실행시킬 수 있는지, 얼마나 효율적으로 상대의 5번을 방해하는지에 대해 배우는 것을 말한다.

정확히 말해 이 규칙은 엄밀한 것은 아니고 대략적인 것이다. 또한 5번의 경우 중국식 룰에 해당된다고 보기에는 좀 미묘하다. 자세한 규칙은 아래에 서술한다.

맨 위 규칙을 어겨 한 번에 두 수를 두거나 자신이 두어야 할 물체 이외의 것[42]을 두어서 패배를 시인하는 경우도 있다. 불계 참고.


6.3. [편집]


바둑은 흑돌을 쥔쪽이 먼저 두는데, 당연히 유리하기 때문에 백을 쥔 상대방에게 추가 점수를 주는데 이것을 덤이라 한다. 과거 일본식 덤은 4집 반 혹은 5집 반이었지만 바둑이 발전됨에 따라 흑이 갈수록 유리하다고 여겨져 2020년 현재 한국/일본은 일반적으로는 6집 반을 주거나 가끔 5집 반을 주는 대국도 있으며 중국은 7집 반을 준다. 이때 반집은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는 것을 막기 위한 인위적 장치라고 보면 된다.


6.4. 중국식과 일본식, 그리고 한국식 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바둑/국가별 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5. 서양식[편집]


페이지: 42/183(- 29 -), 접바둑 규칙은 43/183(- 30 -)

마침 이 규칙으로 흑이 마지막 공배를 차지한 바둑이 있어서, 이 기보로 계가법을 소개한다.
2015년 10월 5일 런던 알파고△2집반▼판후이

동아시아는 흑271로 마지막 공배를 메우면 바로 집을 센다. 이 바둑은 프랑스식이라 백272를 바둑판에 두었다. 따내거나 잡은 돌(사석)로 빈 자리를 채우면 아래 표와 같다.
271수 끝
대국에 쓴 돌
+
일본식 집
=
중국식 집
=
서양식 집
+
대국에 쓴 돌
272수 끝
흑 + 백
271
90
361
89
272
흑 + 백

136
47
183
47
136


135
43
178
42
136

흑 - 백
1
4
5
5
0
흑 - 백

중국식처럼 실전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서, 돌이 차지한 자리는 셀 필요가 없기 때문에 계가는 일본식 수준이다. 집을 셀 때는 중국식이나 전만법처럼 도 헤아리고(다만 사방에 양쪽 돌이 다 있는 공배는 세지 않는다.), 나머지는 일본식처럼 한다.


6.6. 기타[편집]


  • 프로 기사들의 실전 바둑에서 규정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아 심판들을 곤혹시키는 사례도 존재한다. 초읽기 상황에서의 화장실 가는 문제. 이는 오래전부터 문제시 되어 왔던 것으로 관례적으로는 상대 선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가면 시계를 정지해 주었다. 그러나 상대가 동의하지 않았거나 혹은 화장실에 얼마나 있어도 되는가(오래 있으면서 바둑 내용을 생각할 수도 있으므로)는 정해진 규정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7. 바둑의 역사[편집]



7.1. 중국[편집]


현재는 바둑판에 가로세로 19개씩의 선이 있지만 초창기에는 11줄~16줄인 때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그 발원을 명확히 알 수 없고 특히 중국에서는 지역마다 굉장히 다양하게 되어있어서 처음엔 몇 줄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둑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43] 중국 고대에 요 임금이 망나니였던 자신의 아들의 수양을 시키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요 임금은 신화적인 성격이 강해 실존인물인지 의심스러우나 적어도 춘추시대에 바둑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다. 가장 유력한 추측은 상나라 중기 ~ 주나라 초기 시절에 이미 원시적인 바둑이 나왔다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나 춘추시대 관련 기록을 보면 늦어도 주나라 초기 시절에는 바둑이 존재했으니 3000년은 묵은 게임이다.

예를 들어 기원전 6세기 사람 공자가 바둑을 언급하였다. 맹자 역시 바둑을 지나치게 두는 것을 경계하는 말을 남겼다. 맹자가 이야기한 다섯 가지 불효 중 두 번째가 '쌍륙이나 바둑하고 술 먹기를 좋아하여 부모의 공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며 같은 말을 소학(小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마천사기를 보면 전국시대의 인물들이 바둑을 언급하는 경우가 가끔 보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바둑판은 중국 전한시대 한경제 대의 바둑판이다. 나무판이 아닌 도자기를 깎아서 만들어졌으며, 일부 파편만 발굴돼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현대처럼 19x19 사이즈가 아닌 17x17 사이즈의 바둑판으로 추정된다. 또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바둑알은 서진시대의 물건이며, 특이하게도 돌을 깎아서 만들지 않고 모양새가 좋은 돌을 모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보는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손책여범이 둔 바둑이다. 이 기보에 네 귀 선착→걸침→눈목자 굳힘 등의 초보적 정석 개념이 이미 나온다. 손책-여범(孫策-呂範) 기보는 중국 송나라 이일민(宋李逸民)이 편저한 망우청락집(忘憂淸樂集)에 실린 기보인데 프로 기사 경력의 바둑 고수이자 저술가(문용직)는 이를 '위작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단언한다. 포석의 산책 - 고대 중국 포석의 갈등.

또한 원나라 시대에 작성된 사활 풀이집인 현현기경이나 관자보 같은 것은 오랜 옛날임에도 불구하고 난이도와 문제 풀이의 독창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현재 프로 바둑기사 지망생들에게 애용되는 사활집이다.

세설신어에는 남조 귀족들이 바둑을 둔 이야기가 몇 편 실려 있다. 바둑 실력도 서로 평가하였는데 구품관인법에서 따와서 일품(一品), 이품(二品) 등으로 평가하였다.


7.2. 한국[편집]


한국 바둑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들은 장수왕승려 도림을 백제에 보내 개로왕과 바둑을 두게 하는 한편 백제를 염탐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한국 바둑 관련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다만 이때 둔 것이 순장바둑인지는 논란이 있다. 오히려 순장바둑이 조선 말기에야 나타났다는 의견도 있다. 바둑사 연구가 더 진행되어야 할 듯. 여하튼 광복 이후 한국 바둑의 갈라파고스화 방지 차원에서 한국 바둑의 룰을 일본식으로 갈아탔기 때문에 지금은 순장바둑 룰은 아니다.

신라의 경우, 5세기 고분으로 추정하는 황남대총천마총에서 나온 자갈돌이 바둑돌로 사용된 것이었을 거라고 추정되고 있으며[44] 황남대총에서 같이 출토된, 이 바둑돌을 담았던 그릇으로 추정되는 중국산 칠기(황남대총 남분 '마랑'명 주칠기 바둑알 통)에는 3~4세기 중국 삼국시대~서진시대의 바둑고수로 '기성'(棋聖) 칭호를 받았던 마랑(馬朗)의 이름이 새겨져있기도 했다. 이러한 바둑용품이 황남대총에 부장품으로 묻힌 것을 볼 때 황남대총의 주인공도 생전에 바둑을 좋아했고, 이미 당대 신라에도 백제처럼 바둑이 보급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한편 7세기 초에 사망한 신라 귀족의 무덤인 경주시 용강동 고분 6호 석실에서도 신라 때 바둑돌로 사용한 듯한 자갈돌들이 발견되었다.

중국과 바둑 교류를 한 기록도 있다. 신라 효성왕 2년(738) 2월에 당현종성덕왕의 사망소식을 듣고 좌찬선 대부(左贊善大夫) 형도(邢璹)라는 인물을 신라로 파견한다. 이때 당현종이 '신라 애들은 바둑을 잘 둔다던데.' 하며 형도에게 양계응(楊季膺)이라는 바둑 고수를 부관으로 딸려 보냈는데 신라의 바둑 고수들이 모두 그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황제는 또한 우리 백성들이 바둑을 잘 둔다고 하여, 솔부병조참군(率府兵曹叅軍) 양계응(楊季膺)에게 조서를 내려 부관으로 같이 가게 하였는데, 우리나라의 바둑 고수들이 모두 그의 아래였다.

《삼국사기》 제9권 신라본기 제9 효성왕

신라 효성왕도 향가 원가(怨哥)의 배경일화와 같이 그 개인적으로 바둑을 상당히 좋아했지만, 당시 당나라는 기대소(棋待詔)라는 체계적인 전문바둑선수 양성소를 국가가 운영했던 나라이기에 현대 이전까지 바둑을 개개인이 게임으로서 즐기는 레벨이던 한국과 비교하면 이런 결과는 당연했던 건지도 모른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바둑은 성행해 궁녀들도 바둑을 취미로 많이 뒀다고 하지만, 일단 정부 차원에서는 조선시대 바둑을 기예(技藝)로서 낮게 여겨 조선왕조실록에 검색해보면 바둑의 폐해를 까는 기사도 제법 보인다. 그러나 워낙 재밌다보니[45] 실제로 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46]

한국의 현대 바둑은 일본에서 바둑을 배우고 온 유학파 출신인 조남철 선생이 한국으로 귀국하여 1945년 11월, 오늘날의 한국기원인 한성기원을 설립한 것이 시초다. 현대 한국 바둑 역사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바둑/한국의 역사 항목 참조.


2016년 7월에는 이세돌 九단이 다보스포럼에 참석하여 알파고와의 대국 과정을 소개하고 바둑에 대한 홍보 역할을 맡기도 했다. 세계 바둑계에서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것은 이세돌 九단이 사상 최초다.


7.3. 일본[편집]


한편 일본 정창원(쇼소인)에는 바둑판인 목화자단기국(木画紫檀棊局)과 바둑알인 감/홍아발루기자(紺牙撥鏤棊子, 紅牙撥鏤棊子) 세트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화점 수만 제외하면[47] 현대에 쓰이는 바둑판과 형태가 동일하고 현존하는 일본 최고(最古)의 바둑 세트로 알려져 있다. 백제의자왕이 선물로 보냈다고 알려져 있으며[48] 쇼토쿠 태자가 애용했다고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바둑알 색이 현재처럼 흑백이 아닌 빨간색과 감색(짙은 파랑색)이며 바둑알 하나하나에 꽃과 새를 새겨넣어서 예술적 가치도 높다고 한다.

바둑이 본격적으로 근대바둑으로 발전을 하기 시작한 것은 종주국인 중국이 아닌 일본에서부터였다.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거물들이 바둑을 좋아하였으며 그 결과 국가 차원에서 바둑을 관리하기 시작하였다.[49]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막부를 수립한 뒤 바둑을 무사들에게 가르치는 기소(碁所)라는 관청을 수립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의도는 전쟁이 끝나 할 일이 없어진 사무라이들에게 바둑을 두게 함으로써 관심을 돌리려는 생각이었다. 이 기소의 최고 책임자를 임명하는데 이 책임자(기소 명인)는 당대 바둑의 최고수여야 했다. 기소 명인의 녹봉은 당대 영주급인 데다 기소 명인이라는 칭호에 대한 매력 때문에 당대 바둑 고수들은 사활을 걸고 바둑 실력을 연마하였고 그 결과 이들을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4개의 바둑 가문이 성립이 되었는데 그들은 혼인보, 이노우에, 야스이, 하야시였다.

네 가문이 기소 자리를 놓고 수백 년 간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바둑은 급성장을 이루게 된다. 그 결과 현대 바둑의 이론이 정립되는데 즉 귀에 선착→변으로 발전→중앙으로 진출이라는 것이라든지 세력, 실리의 구분, 정석 등등이 거의 현대 바둑과 유사한 경지에 오르게 된다.

특히 이러한 막부 시대의 일본 바둑 기사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기사로는 혼인보 도사쿠가 있다. 도사쿠는 당대 13단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당대 최고수들을 모두 선 치수 이하로 접을 수 있는 실력자였다. 또한 도사쿠는 돌이 서로 얽혀있는 과정의 효율을 매우 중시하였고 따라서 이미 놓여져 있는 돌들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이용하는가 식의 새로운 방식의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막부 시대에서 도사쿠 이외에 널리 알려진 기사는 혼인보 슈사쿠로 그는 히카루의 바둑의 소개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는 어성기라 불리는 막부 앞에서 두는 바둑에서 19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다만 그는 기소 명인이 되지는 못했는데 그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숨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망시 七단이었고 따라서 명인(=九段)이나 기소(슈사쿠의 스승인 조와 이후 공석)가 될 수가 없었다.(또한 엄밀히 말하면 혼인보도 아니었다. 후계자로 지명된 상태에서 사망하였으므로.)

슈사쿠의 19연승은 당대 최고수를 상대로 한 것이며 아무리 1인자라 하더라도 한두 판은 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보기 힘든 대기록이다. 물론 이창호 역시 프로 기사들 상대로 41연승의 기록을 세웠으므로 불가능한 기록은 아니다.[50] 또한 당시엔 시간 제한이 없이 물 쓰듯이 시간을 쓸 수 있었으므로 현대 바둑에서 볼 수 있는 초읽기로 인한 착오 등이 적었다. 때문에 보다 정밀한 대국이 가능하였고 따라서 자기보다 실력이 떨어진 기사들을 상대로 전승을 하는 것이 지금보다 더 무난하였다. 선수인 흑이 유리하기에 덤을 주고 시작하는데 당시엔 덤이 없었다. 즉 비슷한 실력이면 덤 없이 흑돌 잡고 무조건 이긴다고 봐야 한다. 당시 바둑 연구가 덜 된 상태였기에 가능했던 것.

그 뒤 막부가 붕괴되자 기소가 없어져 4개 가문은 직격탄을 맞았고 그 결과 각 가문들은 해체되는 수순을 맞는다. 그 뒤 각 가문 출신들의 고수가 모여 일본기원을 수립한 뒤 신문사를 스폰서로 하여 혼인보라는 타이틀전을 개최하여 현대 바둑 선수권전(챔피언전)의 효시가 된다. 이들 일본 기사들은 한국과 대만 등에도 건너가 활발히 보급하였는데[51] 이때 한국 최고수와 일본 프로 기사와의 치수는 석점이었다고 한다.


8. 여성 바둑[편집]


파일:sgwefasdfsfas.jpg
2018년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대회 결승전. 최정 九단(좌) - 김채영 五단(우).

여성바둑은 특히 프로 세계에선 1980년대 초반까지는 루이나이웨이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고, 1990년대부턴 한국, 중국, 일본에서 조금씩 여자 프로 바둑기사들이 배출되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 이후로는 여자바둑계도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해, 2010년대 이후부턴 후술되어있듯 흥행 측면에선 여성바둑계도 남성바둑계 못지 않은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8.1. 남녀 실력 격차[편집]


Q: 바둑은 힘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도 여자가 더 잘하는데 바둑에선 왜 여자가 남자보다 약할까요.

A: (여자가 남자보다) 일반적으로는 감성적이고 이성적 힘이 부족하고 시야가 좁은 것 같아요. 두뇌가 다른 부분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여자가 남자를 이기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어요. 여자가 남자를 이기면 여자 아니다고 말하는 거죠. 또 여자 스스로 남자한테는 안 된다는 자격지심도 있고요.

- 전 여류 최강자 루이나이웨이 九단(2011년) 기사


Q: 남녀의 기량 차이에 대한 얘기가 다양하다.

A: 많은 스포츠 경기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뛰어나다. 판단력·예측력에서 차이가 나는 듯하다. 바둑도 그렇다. 남녀차이는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 32강전은 특별했다. 상대들이 실수를 하고 나는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임할 수 있었다.

- 2016년 전 여류 최강 위즈잉 五단 기사


남자 바둑 프로기사와 여자 바둑 프로기사 간 실력 차이가 꽤 나는 편이다. 2024년 2월 고레이팅 기준 세계랭킹 여류기사 1위인 최정 九단이 전체로는 71위이고, 그 다음인 위즈잉 기사가 135위다. 그나마 이것도 과거 90년대와 2000년대에 비하면 실력차가 상당히 좁혀진 것이다.[52]

2020년대 초반 기준 위즈잉(중), 최정(한), 셰이민(일), 왕천싱(중), 오유진(한), 조혜연(한), 김혜민(한), 후지사와 리나(일)같은 최정상급 여류기사들이라 해도 남녀 종합 메이저 기전으로 들어가면 본선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줄줄이 탈락하거나, 본선 1회전에서 탈락하거나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나마 2022년 최정이 삼성화재배에 참가해 변상일 등 최상위권 남성기사들을 꺾고 세계여자기사 최초로 결승에 진출해서 신진서에 져 준우승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이건 특이한 케이스고 일반적으론 메이저 대회에서 잘해도 16강 정도가 아직은 한계다.

그래도 바둑 역사 전체를 통틀어 '남자 최고수와 붙어볼만 하다'는 평을 들은 여자 기사가 있긴 한데, 바로 루이나이웨이 九단이다.[53] 전성기 때는 남녀를 합친 세계랭킹 20위권에 들었으며 응씨배 4강, 국수전 우승, 맥심커피배 우승 등의 기록도 가지고 있다. 국수전 우승 때는 4강에서 이창호를, 결승에서 조훈현을 꺾었으며, 천하의 이창호를 상대로 상대전적이 앞서기도 했다. 루이나이웨이는 중국 내부 문제에 휘말려 2~30대 시기를 거의 날렸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측면도 크다. 비교대상이 없는 역대 최강의 여자 기사이고, 정상급 남자기사들에 크게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조-서 양강 체제나 이창호-유창혁 시대에 다른 기사들이 우승컵을 들어올린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것을 감안하면, 루이나이웨이는 저들의 바로 아래 단계로 볼 수준이 됐다는 것.

흔히들 남자쪽이 여자보다 더 호전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겠지만 바둑에 있어선 오히려 반대다. 남자 바둑기사들과 여자 바둑기사들 대국 스타일이 꽤 많이 다른데 이것도 실력 격차의 원인으로 꼽힌다. 바둑은 실리를 중시하는지, 세력을 중시하는지, 전투를 중시하는지에 따라 기풍이 나뉜다. 남자 기사들은 각자 특징이 있긴하나 기본적으로 밸런스가 잡혀있다. 그런데 여자 기사들의 바둑 기풍은 십중팔구 전투형 올인이다. 대마 수상전 같은 게 걸리면 바둑이 그 자리에서 끝나기 때문에 남자 기사들은 일단 타협을 하고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 반면 여자 기사들의 대국에서는 타협 없이 강 대 강으로 충돌해서 대마 수상전 및 거대 싸움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전투 위주로 흐르는 여자 기사들 바둑을 중계하는 남자 기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가 "여자 바둑은 왜 이리 살벌한지 모르겠다"인데 보통 이렇게 '무서운' 대국들은 화끈한만큼 허무하게 끝난다. 어느 한 쪽이 물러서는 순간은 이미 역전할 기회가 지나거나 남아있다 하더라도 전투가 무기인 기사가 전투에서 졌으니 익숙하지 않은 다른 무기로 기회를 살려보기가 힘들다. 난타전이 이어져서 보는 사람은 재밌지만 이런 바둑은 상성을 쉽게 탄다. 전성기의 이창호알파고의 대국이 제일 완벽에 가깝다고 말해지는 것도 상대가 강공으로 나온다고 싸워주는 게 아니라 대국 전체로는 우위를 잃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승리를 굳혀나가기 때문이다. 이게 되려면 맞싸울 때와 타협했을 때 손해 계산이 정확해야 하고, 이 정도로 계산이 정확하지 못한 경우 선택의 여지 없이 눈앞에 보이는대로 싸워야한다. 그렇게 싸웠는데 매번 크게 이기지 못하면 눈에 안보이는 집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방어하던 상대가 마지막엔 작은집 차이로 승리를 가져간다. 알파고이세돌의 대국에서 이세돌이 부분 부분에서 포인트를 땄지만 알파고의 그림에 갇혀버리는 그런 상황이 남자 - 여자 바둑 대국에서도 나오는 것이다.

환경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이미 많은 기전은 오픈기전이고 제한기전에서도 성별에 따른 제한을 두지 않아 여자만 참가할 수 있는 여류기전은 있어도 남자만 참가할 수 있는 기전은 없다.[54] 단지 여류기사들이 본선에 올라오질 못해서 남성기전으로 보일 뿐. 또한 현대바둑은 기본적으로 기보들이 다 공개되고 신문에까지 기보가 연재될 정도로 정보가 오픈되어 있다. 즉, 남자 기사의 기풍을 흡수할 환경은 더할 나위없이 충분한 셈. 환경의 문제는 아니다.

또한 육체의 차이도 영향을 끼치는데, 바둑이 두뇌 스포츠라 신체능력의 영향이 없을 것 같아도 신체능력차의 영향은 엄연히 존재한다. 바둑은 뇌를 풀가동해야하는 고도의 연산활동이고, 이런 고도의 두뇌활동에는 당연히 칼로리가 소비되고 체력과 지구력이 영향을 끼친다. 졸리거나 지치면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경험을 누구나 해 보았을 것이고, 바둑도 이에 해당한다. 남녀의 두뇌는 계산능력 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백보 양보해서 남녀간 두뇌의 연산능력이 같아도 여성에 비해 체력이 강한 남성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결을 거치며 7kg정도 빠졌다고 하는데, 6일간 7kg면 육체스포츠 중에서도 야구같은 종목보다 더 체력소모가 크다.[55] 야구를 남자가 더 잘 하는 데에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신체적인 차이니까. 바둑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평소에 기사들은 1일 8~10시간씩 바둑만 두며 연습을 하고는 하는데, 상술했듯 1일 8시간~10시간씩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꽤나 체력적으로도 힘든 일로, 하루 1~2시간의 연습시간 차이가 수십년이 누적되면 실력격차가 어마어마해지는 것이다.

애초에 여성 선수 풀이 작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둑 하는 인구 자체가 극도로 남초인데[56], 바둑이 인기가 있던 20세기도 그런 마당에 21세기 들어선 PC방 등 다른 유희거리도 넘쳐나 그런데 가는 여자는 많아도 바둑 기원에 가는 여자는, 특히 젊은 여성은 눈 씻고 찾아봐도 매우 드문 극소수일 지경이다. 실제 이게 남녀격차의 한 원인일 순 있다. 다만 이 주장에 따르더라도 아직은 원천적인 남녀격차가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이는데, 중국의 여자 선수들은 한국의 남자 선수보다 인구풀로만 보면 더 많은 인재풀을 가지고 있음에도[57] 한국 남자 선수들은 잘만 들어가는 세계랭킹 100위권 안에 한두 명 밀어넣기도 힘들어하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58] 또, 세계 랭킹으로 따지지 않고 중국 + 한국 여자 선수 vs 한국 남자 선수로 생각해 봐도 정상급 한국 남자 선수를 확실히 이기는 여자 선수는 없다. 따라서 남녀간 바둑 실력 차는 아직 분명히 존재하며, 무조건 선수 풀이 작아서 그런 거라고 설명하기엔 다른 예시들이 있다.

또다른 반론도 있다. 스승의 집에서, 혹은 도장에서 많은 경우 숙식까지 해결하며 다른 공부에는 손을 놓고 연구생 생활에 매진해야 프로 바둑기사가 될 가능성이라도 생기는 상황에서 아들이 아닌 딸이 그런 길을 걷게 할 부모가 많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며 예를 들어 이창호가 만약 여자였다면 지금보다 보수적이었던 1980년대에 그의 부모가 아이를 조훈현의 집에서 먹고 자며 바둑을 배우게 보내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는 20세기 과거의 얘기다. 2000년대부터 이미 내제자 제도는 사실상 사라졌으며[59] 기원은 심지어 남자도 점점 안 가서 영업이 안 되어 도박장으로 불법영업하다가(...) 잡히는 뉴스가 태반인 현대에 이런 이야기는 루이나이웨이 젊은 시절에나 통할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둑계는 다른 스포츠 분야보다는 남녀격차가 적은 편에 속한다. 대놓고 운동능력으로 겨루어야 하는 육체 스포츠는 여자 국가대표가 남자 중고등학생이랑 겨루어야 하는데 비해[60] 바둑은 어쨌든 성인 남성과 여성이 대등한 조건에서 대결을 할 수는 있고, 여성 기사가 혼성 기전에서 남성 기사를 꺾고 우승한 사례도 없지는 않다.[63] 보드게임 계열 중에서도 쇼기의 경우 아직까지 남자들과 경쟁해서 프로 기사(장려회 4단)가 된 여성 기사가 아예 없고,[64] 체스도 전설의 여류선수 주딧 폴가(Judit Polgar) 1명을 제외하면 슈퍼 GM이라고 불리는 선수가 전혀 없는 지경이다.[65] 어쨌든 바둑은 순위 100위권 이내에 여자 프로기사가 존재하는 등 타 보드게임에 비해 꽤 격차가 적은 편이다. 2021년 최정처럼 남녀혼성에서 그나마 실적을 내는 타종목 선수는 매우 드물다. 스타 게이머 서지수도 본선리그 진출은 한번도 못했고, 프로리그 1승도 못했다. 최정은 그에 비하면 본선리그 진출 다수에 바둑리그에서도 꾸준히 실적을 내고 있으니 남녀격차가 상대적으로 적은건 맞다.[66]


8.2. 여성바둑의 높은 시청률[편집]


바둑TV시청률을 책임지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자바둑이다. 2018년 한국여자바둑리그 tv 시청률(0.358%)이 2018년 한국바둑리그(0.26%)보다도 높다.[67]

여성 토너먼트 바둑 기전한국제지여자기성전 시청률은 0.4%를 넘는데, 바둑 기전 전체 평균 시청률에서 농심신라면배(0.5%대)를 제외하면 제일 높다. 물론 이벤트 대국이나, 1~2회짜리 대회에서는 남자 바둑 기전 시청률이 간간이 더 높은 경우가 있는데, 농심신라면배를 제외하면 10일 이상 치러지는 전체 바둑 기전 평균 시청률에서는 여자바둑이 남자바둑보다 높다. 그리고 삼성화재배LG배에서 가끔 여자 바둑기사들이 본선에 올라오거나, 예선 대국에서 선전을 펼칠 때가 오히려 남자 바둑기사끼리 바둑 둘 때보다 시청률이 높다.

배구 V-리그남자 대회 시청률이 여자 대회 시청률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따라잡혔지만 그래도 역전을 허용하고 있지는 않다. 야구 KBO 리그축구 K리그, 농구한국프로농구, 당구 시청률은 당연히 남자 대회의 절대 우세. 그러나 바둑만큼은 아예 시청률에서 여자대회가 남자대회 시청률을 추월해버렸다.[68]

여자바둑 시청률이 남자바둑 시청률을 추월하게 된 이유는 정확히 알긴 어렵다. 그러나 한 이유만 원인이 됐다기보단 여러 원인들이 중첩된 결과일 것이다. 일단 한국여자바둑리그2015년 출범할 때부터 최대한 지역연고 밀착정책을 취한 것이 시청률을 올리게 된 시초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남자 바둑기사 대비 여자 바둑기사들이 외부 활동(바둑 보급, TV 출연)이 많은 터라 다른 방송에서 나왔던 경험을 토대로 일부 시청률을 끌어왔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여자 바둑기사들이 남성 기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력이 약하다 보니, 아마추어나 바둑 입문하려는 바둑 문외한 시청자들 입장에선 오히려 좀 더 이해하기 쉬워서 시청률이 높아진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69] 즉, 아마추어들이 바둑 공부하고 실전에 써먹기엔 오히려 약간 낮은 실력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

게다가 국내 여자 바둑의 경우 기풍이 남자 바둑에 비해 오히려 더 공격적이고 전투에 올인하는 스타일이다. 바둑에 이해도가 높은 매니아라면 수준 높고 밸런스가 잘 잡힌 남자 바둑을 선호하겠지만, 바둑 자체를 잘 모르는 라이트 팬 입장에선 여자바둑의 이런 처절한 공격바둑이 더 재미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여자바둑의 스타일 자체가 라이트 팬층에게 나름대로 소구하는 바가 있다는 것.

그 외 아무래도 남성 시청층이 많은 바둑TV 특성상 여성 기사들에게 끌리는 부분도 시청률에 아예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여성 바둑기사들이 꼭 미녀만 있는건 아니고[70] 인기있는 여성 기사들도 결국은 실력이 받쳐줘야 인기가 유지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성 바둑기사들에 비해선 패션적으로도 더 돋보이는 경향은 있다. 기본적으론 정장 스타일로 고정되는[71] 남성에 비해 여성 기사들은 패션에 다양성을 주는 경우가 좀 더 많은 편이다. 때문에 평균 연령대상[72] 젊은층 입장에선 누나, 언니나 또래, 동생 정도가 프로로 활동하는게 신기해서 볼 수도 있고, 중노년층 입장에선 딸이나 손녀 보듯 시청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특히 어린 선수들은 지고 나서 눈물을 보인다던지 하는 감성적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는지라..


9. 바둑과 병역[편집]


한국의 프로 기사들에게 처음부터 예술체육요원 자격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까진 한국 바둑의 역대 1인자인 조남철-김인-조훈현 모두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으며 서봉수, 유창혁 등도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예외적인 케이스로 일본에서 1인자로 군림하고 있던 조치훈만 유일한 면제였는데, 조치훈 본인은 국민학교도 얼마 못다니다가 중퇴했기 때문에 면제였다고 밝혔다.[73] 즉, 바둑은 당시 오락거리의 영역이었지 딱히 예술이나 스포츠로 인식되진 않았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바둑은 나름 머리 쓰는 고급놀이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당대 프로 기사들은 전성기가 40세라는 말도 할만큼 유명 기사들의 평균 연령대 자체가 높은 것도 있어서 대부분 타이틀을 딸 정도의 기사들은 이미 병역을 마친 상태였기에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지도 않았다. 허나 80년대 후반 이후 특히 90년대 들어 한국 바둑이 중국과 일본을 제패하고 무쌍을 찍는 가운데, 특히 병역 문제가 남아있던 이창호 기사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인식 변화가 생긴다.


9.1. 예술체육요원 자격 부여[편집]


프로기사들의 예술체육요원 계기를 제공한 것은 바둑기사 이창호였다. 1993년 이창호는 국내기전 12관왕, 연간 90승으로 당시 최다승 기록을 보유한 데다 국제기전에서도 조치훈에게 3:0 영봉승을 거두면서 동양증권배 2연패에 성공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창호가 신검을 받고 입대 영장이 나오는 1994년 7월이 되자 바둑계는 패닉에 빠졌다. 결국 한국기원 기사회 차원에서 '체육의 경우 국제경기 입상자는 예술체육요원이 있는데 바둑인은 그런 게 없다'며 국회에 프로 기사예술체육요원 제도의 확대 적용을 청원하였고, 105명의 국회의원이 여야 합동으로 진정서를 내면서 일사천리로 이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 법은 일명 '이창호法'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이창호가 최초로 그 혜택을 받았다.[74]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한중일 바둑 삼국에서 가장 권위 있다고 판단한 국제기전을 하나씩 선정하여 병역 특례를 줬다. 이것은 바둑을 예술로 보고 병무청에서 지정하는 국제 예술 대회 2위 안에 드는 사람에게 예술체육요원을 주는 것을 적용한 것이다. 한국에서 개최하는 국제기전으로는 동양증권배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IMF 사태로 대회가 중단되었다. 이후 삼성화재배나 LG배 가운데 하나의 기전을 정해 대체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2008년에 바둑이 체육특기로 분류되면서 없는 일이 되었다. 중화권에서 개최하는 기전으로는 응씨배가 있는데 엄밀하게 따지면 중국이 아니라 대만 개최의 기전이므로 '중화권'의 개최 기전이다. 또 일본의 기전에서는 후지쯔배가 선정되었다. 이 3개의 대회에서 2위 이내(우승 또는 준우승, 즉 결승에 진출하면 혜택이 부여된다)를 기록한 기사들은 모두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동일한 수준으로 예술체육요원이 될 수 있었다. 이들은 4주 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한국기원에서 예술·체육분야의 일환으로 복무했다.

이창호(3, 4회 동양증권배 우승)

  • 응씨배 특례자 (현존하지만 체육특기로 전환되면서 이후 비적용.)
최철한(5회 응씨배 준우승, 6회 응씨배 우승)

  • 후지쯔배 특례자[75] (2011년을 마지막으로 대회가 없어졌다.)
송태곤(16회 후지쯔배 준우승)
박영훈(17회 후지쯔배 우승)
박정상(19회 후지쯔배 우승)


9.2. 예술 분야에서 체육 분야로 변경[편집]


2009년부터는 대한바둑협회대한체육회 정가맹단체로 인정받고 또 바둑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종목으로 채택됨에 따라 체육특기로 분류되어 여타 스포츠와 같이 아시안 게임 및 올림픽 메달 획득 규정과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예술요원 제도는 적용되지 않게 되었고 체육요원 제도가 적용되었다. 예를 들어, 2009년 후지쯔배에서 우승한 강동윤은 선배들과는 달리 병역 혜택을 받지 못했고, 그대신 2010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며 병역 혜택을 받았다.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 특례자.
    • 강동윤 - 남자 단체전 금메달.
    • 박정환 - 이슬아 初단(당시 기준, 현재 은퇴)와 같이 혼성 페어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또한 남자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며 2관왕이 되었다.
    • 조한승 - 남자 단체전 금메달. 조九단의 경우에는 이미 현역 군인으로 복무 중이었기 때문에 단체전 우승 뒤 바로 보충역 예술체육요원(병역)으로 바뀌게 되었다. 금메달 획득 당시 말년 병장이었다.[76]
    • 참고로 이미 병역 문제가 해결된 이창호, 이세돌, 최철한과 처음부터 병역 의무가 없는 혼성 페어 이슬아는 모두 합법적 병역 브로커에 이름을 올렸다.

덧붙여 많은 사람들이 이세돌 九단이 바둑을 잘 둬서 예술체육요원병역면제를 받았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학력에 의한 면제(초졸-中3자퇴)이다. 비슷한 경우로 목진석 九단(중퇴)이 있다.[77]

바둑이 올림픽에 채택될 가능성은 희박하고,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정식 종목에서 제외됨에 따라 이후 어떻게 될 지는 아직 정확하게 나온 바 없다. 바둑계에서는 바둑이 아시안 게임에 다시 합류하지 못한다면, 이전의 이창호法 체제로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도 종목이 제외되었는데, 다시 중국에서 실시하는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나 다시 바둑이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 그와중에 국방부는 대체복무를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덕분에, 더욱더 혼돈의 도가니가 되었다.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바둑-체스-샹치가 정식종목에 추가되었다. 따라서 프로 바둑기사들의 병역면제 기회가 한번 더 부활하게 됐다. 여기에 출전한 남자 기사 6명 중에 병역 문제가 남아있던 사람은 신민준 9단 한 명 뿐이었는데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병역 혜택을 받게 되었다. 참고로, 신진서는 면제로 알려 졌는데, 학력으로 인한 4급 판정 이후 장기대기 면제로 추정된다.


9.3. 해군의 바둑 특기자 모집[편집]


아시안 게임에서 바둑 종목이 제외되었기 때문에, 이 문제로 바둑계가 불만을 표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바둑계는 이전의 이창호法 체제로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78]

일단은 해군에서 바둑 특기자를 선발하고 있다. 해군에 복무하면서 바둑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배려해 둔 상태다. 해군 신분으로 대회참가해 맥심커피배 준우승을 차지했던 홍성지 9단이 대표적 사례이다.


10. 바둑과 인공지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바둑/인공지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바둑 관련 인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바둑 관련 인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바둑 기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바둑 기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 바둑 용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바둑/용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1. 위기십결(圍棋十訣)[편집]


바둑을 둘 때 마음에 새겨야 할 열 가지 교훈. 바둑의 십계명에 비유하기도 한다.
  • 부득탐승(不得貪勝): 너무 이기려고만 하지 마라. 무조건 이기려고만 바둑을 두면 욕심이 끼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도리어 실력을 다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 입계의완(入界宜緩): 경계를 넘어갈 때에는 천천히 들어가라.
  • 공피고아(攻彼顧我): 상대를 공격하려 할 때에는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라.
  • 기자쟁선(棄子爭先): 바둑을 두는 사람은 선수를 다투어야 한다. 돌 몇 점을 버리더라도 선수를 취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는 뜻.
  • 사소취대(捨小就大):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먼저 얻어라.
  • 봉위수기(逢危須棄): 위기에 처하면 버려라.
  • 신물경속(愼勿輕速): 경솔하고 빠르게 두는 것을 삼가라. 한 수 한 수 깊이 생각하면서 두라는 뜻.
  • 동수상응(動須相應): 상대방과 움직임을 맞추어라. 또는 행마할 때에는 주변의 돌들과 호응시켜라.
  • 피강자보(彼强自保): 상대가 강한 곳에서는 내 돌을 잘 보살펴라.
  • 세고취화(勢孤取和): 내 세력이 약한 곳에서는 평화를 취하라(함부로 싸우려 들지 마라.).


13.2. 바둑에 관한 격언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바둑/격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읽어보면 알겠지만, 서로 묘하게 모순되는 격언들이 좀 있다. 아래에서 소개할 격언들은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고 어느 정도 '최선의 수'를 모색하는 것에 대한 가이드라인 정도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충분히 무시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격언은 격언만 잘 따라둬도 승리를 가져갈 수 있는 초급 때는 유용할 수 있지만, 기력이 상승할 수록 격언에 얽매이지 않고 한 수 한 수 깊은 수읽기 후 두는 편이 좋다. 프로나 높은 기력을 가진 인공지능의 기보를 보면 오히려 격언과 배치되는 실전적인 수를 더 많이 두는 것을 볼 수 있다.

  • 2선, 3선의 돌은 키워서 버려라.
  • 곡사궁은 삶, 귀곡사는 죽음으로.
  • 귀에서 시작해서 변을 거쳐 중앙으로.
  • 귀의 빗꼴은 공배가 중요.
  • 귀의 빗꼴은 죽음, 변의 빗꼴은 삶.
  • 귀의 특수성. - 묘하게 비튼 말이 '귀는 마술단지'. 특히 사활관계에서는 정말 마술이 따로 없다.
  • 꼬부림과 빈삼각은 같지 않다.
  • 끊으면 뻗어라.
  • 날일자는 건너 붙여라.
  • 네 귀를 빼앗기면 필패.
  • 대궁소궁 불상전. - 수상전에서 유가무가는 일반적으로 유가가 이기지만 양쪽이 다 유가일 경우는 집이 큰 쪽이 유리하다.
  • 두점머리, 석점머리는 두들겨라. - 자기 모양은 살면서 상대방의 모양을 쪼그라뜨리는 것이라 이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괜히 두점머리 두들김이라고 강하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 두 집 내고 살면 진다. - 대마가 두집나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외부에 막강한 두터움을 허용하고 뒷맛까지 모조리 없애서 역전할 여지를 줄여버릴 가능성이 무진장 높기 때문.
  • 됫박형은 패로 알라. - 이거, 프로도 무진장 헷갈리는 모양이다. 요다 노리모토가 오오다케 히데오와의 대국에서 착각으로 대마를 죽여버린 일이 있다. 참고로 둘 다 정상급 기사.
  • 됫박형을 알면 5단급.
  • 들여다볼 때 잇지 않는 바보 없다.
  • 들여다볼 때 이어도 바보. - 하도 예외상황이 많아서 그렇다. 장대말로 안형도 없이 몰리게 된다거나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럴 때는 변화구가 필요. 보통 주변의 상대 돌이 강할 때 고분고분 잇다가는 크게 말리는 모양새가 될 가능성이 높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다 잡히는 경우도 있다.
  • 매화육궁은 죽음.
  • 모르면 손빼라. - 돌 낭비하지 말라는 뜻.
  • 밭전자 사이를 째지 마라. - 좀더 강한 밭전자 째는 놈 사위 삼지 말라 하는 표현도 있다.
  • 은 삶.
  • 빈삼각은 우형의 표본.
  • 붙이면 젖히고, 젖히면 늘어라.
  • 빵따냄은 30집, 거북등은 60집.
  • 사귀생 통어복[79]이면 필승.
  • 쌍립자리가 급소.
  • 석점은 중앙이 급소.
  • 선치중 후행마. - '죽임은 젖힘에 있다.'와 대치되는 격언인데, 사활에서 둘을 적당히 배합해야 실력이 는다.
  • 아생연후살타 - 내 돌을 먼저 살리고 그 후에 상대의 돌을 잡으라는 의미.
  • 양곤마를 만들지 마라.
  • 양날일자로 달아나지 마라.
  • 양씌움을 당하면 필패.
  • 요석은 살리고 폐석은 과감히 버려라.
  • 유가무가 불상전. - 수상전에서 집이 하나 있는 쪽과 집이 아예 없는 쪽이 다투면 집이 있는 쪽이 반드시 이긴다. 다만 여기에는 무가가 안쪽 공배를 다 메우기 전에 유가가 바깥쪽 공배를 다 메울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이걸 두고 홍태선 사범의 경우는 이 격언을 가르칠 때 유가무가 불쌍해로 가르치는데, 대마끼리 얽히고 설켜서 싸움이 날 때 한수 차이로 유가무가로 잡힐 경우에는 정말 불쌍해서 눈물이 나오는 대국이라고. 정수현 9단이 최명훈 9단과 시합바둑에서 실착 하나로 수상전에 돌입했을 때 이 표현이 별안간 떠올라서 순간적으로 무참히 얼굴이 일그러졌다고 저서에서 언급했다. 그 바둑, 유가무가 때문에 한수 차이로 수십 점에 이르는 대마가 몰살당했다. 다시 말하지만 딱 한수 차이로! 그렇다고 착각하면 안되는 것이 프로바둑에서는 2수 이상 수상전은 미리 읽고 애초에 그 길로 가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1수 차이 수상전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다만 유가무가 상황에서는 무가 쪽이 공통 공배까지 전부 부담해야 하므로 이 공배까지 다 자신이 메우고도 겨우 1수 차이로 진다면 억울한 감정이 들 것이다.
  • 육사 팔활. - 변의 2선에서 몰릴 때에 돌이 6개가 늘어서 있으면 죽고, 8개가 나면 산다는 말. 7개가 늘어서 있으면 선수면 살고 후수면 죽는다. 귀의 2선이나 변의 3선에서는 사사 육활.
  • 2의 1에 급소 있다. - 실제로 귀 사활의 90%는 2-1이 급소다.
  • 장고 끝에 악수 둔다.
  • 적의 급소는 나의 급소.
  • 좌우 동형은 중앙이 급소.
  • 죽음은 젖힘에 있다.
  • 직사궁은 삶, 정사궁은 죽음. - 정사궁은 빈 점이 정사각형 모양으로 뭉친 4궁을 말하는데 포위당한 쪽이 연속으로 두 수를 놓아야만 겨우 살 수 있다. 포위당한 쪽이 한 수 놓으면 어떻게 놓아도 3궁이 되기 때문.
  • 을 모르고는 바둑을 두지 마라.
  • 판육궁은 삶, 귀의 판육궁은 죽거나 패. - 판육궁은 3x2 형태로 된 직사각형의 6궁을 말하는데 귀에 붙어있으면 완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외부 공배가 다 메워진 상태에서는 2의 2 지점에 치중하면 그냥 죽고 외부 공배가 한 점 있는 경우 2의 1 지점에 치중하면 패가 난다.
  • 는 요술쟁이.
  • 중앙으로 한 칸 뜀에 악수 없다.


14. 바둑을 소재로 한 창작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바둑/창작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5. 관련 커뮤니티[편집]




16. 그 외[편집]




16.1. 특수한 형태의 바둑[편집]


  • 9줄 바둑: 19줄의 기존 바둑의 라이트 버전으로, 주로 바둑을 처음 접하는 초보자들을 위해 많이 사용한다.
  • 13줄 바둑: 바둑을 간략하게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주로 많이 이용한다. 주머니에도 들어가는 작은 휴대용 바둑은 주로 13줄이다.
  • 일색바둑: 한 가지 색깔로만 두는 바둑. 백돌로만 둔다고 하면 한 대국자가 두는 백돌은 모두 흑돌로 간주한다. 히카루의 바둑에서는 쿠라타가 기원에서 마주친 신도우 히카루에게 일색바둑을 제안하여 히카루를 당황시킨다. 하지만 흔들림 없는 히카루의 모습에 자신의 수를 잊어버리는데 타이밍 좋게도(?) 그때 히카루도 자신의 수순을 혼동하여 돌을 던지고 말았다. 관련동영상 한국 바둑 영화 신의 한 수: 귀수편에서도 일색바둑이 등장한다. 프로연우가 말하기를, 프로 정도면은 일색바둑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 무석바둑: 돌 없이 바둑판만 놓거나, 아무 것도 없이 좌표를 불러서 두는 바둑. 지금까지 둔 수를 모두 외워야 하기에 일색바둑에 비해서도 난이도가 높다. 창작물에서는 고수들이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둔다고 나온다.
  • 맹기(盲棋): '암흑바둑'이라고도 한다. 눈을 가리고 두는 바둑. 국내에서는 목진석 九段(당시 八段)이 아마 5단의 실력을 지닌 시각장애인과 시범으로 둔 적이 있다.[80] 프로 기사들이 이벤트로 눈을 가리고 두기도 한다. 이것을 잘 하는 아마추어 유명인으로는 중국의 바오윈이 있다. 바오윈은 2014년에 상금 1백만 위안을 걸고 자신과 맹기를 둘 프로기사를 모집하기도 했는데 한국의 안달훈 九段이 여기에 도전했다.[81]
  • 다면기(多面棋): 한 대국자가 실력이 약한 상대 여러 명과 동시에 두는 바둑. 보통 바둑학원에서 강사들이 학생 여러 명을 지도할 때나 바둑행사에서 프로 기사들이 아마추어 팬을 여럿과 둘 때 한다.
  • 편지바둑: 편지로 두는 바둑. 수순을 편지로 주고받는 방식으로 둔다. 체스도 이런 방식으로 두기도 한다. '통신을 이용한 놀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원조 온라인 게임이라고 부를 만하다.
  • 역반(逆盤): Reverse Board. 바둑판의 1선이 정반(正盤)과는 반대로 三방 교점이 넷이고 나머지는 二방 교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에서 내려다 본 형태는 마름모꼴. 같은 삼백육십일 점이나 한눈에 들어오는 가늠치가 다르다. 그래서 화점도 천원 하나에 변쪽 네 개를 더해서 다섯 개만 있다. 판의 가장자리 형태도 정반의 귀쪽 각진 모서리와 달리 귀쪽은 직선 절벽이고 변쪽은 라운드진 곡선 코너를 그린다.
  • 테트리스 바둑: 테트리스 모양으로 돌을 잇지 못하는 바둑. 돌이 4개로 이어진 형태를 만들지 못한다는 규칙이 있는 바둑이다. 돌을 따내는 상황에서도 그 돌로 4개가 연결된 형태가 된다면 두지 못한다. 다만, 3개 이하, 5개 이상으로 돌을 잇는 것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직관적으로 죽을 것 같은 돌도 살고, 죽지 않을 것 같은 돌이 한순간에 죽는다. 온 갖 묘수는 다 나오는 바둑을 둘 수 있다.


16.2. 각종 분쟁[편집]




16.3. 사건·사고[편집]




16.4. 고전 바둑 묘수풀이 학습서[편집]


  • 현현기경 (1349)
  • 관자보 (1690)
  • 발양론 (1713)
  • 기경중묘 (1812)
  • 현람 (1833)
  • 사활묘기 (1910)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9 09:57:55에 나무위키 바둑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바둑을 가리키는 여러 명칭 및 명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명칭' 문단을 참고.[2] 체스와의 게임 룰에서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체스가 적의 왕을 압박하는 게임이라면 바둑은 자신의 공간을 지키는 게임이다. 빈 공간이라도 4X4 방식으로 차지하면 바둑 룰 상 상대가 귀퉁이를 잡아 없애버리고 역전을 꾀할 수 있기에 이런 공간을 미생(아직 살아 있지 않음)이라 부른다. 빈 공간이 두 칸 이상일 때부터는 바둑 룰 상 상대가 귀퉁이를 잡아도 제어할 수 없는 공간이라 완생(완전히 살았다)이라 부른다. 이런 공간을 살리는 것이 고단수들의 목표이기도 하다. 바둑은 복기를 하는데, 여기서 갈려지는 승패는 '얼마나 적을 잡았냐' 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의 공간을 차지했냐' 이다. 즉 바둑의 목표는 적을 잡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간을 더 넓게 살리는 '영역 싸움'에 가깝다. 적의 돌을 잡는 건 적의 공간 넓힘을 제어하는 쪽에 가깝다. 이는 동양의 전쟁사와도 무관하지 않은데,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지키고 번성하는 것이 전쟁의 최고(싸우지 않고 이긴다)라는 격언으로도 이 게임을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두 사람이 영역 싸움을 벌이고 얼마나 '집'을 더 만들었는가를 가르기 때문에 치열한 심리전이 벌어진다.[3] 인천과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퇴출되었다.[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참조.[5] 룰 자체는 여타 게임들보다 오히려 쉬운 편이라 아이들도 순식간에 배울 수 있다. '자신의 공간을 만들면 된다' 라는 매우 간단한 룰. 하지만 슈퍼 컴퓨터로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수가 많은데다 어르신들이 주로 즐겨서 배우지 못하면 하지 못하는 게임 정도로 정착돼 있다. 음악으로 비유하면 피아노와 비슷하다.[6] 13줄이나 9줄로 되어 있는 미니 바둑판도 있는데, 이들 바둑판은 초보자들이 연습용으로 두거나 간단하게 두고 싶을 때, 또는 휴대용으로 쓴다.[7] 선공을 하는 흑이 집만들기에 유리하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선 6.5집, 중국에선 7.5집을 백에게 인정 해주고 시작한다. 반집은 무승부를 막기 위한 가상의 집이다.[8] 바둑돌의 색깔이 흑/백인 것은 그냥 관례상 유지되는 것일뿐, 자신과 상대방의 돌을 구분만 할 수 있으면 색깔에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 실제로 백제 시대에 의자왕이 일본에 선물했다는 보물인 목화자단기국과 바둑돌인 감/홍아발루기자 세트에서 바둑돌들은 이름 그대로 바둑돌들이 짙은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칠해져있지만 이걸로 바둑을 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9] 머리는 쓰지만 몸은 편하기 때문에 연령대에 구애받지 않으며, 지도대국이나 내기바둑이라도 하면 모를까 게임 자체는 바둑판과 알만 있으면 돈도 들지 않기 때문에 남녀노소 참여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10] 다만 2025년 모집중단을 예고하고 있다. 어찌될지 지켜볼 일.[11] 1990~2000년대에는 두뇌 개발을 위해 아이들을 전문 바둑 학원에 다니게 하는 것이 유행할 정도였다.[12] 때문에 서양 오타쿠들은 틱택토를 최악의 게임으로 꼽기도 한다. 어차피 겨룰 필요도 없이 이미 다 끝난 무승부 게임이니까(...)[13] 조치훈 9단의 스승이다.[14] 상대방이 패배를 선언해서 승리하는 것이다. 일종의 기권승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둑에서는 상당히 자주 나온다. 끝까지 둬 봤자 패배가 뻔한 상황에 몰리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15] 여기서 사용하는 규칙은 중국식 룰, 즉 장생도 허용하지 않는 규칙을 따른다. 한국/일본식 룰에서도 패는 금지고 장생은 무승부니 결과 자체는 동일하다.[16] 간단히 말해서 우주의 총 원자 개수보다도 경우의 수가 많다는 것이다.[17] 다만 사람들의 막연한 편견과 달리 오히려 내기바둑판에서 고수들이 일부러 봐주면서 바둑을 두는 경우가 많다. 상식적으로 도박판에서 상대가 타짜인 것을 알면 도박판에 끼고 싶겠는가? 내기바둑판 또한 마찬가지이다. 과거에 전국의 동네 기원들을 돌아다니면서 판돈을 쓸어담던 고수들은 오히려 바둑을 일부러 티나지 않게 조금씩만 이기는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조금만 더 잘 두면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하는 기술을 썼다.[18] 비슷한 두뇌 게임인 체스를 다루는 체스닷컴의 경우, 컴퓨터가 불리하면 강한 수를 두고, 컴퓨터가 유리하면 봐주는 인공지능 봇이 있다.[19] 이세돌 九단은 부정적인 성격 때문에 조금만 기분이 나빠도 싫어하고 고통받는 것이 티가 많이 난다.[20] 즉 잠깐 바둑에 한 눈 팔았다가 마을에 돌아갔더니 백 년은 족한 시간이 흘러 있다는 의미다.[21] 발췌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3084[22] 난가(爛柯)라고 한다. 말 그대로 자루가 썩어 문드러졌다는 뜻.[23] 술이기(述異記)라는 책에 이 이야기의 자세한 기록이 적혀있다. 중국 진나라의 왕질이라는 나무꾼이 나무하러 산에 갔다가 두 동자가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정신 없이 지켜보다가 그 중 한 동자가 건네준 '과 비슷한데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무언가의 열매'를 받아 먹으니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아 그 덕에 더욱 정신없이 관전할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두 동자는 수명을 관장하는 북두와 길흉을 관장하는 남두였고 이런 우주구급 존재의 반상대결을 보게 된 나무꾼이 다른 동자의 손짓에 정신을 차리고서 바라보니 도끼 자루가 썩어있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나무꾼이 자루 없는 도끼를 들고 마을로 내려가니 자기가 알고 있던 사람들은 진작에 다 죽었고, 자기 집에 가보니 자기 증손자 뻘 되는 후손들이 자기가 나무하러 간 날을 기일(忌日) 삼아 자기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더라는 이야기. 우라시마 타로 설화나 소설 립 반 윙클과도 비슷하다.[24] 단, '신의 한 수'라는 표현은 전통적인 바둑 문화 내에서가 아니라 2000년대에 들어서 고스트 바둑왕에서 처음 등장해, 정작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더 많이 쓰이는 기묘한 표현이다.[25] 단급 표기는 아마추어의 경우 아라비아 숫자, 프로 기사의 경우 한자로 표기가 원칙이다.[26] 순우리말.[27] 고어.[28] 碁(바둑 기)를 '고'라고 발음한다.[29] 碁, 棋, 棊 세 글자 모두 '바둑 기'로 뜻과 음이 같은 한자지만 일본에선 碁를(棋는 き라고 읽음), 한국과 중국에선 棋를 주로 사용한다. 其(소리) + 石ㆍ木(뜻)으로 이루어진 형성자인데, 나무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두는 것에서 뜻을 취했다.[30] ご에서 영향을 받아 일단은 영어권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AI 알파고(AlphaGo)도 여기서 딴 것이다. 고고고[31] 비슷한 예로는 선불교를 일본을 통해 받아들여, 일본어 "젠"이 구미권에서 선을 뜻하는 일반명사가 된 예가 있다.[32] 문자로 쓸 때에는 'Go' 식으로 앞자를 대문자로 하고 앞뒤에 부호를 넣긴 해도 말로 할 때는 혼동될 수 밖에 없기에 서양권에서는 이를 이용한 개그도 있는 듯.[33] 일본기원이 바둑 보급 사업을 2011년부터 사실상 포기하고, 한국기원이 여류 기사들 위주로 바둑 보급사업에 나선 시점이 분기점 중 하나다. 아예 '보급기사'직을 따로 만들어서 국내 및 국외 지역에 바둑보급사업을 할 기사를 따로 뽑아 양성하는 과정도 만들고 있다. 일본기원의 선례를 따르지 않겠다는 생각인 듯 하다. 조혜연 9단, 박지은 9단, 문도원 3단, 이다혜 4단 등이 외국에 자주 나가서 보급사업을 펼치고 있다. 남자 일류 기사들은 한국 국내로 여류 기사들이 인재들을 데리고 오면 지도기를 맺어주는 멘토링을 하는 중이다. 2010년대 기준 목진석, 박정상 9단이 제일 적극적이다. 다만 일본기원은 최정상급 기사 이외의 문하생들도 나름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인프라가 나쁘지 않은 반면, 한국은 한국기원의 프로 바둑과 아마추어 바둑 사이의 괴리가 매우 커서 바둑에 재미를 느낀 서구권 유학생들이 한국기원 대신 일본기원으로 향하는 인구가 더 많다는건 걸림돌이다. 기원 건물 페인트칠부터 해야 그나마 의정부시로 2026년 본사 이전 계획이 있긴 하다.[34] 두시언해에 나오는 표기다.[35] 율곡 이이의 문집에서도 '바돌'이라는 표기가 나온다.[36] 기타 바다에서 왔다는 설, 한자 배(排)에서 왔다는 설 등이 존재한다. 하지만 '바다'에서 왔을 경우 두번째 음절이 생략된 이유를 해명하기 어려우며, 한자 '배'는 애초에 중세국어 시기에는 아래아가 있었기 때문에 아래아가 아닌 '바'가 이에서 유래했을 수 없다. 미국에서 가장 저명했던 국어학자 Samuel E. Martin 역시 '밭 + 돌/독' > '바돌/바독' 가설을 주장했다.[37] 일본이 일본기원관서기원 두군데로 나뉘어져 있다. 대만도 대만기원해봉기원으로 나눠져 있다. 다만 일본기원이나 대만기원이나 나라 이름 딴 기원이 제1기원으로 주도권을 쥐고 통합작업을 하여 관서기원, 해봉기원 주최 대회가 없어지고 입단대회도 통합되는 등 조치가 뒤따랐다.[38] 한국 입단시험 시스템(풀리그 후 듀얼토너먼트)을 받아들였다.[39] 체스는 반대로 백을 쥔 사람이 선공이다.[40] '불계'란 계가(집을 세어 승패를 가리는 것)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41] 프로 스포츠라 하더라도 룰상 기권이 있는 경우는 많이 있다. 하지만 바둑처럼 번번히 일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컬링도 기권이 자주 일어나는 스포츠 중 하나.[42] 주로 상대의 돌.[43] 고대 중국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정설이나, 명확하지가 않다보니 인도 기원설 등 여러 의견들이 있다.[44] 이 자갈돌 유물을 실제로 보면 검은색과 흰색이 잘 구분되지 않는 자연석 상태라서 이게 어떻게 바둑돌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신라고고학을 전공한 이은석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장은 원래는 흑백으로 칠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며 고분 내 환경적 요인으로 칠이 벗겨졌거나 발굴 이후 세척 과정에서 칠이 지워진 것으로 주장했다.[45] 전자기기도 없던 시절 바둑만큼 돈 적게 들고 머리는 굴리지만 몸은 편하게 꾸준히 할만한 기예도 드물긴 하다.[46] 임진왜란 당시 재상으로 유명한 서애 류성룡도 바둑 고수로 유명했다.[47] 현재 사용하는 9화점이 아닌 16화점식의 바둑판이다. 19x19인 것은 현재와 같다.[48] 756년에 작성된 토다이지 헌납기록(東大寺献納目録)에 백제 의자왕이 당대 중신이었던 후지와라노 카마타리(藤原鎌足)에게 선물로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일본의 일부 혐한들은 이 기록을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서 거짓말로 치부하기도 한다.[49] 본래 예나 지금이나 동아시아권에서 게임이라는 장르가 가장 득한 나라가 일본이다. 과거부터 일본인들은 테이블탑 형태의 게임에 몰두했고 지금도 전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게임개발,판매강국이다. 도박부분도 포함하여 예로부터 일본인들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의미로든 게임에 크게 심취한다[50] 현대바둑 최대 연승기록 1, 2, 3위가 전부 한국기원에 있다. 1위 이창호 41연승, 2위 김인 40연승, 3위 이세돌 32연승. 이외에 30연승 이상 한 현대 프로기사는 한중일대 통틀어서 단 한명도 없다.[51] 조선 말 유행한 순장바둑과 다른 일본룰식 바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초반 포석 쌓는거 외엔 두 룰간 차이가 엄청 큰건 아니지만.[52]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여자 바둑기사는 평균적으로 남자 바둑계에 비교하면 연구생 3~4조 레벨에도 안 된다는 평가가 주류였고, 2010년대에도 하위권 여자바둑기사들은 남자 연구생 레벨에 안된다는게 주류 시각이다.[53] 최정도 통합세계대회 준우승을 하긴 했지만 꾸준함 측면이나 신진서나 박정환 등 초일류 남성기사와의 상대전적에서 많이 밀리는게 약점이다. 루이는 전성기 이창호에게 (물론 이창호가 루이에게 유독 약한 것도 있었지만) 상대전적에서 많이 앞서기도 했을 정도로 호각이었다.[54] 기전은 아니지만 프로기사들이 참여하는 대회 중에는 아시안게임 바둑 종목이 남녀부가 분리되어 있다.[55] 다만 야구는 포지션에 따라 차이는 있다. 지명타자의 경우 바둑보다 덜 힘들다는 데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나, 선발투수는 등판하면 하루만에 4~5㎏씩 빠지는 수준으로 굉장히 체력적으로도 힘든 보직으로 포지션에 따른 차이는 있다.[56] 국내 바둑 연구생은 해마다 12명당 1조로 10조를 뽑아 120명을 꾸리는데 여성 연구생은 평균 20명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즉, 기본적인 인재풀이 모자란 것은 사실이다. 여론조사를 봐도 바둑 둘 줄 안다는 비율이 남성에 비해 여성은 거의 절반~1/5 이하 수준.[57] 다만 중국도 바둑은 남자가 더 많이 하는 종목이긴 하다. 게다가 젊은층으로 갈수록 비율이 줄어드는 것도 비슷하고.[58] 물론 이런 식이면 인구 대비 한국한테 발리는 중일 남성 바둑계도 이상해지긴 한다.(...) 그나마 중국은 2020년대 기준 수위권 다툼이 그럴 뿐 상위권 기사들은 이미 어느정도 압도하는 형국이지만 일본은..[59] 신민준 九단이 이세돌 九단의 내제자로 들어갔던 사례가 있긴 하다.[60] 여자 축구 국가대표는 남자 고등학교 팀(청소년대표가 아닌 그냥 선수 지망 고등학교 축구부)와 붙어도 상대가 안 된다. 볼을 다루는 기술, 경기장을 보는 시야 등에서는 뒤지지 않지만 남자의 스피드를 상대할 수가 없기 때문. 남자 고등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하지 않는데도 못 이긴다. 몸싸움까지 더해지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진다. 부부가 모두 세계구급이었던 배드민턴 스타 김동문-라경민 부부의 경우 15점 내기에서 11~12점을 주고 경기를 해도 김동문이 거의 이겼다고 한다.[61] 후지사와 리나는 2016년에 비공식 혼성 기전 이베로재팬배에서 시바노 도라마루 二단(당시)을 꺾고 우승한 적도 있다.[62] 약리전은 1~5회 대회까지 비공식 기전이었다.[63]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 국수전에서 조훈현을 2-1로 꺾고 우승한 루이나이웨이이다.# 루이나이웨이는 그 후 2004년에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에서 유창혁을 2-1로 꺾고 혼성 기전 2번째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루이나이웨이 외에도 2014년 중국 신인왕전에서 남성 기사 리친청을 2-1로 꺾고 우승한 위즈잉,# 2020년 약리전에서 쑨저 七단을 꺾고 일본 여류 기사 최초로 공식 혼성 기전에서 우승한 후지사와 리나,#[61] 약리전이 비공식 기전이었던 2006년 1회 대회 때[62] 리이시우 二단(당시)을 꺾고 우승한 셰이민의 사례가 있다.[64] 현재 일본 쇼기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류 프로 기사들은 전부 '여성 전용 프로 제도'인 '여류 기사 제도'를 통해 입단한 프로 기사들이다.[65] 20세기 중반 최고의 체스 선수라고 불렸던 바비 피셔는 '여성 챔피언은 나이트 하나 접고 붙어도 이긴다'는 식의 발언까지 했을 정도이다. 바둑과 달리 체스는 기물 교환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물을 떼고 시작하는 선수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럼에도 이런 말이 나온 것.[66] 앞서 예로 들린 일본 쇼기 프로리그도 마찬가지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로직 테이블탑 게임에서 남녀혼성 경기를 하면 남성이 유리한 건 데이터적으로 확인된 결과로 보인다는 게 지배적이며 뇌구조에 관련된 연구가 진행된 일도 있다.[67] 다만 그렇다고 수입이 더 좋냐 하면 그건 아니다. 물론 최상위권 바둑 기사들은 남성 기사들에 비해서도 크게 나쁜 수입은 아니지만, 동급 비교에선 밀리긴 한다. 2022년 기준 여성 최고수인 최정 9단 연 상금 기준 약 3억 8500만원 정도(전체 4위). 그 다음인 오유진 9단은 약 1억 6500만원 정도대(전체 8위)로 알려져있다. 참고로 전체 1위인 신진서 9단은 14억 4500만원 정도. 2위 박정환 9단은 5억 4300만원 정도. 물론 개인에 따라 상금 외 기타 수입도 있을 순 있다.[68] 사실 여자 대회가 옛날부터 남자 대회를 추월해 버린 다른 종목이 국내에 없진 않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골프. 물론 이건 박세리라는 스타 선수의 존재로 인해 가능했던 것이긴 하다.[69] 이건 AI보다 사람 바둑이 재미로만 보면 더 있는 것과도 어찌보면 일맥상통한다. AI바둑은 버그 아닌 딴에야 실수란게 있을 수 없지만, 사람은 그 날의 컨디션 등에 따라 얼마든지 고수도 실수를 할 수 있고, 이게 관객 입장에선 막판 역전승을 끌어내기도 하기에 끝까지 보는 재미를 주기 때문.[70] 한국에선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당시 이슬아 初단이 귀여운 외모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이슬아는 혼성 페어, 여자 단체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며 외모뿐만 아니라 실력까지 인정받으며 인기가 크게 올랐다. 나무위키에도 합법적 병역 브로커 항목에 이슬아 初단이 올라 있다. 다만 바둑은 기본적으로 실력이 좋은 기사가 더 주목받기 마련이기 때문에, 위리쥔 등 미녀 기사들도 프로 세계에선 성적이 안나오면 결국 도태되는 흐름으로 갈 수밖에 없다.[71] 보수적인 문화를 가진 일본 프로기사들은 아직도 정장에 넥타이까지 풀로 갖추고 대국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한국 프로기사들은 세미정장 수준.[72] 2020년대 초반 기준 아직 여성 시니어부는 활성화된 단계는 아니다. (2022년 들어 시니어리그 참가 조건에 '여자기사 40세 이상'이 추가되었다. 그전까진 남녀 공히 50세 이상.) 남성과 비슷하게 여성 역시 10~30대가 현역으로 뛰는 전성기. 물론 루이나이웨이처럼 그거 뭐임(...)하고 50대까지 현역 리그에서 용병 생활하며 젊은 기사들과 대국한 기사도 있긴 하다.[73] 비슷한 시기 유학간 조훈현같은 경우는 일본에서 중학교까진 마쳤다.[74] 사실 이것은 시대적 행운도 있었다. 바둑 자체가 어르신들도 즐기는 놀이다 보니 현역 정치인 세대에서 더 부각된 것도 있고, 당시엔 인터넷도 대중화되지 않은 시절이라 유명인들의 병역 문제에 대한 관심도 지금만큼 심하진 않았기 때문. 허나 2002년 월드컵과 2006년 WBC 대표팀이 특별 병역혜택을 받은 이후,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후로는 체육의 경우 올림픽, AG로만 병역 혜택이 제한되었다. 여하튼 이창호는 이러한 특별법의 혜택으로 이후 세계대회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75] 이세돌 기사도 해당 기간 우승했기에 특례자격이 있지만 학력미달(중퇴)로 이미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76] 2002년에 아겜 농구 금메달딴 현주엽이 상무 시절이었는데 금메달을 따고도 만기 제대를 했다. 말이 보충역 전환이지 사실상 그 기간 동안 한국기원에서 바둑두는 것이니 면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2010년 앞두고 군인이 올림픽 동메달, 아겜 금메달 이상을 거두면 혜택을 주도록 변경되었다.[77] 이세돌이 설령 학교를 고등학교까지 다 다녔다고 해도 후지쯔배 우승으로 충족요건을 갖추고도 남는다.[78] 이창호, 이세돌급 스타플레이어가 없다는 것이 크고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이 있기 때문에 제2의 이창호법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거기에 최근에는 병역특례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79] 네 귀에서 살고, 중앙에 집을 낸다.[80] 이때 출연한 시각장애인 송중택 아마 5단은 바둑돌에 돌기가 있어서 점자처럼 손으로 훑어서 바둑판을 읽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용 특수 바둑세트를 사용했고, 목 九段은 좌표를 부르는 방식으로 돌을 놓았다.[81] 그런데 이후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흐지부지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