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몸/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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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편집]


유리몸 문서에서 야구 선수들을 다룬 하위 문서이다. 가나다순으로 정렬한다.


2. KBO[편집]


  • 강지광 - LG 트윈스 투수 출신이지만 별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2차 드래프트로 넥센으로 왔는데, 2014년도 시범경기에서 맹활약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나, 손가락 부상으로 1군 데뷔를 하지 못했고 완치 후 1군 데뷔전에서 어이없는 수비로 중견수를 맡고 있는 유리몸 이택근과 충돌[1]하면서 시즌 아웃. 2015 시즌도 호기롭게 출발했으나 개막 직후부터 무릎에 통증을 느꼈고 5월말에 발목 부상을 당하면서 또다시 시즌 아웃, 7월에 무릎 연골 수술을 받으며 재활군 확정. 염경엽 전 감독을 비록해서 많은 이들이 주목했으나 부상으로 전혀 활약하지 못하면서 싸이버 야수라는 소리를 듣는다. 결국 2차 드래프트로 SK로 이적하면서 투수로 전향했지만 19시즌 중 통증을 호소하며 다시 타자로 전환(...) 했다가 1군 기록 없이 2021년 시즌 막바지에 방출.

  • 강철민 - 사이버 투수라는 말이 나오게 된 원인.[2] 2002년 무려 계약금 5억 원을 받고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며 큰 기대를 받았으나 데뷔 초반을 빼면 잦은 부상으로 2군과 재활군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이 선수를 받고 선수 두 명(김상현, 박기남)을 건네줬던 LG는…. 결국 강철민은 LG 이적 후 꼴랑 3경기 뛰고[3] 이듬해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당하고 말았다. 이 때문인지 강철민의 이름에서 비롯한 유리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 고영민 - 한때 골든 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로 두산 베어스와 국가대표팀 주전 2루수로 맹활약을 했으나 고질적인 허리 부상을 안고 사는 선수였고, 이로 인해 2009년 이후로는 부상이 심해지면서 점점 출장 경기수가 줄어들며 기량이 급격하게 저하되어 결국 이른 은퇴를 하고 말았다.

  • 곽정철 - 2005년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나 무릎, 어깨, 팔꿈치 등의 연쇄 부상으로 2007년이 되어서야 1군에 데뷔했다. 공익 복무 마친 후에도 수술로 기나긴 재활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2016 시즌에 돌아왔지만 개막 후 몇 번 등판한 뒤로 혈행장애로 다시 1군에서 말소됐다. 결국 2018년에 방출당했다.

  • 구자욱 - 출장 경기는 비교적 많지만 잔부상이 많아 실제 부상 빈도가 매우 높다.[4] 2015년에 신인왕을 수상하는 등 엄청난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막판 두 차례나 1군에서 빠지는 등 유리몸이 문제였고, 2016년에 그게 터져서 1달 반 넘게 출전을 못했다. 2017년 시즌은 이를 극복하고 144경기 전 경기 선발 출장했지만 2018년에는 시즌 초반 부상으로 인해 1달을 결장했다. 2020년에도 어김없이 3번 다쳤다. 김주찬처럼 100경기 이상 출전을 못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주전 선수치고 부상이 많은 편이다.

  • 구창모 - 2019년에는 개막하기도 전에 내복사근 부상으로 5월에 복귀하였고 10월에는 허리 피로골절로 포스트시즌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명단에서도 부상으로 빠지게 되었다... 또 2020년에는 전반기때 엄청난 활약을 보이다가 7월 말에 왼팔 전완부 염증이 발견된 후 무려 3달 가까이 1군 등판을 못하며 팬들을 속태웠다.[5] NC의 정규우승을 확정지은 10월 24일 LG전에서야 간신히 복귀했고 한국시리즈에도 출전했다. 2021년에는 한 술 더 떠서 골밀도 문제로 아예 시즌 개막 전부터 이탈한 뒤 7월이 될 동안 복귀는커녕 퓨쳐스 등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수술대에 오르면서 1년을 통째로 날렸다. 심지어 2022년 복귀를 준비하던 도중 러닝훈련을 하다가 미끄러져서 햄스트링 파열로 또 이탈해 5월에야 겨우 복귀해서 잘 던지나 했더니 8월에 또 팔꿈치 피로로 이탈했다.(...)[6] 이쯤되면 야구선수 이전에 일상생활이 가능한지 진지하게 의문이 드는 수준. 이렇게 심각한 유리몸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아예 홀로그램, 증강현실 등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래놓고 복귀하면 또 에이스 모드를 보여줘 NC팬들로 부터 구창모의 복귀는 새로운 FA 영입과도 같다고 평할정도.

  • 국해성 - 프로 초년부터 잔부상을 안고 살았고[7] 여기에 데뷔 첫 홈런이 중계 방송사의 사고로 인해 영상조차 남지 않아 사이버 타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장타포텐이 확실해서 몇 년 간 꾸준히 백업으로 기회를 받았고, 2018년 무주공산이 된 우익수 자리에서 페이스가 올라오나 싶었으나 주루플레이 도중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중상으로 시즌아웃되며 다시 사이버화했다. 2019년에 다시 복귀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들며 활약했으나 2020년 말 무릎 수술과 팔꿈치 수술로, 2021년 중반 팔꿈치 수술로 1군에서 활약할 기회를 놓쳤다.

  • 김강민 - 짐승이라는 별명과 이미지에 비해 은근히 유리몸이다. 시즌 도중 부상으로 이탈하거나 사구에 피격당하는 등의 악재로 부진하는 등 잘 풀리든 안 되든 우여곡절이 많았고, 이때문에 나름대로 화려한 커리어에 비해 전경기를 치른 시즌이 한 해도 없었고 100경기 이상 출장한 시즌도 의외로 얼마 없다. 하지만 팀에 김강민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할 만한 기량의 중견수가 마땅히 없어서 10년이 넘도록 주전 중견수로 계속 나오고 있었다.[8]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2019년부터 갑자기 회춘하면서 3년 연속 120경기 이상 출장에 불혹의 나이에 투수 데뷔까지 하는 등 활약하고 있다.

  • 김강률 - 팀의 셋업맨/마무리 투수가 주 보직임에도 매 시즌 다른 부위 다른 곳에서 잔부상과 통증이 터져나오면서 풀타임을 소화한 적이 얼마 없다. 이로 인해 두산 베어스의 2015년 이후 전성기를 이끈 선수 중 한 명임에도 정작 우승반지는 2016년 한국시리즈 말고는 얻지 못했다. 심지어 풀타임 주전을 소화한 2018년에는 정규시즌을 모두 치르고 한국시리즈 훈련에서 공을 밟고 넘어져서 발목이 골절되는 바람에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빠졌고 결국 덕분에 1년을 모두 날려먹었다. 2020년부터 1순위 마무리로 보직을 변경했지만 여전히 잔부상이 많다.

  • 김광현 - 데뷔 후 몇년간 에이스 역할을 했으나 이런저런 잔부상으로 인해 오랫동안 풀타임을 뛰지 못했고 2018년 복귀 이후에는 안정적으로 시즌을 소화해 내구성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는 듯 했으나[9] 메이저리그 진출 후 2021년 이닝을 많이 소화하지 않았음에도 3번이나 부상으로 엔트리에 빠지며 다시 잔부상에 시달리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낳았다.

  • 김동주 - KBO 역대급 우타자지만 누적스텟이 상당히 떨어지는데 이는 그가 커리어 내내 잔부상을 달고 다닌 유리몸이기 때문. 17년 프로생활 동안 전 경기 출장 시즌은 한 시즌도 없으며, 데뷔 초기부터 매년마다 손가락, 허리, 발목, 어깨 등에 내내 잔부상을 달고 선수생활을 했다. 김동주가 유리몸이 된 주된 이유는 고려대 재학 시절 잦은 포지션 변경과 체벌, 체중 증가 때문이었다.

  • 김병희 - 잘 안알려졌지만 김주찬도 울고 갈 수준의 쿠크다스. kt 내야진 뎁스가 약한데도 김병희가 잘 올라오지 못한 이유는 1년에도 같은 부위를 여러 번 다칠 정도의 심각한 유리몸이기 때문이다. 2021년 황재균이 부상으로 빠진 이후 1군에 올라와 좋은 활약을 하다가 6월에 또다시 부상을 당해 수술한 후 염증이 가라앉지 않고 본인도 슬럼프에 빠지며 1군에 복귀하지 못했다.

  • 김인태 - 대타 자원이던 시절에는 특별히 유리몸은 아니었지만, 2021년 주전으로 도약한 이후부터 잔부상이 굉장히 심해졌다. 그래도 2021년에는 정수빈과 박건우 등도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1군에서 아웃된 바 있고 그 시기를 잘 메꿔주고 있었던지라 특별히 주목받진 않았지만 박건우의 이적으로 주전 자리를 확고하게 꿰찰수 있게 된 2022년에는 개막 이후 한 달 동안 리드오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며 활약하고 있었으나,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하고 부상 회복을 막 마친 이후부터 무리하게 주루플레이를 하다가 또 1군에서 말소되는 등 여러모로 고생하고 있는 중이다.[10]

  • 김원섭 - 3할의 정교함과 4할 출루율의 선구안, 20도루의 빠른 발을 지녔으나 문제는 체력. 만성 간염 보균자로, 풀타임 출장이 사실상 불가능했다.[11] 이후 2012년 트레이닝 코치의 조언과 본인의 노력 등으로 어느 정도 체력 문제를 극복해냈다. 2012 시즌 120경기 출장을 기록하며 개인 커리어 사상 한 시즌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세우기도 해서 오명을 벗는가 했지만, 2013 시즌에 발목부상으로 또 다시 시즌 아웃. 2014년에는 보여준 게 없다가 2015년에 부활했다.

  • 김재율 - LG 트윈스의 1루와 3루를 맡는 거포 유망주로써 늘 큰 기대를 받았으나 매번 치고 올라오려는 타이밍에 상대 선수나 동료 선수와 경기 중 추돌사고로만 4번의 큰 부상을 당했다. 체구와 뼈대는 장대한데 부딪히기만 하면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나가는 걸 보면 은근히 내용물이 부실한지도. 김남석 시절에 큰 부상 이후 부모의 권유로 개명까지 했건만 이름 바꾼 뒤에도 세 번이나 부상을 당했다. 결국 한계를 느꼈는지 2019년 이후 은퇴.

  • 김주찬 - 2001년 롯데 자이언츠 입단 이후 매년 부상에 시달려왔다. 그것도 그 시즌 중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무렵에 갑자기 부상을 입어서 결장하곤 했다.[12] 재활 후 다시 컨디션이 올라갈 즈음에는 시즌이 끝나는 경우가 많아 팬들을 어이없게 했다. 2013년 FA를 통해 KIA로 이적한 후에도 시즌 시작과 동시에 눈부신 활약을 보이더니 한화 유창식의 공에 맞아 불의의 골절로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다. 후반기에 다시 복귀했으나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즌 아웃. 그리고 2014 시즌에서도 손가락 부상으로 3주 아웃. 그래도 2014년은 나머지 시즌을 다 채우면서 잘했으나 이미 족저근막염으로 외야수비를 풀로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2015 시즌에서도 개막한 지 한 달도 안 되는 시점인 4월 22일까지 3번의 부상을 당하며 유리몸의 극치를 보였다. 결국 규정타석 또 미달. 그나마 현재 KIA에서 한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 출장하였으나 7월 22일 NC전에서 정수민의 사구에 맞아 견갑골 미세골절 진단을 받았다.

  • 김진우 - 야구선수로써 좋은 몸과 재능 과 소가 아니라 호랑이라도 때려잡을 것 같은 모습을 가지고도 잦은 부상[13]으로 자주 이탈했다. 물론 본인의 방황으로 팀을 이탈한 임의탈퇴 기간은 예외다.. 평소 선수 탓을 거의 안 하는 김기태 감독 또한 늑골 부상 후 김진우와의 면담 중 얼굴이 붉어지면서 화를 냈으며 계속 이런다면 기회가 없다는 말을 할 정도. 그만큼 김진우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쳤다는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기아팬들에게도 어느순간 유리몸의 아이콘이 되버려 바사삵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2017 시즌 잠깐 살아나나 싶었으나 결국 5선발 경쟁에서 탈락했고, 패전조 정도로 1군과 2군을 오가느라 FA 요건 충족에 실패했다. 안잡아요 결국 2018년에 방출당했고 호주, 멕시코 등에서도 뛰며 국내 복귀를 시도했지만, 끝내 2019년 은퇴를 선언했다.

  • 김태완(前 삼성 라이온즈 선수) - 아래의 넥센의 김태완과 동명이인으로 이름뿐만 아니라 유리몸인 것까지 판박이다. 더군다나 KBO 최강수준의 쿠크다스, 샤프심으로서 홈런치다 갈비뼈 나가고 약간 삐끗만 해도 석 달을 쉬어대서 LG팬들 사이에서는 한 시즌당 한 달짜리 선수라는 오명까지 썼다. 2012 시즌을 끝으로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 2013년 삼성의 내야 백업으로 그럭저럭 활약했지만 여전히 부상 때문에 2군을 오락가락하였다. 그래도 한국시리즈에서는 조동찬의 공백을 메우며 활약하여 LG에 있었으면 절대로 못 얻었을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얻기는 했다. 하지만 2015년에는 다시 유리몸 인증..... 결국 선수생활 하면서 누적된 부상을 이유로 2016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다.[14]


  • 김회성 - 맞으면 크게 넘어가는 장타와 성실하고 열심히 노력을 많이 하던 선수로 많은 기대를 받았었지만 여기저기 오만데를 다치다보니 프로 생활 10여년간 100경기 아니, 90경기 이상 출장한 시즌이 단 한번도 없다. 16홈런을 치며 반짝 활약을 했던 2015년에도 83경기 출장에 그쳤으며 그나마도 9월 중순에 시즌 아웃되었다.

  • 노찬엽 - 초창기 LG 트윈스의 외야를 책임지던 선수로 1990년에 기록한 0.333의 타율은 2016년 현재까지 역대 LG 우타자 중 가장 좋은 성적.[15] 그러나 내구성이 너무나 안 좋은 유리몸이라서 풀시즌을 소화한 적이 별로 없었고 거기다 1993년에 투수가 던진 공을 안면에 맞은 이후로 점점 성적이 떨어지면서 34살의 이른 나이로 은퇴해야 했다.

  • 노진혁 - 고질적인 허리 문제로 부상이 꽤나 잦은 편이다. 나이를 먹고 나서는 이때문에 수비도 상당히 안 좋아진 편.

  • 닉 킹험 - 건강하기만 하다면 홈런이 조금 있기는 해도 이닝 이터 역할을 충실히 해줄 수 있는 선수이나 문제는 참 다양한 부위의 부상으로 인해 매년 1달 이상 결장한다는 것이다.(…) 한화에서도 건강할 땐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결국 다음 해 또 부상 당하면서 방출되었다.

  • 데이비드 허프 - 2016년부터 2년간 LG 트윈스에서 뛰었던 좌완 외국인 투수. 뛰어난 구위과 기량이 매력적이지만 미국 시절부터 틈만 나면 다치는 유리몸으로 유명했다. 2017년에도 시범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당해 시즌을 늦게 시작했고 7월에도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또 자리를 비우고 말았다. 결국 규정이닝을 못채우고도 스탯티즈 기준 대체선수 승리기여도 4.38을 찍었지만 풀타임 선발 소화에 대한 의문을 품은 LG와의 2번째 재계약은 무산되었고, NPB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했다. 현재까지도 건강한 허프는 엘지팬들의 만약~ 놀이의 빠지지 않는 소재.

  • 로베르토 라모스 - LG 트윈스의 2020년 부터 활약하는 외국인 타자이자 LG 외국인 타자 잔혹사를 끊어내며 1999년 이병규의 팀 개인 최다홈런 기록을 21년만에 경신했다. 하지만 맹수라도 싸우면 사지를 뽑아버리고 14.5mm 고사포로 몸통에다 수천발을 갈겨버려도 다 튕겨낼거 같은 무지막지한 근육과 풍채와는 달리 약간의 충돌이나 느린 공에 사구로 맞기만 하면 예외없이 결장티켓을 끊는 풍채와 안어울리는 유리몸이다.[16] 21년에는 부상과 부진으로 신음하다가 중도 퇴출되었다.

  • 루크 스캇 - 2014년 SK 와이번스에서 뛰었던 외국인 타자. 17년까지의 KBO 외인들을 기준으로 봐도 외인들 중 가장 경력이 화려했지만 ML 시절부터 유리몸 기질이 있었는데...아니나 다를까 SK 와이번스에 오자마자 초반에는 반짝 활약하다가 부상으로 2군에 가더니만 1군 복귀하고서도 여전히 부상에 시달리며 출장을 거르는 일이 빈번했다. 그리고 이만수 감독과의 언쟁 등 불미스런 사건을 일으킨 끝에 퇴출당했다. 외인은 경력 무관으로 일단 까봐야 안다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

  • 류지혁 - 두산 베어스 시절에는 크게 유리몸은 아니었던 선수였으나[17], 2020년 KIA 타이거즈와 트레이드 되고 팀의 주전으로 올라선 이후부터는 2020 시즌에서 7경기 뛰고 햄스트링 부상이 발생해 시즌 아웃, 2021 시즌에도 내복사근 손상 부상으로 빠지는 일이 많아졌다. 다 풀타임 주전을 확보한 상황에 타격감이 좋을 때 당한 부상이라 활약을 이어가지 못해 아쉬운 케이스.

  • 민병헌 - 두산 시절 부터 유리몸이란 평을 받다가 롯데로 FA 이적하면서 본격적으로 깨지기 시작했다. 이적 후 처음 2년 모두 성적은 나쁘지 않았으나 부상으로 한동안 빠지면서 먹튀 논란까지 생겼는데 3년차인 2020년 역대급 부진에 빠지게 되면서 같은 덕수고-두산 출신 선배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우려를 사고 있다. 그 와중에도 꾸준히 부상자 명단을 들락날락 거린다 하지만 급작스로운 증세로 사망에 이를수 있는 뇌동맥류 환자임을 감안해야 한다. 결국 2021 시즌 도중 뇌동맥류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은퇴를 선언했다.

  • 박노준 - 고교야구 최후의 스타이자 오빠부대의 원조. 올드 야구팬에게는 로망과 향수. 그리고 "인사이드 파크호텔!" "손가락 벌렸죠? 스플리터에요." 하지만 고교시절 이후 혹사로 인해 부상으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프로에 데뷔한 이후 그의 부상 이력만 봐도 어깨 부상, 손등 뼈 골절, 손가락 골절, 왼쪽 무릎 인대 부상, 갈비뼈 골절, 허벅지 근육 파열,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 거기에 고3 때 봉황대기 결승에서 당한 발목골절까지 포함한다면 오만데 부상당할 대로 부상당했다.

  • 박명환 - 전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소속 선발 투수. 2012년 시즌 후 LG에서 방출되었다. 이쪽은 원래는 유연성이 떨어질 뿐 유리몸은 아니었는데 김인식 당시 OB, 두산 감독의 혹사로 유리몸이 되어버린 케이스. 데뷔 후 2년(185이닝, 154이닝)을 제외하고는, 150이닝 이상 던지면 다음 시즌이 조금 안 좋아지거나, 아예 말아먹었다. 데뷔 셋째 해인 1998년에 187이닝을 던지고 3년간 104이닝(그마저 셋째 해에 77이닝), 2002년 185이닝을 던지고 다음해 100이닝에 방어율 5점대, 2004년 158이닝 던지고 2005, 2006년 각각 110이닝.[18] 그리고 2007년 FA로 LG로 건너간 뒤, 155이닝을 소화하고 퍼져버리고 또 부상으로 3년간 115이닝(역시 셋째 해에 76이닝)밖에 못 먹으며 LG 트윈스의 먹튀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지금도 대차게 까이고 있으며,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연봉 90% 삭감(5억 원에서 5천만 원) 크리를 먹었다.[19] 이렇게 된 원인은 원래 '갑상선 항진증'[20] 때문에 180이닝 이상을 소화할 투수가 못 되는데 김인식 감독이 데뷔 초에 너무 굴렸다. 2014 시즌부터 NC 다이노스에서 뛰다 2015 시즌 후 은퇴하였다.

  • 박민우 - 이쪽 역시 매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는걸로 유명하다.

  • 박석민 - 2010년대 최정과 함께 KBO 최고의 3루수 자리를 다투고 있으나 문제는 그놈의 유리몸...매년마다 고질적인 손가락 부상으로 평균 20~25경기씩 날려먹는데다가, 전 경기 출장도 본격적으로 뜨기 시작한 2008 시즌 외에는 없다. 16 시즌 삼성에서 NC로 이적한 후 커리어 하이급 성적을 찍나 싶었으나 17 시즌과 18 시즌은 유리몸 기질이 제대로 터지면서 완벽하게 먹튀. 그나마 2020 시즌 이후로는 유리몸은 아니지만 다른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다른 의미로 먹튀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중이다. 결국, 불미스러운 사건과 부진이 겹쳐 2022 시즌 후 연봉이 7억원에서 5천만원으로 93%나 삭감됐다.

  • 박재상 - 2001년 SK 와이번스에서 데뷔했으나, 데뷔 때부터 고질적인 목, 허리 통증으로 재활군에 있는 날이 많았고, 군 복무 후에도 유리몸 기질로 2009년 전 경기에 출장해 커리어하이를 찍은 뒤로는 계속 하향세이며, 최근에는 2군에 있는 날도 많아졌다. 이후 2016년 팀의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하다가 7월 28일 허벅지 부상으로 2군행. 2017년 후반 은퇴를 선언했다.

  • 박준태 - 2014년에 데뷔한 이래 부상으로 2군을 들락날락거린 횟수가 2015년까지 총 4번이다.

  • 배영섭 - 선수 시절 잔부상이 꽤 많았고 이로 인해 1군에서 말소되거나 결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구도 많이 맞는 편이었는데 특히 한창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을 때 사구를 맞거나 부상을 당해 아쉬움이 많았다. 결국 사구로 인한 몸쪽 공 대처의 어려움과 양쪽 햄스트링 부상 등으로 인해 비교적 빠른 시기에 은퇴했다.

  • 손호영 - LG 트윈스의 유틸리티 내야수.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실력을 인정받아 프로에 지명받는 데에 성공하고 방망이 실력을 높게 평가받지만 고질적인 햄스트링 부상을 달고 산다. 2020년 시즌에도 이것 때문에 잦은 2군행을 겪었다. 홍세완처럼 센터 내야수로는 지나치게 큰 체구(183cm & 85kg)가 원인인 듯.

  • 신정락 - 한화 이글스 소속 투수. 2010년 LG 트윈스에 지명될 당시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뽑힌 기대주였으나 매년 시즌 초반에 반짝하다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된 다음에는 시즌 끝날 때까지 소식이 없었다. 그나마 2013년부터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하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4년에도 부상 때문에 3군까지 가는 바람에 20경기도 못 뛰었다. 군 제대 이후 맞이한 2017년에는 그래도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보내긴 했다. 여전히 연투가 잘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듯 두 자릿수 세이브-홀드를 동시에 찍었으나 War이 0보다 낮다. 2018년은 살아나려 할 때마다 무리하면서 망했고, 2019년 월간 이벤트로 긁히는 날을 빼면 번번이 무너지며 전력 외로 분류된 뒤 고향 팀인 한화로 트레이드되었다.

  • 신종길 - 그전까지는 부상 소식도 없었고 본인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별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포텐을 터트린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유리몸기질을 보여줬다. 포텐 터진 2013년에는 중간에 부상으로 약 1달을 쉬었다. 2014년에도 부상으로 인해 잠깐 빠졌고. 2015년에는 시범경기에서 어깨에 공을 맞아 한 달 넘게 쉬었다가 다시 복귀 했는데 다음 날 또 부상으로 빠졌다(…). 2016년에도 종아리 부상으로 또 2군으로 직행했는데 파울타구에 맞아 또 다쳤다고(…). 이후 급속도로 내리막을 탔고 2018 시즌을 끝으로 은퇴.

  • 아도니스 가르시아 - 부진으로 방출된 루이스 히메네스와 2군행을 거부하고 미국으로 도망간 제임스 로니를 대신하여 2018년 LG 트윈스에 입단한 외국인 타자로 실력은 역대급이었으나 잦은 부상이 문제였는데 시즌 시작하자마자 부상을 당하더니 복귀 후 좋은 활약을 하다가 다시 부상을 당하고 재활하기를 반복하였다. 시즌 중 부진한 외국인 선수들이 방출되는 동안에도 실력은 좋다는 이유로 팀에서는 복귀만 기다려서 팬들은 왜 방출안하냐고 비난하였고 그 와중에 인스타나 쳐하면서 관광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이며 먹튀 및 금지어가 되면서 방출되었다. 아래의 정상호와 같이 근육량이 지나치게 많아 부상이 잦은 케이스.

  • 아티 르위키 - SSG 랜더스의 역사적인 첫 경기 선발투수이자 최초의 용병투수. 마이너-메이저 시절부터 가장 큰 약점으로 유리몸 기질을 갖고 있었고, 이미 KBO에 입성하기 전에 2차례의 토미존 수술을 받았었다. 지명 전인 2008년에 팔꿈지 뼈 제거 수술을 받았고, 2013년에 첫 번째 토미존을 받았었다. 이후 2018년 8월에는 팔꿈치 염증 부위에서 팔꿈치 뼛조각이 발견돼 토미존으로 이어졌었고, 2015년과 2016년에는 가슴 근육 부상으로 각각 2달 정도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KBO에 오고 나서도 3경기만에 옆구리 미세근막 손상을 입으며 한 달 반동안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가 복귀전에서 또다시 어깨에 통증을 느껴 엔트리에서 말소됐고, 이로 인해 결국 방출까지 이어졌다.

  • 안중열 - 롯데 자이언츠의 포수로써 kt wiz 지명 당시 초대형 포수로 각광 받았으나 롯데 이적 이후 2015년 8월 경에 샤워하다 자빠링 해서 정강이가 찢어지지 않나 2016 시즌에 덕아웃에서 실수로 또 자빠링하는 바람에 팔꿈치 미세골절상을 당했는데 이게 야구 인생을 제대로 말아먹고 있다. 심지어 이 부상 부위가 뼈가 웃자라는 바람에 2017년은 통으로 시즌 아웃(…) 롯데팬들 사이에서는 자빠링 두번 하더니 사이버 세계로 링크한거 아니냐는 자조섞인 말이 나올 정도. 그러나 2018년 4월 17일 드디어 2군 엔트리에 합류해서 부활...하나 싶었는데 2018년 4월 29일 퓨처스 리그 경기에서 도루하다 머리부터 땅에 또 자빠링을 했고 그 와중에 상대 유격수의 무릎에 니킥 형태로 안면을 크로스 카운터로 강타당하는 만화에서나 볼법한 장면을 연출해내며 뇌진탕 증세로 다시 나가리...이쯤되면 자빠링에 무슨 저주라도 걸린건지...분명 근육만 보면 튼튼해보이는데 넘어지기만 하면 결장 티켓을 끓어내는걸 보면 풍채와 달리 뼈나 내용물이 상당히 약한걸지도... 그나마 7월에서야 1군에 복귀하긴 했다.

  • 양의지 - 워낙 전성기에 보여준 압도적인 임팩트와 폭발적인 기량 덕분에 눈에 띄지 않지만 사실 알고보면 유리몸이다. 전역과 동시에 두산의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차면서 9년 동안 풀타임 포수로 활약했고, NC 이적 이후에도 주전 포수 자리에서 활약하는 등 크게 유리몸 기질이 두드러지진 않지만 포수라는 체력 부담이 심한 포지션을 풀타임으로 뛰어 오고 있었는데다 잔부상이 상당히 잦아 결장하는 일이 많았다. 2012년과 2013년 모두 시즌을 치르는 도중에 부상 한두번에 후반기를 완전히 말아먹었고[21] 최전성기였던 2014~2016년에도 시즌 도중에 종종 재활군으로 내려갔으며, 2017년의 경우엔 시즌 초반 페이스는 커리어 하이였으나 박세웅의 사구를 맞고 돌아온 이후 급격히 추락했고 한국시리즈에서도 매우 부진했다. 2018~2020년은 종종 시즌을 치르는 도중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가긴 했지만 그래도 양의지의 1군 데뷔 이후에 상대적으로 부상 이탈이 적었던 시기였다. 그간 풀타임 주전 포수로 고생하면서 누적된 후유증이 터진 2021년에는 팔꿈치 통증이나 체력 문제 등으로 시즌 과반수를 지명타자로 나왔고, 2022년 현재도 상당히 고전하고 있는 중이다.

  • 양창섭 - 삼성팬이라면 모두가 알고있는 대표 유리몸. 풀타임을 뛴적이 단 한번도 없으며 시즌 중 이탈하는게 대부분이다. 이미 고교시절에도 혹사와 부상경력 때문에 양창섭을 지명하려던 LG 트윈스김영준 으로 급선회한 이유이기도 했다.

  • 염종석 - 데뷔 시즌의 혹사로 인해 유리몸이 된 케이스. 데뷔 시즌 200이닝을 넘게 소화하며 17승 9패 평균자책점 2.33을 거두며 신인왕과 투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후 수많은 부상에 시달린다. 강병철 감독은 시즌 종료 후 염종석의 재활을 주장했으나 구단의 압력에 의해 쉬지 못하고 뛰게 되었고 그 결과는 염종석 문서의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많은 수술과 재활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서도 은퇴 시점까지 93승과 통산 방어율 3점대 성적을 거뒀음을 감안하면 혹사가 없었으면 어찌되었을지 하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는 투수.

  • 오재일 - 넥센 히어로즈 시절에 간간이 거포의 싹수를 보였으나 자리잡지 못하고 박병호가 이적해오자 결국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 되고 여기서 타격 포텐셜을 폭발시켰다. 컨택도 좋은편에 컨디션만 좋으면 홈런 신기록도 세울 기세로 엄청난 타격을 보여주다가 한달반 이상 아예 방망이가 안맞는 극단적 롤러코스터를 보여주는데 그 원인중 하나가 신체를 안가리고 터지는 각종 햄스트링과 특히 옆구리 근육은 고질병이 될 정도로 근육이 잘터진다. 그래서 주전으로 올라서고 삼성 라이온즈 이적 첫해까지도 1루수임에도 매년 규정타석을 아슬아슬하게 채우며 선수생활 내내 30홈런을 한번도 못때린 원인. 정상호 처럼 지나치게 근육량이 많은것도 원인인듯.

  • 오재필 - 공익으로 복무를 하고난 이후인 2011년도부터 간간히 기회를 부여받았고 실제로도 괜찮은 활약을 하며 팬들이 기대를 하게 만들었지만 전신 마취만 7번을 할만큼 부상이 엄청나게 잦은 편이었고 결국 2013년 6월 27일 스스로 은퇴를 선언, 팀을 나와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하게 되었다. 현재는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 중이다. 그간 지쳤었는지 선수생활에 더 미련은 없다고 한다.

  • 워커 로켓 - 2021시즌 전반기에는 150km대 강속구 투심과 위력적인 체인지업으로 KBO 타자들을 그야말로 갖고 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친구따라 크보 거쳐 1년만에 빅리그 돌아가는 거 아니냐는 두산 팬들의 우려(?)도 있었지만…중반기 들어 줄부상에 시달리며 2달 가까이 결장했고, 후반기에 복귀했지만 구속이 확연히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전반적인 투구 내용은 나쁘지 않았으나 팀이 PS 순위경쟁 한복판에 있는 10월에 또 부상으로 이탈하며 재계약 가능성이 사실상 없어지게 되었다.

  • 윤규진 - 데뷔 초기의 혹사로 인해 유리몸이 되어버린 케이스. 2014년 제대 후 한화의 마무리를 맡으며 2015년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8월 중순 어깨 충돌증후군으로 시즌 아웃되었다. 이후 어깨 수술을 받았다. 16 시즌 중반부터 선발로 간간히 나오다가 17 시즌 후반부터는 완전히 선발로 고정된 상태다. 그러나 19 시즌 스프링캠프 도중 어깨 부상을 당해 시즌 내내 나오지 못했고 시즌 끝나고 FA 자격은 채워 신청까지 했지만 팬들에게 양심없단 소릴 들으며 까이는 신세.

  • 윤석민(투수) - 대런 드라이포트와 함께 세계 최강 유리몸. 프로입단부터 2012년까지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다운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2013년에 어깨 부상으로 불펜으로 뛰었고 하락세를 보였다. 2014년에는 메이저리그에 진출에 성공했지만 시즌 내내 마이너리그에서만 있었고 마이너리그에서도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희대의 먹튀가 되버렸고 이후 2015년 친정팀 KIA에 4년 90억원 계약으로 복귀했다. 이해 정상적인 어깨가 아니었고 팀의 사정으로 마무리 투수를 하였는데 팀내 역사상 최초 30세이브를 기록하는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그 다음해인 2016년에 선발 투수로 뛰지만 4월 완투패 이후 어깨 부상으로 시즌을 날려버렸다. 이후 12월에 어깨 수술을 받아 재활을 하며 2017년동안 꾸준히 희망고문을 하며 팬들에게 상상 속의 동물, 먹튀, 유리몸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허나 복귀하지 못했고, 결혼 소식에도 악플이 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2018년에는 복귀하긴 했는데 형편없는 피칭을 선보이며 그냥 먹튀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결국 2019년 10.5억에서 2억까지 연봉이 깎였지만 그마저도 많다는 비아냥만 이어졌고, 또(…) 통증이 재발하면서 팬들은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2017 시즌 후 어깨 웃자람뼈 제거 수술 이후 몇년간 재활만 줄창 했는데 어깨 통증이 2019 시즌을 마친 시점에서 아직도 있다고 한다. 결국 통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2019 시즌 끝나고 은퇴를 선언했다.[22]

  • 윤석민(타자) - SK 와이번스의 내야수. 두산 베어스 시절 장타력을 갖춘 3루수로 각광받았으나 매년 오만데를 다치는걸 무한 반복하면서 결장티켓을 자주 끊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 이건욱 - 2014년 SK 와이번스에 1차 지명되어 입단했으나 곧바로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며 임의탈퇴 처리되어 재활에 들어갔고, 2015년 재활을 마치고 그해 말 교육리그에 참가했으나 발가락 골절상을 당해 2016년을 거의 날려먹었으며, 2017년에는 1군 스프링캠프에도 참여해 그나마 터지는 듯 싶다가 캠프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옆구리 부상으로 또 귀국(…)하며 재활에 들어갔다. 그래도 2020년 부상을 극복하고 선발로 완전히 정착했다. 그러나 2021년 6월 9일 kt전의 선발로 나서서 1.1이닝 던지고 어깨 통증 때문에 강판되었다.

  • 이대은 -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유리몸. 고교 시절 혹사와는 거리가 멀었음에도 부상이 잦다. 마이너리그 시절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공백기를 보낸 바 있고, 일본프로야구를 거쳐 경찰 야구단에서 복무할 때도 부상으로 중간에 등판을 거른 적이 있었다. 2019 시즌 1군 데뷔 후에도 시즌 개막 두 달이 지나지 않아 부상으로 두 번이나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사실 신인 드래프트 참가 결정 전에 빚었던 논란 외에 이대은에게 우려했던 점이 바로 내구성 문제였다. 결국 타순이 돌기 시작하면 공이 맞아나간다긴 하지만 강속구로 1이닝은 확실히 막는다는 걸 캐치한 이강철 감독이 마무리로 전환시켰고 이후 두자릿수 세이브를 기록하며 김재윤과 정성곤의 공백을 지우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2020 시즌에는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이었던 공 스피드마저 현저히 떨어지면서 맞아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퓨처스로 내려간 뒤에는 허리 통증을 이유로 재활군으로 내려갔다. 시즌 종료 후에는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결국 2021 시즌 이후 결혼한지 불과 한 달 만에 은퇴를 결정했다. 다만 은퇴는 부상 때문이라기보단 야구에 대한 의욕 상실이 크다.[23]

  • 이범호 - 한화 이글스 시절만 해도 연속경기 출장기록을 이어나가는 등 오히려 금강불괴에 가까운 내구성을 가졌던 선수지만 KIA 타이거즈로 국내복귀를 한 이후 급격하게 유리몸화되었다. 2011년 8월 7일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여 1달 넘게 결장하더니 2012년에는 5~6월 한달 반 정도 출장하고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먹튀, 유리멘탈이란 안 좋은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그런데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도 인조잔디였는데?[24] 그나마 2013년에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는지 평균 커리어로 돌아왔다. KIA 타이거즈에 온 이후 계속해서 부상을 호소하였기 때문에 팬들 중 일부는 이범호의 부상이 '햄스트링이 생길 것 같은 병'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25] 결국 햄스트링 부상으로 주루 속도와 수비 범위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2019년 중반 은퇴.

  • 이병규(작뱅) - 군 면제를 받을 정도로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경기에 나오는 날보다 나오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다. 이 때문에 감독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래도 이 경우는 한 번 유리몸이 깨졌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부진, 부상과 회복, 부활을 커리어 내내 반복하고 있다. 2014년에는 양상문 감독에 의해 중용되어 생애 처음으로 규정타석을 채우며 잠실에서 OPS 9할을 찍는 등 풀타임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이듬해 개막전에서 목에 담에 걸려 결장했고, 좀처럼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며 툭하면 룩삼을 적립하여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계속된 부진에 결국 2군에 내려갔다가 콜업된 후, 2015년 7월 26일 잠실에서 열린 kt wiz와의 경기에서 만루 홈런을 쳤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만루 홈런을 친 직후 옆구리에 통증이 왔고 다음날 1군에서 말소되었다. 시즌아웃. 2016 시즌에도 잔부상에 시달렸으며, 2017 시즌에도 2군에서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을 거의 날렸다. 이 유리몸 기질 탓인지 17 시즌 종료후 2차 드래프트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롯데 이적 후 2018년에는 기량은 확실함을 증명했으나 시즌 막판에 종아리에 사구를 맞아 근육 파열로 시즌 아웃. 그리고 2019 시즌에는 재활과 부진이 겹쳐 10경기도 나오지 못했다. 2020년도 전반기를 통째로 2군과 3군에서 지내다가 9월 1일 1군 등록. 그동안의 빈 자리를 만회하려는 듯 거의 2년여만의 부활해 맹활약하고 있다. 이젠 팬들도 유리몸의 대명사 취급해 그러다 깨진다, 파손주의 드립이 흥하고 있다.

  • 이용규 - 리그를 대표하는 중견수이자 교타자 중 하나이지만, KIA 시절부터 매년 부상으로 서너 경기 빠지는 등 유리몸 기질을 보였고 결국엔 어깨 수술까지 받았다. FA가 되어 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후에도 매년마다 20~30경기씩은 부상으로 빠지며 제대로 풀타임을 치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특히 2016년에도 시범경기에서 손 부상으로 인해 개막 엔트리에 합류하지 못하고 조금 늦게 합류해 고타율을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시즌 막판 또다시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하고 말았다. 대신 3할 5푼의 타율관리는 잘했다 2017년에도 WBC 후유증으로 인해 결국 개막 엔트리 포함에 실패하였고 이후 돌아왔으나 얼마 안가 다시 손목 골절로 말소되는 등 유리몸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한화에서의 FA 계약 기간동안 역대급 중견수 SWar을 기록했으나 4년 내내 풀타임 시즌을 치르지 못했을 정도니...[26] 17시즌 종료 후 최후의 양심인지 상황 판단력인지 FA 신청을 미루고 연봉 5억 삭감을 받아들여 1년 4억에 새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 때문에 18 시즌 팀 내 타자들 중 상위권의 승리기여도를 기록했음에도 언제 깨질지 모를 것을 우려한 프런트와 줄다리기를 이어가다 2+1년 최대 26억의, 기존의 팀 기조에 비해 약간 기대 이하의 계약을 체결했다.

  • 이원석 - 원래 그다지 유리몸이라는 이미지는 없었으나, 어느정도 나이가 든 2019년~2020년 두 시즌간 부상을 상당히 당했다. 잔부상 포함해서 6회가 넘는 부상을 당해 공백이 상당했다.

  • 이천웅 - LG 트윈스외야수. LG 유리몸 계보를 잇는 신흥 유리몸의 부도수표(…). 항상 캠프 때 외야수 주전 경쟁에서 앞서가고 매서운 타격을 보여줘 기대를 걸게 하지만 튼튼하게 생긴 겉모습과는 다르게 시즌만 들어가면 햄스트링에 인대부상에 별별 부상을 창의적으로 당한다. 그래도 18 시즌 이후 주전 중견수로 자리잡는데 성공했고 19 시즌에는 138경기를 출전하여 커리허 하이를 세웠다. 하지만 2020년 손가락에 데드볼을 맞으며 주전자리를 아예 홍창기에게 뺏겼다.[27] 잊을만 했더니 2022년 초에 직장암이 발병하며 바람 잘 날이 없다.(…)

  • 이택근 - 원래 튼튼했으나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된 2010년부터 고질적인 허리부상을 달고 다녔다. 2010년, 2011년은 부상으로 인해 안 나온 경기가 더 많았으며 2012년에 FA를 통해 친정팀 넥센 히어로즈로 복귀하면서 좋아지려나 했으나 손바닥 부상이니 허리 부상이니 하면서 부상으로 경기에 못 나오는 건 여전했다. 그래서 히어로즈 팬들도 50억짜리 유리몸이라고 부른다. 2013 시즌 염경엽 감독이 부임하면서 관리를 하자 그나마 부상으로 인한 결장이 줄어든 편이다. 14 시즌 커리어하이급 성적을 냈으나 이후 꾸준히 결장하기는 한다.

  • 이학주 - 클러치 실책, 극악의 볼삼비, 워크에식 문제에 가려서 그렇지 잔부상이 많은 스타일이다. 마이너 리그 시절 당했던 십자인대 파열 부상이야 돌발 사태라고 해도 KBO 리그에 들어와서 부상이 잦은 편.

  • 이현곤 - KBO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아마 때는 광주일고에서 최희섭, 정성훈, 송원국과 함께 충격과 공포급의 내야진을 구성했었으나, 프로에선 박명환을 고생시킨 질병으로 유명한 갑상선 항진증, 족저근막염(보행시 압통, 통증, 경직을 동반하는 병), B형 간염[28] 등 야구선수에게 치명적인 질병과, 그외에 온갖 잔부상으로 '제 2의 이종범'이 될 것이란 아마 때의 명성에 못 미치고, '제 2의 김종국'이 되어버린다. 타격은 약하나 수비는 잘한다는 뜻. 그래도 이런 몸으로 2007년 0.338의 타율로 타격왕과 최다안타를 기록했지만 고질적인 체력 문제로, 활약이 미미해졌고, 결국 2014년 이후 은퇴하였다.
광고를 부르는 사나이[29]로도 유명하다. 우연이 아닌게 수비 잘하는 주전이라 경기에 많이 나오고, 게다가 유격수라서 타구도 많이 온다. 타격은 약하니 9번을 치는데 당연히 출루가 적고 아웃이 많이 된다. 게다가 9번에게 출루를 허용하면 1번으로 이어지고 투수 교체 타이밍이 되는것이다.

  • 이형종 - 과거 대형 투수 유망주 였으나 고교 시절 정신나간 수준의 혹사로 몆차례의 수술과 재활을 했으나 연이은 통증 재발로 결국 타자로 전향하고 외야수를 맡고 있다. 타자전향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야잘잘의 모범을 보여주고 높은 실링을 보여주나 타자전향후 매년 여기가 깨지고 저기가 깨지며 풀타임 출장을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지나치게 몸을 안사리며 타석에 너무 붙는 타입인데다 유난히 데드볼을 많이 얻어맞기도 한다. LG팬들조차 이형종을 SSG 랜더스최정에 비유할 정도로 몸에 자석이라도 붙은거 아니냐고 할 정도. 2020년 에도 어김없이 시범경기 막판에 손가락에 공을 맞으며 두달을 날렸으나 규정타석을 꽤 미달하고도 17홈런의 괴력을 보여줘서 풀타임만 뛰어주면 엄청날거라고 기대하지만 팬들은 또 깨질까봐 불안해하는중. 기질 자체가 그러니 어쩔수 없다. 덕분에 홍창기가 출전시간을 늘리며 주전으로 발돋움 하는 계기가 됐지만.(이형종이 복귀한지 얼마안되 이천웅이 데드볼로 결장티켓을 끊은것도 있다.) 2021년에도 어김없이 발목 부상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자 간신히 2할을 넘기는 이천웅(…)이 주전으로 뛰고 있다.

  • 임병욱 - 20대 초반 시절 히어로즈의 차세대 주전 중견수 후보로 매시즌 주목받았지만, 매년 개막 이후 조금 못 하다가 컨디션이 좀 올라온다 싶으면 어느새 부상으로 사라져 있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데뷔 시즌이던 2014년부터 발목 골절로 시즌 아웃되어버린 것을 시작으로 팔꿈치, 손목, 손가락 등에 골고루 부상을 입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9년에는 부상없이 풀시즌을 소화하긴 했는데, 정작 해당 시즌에는 무홈런 삼진왕을 먹었다. 컨디션을 끌어올리면 부상이고, 부상관리가 잘 되면 퍼포먼스가 안나온다는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수준. 군대를 다녀오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으나, 2022년 군 제대후 팀 복귀마저도 부상을 입은 상태로 했다.(...)

  • 장지훈 - 삼성 라이온즈2017년 1차지명을 받은 강속구 우완 투수 유망주이지만 고교시절부터 오만데가 돌아가면서 부상을 자주 당하다 보니 고교 시절에도 출장경기수가 적었고 프로에 와서도 3년째 틈만 나면 부상으로 장기결장 티켓을 끊는다. 삼성팬들조차 인저리 프론으로 당연히 여길 정도.

  • 잭 루츠 - 2015년 두산 베어스가 전년도에 괜찮은 성적을 냈던 외국인 타자 호르헤 칸투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데려온 외국인 타자였으나, 개막 직후 잔부상으로 두 차례나 1군에서 말소되었고 결국 5월 초 웨이버 공시되면서 2015년 외국인 선수 퇴출 1호가 되었다. 두산의 용병타자 흑역사.

  • 정상호 - 신흥 유리몸의 최강자.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다. 상대를 압도하는 좋은 체격과 파워를 자랑하는 포수로, 처음 솩빠들이 생각했을 때엔 박경완을 이을 대형 포수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으며, 풀타임을 뛴다면 20홈런은 거뜬할 것이라는 평가까지도 나올 만큼 2009년 후반기의 그는 엄청났다. 그러나... 2010 시즌 고관절 부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날려 먹어 재활 중인 박경완이 마스크를 써야 했으며, 박경완은 이 후유증으로 제대로 경기를 못 뛰고 2013 시즌 후 은퇴하고 말았다.
2011년 박경완의 대안으로 다시 주전 포수가 된 정상호는, 시즌 초반엔 문제없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중반부로 갈수록 체력고갈 부진에 빠진 데다 시도때도 없이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 때문에 나온 희대의 오판 중 하나가 바로 최동수를 포수로 돌린 것. 거기다가 최경철이나 김정훈, 최정, 심지어 김강민까지 돌아가면서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2011년 7월에는 샤워를 하다가 발을 다쳐서 못 나오는 황당한 일까지 일어났다. LG 트윈스로 이적해서도 유리몸 기질을 버리지 못해 먹튀 소리를 듣는다. 이후 정상호의 유리몸의 이유가 밝혀졌는데, 근육량이 너무 많은 데다가 너무 크고 무겁기까지 해서 뼈와 인대가 감당을 못 한다고 한다. 2021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 정찬헌 - 2008년 드래프트에서 LG에 지명될 당시부터 기대를 모았던 강속구 투수였고, 임정우가 부상과 개인문제 그리고 군 문제로 이탈한 뒤에는 마무리를 맡았다. 좋은 몸상태일땐 훌륭한 구위를 보여주나 그놈의 고질적인 허리디스크로 결장이 잦고 컨디션에 기복이 많이 늘 특별관리 받는 신세. 2019년 역시 마무리로 시작했으나 허리 수술로 아쉽게 시즌 아웃되었다.그리고 고우석을 선물해줬다 허리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 아예 연투 불가 판정을 받았고, 선발로도 4~5일이 아닌 10일에 한 번씩 로테이션을 돌며 관리받고 있다. 그나마 관리받으며 나오면 잘 던지는 점은 다행이다. 그 이후로도 7일 휴식후 등판하면 쉰찬헌 소리를 들으며 빼어난 피칭을 보여주나 5일 휴식후 등판하면 여지없이 두들겨맞아서 허리상태가 여전히 좋지 못함을 보여줬다.

  • 조동찬 - 2000년대 중반 노쇠화를 보인 팀 선배 김한수를 1루로 보내버리고 삼성의 핫코너를 책임졌으나, 잦은 부상으로 인해 2007년부터 풀타임 출장을 하는 모습을 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래서 붙은 별명이 조쿠다스.[30] 그래도 힘-주루-수비가 괜찮은데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도 선발, 군면제까지 달성했다. 하지만 2013년에는 FA를 앞두고 문선재와의 충돌 사고로 시즌 아웃되어 쿠크다스에서 가루가 되어 버렸다... 무리하게 복귀를 준비하다가 무릎에 다시 이상이 와 2014년 스프링캠프에도 참여가 힘들게 된 상황. 충돌사고 한 방에 FA까지 삼수할지도 모르는 상황. 신은 그에게 보다 나은 체격을 주셨지만 그 대가로 내구력을 앗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2014년 등록 일수를 겨우 채워 FA 자격을 얻고 4년 총 28억에 삼성에 잔류했으나...2015년 스프링캠프에서 또다시 무릎에 이상이 오며 0경기 출장을 달성하였다. 이후 2016년 무릎 부상에서 회복하며 1군에 복귀해 잘 치는가 싶더니 6월들어 다시 부상으로 2군행. 17 시즌 다시 복귀했으나 강한울보다 수비에서 안정감을 보이지 못하며 박한이를 밀어내고 지명타자로 나오거나 2루/3루 수비를 보며 실책으로 게임을 터트리는 등 김한수 감독의 양아들 취급을 받고 있다. 결국 2018년에 방출당했다. 안타까웠던건 충돌사고는 문선재의 정신나간 수비위치 선정이 책임이 컸고 조동찬은 이 무릎 부상으로 한쪽다리가 반대쪽 다리보다 7cm나 짧아져서 평생 고생할거라고...

  • 채은성 - 주전으로 자리잡은 2016년 이후 2017년과 2018년을 제외하고 매년 잔부상으로 이탈할 때가 있다. 특히 페이스가 최고조일 때 부상당하여 페이스를 잃는 경우가 많다. 특히 허리나 다리근육쪽에 잦은 잔부상을 겪는다. 위안인점은 2군 갖다온 채은성은 진리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쉬고 오면 버닝한다는 점이다.

  • 추신수 - 2006년 메이저리거로 자리잡기 시작했을 때부터 1년에 한두번은 부상자 명단에 오르며 풀타임 출장이 힘들 정도로 잔부상이 잦았고, 특히 2007년은 부상으로 인해 시즌을 통째로 날릴 정도의 유리몸 기질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2014년 FA가 되어 7년 총 1억 3000만 달러에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한 뒤 첫 해부터 발목 부상으로 제대로된 활약을 하지 못하다가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며 0점대 fWAR을 찍었고[31], 2015년에는 그나마 후반기에 반등했으나 2016년에는 무려 종아리 염좌-햄스트링-허리-손목 골절 순으로 4차례나 부상자 명단에 오르며 45경기 출장에 그쳤다. 어찌 같은 아시아 출신 좌타자 스즈키 이치로랑 참 대비된다[32] 이후 몇 시즌은 큰 부상 없이 꾸준히 출전하긴 했으나 2020년은 부상으로 단축시즌 절반 가량을 날렸고, KBO 복귀 이후에는 꾸준히 출전하고 있으나 팔꿈치에 잔부상을 안고 뛰고 있다고 한다.

  • 채태인 - 생각보다 부상을 자주 당한다. 부상 때문에 2013년도에 타격왕을 놓치기도 했다. 이 때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규정타석을 채우며 타격왕을 하였을 것이다.[33]

  • 최원태 - 2015 시즌에는 어깨 부상 때문에 데뷔조차 하지 못했고, 2016 시즌에는 옆구리 부상으로 고전했다. 2017년 시즌에 선발로 좋은 피칭을 보이다가 9월 초에 어깨 통증으로 시즌아웃됐고, 팀은 그 이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2018 시즌에는 전반기에 리그 최고 수준의 피칭을 보여주다가 아시안게임에서 당한 팔꿈치 부상으로 다시 시즌아웃 되었다. 규정이닝이라도 채운 17 시즌과 달리 18 시즌은 당연하게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2019 시즌은 장정석 감독의 특별 관리 아래에서 풀시즌 완주와 규정이닝 돌파를 성공했지만, 2020 시즌에는 다시 부상을 당하면서 110이닝밖에 소화를 하지 못했다. 사실상 풀타임 시즌을 치룬 적이 없다고 해도 무관. 혀갤에서의 별명이 꾀원태인 것도 유리몸 기질에서 유래되었다.

  • 최희섭 - 유리몸 계의 알파이자, 오메가. 그야말로 병의 신. 욕 아니다. 그리고 유리몸과 유리멘탈의 절묘한 결합. 메이저리그 시절부터 뇌진탕과 고질적인 허리부상으로 고생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스프링캠프를 제대로 소화 못하면서 시즌에 들어가서는 체력저하로 똥망 테크를 반복하고 있다. 유일하게 이 테크를 타지 않은 2009년에는 김상현과 CK포로 팀을 우승으로 올렸지만 그러면서 멘탈도 유리가 되었는지 2011 시즌에는 부상으로 휴식 중 아내와 자기팀 경기가 아닌 두산 경기를 해설해준 게 아내가 인증샷을 올리며 가루가 되도록 까였고, 2011 시즌 이후에는 독감 핑계를 대며 팀 훈련에 무단불참하고 기아 구단측에서 트레이드를 시도했을 정도. 2012 시즌에는 치질(…)[34], 요로결석, 장염 등의 운동선수들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잔병을 주렁주렁 달고 다녔다. 게다가 2013년 본인이 무릎 수술을 요청해 무릎을 절개 했는데, 검진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게 밝혀졌다. 이 정도면 정신적인 문제 이 때문에 팬들에게 꾀병 부린다고 대차게 까였다. 그것도 모자라 시즌 후 연봉 협상에서 폭풍삭감이 당연시되는 상황에서도 기어이 1억은 지켜냈다(…). 그리고 2014년에는 1군 경기는커녕 2군 경기도 못 뛰었다. 2015년 부활을 다짐하며 시즌 초 나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얼마 가지 않아 허리 부상으로 빠지면서 또 다시 재활행이 됐고, 결국 은퇴.

  • 타일러 살라디노 -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다린 러프의 대체 선수로 2020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는데 시즌 중 허리 부상에 시달리며 못나오더니 상황이 급한 팀 사정상 7월에 방출되었다. 실력과 인성 모두 출중해 부진 탈출후 좋은 모습에 삼성팬들의 좋은 인상을 남겼으나 극심한 부상으로 방출되어 아쉬워하고 있다. 대체자는 다니엘 팔카.

  • 토미 조셉 - LG 트윈스가 야심차게 영입한 1루 우타거포이고 시즌초에 5홈런을 때리는등 장타력은 진퉁이었지만 문제는 미국시절에도 뇌진탕 부상 5번을 포함해 오만데를 골고루 다쳐 부상자 명단에 오르는일이 잦았던데다 보호대마저 절대 안하는 특이한 루틴을 갖추는 등 내구성에 의문이 많은 선수였다. 그러한 일말의 우려에도 영입당시엔 이만한 클래스의 1루 외국인 타자가 없었던지라 논란이 적었지만 결국 유리몸 문제가 시즌 초부터 끊임없이 터졌고 7월 중 웨이버 공시되고 말았다. 그리고 선수생활도 이 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해버리고 일찌감치 코치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걸 보면 허리 상태가 알려진거보다 훨씬 심각해서 현지에서도 결국 선수생활이 어려워져 은퇴한거 같다.

  • 홍세완 - 시멘트 바닥에 인조잔디를 깔은 돌덩이같은 그라운드로 인해, 모든 야구 선수들 무릎의 영원한 원쑤인 노쇠화된 물방개 파크 무등 야구장걸작(?) 중 한 사람. 클러치 능력이 뛰어난 공격형 유격수로, 2003년 유격수 최초 100타점[35]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나, 2004년 이후로는 고질적인 무릎부상(부상→재활→재발의 연속)과[36] 심각한 어깨 부상, 손목 부상 등 온갖 잔부상을 달고 다니다가 결국 2010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은퇴하고 만다. 이 부상들로 인해 2003년 이후 풀 타임을 뛰어본 적이 없어 연봉이 거의 어린 선수급에 머무르면서, 별명은 홍대리(…)[37]

  • 한기주 - 2006년 KIA에 입단할때 계약금 10억을 받고 입단해[38] 구단과 팬들에게 많은 기대를 받고 10억팔의 사나이라고 불리며 제2의 선동열이 되주길 바랬지만 고교시절의 혹사로 몸이 정상이 아니였던 몸은 재활과 수술도 없이 당시 KIA 감독이던 서정환 감독과 조범현 감독의 혹사의 대상이 되버려 안좋았던 몸은 더욱 만신창이가 된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에 뽑히기전 성적은 프로 입단때 기대했던 성적은 아니었지만 평균이상은 하고 있었지만, 베이징 올림픽에서 부진으로 한작가, 99.9 사나이라고 불리는 불명예를 안았고 결국은 대표팀은 우승을 했지만 네티즌들은 한기주가 병역특례를 받는다는 건 병역비리급 아니냐는 핀잔을 듣기도 하였다. 올림픽에서 돌아온 후...성적은 해마다 내려가고 출장 경기는 적어지는 등 결국은 여러 부위의 수술을 하면서 많은 기간을 수술과 재활에 보냈다. 결국 삼성으로 트레이드되며 애증의 시절은 마무리되었고, 본격 계약금보다 누적 연봉이 적은 선수 끝내 2019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 현재윤 - 한때 삼성 라이온즈의 차세대 주전포수로 주목을 받았으나[39] 군 제대 후부터 잔부상을 달고 다니며 백업 포수가 먼저 부상을 당해 있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였을 때도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 2009년 주전 포수 진갑용이 손목 부상 때문에 시즌을 마감했으나 현재윤도 부상 상태라 백업 포수가 없다시피해 결국 두산에서 채상병을 트레이드해 왔을 정도. 이후 이지영의 성장으로 인해 삼성에서 자리를 잃고 트레이드를 통해 포수난에 시달렸던 LG 트윈스로 이적해 주전 포수를 꿰차나 싶었으나 다시 부상으로 몇 달을 날렸고, 2014년 고질적인 손가락 부상 심화로 은퇴.


3. MLB[편집]


  • 그래디 사이즈모어 - 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간판 리드오프. 빠른 발과 장타력, 수비능력까지 두루 갖췄으나 2008년 30홈런-30도루 이상을 기록한 이후 매년 DL에 왔다갔다 했다. 2011 시즌 5월 허벅지 타박상으로 15일자 DL행. 7월에 DL에서 돌아와서도 다시 부상을 당해 15일자 DL로 복귀. 2013 시즌 결국 어느 팀하고 계약도 못하고 1년 놀았다. 그러다가 2014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했는데 보스턴 팬들은 '저러다 또 쉬러 가겠지'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DL은 안 갔지만 대신 2014 시즌 중반에 방출됐으며,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허나 반등은 하지 못하며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았다.

  • 네이트 피어슨 -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투수로 무려 104마일이 찍히는 위력적인 패스트볼의 구위를 자랑하지만 20대 중반의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단핵구증 등의 질병과 부상으로 골골대고 있다. 원래는 선발 투수로 길러지던 유망주였지만 부상이 너무 많아진 탓에 정상적으로 로테이션을 돌 확률이 희박해져 불펜 투수로써의 전향이 고려되는 중이다.

  • 넬슨 크루즈 - 우타 외야수. 고질적인 햄스트링 부상 때문에 결장하는 일이 잦다. 정도만 따지면 밑에 나오는 팀 동료이기도 했던 조시 해밀턴보다 한술 더 뜨는 유리몸. 다만 외야수에서 지명타자로 전환하면서 부상이 줄어들어 시애틀 매리너스이적 이후에는 평균 150경기씩 출전하면서 유리몸에서 벗어나고 있다. 약먹고도 유리몸인 클라스

  • 노마 가르시아파라 - 전성기엔 A-Rod, 데릭 지터와 함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을 대표하는 3대 유격수로 한시대를 풍미했지만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유리(glass)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잔부상이 심하게 많았던 타입이라 보스턴 레드삭스는 FA에 앞서 재계약을 포기하고 그를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 보사구팽시켰고[40] 이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팀을 옮겨 다녔지만 거기에서도 부상으로 골골대며 DL에 꾸준히 들락날락했다.(…) 결국 부상과 부진이 겹치자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고 3대 유격수 중 가장 먼저 유니폼을 벗고 말았다. 게다가 임팩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적이 멸망한 탓에 성적상으로는 유일하게 명전 입성에 실패했다.[41]

  • 노아 신더가드 - 한때 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패스트볼[* 평속 90마일대 후반, 최고 102마일.], 슬라이더[* 평속 90마일대 초중반, 최고 96마일.]를 던지는 선발 투수였다.[42] 문제는 2017년부터 크고 작은 부상을 입기 시작했다는 것. 2017년엔 오른쪽 어깨 광배근 파열로 30.1이닝에 그쳤고 2018년엔 오른쪽 검지손가락 염좌랑 수족구병으로 두번이나 DL로 가버리며 유리몸 인증을 했다. 이후 2020년 토미 존 수술을 받았고, 2021년 복귀했는데 구속이 5~6마일 떨어져서 평균 90마일대 중반, 최고 99마일의 패스트볼과 평속 80마일대의 슬라이더를 구사하게 되었다.

  • 대런 드라이포트 - 2000년대 초반 아래의 마이크 햄튼과 함께 2000년대 최악의 유리몸 먹튀였던 선수. 메이저 데뷔 이전엔 야구 역사상 최고의 유망주 중 한 명으로 주목받았지만 정작 선수 시절에는 팔꿈치, 어깨, 엉덩이, 무릎 부상으로 인해 무려 15번!!!이나 수술대에 오르며 돈은 돈대로 받고 별 활약을 못했다.

  • 데이비드 라이트 - 뉴욕 메츠의 프랜차이즈 스타인데 2013 시즌 당한 햄스트링 부상을 시작으로, 잦은 부상을 겪으며 많은 경기를 결장하였다. 게다가 2017 시즌을 앞두고는 어깨충돌증후군까지 생기며 1루까지 송구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2018 시즌 끝나고 은퇴. 메츠 팬들은 영구결번에 명예의 전당까지 갈거라고 예상했던 팀의 레전드가 2000안타도 채우지 못하고 쓸쓸하게 은퇴한 것을 보며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츠 자체 명전은 확정이며 영결 확률도 매우 높다.



  • 루이스 세베리노 - 양키스의 에이스이자 차세대 양키스 레전드가 될 것이라고 큰 기대를 받았지만, 2019년 시즌시작전 4년 40m연장을 맺고 첫해부터 시즌을 거의 다 날리더니,2020단축시즌에는 아예 토미 존 수술을 받아 출전하지 않게되고 2021시즌 재활도중 계속해서 부상이 재발해 9월 말이되서야 불펜으로 겨우 복귀했다. 2022 시즌에는 선발로테이션을 잘돌다가 다시 장기결장을 하는등 최악의 내구성을 자랑하고 있다(...) 다만 그래도 위의 노아 신더가드랑은 다르게 아직 나이도 젊고 부상을 많이 겪고도 구위 저하는 얼마 없는 편.

  • 류현진 - KBO 리그 시절의 류현진은 리그 최고의 철완이자 이닝이터였지만, MLB 진출후 류현진은 KBO에서의 혹사+빡빡한 메이저리그의 일정을 견디지 못하면서 유리몸이 됐다. 진출 첫 시즌 커리어하이 192이닝+포스트시즌 10이닝 합계 200이닝을 넘게 던진 이후 규정이닝을 채운 시즌이 없으며[43] 특히 2014년 이후 받은 어깨 관절와순 수술(원인이 KBO시절 누적된 혹사)은 그의 커리어에 2년의 공백기를 만들 만큼 치명적이었다. 2017년 선발투수로 복귀하였으나 잦은 DL행으로 126.2이닝에 그쳤고, 2018년에도 사타구니 부상으로 반 시즌만 뛰었다. 결국 이 때문에 장기 계약을 받지 못할 것을 예상해 오프시즌에 퀄리파잉 오퍼를 수락했고, 2019년 시즌 개막 2경기 이후 3번째 선발등판 경기에서 작년 사타구니 부상이 재발해 강판되었다. 다행히 이후론 별 부상없이 경기에 나서서 6년만에 규정이닝을 넘겼고 사이영 투표 2위, 아시아 투수 최초의 ERA 1위 타이틀도 따내는 등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다만 토론토 이적 이후 2022 시즌에는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되며 다시 유리몸화되었다.

  • 마이크 소로카 - 2019 시즌 내셔널 리그 신인왕 투표 2위의 캐나다 출신 투수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새 기둥이 될 에이스감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2019 시즌 이후 2020 시즌 도중 사타구니 부상과 아킬레스건 파열로 시즌 중반에 아웃됐고 2021 시즌 도중 아킬레스건이 또 파열되면서 시즌 아웃, 2022 시즌에 복귀를 준비했지만 부진 + 팔꿈치 염증으로 또 시즌 아웃되면서 리그 최악의 유리몸을 능가하여 사이버투수로 거듭났다. 게다가 팀에는 스펜서 스트라이더, 카일 라이트 등 새로운 선발 자원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중이라 돌아와도 소로카의 자리가 없을 확률이 매우 높다. 다른 부상이면 몰라도 하필 아킬레스건에 문제가 생긴 탓에 전망도 매우 어둡다.

  • 마이크 트라웃 - 현역 최고의 야구 선수이자 미키 맨틀의 현대야구판이라고 평가받는 대선수. 2016년까지는 건강하게 풀타임을 소화하며 괴물같은 활약을 선보였다. 하지만 2017년부터 조금씩 부상을 당하기 시작하더니 2021년에는 급기야 5월부터 시작해서 시즌을 통째로 결장하는 등 미키 맨틀에 필적하는 유리몸[44]이 되었으며 2022년에도 부상으로 풀타임 소화에 실패했다. 다만 부상으로 결장하는 중에도 경기에 나왔을 때의 활약 자체는 맨틀처럼 리그에서 독보적인 수준이다.

  • 마이크 햄튼 - 위의 대런 드라이포트와 함께 2000년대 최악의 투수 유리몸 먹튀였다. 2005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는데 좀 괜찮아졌다 싶으면 다른 데 부상이 생기며 복귀일은 차일피일 밀렸다. 2008년 7월에 간신히 복귀했지만 1년만에 어깨 회전근 재건 수술을 했다. 결국 복귀하지 못하고 2011년 3월 은퇴했다.

  • 마이클 와카 - 선발투수이지만 지금까지 뛴 10시즌 동안 규정이닝을 고작 2회밖에 못 넘긴 대표적인 유리몸 투수로, 특히나 어깨 수술을 4번(…)이나 받았을 만큼 어깨 쪽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 마크 프라이어 - 대학야구 시절 역대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받았던 인물으로, 2000년대 초중반 케리 우드와 함께 시카고 컵스의 에이스였던 인물이다. 다만 프라이어는 우드와는 다르게[45] 순전히 혹사로 유리몸이 된 케이스로, 이는 2003년 당시 컵스의 감독이었던 더스티 베이커의 작품이다.

  • 마크 피드리치 - 야구계에서 가장 아쉬운 원 히트 원더. 1976년 21세에 데뷔하여 250.1이닝 19승 ERA 2.34를 기록하며 사이영상 2위, 신인왕을 차지했다. 독특한 루틴과 쇼맨십까지 갖춘 최고의 스타였지만 불행하게도 다음 시즌에 무릎 연골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며 11경기 출전에 그쳐 커리어가 기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성으로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이 때까지는 실력은 여전했지만, 다음 해 회전근 부상까지 당하며 얼마 안 가 은퇴하였다. 피드리치의 메이저리그 커리어는 단 5년에 불과하다. 피드리치가 몰락하자 당시 감독이었던 랄프 후크는 21세의 신인을 지나치게 혹사시켰다는 비난을 듣게 된다.

  • 미키 맨틀 - 유리몸임에도 불구하고 업적을 쌓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역대 최고의 스위치히터. 허나 그 유리몸 때문에 베이브 루스에 필적할 수 있었던 타자가 명예의 전당급 성적에 그쳤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성 하나만큼은 엄청났기에 부상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120경기(…) 이상 출전했고 이는 결국 그가 야구 역사상 최고라고 평가받던 툴들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46]

  • 바이런 벅스턴 - 미네소타 트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무려 마이크 트라웃에 버금가는 미친 툴을 가지고 있다. 다만 후술할 지안카를로 스탠튼에 필적하는 최악의 유리몸인지라 오랫동안 포텐셜을 터뜨리지 못하고 2022시즌까지도 규정타석을 채운 시즌은 단 한 시즌이다... 21시즌에는 162경기중 거의 3분의 1정도만 출장했는데 WAR이 5에 육박하는 시즌을 만들어 건강하면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2022시즌은 모두의 예상대로(...) 부상으로 시즌을 일찍 접었다. 다만 시즌을 아예 날린 적은 드문 데다가 나왔을 때의 활약상은 리그 최고 수준이라 7년 1억 달러 계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래의 앤서니 렌던과는 달리[47] 먹튀 소리는 절대 안 듣는다.

  • 브랜든 모로우 - 1형 당뇨병 환자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런 병을 갖고 빅리그에서 뛰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병 때문에 인슐린 펌프를 차고 등판한다고 한다.

  • 브랜든 벨트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제 2의 윌 클락으로 기대받을 정도로 자이언츠 팬들의 사랑을 받던 선수였지만 기대만큼은 성장하지 못했는데, 그이유는 오라클파크라는 좌타자에게 치명적으로 불리한 구장을 쓴다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무려 3번의 무릎수술을 받을 정도로 시한폭탄같은 무릎 상태에 있었고, 커리어 하이시즌이였던 2021시즌 역시 100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2022시즌 역시 무릎수술로 조기에 시즌을 접게되어 자이언츠와의 인연도 사실상 끝날정도로 부상이 끊임없이 발생했던 선수이다.

  • 브렛 앤더슨 - 메이저리그 좌완 투수. 하지만 현재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종합병동으로 더 잘 알려져 있을 정도로 부상에 시달리는 중이다. 2015년 시즌 부상에서 회복해 부활하는 것 처럼 보였지만, 2016년이 되자 또 다시 드러누우며 다저스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고, 2017년에는 시카고 컵스로 간다.

  • 스캇 롤렌 - 2000년대 중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살인타선의 재림'의 일원이었던 공수겸장 3루수. 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이었던 루키 시절에 무려 5툴 플레이어였으나 필리스의 옛 홈구장 베테랑 스타디움의 낡은 인조잔디 때문에 주력은 일찌감치 떨어졌고, 그 이후로 무릎 부상을 달고 살았다. 과거 필리스 시절에 인조잔디를 천연잔디로 바꿔달라고 징징대기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2005년 최희섭과의 충돌 이후 치명적인 어깨 부상을 입었으며, 그 부상으로 인해 롤렌의 커리어는 다소 꼬였다.[48]

  •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 2020년대 현 시점 리그 최악의 유리몸으로 평가받는다. 한때 드래프트 역사상 가장 완벽한 재능이란 평을 들으며 최대치로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급 성적을 내줄거라던 기대를 받았지만 토미 존 수술 이후 구속이 떨어졌고 결국 평범한 1선발이 되었다. 또한 2012년 이래로 계속해서 여러 크고 작은 부상으로 인해 DL 명단에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클레이튼 커쇼와 동갑인 투수가 데뷔 이후로 200이닝 이상 채운 시즌이 고작 한 시즌 뿐. 그나마 2019년 정규시즌에 부상 없이 200이닝을 돌파하고 월드 시리즈 MVP까지 오르는데 성공해 7년 245M$라는 대형 FA 계약을 맺고 잔류했으나, 2020년부터 손목에 목까지 부상을 겪으며 3년간 8경기 나서는데 그치며 먹튀로 전락했고 앞으로도 더 뛸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 애런 저지 - 2017년 데뷔 시즌에 마크 맥과이어가 갖고 있던 신인 홈런기록을 갈아치우며 센세이셔널한 데뷔를 했지만, 이후 시즌들에는 잦은 부상으로 결장이 많아지면서 데뷔시즌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엄청나게 강한 타구를 만들어내는 장신, 거구의 우타 파워히터로 지안카를로 스탠튼의 후계자로 점쳐졌고, 그 스탠튼 본인이 마이애미 말린스의 매각 후 리빌딩으로 인한 블록버스터 트레이드로 양키스에 합류하자 세계 최강의 우타거포 듀오가 탄생했다고 많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저지가 유리몸 기질마저 스탠튼을 따라가면서 매년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우애롭게 IL을 드나들게 되었고 저지-스탠튼 듀오의 정상가동은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 되었다. 다만 2021 시즌에는 풀타임을 소화했고, 2022 시즌에는 풀타임 소화를 넘어서서 청정 60홈런 달성 등 밑의 스탠튼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는 중이다. 물론 저지는 스탠튼처럼 파워가 강해도 너무 강하기에 향후 부상 우려가 매우 크므로 주의해야 할 듯.

  • 앤서니 랜던 - 워싱턴 내셔널스 시절에도 유리몸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더라도 매 시즌 몇 경기씩은 결장하는 등 그리 건강한 편은 아니었으나, 에인절스 이적 후 3년 간 고작 155경기 출장에 그치는 등 리그 최악의 유리몸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일단 나오면 어느 정도 잘은 해서 WAR은 기어이 양수를 만들어 내는 것은 덤. 다만 위의 바이런 벅스턴급은 아니라 먹튀는 확정이다.

  • 에릭 차베스 - 빌리 빈의 황태자라 불렸던 골든글러버 3루수. 6번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매년 2~30개의 홈런은 쳤던 꾸준함의 대명사였지만 무릎부상이 도지는 바람에 유리몸이 됐다.

  • A.J. 폴락 - 부상이 없으면 정말 대단한 클래스를 보여주는 5툴 플레이어 중견수. 하지만 부상없이 풀타임을 뛴 시즌이 단 한 시즌 뿐인 게 문제(…).

  • 오타니 쇼헤이 - 다만 오타니의 경우엔 투타를 다 뛰다보니 유리몸이 된 케이스라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이 된다. 실제로 NPB 시절부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인지 진통제를 많이 복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최근 지명타자로만 출장하고 있음에도 이따금씩 경기에서 빠지는 일이 잦은 것과 동시에 지명타자로만 뛰는 시즌에도 대타 위주로 나가거나 타격후 대주자랑 교체하는 일이 잦은 점과 더불어 투수 관련 재활, 야수 관련 재활을 전부 하고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유리몸 확정. 그나마 2021년~2022년에는 큰 부상 없이 시즌을 소화하며 커리어 하이를 갱신중이다.[49]

  •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 2015년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되어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한몫을 했고 그 해 말 4년 1억 1천만 달러의 거액 연장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2016년 말부터 슬슬 부상을 당하기 시작하더니 2017년 햄스틸 부상 등에 시달리며 81경기, 2018년에는 발뒤꿈치 수술을 받으며 달랑 38경기 출장에 그쳤다. 2019년에는 복귀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목장에서 넘어지며 발목 부상을 당했고(…) 한 경기도 나오지 못하고 또 시즌 아웃. 유리몸이자 먹튀의 좋은 예시.

  • 저스틴 터너 - 비율 스탯 3/4/5, 150이 넘는 wRC+를 여러 번 기록했을 정도로 출중하며 해결사 기질도 있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3루수이지만 150경기 이상 뛴 적이 1번뿐일 정도로 부상을 잘 당한다. 사실 31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주전급이 된 고령의 선수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매년 2-30경기 정도는 DL에 갔다 왔으며 풀타임 시즌인 2016 시즌에도 초반에는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부진 때문에 고생했다.

  • 제이콥 디그롬 - 플레이 스타일이 바뀐 2021 시즌부터 한정.[50] 마른 몸인데도 불구하고 과하게 빠른 평균 구속을 보이면서 시즌 초반에 리그를 박살내고 평균자책점이 1점대 초반을 찍으면서 폭주했지만, 계속 잔부상이 생기다가 결국 시즌을 일찍 접게 되었다. 2022시즌에도 부상으로 시즌 반을 날리는 등 이젠 정말로 디그롬 본인 자체가 유리몸이 되었다.[51]

  • 제이크 피비 - 2007년 내셔널리그 트리플 크라운 달성에 사이 영 상까지 차지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최고의 투수 중 한명이었지만 영 좋지 못한 신체 조건에 지나치게 역동적인 투구폼으로 인해 2008년 이후엔 부상으로 계속 내리막을 타고 있고 결국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되었다가 2013 시즌 중에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보스턴에서도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계속 헤매고 있다가 2014 시즌 중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는데, 여기서는 관리를 비교적 세심하게 받아서 그런지 후반기 SF 선발진의 한 축을 지탱하는 버팀목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주었다. 하지만 이후 내리막을 타면서 불펜으로 전향하는 신세가 된다. 이후론 개인 문제로 선수 생활을 쉬다 복귀가 불발되며 그대로 은퇴했다.[52]

  • 제임스 팩스턴 - 건강할 때의 실력만큼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정상급으로 꼽히는 좌완 파이어볼러 선발 투수이지만, '선발 투수'라는 보직 구분이 무색하게 지금까지 커리어 내내 규정이닝조차 한 번 채워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부상이 많은 지독한 유리몸이다. 심지어 친정팀 시애틀 매리너스로 복귀한 2021시즌에는 시즌 첫 등판에서 24구를 던지고 바로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아웃 진단을 찍는 기염을 토했으며 2022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도 돈을 받고도 부상으로 인행 등판을 안 하는 악질 먹튀짓을 했다.

  • 조 로스 - 아직 30세가 되지 않은 나이임에도 2016년부터 매년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2017년에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2018시즌까지 날렸고 2021년에 다시 토미 존 서저리를 받게 되면서 2022시즌까지 쉬게 되었다. 한국계 혈통 선수여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발탁이 유력한 선수로 거론되어 왔으나 2023년도 대회 때에 보기는 힘들 듯.

  • 조던 힉스 - 105마일을 던지는 파이어볼러이지만 너무 구속이 빠른 탓에 부상이 꽤 있는 편. 토미 존 수술은 당연히(…) 받았으며 무려 1형 당뇨병 환자라 예후도 심히 어둡다.


  • 조시 해밀턴 - 고교 시절 아마추어계의 천재 타자였으나 프로 입단 이후 마이너 유망주 초기 시절부터 본인의 개인사와 잔부상이 겹치며 방황을 하였고 술, 담배, 마약에 찌들어있다가 절치부심하고 복귀해 MLB MVP까지 수상할 정도로 재능만큼은 정말 타고난 천재라고 평가받지만 건강하게 한시즌을 소화하는게 드물 정도로 잔부상이 많은 타입이다. 그리고 2013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에서 알버트 푸홀스와 함께 FA 먹튀 듀오로서 맹활약(…)하고 있었으나 후반기에는 혼자 살아났으나 다시 이후 유리몸 테크를 탔는데 에인절스 뒤통수를 치며 텍사스로 가려는 물밑작업에 빡친 에인절스가 연봉보조를 거의 다 해주는 대가로 해밀턴을 친정팀으로 보냈다. 친정팀 텍사스에 가서 잠시 반짝했다가 다시 무릎 부상으로 시즌을 통으로 날려먹었다. 2017 시즌에는 텍사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으며 재기를 노리나 또 무릎 부상으로 연골 수술을 받았다가 방출되었다.

  • 조엘 주마야 - 최고구속 104마일을 던지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가장 빠른 우완 파이어볼러였지만 종합병원 수준의 유리몸인 탓에 매년 30이닝 소화하기도 버거울 정도다. 어느 정도냐 하면 집에서 기타히어로하다가 근육통걸려서 부상자 명단에 올랐을 정도(…) 결국 2014년 2월, 이른 나이에 은퇴하고 말았다.

  • 조지 브렛 -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최고 레전드이자 역대 최고 3루수 대열에 꼭 꼽히는 전설이지만, 오만가지 잔부상에 시달리며 커리어를 보냈다. 커리어 평균 한시즌 경기수가 129경기에 불과하다.[53] 하지만 엄청난 의지로 무려 21년의 커리어를 보냈고 은퇴시즌이던 40세에도 145경기를 출전했으며 3루수로서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단 2명뿐인 3000 안타를 기록했다. 참고로 그를 최고로 괴롭혔던 질환 중 하나가 바로 치질(…)

  • 조지 스프링어 - 사실 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절까지는 그렇게 심각한 내구성이 아니였으나, 인조잔디를 쓰는 로저스 센터가 홈구장인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하고 나서부터 급격하게 리그 최악의 유리몸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개막전부터 결장티켓을 끊더니 결국 첫시즌부터 77경기(...)출장에 그치고 다음시즌에는 그나마 작년보다는 건강하긴 했으나 구단이 자주 선발을 제외하고 지명타자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에 그나마 저정도라도 나온것이다.

  • 지안카를로 스탠튼 - 2020년대 현재 최악의 타자 유리몸. 마이애미 말린스의 과거 간판타자이자 현재는 뉴욕 양키스 소속의 우익수로 현역 타자 최고 수준의 파워를 통해 투수 구장이라 불리는 말린스 파크를 홈으로 쓰면서도 라인 드라이브로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자주 과시하지만 풀타임을 소화하면서 59홈런을 친 2017년을 제외하고는 건강했던 시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리그를 대표하는 유리몸이다. 이는 스탠튼의 플레이 스타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스탠튼은 현역 야구 선수 중 최고의 파워를 이용하는 홈런 타자인데, 이러한 많은 근육은 스탠튼의 신체에 무리를 주게 된다는 의견이 많다. 양키스로 이적한 첫시즌인 2018 시즌에는 158경기 출장을 하였으나 2019년 시즌 내내 부상으로 18경기 출장(…)에 그쳤다. 그래도 홈런은 꾸준히 치는 편인데, 2022년에는 100경기를 조금 넘겼고 비율스탯도 폭망했지만 30홈런을 쳤다. 이후로도 스탠튼다운 라인드라이브 홈런 및 정신나간 부상 이력을 여김없이 보여주는 중이다.

  • 칼 파바노 - 2004년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18승 8패의 성적을 올리며 FA를 취득. 뉴욕 양키스와 4년간 3,995만달러의 계약을 맺으나, 4년동안 26경기에 등판하여, 9승 8패 145.2이닝을 기록한 후 2009년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튀었다. 계약과정에서 펜웨이 파크(보스턴 레드삭스 홈구장)가서는 '커트 실링과 같은 대선수와 뛰고 싶다', 양키스타디움(뉴욕 양키스 홈구장)가서는 어렸을때부터 양키스 팬이라는 오랄질 멘트를 날렸다. 클리블랜드의 샐러리를 줄이기 위한 트레이드로 미네소타에 가서 2010 시즌 17승 11패(7완투) ERA 3.71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양키스를 상대로 잘 이끌어 나가면서 승리할뻔 했으나 6이닝 4실점으로 패전.

  • 케리 우드 - 프라이어와 함께 더스티 베이커의 혹사로 인해 망가진 유리몸 원투펀치이긴 한데 우드의 경우는 데뷔 첫 시즌 이후 바로 토미 존 수술을 받는 등 본인 스스로도 유리몸 끼가 적지 않다.

  • 케빈 키어마이어 -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화려한 수비를 하는 중견수이지만, 그 수많은 다이빙캐치를 대가로 부상을 달고 사는 선수. 2015 시즌을 제외하고 매년 수십경기씩 부상으로 빠졌다. 60일 DL만 2번 경험했다.

  • 켄 그리피 주니어 - 시애틀 매리너스시절에는 1995 시즌 펜스에 강하게 부딛쳐 입은 손목 골절을 제외하면 금강불괴에 가까웠지만,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된 2년차인 2001 시즌부터 햄스트링 부상 등으로 인해 드러 누우며 먹튀이자 유리몸으로 전락해버렸다.

  • 크리스 세일 -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파이어볼러 에이스였지만, 엄청나게 마른 몸과 괴랄한 투구폼, 빠른 구속을 몸이 견디지 못하는 케이스이다. 허나 이상하게도 시카고 화이트삭스시절에는 건강했다. 다만 보스턴 이적후 점점 유리몸이 되더니 18시즌은 사이영 페이스였다가 시즌을 거의 날리고 말았으며 이는 19시즌도 마찬가지였다. 장기 계약을 맺은 20시즌은 토미 존 수술로 아예 시즌을 날리고 21시즌 후반에 돌아왔으나 구위가 하락하며 부진하였다. 22시즌에는 흉곽근 부상으로 전반기를 거의 날려버리고 급기야 자전거 사고로 아예 시즌 아웃되는 등 클레이튼 커쇼 이상의 유리몸이 되며 아예 악질 먹튀로 전락하고 팀의 멸망에 크게 일조했다. 물론 다른 먹튀들에 비해 해준 건 꽤 있는 편이지만...

  • 크리스 카펜터 - 과거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에는 길게 쉴 때는 재활까지 포함해 2년을 쉰 적이 있다. 커리어 내내 부상에 시달렸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뛰면서부터는 여기에 언급된 유리몸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건강한 편이었으며, 2011 시즌까지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2012-13 시즌 결국 드러누웠고, 2013년 10월 은퇴를 선언했다.

  • 크리스찬 가르시아 - 네임 밸류로는 듣보잡에 불과하나 양키스 팬들의 기대를 상당히 받았던 파이어볼러 유망주. 최고 90마일 후반대에 이르는 강속구와 해머커브 조합으로 가슴을 설레게 했으나 입단 이후 토미 존 수술만 두 번 받고 별 활약을 못했다.

  • 클레이튼 커쇼 - 전성기 시절엔 리그 최고의 이닝이터였지만, 2016년때부터 시작된 허리 부상으로 인해 유리몸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현재는 구속도 줄은 데다 아예 블레이크 스넬급 이닝이팅을 보이는 중이다. 특히 2021 시즌부터는 아예 규정 이닝에 한참 못 미치는 이닝 소화를 보여주는 중. 다만 구속이 줄었을 뿐 본인의 실력은 예전같진 않아도 아직 완전히 녹슬진 않았다.

  • 트래비스 해프너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거포였다. 4년 연속 20홈런 이상 100타점에 만루홈런도 심심치 않게 찍어내며 인디언스 4번으로 자리잡던 전성기도 있었으나 2008년부터 매년 DL에 꼬박꼬박 오르고 있다. 2011 시즌 설레발을 치다 역시 옆구리 부상으로 DL행. 2013 시즌 뉴욕 양키스로 이적, 줍키스틱4의 일원으로 활약하는듯 했으나 어느새 잊혀진...

  • 트로이 툴로위츠키 - 2000년대 말 ~ 2010년대 초 최고의 기량을 갖춘 공수겸장이ㅡ 대형 유격수로 평가받았지만, 유격수 중에서도 가장 큰 축에 드는 덩치 때문인지 부상이 매우 많았다. 시즌을 뛰고 좋은 성적을 낸 해가 2007, 2009-2011, 2013 시즌인데.. 타자천국 쿠어스필드빨 못받음 저 중에서도 풀타임을 찍지 못한 해가 더 많다(…) 2014 시즌은 MLB MVP까지 노릴 수 있는 해였으나, 역시 또 부상으로 시즌 아웃. 2015 시즌 토론토로 트레이드가 된 후에도 부상으로 결장하기도 했다. 2016년 5월에도 대퇴사두근 부상으로 인해 부상자 명단에 올라갔다. 2017년에도 얼마 뛰지 못하고 부상으로 인해 시즌의 반 이상을 날렸다. 2019년에 양키스로 가서도 부상으로 거의 뛰질 못했고 결국 서른다섯이란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4. NPB[편집]


  • 다무라 히토시 - 별명이 유리의 대포. 풀타임 출장을 하면 30홈런 이상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준수한 장타력과 외야수로서 안정적인 수비 능력에 강견까지 지니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온갖 부상이란 부상은 다 달고 다닌 탓에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얼마 없다. 100경기 이상 뛴 시즌은 겨우 4번. 2016년 주니치 드래곤즈와 육성선수로 계약하였으나... 1년만에 은퇴하였다.

  • 다테야마 쇼헤이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선발투수지만, 토미 존 수술만 3번을 한 것부터 시작해 손가락 혈행장애, 어깨, 고관절 등 선수생활 내내 9번이나 몸에 칼을 대야 했던 파란만장한 커리어를 갖고 있다. 심지어 2019 시즌 끝나고 은퇴했는데 은퇴 경기때 조만간 10번째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알렸다.

  • 마쓰자카 다이스케 -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NPB에서 뛰어난 선수로 활약했으며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 진출 후 2년 간은 좋은 활약을 했으나 그 뒤로는 이닝을 못먹고 계속 털리면서 육수자카라는 불명예 별명을 얻으며 일본으로 복귀하였다. 복귀 후에는 소프트뱅크와 3년 12억 엔이라는 초대형 계약을 했으나 아예 드러누워서 3년 간 한 경기만 등판하고 금지어이자 먹튀로 전락하였다. 해외진출에서 실패를 거두고 자국 리그로 복귀해 먹튀했단 점에서 일본판 윤석민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리그 복귀 후 활약 수준을 따지면 마쓰자카쪽이 훨씬 심각한 먹튀.[54][55] 물론 마쓰자카는 일본 재적 시절 워낙 심각한 혹사를 당한지라 납득이 된다.

  • 브래드 엘드레드 - 2002년 피츠버그 입단후 콜로라도, 디트로이트등 여러 팀을 오가다 2013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이적한 슬러거. 원래는 1루수가 포지션이지만 다른 외국인 타자들과 2015년부터 친정으로 돌아온 아라이 타카히로가 노쇠화로 인해 1루밖에 볼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지 좌익수로 뛰게 되는데 196cm에 120kg이 넘는 거구를 좌익수로 억지로 기용하다보니 무릎부상이 잦았다.[56] 무릎을 비롯한 여러 잔부상 덕에 2014년과 2016년 빼곤(2014년 37홈런으로 1위) 좋은 성적을 못거뒀음에도 2018년까지 길고 가늘게 팀에 살아남고 팀에서 은퇴. 의외로 외국인이지만 은퇴식을 치루고 은퇴했다.

  • 사이토 가즈미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비운의 유리어깨 에이스.[57] 부상만 없으면 다르빗슈, 이와쿠마 저리가라 할 정도로 리그를 씹어먹는 포스를 보여줬지만[58] 그놈의 유리어깨 때문에 한번 등판하면 6일을 쉬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이 때문에 호크스는 스퍼트를 올려야 할 시즌 막판에 투수로테이션에 제약이 생겼고 등판간격이 좁혀지는 포스트시즌에서 이 선수의 활용법을 고민해야했다. 호크스의 2000년대 중반을 수놓은(…) 플레이오프 연속 광탈의 원인 중 하나. 결국 2006, 2007년 플레이오프에서 팀 사정 때문에 등판간격을 좁히는 무리한 등판을 하다가 어깨에 탈이 났고 그 후로 5년동안 재활 중. 하지만 2003년에 우승에 공헌한 멤버이고 자신도 유리어깨임을 자각하면서도 팀을 위해서 무리하게 등판하다가 입은 부상이라서 팀도 플레잉 코치로 계약해주면서 재활훈련의 뒤를 봐줬다. 그래도 재활은 잘 진행된 듯 2013년에 선수로서 복귀가 가능하다고 한다...고 했는데 결국 2013년 8월에 은퇴해버렸다. 몸은 100구 이상 던질수 있다는데 구속이 130km 초반에 머물러 실망했다고...

  • 스가노 도모유키 - 2018년까진 풀시즌을 꾸준히 소화하였으나 2019년부터 급격히 유리몸이 된 케이스. 2013년 입단 첫해부터 요미우리의 신흥 에이스로 각광받으며 2년차인 2014년 MVP 수상. 그이후 국대급 선발로 활약했으나 2019년 허리부상으로 시즌을 망치게 된 여파로 부상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2020년에 다시 반등에 성공하는 듯 했으나 2021년은 시즌 초반부터 다리 부상에 시달리고 복귀후 5월엔 팔꿈치 통증으로 이번엔 부진도 겹쳐 2번째 말소를 겪는등의 수모를 겪고 있는 중. 결국 도쿄올림픽 야구대표팀에 차출되고도 자진 하차하게 된다.

  • 야나기타 유키 - 2011년 소프트뱅크 입단후 특유의 과한 풀스윙과 허슬로 부상[59]이 많은 선수. 부상도 부상이지만 부상당한 시기가 포스트시즌 경쟁시기, 개막 초기등 하필 중요한 순간마다 부상을 당한다. 부상 외에 야구 실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정규시즌 MVP를 2번이나 받을정도로 뛰어난 편이다.

  • 오기노 타카시 - 풀 시즌을 뛰면 30도루는 그냥 넘고 40도루 이상도 충분히 가능할 일본프로야구 최고 준족인데 2010년 데뷔 시즌부터 시즌아웃된 걸 시작으로 매년 부상을 꾸준히 입으면서[60] 매 시즌마다 못해도 1/3 시즌에서 심하면 2/3 시즌 가까이 못 뛰고 있다(…) 덕분에 신인 시절부터 건강할 때는 항상 상위타선 주전을 꿰참에도 불구하고 시즌 100안타를 친 해가 단 한 번도 없다. 2018 시즌은 커리어하이를 찍나 하더니 또 손가락 부상으로 2개월 재활(…)로 91안타에 머물렀고 나이 34세, 데뷔 10년차인 2019년 시즌에야 커리어 첫 규정타석을 달성할 수 있었다. .315의 타율, 10홈런, 35개의 2루타, 28도루(10도루자)로 왜 스스로가 탑 리드오프 유망주였는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2020년에 도루 1위를 달리다가 또 손가락 부상으로 2개월 재활(…)에 부상 복귀 후엔 코로나19 감염으로 시즌아웃... 나이도 워낙 많아서 2019년 딱 한 해 터진 선수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았으나, 2021시즌 안타 1위, 도루 1위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2022년 스프링캠프 도중 코로나에 재감염되고, 옆구리 부상으로 5월 중순까지 1군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다(...)

  • 우치 타츠야 - 재활이 필요한 수술만 여섯 번 받았다. 그중 다섯 번은 5년 연속(…) 그 외에도 재활로 시즌의 일부를 날려먹은 경우도 있었다. 풀 시즌 마무리투수로 완주한 게 데뷔 14년 차였는데 이마저도 풀 시즌을 뛰었으나 세심하게 관리받으면서 뛴 거라 50이닝도 못 뛰었다(…)

  • 이마나카 신지 - 유리의 에이스라는 별명을 가진, 1990년대 초반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를 주름잡았던 주니치 드래곤즈 좌완 에이스. 2년차인 1990년부터 주니치의 에이스로 발돋움 하여 1993년~1996년까지 10승 이상을 거뒀다. 특히 1993년 17승 7패 방어율 2.22 탈삼진 247 승률 0.708 등 사와무라 상을 수상한 이 때가 최전성기. 하지만 1992년 왼손 손목에 타구를 맞아 골절상을 입은 후 부상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1997년 이후 어깨부상과 목메달 호시노 센이치의 무식한 혹사기용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소화한 시즌은 그리 많지않았다. 결국 2001년에 일찍 은퇴해버리고 만다.

  • 이토 토모히토 - MAX 153km/h의 강속구와 NPB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슬라이더[61]를 갖고 있던 야쿠르트 스왈로즈 비운의 에이스.[62] 데뷔시즌인 1993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16탈삼진 경기를 하는 등 7승 2패 109이닝 120탈삼진 방어율 0.91를 기록했으나 그 해부터 부상에 시달려 7월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했다. 그러고도 마쓰이 히데키(!)[63]를 꺾고 신인왕을 수상했다. 94년 초에는 어깨 수술을 받고 2년 넘게 재활에 매달려서 96년 후반기 간신히 복귀했다. 97년 마무리, 98년 선발로 좋은 활약을 하며 부활 하는 듯 했으나 99년부터 오른다리 내전근통과 혈행장해, 팔꿈치 통증에 시달렸고 99년 10월에는 어깨 수술을 다시 했다. 2000년까지는 통증을 참아가며 시즌 100이닝 정도는 던졌으나 2001년 4월 시즌 첫 등판에서 어깨 통증으로 강판되었고 뒤이어 3번째 어깨 수술...... 1년 반 동안의 재활을 거쳐 2002년 10월 24일, 코스모스 리그[64]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와의 경기에 등판했으나 9구만에 또다시 어깨가 탈구되었다. 연봉 88% 삭감(8,000만→1,000만)을 받아들이며 재활에 몰두했으나 2003년 10월 24 코스모스 리그에서 직구 구속은 겨우 109km밖에 안 나오자 결국 은퇴했다. 관절의 가동 범위가 다른 사람보다 더 넓은 루즈 숄더였는데 그 탓에 어깨 관절에 무리가 쉽게 갔다. 그런 사람이 강속구와 슬라이더를 줄창 던져댔으니 어깨가 버틸 수 있을리 없었다.

  • 하타케야마 가즈히로 - 2001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하고 2019년 은퇴전까지 팀에 머물렀던 원클럽맨. 2014년 3할타율 달성과 2015년 타점왕을 차지했으며 1루수 골든글러브도 몇번 수상했다. 원랜 유리몸과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부상이 많이 없었으나 나이가 들고 2016년들어 부상이 잦았다. 2016년 부상으로 시즌아웃된 이후 꾸준히 시즌아웃급의 부상을 달고 살았다. 2017년과 2018년 역시 부상으로 시즌아웃. 잔부상은 적지만 한번 부상이 생길때마다 시즌 끝까지 드르렁하는 큰부상이 많았다. 2019년은 아예 개막도 하기전에 부상으로 9월 은퇴경기 전까지 부상으로 2군에만 머물렀다. 2019년 은퇴후 현재는 야쿠르트 2군 타격코치로 재직중.

  • 히라마쓰 마사지 - 면도날 슈트란 별명으로 유명한 전 일본프로야구 투수.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에서만 18년을 뛰었고 다이요-요코하마 원클럽맨으로는 유일한 200승 투수이지만, 툭하면 감기걸리고 부상을 달고 살아서 주니치의 이마나카 신지 이전에는 일본프로야구계에서 유리몸 투수의 상징으로 유명했던 투수.

[1] 이때 많은 넥센 팬들은 고질적인 허리 부상을 안고 사는 이택근을 걱정했으나, 정작 다음 날 이택근은 멀쩡하고 강지광은 시즌 아웃 기사가 뜨면서 황당해했다.[2] 데이터상으로는 선수 명단에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없다고 해서 사이버 투수이다.[3] 여담으로 LG 이적 후 처음으로 등판한 경기는 2010년인데, 이는 2006년 이후 무려 4년만에야 1군에 등판한 것. 그 정도로 부상이 잦은 선수였다.[4] 보통 시즌당 부상을 2~3회 정도 당하는데, 한번 당할때마다 10경기 정도 결장하므로 최종적으로 110경기 정도 나온다.[5] 안 그래도 불펜이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NC는 구창모의 이탈 이후 선발진마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9월 중순까지 굉장히 위태로운 시간을 보냈다.[6] 다만 이때는 길게 이탈한 건 아니고 주사치료만 받고 금방 복귀했다.[7] 고교 3학년 때 시카고 컵스와 계약했으나 팔꿈치 이상을 이유로 계약을 파기당했다.[8] 2020년에 최지훈이라는 신예가 데뷔와 동시에 주전 중견수 자리를 꿰차면서 드디어 세대교체가 될 기미가 보이고 있다.[9] 2019년의 경우에는 1년 동안 휴식하면서 체력 회복을 했기에 성적만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염경엽 감독의 상당한 혹사가 끼쳐있었다.[10] 이후 7월 말에 다시 복귀하긴 했지만 안권수와 함께 시즌 초반 좋았던 타격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11] 여담으로 김원섭의 아내는 김원섭이 간염으로 입원했을 때 만난 그 병원의 간호사였다.[12] 특히 2010 시즌의 경우 부상으로 인해 꽤 빠져 있었음에도 1개 차이로 도루2위까지 달성했었다. 당시 김주찬이 도루 1위 했었으면 롯데는 2010 시즌 타격 전 부문 1위(이대호의 타격 7관왕+김주찬의 도루 1위)를 찍을 수 있었다.[13] 야구장 밖에서 아이를 돌보다 엄지발가락 부상을 당하기도 했으며.. 마운드에 등판하기 전 몸을 풀고 있는 중 늑골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다.[14] 이미 러닝조차 할 수 없었던 상태였다고 한다.[15] 그 위로는 무려 10명의 좌타자가 있다. 82백인천, 09박용택, 01양준혁, 88김상훈(1960), 99이병규, 13이병규, 16박용택, 14박용택, 11이병규, 05이병규.[16] 물론 느린 공이라고 한다 한들 시속 100km가 넘는 공에 맞으면 안 아플 수는 없다.[17] 사실 류지혁이 두산에 있던 시절에는 김재호가 건재했던지라 류지혁이 풀타임 주전으로 나올 일이 없었다. 김재호가 신음했던 2017년에는 류지혁 본인의 타격감이 영 좋지 않았다.[18] 그나마 2005년엔 성적이 11승에 평균자책점 2점대로 상당히 좋았고, 2006년도 평균자책점 3점대에 7승 7패로 성적은 괜찮았다.[19] 여담으로 4.5억원 삭감으로 최대 삭감액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가 17 시즌 종료후 한화 이글스 소속 이용규가 FA 신청을 포기한 후 9억원에서 4억원으로 연봉이 삭감당하면서 이 기록은 깨졌다. 삭감률 역시 2022 시즌 후 NC 다이노스 소속 박석민이 7억원에서 5천만원으로 삭감되면서 93%를 기록하며 깨졌고 삭감액 역시 종전 이용규의 기록을 갱신했다.[20] 갑상선이 제 기능을 못하는 병으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으로 유명한 이현곤도 이 증상이 있다. 특히 여름에 체력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언제나 여름에는 유리몸이었다. 1이닝 던지고 바로 이닝 교대 때마다 유니폼을 갈아입어야 했을 정도. 박명환 하면 유명한 '양배추'도 그 때문이었다.[21] 특히 2013년에는 백업인 최재훈이 훨씬 고군분투하며 사실상 주전 포수로 고생하고 있었다.[22] 다만 이쪽은 신인 시절부터 전성기때까지 선발과 마무리 가리지 않고 미친듯이 혹사당한 원인이 크다. 선천적인 유리몸 기질을 보인다기보단 혹사로 인해 망가진 케이스.[23] 일본에서 두 시즌 동안 한국 돈으로 5억이 넘는 연봉을 받았지만 KBO 리그에서는 계약금 없이 최저 연봉으로 첫 시즌을 시작해야 했고 3년 합쳐 1억 7,700만 원이 전부였다. 여기에 2020년 플레이오프, 2021년 한국시리즈에서 전부 등판 기회를 잡지 못하는 등 팀내 입지가 좁아지고 있었던 점도 컸다. 그러면서 은퇴 후 예능 프로그램인 최강야구에 출연하는 등 모순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24] 대전구장은 전도 유망한 공격형 유격수를 골로 보낸 광주 구장의 딱딱한 그라운드와는 달리, 2000년대 들어 크든 작든 간에 매년 리뉴얼을 해오고 있어 3만 석 가까이 되는 구장 못지않을 정도로 경기장 환경이 좋기로 손꼽힌다. 특히 이범호가 잘 나갔던 2006년에 대전구장에 필드터프로 잔디갈이를 하기도 했다.[25] 타어강 문서 참조.[26] 심지어 2014년은 어깨 부상 여파로 거의 지명타자로만 뛰었다.[27] 이건 이천웅이 유리몸이었다기보다는 운이 나빴던 것이라고 보는게 맞다. 물론 이천웅이 복귀하고 공 자체를 거의 맞추질 못했지만...[28] 간염과 갑상선 질환을 같이 가지고 있는 케이스. 하나만 있어도 체력 문제가 심각해지는데, 두 개 다 가지고 있으면서 현역 생활을 이어나간 게 어찌보면 참 신기하다(…). 2007년 타격왕 시 간 수치가 1,000까지 올라갔었다.[29] 꼭 2사때 나와서 아웃되거나, 1사 상황에 나와서 병살을 치거나, 매우 드물게 2사 때 견제사 당하거나, 매우 드물게 홈런을 쳐서 상대투수를 강판시켜서 광고가 나오거나, 드물게 주자 있는 상황에서 안타를 쳐서 상대를 강판시켜서 광고가 나오거나(투수 교체 시, 교체 시간동안 TV에선 광고가 나온다.) 정말 가지 각색의 방법으로 광고를 부른다(…).[30] 조동찬+쿠크다스[31] 참고로 이것도 추후에 fWAR 계산법이 바뀌어서 소폭 상승한거지 변경 이전 계산법을 적용하면 -0.2 fWAR이 나온다.[32] 참고로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진출 직후부터 매 시즌마다 거의 전 경기를 뛰며 심지어 2009년에야 처음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는데, 그것도 위 궤양으로 경기 출장이 힘들어지자 등재된 것일 정도로 유명한 금강불괴 중 하나다.[33] 다만 이 해 채태인의 BABIP은 0.472로 메이저 리그까지 범위를 확정시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행운이 따른 타율이긴 했다.[34] 그나마 치질은 포수들이 직업병으로 이따금씩 겪는다곤 하지만, 의학적 근거도 불분명할 뿐더러 최희섭은 포수도 아니다.[35] 타율 0.290, 22홈런, 100타점[36] 183cm에 85kg라는 유격수로써는 큰 체격과 유격수의 수비부담, 그리고 돌덩이같은 무등구장의 그라운드 상태 이 세 가지가 합쳐져 결국 그를 무릎 부상→재활→재발의 반복으로 이끌게 된다.[37] 2010년 기준 6천만원. 신인선수 최저연봉이 2천8백만원(…).[38] 현재까지 KBO 리그 프로입단 계약금 1위다.[39] 특히 2004년 햄스트링 부상에 시달렸던 진갑용을 1루수나 지명타자로 보내고 주전 포수로 나올 때도 있었다.[40] 심지어 보스턴이 시즌 내내 치열한 우승경쟁을 하고 끝내 그 해 월드 시리즈에서 밤비노의 저주를 깬 2004년 시즌 도중에 같은 유격수(수비형 유격수 올랜도 카브레라)를 상대로 트레이드된 것이었다. 노마는 팀의 월드시리즈 제패를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그간 레드삭스를 이끌어온 그의 공훈을 인정해 노마에게도 특별히 우승 배당금을 나눠주었다고 한다.[41] 에이로드는 약쟁이일 뿐 남긴 성적은 야구 역사상 최고 수준이며, 지터는 득표율 99.7%로 첫 턴 입성에 성공했다.[42] 이 타이틀도 제이콥 디그롬이 2021 시즌 그야말로 미친 구속을 선보이며 뺏겼다.[43] 다만 14년은 152이닝으로 규정이닝에 딱10이닝 모자란 시즌이었다.[44] 다만 맨틀은 매년 수십 경기씩 결장하긴 했지만 엄청난 근성으로 120경기 정도는 꼬박꼬박 출장했다.[45] 물론 우드 역시 혹사의 영향이 컸지만 이전부터 토미 존 수술을 받는 등 선수 자체도 강골이라고 보긴 힘들었다.[46] 실제로 맨틀은 누적 기록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 물론 WAR은 얘기가 다르지만. 이는 맨틀과 자주 비교되는 장기계약 이후의 마이크 트라웃과도 비슷한 행보이다.[47] 이쪽은 원래는 유리몸이 아니었지만 장기 계약을 맺자마자 유리몸으로 거듭난 케이스라 빼박 먹튀이다.[48] 하지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긴 했다.[49] 대신 경기 도중 대주자와 교체는 여전히 잦은 편이며 투수 로테이션 비율이 좀 길어진 성향을 보여줬다.[50] 2020 시즌까지는 구속이 지금보다는 느렸으며, 커브볼까지 총 4피치를 썼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절대 유리몸이 아니었고 오히려 리그에서 이닝이팅을 잘 하는 축에 들어갔다.[51] 이는 후술할 크리스 세일과도 유사한데, 세일은 장기계약을 맺은 다음 해부터 먹튀짓을 했다는 점에서 세일 쪽이 더 악질이라고 평가받는다.[52] 다만 피비는 심각한 난시를 앓던 선수라 포수의 사인을 보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던 선수다.[53] 메이저리그는 시즌 162경기니까 대략 1/5정도를 매 시즌 날려먹은 꼴이다.[54] 윤석민은 복귀 첫 해에는 30세이브 WAR 3.87로 좋은 활약을 했고 연봉도 4년 90억원으로 마쓰자카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에 마쓰자카는 윤석민보다 더한 먹튀다.[55] 하지만 마쓰자카는 MLB에서 어느정도 성적을 보여주다가 복귀한것이다. 소뱅이 아무리 돈지랄 구단이라고해도 메이저 데뷔도 못해본 방어율 10점짜리 선수에게 한화로 170억씩 꽂아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기아는 일단 90억을 지르고 봤으며 물론 첫시즌은 성공적인 복귀였지만 그 해가 끝나고 부상을 당한 뒤에는 매년 기아팬의 애간장만 태우는 사이버 투수 그 자체였다. 게다가 윤석민의 90억으로 인해 MLB 복귀파들의 몸값이 급상승한 건 덤. 뭐 보여준게 없어도 기본 80억부터 시작한다.[56] 지명타자가 없는 센트럴리그 특성상 지명타자 기회가 교류전과 일본시리즈 외엔 없었기에 좌익수로 자주 굴려졌다. 물론 지명타자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지명타자로 기용된다.[57] Second Heaven의 주인공이기도 하다.[58] 통산 성적이 79승 23패, 승률이 무려 7할7푼5리이다. 그것도 데뷔하고 첫 5년간 성적이 9승4패로 비로소 에이스로 각성한 2003년부터 부상직전인 2007년까지 5년간 성적은 무려 70승 19패(…).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비견되는 퍼시픽리그의 괴물로 평가받았다.[59] 과도한 풀스윙으로 인해 허리 부상이 많은데다 발도 빨라(40도루 할정도로 막 빠르진 않고 매년 20도루 정도는 보장할수 있는 수준.) 도루 도중에 다리를 다치는등 부상당하는 부분마저 다양하다[60] 사회인야구시절부터 무릎 반월판 통증이 있었고, 프로 진출 후 수술을 했다.[61] 후루타 아쓰야가 자신이 평생 받았던 공 중에 이토의 슬라이더가 최고의 변화구라고 꼽았다.[62] 노무라 카츠야가 자신이 감독했던 선수 중 최고의 선수로 이토를 꼽았다. 이토가 공 던지는 모습을 처음 보고 노무라가 한 말이 "에가와 2세다!"였다.[63] 요미우리 자이언츠뉴욕 양키스에서 뛰었던 그 마쓰이가 맞다.[64] 2군보다 더 아래 수준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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