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무리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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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유명 선수 출신이 아닌데도 빅클럽에서 감독으로서 성공했다. 포르투갈의 작은 팀에서 시작했지만 FC포르투에서 리그 우승, UEFA컵,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해냈다. 첼시와 인터밀란에서의 활약은 잘 알려져있다. 무리뉴는 정말 엄청난 일을 해냈다
포르투갈의 축구 감독이자 축구역사의 한 획을 그은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스페셜 원(Special One)'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2021년부터 AS 로마의 감독직을 맡고 있다.[11]
체육 교사, 통역관 등을 거쳐 감독으로 부임한 후 끊임없이 자신의 진가를 증명해내며 단기간에 월드 클래스 감독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선수 시절에는 중앙 미드필더로 활동했다. 프리메이라 리가 소속의 히우 아브에서 데뷔했고, 이후 활약 없이 하부 리그를 전전하다 1987년에 24세의 아주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선수 시절 개인 기록은 94경기 13골. 스스로도 자신이 일류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 순간부터 매 순간 감독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준비했다고 한다. 이 까닭인지 그를 비선수 출신 감독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뛰어난 선수 장악능력과 꾸준한 커뮤니케이션으로 팀의 활력을 높이는 감독으로, 전략 역시 팀의 상황에 따라 선택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본래 체육교사 출신으로 스포츠 과학, 스포츠 생리학, 심리학에 능통하며 이를 기반으로 선수들을 쥐락펴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통역관을 오랜 시간 역임하여 외국어도 능통하다.
"나의 팀에 소속된 선수들은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다. 열심히 훈련하는 자는 기회를 받을 것이요. 그렇지 않는 자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할 것이다. 그 외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와 동일한 원칙을 가진 선수들은 저랑 문제가 전혀 없었고 또 없을것입니다. '난 오늘은 75%만 뛰어야지. 난 오늘은 한 95%만 해야지.' 라는 태도를 가진 선수들은 문제가 있을겁니다. 저는 언제나 선수들에게 100%을 요구할 것이고 저 또한 100%로 임하기 때문입니다."[12]
이것이 그의 방침, 즉 내 말만 믿고 따라와라다. 이런 방침을 토대로 하여 FC 포르투와 첼시 FC에서의 성공으로 명감독 소리를 듣게 되었고, 인테르에서도 트레블을 달성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려오고 있다.
한때는 젊은 감독의 대표주자로 꼽혔으나 더 젊은 1971년생인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르셀로나 감독 데뷔 후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그 명칭은 넘어갔다.[13] 그리고 그 둘은 엄청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현대 축구판에 재미있는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
감독 최초 유럽 4개국 4개 리그(포르투갈,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정복[14] , 트레블을 포함한 2회의 챔스 우승 등 커리어가 정말 화려한 편이다. 리그 성향도 모두 다르고 구단 특성도 제각각인 4개국, 4개 리그를 돌아다니면서 각 리그 내에서 들 수 있는 우승컵은 모두 들어본 경험이 있다.
소위 안티 풋볼, 수비 위주의 답답한 축구를 한다고 까는 사람들이 있다. 재미의 유무에 따른 호불호로 보이는데, 공격축구는 승패를 떠나 상대팀에게도 찬사를 받는 경우가 있지만 안티풋볼은 승리를 추구하는 팬들은 결과에 열광하지만 상대팀뿐 아니라 제3의 축구팬들에게도 재미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사실 수비적 전술을 쓰는 감독들은 무리뉴 외에도 널렸다. 다만 무리뉴가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했기에 집중포화를 당하는 것이다. 다만 지속적으로 무리뉴의 스타일을 비판하던 토탈 사커 덕후 요한 크루이프만큼은 트레블 이후에도 깠다.
전술은 수비 라인을 끌어내린 뒤, 피지컬과 활동량을 바탕으로 공을 뺏으면 바로 공격적으로 나가는 축구를 선호한다. 수비라인을 끌어내리기 때문에 다소 발이 느린 수비수들도 활약할 수 있고, 역습을 빠르게 해야 하기 때문에 미드필드에서 패스를 잘 뿌려주거나 활동량이 많은 선수를 필요로 하고 스트라이커들의 결정력이 매우 중요하다. 가장 높이 평가받는 것은 수비라인 구축 능력으로, 무리뉴가 이끈 역대 팀들은 무리뉴가 있었던 동안의 수비력이 최고라는 평가를 항상 받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술로 인해 수비적으로 나오는 약팀들에게 어이없게 당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이러한 현상은 공격수, 특히 스트라이커의 폼이 노답일 경우 극대화된다. 04-05 시즌부터 06-07 시즌까지 첼시에서는 디디에 드록바, 인테르에서는 디에고 밀리토와 사무엘 에투,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카림 벤제마와 곤살로 이과인이 있었지만, 의적이라고 조롱받은 13-14 시즌 첼시의 공격진은...
1.1. 이름 표기[편집]
José Mourinho라는 이름을 발음 그대로 한글로 옮기면 '주제 모리뉴'가 된다. 이름 부분의 경우 Jos'É'로 "제"에 강세가 들어가, 강세가 없는 o는 약모음 u로 소리가 변해 주제가 되고, Mourinho에 있는 ou는 이중모음처럼 생겼지만 항상 ㅗ로 발음한다. 제목처럼 ou를 ㅜ로 발음하는건 오히려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도 조제 모리뉴지만 한국에서는 '무리뉴'가 더 자주 쓰이는 편이다.
축구 팬들이 부르는 이름 중에는 모리뇨, 모링요, 모링유, 모링뇨, 모링뉴, 무링뉴, 무링유, 무링요, 무링뇨, 무리뇨, 무리뉴, 버스충
영국에선 '조세 뭐뤼뇨'에 가깝게 불린다. 참고로 그의 고향 세투발에서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를 '제 마리우(Ze Mario)'라고 부른다고. 무리뉴는 이 호칭이 자신을 자신답게 느껴지게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외축구 뉴비와 고인물을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가 무링요라는 이름에 익숙한지 여부다. 위에 길게 서술된 '무리뉴 vs 모리뉴'도 고인물들에게는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느껴지는 일이다. 무리뉴가 2004년 포르투와 함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첼시를 맡아 세계 축구계의 중심에 혜성처럼 나타났을 때 그의 이름은 언론에 무리뉴와 무링요가 혼재되어 나타났다.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면 2004년과 2005년 2년간 검색되는 모든 기사의 59%가 무리뉴, 41%가 무링요로 표기되어 있으며, 모리뉴라고 표시된 기사는 단 3건[0.3%] 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중계에서 대부분의 해설자나 캐스터들이 무링요 감독이라고 불렀고 대부분의 언중들도 입에 착 감기는 발음인 무링요라고 불렀다. 무리뉴는 언론에만 등장하는 이름일 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무리뉴라고 쓰는 유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후 차차 표기의 대세가 무리뉴로 옮겨가면서 무링요라는 언론 표기는 거의 사라져갔고 무링요라 발음하던 중계진들도 대부분 무리뉴라고 고쳐서 발음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무리뉴의 진정한 이름은 무링요라고 생각하며 무링요를 그리워하는 올드비들이 많다.
2006독일월드컵 이전까지는 외국 축구선수들을 뭐라고 부르든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으나[18] 2006WC를 계기로 외국 축구선수들의 발음을 정확히 하자는 언론사들의 반성을 계기로 무리뉴처럼 xx요로 표기하던 nho로 끝나는 브라질, 포르투갈인들의 이름도 xx뉴로 표기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때에 무리뉴처럼 xx요로 표기하던 nho로 끝나는 브라질, 포르투갈인들의 이름이 xx뉴로 표기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호나우딩요, 무링요, 카르발요, 호빙요.[19]
"예전에도 무링요보다는 무리뉴라고 표기한 기사가 많았네요."라고 반문하는 이가 있다면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무리뉴라고 표기된 초창기 기사들의 상당수가 '호세무리뉴'(...)라고 표기되어 있다. 반면 무링요라고 표기된 기사의 대부분은 '조세 무링요'라고 표기되어 있다.
무링요라고 불렸던 과거 때문에 간혹 콜롬비아인 수비수 제이손 무리요하고 헷갈리는 사람도 있다.
2. 감독이 되기 전[편집]
본인이 축구선수로서 재능이 특출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아주 이른 나이인 24세에 은퇴했다. 이후 어머니의 의사에 따라 경영대학원에 등록했지만 하루 만에 관두고 본인이 원했던 스포츠 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리스본공과대학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국립체육교육학 코스를 밟았다. 이후 5년간 여러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체육 교사로 재직하면서[21] 해당 코스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였고,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코칭 코스까지 수료하며 축구 감독계에 입문했다. 체육 교사를 관둔 후에는 하부리그 구단이었던 에스트렐라 다 아마도라의 수석 코치와 오바렌세의 스카우터 직으로 재직하였다. 그러던 중 1992년에 스포르팅 CP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바비 롭슨의 통역관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스포르팅 CP를 시작으로 FC 포르투, FC 바르셀로나까지 바비 롭슨 감독과 계속 동행하며 그의 담당 통역관 및 코치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에는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자 당시 바비 롭슨의 후임이었던 루이 판할과 일하기도 하였다. 2010년 인테르를 이끌고 판할의 바이에른 뮌헨과 챔스 결승에서 마주한 것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감독직을 주고 받은 일을 생각하면 꽤나 재미있는 과거. 그리고 펩 과르디올라와도 선수와 코치로서 이 때 처음 만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통역관을 하던 시절 일화가 있는데 96/97 시즌 빌바오 원정에서 1:2로 바르셀로나가 패했던 경기에서 빌바오의 거친 플레이를 참지 못하고 당시 빌바오 감독이었던 루이스 페르난데스에게 폭언을 쏟아냈다고 한다. 경기 후 열받은 페르난데스 감독이 무리뉴를 잡으러 갔지만 펩이 페르난데스 감독을 붙들곤 언쟁을 벌였고, 무리뉴는 그 사이에 도망쳤다. 이 사건 후 무리뉴는 징계를 먹었다고 한다.
바비 롭슨은 그전 스포르팅 리스본에 있을 때부터 무리뉴의 재능을 알아보고 함께 전술에 대한 논의를 자주 나누곤 했고 무리뉴는 이 과정을 통해 전술적인 실력을 쌓아가게 된다. 바비 롭슨을 따라 바르셀로나로 온 무리뉴는 통역관뿐만 아니라 전술 어드바이스, 선발 선수 관리 등을 수행하며 지도자로써의 역량을 쌓았다. 마찬가지로 독설로 유명한 판 할 감독과는 서로 죽이 아주 잘 맞았다고. 롭슨과 판 할이라는 뛰어난 스승 아래 무리뉴의 전술적 역량은 나날이 성장해 나갔다. 하지만 워낙 통통튀는 성격 때문에 다른 스탭들과 사이는 썩 좋지 않았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수업을 받은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와 극도로 다른 전술을 사용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
지금은 요한 크루이프와 사이가 안좋다고 알려져 있으나, 바르셀로나에서 통역사-수석코치 시절에는 무리뉴가 크루이프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긴장해서 말도 못 걸고 벌벌 떨었다는 일화가 있다. 원정경기를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우연히 크루이프 옆좌석에 배치되었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도 더듬으며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안쓰러운 나머지 크루이프가 먼저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무리뉴도 답변을 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긴장을 풀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바르사는 내 마음 속에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할 거야"
- 주제 무리뉴, FC 바르셀로나 통역사, 1997년 우승 축하 행사에서
하지만 그는 바르사의 철천지 원수가 되어 나타난다...#
3. 감독 경력[편집]
4. 전술 스타일[편집]
4.1. 장점[편집]
한 마디로 말하자면 철저한 실용주의자. 일단 극단적인 수비축구만을 구사한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축구를 좀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평가할 일은 아니다. 무리뉴는 강팀(무리뉴 팀) vs 약팀 구도의 경우라면 점유율을 확보한 상태에서 게임을 주도하는 경기 운영을 한다. 애초에 무리뉴가 맡은 팀이 대부분 강팀이기 때문에 거의 이런 운영을 했다. 기록적으로 봐도 평균 점유율은 늘 리그에서 상위권에 있고 2015-16 시즌 첼시를 제외한 무리뉴가 맡은 팀은 항상 리그 득점 3위 이내에 있었다. 심지어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는 리그에서만 121골 넣은 적도 있다. 또한 공격 패턴이나 득점 루트가 역습에만 치중되어 있다는 편견과는 다르게 점유율 축구, 선수들 간의 유기적인 패싱 플레이, 간격 유지, 부분 전술에도 세밀하게 신경을 쓰는 타입이다.[23] 다만 아래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듯이 무리뉴는 강팀과의 경기에는 평소보다 철저히 수비 지향적인 전술을 쓰는 경향이 분명하게 나타나며, 무리뉴의 팀을 응원하지 않는 팬이라면 주로 이런 빅매치 경기를 통해 무리뉴의 전술을 접하게 되기 때문에 수비 축구의 이미지가 강하게 굳어진 측면이 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해당 경기에서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축구를 구사한다.
또 무리뉴는 공격 상황 시에는 선수들의 자율에 맡기는 편인데 이는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다. 전성기 시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림 벤제마 같은 오프 더 볼 능력이 뛰어나고 다재다능한 선수들과 샤비 알론소와 메수트 외질 같은 패스 마스터가 있었던 레알 마드리드 시절은 이 장점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던 시기로, 위의 뛰어난 재능을 갖춘 공격진에게 공격 전술을 일임해서 상대를 끌어들인 뒤 생겨난 뒷공간을 이용하는 역습으로 많은 득점을 생산해냈다. 첼시 시절에는 에덴 아자르가 있었으나 원톱은 말년에 디에고 코스타를 영입할 때까지 문제점이었기 때문에 역습 시에는 공격력이 극대화되지 못했으며, 맨유 시절에는 스쿼드 자체가 지공에 가까웠고 역습을 이끌어야 될 앙토니 마르시알이나 마커스 래시포드 같은 선수들이 딱히 지능적이지 못해서 폴 포그바의 패스가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사실상 지공만 하다가 자멸해 버렸다. 이는 선수들의 자율에 맡기는 공격 전술이 실패한 사례로, 점유 상황 시에 필요한 세밀한 동선 조절과 부분 전술의 결락으로 인해 내려앉은 상대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24] 그리고 토트넘에서는 해리 케인, 손흥민이 공격진에 있었는데, 케인에게 플레이 메이커 롤을 부여해서 손흥민의 뒷공간을 이용하는 능력을 풀로 이용하는 역습 전술로 한동안 재미를 봤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며 다른 팀들에게 읽혔고 지공 상황에서는 무리뉴 본인의 세부전술의 한계로 답답함을 유발해냈다.
이러한 기본 컨셉에도 불구하고 무리뉴가 수비 축구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그의 극단적인 실리주의성이 중요한 경기에서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무리뉴는 확률적으로 이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술을 구사하는 감독이다. 즉 이기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술적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 타입이라는 것. 때문에 만약 상대 팀의 객관적인 전력이 자기 팀보다 우위에 있으면 지체없이 라인을 내리고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에 치중하는 것이다. 반대로 만약 라인을 올리고 공격적으로 나서는 것이 승리(혹은 우승)를 위해서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마찬가지로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한다. 그런데 무리뉴에게 전자의 이미지가 강한 이유는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 당대 우주 최강팀이었던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보여주었던 수비 전술, 첼시 시절에 존 테리의 느린 발을 커버하기 위해 수비 라인을 내린 그의 선택이 많은 팬들에게 인상 깊게 남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르셀로나한테 여러 번 얻어맞으면서 상대에 대한 연구가 되었는지 이제는 어느 정도 해볼 만하다고 판단하여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정상적인 경기 운영을 하거나 오히려 맞불작전을 펼쳐서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첼시 시절에도 이른바 '버스 세우기' 전술을 들고 나온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지만, 맨유에서 감독직을 맡은 뒤에는 수비적인 운영을 매우 선호한다. 특히 원정에서는 버스 세우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홈에서도 가끔 안티 풋볼을 구사하고는 한다. 기본적으로 맨유에서는 매우 수비적이고 신중한 전형으로 경기를 펼친다.[25]
이미지와 다르게 극단적인 수비 축구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수비에 엄청난 신경을 쓰는 것은 사실이다. 대체로 수비 라인을 내리는 강력한 수비 축구를 지향하나, 수비 일변도 뿐만 아니라 중요한 타이밍 때 신속하게 역습하여 상대의 허를 찌르는 이탈리아식 선수비 후역습에 충실하다.[26] 이런 방식의 축구로 인해 라인을 올려 속공을 하는 방법이 잘 듣지는 않는데, 첫 번째 이유는 무리뉴식 전술이 들어간 팀의 구성이 수비수가 많은 데다가 미드필더들 내지는 윙어들까지 수비에 가담해서 상대방의 침투를 원천 봉쇄하여 상대방의 침투를 수적 우위로 밀어 버려 공격수들의 침투가 어렵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만약 무리뉴가 지휘하는 팀이 수비로 상대의 침투를 막기만 하면 다행인데, 축구가 막기만 하는 스포츠가 아니고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패스를 침투가 뛰어난 공격수에게 정확히 전달하면 라인을 올려서 생긴 뒷공간이 다 뚫려 상대 수비가 말 그대로 초토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심지어 골키퍼와 1:1 상황이 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속공을 위해 라인을 올려 공격하는 전술을 쓴 아르센 벵거는 무리뉴의 팀에게 피를 본 적이 엄청나게 많다. 또한 라인을 내려 역습하는 방법 외에도 팀의 전체적 밸런스를 중시하는 모습도 보인다.[27] 중원을 구성할 때 공격적인 재능이 뛰어나도 수비적 기여도가 낮은 선수[28] 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후안 마타가 첼시를 떠나게 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각 포지션마다 선호하는 선수 유형도 본인의 전술만큼 어느 정도 정형화가 된 감독이다.
- 스트라이커: 포스트 플레이와 결정력이 좋은 선수를 선호한다. 활동량이나 수비가담도 중요시 여기지만, 그 이상으로 득점력 자체를 더 중요하게 보는 편.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첼시 1기 시절 디디에 드록바로 설명할 수 있으며, 첼시 2기 시절 디에고 코스타의 경우가 좋은 예시이다. 맨유에서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역습 속도를 죽이는 것 아니냐는 식의 말이 있었음에도 팀에서 가장 골 잘 넣는 스트라이커라서 거의 혹사에 가까울 정도로 절대적인 신뢰를 주었다. 완벽한 육각형 공격수인 토트넘의 해리 케인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 윙어: 무리뉴의 윙어 기용 스타일은 4-3-3 전술에 기반한 컨셉 그대로이며, 득점에 강점이 있는 선수와 드리블 돌파에 강점이 있는 선수를 양 옆에 나란히 기용해 상호 보완을 하도록 한다. 레알 시절 앙헬 디마리아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조합이 대표적인 예시이며, 첼시 1기 시절에도 좌측 윙어로 아르연 로벤, 우측 윙어로 데이미언 더프를 기용해 비슷하게 재미를 본 바 있다. 토트넘에서는 처음에는 윙어 중에서 그나마 폼이 괜찮았던 게 손흥민과 루카스 모라 둘 뿐이고 공격력이 좋은 풀백도 세르주 오리에 하나 뿐이었어서 손흥민이 드리블과 빌드업을, 루카스 모우라가 중앙 침투와 득점 시도를 맡았는데, 서로의 강점이 정 반대인 점을 생각하면 이는 미스매치라고 볼 수 있었다.[29] 이후 20-21 시즌을 앞두고 손흥민과 모우라의 역할이 바뀌었고 왼쪽 풀백 주전이 공격력이 약한 벤 데이비스에서 빠르고 공격적인 세르히오 레길론으로 바뀌자 아예 케인이 2선에서 최대 3선까지 내려와 플레이 메이킹을 하고 손흥민은 아예 메인 스코어러 역할로 전진하면서 득점력 포텐이 터졌다.
- 공격형 미드필더: 특별하게 공격형 미드필더를 기용하는 전술을 고정적으로 선호한 적은 없고, 그래서인지 이 포지션에 한해서는 비교적 다양한 유형의 선수를 사용해왔다. 예시를 나열해보면 데쿠와 같이 경기 조율에 강점을 지닌 유형, 베슬리 스네이더르처럼 우월한 킥 능력을 통한 득점 및 찬스메이킹과 높은 활동량으로 팀에 기여하는 유형, 메수트 외질처럼 철저한 찬스메이커 유형이 있는데, 첼시 2기의 오스카르나 토트넘의 델리 알리 기용을 보면 무리뉴가 가장 선호하는 유형의 공격형 미드필더는 박스 투 박스 움직임이 가능한 활동량과 수비 가담 능력을 지닌 공격형 미드필더로 보인다. 다양한 선수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스네이더와 오스카의 예를 보면 가장 선호하는건 박투박 유형의 활동량, 수비가담이 좋은 공미를 선호하는걸로 보인다. 첼시 1기 시절의 프랭크 램파드,토트넘 홋스퍼 FC 시절의 델리 알리를 떠올리면 확실히 감이 온다.
- 중앙 미드필더: 무리뉴가 점유를 중시하는 감독임을 대변해주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무리뉴가 운용했었던 미드라인을 보면 프랭크 램파드, 티아고 모타, 에스테반 캄비아소, 사비 알론소, 세스크 파브레가스같은 선수가 마에스트로 역할을 맡아 중원에서의 볼 배급과 플레이 메이킹을 진두지휘한다면, 그 옆에서 클로드 마켈렐레, 마이클 에시엔, 사미 케디라, 네마냐 마티치같은 선수들이 높은 활동량과 좋은 수비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보조해준다. 무리뉴가 부진한 시즌은 대부분 이 미들진에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맨유에서는 마에스트로 롤을 폴 포그바가 맡았지만 기존에 무리뉴가 중용한 선수들과 달리 3선에서 볼을 배급하기보단 직접 드리블을 통해 전진하는 모습을 주로 보여줬고, 그러면서도 수비 복귀가 느린 탓에 보조 역할인 마티치만 죽어났다. 토트넘 초창기에는 해리 윙크스를 마에스트로 역할로 기용해봤지만 무색무취의 모습만을 보여줬고[30] ,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 영입 이후에는 호이비에르가 마에스트로 롤을 전담하고, 파트너 탕기 은돔벨레도 이 시점부터 살아났다.
- 수비수 : 탑 클래스로 불리는 감독 중에서 그 누구보다 고전적인 수비라인을 중요시 여기는 감독이다. 수비진의 빌드업과 패싱 능력에 대한 중요성과 고평가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도, 무리뉴가 중용한 수비진은 빌드업보다는 수비력에 1차적인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첼시 1기의 존 테리-히카르두 카르발류, 인테르의 루시우-왈테르 사무엘, 레알의 페페-세르히오 라모스, 첼시 2기의 존 테리-게리 케이힐, 맨유에서의 에리크 바이-필 존스까지 이어지는데, 물론 이 조합이 빌드업이 크게 부족한 건 아니었고 루시우나 세르히오 라모스같이 그냥 다 잘하는 수비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빌드업보다는 수비력을 대표 강점으로 삼은 조합이었다. 때문에 최근들어 펩 과르디올라나 루이 반할같이 왼발잡이 센터백 기용을 중시하는 감독들도 있지만, 무리뉴는 그다지 개의치 않는 편. 풀백은 공격적이건 수비적인 건 그때그때 팀 사정에 맞춰서 라인을 운용한다. 다만 맨유에서는 수비력이 부족하지만 빌드업이 뛰어난 빅토르 린델뢰프를 영입한 것을 보아 이제는 빌드업 또한 어느 정도 신경 쓰는 것으로 보이나 처참한 결과만이 있었다. 수비 위주의 전술을 짜는 만큼 수비수의 포지션 비정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레알 마드리드의 라이트백이었던 세르히오 라모스, 맨유의 레프트백이었던 마르코스 로호, 토트넘의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에릭 다이어가 센터백으로 전업해 호성적을 내기도 했다.[31]
4.2. 단점[편집]
4.2.1. 구시대적인 전술[편집]
사실 무리뉴가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고 승승장구하던 시절에도 실리주의적인 무리뉴의 축구에 대해 보는 재미가 많이 뒤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실제로 무리뉴가 애용하는 전술 방식인 수비 라인을 바짝 내리고 빠른 역습을 통해 골을 넣는 전술, 특히 그라운드의 모든 선수들에게 유난히 보수적으로 수비력을 강조하는 전술이 승률에 기여했을 수는 있어도 축구 보는 재미를 반감시켰다는 의견을 부정하기는 어렵다.[32] 축구 경기에 재미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축구는 돈의 스포츠다. 애초에 모든 스포츠는 자본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이기지도 못하면서 재미없는 축구가 지속되면 경기장 입장료와 중계료 수입은 하락하게 되고 이는 구단의 재정 악화로 이어져 장기적인 구단 운영에 걸림돌이 된다. 장기적 관점의 재미없는 축구가 문제가 될 수 있으나 무리뉴 정도의 감독이 일할 정도의 클럽이라면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명문 클럽이 대부분인데, 이러한 빅클럽들은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에서도 아름다움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첼시 1기 시절과 같이 클럽이 갓 도약을 시작한 신흥 강호의 시절이라면 무리뉴 식의 스타일이 충분히 먹힐 수 있었으나, 역사가 깊고 오랫동안 명문이었던 클럽의 경우에는 승률 뿐만 아니라 승리를 가져가는 과정에서도 만만치 않은 수준을 요구한다. 특히 폴 스콜스와 같은 일부 맨유의 레전드들이 맨유를 이끄는 무리뉴가 아니라 펩 과르디올라를 칭찬하는 것도 승리의 과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성적이 좋으면 그 성적을 바탕으로 팀의 수익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다소 배부른 비판이었고, 팬들 입장에서도 아름다운 축구를 해놓고 지거나 트로피도 못 들 바에는 실리적인 축구가 재미없더라도 괜찮기 때문에 무리뉴가 성적을 잘 내던 시기까지는 그닥 의미가 없는 비판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후반 들어 위르겐 클롭과 유프 하인케스로부터 시작된 게겐 프레싱으로 대표되는 전방 압박 전술과 펩 과르디올라의 라볼피아나를 활용한 후방 빌드업 전술이 현대 축구의 트렌드로 대두되며 무리뉴의 전술은 비교적 구식 전술이 되었고, 동시에 성적이 전에 비해 쭉 내려가면서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쳐져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펩, 클롭, 안토니오 콘테와 같이 새롭게 등장한 전술 트렌드 세터 감독과의 상대 전적에서 압도적으로 밀리는 데에서 그런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33][34]
여러 기자와 선수들을 통해 증명된 사실이지만 무리뉴는 훈련 시 수비 전술은 매우 철저히 시키지만, 공격 전술은 대략적인 위치나 동선 정도만 알려주고 선수들 개개인에게 일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무리뉴의 축구는 공격적인 풀백, 찬스 메이킹이 가능한 플레이 메이커, 지능적인 스트라이커 자리에 모두 수준이 높은 선수가 필요하다. 인테르에서는 월드 클래스 풀백 마이콩, 폼이 절정이던 플레이 메이커 베슬리 스네이더르, 득점력이 좋고 움직임이 기민한 최전방의 사무엘 에투와 디에고 밀리토가 있었으며, 레알에서도 풀백에는 마르셀루 비에이라, 플레이 메이커로는 샤비 알론소와 메수트 외질, 공격진에는 말이 필요없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림 벤제마가 있었다. 첼시 2기 시절에도 풀백에는 리그 탑급이었던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와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 플레이 메이커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크랙 에덴 아자르, 최전방에는 전성기를 달리는 디에고 코스타가 있어서 이게 잘 먹혔는데, 2015-16 시즌부터 이 선수들이 아스필리쿠에타를 제외하고는 부진에 빠지자 팀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으며 맨유에서도 공격진의 축구 지능이 다소 부족하고 풀백의 퀄리티가 크게 떨어져 성공적이지 못했다. 토트넘에서는 해리 케인이 아예 처진 위치에 내려오고 손흥민에게 패스를 찔러주는 역할을 맡으면서 반등에 성공했지만 그만큼 케인이나 손흥민에 대한 의존도가 극심해서 이 두 명 가운데 한 명만 없어도 공격진이 마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기사에서는 토트넘의 공격 전술은 손흥민과 케인에게 공을 주는 것뿐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로 세부 공격 전술에 대해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 단점은 무리뉴가 베테랑 선수에게 큰 돈을 들이고 유망주를 직접 잘 육성하지 못하는 이유와도 연관이 있다. 공격 전술에서 선수의 개인 능력과 판단력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는 건 선수가 천재적인 재능과 감을 갖추고 있거나 많은 경험을 갖춰서 특정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될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걸 전제로 전술을 짜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중 혼자서 경기의 판도를 뒤집어 놓을 정도의 재능은 빅클럽 유스라도 몇십 년에 한 번 나오는 수준이고, 웬만한 유스는 프로 무대에 데뷔했을 때 프로와 유스 레벨의 차이로 인해 적응기가 존재한다. 그리고 상대의 수비를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나 드리블 돌파를 상황에 따라 적절히 사용해서 지능적으로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유스는 거의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수준이며, 이런 능력을 유스 선수가 갖추기 위해서는 실전 경험도 필요하지만 감독의 지도 또한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유스가 적어도 오프 더 볼 능력이라도 완성된 선수가 아닌 다음에야 자기의 감으로 공간을 찾아내야 되는 무리뉴의 전술에서 성공적으로 기용되기는 어렵다. 이렇기에 무리뉴는 경험으로 이를 커버하기 위해 베테랑 선수를 기용하는 것이다. 오랜 프로 생활로 수많은 경험이 쌓인 선수는 적어도 유스보다는 알아서 공간을 찾아들어가며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될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높다. 거기에 본래 뛰어난 재능을 갖춘 선수라면 경험과 재능이 어우러져서 공격이 더욱 원활하게 풀려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선수들은 전성기라면 천문학적인 금액을 필요로 하며, 전성기의 끝물인 20대 후반이라고 해도 실력이 이미 검증된 데다가 쌓아올린 커리어와 아직은 빅클럽에서 주전 경쟁을 하기에 무리가 없는 준수한 신체 능력 때문에 나이에 비해 이적료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전성기에 있는 월드클래스 선수는 이적료가 워낙 비싸서 웬만한 갑부 팀에서도 이적을 성사시킬 수 없고, 전성기의 끝물인 선수를 데려오자니 이적료와 주급도 애매하게 높은 데다가 1-2년만 지나도 기량 하락으로 인해 대체자를 다시 구해야 되고 선수의 가치 또한 급락해서 팔아도 원금의 반이라도 회수하면 다행인지라 팀 재정에 있어서 효율성이 극도로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뉴가 요구하는 선수들을 보면 경기력뿐만이 아닌 재정도 고려해야 되는 팀 차원에서는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즉 무리뉴의 전술은 유스 선수(특히 공격수)가 적응하기에는 난이도가 심하게 높기 때문에 베테랑 선수들을 기용하며, 그래도 부족한 포지션에도 똑같이 베테랑을 데려오려고 하지만 구단에서 보면 허락해주기 힘든 이적 대상들이기 때문에 원하던 이적이 이루어지지 않고 공격이 답답해지며 유스는 유스대로 성장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선수빨을 은근히 타는 감독이기도 하다. 일부 극성 무리타들은 과르디올라를 선수빨 감독이라고 비난하지만 무리뉴도 선수빨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다. 앞서 말했듯 무리뉴의 전술상 꼭 필요한 선수들이 몇몇 있고 그 중에서도 핵심이라면 오프 더 볼 무브먼트가 좋은 영리한 공격수와 그 공격수에게 패스를 배달해 줄 플레이 메이커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선수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이탈하고 그에 못 미치는 대체 자원이 투입되면 팀 경기력 자체가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공격수의 오프 더 볼이 별로라면 패스를 잘 찔러주더라도 역습이 불가능하고, 반대로 패스가 안 좋으면 공격수의 오프 더 볼이 아무리 좋더라도 역습이 성사가 안 된다. 때문에 이 두 타입의 선수가 모두 있지 않다면 역습 중에 볼을 잃게 되며, 다시 수비하는 상황에 빠지고 점차 주도권을 잃어가며 체력을 소모하게 되면서 체력 소모가 심해지기 때문에 다시 역습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계속해서 악순환이 계속된다.
단적으로 무리뉴가 토트넘에서 경질된 20-21 시즌 때 공격의 주축인 손흥민과 케인 둘 중 단 한 명만 이탈해도 공격이 극도로 답답해지는 것에서 볼 수 있었는데, 손흥민이 부상으로 이탈한 이후에는 전방에서 상대를 공략할 공격수가 마땅치 않아 6경기 5득점에 그칠 정도로 팀 득점력 자체가 크게 하락했고, 손흥민의 복귀 이후 케인이 이탈하자 이번에는 손흥민이 엄청나게 뛰어다녔는데 전방으로 연결이 안 되어서 손흥민만 압박하고 역습하고 미친 듯이 굴러다녔다. 물론 주력 선수가 이탈하면 전술이 잘 안 풀리는 건 다른 팀 감독들도 유사하나, 무리뉴의 팀이 이 점에서 더 두드러지는 건 무리뉴의 플랜 B가 생각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명장 소리를 듣는 감독들은 부상 등의 이유로 플랜 A가 어그러지면 선수 개개인의 전술이나 팀 전체의 진형을 수정한 플랜 B로 위기를 타개하는 경우가 많지만, 무리뉴는 생각보다 그런 모습이 잘 안 나온다. 기껏해야 백업 선수를 투입해 그 선수에게 주전 선수의 역할을 그대로 바라거나 약간의 포메이션 변형만을 가져가는 정도. 때문에 무리뉴가 원하는 수준을 낼 수 있는 특정 포지션의 선수를 위해 영입은 필수 불가결이고 그런 탓에 이적시장에서 쓴 돈도 상당히 많다.[35]
그렇다고 무리뉴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수비 전술이 현대에도 잘 먹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전방 압박을 제외한 순수 수비력에 의존하는 수비 전술이라고 한다면 버스 세우기와 대인 마크가 아닌 중앙 공간을 제어하는 디에고 시메오네의 두줄 수비가 있기 때문. 심지어 이런 두줄 수비조차 초창기에 비해 점차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현재는 체계적인 전방 압박 전술이 공수를 아우르는 팀 전술의 대세로 자리매김하는 중인데 두줄 수비보다도 옛날에 머무른 무리뉴의 수비 전술은 빈말로도 트렌드를 따라간다고 보기에는 어렵다.[36] 또한 무리뉴의 전술의 치명적인 문제는 월등히 높은 체력 소모인데, 라인을 내린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은 라인을 극도로 내린 뒤 공을 뺏고 낮은 위치에서 높은 위치까지 빠른 스피드로 역습을 하고 공을 뺏기면 다시 낮은 위치로 돌아오는 등 경기장을 계속해서 왕복해야 된다. 축구에서는 수비하는 쪽이 체력 소모가 더 심하며, 공을 가진 쪽은 페이스 조절을 통해 체력 안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수비하는 쪽이 점점 체력적으로 부족해지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치명적인 단점이다.[37]
이 전술을 보다 직접적으로 비교할 대상이 둘 있는데, 우선 앞서 언급한 디에고 시메오네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있다. 시메오네는 무리뉴와 마찬가지로 수비적인 전술을 운용하는 감독이지만 윙어에게 걸리는 부담을 인식하고 중앙 지향적인 선수를 2명 배치해 중앙에서 패스로 빌드업을 시키면서 체력 안배를 시켜준다는 점에서 무리뉴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런 전술을 짜도 수비 전술 자체가 2019-20 시즌에 파훼되자 이후 시메오네는 공격 시에는 양 풀백을 오버래핑시키는 공격적인 변형 3백으로 전술 변화를 꾀했고, 덕분에 이적생 루이스 수아레스의 대활약과 함께 2020-21 시즌 라리가 선두를 질주하며 마침내 리그 우승까지 들어올렸다.
또 하나는 위르겐 클롭의 리버풀 FC인데, 클롭은 당초 도르트문트 시절부터 게겐 프레싱과 빠른 역습을 위시한 선 수비 후 역습 전술로 성공가도를 걸었지만 체력 소모로 인해 박싱데이 이후에는 팀이 무너지는 문제점이 있었고, 이를 인식하고 노선을 바꿔서 수비 시엔 강력한 전방 압박으로 빠른 시간 안에 수비를 끝내고 공격 시에는 높은 위치에서 역습을 시작해 역습으로 인한 체력 소모를 최소화하거나 느린 페이스로 공을 돌리며 상대의 체력 소모를 극대화하는 전술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결과 리버풀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챔피언스 리그와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38]
반면 무리뉴는 주력 윙포워드가 수비 시에는 뛰어다니며 압박을 하고 역습 시에는 하프라인 아래에서부터 상대 진영까지 전력 질주나 드리블을 시키는 살인적인 활동량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선수 교체를 돌린다거나 주기적으로 선발에서 빼서 휴식을 부여하는 식으로 로테이션을 돌려주면 좀 나을 텐데 무리뉴는 그것조차 하지 않고 매 경기 풀타임에 가까운 시간을 소화하게 하며, 이는 장기적으로 선수단이 퍼져 후술할 무리뉴 3년차에 팀이 추락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현대 축구에서는 체력적으로 비효율적인 수비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기 위해 전방 압박 전술을 사용하는데, 무리뉴의 전술은 체력 소모에 있어서는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것. 단기 토너먼트라면 모를까 8월에 개막해 이듬해 5월까지 9개월을 소화해야 하는 리그에서 이는 매우 치명적인 약점이다.
무리뉴의 축구는 말만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축구라고 볼 수는 있다. 장점에서도 나왔듯 수비를 단단히 해서 상대가 뚫지 못하는 벽을 세워두고 상대가 실수를 해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빠른 역습으로 골을 넣고 이를 반복하는 것은 극도의 이득을 볼 수 있는 운영이기 때문. 다만 이 전술의 전제 조건은 이 경기장을 왕복하는 전술을 선수들이 90분 내내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고, 즉 무리뉴의 축구는 선수들이 영원히 체력이 닳지 않는 로봇이 아닌 다음에야 리그 내내, 그리고 몇 시즌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이 아니다. 무리뉴 본인의 앙숙이었던 아르센 벵거가 결과를 동반하지 못하는 이상주의자라며 비판을 당했던 것처럼 이제 본인이 체력 소모를 고려하지 않는 이상주의자라는 비판을 당할 처지에 빠진 셈. 이런데 로테이션마저 돌리지를 않으니 주전 11명은 계속해서 한 경기에 모든 것을 쏟아붇고 이를 여러 경기 반복하다가 끝내 체력이 방전되어서 부상을 당하거나 과로나 만성 피로로 인한 정신적인 영향 등이 생겨나며, 이게 극에 달하는 3년차에 팀이 계속해서 추락한다고 볼 수 있다. 피로가 극도로 쌓일 경우 정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심할 경우에는 우울증까지 올 수도 있다. 물론 만성 피로 항목을 보면 운동을 통해 이를 해소할 수 있다고 나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몸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적당한 양의 운동을 말한다. 무리뉴의 선수들이 겪는 건 적당한 수준이 아닌 육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운동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이로 인한 피로는 운동을 돌파구로 해결할 수 없다. 축구 선수들이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실수를 더 자주 하는 것도 피로 누적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 때문이다. 체력적인 문제는 언제나 운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체력이 좋을수록 (혹은 체력 안배를 잘할수록) 좋은 경기력을 오래 보여주는 것은 이미 여러 사례로 증명된 바 있다.[39]
여러모로 파비오 카펠로를 떠올리게 하는 루트를 그대로 밟는 중이다. 카펠로도 전성기이던 1990년대에는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군림했고, 로마와 유벤투스를 거친 2000년대에도 어느 정도 통했으나 레알 부임 이후에는 점차 한계가 드러나더니 잉글랜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후부터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잡는 팀마다 실패를 거듭했다.[40] 수비적이고 실리적인 전술 스타일과 플랜 A를 고집하고 로테이션 가동률이 낮은 점도 무리뉴와 유사하며, 여기에 카펠로는 때때로 위트있고 유연한 모습도 보여주는 무리뉴와 달리 독불장군 그 자체라서 커리어 말년에는 트러블도 꽤 있었다.
4.2.2. 부족한 선수 육성[편집]
무리뉴는 선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걸 육성하는 감독이 아니고 완성된 선수 중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를 영입해 오는 경향이 강한데, 전성기 때는 디에고 밀리토와 사무엘 에투, 베슬리 스네이더르 같이 정말 실력있는 선수들을 데려왔지만 첼시 2기부터는 월드 클래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선수가 내쳐지고 전성기가 지났거나 빅팀에 어울리지 않는 기량을 가진 선수를 비싸게 사오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육성 실패 사례는 로멜루 루카쿠, 케빈 더브라위너, 모하메드 살라이다.[41][42]
루카쿠는 무리뉴가 부임하기 전인 2012-13 시즌에는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으로 임대를 가서 프리미어 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며 17골 7도움을 기록했지만, 무리뉴는 그를 2013-14 시즌 프리시즌 중 에버튼으로 임대를 보내버렸다. 그리고 무리뉴가 선택한 라인은 바로 그 전설의 토에바였으나, 루카쿠는 리그 15골 8도움으로 토에바 3형제를 압살해 버렸고 첼시 팬들 또한 2014-15 시즌에 루카쿠가 기회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무리뉴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두 시즌 연속으로 15골 이상을 기록한 유망한 공격수임에도 무리뉴는 단 한 번도 기회를 주지 않고 루카쿠를 내치고 디에고 코스타를 영입했다. 그런데 무리뉴는 맨유에 부임한 뒤 루카쿠의 포텐이 터지자 1000억이 넘는 이적료에 부대조항과 웨인 루니까지 사실상 얹어주면서 데려왔다.
더브라위너의 경우 그 당시 윌리안, 오스카, 에덴 아자르가 있었고 로테이션 자원으로 안드레 쉬를레까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무리뉴는 2013-14 시즌 더브라위너가 주전으로 뛰기 위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을 하려는 걸 막고서는 리그에서 단 3경기 밖에 기용하지 않았고, 더브라위너가 주전 출장을 요구하자 포지션 경쟁자들을(후안 마타, 아자르, 오스카, 윌리안, 쉬를레) 모두 불러모아서 그들 앞에서 더브라위너의 스탯과 경쟁자들의 스탯을 비교해 가면서 더브라위너를 몰아세웠다고 한다.[43] 결국 겨울 이적시장에서 더브라위너는 VfL 볼프스부르크로 임대를 떠나서 16경기에서 3골 6도움을 올리며 본인이 기회를 받을 만하다는 걸 증명했지만, 결국 볼프스부르크로 완전 이적했고 2014-15 시즌에 더브라위너는 리그에서만 10골 21도움을 올리며 분데스리가 최다 도움을 갱신하고 평가가 짜기로 유명한 독일의 스포츠 잡지 키커에게 월드 클래스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평가를 받는다.[44][45] 그 뒤 더브라위너는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해서 세계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거듭난 걸 보면 바이백 조항조차 달지 말라고 요청한 무리뉴의 안목은 그다지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결과론이라고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고 당시에는 팬들이 보기에도 맞는 결정이라고 해도 이는 오히려 무리뉴의 선수 안목이 그냥 일반 팬 수준이라는 걸 증명할 뿐이다.[46] 또한 보기에 맞는 결정이라고 하기에도 위의 선수들은 임대에서 죽을 쑨 것도 아니고 본인들의 경쟁력을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선수들을 써보지도 않고 내친 것은 무리뉴의 실책이라고 볼 수 있으며 두 명의 유망주들이 무리뉴에게 내쳐진 뒤 타 팀에서 에이스 놀이를 하기 시작한 걸 보면 무리뉴의 안목은 부족한 게 맞다.[47][48][49]
본인이 스스로 유망주를 키울 능력이 없는지라 어린 선수들을 주로 바이백이나 임대를 보내는 식으로 경험치를 먹이는 편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다니엘 카르바할인데, 카르바할의 이적 당시 레버쿠젠은 다소 껄끄러워 했지만 무리뉴는 카르바할의 재능을 알아보고 크게 될 거라며 그를 보냈다. 비록 무리뉴는 레알을 떠났지만 카르바할은 레버쿠젠에서 제대로 포텐을 터뜨렸고, 무리뉴의 후임으로 들어온 카를로 안첼로티 체제에서 바이백으로 복귀한 카르바할은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라이언 세세뇽도 무리뉴가 꾸준히 세세뇽의 플레이를 모니터링 하면서 그에게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어 동기부여가 된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으며, 토트넘에서 입지를 다지지 못해 애매하다고 평가받던 올리버 스킵을 노리치에 임대로 보낸 것은 무리뉴가 토트넘에 와서 남긴 신의 한 수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다.[50]
그나마 자신의 기준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유망주는 제법 출전 기회를 준 케이스가 몇몇 있다.
4.2.3. 선수단 장악 문제[편집]
원래 무리뉴는 뛰어난 선수단 장악 능력이 장점이었다. 무리뉴의 전성기 시절 무리뉴와 함께 했던 선수들 상당수는 무리뉴에게 존경심과 감사함을 표할 정도로 원만한 관계를 쌓던 감독이었다. 심리학과 외국어에도 능해서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뛰어났다. 외부에는 독설과 막말을 해댔지만 내부 선수들은 확실하게 챙기면서 선수들의 심리를 이용하던 감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리뉴는 에이스를 비판적으로 대하거나 편애하는 식으로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래서 가는 팀마다 선수단과 불화를 일으키며 인테르와 포르투 시절을 제외하면 재임 중 마지막 시즌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 팀의 핵심이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세르히오 라모스, 팀의 심장이나 다름없던 성골인 이케르 카시야스와 불화가 있었던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54] , 첼시 2기 시절에는 막판에 태업설이 나올 정도로 겉으로 보기에도 팀은 화합과는 거리가 멀었고 단장이었던 에메날로는 누가 봐도 선수단과 불화가 있었기 때문에 무리뉴를 해고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맨유에 와서는 또 다시 팀의 핵심인 폴 포그바와의 불화가 있었으며 결국 선수단 대다수가 무리뉴의 경질에 동의하며 쫓겨나고 말았다. 이는 무리뉴의 감정적이며 직설적인 언행이 이유이며, 일례로 일반적으로 선수를 특정지어 비난하는 데에 있어서 말을 아끼는 여타 감독들과는 달리 기대치에 어긋날 경우 불만 사항을 공개석상에서 맹목적인 선수 비난을 통해 표출하는 점을 들 수 있다.##2
201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역시나 선수단과 불화설이 흘러나오자 무리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시대에 따라가지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메수트 외질과 같이 무리뉴 아래에서 뛰어본 선수들이 밝히기로는 무리뉴는 아주 확실한 당근과 채찍 방식으로 선수단을 길들인다고 한다. 때때로 동기 부여를 위해 온갖 험한 말이나 약올리는 말을 이용하여 선수들을 자극하기도 하고 때때로 다른 선수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특정 선수에게 자극을 준다고 한다.[55] 물론 자신의 마음에 들거나 칭찬을 받을 만한 선수들은 사적인 자리는 물론 인터뷰 자리에서도 특유의 재치 있는 말솜씨로 띄워주기도 한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축구 선수들, 특히 어린 축구 선수들은 점점 더 엘리트적이고 전문적인 환경에서 축구를 배우고 성장하기 때문에 무리뉴의 당근과 채찍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혹은 이 방식이 단기적으로 통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통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빅클럽의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주목을 받던 유망주고 엄청난 자존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들을 한 군데에 모아서 멘탈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감독이 전술만 잘 짜는 사람은 아니라는 의미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오늘날 축구 선수들은 유망주 시절부터 각종 미디어와 SNS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감독의 말이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순식간에 이러한 정보가 가십 뉴스가 되어 퍼져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선수 하나하나의 영향력이 커지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개인주의적인 성향마저도 축구 선수들 사이에서 심화되는 이 시대에 무리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과연 지금도 통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은 꾸준히 제기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세대의 선수들의 성향이 감독의 말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의견을 피력하며 불만이 있을 경우 그것을 표출하는 빈도도 높아졌고, 2010년대 들어서 SNS가 급격히 대중화되며 그 불만을 표출할 창구 또한 늘어났다는 것이다.
예전에야 무리뉴가 혹독한 채찍질과 적당한 당근을 이용하여 팀을 조련하고 불화가 생기면 팀 밖으로 퍼져나가기 전에 해결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새로운 세대에게는 SNS를 포함해 여러 부분에서 외부와 소통할 창구가 늘어났다. 불만이 생기는 즉시 대중에게 알려지며 해결하기 전에 대중들과 언론들이 팀을 흔들어서 선수단 화합에 없던 금도 가게 만든다.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SNS 사용 금지 등을 지시하는 것 또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즉 감독이 말하는 걸 의문 없이 무조건 따르기를 바라는 무리뉴의 방식은 2010년 후반의 시점으로 보면 구식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56]
아무튼 이런 식의 내가 시키는 대로 따라 오라는 스타일이 선수들에게 통했던 것은 저 맨유 선수들과 동세대인 첼시 1기나 인테르 시절 정도까지였고, 그 이후 세대부터는 점차 어려워졌다고 봐야 한다. 이를 단순히 요즘 선수들이 버릇없고 나태해져서 그렇다고 볼 문제는 아니며 시대가 바뀌었고 그에 맞는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지도법이 있기 마련이다.[57] 한 때 무리뉴 아래에서 뛰었던 클로드 마켈렐레 역시 무리뉴에 대한 비슷한 진단을 했다.# 마켈렐레 본인이 뛰었던 세대의 선수들과 오늘날 세대의 선수들은 다르며, 무리뉴는 예전 세대 선수들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팀을 막론하고 무리뉴에게 좋은 말을 주로 해주는 선수들은 대부분 2000년대 초중반의 과거 선수들이거나 애초에 멘탈 케어가 필요가 없는 충성파 선수들이다. 무리뉴가 감독한 팀의 대표적인 충성파 선수들로는 레알에서의 알바로 아르벨로아, 맨유에서의 네마냐 마티치, 마루앙 펠라이니, 애슐리 영, 로멜루 루카쿠 그리고 토트넘에서의 해리 케인, 손흥민 등이 있는데 이들을 예시로 드는 이유는 무리뉴가 이들의 프로 의식을 만들어 줘서가 아니라 애초에 감독이 누구더라도 불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낮은 선수들이기 때문이다.[58][59]
애초에 SNS는 핑계거리가 될 수 없는 게 SNS를 하는 것은 무리뉴의 선수들만이 아니다. SNS는 기자들에게 불화설을 제기하는 떡밥 정도에 불과하지 결국 근본적으로는 선수와 감독 간의 관계에 모든 것이 달린 것이다. SNS에다가 뭔 짓거리를 하더라도 선수 본인이 감독을 심리적으로 존경하고 따른다면 결국 SNS에 올라오는 글들은 해프닝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선수단에게 신임을 잃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SNS를 하는데 무리뉴의 팀이 불화설이 더 많다면 명백히 무리뉴의 방식이 선수들의 불만을 더 자주 유발한다고 보는 게 맞다.[6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무리뉴의 경질은 선수단의 90%가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선수단이 감독에게 반항하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선수와 감독은 비즈니스적인 사이에 불과하지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 같은 게 아니다. 리더가 비즈니스적으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인심을 잃었다면 경질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유사한 일이 몇 번이고 연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면 무리뉴의 선수 통제 방식이 분명히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는 안 먹히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무리뉴가 다음에 찾을 팀에서는 이 문제를 극복할지 주목받는 부분.
이 문제는 위에 언급된 부족한 선수 육성 문제와도 연결되고 있다. 케빈 더브라위너의 이적과 관련하여 더브라위너가 밝힌 기사에 따르면 자신을 사무실로 불러서 그의 저조한 스탯을 읽었고, 뒤이어 윌리안, 오스카, 마타 등의 선수들의 우수한 스탯을 읽은 뒤 더브라위너가 말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에 더브라위너는 비교하는 선수들은 15~20경기를 나왔지만 자신은 3경기밖에 못 나왔다며 항변했지만 불쾌감을 느끼며 이적을 결심했다고. 물론 선수 육성 문제 문단에도 언급된 바와 같이 당시 첼시에는 윌리안, 오스카, 아자르 등 더브라위너를 대신해 뛸 선수가 많았지만, 아무리 전력 외로 분류된 선수라고 하더라도 이적 과정에서 선수에게 모욕을 주는 행위가 결코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맨유에서도 잦은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회복 중이던 루크 쇼를 언론에 대놓고 비난하여 다른 선수들의 반발을 사고,[61] 팀의 슈퍼스타인 포그바를 바이러스라는 폭언을 했을 뿐더러 아내의 출산을 위해 휴가를 간 앙토니 마르시알을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했으며,[62] 심지어 프리미어 리그 1년 차로 팀과 전술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프레드에게도 다시는 유나이티드에서 뛸 수 없을 선수라고 비하했고[63] 다른 유스 선수들과 몇몇 유스 출신 선수들을 수준 미달이라고 언론에 대놓고 비난하는 등의[64] 문제들이 누적되어 무리뉴와 함께 한 선수들 중에는 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선수들도 제법 있다. 무리뉴와 사이가 좋은 선수들은 대체로 첼시 1기나 인테르 시절 선수들이다. 결국 무리뉴의 직설적이고 때로는 모욕적인 화법이 선수단 장악 문제로 연결되며, 장차 좋은 선수로 자라날 여지가 있는 어린 선수들마저 놓치게 된다.
이는 비슷하게 다혈질적이었던 퍼거슨과도 차이를 보이는데, 퍼거슨도 라커룸 내에서나 경기나 훈련 중에는 온갖 화를 내며 선수들을 갈궜지만 선수들이 반기를 들지 않았던 것은 적어도 기자회견에서만큼은 철저하게 자기 선수를 감싸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며, 자기 선수를 자기가 갈구는 것은 괜찮지만 외부에서 선수를 건드리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선수들은 자신들을 대중매체에게서 보호해주는 퍼거슨을 믿고 따른 것이다. 하지만 무리뉴는 안에서나 밖에서나 일관되게 선수를 까고 자기가 불만을 가진 선수들을 미디어에게 노출시켜 전방 폭격을 당하게 만들고 정신적으로 고립시킨다. 이는 사실상 따돌림을 조장하는 행위이며, 이런 방식을 선수들이 좋게 여길 리가 없기 때문에 반기를 드는 선수들이 하나 둘씩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성적이 좋다면 유야무야 넘어갈 수는 있겠지만 성적조차 안 나온다면 선수들 입장에서 무리뉴는 자기도 못하면서 선수 탓만 하고 팀을 분열시키는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019-20 시즌 토트넘의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 자신이 맨유에서의 자신의 행동들에 대한 조언을 주변인에게 요청했다고 했고 무리뉴의 팬들은 이에 대해 무리뉴가 바뀌고 있다며 환호했지만, 토트넘 또한 시간이 지나며 선수단 장악과 관련한 잡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성적이 괜찮을 때는 잠잠하더니[65] 20-21 시즌 중반부터 슬럼프에 빠지기 시작하자 다시금 공개석상에서 대놓고 선수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리그 20라운드 경기에서 리버풀에게 리그 더블을 당하던 날 세르주 오리에는 하프타임에 무리뉴와 충돌이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퍼졌다.[66] 2021년 3월에는 GNK 디나모 자그레브에게 충격의 역전패를 당한 이후, 위고 요리스의 인터뷰를 통해 토트넘 내에서 주전과 비주전으로 파벌이 나뉘어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문제는 토트넘의 선수층이 얇아서 감독과 사이가 나쁜 선수들도 기용해야 한다는 것. 이런 파벌설이 사실이라면 팀 조직력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치게 되므로 당장 경질해야 한다는 뜻 말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무리뉴는 이에 대해 선수 에이전트와 언론이 손잡고 선수들의 불만 표출을 조장한다며 비판했다.
4월에 어떤 기자가 무리뉴에게 과거 잘 나가던 때와 지금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지자 무리뉴는 “Same coach, different players”라며 역시 선수들 탓을 하였다. 유독 무리뉴의 팀만이 이런 문제가 자주 생긴다는 건 무리뉴 본인 문제가 제일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아직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토트넘에서도 경질당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 토트넘 감독직이 무리뉴의 마지막 기회라고 예측했었는데 그 이유는 트로피를 차지할 전력이 구성되는 빅클럽 중에서 그나마 토트넘 정도만이 무리뉴의 커뮤니케이션을 감당할 수 있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위의 무리뉴의 팀에서 무리뉴에게 호의적인 선수들은 대부분 팀의 주전급이 아니거나 주전급이었어도 라커룸에서 영향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이었지만 토트넘의 케인, 손흥민은 경기에서 확실한 주전급이자 라커룸 영향력도 강력한 에이스들이다. 게다가 토트넘은 우승 경험도 많은 구단이 아닌지라 무수한 트로피를 거머쥔 무리뉴가 선수들을 다루기 비교적 쉬울 거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때문에 빅클럽들 중에서도 선수단 장악의 난이도가 쉬운 편에 속하는 토트넘에서도 무리뉴가 선수들과 마찰을 보였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67]
정리하자면 전성기 시절에는 카리스마와 특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선수단을 쥐락펴락 하던 감독이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신세대의 심리와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반발을 사면서 선수단 통제에 실패하고 있다.
5. 특징[편집]
5.1. 독설 및 논란[편집]
자세한 내용은 주제 무리뉴/독설 및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2. 무리뉴 2년차[편집]
무리뉴 2년차 커리어에 우승한 트로피 리스트. 총 5번의 2년차 시즌을 겪을 동안 도합 12개나 되는 트로피를 들어올렸다.팀을 융합시키는 과정에서 첫 번째 시즌을 끝내고 나서야 겨우 적절한 시스템이나 플레이에 대한 사고방식이 스며든다. 항상 말해오던거지만, 나의 팀은 두 번째 시즌부터 피크를 맞이한다. 어떤 팀에서도 첫 시즌에 우승했던 것은 행운이었을 뿐이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 부임 이후 인터뷰에서)
지금은 깨져버린 무리뉴의 긍정적인 징크스다. 한때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무리뉴 2년차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떠돌 정도로 무리뉴가 맡은지 2년차가 되는 팀은 그 해 시즌에 유독 뛰어난 퍼포먼스와 조직력으로 우승컵을 여럿 들어올렸었다. 인테르 시절 트레블도 2년차에 이룬 성과다. 이후 맨유 감독 2년차인 2017-18 시즌 맨시티의 조기 우승이 확정되면서 징크스가 깨졌다. 무리뉴 2년차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던 시기는 레알 마드리드 감독 2년차 시즌 무렵인데,[68] 11-12 시즌 전의 레알 팬들의 여론은 무리뉴는 2년차까지는 믿고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과 아무리 무리뉴라도 역대급 멤버진이라 칭송받는 FC 바르셀로나를 제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 등으로 분분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탄탄한 조직력으로 완성된 팀의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에서 라리가 역대 최다 승점인 100점 기록으로 기어이 리그 우승컵을 들었고, 수페르 코파까지 우승하며 승승장구해오던 바르셀로나의 행진에 제동을 거는데도 성공한다.
첼시 FC에 복귀해서도 14-15 시즌 리그 11경기 무패행진을 기록하는 등 시즌 초중반부터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결국 14-15 시즌 3월 초에 캐피탈 원 컵을 제패했고, 리그에서도 35라운드에 2위와의 격차를 16점 차까지 벌려내는데 성공, 자력으로 우승을 미리 확정지으며 앞서 언급한 2년차 때 리그 우승을 거두는 징크스를 어김없이 이어나갔다.
그러나 리그 우승을 거두기는 했어도 14-15 시즌 후반기부터 주전 선수들의 체력 문제로 팀의 경기력이 침체되기 시작하더니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감독 2년차에 무관으로 끝나면서 징크스는 깨져버렸다. 그나마 맨유 시절에는 동 기간 맨시티가 승점 신기록을 세우며 잘 나갔고 맨유는 승점은 잘 쌓은 편이라는 핑계라도 가능했다.
그러나 토트넘 2년차인 20-21 시즌에 실패를 겪으며 무리뉴 2년차도 이젠 옛말이라는 말이 확실해졌다. 시즌 초반 순항하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으나 12R 팰리스전 무승부 이후 리버풀, 레스터, 울버햄튼, 리즈, 풀럼 상대로 1승 2무 2패에 그쳤으며, 후반기 들어서는 리버풀과 브라이튼, 그리고 첼시에게 3연패를 당함과 동시에 졸전을 선보임으로써 팀 순위가 유로파권으로 떨어져버렸다. FA컵에서 우승을 목표로 했지만 FA컵 16강 에버튼전에서 5대4로 아쉽게 패배하면서 탈락했고, 유로파리그 16강에서 GNK 디나모 자그레브를 만나 홈에서 2:0으로 승리했지만 2차전 원정에서 충격적인 3:0 패배를 거뒀다. 그나마 리그컵 결승에는 진출했으나, 2021년 4월 19일부로 전격 경질되면서 무리뉴 2년차 징크스의 종언을 확실히 했다.[69] 이로 인하여 토트넘은 무리뉴 감독이 이끌었던 팀들 중에서 트로피를 하나도 얻지 못한 세계 최초의 클럽이 되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2년차 우승이 S급 클럽들에서나 확실히 성취 가능한 시나리오이기도 하고, 무리뉴가 맡을 당시 맨유와 토트넘이 우승의 역량을 갖췄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맨유와 토트넘이 리그/리그컵/FA컵 셋 중 하나도 우승을 노리기 어려운 수준의 팀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맨유는 퍼거슨 이후 데이비드 모예스-루이 판할을 거치며 고전했지만 당장 무리뉴가 1년차에 카라바오 컵과 유로파 리그를 우승시킨 전력이 있고, 토트넘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체제 하에서 무관이긴 했어도 리그 우승권에 근접해봤을 정도로 구단의 저력이 상당히 커지며 BIG 6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올 정도였다. 이러한 구단의 전력에 더해 당시 월드 클래스로 평가받던 무리뉴의 기량까지 고려하면 2년차 트로피를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은 절대 아니었으며, 결국 그러한 팀들을 이끌고 무관에 그친건 엄연히 무리뉴 본인의 기량 문제고 무리뉴의 전술적 역량이 점점 시대에 뒤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맨유 2년차의 경우 리그에서는 맨시티가 워낙 독주한 탓에 운이 없었다고 칠 수 있으나, FA컵은 결승에서 챔스권 진입도 실패한 첼시를 상대로 콘테의 전술에 완전히 말리며 패하고, 카라바오 컵에서는 아예 챔피언십 팀인 브리스톨 시티에게 패한 만큼 불운은 커녕 무리뉴가 트로피를 들어올릴 기회를 걷어찬 셈이다. 토트넘의 경우 부임 당시 하향세에 접어들고 있던 만큼 사실 단순히 무관이라고 비판하기는 어렵지만, 무리뉴의 토트넘 2년차는 무관을 넘어서 한 수 아래 팀들에게 패하고 리그에서는 유로파권 진입조차도 불투명할 정도로 팀 수준을 더욱 밑으로 끌어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무관이 아닌 부진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합당하다.
5.3. 무리뉴 3년차[편집]
일각에선 반대로 무리뉴 3년차라는 말 또한 있다. 무리뉴가 감독으로 부임한 지 3년째가 되면 역으로 팀이 부진하는 양상을 보여 3년차 징크스가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전술적 특징으로 인한 심각한 체력소모와 그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로테이션 가동률을 꼽을 수 있으며, 여기에 앞서 말한 유망주 육성 부족으로 인한 세대교체 문제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선수단 관리로 인한 스쿼드 내 불화도 추가적인 요인. 따지고 보면 비교적 최근 생긴 징크스로 무리뉴의 커리어 중 '3년차는 부진했다'라고 명시할 정도로 부진했던 시즌은 세 번이다. 첫 번째는 커리어 최초 무관의 수모[70] 를 당했던 레알 마드리드 3년차와 두 번째로 리그 하위권까지 추락했던 첼시 2기 3년차[71] , 그리고 세 번째는 첼시 2기와 마찬가지로 시즌 도중 경질된 맨유 3년차다. 이전 팀인 포르투 3년차에는 리그 우승과 챔스 우승을 거머쥐었고, 첼시 1기 3년차에도 FA컵 우승과 칼링컵 우승에 리그 준우승, 챔스 4강을 찍으며 나쁘지 않은 시즌을 기록했다. 무리뉴 3년차라는 말은 레알-첼시 2기-맨유를 거치면서 자리잡은 비교적 최근 생긴 문제점이다.
무리뉴 3년차 징크스는 프로 축구팀 감독의 평균 재임기간을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주장도 있다.[72]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징크스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무리뉴 3년차라는 말은 2년차의 훌륭한 퍼포먼스에 비해서 3년차에 급격하게 성적이 부진하고 무관으로 끝나서 생긴 말이다. 즉, "다른 감독들도 3년까지 못 버티는 경우가 허다한데 왜 무리뉴만 징크스라고 하는가."라는 말은 이 징크스가 왜 생겼는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마치 거스 히딩크의 4강 징크스와 비슷한 것. 못하는 팀을 4강 실력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분명 엄청난 성과지만 그렇다고 그의 팀들이 자주 4강에서 탈락하는 것을 징크스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EPL 감독들의 평균 재임 기간이 3년 미만이라고 해서 무리뉴의 3년차를 징크스라 부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2년차에 우승이든 우승에 가깝든 꽤 좋은 성적을 내놓고는 3년차에 부진하는 패턴이 3번 연속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73] 특히 그냥 경질된 것도 아니고 3번 연속 선수단과 심한 불화를 겪고 안 좋은 상황 속에서 퇴진하였다. 부진한 3년차가 3번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이며, 이렇기 때문에 징크스라는 주장이 최근 들어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토트넘에서는 3년차에 진입하지도 못하고 잘렸다.
6. 여담[편집]
- 미중년 감독하면 떠오르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정말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이다. 커리어 및 외모의 최전성기 시절이라 할 수 있는 인테르 감독이었을 땐, 온통 그의 얼굴을 찬양하는 댓글로 넘쳤을 정도. 본인도 잘생긴 걸 아는지 자신을 모델로 한 영화가 나온다면 주연으로 이 사람을 캐스팅 하라는 말까지 했다.
- 05/06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으로 받은 우승 메달을 관중석으로 던져버린 적이 있다. 이 메달은 경매에 붙여 한화로 약 3000만원에 거래되었다. 또한 발롱도르 감독상 트로피도 경매로 내놓았다고... 무리뉴는 우승으로 받은 부상품보다는 우승 그 자체에 더 만족하는 듯 하다.
- 첼시에서 감독을 할 때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어느 소년이 딸에게 "너네 아빠는 전혀 특별하지 않아"라고 놀리자 바로 초등학교로 찾아가 그 소년의 귀를 잡아당겼다는 보도가 났었다. 신체적 접촉은 없었다고 결론이 났으나 혼내러 간건 확실하다고. 아무래도 자기때문에 괜히 딸까지 시비걸리니까 더 화가 난 모양.
- 헌데 2011년 10월에 그 동안 무리뉴가 가정형편 때문에 축구학교를 그만둘 지경에 처한 어린 학생들의 수업료를 남몰래 대신 납부해왔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무리뉴는 이 사실을 몰래 했지만 그 학교의 교장이 그의 자선을 널리 알리고 싶어했다고. 10명이 넘는 학생의 수업료를 대신 내왔고 환율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천만원에서 수백만원대의 금액이라고. 이 기사를 접한 국내의 해외축구팬들은 팬이든 적이든 일단 끌어모으는 무리뉴라면서 훈훈한 기사라는 반응을 보였다.
- 불성실한 선수를 매우 싫어하기로 유명하지만 유일하게 갱생시키려고 정성을 쏟아부었던 선수가 있는데 그가 바로 아드리아누이다. 당시 인테르 구단주인 마시모 모라티의 신임과 기대가 있었다 해도 재능만큼은 확실한지라 포기하지 않고 갱생을 시키려고 죽을 똥 싸가면서 노력했지만 결과는 아시다시피 팀 무단이탈 및 은퇴뻥카로 되돌아 왔다. 훌리오 크루즈도 깽판을 부렸지만 이내 꼬리를 내리고 사과했다.
- 축구에도 농구처럼 작전타임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작전타임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 "감독이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경기 흐름을 읽고 끊임없이 수정해서 상황에 맞게 수정된 감독의 전술이 선수들 한명 한명에게 완전히 녹아들어가게 함으로서 축구의 질적 수준을 더욱 높이자는 취지"라 한다.[74][75]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부 최전방 스트라이커들과 악연이 있다. 우선 척을 진 사이인 호르헤 발다노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의 9번 롤이었고[76] 이후 첼시 FC에서 자신의 전술에 더 부합하는 디디에 드록바를 중용하기 위해 에르난 크레스포를 벤치로 보냈고, 결국 다시 인터밀란으로 되돌아갔다.[77] 다만 인테르에서 만난 디에고 밀리토는 그야말로 트레블의 주역이었고, 곤살로 이과인도 레알 시절 꽤 쏠쏠하게 써먹었기 때문에 그다지 들어맞는 말은 아니다. 특히 이과인은 10/11시즌 25경기 14골 6도움, 11/12시즌 54경기 26골 13도움 12/13시즌 44경기 18골 9도움으로 확실히 수준급 스트라이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0/11시즌은 좀 덜 뛴 것 같아보이지만 부상을 입어 못 나온 것 뿐이다. 심지어 12/13시즌엔 맨유와의 챔스 16강 2차전, 도르트문트와의 4강 2차전 등 큰 경기에서는 이과인을 쓰기도 했다. 오히려 이과인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나폴리로 이적한 시즌은 무리뉴가 아닌 안첼로티 시절인 13/14시즌이다. 결론은 그냥 발다노하고만 사이가 안 좋은 것일뿐, 나머지 아르헨티나 스트라이커들과는 악연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 앙숙인 아르센 벵거를 매우 잘 잡는다. 그것도 경기장 안과 밖 모두. 첼시 감독으로 복귀하고 시즌을 치루면서 선두를 질주중인데 우승 가능성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첼시는 우승 전력이 아니라며 엄살을 부렸는데, 벵거가 "자신의 팀이 우승 전력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공격하자 "벵거는 실패의 전문가다. 8년이나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지 못하다니, 내가 그랬다면 런던으로 다시 돌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반격해버렸다.[78] 둘 간의 맞대결은 무리뉴 입장에서 8승 6무 2패로 절대적인 우세.
- 14-15 시즌 아스날과의 홈경기 도중 벵거와 논쟁이 벌어졌고 그에게 1밀침을 당해 화제가 되었다. 경기는 첼시의 2-0 승리로 끝났고, 무리뉴는 그 동안 자신이 많은 잘못된 행동들을 해왔어도 이번 건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벵거도 추후 프랑스 언론과 인터뷰에서 당시 행동에 대해 후회하고 있으며, 이를 사과한다고 언급했다. 기사
- 주로 디스로 점철되는 언론에서의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장난끼가 많고 인간적인 면모가 넘치는 편이다.
- 첼시 재직 시절 현지 TV 패널들의 성향에 대한 불만을 장난식으로 토로하는 영상
- 기자회견 도중 빵 터진 무리뉴 관련 기사
- 인터뷰 중 난입하며 장난치는 무리뉴 #
- 무리뉴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영상 중 하나로 암투병을 했던 기자가 돌아왔을 때 그 기자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하는 영상이다. 기자에게 이제 몸은 괜찮냐고 하면서 서로 안부를 묻는다. EPL에서 언론하고 티격태격 하는 이미지이지만 은근히 친한 기자들이 상당히 많다.
- UNICEF에서 주관하는 2014 Soccer Aid 자선 축구 경기에 세계 올스타의 감독으로 나선 적이 있다. 상대는 샘 알라다이스가 이끄는 잉글랜드 올스타. 시즌 중에 빅 샘과 서로 디스전을 주고 받았지만 실제로는 사이가 나쁘지 않은 듯하다.
- 맨유 감독으로 페예노르트와의 경기중 나온 짤. 소위 '무리뉴 마법사짤'이라고 부르며 인기를 탔다.
- 2014년 5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위치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인 파라다이스 카지노의 모델로 발탁되었다.
- 2015년 GQ 편집자들이 뽑은 올해의 남자 특별상을 수상했다.
오오 존잘러...#
- 2015년 12월 26일 영국 데일리 익스프레스에서 로멜루 루카쿠의 인터뷰가 기사로 나왔다. 루카쿠는 그의 이적에 대해 무리뉴가 자신을 내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고싶은 마음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며, 무리뉴는 오히려 자신에게 행운을 빌어주었으므로 존경한다는 내용. 무리뉴가 그토록 까이는 이유들 중 하나가 케빈 더 브라위너와 로멜루 루카쿠 등의 벤치멤버들을 내쫓았더니 펄펄 날아다닌다는 것인데, 루카쿠만큼은 내쫓은게 아닌 모양.
- 사진에서 보다시피 수트빨을 참 잘받는 남자다.
- 첼시 시절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검은 코트가 꼽히는데, 경기장에 항상 이 코트만을 입고 나왔던지라 당시 화제가 되었다. 코트가 한벌 밖에 없다느니 승리를 부르는 행운의 코트라느니 등등. 이후 이 코트에 대한 질문에 "그냥 이 코트가 마음에 들 뿐이다. 부드럽고 따뜻하니까. 이거 캐시미어다."라고 대답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하고 난 후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3달동안 꽤 활발하게 게시물을 올리다가 정규시즌 시작 직전에 인스타그램 중단을 선언했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에 진지해질 필요성을 느꼈다고...[80]
- UEFA에 선정한 1954년 이후 축구계에 임팩트를 준 역대 축구감독 1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 레알 마드리드 CF 시절 초상권 수입을 탈세한 혐의로 스페인 검찰에 기소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하지만 이에 무리뉴의 에이전시는 "스페인 세무당국은 물론, 스페인 검찰에서도 현재 아무런 통보를 받지 않은 상태다."라며 기소 의혹 기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러나 결국 탈세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218만 유로의 벌금을 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버진 아일랜드 등 해외 법인을 통해 2011년, 2012년 총 330만 유로를 탈루한 혐의가 인정되었다. #
-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성공적인 외국인 감독 중 한 명이지만 유독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의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만큼은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었다. 2018년 기준 SJP에서만 3무 4패. 무리뉴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동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뉴캐슬보다 전력상 우세한 팀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점을 볼 때 이채로운 점. 2018년 2월 11일에도 강등권 다툼을 벌이는 뉴캐슬에게 무리뉴의 맨유가 1-0으로 패배하며 무리뉴는 또다시 징크스에 울어야 했다. 하지만 토트넘 감독으로서 2020년 7월 16일, 손흥민과 케인의 득점에 힘입어 3:1로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뉴캐슬을 격파했다.
- 맨유의 부임 후의 부진과 2018 러시아 월드컵의 예측을 대부분 틀려버리면서 국내팬들은 무리뉴의 몸 속에 축알못 악령인 모우린호가 들어가있다는 식으로 희화화하고 있다.[81]
- 2019년 11월 경부터 무리뉴+아버지를 줄인 '무버지' 라는 밈이 유행하기 시작해, 토트넘 부임 이후에는 각종 커뮤니티와 심지어 뉴스 기사에도 공공연하게 '무버지'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무리뉴가 셰필드, 본머스전에서 역대급으로 부진하자 무버지를 변형한 '무버러지'란 단어도 공공연하게 쓰인다.
- 코치진과는 포르투갈어를 쓰고 공식 석상에서는 영어를 쓰지만, 선수들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해 개인적으로는 그 선수의 모국어를 쓴다고 한다. 그래서 손흥민과 더 대화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중이라고 한다.
- 20-21 시즌 토트넘이 유로파리그 3차예선 북마케도니아 원정을 떠났을 때 무리뉴는 구장의 골대가 규격보다 5cm쯤 낮은 것을 알아차리고 이의를 제기하여 UEFA 측에서 골대를 교체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 한국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첼시 1기 시절에도 박지성을 영입하고 싶어했으며,[82] 수원과의 친선경기에서 차범근을 상대로 공손하게 악수를 청했고[83] 이전부터 무리뉴가 높이 평가했던 손흥민에 대해서는 토트넘 부임 후 아예 눈에서 꿀 떨어질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번리전 80m 원더골 이후, 무리뉴는 박지성과 손흥민을 예로 들면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겸손해하는 문화를 가진 한국인들이 코칭하기가 매우 좋다."며 "박지성과 함께 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는 말을 남겼다. 또한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을 만나고는 손흥민의 태도가 어디서 왔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며 호평하기도 했다.
- 늦게 배운 SNS에 재미들였는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는 자신의 일상 사진과 짤막한 영상을 올리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토트넘 시절 임대를 보낸 라이언 세세뇽의 경기를 모니터링하고 응원 문자들을 보냈다는 것이 밝혀져 미담이 되고 있다.
6.1. 무리타[편집]
자세한 내용은 무리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무리뉴에 대한 말, 말, 말[편집]
나는 주제를 좋아한다. 그에게는 악마와도 같은 두뇌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유머 감각이 있다. 그가 보기에는 프리미어 리그란건 노련한 보안관이 오랜 세월 주저앉아있는 마을과 같겠지. 그리고 자기는 그 마을에 홀몸으로 굴러들어온 건맨이라는 기분으로 있는게 아닐까.
유명 선수 출신이 아닌데도 빅클럽에서 감독으로서 성공했다. 포르투갈의 작은 팀에서 시작했지만 FC 포르투에서 리그 우승, UEFA컵,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해냈다. 첼시와 인터 밀란에서의 활약은 잘 알려져있다. 무리뉴는 정말 엄청난 일을 해냈다.
그가 훌륭한 감독이라는 사실을 모두 안다. 그는 여러 구단에서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그래서 우리 회장이 데려온 것#
"The Special One"
UEFA에서 축구계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명감독 10인을 꼽으며 남긴 평.
8. 어록[편집]
난 어릴 때부터 내가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감독으로서 세계 최고가 되기로 결심했다. 매년 하루 한 시간 미래의 감독직을 위한 대비였다.
나는 내가 세계 제일의 감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를 능가하는 감독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첼시에는 최고의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오만으로 듣지 않아줬으면 하지만, 최고의 감독을 손에 넣었다. 나는 유럽 챔피언이고,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Special One)다. (UEFA컵과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고 첼시로 이적한 직후 기자회견에서)(참고)
유럽 3대 리그 모두에서 우승을 거머쥔건 나 하나뿐이다. 앞으로는 '특별한 존재(Special One)'가 아니라 '유일한 존재(Only One)'라고 불러주길 바란다.[84]
[85]
내가 레알 마드리드를 지휘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축구 감독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만은 확실하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 취임 기자회견)
중압감은 1등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2등이나 3등에게 오는 말이다.
축구에 관한 내 철학은 축구에는 오직 단 하나의 승자밖에 없다는 것이다. 2등은 꼴찌 중에 1등일 뿐이다.[86]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위선자가 돼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보다는 솔직한게 낫다. 나는 선수들에게 가는 압력을 덜어내기 위해서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 뿐이다.
바르사 기자 : 당신은 바르사에서 통역관이나 했던 주제에 왜 이렇게 바르사에 무례하느냐?
무리뉴 : 그때는 통역관이었지만 지금의 난 첼시의 감독이다. 그런데 내가 통역관에서 명문팀 감독이 될 동안 당신은 여전히 삼류 기자 나부랭이에 멈춰있다. 지금까지 뭐했나?
아스날은 훌륭한 선수와 훌륭한 감독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축구가 승리해야 하는 스포츠라는 것을 망각한 듯 하다. 첼시는 멋진 경기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승리한다.
나도 퍼거슨의 말에 동의한다. 돈으로 챔피언이 될 수 없고 승리를 보장 받을수도 없다. 난 맨유의 10% 예산인 포르투를 이끌고 맨유를 박살냈다 그것이 그 증거다.[88]
리버풀 팬들은 늘 첼시를 보고 역사가 없다며 조롱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 리버풀은 리버풀대로 역사가 있고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있다. 리버풀의 역사는 위대하고 나 역시 그들의 역사를 존중한다. 하지만 리버풀은 지난 17년간 리그 우승을 못했고, 반면 첼시는 지난 3년간 2번의 우승을 이루어냈다. 역사는 박물관에, 나는 현재와 미래를 위해 일한다.
말대답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선수들 앞에서 나와 싸워야 한다. 그것이 주장의 임무다(첼시 부임 이후 존 테리를 주장에 임명하면서)
고개를 들어라. 저 턱 밑까지 숨이 차도록 뛰어준 선수들에게 환호하라. 그들은 환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행복하다. 왜냐하면 인테르가 이겼으니까. 한편으로 나는 불행하다. 왜냐하면 첼시가 져버렸으니까. 또한 나는 행복하다. 인테르 팬들이 기뻐하고 있으니까. 나는 불행하다. 첼시 팬들은 슬퍼하고 있으니까. 불행으로 행복을 산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인생이다.[89]
오늘 시합을 가지고 선수들을 비난하고 싶거든 우선 나를 죽이고나서 해라.
나는 경기력이 나쁜 선수를 절대로 비판하지 않는다. 외부에서의 공격으로부터도 철저하게 지킨다. 하지만 팀을 위해 플레이하지 않는 선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이 팀워크에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팀을 위해 플레이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 선수를 지켜줄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90]
내가 절대로 하지 않는 짓은 시합이 끝난 후 매스컴 앞에서 선수를 비판하는 것이다. 패배나 무승부 후에 도망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선수들이 보호받고 안정된 기분을 유지하는 것이 매스컴을 기쁘게 만드는 것보다 100배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쓰러뜨려야할 적은 나이며, 기분 나쁜 녀석은 나이며, 건방진 녀석은 나이며, 무능한 감독은 바로 나다. 내가 그러한 대상이 되는 것은 팀에 있어서 긍정적인 것이다.
나에게 박수를 보내지 말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라. 그리고 기 죽지 말고 고개를 들어라.
무리뉴 : 압박감요? 무슨 압박감요?
기자 : 2게임 연속으로 진 것에 대해서요.
무리뉴 : 자녀에게 먹을 걸 사다줘야 하는데 돈이 전혀 없는, 전세계 수백만의 부모가 느끼는 것. 그런 걸 압박감이라고 합니다. 축구에선 없습니다.
두려운 것은 신 뿐이다. 축구에서 두려울 것이 뭐가 있나. 맨유보다 조류독감이 더 걱정이다.
팀이 이긴다면 그것은 선수들이 잘한 것이고, 팀이 진다면 그것은 내 전술이 잘못된 것이다.
축구에는 시인들이 많지만 시인들은 많은 타이틀을 따지 못한다.[91]
경기 전후로 인터뷰에 응할 때는 언제나 그것도 시합의 일부로서 대처하고 있다. 경기 전의 기자회견에 나가면 머릿속에서 이미 경기는 시작되고 있다. 경기 후의 기자회견까지도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첼시를 4번 우승시키는 감독이 나올 때까지는 내가 No.1이다. 그때가 오면 내가 No.2를 해주겠다. 현재로선 유다가 No.1이란 뜻이다.[92]
I have nussing to say. (할 말이 없다.)[93]
Q. 첼시 감독 시절이던 2015년, 절대 토트넘 감독을 안 맡겠다고 했지 않았느냐?
A. 그땐 내가 짤리기 전이었다.
첫 두 질문을 받고나서, 나는 중국 축구가 왜 쓰레기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이 왜 수많은 올림픽 메달을 금메달 중 축구만 못하는지 알았다.[95]
아파파피야 아파파파 아파파파 파파파[96]
9. 기록[편집]
9.1. 대회 기록[편집]
9.1.1. 코치[편집]
- FC 포르투 (1993~1996)
- FC 바르셀로나 (1996~2000)
- 라리가 우승 : 1997-98, 1998-99
- 코파 델 레이 우승 : 1996-97, 1997-98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 1996
- UEFA 슈퍼컵 우승 : 1997
9.1.2. 감독[편집]
- FC 포르투 (2002~2004)[98]
- 프리메라리가 우승 : 2002-03, 2003-04
- 타카 데 포르투갈[97] 우승: 2002-03
- 수페르타카 칸디도 데 올리베이라 우승: 2003
-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 2003-04
- UEFA 컵 우승: 2002-03
-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 2004
- 첼시 FC (2004~2007),(2013~2015)[99]
- 프리미어 리그 우승 : 2004-05, 2005-06, 2014-15
- FA컵 우승 : 2006-07
- 풋볼 리그 컵 우승 : 2004-05, 2006-07, 2014-15
- FA 커뮤니티 실드 우승 : 2005, 준우승 : 2006, 2007, 2015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8~2010)
- 세리에 A 우승 : 2008-09, 2009-10
- 코파 이탈리아 우승 : 2009-10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 2008
-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 2009-10
- 레알 마드리드 CF (2010~2013)
- 라리가 우승 : 2011-12
- 코파 델 레이 우승 : 2010-11, 준우승: 2012-13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 2012, 준우승: 2011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6~2018)
- FA 커뮤니티 실드 우승 : 2016
- FA컵 준우승 : 2017-18
- EFL 컵 우승 : 2016-17
-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 2016-17
- UEFA 슈퍼컵 준우승 : 2017
- 토트넘 홋스퍼 FC (2019~2021)[100][101]
- AS로마 (2021~ )
9.2. 수상 기록[편집]
- 옹즈도르 올해의 감독: 2005, 2010
- FIFA 올해의 감독: 2010
- IFFHS 올해의 클럽 감독: 2004, 2005, 2010, 2012
- 포르투갈 올해의 감독: 2002-03, 2003-04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감독: 2004-05, 2005-06, 2014-2015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 2004년 11월, 2005년 1월, 2007년 3월, 2020년 11월
- 이탈리아 세리에 A 올해의 감독: 2008-09, 2009-10
- 알보 판치나 도르[102] : 2009-10
- 미구엘 트로피: 2010-11, 2011-12
- UEFA 올해의 감독: 2002-03, 2003-04
- UEFA 올해의 팀: 2003, 2004, 2005, 2010
- 월드 사커 매거진 선정 올해의 감독: 2004, 2005, 2010
- LPFP 어워드 올해의 해외팀 소속 포르투갈 감독: 2008-09, 2009-10
- BBC 스포츠 올해의 감독: 2005
- 잉글랜드 리그감독협회(LMA) 명예의 전당: 2010
- 가제차 스포츠 선정 올해의 스포츠 맨: 2010
- 국제 스포츠 기자 협회 선정 올해의 감독: 2010
- Prémio Prestígio Fernando Soromenho: 2012
- Football Extravaganza's League of Legends: 2011
- Globe Soccer Awards Best Coach of the Year: 2012
- Globe Soccer Awards Best Media Attraction in Football: 2012
- Portuguese Coach of the Century: 2015
- 최고의 감독
10. 라이벌[편집]
10.1. 펩 과르디올라[편집]
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에서 감독으로서 붙었으며, 무대를 옮겨 EPL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이 되어 경쟁을 이어갔다.[103] 라 리가 시절에는 굉장히 사이가 나빴으나, 요즘은 큰 충돌은 없이 서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상태이다. 다만 서로를 존중해서라기보단 더러워서 피하는 성격이 짙다.
서로 치열하게 입씨름한 것 때문인지 상대 전적을 박빙으로 아는 사람이 많으나, 상대 전적은 펩 과르디올라가 일방적으로 압살하고 있다. 사실 무리뉴가 이 정도로 전적이 확 밀리는 경우는 잘 없는데, 대부분 인테르(1승 1무 2패)와 레알 마드리드(2승 4무 5패) 감독 시절에 하필 전성기 FC 바르셀로나를 만나 털린 것들이다.
세르히오 라모스가 스페인 국대 선배인 카를레스 푸욜의 싸대기를 때려 공개사과까지 해야했던 엘클 5-0이 바로 이 분이 레알 감독일 때 쌓은 업적이다. 물론 그 땐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단 기량 차이가 너무 심해서 갓 부임한 무리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104]
(한국 기준) 2018년 11월 12일 맨체스터 더비(EPL)는 '무리뉴 vs 과르디올라'의 위치를 여지 없이 보여줬다. 이 경기에서 무리뉴의 맨유는 과르디올라의 맨시티를 상대로 아무것도 못한 채 지고 말았다.[105] 물론 맨시티가 객관적인 전력에서 살짝 우세했으나, 마샬의 PK를 제외하고는 '강등권 팀'도 맨시티 상대로 충분히 기록할 수 있는 유효슈팅(필드)을 무리뉴의 맨유는 기록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일방적으로 수비만 하다가 결국 맨시티에게 추가 골을 헌납했다. 즉, 무리뉴는 과르디올라에게 전술적으로 완패를 당했다. 막판 '스털링-사네-필 포덴'에게 농락당한 것은 덤.
해당 경기는 펩 과르디올라와 무리뉴 사이의 격차가 얼마나 벌어졌는지를 잘 보여준 경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무리뉴의 후임인 솔샤르가 2020년 3월 10일 자에 비슷한 스쿼드로 치른 맨체스터 더비에서는 솔샤르의 맨유가 펩 과르디올라의 맨시티를 3백 카운터 전술을 활용하요 2:0 완승을 거두었고, 졸지에 무리뉴는 경력이 한참 차이 나는 솔샤르만도 못하다는 평을 들어야 했다.
2020년까지 통산 상대 전적은 무리뉴 기준 7승 6무 11패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앞서고 있다.무리뉴의 상대 전적
2019년에 무리뉴가 토트넘 핫스퍼에 부임함에 따라 맨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의 맞대결 구도가 다시금 가능해졌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펩과의 맞대결에서 2-0 완승을 거두며[106] 펩과 맨시티의 우승 추격 의지를 꺾어버렸다.
최근에도 계속 펩을 의식하는 듯한 인터뷰를 하지만, 정작 펩은 지금 클롭과 리버풀을 의식하고 있으며, 그런 펩을 자극하기라도 하듯, 삭발(!!)을 했고,[107] "누구랑은 달리 밀어도 자란다"는 말까지 했다. 참고로 이전에도 무리뉴는, "펩은 축구를 즐기지 못해 대머리가 되었다." 는 말을 했다.
그러던 중에 펩이 감독 중인 맨시티가 FFP 위반으로 징계를 먹자, 과거 펩의 맨시티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온 무리뉴의 인터뷰가 재평가 받았다. 다만 맨시티는 이후 CAS 항소끝에 무죄를 선고받아 징계가 기각되었다.
20-21 시즌 초반에는 두 감독의 행보가 반대로 흘렀다. 무리뉴가 부임한 토트넘은 2년차 징크스가 다시 발동됐는지 뛰어난 조직력과 좋은 전술, 알짜배기 이적시장 등으로 재미와 실리를 챙겨가는 반면, 펩이 감독 중인 맨시티는 유럽대항전의 연이은 실패에 더불어 천문학적으로 투자된 금액에 비해 너무나도 부진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특유의 선수빨 의혹[108] 이 다시금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20-21 시즌 처음 맞대결에서 저번 시즌과 똑같은 스코어로 펩의 맨시티를 11위로 떨어뜨리고 무리뉴는 1위로 올라섰다! 손흥민과 베르바인의 위치를 스위칭한 전술을 활용하여 펩의 맨시티를 잡았고, 전술적으로 완승을 거뒀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무리뉴의 토트넘이 아스날전 이후로 5연속 무승을 거두면서 유로파권으로 추락하였고 과르디올라는 15경기 무패를 찍으며 1위를 수성 중이다.
이러한 승부와는 별개로 서로에게 감정 상한건 많이 누그러진 듯. 눈도 안마주치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경기 전에 악수하면서 대화는 하는 정도로 사이가 조금 나아졌다. 무리뉴는 언론이 다루는 자신과 과르디올라와의 관계는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하며, 자신은 과르디올라에게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2017년 무리뉴가 부친상을 당했을 때 과르디올라에게서 온 위로 전화를 받았으며, 본인도 2020 과르디올라의 모친 부고에 연락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2020-21 시즌 카라바오컵 결승에서 토트넘 대 맨시티의 맞대결이 성사되면서 무리뉴 대 펩의 맞대결도 성사되었으나, 결국 결승전을 6일 앞둔 2021년 4월 19일 무리뉴가 경질됨에 따라 이 맞대결은 무산되었다.
10.2. 알렉스 퍼거슨[편집]
오래 전부터 무리뉴는 퍼거슨을 존경해왔는데, 과거 포르투 시절 챔피언스 리그에서 맨유를 꺾은 직후 퍼거슨이 무리뉴에게 와인을 권했을 때 자신을 존중해준 것에 대해 감동받았다고 한다. 무리뉴가 처음으로 EPL에 진출해 갑부 구단주의 지원 아래 첼시를 강팀으로 만들어 갈 때, 퍼거슨의 디스에 주눅들지 않고 맞디스를 해주고 경기 후에는 함께 와인을 마실만큼 서로 존중하는 관계.
포르투 시절부터 첼시,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를 거쳐가며 퍼거슨의 맨유와 경쟁을 이어갔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 퍼거슨의 마지막 챔피언스 리그에서 맨유를 꺾기도 했다. 한때는 무리뉴가 맨유 감독이 되어 퍼거슨 시절의 영광을 계승해나가려고 했으나 리그 무관과 좋지 못한 경기력, 선수단과의 불화로 인하여 2018년 12월 경질되었다.
통산 상대 전적은 무리뉴 기준 7승 6무 3패로 알렉스 퍼거슨을 앞선다.
10.3. 아르센 벵거[편집]
관음증 환자라는 발언부터 시작해, 실패셜리스트, '나라면 십 년 동안 트로피 없으면 런던에 다시는 안 온다'라는 주옥같은 멘트로 벵거를 털었다. 어찌나 털고 관심을 가졌는지, 무리뉴가 첼시로 복귀했을 때, '우승을 못한 감독' 얘기를 했을 때, 팬들 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그 감독을 벵거라고 예측하면서, '무리뉴는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벵거를 저격했다.'고 하면서, '그래도 벵거 챙겨주는 건 무리뉴다.'란 반응을 할 정도다. 전설적인 벵거의 천 번째 경기에서 6:0으로 개박살내기도 했지만 요즘은 벵거가 말년에 무리뉴를 꺾고 설욕을 해나가는 상태다. 그러나 싸우다가 정이 든 건지, 이어지는 싸움에 본인들이 '같이 저녁을 먹었다'는 인터뷰도 했다.[109]
통산 상대 전적은 무리뉴 기준 10승 7무 2패로 아르센 벵거를 크게 압도한다. 승리 아니면 무승부였지만 요즘은 벵거도 무리뉴를 꺾기도 하고, 여러모로 흥미거리가 넘치는 라이벌이다.
그리고 벵거가 17/18 시즌을 마지막으로 아스날 감독직을 그만두기로 하면서 당분간 또는 평생 둘 사이의 경기는 볼 수 없게 되었고, 시즌 막판 아스날이 맨유 원정을 위해 올드 트래포드를 찾아오자 퍼거슨과 무리뉴는 벵거를 위해 그동안의 아스날 감독으로 일한 헌신에 존중을 표하는 트로피를 맨유 구단을 대표하여 직접 선물하였다.
비인스포츠의 방송 패널로 둘이 나란히 출연해서 케미를 보여주기도 했다.
10.4. 위르겐 클롭[편집]
클롭이 리버풀 취임 기자회견에서 스스로를 소개해달란 기자의 질문에, 과거 무리뉴가 첼시 감독으로 부임할 때 스스로를 스페셜 원이라 소개한 것을 빌려 위트 있는 대답으로 자신은 노멀 원이라 소개하였다. 그리하여 스페셜 원과 노멀 원 간의 라이벌리가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두 감독 사이에서 정말 특이한 점은 맞대결 패배 후 무리뉴가 경질당한 적이 많았다는 점이다.
먼저 무리뉴의 마지막 레알 마드리드 시즌이었던 12/13 시즌에 당시 클롭의 도르트문트를 챔스 4강에서 만나 1:4로 충격적인 완패를 하여 탈락했고, 약 한 달 뒤 무리뉴는 경질당했다.
2015년 10월 무리뉴의 첼시 2기 감독 시절, 클롭의 리버풀을 만나서 1대3으로 패한 후 무리뉴에 대한 경질론이 제대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나마 실제 경질은 12월에 이루어졌으나 이 경기를 기점으로 무리뉴는 끝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2018년 무리뉴의 맨유 감독 시절, 클롭의 리버풀을 만나서 1대3으로 패하고 이틀 뒤 훈련장에서 경질 통보를 받았다.
이렇듯 무리뉴 입장에서 보았을 땐 악연일 수 밖에 없다. 물론 딱 그 경기들 때문에 경질된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문제가 쌓이다 맞대결 후 터진거지만, 이만하면 클롭과는 뭐가 있는 듯 하다.
2020년 12월 잘 나가던 무리뉴의 2년차 토트넘과 리버풀이 선두 경쟁을 하면서 맞대결을 펼쳤고, 클롭이 2-1로 승리했다. 아이러니하게 이후로 무리뉴호 토트넘은 무승 행진을 이어가면서 유로파권으로 추락하였다. 이후 2021년 1월, 리버풀이 리그 5연속 무승을 거두고 홈 무패가 깨진 힘든 상황에서 다시 토트넘 홈에서 맞대결을 펼쳤는데, 이 역시 클롭이 3-1로 승리하였다. 이쯤되면 현 무리뉴의 최대 천적이다.
하지만 경기 외적으로 두 감독 사이가 딱히 나쁘거나 그렇진 않다. 리버풀의 인사이드 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로 만나면 포옹하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사이.[110]
2021년까지 통산 상대 전적은 무리뉴 기준 2승 4무 7패로 위르겐 클롭에게 열세이다.
10.5. 안토니오 콘테[편집]
위 사진의 당시 상황은 이렇다. 첼시가 4:0으로 앞서자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제스쳐를 취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무리뉴 감독이 경기가 끝난 후 1:0의 스코어에서 그러는건 이해가 가지만 지금은 4:0이다. 이건 모욕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기자회견에선 콘테가 무리뉴 감독과의 사이에 문제가 없다고 말해 그냥 전임 첼시 감독들 간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다음 만남에선 그렇게 곱게 끝나지 않았다. 양쪽 모두 심판의 판정에 불만이 있어 항의하러 나오다가 하프라인 근처에서 마주쳤는데, 무리뉴가 라인 밖으로 빠져나온 공을 콘테 쪽으로
이전에는 서로 관심도 없던 사이지만 무리뉴가 맨유로 가고, 떠난 자리를 콘테가 받으면서 라이벌리가 생겼다. 본래도 얌전한 성격관 거리가 먼 두 감독이지만, 귓속말 사건을 시작으로 제대로 불이 붙었고, 이후에도 무리뉴 시즌 발언,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견제로 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서로 우승 트로피가 절실한 가운데 시즌 마지막 경기인 17/18 잉글리시 FA컵 결승에서 만났고 콘테의 첼시가 1:0으로 승리하였다.
2019년까지 통산 상대 전적은 무리뉴 기준 2승 1무 4패로 안토니오 콘테에게 열세이다. 이후 무리뉴가 토트넘으로, 콘테가 인테르로 부임함에 따라 유럽대항전이 아닌 이상 맞대결이 힘들어졌다.
그런데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인테르 이적 사가로 인해 두 감독이 이젠 인터뷰로 싸움이 났다. 사실 기자들의 농간도 있지만.....
무리뉴가 21-22시즌부터 AS 로마로 부임함에 따라 둘의 맞대결이 다시 치뤄질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콘테의 사임 소식이 뜬금포로 터지면서 둘의 맞대결은 무산 되고 말았다.(...)
한 인터뷰에서 콘테가 기자로 부터 무리뉴의 로마행을 듣자, "오 진짜?" 라고 하면서 활짝 웃는 모습이 화재가 되기도 하였다. 물론 그 뒤에 "우리는 서로 존중하는 사이며, 그의 이탈리아행을 환영한다."는 식으로 멘트를 남기긴 했다.
그런데 2021년 11월 안토니오 콘테가 토트넘 홋스퍼에 부임하면서 두 감독이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생겼다.
10.6. 호르헤 발다노[편집]
호르헤 발다노와 무리뉴와의 갈등은 단순한 개인적인 갈등을 넘어 많은 것을 의미했다. 둘의 갈등의 가장 핵심원인 중 하나는 축구철학의 차이였는데, 무리뉴는 선수들의 견고한 수비력과 왕성한 활동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빈틈을 파고드는 예리하고 재빠른 역습축구를 구사하며 팀의 조직력을 강조하는 반면, 발다노는 선수 개개인의 뛰어난 기량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화려한 공격축구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축구철학의 차이 때문에 발다노는 무리뉴의 선수기용과 전술에 비판을 많이 했다. 결국 여기서 갈등의 골이 깊어져 둘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10.7. 프랭크 램파드[편집]
첼시 FC 시절 스승과 제자[111] 로 알게된 사이 은퇴해도 스승인 조세 무리뉴 감독님에 대한 미련이 남았고 무리뉴랑 아직 친하다고 말해줬다.# 3:53 제자와 경기를 했지만 한번밖에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2021년 1월 25일 전격 경질 되면서 더이상 볼일은 없을 듯 하다.[112][113]
10.8. 올레 군나르 솔샤르[편집]
현 맨유 감독 VS 전 맨유 감독. 무리뉴는 맨유에서 성적 부진으로 경질당한 후 토트넘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맨유를 상대하게 되었는데, 맨유에서 경질된 이후로도 맨유 구단, 감독, 선수들을 디스하는 인터뷰를 주로 했을 정도로 맨유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 솔샤르 또한 무리뉴와 토트넘을 제외하고 인터뷰로 디스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서로 적대적인 관계이다. 통산 상대 전적은 1승 1무 2패로 무리뉴의 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