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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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의학
5. 나라별 현황
5.1.3. 질문을 죄악시함
5.1.4. 교육 현장에 대한 불신
5.1.5. 정신과 치료 기피
5.1.6. 진영 논리와 권력자에 대한 반감
5.1.7. 사례
6. 기타



1. 정치[편집]


진시황이 후생(侯生)과 노생(虜生)을 비롯하여 자신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파묻어 버렸던 분서갱유도 넓게 보자면 반지성주의의 일종이라 볼 수 있으며, 미국의 대외 외교정책이 삽질을 반복하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반지성주의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도 메카시즘 광풍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여러 면에서 미국은 강대국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유독 도드라지는 반지성주의로 인해 피를 보는 경우가 많다. 자세한 내용은 하술할 미국 부분 참고.

스탈린주의마오주의와 같이 변질된 공산주의에서 시작한 전체주의 및 우민화 정책들. 대부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층에 대한 비판을 막고자 반대파의 숙청이 자행하거나 자신들의 공산주의 이론에 맞지 않는다며 터부시한 학문들이 많은데, 이러한 숙청 사유에서 반지성주의적 행태를 자주 보인다.

  • 캄보디아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론 놀 정권을 몰아내고 집권한 뒤, 마오주의에 입각한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미명[1]하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고등교육을 받은 캄보디아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그 유명한 안경을 쓰거나 손바닥에 굳은 살이 없다고 사람을 죽인 데다가 심지어는 책을 똑바로 들거나 시계를 읽을 줄 안다고 지식인으로 판단해 사람을 죽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벌어진 대학살로 인해 상당수의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지식인 계층들도 함께 증발하면서 캄보디아의 인적자원은 완전히 붕괴했으며, 지금도 이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폴 포트를 위시한 크메르 루주 수뇌부는 부유한 집안 출신에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온 사람들이 태반이었는데, 이는 반지성주의적 행동이나 사건이 반드시 지성을 혐오하는 반지성주의자, 혹은 학식이 부족한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 마오쩌둥의 경우 대약진운동 당시 전문가들의 말은 무시하거나 불신한체 자신이 하고싶은데로 정해 개혁을 추진하다 결국 말아먹고, 후에 권력기반이 약화되고 권력에서 점차 밀려나자 문화대혁명을 일으킨다. 이 문혁의 중심에 있던 홍위병들은 우상화로 신격화된 마오쩌둥의 명령을 충실히, 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해 수행했고 그에따라 문화재를 파괴하고 지식인들을 핍박하는 등 중국 전체의 수준을 현저히 떨어트렸으며, 아직도 그 후유증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 이오시프 스탈린트로핌 리센코농업에 관심을 기울여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리센코는 그런 스탈린의 권력과 비호를 등에 업고 자신을 비방하는 소련과학자들을 모함하여 숙청하였고, 그의 이론에 기반한 농업 정책은 수많은 소련의 인민들을 굶겨 죽였을 뿐 아니라 소련의 농법과 생물과학 발전을 저해했다. 이후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기름진 땅인 우크라이나를 끼고도 적국인 미국에게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어찌보면 소련의 패망에 한몫을 한 셈이다. 물론 잘못된 농업정책은 트로핌 리센코를 필두로한 소수의 엘리트가 저지른 '심각한' 실수에 더 가깝긴 하지만, 그 엘리트주의 자체가 진영논리에 입각한 반지성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존재하며[2] 트로핌 리센코 또한 반대되는 이론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나 지성적 토론마저 묵살하고 반대파를 숙청, 핍박했다. 거기다 당시 스탈린, 후르쇼프가 이런 반대파 숙청을 묵인한 이유도 당시 유전학을 기반으로한 니콜라이 바빌로프의 이론은 자본주의 서양의 학문인 유전학에서 시작되었다는 지극히 진영논리적 행태를 보였다는 점에선 반지성주의가 맞다.
  • 투르크메니스탄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는 자신이 쓴 '루흐나마'라는 경전을 모든 학교의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삼게 했으며, '대부분의 투르크멘인은 쿠란과 루흐나마만 읽으면 된다'는 믿음으로 수도 밖의 모든 도서관을 없애버린 것도 모자라 1998년에는 투르크메니스탄 과학 아카데미를 폐쇄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것조차 금지시켰다.
  • 적도 기니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재자였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는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반지성주의 정책을 펼쳤는데, 실제로 응게마는 안경을 쓴 사람을 지식인으로 몰아 죽이거나 '지식인'과 '지적'이라는 말을 금지어로 지정한 것은 물론, '외국 문화와 교육이 아프리카의 순수한 정기를 오염시킨다'며 모든 출판과 서구식 교육을 금지했다.[3]
  • 아르헨티나의 군사 독재자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는 "테러리스트는 총이나 폭탄을 든 사람일 뿐만 아니라 서구와 기독교 문명에 반하는 사상을 퍼뜨리는 사람이기도 하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는데, 이 말처럼 비델라는 '서구와 기독교 문명에 반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사상들을 없애고자 했다. 그러나 비델라가 행한 검열들은 거의 반지성주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 당시 아르헨티나에서는 집합론 등의 현대 수학이 언급된 서적들이 '서구적, 기독교적 가치와 학교 교육 과정에 위협을 가하는 파괴적인 사상'으로 간주되어 금지된 데다가 진화론을 다룬 애니메이션도 '신성한 창조의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되었고, 심지어 사전과 백과사전까지 '전복적인' 어휘가 담겨 있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는데, 더 가관인 것은 그 '전복적인' 어휘라는 것이 착취, 혁명, 심지어 라틴 아메리카였다고 한다.(...)
  • 그리스의 군사 독재자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는 '좌익이나 현대 퇴폐의 징후'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무자비한 검열을 가했는데, 상술한 비델라처럼 현대 수학과 백과사전을 금지시킨 것을 넘어서 '그리스는 고대 그리스인과 같은 '이교도'나 공산주의자와 같은 '무신론자'가 아닌 '기독교인의 그리스'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고대 그리스들의 유명 극작가들의 작품까지 금서로 지정했고, 심지어는 '반정부 구호의 이니셜로 쓰였다'는 이유로 알파벳 Z의 사용까지 금지했다고 한다.
  • 북한 역시 반지성주의와 굉장히 밀접하다. 김일성은 1인독재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 인텔리(지식인) 계층의 영향력과 기존의 모든 사상을 말살해버렸는데, 이 과정에서 주체사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모든 문제를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믿는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할 수 있다면 독재가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체사상은 반지성주의와 지식인에 대한 적개심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특히 수령의 지시는 무조건 적으로 오류가 없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가기 때문에 과학적 사실이 A를 가리키고 있어도 지도자가 B가 사실이라고 말하면 꼼짝없이 B라고 발표해야 하는 곳이다.[4] 결국 북한도 정상적인 의미에서의 지적 성실성은 사실상 기대할 수 없는 한심한 수준. 이런 현실에서 무슨 발전이 있고, 혁신이 있겠는가? 주체사상과 유일영도체계가 확립된 이후에 북한이 나날이 퇴보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나치 독일의 집권 나치당 정권이 자신들의 체제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을 "유대인", "나약한 엘리트" 로 규정하고 정치적 탄압을 가한 것은 인류역사상 훌륭한 반지성주의의 사례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저서이자 나치즘의 근간인 《나의 투쟁》에서도 반지성주의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고. 아돌프 히틀러는 지구상의 모든 고귀한 예술작품과 과학적 성과는 아리안 인종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편협한 가치관에 따라 유대인 혈통의 과학자예술가들이 해외로의 망명을 부채질했고, 이는 히틀러와 나치의 패배와 몰락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초 핵무기 개발과 물리학계에 큰 영향을 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지식인 계층과 이성을 적대시하고, 항상 감정적 선동을 선호한다. 소위 우민화 정책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당연히 대중이 우매한 상태로 지속될 때 다루기 쉽기 때문에 독재는 필연적으로 지적성실성과 사고의 자유를 내세우는 지식인을 탄압한다.


2. 근본주의 기반 종교[편집]


나는 우리에게 지각과 이성, 그리고 사고력을 부여하신 하느님께서 우리가 그것들을 사용하는 행위를 금하시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탈레반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들은 이슬람과 무관한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작태를 부리고 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도래 이전의 수많은 역사 유적폐허로 만들었으며 IS는 서구의 과학기술과 철학에 대한 노골적인 증오를 표출한다. 그 예로 모술 지역을 점령한 후 "무신론과 부도덕한 서적들을 불태우겠다"고 공언하며 공공 도서관에서 6,000여 권의 과학, 기술, 철학, 역사, 종교 관련 서적들을 싹 불태워 버렸다. 그런데 정작 이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혐오해 마지 않는 서구기술의 총아인 트위터 등의 SNS로 열심히 선전선동을 일삼고 있다.

탈레반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적어도 종파를 막론하고 극단주의적인 종교인들이 반지성주의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은 흔해 보인다. 미국이나 극우 성향의 한국의 개신교 역시 이런 문제가 종종 제기되어 왔다. 특히 신비주의(charismatic) 계통이나 복음주의 계통에서 유난히 반지성주의적인 측면이 심하다. 또 어떤 이들은 덮어놓고 무조건 "믿을 것"만을 강요하고 의심을 거부하는 측면에서 반지성주의와 상통한다. 이러한 근본주의 계통에서는 온건파 신학자들을 '믿음이 약한 먹물들'로 폄하하기도 하고, 진보적 성향을 보이는 신학자나 교회는 적그리스도로 간주해버린다.[5] 그런데 한국창조과학회 같은 단체들이 극우 성향 교회에게 환영받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들은 지식인들을 거부한다기보다는 단순히 열폭하고 있는 것인지도?[6]

현대 기독교가 반지성주의로 타락했다고 분석하는, 한 번쯤 읽어볼 만한 글.#ㅍㅍㅅㅅ #뉴스엔조이 근본주의 개신교가 반지성주의로 치닫는 것은 그들 신학에서 인간이성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인본주의적 신앙관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앙에 이성이 개입되는 것을 '인본주의'라는 '잘못된' 신앙관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학은 필요없다! 오로지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라는 식의 태도는 반지성주의적 신앙관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이는 종교개혁의 핵심사항이었다. 교리공부(신학공부)를 해야한다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잊어버린 신앙관... 의미도 모른 채 제사만 반복하지 말고 의미를 알아야 하므로 사제뿐 아니라 평신도도 성경을 볼 수 있게 한 것인데 정작 성경을 안 보는 현실..) 국내에서도 한국기독교장로회대한성공회 등 후기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이고 있는 개신교 교회나 한신대성공회대 감리교 계통의 신학대학 등 진보 성향의 신학교에서는 신앙과 이성의 어울림을 강조한다. 물론 이들 교단에서도 드물지 않게 근본주의 성향의 목회자들이 나타난다.

그나마 가톨릭의 경우는 20세기 이후로는 반지성주의와 엮이는 경우가 비교적 덜한데, 실제로 요한 바오로 2세"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이라는 제목으로 유화적인 회칙을 천명했던 적도 있고, 신앙과 이성이 양립 가능하며 실제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1936년교황청에 과학한림원(Pontifical Academy of Sciences)도 설립했고, 중세 시대에는 가톨릭교회 자체가 당대 유럽의 학문의 산실이었다.[7][8] 근세, 근대에도 공부는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는 이유로 수도자가 되는 일이 있었다. 그레고어 멘델이 그렇게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도사제가 되었다. 물론 가톨릭도 처음부터 순순히 진화론이나 기타 과학적 성과를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다. 사실 21세기만 해도 교황아프리카에서 콘돔 사용이 에이즈를 유발한다고 운운하여 엄청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미국근본주의 기독교단과 기독교 우파들의 종교적 반지성주의가 전사회적으로 심각한 폐해를 끼치고 있다. 창조설, 성서무오설 등에 기반해서 보편적인 자연과학을 부정하는 행태는 극우 기독교의 보편적인 현상이며 선진국 중에선 유독 미국에서 심각하다. 이 현상은 미국 남부의 바이블벨트와 중서부 지대에 근거를 둔 과격파 남부 침례회, 오순절교회 교파 등의 근본주의 교회들의 영향력 때문이다. 소위 개척시대부터 '먹물'들보다 힘쓰고 장사 잘하는 '현실적인' 사람들을 숭상하는 경향이 강했던 미국 남부와 중부의 역사적 문화적 성향이 짙은 현상임을 볼 수 있다. 과거 미국의 복음주의 교단은 교육과 교양을 중시하는 기성 청교도 교단과 그들이 세운 아이비리그가 매너리즘에 빠져 민중들을 신앙으로 제대로 이끌지 못한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목회자 교육보다는 현장 포교를 중시하고 성경을 분석적으로 가르치기 보다는 개개인의 감정적인 각성을 통한 회개를 추구했는데, 이는 남부와 중부 개척지의 열악한 환경과 감수성에 잘 들어맞았다. 하지만 애초에 교육보다는 신앙을 중시하고 성서 교육과 비판적 사고가 오히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을 해친다고 우려하는 시야가 강했기에 반지성주의의 뿌리가 되고 말았다.

이 배경에는 종교에게 반지성주의가 가져다주는 이익이 있기 때문인데, 어느 종교든 신자가 혼자 경전을 읽고 아전인수로 해석하고 오해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자의 수준이 낮아진만큼 교주의 말 한 마디가 중요해지므로 신자를 지배하기에 유리하다는 장점도 있다.

3. 학문[편집]



3.1. 창조과학교과서 진화론 삭제사건[편집]


2011년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사건. 미국 사이언스지와 네이처에서 해당 사례를 다루었다. 미국 내에서도 텍사스 및 바이블벨트에서는 고교 교육과정 상의 과학교과서에서 진화론적 설명을 지우고 출간하는데 기왕에 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던 저널들이라 한국의 사례 역시 다룬 것이다.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자 엄연한 학문 분과인 진화생물학을 일부 개신교 신자를 빙자한 창조론자들이 단체를 조직하여, 교과부에 민원을 넣어, 교과서상의 진화생물학의 예시인 시조새의 존재와 말의 진화과정을 삭제조치한 사건이다.

자세한 것은 문서참조.


3.2. 포스트모더니즘 철학[편집]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근간이 되는 사상들인 상대주의다원주의 또는 회의주의해체주의가 반지성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연관된 철학자들(그 중에서도 주로 프랑스 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면 반복적으로 이성주의 전반에 대한 비판 혹은 적개심이 드러남을 쉽게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가 있다. 이들은 포스트구조주의로 묶이기도 하는데, 원분류야 어쨌든 포스트모더니즘 계통에서 반복적으로 참조하는 철학자들이다.

본격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서뿐만이 아니라, 현대철학 입문서 중 포스트모더니즘을 최종 기착지로 작성되는 대중 철학서들도 반이성주의, 반지성주의적인 관점에서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세계 대전의 원인이 이성주의에 있으므로 이성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식의 대단히 과격한 내러티브가 자주 등장한다.

자크 데리다의 경우 로고스(logos)로 대표되는 서양의 이성주의를 남근이성중심적(phallogocentric)이라고 서술한 바 있다.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인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서 로고스에 기반한 자연과학이야말로 궁극적인 맨스플레인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과학수학에 매우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벨기에 출신 페미니스트 뤼스 이리가레는 과학이 유체역학의 난제들을 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과학과 수학이 남성 중심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고체역학이 유체역학보다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이유, 예컨대 과학이 난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이유는 유체를 여성적인 것으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리가레의 해석이다. 남자는 돌출했고 딱딱해지는 성기를 가진 반면, 여자는 달거리에 질액이 스며나오는 구멍을 가지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남자도 가령 정액을 방출할 때처럼 흘러나오는 것이 있지만 남자의 성기가 갖는 이러한 측면은 강조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남성 성기의 딱딱함이지 유체의 흐름을 부추기는 역할이 아니다. 이와 같은 고체의 이상화는 수학 분야에서도 어김없이 확인된다. 수학에서는 유체를 박판이라든가 그 밖의 변형된 고체들로 파악한다. 여자가 남성 중심의 이론과 언어에서 지워져 오로지 비남성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유체도 과학으로부터 지워져 오직 비고체로서만 존재한다.”


그 밖에도 뤼스 이리가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 = mc²은 광속에 특권(privilege)을 부여하기 때문에, 성별이 정해진 공식(sexed equation)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9]

이러한 관점을 적극 수용한 일부 극단주의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수학과 과학이라는 학문 전반을 남성중심적인 학문으로 간주하고 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페미니스트들의 이러한 모습은 심슨 가족의 'Girls Just Want to Have Sums' 에피소드에서 풍자되기도 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이러한 행태로 인해 90년대에 발생한 사건 중 하나가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이다. 그러나 해당 사건 이후에 포스트모더니즘 진영에서는 오히려 반과학적 성향이 더 짙어졌다. 이는 대체로 과학 이론도 사회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든지, 과학자 사회의 임의적 합의에 불과하다든지, 전문가들이 담당하는 분야에도 민주주의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식이다.

이를 이용해 포스트모더니즘 진영은 일정한 사실과 반지성주의를 섞어내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연구 결과는 적극적으로 사용하다가, 불리한 연구 결과가 나오면 과학 역시 서구 문명의 제국주의적, 압제적, 자본주의적 백인 남성 가부장제의 산물이라고 몰아 붙이는 것이다. 지적 성실성보다는 이념정치가 우선이라는 논리. 미국언론, 인문학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기 때문에 지식인의 이름으로 반지성주의적 주장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이렇듯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반지성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근간이 된 사상들인 상대주의다원주의 또는 회의주의해체주의라는 사상들 그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와 완전히 동일한 사상이라고 간주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반론도 존재한다. 철학적으로 상대주의·다원주의나 회의주의·해체주의의 경향을 보인다고 하여 이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라 간주하는 것은 정당한 비판을 넘어선 부당한 비난이라는 것이다.

이는 상대주의·다원주의회의주의·해체주의 자체도 이성에 의존하여 비판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지적이다. 어떤 사상을 반지성주의라고 칭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학문이나 이성에 회의적일 뿐만 아니라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이성보다 더 우선시해야 할 것이며,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반지성주의적 성향에 대한 비판도 바로 그렇게 이성보다 다른 무언가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하고 있다. 하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반지성주의를 이유로 상대주의·다원주의나 회의주의·해체주의라는 사상들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와 완전하게 동일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 역시 나오는 것이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등장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회의주의와 같은 사례의 경우에는 그것을 반지성주의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다. 한 가지 예시를 들자면 회의주의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로 간주하게 되면 그 회의주의의 일부인 과학적 회의주의 역시 반지성주의로 간주할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과학적 회의주의를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반과학적 성향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회의주의 중에서도 과학적 회의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반지성주의와는 가장 상극인 사상인데, 이를 회의주의의 일부라는 이유로 반지성주의라고 싸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그다지 올바른 비판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3.2.1. 반론[편집]


통속적인 포스트 모더니즘 비판자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역사적인 개념으로, 즉 구체적인 시대와 장소를 바탕으로 변모해온 개념으로 파악하기보다는, 고정불변하며 단일한 사상인 것처럼 파악하고 비판한다. 만약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러한 단일성을 지향했다면 그 또한 유의미한 비판이 될 수 있겠지만,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가들이 항상 경계했던 것이 그러한 일반화라는 점에서 그와 같은 비판은 설득력을 잃는다. 그들이 비판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은 (1) 누구의 포스트 모더니즘이며, (2) 어느 시대 어느 장소의 포스트 모더니즘이고, (3) 그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가? 포스트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학자들 중에 종종 반지성주의적이거나 혹은 반과학적이었던 학자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포스트 모더니즘을 '대표한다'고 어떤 고민도 없이 선언해버리기는 어렵다[10].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가로 지목되는 대표적인 학자들의 사상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그들이 반지성주의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론하자면 이하와 같다: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가 세계대전의 원인이 이성에 있다고 진단했다는 것은 비판이론에 대한 가장 피상적인 수준의 이해일 뿐이다. 그들은 세계대전처럼 복잡한 원인들이 얽힌 문제를 그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드러내보이고자 했던 것은 이성과 계몽의 개념에 내재되어 있는 야만성이라고 해야 보다 정확할 것이다. 『계몽의 변증법』을 저술하던 당시의 문제의식은 '이성이 세계대전의 원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인간은 이성을 사용하여 홀로코스트와 같은 산업화된 학살을 자행했는가'에 가깝다. 그 문제의식에 답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내린 결론이 '신화는 계몽이었으며, 신화의 단계로 되돌아가기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계몽은 그럼에도 점점 더 신화로 되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 비판』을 썼고, 문화산업론을 비롯한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 역시 이른바 '자유주의적'이라고 자부하는 자본주의 세계의 문화가 어떻게 개인을 표준화하고 규격화해 유적 존재로 만드는지를 다뤘다. 그들은 계몽을 비판하고 이성의 독주를 비판했지만, 그러한 비판은 반지성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11] 에 대해 반성하고자 한 시도였다.

데리다가 '남근이성중심적'인 사고를 비판한 것 역시 근대 유럽에 만연해 있던 남성우월주의적 도식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19세기 철학자인 키르케고르의 주저 『죽음에 이르는 병』에는 '여성에게는 지성이 없으며, 여성의 특징은 배려와 섬세함이고, 배려와 섬세함을 갖추지 못한 여성은 비여성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보다 이전인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에서도 시민적 덕성을 의미하는 '비르투'는 또한 남성다움을 의미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1944년에 가서야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었으며, 그렇듯 시민적 삶이나 지적인 활동은 오랫동안 남성들의 전유물로 간주되었다. 뿌리를 타고 올라가 보면 이러한 도식은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때도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여자에게 남성과 같은 수준에서의 이성이 없다고 믿었다. 만약 이런 역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면, 데리다의 주장은 반지성주의적인 것으로 오독되기 쉽다. 그러나 그가 서양철학사의 남성중심적인 면모를 비판하고, 남성=이성적, 여성=비이성적이라는 도식을 비판한 것은, 단순한 반지성주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양철학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푸코를 반지성주의자로 지목하는 사람들이 (그리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있다는 것은[12] 기이한 현상이다. 그는 어떤 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로 분류될 수 있는 인물이고[13], 또 당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서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등과 교류를 나눈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학문적 작업을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간단하게 요약해버리는 것은 온당한 이해라고 하기 어렵다. 그의 방법론은 많은 면에서 역사적 사실들에 기대고 있었으며, 고고학적, 계보학적, 혹은 해석학적 방법론을 따르는 그의 연구는 실제로 역사학적인 작업에 가까웠다. 비록 그때 당시 그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 중 현재는 더 이상 사실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들 역시 있지만, 그렇다고 그의 방법론이 역사적이었다는 사실까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가 비판한 것은 근대와 권력이었지 이성 그 자체가 아니었다. 스스로 계몽주의자를 자처했으며 평생을 지적인 작업에 몰두했던 푸코에게 '반지성주의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라캉, 들뢰즈, 가타리의 경우에는 수학과 과학을 남용한다고 비판받을 여지가 확실히 있다. 라캉의 경우에는 수학적 개념이나 논리학의 기호들을 남용한 것으로 악명이 높으며, 들뢰즈나 가타리 역시 다양체와 같은 수학적 개념들을 철학에 적용하려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앨런 소칼이 '지적 사기'라고 그들을 비판한 것은,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함부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학자의 미덕이라는 점에서 옳다. 이러한 남용은 학자로서의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반지성주의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학문적 작업 전체를 반지성주의적이라 비난하는 것 또한 옳지 못하다. 앨런 소칼이 『지적 사기』에서 비판하고 있는 부분 역시 학자로서의 성실성을 지키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였지, 그들의 학문적 작업 전체가 아니었다.

한편, 과학적 실재론 대 반 실재론 논쟁과 그에 따라나오는 구성주의 논쟁, 과학에서의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둘러싼 여러 논쟁들을 단순히 '반지성주의적인 것'으로 격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과학을 한낱 주술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시키는 반지성주의적 태도임을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과학을 합리성의 전형이라고 믿을 수 있으며, 그러한 과학에 기생하는 것으로 보이는 과학철학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지성인답게 그러한 주장을 하고자 한다면, 그의 입장과 반대대는 주장들에 반지성주의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반론을 제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과도한 표준화 및 일반화에 대한 경계는 포스트모더니즘만의 특징이 아니라는 사실관계를 지적해야만 하겠다. 조지 버클리는 『인간 지식의 원리론』에서 과도한 유비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으며, 데이비드 흄은 과학적 구성주의에 가까운 입장을 취했다. 버트런드 러셀이 인간의 의식을 칠면조의 의식에 빗대 경험론의 독단을 비판한 예시 또한 유명하다. 심지어 그런 비판을 했으리라 기대하기 어려운 게오르크 헤겔조차도, 차이를 없애고 모든 것을 단일화하려는 이성의 시도를 '모든 소가 검게 보이는 밤처럼' 무의미한 인식이라고 비판했다[14]. 이처럼 이성의 사용에 대한 반성은 꾸준히 되풀이되어온 것이고, 그것을 일반화된 이해만으로 반지성주의라고 단언하는 것이야말로 이성에 대한 숭배의 태도일 뿐이다. 이성 숭배는 반지성주의적인 것을 넘어 열린 사회 그 자체에 대한 도전이며, 비판이론가들이 계몽에 내재된 전체주의적 계기라고 지적한 그런 것이기도 하다.


3.3. 유사역사학[편집]


역사학계에선 주류 역사학들을 지성의 기준으로 놓았을 때 유사역사학자들이 반지성주의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강단 사학[15]/재야사학'이란 용어를 주장한다. 기존의 정식 역사학계를 친일 식민사관에 찌든 집단으로 치부하고, 정식 학자가 아닌 '재야의 사학자'인 자신들이 '진정한' 역사학을 연구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강단사학이니 식민사학이니 하는 극단적 수준까진 가지 않더라도 비주류적인 주장을 하는 재야사학자들이나 대중적으로 인기는 얻지만 주류 학계에선 비판을 면치 못하는 이덕일 같은 인물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학계는 '지들끼리만 돌려보는 논문이나 만드는 무가치한 집단'이라고 비난해대는 네티즌들도 의외로 꽤 많다.

웃긴 건, 정작 재야사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의 주장을 펼 때 근거로서 가져오는 자료들이 전부 그들이 말하는 강단사학에서 연구한 자료들이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띄어쓰기가 없고, 한문으로 쓰인 데다가, 수백,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고문서들이라 현대어로 해석하는 과정이 난해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수식어를 슬쩍 바꿔서 해석하는 식으로 기존의 정설을 아예 왜곡하여 환빠식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들은 역덕이나 제도권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적 있는 경우들을 제외하면 역사학에 대한 관심이 적은 데다가 이런 유사역사학자들의 해석이 역사왜곡이든 뭐든 '결론은 대한민국이 가장 위대하다.' 는 식으로 결론이 나기 때문에 유사역사학자들의 역사왜곡을 바로잡으려는 학자들을 식민사관이라 매도하며 유사역사학자들을 칭송한다. 거기다 교수, 학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대중에게 자주 노출되기가 어려운 주류 역사학자들에 비해, 유사역사학자들은 작가, 인터넷 강사 등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자주 노출되기 쉬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에 이들이 끼치는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또는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유사역사학자가 비 역사학 전공인 교수라면 교수라는 권위를 내세워 영향력을 끼친다.

개중에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학계 탓을 하는 이들도 있으나, 교수와 학자들은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바쁜 사람들이다. 특히 학자의 연구성과를 오직 논문의 갯수로 계량하려 드는 풍조가 한국에 자리잡으면서 더더욱 바빠졌다.

특히, 이들 유사역사학자들은 대부분 타인의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주로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대중들에게 쉽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도가 튼 사람들이다. 또한, 논문을 기고하는 것이 주 업무인 교수들에 비해 유사역사학자들은 청중 앞에서 끊임없이 말을 하기 때문에 언변 또한 주류 학자들보다 뛰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기다 이들이 내놓는 주장들 역시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위대한 나라이고 한민족이 가장 위대하다.' 라는 대중의 입맛에 딱 맞는 국수주의, 인종주의적인 주장들 뿐이다보니 역사학을 모르는 대중들은 유사역사학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정통 역사학자들을 적폐, 비국민으로 몰아세운다.

어떻게 보면 유사과학보다 더 위험한 것이 이런 유사역사학, 유사사회학적 사상이 널리 퍼질 경우 과거 나치 독일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를 나치즘의 광기로 밀어붙일 위험성이 크며 이미 앞 글에서 보이듯이 유사역사학을 설파하는 자들에는 파시즘적인 논조가 내재되어 있으므로 이를 경계하여야 한다.


3.4. 유사과학[편집]


유사역사학과 비슷한 사례. 기존 과학을 적폐로 몰아세우며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한다.


4. 의학[편집]



4.1. 백신 반대 운동[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백신 반대 운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나라별 현황[편집]


공교육 제도가 정비되고 개개인들의 지식수준 또한 과거에 비해 대폭 상승한 현대 사회에서도, 비단 여러 개발도상국 뿐만 아니라 미국, 서유럽을 위시한 서구권 국가들, 그리고 한국이나 일본등 아시아권 선진국들에서도 반지성주의는 그 세를 여전히 펼치고 있다. 이는 각국의 근대사 및 현대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많으며, 비단 한국의 문제점만 인 것이 아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5.1. 대한민국[편집]


대한민국은 교육열이 상당한 편이고 인간개발지수 또한 상위권이며 식자를 우대하는 국민적인 태도가 있으며, 실제로 국민 교육 수준이 매우 높은 나라라서 언뜻 반지성주의가 약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편이다. 반지성주의를 부족한 교육 탓이라 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지식의 양보다는 지식에 대한 태도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 옳다. 모르는 것을 새롭게 배우거나, 이해 못 해도 그럴 수도 있겠다고 개방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모르는 지식을 배우길 거부하고, 누군가가 알려주는 것 자체에 적대감을 표하는 사람이 극명하게 나뉜다. 심지어는 자신이 틀렸을리가 없다는 무오류성이 기본에 깔려 자기 견해 외의 지식은 틀린것이므로 배울 필요가 없다는 일종의 신앙과도 같은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아시아 역사에 뿌리깊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지성을 억압한 과거를 한반도도 겪었기에 지도자가 반지성주의에 파묻히면 집단 전체가 순식간에 반지성주의에 매몰되어 지지층과 반발층의 분열이 극심해진다.

빠르게 발전해온 대한민국의 특성상 세대별로 반지성주의의 발현 원인이 약간 다르다. 한국전쟁이후 절대적인 교육인프라가 부족했던 탓에 기성세대는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 빼곤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성년이 된 학교 졸업 후에도 시대변화에 따라갈 수 있는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법, 이른바 평생교육이라고 하는 교육복지 제도가 매우 부족했다.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 또한 길기 때문에 따로 공부할 짬을 내는것도 어려웠다. 교육받을 기회를 놓친 이들의 컴플렉스는 먹물이라는 멸칭에서 나타나듯 교육받은 자들에 대한 질투와 적대감으로 변했다. 축약하면, 기껏 인생을 걸고 키워주고 먹여주고 좋은 학교 보내놨더니 높은 사람이 되자 자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모든 이득을 갈취해간채 자기들을 바보,무식쟁이 취급한다는 것. 이런 피해의식 때문에 2020년 기준 50대 이상, 흔히 기성세대라고 하는 한국인들의 반지성주의는 여타 국가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편이다. 그 자신이 권위주의자이면서도 정치권력에 대해 끊임없는 불신을 가지며, 미신이나 언론을 통해 잘못 전파된 통념을 맹신하거나 권위에 굴종하는 양태의 반지성주의를 보이는 형태가 많았다. 이는 육아 방식을 둘러싼 갈등에서 드러나는데, 노인 세대들은 전문가들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들 세대에서 익숙한 방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어 젊은 부부들과 갈등을 일으킨다. 또한 전문의의 말을 무시하고 쇼닥터 및 약장수(예를 들면 검증도 안 된 영양즙 따위)를 맹신하는 경향도 보인다.

하지만 아래 사례 문단에서 '봇물', '금일', '사흘' 따위의 단어들이 젊은층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에서 보듯이 노령 세대만 문제인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권위있는 존재가 필수적인 노령 세대보다, 그런 조건 없이 반지성주의가 발현되며 온라인을 통해 보고픈거만 취사선택해서 얼마든지 골라볼 수 있는 젊은 세대 쪽이 더욱 빈번하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와는 반대로 자신의 견해에 막강한 권위를 스스로 부여한다. 자신의 견해에 맞추어, 근거들의 가치를 멋대로 결정한다. 자신의 견해와 상반되는 전문가의 의견이 있으면 전문가의 전문성은 폄하하지만 어떠한 전문적 능력이 없는 자신이 취합한 근거나 만들어낸 근거는 맹신한다. 혹은 더 마음에 드는 쪽의 주장은 별다른 근거가 없어도 맹신하는데, 반대쪽 주장의 근거는 폄하하려 시도한다. 또한 원하는 결론을 먼저 내놓고 그에 걸맞는 근거를 나중에 찾는 황당한 행태를 보이는데, 정보화의 영향으로 근거를 나중에 찾아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어 추론과정이 거꾸로여도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특히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사례들에 대해선 해박하면서, 견해를 반박하는 사례들에는 무지하거나 혹은 폄하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쉬워진다. 일반화에 대한 지적이 들어오면 머릿수로 귄위를 더 드높혀서 논리를 찍어누르는 방식으로 억압하려 시도한다. 때문에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동조자들을 구하려고 하며, 구하기 쉽도록 감성적인 면만을 자극하고 사실을 곡해하는 내용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려 한다. 이 때문에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는 반지성주의자들이 모여 반대의견은 일소한 후 서로의 견해에 공감하며 권위를 드높히는 품앗이 현장처럼 변하기도 한다. 견해를 공유하기 보다는 단순히 누가 옳다vs틀렸다의 이분법식으로 승패를 결정하는 대결이 되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진지한 대화가 단순히 자존심을 건 싸움이 되는 풍조 때문이다.


5.1.1. 입시 위주 교육[편집]


젊은 세대의 반지성주의는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한 입시 위주 교육+주입식 교육의 극단화에서 비롯된다. 교육 현장에서 수험에 비중이 낮은 과목은 등한시되며 설령 수험과목이더라도 기술적인 문제 풀이와 관련 없는 심화 지식 및 학습법 또한 예외가 아니다. 알아야 할 지식과 알면 시간 낭비인 지식을 정해놓고 그 알아야 할 지식도 닥치고 외우게 시킨다. 이 과정에서 지식은 더이상 삶에 도움이 되는 양분이 아니라 맞혀야 하는 표적과 그것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전락할 뿐이다.

이렇다 보니 공부의 가치와 즐거움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공부 자체에 흥미를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기성세대 관점에선 이런 학생들은 기특한 학생이지만, 공부에 재미를 못 붙이는 대다수 학생들은 어른들 말을 듣지 않는 일진이나 날라리 양아치 따위로 취급받는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양쪽의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영국이 섬이라고 말한 사람을 합심해서 쫓아내고 기사에 사흘이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잘난체하지 말라며 분노한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단순히 유식한 사람을 증오하는 행태가 아니라 실은 이런 양극화 현상 속에서 밀려나 기성세대로부터 인정 못 받는 부류들이 스스로를 감싸는 항변에 가깝다는 점에서 반지성주의를 단순히 무식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반지성주의의 전 단계라고 볼 수 있는 출세 목적 교육에 매몰되어 돈 되는 실용적인 학문 이외의 것을 배격하거나 쓸모없다며 천시하는 세태와 실업, 그 중에서도 청년실업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다보니 당사자들도 어쩔 수 없이 돈 되는 학문(경영학, 공학) 이외의 것(인문학, 과학 분야 중 특히 순수과학)은 진로에 방해된다며 멀리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16][17] 심지어 철학이 좋아서 철학과에 진학했음에도 공부를 못해서 점수 맞춰 진학했다고 오해받는 경우가 있다.이순재옹 어리둥절[18]

입시 위주 교육 + 억지 독후감이나 청소년 권장도서 따위로 학생들이 글을 읽는 행위 자체를 기피하게 되고 유튜브나 스마트폰등으로 정보가 단순화+시각화 되다보니 실질적 문맹의 증가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19] 단순히 교육학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이 대학을 나와도 글을 제대로 읽거나 해석하고 주관을 가지되 극단주의로 기울어지지 않는 형평성을 지닌 사람들이 매우 적어지면서 생기는 부작용은 매우 크다.(지식, 지능과 성격이 다른 통찰력의 비중이 크다.) 기사나 어떤 사건사고에 대한 확인이나 사실관계 확인 없이 댓글을 달고 또 간단한 지표들만 해석하고 또 글을 쓸때 너무 가볍게 다룸으로써 생기는 문제점이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 SNS, 그리고 나무위키 등 대중적인 대형 커뮤니티등에서는 이미 숱하게 드러나 있다.

실질적 문해력이 낮아지고 있는 독자들은 출판계 흐름에도 좋지 않은 쪽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독서 소비율도 감소추세이다. 또한, 책이라는 게 어디까지나 입시나 취업을 위한 수단이나 보니, 자연히 입시용 교재나 자기 계발서 위주로 시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한국 출판계가 정보와 순수성을 지닌 책들에 비해서 비교적 깊이는 적고 순수성은 떨어지고 대중적이고 감성만 있는 글과(브런치의 대다수 글들[20], 에세이, 경수필) 책들을(자기계발서, 웹소설, 만화책) 선호하게 되는 것은 기존 작가들의 자질 문제(순수에만 치중하여 대중성을 말아먹거나, 되도않는 철학 또는 편향성을 설파하거나)도 있지만 지나치게 독자들이 대중성만 갖춘 시장을 선호하고 그것이 생산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있을 수 있다.

물론 대중적인 서적들을 소비한다고 해서 대중의 선호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남의 말을 맹신하고 책을 주관없이 고르거나, 마음에도 없는 고전을 고전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억지로 읽어서 오독하는 것보다는 분명 나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질적인 문해력과 독서습관과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고 무게를 담고있는 서적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줄어들다 보니 대체제로써 '책 라디오'나 SNS 독서 추천, 유튜브로 '독서 리뷰'같은 것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 결과, 오디오북이나 영상을 통해 책을 읽도록 유도되는 것이 아니라 주객전도 되어서 책의 줄거리를 간략화시킨 영상만 보고 책은 안 읽는 사람들이 많아진다.[21]

이런 부작용은 대부분의 독자가 글에 대한 주관을 가지고 통찰력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고작 인용이나 인기팔이, 스노비즘에 휘둘리기 쉽게 만든다. 책벌레나 학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지만 독서의 순기능인 주관적인 가치관과 통찰력, 지식생성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반지성주의를 타파하려면 대중의 변화뿐만 아니라 교육부 자체도 개혁이 필요하다. 기존의 어휘력, 문학 해석 방법 등을 가르치는 방식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말고 본인이 스스로 배우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기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의 수업과 그 삶이 인생에 있어서 전부이고 진정한 교육인양 포장해서는 안 되며 성적이 나오는 것에만 주의하지 말고 인간으로써 자립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
국영수사과 예체능 식으로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는 지식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철학, 윤리학, 그리고 왜곡되지 않은 역사 그대로를 보여 주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교육이나 돈관리도, 역시 미성년자들은 스스로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결정해 관리할 수 있도록 격려를 해주고 독립할 수 있게 교육해야 한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자기가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과연 잘하는지에 대해서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다. 인간에게 학습은 결코 개념이나 상식만을 나열하고 기억하려 한다고 습득되지 않는다. 가장 원초적이고 빠른 길은 이해인데 이 이해란 본인이 스스로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과정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절대 교육할 때 원리원칙만을 고수해선 안 된다. 좋은 교육자란 단순히 정의를 잘 풀어내거나 설명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느끼게 해주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며 무엇보다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교육자였던 예수, 소크라테스, 공자, 맹자, 앤 설리번 등등 좋은 교육자들은 절대 학생들에게 이상과 실천의 괴리가 일어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 스스로가 가르치는 이에게 연장자로써 사랑도 많이 하고 학생들에게 질문도 많이 던졌으며 생각을 이끌어냈다. 뭣보다 제자들이 알건 모르건 늘 생각하게 이끌어줬을 뿐 각 학생의 교육 환경을 잠재된 학습능력과 관련되었다고 보지도 않았으며 서열로 열등감을 주입시키지 않았다. 사랑하고 응원하며 스스로 책읽고 아이들을 존중하며 가르쳐되 배울 때도 자세를 낮추어 배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진정한 의미의 공부가 이루어져 학생의 문해율, 인성 문제가 줄어드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다.[22]


5.1.2. 스노비즘[편집]


한국인의 교육열은 조기교육 열풍을 낳았다. 그런데 이것은 곧 재력의 상징이므로, 철없는 어린이들이 비싼 사교육을 받는 것을 명품 소비하듯이 자랑하며,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무시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나타났다. 당시에 영어는 중학교에서야 필수적으로 가르치는 과목이었으나 이미 국민학생 사이에서 영어 조기교육 광풍이 일어서, 아직 영어 학원에 다니지 않는 동급생 앞에서 일부러 영어 욕설을 말하고, 그 말이 뭔지 몰라서 되묻는 아이한테 영어사전 찾아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지식이 많다는 것은 명품을 컬렉션하며 부를 과시하는 것과 동일시되었고, 정말 공부를 좋아해서 지적인 대화를 즐기려는 사람도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몰리게 되었다. 지적인 대화를 시도하려면 먼저 서로가 알고 있는 것을 드러내고 공유하는 것이 선행되는데, 이 드러내는 과정을 지적 오만으로 받아들여 상대의 인성과 말투를 먼저 공격하여 대화 자체를 성립시키려 하지 않는 경우도 무수히 많다.

5.1.3. 질문을 죄악시함[편집]


이 또한 입시 위주 교육 문제와 연결되는 내용인데, 결국 지식을 쌓는 목적이 남을 이기기 위한 것이다 보니, 유독 대한민국에선 모르는 걸 질문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약점을 내보이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사실 아무리 엘리트라 해도 신이 아닌 이상 모르는 게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선 제가 몰라서 그러는데 가르쳐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을 의심하고 그런 것도 모르냐며 조롱한다. 반대로 서구 선진국에선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을 학구열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학교 현장이나 업무 현장에서 허용되는 질문은 심화 지식을 얻기 위한 '좋은 질문'에 한정되며, 이해 속도가 느려서 하게 되는 질문은 수업 방해나 수업 태도 문제로 취급되어 눈총을 받는다. 그나마 그 '좋은 질문' 마저도 주변인이 생각하기에 필요성이 적다고 인식되면 '나대기 위한' 질문으로 취급되어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다.

이렇다 보니 학문에 대한 호기심은 차단되고, 결국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판을 치게 되었다. 흔히 반지성주의의 사례로 언급되는 사흘/4일 논란은 정확히 말하자면 무지가 문제가 아니라 모르는 걸 아는 척해서 생긴 문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학벌이 좋은 사람이 질문을 자주 한다. 교육열이 높아서 학력으로 모든 걸 평가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질문을 해도 학벌이 까방권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를 나온 사람이 모르는 걸 인정하고 질문을 많이 하면 서울대 나온 사람도 모르는 게 있을 수 있구나 하면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오히려 학벌로는 내세울 게 없는 사람들이 이를 악물고 자신의 무지를 감추려 하며, 틀린 것을 옳은 것으로 우기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고 그러한 사람들이 인문계, 실업계 출신처럼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23]

물론 이런 경우는 기본적으로 인성의 문제도 있긴 하지만, 학벌이 높은 사람의 질문만 칭찬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질문은 무조건 무시하는 사회적 차별은 결국 공부 자체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지식의 전달자인 교육자 자체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있다.

5.1.4. 교육 현장에 대한 불신[편집]


현재의 학부모 세대들은 뇌물을 받거나 기분 내키는 대로 체벌을 하는 막장 교사들에게 시달려 온 기억이 있기 때문에 교사에 대한 이미지가 결코 좋지 못하다 보니, 공부를 잘해야만 교사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교사 집단 자체를 꼰대라 여기며 불신하고, 이 태도를 자녀들이 배운다.

결론적으로 현대 대부분의 학교나 사회에서는 학생이 학교를 다니는 목적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대부분의 부모와 교사들이 수능만을 중요시하고 공부에 관련된 것 아니면 쓸데없는 것으로 여기고 무시한다.

실제로 인생은 단순히 지식을 알려진 방식대로만 습득하고 배우는 것으로 헤쳐나가지 못한다. 자신이 독립된 인격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배울 것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여러가지 변수에 대처하는 것이 살면서 훨씬 중요한 일이다. 인생은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는 것인데, 그런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자아를 가지기가 워낙 어려운데다 그런 사람도 적으니 어른들도 모르고 학생들에게도 그런 것이 전수되지 않는다.

실제 세상에서는 계속해서 배워야하며 자신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게 엄청 위험하고 또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많은데도 정답이 절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정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인생인데 확실하지 않으면 정답이 아니며 확실한 것 정답만을 찾는 것이 공부이자 인생의 전부라는 엉터리 방법으로 교육받았으니 근본적인 문제점을 아예 자각하지 못한다.

어른이나 앞으로 태어날 세대들이나 학교나 돈, 특정 직업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서로간의 편을 가르며 그 길에서 벗어나면 불안정하고 안 될 것이라고 선입견부터 가져버리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팽배해져 있다. 이런 어른들로부터 상처 받은 학생들은 어른들을 불신하고 이것이 결국은 반지성주의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언론이든 기성세대든 그리고 정치든 맹신해서도 안 되고 무조건 불신해서도 안 된다.

다들 자기 입장에서는 자기가 옳다고만 말할 뿐이지 실제로 어떤 모순이 있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유행이든 대형 커뮤니티든 나무위키든 어디서 글 좀 읽었다고 절대 아는 척하지도 말고 남의 의견에 쉽게 동의하거나 반박하지 말고 그냥 어떤 소리가 나오는지만 듣고 흘려버리자.

제일 현명한 사람은 세상의 생각 이전에 자기부터 먼저 생각하며 자신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다. 인터넷은 당신이 동조한다는 것만으로도 찌라시나 불쾌한 일들이 없어지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불을 붙이고 감정소모만 크게 만들 뿐이며 당신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는커녕 시간만 빼앗기는 것이다.


5.1.5. 정신과 치료 기피[편집]


우울증이나 양극성 장애 등은 학업에 영향을 주는 요소이지만, 제때 진단을 못해서 치료 시기를 놓치고, 이로 인한 학업 부적응 등으로 인해, 사회에 대한 증오감이 싹터 이것이 반지성주의로 발전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입시와 취업 준비로 인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음에도 불구하고, 정신과를 잘 찾지 않는다. 정신과를 찾는 것이 쪽팔린다고 생각하다 보면, 현실 도피를 위해 악플을 달거나 극단적인 커뮤니티 활동에 몰두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정신과 치료 기피도 궁극적으로는 반지성주의로 빠지는 길이다.

또한, 신체의 질병과는 달리 수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단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의사를 불신하여 치료를 거부한다는 것도 문제다. 이 또한 반지성주의로 빠지는 요인이기도 하다.

정신질환은 직접 검사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 실제로 그냥 자기가 게을러서 무기력증에 빠졌다고 생각했다가 양극성장애로 진단받은 사례도 있다.

신경증이든 정신증이든 정신병이 있다면 결코 확인하거나 치료받기 전까지는 진짜 운이 좋아서 그 스트레스의 원인을 완전히 극복하지 않는 이상 나아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커지다가 나중에 반드시 치료해야 할 지경에 이르는데도 극단적인 방어기제가 발동해 그런 치료나 도움의 손길마저 거부하게 되는데 현재는 법적으로 보면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런 환자를 강제적으로라도 치료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다.
이렇다 보니, 주위 사람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어 사회적으로도 매우 골치아픈 상태이다.

심해지면 이것도 암처럼 인생을 박살내버리며 답이 없어지므로, 심해지기 전에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에도 이런 사람들은 마음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극단에 치닫기 전까진 치료받으려고 하지 않으며, 특히 한국은 문화적으로 정신치료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그렇지만 그걸 해소하지 않고 버틴다면 나중에는 바보나 백치 정도가 아니라 진짜 미치광이가 되는 것이다.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정신병은 결코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그런 마음의 불안을 감추고 멀쩡한 척 하라는 이 세상이 정신 나간 것이다. 오히려 당신이 이런 내면의 일그러짐을 간과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힘을 추구할수록 본인도 행복하지 못하며 주위 사람들도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자신을 고통받게 하는 사람들은 교수든 친구든 심지어 가족이든 직장 상사든 가차없이 끊는 게 중요하다.

자신을 인간답게 대접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회적 시선 때문에 참고 견딘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반지성주의와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그 작은 시도야말로 당신을 더욱 현명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면, 쉽게 화내고 속단하면서 이성은 계속해서 분별력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우울증을 앓고 있던 정황이 있어도 자신의 활동을 계속한 윈스턴 처칠, 나쓰메 소세키, 에이브러햄 링컨 같은 사례도 있다. 그렇지만 갈수록 악화되기만 했고 이정도로 의지가 강한 사람은 매우 드물뿐더러 결국 저 사람들도 죽기 직전까지 엄청난 고통에 시달려야했다. 저들도 죽는 순간까지 결국 정신병을 극복하지 못했으며 그렇게 산전수전 다 겪고 단련이 된 사람들도 삶에 대한 의지와 자신의 잠재력을 꺾어버리고 한없이 심연속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정신질환이다.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할 수 있어야 당신의 감성과 이성이 선동에 빠지지 않고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것이 자신의 건강 뿐만 아니라 지적인 생활을 위해서도 그리고 인격적인 성장에 반드시 필요하다. 정신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고 굳이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을 고쳐야 한다.

범죄나 무식, 편향성, 굴욕 등은 주로 마음이 병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오래 버티고 제때 그 상처를 치료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상처가 커지면 커질수록 발생하는 것이 원인이다.

대부분 인간의 갈등과 문제점은 법과 이성적 사고 이전에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데서 부터 온다. 예나 지금이나 다른 사람들을 돈이나 수단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대접하고 본인 스스로도 이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여서 커지지 않게끔 해소하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물론 인류가 무지를 벗어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며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다.


5.1.6. 진영 논리와 권력자에 대한 반감[편집]


교육 문제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반지성주의가 발현되는 원인에는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감, 학문과 정책이 연관되어 발생하는 정치적 진영논리, 근본주의 종교, 음모론의 성행등도 있다. 특히 이 현상은 1번 항목의 입시 위주 교육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살벌한 입시경쟁과 학벌 숭배 풍조는 극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만들어 내는데, 패배자로 내몰린 대중들의 의식 속에 엘리트 계층에 대한 적개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특히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심각한 양극화로 대중들의 삶이 점점 피폐해져 가자, 2000년대 중반 이후 온라인 공간의 확대를 타고 이런 불만이 공공연히 터져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공자님 말씀이나 하고 있고, 애초에 너네 먹물들이 나라를 이렇게 만든 거 아니냐"는 식의 불만이다. 문제는 대중들이 진짜로 사회를 이렇게 만든 주범인 정치, 경제 엘리트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박봉과 고된 업무로 힘들게 살기는 마찬가지이며, 전혀 저 사태와 관련이 없었던 인문학순수과학 쪽의 지식인들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쪽 계열 학자들의 절대 다수는 대중들이 막연하게 상상하는 '엘리트'에 전혀 해당되지 않으나, 대중들은 그런 것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특히 일부 주류언론, 기득권 세력들은 이런 경향을 이용해서 대중들을 선동해서 비난의 화살이 지식인들에게 향하게 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려는 철면피 행태를 보이고 있기도 한다.

때로는 전문가가 편향되어있거나 그러고 있다는 오해를 받아 불신을 받기도 한다. 시장vs정부의 대립으로 대표되는 경제학 관련 이슈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고 싶어하고, 시장은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신고전학파vs케인즈학파의 학문적 논쟁이 좌우진영의 논거가 되어 정치적인 성격을 띄게된다. 과학또한 정책결정의 근거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광우병 파동 당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사대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등 일반인의 능력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에 있어서 전문가의 증언은 사실을 전달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정치인들에 의해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된다. 사학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때부터 좌우로 분열되어있던 한국의 정치세력이 지금도 고스란히 좌우로 남아있는 까닭에 똑같은 역사적 사실을 놓고도 사학자들의 근현대사 해석이 갈릴 수 있다. 박정희나 김대중같은 인물의 공과를 논하는것은 곧 현재의 좌우진영을 평가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이외의 비정치적 분야에서도 디워논쟁처럼 뜬금없는 좌우대립이 촉발되기도 한다. 당시 미학 전공자인 진중권, 그리고 수많은 영화인들이나 비판적인 입장을 낸 일부 관객들의 문제제기에 대해서 소위 디워빠들은 무능한 충무로먹물들의 질투와 시샘, 친미 사대주의자들의 자국비하라는 식의 감정적인 반발을 보였다.[24] 이렇듯 전문가가 자의든 타의든 민감한부분들 건드리는 경우가 생기면 대중들은 실제 팩트와는 무관하게 자기 정치적, 사회적 입장에 따라 답정너식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의 말이 자신이 생각한 결론과 다르면 전문가를 무조건 의심하는 것이다.

서구권의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심한 편은 아니지만 반지성주의에 있어서 종교의 영향도 상당하다. 한국의 기독교가 영국과 미국의 근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중간에 상황에 따라 나라마다 여기저기서 여러가지 종교적 조건에 대한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어쨌든 그들 역시 매우 과학에 적대적이다. 특히 진화론은 기독교가 최우선 타도 대상으로 놓고 있는 타겟이다. 교과서 진화론 삭제 사건에서 나타나듯 정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힘이 있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생명과학 뿐만이 아니라 지구, 우주과학도 성경의 교리와 배치되기 때문에 기독교의 공격목표가 된다. 영미에서 만들어지고 한국에도 수입된 지구 평면설, 아폴로 계획 음모론 제기의 근간에는 종교적인 반발심이 깔려있다. 이들 중에는 인류가 우주로 나가본 적이 없다거나 더 나아가 우주란 거 자체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아무리 교과서에 실려있는 기초적인 내용을 알려줘도, 전문가들이 공들여 설명해줘도, 심지어 직접 체험하라고 배를 태워줘도 절대 믿지 않는다. 지구🌎 평면론, 사실은 평평하다?

반지성주의는 별 이유없는 단순한 신비주의나 음모론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세기말시기가 유행의 시작이었다.[25] 이때 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심령, 초능력, 외계인같은 대놓고 농담거리인 소재에 곁들여 교묘하게 말이 되어 위험성을 지닌 유사과학, 유사사학같은 검증되지 않은 화제들이 생성되고 전파되었다. 기존에 존재하던 과학적, 역사적 진실이 거짓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은 백신을 불신하고 인간의 자연치유능력을 과신하여 안아키같은 곳에 빠져들거나 정부의 악행이 역사적으론 이미 망했지만 실제로는 비밀리에 존재하는 일루미나티가 벌인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국회의원 후보는 본인 유튜브나 팟캐스트에서 상대 후보의 학력을 비하하기 위해 "서울대학교에서 농과대학이 입결이 가장 낮아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막말을 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것이 엘리트에 대한 불신[26]과 농업에 대한 무지함[27]이 복합된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문제인 것이 그 후보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이러한 것이 장기적으로 대학에서 농과대학은 쓸모가 없다는 식의 반학문적, 반과학적 이론이 설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요소들이 유일한 원인으로 작용하기보단 서로 복합되어 시너지를 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근절은 쉽지 않다. 베리칩 음모론은 엘리트에 대한 불신과 기독교 세계관이 결합하고 환빠는 강단사학에 대한 열등감, 식민사학(으로 간주하는 실증사학)에 대한 적개심, 극단적 민족주의가 결합하여 탄생했다. 겉으로는 같은 반지성주의 현상에 몰입된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그 동기가 제각각일 수 있다. 인간의 달 착륙을 부정하는 반지성주의자들을 예로들자면 과학자들이 아니꼬워서, 미국의 업적이라 깎아내리고 싶어서, 성경에 어긋나니까 등 여러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반지성주의자들의 주장은 전문가들의 반박을 맞고 해프닝으로 끝나게 된다. 그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 집단과 동등한 수준의 일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황우석의 사례처럼 대중의 무지를 이용하여 전문가가 혹세무민할 가능성도 상존하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관심과 견제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국내의 반지성주의의 득세에 대해 기존의 엘리트들도 크게 반성하고 스스로 큰 혁신을 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자신들이 지식과 명망을 개인의 이득이나 목적을 위해 곡학아세하여 엘리트들에 대한 신뢰성을 스스로 깎아먹었던 것을 인정하고 이에 대하여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 따져보면 지식인들 스스로의 자업자득인 면도 상당히 크기에 반지성주의는 단순한 엘리트들에 대한 근거없는 적대감이라고만 인식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애초에 엘리트들에 대한 비판론자의 정당하고 진중한 비판과 지적을 절대로 반지성주의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5.1.7. 사례[편집]


  • 1980년대, 운동권에서 주체사상떠오르기 시작했을 때, 이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운동가들이 가장 혹독하게 비판한 게 주체사상이 사실상 반지성주의라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을 종합한 게 이진경[28], 조국, 진중권 등이 공동집필한 《주체사상비판》이다.

  • 2005년, 황우석줄기 세포 논문 조작 사건. 헌정 이후 대부분의 한국인을 혹하게 만들고 한동안 편가르기로 몸살을 앓게한 반지성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황우석에 대한 PD수첩의 최초 문제제기 뒤에 대중들은 진실 따위는 관심없고, 오로지 감히 황우석을 건드리다니 식의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점차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와중에도 차분하게 문제를 검증할려는 전문가 집단에 대한 무한한 적개심을 표출하면서 무차별적인 마녀사냥을 벌였다. 극성 황빠들은 줄기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이 드러난 뒤에도 황우석을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면서, 자신들만의 음모론으로 도피하는 광신도의 행태를 보였다. 사실 황빠들의 입장에서는 황빠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좆문가, 반지성주의자로 보았다는 것이 흥미롭다.


  • 한국 의료계에서는 2009년 9월경에 《FTA를 대비한 전통 민중의술 활용을 위한 입법 정책 방안》이라는 보고서(?)가 나오면서 소위 민중의학이라는 개념이 나타나서 논란이 되었다. 해당 문건은 "입법정책연구회"라는 사단법인에서 국가 예산을 들여 심도있는 연구를 통해서 국회의원들에게 전달된 적이 있는 보고서라고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유사과학 + 오컬트 + 신비주의의 결정체라고 해도 될 수준이다.[29] 당장 현대의학계의 반응은 둘째치더라도 한의사에게도 황당하다 못해 실소가 나올 지경이라며 대차게 까였다. #[30] 그 내용 중에는 "의료행위는 면허가 있는 일부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민중 모두의 소유이며, 이제는 의술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줄 때이다" 같은 요지의 표현들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잘못된 민간요법과 무면허 의료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행위이지를 생각하면 이는 빼도박도 못하는 반지성주의의 완벽한 사례 중 하나다.

  • 2010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천안함 음모론도 과학적으로 반론이 모두 반박되었는데 불구하고 음모론이 나도는 전형적인 반지성주의다. 당시 음모론 주장자들은 사건 당시에는 음모론을 믿을만 했다고 실드치지만, 2010년에 분석 데이터를 포함한 과학적 조사 결과가 모조리 발표된지 오래다.

  •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언론뿐만 아니라 국민적인 차원에서 필요 이상의 성역화, 지나치게 한쪽으로만 치우쳐진 피해자들에 대한 애도와 후속 처리, 보여주기식 행정과 행사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의, 극단까지 치달은 감정소모와 감성주의가 이루어져 2020년대에 이르러서도 어느정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나치게 성역화가 된 결과 당시 비정상적인 프레임 씌우기와 물타기식 논리에 덕에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었으며, 여기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만 해도 아무 논리 없이 '천하의 찢어 죽일놈' , '세상 무식한 놈' 으로 밖에 취급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공식상에서는 아직도 이 당시 당시의 국가적 지적능력 거세 상태에 가까운 비정상적 행태에 대한 비판이 거의 없으며, 그나마 당시 이슈가 되었던 해외 교포가 비판적 시각에서 작성한 글이 기사화 된것이 전부이다. 오히려 당시 SNS등지에서 '피해 학생이 부모와 마지막으로 나눈 문자'라는 식으로 사건을 날조, 조작한 게시글로 추천수를 모으려는 소위 '따봉충'들이 들끓었는데 '이것이 만일 거짓이라도 피해자들을 잊지 않게 해준다' , '감동적이고 슬픈데 눈치없게 비판하려 든다'는 해괴한 논리로 아주 원대한 지지와 환영을 받았다. 다만 현 시점에 들어서는 시간이 많이 흐른 이상 이미 이것에 대한 지적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괜한 분란에 휘말리지 말고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만 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이 여파의 예시로 당시 사고와는 실질적으로 관련도 없던 부서 직원들 다수가 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되고 경찰 조사와 재판에 회부되어, 해고 처리까지 당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법적으로, 논리적으로 말도 안되는 보여주기식 처리 결과였기 때문에 유죄판결조차 나오지 않았으며 시간이 흐르고 복직되었다. 하지만 간부급 직원들까지 죄다 평직원으로 복귀되었으며 2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날벼락 맞은 셈이다. 당연히 제대로 기사화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 당사자들이나 그 주변 인물들이 아니고선 알 수 없는 일이다.

  • 2015년, 송유근 논문 표절 사건에서도 송유근의 학자적 역량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문은 모두 "천재를 시기하는 주류기득권 학자들의 질투" 식의 대중들의 감정적인 반발에 직면했다. 특히 송유근 사례의 경우는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으로 아직까지도 송유근의 사례를 '천재를 질투하는 주류 학계와 무지한 국민들' 운운하며 송유근을 옹호하는 송유근 빠들이 적지않게 보인다. 그러나, 송유근이 논문을 표절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 학계에서도 인증된 사실이다. 또한, 과학 지식 부족과 천재에 대한 왜곡된 환상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미적분을 푸는 것처럼 보이는 송유근의 유년시절 모습과, 이론물리학 같은 어려운 주제에 도전하겠다고 말하는 것' 으로 인해 주목을 받기 시작한 유년 시절부터 장성한 성인이 된 지금까지 대학교를 조기입학하고 석사 과정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각종 지원까지 받았으나 변변한 성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송유근을 천재라고 주장하는 것만 보면 알 수 있다.

  • 2016년, 12월 이후로 발생하는 태극기 시위 등에서 대중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지식인/전문가들에게 극단적인 적개심을 표출하는 현상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 2016년 사드에서 전자파가 나와 성주 참외밭이 망가진다는 주장이 김어준같은 유사언론인들을 시작으로추미애, 이재명, 손혜원, 표창원, 우상호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및 지자체장까지 합류하여 사드 전자파에 몸이 튀겨진다는 궤변으로 대중들을 선동하고 사드 배치를 반대 및 지연시켰다

  • 2020년 21대 총선 당시 김선교가 본인의 유튜브에서 농과대학서울대학교에서 가장 약한 과니 쓸모가 없다는 발언을 하는 모습. 오히려 현대 농업에는 유전학, 생물학, 육종학부터 사회/경제학, 식품가공학, 산업인력개발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가 적용된다. 정작 타인의 학벌을 갖고 인신공격을 하였던 그는 고졸이었다.

  • 2021년 뒤늦게 후발주자로 주식투자에 입문한 동학개미들이 앞뒤사정 싹 잘라먹고 연기금을 맹목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마치 이들이 개미들을 말려죽이기 위해 연기금이 매도를 하는것이며, 연기금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저평가 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2020년 초, 코로나 사태로 폭락한 시점 전후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우량주를 4~5개월 가량 순매수하였으며, 이들의 주가가 높아져 국내 주식의 비중을 줄일 필요가 생기자 그 물량을 최소 25% 이상의 수익률을 내며 분할매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칭 스마트 개미라는 이들 일부 개인투자자들은 이러한 사정에는 당연히 관심이 없고 본인들의 처참한 수익률을 탓할 대상을 연기금으로 잡고 연금공단 앞에서 시위를 하며 생떼를 쓰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연기금을 없애달라는 식의 비상식적인 청원을 올리고 있다.

  • 일제의 잔재를 뿌리뽑고 우리 을 복원하자는 명분으로 진행된 아까시나무 제거 작업도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원래는 민둥산을 빨리 회복시키기 위해 뿌리가 강하고 빨리 자라는 아까시나무를 심었던 것인데, 강한 생명력 덕분에 아까시나무가 산림의 주요 수종으로 자리잡자, 일제가 우리 산을 망치려 외래 식물을 심었다, 다른 나무를 몰아내어 주류를 차지했다는 오해를 부른 것이다. 기사 아까시나무가 기존 나무를 몰아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도 나무를 많이 베어내어 다른 나무가 없었던 것뿐이다. 거기다 이건 일제와 관련없이 녹화사업을 할때 심은 나무들도 많다. 애초에 아까시 나무는 숲 전문가의 견해에 따르면 아까시 나무가 해롭다는 것은 지극히 인간 위주의 관점일 뿐이라고 한다. 벌과 새의 관점에서는 밀원 식물[31]인 아까시나무가 오히려 생태적이라는 것이다. 링크 그리고 극양수인 아까시나무는 숲이 우거지면 숲이 다시 파괴되기 전 까진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다행히도 이러한 지적이 많이 알려져 현재 농가에서는 양봉 활성화 차원에서 다시 아까시나무를 심고 있다고 한다.

  • GMO 음모론. GMO 작물이 처음 시장에 출시된 이후 수십년간 계속 되고 있으나, GMO가 인간의 건강에 유의미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온적이 없다. 물론 대중들의 GMO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하여 GMO의 연구개발과 판매에 대해서 많은 안전장치들이 도입되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지만, 그렇게 혹독한 검증을 통과한 GMO에 대해서도 음모론은 계속되고 있다. 다만 GMO 자체엔 문제가 없어도 관련 글로벌 기업들의 종자 독점은 경계해야 하는 문제다.

  • 악의 핏줄 같은 미신이 끼어들 때가 많다. 전문가들은 비행청소년의 발생 원인을 환경에서 찾고, 여기에 중점을 두고 해결책을 짜면 대개는 다 해결이 된다.(대표적으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인 방법을 생각하는 대신, 인간이 해결 불가능한 미신을 부여하기 때문에 "어차피 저 사람 몸에는 악의 피가 흘러서 교화는 헛수고야." 라고 개선 시도 자체를 포기한다. 이로 인해 진작에 예방할 수 있었던 작은 비행조차 방치되어 큰 범죄까지 이어지고 만다. 다만 이는 과연 반지성주의라 불러도 될지 의문이다 일선 경찰들과 교도관, 심지어 범죄심리학자들조차 "혼내고 타일러서 교화가 가능한 사람과 절대 교화가 불가능한 인간은 결국 구분된다"는 입장을 밝히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 지구 온난화 허구설과 같이 기후 변화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부정하는 견해와 이론들 또한 반지성주의에 속한다. 이쪽은 개인 및 기업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관련 이론들을 곡해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악질적인 반지성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미국에선 담배와 폐질환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여러차례 발표된 적이 있다. (물론 추적해보면 이리저리 우회했지만 결국 연구비의 출처는 담배회사들이었다.) 또 미국의 화학자 클레어 패터슨이 납의 위험성에 대해 알리는 논문을 발표하고 납 사용 반대 운동을 전개하자 이에 맞선 여러 기업가들의 태도 또한 반지성주의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 신중론자 혹은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에 대한 반응. 이들은 지금까지 나온 의혹들을 통해서는 인과관계를 명확히 할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판단을 보류하고, 섵불리 확신하는 것을 저지한다. 그러나 반지성주의는 이를 회색분자라고 욕하거나 심지어 신중충이라고 매도한다. 특히 맞을 짓한 사람에 대한 비난 여론에서 '신중'을 외쳤다간 "감싸는 거냐?"소리를 꼭 듣는다. 이런 일로 인해 초래된 것이 세 모자 성폭행 조작 사건 등의 여러 마녀사냥 사건들.
슬프게도 신중론자들이 욕을 먹게 된 건, 실제로 불리한 입장에 선 사람들이 곤란해지면 '신중하라'라고 외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유명인의 논란'에 대해서는 신중론자들은 욕을 먹지만, 유독 페미니즘과 연관된 성추행 의혹에서는 신중론이 힘을 얻는다. 반대로, 페미니즘 유명인이 사건을 일으켰을 경우, 이번엔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 신중론이 힘을 얻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 일어나다보니 신중론이 불이익을 막기 위해 일어나는 불 끄기처럼 보이기 쉽고, 신중론 자체가 나쁜 것으로 보이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트페미여쭉메워로 대표되는 래디컬 페미니즘 진영이 각종 토론에서 보이는 태도는 반지성적이면서 동시에 극단적인 지성주의 내지는 엘리트주의에 가까운 모습을 동시에 드러내는 사례로 지적된다. 이들은 '공부하세요'라는 전매특허 멘트에서도 드러나듯이 지적 우월감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지성인에 대한 반감 역시 그다지 내비치지 않는 등 사상적으로 반지성주의에 대치되는 극단적 엘리트주의에 가까운 면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기본적으로 성평등이 아니라 남성혐오여성우월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에 현실과 통계,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고 기존의 학문이나 과학적 사실보다 젠더 문제를 우위에 놓고 판단하는 반지성적인 주장을 펼치곤 하며 그 때문에 오히려 반지성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 외에도 샌드라 하딩 등의 페미니스트실증주의에 기반한 과학적 방법을 전부 남성주의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이런 주장이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호응을 받는 등의 사례가 있었기도 하다.



  • 2020년 국민의 힘 최춘식 의원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 관련해서 백신 반대 운동을 공적인 자리에서 언급한 것. 백신을 접종하고 확진자와 비확진자, 미접종자 중 확진자와 비확진자의 개념[32]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백신 탓을 하는 모습

  • 2020년 총선 전 일베에 올라온 '한 조선족의 고백'이라는 글에서부터 시작된 차이나 게이트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글에 대한 어떠한 이성적인 검증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확대 재생산되며 무비판적 혹은 감성적으로 10대, 20대의 상당수가 이 글에 선동 되는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심지어 본인과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조선족이냐'라는 인종검증 까지 하는 믿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대안우파, 제노포비아적 성향의 네티즌들이 해당 주장을 최소한의 검증도 하지 않고 믿은채 전 인터넷적으로 해당 음모론을 퍼트리게 된 2020년 인터넷계의 최악의 음모론이자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이후로 중국에 대한 혐오감이 대폭 상승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순방 중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 ×××× 쪽팔려서 어떡하나?” 라는 실언을 했는데, '새끼' 나 '쪽팔려서' 같은 욕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바이든이라고 했는지 날리면이라고 했는지 친야 성향의 네티즌과 친여 성향의 네티즌끼리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33]

5.2. 미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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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보는 세계[해석]

영상 초반에 U로 시작하는 국가의 이름을 말하라고 하는데, 시작은 유고슬라비아(Yugoslavia), 그 다음은 유타, 심지어는 유토피아 얘기까지 나온다. 유고슬라비아는 유고 내전도 있고 2006년 정도까지는 실존했으니 인지도 면에서 그러려니 할 수 있으나, 유타 주를 나라로 알고 있는 사람이나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라는 용어를 국가로 설명하는 등, 생각보다 지식 결여가 심각한 상황임을 볼 수 있다. 한국인강원도무릉도원을 나라로 알고 있는 격이다. 실제로 U로 시작하는 나라는 미국(United States), 영국(United Kingdom), 아랍에미리트(UAE, United Arab Emirates), 우크라이나(Ukraine), 우루과이(Uruguay),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우간다(Uganda), 소련(USSR,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등 많다. 자기 나라와 최대 맹방이 U자로 시작하는 것도 모르는 셈이다. 또한 베트남 전쟁의 승자가 자기네 나라라고 하는 사람도 나오는데, 특정 관점을 고수하는 사람 입장에선 맞을 수도 있으나, 이 사람은 ‘그런 전쟁이 있었냐’ 는 반응이기에 그냥 무식한 것이다.

여러분 생각보다...미국 사람들은 훨씬 무식합니다.

올리버쌤


반지성주의가 우리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감정을 사람들에게 불러넣은 복음주의 신앙에서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반지성주의가 정치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평등을 향한 우리의 열정과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반지성주의가 교육계에서 막강한 세력이 된 것은 교육에 관한 우리의 신념이 복음주의에 입각한 평등주의였다는 사실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가능한 지성에 의한 수술이라고 할 만한 끈질기고 섬세한 방법으로 선의의 충동에 기생하는 반지성주의를 잘라내야 한다.

리처드 호프스태터, <미국의 반지성주의> 中


미국인 문서에서도 언급되듯이 미국은 반지성주의가 심각한 국가 중 하나이다. 애초에 반지성주의라는 용어가 널리 퍼진 것은 냉전시대 미국의 사회상, 그중에서도 매카시즘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한 것이다.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미국에선 공부 잘 하는 사람을 하찮게 본다"는 이야기는 이런 반지성주의 풍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을 미국에서 흔히 '너드(Nerd)'라고 비하하는데, 이런 인식 또한 반지성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인들의 지식인에 대한 반감은 반지성주의 이외에도 육체적으로 힘 잘 쓰는 사람을 더 우월하고 남성적이라고 보는 마초이즘은 물론, 미국의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하다.

근대 미국에서는 이용 가능한 토지가 사실상 무한대였던 이유에다가 유럽/아시아와 다르게 전통 기득권층(토지귀족, 관료화된 성직자 계급)이 없었던 사회적 요인은 미국 사회에 평등, 개인주의 같은 가치관을 심어줌과 동시에 반지성주의도 가져왔다. 흔히 말하는 카우보이 문화라고 하는 것이 이것인데, 미국 문화에서 영웅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정치/문화적 엘리트를 싫어하면서 적당히 투박하고 생존력이 좋으며 총 잘 쏘는 사람이다.[34] 선비승려, 이에 상응하는 지식인 계층의 사람이 영웅 역할로 등장하는 동아시아 문화권과는 상반되는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권에서는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이러한 타입의 영웅들을 협객이라고 부르는데 협(俠)의 가치를 전혀 없다고 보지는 않았지만 사회를 근본적으로 안정시키는 최고의 가치는 인(仁)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술한 근본주의 기반의 종교와도 연결된다.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미국의 기독교가 18세기에 대각성운동을 거치면서 복음주의로 변화함으로써 반지성주의의 기원이 되었다고 보았다. 이성의 영향으로 종교적인 열정이 식어버린 청교도신앙을 비판하며 나타난, 믿음=구원의 단순한 공식과 극단적인 배타성으로 어필한 복음주의는 알기 쉬웠고 빠져들기도 쉬웠기에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미국을 정복한 복음주의는 존재 자체가 성경에 대한 도전인 과학과 공존할 수 없었기에 1925년 버틀러 법과 같은 방식으로 공격에 나섰다. 21세기에도 창조설교과서에 기재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대중들 사이에선 진화론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지구온난화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것은 덤이다.

미국은 당장 내일이라도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할 수 있고, 세계를 감시 도청할 수도 있으며, 수십 년 전에 사람을 달로 보낸 나라이다. 그런 나라에서 반지성주의에 호응한 백신 반대 운동 기승으로 홍역 파동이 분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백신이 정부와 거대 제약 회사가 사람들 상대로 치는 사기라 진지하게 믿는 일이 미국에서는 전혀 드물지 않다.# #\# 이외에도 전혀 의학적 검증이 되지 않은 동종요법(homeopathy)같은 대체의학이나 천동설, 지구 평면설, 달 착륙 조작설 같은 것들이 기독교 근본주의에서 비롯됐거나 연관이 깊은 대표적인 반지성주의 현상들이다. 하층민, 저소득층같이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만이 아니라 교육수준이 높은 중산층 이상, 심지어 사회적 성공을 이룬 상위계층 사람들 중에도 이에 몰입하는 사람이 흔하다는 것이 미국 사회의 무서운 점이다. 이것이 미국의 실질적 국력에 비해 국가적 이미지를 망친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문화적 측면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반지성주의를 부채질 하고 있다. 미국의 교육보조금 제도는 재산세 중 집세/토지세가 해당 구역의 학교 운영비로 들어는 제도로 지역에 따라 운영비가 달라지는 해괴한 구조로 인해 교육의 평등을 방해하며, 로널드 레이건 시절 도입된 공교육의 실적제 및 실적에 따른 보조금 지급 제도는 미국의 공교육을 붕괴시켰다.

이렇다보니 지역마다 학교들의 수준 편차가 너무 커 교사와 교육의 평균 수준을 자연히 깎아먹는다. 오죽하면 일부 중남부 지역 및 전국의 빈민층 지역의 공교육은 구멍났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엉망이다. 정부가 학교에 투자하는 예산은 항상 필요한 수준보다 모자라며, 예산 집행 상태도 제대로 관리가 안 되어있는게 부지기수라고.

빈민 지역에는 Dropout school(패배자 학교)라고 불리는 수준 낮은 공립학교가 전체 학교 중 2% 정도인 2천여 곳에 달하며,(미국 공립학교의 숫자는 약 10만 개) 이런 학교들의 경우 졸업률이 50%가 될까말까 하다. 그 중 최악인 디트로이트는 고등학교 진학자의 졸업률이 24.9% 수준으로,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정도로 낮다. 한국에서 아무리 가난한 동네의 가장 꼴통 학군이라도 고등학교 졸업률이 이만큼 낮은 곳이 있나 생각해보자.

게다가 교사들이 충분한 봉급을 받지 못한다. 초봉은 미국 기준으로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지만 문제는 이후의 월급 인상률이 낮기 때문에 결혼도 하고 자식도 생길 때 즈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게다가 임금의 지역적 편차도 심각하다. 대한민국만 하더라도 교사들은 각 지방 교육청 소속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임금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여 지역에 따라서 월급 편차가 적은 편이라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문제는 미국은 연방제 국가라 임금에 대한 표준 가이드라인 같은 것도 없어서 그야말로 돈 많은 주와 돈 없는 주 간 교사 임금 차이가 매우 심각하게 벌어진다는 점이다. 돈 많아 보이는 캘리포니아주 마저도 지방정부의 재정 상황이 열악하여 뉴욕 주에 비해 교사 월급이 낮을 뿐더러 캘리포니아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교사 임금체불도 벌어진 적이 있을 정도이다. 그것도 한두 달 밀린 게 아니라 무려 8개월이나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서 임금체불을 하다가 결국 임금체불이 됐던 교사들에 대해 해고 통보[35]를 해야 했다.

이러다보니 교사가 딱히 좋은 직업 취급은 못 받는다.[36] 위에서 언급한대로 실적이 있어도 해당 주가 돈이 없으면 얄짤없이 잘려야하니 직업 안정성마저 떨어지는 지역도 상당수 있는 데다가 방학기간 동안 돈을 받지 못하는 곳도 적지 않기 때문에 교사들 중 16% 가량이 투잡을 뛴다는 연구결과도 나올 정도다. 미국인들 역시 이런 상황을 잘 알기에, 중산층 이상인 부모들은 비교적 괜찮은 공립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에 자식을 보내려고 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문제가 되는 공립학교들을 어떻게든 정상 궤도에 올려 놓으려고 애를 썼지만 주 정부들이 연방 정부의 간섭을 싫어하여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여간 사정이 이러니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자란 미국인은 적은 편이다. 선진국임에도 항상 PISA 성적이 평균 아래를 맴돌고 있다. 2016년에는 고등학교 졸업률 83%를 달성했다고 기사가 떴는데, 다른 선진국들에게는 황당할 정도로 저조한 수치임에도,[37] 미국에서는 이 정도가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교육을 담당하는 게 주 정부다보니 주마다 편차가 심한 것도 문제. 공립고 졸업률 기준으로 메인 주버몬트, 미네소타와 같은 곳은 90%에 가까울 정도로 졸업률이 높지만,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네바다 같은 곳은 50%대 수준으로 절반 가까이가 중등교육을 마치지 못한다.

대학 진학률은 고졸자의 65%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데 고등학교 졸업률이 저 모양이니 고등학교 입학자 중 대학 진학률은 40%도 간당간당한 수준이다. 사립대와 주립대가 기여하는 고등 대학교육 수준은 우리가 익히 알듯 발전되어 있다. 전체 노벨상 수상자 중 40%는 미국인이다. 어찌 보면 미국 교육은 엘리트 중심주의의 전형일지도. '1%의 엘리트가 나머지 99%를 먹여살린다'는 말도 이런 데서 나왔다. 문제라면 형편없는 기초교육에 비해 수준높은 고등교육수준으로 전세계 국가의 대다수 사람들이 찾아오니 자국민들에게 고등교육의 문턱은 더욱더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다보니 학교 운영비가 빵빵하게 들어오는 부촌에 거주하거나 사립학교를 다닐 재력이 있는 계층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으나, 현실은 당연히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딱 사회에서 겨우겨우 밥 벌어먹고 살 정도의 교육만 받는 수준이다. 이런 판국이니 이성과 지식에 기반한 토론 자체가 성립이 되기 어렵고, 어떠한 사건에 대해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지나치게 감정만을 앞세워 접근하게 된다[38]는 문제점을 가진다. 이는 미국의 뿌리깊은 인종차별 문제를 불러왔으며, 지식계층에 대한 적대심으로 이상하게 변질되어 대안 우파들의 부상과 엘리트에 대한 반감[39]으로 인해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하는가 하면[40], 자유민주주의 종주국이라 자부하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직접 선동한 우파 폭도들에게 국회의사당을 점거당하는 등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일어난 이라크 전쟁. 처음에는 석유쟁탈이나 군산복합체 배후설이 나돌았지만 밝혀진 진짜 원인은 후세인을 쫓아내려고 거짓 정보를 제공한 이라크 망명자들의 말을 검증도 하지 않고 철석같이 믿고 다른 정보들을 무시한 채 덜컥 개전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벌이던 와중에 전선을 늘리며 양면전쟁으로 돈은 돈대로 소비하여 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유동적 대처에 실패하여 세계 경제를 대침체에 빠트렸으며[41], 오히려 아프가니스탄의 주적인 탈레반이 도주하는 시간을 주어 결국 2021년에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탈레반이 접수하는 상황이 나와버렸다. 이라크 전쟁 이후에도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정작 토벌해야 할 극단적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다에시를 방관하여 이라크는 물론이고 중동전역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점령지에서도 이슬람 문화에 대한 무지로 민간인들의 반감을 사서 지역 개릴라들이 활개를 치거나 수용시설에서 미군의 무분별한 전쟁범죄를 저지르다 발각되어 엄청난 국제적 비난을 받았던 것 역시 반지성주의의 산물이다.

이와 같은 반지성주의적인 모습은 전쟁과 같은 중대사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당연히 결과도 좋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메카시즘 또한 미국에 대한 공산주의 진영의 적대감을 증폭시켜 남아메리카 국가들의 공산주의자들의 반미감정 및 공산주의 운동이 격앙되는가 하면 유고슬라비아처럼 공산주의 국가지만 어느정도 소련과 거리두던 나라들의 미국에 대한 견제가 심화되었다. 또한 공산주의자가 아님에도 공산권 국가 출신이란 이후로 박해했다가 실제로 공산주의로 전향해버리는 경우도 있었으며,[42] 거물 공산주의자들과 인연이 있던 사람들마저 무자비하게 숙청하면서 섭외만 할 수 있다면 해당국가의 든든한 후견인이나 정보통이 될 수 있던 인물들마저 미국에 등돌려 닉슨의 핑퐁외교 이전까지 중소분쟁중월전쟁으로 어지럽던 공산주의 진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돈은 돈대로 쓰면서 냉전을 질질 끌게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거기다 이런 광풍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이제는 아예 영어 이외의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을 보고 '지적인 척 구는 위선자'라고 같잖은 트집을 잡아 공격 소재로 쓰는 경우가 있다. 특히 선거철에 이 현상이 더욱 심해지는데, 미국 사회에 뿌리 깊게 퍼져 있는 영어 단일언어주의까지 겹쳐 외국어를 사용하는 후보에 대해 미국 유권자들은 썩 호의적이지 않다.[43] 일례로 2004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온 존 케리는 어린 시절 스위스에서 배운 프랑스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하는 편이었는데, 선거운동 기간 내내 공화당은 케리를 향해 서민을 모르는 귀족 프레임을 씌워 공격했다. 정작 케리는 자신의 프랑스어 실력에 대해 딱히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웃긴 것은 민주당 측에서도 이것이 못마땅했던지 2012년 미국 대선에서는 반대로 민주당이 공화당을 프랑스어 엘리트 프레임으로 공격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공화당 후보로 나온 밋 롬니가 젊은 시절 몰몬교 프랑스 선교를 위해 프랑스어를 배운 적이 있는 것을 약점 잡아서 롬니가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영상을 가지고 롬니가 서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엘리트라고 공격한 바 있다. 당연히 롬니도 스스로 프랑스어에 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렇다.

2000년 및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아들 부시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것을 이런 반지성주의 경향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44]

심지어 소아과 의사 "과학자들이 백신을 만드는 이유는 종교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험이다. 산부인과적 질병들은 사람들이 꿈에서 악마 혹은 마녀와 성관계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일부는 파충류인간 혹은 외계인에 의해 운영된다. 외계인의 DNA는 현재 메디컬 트리트먼트에 사용된다."라는 황당한 QAnon 음모론을 공개석상에서 진지하게 지껄이다가 망신을 당한 경우도 있을 만큼, 미국 사회의 반지성주의는 이제 계층을 가리지 않고 암덩어리처럼 마구잡이로 퍼져 가는 수준이다.

이런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2020년, 코로나19가 미국으로 확산되었을 때 심각한 폐해를 가져오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비정상적인 풍조가 미국 내의 문제에서 멈추지 않고 미국 특유의 막강한 정치적·문화적·사회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친미 성향의 다른 나라들까지 반지성주의에 점점 부화뇌동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한민국부터가 특히 2020년대 들면서부터 이성을 잃은 반지성주의의 침투를 알게 모르게 받고 있어 점점 국가적으로 우려해야 할 수준이 되었는데, 이는 국내에서 여전히 '미국 것', '미국적인 것'이라면 일단 가까이 하고 보려는[45] 사대주의적 근성이 아직도 은연중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5.3. 유럽[편집]


대중정치의 발원지인 만큼 유럽도 반지성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유럽은 대전쟁을 두번이나 하며 1억에 가까운 인구를 갈아먹고 싸그리 불타버렸기 때문에 그 영향이 상당히 억제된 편이긴 하나, 이 때문에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지성에 대한 신뢰와 긍정주의가 쇠락하면서 반지성주의에 노출되는 면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폐단이 극단화된 SJW의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지역감정에 빌붙는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반지성주의를 어필하는 편이다. 대표적인 경우로 이탈리아의 포퓰리스트 정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자신은 수십년 동안 소설책 한 번 읽은 적이 없다고 자랑하는 발언을 늘어놓았던 경우를 들 수 있다.

지역 감정에 기대는 포퓰리스트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나랏돈을 해먹건말건 자신이랑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자신에게 표를 던져줄 단순한 지지자들이 필요하다. 언론의 자유나 자정 능력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려니 돈을 마음대로 떼먹기 힘들어진다.

2020년, 유럽과 미국을 필두로 5G 전파나 기지국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확산시킨다는[46], 고등학생 수준의 과학 상식만 있어도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법한 해괴하고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한 가짜 뉴스가 돌기도 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5G 기지국에 대한 방화 사건이 몇 건 발생했으며, 영국 정부는 이러한 음모론에 대한 해명에 나섰다.

이 외에도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독일,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 코로나19가 확산중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고 이를 지적하는 사람을 폭행하거나 총으로 쏘는 등의 행태가 무수히 이어지고 있다.

유명 축구선수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누나는 동생의 코로나19 확진 후 "코로나는 사기극이다, 테스트를 믿지 않겠다."라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며 이런 행태를 대변하기도 했다. 호날두의 집안은 무리뉴가 패드립칠 정도로 극빈층이다.


5.4. 러시아[편집]


현대 러시아는 반지성주의의 대표주자 미국의 대척점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지성주의가 나날이 발전하는 국가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퍼졌을 때도 백신 접종률이 최하를 기록할 정도로 불신이 대단히 심각하고, 언론들도 러시아 정부가 하는 말을 무조건 진실로 믿으며 그에 따른 프로파간다도 서슴치 않게 저지른다. 최근에 발생한 러우전쟁도 푸틴의 그릇된 반지성주의의 사고방식과 일부를 묵인하는 러시아 국민들간의 일치가 일으킨 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6. 기타[편집]


대중 매체의 일부 창작물도 반지성주의의 사례로 꼽힌다. 완전히 정신이 나간 미친놈이거나 자존감이 지나쳐 콧대 높은 예술가/지식인 캐릭터가 노력-우정-승리주인공 일행에게 관광타는 경우.[47]

반대로 킹덤과 같이 반지성주의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작품도 있다.

사례들을 보면 이런 측면에서 모든 종류의 극단주의도 반지성주의적인 측면이 나타난다. 극단주의 사상에 심취한 대중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어긋나는 부분을 지적하는 지식인들에 대해서 적개심을 표출하며, 말살하려고 든다. 정치적 극단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고 음모론에 열광하든가, 종교극단주의 세력들이 모든 종류의 과학기술을 적대하는 것은 종종 보이는 현상이다.

서양중세가 반지성주의에 찌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사실상 중세의 시대상에 대한 편견 및 고정관념이다. 플랫 에러 같은 경우처럼 이런 주장에는 오히려 사실과는 정반대인 거짓 주장들이 적지 않다. 중세의 시대상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중세 문서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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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크메르 루주가 단순히 농업국가를 건설하기위해 그런건 아니고, 폴 포트 정권 당시 부패한 기득권세력과 자신들을 탄압한 사람들에 대한 복수로 풀이하는게 옳을 것이다. 물론 그 부패한 기득권 세력을 배운사람, 즉 엘리트로 단순히 일반화하여 규정한게 문제지만[2] 물론 엘리트주의가 무조건 반지성주의는 아니다.[3] 여담이지만, 응게마는 반지성주의 정책 외에도 이런저런 악행들을 저지른 나머지 당대에 붙은 별명이 무려 '아프리카의 폴 포트'였다.[4] 대표적으로 주체농법이 여기에 해당된다. 북한의 농업 특성상 지력소모가 심하고 비에 취약한 옥수수보단 감자나 고구마, 콩 같은 작물들이 더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수령의 정책은 오류가 없어야 함으로 비효율적이고 노동력만 잡아먹는 구시대적 농법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5] 실제로 근본주의 교단의 대표격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은 에큐메니컬 교회들과 그 어떤 교류도 금지하고 있고, 진보교단의 세례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6] 사실 뭐 박사학위를 땄다고 교적에서 파인다거나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례는 없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소위 신학적 자유주의에의 경도를 걱정하는 수준. 다만 공부 많이하는 사람은 믿음이 약하다고 대놓고 말하는 경우는 종종 눈에 띈다. 적지 않은 기독교인 지식인들이 한국 기독교근본주의적 태도를 문제삼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7] 물론 당대 학문이란 게 신학을 중심으로, 그와 충돌할 일이 없는 법학의학, 예술 같은 것들이었긴 하다.[8] 중세대학이 생기기 전에 고등교육을 담당하던 곳도 신학교 같은 교회와 관련된 교육시설들이었다.[9] 그러나 이는 오해인게 현실에서 척, 마일, 미터가 모두 길이를 재는 단위이듯이 상대성 이론에선 시간과 공간 단위를 동일하게 취급하여 c = 1 = '곱셈의 항등원'으로 놓는다. 다만 일상에서는 편의를 위해 시간의 길이를 잴 때 299 792 458 미터 = 1 초로 환산하다 보니 광속이 299 792 458 미터매초 라는 이상한 숫자가 나와 이런 오해가 생길 수 있다.[10] 사실 재현/대표의 문제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따르는 사상가들의 주된 화두이기도 하다.[11] 이것이 비판이론가들이 말하는 근대성의 역설이다. 그에 따르면 근대는 이성적인 형식과 제도를 통해 비이성적인 폭력과 지배를 실현한다.[12] 당장 이 문단을 쓰는 시점에서 반지성주의 문서 역시 푸코를 들뢰즈나 데리다와 도매금으로 언급하고 있다.[13] 특히 그가 권력을 비판하고 근대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학자라는 점에서 그렇다.[14] 사실 헤겔의 경우에는 이성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보편자를 무규정자로 놓는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이지만... 비판이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전자의 의미로도 이 표현을 자주 인용한다[15] 일반적으로 정식으로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단에 올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사회과학적 방법과 원칙에 따라 역사를 연구하고 서로 검증비판하는 사학자들을 일컽는다. [16] 이 현상은 지금도 한국의 국가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한국경제는 저임금에 의존하는 단순제조업에서, 1990~2000년대를 거치면서 고부부가치 상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첨단제조업 중심으로 변화했고 이제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혁신기술(ex. 인공지능, 인지과학 등)이 중요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런 분야는 결국 탄탄한 기초과학과 인문학이 필요한데, 지난 수십년간 다들 돈 안된다고 외면해서 많은 곤란이 있다.[17] 어문계열에서도 다들 돈되는 영어와 중국어쪽으로만 몰려가서 외교, 통상,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외 어학전공자들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아프리카 배치될까봐 외교관들이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꺼린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이고, 북아프리카에 배치된 국정원 요원이 아랍어를 못해서 통역 데리고 다니다가 역공작에 걸려서 망신당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그외에 번역자가 부족해서 유럽쪽 자료가 제대로 소개가 안된다던지, 한글자동번역조차 국내기업보다 구글이 더 뛰어나다던지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18] 이순재는 서울대 철학과 출신인데, 당시에 철학 전공자들은 독일어 원서를 읽어야 했기 때문에 이순재 옹도 독일어를 유창하게 한다. 꽃보다 할배에서 현지인과 독일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즉, 철학과라는 학과 자체가 결코 만만한 학과가 아니었다.[19] 대한민국의 문해율은 OECD에서 중위권이다. 다만 한국의 경우 젊은층과 중장년층의 문해율 격차가 매우 큰데, 젊은층의 문해율은 최상위권이나 중장년층으로 갈수록 급격히 낮아진다.[20] 이 경우는 단순히 대중적이거나 감성만 있는 게 문제가 아니다. 대중들의 고민을 콕 집어 풀어내어 소통하는 것은 좋으나, 블로그에나 적어야 할 잡설을 늘어 놓는 경우도 보인다.[21] 이것은 영화,드라마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5~15분 내외로 줄거리를 요약해주는 소위 결말 포함 유튜버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아예 요약영상만 보고선 영화봤다고 여기는 것이다.[22] 물론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저출산 시대라지만 아직까지는 인구밀도 높은 한국의 교실환경에서 이론위주 수업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또한 한국의 입시위주 교육은 서구권 선진국 대비 그나마 유지되는 계층이동성과도 깊은 연관이 있어서 (출세목적교육이 심하다는 소리는 역으로 교육을 통해 출세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육열이 한국에 비해 낮은 서구권 선진국은 이미 계층고착화에 체념하여 그것이 가능한 측면도 있다.) 함부로 건드렸다간 계층고착화를 심화시킬 여지가 있다. 그리고 기초과학이나 순수학문 측에서는 오히려 이론을 천대하고 (그것이 출세 목적이든 사회생활에 필요한 요소이든) 쓸모있는 것만 찾는, 그리고 실용적인 수업을 위한답시고 교육과정을 쉽게 축소하려 드는 분위기가 반지성주의를 불러일으켰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반지성주의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된 계기를 제공한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는 이 문단의 내용과는 정반대로, 평등주의와 실용주의의 부작용에서 반지성주의의 원인을 찾고 전인교육 강조와 지식 교육 폄하를 반지성주의의 대표 사례로 지목한다.[23] 이 경우 자신은 취업준비생이나 프리터 신세인데, 같은 나이에 저런 사람들이 이미 어엿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것을 질투해서 더 심하게 부심을 부리기도 한다.[24] 정작 디워빠들이 자국시장에만 안주하는 낡고 무능한 인간들이라고 폄하하던 충무로가 만들어낸 영화, 드라마 콘텐츠들은 2010년대 들어서 세계적인 대성공을 거두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단순히 상업적으로 잘팔리는 수준을 넘어서 봉준호, 박찬욱처럼 예술성까지 높게 평가받고 있는데 반해서 심형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25] 심지어는 1990년대에는 문성근이 진행하던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대놓고 이런 신비주의, 음모론을 말초적으로 다루면서 시청률을 끌어올리곤 했다. 말도 안되는 유사과학, 반과학적인 내용들이 대놓고 지상파 인기프로그램에서 송출되는데 아무도 이것을 지적하는 사람도 없었고, 걸러내는 시스템도 없었다. 당시 전체적인 사회분위기가 그랬다.[26] 그 후보가 본인이 고졸 나왔고, 먹물을 쓰는 사람보다 본인이 우월하다는 발언을 많이 했다.[27] 농업은 단순히 힘만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학적인 원리도 직간접적으로 이용된다.[28] 박태호 현 서울과학기술대 철학 교수. 이진경은 과거군사정권 시절 사용하던 가명으로 1987년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약칭 사사방)으로 사구체 논쟁에 불을 지른 인물이기도 하다. 1990년 일명 "노동계급" 사건으로 안기부에 체포돼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생활을 하였다. 출소 뒤에 서울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3년부터 서울과기대 교수로 재직 중.[29] 무슨 삿된 기운이니 깨달음의 경지니 영혼 치료니 우주초염력이니 자연요법이니 하는 단어들이 목차에서부터 당당하게 난무하고 있다. 가만보면 비과학적인 내용들도 문제지만 이나 부항 같은 기존의 대체의학 범주의 주제에서까지 아주 충실하게(?) 십중팔구 뻘소리만 늘어놓는다. 여기에다 전문용어의 자의적 정의는 덤.[30] 해당 시리즈물의 전체 내용을 보려면 이 사이트의 칼럼란으로 가면 된다. 블로그에는 일부만 업로드되어 있다.[31] 蜜源植物, 을 빨아 오는 원천이 되는 식물. 꽃이 많이 피고 꿀이 많은 식물을 뜻한다. 아까시나무 외에도 메밀, 꿀풀, 자운영 등이 있다.[32] 수능 사회문화,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 7급 공개경쟁채용시험PSAT에도 나오는 것이 전체 집단 중 일부 집단의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다.[33] "진짜 전문가한테 판독을 맡겨도 과학적으로 오차가 적은 답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몇몇 정치인들과 네티즌들은 자신의 직관감성을 바탕으로 '바이든'이나 '날리면'이라고 단정지었다"고 하지만# 전문가랍시고 들고 나온 사람 중에는 배명진 같은 전문가라고는 도저히 불러줄 수 없는 사람도 전문가라고 포함되어 있었던 데다# '바이든'을 말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과정에서 변명이라고 나온 답변이라는 것들도 빈말로라도 믿어주기 어려울 정도로 터무니없는 것들 투성이였기 때문에 그런 와중에도 '답을 내리기 어렵다'는 말만 하는 사람들에 대해 전문가라는 것들이 권력 눈치 보느라고(쉽게 말해 곡학아세) 모르는 척 발 빼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야 정치인 및 그 지지자들의 진영논리만이 아니라 지식을 독점한 전문가 계층들에 대해 으레 지적되는 곡학아세 경향에 대한 의심도 해당 논란에도 한몫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이든'이 아니라고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한들 '날리면'이라고 들어야만 할 이유도 부족한 데다, 처음 '바이든'이라고 자막을 붙였던 방송사에 대해서 "허위사실 유포했으니 명예훼손이고 우리는 이거 고발하겠다"고 의원들이 단체로 방송사까지 찾아가서 항의하는 소동을 벌인 현 여당측의 미숙함 내지 교만하다고까지 해석될 수 있는 대처와 반응에도 원인이 있다. 그걸 단순히 반지성주의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해석] 멕시코: 빨래하는 나라, 알래스카, 미국령 섬들: 여기도 미국!!, 남아메리카: 아마도 여기서 커피 만들걸?, 그린란드: 산타!!, 러시아 or 중국: 공산주의자, 중동: 악마같은 놈들, 폭탄은 여기로, 유럽: 계집년들, 호주: 캥거루, 동남아시아: 생필품 만드는 곳, 북한: 더 악마같은 놈들.(그런데 정작 지도에는 북한이 아니라 남한만이 존재한다.), 일본: 티비카메라, 남극: 추움!, 캐나다: 사람이 살지 않음, 카리브:유람선은 여기로, 아프리카: (지도에 없음)[34] 이런 미국식 영웅과 대척점에 있는 적 세력은, 대개 지혜와 과학력, 자본 등으로 무장한 매드 사이언티스트 류의 악당인 경우가 많다. 다만 과학자지식인 히어로가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이런 경우에도 과학자 자신이 몸소 악과 맞서 싸우는 경우가 많지, 주변인이나 정치 세력을 이용해서 간접적으로만 맞서싸우는 경우는 적다. 토니 스타크고든 프리맨 등이 대표적인 예시. 여기에는 캐릭터에게 감정을 이입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도 있겠으나, 이런 식의 살신성인을 미국 문화에서 높이 사고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본다는 점도 큰 이유로 작용한다.[35] 미국에서는 임금체불이 6개월이 넘어가면 정리해고를 해야 한다. 대신에 정리해고 후 실업수당을 청구할 때 못 받았던 임금을 실업수당 형태로 받을 수 있고, 추후 사정이 나아지면 해고자를 우선으로 재채용하도록 되어 있다.[36] 그나마 사립학교 교사라면 해당 학교 학부모들의 재력이 기준이 되므로 공립보다는 나은 편이다.[37] 학생 30명이 있는 교실에서 6명이 졸업을 못하는 것이다. 선진국들 기준으로는 심각하게 낮은 수치.[38] 링크로 걸린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의 주범 티모시 맥베이는 웨이코 참사에서 연방정부가 폭군처럼 굴었기에 거기에 대항한 거라고 자신이 무고한 아이들과 사람들을 살해한 흉악범죄를 정당화했는데, 애초에 웨이코 참사는 주범인 데이비드 코레시가 이끄는 다윗파 광신도들이 먼저 자초한 짓인데다 데이비드 코레시 본인 역시 교단 내 반대파를 직접 살해한 데다 미성년자를 성착취하기까지 한 인간 말종이었기에 과정에 문제가 좀 있었을 지언정 연방정부가 진압한 것은 흉악 범죄자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투입이긴 했다. 그런데 티모시 맥베이는 이런 건 전혀 따지지 않고 아무튼 연방정부가 미국인의 권리를 침해했다!면서 데이비드 코레시라는 범죄자의 편을 들어 범죄자 때려잡으려고 한 연방정부는 미국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악의 제국이라는 무식한 소리를 하며 무고한 사람들이나 떼거지로 살해한 것. 그리고 유나바머는 자기랑 같은 테러리스트 쓰레기라서 편들어 주겠다는 심보였는지 이런 말같지도 않은 헛소리나 지껄인 놈을 두고 인종차별도 안 하고 지적인 사람이었다는 개소리를 했다 [39] 물론 이걸 단순히 가방끈 짧은 사람들이 배운 사람들을 '먹물'이라 비하하거나 콤플렉스로 치부하기는 뭐한게, 미국은 낮은 고등교육 수료율로 인해 한국 이상으로 학벌이 무지막지한 사회이기도 하다. 리처드 닉슨워터게이트라는 무리수를 일으킨 이유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학비 때문에 휘티어 칼리지를 나온지라 하버드, 예일 등 명문대를 나온 행정관료들에게 개무시를 당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즉 사회 전반적으로 상류층, 엘리트들의 선민의식에 이미 질렸기 때문이기도 하다.[40] 트럼프그렛 문서를 참조해 보면 알겠지만 정작 그 트럼프부터가 무지막지한 금수저 출신 엘리트라는 것은 함정.[41] 위에서 언급한 두 전쟁 + 시리아 내전에 들어간 돈만 무려 10조 달러, 원하로 환산하면 약 1경 1100조원이다.[42] 대표적으로 중국 미사일 기술의 아버지이자 중국 핵무기 개발자인 첸쉐썬[43] 그나마 예외가 있다면 미국 내에서는 제2외국어 취급받는 스페인어 정도가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은 인식이다. 이들마저 적으로 돌렸다간 히스패닉의 표를 포기하는 자살 행위에 가까우므로.[44] 2000년 선거에서 아들 부시와 대결했던 앨 고어하버드 대학교 졸업 학력에 무엇을 물어봐도 막힘없이 자신의 식견을 술술 풀어낼 정도로 전형적인 엘리트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다. 입만 열면 말실수로 사람들을 웃기던 아들 부시와는 차원이 다르다.[45] 비록 이성적으로는 미국적인 것이 무조건 긍정적인 것은 아님을 알지라도 그렇다.[46]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광자질량이 없는 입자이므로 전자 같은 미시세계의 입자라면 몰라도 바이러스나 세균 같이 충분히 큰 입자가 거기에 실려 전파될 리 만무하다. 아예 꿈쩍도 안 한다. 그리고 현재 5G는 LTE랑 같이 사용되는 방식을 이용한다.[47] 물론 자신의 높은 지적수준만 믿고 오만하게 구는 선민사상에 찌든 악역이나 과학을 안좋은 쪽으로 이용하는 소위 매드 사이언티스트 캐릭터도 해석에 따라서는 반지성주의의 일종으로 볼수 있다. 애초에 과학기술과 지식은 어디까지나 인간 전체의 행복과 사회안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