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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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기아
KIA CORPORATION

파일:KIA 2021.png


설립일
1944년 12월 11일 (79주년)[1]
기업규모
대기업
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모기업
현대자동차그룹
업종명
승용차 및 기타 여객용 자동차 제조업
대표자
송호성, 최준영
상장여부
상장기업
상장시장
유가증권시장 (1973년 ~ 현재)
편입지수
코스피
KRX100
KOSPI200
종목코드
000270
시가총액
36조 4,827억 원[2]
자본금
연결: 2조 1,393억 1,700만원(2019년 기준)
별도: 2조 1,393억 1,700만원(2019년 기준)
매출액
연결: 58조 1,459억 5,900만원(2019년 기준)
별도: 33조 8,577억 8,100만원(2019년 기준)
영업이익
연결: 2조 96억 8,000만원(2019년 기준)
별도: 1조 4,790억 4,800만원(2019년 기준)
순이익
연결: 1조 8,266억 5,900만원(2019년 기준)
별도: 1조 5,829억 1,000만원(2019년 기준)
자산총액
연결: 55조 3,447억 9,800만원(2019년 기준)
별도: 38조 8,985억 7,600만원(2019년 기준)
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릉로 12 (양재동)
웹사이트
한국어 홈페이지


1. 개요
2. 역사
2.1. 역대 로고
2.2. 기아그룹 부도 이전
2.3. 1997년 부도
2.4.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된 이후
3. 지배구조
4. 특징
4.1. 시장 점유율
4.2. 기술
4.3. 유럽 공략
4.4. 디자인 경영
5. 사명(社名)
6. 역대 슬로건
6.1. 한국
6.2. 미국
6.3. 캐나다
6.4. 기타 국가
7. 웰컴사운드, 효과음
8. 공장
9. 문제점
10. 생산 차종
10.1. 세단, 해치백, 왜건
10.2. SUV
10.3. MPV
10.4. 박스카
10.5. 버스
10.6. 트럭
10.8. 군용차
10.9. 베이퍼웨어
11. GT와 GT-Line
12. 노동조합
13. 주식, 채권
14. 역대 임원
15. 지역색
16. 광고
17. 직장생활
18. 스폰서십
19. 관련 문서
20. 관련 문헌
21.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kialineup2020.jpg

起亞 / Kia Coporation

Movement that inspires

영감을 주는 움직임


대한민국현대자동차그룹 소속 모빌리티 기업.


2. 역사[편집]



2.1. 역대 로고[편집]


파일:기아_로고(1953-1964).png
파일:기아_로고(1964-1986).png
파일:기아굴뚝CI.jpg
파일:KIA MOTORS_Logo.png
파일:기아 로고(2021~).png
1953~1964
1964~1986[3]
1986~1994
1994~2021[4]
2021~

1953년부터 쓰인 로고는 기아산업으로 사명을 바꾼 후 1년 뒤에 쓰인 최초의 로고로, 당시 생산과 제1가공계장 오항선 기장이 제작했다. 이 로고는 설계용 삼각자의 단면을 바탕으로 하여 기계공업을 상징하는 톱니바퀴와 화학공업을 상징하는 벤젠 고리를 그려넣고, 그 내원 속의 6각형 고리 안에 사명의 영자표기인 'KIA'를 넣었다. 해당 로고는 부산공장에서 '3000리호' 생산 당시 자전거 헤드에 부착했다.

1964년 5월부터 쓰인 로고는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사내 공모를 거쳐 만들어진 것인데, 이는 1962년 이후 3륜 화물차와 2륜 오토바이까지 생산함에 따라 1기 로고가 자동차공업을 상징하는 바퀴가 없고 너무 복잡하다는 의견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 로고는 창안 당시 검은색 4각 바탕에 황금색으로 '기아'의 'ㄱ'과 'ㅇ'자를 결합해서 바퀴를 그려낸 건데, 여기서 'ㄱ'은 사명과 기계공업의 '기(起/機)'자를, 'ㅇ'은 사명의 '아(亞)'자와 자동차 바퀴를 각각 의미하며, 아울러 이 두 글자의 결합은 3륜차 및 오토바이 앞바퀴, 포크를 의미한다.

1986년 11월 1일 개정된 로고는 새로이 도입한 워드 심벌 시스템에 입각해 제정한 코퍼리트 심벌로, 이 로고는 영문표기 Kia 윗부분에 '기아의 깃발'을 상징하는 테두리 선(보더 라인)이 세 굽이 물결로 형성돼 있다. 이 로고의 의미는 믿음과 우의를 함께 나누며 협동과 기술을 바탕으로 사회의 발전에 일역을 담당하는 신뢰와 믿음의 기아상, 곧 신용과 협동의 의미를 표상하며,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을 통해 자동차공업을 선도하고 미래를 이끌어갈 미래지향적인 기업이념의 표현, 곧 노력과 창조의 의미를 상징하고, 또 자동차공업의 기수로서 세계속의 종합 자동차 메이커로 웅비하여 밝고 풍요로운 미래를 향한 꿈과 전진의 기상을 나타내는 '웅비하는 기수'를 의미한다. 로고 컬러는 기아 블루(Cyan 100% + Magenta 50%) 및 기아 라이트블루(Cyan 100%)를 사용한다.[5]

1994년 1월 1일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둥근 타원형 바탕에 KIA의 영자 대문자를 도안화한 로고가 도입되었다. 이 로고는 21세기 세계 10대 자동차 회사를 향한 기아의 비전을 제시하고 세피아와 스포티지 등 독자모델의 본격적인 세계시장 진출을 계기로 '세계 속의 기아'로 도약을 추구하며 창립 50주년을 맞아 전 임직원의 사고와 행동을 일체화하여 국제 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가는 의미를 지닌다.[6]

지구를 상징하는 유연하고 세련된 타원은 미래지향, 첨단성 및 회사와 고객, 종업원과 종업원 사이의 친밀하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상징하고 타원 속 알파벳 'KIA'의 A자 가로획을 생략하여 안정되고 중후한 디자인으로 기아의 역동성과 세계를 달리는 기아자동차의 무한한 잠재력을 나타냈다. 또한 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발음으로 친근감을 느낄 수 있으며, 로고 컬러는 태양의 정열을 상징하는 적색으로 생동감있고 진취적으로 행동하는 기아의 도약의지를 나타냈다.

파일:Kia-alternate.logo.jpg
2000년에 출시된 카렌스부터 내수용[7]에 한해 차량 외부에 위와 같은 원형의 '밀레니엄 로고'[8]를 붙였지만, 인지도가 낮고 BMW의 로고와 비슷한지라 2002년 쏘렌토부터 은색 테두리에 검은색 원으로 바뀌었다. "어차피 현대나 기아나 타원 모양의 로고이니 통일감 있게 예전 그대로 하자" 해서 2004년 2세대 스포티지가 출시될 때 지금의 타원형 로고로 다시 돌아왔다. 색상도 이전보다 더 강렬해졌고, KIA 글짜 사이의 거리와 타원의 너비도 짧아졌다.[9][10] 은근히 옛날 금호아시아나그룹 로고와 닮았으며, 지금도 어디선가 저 금호스러운 문양이 들어간 타원형 비공식 로고를 구해서 달고 다니는 사람이 종종 있다.

2010년부터는 휠캡에 들어가는 로고에 타원이 빠져 있다. 2012년 K9가 출시되면서 타원 테두리가 살짝 바뀌었고, KIA 로고가 평면화되었다.



KN 아니면 КИ
2021년 1월 7일,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새 로고가 정식으로 공개되었다. 이미 1월 1일 양재동 사옥의 로고가 변경중인 것이 확인되었으며, 새로운 슬로건인 Movement that inspires(영감을 주는 움직임)도 같이 공개되었다. 해당 영상을 위해 총 303대의 드론이 사용되었으며, 이는 기네스북에 폭죽과 동시에 발사된 가장 많은 무인항공기 분야 세계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새 로고는 새로운 브랜드 방향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균형, 리듬, 상승의 3가지 디자인 컨셉으로 개발되었다. 이미지 컬러도 1994년부터 써오던 빨간색을 버리고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기존의 컨셉카 버전의 로고보다 심미학적으로 훨씬 안정적으로 보이며 보기 좋다는 의견들도 있으나, 여전히 KIN이나 즐 같이 보인다는 부정적인 의견들도 있다. 또한 키릴 문자가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키'(КИ)로 읽힐 수도 있다.
2020년 2월 박한우 사장은 '2020 올해의 차' 행사에서 10월 즈음 새로운 로고를 정식으로 발표한다고 밝혔다. 늦어도 신형 기아 K8스포티지 부터 모두 새 로고를 달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 2021년 1월 6일 저녁 7시,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새 로고를 정식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이미 1월 1일 양재동 사옥의 로고가 변경중인것이 확인되었다. # 네이밍 스폰서 중인 DWG KIA의 로고도 새 로고 변경 후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
이후 2021년 1월 6일 오후 7시, 라이브 방송을 통해 기아자동차의 새 로고와 새로운 슬로건이 완전히 공개되었다. 로고는 이전에 컨셉카에서 여러 번 나왔던 그 기아자동차 로고이다.

2.2. 기아그룹 부도 이전[편집]


1944년 12월 11일에 학산 김철호에 의해 '경성정공'으로 설립되어[11] 초기에 자전거 부품을 만들었으나, 1952년 3월 국내 최초의 자전거 '3000리호'를 출시(다들 아시는 그 삼천리자전거의 기원이 된다.)[12]하고 1952년 부산공장 신설 후 기아산업(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13]

1957년 시흥공장 설립 후 1961년에 일본 혼다와 합작해 2륜 오토바이를 처음 생산했고, 1962년 도요공업의 모델을 들여와 356cc짜리 3륜 화물차 K-360을 생산하면서 '기아마스타' 모델을 쓰며 자동차 사업에도 손을 뻗었다.[14] 1970년 4륜 화물차 복서 및 타이탄을 출시했다. 1973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리에 종합자동차공장을 세우고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으나, 그해 김철호 사장이 숨지자 장남 김상문이 후계자로 나서며 1974년에 국산 FR 승용차 브리사를 제작하였다.[15] 브리사는 당시 국산 승용차 시장 1위를 차지하는 최강자의 위치에 있었을 정도로 막강[16]했던 차량이다.

1975년에는 이륜자동차 부문을 떼내 '기아기연'으로 출범시켰고, 1976년에는 동국제강으로부터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했다. 1981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산업합리화)로 인해 정부로부터 '중소형화물차 및 버스 전문생산업체'로 지정받아 승용차 생산이 금지되면서 경영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전문경영인 체제가 들어선 이후[17][18] 마쓰다의 소형승합차 봉고를 라이선스 생산[19]해서 대성공을 이루는 한편, 1982년부터 원가절감운동 'RCD-22' 작전을 밀어붙여 경영을 정상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위기를 넘겼을 뿐이지 자동차공업 통합조치의 여파를 모두 털어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실상 합리화 조치의 최대 피해자[20]라 할 수 있다.[21]

1983년 일본 마쓰다와 이토추상사의 지분참여를 받아들인 후, 이듬해 중앙기술연구소를 열었다. 1986년에 미국 포드와도 자본 제휴를 맺으며 오대양 육대주를 휘날리는 깃발(또는 물결무늬)을 형상화한 로고로 변경하고 여의도 거산빌딩을 인수하여 건물 이름을 기아빌딩으로 바꿔 입주하였다.[22] 1987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풀리고 프라이드, 콩코드로 다시 승용차 시장에 진출한 뒤 1990년 아산만공장(현 화성공장)을 준공시켜 승용차 라인을 그리로 이전하고 아산만출하사무소(현 화성출하사무소)를 개소했다.

같은 해 필리핀 정부로부터 처음으로 국민차개발 참여업체로 지정받은 뒤 1992년 일본에 첫 현지법인을 세웠으며, 최초의 독자모델 세피아를 출시하고 여의도 2번사옥[23]을 지으면서 확실하게 그룹을 키워갔다.

1993년 아산만공장 내에 종합주행시험장을 완공한 후 1994년 1월부터 지금과 같은 로고로 변경했다. 바뀐 이유는 그 전 로고의 모양이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환경오염연상하게 해서 바꿨다는 것이 정설이다. 어쨌든 같은 해 세피아와 스포티지를 처음 독자적으로 수출하고 같은 해 12월에 경기도 화성군[24] 향남면[25] 평리에 발안지점을 개점했다. 1995년 독일에 첫 해외 판매법인을 세우고 1996년에는 공식 홈페이지까지 개설하였다. (계열사 아시아자동차는 글자만 달랐다.)

1997년 7월 경영악화로 부도를 맞은 뒤 1998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같은 해 6월 국제 공개 경쟁입찰로 처리방침이 확정됨에 따라 1998년 10월 현대자동차에 낙찰된다.[26] 1999년 아시아자동차와 함께 현대자동차에 인수되어 현대그룹에 편입되었고, 6월에는 기아자동차판매, 아시아자동차, 기아대전판매, 아시아자동차판매 4개사를 통합한 뒤 2000년 2월 회사정리절차가 종결됐다.

2.3. 1997년 부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기아그룹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4.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된 이후[편집]


2000년 8월 현대그룹 왕자의 난 이후 정몽구현대그룹에서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9개 계열사를 들고 나와 현대자동차그룹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2000년에 12월에 현대자동차그룹이 양재동 사옥을 지으면서 기아자동차의 조직이 모두 양재동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여의도 사옥을 현대카드에게 넘기고 현대자동차와 같은 건물을 쓰게 되었다.[27]

2000년 11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 기아센터를 개관하였다.[28]

2002년 중국 둥펑기차 및 위에다 그룹과 합작해 둥펑위에다기아를 세웠고, 2005년 현대자동차와 함께 FIFA 공식 파트너로 지정된 뒤 2007년 슬로바키아 질라나 시에 현지공장을 세웠으며, 20대 위주 사이트 '펀키아'를 열었다.

2010년 미국 조지아 주 웨스트포인트 시에 공장을 세웠고, 2011년에는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여 정통성을 강화한 기념으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이름이 빠지게 되었다.

모터스포츠 쪽에선 1995년에 WRC 호주 랠리 비개조 클래스(NP2, NP3)에 세피아로 출전한 5대, 8대의 차량중 1등을 한 기록이 있는 회사다.(이때 박정룡 선수가 NP2 클래스에 참가했다.)[29] 당시 전체 순위는 각각 36, 28위였으며, 이날 경기 우승은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3기가 차지했다. 또한 해외 지사의 출격이긴 하지만 다카르 랠리 완주 경험도 있다.[30][31] K5를 시점으로 차명을 통일하기 위해 현대처럼 독자적인 차명 체계를 잡아가는데 하필이면 그 앞자가 놀랍게도 'K'이다. 그 첫 대상은 K7이다. K7을 시작으로 파워트레인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독자적으로 차량 개발 체계를 구축하려는듯.[32] 동급 차종의 경우 한세대에서 반세대 전의 현대자동차 플랫폼을 가져와서 쓰던 것을 아예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쓸 계획이라고 한다. 옵션 장난질 한다며 현대를 닮아간다고 같이 욕을 먹고 있지만 그래도 기술 개발에 한해서만은 현대자동차 이상으로 믿을 수 있는, 앞날이 기대되는 회사이다. 다만 현대차와 기아차의 연구개발 인력은 구분되어 있지 않으므로 당연히 플랫폼을 포함한 기술은 모두 현대자동차와 공유한다. 사실 개발 시점에 따라 새로운 플랫폼이 기아차에 가장 먼저 적용되는 경우도 있으니 기술 논쟁은 사실상 무의미. 실제로 기아자동차 합병 이후 기아자동차 소속 연구개발 인력들은 모두 현대자동차로 옮겨갔고, 기아자동차 소하리 연구소는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로 통합되었다. 현재도 현대기아차의 연구개발 인력은 모두 현대자동차 소속이다.[33]

2020년 11월부터 2021년 3월까지 5개월 간 온디멘드 충전 서비스 실증사업을 제주도에서 시행한다. 현대캐피탈, 스타트업 에바, 민테크와 함께 이동형 충전 서비스를 시행한 뒤 전국으로 확산할 예정이다.

2021년 1월 19일, 이데일리에서 Apple과의 Apple Car 생산 협력 단독 보도 기사가 떴다. #

3. 지배구조[편집]


2020년 9월 기준
주주명
지분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현대자동차
33.8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국민연금
8.4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정의선
1.74%


4. 특징[편집]



4.1. 시장 점유율[편집]


파일:attachment/market_share.jpg

현대자동차 다음으로 국내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대자동차에게는 매번 판매량에서 밀렸으며, 그나마 현대자동차보다 우위를 점한 차종은 시장에 먼저 진입한 SUV봉고를 위시한 트럭, 승합차, 카렌스, 카니발, 카스타미니밴이다. 가끔씩 기아의 모델 체인지 차량이나 신차가 출시할때 아직 부분변경이나 모델 체인지 이전의 현대자동차보다 몇 달 정도 판매량이 더 많을 때도 있다. K5가 대표적이다. 2000년대 후반 이후 국내 내수 점유율이 상승했으나, 현대차와의 판매 간섭현상으로 현대차의 내수 점유율이 조금 줄었다. 다만 기아의 내수 점유율 상승분이 현대자동차의 내수 점유율 감수분보다 많아 현대기아의 내수 점유율 합은 더 늘었다.

중고 비율이 꽤나 높았으나,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후로는 별 차이가 없다. 2000년대 중반 들어서 현대가 기아의 가능성을 보고 이것저것 기아라는 브랜드로 모험을 시키는 형편. 하지만 제 버릇 남 못준다고 동급의 현대차보다는 달리기 성능을 중시하는 경향이 여전하다. 요즘에는 유럽 전용 판매모델인 씨드(Cee'd) 시리즈로 해외에서도 톡톡히 돈 잘 벌고 있는 중. 현재는 시장에서의 동일계열사간 동일 차급에서의 판매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력하는 차종을 서서히 나눠가는 추세이다.

K시리즈 이후로 2008년에 주가가 바닥까지 쳐서 주당 5000원 대였던 이후로 K5, K7의 연이은 히트로 인해 2011년 1월 20일 3년만에 6만원대까지 10배가 넘게 올라갔다.

국내에서는 만년 콩라인이지만, 의외로 2017년까지도 한국에서 생산해 세계 시장에 수출하는 물량은 현대자동차와 비슷하다.[34] 유럽, 호주,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중동 등 일부 지역에서는 현대자동차나 제네시스보다 오히려 더 브랜드 인지도가 높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는 기아 리오[35]쏠라리스를 제치고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특히,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서는 중산층이 가장 갖고 싶은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으며, 유럽에서는 씨드, 옵티마, 프라이드와 같은 모델들을 필두로 상당한 수준의 인지도를 축적했다.[36] 스팅어 출시 직전 유럽 시장에서 E형 스팅어 전용 엠블럼과 기존 기아 엠블럼의 선호도 조사를 했는데 기아 엠블럼에 대한 호감도,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한다.

4.2. 기술[편집]


'기술의 기아'라는 옛 기아자동차의 프로파간다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현대 쪽이 더 모험적이었다. 1970년대의 현대가 사운을 건 모험을 할 때 기아는 안정적으로 외국 모델을 들여오는 것을 택한 것이 대표적인 예.[37] 현대와 합병되기 전의 기아 홍보실은 실제보다 과장된 선전에 아주 능했다. 한 예로, 승합차 버전의 봉고를 내놓았을때 당시 한국에서 승합차에 대한 개념조차 희박했던 시절이었다. 승용차 판매가 금지된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던 기아가 돌파구로 선택했던 것이 봉고 승합차 버전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대박을 쳐서 기아는 1980년대 초반의 어려운 상황을 버텨낼 수 있었다. 단, 봉고신화로 기아가 기사회생한 것은 맞으나, 당시 상황이 반드시 기아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승용차는 생산 금지가 되었지만 1톤부터 3톤까지의 트럭 시장을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 소형~중형 트럭 시장은 결코 무시할 수 없고, 이를 독점한다는 것은 혜택이었다. 당시의 전두환 정권도 나름대로 생각을 해서 배려한 것인데, 다른 쪽을 박탈한 대신 이쪽에 반대급부로 혜택을 준 것이다. 소형트럭, 중형트럭 시장은 그동안 타사 모델이 갖고 있던 점유율까지 기아가 독점했으며, 승용차 시장을 일단 포기하기는 했으나 봉고 승합차 버전으로 승용차 시장의 일부를 가져오기까지 했으므로 1980년대 초반의 기아는 아주 잘 나갔다. 오히려 1986년부터 경쟁사에서 1~2.5톤 트럭과 승합차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그동안 기아가 독점하던 이 시장이 경쟁 체제가 됨으로써 이후의 기아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현대자동차에서 개발된 플랫폼과 엔진을 기반으로 차량을 설계하고 제작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모두 엔지어니링과 디자인 부문은 남양연구소에서 통합하여 맡아 개발하고 있다. 그 남양연구소가 편제상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실 직속으로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38] 이런 사실 때문에 현대를 비난하는 세력은 기아도 묶어서 같이 까고 해외에서는 기아를 현대의 토요타-렉서스, 쉐보레-폰티악, 크라이슬러-지프 등 한 회사에서 만든 다른 이름의 브랜드같은 DIVISION같이 취급하는 경향도 있는데, 현대-기아는 Division이 아닌 독립된 회사이며[39], 기아자동차가 연구개발을 현대에 위탁[40]해서 연구개발만 같이 할 뿐이다. 설계 담당 엔지니어, 시험 인원은 분리되어 있지 않지만 디자인실은 따로 있고 각 디자인실간 인적 교류도 없다. 해외 디자인 연구소들도 모두 다 독립 법인이며 개발 예산도 각 사 분리 집행되고 있다. 나머지 부분, 즉 판매나 마케팅, A/S[41] 등은 조직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경쟁 관계에 있다. 오히려 푸조-시트로엥의 연합체인 PSA 그룹과 비슷하다고 할만하다. 이로 인해 후술할 문제점이 있는데 현대 모델들과 동일하다 보니 기아만의 특색이 없다.

4.3. 유럽 공략[편집]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 이전에는 유럽의 차량들을 도입하여 생산하는 데 적극적이었다.[42] 아시아자동차까지 포함하면 피아트 124, 피아트 132, 푸조 604 등이 있으며, 몇십년 후의 일이지만 기아자동차가 영입한 피터 슈라이어와 유럽 전용 모델 기아 씨드를 포함하여 이들은 기아자동차의 유럽 DNA로 분류되고 있다.

4.4. 디자인 경영[편집]


파일:external/img.thesun.co.uk/SNF1304MA-682_753415a.jpg

파일:스팅어 타이거노즈.png

2005년, 디자인을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정하고, 정의선 전 대표이사(현대자동차그룹 승계자로 내정되어 있다) 취임 후 빠른 변화와 발전을 보여오고 있는 중이다. 취임 직후 폭스바겐, 아우디 출신의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해 와서 '직선의 단순화'를 모토로 자동차 디자인이 획기적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슈라이어 부임 이후 나오는 자동차 디자인은 멀리서 봐도 기아차 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통일된 패밀리 룩으로 가는 중이며, 그릴 모양은 Tiger Nose(호랑이 코)라는 고유의 모양으로 가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이후로 디자인면에서는 확실히 전보다 좋아져서 쏘울, 신형 스포티지등은 외국에서 신선한 디자인으로 호평받고 있으며, 그외 여러 모델들이 외국 디자인상을 받았다. K5는 라이벌인 쏘나타보다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더 높다.[43] 2010년 전후의 현대차 디자인이 전통적인 세단형을 버리고, 4도어 쿠페 스타일로 가거나 플루이딕 스컬프쳐라는, 마치 스타트렉 같은 SF에서나 볼 것 같은, 너무 급진적이고 미래적인 디자인삼각떼이었던[44] 반면, 기아는 '무난함+오래봐도 질리지 않음+세련됨 추구' 스타일로 가고 있다. 그리고 슈라이어 부임 후 나온 기아의 모델들은 은근히 폭스바겐, 아우디 쪽 모양과 비슷하다. 피터 슈라이어는 인터뷰에서 "It's not fancy and has a timeless design. It looks natural." ("팬시하지 않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유행을 타지 않으며 자연스럽다")라고 했다.

아무튼 디자인 측면에서만 보면 대중차 메이커 중에서는 좋은 평가[45]를 받는 브랜드이다. 최근에는 인테리어 디자인이나 인터페이스, 품질 측면에서도 일취월장하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5. 사명(社名)[편집]


일어날 기(起) + 버금 아(亞)를 쓰는 기아라는 사명은 영어로는 "Rising Out of Asia"라도 번역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이런 뜻을 생각하고 사명을 지었다기 보다는, 영어의 기어(Gear)를 한자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사명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아니면 기어의 일제 잔재어인 기아를 음차해서 起亞가 나왔을 수도 있다. 일단 기아에서는 두 가지 뜻을 모두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어 기아에는 飢餓(굶주림)라든가, 棄兒(갖다버린 아이)같은 부정적인 뜻이 있어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예전부터 많았다. 물론 옛날에야 국한문혼용체를 썼기 때문에 별 문제는 되지 않았지만, 그걸 더이상 쓰지 않는 현대 시대에서 KIA 타이거즈로 표기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미국에서도 KIA가 Killed In Action(작전 중 사망, 전사자)를 뜻하기 때문에, 군사용어를 아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놀림의 대상과 구매시 거부감을 주며 잦은 사고나 낮은 안전성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주한미군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점 중 하나가 한국의 군용차량 납품업체가 기아자동차인지라 KIA가 군용차 핸들에 있는 걸 보고 놀란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K.I.A.(케이 아이 에이)라고 약자로 읽어야하므로 그냥 키아 라고 읽으면 문제 없긴 하지만[46], 사실 한국차가 미국 진출 초창기에는 싼 맛에 타는 그저 그런 차라는 인식이 많았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 팔릴 차도 안 팔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선 지금은 Killed In Action이라는 표현을 아는 사람들이 영미권에서도 별로 없으며, 글로벌 브랜드에 이름을 올리는 등 브랜드 가치가 상승해 기아차의 이러한 이미지는 없어진 상황이다.

Ford 산하에 Ghia라는 이태리 카로체리아 기원의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었는데 한국 발음으로는 KIA와 동일하지만 어쩐지 이쪽은 듣보잡화되어 잊혀진 느낌이다... 유럽의 일부 시장에서는 최상급 모델들에 Ghia라는 프리미엄 트림을 부착하기도 한다.

또한, 사명에서 '자동차'를 빼는 것을 검토 중이다. 자동차 제조사에서 발을 넓혀 종합 모빌리티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도라고 한다.

2021년 1월 15일, 기존 제조업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담아 기존 기아자동차에서 자동차를 제외한 '기아'로 사업명을 변경했다. 새로운 브랜드 지향점 및 구체적인 미래 전략은 유튜브 및 글로벌 브랜드 웹사이트에서 '뉴 기아 브랜드 쇼케이스(New Kia Brand Showcase)'를 통해 공개되었다.


6. 역대 슬로건[편집]


대부분 국가에서는 약 12년 간 The Power to Surprise를 사용했으나, 2021년을 기점으로 로고 교체와 함께 Movement That Inspires 로 변경되었다.

6.1. 한국[편집]


  • 자동차공업의 선구자/스피이드의 메이커 (1969)
  • 신용있는 회사 노력하는 회사 꿈을 가진 회사 (1970~1985)
  • 여러분의 안전을 먼저 생각합니다 (1990)
  • 인재를 키우는 기업, 인재가 키우는 기업 (1990~1992)
  • 함께 웃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기아자동차 (1991)
  • 함께웃는 좋은사회, 기쁨주는 좋은차 (1992)
  • 고객의 만족이 기아의 보람입니다 (1992~1993)
  • 고객을 위한 품질, 세계를 향한 기술 (1993~1994)
  • 新기술로 21세기에 도전하는 기아자동차 (1995~1996)
  • 자동차사랑 (1996~1997)
  • 인간을 먼저 생각합니다/안전한 차는 기아가 만듭니다 (1997)
  • 자동차 전문기업 기아자동차 (1998~1999)
  • 고객 속으로 기쁨을, 고객 속에서 미래를 (1999)
  • 믿음을 주는 차, 꿈을 주는 기업 (2000)
  • 기술의 기아 안전의 기아 (2001)
  • 자동차는 기아차가 좋습니다 (2001~2002)
  • The Car That Cares (2004~2005)
  • The Power to Surprise (2005~2008, 2011~2020)
  • DE?💡GN (2008~2011)[47]
  • Movement that Inspires (2021~)

6.2. 미국[편집]


  • Kia - It's about time everyone had a well-made car(1993년/1990년대 사용)
  • Make Every Mile Count(2000년대)
  • The Power to Surprise(2000년대 중후반)
  • Give It Everything (2019~ )

6.3. 캐나다[편집]


  • Drive Change(2011)
  • The Power to Surprise(2010년대 중반~)
  • Long Live Surprise/Vive Les Surprises[48](2019~ )

6.4. 기타 국가[편집]


  • Le pouvoir de surprendre [49] (2000년대 중반 ~ )


7. 웰컴사운드, 효과음[편집]


기아자동차도 제네시스와 같은 현대자동차의 브랜드인 만큼 웰컴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기아도 독자적인 웰컴사운드, 일부 효과음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차량이 같은 웰컴사운드를 쓰는 현대와 달리, 기아는 세단 및 해치백/RV/프리미엄으로 일부 효과음과 웰컴/굿바이 멜로디가 구분된다.

2015년 이전에는 웰컴/굿바이 멜로디와 일부 효과음은 차급 상관없이 적용되었으나, K5, K7, K9가 같은 안전벨트 경고음을 사용했고 K3과 쏘울, SUV가 같은 안전벨트 경고음을 사용했다. 참고로 K3, 쏘울, SUV의 안전벨트 경고음은 현대 i30 2세대, 싼타페 3세대에서도 사용되었다.

2020년 기준으로 K3, K5, 쏘울, 모닝이 같은 멜로디(세단 및 해치백)를 쓰며, 쏘렌토[50], 카니발 [51] K7, K9, 스팅어가 동일 멜로디(프리미엄)을 사용한다. [52]스포티지, 모하비, 셀토스, 레이, 텔루라이드[53]는 RV용 멜로디를 사용하며 그랜버드는 현대자동차 멜로디를 사용한다.

친환경 전용 멜로디는 니로/니로EV/K5 HEV/K7 HEV, 쏘울 부스터 EV, 봉고 EV 같이 하이브리드/전기 버전에만 쓰인다. 시스템 점검음(안전벨트 경고음)[54]은 RV와 세단 및 해치백가 같고, 프리미엄은 더 부드러운 음을 사용한다. 그리고 모닝, 셀토스, 카니발과 같은 일부 모델의 경우 상위트림의 컬러 계기판을 선택해야만 멜로디와 고급 효과음이 적용되며[55], 아예 컬러 계기판 옵션이 없는 경우, 멜로디와 고급 효과음이 선택불가인 차종등도 있다(스토닉, 봉고[56]).

  • 중형이하 세단, 해치백 및 SUV 전 차급

SUV는 웰컴 사운드 및 일부 효과음이 미묘하게 다르다. 또한, 레이는 상위 트림 한정으로 효과음만 사용한다.

  • 프리미엄 멜로디(2016~)

시스템 점검음은 기존의 차임음을 부드럽게 다듬은 듯한 소리를 사용한다.

  • RV용 멜로디

레이[57], 카니발, SUV 전 차종[58]에 사용되며, 쏘렌토 4세대와 카니발 4세대는 외장앰프 옵션을 넣으면 웰컴/굿바이 멜로디만 프리미엄으로 바뀐다.

8. 공장[편집]


기아자동차는 생산 현장을 "공장"[59]이라 부르며, 영문으로는 "Plant"로 번역한다. 예를 들면 소하리 공장, Sohari Plant.

국내 공장
  • 소하리 공장[60] - 경기도 광명시 기아로 113 (소하동) 소재, 1973년 6월에 준공된 국내 최초의 자동차 종합 생산 공장이며 기아자동차의 모태가 되는 공장이다. 15만평의 면적과 연간 32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생산차량은 K9, 스팅어, 카니발, 스토닉이 있다.

  • 화성 공장 -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기아자동차로 95 소재, 1989년에 완공되었으며 준공 당시 "아산만 공장"으로 불렸으나 1996년 현대자동차가 아산 공장을 준공하면서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화성 공장"으로 개칭되었다. 면적이 여의도의 1.3배인 100만 평에 달하며 수도권 내의 산업 시설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연간 생산능력은 563,000대이다. 생산차량은 K3, K5, K7, 쏘렌토, 모하비, 니로가 있다.

  • 광주 공장 - 광주광역시 서구 화운로 277 (내방동) 소재, 1968년에 준공되었으며, 본래의 주인은 舊아시아자동차였다.[61] 1999년 6월 30일 아시아자동차가 기아자동차에 합병되면서 1999년 7월 1일에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되었다. 과거에 프라이드를 이곳에서 생산하였으며, 2000년 10월에는 그레이스프레지오와 혼류생산하기도 하였다. 2004년부터는 스포티지의 생산을 시작하였다. 36만평의 면적과 연간 6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생산차량은 쏘울, 스포티지, 셀토스, 봉고, 그랜버드, 군용차가 있다.

해외 공장
  • 미국 조지아 공장 - 미국 조지아 주 웨스트포인트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6년에 설립되었다. 79만평의 면적과 연간 36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생산차량은 옵티마, 쏘렌토, 텔루라이드가 있다.

  • 슬로바키아 질리나 공장 - 슬로바키아 질리나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4년에 설립되었다. 기아자동차의 유럽지역 생산거점이며 유럽지역의 주요 전략차종들을 생산하고 있다. 50만평의 면적과 여간 35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생산차량은 씨드, 스포티지가 있다.

  • 중국 장쑤성 옌청 공장 - 중국 장쑤성 옌청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2년에 설립되었다. 둥펑, 위에다기차와의 합작으로 설립된 기아자동차의 중국 지부인 둥펑위에다기아 소속이며 기아자동차의 중국 시장용 차량들의 대다수는 이곳에서 생산된다고 보면 된다. 100만평의 면적과 연간 89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생산차량 및 자세한 내용은 둥펑위에다기아 항목 참조.

  • 멕시코 누에보레온 공장 - 멕시코 누에보레온 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국 국경에서 200km 떨어진 멕시코 북동쪽에 있다. 2016년에 완공되었으며 335만㎡(약 101만 평) 부지에 프레스, 차체, 도장, 의장공장 등 완성차 생산설비와 품질센터, 조립교육센터, 주행시험장 등 부대시설을 포함해 총 건평 20만㎡(약 6만 평) 규모이고 연간 40만 대의 차량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이다. 생산차량은 리오, 포르테, 엑센트가 있다.

  • 인도 아난타푸르 공장 - 인도 안드라프라데시 주 아난타푸르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도시장 진출을 위해 건립되었다. 2019년 하반기에 완공되었으며 현대차의 인도 첸나이 공장에서 북서쪽으로 약 390km 떨어져있다. 216만㎡ 부지에 연 30만대 생산 규모의 완성차 생산 공장의 규모를 가졌다. 생산차량은 셀토스, 카니발, 쏘넷이 있다.

이 외에 남양연구소 내에 시작(pilot) 공장이 있는데, 양산차의 시험용 프로토타입 차량과 전기차 등을 생산하고 있다. 울산, 인천에 있던 양사 시작 공장이 이전 통합된 것이다.

9. 문제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현대자동차그룹/문제점 및 비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그룹에 속해있기 때문에, 현대자동차와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차의 안 좋은 점도 답습(...)하고 있다.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문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자국민을 호구로 봐서 까인다"는 것. 유튜브에 기아서비스센터만 검색해보더라도 특정 서비스센터에서 구입자를 얼마나 개 호구로 보고있는지 기아본사에서 정비사들의 교육수준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다. 그나마 현대 블루핸즈는 좀 무난한편.

기존차량에 SK텔레콤 LTE망을 사용한것과 다르게 K5 DL3과 쏘렌토 MQ4 차량의 UVO 통신망으로 중국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LG 유플러스의 LTE망을 사용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4세대 카니발에도 유플러스 통신사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쯤되면 앞으로 풀체인지 되거나 새로 출시되는 기아차는 LG 유플러스 통신망을 사용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아울러 k3와 스포티지가 후면지시등이 범퍼에 달렸는데 문제점이 시인성 저하로 인하여 사고 유발과 범퍼 손상시 후면지시등까지 같이 손상되며 추가비용이 발생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개선되지 않고 20년 신형 카니발마저 후면지시등이 범퍼에 달려버렸다.

기아만의 문제인데 인수 이후 현대자동차와 기술적 차별성이 없거나 한 단게 낮다. 기술의 기아라 불릴 정도로 현대 인수 전까지는 스포츠와 한계주행에 초점을 맟춘 설계로 민첩한 운동성과 기술적 완성도가 높았지만 현대에 인수된 이후 연구개발진들을 구조조정하고 현대자동차로 일원화시켜 플랫폼 공유는 같은 그룹이니까 당연하다 치더라도 파워트레인 등에서 차별이 있어야 하는데 같은 엔진과 변속기를 사용해 퍼포먼스를 부각하는 이미지랑은 동떨어져 있어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형식 상 독립된 회사라지만 서 두 회사에서 생산하는 모델의 파워트레인이나 하체류가 동일해 판매와 법인만 따로지 디비전과 다를 바 없다는 소리가 나올 만 하다. 회사 안에서도 서스펜션 세팅, 밸런스를 조금씩 달리 하고 있지만 두각되어 보이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 대두되는 점은 현대나 제네시스 모델에는 최신 엔진이나 최신기술이 선 적용되는 것과 달리, 기아차의 고급차종인 K9이나 모하비는 한 단계 이전 엔진을 적용시켜 모기업에 판매량을 몰아주고 있다. 구 기아 팬들은 이 점을 안타까워하고 있고 의도적으로 기아를 천대하고 있어 분노도 있다. 시장에서도 현대보다 평가절하되는 면이 있어 디자인 경영을 펼치듯 기술적으로도 기아만의 특색과 차별성이 필요해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폭스바겐 그룹폭스바겐, 포르쉐, 아우디는 같은 계열이지만 기술적으로 차별성이 있다. 하지만 기아는 폭스바겐의 아우디가 아닌 세아트, 스코다처럼 그저 규모가 작은 패밀리카 위주의 또 다른 회사로만 인식할 뿐이다. 또한 현대 내에선 인수 전 역사를 부정하진 않지만 대대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10. 생산 차종[편집]




차량 코드네임의 경우 2019년 이전까지는 현대차처럼 두자리 알파벳으로 명명되었지만, 3세대 쏘울(SK3)부터 변경되었다. 새로운 개발코드의 명명법도 현대차와 동일하게 차급+분류+세대번호 만, 두번째 알파벳(분류)는 다르다. 자세한건 현대자동차 참조.

10.1. 세단, 해치백, 왜건[편집]


국내 시판 차량은 볼드체 표시
단종된 차량은 취소선 표시

  • 경차
    • 비스토(MXL)
    • 모닝(SA→TA→JA)[62]

  • 소형[A]
    • 브리사
    • 프라이드(Y/WA→JB→UB/LB)[63]
    • 아벨라(WB)[64]
    • 리오(DC→JB→UB/LB/QB→YB/SC/FB)
    • K2(QB→UC)
    • 페가스(AB)

  • 준중형
    • K3(YD→BD)
    • K3 쿱(YK)
    • 캐피탈
    • 세피아(S→S-II)[65]
    • 슈마[66]
    • 스펙트라(SD)
    • 씨드(ED→JD→CD)[67]
    • 쎄라토(LD→TD→YD→BD)[68]
    • 포르테(TD→YD→BD)[69]
    • 포르테 쿱(XK)
    • 화치 300E(LQE) - 둥펑위에다기아 산하의 브랜드 화치에서 만든 준중형 전기차

  • 중형
    • K4(PF)
    • K5(TF→JF→DL3)
    • 스팅어(CK)
    • 132
    • 콩코드(NB-V)
    • 크레도스(G→G-II)[70]
    • 옵티마(MS→)[71], 로체(MG→)[72]

  • 준대형
    • 세이블
    • 포텐샤(T)
    • K7(VG→YG)[73]
    • K8(GL3)

  • 대형
    • 604
    • 엔터프라이즈(T3)
    • 오피러스(GH)[74]
    • K9(KH→RJ)[75]

  • 스포츠카[A]
    • 엘란(LHT)[76]

10.2. SUV[편집]


  • 초소형
    • 스토닉(YB CUV)
    • KX1/이파오(QE)[77]
    • 쏘넷(QYi)

  • 소형[79]
    • 록스타
    • 레토나
    • 셀토스(SP2)
    • 니로(DE)
    • KX3(KC→SP2c)[78]

  • 준중형
    • 스포티지(NB-7→JE/KM→SL→QL)
    • KX5(QL)[80]
    • 즈파오(NP)[81]


  • 준대형
    • 모하비(HM)[82]
    • 텔루라이드(ON)[83]

10.3. MPV[편집]


  • 카렌스(RS(엑스트렉, 팔릴 당시 카렌스2와 병행생산))→UN→RP)[84]
  • 카스타(DS)[85]
  • 카니발(KV-II/GQ→VQ→YP→KA4)[86]
  • AC버스
  • 봉고 3 미니버스(BA2) - 승합모델.
  • 베스타
  • 토픽(AM705→AM715)
  • 프레지오(NB-9→CT)
  • 아시아 타우너
  • 벤가(YN)[87]
  • 트라벨로[88]

10.4. 박스카[편집]



10.5. 버스[편집]



10.6. 트럭[편집]



10.7. 삼륜차[편집]


1960~70년대에 생산했었다. 마쓰다의 삼륜차 부품을 들여와서 생산했다.

10.8. 군용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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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베이퍼웨어[편집]


아시아자동차가 기아자동차의 틈새시장 공략에 벗어나 고유 라인업을 구축하기 위해 개발하였던 프로젝트이었으며, 여기에 기아차의 프로젝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개발 당시 일본의 히노다이하츠, 프랑스의 푸조와 협력관계를 맺고 90년대 중반에 유행하던 장르에 맞춘 모델들의 양산을 목표로 하였다. 하지만 1997년 기아 사태로 인해 네오마티나, 기아 1세대 후속 프라이드, 기아 프라이드 마이너체인지, 기아 ARV, 기아 소형 미니밴 프로젝트, 기아 레토나 5도어의 프로젝트 개발이 중단되었으며,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이후 SJ, 쏘렌토 SUT, 기아 LCV 프로젝트, 기아 뉴 엘란 프로젝트의 프로젝트 개발을 중단하게 된다.

아래의 명단 중 랜드마스터가 베이퍼웨어라고 알려져 있지만 여러가지 자료를 교차검토해 볼 때 랜드마스터가 록스타의 전신이라고 했으니 록스타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이전의 미개발 차량에 대해서는 아시아자동차의 미개발 차 97년 기아사태로 자취 감춘 모델들 기사 참조.


11. GT와 GT-Line[편집]


기아자동차에서는 준고성능 모델인 GT트림을 운영하고 있다. GT트림은 스포티한 외관에 고성능 엔진과 장거리 운행에 적합한 편의 사양을 갖추고 있다. GT-Line은 GT와 같은 스포티한 외관만 갖고, 사양은 일반 트림과 비슷하거나 약간 좋은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GT 트림이 처음 선을 보인 것은, K5 2세대에서였다. K5 2세대에서 2.0리터 터보 모델이 GT-Line트림으로 나왔고, 이듬해 정식 GT 트림으로 출시되었다. K5 GT는 스포티한 외관에 2.0 터보 엔진에 로우 스틸 브레이크, 전자 제어식 서스펜션, 액티브 사운드 제네레이터 등이 장착하고 있었다.

해외, 특히 유럽에서는 폭넓게 적용되고 있는데, 옵티마(K5), 피칸토(모닝), 씨드, 쏘울, 스토닉 등에서 GT나 GT-Line 트림이 존재한다. 대한민국에선 최고 사양을 사느니 그 윗급의 깡통차를 사는 경향이 강해 고가격대에 속하는 GT 트림의 판매량이 극히 적지만, 유럽에선 지 꼴리는대로 차를 사니 GT나 GT-Line도 판매량이 꽤 나온다고 알려져 있다.

2018년 K5 2세대가 부분 변경되면서 GT 트림이 삭제되어, 대한민국에는 스팅어 GT만이 남게 되어, 대한민국에서 아예 GT트림이 빠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그룹 차원에서 고성능은 현대의 N, 준고성능은 기아의 GT트림으로 전략적으로 육성하기로 결정하면서, 부활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2018년 말 K3 GT를 출시하면서 기아의 GT 브랜드 전략을 다시 가다듬고, GT의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고 한다. 또한, 현대의 TUIX처럼 튜온의 파츠 및 악세서리 선택의 폭도 넓힐 것이라 한다.

12. 노동조합[편집]


홈페이지

기아자동차 노조는 1960년 결성 이후 한동안 대한노총-한국노련-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이었으나, 1994년 탈퇴 이후 현재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다. 정식 명칭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조준호가 기아차 노조에서 활동했었다.

13. 주식, 채권[편집]


파일:attachment/19848.jpg
한때 씨티은행쪽의 주문 실수로 주식시장에 상장 주식 수보다 많은 5억주 매수 주문이 들어온 적이 있다.

14. 역대 임원[편집]


  • 명예회장
    • 김상문 (1984~1997)


  • 대표이사 부회장
    • 이범창 (1993~1996)
    • 한승준[91] (1996~1997)
    • 김익환 (2008~2009)
    • 정성은 (2009~2010)
    • 이형근 (2011~2018)

  • 부회장
    • 김뇌명 (2003)
    • 김익환 (2006~2008)
    • 이형근 (2010~2011)

  • 대표이사 사장
    • 김철호 (1944~1966/1967~1973)
    • 김명호 (1966~1967)
    • 김상문 (1973~1977)
    • 김명기 (1977~1981)
    • 홍복률 (1981)
    • 김선홍 (1981~1990)
    • 이범창 (1990~1993)
    • 한승준 (1993~1996)
    • 김영귀 (1996~1997)
    • 송병남 (1998~1999)
    • 김수중 (1999~2001)
    • 김뇌명 (2001~2003)
    • 윤국진 (2003~2005)
    • 김익환 (2005~2006)
    • 정의선 (2005~2008)
    • 조남홍 (2006~2009)
    • 서영종 (2009~2011)
    • 이삼웅 (2011~2014)
    • 박한우 (2014~2020)
    • 송호성 (2020~ )

  • 대표이사 부사장
    • 구태환 (2005)
    • 최준영 (2018~ )

  • 보전관리인
    • 박제혁 (1997~1998)
    • 유종렬 (1998~1999)

15. 지역색[편집]


향토기업 출신이 아니고 딱히 지역색을 띤 것도 아니지만 종종 호남 지역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이는 과거 기아자동차의 자회사였다가 합병된 아시아자동차광주광역시를 거점으로 활동했었고,[92] 이를 모체로 하여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현재도 광주권 지역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학산 김철호 창업주도 경상북도 칠곡군 태생이고 사업 시작도 서울에서 했기 때문에 중간에 인수한 아시아자동차 역사, 김철호 회장의 아들인 김상문 회장 다음으로 사원 출신인 김선홍 회장의 고향이 전라북도 익산시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아자동차는 호남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기아자동차의 기반은 주력 생산공장인 광명공장과 화성공장, 그리고 과거에 소재했던 시흥공장의 위치에서도 알 수 있듯 수도권을 기반으로 하며, 오히려 타 생산업체보다도 수도권에 사업장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기아자동차 서비스센터와 홈플러스가 있는 자리가 원래는 기아자동차 시흥공장 자리였다.

그럼에도 사실 이런 오해 아닌 오해를 사는 이유는 프로야구단 기아 타이거즈의 모기업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사실 기아 타이거즈는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를 기아가 1997년 외환 위기로 부도가 난 해태그룹으로부터 그대로 인수받아 운영하는 것이고, 구단 인수 시점도 2001년이라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그룹으로의 인수 후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구단 인수는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입김으로 이뤄진 것이라 보는게 더 합리적이다. 참고로 현대자동차는 프로축구 구단으로 호남 지역에 연고를 두는 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을 운영 중이기도 하다. 물론 1990년대 중반에는 한국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부산광역시에 연고를 둔 구단인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를 직접 창단하기도 했었다. 결론적으로 스포츠 구단 운영 정책과 호남 지역과의 연관성은 별로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다 떠나 그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면 지역민들에겐 그게 좋은 기업이겠지만. 기아자동차 측에서도 호남지역에서의 이미지를 딱히 지우려고 하지는 않는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은 무진대로 남쪽과 북쪽에 각각 1개씩 위치하는데, 다른 사업장과는 달리 광주 시가지 한복판 노른자위 땅에 있다. 그 이유는 원래 도심에 지은 것이 아니라 광주공장의 전신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이 들어섰을 때만 해도 그곳은 광주 시가지의 바깥쪽이었기 때문이다. 광주 동구 대인동에 있던 버스터미널도 시외에 새로 크게 지어야 한다고 해서 현재의 광천터미널이 들어섰는데 같은 이유다. 현재는 상무지구를 개발하고 서구 북구 광산구 등이 지속적으로 개발 되면서 도시의 중심이 되었다. 공장 사이를 가르는 왕복 16차로짜리 무진대로의 풍경도 장관. 사실 이 도로 이름도 원래 '기아로'였다가, 서쪽으로 이어지는 무진로와 통합되면서 바뀐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위에서 정리한 광주공장은 승용차 생산 공장이다. 원래 상용차 생산을 전문으로 했고 또 아시아자동차의 본부가 있었지만 2005년 이후 승용차 위주로 생산하게 되었다. 광주에는 이곳 말고도 광산구에 특수차량 생산공장이 위치해 있다. 군용차량은 현재 이곳에서 생산 중이며 그랜버드도 이곳에서 생산하고 있다.

16. 광고[편집]


기아자동차의 미국법인은 기발하고 엽기적인 광고로 매우 유명하다. 쏘울의 햄스터 광고도 이들의 작품이며 이 기발하고 엽기적인 광고 센스는 슈퍼볼 광고에서 절정에 달한다.

다만 18년 이후 북미쪽 광고는 광고팀이 물갈이된 건지 저런 광고를 찾아보기 힘들어진 상태다. 2018년 스팅어 광고부터 광고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진 상태고 좀 더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광고들 위주로 나오며 신형 소울에서도 광고의 아이덴티티였던 햄스터들이 사라졌다.

북미 쪽에서는 기아차 차량들을 활용해 웹드라마 'The Features Film'을 만들기도 했다.


미어캣이 흑화된 이유

2019년 기준 인도 시장에서는 미어캣을 내세워 인기를 끌고 있다.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었어

국내 법인 또한 가끔씩 특이한 센스의 광고를 보여주는데 기아 모닝 가스/터보 광고가 그 예라고 볼 수 있다.

17. 직장생활[편집]



채용 규모가 적다. 특히 사무직군은 더더욱 뽑지 않는다. 그리고 대기업 중에서 "군대 다음 현대"라고 불릴 정도로 군대식 문화로 대표되는 후진적/남성적 기업 문화가 강했기 때문에 단순히 연봉만 보고 갔다가 성격과 맞지 않아 퇴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니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1986~2012년 주 60여시간 이상 근무하다가 질병이 발생해 산업재해 소송이 걸린 적도 있다. 90년대 정세영 회장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물론 장점도 있는데, 이른 출근 시간, 늦은 퇴근 시간, 주말 출근, 휴가 제한, 휴식 시간 준수, 사무직 노조 가입 방해, 상명하복, 회식 필참 정도에만 순응한다면 물론 이런 걸 순응하기 쉬운지는 다른 문제다 나머지는 인간미가 강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을 못해도 기업이 망하기 직전이 아니면 퇴사를 강요하지 않는다.[93] 내가 안 짤려서 좋은데 쟤도 안 짤려. 초봉과 연봉이 매우 높다는 점[94], 국내 대기업의 평균 근속년수가 대개 11년 남짓인데 반해 현대자동차 임직원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무려 17.5년이라는 점 때문에 구직자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다.

그리고 양재 본사는 힘들 수 있지만 연구소의 근무환경은 훨씬 좋다고. 게다가, 상기한 "군대 다음 현대"라고 불리는 권위주의적인 문화도 2010년대를 기점으로 많이 완화되었다고 한다. 이 즈음부터 입사를 시작한 신입사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회사 내부의 문화가 예전보다 훨씬 세련되게 개선되어서 지금은 수차에 걸친 회식을 1차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더 놀고 싶은 사람들은 그들끼리만 간다고 할 정도이다.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그룹 내에서도 현대자동차와 함께 완성차 분야 갑이라서 인기가 있다.

생산관리직의 경우 생산공정 관리, 보전 등과 같이 플랜트를 담당하는 대졸 신입사원 또한 적은 인원을 채용하며 지역 출신을 좀 뽑는다.

기술직(前 생산직)으로도 꿈의 기업이나 뽑는 인원이 엄청나게 적어[95] 요근래 들어 기아차의 경우 고졸~전문대졸 생산직 사원 모집은 대학에서 산학협력을 맺고 생산현장에 일정 기간 동안 투입되는 산학인턴[96], 생산인턴을 대상으로 매년마다 필요인력을 채용해 왔다. 그 외 보전,금형의 경우 매년마다 전문기술 양성과정이라는 일종의 교육과정생을 모집하고 최종적으로 일부 인원이 정규직 전환이 이뤄진다고 한다.[97] 그리고 직영사업소의 전문인력의 경우 수요가 발생시 모집해왔다. 공장 생산직의 경우 공장 특성상 굉장히 시끄럽고 반복 작업이며, 따라서 근속년수가 길어지면 근육통/요통/청력 저하에 시달린다. 주간 연속 2교대 전에는 2조 2교대, 12시간 철야 근무를 하였으나 주간 연속 2교대 채택 이후로는 오전 06:50~오후 3:30인 1조(아침식사를 식당에서 판매한다)와 오후 03:30 ~ 익일 새벽 00:10인 2조로 구분하여 운영하고 (이건 생산라인 기준이다. 기술직은 근무시간이 다르긴 한데 공장이 12시 10분까지 계속 돌아가는 바람에 야근이 엄청나게 많다.) 각 조는 2시간 근무, 10분 휴식의 반복 및 식사시간으로 구성되며 식사시간은 평일 40분 / 주말, 공휴일 특근의 경우 50분이었는데 주간 연속 2교대가 되면서 40분으로 고정되었다. 주간연속 2교대의 도입으로 회식은 물 건너가게 되었으며 1주일마다 주야 근무가 바뀌는 건 덤. 또한 공장 복불복(?)도 있어서 바쁜 부서에 배치되면 공휴일과 토요일은 사라지게 된다. 출결과 관련 경력을 많이 보므로 고딩 때 출결이 좋지 않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길 바란다. 현대차의 경우 16년 기준 향후 10년간 정년퇴직자가 1만 3천여 명이다. 링크 이는 기아차도 비슷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정년연장과 더불어 내부 협력업체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그래서 2018년도까지는 사내하청에서 정규직으로 신규채용을 했다. 기아차의 경우 2018년 1300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합의하였고 2018년까지 4차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는 5차까지 정규직 전환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와 관련되어 생산직 채용이 중단되었다. 뉴스에 나온 대로 임금 문제보다는, 사내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작업 공정에 투입하지 못하고 대기하는 인원이 많다고 하는 상황이다. 현대차와 비슷하게 비정규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면 지금보단 상황이 그나마 나아질 것으로도 보이지만, 국내공장에 대한 증설 이야기는 전혀 없고, 공장 자동화 [98] 등으로 앞으로 채용 인원이 정년퇴직자만큼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또한, 기아차와 어느정도 상황이 비슷한 현대차에서도 앞으로 생산직 인원이 많이 필요하지 않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렇기에 기아차에서 앞으로 정년 퇴직자가 많더라도 생산직 채용은 그냥 거의 없을 것으로도 보인다. 즉, 앞으로 자동차 생산직 입사를 희망한다면 그냥 포기하고 다른 길을 알아보는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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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스폰서십[편집]


직영 중인 기아 타이거즈 외에도, 글로벌 이미지 제고를 위해 각종 스포츠 종목에서 활발한 스폰서십을 제공중이다.[99]
  • 국제대회: FIFA 월드컵, UEFA UEFA 유로, NBA, 호주 오픈 등.
  • 국가대표팀: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팀[100],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팀, 대한민국 봅슬레이 국가대표팀 등.
  • 스포츠대회: League of Legends European Championship.
  • 스포츠구단: 지롱댕 보르도, Rogue, DWG KIA[101] 등.
  • 스포츠 선수: 라파엘 나달, 매니 파퀴아오, 황의조 등.

이중 스페인 출신의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과 메인 스폰서십을 맺은 계기가 상당히 재미있다. 2004년 당시 만 18세였던 나달이 플로리다에서 열린 나스닥 오픈에서 당시 탑랭커로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로저 페더러를 2:0으로 꺾으며 파란을 일으켰는데, 경기 직후 발목 피로골절로 결승에도 가지 못하고 그 해 클레이 시즌을 날리게 된다. 허나 기아 글로벌 마케팅 부서의 고위 관계자가 이 경기를 보곤 당시 세계랭킹이 50위권 밖에 되지 않았던 나달이 차후 탑랭커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며 메인 스폰서를 제안&체결하게 된다.

당시 떠오르는 신인으로 불리고는 있었지만, 아직 그랜드슬램 대회 4회전도 진출해보지 못한 나달에게 이만큼의 투자를 하는건 위험하다는 의견이 더러 있었는데, 1년 뒤인 2005년에 나달은 처음으로 출전한 롤랑 가로스 남자 단식에서 우승하더니 2020년 기준, 그랜드슬램 우승 20회를 기록하며 로저 페더러와 함께 역대 최고 선수의 논쟁을 펼치고 있다. 이미 살아있는 레전드인 셈. 당연히 나달의 대활약으로 인해 메인 스폰서인 기아자동차는 광고 효과를 톡톡히 봤고, 이는 대표적인 스포츠 마케팅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와 비견되는 국내 기업의 스포츠 마케팅 성과 중 하나론 무리뉴 시절 극강이었던 첼시를 후원한 삼성도 있다.[102]

그리고 신인 시절부터 자신을 밀어준게 정말 고마운지 나달은 인터뷰는 물론이고 SNS 등에서 기아 관련 드립을 자주 친다. 심지어 메르세데스 컵이란 큰 대회에서 우승하고 메르세데스-AMG GT를 부상으로 받은 적이 있는데, 내 스폰서인 기아자동차 보다는 별로지만 좋은 차라며 립서비스를 해준 적도 있다[103]. 그리고 기아자동차의 광고모델도 고정적으로 맡고 있어 이런 광고도 찍은 적이 있다.

19. 관련 문서[편집]


  • 현대자동차그룹
  • KIA 타이거즈
  • 기아의 엔진 목록
  • 잠깐만(라디오)
  • 현대카드[104]
  • 변신자동차 또봇[105]
  • 터널(영화)[106]
  • 둥펑위에다기아
  • CSP

20. 관련 문헌[편집]



21.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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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사 설립 등기가 이뤄진 날이다.[2] 2021년 1월 27일 기준[3] 바탕색상 있는 것은 초록바탕에 로고 색상이 노란색이었다.[4] 파일:기아 로고 1994-2021.png
이 기간에는 1994~2000, 2004~2009, 2009~2021 로고 3개가 있는데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1994~2004 로고는 채도가 낮은 빨간색으로 평면적 디자인이고, 2004~2012 로고는 빨간색의 채도를 높이고 입체감을 주었으며, 2012~2021 로고는 좀 더 강렬한 색과 입체의 디테일을 보강했다.어쨌건 전체적으로는 같은 디자인이니 94년부터 21년도까지 오래 장수한 디자인.
[5] 출처: <기아 사십오년사(1989)> p442~444.[6] 출처: <기아 오십년사(1994)> p458.[7] 타이완에서도 잠깐 사용되기도 했다.[8] 2001년 8월에 출범한 KIA 타이거즈도 2009 시즌까지 이 로고를 응용한 구단 로고를 사용하였다.[9] 두 회사 로고는 가로세로 비율이 조금 다르지만, 수출 지역에 따라 현대 기아 차종이 회사를 바꿔 투입될 때, 금형 수정 없이 엠블렘만을 바꿔 붙일 수 있어 경제적이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원래 현대 상트로 Zip이었던 기아 비스토, 원래 기아 카니발(현대 앙투라지는 북미 시장용이었으므로 정확히는 카니발의 현지 차명인 세도나) 2세대 9인승 리무진이었던 현대 앙투라지.[10] 수출용은 밀레니엄 로고를 아예 쓰지 않고 타원형 로고를 계속 쓰고 있었다.[11] 1994년에 발간한 기아자동차 창업 50년사에 의하면 1944년 7월부터 창업 준비를 해왔고 그 해 12월 11일, 경성지방재판소(현 서울지방법원)에 설립등기를 마쳤다고 한다.[12] 삼천리자전거는 현대그룹에 인수되기 훨씬 전인 1979년에 분사되었기 때문에 현대자동차그룹에서는 빠졌다. 그러나 현대자동차그룹 아래에서는 옛 기아의 역사가 점점 희석되어가고 있는 반면, 삼천리자전거는 아직도 기아차의 역사를 기리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삼천리자전거 문서를 참조.[13] "아시아에서 일어선다"는 뜻의 起亞, 영어 gear(당시의 일본식 발음으로는 기아)의 두 가지 뜻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14] 기아마스타(KiaMaster)라고 한 이유는, 본래 일본 동양공업과 기술제휴를 하였기에 합작선의 브랜드인 마쓰다(Mazda)를 써서 기아마쓰다라고 써야 정확하나 당시 박정희 정권의 왜색 배척 정책에 따라 마쓰다의 이름을 그대로 쓸 수 없어 마쓰다와 발음이 비슷한 영어 낱말 '마스터(Master)'를 대신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5] 여담이지만 이때 미국 GM와 기술제휴를 할 뻔 했다가 철회되기도 했다. # 먼저는 GM의 상용차 브랜드인 GMC와 제휴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16] 국산 승용차 시장 1위를 차지했던 것은 포니가 등장하기 전의 일이다. 포니가 등장한 후 브리사는 1위를 포니에게 빼앗겼고 이후 단종될 때까지 영원히 콩라인이었다. 1970년대 중반 당시로서는 굉장한 최신 스타일인데다가 차체도 더 큰 포니에 비해 구식 스타일이며 차체도 작은 브리사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후 차체를 키운 신형 K303이 등장했으나 결국 끝까지 1위를 되찾지 못했다.[17] 유한양행이 행했던 그것 맞다. 김상문 당시 회장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선언해 민경중 당시 아시아자동차 사장을 회장으로, 기아기공 사장이던 김선홍(기아자동차에 사원으로 입사해 과장, 부장을 거쳐 나중에 회장까지 지낸 입지전적 인물. 현대에 흡수되며 색이 바랬다.)을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선임했으며, 김상문 본인은 '명예회장' 직함을 달고 주주의 위치만 가졌다.[18] 사실 기아그룹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된 가장 큰 이유는 김상문 회장의 아들 김석환 삼천리자전거 회장이 기아그룹의 규모에 부담을 느껴서 스스로 경영권을 포기했다. 이후 그룹의 기원이자 계열사사이던 삼천리자전거로 옮겨갔고, 79년에 그룹에서 나오며 IMF때 기아그룹이 공중분해될 때 든든한 중소기업으로 살아남았다. 어떻게 보면 김석환 회장의 선견지명.[19] 1t 트럭 버전이 먼저 나왔고 이후 승합차 버전이 나왔다.[20] 비록 영원한 2위이기는 하나 브리사 K303이 잘 팔리고 있었고, 피아트 132, 푸조 604 등도 인기였으나 이 차종들을 모두 포기해야 했다.[21] 참고로 자동차산업 합리화 조치의 최대 수혜자라 할 수 있는 회사는 새한/대우자동차(현 한국GM). 실제로 80년대까지 중형 승용차 및 대형 트럭, 버스에서 강세를 보이던 대우자동차는 1987년 이 조치가 폐지된 후부터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점차 몰락하기 시작했다. 흔히들 현대자동차도 이 조치의 수혜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현대차 역시 이 조치로 인해 영국 퍼킨스와의 디젤 엔진 기술제휴를 울며 겨자먹기로 철회하며 국제 신용에 타격을 입고, 순수 국산화가 진행 중이던 상용차 모델들 다수를 포기하는 등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22] 이 건물은 1992년 12월에 후술할 신사옥이 지어지면서 1993~1999년에 아시아자동차와 여러 계열사가 공유하다가 2001년부터는 계동을 떠난 현대모비스가 입주했고 지금은 현대커머셜이 쓰고 있다.[23] 1986년에 인수한 사옥의 쌍둥이 빌딩. 1992년 12월부터 1998년 11월까지는 여기가 기아자동차 본사였다. 이후 1998년 12월에 기아자동차의 등기상 본사는 계동 사옥으로 바뀌었고 2001년초까지 기아자동차가 사용하다가 2000년 12월에 양재동 사옥이 지어지고 계동/여의도에 분산된 기아차 조직을 양재동으로 통합이전한 이후에는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이 입주하게 된다.[24] 현 화성시[25] 현 향남읍[26] 1998년 12월에 기아자동차의 등기상 본사는 현대그룹 계동사옥으로 바뀌었으며 기존 사옥은 실무자들만 남아서 2001년초까지 쓰게 된다.[27] 그리고 현대차는 2006년에 쌍둥이 빌딩을 지으면서 옆건물로 이전한다.[28] 이 때 남수원지점이 인계동 기아센터로 이사하였고, 2016년에는 동수원지점 사옥에 있던 수원드라이빙센터도 인계동 기아센터로 이사하였다.[29] 당시 경기 결과표.[30] 2000, 2001년 기아 스포티지, 2009, 2010년 기아 쏘렌토[31] 1988년에도 K-111을 튜닝한 로드마스터로 참전하여, 비공식이지만 국내 기업 최초로 다카르 랠리를 완주하기도 했다. 문제는 제한 시간을 초과하는 바람에 다카르 랠리에서는 탈락 처리되었다. 그리하여 공식이 아닌 비공식으로 국내 최초가 되어버렸다. 참고로 당시 드라이버 중에는 1995년에 세피아로 WRC 호주 랠리 NP2(비개조) 부문에 참전해 우승한 그 박정룡 선수가 있었다.[32] 수출할 때는 K3 - 포르테, K5 - 옵티마, K7 - 카덴자, K9 - K900/쿠오리스처럼 원래 차급에 쓰이던 차명을 쓰거나 K7부터는 차명을 새로 만들었다. K7조차도 되지 못한 아만티 안습[33] 쎄라토로체같이 의심을 안하려해도 의심이 갈수밖에 없는 홀대가 있었기때문에 아직까지도 기아자동차는 서자라는 얘기가 돌고있는 실정이다. 현제로서는 새로이 개발되어서 투입되는 옵션은 기아차고 현대차고 할거없이 적용가능하다면 바로 적용해서 출시해주는 추세고 단순한 연식변경때도 투입이 가능한 옵션이 아니라면 페이스리프트나 풀체인지를 기다려야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되려 기아차가 현대차보다 첨단 사양을 더 많이 달고 팔리는 경우가 더러있다. 가장 근래의 사례로는 3세대 K5가 8세대 쏘나타보다 고급화 옵션이 조금 부족한 대신 첨단옵션에서 앞서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했다. 동력계나 하체세팅면에서도 같은 파츠를 사용하더라도 세팅값에서 차이를 두는등 기아차만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34] 2017년(잠정): 현대 - 997,000여 대, 기아 - 978,000여 대.[35] 러시아 시장 한정으로 중국 전략 차종인 기아 K2기아 리오로 판매된다.[36] 유럽 시장에선 이들 모델의 준고성능 트림인 GT 트림의 판매 비중도 상당하다.[37]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모노코크 바디 승용차 플랫폼 국산화를 국내 최초로 이루어 낸 것은 현대가 아닌 마쓰다 323 플랫폼 도입이 좌절되며 개발된 기아 세피아였다. 비록 엔진이 마쓰다B5를 얹고 출시되면서 최초로 파워트레인까지 완전 국산화 출시한 순서는 현대 엑센트에게 뺏겼지만, 대당 천만원 넘는 가격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도입하여 자사의 T8D 하이캠 엔진과 각종 부속류의 국산화까지 진행하여 판매한 기아 엘란도 있고, 단순히 고유모델을 포기하고 외국 모델을 들여왔다는 이유로 현대쪽이 더 모험적이었다는 평가를 섣불리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 해제 후 출시한 기아 프라이드의 경우만 봐도, 3도어 해치백밖에 존재하지 않던 모델을 국내 시장 입맛에 맞춰 순식간에 5도어, 4도어 등의 바리에이션을 출시하고 이 모델들을 내수뿐만 아니라 수출까지 한 회사로, 단순히 뱃지 엔지니어링만 해서 팔던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주행 성능에 있어선 현대보다 훨씬 스포티하고 도전적인 경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내외부 마감 등의 품질에 있어선 현대보다 한참 떨어지긴 했다.[38] 외형상으로는 양 회사에 연구소가 다 있다. 남양연구소 정문에도 두 회사 연구소 심볼 마크가 나란히 있다.[39] 제네시스는 현대의 Division이 맞다.[40] 현대 디자인실이든 기아 디자인실이든 설계 담당이든 소속은 모두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즉 현대 직원 신분이다.[41] A/S는 현대와 기아가 따로 한다고 하기엔 애매하다. 긴급한 조치를 요할 경우 기아차의 영업소에서도 아반떼, 쏘나타 등 현대차를 수리해 주고, 현대차의 영업소에서 K3와 K5 등을 수리해 준다. 현대-기아의 차들이 같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엔진계와 구동계같은 핵심 계통은 설계가 거의 같다. 분리되어 있는 것은 몇 군데 안 되는 직영 사업소들이고 그나마 오일교환 등 소모품교환과 엔진 등 공통 부품이 들어가는 건 취급한다, 그 외 훨씬 많은 협력 공장, 대리점은 회사를 가리지 않고 수리를한다.[42] 다만 이 시기에 기아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자동차 회사들은 신진자동차가 아주 잠깐 토요타와 인연을 맺은 것과 현대가 미쓰비시 랜서를 이용해서 포니를 만든 것 말고는 죄다 유럽의 차량들을 도입하여 생산했었다. 현대자동차는 유럽 포드의 차들을 들여와 만들었었으며, 대우자동차오펠의 차들을 들여와 생산하던 시기였다.[43] 외국에서 쏘나타를 제끼고 여러 디자인상을 수상했다.[44] 2017~2018년 기준으로 볼 때 현대는 이런 급진적인 디자인을 일찌감치 버렸다......가 다시 안 좋은쪽으로 부활해서 더 욕을 먹고 있다.[45] 예를 들면 스팅어라던가... 3세대 기아 K5라던가...[46] 꼭 그렇지만도 않은데, 일단 현대영어의 추세는 편.의.상 약자도 그냥 한 단어처럼 읽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가령, ASAP(에이쌥)이라든지, HMMWV라든지, SCAR라든지 CIWS라든지, SWAT, SCUBA, RADAR, LASER등이 있다. 그리고 당장 비슷한 뜻인 MIA(missing in action)도 그냥 미아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Killed In Action을 '케이아이에이'라고만 읽어야 한다는 법이 없다. (Military Arms Channel; MAC은 UMP를 엄프라고읽는다.) 물론 보통 케이아이에이로 읽지만.... 게다가 Kia가 아니라 KIA이다. 미국영어를 기준으로 KIA는 K.I.A.와 다르지않다.[47] 해당 슬로건은 버스 모델인 기아 그랜버드에서도 현재까지 사용 중. 선바이저에 기본 옵션으로 나온다. 단, 금호고속과 중앙고속은 전용 표어를 썬바이저에 표기하고 나온다.[48] 프랑스어 광고 기준[49] 프랑스 슬로건[50] 3세대에서는 기아의 RV 멜로디가 사용됬지만, 4세대부터는 웰컴/굿바이 멜로디에 한해 프리미엄 멜로디로 바뀌었다.[51] 3세대 페이스리프트 모델에서는 RV멜로디 사용되었다.[52] 하지만 프리미엄 멜로디를 사용하는 차량이여도, 외장앰프 옵션(크렐, 렉시콘 등)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프리미엄 웰컴 사운드는 제공하지 않는다. 프리미엄 웰컴 사운드는 오디오 출력용 스피커에서 출력되며, 외장앰프 옵션이 없거나 프리미엄 웰컴 사운드가 없는 차종은 계기판 스피커에서 출력된다. 실제로 들어보면 프리미엄 웰컴 사운드는 웅장하게 베이스까지 깔려있는 소리로, 차 밖에서도 들릴정도이다.[53] 수출형 전용[54] 카니발 3세대, 스포티지 4세대와 같은 일부 차량의 국내형 모델의 경우 시동(Key on)시 시스템 점검 경고음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55] 하위트림에서는 깜빡이 소리와 경고음이 딱딱한 작동음이나 단순 버저음으로 나며, 멜로디와 음성 알림도 없다.[56] EV 모델 제외. EV 모델은 RV 멜로디를 쓴다.[57] 경차인데도 불구하고 RV 멜로디를 쓴다.[58] 1번째 멜로디와 바꿔쓸 수 있다.[59] 이웃집 현대자동차도 "공장"이라 부른다. 사족으로 삼성그룹은 "사업장"이라 부른다.[60] 행정 동명은 오래 전에 소하리에서 광명시 소하동으로 바뀌었으나, 어느 언어로 읽어도 소하리로 읽히는 Sohari라는 철자와 부드러운 어감으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61] 1975년에 아시아자동차가 기아산업에 인수되면서 사실상 자회사가 되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었다.[62] 수출명 피칸토(Picanto)[63] 1세대 수출명 포드 페스티바(Festiva)/마쓰다 121, 2세대부터 리오[64] 수출명 포드 아스파이어(Aspire)[A] A B 현재 국내 내수용 생산차량은 단 한대도 없다![65] 수출명 멘토(Mentor)[66] 수출명 스펙트라(Spectra)[67] 수출용 모델로 벤가와 함께 슬로바키아에서 생산.[68] K3의 호주, 뉴질랜드 수출명.[69] K3의 북아메리카 수출명. 중국형(푸뤼디)은 아직 생산 중[70] 수출명 클라루스(Clarus)[71] 차량 자체는 단종되었지만 K5의 수출명으로 사용중이고 로체도 이 이름으로 수출됐었다.[72] 수출명 마젠티스(Magentis)/옵티마[73] 수출명 카덴자(Cadenza)[74] 수출명 아만티(Amanti)[75] 수출명 쿠오리스(Quoris)/K900[76] 수출명 비가토(Vigato)[77] 기아 스토닉의 중국형 차량이지만, 실제 크기는 스토닉보다 조금 작다.[78] 현재 2세대 모델은 셀토스가 중국에서 KX3의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79] 둘의 급 차이가 존재한다. 니로가 좀 더 커서 소형차이지만 소형과 준중형 사이로 보는 사람도 있다.[80] 기아 스포티지 QL의 중국형 이름.[81] 기아 스포티지 3세대 차량의 중국형 전략 차종이자, 2018년에 출시한 SUV이다.[82] 북미/중국 수출명 보레고(Borrego)[83] 북미 전략형 차량[84] 수출명 론도(Rondo)[85] 특이하게 울산에서 생산되었는데, 싼타모를 베이스로 했기 때문이다. 수출명 조이스(Joice)[86] 수출명 세도나(Sedona)[87] 유럽 전략형 차량으로 씨드와 함께 슬로바키아에서 생산했다.[88] 인도네시아 전략 차종[89] 네이밍 변경으로 출시. 아시아 록스타의 전신이 바로 랜드마스터다.[90] 현재의 모닝과는 디자인이 다르다.[91] 배우 한재석의 아버지.[92] 참고로 아시아자동차의 창업주였던 이문환은 호남 출신 사업가다. 아시아자동차가 기아자동차에 넘어간지 오래된 현재는 그의 친척들이 아시아자동차와는 무관하게 활동 중이다.[93] 다만 1998년엔 IMF로 인해 정리해고를 실시하기는 했다.[94] 2017년 대졸 초봉 약 6천만 원, 평균 연봉 9300만원. 여기에 자사 차량 할인이나 그룹 복지 등을 포함하면 좀 더 상승한다.[95] 앞서 말한 고용 안정성이 높은 편이라 그런 것이 크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질 않아 자리가 계속 차 있는 것. 물론 공장을 이미 많이 깔아버려서 추가적으로 공장이 세워질 가능성이 요원한 것도 한몫 한다.[96] 산학협력을 맺은 전문대를 대상으로 진행되며 산학협력을 맺지 못한 전문대의 경우 지원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학교 선택에 있어서 산학협력이 잘 되어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진로를 선택해야 후회되지 않을 것이다. 입학성적이 높은 학교라도 산학협력이 되지 않은 경우 그냥 지원조차 못한다고 보면 된다.[97] 다만, 단순히 교육과정이 아니라 사람을 뽑고 교육과정 중 평가를 통해서 고용하겠다는 것이다. [98] 예를 들면 화성공장에 새로운 엔진공장이 완성되어 가는 중인데 이 라인은 생산 자동화의 비중이 높게 이뤄졌다고 한다. [99] 기아는 과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니폼 스폰서(2005~2012년)이기도 했는데 그다지 성적이 화려하지 않아(하지만 유로파 리그 우승까지 하여 투자한것을 생각하면 손해는 아니었다고) 2012년부로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틀레티코는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스폰서를 맡았는데 그 아틀레티코가 2013-14 시즌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는 통에 기아에서 안타까워했다는 후문.[100]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아닌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만 후원하고 있다.[101] 네이밍 스폰서[102] 취소선이 있지만 현재 첼시의 상황을 본다면 과거 지난날, 리즈 시절 당시의 첼시를 후원한 삼성의 결정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로 봐야 한다. 더구나 당시 유럽 강호의 위용을 자랑하던 바이에른 뮌헨을 침몰시키고 클럽사상 첫 UEFA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을때도 삼성이 후원하던 시절이었다. 이 분들이 양반들은 각각 의문의 1패[103] 단순 가격만 비교해도 AMG GT는 기아의 플래그십인 K9보다 3배 이상 비싸다. 애사심이 충격적인 수준이다...[104] 양재동 사옥에 입주하기 이전에 쓰던 여의도 사옥의 현 주인이 바로 현대카드이다.[105] 주역 로봇들의 모델이 기아자동차의 차량들이다.[106] 주인공 이정수가 대놓고 자신을 기아자동차 하도대리점 직원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구조대장의 차를 제외하면 모두 기아자동차의 차량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