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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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독일의 축구 국가대표팀을 설명하는 문서이다. 가장 유명한 별명은 "Die Mannschaft (선수단)"[6] 이다. 우리나라에서 독일 대표팀을 칭할 때 거의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전차 군단'이란 별칭은 정작 국내에서만 통용된다.
FIFA 월드컵 결승전 역대 최다 진출국(8회:우승 4회/ 준우승 4회)이며, FIFA 월드컵 우승 횟수 4회로, 5회 우승의 브라질에 이어 이탈리아와 함께 역대 월드컵 우승 횟수 2위이다. 또한 준우승 4회(1966, 1982, 1986, 2002)의 월드컵 최다 준우승국이다.[7]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에서는 스페인과 더불어 최다 우승(3회) 및 구 소련과 함께 최다 준우승(3회)을 기록하고 있다. 월드컵에서는 브라질에 이어 2번째로 좋은 성적을, 유로에선 가장 좋은 누적 성적을 거둬온 역대 축구 최강팀 중 하나이다.
FIFA 월드컵 전적 랭킹 2위에 올라 있는데 1950년대 이후 계속 2위를 유지했었지만,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호날두의 포르투갈을 4:0으로 격파, 4강전 브라질을 7:1로 격파하고, 결승전에서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이기며 네 번째 우승을 달성하였고, 그 전까지는 3위인 이탈리아에 우승 횟수가 하나 밀렸기 때문에 불완전한 2위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본선에서 얻은 승점으로 랭킹을 메기는 전적 랭킹으로 볼 때는 1950년대 이후 이탈리아보다 늘 앞선 순위를 기록하였다. 승점뿐만 아니라, 결승 진출 횟수, 4강 및 토너먼트 진출 횟수, 골 득실 등등 우승 횟수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이탈리아를 누르고 유럽 톱을 달렸다. 우승은 4번이지만 결승 진출 8회에 4강 진출은 13회로 국가대표 팀들 전체 1위를 달리고, 부동의 1위인 브라질과의 승점 차이를 2014년에 확연히 따라잡으면서 브라질과의 승점 차이가 10점 가량 줄어들었으나 2018 월드컵에서 승점을 단 3점밖에 못 벌면서 다시 격차가 벌어지게 되었다. 2017년 3월부터 2018 러시아 월드컵 때까지 FIFA 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다가 자만심에 가득찬 러시아 월드컵에서 1938년 이후 80년 만에 1라운드에서 탈락한 여파[8] 로 인해 2018년 8월 기준 FIFA 랭킹이 15위로 크게 떨어졌다. 이후 UEFA 네이션스 리그/2020-21 시즌에 스페인에 6:0 으로 대패, 유로 2020 16강에서 잉글랜드에게 2:0 으로 패배하며 탈락하는 등 독일 국대표팀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결과들을 내었고, 결국 2022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일본에 2:1 로 역전패를 당하면서, 32강에서 탈락하며, 2개의 연속된 월드컵에서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하는 등, 독일 대표팀 역사상 최악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1980년을 기점으로 40년 넘게 동행한 아디다스다. 세계적인 독일 스포츠 브랜드로 월드컵 공인구 스폰서도 겸하고 있으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1980년 이전에는 현재 아디다스의 자회사인 에리마가 제작했으며, 1966년에는 엄브로가 제작한 적도 있다.관련 링크
2. 특징[편집]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유명하며[9] 기본적으로는 뛰어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힘 축구를 주력으로 내세워 소위 "전차군단"이라는 별칭으로 불렸으나, 요아힘 뢰프가 패스 축구 전략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공-수-패스 운영 등 모든 부분에서 톱 클래스가 된 완전 체형 팀이 되었다. 스타 플레이어에 별 신경조차 안 쓰는 것이 특징인 팀이다. 한두명의 스타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조직력을 목숨처럼 여기는 팀이다.[10] 이민자 자녀 출신 국가 대표들이 팀의 조직력을 해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독일은 아프리카 출신이든, 터키 출신이든 독일이라는 팀에 그야말로 완벽하게 녹아든다.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로타어 마테우스, 미로슬라프 클로제, 마누엘 노이어, 토마스 뮐러 등 걸출한 스타 플레이어도 엄청나게 널려 있는 팀, 특히 골키퍼는 세계 최강이긴 하지만 그 스타 플레이어조차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조직력에 기여하는 플레이를 시키는 팀이다. 그래서 조직력 하면 독일, 독일 하면 조직력으로 전 세계 모든 축구팀들 중 조직력이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때문에 스타 플레이어에 의존하는 경향의 팀들인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포르투갈도 독일에게는 한 수 접고 들어간다.
자신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팀들에게 압도적인 편이고 설령 고전한다고 해도 승리를 거두며,[11] 2002년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8:0으로 이기기도 했다. 2014년 월드컵에서도 포르투갈을 4:0으로 학살했다. 약팀으로 평가받는 팀들과의 경기에서 가끔 고전하는 강호들과 달리 독일은 기복없는 경기력과 득점력으로 자신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팀에게 절망을 안긴다.[12] 최근에는 AGAIN 2004를 기대했던 그리스가 한 골은 만회했지만 뒤이어 3골을 연달아 먹히며 희망을 접었다.
반면 박빙으로 평가받는 팀에게는 의외로 고전하거나,[13] 전성기를 구가하는 팀에게 비교적 약한 모습을 보인다.[14] 게다가 1994년 이후 발칸 지역 국가에게 의외로 약하다. 1994년 월드컵 8강에서 불가리아에 1:2로 역전패한 것을 비롯, 1998년 8강에서는 충격의 크로아티아전 0:3 대패를 당했고 유로 1996에서 2:1로 이겼지만 유로 2008에서도 크로아티아에 1:2 패배를 당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세르비아에 0:1로 지면서 24년간 이어지던 월드컵 조별예선 무패기록이 깨지기도 했다.
의외의 사실인데 유럽의 양대산맥인 독일과 이탈리아지만 정작 독일은 아무리 강력한 전력을 가져도 이탈리아만 만나면 기가 죽는다. 이를 아주리 징크스라 하며 이 징크스가 매우 유명하다. 유로88 8개국 본선 조별리그와 유로96 16개국 본선 조별리그에서 각각 1:1, 0:0으로 비긴 것을 제외하고는 국제 대회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독일은 이탈리아를 이긴 적이 없다.[15] 1970년 멕시코 월드컵 4강전에서 처절한 혈투 끝에 3:4로 패배했고 1982년 스페인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1:3으로 졌다. 이후 유로 1988과 1996에서 무승부를 거둔 두 팀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준결승에서 만났고 독일은 홈 이점을 앞세워 이탈리아를 이길 거라고 마음먹었지만 연장 후반에만 2골을 얻어맞고 악연에 치를 떨어야 했다. 유로 2012 4강전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 독일은 복수를 외쳤지만 그동안 부진했던 발로텔리가 전반전에 선취한 2골로 죽음의 조를 3승으로 통과하고 8강에서 그리스를 압살한 독일의 기세가 꺾였다. 메수트 외질의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만회했지만 경기력은 이탈리아가 압도. 특히 유로 2012의 경우는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의 거짓말 같은 패배였다. 왜냐하면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강호 네덜란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유명한 포르투갈이나 무조건 다 잡고 8강에서도 엄청 쉬운 그리스를 상대로 체력 안배 할 거 다 하고 나서 이탈리아와 맞붙은 반면 이탈리아는 조별리그부터 크로아티아에조차 쩔쩔매며 스페인에게 크로아티아 좀 이겨달라고 애원했는데[17] 스페인이 크로아티아를 제압해서야 간신히 8강에 올랐고 8강에 올라서도 잉글랜드와 승부차기까지 가서 체력 소진할 거 다 소진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누가 생각해도 승리할 독일이 너무 어이없게 패배했던 것이다. 분단시절 5전 3무 2패 그리고 1990년 독일 통일 이후에 3전 2승 1무이다. 특히 토너먼트에서는 무조건 패했다. 여담으로 동독 대표팀도 아주리와 2번 만났는데 1무 1패를 기록했으니 과연 독일의 아주리 징크스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결국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8전 9기 끝에 UEFA 유로 2016 8강전에서 숙적 이탈리아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6:5로 누르고 아주리 징크스를 어느 정도 극복하는 데 성공한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있는 상당히 희한한 특징이라면 푸에르토리코,[18] 폴란드,[19] 스위스,[20] 브라질,[21] 라트비아,[22][23] 가나,[24] 터키[25] 튀니지[26] 등의 다른 국가 대표로도 뛸 수 있는 이주민 가정 선수들이나 귀화 선수들임에도 불구하고 독일 대표팀을 선택하였고, 조직력 하나만큼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능가하는 팀이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탄탄한 조직력을 기반으로 여러 국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일례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우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과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그 월드컵 기준으로 디펜딩 챔피언과 지난 대회 준우승국임에도 불구하고 콩가루 조직력으로 극초반에 탈락했으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시 그 뛰어난 선수들을 갖고도 지역예선에서 콩가루 조직력을 보이는 바람에 하마터면 지역예선에서 탈락할 뻔했다. 이런 점을 보면 단 한 번도 조직력이 흐트러진 적이 없는 독일의 꾸준함이 빛난다고 볼 수 있다.
여담으로 2000년대 독일이 출전한 월드컵의 중요한 고비마다 이전 경기까지 좋은 활약을 펼쳤던 키플레이어가 없어 경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02년 월드컵 결승전엔 8강 미국전, 4강 한국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던 미하엘 발락이 한국전에서 받은 경고 누적으로 브라질과의 결승전에 출장하지 못했고,[27] 2006년 독일 월드컵 4강 이탈리아전에선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던 토르스텐 프링스가 8강 아르헨티나전에서 승부차기 직후 아르헨티나의 서브 스트라이커인 훌리오 크루스를 때려서 2경기 출장 정지를 당해 이탈리아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했다. 2010년 4강 스페인전에선 이전까지 4골 3도움을 기록하고 있던 독일의 괴물 신인 토마스 뮐러가 경고 누적으로 인해 결장, 미드필더의 축을 상실함으로써 스페인의 점유율 축구에 휩쓸리는 원인이 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지만, 2014 월드컵의 독일은 1930년 우루과이, 1934년 이탈리아, 1938년 이탈리아, 1950년 우루과이, 1958년 브라질, 1962년 브라질, 1966년 잉글랜드, 1970년 브라질, 1990년 독일, 1998년 프랑스에 이은 열한 번째 예선, 본선 무패 우승팀이다. 하지만, 개최국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린 1930, 1966, 1998년과 전 대회 우승국이 연속 우승했던 1938, 1962 그리고 기권국이 너무 많아 자동 진출했던 1950 우승팀을 제외하면, 지역예선까지 무패로 통과하여 우승한 사례로는 다섯 번째[28] 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에는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싶으면 16강 이후 본선 토너먼트에서 독일을 잡아라"라는 말이 있었다. 우승으로 가는 길목의 수문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도 2002년 월드컵 이후 하나같이 독일을 쓰러뜨린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29] 2002년에는 브라질이 결승에서 독일을 쓰러뜨리고 우승했고, 2006년에는 이탈리아가 준결승에서 독일을 쓰러뜨리고 결승에 올라서 결승에서 프랑스를 쓰러뜨리고 우승했으며, 2010년에는 스페인이 준결승에서 독일을 쓰러뜨리고 결승에 올라서 결승에서 네덜란드를 쓰러뜨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2014년에는 아무도 독일을 이기지 못해서 독일이 우승했다. 2018년은 독일이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했다.[30]
다만 이러한 말이 나온 것은 사실 독일이 세대 교체에 성공하고 암흑기를 벗어나고 나서 2006년, 2010년 월드컵에서 우승후보로 지목되었고 실제로도 대회 기간 동안 강력한 화력을 보였던 독일이 4강에서 번번히 맥없이 나가 떨어지면서 널리 퍼진 말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는 명예로운 말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우승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오명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결국 2014년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고 세계 축구 정상의 자리를 탈환하면서 이런 오명을 벗었다고 할 수 있다.
독일 국가대표팀은 잉글랜드나 스페인,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인기가 많은 팀이다. 사실 독일이 축구팀으로 큰 인기를 얻은 것도 비교적 근래의 일이며, 예전에는 좋은 성적과 메이저 대회에서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재미없는 축구라는 오명을 쓰며 실력에 비해서는 인기가 없었다. 암흑기 이전인 1990년 월드컵 우승 당시에도 그랬다. 물론 마테우스와 클린스만이 활약하던 독일 국가대표팀이 인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브라질, 잉글랜드, 스페인 등에 비해 딱히 인기가 많았던 팀은 아니었다. 당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축구 국가대표팀은 마라도나가 활동하던 당시 아르헨티나였다. 다만 의외로 당시 독일 대표팀은 남미, 특히 브라질에서 인기가 있었다. 개인기의 힘으로 승부하던 남미 사람들에게 빈틈없는 조직력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독일 대표팀이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온 모양. 게다가 브라질 축구가 상대적으로 침체기에 있었고, 숙적인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까지 발라주니 베베토는 94년 월드컵에서 그 유명한 요람 세리머니로 태어난 아들에게 마테우스라는 이름을 지어줄 정도였다. 훗날 2006년 브라질 1부 리그의 우승팀인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가 마테우스를 감독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이때 이후 암흑기 때는 성적 자체가 안 나왔었다. 독일 대표팀의 인기가 상승한 건 2006년 독일 월드컵 4강을 시작으로 10년 동안 월드컵, 유로 경기에서 4강 이상씩 꼬박꼬박 가는 꾸준한 성적과 이 과정에서 수위급 강호를 상대로도 관광 쇼를 보여주는 위엄[31] 덕분이기도 하다. 이러다 보니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선 "축구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독일 걱정이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독일이 나오지 못한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와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우루과이가 우승했던 묘한 기록도 있다.
1970년부터 2000년까지 30년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리베로라 불리는 중앙 수비수를 중심으로 한 전술을 구사했다. 실질적으로 프란츠 베켄바워가 창시한 리베로 전형은 독일 축구의 핵심 전술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독일 대표팀에서 이 자리는 울리 슈틸리케, 디트마르 야콥스,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로타르 마테우스, 마티아스 자머로 이어졌다. 선수들마다 스타일이 달랐기 때문에 리베로의 비중은 그때그때 달라졌는데, 베켄바워, 마테우스, 자머처럼 플레이메이킹에 능하고 공격력도 뛰어난 경우 경기 조율은 물론 공격과 수비를 수시로 오가며 전천후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슈틸리케, 아우겐탈러는 상대적으로 중앙 수비수로서의 역할에 치중했다. 대신 파울 브라이트너나 마테우스같은 출중한 중앙 미드필더가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경기를 조율했다. 90년대 말 독일 축구 암흑기 때 자머와 마테우스가 노쇠하는 가운데 이 자리를 대체할 만한 다른 선수가 없었고, 때문에 마테우스가 거의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출장했다. 당시 대표팀 수석 코치인 슈틸리케가 전형을 포백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며 리베크 감독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32] 사실 마테우스는 98년까지는 괜찮은 모습을 보였지만 만 39세에 참가한 유로 2000에서는 속절없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이 대회를 끝으로 마테우스가 은퇴하고, 독일 대표팀도 포백으로 전환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암흑기였고 자원이 없었기에 포백으로 전환했지만 오히려 39세 마테우스를 중심으로 한 스리백 시절보다도 한동안 불안한 경기력을 보였다.
월드컵만 빼고 모든 걸 다 가진 두 신계 스타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겐 그들의 가장 큰 꿈을 막아온 저승사자와도 같은 팀이다. 메시가 참여한 아르헨티나 대표팀과 월드컵 본선 토너먼트에서 3전 3승(2006 독일 월드컵 8강전 승부차기 승/2010 남아공 월드컵 8강전 4-0 대승/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 1:0 승)의 압도적 기록을 갖고 있으며, 유로에서도 맞붙는 호날두의 포르투갈 대표팀과는 5전 5승(2006 독일 월드컵 3, 4위전 승/유로 2008 8강전 3:2 승/유로 2012 조별리그 1:0 승/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4-0 대승/유로 2020 조별리그 4-2 승)으로 말 그대로 슈퍼맨 앞의 크립토나이트 수준의 천적이다. 호날두의 포르투갈은 독일을 대진에서 피한 유로 2016에 유일한 국가 대항전 우승을 경험했다.
2.1. 명성[편집]
가장 큰 특징은 그 특유의 꾸준함. 첫 월드컵은 불참, 1950년은 제 2차 세계 대전 추축국으로 출전 금지되어 출전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19번의 월드컵에 모두 출전했으며,[33] 나치 독일 시기인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1라운드 16강 토너먼트에서 탈락, 2018월드컵 1라운드 32강 조별리그 탈락,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1라운드 32강 조별리그 탈락 단 세 번을 제외하고 모두 8강 이상 진출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34] 또한 2002 월드컵부터는 4개 대회 연속 4강 진출이라는 전무후무한 넘사벽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런 꾸준함을 바탕으로 현재 월드컵 최다 경기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호날두의 포르투갈을 4:0 격파, 미네이랑의 비극이라 불리는, 개최국 브라질을 4강전에서 7대1로 압살하며 월드컵 최다골 기록도 브라질로부터 빼앗아오기도 했었고,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격파하며 우승했다. 하지만 4년 뒤에는 카잔의 치욕을 당함으로써 월드컵 최다골 기록도 도로 브라질한테 빼앗겼다. 독일 역시 암흑기는 존재한다. 항상 이렇게 잘나가기만 했던 것은 아니고 2002년 월드컵 당시의 독일은 지역예선에서 잉글랜드를 만났는데 원정가서는 잘 이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홈에서 되려 1-5로 완전히 후벼파임을 당한 적이 있었다. 더군다나 선제골까지 넣고도 이런 꼴을 당했다. 게다가 2018년 월드컵부터는 2개 대회 연속 1라운드 32강 조별리그 탈락이란 수모를 기록 중이다.
팀 컬러는 현대로 넘어오면서 정말 많이 바뀌었는데, 과거 8, 90년대 독일의 축구가 Die Mannschaft, 즉 '팀'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35] 주장, 감독의 지휘아래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철저한 분업축구로 톱니바퀴와 같은 조직력을 바탕으로 활약했고, 압도적인 피지컬과 제공권, 선이 굵은 롱볼 축구, 중거리 슛으로 대표되지만 반면 딱딱하고 투박한 볼 키핑과 헤딩 싸움이 발군인 대신 땅볼 싸움이 취약해서 어쩔 수 없이 롱볼을 난사해야만 했던 상황 등 양날의 검 축구를 했다. 그 독일다움을 유지하였던 것이 변화하는 현대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이는 세대 교체의 실패와도 맞물려 UEFA 유로 2000, UEFA 유로 2004를 망쳤고, 그 사이에 있었던 2002 월드컵은 준우승이라는 좋은 성적을 보여주긴 하였으나, 대진운이 매우 많이 따라주었다는 평을 들었으며, 오히려 이는 유로 2004에서 굴욕적인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이 기간의 독일 대표팀은 룸펠푸스발[36] 이라고 불리우며 조롱을 받았고, 2006년 자국에서 열릴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전술 변화와 세대 교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변화의 조짐은 UEFA 유로 2000에서의 대참사 이후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독일 축구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이민자 출신의 흑인 대표 선수를 발탁한 것인데 게랄트 아자모아가 2001년에 처음으로 독일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이 시점으로 마지막까지 서구에서 순혈주의를 유지하던 독일이 이민자에게 대표팀 자격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아자모아가 독일 대표선수가 된 2001년 이후로 독일 대표팀이 출전한 메이저 대회가 바로 2002 FIFA 월드컵인데, 순혈주의를 허물은 독일이 녹슨 전차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준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때, 아자모아를 포함하여 올리버 뇌빌(스위스 로카르노 태생, 부계 벨기에, 모계 이탈리아)과 미로슬라프 클로제(폴란드 실롱스키에 태생, 모계 폴란드) 등 이민자 출신 선수[37] 가 포함되었다. 이외에도, 구 동독 출신의 선수들도 대표팀에 여럿 승선하였는데 토마스 링케, 마르코 레머, 카르스텐 얀커, 미하엘 발락, 옌스 예레미스, 외르크 뵈메, 베른트 슈나이더 등이 동독 태생 선수들이다. 23인 엔트리 중에서 절반 가량이 이민자이거나 동독 출신이며, 이들이 고루 조화를 이뤄내 12년 만에 월드컵 결승전 무대를 밟았고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한 셈이다. 게다가 이민자 출신 클로제와 동독 출신 발락은 각각 조별리그와 토너먼트에서 독일을 멱살잡고 결승전까지 올려놓았다. 하지만 2년 뒤 출전한 UEFA 유로 2004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함에 따라 이 변화가 성공이라 보기 어려웠다.
비록 유로 2004에서 실패했지만 지난 2002 월드컵에서 득점 2위를 한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함께, 새롭게 이민자 혈통을 가진 프레디 보비치(구 유고 태생, 부계 슬로베니아, 모계 크로아티아), 케빈 쿠라니(브라질 태생, 부계 헝가리, 모계 파나마), 토마스 브르다리치(독일 태생, 부계 크로아티아), 루카스 포돌스키(폴란드 태생, 모계 폴란드) 등이 대표팀에 합류하였다. 또한, 이민자 후손은 아니지만 훗날 독일 대표팀에서 꾸준히 활약하게 되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와 필립 람 등이 대표팀에 발탁된 시점이 유로 2004이다. 이들을 주축으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져 2005 컨페드컵 3위, 2006 월드컵 3위, 유로 2008 준우승, 2010 월드컵 3위, 유로 2012 4강 3위, 2014 월드컵 우승, 유로 2016 4강 4위, 2017 컨페드컵 우승에 이르기까지 독일 축구대표팀은 이른바 카잔의 기적이 벌어진 2018년까지는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2004년에 요아힘 뢰프 시대가 시작되고 본격적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38] 독일의 딱딱하고 투박한 축구를 완전히 폐기처분하고 70년대 람바참바[39] 스타일로의 복귀를 꾀하였고, 브라질의 샬레이라[40] 나, 스페인의 티키타카 등 다른 나라에서 재미를 본 스타일의 축구를 도입하는, 한마디로 말해 기존의 것을 완전히 내다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작업을 통해 넘사벽으로 업그레이드된 팀에 기술과 스피드를 접목시켜 약점을 찾기 힘든 팀으로 변모시켰다. 특히 이 시기는 유로 2000의 대실패로 인해 독일 클럽들이 대규모로 유소년 선수 육성을 시작해 그 첫 세대가 나올 즈음이었고, 뢰프 체제에 독일 국대에 승선해 핵심으로 자리잡은 대표적인 유망주들로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루카스 포돌스키, 필립 람, 페어 메르테사커, 아르네 프리드리히, 마르셀 얀센 등이 있다. 또한 서구 국가 중 가장 마지막까지 순혈주의의 팀이었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혼혈 출신이나 해외의 이주민 2세들의 비중을 높인 점 역시 무시 못 할 부분인데 메수트 외질(겔젠키르헨 출신, 터키계), 사미 케디라(슈투트가르트 출신, 부친은 튀니지 출신, 모친은 독일인), 미로슬라프 클로제(폴란드 출생, 부친은 독일계, 모친은 폴란드인), 루카스 포돌스키(폴란드 태생, 부친은 독일계, 모친은 폴란드인), 제롬 보아텡(서베를린 출신, 가나계) 등등 유럽 및 아프리카의 여러 혈통들의 올스타스러운 인원들과 토종 독일 선수들과 조합을 꾀했다. 한마디로 2010년대 이후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팀 에디트의 정수를 보여준 셈이다.[41]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본선에서 사상 최초로 조별예선 탈락하였는데 골 득실에서 밀리며 (대한민국{+0}, 독일{-2}) 조 최하위로(대회 22등) 명성에 금이 갔었던 적이 있었다.
확 바뀐 속도감 넘치는 축구로 자국에서 열린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3위를 차지하며 녹슨 전차군단의 오명을 벗기 시작한 뢰프 체제의 독일은 이후 유로 2008, 2010 월드컵, 유로 2012, 2014 월드컵에서 모두 4강이나 결승에 진출하며 꾸준한 고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한 가지 약점으로는 화끈한 공격력을 보여주다가도 정작 4강전부터는 상대를 너무 의식해서인지 소극적인 전술로 인해 실패를 겪는 고질적인 4강 징크스에 시달렸는데,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다시 한번 결승에 진출하며 아르헨티나와 연장전까지 가는 결승전다운 치열한 혈투[42] 끝에 마침내 우승을 차지하고 징크스를 깨뜨리는 데 성공했다. 다만 이후에 대굴욕을 겪기도 했다.
러시아 월드컵 이후에도 굴욕을 면치 못했다. 뢰브의 지도력 또한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2010년대 중반 이후 독일의 선수 풀 자체가 "골짜기 세대" 라는 점. 2010년대 중반에 요하네스 가이스, 막스 마이어, 레온 고레츠카, 마르크 슈텐데라, 아르네 마이어, 율리안 바이글 등 차기 국대를 이끌어 갈 정도로 기대를 받던 미드필더 유망주들이 있었으나 기대치만큼 성장한 선수는 레온 고레츠카뿐이 없었을더러 나머지 선수들은 기존 팀에서조차 주전 자리를 잃거나 아예 잊혀버리는 말도 안 되는 커리어를 이어가 버리곤 했다. 이 중에서는 억울하게도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커리어를 잃었거나 생각보다 과대 평가를 받은 선수들이 존재하기는 하나 그럼에도 분데스리가에는 두각을 나타내는 독일 유망주들이 드물고 그 자리를 다른 국적 선수들에게 빼앗겨버린 상황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인구수가 10배나 차이나는 이웃 나라 오스트리아와 비교해서 플로리안 비르츠, 자말 무시알라, 카림 아데예미를 제외하고는 확실하게 낫다할 만한 유망주가 없는 게 현실이다.
2010년대부터 독일 국적의 국대 핵심급 선수 또는 기대주들의 부상 빈도 또한 심각한 편이다. 소위 유리몸 이라 불리는 선수들이 2010년대 독일에는 꽤 많다. 기존의 제롬 보아텡, 사미 케디라, 마르코 로이스, 베네딕트 회베데스, 마리오 고메스는 말 할 것도 없는 유리몸이고 홀거 바트슈투버, 일카이 귄도안와 마리오 괴체는 큰 부상 이후로 아예 다른 선수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표팀 내 정통 9번의 부재 역시 여전히 심각하다. 이는 마리오 고메스 이후로 10년 가까이 독일 국가대표팀의 큰 골칫거리로 자리잡았다.[43] 라이프치히 에이스이자 독일 순혈 간판 공격수 티모 베르너는 첼시로 이적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고 국대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44] 그렇다고 정통 스트라이커 중에서 베르너보다 확실히 낫다 할 선수도 없기에 큰 문제이다. 오죽하면 리그에서 상위권 스트라이커도 아닌 루카스 은메차, 요나탄 부르카르트라든가 아직 성인도 아닌 유수파 무코코가 독일 공격수의 희망으로 떠오른다거나 2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지몬 테로데가 연례행사마냥 독일 현지 언론에서 스트라이커 후보로 떠오를 정도... 그나마 최근에는 차선책으로 윙어인 세르주 그나브리나 공격형 미드필더인 카이 하베르츠가[45] 대표팀에서는 톱으로 뛰면서 득점력도 괜찮고 어느 정도 잘 메꾸고 있긴 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정통 9번의 부재는 월드컵이나 유로 같은 국제 무대에서 큰 부담감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2022년 기준 1993년생 니클라스 퓔크루크의 등장으로 정통 9번의 고질적인 문제가 조금이나마 해결이 될 가능성이 생겼다.
3. 상징[편집]
3.1. 검독수리[편집]
로고[46] 의 검독수리는 과거 신성 로마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독일 제국,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 서독을 거쳐 現 독일연방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역대 주요 국가들의 국기와 국장에 사용된 상징이다.
4. 별명[편집]
전통적인 축구 강호로서 한국에서는 전차군단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이는 당연히 독일군의 걸작 무기로 통하는 전차 덕에 불리는 별칭[47] 이다. 현지에서 별명은 Die Mannschaft(디 만샤프트 - '더 팀(The Team)'이라는 의미)이다.[48] 그 밖에 Die DFB-Elf(디 데에프베 엘프)혹은 Die Nationalelf(디 나치오날엘프)[49] , Der Panzer(데어 판처) 정도가 된다.
5. 유니폼[편집]
5.1. 홈 유니폼[편집]
흰색 상의와 검은 반바지 유니폼이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는 근대 독일의 전신인 옛 프로이센 왕국 국기의 색깔과 동일하다.
흰색 상의, 검은색 바지 유니폼은 독일이 월드컵에 첫 출전한 1934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1934년부터 1987년까지 완전한 흰색에 목과 팔 끝처리 부분에 검은색 테두리를 주었다. 상의에는 다른 무늬 없이 독일 국가대표팀 문양만 새겨졌다. 목 부분은 라운드, V넥, 칼라 등의 스타일이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아주 가끔 흰색 상의에 흰색 반바지를 착용하기도 했는데, 70년대 초반에 몇 경기 실착한 적이 있다.[50] 이후 거의 40년 가까이 한동안 흰색 상의, 흰색 하의 조합은 보이지 않다가 2014년 월드컵에서 공식 홈 유니폼 자체가 흰색 상의, 흰색 바지로 정해지기도 했다.
독일 국가대표팀의 영원한 스폰서인 아디다스의 삼선 라인은 1980년부터 새겨졌다. 왜냐하면 아디다스가 독일 축구 협회와 처음 계약한 때가 1980년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현재 아디다스의 자회사인 에리마(1. FC 쾰른의 유니폼 제작사)의 유니폼을 입었었다.
1986년부터는 목 테두리를 기존의 검은색에서, 독일 국기의 삼색으로 바꾸었다.
이후 1988년에는 가슴에 독일 국기를 반영한 과감한 라인이 추가되었고 이 홈 유니폼으로 1990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해 영광의 유니폼이 되었다. 다만 이 유니폼이 처음 반영되었던 자국에서 개최된 88 유로에서는 네덜란드에게 아쉽게 패배하며 4강(8팀 중 3위)를 기록한 점도 있었지만 1990년 월드컵에서 2년전 패배를 안겨주었던 네덜란드에게 이 유니폼을 입은 상태로 복수에 성공했다. 이 유니폼을 실착하고 그라운드에서 뛰면 어깨의 삼색 라인이 팔 동작과 함께 위로 올라가면서 독수리가 비상하는 듯한 인상적인 형상을 나타냈다. 또 이 유니폼 도입과 함께 주장 완장까지 독일 국기 3색을 채택했다.[51] 당시에 매우 호평 받은 디자인이었고 대부분의 축구 팬들이 이 유니폼을 역대 독일의 유니폼 중에서 가장 잘나온 디자인으로 꼽고 있다. 현지 독일인들도 매우 좋아하는 디자인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해에 독일이 통일했기 때문에 독일 국기인 삼색기를 좋아하는 독일인들도 있다. 1990년 월드컵을 우승해서인지 1991년에 특별 유니폼으로 어웨이 킷인 녹색 유니폼에 저 삼색기 유니폼을 그대로 적용했다. 저 유니폼을 입고 잉글랜드에게 1:0승리를 거두었다.
독일에서 레전드 매치가 열릴 때마다 한결같이 이 유니폼이 채택되고 있는 점을 봐도 이 유니폼이 독일에서 얼마나 각별하게 여겨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후부터 흰색 상의를 베이스로 하면서 독일 국기 디자인을 반영한 이런 저런 바리에이션들을 선보이고 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유니폼 역시 독일 국기나 국장인 독수리의 이미지를 잘 나타낸 멋진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기능적인 면에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는데, 목의 카라가 너무 두껍고 꺼끌꺼끌한 데다, 당시 헐렁한 스타일의 유니폼은 폭염의 미국에서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독일 삼색 라인이 강조되었던 90 월드컵 유니폼과 94 월드컵 유니폼은 당시 세계적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동대문 운동장 지하상가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었던 짝퉁 유니폼 중 하나였다. 이 유니폼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냐면 당시 조지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94년 독일 대표팀 유니폼과 삼선 색깔만 다르고 완전히 똑같은 디자인의 유니폼을 착용했었다. 그런데 1995년 독일과 조지아가 유로 예선에서 같은 조에 편성되었고, 조지아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독일은 세컨드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심지어 조지아의 세컨드 유니폼도 색깔과 붉은 계열이었지 디자인은 독일과 똑같았다.
96 유로부터는 기존의 과감했던 독일 삼색 디자인을 축소하여 가늘게 포인트를 주는 선에서 주로 처리하고 있다. 이후 2012 유로 때까지 이런 하얀 유니폼을 유지했다.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90년 당시의 유니폼을 반영한듯한 옷을 입었다. 브라질 월드컵때만 예외적으로 바지까지 흰색으로 입었는데,[52] 역대 독일 국대 유니폼 중 유일한 예외이며 이후 다시 검은 바지를 착용했다. 물론, 1970년 월드컵 때 3, 4위전에서도 아래 위 흰색 유니폼을 착용한 사례가 있으나 이 역시 예외적인 사례이며, 이전 4강 전까지는 모두 흰색 상의, 검은색 바지를 착용하고 나왔었고, 이후에도 2014년 이전까지 월드컵에서 아래위 흰색을 입고 출전한 사례는 없다.
2018년의 유니폼은 1990 월드컵 유니폼의 무늬가 좌우 반전되어 들어갔고 무늬의 색이 흑백으로 바뀌었는데 무늬에 들어간 선 여러 개가 밑으로 갈수록 굵기가 달라서 명암 효과가 난다. 디자인은 1990년 월드컵 당시 유니폼과 더불어 잘 나온 디자인이 되었다.
상ㆍ하의 색 조합은 상술했듯 원래 상-흰색 하-검정 조합이지만 예외적으로 프랑스와의 네이션스 리그 두 경기는 상하의 모두 흰색을 착용하고 나왔다.[53] 유로 2020을 앞두고 발표한 홈 유니폼은 흰 바탕에 얇은 가로 줄무늬 13개가 나 있다. 바지는 역시 검은색. 다만 이 유니폼을 입고 스페인에 역사적인 0:6 참패, 그리고 북마케도니아에 졸전 끝에 1:2로 패하는 등 성적이 그닥 좋지는 않다. 그래도 한지 플릭 감독 부임 이후 이 유니폼을 입고 6연승에 27득점 1실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고 있어 부활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2022-23 시즌에는 가운데에 굵은 검은 줄이 있는 유니폼이 공개되었다.
5.2. 세컨드(어웨이) 유니폼[편집]
세컨드(어웨이) 유니폼은 전통적으로 녹색/청록색 상의와 흰색 반바지를 착용했는데, 세컨드로 녹색을 택한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독일이나 영국 축구 사이트에서도 딱히 확실한 정보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독일인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서독축구협회의 로고가 녹색이기 때문이라는 설과 축구장 그 자체를 상징하는 (녹색 잔디와 흰색 라인) 색이라는 가설도 있다. 이 녹색 세컨드 유니폼 전통은 2002 한·일 월드컵 직전까지 유지되었으며, 2002 월드컵 이후에는 2년마다 바뀌고 있다. 하지만 전통의 녹색 유니폼도 주기적으로 다시 채택되고 있다. 과거 독일 대표 팀 사진을 검색해보면 베켄바워나 루메니게, 마테우스가 녹색 유니폼을 입었던 사진을 종종 볼 수 있다.
실착 사례가 많지 않고 때로는 수년 만에 한 번씩 등장하는 유니폼이라 언제부터 착용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월드컵에서는 1970년 월드컵에 최초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1987년까지는 단순한 순 녹색에 흰색 바지였다. 사실 끝물이었던 1987년 세컨드 유니폼(vs 아르헨티나 친선전 실착)을 보면 햇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약간 사선 라인이 보이지만 이는 패턴으로 빛 반사를 조절해서 그런 것이고 기본적으로 색깔 자체는 완전한 순 녹색이었다.
이 녹색 계열 세컨드 유니폼을 착용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자국에서 열린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총 2번 착용했다. 상대가 노란색 상의를 입은 호주전, 스웨덴 전에서 녹색 유니폼을 착용했는데, 대회 공식 로고가 녹색이었기 때문에 깔맞춤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또 이 대회에서 서독은 상하의 모두 흰색 유니폼을 입거나 홈 유니폼도 브이넥, 라운드넥, 반팔, 긴팔 등 다양한 조합을 입고 나와 유니폼의 다양성을 과시했었다. 하지만 74년 대회 이후로는 이런 다양성은 정리되며 78년 월드컵부터는 대회 내내 홈 유니폼을 입거나 불가피한 경우에만 어웨이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이후 1978, 1982 월드컵에서는 세컨드 유니폼을 입은 적이 없었다.
1984년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와의 친선전에서 이례적으로 상하의 모두 녹색으로 된 유니폼을 착용했다.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총 2회 착용했으며, 특히 결승전(vs. 아르헨티나)에서 착용했던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198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아르헨티나가 홈 유니폼, 서독이 어웨이 유니폼을 착용했지만, 199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서독이 홈 유니폼, 아르헨티나가 파란색 상의의 어웨이 유니폼을 착용했다. 그리고 2014냔 월드컵에서도 아르헨티나는 파란색의 어웨이 유니폼, 독일은 하얀색 홈 유니폼을 입었다. 그 세 결승전 모두 홈 유니폼을 입은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1988년부터 당시 트렌드가 반영된 복잡한 패턴의 청록색 계열로 약간 바뀌었고 이후에도 청록색을 기본으로 하면서 조금씩 디자인을 달리했다. 1988-1990 서독 세컨드 유니폼과 같은 시기 동독 유니폼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55] 이 유니폼은 1988년 4월 아르헨티나와의 친선전에서 처음 실착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4강 잉글랜드전에 착용하고 나와서 그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부차기로 간신히 이겨,[56] 이 경기가 1990년 대회에서 독일이 가장 고전한 경기가 되었다.
1992, 1994년에 나온 세컨드 유니폼은 독일 국기의 3색이 홈 유니폼에 들어간 것과 같은 형태로 들어갔다. 이후 1994, 1998 월드컵에서는 전부 홈 유니폼을 착용했다. 그리고 세컨드 유니폼은 1996년부터 2000년까지에 나온 것은 어두운 녹색이었다. 1996년의 세컨드 유니폼은 어두운 녹색 바탕에 흰색 세로 곡선 라인이 들어간 특이한 디자인이었다. 메이저 대회에는 착용한 적이 없어 거의 알려지지는 않았다.
2002 월드컵부터는 2년 주기로 새로운 세컨드 유니폼이 발표되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회색 디자인이 채택되었으나, 월드컵 본선에서 한 번도 실착한 적이 없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독일은 한일 월드컵 때 전 경기 흰색 상의 검은색 하의 흰색 양말을 입었다.
유로 2004에서는 검은색이 채택되었다.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는 오른쪽 소매가 검은색인 빨간색 유니폼이 채택되었는데,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적색이 통계적으로 더 성공적이며, 상대에게 공포감을 더 키워준다"라고 주장한 데에서 나왔다. 월드컵을 앞두고 이탈리아와의 평가전 등에서 선보인 이 빨간색 세컨드 유니폼은 실제로 제법 강렬한 인상을 주었으나, 월드컵 본선에서 착용할 기회는 없었다.[57] 여담으로 이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친선 경기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에게 4-1로 완패한 적이 있어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2008년에는 빨간색 베이스에 검은색을 혼합한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검은색 베이스에 금색 라인이 돋보이는 세컨드 유니폼을 채택했다. 2010 월드컵에서 독일 대표팀은 유독 세컨드 유니폼을 착용할 기회가 많았는데, 총7경기 중 3경기에 이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58][59] 특히 4:0으로 아르헨티나를 격파했던 8강전에 바로 이 검은색 세컨드 유니폼을 착용하고 나와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겨주기도 했다. 디자인도 좋았고 입고 뛴 경기 내용도 좋았던 유니폼이라 지금까지도 어웨이 유니폼중 2번째로 좋은 유니폼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유로 2012에서는 전통적인 초록색 상의, 흰색 바지로 회귀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개최국의 지역 클럽인 CR 플라멩구의 유니폼에서[60] 영감을 받아 독일 국기에 들어가는 색들이기도 한 검은색과 빨간색의 가로 줄무늬에 어깨의 은색 삼선이 조합된 유니폼을 제조하였다. 그리고 조별리그에서 미국과의 경기와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이 세컨드 유니폼을 착용하고 나와 전 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아무래도 위 남아공 때 유니폼보다 우승에 기여한 유니폼이라서인지 이 검빨 유니폼을 어웨이 유니폼 중 가장 좋은 유니폼으로 칭송받고 있다.[61]
유로 2016 에는 소매가 카키색인 회색 어웨이 유니폼으로 결정되었는데, 안쪽은 형광/녹색이며 유니폼을 뒤집어 입을 수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다시 과거의 청록색 상의, 흰색 바지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청록색 계열을 베이스로 모자이크 패턴이 있는 디자인이며, 홈 유니폼, 어웨이 유니폼 모두 1990년 우승 당시 유니폼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이다.
F조 조별리그에서 한국과의 경기[62] 에 이 세컨드 유니폼을 착용하고 나와[63]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4년 전과는 정반대로 선사했다. 조별리그 스웨덴, 멕시코와의 경기 때는 홈 유니폼을 입었는데, 사실 한국과의 경기에서도 홈 유니폼을 입어도 될 듯했다. 하의를 조합해서 상하의 모두 하얀색을 입거나 아니면 한국이 홈과 어웨이를 조합해서 빨간색 상의, 하얀색 하의를 입는 것도 가능했지만 결론적으로 한국은 홈, 독일은 어웨이를 입고 나왔다.
2018년 어웨이 유니폼인 청록색 상의, 흰색 바지 디자인을 입고 나간 경기에서 독일은 출시되고 1년 넘게 한 번도 못 이기다가[64] 2019년 6월 유로 예선에서 벨라루스를 꺾으며 드디어 이 유니폼을 입고 1승을 챙겼다.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를 보면 2020년 어웨이 유니폼은 검은색으로 회귀할 것이고, 어두운 회색/은색과 조화를 이룰 거라고 한다. 당연히 팬들은 환호 중. 바지는 홈 유니폼 바지와 같은 색이다. 이 유니폼을 입고 유로 2020에서 헝가리를 상대로 극적인 무승부를 거둬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서 벗어나 16강에 진출했다. 다만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치른 잉글랜드와의 16강전은 패배했다.
위에도 나오지만, 아르헨티나,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유독 어웨이 유니폼을 입을 일이 많았다. 이는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모두 흰색 베이스의 상의와 짙은색의 바지를 입기 때문에 양 팀이 맞붙을 때 한쪽은 세컨드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하지만 1993년 마이애미에서 열린 친선전처럼 독일, 아르헨티나 양국 모두 홈 유니폼을 입고 경기한 적도 있다. 이때는 독일 홈 유니폼 어깨에 강한 삼선이 있었다. 참고로 아르헨티나의 세컨드 유니폼은 파란색 혹은 검은색 계열인데, 예전에는 파란색 베이스인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검은색 계열이 채택되는 경우가 많다.
위에 나와있는 것처럼 초록색 유니폼의 경우 서독시절에 가끔 입었던 유니폼이다 보니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매우 낮으며, 해외에서도 2018년 월드컵 한국전 전까지는 독일이 초록색 옷을 입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65] 특히 유로 2012에서 독일이 전통적인 초록색 어웨이 유니폼을 채택하자 한 국내 스포츠 기사에서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도 아니고 왜 뜬금없이 초록색이냐"라고 비판할 정도였다.
2022-2023 시즌에는 검은 바탕에 빨간색 무늬가 들어간 유니폼이 공개되었다.
6. 홈 경기장[편집]
홈 경기장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대표팀 홈 경기는 국내 곳곳에 분산해서 개최한다. 1908년부터 현재까지 43개 도시에서 홈 경기를 주최하였는데, 이 도시 중에는 브레슬라우, 쾨니히스베르크, 슈테틴, 보이텐 등 제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잃어버린 구 동방 영토[66] 들과 안슐루스에 의해 독일에 합병되었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1938년부터 1942년까지 3번 개최한 것도 포함된다.
2021년 3월 31일 현재, 독일 국가대표팀의 총 427회 홈 경기 중 베를린(46회), 함부르크(37회), 슈투트가르트(33회), 쾰른(28회), 하노버(27회), 도르트문트, 뮌헨 등에서 많은 경기가 열렸다. 베를린이 수도 치고 많은 경기가 열리지 않은 편인데, 이는 동서독 분단 당시 서베를린이 동독 영토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이유로 서독의 다른 주요 도시에 많은 경기가 열린 것이 특징이다.
UEFA 선정 카테고리 4 경기장이 무려 5개(헤르타 베를린의 홈구장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바이에른 뮌헨의 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 함부르크 SV의 홈구장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홈구장 지그날 이두나 파크, 그리고 FC 샬케 04의 홈구장 펠틴스 아레나)나 있는 데다 그에 못지않은 카테고리 3 경기장은 수두룩할 정도로 뛰어난 인프라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홈 경기장이 자주 바뀐다.
7.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역대 감독[편집]
Bundestrainer
대표팀 수석 코치가 다음 감독을 자동 승계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프란츠 베켄바워를 제외하면 베르티 포크츠 감독까지 모든 감독들이 수석 코치직에 있다가 감독직에 올랐다. 그러다가 포크츠의 후임인 에리히 리베크 감독 때부터 위르겐 클린스만 때까지는 이러한 전통이 지켜지지 못했는데, 이때가 독일 대표팀의 암흑기와 일치한다. 앞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암흑기 당시 독일 대표팀의 위기의 원인은 선수층의 세대 교체 실패 외에도 걸출한 지도자의 부재가 한몫했다.
이는 좀 더 냉정히 말하면, 분데스 자체의 폼과도 연관지을 수 있다. 독일이 괄목한 성과를 못내던 2002년 이후부터 분데스 클럽의 행보를 보면, 뮌헨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고[67] 다른 팀들은 재정적인 문제[68] 로 힘든 기간을 보내왔다. 실제로, 도르트문트 & 뮌헨이 과거 명성을 회복하고 레버쿠젠과 샬케가 다시 살아나고 챔스에서 두각을 보여주던 2010년대 이후, 독일은 끝끝내 2014년 월드컵 트로피를 다시금 되찾게 되었다.[69] 허나, 다시금 바이에른의 주축선수들이 무너지고 레버쿠젠 & 샬케가 확실히 폼이 떨어지면서 위의 베테랑을 대체할 만한 선수들이 나오지 않게 되자, 다시금 독일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엄청난 대굴욕을 맛보면서 조별 탈락의 결과를 맛보게 되었다.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 명칭은 Bundestrainer(분데스트레너, [ˈbʊndəsˌtʁɛːnɐ])다. 번역하면 '(독일) 연방 감독' 정도 되겠다. 지방 자치가 발달해 있는 독일에서는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 책임자들에게는 앞에 Bundes를 붙인다. 예를들어 그냥 minister라고 하면 주정부 장관을 의미하며, 중앙정부 장관은 Bundesminister라고 한다. Bundestrainer 명칭은 종목과 관계없이 독일의 모든 국가대표팀 감독에게 사용된다. 하지만 구기 종목 가운데서도 선수가 10명이 넘는 축구의 특성상 감독의 역할이 지대하기 때문에 스포츠에서 감독이 거론되는 종목은 축구와 야구 말고는 의외로 별로 없다. 때문에 독일에서도 Bundestrainer 하면 사실상 축구 대표팀 감독을 뜻하는 고유명사화되었다. 구글로 쳐봐도 축구 대표팀 감독들만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감독 명칭은 Reichstrainer(제국 감독)였다. 한편 프란츠 베켄바워, 루디 푈러처럼 현역에서 은퇴하고 지도자 경력없이 바로 국대 감독이 된 경우에는 감독 라이선스가 없기 때문에 Bundestrainer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Teamchef(팀셰프)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번역하면 '팀장'이라는 뜻이다. 그밖에 Nationaltrainer(나치오날트레너, 직역하면 국가 감독)라는 명칭도 있는데 구글로 검색해보면 거의 쓰이지 않는 명칭인 것으로 보인다.
에리히 리베크를 제외하고 승률이 50% 아래로 떨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71]
9. 역대 전적[편집]
다른 나라 대표팀과의 역대 전적은 독일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정렬 기준: 승률 → 대결 횟수 → 상대 전적상 승수 → 득점수 → 득점률
9.1. FIFA 월드컵[편집]
FIFA 월드컵 역대전적 서열: 2위
★★★★②②②②③③③③④
자세한 내용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월드컵 랭킹은 2위로서 67승 20무 22패 승점 221점을 기록 중이다.
유럽 국가 대부분이 불참을 선언한 1930년과 추축국이라는 이유로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던 1950년 대회를 제외하면 모든 대회에 본선 진출을 하였으며, 브라질과 함께 참가한 대회에서 지역예선 탈락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87] 둘뿐인 국가이다. 당연히 지역예선에서도 초강세를 보이는데, 2018년 대회 이전까지 지역예선에서 당한 패배가 단 2번에 불과하다.[88] 또한 1938월드컵 1라운드 16강전 탈락(10등)과 2018월드컵 1라운드 32강 조별리그 탈락(22등)을 제외하면 본선에서 2라운드 진출 실패를 한 번도 하지 않았으며, 언급된 네 번의 대회를 제외하면 아무리 못 해도 최소 8강이다.[89] 브라질이나 이탈리아조차 조별리그/16강이나 2라운드 탈락 경험이 몇 번 있고, 같은 월드컵 우승국인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프랑스, 잉글랜드, 스페인조차도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대단한 기록. 위의 월드컵 기록을 표기한 원문자가 유난히 많은 것도 이에 기인한다. 참고로 저건 16강 이상만 기록한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함으로써 월드컵 최초로 4연속 4강의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결승에 오름으로서 통산 최초 8회 결승 진출의 기록도 세웠다. 더불어 2002년부터 2014년 월드컵까지 월드컵 첫 경기에서 항상 4골 이상을 터뜨리면서 산뜻하게 월드컵을 시작했다.[90] 그러나 2018년 월드컵 1차전에서 멕시코에 0:1로 지면서 이 기록도 마감하게 되었다.
독일이 굉장히 놀라운 건 1982년 월드컵 이후 2014년 월드컵 때까지 통일 후유증으로 연속으로 8강에 그쳤던 1994년 월드컵과 1998년 월드컵 이 두 개의 월드컵을 제외하면 계속 4강에 진출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기록도 2018년 대회에서 멕시코에 0:1, 대한민국에 0:2로 패배하면서 1승 2패 대회 22등을 기록해 대한민국과 승점에서 동률을 만들었지만, 골 득실에서 밀리며 조 꼴찌로 세르비아와 월드컵 공동 22위로 탈락해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다만, 최고 수준의 강팀으로 손꼽히는 것 치고는 의외로 조별리그 성적은 좀 부실한 편이다.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16강 조별리그에서는 그 당시 최강의 팀이었다고는 하나 헝가리에게 3:8로 학살을 당하기도 했고[91]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24강 본선에서 역시 알제리에게 일격을 얻어맞아 히혼의 수치가 야기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는 이미 한물 간 우루과이와 졸전 끝에 0:0으로 비기고 덴마크에게마저 패하며 24강 조별리그 탈락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회생해서 본선에 올라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24강 본선에서도 콜롬비아와 비겨 흔들리기도 했지만 무사히 우승했다. 이후 1994 FIFA 월드컵 미국 24강 본선에서도 대한민국을 상대로 엄청난 고전을 했고 스페인과 비겼으며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32강 본선에서도 조 1위는 했으나 하마터면 유고슬라비아에게 패할 뻔했다. 최근 세 개의 대회의 경우 결과가 매우 해괴한데 같이 편성되는 3개 팀 중 제일 약한 팀을 상대로 가장 졸전을 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아예 세르비아에게 패했는데 해괴한 건 이 세르비아가 독일 하나만 이기고 1승 2패 대회 23위로 16강 실패하며 32강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역시 가나와 비겨 체면을 구겼는데 그 가나 역시 독일 하나만 비기고 1무 2패의 기록으로 조별리그 탈락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는 대한민국에게 0:2로 지면서 1938 프랑스 월드컵 1라운드 16강 탈락(10등)에 이어 두 번째이자 78월드컵 2라운드 8강 조별리그 탈락(6등) 이후 80년 만에 1라운드 32강 조별리그에서 탈락(22등)을 했고, 32강 조별리그 체제가 도입된 이후로는 최초로 32강 조별리그 탈락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다. 볼드체 표시된 팀은 역대 월드컵 우승국들이다. (전적은 3승부터 볼드체 처리한다.)
대륙별 상대 전적은 다음과 같다.
위의 전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모든 대륙에 골고루 강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는 북중미와 아시아 팀을 상대로 불패를 기록했고 아예 아시아 팀을 상대로는 6전 전승을 거두었을 정도로 아시아 팀의 저승사자나 다름 없는 팀이 독일이었다. 또 북중미 팀이 기록한 1무도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멕시코가 거둔 기록인데 승부차기에서 독일에 패배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아시아와 북중미 팀을 상대로는 무패 신화를 써내려갔던 것이다. 그런데 월드컵에서 아시아와 북중미를 상대로 기록한 무패 신화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멕시코에 0:1로 지면서 먼저 북중미 팀들을 상대로 한 무패 기록이 마감됐고, 3차전에서는 조현우가 선방쇼를 펼친 대한민국에 0:2로 완패를 당하며 아시아 팀들을 상대로 한 무패 기록도 막을 내렸으며, 또한 카타르 월드컵에서 일본에 1:2로 역전패를 당하여 전 대회에 이어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에 2연패를 당하는 치욕적인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아프리카 팀을 상대로도 아직은 1982년 스페인 월드컵 24강 조별리그 때 알제리에 1:2로 패배한 이후 36년 동안 단 1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남미 팀을 상대로도 네덜란드와 함께 남미 국가들에 단 2번밖에 지지 않았다.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남미 팀은 아르헨티나[108] 와 브라질[109] 단 둘뿐인데, 모두 월드컵 결승전이었다.[110] 그 정도로 독일은 남미를 상대로 초강세를 기록하고 있다. 실상 같은 유럽 팀에 비교적 약세를 보인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하다. 실제로 월드컵에서 종종 독일을 엿먹여온 팀들은 유럽 팀들이 대부분이다.
역대 월드컵 우승국들과 월드컵에서 모두 맞붙어 본 바 있는데 이 팀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탈리아를 상대로만 단 1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이를 아주리 징크스라고 부른다. 월드컵에서 5번을 만나 2무 3패를 기록하며 이탈리아에 승점을 11점이나 헌납하는 굴욕을 겪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월드컵 전체를 통틀어 조별리그에서 2번, 토너먼트에서 3번을 만났는데 조별리그에서 만났던 1962년과 1978년에는 2번 다 무승부를 기록하여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반면, 토너먼트에서 만났던 1970년, 1982년, 2006년에는 모두 이탈리아에 패배했고 이 중 1982년과 2006년에는 이탈리아가 우승컵을 차지했다. 1970년 대회에선 준결승에서 만나 프란츠 베켄바워와 게르트 뮐러 등의 맹활약으로 연장전까지 가는 팽팽한 접전 끝에 엎치락뒤치락 명승부를 펼쳤으나 결국 3:4로 패배했고 1982년 대회에선 결승전에서 만났는데 이때에 독일은 이탈리아에 시종일관 밀리는 경기를 하다 파울 브라이트너의 골로 간신히 영패만 면하며 1:3으로 패배해 이탈리아에 우승컵을 넘겨야 했다. 2006년 대회에선 다시 준결승에서 만났는데 이때는 독일 홈에서 열린 만큼 아예 독일 국대가 무려 71년 동안 불패의 신화를 기록했던 도르트문트에서 맞붙었으나 그 승리의 땅 도르트문트도 아주리 징크스만은 꺾지 못했다. 승부차기로 넘어가는 듯했으나 연장 후반 14분과 연장 후반 추가 시간 1분에 연달아 2골을 실점하며 0:2로 또 다시 무릎을 꿇어야 했다.
반면, 월드컵 우승국들과 맞붙어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상대는 바로 아르헨티나이다. 독일과 아르헨티나는 총 7번 맞붙었는데 4승 2무 1패의 성적으로 무려 14점을 획득했다. 이것은 독일이 단일 팀을 상대로 얻은 승점 중 가장 많은 승점이다. 그나마도 이 2무 중 하나인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8강전에서 만나 1:1로 비긴 뒤 독일이 승부차기 4:2로 승리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5승 1무 1패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아르헨티나 입장에서 독일은 번번이 월드컵 우승을 가로막는 태산과도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의 맹활약으로 독일을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걸 빼면 번번이 아르헨티나가 독일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 다음 대회인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선 다시 또 결승전에서 리턴 매치를 했으나 이때는 독일이 1:0으로 승리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2006~2014년까지는 3개 대회 연속으로 토너먼트에서 만났는데 번번이 독일에 발목을 잡혔다. 특히 2010년 남아공 월드컵 8강전에선 독일에 영혼까지 탈탈 털리며 0:4로 대패를 당하는 굴욕을 당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결승전에서 만나 24년 전 일의 복수를 다짐했으나 마리오 괴체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또 다시 0:1로 패배해 독일에 우승컵을 넘겨야 했다.
독일에 패배를 안긴 국가는 이탈리아(3패), 세르비아(2패), 대한민국(1패), 체코(1패), 스위스(1패), 헝가리(1패), 스웨덴(1패), 프랑스(1패), 잉글랜드(1패), 오스트리아(1패), 알제리(1패), 덴마크(1패), 아르헨티나(1패), 불가리아(1패), 크로아티아(1패), 브라질(1패), 스페인(1패), 멕시코(1패),
반대로 독일이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팀은 차례대로 아르헨티나, 세르비아, 스웨덴(4번), 우루과이, 칠레, 오스트리아, 미국(3번)이 있다. 가장 많은 승점을 획득한 팀은 최근 3연속 월드컵에서 맞붙기도 한 아르헨티나(7경기 14점)로, 2위인 세르비아(7경기 13점), 그리고 브라질:스웨덴과 더불어 월드컵에서 가장 많이 만난 팀으로 기록되어 있다.[112]
독일에 상대 전적이 앞서는 국가는 이탈리아, 덴마크, 크로아티아, 동독, 일본으로 다섯 팀이다. 이탈리아야 독일의 전통적인 천적으로 명성이 나있고, 특이하게도 동독을 상대로 1패를 기록하여 독일이 독일에 밀리는 기묘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서독 대표팀의 기록을 승계했기 때문이다. 동독 대표팀은 1974년에 단 1번 월드컵 본선에 올랐는데 그때 독일을 1:0으로 꺾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더군다나 1990년 이후로 동독이란 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기에 되갚아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다시 나라를 쪼개지 않는 한. 브라질, 알제리에게도 상대 전적이 밀렸지만 2014년 재대결에서 승리하면서 호각세를 보인다.
독일과 호각세를 보이는 국가는 브라질, 헝가리, 체코, 콜롬비아, 불가리아,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알제리, 튀니지로 총 9팀이다. 상기했듯 가장 최근 대회에서 브라질, 알제리와의 대결을 모두 이기면서 열세를 호각세로 끌어올렸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게는 모두 상대전적이 앞선다. 특히 러시아, 벨기에, 포르투갈, 칠레, 파라과이, 미국, 코스타리카, 스코틀랜드, 카메룬, 페루, 터키, 에콰도르,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호주, 볼리비아, 아랍에미리트까지 총 18팀에게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2002년 32강 조별리그 사우디아라비아전 8:0 승리고, 최다실점 기록은 1954년 16강 조별리그 헝가리전 3:8 패배이다. 둘 다 8골로 같으며, 최다실점 기록을 세운 1954년엔 이렇게 대패를 당하고도 패배를 안긴 팀을 헝가리를 상대로 결승전에서 3:2로 역전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내리 두 골을 실점하고 역전승으로 우승한 것은 월드컵 역사상 유일한 기록이기도 하다.
의외로 브라질과는 월드컵 투톱임에도 불구하고 2002년 결승전에서 붙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브라질과 독일이 전적 랭킹 각각 3위, 4위인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와 4번 이상씩 만났고 월드컵 연속 진출 횟수 1~2위라는 걸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로 못 만난 격이다. 두 팀 간의 전적은 1승 1패로 호각세를 기록하고 있으며, 골 득실에서는 독일이 +4, 브라질이 -4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2014년에 브라질이 본인들 안방에서 독일에 1:7로 대패를 당한 것이 원인이다.
한편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한 후 통일되면서, 자연히 1994년 대회부터 통일 독일로 월드컵에 나오게 되었다. 1994년과 1998년에는 8강 문턱에서 떨어졌지만, 그 이후로는 최소 준결승전에는 진출하는 괴력을 보이고 있다. 2002년 준우승, 2006년 3위, 2010년 3위, 그리고 2014년에 마침내 통일 이래 첫 월드컵 우승을 달성했다. 이 우승과 동시에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월드컵 통산 득점 1위에 오르는 겹경사도 맞았다. 그러나 2018년 대회에서는 2010년의 이탈리아와 2014년의 스페인에 이어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하며, 멕시코와의 1차전 경기에서 0:1로 패배하고, 스웨덴과의 2차전 경기에서는 2:1로 역전승을 하였으나 대한민국과의 3차전 경기에서 0:2로 또 다시 지는 바람에 결국 조 최하위, 월드컵 22위로 16강 진출 실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2021년 4월 1일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지역예선에서 상대적 약체인 북마케도니아에게 홈에서 1:2로 패배하는 치욕을 당했지만 6개월뒤 10월 11일 원정경기에서 4:0으로 복수에 성공해 개최국 카타르를 제외 한 전 대륙 팀 중 가장 먼저 월드컵 진출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올라간 월드컵 본선에서는 1차전 일본에게 패하며 직전 월드컵에 이어 동아시아팀들에게 처음으로 연달아 2연패를 당하는 수모를 당했고 스페인전부터는 정신을 차렸는지 1:1로 무승부를 기록하고 마지막 3차전 코스타리카를 4:2로 잡았지만 일본이 역대급 이변을 일으키는 바람에 독일 축구 역사상 최초로 두 대회 연속 조별리그를 탈락하게 되었다.
9.2.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편집]
컨페더레이션스컵이 출범한 90년대 이후부터 쇠퇴기를 겪었으며, 유로 1996 대회 우승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준우승국 자격으로 출전이 가능했던 1997년, 2003년[114] 대회에는 불참하는 등 컨페더레이션스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나 2017년 대회에서 기존 주전들을 전부 제외하고 1.5~2군 선수들만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컨페드컵에서도 첫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다음해에 1군 선수들로 대한민국에 0:2로 패배하면서 조 최하위로 32강 조별리그 탈락(22등)과 세르비아와 공동 월드컵 22등로 16강 실패를 경험했다.
9.3. UEFA 유로[편집]
UEFA 유로 : 1위
꾸준함이 빛나는 월드컵보다는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총 전적 53전 27승 13무 13패, 78득점 55실점으로 최다 우승 타이틀과 함께 역대 전적 1위에 올라 있다.
다른 나라들과의 역대 전적은 아래와 같다.
독일이 패배를 기록한 나라들은 스페인(2패), 네덜란드(2패), 잉글랜드(2패), 프랑스(1패), 이탈리아(1패), 포르투갈(1패), 체코(1패), 크로아티아(1패), 덴마크(1패)로 총 9팀이다. 이 중 유일하게 프랑스 단 1팀을 상대로만 전패를 기록 중이다. 스페인, 네덜란드, 잉글랜드를 빼면 모두 1번씩만 패배했다.
독일이 승리를 기록한 나라들은 체코(3승), 포르투갈(3승), 네덜란드(2승), 러시아(2승), 덴마크(2승), 벨기에(2승), 스페인(1승), 크로아티아(1승), 스웨덴(1승), 그리스(1승), 터키(1승), 폴란드(1승), 세르비아(1승), 루마니아(1승), 스코틀랜드(1승), 슬로바키아(1승), 북아일랜드(1승), 우크라이나(1승), 오스트리아(1승)로 총 19팀이다.
독일이 유로에서 상대전적 열세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들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로 총 4팀이며, 호각세를 이루는 나라들은 네덜란드, 크로아티아, 라트비아, 헝가리로 총 4팀이다. 나머지를 상대로는 전부 상대전적 우세를 보이고 있다. 이 중 벨기에, 스웨덴, 터키, 세르비아, 스코틀랜드, 슬로바키아, 북아일랜드, 우크라이나, 오스트리아까지 총 9팀을 상대로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독일이 유로에서 가장 많은 승점을 획득한 상대는 체코와 포르투갈로 두 팀 모두 총 5경기 10점을 기록했다. 그 다음으로 러시아, 네덜란드에게서 각각 7점씩 획득하여 뒤를 이었다. 러시아는 3경기 7점, 네덜란드는 5경기 7점을 기록했다.
유로 통산 성적 2위인 프랑스와는 의외로 2012년 대회까지 단 1번도 만나지 못했다가 2016년 대회 4강전에서 처음 만났다. 그 경기에서 0 : 2 패배를 기록해 월드컵과 달리 유로에선 프랑스에 상대 전적 열세를 기록하고 있다. 유로 2020 24강 본선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0:1로 패배하면서 열세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스페인을 상대로도 월드컵과 달리 유로에선 1승 2패로 전적 열세이며 이탈리아에는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유로에서도 전적 열세이며 단 1번도 못 이겨봤다. 잉글랜드를 상대로도 1무 2패로 전적 열세를 보인다.
9.4. 네이션스 리그[편집]
하필 카잔 참사 이후 시행된 리그라 독일의 네이션스 리그의 성적이 처참하다. 첫 시즌에서는 1승도 못하고 강등권까지 내려갔다가 룰 변경으로 인해 강등이 취소되었고, 두 번째 시즌에서는 스페인과의 마지막 경기를 비겨도 결선 토너먼트에 가는데, 6:0 대참사를 당했다. 세 번째 시즌에서는 기어코 천적이지만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당한 암흑기 이탈리아를 만났는데 문제는 첫 경기부터 그런 이탈리아를 이기지 못하고 무승부로 마무리되었다. 다행히 4차전에서 이탈리아에 5득점을 하면서 아주리 징크스를 44년 만에 깨면서 이탈리아에 굴욕을 선사했지만 문제는 잉글랜드와 헝가리에게도 무를 캐며 최악의 경우 독일도 강등권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도 나왔다. 결국 잉글랜드가 강등되었다.
9.5. 올림픽[편집]
- 1964 도쿄 올림픽: 동메달(사실상 동독 팀)
- 1988 서울 올림픽: 동메달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은메달
- 2020 도쿄 올림픽: 조별리그 3위(탈락)
10. 사라진 팀[편집]
동독 축구 국가대표팀과 자를란트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조 바람.
11. 라이벌[편집]
축구 강대국이고, 지리적으로든 역사적으로든 유럽의 중심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에, 많은 나라가 독일의 라이벌로 꼽힌다.
축구 내적인 부분에선 브라질,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스페인이 라이벌로 꼽히고, 축구 외적인 역사적인 부분을 볼 때 폴란드가 대표적인 라이벌로 꼽힌다. 축구 내외적인 부분을 모두 포함하였을 때 독일 국가대표팀의 라이벌은 보통 잉글랜드, 네덜란드, 프랑스가 거론된다. 다만 프랑스의 경우는 독일과 주요 매치에서 만난 적이 적은 편이어서 실제적으로는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두 팀이 많이 거론된다.
폴란드의 경우 축구 내적인 면에선 독일의 라이벌이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하지만,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비롯한 여러 이슈들이 얽혀 있어 양 국가대표간의 경기에서는 늘 긴장감이 감돈다. 일례로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조별리그 2차전이 폴란드전이었는데, 2005년 11월에 독일, 폴란드 양국 훌리건들끼리 전초전을 치르고 경기 당일에는 독일 전역에서 패싸움을 벌였다.
잉글랜드의 경우 가장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독일의 최대 라이벌이다. 그리고 개리 리네커의 명언처럼 공독증이라 불릴 정도로 잉글랜드를 상대로 큰 경기에서 강하고 상대전적에서 우위에 있던 독일이었다.[116] 그리고 잉글랜드가 세대 교체에 성공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이전까지 독일의 국제 대회 성적이 훨씬 좋았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 이후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심지어 독일은 최근 맞대결인 유로 2020에서 라이벌 잉글랜드에 패해 조기 탈락했다. 잉글랜드는 2017 U-20 월드컵 우승을 시작으로 인재가 화수분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해외 리그 의존을 줄이고 홈그로운을 통한 자체 수급이 가능해졌다. 소위 황금 세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독일은 그 반대로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그 외의 동유럽 등으로부터 인재 유입이 더 많아졌고 자국 선수의 경쟁력은 계속해서 떨어져 가는 상황이라 현재의 전세 역전은 필연적이라 볼 수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폴란드처럼 독일에게 침공을 당한 적이 있으면서도 축구 실력이 대등한 편이라 축구 내외적인 면을 모두 볼 때 독일의 라이벌 이라고 하면 잉글랜드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팀이다. 잉글랜드 역시 독일과 1,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역사적으로 얽혀 있으면서도, 월드컵에서 중요한 승부처에서 많이 만났고, 또 그 승부처가 오심 논란들이 양쪽에서 일어나는 등 독일과의 주요 라이벌 팀이다.
독일과 함께 4회의 월드컵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는 독일의 주요한 맞수이자 천적으로 꼽힌다. 독일은 현재까지 메이저급 국제 대회에서 이탈리아에 유로 2016 승부차기 승리와 88올림픽 3:0 승리를 제외하고는 이겨본 적이 없다. 아주리 징크스 문서 참조.
아르헨티나와는 월드컵에서 징그럽게 많이 싸워서 라이벌로 엮인다. 결승전에서 3번을 만나서 월드컵 결승전 사상 역대 최다 매치업이다. 이 중 1986년과 1990년 2회 연속으로 결승전에서 만났는데 1986년 대회때는 2:3으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1990년 대회에서는 1:0으로 승리하고 복수에 성공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21세기에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 3회 연속으로 만나서 모두 이겼으며, 1958년과 1966년에는 조별리그에서 만났다.
12. 역대 대표팀[편집]
자세한 내용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역대 대표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 현재 선수 명단[편집]
14. 역대 주요 선수[편집]
14.1.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편집]
팀의 명성에 비해 센추리 클럽 선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117] , 기본적으로 80년대 이전 서독이 잘 나가던 시절에는 워낙 주전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베켄바워와 루메니게를 제외하면 대표팀에서 100 경기 내외로 롱런한 선수들이 없다. 80년대 이전에 서독 대표팀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친 선수라 해도 기록을 찾아보면 의외로 50경기 이하로 출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70~80년대 서독 대표팀에서 매우 큰 임팩트를 남기며 한 시대를 이끈 선수들이라 할 수 있는 클라우스 피셔, 파울 브라이트너, 클라우스 알로프스조차도 워낙 치열한 주전 경쟁 탓에 출장 횟수는 의외로 많지 않다. 심지어 월드컵 통산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던 게르트 뮐러조차도 국가대표 출장이 62경기에 불과할 정도니. 귄터 네처, 디터 뮐러, 베른트 슈스터 같이 시대를 풍미한 스타플레이어도 의외로 대표팀 출장 횟수가 저조하다. 수준 높은 여러 선수들 중에 누굴 골라야 할지 항상 감독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팀이 서독 국가대표팀이었다.
오히려 1990년대 ~ 2000년대 중반까지 독일 대표팀이 암흑기에 있던 시절 선수들이 대표팀 출장 횟수가 많은 편이다. 당시 분데스리가의 쇠퇴로 독일 선수 층이 얇아지면서 좋지 않은 팀 전력에도 불구하고 대체할 자원이 부족하여 계속 주전으로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또 과거에는 오늘날만큼 A매치가 빈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70~80년대 서독은 월드컵, 유로 등 메이저 대회에서 가장 많이 우승하던 팀이었는데, 당시에는 우승국에 다음 대회 자동 출전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서독은 지역 예선을 면제받아서 다른 나라보다 A매치 횟수가 더욱 적었다.
가장 아쉬운 케이스는 칼 하인츠 루메니게와 미하엘 발락이다. 루메니게는 80년대 전반 서독 대표팀을 이끌며 80년 유로 우승, 82년 월드컵 준우승, 86년 월드컵 준우승 등을 일궈내며 독일 대표팀의 역사의 한 장에 남는 활약을 했고, 본인도 대표팀과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년 연속 발롱도르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월드컵 우승에 실패하면서 프란츠 베켄바워나 로타어 마테우스에 이를 만한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고, 국가대표팀 출장 경기 역시 95경기 출장에 그쳐 센추리 클럽 가입이 좌절되었다. 준우승의 제왕으로 콩락이라 불리는 미하엘 발락은 2010년 월드컵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대회 직전 불의의 부상으로 출전을 하지 못했다. 그의 국가대표 출장은 98경기에서 그치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루디 푈러도 아까운 케이스다. 푈러는 독일 대표팀의 전성기인 80년대에 활약하면서 클라우스 피셔, 칼 하인츠 루메니게 같은 분데스리가 올타임 레젠드를 포함하여 클라우스 알로프스, 호르스트 흐루베슈, 위르겐 클린스만, 칼 하인츠 리들레, 울프 키르스텐,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등 쟁쟁한 선수들과 주전 경쟁을 하면서도 대표팀에 90경기를 출장했다. 루디 푈러는 자주 비교되는 위르겐 클린스만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불운한 케이스인데, 클린스만보다 더 뛰어난 기량과 득점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잘못 타고나 박터지게 주전 경쟁하며 어렵게 대표팀 생활을 했지만 클린스만처럼 암흑기에 활동하며 어렵지 않게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선수들만 못하게 되었다. 물론 푈러뿐만 아니라 위에 있는 루메니게도 마찬가지. 88년부터 대표팀에 주전으로 선발되기 시작한 클린스만은 이후 독일 대표팀이 암흑기에 빠져들며 극도의 공격수난에 시달리자 걸핏하면 감독에게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출장 안 하겠다며 배짱을 튀겨 가며 대표팀에 승선했다. 클린스만이 108경기에 출장하며 47득점을 한 반면, 루디 푈러는 클린스만보다 18경기나 적게 출장하고도 똑같은 47골을 기록했다는 점을 보면 시대를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임팩트로도 루디 푈러가 클린스만보다 훨씬 뛰어난데, 클린스만이 메이저 대회에서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90년 월드컵 16강 네덜란드전 골 정도이며, 그 외에는 의외로 메이저 대회 토너먼트에서 골이 거의 없다. 반면 루디 푈러는 네 차례 월드컵에 출전하여 1회 우승, 2회 준우승을 거두는 동안 숱하게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서독이 준우승을 차지한 86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에게 2:0으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푈러가 교체 투입된 후 원맨쇼를 펼치며 2:2 동점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아 전 세계를 열광시켰던 장면은 독일 축구 역사상 남는 명장면이다. 아쉽게도 아르헨티나가 추가골을 넣고 서독이 패하면서 완전히 묻히고 말았지만 만약 독일이 결승골을 넣고 우승했더라면 월드컵 역대급 영웅이 될 뻔했다. 사실 이 경기는 나중에 베켄바워 감독도 인정했듯이 마라도나와 아르헨티나의 전력을 너무 과대평가해서 공격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수비 전술로 나왔던 전술적 패배였다. 때문에 처음부터 푈러를 스타팅 멤버로 포함시키고 기존 전술대로 운용했다면 서독이 충분히 우승했을 수 있다는 평가도 많다. 4년 후 베켄바워와 독일 대표팀은 하던대로 공격적 전술로 나왔고, 아르헨티나를 시종일관 압도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어쨌거나 시대를 잘 만난 클린스만은 루디 푈러보다 부족한 기량에도 불구하고 센추리 클럽에도 가입하고 베르티 포크츠 감독에게 96 유로에 마테우스를 출전시키면 자기는 출전하지 않겠다고 압박을 넣어 정적 마테우스를 강제 은퇴시키고, 또 감독에게 자기에게 마테우스의 주장 완장을 주지 않으면 불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현대 축구에서는 다소 이례적으로 스트라이커로서 주장이 되어 2016년 독일 대표팀 종신 명예 주장으로 추대되는 영예까지 얻게 되었다. 게르트 뮐러, 클라우스 피셔, 루메니게, 루디 푈러 등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씁씁한 일.
제프 마이어 역시 아까운 케이스다. 마이어는 독일의 황금 골키퍼 라인의 선조라 할 수 있는 골키퍼지만 그 역시도 국대 초창기에 뛰어난 선임 골키퍼에게 밀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다 보니 95경기 출전에 그치며 독일 최초의 센추리 클럽 가입 골키퍼라는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하였다. 이 타이틀은 2021년 6월이 되어서야 마누엘 노이어가 가져가게 된다.
그 밖에 70년대 서독 대표팀의 부동의 풀백이었던 베르티 포크츠도 대표팀 96경기 출장 기록을 보유하여 센추리 클럽에 근접하는 출장 기록을 남겼다.
14.2. 역대 주장[편집]
그 밖에 1시즌 이하 단기간 주장을 역임했던 선수들은 다음과 같다.
14.3. 역대 주요 공격수[편집]
이 외에 요아힘 슈트라이히가 동독 국가대표팀에서 98경기 53골을 기록하여 동독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 위 리스트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70년대 분데스리가 전성기 시절 게르트 뮐러, 클라우스 피셔, 유프 하인케스, 칼 하인츠 루메니게 등 분데스리가 올타임 레전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시대를 풍미했던 디터 뮐러도 서독 대표팀에서 12경기 9골, 서독 대표 B팀에서 6경기 6골이라는 대단히 걸출한 골결정력을 기록했다. 디터 뮐러는 현대 축구가 본격화된 60년대 이후 선수들 중에서 게르트 뮐러 다음 가는 높은 득점률을 기록했지만 당시 게르트 뮐러, 클라우스 피셔, 칼 하인츠 루메니게라는 기라성 같은 다른 공격수에 밀려 대표팀에 단 12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다. 1976년 게르트 뮐러와 유프 하인케스가 대표팀에서 은퇴한 직후 세대 교체 멤버로서 클라우스 피셔, 칼 하인츠 루메니게와 함께 한동안 번갈아 대표팀에 기용되었지만 결국 서독 대표팀은 1978년 월드컵을 앞두고 경험이 풍부한 클라우스 피셔와 신예지만 재능이 풍부한 루메니게를 주전 공격수로 택하여 고정했고 이로서 디터 뮐러는 더 이상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하고 2년간 짧은 대표팀 커리어를 마감했다. 월드컵 우승 2차례 및 준우승 2차례를 거두던 70~80년대 당시 서독 대표팀의 주전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디터 뮐러뿐만 아니라 1980년대를 전후로 서독 대표팀에 뛰었던 선수들 대부분이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워낙 치열한 주전 경쟁 탓에 50경기 이상 대표팀 출장을 기록한 선수들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였고 레전드인 게르트 뮐러나 루메니게조차도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지 못했다.
전문 공격수가 아닌 선수들 중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선수들을 살펴보면 우선 위 표에 포함된 미하엘 발락(미드필더)이 98경기 42골을 기록했으며, 로타 마테우스(미드필더, 수비수)가 150경기 23골,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미드필더, 윙어)가 121경기 24골, 메수트 외질(공격형 미드필더)이 92경기 23골을 기록했다. 또 미들필더와 공격수로 전천후 활약을 펼치고 있는 토마스 뮐러가 100경기 38골의 누적 기록을 올리고 있는 상태다. 토마스 뮐러는 2019년 대표팀 소집에서 제외되면서 대표팀에서 잠정 은퇴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이후 소속팀에서 폼이 크게 살아나면서 최근 베켄바워가 뮐러의 복귀가 대표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마테우스의 사례처럼 만년에 다시 대표팀에 복귀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상황었고 유로 2020에서 복귀하였다.
은퇴 선수 중 안드레 쉬얼레는 초기에 기대를 받았으나 57경기 22골을 기록하고 만 26세의 나이에 대표팀 커리어를 마친 후 만 29세에 완전히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 과거에 비해 최근 대표팀 경기수가 크게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 할 때 위의 표에 포함된 과거 선수들에 비해서는 살짝 부족한 임팩트를 남겼다 할 수 있다. 또 독일 암흑기 시절 대표팀 스트라이커를 맡았던 케빈 쿠라니는 52경기 19골의 기록을 남겼다.
마리오 고메스 이후 마땅한 최전방 공격수가 없다는 것이 2018년 이후 독일의 특징이다. 티모 베르너가 있긴 하지만 국가대표만 오면 유독 부진하다. 이 때문에 유로 2020까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제로톱 등 대체 전술을 가동하기도 했지만 결과가 시원치 않은 상황이다. 다만 최근들어 유수파 무코코, 루카스 은메차, 카림 아데예미와 같은 신성들의 등장으로 공격진의 숨통이 그나마 트이게 되었다. 독일 공격진의 미래는 이들이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최근들어 장신 공격수 니클라스 퓔크루크의 등장으로 독일 대표팀 공격진에 더욱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15. 징크스[편집]
네덜란드나 이탈리아에 비해 광탈이 2개밖에 없는 팀 답게 유럽 팀 한정 월드컵 공동 최다 우승국 이탈리아에 비해서 징크스가 많이 없다. 게리 리네커가 근 30년간 주장해오다 최근에 철회한 발언답게, 불패는 아닐지언정 이변의 희생양이 된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그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고 특히 세계 축구 사상 아시아 팀에 패배한 첫 디펜딩 챔피언이란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121] 몇 가지 징크스는 있다.
- 지역 예선에서는 절대 탈락하지 않는다. 1930년에는 당시 월드컵의 위상을 유럽 국가 대부분이 하찮게 봐서 불참한 거고, 1950년에는 2차 세계대전의 전범 중 하나로 출전정지를 당한 것뿐이지 실력으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122] 심지어 이탈리아는 2번밖에 아르헨티나는 1번밖에 지역예선에서 탈락하지 않았다. 다만, 2020년대에 들어 독일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약체인 북마케도니아한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탓에 지역예선에서 탈락할 수도 있었지만 개최국 카타르를 제외 한 팀 중에 가장 먼저 2022 카타르 월드컵 진출을 확정지었다. 참고로 브라질은 퍼펙트 개근 출전. 독일도 브라질이 개근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단한 게 유럽 팀 중에서 유일한 기록인 데다가 전 세계로 봐도 브라질만 추가되기 때문이다.
- 이탈리아를 만나면 고전하거나 엿을 먹는다.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이거다. 국제 대회에서 이탈리아만 만나면 이기질 못한다. 물론 예외로 마지막 A매치 대회였던 88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클린스만이 출전한 독일이 이탈리아에 3:0으로 승리한 것과 유로 2016에서 승부차기 승리가 있다.
- 2000년 이후에는 스페인을 만나면 고전하거나 엿을 먹는다. 이탈리아 역시 스페인도 신흥 독일 때려잡는 기계로 급부상했다. 2000년대 이후 국제 대회에서 스페인만 만나면 이기질 못한다. 유로 2008에서도 스페인에 덜미를 잡혀 준우승,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스페인에 덜미를 잡혀 4강, UEFA 네이션스 리그/2020-21 시즌에서 정말 대박이 터졌는데 스페인이 독일을 6:0으로 아주 철저하게 털어버린 것이었다. 이것 때문에 독일이 하마터면 리그 B로 강등당할 뻔했지만 다행히도 우크라이나가 선수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스위스에 몰수패를 당해 대신 강등당해 줘서 리그 A자리를 겨우 유지했다. 2000년 1월 1일 이후 독일이 스페인을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123] 다만 이 징크스는 아주리 징크스에 비해 주목을 덜 받는데 일단 아주리 징크스에 비해 역사가 매우 짧은 데다가 국제 대회에서 한 번도 못 이긴 이탈리아와 달리 국제 대회에서 독일이 스페인을 아예 못 이긴 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 역대 전적도 소폭이긴 하지만 아직 독일이 우세하다.
- 독일이 월드컵에 불참했을 때 우루과이가 우승했다. 이 징크스가 유지되려면 독일이 앞으로 열릴 월드컵에서 지역예선에서 탈락하거나 불참하고 우루과이가 우승해야 징크스가 유지된다. 독일과 우루과이가 맞붙으면 도륙까지는 아니고 1986년 월드컵에서 둘이 1:1로 비긴 적은 있다.
- 코리아 징크스(즉 한국을 만나도 고전하거나 엿을 먹는다.) : A매치는 4번, 국제 대회는 월드컵에서 3번 만난 거라 아직 데이터가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면 징크스라 불려도 좋을 정도로 자주 만난 거다. 최근에 독일이 당한 독일 축구 역사상 최악의 대참사로 인해 갑작스럽게 각인되고 이전의 전적들도 확인되어 결국 확정된 징크스다.
- 녹색 계열의 어웨이 유니폼을 입고 이긴 경기가 거의 없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이라든가, 카잔의 치욕으로 악명 높았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대한민국 전에서 독일은 녹색 계열의 어웨이 유니폼을 입고 그 경기를 진행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4강전 역시 승부차기 끝에 잉글랜드를 이겼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무승부다.
- 브라질 월드컵때까지 검은색 계열의 어웨이 유니폼을 입으면 성적이 나쁘지 않았으나, 유로 2016 이후로는 패배하기 시작했고 유로 2020에서는 밥이었던 잉글랜드한테도 0:2로 졌다. 검은 유니폼 계열을 입은 상태로 좋은 성적을 거둔 건 이제 추억이 되었다.
- 월드컵이 개최되는 연도의 모든 일의 자리 별로 성적 징크스가 확실히 나온다.
- 월드컵 개최 연도의 일의 자리가 4일 때, 그해가 개띠 해가 아니라면 우승을 한다. 서독(독일)이 이뤘던 4번의 우승 중 1990년을 제외하면 모두 일의 자리가 4의 해다. 1954년, 1974년, 2014년. 개띠 해에는 이탈리아가 강해지는 해이니 1934년과 1994년에는 우승하질 못했다.
- 월드컵 개최 연도의 일의 자리가 8일 때, 그 월드컵에선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 1938: 광탈, 1958: 4위는 했지만 14실점 + 조별리그에서의 1승 2무라는 답이 없는 경기, 1978: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에 밀려 2R 탈락, 1998: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 0:3 참패, 2018: 카잔의 치욕으로 광탈.
- 개띠 해에 개최되는 월드컵에서는 월드컵을 98%일 정도로 망친다. 이건 이탈리아가 개띠 해에 결승에 진출하는 징크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이탈리아랑 안 붙으면 준우승은 할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이탈리아랑 만나기 전에 그리고 이탈리아가 월드컵에 못 나올 때 독일이 떨어진 경우도 있다.
- 1934년 월드컵에서는 심판이 독일 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체코슬로바키아에 지고 말았다.
- 1958년 월드컵에서는 4위는 했으나 디펜딩 챔피언 최다 실점 기록을 세웠고 조별리그에서 1승 2무를 기록했다. 이 1승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기록했으며 아르헨티나는 같은 조에 있던 체코슬로바키아한테 1:6으로 대패를 당했는데, 서독은 이 아르헨티나한테 선제골을 허용하고 3:1로 간신히 이겼다. 참고로 체코슬로바키아한테는 0:2로 지고 있다가 간신히 동점을 만들면서 2:2 무승부.
- 1970년에는 조별리그에선 서독다운 모습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했으나 8강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잉글랜드를 만났다. 문제는 2:0으로 지고 있다가 후반 막판에 2골을 만회해 연장까지 끌고갔으며 연장전에서 역전을 하여 승리하였다. 4강에선 이탈리아를 만나서 시작하고 8분만에 골을 먹어 후반 종료 직전 까지 1:0으로 지고 있다가 딱 90분에 동점골을 넣고 연장전까지 가서 연장 시작 4분만에 역전골을 넣었다. 만약 이게 골든골 제도였다면 이탈리아가 세리에 A에서 서독 선수를 안 썼을 수도 모른다. 서독이 역전하고 4분 후 이탈리아가 동점을 만들고 이탈리아가 역전까지 하였다. 하지만 서독은 경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재동점골로 증명을 했다. 현재 스코어는 3:3. 하지만 불과 1분 후 이탈리아가 아주리 징크스의 시발점일지도 모르는 재역전골을 넣었다. 스코어는 4:3. 그리고 10분 후 경기가 종료되고 아주리 징크스가 시작되었다. 3/4위전인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선 1:0으로 이겼다. 결국 서독은 잉글랜드와 마찬가지로 쥘리메컵을 딱 1개만 받아버렸다. 그마저도 도핑으로 우승해서 깨끗하게 이긴 경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 16강에 진출하면 최소 8강은 간다.
- 이탈리아와 스페인 말고도 유고 연방이었던 나라들에게도 엿을 먹는다.
16. 관련 말[편집]
"Football is a simple game; 22 men chase a ball for 90 minutes and at the end, the Germans always win."
축구는 간단하다. 22명이 90분 동안 공을 쫒다가, 결국엔 독일이 항상 이기는 게임이다.
- 게리 리네커
Football is a simple game. 22 men chase the ball for 82 minutes and the Germans get a player sent off so 21 men chase the ball for 13 minutes and at the end the Germans somehow f***ing win.
축구는 간단하다. 22명이 82분 동안 공을 쫒다가, 독일의 한 선수가 퇴장을 당해 21명의 선수가 13분 동안 공을 쫒지만 어떻게든 독일이 X같이 이기는 게임이다.
- 게리 리네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2차전 독일 vs 스웨덴 경기 직후 남긴 트윗 (전술된 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옛날 자신이 남긴 명언을 이 경기를 시청한 이후 새로이 갱신한 것이다.)
Football is a simple game. Twenty-two men chase a ball for 90 minutes and at the end, the Germans no longer always win. Previous version is confined to history.
축구는 간단하다. 22명이 90분 동안 공을 쫓다가, 결국엔 독일이 더 이상 늘 이기진 않는다. 이전 버전은 과거에 한정될 뿐이다.
- 게리 리네커 트위터 F조 최종전 대한민국 vs 독일 경기 직후 남긴 트윗. 순식간에 모든 명언들이 바뀌었다.
17. 대한민국과의 전적[편집]
체감상으로는 독일이 대한민국을 이탈리아와 더불어 '독일의 양대 천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127] 사실 역대 전적을 보면 이탈리아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게 독일이 밀린 적이 있어 독일 킬러라는 호칭이 과장되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 대부분이 월드컵 우승 경력이 있는 전통의 강호들이기에 독일과는 원래부터 항상 엎치락뒤치락하는 관계들이다. 대표적으로 A매치 13패를 당한 브라질에 미네이랑의 비극을 선사했지 않았는가? 하지만 알제리와 한국 상대로는, 두 국가가 세계 축구에서 언더독의 위치에 있음에도 상대 전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한 번도 점하지 못하고 있다. 역대 네 번 맞붙어 2승 2패의 신기록을 나누어 가지고 있고, 심지어 5득점 7실점으로 독일이 대한민국에 골 득실로는 열세다. 대한민국과 독일의 상대 전적 중 3번이나 월드컵 본선에서 맞붙었으며, 월드컵 본선만 놓고 보면 2승 1패로 독일이 근소하게 우위를 점한다(골 득실은 0). 4경기 모두 대한민국과 독일 모두에게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거나 혹은 전 세계의 충격을 안겨준 경기였으며, 특히 가장 최근 경기인 카잔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경기는 현재 한국 축구 역사상 최대의 이변이고, 독일 대표팀에게는 추락의 시작이자 나치 독일의 패전 이후 겪는 최대 굴욕으로 작용하는 축구사적으로 기념비적인 경기로 기록되고 있다.[128][129] 엄밀히 따지자면 독일 입장에서 한국은 천적까지는 아니고, 난적(難敵)정도지만, 양국의 객관적인 전력 차이를 감안하면 한국이 독일의 난적인 것도 신기한 상황이다. 자세한 경기별 내용은 후술.
경기 스코어는 독일 대표팀이 왼쪽이다.
단순히 객관적인 전력만 놓고 보기 이전에, 독일은 또 다른 강팀들을 무자비하게 압살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팀이다. 실제로 아시아의 강팀들이 독일을 상대한 전적만 봐도 이란 2패, 일본 1승 1무 1패[131] , 호주 1승 1무 4패에다가 골 득실이 이란 -4, 일본 -2, 호주 -8로 '아시아 축구 전담 킬러, 혹은 저승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독일을 상대로 유일하게 2승 2패로 팽팽한 전적을 보이고 심지어 골 득실이 +2인 팀이 바로 대한민국이다(월드컵만 보면 1승 2패에 골 득실 차 0). A매치 기준으로 독일이 먼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2연승을 거뒀지만, 이후 친선 경기 및 월드컵 본선에서 2연패를 기록하면서 승패 동률인 것. 앞서 언급했다시피 독일 축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이며 그에 걸맞게 월드컵 우승도 4번이나 차지한 강팀 중의 강팀이지만, 정작 대한민국과 맞붙을 때는 이상하게도 경기 내용 면에서도 엄청난 접전인 데다 심지어 독일이 이길 때는 1점 차 겨우 신승을 거두는 반면, 한국이 이길 때는 2점 차 완승을 거둔다는 기묘한 징크스가 있다.
17.1. 1994 FIFA 월드컵 미국 본선 24강 C조 최종전[편집]
양국 간 첫 맞대결.[132] 지금은 말할 것도 없지만 당시에도 독일은 대한민국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최강의 팀 중 하나였으며, 실제로 이 날 독일이 위르겐 클린스만의 2골을 포함해 전반에 3:0으로 앞서며[133] 싱겁게 끝날 것으로 여겨졌다. 승패를 따지는 게 아니라 전차군단이 몇 골을 더 넣을 것인가를 화제로 삼았을 정도였다.
후반 시작 후 10분만에 경기 양상이 뒤집혔다. 교체 투입된 골키퍼 이운재의 하드캐리로 대한민국의 수비력이 급상승되었고 이에 힘 입어 황선홍과 홍명보가 중거리 슛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순식간에 스코어가 3:2로 좁혀졌으며, 설상가상으로 습도가 높은 댈러스의 40도가 넘어가는 무더위에 당시 베테랑으로 구성된 독일 선수들이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막강한 공격력을 트레이드마크로 삼는 독일이 오히려 극단적인 수비에 급급하면서 대한민국이 독일 쪽 진영을 전세내고 일방적으로 가둬놓고 팼다. 한국 쪽은 상대적으로 선수층이 젊었고[134] 여름에 경기를 치르는 특성상 이런 고온다습한 무더위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에 익숙했던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후반부에서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급격한 체력 저하를 겪어야 했다.
여기서 졸전을 하는 독일 국대를 향해 미국 관중들은 물론이고 독일 관중들도 야유를 보냈는데,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그 성질머리 못 죽이고 전 세계인들이 보는 앞에서 뻐큐를 갈겼다가 교체는 물론 강제귀국까지 당했다. 이 사건 이후로도 에펜베르크는 일부 경기에서는 소집되었으나 메이저 대회는 두 번 다시 나가지 못하는 등 그다지 활약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135]
일진일퇴의 공방 끝에 경기는 결국 독일의 3:2 승리로 끝났지만, 이때 독일 축구 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대 최고의 선수이자 당시 2골을 넣은 클린스만이 "만약 한국이 전반전부터 이런 경기력을 보였거나, 후반 연장 시간이 5분만 더 길었더라면 무승부 혹은 역전패를 당했을지도 모른다."라고 훗날 언급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독일 축구계에 깊은 인상을 심었다.[136] 뒤집어 말하자면 이 날 대한민국이 좀더 잘했거나 독일이 집중력을 완전히 잃었더라면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 축구 비주류 아시아 국가에게 역전패, 그것도 3골차 리드가 뒤집히는 희대의 개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게 실제로 벌어졌다면 월드컵 최대 이변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며, 독일 현지 축구 팬들은 당장 포그츠 감독을 경질하라고 베를린 시내로 몰려가서 시위를 했을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김호호/1994 FIFA 월드컵 미국/독일전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17.2.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4강전[편집]
8년 전에 고전한 기억 때문에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4강에서 대한민국과 만나게 된 독일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차라리 스페인이 낫다는 의견까지 있었고 별로 그럴 것 같진 않지만 솔직히 대한민국에 질 수도 있다는 독일 축구 팬의 발언도 있었다.[137][138] 대회에서 독일이 준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대회 전 독일이 결승전까지 갈 것이라고 예측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녹슨 전차라고 비아냥을 들을 만큼 경기력이 예전만 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물론 객관적인 전력상 독일이 한 수 위인 것은 분명했으므로 웬만하면 이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이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그 쟁쟁한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을 꺾고 4강까지 올라왔으니 한국이 이길 수도 있다고 기대하는 축구 팬들도 많았고, 한국이 홈 어드밴티지까지 있어서 유리할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실제 경기 내용은 후반 30분까지 0 : 0으로 팽팽하게 맞설 만큼 일진일퇴의 공방전이었다. 대회 골든볼&야신상 수상자인 올리버 칸의 신들린 선방 쇼가 있었지만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선방을 기록하고 온 이운재의 플레이 또한 활약을 했고, 이천수가 벼락같은 슈팅을 날리는 등의 감각적인 플레이도 돋보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주전 선수들의 계속된 풀 타임 출전과 2연속 토너먼트 연장전으로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고 결국 후반 30분에 미하엘 발락을 순간적으로 놓쳐 결승골을 허용해 0:1로 독일에 패배하고 3·4위전으로 가게 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히딩크호/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독일전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17.3. 2004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아시아 원정[편집]
이 경기는 단순한 친선경기가 아니었는데, 독일축구협회에서 추진한 독일 국가대표팀의 아시아 투어 행사의 일환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일본, 대한민국, 태국 등 아시아 지역의 국가대표팀과 평가전도 치르고 차기 월드컵과 자국 국가대표팀의 홍보를 꾀했던 것이다. 이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로 유명한 해운대 굴욕(?) 사건이 있다. 일본과의 경기 후 대한민국에 도착한 독일 선수들은 부산 해운대에서 산책하며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 선수들이 길을 걷고 있는데도 시민들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일본과의 경기는 시차 적응 문제도 있고 해서 후보 선수들을 대거 내보낸 2군으로 3:0 대승을 거뒀고,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비로소 분데스리가 주전 멤버들로 구성된 최정예 라인업을 내보냈다. 오히려 박지성, 이영표 등의 유럽파 소집이 안 됐던 한국이 1.5군 정도의 멤버로 이 경기에 임했다. 이 경기에는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 소유자인 미로슬라프 클로제도 출전했다. 그런데 도리어 김동진, 이동국, 조재진에게 골을 내줘 1:3으로 패했다. 그나마 미하엘 발락이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기록해서 영패는 면했으며, 한편으로는 발락의 페널티 킥을 막아내 2년 전 서울에서 당한 패배의 아픔을 복수한 이운재의 선방과 독일 수비진을 당혹케 하는 차두리의 피지컬[139] , 그리고 올리버 칸을 일순간 허수아비로 만든 이동국의 발리 슛 득점이 백미. 더구나 이 슛은 이동국이 180도로 몸을 돌리면서 때린 터닝 발리 슛이었다. 2002 월드컵에서 이천수가 차는 순간 들어갔다고 생각했던 슛마저 막아냈던 칸이었는데, 그런 그가 그저 바라봤어야 했을 정도로 대단한 슛이었다.
대한민국은 차두리의 독일 선수들 3명을 떨궈버린 돌파력[140] , 후반 터진 이동국의 터닝 슛, 그리고 발락의 페널티킥을 막아 낸 이운재의 선방이 활약을 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본프레레호/2004년 문서에도 나와 있다.
17.4.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본선 32강 F조 최종전[편집]
독일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 된 경기[141] 이자 20년 전 크로아티아전보다도 못한 최악의 졸전이었다.[142] 장소는 카잔 아크 바르스 아레나. 월드컵 무대로 보자면 2002 한일 월드컵 준결승전 이후 16년 만의 재회며, 조별리그에서 만난 것까지 따지면 1994 미국 월드컵 이후 24년 만에 그것도 또 3차전 매치다. 덤으로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후 다음 대회인 1994 미국 월드컵에서 대한민국과 만난 것처럼, 통일 독일의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 후 한국을 만났다. 독일은 마지막으로 맞붙은지 14년이 지났다는 세월 때문인지,[143] 한국 축구가 예선부터 갈팡질팡했다는 소식을 접한 탓인지 모르지만 그동안 한국이 자신들과 엎치락뒤치락하며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음을 완전히 망각하고 2002년의 포르투갈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 대한 분석조차 등한시하면서 깔보는 태도로 경기에 임하는 치명적인 우를 범했다. 그 결과 독일의 눈에 가려져 있던 골키퍼 조현우의 경이로운 선방 능력, 김영권과 윤영선의 철벽과 같은 호수비, 그리고 대표적인 지독파 선수인 손흥민을 필두로 한 공격진의 빠른 역습과 레온 고레츠카의 치달을 막는 홍철의 스피드 등 갖가지 장애물들이 튀어나와 독일의 승리를 가로막았고, 끝내 기적적으로 2:0으로 대한민국이 이겼다. 말 그대로 경적필패(輕敵必敗)라는 단어가 이 경기를 위해 있는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독일에게 있어서 굉장히 비참한 결과를 받은 것이다.
이 엄청난 사건 이전에 독일이 월드컵에서 무득점 2점 차 이상의 패배를 당한 것은 3번 있었는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한테 0:3으로 대패하여 탈락한 것, 2002년 한일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0:2로 패배하여 준우승에 그친 것, 2006년 독일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에 0:2로 패배하여 3위 결정전으로 떨어진 것 등이다. 더군다나 앞의 세 팀들은 FIFA 랭킹 상위권에 속하는 팀들이다. 심지어 1998년의 크로아티아는 당 대회 돌풍의 팀이었으며(첫 출전에 3위) 2002년의 브라질과 2006년의 이탈리아는 각각 그 대회의 우승팀이었다. 상위 20위권내에도 들지 못하는 아시아 축구 대표팀들의 현실을 고려할 경우, 이는 정말 엄청나고도 남을 큰 충격인 것이다.
현대 축구의 흐름을 놓고 본다면 카잔의 기적과 같은 일은 거의 생기기 힘들다고 봐도 무방하다. 경기력뿐만이 아니라, 인종차별 등 독일 사회의 문제까지 이 여파가 번졌는데, 독일 대표팀의 주축 중 한 명인 터키계 선수 메수트 외질이 "내가 잘할 때 그들에게 나는 독일인이었지만, 내가 못할 때 나는 그들에겐 터키인이었다!"라며 자신에 대한 공정치 않은 비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을 정도로 내외적으로 제대로 진통을 겪었었다.
이 경기 이전부터 에르도안과 관련해서 말이 많았던 메수트 외질은 마지막 최종전 이후에도 극심한 비판과 비난에 시달리자, 월드컵이 끝나고 몇 주 후 은퇴 선언을 하였다. 외질의 은퇴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과 관련된 문제점이 더 크지만, 한국과의 경기 결과가 독일 최고의 No.10 선수가 은퇴를 결정하는 상황에 불쏘시개가 되었다. 특히, 외질은 로타어 마테우스가 블라디미르 푸틴과 악수를 하는 장면을 언급하면서, "왜 내가 자국 대통령과 악수를 한 것은 문제가 되고 왜 마테우스가 푸틴과 악수를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느냐?"라는 비판을 하였다. 푸틴 역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못지않은 독재자인 것과 마테우스는 러시아와 하등 관련도 없는 것을 고려하면, 외질의 이 비판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과 몇몇 순혈 독일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에 대한 큰 영향을 미칠 듯하다. "터키 출신인 내가 에르도안과 악수를 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데, 러시아 출신인 마테우스가 푸틴과 악수를 하는 것은 왜 문제가 안 되느냐?"라는 외질의 외침은 현재 독일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통렬하게 꿰뚫고 있다. 그러나 마테우스는 FIFA 풋볼 어워즈 심사위원의 자격으로 러시아에 갔고, 푸틴과 만난 자리에서도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과 함께 FIFA 위원으로서 월드컵 주최국의 국가 원수와 만난 것이다. 외질이 에르도안과 그냥 개인적으로 만난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허나, 위의 에르도안 건을 깡끄리 무시하고 축구내적으로 보더라도 독일 언론과 축구인사들의 발언은 지극히 도를 넘었고, 외질의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느낄 만 하다. 실제로, 외질도 잘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선수들도 몇몇 빼고 대체적으로 잘하지는 못하였고(몇몇 평가에서는 한국전 때 외질이 그나마 제일 잘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는 현재 그들이 그토록 까대던 외질이 은퇴한 뒤에도 독일 국대가 노답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외질의 발언을 두고 토니 크로스나 토마스 뮐러 등이 한 발언과 제롬 보아텡이 한 발언은 독일 국대 내애서도 이를 달리 보는 선수들이 있다는 것임은 분명하다. 특히나, 현재 외질이 은퇴를 한 이후에도 그보다 더 못하고 있는 베르너와 뮐러에 대한 독일 언론의 모습은 코웃음이 나올 정도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국가대표를 위해서 헌신한 선수가 이러한 부당한 차별과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이런식으로 은퇴한 것은 비판을 받을 만한 상황임은 분명하다는 거다. 특히나, 보아텡이 한 발언 중 "외질은 우리와 함께한 매우 훌륭한 선수다. 그는 이주자의 배경을 가졌지만 10번을 달고 세계 챔피언으로 독일 축구를 변화시켰다. 그런데, 외질에게 고마워해야 할 선수들은 어디 있는가?” 라며 같은 팀 동료들과 몇몇 축구인사들을 저격한 듯한 발언은 독일 축구계와 사회가 반드시 바라봐야 하는 점이다. 애초에, 이 외질이라는 축구선수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에르도안을 만날 정도의 정치관점을 평소에 드러낸 적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독일의 이번 관련 사태는 독일의 이주자에 대한 민망한 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속만 아시아인 호주는 1승 1무 4패로 열세인데(호주가 2011년 3월 친선경기에서 2:1로 이기긴 했다.) 유럽/남미에서 웬만큼 잘 나간다는 팀들을 2~3골 차로 이기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독일에게 그것도 축구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아시아의 팀이 2승 2패로 대등하게 맞선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이변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유럽 축구계에서 아시아를 약체를 넘어 호구로 여기는 마당에, 유럽을 뛰어넘어 세계구급 강팀인 독일을 상대로 저런 전적을 보이는 것 자체가 가히 미스터리급이었다. 독일이 2018년 15승 10무 10패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네덜란드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한국을 5:0으로 압살한 걸 감안하면 더더욱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다.
독일 대표팀은 체력과 조직력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팀이다.[144] 한국도 독일처럼 체력과 조직력으로 밀어붙이는 팀이다. 이렇듯 같은 성향의 팀끼리 붙었을 때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대목은 '얼마나 굳은 심지를 갖고 상대 팀을 끝까지 압박하느냐'인 것이다.[145] 대한민국이 독일을 이긴 경기를 분석해보면, 전부 독일에게 선취 실점을 내주지 않고 오히려 선취득점을 올린 경우다. 독일 역시도 마찬가지다. 즉 역전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146] 또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축구계의 비주류 아시아에 속한지라 약체 취급을 받기는 하지만[147] 실제로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148] 독일과 만날 때마다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의외로 자주 독일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대한민국과의 4강전이야 독일이 후반에 득점에 성공하여 1:0으로 이겼으니 딱히 고전했다고 여기지는 않는 것 같지만,[149] 1994 FIFA 월드컵 미국 24강 본선 조별리그 때 3:0으로 앞서다가 3:2로 따라잡힌 것도 모자라 후반전 내내 수비 전술만으로 겨우겨우 막아낸 게 트라우마 수준으로 새겨진 듯하다.[150] 그것도 그 당시(1994년) 독일은 디펜딩 챔피언에 피파랭킹 1위의 초강팀이었다. 10년 후인 2004년 친선 경기에서 1:3으로 패하면서 한국을 마냥 얕보기가 곤란할 정도로 인식되더니 그게 잊혀질 무렵인 2018년 월드컵에서 아예 0:2로 패하는 굴욕을 겪는 바람에 이제는 한국과 맞붙게 될 경우 아무리 한국이 홍명보호, 슈틸리케호 시절처럼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는 한이 있다 한들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상황이다. 유로 2004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리스도 무려 홍명보가 이끄는 한국에 친선 경기에서 그것도 한창 슬럼프를 겪던 박주영에게 실점해서 0:2로 패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0:2의 완패를 당하고 이 나라 저 나라에 두들겨 맞아 2018년 12월 기준 피파랭킹이 16위로 곤두박질쳤다. 물론 한국전을 패한 후유증 때문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으나 이 한국전 패배 이후 독일의 위세가 약화된 것만은 사실이다. 심지어 2020-21 네이션스 리그에서의 상황을 보면 현재 6경기 무승을 기록 중일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2021년 3월 30일 벌어진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지역예선에서 65위의 북마케도니아에 1:2로 지는 대참사를 당했고 더 나아가 유로 2020에서는 겨우 토너먼트에 진출하나 16강에서 잉글랜드와 만나 0:2로 져서 16강 15위로 탈락하기에 이른다.[151] 이에 앞서 UEFA 네이션스 리그/2020-21 시즌에서는 스페인을 상대로 아예 0:6 대패까지 당하는 최악의 수모도 겪었다.[152] 감독이 한지 플릭으로 임명되고 맞이한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본선에서도 일본에게 1:2로 역전패를 당하고 결국 그 역전패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마지막에 코스타리카를 4:2로 꺾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승점을 가진 스페인에 골 득실 차로 밀려 월드컵 조별리그 2회 연속 탈락이라는 치욕까지 쓰고 말았다.[153]
18. 사건 사고[편집]
독일 대표팀은 국내에서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같은 남미의 강팀들이나 다른 유럽 대표팀에 비해 매너 있고 클린하다는 인식이 있다. 특히 남미보다는 유럽 축구 팬들이 많은 국내 특성상 더욱 그렇다. 실제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은 오심발/더티 플레이가 많고 독일은 정정당당하다는 생각을 가진 팬들도 많다. 그러나 의외로 축구 역사에서 여러 가지 논란이 많은 대표팀이기도 하다.
18.1. 히혼의 수치[편집]
자세한 내용은 히혼의 수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8.2. 금지 약물 지원 의혹[편집]
2013년 독일 홈볼트 대학 연구진의 보고서에 따르면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등 굵직한 대회에서 정부 차원의 금지 약물 복용을 지원해줬다고 한다.[154] "독일서 70년대까지 국가가 도핑 주도" 2002년 월드컵에서도 독일은 금지 약물 복용 의혹을 받기도 했다."독일 선수단 약물복용" 소문 확산
독일 축구 연맹은 이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강한 의혹으로만 남아 있는 상태다.
19. 청소년 대표팀[편집]
현재 U-21 팀 감독에 슈테판 쿤츠, U-20 팀 감독에 마누엘 바움, U-19 팀 감독에 하네스 볼프, U-18 팀 감독에 기도 슈트라이히스비어 (Guido Streichsbier)가 부임해 있다.
1981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2007년 FIFA U-17 월드컵에서는 4강전에서 탈락했다.
2017년 U-21 대회에서 우승했다. 라이벌 관계인 잉글랜드, 유망주들의 산실인 스페인을 꺾음으로서 독일 국가대표가 왜 세계 최고의 유망주들이 성장하고 있는지 증명했다. 심지어 고레츠카, 베르너, 사네, 키미히 같은 선수들이 안 나간 대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