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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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仁老
(1152 ~ 1220)
1. 개요[편집]
고려의 문인. 초명은 이득옥(李得玉)이고 자는 미수(眉叟)다. 본관은 인천.
2. 생애[편집]
이인로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여의고, 큰아버지(大叔)였던 화엄승통 요일(寥一)에게서 자랐다. 영리하고 글을 잘 지었으며 초서와 예서에 능했다. 의종 24년(1170) 정중부 등이 무신정변을 일으키자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는데, 정변이 끝나고 정권이 교체된 뒤에 환속했다. 1175년 국자감시, 1176년 고예시(考藝試)에 합격했고 명종 10년(1180) 29세의 나이로 문하평장사 민영모, 국자좨주 윤종성이 주관한 진사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했다. 장인 최영유를 따라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귀국한 뒤 계양관기로 부임했다. 이후 직사관으로 옮기고 14년동안 사한(史翰)직을 오갔다. 죽림고회의 일원으로 어울리며 신종 때 벼슬이 예부원외랑에 이르렀고, 고종 초 비서감 우간의대부에 임명됐다. 문학 작품으로 명성을 떨친 이인로는 과거 시험을 주관하라는 왕명을 받았으나, 고종 7년(1220) 홍도정(紅桃井) 자택에서 병사함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3. 작품[편집]
3.1. 서적[편집]
- 『은대집(銀臺集)』 20권
- 『후집(後集)』 4권
- 『쌍명재집(雙明齋集)』 3권
- 『파한집』 3권
3.2. 한시[편집]
- 섬계승흥(剡溪乘興)
- 개미(蟻)
- 소요원(逍遙園)
- 중구후(重九後)
- 앵무(鸚鵡)
- 매화(梅花)
- 눈(雪)
- 승원차마(僧院茶磨)
- 명비 장편(明妃長篇)
- 제 진부역(題珍富驛)
- 춘일강행(春日江行)
- 어양회고(漁陽懷古)
최자가 이인로의 『파한집』을 보안하며 쓴 『보한집』에 이인로가 지은 한시가 여럿 남아있다.
4. 가족관계[편집]
- 처: 최씨
- 아들: 이정
- 아들: 이양
- 아들: 이온
- 아들: 이균
- 첩
- 아들: 이세황
- ?
- 아들: 이아대
이인로는 이오의 증손자[1] 다. 또한 이세황이 쓴 파한집의 발문에 따르면 이인로의 장인(氷淸)은 사업(司業) 최영유(崔永濡)다.
고려사 이인로 열전에 따르면 이인로의 세 아들은 모두 과거에 급제했다. 파한집에 따르면 장남 이정은 4등, 차남 이양은 3등, 삼남 이온은 2등으로 급제했다. 고양월사 각훈은 세 아들의 급제를 축하하며 이인로에게 전한 시에서 "항상 용두(장원 급제)를 피하는 것은 노옹(이인로)께 양보하는 것이로구나."[2] 라고 했다.
동국이상국집 14권에 "시랑 이미수가 자기 아들 균(囷)의 동일(冬日) 시를 화답하여 내 아들 함(涵)에게 화답할 것을 명하고 또 함을 시켜 나를 맞이하여 함께 시를 짓고자 하기에 나도 그 시운을 차하여 받들어 부치다(李侍郞眉叟和郞子囷冬日詩。命愚息涵和之。又使涵邀予同賦。故次韻奉寄。)" 라는 시에서 이균이 나온다.
파한집 발문에 따르면 합문지후 이세황은 이인로의 얼자이고, 또한 신종 7년(1204)에 진동(珍洞, 진산군)에 부임한 아대(阿大)라는 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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