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
덤프버전 :
'데스티니 차일드'의 차일드에 대한 내용은 박서(데스티니 차일드) 문서 참고하십시오.
고려의 무신으로 여몽전쟁 때 귀주성 전투에서 성을 굳건히 지켜낸 명장이다.
본관이 죽주(죽산, 현재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이자 죽주 사람으로 1231년(고종 19년) 서북면 병마사가 되어 몽골의 살리타이가 철주를 함락하고 귀주를 공격하자 김중온, 김경손, 송문주, 정주, 삭주, 위주의 수령들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귀주에 집결한 후에 몽골군과 싸웠으며 몽골군이 박문창을 사로잡은 뒤에 그를 보내 투항을 권유하자 박문창을 처형했다. 몽골군이 귀주를 공격할 때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하자 적절한 대응으로 여러 차례 공격을 막았고 이는 다음과 같다.
몽골군이 퇴각했다가 여러 곳에서 군사를 모아 다시 공격해서 또다시 적절한 대응으로 몽골군을 여러 차례 막았고 이는 다음과 같다.
살리타이가 지의심, 강우창 등을 보내 항복 권유를 했지만 이를 거부했으며 또다시 사람을 보내왔음에도 거절했으며 아예 한 술 더떠 항복을 권유하고자 찾아온 자들을 자기 목숨을 보존하겠다고 백성을 오랑캐에게 팔았다며 그 자리에서 참수해 목만을 살리타이에게 돌려보내며 항전 의사를 표명했다.. 구름사다리를 만들어 공격하는 것에 대우포로 대응했고 고종이 최임수, 민희 등을 보내 강화한 사실을 알리자 항복했다. <고려사> 박서 열전에 따르면 귀주성 전투가 한창일 당시 몽골군의 어느 나이 든 장수는[2] 다음과 같이 칭찬했다고 한다.
훗날 몽골 사신이 와서 박서가 항복하지 않은 것을 들어 그를 죽이려 하자 최우가 박서에게 "나라에 대한 경의 충성은 아무데도 견줄 수 없으나 몽골의 말도 두려워할 만한 것이다. 경은 잘 생각해 처신하라."고 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죽주로 돌아갔으며 후에 관직으로 돌아와 문하평장사에 임명되었다.
1. 개요[편집]
고려의 무신으로 여몽전쟁 때 귀주성 전투에서 성을 굳건히 지켜낸 명장이다.
2. 생애[편집]
본관이 죽주(죽산, 현재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이자 죽주 사람으로 1231년(고종 19년) 서북면 병마사가 되어 몽골의 살리타이가 철주를 함락하고 귀주를 공격하자 김중온, 김경손, 송문주, 정주, 삭주, 위주의 수령들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귀주에 집결한 후에 몽골군과 싸웠으며 몽골군이 박문창을 사로잡은 뒤에 그를 보내 투항을 권유하자 박문창을 처형했다. 몽골군이 귀주를 공격할 때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하자 적절한 대응으로 여러 차례 공격을 막았고 이는 다음과 같다.
- 몽골군이 누차, 거대한 평상을 만든 후에 땅굴로 공격 → 성벽에 구멍을 파서 쇳물을 불태우고 썩은 이엉을 태워 평상을 불태움.
- 대포차 15문으로 공격 → 포차로 돌을 날림
- 사람의 기름으로 불을 지름 → 진흙을 물에 섞어 던짐
- 풀더미로 불을 지름 → 물을 준비해뒀다가 물을 뿌림
몽골군이 퇴각했다가 여러 곳에서 군사를 모아 다시 공격해서 또다시 적절한 대응으로 몽골군을 여러 차례 막았고 이는 다음과 같다.
- 포차 30문으로 성곽 50간을 부숨 → 성벽을 수리하고 쇠줄로 막은 뒤에 몽골군을 공격
- 대포차로 공격 → 포차를 날려 대응
살리타이가 지의심, 강우창 등을 보내 항복 권유를 했지만 이를 거부했으며 또다시 사람을 보내왔음에도 거절했으며 아예 한 술 더떠 항복을 권유하고자 찾아온 자들을 자기 목숨을 보존하겠다고 백성을 오랑캐에게 팔았다며 그 자리에서 참수해 목만을 살리타이에게 돌려보내며 항전 의사를 표명했다.. 구름사다리를 만들어 공격하는 것에 대우포로 대응했고 고종이 최임수, 민희 등을 보내 강화한 사실을 알리자 항복했다. <고려사> 박서 열전에 따르면 귀주성 전투가 한창일 당시 몽골군의 어느 나이 든 장수는[2] 다음과 같이 칭찬했다고 한다.
吾結髮從軍 歷觀天下城池攻戰之狀 未嘗見被攻如此而終不降者。 城中諸將 他日必皆爲將相。
"내가 성인이 되어 종군하면서 천하의 성에서 전투하는 모습을 두루 보았지만 이처럼 공격을 당하면서도 끝내 항복하지 않은 경우는 보지 못했다. 성 안에 있는 장수들은 훗날 반드시 모두 장군이나 재상이 될 것이다."
훗날 몽골 사신이 와서 박서가 항복하지 않은 것을 들어 그를 죽이려 하자 최우가 박서에게 "나라에 대한 경의 충성은 아무데도 견줄 수 없으나 몽골의 말도 두려워할 만한 것이다. 경은 잘 생각해 처신하라."고 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죽주로 돌아갔으며 후에 관직으로 돌아와 문하평장사에 임명되었다.
3. 기타[편집]
- 전쟁기념관에서는 2010년 8월에 호국의 인물로 선정했다.
- 소설《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에서는 박서가 관직에서 물러나고 박문성으로 개명했다고 나오기도 한다.
- 박시백의 고려사에서는 중간 페이지에서 최춘명과 "항복? 그게 뭐지? 자넨 아나?"/"처음 들어보는 말인데요."라는 만담을 주고 받는다.
4. 관련항목[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9 20:00:59에 나무위키 박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