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성공회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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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lican Communion
한글 명칭
세계성공회공동체
창설일
1867년
주교좌성당
캔터베리 대주교
저스틴 웰비
성격
전 세계 성공회 관구 연합체
종교
성공회
공식 홈페이지
파일:Anglican_rose.svg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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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성공회 신학에서의 의의
3. 구성체
3.1. 캔터베리 대주교
3.2. 영국 및 아일랜드의 성공회
3.2.1. 잉글랜드 국교회[1]
3.2.2. 웨일스 성공회
3.2.3. 스코틀랜드 성공회
3.3. 미국 성공회
3.4. 나이지리아 성공회
3.5. 우간다 성공회
3.6. 남아프리카 성공회
3.7. 호주 성공회
3.8. 싱가포르 성공회
3.9. 홍콩 및 마카오의 성공회
3.10. 일본 성공회
3.11. 한국 성공회
4. 참고



1. 개요[편집]


전세계 성공회 관구(Province) 간의 느슨한 국제적 연합체이자 세계 성공회의 두 연합체 중 하나이다.[2][3] 전체 기독교에서 본다면 가톨릭, 정교회와 더불어 규모가 가장 큰 단위이다. 역사적인 이유로 캔터베리 대주교(Archbishop of Canterbury)가 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수장의 역할을 하지만 명목상의 직위일 뿐이다. 로마의 교황과 달리 캔터베리 대주교는 캔터베리관구 외의 지역 성공회에 대해 결속력을 가지지 못한다. 즉, 각각의 성공회 관구는 독립적이며 주교는 서로를 결속하지 못한다.

성공회에서 관구보다 큰 단위에 대한 첫 구상은 역사적으로 잉글랜드 교회(Church of England)를 구성하는 캔터베리 관구(The Province of Canterbury)와 요크 관구(The Province of York) 사이의 권한 및 위계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영국이 제국주의적 확장을 하면서 전세계에 성공회 교회가 설립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성공회 선교사들은 영국의 식민지 혹은 교류지에 궁극적으로 독립적인 관구를 설립하는 것을 지향하였다.[4] 전 세계에 새로 독립 관구들이 설립됨에 따라 이들 관구 사이의 국제적 소통과 연합을 위해 세계 성공회 공동체가 성립되었다.

세계 성공회 공동체는 1867년 제1차 '람베스 회의(Lambeth Conference)'를 개최하면서 주창되었다. 람베스 회의는 전 세계 성공회 교회의 주교들이 모여서 당대의 주요한 신학적 사안을 논의하고 상호간에 친목을 도모하는 비정기적 국제 회의이다.[5] 람베스 회의는 캔터베리 대주교가 전세계의 성공회 관구 대표들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거처인 람베스 궁(Lambeth Palace)으로 초청하는 형식을 지닌다.

세계성공회 공동체는 람베스 회의와 떼어놓을 수 없다. 즉, 람베스 회의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독립적 관구들을 '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보고 회원 교회들 사이에는 '전적인 상통관계'(In Full Communion)를 가진다.


2. 성공회 신학에서의 의의[편집]


성공회 신학에서 람베스 회의의 개최와 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성립은 큰 변곡점이다. 종교개혁 이후 람베스 이전까지 성공회 신학은 잉글랜드 교회를 중심으로 견인되어왔고 이에 따라 성공회는 영국의 교회라는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었는데, 제국주의로부터 시간이 흐른 19세기에 들어 신세계(신대륙) 정착민(colonial) 교회들이 더 이상 영국의 모교회와 동일시(identity)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이를 인정한 것이 바로 람베스 회의인 것이다.

제1차 람베스 회의로 성립된 세계 성공회 공동체는 성공회를 단지 영국 혹은 영국 식민지의 지역교회가 아닌 로마 가톨릭과 같은 세계적 단위의 교회임을 천명한 계기로 큰 의미를 가지며, 특히 그 전의 성공회와 달리 이제 성공회가 '영국 외 지역의 관심/고민'을 대면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6] 20세기 이후 성공회 신학은 잉글랜드 성공회가 아닌 세계 성공회 공동체에서 견인해오고 있으며, 특히 아래의 사안에 관련하여 잉글랜드 교회 혹은 여타 전례적 서방교회(가톨릭 포함)과는 다른 성공회 특유의 성격이 자리잡게 되었다.

  • 초기 전통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 성공회는 19세기 이후 접근가능해진 다양한 초기 기독교 전통에 관심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계 종파 중 가톨릭에서 흔히 접근하지 않았던 정교회 전통이나 유대교 이슬람교 전통에도 관심을 가진다. 북미의 대학에서 '종교학과'가 성립된 이면에는 미국 정착 성공회 신부들이 있다.
  • 성경에 대한 신정통주의 혹은 자유주의적 해석을 적극적으로 도입: 성공회 성서신학 scholarship의 대부분은 초기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성공회 계열 신학자들이 주로 투고하는 Harvard Theological Review 등이 대표적인데, 성경을 문학적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의 문서로 인식하고 이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 역시 북미의 성공회가 세계 성공회 공동체를 통해 성공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 사례이다. 한편 이러한 신학적 자유주의 행보에 대한 반발로 신학적 근본주의 및 보수주의 교단들이 성공회를 이탈하여 성립[7]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 신앙과 전례에 관한 유연한 접근: 성공회 숙어로 All may, Some should, None must 라고 하는데, 고교회와 저교회 등 지역적 신학적으로 다양한 견해의 사람들이 하나의 기도서로 함께 할 수 있는 기반이기도 하다.
  • 적극적 대화: 세계 성공회 공동체가 추구하는 적극적 대화는 성공회 내 회원교회들 간에도 이루어지고,[8] 감리교, 가톨릭, 정교회 등 기독교 공동체 내 다른 교단들과도 이루어지며, 불교나 이슬람교 등 타종교와도 이루어진다.
  • 사회자유주의: 성공회 중에서도 특히 세계 성공회 공동체만의 특징이다. 세계 성공회 공동체는 노예제/인신매매 반대와 인종차별 반대 그리고 민권운동에서 매우 사회자유주의적인 입장을 취해왔다.[12]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시간순으로 제기되고 있는 아래의 '젠더 3대 이슈'는 특히 큰 파장을 일으켜서 보수적 성공회 연속 진영이 이탈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현재 최대의 성장세를 보이는 아프리카 대륙의 회원교회들에서 사회자유주의적 행보에 문제제기를 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 여성 서품 여부: 아프리카 등 보수적 성향을 띄는 일부 관구는 여전히 여성 서품을 하지 않고 있으나, 대부분의 관구는 여성 서품을 진행하고 있으며,[9]일부 관구에서는 여성 비율 할당제 등 적극적 우대(affirmative action) 정책을 취하고 있다.
    • 동성애 결혼 인정 여부: 1990년대 캐나다 성공회 소속 주교들이 처음 제기한 문제이며 1998년 람베스13[10]의 '성경과 불합치되므로 인정할 수 없다'가 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공식적 결의 내용이다.[11] 그러나 람베스와는 별개로 2000년대부터 일부 관구에서는 이미 동성애 결혼을 인정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2002년 캐나다 관구에서 최초로 동성 간의 결합도 결혼으로 인정했고, 이어서 2015년에 미국, 2017년에 스코틀랜드, 2019년에 잉글랜드 성공회에서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의 서품 여부: 2022년 현재 가장 뜨거운 문제 중 하나로 람베스15에서는 아예 안건에 올리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동성결혼 문제가 람베스14의 큰 실패요인이었던 점을 반면교사 삼아 저스틴 웰비가 보수적 모션을 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참고로 2022년 현재 람베스 회의에는 두 가지 '정당' 비스무레한 것이 있는데,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신학적 입장에 따라 비슷한 견해의 관구들끼리 협력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관구의 지구상 위치와 상관관계가 있어서 성공회 숙어로 '북부관구'(Northern Provinces)와 '남부관구'(Southern Provinces)라고 한다. '북부관구'는 북위30도 이상에 위치한 잉글랜드 성공회 및 영국계 이민자 교회인 미국/캐나다 성공회 등을 지칭하며 전통적으로 '모교회'(The Mother Churches)라고 불려오던 곳이다. '남부관구'는 아프리카와 남미 그리고 비록 영국계 이민자 교회이지만 보수적, 복음주의적 특징을 가진 호주 관구가 포함된다. 날이 갈수록 북부관구의 성장세는 더디고 신자화율도 감소하는 반면 남부관구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 람베스에서는 남부관구의 입김이 세져서 현재보다 사회적으로 보수화된 성공회 신학을 보게 될 수도 있다.[13]

3. 구성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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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성공회 공동체는 캔터베리 대주교와 42개 독립교회(national churches)로 구성된다. 42개 독립교회는 서로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되, 1개 국가에선 1개 독립 교회만 참여할 수 있다. 캔터베리 관구와 요크 관구가 잉글랜드 국교회라는 단일 교회로 참석하는 것도, 미국 성공회에서 분리된 북미 성공회가 세계 성공회 공동체에 참가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회원교회 일람

3.1. 캔터베리 대주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캔터베리 대주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 영국 및 아일랜드의 성공회[편집]




[ 정치 ]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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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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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및 귀족
영국 국왕 · 영국 국왕의 배우자 ·윈저 왕조 · 영연방 왕국 · 웨일스 공 · 근위대 · 가터 기사단 · 영국 왕실 훈장 · 버킹엄 궁전 · 세인트 제임스 궁전 · 홀리루드 궁전 · 윈저 성밸모럴 성 · 런던 탑 · 켄싱턴 궁전 · 클래런스 하우스 · 성 에드워드 왕관 · 영국 제국관 · 커타나 · 운명의 돌 · 영국 왕실과 정부의 전용기 ·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 · 코이누르 · 왕실령 · 영국 왕실 인증 허가 브랜드 · 웨스트민스터 사원 · 귀족/영국 · 영국의 귀족 목록 · 영국 귀족원 · 요크 공작 · 콘월 공작 · 에든버러 공작 · 던세이니 남작 · 작위 요구자/유럽/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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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 ]




3.2.1. 잉글랜드 국교회[14][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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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귀족원
원내 구성


[ 펼치기 · 접기 ]
성직 귀족
파일:잉글랜드 성공회 흰색 로고.svg
잉글랜드 국교회 주교


24석

세속 귀족
국왕 폐하의 정부
국왕 폐하의
가장 충성스러운 야당

파일:보수당(영국) 흰색 로고.svg
보수당


250석

파일:노동당(영국) 흰색 로고.svg
노동당


166석

[[협동당|파일:협동당 흰색 로고.svg

협동당(16석) 포함1
]]

기타 야당
파일:자유민주당(영국) 검은색 로고.svg
자유민주당


83석

파일:민주연합당 흰색 로고.svg
민주연합당


5석

파일:녹색당(잉글랜드 웨일스) 흰색 로고.svg
녹색당


2석

파일:얼스터 연합당 흰색 로고.svg
얼스터 연합당


2석

파일:플라이드 컴리 흰색 로고.svg
플라이드 컴리


1석

무소속

39(+1)석

크로스벤치
중립의원

183석

귀족원 의장은 무소속이나 다른 의원들과 구분됨. 따라서 무소속 의석에 (+1)로 별도 표기.
1. 모든 협동당 소속 의원은 노동당의 복수 당적으로, 협동당은 독자적인 의정 활동을 하지 않음.

재적

787석




파일:잉글랜드 국교회 로고.svg
Church of England.
홈페이지

성공회의 모체로 간주되는 교회. 이름대로 잉글랜드를 담당하는데 잉글랜드 외에도 웨일스 일부 지역[15], 영국 왕실령맨 섬채널 제도, 유럽 대륙[16]모로코를 직접 관할한다. 한국의 성공회도 1993년 정식으로 대한성공회 한국 관구(province)가 성립되어 독립하기 전에는 잉글랜드 성공회의 캔터베리 관구 소속이었다.

관구(province)는 캔터베리와 요크 둘이 있다. 캔터베리 관구는 잉글랜드 남부, 웨일스 일부, 채널 제도, 유럽 대륙·모로코(지브롤터 교구 관할)를 커버하며 30개의 교구(diocese)가 있다. 요크 관구는 잉글랜드 북부와 맨 섬을 담당하며 12개의 교구가 있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당연직으로 잉글랜드 국교회의 관구장이자 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의장으로 간주된다. 잉글랜드 국교회가 형성되면서 천주교에서 떨어져나갔고 영국 천주교는 천주교 금지가 풀린 19세기에 같은 지역 교구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고역을 겪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종교개혁기에 런던 교구가 성공회로 넘어가면서 천주교 측에서는 런던 지역을 관할하는 웨스트민스터 교구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영국 법률적으로도 아예 잉글랜드 국교회가 잉글랜드의 국교(established church)로 지정돼 있다. 그래서 의회 귀족원(상원)에 아예 캔터베리 대주교 등 고위 성직자들이 의원으로 임명된다. 이런 성직자들을 성직귀족(Lord(s) Spiritual)이라고 부르며 2015년 현재 총 26명[17]이 있다.

3.2.2. 웨일스 성공회[편집]


파일:웨일스 성공회 로고1.jpg
영어: Church in Wales
웨일스어: Yr Eglwys yng Nghymru
홈페이지

웨일스 대부분을 담당하는 성공회 조직. 웨일스 성공회에서 관할하지 않는 일부 지역은 잉글랜드 국교회의 캔터베리 관구에 속해 있다. 웨일스 성공회 산하의 교구는 6개가 있다.

웨일스가 잉글랜드의 지배를 오래 받았던 탓에 웨일스만의 성공회 조직이 원래는 없었다. 그러다가 1920년에 별도의 교회로 분리되었다. 이때부터 웨일스는 국교로 지정된 종교가 없다.


3.2.3. 스코틀랜드 성공회[편집]


파일:스코틀랜드 성공회 로고.jpg
영어: Scottish Episcopal Church[18]
스코틀랜드 게일어: Eaglais Easbaigeach na h-Alba
홈페이지

스코틀랜드를 담당하는 성공회 조직.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동군연합 단계를 넘어서 완전히 한 나라로 합병한 시기의 군주였던 앤 여왕이 공식 설립자로 되어 있다.[19] 산하 교구는 7개가 있다.

2017년 공현대축일, 글래스고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는 이슬람 포용 정책의 일환으로 쿠란마르얌 장(마리아 장)의 일부분을 전례 도중 낭송했는데, 이로 인한 여파로 인해 대성당의 연락망에 법적 대응이 정당화될 수위의 서신들이 접수되며, 전 로체스터교구장 주교 마이클 나지르알리(Michael Nazir-Ali)[20]가 나서서 이에 대한 규탄 및 켈빈 홀즈워스(Kelvin Holdsworth) 주임신부[21]에 대한 징계를 촉구했다.[22]

람베스궁 대변인은 스코틀랜드 성 마리아 교회를 고소하겠다고 밝혔으나, 해당 교회는 "우리는 잉글랜드 성공회의 관할권 밖에 있기 때문에, 캔터베리 대주교가 사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말대로 잉글랜드 성공회와 스코틀랜드 성공회는 분리되어 있어서 실질적 조치를 할 수 없다.

당시 스코틀랜드 성공회의 수장이었던 데이비드 칠링워스는 일단은 이에 유감을 표하며, 신앙 교류활동에 관련된 조치에 들어가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걸었다. [23]

2021년 6월 스코틀랜드 성공회와 스코틀랜드 장로회는 서로 상통관계에 있음을 선언하는 세인트앤드루 선언에 합의했고 이는 스코틀랜드 장로회 총회와 스코틀랜드 성공회 시노드에서 결의되었다.


3.2.4. 아일랜드 성공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아일랜드 교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영어: Chuch of Ireland
아일랜드어: Eaglais na hÉireann
홈페이지

아일랜드 섬 전체, 즉 독립국인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령 북아일랜드 모두를 담당하는 성공회 교단이다[24]. 성공회를 세운 헨리 8세에 의해 성립되었다. 본래 잉글랜드 국교회 산하에 있었다가 1869년 완전히 분리된다.

그 유명한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가 아일랜드 성공회의 사제였다.

2016년 아일랜드 종교 통계(Religions in the Republic of Ireland, 2016)[25]에 의하면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천주교에 이어 2번째로 신자가 많은 교단이다[26].

북아일랜드에서는 천주교, 아일랜드 장로회[27]에 이어 세 번째로 신자가 많은 교단이다. 20세기 초반엔 북아일랜드에서 성공회 단독으로 가톨릭과 교세가 비등비등할 정도로 거대한 교세였으나, 20세기 중반 이후 급속도로 교세가 붕괴하여,[28] 현재는 성공회를 포함한 개신교 전체를 다 합쳐도 북아일랜드 가톨릭보다 소수이다. 통계

아일랜드 기독교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아마(Armagh) 교구가 아일랜드에서 가장 으뜸가는 주교좌의 위치를 가지며, 이는 천주교와 성공회 둘다 해당한다. 그래서 아마 천주교 대주교는 아일랜드 천주교를 관할하며, 아마 아일랜드 성공회 대주교는 아일랜드 성공회를 대표하는 식이다. 하지만 아마가 잉글랜드의 켄터베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촌인데다 현재 북아일랜드에 속해있기 때문에, 두 번째 자리인 더블린 대주교들이 사실상 아일랜드 공화국의 천주교와 개신교를 대표하고 있다.

성공회가 오랫동안 영국에 의해 강제로 아일랜드의 국교였던 탓에, 아일랜드 내에서 천주교가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오랜 역사를 가진 주요 성당은 아일랜드 성공회 소속이다. 예를 들어 아마의 성 패트릭 대성당도,[29] 더블린 시내에 있는 가장 오래된 크라이스트 대성당과 성 패트릭 대성당[30]도, 킬케니의 성 캐니스 대성당도 아일랜드 성공회 소속이다. 물론 성공회 형성 전에는 천주교 소속이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웃기게도 천주교 더블린 대주교는 주교좌성당(대성당) 대신 임시 대성당만 존재한다[31]. 지금도 바티칸을 비롯한 아일랜드 가톨릭계는 크라이스트 대성당이 더블린 가톨릭 대주교의 정당한 주교좌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근미래에 천주교계가 해당 교회들의 재산권을 되찾을 가능성보다는, 전체적인 기독교 신자인구의 감소로 결국 정부가 교회 재산들을 취합하여 문화재로 관리하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3.3. 미국 성공회[편집]





미국 국립 워싱턴 성당의 부활대축일 장엄 감사성찬례

Protestant Episcopal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PECUSA 또는 ECUSA)[32]
홈페이지
미국 성공회 공식 인준 성경 목록

미국 성공회[34]의 경우 신자의 수도 많고 메이저 교단에 속했었다. 미국 독립 혁명 당시엔 미국 개신교 최다 교파였기에 WASP로 불리는 백인 주류가 믿는 종교라는 인식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기타 교파들보다 지리적으로 남부에 강세를 보였으며 현대와 비교하면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다.[35] 그러나 1960년대 민권운동 시기를 전후해서 진보적이며 광교회적인 성향으로 급격하게 선회했고 이에 대한 반감으로 백인 신자 수가 많이 감소해서 200만명 미만으로 감소했으며 동성애자트랜스젠더 주교 임명 문제로 보수 성향 성공회 교회와 신자들이 적잖이 탈퇴했다. 현재 미국 성공회는 온건파 리버럴 교단의 하나로 인식된다.

남부에서 강세를 보이고 보수적이었다는 이야기가 현대 기준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텐데, 그 시대의 흔적으로 버지니아 주에 성공회 성당이 많이 남아있다. 건축적으로도 알렉산드리아 시에 위치한 그리스도 성당의 사례처럼 달리 장식적인 요소가 없거나 적고 제단에도 단순한 십자가 틀만 세워놓았다는 것이 특징.

한때 미국 내 최다 기독교 교단의 위상을 차지했던 역사는, 워싱턴D.C.에 국립[36] 성공회 성당이 있는 것이나 역대 미국 대통령을 기독교 교파 중 제일 많은 12명이나 배출한 사실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들의 경우 성공회 신자이거나 신자였던 사람[37]들이 대부분이다. 근대 미국 사회의 엘리트들도 성공회 신자였던 경우가 많다.참조 부시 가문도 아버지 부시(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까지는 대대로 성공회였다. 아들 부시도 부정적 인식과 달리 종교면에서만 보자면 이슬람을 비롯한 미국 소수 종교에 배타적이지 않았고[38] 성공회였다가 전 영부인을 따라 연합감리회[39]로 개종한 사례이다.참고1, 참고2

미국 대통령 배출로만 보면 존 F. 케네디조 바이든 2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메인라인(Mainline) 개신교 교단 소속이다. 그렇지만 바이블벨트에서는 남침례회 등 보수 복음주의 성향 개신교 교단이 가장 교세가 강하고 이탈리아아일랜드 공화국 출신 이민자가 많은 북동부에서는 천주교 교세가 강하며 플로리다멕시코 접경지역 역시 히스패닉 인구 증가로 천주교가 강세이다.

미국에서 현재 숫적으로 가장 많고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이 가장 큰 교단은 천주교과 함께 보수적 침례교와 보수적 오순절교회다.[40] 20세기 들어 남침례회 등 보수 복음주의 성향 교단이나 오순절교회나 기존 교단에서 분리된 흑인 교단[41] 등의 교세가 성장한 대신 성공회를 포함한 '메인라인[42] 교단들은 교세가 많이 감소해서[43] 숫자상 'Main'이라고 지칭할 수 없다.[44] 대체로 메인라인(Mainline) 교단들의 교세가 집중된 미국 동북부와 중서부의 경우 남부와 정반대로 미국에서 교회 출석률이 가장 낮다. 현재 연합감리교(United Methodist Church)를 제외한 나머지 메인라인(Mainline) 교단들은 교인 수가 급속한 감소세에 있고 미국성공회(The Episcopal Church)는 이미 타 교단보다 교세가 많이 줄어든데다가 특히 동성결혼, 동성애자 주교 허용, 낙태 용인 등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또 다시 교단 내에서 이탈자가 많아졌기 때문에 200년전 최대 기독교 교단 지위와 대비되게 교세가 많이 줄어들었다. 20여년전 360만의 신자 수를 기록했으나 현재는 180만 정도이다. 인구대비로 보면 한국과 다를 게 없다.

물론 좀 나이드신 분들은 성공회 하면 드레스 셔츠넥타이 매고 네이비색 블레이저와 카키색 드레스 팬츠를 입은 WASP 이미지를 강하게 떠올리는 편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미국의 젊은 세대는 성공회가 한때 미국에서 거의 국교와도 같은 위상을 가졌다는 것은커녕 성공회가 뭔지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 미국의 경우 75%가 기독교인이라 대답하지만, 젊은 세대는 결혼식 또는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나 가는 경우가 많은 문화적 전통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고. 1960년대 이후 미국도 세속화가 이뤄져서 특히 도시지역에서는 교회에 다니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아직도 농촌지역에선 교회의 지역 사회 영향력이 큰데, 이런 곳에서는 사회문화적 성향이 보수적이라 주류교단들의 사회적 위치와 안 맞아 근본주의, 복음주의 성향 교회로 떨어져 나간 경우가 많다. 즉, 전통적인 신앙 인구인 중도, 진보적 성향 해안 도시 백인들은 근대화를 겪으며 아예 세속화, 비종교화가 되었고, 남아 있는 내륙, 농촌에서는 더 근본주의적 성향 교회들의 자극적인 대중성을 따라 갈 수 없어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례/신학의 경우는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미국 북동부와 서부의 경우 도시에 성공회 소속 성당 5개가 있다면 그중 4개는 앵글로-천주교고 1개는 광교회파[45]라 보면 된다. 이들의 전례는 미국 천주교 신자 주류[46]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전통적인 편이다.[47] 신학 또한 천주교에 가까운 경향을 보이는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신학교인 General Theological Seminary는 미국 독립 직후에 설립되었음에도 하드코어 앵글로-천주교이다.[48]

하지만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49] 교단들이 특별히 강세를 보이는 지역인 남부나 중부 등에서는 복음주의파가 다수거나 못해도 광교회파가 많은 편이다. 이쪽 지역에도 전통적인 모습을 보이며 예배의식을 Holy Communion, 즉 감사성찬례(Eucharist)가 아니라 미사라 부르는 교구들도 남아있긴 하다. 그러나 남부에 있는 신학교는 거의 광교회파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미국 성공회의 전례/신학 문제가 복잡해 보이지만 세세한 교리의 경우 신자에게 상당한 믿음의 자유를 주는 편이기 때문에 신자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화체설 관련 믿음 등. 즉 앵글로-천주교/복음주의/광교회 문제의 경우 자기 취향에 맞는 교구를 다니면 되기 때문에 큰 상관이 없다. 더 나아가 앵글로-천주교 교회 내에서도 예배드릴 때 전통적으로 성호를 그어야 하는 부분에서 천주교처럼 성호를 긋는 사람들[50]과 신경도 안 쓰는 사람들로 나뉠 정도.

이는 80년대 이후 미국 성공회의 문화 자체가 아주 기본적인 교리[51]만 믿고 성공회 기도서만 잘 따라 하면 무엇을 믿든, 무엇을 하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아주 개방적인 문화로 바뀌었기 때문이다.[52] 얼마나 개방적인가 하면 무신론자와 결혼한 신부님도 있을 정도. 신자 구성 자체도 단순한 WASP 상류층 위주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들과 소수 인종 및 성소수자들 유입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는 편이다.

북미 지역에는 미국 성공회와 캐나다 성공회에서 갈라져 나온 또 다른 분파인 북미성공회(Anglican Church of North America)가 있다. ACNA의 관구장 주교는 2016년 1월 11~15일에 있었던 관구장 회의에는 참석하였으나, 세계성공회공동체의 가입여부는 2016년 4월 8~20일에 열리는 세계 성공회 협의회(ACC)에서 결정을 내리기로 하였다.

미국성공회가 동성결혼에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 것이 문제되어 세계성공회공동체에 분열을 야기한점을 문제삼아 2016 관구장회의에서 미국성공회의 의결권을 3년간 정지하기로 결정하였다.BBC 기사 동성애 문제를 둘러싼 보수 성향의 아프리카 지역 성공회 관구들의 강력 반발로 인한 성공회 분열 위기를 의식한 결정으로 보인다.[53] 사실 로완 윌리암스 전임 캔터베리 대주교가 진보파라면, 저스틴 웰비 현임 캔터베리 대주교는 중도보수파[54]다. 이 결정에 또다시 동성결혼 지지파인 스코틀랜드 성공회, 잉글랜드 성공회 산하 요크 대교구 등이 반발하면서 언론은 성공회가 심한 내부 긴장관계에 접어들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관구장회의는 세계성공회공동체의 다른 기구나 회의에 비해 아프리카 성공회 관구들의 발언권이 강한 편이며 구미지역 성공회 관구들의 진보적 변화를 견제하는 구실을 해왔다.

뉴스앤조이가 미국성공회와 미국 연합감리교와 완전한 상통에 이뤘다는 보도를 했는데 명백한 오보다. 완전한 상통을 하는 합의문 작성을 잘못 해석했다. 미국성공회(The Episcopal Church)와 달리 미국 연합감리교(United Methodist Church)는 내부 진보파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2019년 2월 총회에서 동성결혼과 동성애자 목사 안수에 대하여 한층 더 보수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가결한 바 있는 등 미국성공회와 달리 보수파 영향력이 훨씬 더 강하다.

대한성공회는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성공회의 전례·신학 변화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진보적 사회참여와 전례[55] 쇄신에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대한성공회 내 광교회 및 저교회 성향 확대도 미국성공회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

참고로 미국 대통령들은 취임식 당일 '대통령의 교회' 라고 불리는 성공회 성 요한 성당(St. John's Church)에서 감사성찬례를 드리고 취임식에 참석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존 F. 케네디와 조 바이든을 제외하면 전부 개신교인이었기 때문에, 취임식 직전 감사성찬례에 참석하고 취임식장으로 갔으며 백악관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인만큼 대통령 재직 기간 중에는 교파에 상관 없이 이 곳에서 감사성찬례에 참석하곤 했다.[56] 도널드 트럼프의 경우 2020년 조지 플로이드 관련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을 당시, 시위하는 군중들을 군인들을 동원해 막은 뒤 성경책을 들고 이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는 퍼포먼스를 한 적도 있다(...) 당연히 성공회 워싱턴교구장 주교에게 비판을 받았다.


3.4. 나이지리아 성공회[편집]


나이지리아 성공회는 신자 수 약 1,800만 명, 14개 관구(Ecclesiastical Province) 산하 161개 교구로 구성되어 규모로만 따지면 세계 성공회의 최대 관구(Province)다.[57] 선교 자체는 1840년대에 잉글랜드 성공회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1970년대에 나이지리아 독립 관구가 설립된 이후 1990년대에 신자와 교구가 굉장히 빠르게 늘었기 때문에 성공회 역사에서 가장 급격하게 성장한 관구라고 할 수 있다.

신학적으로는 세계 성공회의 다른 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 관구들과 마찬가지로 강한 복음주의(저교회)[58] 및 보수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 성공회와 캐나다 성공회의 동성애자 및 트랜스젠더 주교 및 사제 서품에 가장 민감하고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미국 성공회와 캐나다 성공회로부터 받고 있던 선교 지원금이 상당했음에도 현재 두 관구와 상통 관계를 공식적으로 단절한 상태다. 더욱이 성공회 내부의 동성애와 동성결혼 문제를 둘러싼 캔터베리 대주교의 소극적이고 애매한 태도를 이유로 교회법에서 "캔터베리 대주교좌와의 온전한 상통" 문구를 삭제하고 "유일하고 거룩한 보편·사도적 교회의 모든 성공회, 대교구, 관구와의 온전한 상통"이라고 수정해버렸다.

나이지리아 성공회는 세계 성공회의 보수주의 및 복음주의적인 관구로 구성된 글로벌 사우스 및 개프콘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개프콘 회의 때마다 가장 많은 대표자 및 참가자를 보내고 있다. 나이지리아 성공회를 위시로 한 글로벌 사우스 및 개프콘의 목적은 "사도적인 신앙과 성서의 말씀에 따른 올바른 성공회 전통의 재건"으로, 미국 성공회와 캐나다 성공회를 지속적으로 제재하는 한편 북미 성공회를 세계 성공회의 정식적인 관구로 인정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나이지리아 성공회는 미국성공회와 상통 관계를 단절하고 북미성공회와 상통 관계를 맺고 있다.

한편 나이지리아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갈등과 분쟁이 매우 심각한데, 나이지리아 성공회 또한 종종 여기에 휘말리며 아주 최근인 2020년에도 이슬람 극단주의 과격파에 의해 성공회 신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3.5. 우간다 성공회[편집]


우간다 성공회는 신자 수 약 1,100만 명, 37개 교구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세계성공회공동체에서 가장 강경한 보수주의 입장에 있는 관구이다.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한 반대와 개프콘 참가는 물론이고,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과 국회가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동성애 처벌법'에 천주교와 함께 지지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우간다 사회의 보수적 분위기, 에이즈에 대한 혐오감, 우간다 기독교의 복음주의적 성향, 그리고 잉글랜드 성공회가 우간다에 선교를 시작했을 당시 우간다의 왕이자 동성애자였던 카바카 므왕가 2세가 천주교와 성공회 등의 기독교인들을 잔혹하게 탄압했고 순교자도 나왔기 때문이라고 일컬어진다.

우간다에서 이디 아민이 집권하고 있던 때에 이디 아민의 잔혹한 독재에 저항했으며, 이때문에 관구 대주교인 자나니 루움(Janani Jakaliya Luwum, 1922-1977) 대주교가 처형당하기도 했다. 루움 대주교는 1998년 잉글랜드 성공회가 지정한 '20세기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3.6. 남아프리카 성공회[편집]


남아프리카공화국 성공회.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맞서 투쟁해온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로 유명하다.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 본인이 성소수자에 진보적 입장을 취했으며, 남아프리카 성공회가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투쟁에 동참하며 백인 사회 내 성소수자 인권운동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있어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성공회 관구 사이에서 거의 유일하게 동성결혼 등 성소수자 문제에 적대적이지 않으며 토론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우간다 성공회가 배후에서 무가베 정권의 반동성애 정책을 대체적으로 지지하는 것에 비하면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미국성공회 등 다른 관구처럼 동성결혼을 인정하지는 않으며, 몇몇 유력 인사들은 글로벌 사우스 및 개프콘에 참가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중에도 보어인의 주된 종교인 네덜란드 개혁교회와는 신학·사회적 입장 차가 상당했다고 한다.


3.7. 호주 성공회[편집]


호주는 영국의 영향력을 크게 받고 있는 만큼, 성공회도 호주에서 교세가 상당하다. 호주 인구 중 약 53%가 기독교인인데, 그 중 천주교가 22.6%, 성공회가 13.3%이다. 현재 호주 성공회의 대표자는 필립 프레이어 멜버른 대주교[59]이고, 23개 교구가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는 성공회 신자가 천주교보다 2배 더 많았고, 70~80년대까지는 비슷했으나, 그 후 교세가 많이 줄어들었다. 더군다나 교인들도 노령화가 상당하다. 다만 이는 성공회만의 문제는 아니며 천주교의 처지도 비슷하다. 두 교회는 나란히 매년 교세가 줄고 있지만[60] 두 교단에 속하지 않는 개신교나 다른 종교인 이슬람교, 인도계 종교(힌두교, 불교, 시크교)는 유지내지 늘어나는 추세이다.[61] 인구 구성으로만 본다면 호주 성공회의 미래는 존립 기반이 흔들릴 정도로 상당히 암울하다고 볼 수 있다. 근래 30여년 간 신자 비율은 반토막이 났으며 전술한 바와 같이 신자들의 노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편 이는 신학적 진보와 연관되기도 한다. 호주 성공회에서는 교회 안팎의 다른 중요한 문제는 제쳐놓고 오로지 세속적 인권가치, 그것도 동성애 문제 하나만 신경을 쓰냐는 비판과 함께 보수적인 신자들이 천주교(주로 고교회파 출신)나 다른 개신교 교파(주로 저교회파 출신)로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성애 및 동성결혼 문제로 인해 관구 내에서 갈등이 굉장히 첨예해, 뉴캐슬 교구나 왕가라타 교구 같은 진보적인 교구에서는 교회에서의 동성결혼을 전폭적으로 허가하고 독려하는 반면에 시드니 교구[62]나 멜버른 교구 같은 보수적인 교구에서는 동성결혼 불허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전통적 영향으로 교회의 영향력이 큰 편이긴 한데 가령 시드니와 멜버른의 유서 깊은 교회 건축물들 대다수는 성공회이거나 천주교 교회 건물이다. 사회복지나 구호단체도 성공회 소속이 많다. 이들 활동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받는 경우가 많아서 거의 공무원급이라 보면 된다. 그리고 사립 초등학교~고등학교는 천주교와 더불어 성공회 계열 미션스쿨들이 많다. 호주 학부모들은 공립학교에 대해 불신이 많은 편인데, 천주교나 성공회 계열 사립학교는 엄격한 교칙 때문에 인기가 많다.


3.8. 싱가포르 성공회[편집]


정식 명칭은 성공회 동남아시아 관구(Church of the Province of South East Asia)로, 해당 관구는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말레이시아·브루나이·인도네시아·캄보디아·태국 등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각지에서 성공회 사목을 담당한다. 싱가포르가 속해 있는 싱가포르 교구는 동남아시아 관구의 선교 중심 기지이다.

싱가포르에서는 불과 20여년 전까지 '개신교는 곧 성공회'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성공회의 교세와 개신교 내 비중이 컸던 나라이다. 지금은 오순절교회와 보수 복음주의 성향 독립교회 성장으로 개신교 내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개신교 내 최대 교파 위치를 점하고 있다.

성향은 복음주의 선교단체인 LMS(London Missionary Society)로부터 선교가 되었기 때문에 복음주의 및 보수주의가 강하다. 현재 세계성공회의 복음주의 및 보수주의 관구의 연합체인 개프콘에 참가하고 있다.


3.8.1. 인도네시아 성공회[편집]


Gereja Anglikan Indonesia

3.9. 홍콩 및 마카오의 성공회[편집]


홍콩영국이 식민지배했던 중국 남부 섬 홍콩 섬과 본토 쪽에 붙어있는 육지 부분인 구룡반도·신계 그리고 200개가 넘는 유/무인 도서로 이루어진 도서지방으로 현재는 1국가 2체제에 의해 홍콩특별행정구 정부가 들어선 상태다. 그래서 중국공산당이 직접 통치하는 중국 대륙과 달리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당연히 성공회 교구도 정상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누린다.

홍콩성공회 역사는 빅토리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홍콩 섬 센트럴에 영국군 장교들이 세운 성 요한 성당이 바로 그때 만든 교회로 현재도 신자 수가 많으며 홍콩인 신자들의 신심도 매우 깊은 편.

홍콩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공회 강세인 곳으로 본토 중국의 기독교인들이 대부분 보수 복음주의 교회 혹은 오순절 교회 성향을 가진 것과 달리[63] 홍콩은 성공회가 주요 교단 중 하나이다. 2016년 연감에 따르면 홍콩 개신교인 50만 명 중 2만 9,000여 명이 홍콩 성공회 교인이다. 나머지는 장로회·감리회·침례회 등으로 모두 영국인 선교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영국이 건설한 선교기지 중 하나가 홍콩으로 현재 홍콩성공회가 전 동아시아를 혼자 담당하는데 다른 동아시아 국가는 성공회 신자가 없다시피 해서 그렇다. 개신교인이 전체 인구 중의 15% 이상인 한국조차 성공회는 1%도 되지 않는 극소수 교파다. 그리고 북한·일본은 성공회는커녕 그리스도교인 자체가 없다시피 하거나 극소수이다.

홍콩 성공회는 한때 홍콩에서 최대 교단의 위상을 차지했고 지금도 여전히 주류 교단의 하나이지만, 1950년대부터 천주교 및 다른 개신교 교파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해서 현재는 기독교 내 비중이 높지 않다. 참고로 홍콩에서 가장 교세가 많은 개신교 교파는 감리교·성공회·장로회가 있으며 근래에는 침례교·오순절교회·독립교회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홍콩성공회는 정치·사회적으로 중도우파에서 중도좌파적 입장을 취하는 반면, 침례교·오순절교회·독립교회 같이 근래에 비교적 빠르게 성장하는 교파들은 신학·사회적으로 보수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64]

영국에서 유학하거나 성공회/천주교계 사립학교[65]를 다닌 젊은 층이 서구화되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이때 대개 천주교감리회 그리고 성공회를 고른다. 홍콩은 영어로만 수업하는 사립 중등학교 선호도가 매우 높은 곳이라서, 부모 세대는 불교를 믿지만 본인은 천주교나 성공회 혹은 기타 개신교를 믿는 사람이 많다.

참고로 1944년 성공회 최초의 여성신부가 서품된 곳이기도 하다.

마카오포르투갈 식민지였기 때문에 반대로 기독교는 천주교를 의미하고 성공회는 원래 소수였다. 그러나 현재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성공회 교세가 증가하고 있다.


3.10. 일본 성공회[편집]


성공회가 일본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는 에도 막부 시대 말기인 1859년이었다. 대한성공회가 USPG라는 영국성공회 앵글로-가톨릭 선교 단체에게서 단일 계통으로 전래받은 것과 다르게 일본성공회는 도쿄요코하마 등 관동 지역은 미국성공회, 나고야 등 중부 지역은 캐나다성공회, 오사카 등 관서 지역은 영국성공회에게서 전래받았다. 현재는 북으로 홋카이도 교구부터 남으로 오키나와 교구까지 11개의 교구가 모두 일본 성공회로 한 관구를 이루고 있으며, 신자 수는 약 5만 명 정도이고 300여개의 교회가 있다.[66] 2022년 기준 일본 성공회 관구장 주교[67]는 무토 겐이치(武藤謙一, 루가) 규슈교구장 주교다.

신자 수가 많다고 하기는 어려운 규모이지만, 애초에 일본은 기독교인이 다 합해봐야 100만명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일본 기독교계에서 성공회 입지는 꽤 크다.[68]

성직자에 대한 호칭은 일반적으로 '신부'보다는 '목사', 혹은 '사제'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주교-사제-부제인 삼성직을 주교-목사-집사(혹은 부목사, 목사보)로 칭하는 경우가 잦다.

성향은 교구마다 다양하다. 규슈교구에서는 성소수자를 위해 사목하는 교회가 존재하고, 도쿄교구는 전반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해 친화적인 편이다. 반면 일본성공회에서는 관구 차원에서 여성 사제를 인정하고 있는데 아직 11개 교구 중 3개 교구는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성공회에서 여성 사제를 허용할 때, 몇몇 신자와 성직자는 천주교로 회심하거나 천주교 소속 성공회 성직자치단으로 소속을 옮겼다.

성공회는 사회 선교를 중요시하게 생각하는데, 일본성공회에서는 그 일환으로 교회에 보육원과 유치원을 만들어서 사회복지에 기여하고 있어서, 성당에 보육원이나 유치원이 딸려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미션스쿨로 여러 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릿쿄대학이나 모모야마대학 같은 고등교육기관도 운영하고 있다.

전술했다시피 도쿄 소재 명문 대학 중 하나인 릿쿄대학이 일본 성공회 재단이다. 윤동주 시인이 일본 유학 시절 다녔던 대학으로, 릿쿄대학 유학 당시 교목(校牧)이었던 다카마츠 다카하루 교수에게 특별히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릿쿄대학 대학성당(채플)에서는 윤동주와 관련된 행사를 자주 개최한다.

일본성공회와 대한성공회는 매우 긴밀히 교류하고 있으며[69], 양국 간 우호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70][71]


3.11. 한국 성공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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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는 선교 자체가 영국성공회의 앵글로-가톨릭 선교단체인 USPG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앵글로-가톨릭의 색채가 강했고 현재도 그 영향이 남아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20세기 전례 운동과 그에 따른 람베스 회의의 에큐메니컬적인 결의안, 그리고 미국 성공회의 전례나 신학 등의 여러 변화의 바람이 대한성공회에도 불어닥치면서 전례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여기에 타 개신교 교단에서 전입한 평신도와 성직자가 늘어나면서 신학적으로도 광교회파와 저교회파 영향이 강해졌다. 물론 일부 교회들에서는 고교회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며 감사성찬례 등 전례의식은 전 교구가 동일하다. 다만 일부 교회들 마다 관습에서 조금씩 차이가 난다.

현재 대한성공회의 전례는 앵글로-가톨릭의 영향이 남아있으면서도 20세기 전례 운동의 결과물인 리마 예식서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리마 전례와 유사하며, 20세기 전례 운동에 같이 영향을 받은 천주교의 바오로 6세 미사와도 비슷하다.[72] 신학적으로는 광교회파적 진보 성향이 강해졌다는 평을 받는다. 게다가 보수적인 사제나 진보적인 사제나 고교회파 혹은 저교회파 성향을 띠고, 여기에 보수적 사제는 복음주의 성향을 가지고 진보적 사제는 진보 성향을 가지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에, 현재 대한성공회를 고교회파·저교회파·광교회파로 분류하는 것은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분석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 대한성공회는 복음주의와 진보 성향으로 나눠서 분류하는 것이 실정에 맞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수를 자랑하는 개신교 교단인 성공회이지만, 한국에서는 상당히 마이너하다.


4. 참고[편집]


  • 람베스 회의 결의안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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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에서는 '영국국교회(英國國敎會)'나 '영국성공회(英國聖公會)'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으나, 영국은 보통 연합왕국(United Kingdom)을 가리키므로 혼란의 여지가 있는 표현이다. 물론 '영국'이라는 용어 자체가 원래는 잉글랜드를 가리키다가 연합왕국을 가리키는 말로 와전된 것이 굳어진 것이라 애초에 문제가 있는 표현이다. 그리고 사실 잉글랜드 '국교회'도 아니고 그냥 '잉글랜드 교회'가 직역명으로 더 정확하다. 다만 '국교회'라고 부르는 건 잉글랜드에서 형식적으로 국교(established church) 지위가 있다는 것을 명시하기 위해 의역한 것이다.[2] 다른 하나는 세계 성공회 공동체에서 분리된 성공회 연속(Anglican Continuum)으로 불리는 보수 연합체이다. 세계 성공회 공동체는 이들이 네 개 상통의 수단을 이행하지 않음으로, 자신들과 상통하지 아니하면서 성공회 연속에만 참여하는 교회들을 성공회가 아닌 유사한 형태의 별개 교단으로 간주한다.[3] 다만 성공회 연속은 세계 성공회 공동체와 달리 단일된 연합 조직의 성격을 띄지 않는다. 나이지리아 성공회와 같이 세계 성공회 공동체와 성공회 연속 운동 모두 참여하는 경우도 존재한다.[4] 이는 로마교회가 서유럽, 더 나아가 전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도 로마 주교(교황)에 예속된 형태로 구성되었다는 점과 차이가 있다.[5] 비정기적이지만 대략 10년 전후의 주기로 개최된다.[6] 잉글랜드 교회와 세계 성공회 공동체 일반(=람베스 결의안) 사이의 신학적 괴리는 갈수록 커지는 추세이며, 21세기에 들어와 사회자유주의적 어젠다를 보면 람베스 결의안과 잉글랜드/미국/캐나다의 관구들 사이에 엇박자가 상당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7] 서두에 거론된 성공회 연속이 대표적이다.[8] 특히 회원교회 간 신부/신학생 교류를 적극 후원한다. 과거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있겠지만, 아프리카 성공회 국가 교회의 신부들은 영국과 미국 유학에 상당한 지원을 받는다.[9] 대한성공회의 경우 1994년부터 시행[10] 제13차 람베스 회의 결의안[11] 그 후 2022년의 람베스15까지 이 결의안을 번복하는 결정은 나지 않고 있다. 이후 서술한 바와 같이 영국, 미국, 캐나다 등 소위 '선진국' 교회의 입장을 강제한다면 이미 번복되고 남았을 텐데, 높은 성장세를 힘입은 아프리카 및 남미 '신흥국' 성공회 교회들의 입김이 많이 강해졌다는 사실을 반증한다.[12] 지금에서야 노예제철폐, 인종차별철폐, 민권강화가 너무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성경적 근거는 노예제, 인종차별 그리고 제한된 민권을 지지한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19세기까지의 전통적인 기독교에서도 이를 지지해왔다.[13] 이 문단을 읽으며 나무위키의 성공회 관련 전반적인 서술과 달리 대한성공회의 존재감이 없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는데, 실제 람베스 회의에서 대한성공회는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는 편이며, 관구의 규모적 문제로 동아시아 관구 간 교류를 제외하고는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다.[14] 한국에서는 '영국국교회(英國國敎會)'나 '영국성공회(英國聖公會)'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으나, 영국은 보통 연합왕국(United Kingdom)을 가리키므로 혼란의 여지가 있는 표현이다. 물론 '영국'이라는 용어 자체가 원래는 잉글랜드를 가리키다가 연합왕국을 가리키는 말로 와전된 것이 굳어진 것이라 애초에 문제가 있는 표현이다. 그리고 사실 잉글랜드 '국교회'도 아니고 그냥 '잉글랜드 교회'가 직역명으로 더 정확하다. 다만 '국교회'라고 부르는 건 잉글랜드에서 형식적으로 국교(established church) 지위가 있다는 것을 명시하기 위해 의역한 것이다.[15] 전통적으로 잉글랜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일부 접경 지역에 제한된다. 웨일스 대부분은 잉글랜드 국교회 산하에 있다가 분리된 웨일스 성공회(Church in Wales)가 관할한다.[16] 터키 및 구 소련 국가들도 포함한다.[17] 당연직 5명(캔터베리, 요크, 런던, 더럼, 윈체스터), 나머지 21명은 오래 재임한 교구장 순서대로 지명하되, 여성 교구장에 우선권 부여.(여성교구장 우선권 부여는 2015년 부터)[18] 참고로 Church of Scotland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신자가 많은 장로회를 의미한다.[19] 설립 당시 스코틀랜드 일각에서 한 나라로 합병되는 것에 반발하는 분위기가 있는 상황이었는데,(물론 지지한 사람들도 있었음) 만약 스코틀랜드에서 Anglican Church라는 용어를 쓰면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에 종교적으로까지 침투하려 한다는 적대적인 반응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태를 우려한 탓인지 스코틀랜드 성공회 이름에는 Episcopal을 집어 넣었다. 다만 2021년 현재 홈페이지 주소는 https://www.scotland.anglican.org/로 도메인에 anglican이 들어가 있다.[20] 파키스탄 카라치 출신으로 이슬람 역사를 전공한 바 있으며, GAFCON에 우호적인 인사이다.[21] GAFCON에 부정적인 인사이다.[22] 미리 적어두건데, 나지르알리의 공식 발언들은 찾아보면 철저히 이슬람의 예수학과 신앙 교류 관련 예절에 대한 지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23] 특히, 'Our intention will be as a Church to explore how, particularly in the area of worship, this work can be carried forward in ways which will command respect' 라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이슬람이 기독교와의 교류 관계에서 일방적인 위치를 점한다는 인식이 생기지 않겠도록 하겠다'는 뜻도 될 수 있다. [24] 아일랜드 섬에서 활동하는 많은 조직들이 아일랜드 섬 전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히려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를 따로 관할하는 조직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25] https://www.cso.ie/en/media/csoie/census/census2016/2016censusforms/65995_English_Household_2016_New_Version_Do_Not_Complete.pdf#page=4 [26] 천주교 78.3%, 성공회 2.6%, 정교회 1.3%.[27] 북아일랜드 신교도 중 적지 않은 수가 스코틀랜드 이주민의 후손이다. 따라서 이들의 후손들 중에 장로회 신자가 많다.[28] 반면 북아일랜드 가톨릭은 유럽의 세속화 경향을 역류하여 오히려 2020년대까지 교세가 계속 상승했다.[29] 물론 천주교 측에서 맞은편 언덕에 성 패트릭 대성당을 다시 새로 세웠다.[30] 참고로 두 성공회 성당은 마주보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서로 거리가 가깝다. 도보로 3-4분 거리.[31] 1932년부터 1948년까지 에이먼 데 발레라 총리 재임 시절 아일랜드 정부와 가톨릭교회는 특별히 강하게 유착하고 있었고, 이 당시 천주교 우익 및 보수 민족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성 패트릭 대성당 몰수 및 반환 주장이 일었다. 이 주장은 여론의 상당한 지지를 받았지만 현실화되지는 않았다.[32] 보통 The Episcopal Church(TEC/EC)로만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33] 유럽 본토는 영국성공회 캔터베리관구 산하의 유럽교구(Diocese of Europe)가 관할한다.[34] 미국 성공회 산하 일부 관구의 관할 지역은 미국을 비롯해서 일부 유럽[33], 나아가 대만까지 포함된다. 여기서는 주로 미국 내의 성공회에 대해서 다룬다.[35] 정치적으로도 Paul Kleppener(1979)에 따르면 19세기 말 성공회 교도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던 비율은 전체 인구의 45%였으며 공화당을 지지하던 비율은 55%였다.(이 당시에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포지션이 정반대였다.)[36] 정확히 얘기하자면 워싱턴 국립 성공회 성당 건립을 미 연방 의회가 의결한 것.[37] 이들 중 상당수가 이신론자이긴 했다. 이 시기 지식인들은 기독교식 세계관에는 동의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반종교 성향은 아니었다. 당시 이신론자들은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니었으나 칼뱅주의 윤리관과 정치론에 공감했다. 그래서 이신론 성향임에도 성공회 신자를 자처했으며 성공회 신자로서 큰 무리 없는 신앙생활 했던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이신론자로 알려진 조지 워싱턴의 경우도 대통령 취임식 마치고 바로 성공회 성당에서 열린 추수감사절 감사성찬례에 참여했을 정도였다. 이들이 정말 기독교인이냐 아니냐에 대한 말들이 많긴 하지만 그들에 의해 정립된 천부인권 등의 건국이념이 기독교에 근거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38] 도널드 트럼프 이후에 재평가 받았다.[39] 연합감리교(UMC)는 메인라인 개신교(Mainline Protestant) 계열이라고 인정받아왔으나 다른 메인라인 교단과는 달리 최근에 보수파의 입김이 꽤 강해졌다.[40] 1950년대부터 오순절교회와 신학적으로 비슷한 보수적 독립교회들도 미국에서 크게 성장했다. 이들의 대사회적 입장 또한 다른 보수 개신교 교단과 비슷하다.[41] 흑인 교단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교단이 있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교단이 있다.[42] 보통 Mainline 대신 Old Line 으로도 불리는데 역사적으론 18~19세기 당시 백인 주류 WASP 다수가 믿었던 개신교 교단들이다.[43]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44] 일각에서는 메인라인(Mainline) 교단이 장로교, 루터교, 침례교, 감리교, 성공회 등 몇몇 교파의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인 것처럼 이해하지만 이는 틀린 이해다. 한 가지 분명히 할 점은 장로교 교단이나 루터교 교단이라고 해서 다 '메인라인(Mainline)' 교단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장로교 교단 중에서도 미국장로교(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나 정통장로교회(Orthodox Presbyterian Church) 등 교단 성향이 대체로 보수적이면 '메인라인(Mainline)' 교단으로 분류되지 않고 '보수'나 '복음주의' 교단으로 분류된다. 이는 루터교도 마찬가지어서 '루터교 미주리시노드' 교단이나 '루터교 위스콘신시노드' 교단도 '복음주의 루터교' 교단과 달리 '메인라인(Mainline)' 교단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심지어 미국성공회(The Episcopal Church)를 탈퇴한 북미성공회(Anglican Church in North America)도 '메인라인(Mainline)' 교단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메인라인(Mainline)' 교단이라 함은 장로교, 루터교, 감리교, 침례교, 성공회, 회중교회 전체를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 교파 중 특정 교단을 의미하는 개념이다.#[45] 쉽게 말해 앵글로-천주교와 복음주의 사이의 중도파. 광교회파를 자유주의를 따른다고 보기도 한다.[46]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개혁을 충실히 받아들인 천주교인 대다수.[47] 예를 들어 천주교 성당은 오르간 대신 풍금을 배치한 경우도 상당하지만, 성공회 성당은 되도록 반드시 오르간을 배치한다. 하지만 미국은 프랑스와 함께 전통 가톨릭 운동 발원지인데다가 그 운동이 가장 활발한 나라 중 하나이다. 미 전역에 전통 가톨릭 단체에서 운영하는 성당이 있으며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등의 대도시에는 그런 성당이 몇 곳이나 있다. 때문에 미국 천주교의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신자들은 굳이 성공회 전례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 성공회가 천주교를 흉내냈을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48] 한국의 성공회는 미국의 성공회보다 천주교와 더 비슷했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 한국의 성공회는 전례/신학 양 측면에서 광교회파와 저교회파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해지면서 현재는 미국과 한국의 성공회 어느쪽이 더 천주교에 가깝느냐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49] 남침례회는 교인 수가 1,400만이 넘는 미국 내 최대 개신교 교단이다. 이에 비하면 미국성공회는 미국 개신교 내 비중이 2%도 되지 않는다.[50] 실은 이렇게 성호를 그리는 경우 천주교의 현대 미사형식인 바오로 미사보다 전통적인 미사 형식인 트리엔트 미사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즉, 현대 천주교보다 더 많이 긋는다.[51] 삼위일체론성체성사세례성사 관련 믿음 등. 쉽게 말하자면 주류 기독교 종파들의 공통분모들.[52] 이는 미국 성공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특히 제1세계) 성공회의 문화 자체가 그렇다.[53] 의외로 남동부 아프리카의 성공회 교회들이 규모가 큰 편이다. 미국 성공회 신자수를 다 합해도 케냐 성공회 신자수에 못 미친다.[54] 성공회 내 복음주의파. 동성결혼과 동성커플에 관한 혼인성사에는 반대하지만 호모포비아적 태도를 배격하고 여성 신부 문제에는 호의적인 입장. 그러나 2016년 후반기 이후에는 동성결혼에 대해 사실상 찬성입장으로 돌아선 듯하다.[55] 현 천주교 바오로 6세 전례와 비슷한 전례로[56] 조 바이든의 경우 백악관 근거리에 위치한 천주교 성 마태오 대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취임식장으로 향했다.[57] 신자 수로만 따지면 영국성공회가 2,500만 명으로 최대 관구지만, 영국성공회는 2개 관구 42개 교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일 감사성찬례 평균 참석자 수가 100만 명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이다.[58]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우간다 성공회 사제가 한 예장합동 교회에서 영어 예배를 집전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주류 개신교와의 교류가 물밑에 있을 정도로 저교회 성향이 강하다는 것.[59] 이는 천주교도 마찬가지로 멜버른 대주교가 호주 교회를 대표한다. 현직 천주교 멜버른 대주교는 데니스 하트이다.[60] 천주교 신자도 2011년에는 25.3%였으나 5년 후인 2016년에는 22.6%로 거의 3% 정도 줄어들었다. 사실 이전의 천주교회의 선방(?)도 천주교 세가 강한 아일랜드나 남미 이민자의 효과 덕이었다.[61] 이슬람은 레바논을 비롯한 중동 이민자, 인도계 종교도 인도계 이민자의 영향이며 동남아 화교 출신 이민자나 한국계 이민자는 개신교가 많은 편이다.[62] 시드니 교구는 저교회적인 요소를 상당히 지니고 있어 삼성직의 의미가 크게 와해되었고, 기도서대로 예배를 하지 않는 저교회파 교회가 많으며, 제의를 착용하지 않고 예배를 집전하는 성직자들이 적지 않다.[63] 공식 통계로는 천주교가 0.3%, 개신교가 2.0% 정도이나 둘 다 최소 2배에서 4배 정도로 추산된다. 왜냐하면 중국 공산당 통제 하의 어용교회만이 공인교회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신학자 차원에서는 다양한 신학 성향이 있지만 이신칭의파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일선 비공인교회는 특히 보수 신학의 영향력이 강하다.[64] 그래서 이들은 동성결혼성소수자 문제에 꽤나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65] 홍콩 사립학교의 70%는 기독교 미션스쿨이다. 특히 성공회가 제일 비중이 크다. 그 이유는 성공회가 사회선교를 중요시해서이다.[66] 대한성공회가 서울교구, 대전교구, 부산교구 3개의 교구로 한 관구를 이루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많이 나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잘게 나눠진 데는 여러 섬으로 나뉜 지리적 환경과 여러 계통으로부터 전래를 받은 역사적 상황이 관련이 있다.[67] 수좌주교(首座主教)라고 함.[68] 천주교가 약 50만 명, 정교회는 약 1만 명, 개신교가 약 50만 명으로 집계된다.[69] 대한성공회 내에서 일본인 평신자나 사제를 간혹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양국 성공회 청년회에서 주기적으로 교류활동을 한다.[70] 한일 성공회, 한일합방 사죄 성명서 발표키로[71] 참회로 日 성공회 거듭나화해는 이벤트 아닌 영원한 과정[72] 다만 천주교와의 교리적인 차이점 때문에 일부분에서는 차이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