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r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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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
2. 약력[편집]
- 1954.2. 포항영흥국민학교 졸업
- 1957.2. 포항중학교 졸업
- 1960.2. 동지상업고등학교 졸업
- 1964.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직무대행[8]
- 1965.2.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 1965. 현대건설 경리과 평사원
- 1976. 한국포장건설 사장
- 1977.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 1978. 인천제철 대표이사 사장
- 1978. 한국도시개발 대표이사 사장
- 1978. 한국철강협회 부회장
- 1978. 구국여성봉사단 운영위원[9]
- 1980. 해외건설협회 업계대표 부회장
- 1980.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업계대표 부회장
- 1981. 대한알루미늄 사장
- 1981. 대한수영연맹 회장[10]
- 1982. 현대엔지니어링 사장
- 1982.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 1982.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겸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 1982. 체육훈장 백마장·거상장 수훈
- 1983. 한국능률협회 부회장
- 1983. 해외건설협회 이사
- 1983. 동남아경제협력 건설분과 위원장
- 1984. 아시아수영연맹 회장
- 1984. 국제수영연맹 집행위원
- 1984. 국민훈장 석류장 수훈
- 1985. 한라건설 대표이사 사장
- 1985. 금탑산업훈장 수훈
- 1986. 주한 부탄 왕국 명예총영사
- 1986. 체육훈장 거상장 수훈
- 1987.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
- 1987. 현정국토개발상 수상[11]
- 1988.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
- 1988. 한무쇼핑 대표이사 회장
- 1988. 현대엔진공업 대표이사 회장
- 1989. 현대종합목재 대표이사 회장
- 1989. 한·소련 경제협회 부회장[12]
- 1990. 현대자원개발 대표이사 회장
- 1990. 한국항만협회 이사
- 1990. 대명기업 대표이사[13]
- 1990. 대명통상 대표이사
- 1991. 한국사회발전연구소 이사장
- 1991. 동북아민간경제협회 회장
- 1992.5. 제14대 국회의원 (전국구 / 민주자유당)
- 1992. 6.3동지회 회장[14]
- 1992. 미국 아칸소 주 명예대사
- 1993. 한국청년실업인협회 회장
- 1993.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운영이사회장
- 1993. 제1차 세계한인상공인대회 조직위원장[15]
- 1993. 부동산임대이명박 대표[16]
- 1995. 삼청로터리클럽 회장
- 1995.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 1995. 소망교회 장로[17]
-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민주자유당 경선 후보
-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서울 종로)
- 1996. 한국국악협회 고문
-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한나라당 경선 후보
- 1998. 한국체육대학교 명예이학박사
- 1998. 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물 등재[18]
- 1999.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객원연구원[19]
- 1999. BBK투자자문 대표이사 회장
- 2000. 아시아·태평양 환경 NGO 한국본부 총재[20]
- 2000. 캄보디아 훈 센 총리 경제고문
- 2000. LKe뱅크 대표이사 회장
- 2000. e뱅크증권중개 대표이사 회장[21]
- 2000. 한국장애인정보화협의회 명예회장
- 2001. 해외한인무역협회 고문[22]
- 2001.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 미래경쟁력분과위원장
-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한나라당 후보
- 2002.7.1.~2006.6.30. 제32대 서울특별시장 (민선 3기)
- 2002. 제2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의장
- 2004. 서강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 2004. 카자흐스탄 국립유라시아대학교 명예이학박사
- 2005. 몽골 몽골국립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 2005. 목포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 2006.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회장
- 2007 .한나라당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위원장
- 2007.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후보
- 2008.2.25.~2013.2.24.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
- 2008.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명예박사
- 2009.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명예행정학박사
- 2011. 프랑스 파리제7대학교 명예예술학·문학·철학·고전학박사
- 2011.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대학교 명예환경학박사
- 2011. 덴마크 코끼리훈장 수훈
- 2013.2. 무궁화대훈장 수훈
- 2013. 캄보디아 훈 센 총리 경제고문[23]
3. 일생[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명박/일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오사카부 오사카시에서 태어나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성장했다. 1965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여 12년 만에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에 오르면서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다.
1992년 김영삼에게 발탁되어 민주자유당에서 정치에 입문하였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서울시장 재임 당시 추진한 청계천 복원사업과 대중교통 환승할인제 개편을 완수하며 호평을 받았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를 득표율 차이 22.53%p, 득표수 차이 5,317,708표로 꺾고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24] 이는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평화적 정권교체에 해당한다.
2023년 기준 생존한 전직 대한민국 대통령[25] 중 최고령이며 생존한 전 현직 대통령을 통틀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태어난 마지막 인물이다.
3.1. 이명박 정부[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명박 정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논란[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명박/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평가[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명박/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여담[편집]
- 족보 이름(譜名)은 이상정(李相定)으로 형 이상은과 이상득처럼 '상(相)' 자 돌림이다. 이명박(李明博)이라는 이름은 이명박의 어머니가 이명박을 임신했을 당시 보름달이 치마폭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기 때문에 밝을 명(明)에 넓을 박(博)으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유년기에 일본에서 지낼 때 창씨개명한 이름은 쓰키야마 아키히로(月山明博/월산명박)이다.
- 여러 가지 휘호들을 남겼다.
- 1979년 6월 10일에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제전에서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이명박 옆에 당시 박근혜 영애와 최순실이 앉았다. 당시 이명박은 구국여성봉사단(새마음봉사단) 운영위원이었고, 박근혜는 봉사단 총재, 최순실은 전국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장이었다.
-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났다. 물론 엄밀히 따져보면 태어났을 당시에는 외국이 아니었지만, 광복 이후는 물론이고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일본제국 본토와 식민지 조선의 차이는 존재했다. 여담으로 최초로 외국에서 출생한 영부인은 두 갈래로 나뉘게 되는데,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의 시민권을 취득한 영부인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프란체스카 도너이고, 외국에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나 귀국한 영부인은 이순자이다.
- 최초의 기업 CEO 출신 대통령이다.
- 현대건설 사장 재직 시절 대한수영연맹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 현대건설 사장 재직 시절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관리 감독한 사람 중 한 명이다.
- 전두환 정부 당시 정권에서 상공부장관으로 이명박을 쓰려고 했으나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이 거절했다고 한다. 1988년 민주정의당에서 강남구 갑 선거구에 출마 요구를 했으나 역시 회사 차원에서 거절했다고.[출처]
- 유년 시절 장래희망은 교사와 소방관이었으며, 좋아하는 정치인으로 마하트마 간디와 안창호를, 좋아하는 음식으로 김치찌개와 스파게티를 꼽았다. 주량은 맥주 2컵이고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26]
- 생일과 결혼기념일, 그리고 대통령 당선일이 모두 12월 19일로 같다. 때문에 이날을 "트리플 크라운 데이"라고 부르면서 매년 전날인 12월 18일에 친이계 출신 전현직 의원들이 모여 송년회를 겸한 생일잔치를 한다. 이외에도 청와대 비서관급과 수석비서관급, 장관급 인사들도 날짜를 달리해 각각 이명박과 회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측은 매년 벌여온 자축연이고 참석자가 많아 이명박과 안부 나누는 정도일 뿐이라며 세력화 등의 정치적 해석을 경계한다고 밝혔다.[27] 19일 당일에는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고 한다.
-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07년에 과거 아들이 재학했었던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 방문하기도 했다. 사진에 나온 식당은 현운재라는 교수 전용 숙박건물에 있는 교수 전용 식당이다.
- 인터넷상에서 이명박이 학생운동 시절 도피 차원에서 여장하는 사진이 돌아다닌 적이 있었는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28]
- 서울시장 재직 시절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2003년 WCG 폐막식에서 우승자 이용범과 이벤트 경기를 벌이는 사진이다. 종족은 저그로서 경기를 위해 5개월 전부터 연습했다는 후문이 있지만 시작 5분 만에 4드론으로 패배했다. 거기다 상대방의 정찰기(오버로드)를 잡는 위엄을 보였다고 한다.[29]
- 생방송 음악캠프 성기노출 사건으로 인디 밴드에 대한 질타가 높아지자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은 홍익대학교 퇴폐공연 블랙리스트를 만들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한때 홍대의 클럽들을 싹 다 뒤엎으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디밴드의 반발로 무산되고, 친분이 있었던 유인촌의 설득을 듣고 오! 부라더스 공연을 관람하여 인디밴드와 화해하고, 홍대거리에 대한 생각 또한 긍정적으로 바꿨다고 한다. 여기서 설명했다시피 대통령 이전부터 이명박의 별명은 불도저였다.
- 취임 후 첫 철도 착공식인 원주강릉선 착공식에 병풍으로 KTX-산천 열차를 사용했는데, 하필 착공식이 강릉역에서 열린 나머지 KTX가 영동선 스위치백을 넘는 장면이 목격되었으며, 400억짜리 병풍이라는 논란이 일었지만 철덕들에게는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
- 대통령으로서는 본의 아니게 매우 희한한 이력이 생기고 말았다.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평범하게 대통령을 했으나, 자기 앞뒤로 탄핵소추를 당한 유일한 대통령이 되었다. 전임자 노무현은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기각하면서 2008년까지 지위를 유지했으나, 후임자인 박근혜는 2017년에 파면되었다.
- 서울시장으로서도 본의 아니게 매우 희한한 이력이 생기고 말았다. 정작 본인은 임기를 전부 마치고 퇴임했지만 현재 기준 마지막으로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친 서울시장이 되었다. 후임 서울시장 2명 모두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치지 않았다.[30][31]
- 닮은 사람이 매우 많다. 주로 언급되는 사람으로는 마릴린 맨슨[32] , 유희열, 인피니트 김성규, 서승만, 박명수, 유동근[33] , 잉글랜드의 미드필더 존조 셸비 등이 있다. 양궁 선수 기보배와도 닮았으며, 젊은 시절을 보면 축구 선수 이천수와 야구 선수 김하성과도 닮았다.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와도 닮았다.[34]
- 폴아웃: 뉴 베가스의 그렉과도 닮았다. (미간 위치 주목)
-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정민성과도 상당히 닮았다.
- 나이에 비하면 상당히 동안이다. 현재 82세이며, 임기 중에도 65세가 넘어갔기에 법적으로도 노인이었다. 당장 다음 대통령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나이차도 10살 이상이고 이전 대통령인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도 나이가 많다. 운동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을 보면 자기관리를 꽤 열심히 하는 듯하다.
- 유행어로는 '나도 해봐서 아는데~'가 있다. 사용 예로는 '나도 호떡 장사 해봐서 아는데~'가 있다. '내가 건물 만들어 봐서 아는데~', '내가 배도 만들어 봐서 아는데~' 식의 발언들이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할 수 있다. 농담식으로 넘기면 될 듯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과 장사를 해본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여고 앞에서 한 뻥튀기 장사가 있다. 가난했던 유년시절
- 대표적인 범친이계 국회의원이자 이명박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지냈던 정병국의 말로는 이 많은 경험을 했던 것이 이명박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한다. 이명박은 회의 등에서 참모들의 얘기를 끝까지 다 듣지만 마지막에는 항상 본인의 의사대로 결정했는데, 이때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하면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고 한다. @
- 민주화 이후 최초로 임기 종료 시까지 소속된 당에서 탈당하지 않고 당적을 유지한 대통령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모두 임기 말에 지지율이 떨어지면 소속된 당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탈당했는데, 처음으로 새누리당 당적을 지킨 채 임기를 마무리한 것이다. 사실 대통령 임기 막판에는 인기가 시들해지고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당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당 차원에서는 애물단지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임기 말 당으로부터 압력이 들어와 쫓겨나거나 탈당하는 관습이 존재했었다. 일례로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노태우는 김영삼에게 토사구팽 당했고, 김영삼부터 노무현까지 전부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여생을 보냈다. 이명박이 당적을 유지한 배경으로는 퇴임 지지율이 높았던 점도 한몫했지만 그게 결정적일 정도로 높은 지지율은 아니었다는 견해가 많다(탈당했던 김대중과도 큰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이명박이 당적을 유지한 것은 역대 대통령이 대선까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했던 점과는 다르게 친이-친박을 필두로 척을 지는 이미지가 강해서 박근혜와 크게 엮이지 않은 점이 큰 요소였다. 다만, 대통령 퇴임 이후 당 회비를 계속 내지 않고 있었으며, 2017년 1월 새누리당을 자유한국당으로 개명하기 이전에 탈당했다.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이 탈당을 하지 않으면서 이 기록은 최초가 되었다.
- 논필가 지만원에게 뒷조사 시도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의 사이는 같은 우파라도 좋을 수가 없다.[35] 그의 주장으로는 이명박의 부친은 (이명박 본인의) 자서전에 언급한 대로 양반 태생이 아니며, 친일 행각을 한 노비이며, 부친의 원래 이름은 떡쇠이며,[36] 이명박은 그의 일본인 첩 사이에서 낳은 서자라고 했다. 다만, 지만원 평소 행적 특성상 지만원의 말이 사실일 확률은 거의 없다. 애초에 지만원은 이명박을 공격하기 위해 저런 말을 한 것 같지만 설령 이게 사실일지라도 부친의 친일 행각이라면 문제가 될지언정 신분제가 폐지된 현대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아버지가 노비면 어떻고 본인이 서자라고 하더라도 별 상관이 없다.
- 청담동 가로수길 꼬르소 꼬모에서 아내 김윤옥 여사와 브런치를 즐기거나 원래 취미였던 테니스장이나 여러 공연장에서 목격되는 등 꽤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즐겼던 것 같다.
- 2007년 대선 후보 시절에 조선일보에서 진행한 문답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로 원더걸스를 꼽았다. 물론 이 당시는 아이돌 그룹 자체의 수도 적었고 원더걸스가 천하통일을 했던 때였기 때문에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정치인들 대부분은 원더걸스를 뽑았다.[37]
- 노홍철이 아는 형님 중 가장 높은 사람이다. 무한도전에서 게스트로 초청하겠다고 전화를 걸었지만 멤버들의 만류로 무산되었고,[38] 노홍철 본인에 의하면 정치적 목적은 없고 실제로 친분이 있다고 한다.[39]
- 서울시장 시절 탈모가 심해져 2005년에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 실제로 서울시장 재직 중의 모습을 보면 거의 대머리 수준으로 탈모가 진행된[40]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대통령 중 탈모로 인해 모발이식 수술을 받은 최초의 대통령이자 미용 목적으로 수술을 받은 두 번째 대통령이다. 첫 번째는 안검하수 수술을 받은 노무현이 있지만 사실 이쪽은 안검하수 수술이기 때문에 미용 목적이라고 하기는 뭣하다.
- 박근혜에게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수행을 못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 사적으로는 형인 이상은, 이상득, 이재오[41] 와 사적으로 매우 친한 관계이다. 배우 유인촌과도 상당한 친분을 가지고 있어 취임하자마자 유인촌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했다.[42][43] 정운찬의 경우 예전에도 친분이 있었으나 능력을 높이 사서 한때 국무총리로 임명하면서 더 친해지게 되었고, 지금도 그 친분을 이어 가고 있다. 현재도 최측근들과 더불어 유인촌과 정운찬을 자주 만나는 편이다.
- 이명박의 아들 이시형보다 형 이상득의 아들(조카)이 이명박과 외모가 유사하며, 어째 아버지 이상득보다 숙부 이명박을 닮은 편이다. 실제로 비교해 보면 많이 닮았다. 장녀 이주연은 이명박을 빼닮았다.
-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와도 많이 친했다. 이재오와 함께 6.3 항쟁 때 서로 친해졌으며, 한나라당 시절 서울시장 때는 이명박, 이재오, 손학규 셋이 같이 만나 6.3항쟁 동지회라든지 모임을 상당히 많이 가졌었다고.[44] 이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 같은 한나라당 소속일 때는 박근혜까지 포함해 소위 한나라당의 Big4로 언급되기도 했다. 이명박, 이재오, 손학규, 박근혜 중 4명 모두 각 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고, 3명이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며, 그 중 2명이나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름에 걸맞기는 했다.
-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경우 친노지만 이명박, 이상득 형제처럼 대기업에서 종사했던 경험이 있는데다 이명박과 같은 고려대 출신인 공통분모가 있어 어느 정도 인맥관계로 얽혀있다.[45]
- 제17대 대통령 당선 직후 바로 심상정을 직접 찾아 가서 만나서 인사하기도 했다.[46][47] 여담으로 이명박과 노회찬은 같은 고려대학교 출신이라고 한다.[48] 그리고 노회찬과 심상정이 진보신당을 창당하던 때에 이명박은 대통령이었는데, 진보신당 창당 때와 진보신당 창당 2년차 모두 이명박이 직접 축하 화환을 보냈다. 진보신당 창당 기념식장에 이명박이 보낸 축하 화환 창당 2년차에도 축하 화환을 보낸 점을 봤을 때 이명박과 노회찬, 심상정이 과거에는 상당한 친분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오히려 이들이 매우 친한 사이인 줄 알 정도다. 다만,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는 관계가 예전보다는 다소 멀어졌다.[49]
- 자기가 퇴임하기 전 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염두에 두고 있던 인물이 매우 친한 사이인 이재오와 정운찬이었고, 이재오랑은 알다시피 매우 친해서 이재오가 출마선언을 했을 때 이재오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19대 대선 때 이재오뿐만 아니라 반기문, 홍준표, 유승민이 이명박을 예방했는데, 이재오가 늘푸른한국당 대선후보로 출마했을 때 이명박은 이재오가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인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역대급 사태로 범 보수계 정치세력이 대거 붕괴해 친이계나 보수계 모두 대통령 당선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이재오를 지지한단 선언을 했으니, 이재오, 정운찬 등을 차기 수장으로 한 자 계파와 친박계가 새누리당에서 당권투쟁을 할 때도 실제로는 이재오나 정운찬이 차기 대권주자가 되길 바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현재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과거에는 박원순과도 상당히 친분이 있었다. 서울시장 시절 월급 전액을 박원순이 설립한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했고 아름다운가게의 명예고문으로도 활동했으며, 한 달에 한 번 꼴로 만나 정책적 조언을 주고받는 등 교류가 활발했다. 특히 기부금 액수 때문에 한때 박원순의 든든한 후원자는 이명박이라는 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이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박원순은 이명박을 맹비난하면서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 어찌된 일인지 이명박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도 이전이었던 2007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시에는 최태민 일가의 국정농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언을 했고, 뜻밖에도 이는 현실이 되었다. 다만 박근혜의 무능과 최씨 일가와의 관계는 당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단지 이들이 자기보신 등 여러 가지 어른의 사정 탓에 침묵을 택했거나 혹은 이 기사처럼 쓴소리나 폭로를 해도 묻히던 시절이었다. 어쨌든 2007년 경선 과정에서 벌어진 양측의 네거티브 공방은 훗날 서로를 목 죄게 된 올가미가 되었다고 보기도 하지만[50]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 당선 이전에도 박영선과 정봉주가 BBK, 다스 관련 의혹을 박근혜 캠프를 능가할 정도로 매우 끈질기게 제기했던 만큼 박근혜가 이런 의혹을 전혀 제기하지 못했어도 대선 과정에서 박영선, 정봉주 등의 민주당계 인물들에 의해 의혹으로 공격당했을 가능성이 여전히 매우 높다.
- 주력전차 MBT-70이 이명박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농담도 있다.
- 상도동계 직계 인물들과는 대부분 친한 편이지만 강삼재, 서청원 및 한나라당 시절 민주당계 정당으로 이적한 상도동계 김영춘, 박재호 등 직계 일부와는 현재로써는 친분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강삼재는 이명박이 정계 입문했을 당시부터 이명박이랑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아 이명박이 17대 대선에 출마했을 때도 대부분 이명박 지지선언을 한 상도동계 중진과는 다르게 이회창을 지지했다. 서청원과는 한때 친분이 있었지만[51] 2007년 서청원이 친박계가 된 직후에는 견원지간으로 변했다.[52] 이는 이재오도 마찬가지다. 또한, 김영춘과 박재호는 이미 2000년대 초반에 한나라당이 민주공화당처럼 변해간다면서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했으니 이명박과 친분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시피 하다.
- 사격 자세와 관련하여 논란이 인 바 있다. 광대뼈 함몰 사격 자세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사격자세를 잘 알지 못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총기거치대가 탄착지점과 일치하는지 확인했던 것이다. 참고.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과 서울시장 시절에 찍은 제대로 된 사격 자세 사진도 있다. 서울시장 시절 경계 근무 체험을 하면서 사격 자세를 잡았었는데, 그때는 정상적인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사격자세라는 소리는 애초에 말이 안되는 소리다. 한번이라도 총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탄을 발사하기 위한 방아쇠의 위치는 앞에 있다.(사진에는 실탄함에 가려져 있다. 실탄과 실탄함 사이)
- 가훈이 '정직'이라고 한다.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기재되었던 내용이다. #
- 이명박의 전 측근인 정두언 전 의원은 2018년 2월 28일 tbs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일종의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정두언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명박은 하늘로부터 항상 보호를 받는다는 선민의식이 있었고, 이 때문인지 사석에서는 "이제껏 나(이명박)를 건드리고서 잘 된 인간은 1명도 못 봤고, 내가 하면 일이 모두 잘 풀린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고 주장한다. 다만, 정두언 혼자만의 주장인데다 실제로 정두언은 이명박에 대해 김희중 아내의 장례식 때 조화는커녕 청와대 직원 한 명도 보내지 않았다거나, 17대 대선 때 이명박의 후보 홍보물을 제작한 재미교포 인쇄업자가 돈을 요구하자 자기 사재를 털어서 막아줬다거나(참고), 이명박이 17대 대선의 사후처리를 위해 국정원 특활비를 썼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사실이 아니거나 근거가 불분명한 험담을 수차례 늘어놓은 적이 있어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 본인이 뭐든지 직접 나서서 최전방에서 모든 책임을 지고 일을 처리하는 성향이 강한 편이었다고 한다.[53] 내가 직접 나서겠다라는 짤방도 그런 이명박의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
- 나이가 나이인지라 독수리 타법이다.
- 교도소에서 지내면서, 지지자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에 답장을 잘 해주기로 유명한데 지금까지 유저들의 인증 등으로 공개된 답신만 21년 12월말 기준으로 20개 가량 된다. 2021년 3월 13일에는 어떤 디시인사이드 유저가 보낸 편지에 답장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 국민일보
6.1. 먹방왕[편집]
그 이유로는 자수성가한 진짜 흙수저 서민 출신이라 음식을 가리지 않는 식성이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의견이 통설이다. 실제로 대통령 재직 시절에도 밥을 가렸다는 에피소드가 없고[55] , 같은 흙수저 출신 자수성가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던 노무현, 문재인 또한 한 먹방 했었다는[56][57] 사실과 반대로 먹방을 못 하는 것으로 유명한 박근혜는 정반대로 금수저 출신이었다는 점, 똑같이 먹방을 못하기로 유명한 금수저 출신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58] 를 생각하면 제법 설득력 있는 추측이다.[59] 실제로 이명박이 유일하게 가리는 음식은 잡곡밥인데, 어린 시절 쌀밥을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던 기억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쌀밥에 한이 맺혀서 잡곡밥을 가리는 식습관은 이명박과 비슷한 나잇대의 보릿고개 시절을 겪어본 노년층들 대부분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명박은 사실상 가리는 음식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명박의 성장 배경과는 별개로 상당히 유복한 가정 출신에 상대적으로 더 풍요로운 시절 성장했지만 먹방 능력이 뒤지지 않는 후임자가 나왔다.[60] 그러나 이명박이나 문재인처럼 균형 잡힌 식사와는 거리가 먼 식습관에 운동도 별로 안 하는 것으로 알려져[61] 있는 게 아쉬운 부분. 그냥 먹는 걸 좋아하는 게 캐릭터라고 보면 되겠다. 의외로 콩에는 알러지가 있는지 콩밥은 안 먹었다고 한다.
대선 후보 당시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서 MC 김승현이 이명박의 집을 찾아가서 아침밥을 대접받았는데[62] , 찌개 사이즈의 돌솥에 쌀밥을 짓고 날계란을 넣어서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63] # 뜨거운 쌀밥에 계란과 간장을 넣고 비빈 간장비빔밥은 기운이 없을 때마다 별식으로 부탁해서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당연히 위험한 오이는 아니었고, 후쿠시마산 오이 시식을 할 것이라는 통역을 들은 각국의 수행원들도 황급히 현장에 준비된 오이와 방울토마토의 방사능 수치를 직접 검사했다고 하지만, 방사능 위험 논란이 있는 지역의 농산물을 외국 정상들에게 반강제로 먹이는 장면이어서 외교적으로 심각한 결례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대중과 TV 카메라가 보는 공개적인 장소였기에 외교적으로 일본을 배려해서 웃으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수행원들도 지나친 행동이며, 놀림을 당하고도 말 한 마디 못한 꼴이라고 반발했다고 한다. 일본이 방사능으로 나라가 망하니 마니 하는 정신 없는 상황이다 보니 앞뒤 가릴 거 없이 연출한 장면이어서 국제적으로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기는 했다.
이에 반해 국산 오이를 먹는 모습은 정말 완벽하게 맛있어 보이게 찍혔다.[64] # 심지어 저것도 기획된 쇼라는 것이 밝혀졌는데, 그 이유는 자기가 알아서 먹게 내버려 두면 상상 이상으로 먹을 것 같아서라고 한다.[65] 누가 옆에 있어도 저렇게 먹는데 대체 풀어놓았으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저렇게 너무 먹성이 좋았던 탓인지 퇴임 후 당뇨병에 걸렸다고 한다. 전두환의 알츠하이머병처럼 거짓이라고 의심한 이들도 있었지만[66] , 그의 혈당과 병원 기록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실제 당뇨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같은 대식가 대통령인 김대중도 당선 전부터[67] 당뇨병에 걸렸다.[68] 최측근 중 한 명인 이동관 전 홍보수석이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부터 있었던 지병이며 가족력의 영향도 있다는 듯 하다.# 이게 맞는 말인 것이, 당뇨병은 생활 및 식습관이 좋은 사람들도 많이 걸리는 질병으로, 대체로 유전 혹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 대통령직이 주는 업무량과 스트레스, 나이를 감안하면 걸리지 않는 것이 이상하긴 하다만 아직까지 문제가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봤을 때 본인이 혈당 관리를 철저히 하는 듯 하다.[69]
6.2. 외모 관리[편집]
그리고 외모관리에도 철저해서 샤넬 메이크업 베이스, 유리아주 립밤, 크리스챤 디올 립글로우, 아벤느 미스트, 설화수 기초 등을 사용한다고. 인터넷에서는 맹뿌템, 명박템으로 불리고 있다. 기자들이 그가 지나가면 짙은 향수 냄새가 남아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외모관리가 철저한 덕에 나이에 비해 엄청나게 동안이다. 서울시장 재임(2002년~2006년) 당시보다 오히려 대통령 재임(2008년~2013년) 시절이 더 괄목 할만 한데, 당시 60대 후반~70대 초반이었음에도 50대 후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상당한 동안을 자랑했다. 특히 노인의 상징인 주름이 거의 없어서 5살 어린 전임자 노무현보다 오히려 젊어보였을 정도.[71]
더구나 이명박은 동안으로 보이기 좋은 큰 눈, 동그란 얼굴 등의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음에도 오로지 피부관리와 염색, 금연 등의 관리만으로 괄목할 수준의 안티에이징을 이루어 냈던 것이다. 꾸준한 피부 관리와 노화방지 케어가 얼마나 사람의 인상을 달라지게 하는지 보여주는 산증인이었다.
대통령 재임시절, 2010년 이전에는 안경을 착용하지 않아 서울시장 재임시절 이미지가 많이 남아있었으나 2010년 이후 백내장 수술로 인해 보호용 목적으로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원래는 일시적인 목적으로 안경을 착용했으나 안경이 외모에 부드러운 인상을 심어준다는 평으로 2013년 대통령 퇴임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착용했다. 눈이 작다 보니 안경을 썼을 때와 안 썼을 때의 인상 차이가 좀 큰 편이다. 안경을 쓰면 날카로운 눈매가 좀 더 부드러워진다.
그런 그도 탈모는 피할 수가 없어서 서울시장 말기인 2005년 말에 모발이식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재직 초기(2002년)와 말기(2006년) 사진의 차이가 확 느껴진다. 대통령 퇴임 후에는 더이상 머리관리는 하지 않게 돼서 머리숱이 적은 흰머리 스타일로 나이에 맞는 얼굴이 되었다.
7. 어록[편집]
한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길을 국가가 막는다면, 국가는 그 개인에게 영원한 빚을 지는 겁니다.
건설은 창조입니다.
현대건설 면접에서 정주영 회장이 건설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자 이명박이 위와 같이 대답.[72]
성공을 바라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성공을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젊은 여러분 스스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준비하는 사람만이 미래를 열 수 있습니다. 이 시대가 바라는 것도 준비하고 도전하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부모가 뭐하는지 알릴 만하면 이 장사 하고 앉았겠어요, 제가? 그걸 왜 물어봐요, 어른이. "너 이름이 뭐지?" 이름 알아서 뭐해요. 돌아가면 잊어버릴 텐데, 이름 알아서 그 이름 가지고 자기가 메모했다가 이 다음에 뭐 도와줄 거에요? 아마 그 어른은 돌아가서 "내가 길바닥에 있는 한 놈을 내가 용기를 줬다"고 할는지 몰라요. 저는 그 어른이 지나고 난 다음에 수모까지 느껴요. 차라리 모른체 하고 지나가지.
기본적으로는 낙태에 대해 반대인데, 불가피한 경우가 있단 말이에요. 가령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낙태도 반대 입장이에요. 보수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젊은 배우들이 많이 뜨잖아요. 그 영화는, 거기 중견배우들이 살짝 한물 좀 가신 분들이 모여가지고 한거야. 돈 적게 들이고 돈 번 거야. 그 배우들, 돈 적게 준거 같던데, 딱 보니까. 아주 머리를 썼더라고요. 내가 딱 보니까 그래. 아주 여럿이 있었는데, 한때 다 인기가 있던 사람들이었는데, 지금 아마 그 배우들은 요즘 젊은 배우 한 사람보다 적게 들었을거야. 아, 아이디어, 벤처 아이디어다, 이게. 그렇잖아요. 요즘 비싼 계약하고, 젊은 배우 막 스카웃해 가지고 말이지, 그렇게 만든 영화가 아니고, 시간이 남아가지고 말이지, "누가 안 불러 주나" 하고, 단역으로 나올 사람들 말이지, 단역으로 나올 사람들을, 역을 하나씩 다~ 줘 가지고, 활발하게 나오게 만드니까 얼마나 좋겠어. 아마 공짜로 나오라고 해도 다 나왔을거야. (돈을) 준다고 계약하고, 실제로는 안 줬는지….
나라를 위해, 잘해서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후보를 어떻게라도 끌어내리기 위해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
지난 2002년 김대업 같은 인물을 만들고, 정부의 모든 기관이 힘을 모아 이회창 후보를 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했는데, 끝나고 나니 새빨간 거짓 음해임이 드러났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려고 김대업을 여러 명 준비해서 하나씩 내놓고 있다.
저는 군대를 무척 가고 싶었습니다. 갈 수만 있었더라면 어떻게해서든 아마 갔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기침) 입학을 하고 저는 이태원동 재래시장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환경 미화를 하면서 다녔고, 제 어머니는 그 시장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2년간 그 일을 하니깐 힘이 들어서 좀 쉬고 싶고, 그 기간에 군대를 가고 싶었습니다. (기침) 군대를 가서 논산훈련소에 도착해서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만은 뜻 밖에 제가 기관지확장증 등 몇 가지 요인으로 퇴출 당하게 생겼습니다. 제가 군의관에게 치료를 해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군대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만은, 결국엔 논산훈련소에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도곡동 땅, 하늘이 두 쪽 나도 제 땅은 아닙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 이상 무슨 표현이 필요합니까.
뭐, 도곡동 땅이 어떻다고요? BBK가 어떻다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저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습니까? 여러분. (중략) 누구도 나의 길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중략)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여러분 언제부터 한방에 간다 한방에 간다 그러더니 그 한방이 어디 갔습니까? 허풍입니다, 허풍!
강재섭 대표 얼굴만 보면, 저거 어떻게 쥐어박고 싶었어.
경제, 반드시 살리겠습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아마 내년되면 (주가가) 3000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실물경제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허망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더 나아가 임기 5년 중에 제대로 되면 5000까지 올라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주가가 진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정권교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교체를 하면 주가가 전반적으로 상향조정 될 것입니다.
2007년 12월 14일 여의도 대우증권 본사에서
대한민국은 위대한데 위대하지 못한 지도자를 만났기 때문에 오늘 이 모양으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약속한다, 뭘 해주겠다, 뭘 해주겠다. 그렇게 약속하고 지난 5년간 잘했으면 나라가 이 꼴이 됐겠습니까? (중략) 국민에게 겁을 먹어야 하는데,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국민을 마음대로 하는 건 줄 알아요. 기가 막혀요, 정말.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만들어놔야 합니다.
우리 내외 살아갈 집 한 칸이면 족합니다. 그 외 가진 재산 전부를 내어놓겠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옛날엔 안 그랬는데 저렇게.
2007년 박영선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 이명박에게 악수하면서 "왜 그러세요? 저 똑바로 못 보시겠죠?" 하면서 쏘아 붙이자 맞받아치면서[73]
이 사건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열 번, 백 번을 수사하고 특검을 하더라도 결과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은 오직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6월 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날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 이슬이라는 노래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서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그렇지만 제 임기 중에 일어난 사회지도층의 권력형 부정과 불법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대로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왜... 장사가...어... 야, 이것 좀 이것 좀 사먹어라 야~ 뻥튀기! (중략) 내가 노점상 할 때는 슈퍼마켓이 없었거든!
저는 앞으로 어떤 정권도 "방송을 장악할 수 있다, 언론을 장악할 수 있다"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렇게 생각합니다.[75]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 된다. 우리 정권은 돈 안 받는 선거를 통해 탄생한 특성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 시국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디, 소속이 어디에요? (저는 시사IN 주진우 기자입니다) 어? (시사IN 주진우 기자입니다) 대표로 묻는 거 아니죠? (시국에 대해서 한마디 해주시죠) 정말 참담한 심정이죠. 어떻게 이렇게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시위에 나온 사람이나, 나오지 않은 국민들도 똑같은 심정일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국민들의 뜻을 잘 받아줬으면 좋겠고... 이 나라는 선진국 문턱까지 왔고, 또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지만 헌법적인 절차가 중요하지 않는가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권에서는 탄핵도 거론되고 있는데) 그것도 헌법적인 절차의 하나죠.
2016년 11월 21일 김영삼 대통령의 묘지 참배 후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최순실 게이트 관련한 물음에
본인이 뭐라고 하든 모두가 다 알고 있으니 순리대로 따르면 되겠죠.
아이고. 좀 잘해! 잘해가지고 모범을 보여야지. (중략) 시작은 좀 미약해도 끝이 아마 좋을 거야.
저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오면서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6개월 적폐청산이라는 명목으로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개혁이냐 감정풀이냐 정치보복이냐 이런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발전하는 동안에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기침) 우리 모두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이 부정적인 측면보다도 훨씬 크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정적인 것을 고치기 위해서 긍정적인 측면을 파괴해서는 아니 됩니다.
내가 오늘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아네, 나도 모르는…."
2018년 5월 23일 공판 종료 후,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법정 맨앞에서 재판을 방청한 가족들에게 잠시 다가가며
2018년 5월 23일 뇌물 수수 및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후 첫 정식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여 법정에서 검사 측을 보며
7.1. 제17대 대통령 취임사[편집]
선진화의 길, 다 함께 열어갑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만 해외동포 여러분, 이 자리에 참석하신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 그리고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엥흐바야르 남바르 몽골 대통령, 삼덱 훈센 캄보디아 총리, 후쿠다 야스오 일본 내각총리대신, 빅토르 줍코프 러시아 연방 총리, 무하마드 유수프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을 비롯한 각국 경축사절과 내외 귀빈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국민 여러분의 부름을 받고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한없이 자랑스러운 나라, 한없이 위대한 국민 앞에 엄숙한 마음으로 경의를 표하며 제게 주어진 역사적, 시대적 사명에 신명을 바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하겠습니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통합하겠습니다. 문화를 창달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겠습니다. 안보를 튼튼히 하고 평화 통일의 기반을 다지겠습니다. 국제사회에 책임을 다하고 인류공영에 이바지 하겠습니다.
올해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잃었던 땅을 되찾아 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세계 역사상 최단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과업을 동시에 이루어 내었습니다. 오로지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힘으로 일구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베푸는 나라로 올라섰습니다. 이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신화’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우리가 다 함께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입니다.
그것은 신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진실한 삶의 이야기입니다.
독립을 위해목숨을 바친 선열들, 전선에서 산화한 장병들, 뙤약볕, 비바람 속에 땅을 일군 농민들, 밤낮없이 산업현장을 지켜낸 근로자들, 젊음을 바쳐 민주화를 일구어낸 청년들의 눈물겹도록 위대한 이야기입니다.
장롱속 금붙이를 들고 나와 외환위기에 맞섰던 시민들, 겨울 바닷가에서 기름을 걷고 닦는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사회 각 영역에서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수행해온 수많은 직장인들과 공직자들, 이들 모두가 대한민국 성공신화의 주역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내놓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떳떳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자부심이 미래를 여는 대한민국의 힘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로 가는 길을 찾아 열어가고자 합니다.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실의 제약을 여유롭게 바라보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향해 함께 전진하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60년을 시작하는 첫해인 2008년을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합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을 소중하게 가꾸고, 각자가 스스로 자기 몫을 다하며, 공공의 복리를 위해 협력하는 사회, 풍요와 배려와 품격이 넘치는 나라를 향한 장엄한 출발을 선언합니다.
지난 10년, 더러는 멈칫거리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이제 성취의 기쁨은 물론 실패의 아픔까지도 자산으로 삼아 우리는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합니다. 실용정신은 동서양의 역사를 관통하는 합리적 원리이자, 세계화 물결을 헤쳐 나가는 데에 유효한 실천적 지혜입니다.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개인과 공동체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삶을 구현하는 시대정신입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이룩하는 데에 나와 너가 따로 없고, 우리와 그들의 차별이 없습니다. 협력과 조화를 향한 실용정신으로 계층갈등을 녹이고 강경투쟁을 풀고자 합니다.
정부가 국민을 지성으로 섬기는 나라 경제가 활기차게 돌아가고, 노사가 한마음 되어, 소수와 약자를 따뜻이 배려하는 나라
훌륭한 인재를 길러 세계로 보내고, 세계의 인재를 불러들이는 나라, 바로 제가 그리는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룩하고자 하는 선진 일류국가의 꿈입니다.
기적은 계속될 것입니다. 신화는 이어질 것입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발전의 엔진에 다시 불을 붙여 더욱 힘차게 돌아가게 하겠습니다. 제가 앞장서고 국민 여러분이 하나 되어 나서면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이 시점에서 우리 함께 다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 흐름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 세계는 우리를 저만치 앞질러가고 있습니다. 후발국들도 바짝 추격해오고 있습니다. 국가경쟁력은 떨어지고 자원과 금융시장의 불안이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국내 사정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중산층은 위축되고 서민생활은 어려워졌습니다. 계층간, 집단간의 관계는 여전히 갈등과 투쟁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시민사회는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권리주장이 책임의식을 앞지르고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오고 있습니다. 분단국으로서 지고 있는 짐도 무겁습니다.
다음 60년의 국운을 좌우할 갈림길에서, 이 역사적 고비를 너끈히 넘어가기 위해서 저는 국민 여러분이 더 적극적으로 변화에 나서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변화를 소홀히 하면 낙오합니다. 변화를 거스르면 휩쓸리고 맙니다. 변화의 흐름을 타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더 빨리 변해야 합니다. 불합리하거나 시대에 맞지 않으면 익숙한 것들과 과감히 헤어져야 합니다. 방향은 개방과 자율, 그리고 창의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경제 살리기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신성장동력을 확보하여 더 활기차게 성장하고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정부부터 유능한 조직으로 바꾸고자 합니다. ‘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효율성을 높이겠습니다.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앞으로 정부는 잘 하는 곳은 더 잘 하게 해주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힘이 되는 역할을 맡겠습니다.
꼭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은 민간에 이양하겠습니다. 공공부문에도 경쟁을 도입하겠습니다. 세금도 낮춰야합니다. 그래야 투자와 소비가 살>아납니다.
공무원 수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는 빠른 시일 내에 혁파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머지않아 새 정부가 효율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업은 국부의 원천이요, 일자리 창출의 주역입니다. 누구나 쉽게 창업하고 공장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업인이 나서서 투자하고 신바람 나서 세계 시장을 누비도록 시장과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겠습니다.
기술혁신을 추구하는 중소기업들이 활기를 가져야 합니다. 이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해서 대기업들과 협력하고 경쟁하도록 돕겠습니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경영하는 기업인들이 존경받고,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이 사랑받아야 합니다.
노와 사는 기업이라는 수레를 움직이는 두 바퀴입니다. 어느 하나가 제몫을 못 하면 수레가 넘어집니다.
선진국에서는 노사분규가 현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과격한 투쟁은 결국 자멸을 가져온다,” 는 인식을 노사 모두가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노사문화의 자율적 개선은 선진화의 필수요건입니다. 이제 ‘투쟁의 시대’를 끝내고 ‘동반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기업도 노조도 서로 양보하고 한걸음씩 다가서야 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업이 힘을 내야 합니다. 기업이 먼저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으로 노동자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이런 때 노동자도 더 열심히 일해 주어야 합니다. 불법투쟁은 지양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 노사관계가 건강해집니다. 정부도 원칙과 성의를 가지고 노력하겠습니다.
시장개방은 피할 수 없는 큰 흐름입니다. 수출산업이 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국부를 늘려가야 합니다.
그러나 개방에 취약한 부문에서는 걱정이 많습니다. 특히 농어민들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우리 국민 모두가 농어민의 아들딸입니다. 농업, 농촌, 농민 걱정이 곧 나라 걱정입니다.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정부가 함께 하겠습니다.
농림수산업이 더 이상 1차 산업으로 머물러선 안 됩니다. 첨단 생산기술을 접목하고 유통 서비스 경영과 결합시켜 경쟁력 있는 2차, 3차 산업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해외시장 개척에도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농어민과 정부가 뜻을 합치고 지혜를 모으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고, 다 함께 건강하고 편안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은 국가가 보살펴야 합니다.
시혜적, 사후적 복지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능동적, 예방적 복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낙오자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됩니다.
여성은 시민사회와 국가발전의 당당한 주역입니다. 여성의 사회참여는 사회를 성숙하게 만듭니다.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해서 시민권과 사회권의 확장에 힘쓰겠습니다. 더 많은 여성이 의사결정의 지위에 오를 수 있도록 기회를 늘리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습니다.
생애주기와 생활형편에 따른 수요에 맞추어 맞춤형 보육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정부가 보육의 짐을 덜어주면 저출산 문제가 개선될 뿐만 아니라 삶의 질과 인적 자원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청년세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국내외에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젊은이들의 사회 진출을 돕겠습니다. 주거생활을 안정시킴으로써 개인 생활은 물론 사회의 안정 기반을 확보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노인복지대책도 시급합니다. 노령연금을 현실화하고, 공공복지를 개선하겠습니다.
고령자를 위한 의료혜택과 시설을 늘리고, 근로의욕이 있는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도 힘쓰겠습니다.
장애인들에게도 더 따뜻한 배려와 함께 더 많은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보살피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선진화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얼마나 훌륭한 인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청소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꿈과 활력의 발전기 입니다. 청소년들의 적성과 잠재력을 개발하고 디지털,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는 일에 적극 나서겠습니다.
교육개혁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획일적 관치교육, 폐쇄적 입시교육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고 교육현장에 자율과 창의, 그리고 경쟁의 숨결을불어 넣어야 합니다.
학교유형을 다양화하고 교사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주력하겠습니다. 그래야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사교육 열풍이 잦아들게 됩니다. 학생들의 적성과 창의력이 살아납니다.
대학의 자율화는 국가경쟁력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선진화의 관건입니다. 교육과 연구의 역량을 늘려서 세계의 대학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지식기반사회의 전선에 서야 합니다.
교육의 기회를 질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형편이 어려워도 공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복지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습니다.
과학이 사회를 합리적으로 바꾸고 선진화 시킵니다. 한국의 몇몇 과학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20년, 30년을 내다보면서 과학기술의 창의적 역량을 키워 가겠습니다.
우수한 과학도를 길러내고, 과학자를 존경하고 우대하는 사회적 풍토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과학기술이 미래로 가는 문을 열어줍니다.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거대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에 국가가 장기계획을 가지고 밀어 주어야 합니다. 대학과 기업과 정부의 연구개발 협력체제도 보다 실질화 하는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주택은 재산이 아니라 생활의 인프라입니다. 주거생활의 수준을 높이고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는 주거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펴나가겠습니다.
국토의 구조를 미래지향적으로 개편하고자 합니다. 해양지향, 광역화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미래의 생활양식에 필요한 공간 활용 방안도 마련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 친환경, 친문화적 기조를 유지하여 국토의 건강성과 품격을 높여나가겠습니다.
환경보전은 삶의 질을 개선하고 환경산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냅니다. 지구 환경 변화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기상재해가 잦아지고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에 적극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 경제가 이에 적응하려면 당장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참고 창의적으로 적응해야만 합니다.
식량, 환경, 물, 자원, 에너지 등과 관련된 정책 전반을 환경친화적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문화국가입니다. 최근 세계무대에서 주목받는 한류는 그런 전통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전통문화의 현대화와 문화예술의 선진화가 함께 가야 경제적 풍요도 빛이 날 것입니다.
이제는 문화도 산업입니다.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문화강국의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문화수준이 높아지면 삶의 격조가 올라갑니다. 문화로 즐기고, 문화로 화합하며, 문화로 발전해야 합니다.
정부는 우리 문화의 저력이 21세기의 열린 공간에서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더 넓은 시야, 더 능동적 자세로 국제사회와 더불어 함께하고 교류하는 글로벌 외교를 펼칠 것입니다.
우리는 인종과 종교, 빈부의 차이를 넘어 세계의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되겠습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 공동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지구촌의 평화와 발전에 동참하겠습니다.
미국과는 전통적 우호관계를 미래지향적 동맹관계로 발전, 강화시키겠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형성된 역사적 신뢰를 바탕으로 전략적 동맹관계를 굳건히 해 나가겠습니다.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대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일본, 중국, 러시아와 고루 협력관계를 강화하여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모색하겠습니다.
우리 경제의 엔진을 안정적으로 가동하기 위해 자원과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에도 힘쓸 것입니다. 아울러 평화와 환경을 위한 국제협력에도 앞장서겠습니다.
우리의 경제규모와 외교역량에 걸맞게 인류 보편의 가치를 구현하는 기여외교를 펴겠습니다. UN 평화유지군에 적극 참여하고 공적개발원조를 확대하겠습니다.
문화외교에 역점을 두어 국제사회와의 소통을 더 원활히 하겠습니다. 우리의 전통문화와 첨단기술이 어우러지면 한국의 매력을 세계로 내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통일은 7천만 국민의 염원입니다. 남북관계는 이제까지보다 더 생산적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습니다. 남북한 주민이 행복하게 살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비핵 개방 3000 구상’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남북협력에 새 지평이 열릴 것입니다.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10년 안에 북한 주민 소득이 3천 달러에 이르도록 돕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동족을 위하는 길이고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의 정치 지도자는 어떻게 해야 7천만 국민을 잘 살게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서로 존중하면서 통일의 문을 열 수 있는가, 하는 생각들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라면, 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만나서 가슴을 열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정치의 근본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살맛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변하지 않고는 선진일류국가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국가의 발전 방향과 실천 대안을 만들어 제시해야 합니다. 민생고를 덜어주고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실용정치의 기본입니다.
길은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가능한 일부터 시작해 봅시다. 소모적인 정치관행과 과감하게 결별합시다. 국민의 뜻을 받들고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생산적인 일을 챙겨 합시다.
여와 야를 넘어 대화의 문을 활짝 열겠습니다. 국회와 협력하고, 사법부의 뜻을 존중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골 소년이 노점상, 고학생, 일용노동자, 샐러리맨을 두루 거쳐 대기업 회장, 국회의원과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나라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꿈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게 되길 바랍니다.
저는 이 소중한 땅에 기회가 넘치게 하고 싶습니다. 가난해도 희망이 있는 나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
땀 흘려 노력한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가 보장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국민의 마음속에 있는 대한민국 지도를 세계로 넓히겠습니다. 세계의 문물이 거침없이 들어와서 이 땅에서 새로운 가치로 창조되게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내보내는 나라 선진 일류국가가 되게하겠습니다.
선대의 기원이고, 당대의 희망이며,후대와의 약속입니다.
저, 이명박이 앞장서겠습니다.
정부만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 나서 주셔야 합니다. 각자가 스스로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더 튼튼하게 길러야 합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더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기업인과 노동자들은 손잡고 더 진취적으로 매진해야 합니다.
청년들은 자기 개발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합니다. 군인과 경찰은 국가와 사회를 더 성실히 지켜야 합니다. 종교인, 시민운동가, 언론인도 더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합니다.
공직자들은 더 성심껏 국민을 섬겨야 합니다. 대통령부터 열심히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의 시대적 과제, 대한민국 선진화를 향한 대전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반도의 새로운 신화를 향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갑시다.
저, 이명박이 앞장서겠습니다.
국민이 합심하여 떨치고 나서면 해낼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2월 25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
7.2. 대통령 퇴임 대국민 고별 연설[편집]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저는 지난 5년 대통령으로서 봉사할 기회를 주시고, 늘 함께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바닷가 시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길에서 장사를하며 고학하던 소년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 그런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만들어온 우리 국민 또한 참으로 위대한 국민입니다.
위대한 국민과 더불어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일할 수 있었던 지난 5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장 보람되고 영광된 시간이었습니다.
5년 전 저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대한민국을 선진화하는데 제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청와대 문을 들어선 순간부터 나가는 이 순간까지, 잠시도 잊지 않았던 소명은 오로지 선진일류국가로 가는 기초를 닦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고 열심히 일했고 제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미진한 부분도 있고,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은 계속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선진국이 이제 우리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더 큰 대한민국'이 우리 눈앞에 당당히 서 있습니다.
얼마 전 통계청 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의 85%가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이런 저런 어려움이 우리 삶을 고단하게 해도 우리가 이룬 발전의 역사, 기적의 역사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 국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긍심과 자신감이야말로, 앞으로 펼쳐질 웅대한 대한민국의 꿈을 실현할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5년간 두 차례에 걸친 전대미문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며 '더 큰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지고자 힘써왔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2008년 정부가 출범하던 때는 세계 어떤 나라도, 어떤 전문가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전 세계를 엄습하면서, 모든 나라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한 외국 언론은 한국이 가장 먼저 침몰할 거라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2백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고 2만 개 이상의 기업이 도산했던 때보다도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며, 오직 이 위기를 넘겨야 된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에 우선해서 위기를 벗어나는 데 전력을 쏟았습니다.
'비상경제정부'를 선언하고, 매주 빠짐없이, 무려 145차례에 걸쳐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어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신속하고 선제적이며 과감하게, 정책을 집행했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과 통화 스왑을 체결한 것은 금융위기 극복에 결정적 힘이 되었습니다.
그 위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유럽발 재정위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지켜온 재정건전성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재정건전성이 취약한 유럽 국가들이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과는 달리, 우리는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노·사·정이 힘을 모으고, 국민 모두가 합심해서 위기 극복을 위해 밤낮없이 땀 흘렸습니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대한민국은 모든 예상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해 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고, 세계 7대 무역 강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한·아세안, 한·EU, 한·미 FTA를 통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경제영토를 개척했습니다.
지난 해 세계 7번째로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천만이 넘는 나라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세계 주요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모두 떨어지는 가운데, 대한민국 국가신용등급은 지난 5년간 OECD 34개국 중 가장 높이 상승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장구한 세계사 속에서 위기는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의 위치를 바꾸는 큰 분수령이 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이번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또한 오히려 대한민국의 위상과 국격을 높일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고, 마침내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위기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분명한 교훈은 이제 글로벌 리더십 없이는 나라를 지킬 수도, 키울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세계의 운명과 우리의 운명이 이처럼 직접적으로 연결된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세계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이처럼 깊이 연관된 적도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코리아를 국정의 주요 과제로 삼았습니다.
녹색성장 비전을 제시한 것도 유효했습니다.
녹색성장은 이제 세계 공통 용어가 되고 많은 나라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만 잘사는 길이 아니라 세계가 함께 잘사는 길을 우리가 앞장서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G20정상회의와 핵안보정상회의 의장국이 되어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이사국으로 선출되고, 미래의 대표적인 국제기구로 전망되는 녹색기후기금을 유치한 것은 우리의 글로벌 외교가 글로벌 리더십으로 이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5대양 6대주의 모든 나라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계질서를 쫓아가던 나라에서 세계질서를 만들어가는 나라,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 살기만 바빴던 나라에서 앞장 서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는 나라,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일류국가의 모습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돌이켜보면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처음엔 갑자기 긴 터널에 들어온 것처럼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하지만 민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위기 대처를 위해 지혜를 모으면서 자신감을 얻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리가 힘과 지혜만 모으면 어떤 어려움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동안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묵묵히 땀 흘려 온 기업인, 근로자, 공직자,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고맙고 또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이 묵묵히 참고 도와주셨다는 것입니다.
가락동 새벽시장에서 "얼마나 힘드시냐"고 하는 저에게 "나야 나 살려고 하는 일이지만, 대통령이야말로 얼마나 힘드시냐?"며 도리어 저를 위로하던 박부자 할머니에게 받았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용기를 잃지 않고, 어려운 다른 이들을 걱정하며 열심히 사는 이런 분들을 저는 곳곳에서 만났습니다.
그 분들이 바로 우리 국민들의 참 모습입니다.
사실 경제위기 때는 물론이고 위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서민들이라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서민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에 최우선을 두고, 일자리 나누기, 복지 사각지대 지원, 미소 금융, 든든 학자금, 전통시장 상품권 같은 다양한 친서민정책을 펼쳐왔습니다.
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기대만큼 서민들의 어려움이 풀리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양극화 문제는 세계 모든 나라의 공통 과제로서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이명박 정부도 이에 대해 많이 고심하면서 새로운 비전과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친서민 중도실용, 동반성장, 공생발전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제시된 비전입니다.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은 자연과 인간, 국가와 국가, 남과 북, 기업가와 근로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인과 청년, 남성과 여성,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이 공생하는 길입니다.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해 가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중소기업 정책을 강화하고 동반성장을 통해 상생의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복지, 교육과 보육, 문화, 과학기술에 대한 제도를 확충하고 투자를 계속 늘리는 것도 필수적인 일입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잃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국정의 중심을 삶의 질 향상에 두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더 자유롭고 더 풍요해지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책임을 더 많이 공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대한민국에 사는 것을 행복해 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 큰 길에 이념과 지역과 세대를 넘는 협력과 동참이 필요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입니다.
과거에는 우리의 모델이 되는 나라들이 있었고, 그 나라들을 따라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할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계 경제 영토 2/3와 맺은 FTA를 기반으로 세계 최고의 자유 통상 국가의 길을 추구하는 것도 대한민국만이 시도할 수 있는 길입니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가교 역할을 더욱 강화하면서, 세계가 가야할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선도하는 것도 대한민국의 몫입니다.
인류적 의제인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단순한 말이나 구호가 아니라 세계 최초로 녹색성장기본법을 만들었습니다.
나아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예측치(BAU) 보다 30% 줄이겠다고 스스로 한 약속을 우리는 꼭 지켜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과 대규모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 시행한 4대강 살리기 사업도 그 취지를 계속 살려나가야 합니다.
국내 일부에서 논란도 있지만, 해외 전문가 그룹들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OECD는 '종합적 수자원관리의 성공사례'로 꼽고, 유엔환경기구(UNEP)은 '강 복원을 통한 녹색경제 사례'로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태국 물 관리사업에도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선진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에 기반한 창조와 선도의 과학기술 역사를 만드는 것도 코리아 루트입니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지난 5년간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그 이전 10년 합친 것 보다 많은 총 68조원을 투자했고, GDP 대비 투자 비율은 세계 2위가 되었습니다.
이를 계속 살려나가야 합니다.
특히 국제 과학비즈니스벨트에서는 국내외 과학자들이 모여 인류를 위한 기초과학의 꿈을 키워나가게 될 것입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만이 아니라 창의적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에도 큰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력중심 사회를 지양하고 능력중심 사회를 열기 위해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를 집중 지원함으로써 신고졸시대를 열었습니다.
저는 지난 2월 7일 마이스터고 졸업식에 참석해서 졸업생들의 자신에 찬 모습과 학부모들의 밝은 표정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취업난 속에서도 100% 가까운 취업률을 기록한 것을 보면서, 능력중심 사회로 변화해 가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정부 출범 시 4.2%에 불과했던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은 13.7%로 높아졌고, 6대 전략광물 자주개발율도 18.5에서 29%로 높아진 것은 의미가 큽니다.
이 역시 계속 살려가야 할 코리아 루트입니다.
한류를 전 세계에 확산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세계 곳곳으로 나가 어려운 이웃나라에서 땀 흘려 봉사하며 세계인의 친구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 전인미답의 코리아 루트가 더욱 힘차게 개척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국 통일에 달려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남북관계는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안으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 5년이 북한이 진정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 상생공영의 남북관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원칙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내 정치를 위해 남북관계를 이용하지도 않았고 실질적인 변화 없이는 일방적 지원도 절제했습니다.
도발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앞으로도 한·미 간 완벽한 공조와 중국을 위시한 주요국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펼쳐나간다면, 남북관계에서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지난주 북한은 국제사회의 거듭된 만류와 경고를 무시하고 3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북한정권은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자축하고 있지만, 핵과 미사일이 북한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과 제재를 자초해 막다른 길로 점점 다가가고 있음을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북한 정권은 변화를 거부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변화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제 통일의 시대가 멀지 않았음을 굳게 믿습니다.
서둘러 통일을 준비해야합니다.
물론 한 치의 빈 틈 없는 확고한 안보태세가 바탕이 되어야 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 정부 5년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모두 역사에 맡기고자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은 더 이상 변방의 작은 나라가 아닌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었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제 저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는 끝나도, 국민 행복을 위한 저의 명예로운 의무는 계속될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기꺼이 하겠습니다.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국정을 도와주셨습니다.
나라를 위해 애쓰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난 5년 국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생각을 달리하고 불편했던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국정의 책임을 내려놓는 이 시점에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정부를 간절히 바랬지만, 제 주변의 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가슴 깊이 안고 가야할 아픔도 있습니다.
바로 천안함 46용사들입니다.
이들을 떠나보내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의 이름을 부를 때 목이 메고 가슴이 저렸습니다.
언젠가 통일이 되는 바로 그날, 저는 이들의 이름을 다시 한 번 한 사람 한 사람 부르고자 합니다.
온 국민과 함께 박근혜 당선인과 새 정부에 따뜻한 축복을 보냅니다.
저는 새 정부가 '더 큰 대한민국'과 '행복한 국민'을 향한 큰 길을 열어갈 것으로 믿습니다.
헌신적으로 보좌한 국무위원과 비서진, 그리고 공직자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힘들 때마다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에게 감사하고, 세계 여러 나라 친구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인생을 늘 새롭게 시작한다는 각오로 살아왔습니다.
이제 버거운 역사의 무게를 내려놓으면서, 저는 다시 새로운 인생에 대한 기대로 설레고 있습니다.
퇴임 후 꽃피는 계절이 오면, 4대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우리 강산을 한 번 둘러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겠습니다.
저에게 항상 기회와 용기를 주신 국민 여러분, 내내 행복하시고, 건강하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13년 2월 19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
8. 저서[편집]
- 신화는 없다 : 1995년에 이명박이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쓴 수필.
-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 2008년 대통령 취임 직전에 출간한 에세이.
- 대통령의 시간 2008 - 2013 : 대통령 퇴임 이후 쓴 회고록.
9.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이충우 (1907 ~ 1981)[90] / 어머니 채태원 (1909 ~ 1965)[91]
- 누나 이귀선 (1929 ~ 2010) / 夫 김일용
- 조카 김동석
- 조카 김동혁 (1951 ~ ) 前 현대산업개발 자재부장[76]
- 형 이상은 (1933 ~) 다스 회장 / 妻 박청자
- 조카 이동형 다스 부사장
- 조카 이?? / 夫 전종화 (1966 ~ ) 前 씨모텍 부사장[77]
- 형 이상득 (1935 ~ ) 前 국회부의장 / 妻 최신자 (1941 ~ )
- 조카 이지형 (1966 ~ ) 前 맥쿼리-IMM자산운용 대표 / 妻 조재희 (1973 ~ )
- 조카 이성은 (1969 ~ ) / 夫 구본천 (1964 ~ ) LB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사장[79]
- 종손 구??[78]
- 조카 이지은 (1970 ~ ) / 夫 오정석 (1970 ~ )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80]
- 누나 이귀애[A]
- 본인 이상정 (나중에 이명박으로 개명) / 妻 김윤옥 (1947 ~ )
- 여동생 이귀분[88] / 夫 김진 에스엠 대표[89]
- 남동생 이상필[A]
- 누나 이귀선 (1929 ~ 2010) / 夫 김일용
10. 각종 타이틀[편집]
- 김대중에 이어 2번째 기업인 출신 대통령
- 노무현에 이어 3번째 종로구 국회의원 출신 대통령
-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민선 자치단체장(서울시장) 출신 대통령[92][93] 이면서 역대 2번째 자치단체장(서울시장) 출신 대통령[94]
- 유일한 샐러리맨 출신 대통령
- 최초로 외국에서 출생한 대통령[95]
- 가장 동쪽에서 태어난 대통령[96]
- 가장 남쪽에서 태어난 대통령[97]
- 윤석열과 함께 유이한 병역면제 대통령[98]
-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최다 득표율 차로 당선된 대통령[99]
- 재임기간 중 독도를 방문한 최초이자 유일한 대통령
- 제6공화국 출범 이래로 임기 말에 탈당 및 당적변경을 하지 않은 최초의 대통령[100][101]
- 헌정사상 4번째로 법정 구속된 전직 대통령
- 전임 대통령과 후임 대통령이 탄핵 소추를 당한 대통령
- 최초로 임기 중 두 명[102] 의 전직 대통령의 장례를 지켜본 전직 대통령[103]
- 6공 이후 2월 24일에 퇴임한 마지막 대통령[104]
- 일제 강점기 당시에 태어난 마지막 대통령[105]
- 박정희와 더불어서 아들보다 딸이 더 많은 대통령[106]
- 국회 잔디마당에서 취임식 후 청와대로 들어가 직무를 수행하고 마지막 임기까지 모두 마친 마지막 대통령[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