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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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회계사 출신 정치인.
2. 생애[편집]
1967년 5월 10일,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서 태어났다. 용현동에서 자라면서 용현초등학교, 대건중학교[3] , 동인천고등학교[4] 를 나왔고 용현동에 있는 인하대학교를 나왔다. 정계 입문 전까지는 잘 나가던 대한민국 공인회계사였다. 세동회계법인,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했고, 금융감독원에서도 일을 했었으며, 한미회계법인의 경인지역 본부장을 지내는 등, 인천 지역 경제계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러던 그가 정계에 입문하게 된 것은 본인의 말을 따르자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계기였다고 한다. 그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막연히 가지고 있던 정치에 대한 생각을 결심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 결과 민주당 계열에 투신하여 정계에 입문했다.
3. 정치 활동[편집]
그러나 정치 활동의 시작은 좌절이 먼저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고 자란 용현동이 포함된 남구 을에서 출마를 선언했지만, 여성 우선 공천 원칙이 적용되면서 연수구에서 지역구를 옮긴 안귀옥 후보에게 공천장을 내주고 말았다.[5] 반발을 하기는 했지만 일단 당의 방침을 따르면서 19대 총선에서는 인천시당 대변인을 맡아 활동했다.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당내 공부모임인 사단법인 돌바내(돌아보고 바라보고 내다보고)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2014년 경선 끝에 사고지역구였던 연수구 지역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사실 이것도 갈 곳이 없어서 당에서 이 지역에서 활동해 보라고 권유한 것이라고 한다. 성실한 활동 끝에 당 조직을 재건하면서 당의 신망을 사게 되었는데, 이게 20대 총선 공천에서 좋게 작용했다.
연수구는 분구 이래로 민주당 계열에서 당선된 적이 없는 그야말로 험지였는데[6] , 인구가 송도국제도시 개발로 늘어 선거구가 2개로 증가하였다. 꾸준히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지역 조직을 재건한 공을 인정받아 20대 총선에서 가장 먼저 단수 공천으로 출마가 확정되면서 일찌감치 선거 준비에 착수할 수 있었다. 마침 이 지역의 터줏대감 격이던 황우여 의원이 새누리당 공천으로 인해 서구로 떠나면서 무주공산이 된 상황이었다. 출구조사에서는 새누리당 정승연 후보에 밀린 2위로 나왔던데다가 국민의당과 표가 갈리기는 했지만, 그간 지역구를 다진 결과 214표 차이로 신승하면서 민주당 계열의 사상 첫 연수구 승리라는 기록의 주인공이 되며 금배지를 차지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원의 세금탈루 의혹제기에 맞서 후보자 스스로 해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후보자가 활짝 미소를 보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여 고마움을 표시하였고 장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세금문제와 관련해서는 후보자가 아무리 꼼꼼히 준비하였다 하더라도 실무를 하는 회계사, 세무사정도가 아니면 적절하게 해명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찬대 의원은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 가며 후보자를 변호해주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예비후보로 등록했고, 단수공천을 받았다. 미래통합당 정승연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넉넉한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전 와중 정승연 후보가 유승민 전 대표가 지원유세를 온 상황에서 '인천 촌구석'이라는 자폭성 발언을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날 아침 첫 행보로 부평구 가족공원에 있는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도 제 시계는 0416, 1616, 2번의 알람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 반드시 바뀔 것입니다."라는 추모사를 남겼다.
21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에도 지역구를 돌아다니며 당선 감사인사를 꾸준히 하는 등 성실한 모습을 보였다.
2020년 5월 14일, 21대 국회의원 등록을 마치고 전반기 상임위원회는 교육위원회에 보임되어 더불어민주당 간사위원을 맡았다.
21대 국회의원으로서의 1호 법률안으로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안'[7] 을 발의했다. 또한 코로나19로 제대로 학기를 치르지 못한 채 학비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대학생들을 위해 등록금 반환에도 앞장섰다. 결국 3차 추경안에 관련 예산이 반영되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22년 20대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예비)후보의 수석대변인을 맡았다. 국회 교육위원회 여당 간사이면서도 대선 경선을 핑계로 상임위 일정은 뒷전이어서 야당 국회의원들의 비판을 받았다.#
2021년 국정감사에서는 감사 중간에 교육위원회에서 행정안전위원회로 상임위원회를 이동, 화천대유 건으로 국민의힘의 공격을 받던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를 방어하는 데 투입되었다.#
2022년 4월 30일,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청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자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박병석 국회의장을 비난했다. 그러자 다음 발언 차례였던 박찬대 의원은 "이렇게 나대시는 것' 등과 같이 발언하며 배현진 의원을 비판했다.
2022년 6월 기준으로 대표발의 법안 26개 중 16개를 통과시켰으며 (전체 지역구 의원 중 2위에 해당), 높은 상임위 출석률을 보여주는 등 의정활동에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대표적인 친명계 인사로 분류되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의원직 후보로 출마하여 3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4.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자세한 내용은 박찬대/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여담[편집]
- 어머니 쪽으로 구한말의 의병장이며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과 혈연관계가 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의 발견과 재평가 문제나 독도 표기 문제 등에 관심이 많다.
- 국민의힘의 이혜훈 전 의원과 친한 사이이다. 이혜훈 전 의원 본인도 "서로 다른 정당이고 정견이 다른 경우가 많지만 서로 화합이 잘 된다"며 "여야가 이렇게 화합이 잘 된다면 국회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했다.
- 목소리가 좋고 노래를 잘 한다. 덕분에 선거운동에서 노래솜씨가 큰 도움이 되었다.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당내 행사나 국민보고대회의 사회를 자주 보고 있다. 11월 12일 촛불집회에 앞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대국민보고대회에서는 뮤지컬 영웅의 한 대목을 훌륭하게 소화해 불러 청중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 트럼펫 연주실력 또한 능숙한 편이다. 그래서 가끔씩 트럼펫을 부는 모습을 올릴 때가 있다고 한다.
- 나이에 비하면 상당히 동안으로 보인다.
- 20, 21대 총선에서 연속으로 상대하게 된 미래통합당 정승연 후보는 박찬대가 나온 인하대학교 경영대학[8] 교수로 재직중이다. 본인이 인하대 경영학과 출신이니 기묘한 인연인 셈이다.
- 인하대학교 내 미술동아리 출신으로 당선 후에도 2016년 동아리 동창회 회식에 온 바 있다.
- 국회 보좌진들에 따르면, 같이 일하기 좋다는 화이트 리스트 의원 중 1명이다.
- 이름이 특이한지라 별명이 많다. 귤찬대[9] , 알찬대, 긷동찬대[10] 등이 있다. 게다가 하필 박씨여서 이재명이 “밖(박)이 찬대 안으로 들어오세요” 라며 아재개그를 하기도 했다.
6. 선거 이력[편집]
7. 소속 정당[편집]
8.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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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수구 선거구의 제19대 국회의원 이다.[2] 전 인천시장 박남춘과 같은 본관이다.[3] 동구 화수동에 있던 중학교였다. 학교 재단 측의 폐교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1988년 폐교됐다.[4] 박찬대가 재학하던 시기에는 학교가 도화동에 있었다. 현재 학교는 만수동에 있다.[5] 재미있는 점은 안귀옥은 연수구에서 남구로 기반을 옮겼고 반대로 박찬대는 남구에서 연수구로 기반을 옮겼다.[6] 서한샘의 경우 신한국당 당적으로 당선된 이후 새정치국민회의로 당적을 바꾼 케이스이고, 이마저도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2000년 16대 총선에서 황우여에게 밀려 낙선한다.[7] 학생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약 35만명으로 추정되는 대안학교기관 학생들의 학습권과 안전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8] 국제통상학과, 2017년부터 경영대 소속[9] 제주도 타운홀미팅 당시 이재명 앞에 있던 있던 귤을 슬쩍 가지고 가서#[10] 원래는 기똥찬대였으나 이재명이 ‘똥’ 어감을 좋아하지 않아서 긷동찬대로 순화해 쓰다가 굳어져 버렸다.[11]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2]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