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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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비한 봉분들이 전부 고관대작들의 무덤이다.
낙양 일대의 지도와 망산 '산맥'
1. 개요[편집]
北邙山, Mangshan Mountain
중국 허난 성 뤄양의 북쪽에 있는 작은 산의 이름이다.
2. 특징[편집]
원래 그 일대가 망(邙)읍이라고 산 이름도 망산(邙山)이라 했는데, 뤄양의 북쪽에 위치했다고 북망산이라고 불린 것이다. 망산(邙山) 대신 망산(芒山), 내산(郲山), 북산(北山)이라고 쓰기도 했다. 게다가 풍광이 수려하고 풍수가 좋다 하여 옛부터 이름난 명산이었다. 특정한 산 하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낙양과 황하 사이에 늘어선 산들을 묶어서 망산이라 칭한다.[1]
상여소리에도 등장하는데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어야~'라고 한 다음 '북망산천..'하고 답곡이 흘러나오는데 이 '북망산천'이 바로 북망산을 가리킨다. 공동묘지라는 특성 탓에 북망산으로 갔다는 말이 곧 죽었다는 뜻과 동의어로 쓰인 것이다.
민요 '성주풀이' 1절은 아예 내용 자체가 북망산에 대한 회한으로 구성된 노래다.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 모양이 될터인데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여...
망국의 군주들이나 왕족들도 많이 묻혀 있다. 대표적으로 유선, 손호, 진숙보, 이욱, 연남생, 연남산, 의자왕 등이 이 곳에 잠들어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북망산에 묻힌 인물들의 유해 귀국을 추진한 적은 없지만 충청남도 부여군이 의자왕과 부여융의 유해를 중국과 협력하여 수색한 적은 있다. 그러나 유해는 찾지 못하고 대신 무덤으로 추정된 자리의 흙을 퍼와 부여 왕릉원에 백제 양식으로 안장했다. 만약 진짜로 유해를 발굴했다면 북망산에 묻힌 인물의 첫 유해귀국 사례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뤄양고묘박물관 (洛阳古代艺术博物馆, Luoyang Ancient Tombs Museum)[2] 이 북망산 근처에 있다. 뤄양 공항과 매우 가깝다.
망산에는 무덤 외에도 일종의 토굴집인 야오동 역시 많다. 산자와 망자가 공존하는 것.
여담으로 남북조 시대인 543년 동위가 서위를 침공해 이곳에서 전투를 치르기도 하였다. 결과는 전자의 승리로, 북주 시기 전까지 한동안 낙양 일대는 동위와 북제의 수중에 있게 된다. (망산전투, 邙山之戰)
3. 공동묘지화[편집]
워낙에 풍경이 수려한 곳이다 보니 고대 중국에서 명당자리를 찾는 왕족들과 고관대작들이 하나 둘 묘지로 쓰기 시작하면서 명산이었던 곳이 어느새 공동묘지가 되어버렸다. 황제/황후/왕/왕후나 공경들이 묻혀, 산과 그 일대가 묘지 아닌 곳이 드물어졌다. 그리하여 '북망'이라느니 '북망산'이라느니 하는 말이 모두 '죽는다.'는 뜻이 되었는데, 심지어 당나라 문인들도 그런 표현을 썼다.
당연하게도 워낙 유명한 무덤들이 많다 보니 도굴꾼들의 표적이 돼서 도굴 안 된 무덤이 없다. 그야말로 도굴꾼들에겐 꿈과 희망의(...) 장소.
4.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북망산에 묻힌 인물[편집]
- 곽성통
- 가의
- 두보
- 반초
- 부여융
- 석숭
- 설인귀
- 손호 - 오나라의 마지막 황제
- 안진경
- 연남산 - 고구려 연개소문의 삼남
- 연남생 - 연개소문의 장남
- 유선(삼국지) - 촉한의 마지막 황제
- 의자왕 - 백제의 마지막 왕. 부여군에서 부여웅과 함께 유해 귀국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 이밀
- 이욱
- 적인걸
- 진숙보- 진(육조)의 마지막 황제
- 흑치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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