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TV (r1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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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MBC TV는 주식회사 문화방송에 의해 운영되는 수도권 지역[20] 을 가시청권으로 하는 지상파 TV채널로, 준공영방송[21] 이다. 1969년 8월에 개국했으며, 본사 사옥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 위치한다.
대한민국 내 다른 지역의 16개의 문화방송 계열 지상파 방송사와 함께 전국 방송망을 구축하고 있다. 가상채널은 11번대를 사용하고, 호출부호는 HLKV-DTV(DTV) / HLKV-UHDTV(UHD TV) / HLKV-TDMB(DMB)이다.
2. 담당 부서[편집]
1968년 TV 개국 준비 과정에서 'TV편성국'이 신설되었다. 1969년 6월 'TV제작국'이 신설되면서 TV편성국 산하에 있던 제1~2연출부를 그쪽으로 넘겨 '연출부'로 바꾸고, 11월부터 기능에 따라 제1~3제작부로 분할시켰다. 1971년 5월 TV제작국이 폐지되는 대신, TV총국이 새로 생기면서 산하 TV편성국으로 이동되어 제1~2제작부, 중계특집부로 개편되었다가 한달 후 TV총국 및 TV편성국이 합쳐져 'TV국'으로 일원화되자, 예하 3개 제작부서를 통폐합시켜 'TV제작부'로 일원화시켰다. 1972년 TV제작부를 제작 제1~2부로 나눴다.
1974년 운영사인 MBC가 경향신문과 합쳐져 방송부문에 배속된 후, 1976년 10월에 TV국을 TV제작국 및 편성국으로 이원화시켰으며 제작 제1~2부를 제작1~3부로 다시 세분화했다. 1981년 MBC-경향신문 분리 후 1982년 조직개편에 따라 방송부문이 해체되면서 제작부문 예하에 속했고, 1984년 TV제작국에서 교양제작부 및 제작3부를 떼내 '교양제작국'으로 승격시키고 1988년 제작부문에서 편성 업무를 떼내 '편성부문'으로 승격시켰다. 1989년 2월 TV제작국 산하 제작지원부 및 미술1~2부, 제작기술국 카메라기술부를 통합해 '미술영상국'으로 개편했다.
1990년 3월 TV제작국 예하 제작1~2부를 없애고 담당제를 도입하면서 기능에 따라 종합·특집극, 연속극, 미니시리즈, 단막극, 음악, 코미디, 특집·행사, 어린이청소년, 공개·가족오락 등 9개로 세분화했고, 미술영상국을 미술-영상 2개 국으로 개편시켰다. 1991년 9월에 음악, 코미디, 특집·행사담당을 예능1~3담당으로 개편하고 1992년 4월 어린이청소년 및 공개·가족오락담당을 예능3담당으로 합친 뒤, 8월에는 담당제 대신 전부 CP제로 바꿨다.
1993년 4월 전무이사가 방송-관리 2개로 나뉘면서 방송전무 예하에 속했고, 미술-영상 2개 국을 '영상미술국'으로 재통합했다. 1994년 3월 방송-관리 2개 전무이사가 전무이사 단일 체제로 통일되었고, 제작부문 산하 TV제작국 및 교양국에 팀제가 도입된 후 1995년에는 팀제가 확대되면서 편성국에도 도입되었다. 같은 해부터 제작부문 산하 각 제작국에 운용팀을 두고 예능 3개 팀을 4개 팀으로 늘렸고, 1996년에 드라마 관련 4개 부서들을 드라마1~4팀으로 통일했다. 1997년 TV제작국을 드라마-예능 2개국으로 이원화시키고 1998년 조직개편으로 본부/실제가 도입되어 제작부문은 '제작본부', 편성부문은 '편성실'이 되면서 예하 팀 단위 부서명을 '부' 내지 'CP'로 고쳤다.
2000년 1월 드라마국부터 먼저 CP제 대신 전문프로듀서제를 도입한 후, 3월부터 편성실을 '편성본부'로 개편하고 각 부서마다 특임CP제를 도입한 후, 10월에는 교양제작국을 '시사교양국'으로 개편했다. 2001년 9월부터 제작부문에서 라디오국을 떼내 '라디오본부', 보도본부로부터 보도제작국을 넘겨받아 시사교양국에 합쳐 '시사제작국'으로 개편한 후, 편성본부도 '편성실'로 개편했다. 또한 드라마국 및 예능국을 'TV1~2국'으로, 영상미술국을 '제작지원국'으로 변경했다.
2002년 4월 시사제작국을 '시사제작본부'로 확대 개편하여 시사제작1~2국으로 재편하고 2003년 시사제작본부를 해체해 시사제작1국을 보도본부로 다시 넘겼다. 이에 따라 시사제작2국이 제작본부로 넘겨져 '시사교양국'으로 고쳤다. TV1~2국도 '드라마국' 및 '예능국'으로 각각 환원되었다. 또한 제작지원국을 '영상미술국'으로 환원시켰다.
2004년부터 전무 대신 부사장제 도입에 따라 그쪽 예하로 바뀐 후, 2006년부터 편성실을 '편성본부', 제작본부를 'TV제작본부'로 고치고 이듬해 예하 CP 보직명을 각자의 프로그램명으로 했다가, 2008년 8월부터 원래 보직명으로 고쳤다. 2009년에는 특임CP, 전문프로듀서 등 유사 보직 53개를 정리해서 '본부-국-부' 단위로 통일했다. 2011년 2월 TV제작본부가 해체되어 드라마국 및 예능국은 '드라마예능본부'로 승격했고, 시사교양국은 편성제작본부로, 영상미술국은 드라마예능본부로 각각 이동되었으며 각 제작부서 산하 기획부서가 '크리에이티브센터'로 출범되었다. 5월에는 드라마예능본부가 드라마-예능 2개 본부로 이원화되었으며 2012년 4월 시사교양국이 시사-교양제작 2개 국으로 이원화되었고, 구 보도제작국 산하 보도제작1~2부가 시사제작국으로 흡수되었다.
2014년 10월 편성제작본부 산하 교양제작국이 해체되면서 다큐멘터리 제작기능은 콘텐츠제작국(구 콘텐츠협력국)으로 합쳐졌고, 나머지 기능은 예능1국 제작4부로 넘어갔다. 2017년 12월 13일 조직개편에 따라 편성제작본부가 해체되어 편성 기능은 기획본부에 합쳐져 '기획편성본부'가 되었고, 시사제작국과 콘텐츠협력국 등지에 흩어진 시사/교양제작 기능이 '시사교양본부'로 부활/개편된 후 드라마본부, 예능본부와 함께 사장 직속이 되었다. 2018년 11월부터 기획편성본부를 기획조정-전략편성 2개 부서로 이원화하고 각 제작부서들을 콘텐츠총괄부사장 밑에 두었다. 2020년 3월부터 전략편성본부가 '콘텐츠전략본부'로 명칭이 변경되어 역시 콘텐츠총괄부사장 밑으로 들어갔다.
3. 상징[편집]
3.1. 로고[편집]
자세한 내용은 MBC/로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 마스코트[편집]
2005년부터 생긴 '로미, 가비, 버티'란 마스코트도 있었으나, 이쪽은 얼마 안 가 묻혔다.
엠빅은 대략 2008년부터 등장했다. 영문명은 MBIC. 2016년 1월에 브랜드 아이덴티티 강화 차원에서 MBig으로 영문명을 개칭했다가 다리 추가 이후에는 다시 MBIC으로 회귀한 듯. 그동안 프로그램 예고 등에서 모습을 보이더니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선 아예 프로그램의 얼굴(?)이 되었다.
나머지는 2013년에 실행한 마스코트 선발 대회에서 뽑힌 작품들이다. 엠빅의 친구는 덩치가 큰 휴와 강아지 캡이다. 여담으로, 첫 번째 줄 마스코트의 첫 번째 글자를 합치면 엠비씨가 된다.
3.3. 연중캠페인 및 슬로건[편집]
1999~2001년까지는 '방송지표'라고 나오기도 했다.
4. 마케팅[편집]
4.1. MBC 무브먼트[편집]
자세한 내용은 MBC 무브먼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방송 시작/종료 영상[28][편집]
4.3. ID[편집]
2018년 6월 2일 이후의 ID는 MBC 무브먼트 문서를 참조. 최근 브랜드 디자인 유튜브 채널이 생성되었다.
4.4. NEXT[편집]
- 2004년 이전에는 프로그램별로 NEXT BGM이 달랐으나 이후로는 일괄적인 BGM이 적용되고 있다.
- 2006년부터 NEXT 영상에도 '레파라솔' 4음징글을 적용하였다.
- 2014년 신사옥 이전 후 NEXT BGM이 바뀌었다.
- 2016년 버전은 MBC 무브먼트가 적용되기 전까지 계속 쓰였다. 리우 올림픽과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는 다른 영상이 쓰였다.
- 2018년 6월 이후 NEXT는 MBC 무브먼트 문서 참조.
4.5. 로고송[편집]
다른 방송사들에 비해 로고송이 가장 많다. 두번째로 많은 곳은 SBS.
사람들에게 유명한 로고송은 2개 정도 된다. 장구 소리만 들려도 기억나게 하는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1990년대~2005년 초반, 2011년, 2014년~2018년 6월)[29] 과 모두 모여 신나게 외쳐봐 즐거움이 완전 넘쳐나 언제나 MBC(2008~2013). 근데 이렇게 아는 세대들이 많이 다르다. 만나면 좋은 친구는 80 - 90년대, 모두 모여 신나게 외쳐봐는 2000년대로 구분이 된다.
- 1970년대에는 로고송이 없었으며, 'MBC 텔레비전입니다.', '여러분의 문화방송입니다.', '여러분의 MBC 텔레비전입니다' 라는 아나운서의 멘트만 나왔다.[30][31]
- MBC~ MBC~ MBC~ 여러분의 문화방송 (1980년~1983년)[32]
- 여러분의 문화방송~ (뭘까요?)[33] MBC 텔레비전~ (1980년~1983년)[34]
- 새 생활의 길잡이 MBC 문화방송[35] (1980년~1991년)
- 집집마다 고을마다 MBC 문화방송[36] (1980년~1991년)
-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 (1990년 10월 15일~1994년 4월 10일·1995년 9월 4일~2005년 1월 2일·2011년 12월 1일~2018년 6월 1일·2022년 1월 1일~)[37][38][39]
- 오늘의 기쁨 내일의 희망 MBC 문화방송 (1991년~1993년·1994년~1995년[40] )
- 알찬 방송 좋은 방송 MBC 문화방송[41] (1991년~1992년·1994년~1995년)
- 좋은 방송 밝은 사회 MBC 문화방송[42] (1991년~1996년)
- 언제나 MBC 문화방송이 있습니다[43] (1995년)
- 언제나 신선해요 MBC 문화방송 (1995년~2005년 1월 2일[A] )
- 함께 드려요 아름다운 세상 MBC 문화방송 (1995~2005년 1월 2일[A][44] )
- 함께 있으면 좋아요 MBC 문화방송 (1995년~2005년 1월 2일[A] )[45] ~~<현재 삭제됨]
- (봄봄봄봄봄) 월드컵 코리아 (봄봄봄봄) 그 감격의 MBC (1996년) 영상[46]
- 엄마 세상은 참 따뜻한 거죠 우리 문화방송 (1993년~2005년 1월 2일)[47][48]
- 사랑하면 좋아요 MBC 문화방송 (1997년~2005년 1월 2일)
- 따뜻한 세상 함께 만드는 MBC 문화방송 (1997년~2005년 1월 2일)
- (따따따따) 늘 곁에 있는 (따따따따) 언제나 좋은 친구 MBC (2005년 1월 3일~2005년 11월 30일)
- 행복한 미래 아름다운 세상 MBC 문화방송 (2005년 12월~2007년[B] )
- 함께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 MBC 문화방송 (2005년 12월~2007년[B][49] )
- 우리 함께 나누어요 MBC 문화방송 (2005년 12월~2006년 5월[B][50] )
- 반가운 친구 MBC 문화방송 (지방, 2005년~2007년)[51]
- 모두 모여 신나게 외쳐봐 즐거움이 완전 넘쳐나 언제나 MBC (2008년~2013년)[52]
- 함께 꿈꾸는 세상 언제나 MBC (2008년~2013년)[53]
- 설레는 내일 MBC와 탐험해요~ MBC (2018.06.02~2020.12.31) 풀버전 15초 버전[54][55]
- 고민은 다 버리고 도전해 보자, Let's Go!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와~ (2021.04.06~2021.11.30) [56]
다음은 라디오에서만 나왔던 로고송이다.
- 행복한 오늘과 내일에 소중한 우리의 MBC 희망과 기쁨을 얘기해요 MBC 라디오 (1997년~1999년)[57]
- MBC가 원하는 건 바로 MBC 문화방송 여러분이 원하는 건 바로 MBC 라디오 (1997년~1999년)[58]
- 행복한 세상의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 (지방, 2006년~2007년, 현재(라디오))[59][60]
연도 불명[61] : 일부 지역의 MBC 라디오에서 나온 적이 있는 로고송은 아래에 표시.
- 오늘도 새 소식은 문화방송 MBC 오늘도 새 노래는 문화방송 MBC 언제나 마음의 벗 다정하고 친절하게 밝고 빠르고 알찬 방송 여러분의 문화방송
- 언제나 밝고 언제나 새로운 MBC 아름다운 내일을 연다 아아~ 여러분 여러분의 문화방송[62]
- MBC~ MBC~
- M~B~C~
- 평생나눌 기적의 MBC 문화방송(으으으음 으으으음)평생나눌 기적에는(?)[63] MBC 문화방~송
- MBC 라디오
- 언제나 어디서나 여러분의 MBC 언제나 어디서나 여러분의 MBC(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우리 마음속에는 언제나 행복이 가득하죠 음~ 밝은 세상 만드는 MBC 문화방송
- 건강한 마음 즐거운 기쁨 MBC 문화방송
- 산과 바다 푸르게 우리 만남 이어질 때 MBC 문화방송
- 좋은 방송 언제나 MBC 좋은 친구[64]
- 언제나 밝은마음 밝은생활 MBC (MBC) 문화방송
- 세상은 지금도 따뜻해요 MBC 문화방송[65]
- 문화방송의 작은 발걸음 함~께~ 해요~ 큰~ 기~쁨~ (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66]
- 2002년 월드컵 코리아~(2002년 월드컵기간 한정)[67]
로고송은 1990년대 이후로 국악장단으로 친숙한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을 쓰다 2005년 1월 3일부터는 쓰지 않았는데, 2011년에 50주년 기념 리메이크 버전으로 부활했다. 1980~90년대 출생이면 모두 알만한 로고송이지만 요즘 세대는 아무래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대신에 모르는 세대들은 모두 모여 신나게 외쳐봐 즐거움이 완전 넘쳐나 언제나 MBC가 더 익숙한 듯하다. 그리고 "함께 꿈꾸는 세상 언제나 MBC" 로고송도 엄청 익숙할 것이다. 단, 1980년대생은 국악단장의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만 익숙하며 1990년대생은 국악단장의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과 모두 모여 신나게 외쳐봐 즐거움이 완전 넘쳐나 언제나 MBC를 모두 아는 세대이다.
그리고 2006년 하반기부터 2018년 6월 1일까지 사용된[68] 4도 음계(레, 파, 라, 솔)[69] 영화 스텝 업에 삽입된 피티 파블로의 Show Me the Money를 샘플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70] 그런데 음계는 저 노래가 맞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2000년대 초 BBC Two 채널에서 사용한 아이덴트(ident, ID)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의 BBC TWO ident 특히 같은 시기 MBC FM4U에서 위 샘플링 로고와는 또 다른 4음 시보음악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BBC의 영향력 확정.[71] 어찌됐든 저 4음 징글은 2006년부터 MBC의 로고송의 베이스로 우려먹었으며 아마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참고로 2005년에도 '도시솔미'라는 4음징글을 사용했었으나,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2018년 6월 2일 MBC 무브먼트 도입 이후로 윤종신이 만든 새로운 로고송과 새로운 4음 징글(라솔레솔)을 사용 중이고, 4음 징글의 변경만으로도 새로워진 느낌이 커졌다. 이렇게 해서 지난 12여년간 사용해왔던 4음 징글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2018년 6월 1일까지 일부 지역국은 CI 변경 직후의 멜로디를 사용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광주MBC는 수도권에선 2007년 이후로 사용하지 않은 "함께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 MBC 문화방송" 을 2015년에도 사용했다. #[72] 몇 가지 멜로디를 사용하지만 프레임이 영... 프레임 문제는 2015년에 MBC TV 개편 후 새 템플릿이 쓰이면서 해결되었다. 또한 이와 함께 만나면 좋은 친구의 리메이크 버전이 보컬까지 온전한 버전으로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MBC경남은 정작 NEXT랑 ID, 한술 더 떠서 자체 지역방송에도 본사 15세 이상 시청가 영상을 사용 중이면서 ID음은 그대로다. 그리고 문화방송의 뼈대인 부산문화방송도 CI 변경 후 2010년까지 자체 ID로 만나면 좋은친구 리메이크 버전을 사용했다. 그리고 여수문화방송은 2018년 5월까지 만나면 좋은친구, 그것도 영상을 제외하지만 음은 원본 그대로 사용했다.
해외지국의 경우 MBC America에서는 아직도 2006년에 나온 4음 징글(레파라솔) 초기 버전을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사용한 "모두 모여 신나게 외쳐봐 즐거움이 완전 넘쳐나 언제나 MBC"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4.6. 시청연령 안내[편집]
- 일일연속극, 파일럿 프로그램, 시사교양, 연말 시상식들을 제외하면 프로그램 전용 연령고지가 적용되어 있다.
- 오프닝과 연령고지 하단에 '이 프로그램은 간접(광고와 가상)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를, 드라마, 예능 등은 간접 또는 협찬광고를 각각 진행하고 있다.
4.7. MBC 시험방송[편집]
빈 뉴스센터나 스튜디오,사무실을 비추는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며, 오늘의 방송순서로 사용할 영상을 틀어주기도 한다. 간혹 드라마나 예능등을 잠깐 틀어줄때도 있다.
또 선거일 당일같은 중요한 방송하는 날은 스튜디오테스트와 무아레 테스트를 하기도 한다.[74]
2020년 10월 5일에는 기존의 시험방송 대신 재난방송과 CM 위주의 시험방송이 나가기도 했다. #
5. 소속 인물[편집]
1961년 창사 이래 전통적으로 공채제를 유지해왔고, 부수적으로 경력, 촉탁 등의 입사형태가 있다. 2012년 파업으로 인력 공백을 메운다는 명목으로 경력기자를 뽑은 걸 시초로 2017년 8월 기준 총 229명의 경력직원(일명 시용)을 채용했고, 2013년 12월 공채를 끝으로 공채 제도를 중단한 뒤 2015년 5월 '상시 개방형 인재채용 제도'를 도입했고, 10월에는 이사회에서 직종마저 폐지하기로 결의했으나 실제 폐지하지는 않았다. 2017년 12월 최승호 사장 취임 후 2018년 공채제가 부활되었다.
5.1. 기자[편집]
자세한 내용은 MBC NEWS/기자 명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2. 아나운서[81][82][편집]
- 일러두기
- 재직중인 아나운서를 중심으로 나열하며 퇴사한 아나운서도 함께 기재합니다.
- 취소선은 퇴사(프리랜서, 정년퇴임)하거나 재직 중 사망하거나 타 부서로 전향하거나 다른 방송국으로 이적하거나 서울로 복귀한 아나운서입니다.
계약만료
2012년에 입사한 계약직 아나운서 상당수는 순수 계약직이었기 때문에 1~2년 정도만 근무하고 퇴사하였다. 반면 2016~2017년에 선발한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차후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선발한 아나운서였고 사측에서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문제가 있어 이 때문에 부당해고 문제를 두고서 복직 소송이 진행중에 있었고 최종적으로 복직이 확정되었다.
- 박보경(2012년 입사, 2014년 퇴사)[238][239]
- 김원경(2012년 입사, 2013년 퇴사)[240]
- 송지언(2012년 입사, 2013년 퇴사)[241]
- 이혜민(2012년 입사, 2016년 퇴사)[242]
5.3. 전문MC[편집]
5.4. 기상캐스터[편집]
- 일러두기
- 재직중인 기상캐스터를 중심으로 나열하며 퇴사한 기상캐스터도 함께 기재합니다.
- 단, 지역권 기상캐스터는 이 곳에 표기하지 않습니다.
- 취소선은 퇴사(프리랜서, 정년퇴임)하거나 재직 중 사망하거나 다른 방송국으로 이적한 기상캐스터입니다.
5.5. 프로듀서[편집]
라디오 프로듀서에 대한 내용은 MBC/라디오본부 문서 참고하십시오.
시사교양(현직)
[ 펼치기 · 접기 ] - 정호식(1986년 입사, 콘텐츠총괄부사장)
- 이근행(1991년 입사, 2010년 부당해고, 2013년 특별채용으로 복직, 콘텐츠전략본부장)
- 강지웅(1993년 입사, 2012년 부당해고, 2017년 복직, 드라마본부장)
- 유해진(1996년 입사, 시사교양본부장)
- 한학수(1997년 입사, 시사교양1부장, PD수첩 CP)
- 김진만(1996년 입사, 시사교양2부장, 다큐플렉스/파일럿 CP)[EtoC][1]
- 김재영(2001년 입사, 시사교양3부장, MBC 100분 토론 CP)
- 장형원(1996년 입사, 시사교양4부장, 실화탐사대/오은영 리포트 결혼지옥 CP)
- 오동운(1996년 입사, 시사교양5부장, 심야괴담회 CP)
- 유현(1993년 입사, 콘텐츠협력센터장)
- 김형윤(1995년 입사, 콘텐츠협력1부장, 시사교양부문 CP)[EtoC][2]
- 박건식(1995년 입사, 공영미디어국장)
- 조준묵(1995년 입사, 편성국장)
- 이동희(1996년 입사, D.크리에이티브스튜디오 대표)
- 김보슬(2003년 입사, M드로메다스튜디오팀장, 말년을 자유롭게/it's Live CP)
- 오행운(2004년 입사, 기획국 정책기획부장)[3]
- 전성관(1999년 입사, MBC PD협회장)
- 배연규(1987년 입사, 심의위원)[3차][4]
- 이종현(1984년 입사)
- 민현기(1984년 입사)[EtoC]
- 박정근(1984년 입사)
- 김영호(1986년 입사)
- 김태현(1986년 입사)
- 김학영(1987년 입사)[5]
- 임채유(1987년 입사)
- 전배균(1987년 입사)[EtoC]
- 정성후(1987년 입사)
- 한홍석(1987년 입사)
- 남궁찬(1991년 입사)[EtoC]
- 박상일(1991년 입사)[EtoC]
- 오상광(1991년 입사)
- 이모현(1991년 입사)[EtoC]
- 채환규(1991년 입사)
- 허태정(1991년 입사)
- 이영백(1993년 입사)[EtoC]
- 임남희(1993년 입사)
- 김새별(1995년 입사)
- 민운기(1995년 입사)[6]
- 허진호(1995년 입사)
- 김현철(1997년 입사)
- 김만진(2000년 입사)
- 박상준(2000년 편성PD로 입사, 이후 전직)[7]
- 김인수(2001년 입사)
- 김현기(2002년 입사)
- 성기연(2002년 입사)
- 이춘근(2002년 입사)[8]
- 김종우(2002년 입사)[9]
- 이중각(2003년 입사)
- 유성은(2004년 입사)[10]
- 이지은(2004년 입사)
- 김동희(2005년 입사)
- 김상협(2005년 입사)
- 서정문(2006년 입사, PD수첩 공동 진행)[11]
- 이미영(2006년 입사)
- 임채원(2006년 입사)[12]
- 최우식(2006년 입사)
- 김정민(2007년 입사)
- 조성현(2007년 입사)
- 조진영(2007년 입사)
- 민병선(2008년 입사)
- 김보람(2009년 입사)
- 황순규(2012년 입사)
- 최별(2016년 입사) 오느른
- 전준영(2017년 입사)[13]
- 김혜지(2018년 입사)
- 이세진(2018년 입사)
- 강수연(2019년 입사)
- 조유나(2019년 입사)
- 김건우(2020년 입사)
[EtoC] A B C D E F G H 입사 당시에는 예능PD였으나 시사교양PD로 전직.[1] 아마존의 눈물, 남극의 눈물 연출.[2] 생방송 오늘아침, 생방송 오늘저녁, 탐나는 TV 기획.[3] A B 2017년 6월 언론부역자 3차 명단에 올랐다.#[4] 前 시사교양국 시사교양2부 팩트체커팀장(2011.10~2012.4), 前 시사제작국 부국장 겸 시사제작3부장(2012.4~2014.3), 前 콘텐츠협력국장(2014.3~10), 前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장(2014.10~2017.3), 前 심의국장(2017.3~12)[5] 前 외주제작국 외주제작2부장(2011.5~9), 前 편성국 편성기획부장(2011.9~2012.4), 前 시사제작국 부국장 겸 시사제작3부장(2014.3~10), 前 콘텐츠제작국장(2014.10~2017.3), 前 신성장사업국장(2017.3~12)[6] 출발! 비디오여행, 뽀뽀뽀 친구친구 기획.[7] 편성PD시절 꼬마마법사 레미 샵 연출.[8] 실화탐사대 연출.[9] 너를 만났다 시리즈 연출.[10] 출발! 비디오여행 CP.[11] 돈벌래 공동연출.[12] 심야괴담회 연출.[13] MBN 기자 출신. 동생이 전소영 SBS 기상캐스터이다.
예능(현직)
[ 펼치기 · 접기 ] - 김구산(1994년 입사, 예능본부장)
- 전진수(1994년 입사, 예능1센터장 겸 예능1부장, 놀면 뭐하니? CP)[1]
- 강영선(1997년 편성PD로 입사, 이후 전직, 예능2부장, 라디오 스타 CP)[StoE][2]
- 안수영(2000년 입사, 예능3부장, 복면가왕 CP)
- 정윤정(2002년 입사, 예능4부장, 쇼! 음악중심/구해줘! 홈즈/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파일럿 CP)[3]
- 박정규(1995년 입사, 예능2센터장 겸 예능6부장, 전지적 참견 시점 CP)
- 김영진(1999년 입사, 예능5부장, 나 혼자 산다/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CP)
- 최윤정(2000년 편성PD로 입사, 이후 전직, 예능기획제작부장, 안싸우면 다행이야/호적메이트/물 건너온 아빠들 CP)
- 김지완(1984년 입사)
- 이응주(1986년 입사)
- 한봉근(1987년 입사)[4]
- 사화경(1991년 입사)
- 이흥우(1991년 입사)[5]
- 서창만(1994년 입사)
- 노창곡(1995년 입사)[6]
- 박현석(1995년 입사)
- 박현호(1995년 입사)[7]
- 최원석(1995년 입사)
- 박석원(2000년 입사)[8]
- 선혜윤(2001년 입사)[9]
- 김준현(2002년 입사)[10]
- 박창훈(2003년 편성PD로 입사, 이후 전직)[11]
- 최행호(2004년 입사)
- 김명진(2005년 입사)
- 노시용(2005년 입사)[12]
- 임경식(2005년 시사교양PD로 입사, 2014년 전직)[13]
- 최민근(2005년 입사)[14]
- 강성아(2006년 라디오PD로 입사, 이후 전직)[15]
- 이지현(2006년 입사)
- 황지영(2006년 입사)[16]
- 오미경(2008년 입사)[17]
- 오누리(2008년 입사)[음악중심]
- 임찬(2008년 입사)
- 허항(2008년 입사)
- 정다히(2009년 입사)
- 한영롱(2010년 입사)[18]
- 김선영(2011년 입사)[음악중심]
- 이윤화(2011년 입사)
- 이경원(2012년 입사)[19]
- 김우중(2013년 입사)
- 김지우(2013년 입사)
- 노승욱(2013년 입사)[20]
- 이유리(2013년 입사)
- 현정완(2013년 입사)
- 박수빈(2014년 입사)
- 염여린(2014년 입사)
- 이민지(2014년 입사)
- 김기호(2018년 입사)
- 김진경(2018년 입사)
- 안지선(2019년 입사)
- 이경은(2019년 입사)
- 정동식(2019년 입사)
- 황윤상(2019년 입사)
- 김익환(2020년 입사)[21]
- 박은진(2020년 입사)[22]
- 변다희(2020년 입사)[23]
- 강연주(2021년 입사)
- 양인혜(2021년 입사)
[1]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 연출.[StoE] 입사 당시에는 편성PD였으나 예능PD로 전직.[2] 2010 설특집 스타 천하장사 씨름의 신 연출, 편성PD시절 꼬마마법사 레미 1기, 도라에몽 연출.[3] 토크 노마드, 선을 넘는 녀석들 시리즈 기획 및 연출.[4] <수요예술무대> 연출. 한병삼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아들.[5] <우정의 무대>, <퀴즈여행 달려라 지구촌>, <MBC 인기가요 BEST 50>, <섹션TV 연예통신>, <음악여행 라라라> 등지 연출. 前 예능국 예능4CP(2008.10~2009.3), 前 크리에이티브센터 콘텐츠개발1부장(2011.5~2012.7), 前 예능1부장(2012.7~12), 前 예능2국 부국장(2012.12~2014.10), 前 편성국 부국장(2014.10~2015.3), 前 예능1국장(2015.3~2017.3), 前 예능본부장(2017.3~12). 그 외에 가천대학교 미디어커뮤니티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7년 국민포장 수훈, 2022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한국 예능프로그램의 수용자 획득에 관여하는 요인의 분석 - 생산자 관점에서>란 논문으로 언론학 박사 학위 취득. 2009년에는 경향신문에 <이흥우의 온에어 이야기>를 연재했으며 저서로는 <첼로와 삼겹살(1997)>, <PD스쿨(2008)> 등이 있다.[6] 다시 쓰는 차트쇼, 지금 1위는? CP, 쇼! 음악중심 초대 연출.[7] 2006년 메탈리카 내한 공연 실황 연출.[8] 2018년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 총연출.[9] 대장금이 보고 있다 연출. 신동엽의 배우자이기도 하다.[10] 트로트의 민족 공동 연출.[11] 전지적 참견 시점 연출.[12] 호구의 연애 공동 연출.[13] 언더나인틴, 구해줘! 홈즈 공동 연출.[14]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시리즈, 세상의 모든 방송 연출.[15] 라디오 스타 연출.[16] 나 혼자 산다 공동 연출.[17] MBC every1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의 연출.[음악중심] A B 쇼! 음악중심[18] 끼리끼리 연출.[19] 구내식당 연출.[20] 호구의 연애 공동 연출.[21] 전통의 아웃점, 으이구 사건[22] 前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작가. 56회에서 MBC 합격 사실을 알렸다.[23] 착한 어른이 출신
드라마(현직)
[ 펼치기 · 접기 ] - 김사현(1984년 입사)
- 오현창(1984년 입사)
- 이대영(1984년 입사)[1]
- 김남원(1985년 입사)[2]
- 박성수(1985년 입사)[3]
- 최용원(1985년 입사)
- 최이섭(1985년 입사)[4]
- 임화민(1986년 입사)[EtoD]
- 이창섭(1987년 입사)
- 오경훈(1991년 입사)[5]
- 윤재문(1991년 입사)[6]
- 한희(1991년 입사)[7]
- 최원석(1993년 입사)[8]
- 김진만(1995년 입사)[9]
- 이재동(1995년 입사)[10]
- 주성우(1995년 입사)[11][12]
- 김승모(1996년 입사)[13]
- 신현창(1996년 입사)
- 장재훈(1996년 방송경영직으로 입사, 이후 전직, 드라마2EP)
- 김근홍(1998년 입사)[14]
- 박재범(1999년 입사)[15]
- 김대진(2000년 입사)[16]
- 손형석(2000년 입사)[17]
- 김경희(2001년 입사)[18]
- 여인준(2001년 입사)
- 강대선(2002년 입사)[19]
- 이상엽(2003년 입사)[20]
- 권성창(2004년 입사)[21]
- 김상협(2005년 입사)[22]
- 이재진(2005년 입사)[23]
- 정지인(2005년 입사)[24]
- 장준호(2006년 입사)[25]
- 김성욱(2007년 입사)[26]
- 박상훈(2007년 입사)[27]
- 강인(2008년 입사)[28]
- 진창규(2009년 입사)[29]
- 현솔잎(2010년 입사)[30]
- 김형민(2012년 입사)
- 심소연(2012년 입사)
- 이동현(2012년 입사)[31]
- 노영섭(2013년 입사)
- 박상우(2013년 입사)
- 강학구(2016년 입사)
- 강채원(2018년 입사)
- 김영재(2018년 입사)
- 권지수(2021년 입사)
[1] 로망스, 굳세어라 금순아, 여왕의 꽃,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 황금정원 연출[2] 역전의 여왕, 사랑해서 남주나 연출[3] 맛있는 청혼, 네 멋대로 해라, 불의 여신 정이 연출[4] 미스 리플리, 그대 없인 못살아 연출[EtoD] 입사 당시에는 예능PD였으나 드라마PD로 전직.[5] 러브레터, 불새, 즐거운 나의 집, 도둑놈, 도둑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연출.[6] 장미빛 연인들, 불어라 미풍아, 신과의 약속 연출.[7] 신입사원, 오버 더 레인보우, 닥터 진, 기황후, 굿바이 미스터 블랙 연출.[8] 오자룡이 간다, 소원을 말해봐, 두 번은 없다 연출.[9] 킬미, 힐미,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연출.[10] 고맙습니다, 지고는 못살아, 보고 싶다, 내 생애 봄날, 불야성 연출[11] 입사 당시에는 편성PD였으나 드라마PD로 전직.[12] 애정만만세, 백년의 유산, 전설의 마녀, 몬스터(드라마). 밥상 차리는 남자 연출[13] 내조의 여왕 연출[14] 주몽(드라마), 선덕여왕(드라마), 계백(드라마), 구암 허준, 여자를 울려 연출[15] 개과천선(드라마), 병원선 연출[16] 나쁜형사 연출.[17] 개인의 취향, 투윅스, 빛나거나 미치거나, 파수꾼 연출. W 기획.[18] 히어로, 운빨로맨스,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 연출.[19] 아이두 아이두, 황금 무지개, 캐리어를 끄는 여자 연출[20] 빛과 그림자, 제왕의 딸 수백향, 미스터 백, 쇼핑왕 루이, 아는 와이프 연출.[21] 구암 허준, 엄마의 정원, 돌아온 복단지 연출.[22] 동이, 7급 공무원(드라마), 마마, 화려한 유혹, 왕은 사랑한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 연출.[23] 별별 며느리, 더 뱅커, 나를 사랑한 스파이 연출.[24]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 옷소매 붉은 끝동 연출.[25] 시간, 더 게임: 0시를 향하여 연출.[26] 아이템 연출.[27] 내 뒤에 테리우스 연출.[28] 위대한 유혹자 연출.[29] 배드파파, 십시일반 연출.[30] 미치겠다, 너땜에! 연출.[31] 미쓰리는 알고 있다 연출.
스포츠(현직)[266]
[ 펼치기 · 접기 ]
콘텐츠전략(현직)[267]
[ 펼치기 · 접기 ] - 강미영(1996년 입사, 드라마스튜디오 대표)[1]
- 유건욱(2001년 입사, 콘텐츠전략부장)[2]
- 안준식(2001년 예능PD로 입사, 이후 전직, 미디어기획국 IP전략부장)
- 박상환#PD(1995년 시사교양PD로 입사, 이후 전직, 콘텐츠협력센터 2부장, 예능부문 CP)[3]
- 박대환(1985년 입사)[4]
- 신석균(1985년 라디오PD로 입사, 이후 전직)[5]
- 유한기(1985년 입사)
- 한훈기(1985년 예능PD로 입사, 이후 전직)
- 김종민(1986년 입사)
- 이보영(1986년 입사)
- 이선태(1991년 입사)[CtoE][6]
- 김정규(1995년 입사)
- 한상규(1995년 입사)[7]
- 김예나(1996년 입사)[8]
- 윤석호(1997년 입사)
- 김태훈(2001년 입사)
- 최현종(2002년 입사)
- 문형찬(2004년 입사)
- 박선희(2004년 입사)
- 김신완(2005년 입사)[9][CtoE]
- 이경용(2005년 입사)
- 김영혜(2006년 입사)[10]
- 박선영(2006년 입사)
- 김성진(2007년 입사)
- 최상열(2007년 입사)
- 홍석우(2008년 입사)
- 이우람(2012년 입사)
- 이수인(2018년 입사)
- 이정은(2018년 입사)
- 박채영(2021년 입사)
[1] 라이브 에이드의 CP.[2]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와 캐리비안의 해적 2의 PD.[3]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출발! 비디오여행, TV예술무대, 볼빨간 신선놀음의 CP.[4]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PD.[5]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와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PD. 원래는 라디오PD 출신으로 별이 빛나는 밤에의 연출을 맡은 적이 있다.[CtoE] A B 입사 당시에는 시사교양PD였으나 편성PD로 전직.[6] 생방송 오늘저녁 CP.[7] 닥터 슬럼프의 PD.[8] 스몰빌, 나비효과, 꼬마마법사 레미 포르테 연출.[9] 출발! 비디오여행 책임프로듀서.[10] 라이브 에이드의 PD.
시사교양(전직)
[ 펼치기 · 접기 ] - 김진희(1964년 라디오PD로 입사, 1978년 전직, 1994년 정년퇴임)
- 이긍희(1970년 예능PD로 입사, 1985년 전직, 1996년 MBC 프로덕션 사장 임명)
- 심우승(1973년 입사, 2002년 여수MBC 사장 임명)
- 박흥영(1973년 입사, 2007년 정년퇴임)
- 고장석(1974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황효선(1974년 예능PD로 입사, 1991년 SBS 이직)
- 김상옥(1974년 입사)
- 은희현(1974년 입사, 2003년 제주MBC 사장 임명)[1]
- 정명규(1974년 입사, 2007년 정년퇴임)[2]
- 강철용(1975년 입사, 2003년 안동MBC 사장 임명)
- 이진섭(1976년 입사)
- 홍종명(1976년 입사, 1994년 퇴사)
- 정문종(1977년 드라마PD로 입사, 이후 전직, 1998년 퇴사)
- 박명규(1977년 입사, 2004년 MBC 아카데미 사장 임명)
- 김윤영(1977년 입사, 2006년 원주MBC 사장 임명)[3]
- 이명기(1978년 입사, 1996년 퇴사)
- 정수채(1978년 입사, 2009년 정년퇴임)[4]
- 김평호(1981년 입사, 1990년 해직, 1993년 복직, 1997년 퇴사)
- 김세영(1981년 입사, 2008년 목포MBC 사장 임명, 이후 부사장 역임)
- 윤영관(1981년 입사, 2008년 광주MBC 사장 임명)
- 박신서(1981년 입사, 2013년 정년퇴임)
- 이석형(1981년 입사, 1990년 퇴사)
- 홍종선(1981년 입사, 1994년 퇴사, 2019년 OBS 부사장 임명.)
- 장덕수(1981년 입사, 2008년 MBC 아카데미 사장 임명, 2011년 MBN 이직)
- 윤혁(1981년 입사, 2010년 MBC 프로덕션 사장 임명)
- 이주갑(1982년 입사, 2011년 MBC 아카데미 사장 임명)
- 전연식(1982년 입사)
- 김시리(1983년 입사, 2013년 정년퇴임)
- 조한선(1983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홍성완[5] (1983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신언훈(1984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유창영(1984년 입사, 2008년 목포MBC 사장 임명)
-
이채훈(1984년 입사, 2012년 폭력 사건으로 해고, 2020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비상임이사 임명)[6] - 윤길용(1984년 입사, 2013년 울산MBC 사장 임명)[2차][7]
- 김상균(1984년 입사, 2014년 정년퇴임, 2018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임명)
- 이여춘(1984년 입사, 2014년 MBC 플러스 이사 임명)
- 최삼규(1984년 입사, 2014년 정년퇴임)
- 최우철(1984년 입사, 2014년 정년퇴임)
- 김철진(1984년 입사, 2015년 원주MBC 사장 임명)[2차][8]
- 안택호(1984년 입사, 2016년 안동MBC 사장 임명)[9]
- 박노업(1984년 입사)
- 백종문(1984년 편성PD로 입사, 1987년 전직, 2017년 부사장 임명)[10][1차]
- 김현종(1984년 입사, 2017년 목포MBC 사장 임명)[2차][11]
- 송일준(1984년 입사, 2018년 광주MBC 사장 임명)
-
이현숙(1984년 입사, 2018년 외주PD 갑질/폭언 사건으로 해고) - 정길화(1984년 입사, 2021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 임명)
- 권문혁(1985년 입사, 2009년 퇴사)
- 최진용(1985년 입사, 2012년 제주MBC 사장 임명)[12]
- 곽동국(1985년 입사, 2017년 작고)
- 박정훈(1986년 입사, 1991년 SBS 이적)
- 이강국(1986년 입사, 2002년 퇴사)
- 노혁진(1986년 편성PD로 입사, 이후 전직, 2017년 MBC PlayBe 사장 임명)
- 최승호(1986년 입사, 2012년 부당해고, 2017년 복직 확정 및 제34대 대표이사 사장 취임)
- 최병륜(1986년 입사, 2018년 울산MBC 사장 임명)
- 윤미현(1986년 입사, 2021년 MBC 플러스 방송이사 임명)[13]
- 조능희(1987년 입사, 2020년 MBC 플러스 사장 임명)
- 김환균(1987년 입사, 2021년 대전MBC 사장 임명)
-
홍상운(1991년 입사, 2018년 해고)[14] - 이정식(1991년 입사, 2021년 제주MBC 사장 임명)
- 이우환(1993년 입사, 2021년 MBC경남 사장 임명)
- 김재환(1996년 입사, 2009년 퇴사)
[1] A B 2016년 12월 언론부역자 1차 명단에 올랐다.#[2] A B C D 2017년 5월 언론부역자 2차 명단에 올랐다.#[3] 前 교양제작국 기획제작팀장(1996.9~1998.3), 前 교양제작국 부장(1998.3~1999.3), 前 교양4CP(1999.3~2000.3), 前 교양제작(시사교양)국장(2000.3~2001.9), 前 홍보심의국장(2001.9~2003.1), 前 사업국 미주방송지사장/글로벌사업본부 콘텐츠사업팀 미주지사장(2003.1~2006.3).[4] <역사의 고향>, <명작의 고향>, <TV 문화기행> 등의 연출을 맡았으며, 교양제작국 다큐멘터리2CP 차장(1993~1994.3), 생활정보팀장(1994.3~1995.2), 문화정보팀장(1995.2~1997.4), 교양제작국 부국장(1995.10~1998), 교양4CP 부장대우(1998~2000), 교양3CP 부장(2000), 시사교양국/시사제작국 부국장(2000.11~2001), 시사제작국/시사제작2국/시사교양국 제작위원(2001~2005.6), 시사교양특임1CP/생방송 오늘아침 특임CP 국장(2005.6~2009.3), 시사교양3부 국장(2009.3~6) 등을 거쳤고, 2007년 'MBC 공정방송노동조합(구 선임자노조)' 결성을 주도하며 초대 위원장을 2년 동안 맡았다. 퇴사 후 2010년 MBC 프로덕션 이사로 임명되어 1년여 동안 맡았고, 2012년 총파업 당시 외주제작국으로 돌아와 <공감! 특별한 세상>과 <월화수목>의 기획을 맡은 바 있다.[5] TBC → KBS 출신.[6] 이채훈은 전 아나운서인 배현진을 동물적인 감각밖에 없다고 평을 하였으나, 막상 본인은 술병으로 사람의 머리를 내리치는 모습을 보여서 비웃음을 샀다.[7] 前 시사제작국 시사제작5CP/시사제작2국(시사교양국) 시사제작3CP(2002.3~2004), 前 시사교양1CP 부장대우(2004~2006), 前 시사교양특임1CP(2006~2009), 前 시사교양국장(2011.2~11), 前 크리에이티브센터장(2011.11~2012.4), 前 편성국장(2012.4~2013.4), 前 미래전략실 편성전략담당국장(2013.4~5). 2017년부터 MBC NET 사장직으로 옮겨 1년여 간 맡았고, 2022년 '새미래포럼' 설립에 참여하며 메세지특위원장 역임.[8] <10시! 임성훈입니다>, <이야기속으로>, <MBC 스페셜> 등지 연출. 前 교양제작국 교양2CP 차장대우(1998~2000), 前 교양제작국 교양1CP/시사교양국 시사교양1CP 차장(2000~2002), 前 시사제작2국 시사제작특임1CP 차장(2002~2003), 前 시사교양국 시사교양특임1CP 부장대우(2003~2004.3), 前 시사교양3CP (2004.3~2005.9), 前 시사교양특임1CP 부장대우(2005.9~2006.2), 前 시사교양특임1CP 부장(2006.2~4), 前 시사교양4/휴먼다큐·프로그램개발CP/시사교양4부 부장(2006~2007 / 2008~2010.3), 前 휴먼다큐특임CP 부장(2007~2008), 前 시사교양3부장(2010.3~2011.2), 前 시사교양2부장(2011.2~2012.4), 前 교양제작국장(2012.4~12), 前 시사제작국장(2012.12~2013.4), 前 콘텐츠전략국장(2013.4~5), 前 콘텐츠협력국 콘텐츠협력2부 국장(2013.6~12), 前 콘텐츠협력1부 국장(2013.12~2014.3), 前 편성제작본부장(2014.3~2015.2).[9] 前 편성국 편성기획부장(2003.3~2005.3), 前 편성기획위원(2005.3~6), 前 글로벌사업본부 콘텐츠기획팀장(2005.6~2007.3), 前 해외사업팀장(2007.3~2008.7), 前 국내사업팀장(2008.7~2009.3), 前 편성국 저작권부장(2009.3~2010.3), 前 편성국 부국장(2010.3~2011.2), 前 편성국장(2011.2~2012.4), 前 편성제작본부 특임국장(2012.4~7), 前 미래전략실(미래방송연구소)장(2012.7~2014.3), 前 심의국장(2014.3~2016.3). 방송 외적으로 한국방송콘텐츠수출협회 부회장, 세계유교문화재단 이사 등으로 일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부모가 알아야 할 내 아이의 미래 일자리(2017)>가 있다.[10] 현역 PD 시절에는 노동조합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며 1996년 교양부문 부위원장까지 맡은 바 있고, 같은 해 5월 교양제작국 교양2CP 차장대우로 승진했다가 1997년 미국 미시건 대학교로 연수갔다가 1999년부터 교양1CP로 옮겼고, 이듬해 2월 시사정보국 차장으로 올랐다. 2000년 10월 시사교양국 시사교양4CP를 시초로 간부직을 처음 맡아 시사교양2CP(2001.2~10), 시사제작국 시사제작6CP/시사제작2국 시사제작4CP(2002~2003), 시사교양국 시사교양3CP(2003~2004.3), 시사교양특임2CP(2004.3~2005.3), 홍보심의국 심의부장(2005.3~2007.3), 시청자센터장(2007.3~2008.3), 편성국 TV편성부장(2008.3~2010.3), 편성국장(2010.3~2011.2) 등을 두루 거쳤고, 2011년 2월 편성제작본부장으로 승진하며 임원 자리에 올라 2014년 3월부터 미래전략본부장을 거쳐 2017년 2월 부사장까지 승진했으나, 김장겸 사장이 동년 11월에 경질되면서 사장 권한대행을 맡았으나, 하루 만에 스스로 사임했다. 그는 행정학자 안해균(1928~2012, 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사위이며 2014년부터 여의도클럽 회장도 역임했다.[11] <한민족 러시아 유민사>, <신 인간시대>, <오변호사 배변호사>, <문화특급>, <문화스페셜>, <이야기속으로>, <PD수첩> 등지 연출. 前 교양제작국 교양2CP 차장대우(1997~1999), 前 교양3CP 차장(1999~2000), 前 교양제작국 교양2CP/시사교양국 시사교양2CP 차장(2000~2001.10), 前 TV제작2국 프로듀서1 차장(2001.10~2002) 前 시사제작2국 시사제작특임2CP(2002~2003), 前 시사교양국 시사교양2CP 부장대우(2003~2005.6), 前 시사교양국 부국장(2005.6~2006), 前 시사교양특임3CP 부장(2006), 前 기획조정실 사회공헌팀장/사회공헌센터장(2006.9~2010.9), 前 편성국 심의평가부장(2010.9~2011.2), 前 시사교양국 시사교양3부장(2011.2~2012.4), 前 시사제작국장(2012.4~12), 前 교양제작국장(2012.12~2014.10), 前 경인지사장(2014.10~2015.2), 前 편성제작본부장(2015.2~2017.2).[12] PD수첩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당시 시사교양국장이었다.[13] MBC 최초의 여성 공채 TV PD.[14] 前 <PD수첩> MC(2010.4~2011.3), 前 교양제작국 부국장 겸 다큐멘터리제작부장(2014.3~10), 前 편성국 부국장(2015.2~2017.3), 前 편성콘텐츠부장(2015.10~2017.3), 前 콘텐츠제작국장(2017.3~12)
예능(전직)
[ 펼치기 · 접기 ] - 나수성(1964년 입사, 1980년 퇴사, 2011년 작고)[1]
- 차재영[2] (1968년 입사, 1988년 정년퇴임)
- 김경태(1969년 입사, 1973년 퇴사후 TBC 재입사, 1995년 작고)
- 진필홍(1969년 입사, 1973년 퇴사 후 TBC 재입사, 2015년 작고)
- 장두원(1969년 입사, 1988년 충주MBC 사장 임명)
- 진필호(1969년 입사, 1990년 정년퇴임)
- 육창웅(1969년 입사, 1992년 춘천MBC 사장 임명)
- 김행신(1969년 입사, 1980년 강제해직, 1989년 복직, 1993년 퇴사, 2000년 작고)
- 이재휘(1969년 입사, 1995년 퇴사)
- 유수열(1969년 입사, 1996년 춘천MBC 사장 임명, 2021년 작고)
- 이창식(1969년 입사, 1997년 MBC 예술단 사장 임명)
- 심상수(1969년 입사, 1998년 춘천MBC 사장 임명)
- 전우중[3] (1969년 입사, 1980년 강제해직, 1989년 복직, 1996년 정년퇴임)
- 최선규(1970년 입사, 1993년 정년퇴임)
- 민창환(1970년 입사, 2004년 정년퇴임)
- 구종회(1972년 입사, 1997년 정년퇴임)
- 김명수(1973년 입사, 2001년 MBC 미술센터 사장 임명)
- 지석원(1973년 입사, 2003년 청주MBC 사장 임명)
- 배상석(1973년 입사, 2004년 정년퇴임)
- 김영면(1973년 입사, 2005년 정년퇴임)
- 신승호(1973년 입사)
- 홍성(1976년 입사, 1994년 퇴사)
- 이유호(1976년 입사, 2007년 정년퇴임)
- 신종인(1976년 입사, 울산MBC 사장 및 본사 부사장 역임)
- 송창의(1977년 입사, 2000년 퇴사)
- 김영철(1978년 입사, 2005년 진주MBC 사장 임명)
- 황세환(1981년 라디오PD로 입사, 1991년 예능PD로 전직, 1995년 퇴사, 2000년 작고)
- 장태연(1981년 입사, 2008년 전주MBC 사장 임명, 2010년 MBN 이직)
- 최영근(1982년 입사, 2009년 MBC 미주법인 사장 임명)
- 주철환(1983년 입사, 2000년 퇴사)
- 고연도(1983년 입사, 2013년 정년퇴임)
- 윤경진(1983년 입사, 2014년 정년퇴임)
- 김종진(1984년 입사, 1995년 퇴사)
-
은경표(1984년 입사, 2002년 해고) - 송승종(1984년 입사, 2014년 정년퇴임)
- 안우정(1984년 입사, 2012년 MBC 플러스 사장 임명)[4]
- 김정욱(1984년 입사, 2015년 MBC 플러스미디어 이사 임명)
- 방성근(1984년 입사, 2019년 정년퇴임)[5]
- 이원용(1984년 입사)
- 유근형(1985년 입사, 2002년 퇴사)
-
황용우(1985년 입사, 2002년 해고) - 원만식(1985년 입사, 2015년 전주MBC 사장 임명)[6]
- 주창만(1985년 입사, 2018년 MBC 플러스 이사 임명)
-
고재형(1986년 입사, 2008년 해고 및 영구제명)[7] - 김엽(1986년 입사, 2017년 MBC 아카데미 사장 임명)[8]
- 김영희(1986년 입사, 2014년 퇴사 및 중국 진출, 2018년 콘텐츠 총괄 부사장 임명)
- 심승근(1987년 입사, 2002년 뇌출혈로 작고)
- 김승환(1987년 입사, 2009년 퇴사)
- 권익준(1991년 입사, 2011년 CJ E&M 이적)
- 여운혁(1993년 입사, 2011년 JTBC 이적, 2017년 미스틱 엔터테인먼트 이적)
- 이민호(1993년 입사, 2015년 중국 진출)
- 조서윤(1993년 입사, 2017년 YG엔터테인먼트 이적, 2020년 티캐스트 이적)[9]
- 권석(1993년 입사, 2021년 MBC 아메리카 사장 임명)[10]
- 신정수(1995년 입사, 2016년 중국 진출, 2017년 CJ E&M 이적)
- 임정아(1996년 입사, 2011년 JTBC 이적)
- 유호철(1999년 입사, 2016년 중국 진출, 이후 CJ E&M 이적)
- 김유곤(2000년 입사, 2016년 CJ E&M 이적)
- 성치경(2001년 입사, 2011년 JTBC 이적)
- 전성호(2001년 입사, 2016년 CJ E&M 이적)
- 김민종(2001년 입사, 2017년 YG엔터테인먼트 이적, 2019년 카카오M 이적)
- 황교진(2001년 입사, 2017년 JTBC 이적)
- 김태호(2001년 입사, 2021년 퇴사)
- 오윤환(2002년 입사, 2014년 JTBC 이적, 2019년 카카오M 이적)[11]
- 이지선(2002년 입사, 2017년 JTBC 이적, 2020년 티캐스트 이적)
- 제영재(2002년 입사, 2017년 YG엔터테인먼트 이적, 2020년 티캐스트 이적)
-
정창영(2002년 입사, 2020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해고)[12] - 강궁(2003년 입사, 2016년 중국 진출, 이후 CJ E&M 이적)
- 민철기(2003년 입사, 2016년 CJ E&M 이적)
- 조욱형(2003년 입사, 2016년 CJ E&M 이적)
- 이병혁(2004년 입사, 2015년 중국 진출, 2018년 TV CHOSUN 이적, 2020년 티캐스트 이적)
- 문경태(2006년 입사, 2016년 중국 진출, 2018년 TV CHOSUN 이적, 2021년 MBN 이적)
- 김남호(2006년 입사, 2019년 채널A 이적)
- 김노은(2007년 입사, 2011년 JTBC 이적)
- 방현영(2007년 입사, 2011년 JTBC 이적, 2020년 티캐스트 이적)
- 손창우(2007년 입사, 2015년 CJ E&M 이적)
- 박진경(2007년 입사, 2019년 카카오M 이적)
- 이재석(2008년 입사, 2020년 카카오M 이적)
- 조주연(2010년 입사, 2020년 카카오M 이적)
- 마건영(2011년 입사, 2014년 JTBC 이적)
- 권성민(2012년 입사, 2015년 부당해고, 2016년 복직, 2019년 카카오M 이적)[13][14]
- 권해봄(2014년 입사, 2019년 카카오M 이적)[15]
- 손수정(2014년 입사, 2020년 카카오M 이적)
[1] 입사 당시에는 라디오PD였으나 예능PD로 전직.[2] KBS 출신.[3] 본명 전영수[4] 前 예능국 프로듀서5(2000.7~2002), 前 예능 특임1CP(2002~2005.10), 前 예능국 부국장(2005.10~2008.3), 前 《느낌표》 CP(2007.3~2008.3), 前 예능국장(2008.3~2011.5), 前 예능본부장(2011.5~2012.4), 前 예능1국장(2011.9~2012.4). 이후 본사 부사장(2013.5~2014.3), 강릉/삼척MBC 및 MBC강원영동 사장(2014.3~2017.3) 등지 역임.[5] 前 예능국 1CP(2005.10~2006.3), 前 예능국 4CP(2006.3~2008.3), 前 예능국 부국장(2008.3~2011.9), 前 예능1국 부국장(2011.9~2012.4), 前 예능본부장(2012.4~12), 前 미래방송연구실 부국장(2013~2014), 前 DMC페스티벌사무국장(2015.10~2017)[6] 前 예능프로그램개발부장(2009.3~11), 前 예능4부장(2009.11~2010.3), 前 예능1부장(2010.3~2011.9), 前 신사옥건설국장(2011.9~2012.4), 前 예능1국장(2012.4~2015.2), 前 예능본부장(2012.12~2015.2)[7] 2008년에 금품수수 혐의로 연루되어 실형 선고를 받았으며, 영구제명되었다.출처.[8] 前 예능국 《지피지기》 CP(2008.3~7), 前 예능4CP(2008.7~9), 前 예능1CP(부장)(2008.3~2010.3), 前 예능국(예능본부) 부국장(2010.3~2011.9), 前 예능2국장(2011.9~2015.2), 前 예능본부장(2015.2~2017.3)[9] MBC 재직 당시에는 조희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퇴사와 동시에 개명.[10] 공감토크쇼 놀러와와 전파견문록을 연출하기도 했으며 유재석을 무모한 도전을 통해 MBC로 끌어온 사람이기도 하다.[11] 세바퀴, 아육대, 나 혼자 산다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오윤환은 MBC의 흑역사로 꼽히는 대단한 희망의 PD이기도 했다(...).[12] 출처[13] 안광한 경영진 체제 당시 유배 웹툰을 그렸다 해고당한 전적이 있다.[14] 두니아 ~ 처음 만난 세계, 가시나들 연출.[15] CJ E&M에서 이적해 왔다.
드라마(전직)
[ 펼치기 · 접기 ] - 이동희[1] (1968년 입사, 1972년 퇴사후 KBS 재입사)
- 허규[2] (1969년 입사, 1972년 퇴사, 2000년 작고)
- 이기하[3] (1969년 입사, 1971년 퇴사후 KBS 재입사)
- 이효영[4] (1969년 입사, 1978년 퇴사)
- 이대섭[5] (1969년 입사, 1986년 울산MBC 사장 임명)
- 표재순[6] (1969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이연헌(1969년 입사, 1995년 충주MBC 사장 임명)
- 박철[7] (1969년 입사, 1996년 정년퇴임, 2020년 작고)
- 유길촌[8] (1969년 입사, 1991년 MBC 미술센터 사장 임명, 2022년 작고)
- 유흥렬(1969년 입사, 1998년 대구MBC 사장 임명)
- 정문수(1969년 입사, 2000년 정년퇴임, 2005년 작고)
- 강철호(1970년 입사, 1976년 퇴사)
- 이병훈(1970년 입사, 2002년 정년퇴임)
- 고석만(1973년 입사, 1995년 퇴사, 2003년 EBS 사장 임명, 2005년 MBC 특임이사 역임)
- 최종수(1973년 입사, 2001년 MBC 프로덕션 사장 임명, 2022년 작고)
- 김지일(1973년 입사, 2004년 MBC 프로덕션 사장 임명)
- 김승수(1974년 입사, 2003년 춘천MBC 사장 임명)
- 김한영(1976년 입사, 1992년 퇴사)[9]
- 김종학(1977년 입사, 1993년 퇴사, 2013년 작고)
- 박복만(1976년 입사, 2006년 정년퇴임)
- 황인뢰(1977년 입사, 2000년 퇴사)
- 장수봉(1977년 입사, 2002년 퇴사)
- 권이상(1978년 입사, 2008년 정년퇴임)
- 강병문(1978년 입사, 1994년 MBC 프로덕션 이직, 2005년 정년퇴임)
- 정지훈(1978년 입사)
- 이관희(1981년 입사, 1995년 퇴사)
- 이승렬(1981년 입사, 2000년 퇴사)
- 장두익(1981년 입사, 2001년 퇴사)
- 박종(1981년 입사, 2008년 SBS 프로덕션 사장으로 영전)
- 김준호(1982년 입사, 1997년 퇴사)
- 이진석(1982년 입사, 1997년 퇴사)
- 신호균(1982년 입사, 2007년 퇴사)
- 정인(1982년 입사, 2007년 작고)
- 소원영(1982년 입사, 2010년 울산MBC 사장 임명)
- 이은규(1982년 입사, 2014년 정년퇴임)
- 이재갑(1982년 입사, 2011년 정년퇴임)
- 박철수(1982년 입사, 1986년 퇴사)
- 정지영(1982년 입사, 1984년 퇴사)
- 김수룡(1983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이강훈(1984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이장수(1984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최윤석(1984년 입사, 1995년 퇴사)
- 정세호(1984년 입사, 1997년 퇴사)
- 최명규(1984년 입사, 1997년 퇴사)
- 이창순(1984년 입사, 2000년 퇴사)[10]
- 조중현(1984년 입사, 2011년 MBC 미술센터 사장 임명)
- 정운현(1984년 입사, 2014년 MBC 미술센터 사장 임명)
-
장근수(1984년 입사, 2017년 MBC강원영동 사장 임명)[3차][11] - 장용우(1984년 입사)
- 오종록(1985년 입사, 1992년 SBS 이직)
- 곽영범[12] (1986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구본근(1986년 입사, 1992년 SBS 이직)
- 장기홍(1986년 입사, 1992년 SBS 이직)
- 최창욱(1986년 입사, 2021년 MBC C&I 부사장 임명)[13]
- 손홍조(1987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안판석(1987년 입사, 2003년 퇴사)
- 이주환[14] (1987년 입사, 2018년 MBC C&I 콘텐츠본부 총괄이사 임명)
- 김윤철(1991년 입사, 2006년 퇴사)
- 권석장(1991년 입사, 2014년 퇴사)
- 이태곤(1993년 입사, 2007년 퇴사)
-
고동선(1993년 입사, 2018년 해고) - 이승호(1995년 입사, 1996년 퇴사)
- 유정준(1995년 입사, 2007년 퇴사)
- 이재규(1996년 입사, 2006년 퇴사)
- 김도훈(1996년 입사, 2016년 퇴사)
- 박홍균(1996년 입사, 2017년 퇴사)
- 노도철(1996년 예능PD로 입사, 2007년 전직, 2019년 HB엔터테인먼트 이적)
- 김민식(1996년 예능PD로 입사, 2007년 전직, 2020년 명예퇴직)
- 임태우(1996년 입사)
- 이윤정(1997년 입사, 2014년 퇴사)
- 김상호(1997년 입사, 2016년 퇴사)
- 김진민(1997년 입사, 2016년 퇴사)
- 박성은(1999년 입사, 2019년 퇴사)
- 이동윤(2002년 입사, 2019년 퇴사)[15]
- 최병길(2002년 입사, 2019년 스튜디오드래곤 이적)[16]
- 정대윤(2004년 입사)
- 김상협(2005년 입사)
- 최준배(2005년 입사)
- 김희원(2006년 입사, 2018년 퇴사)
- 최정규(2006년 입사)
- 김지현(2007년 입사, 2019년 퇴사)[17]
- 박원국(2007년 입사)
- 박승우(2009년 입사, 2021년 퇴사)[18]
[1] KBS 출신.[2] KBS → TBC 출신.[3] A B 2017년 6월 언론부역자 3차 명단에 올랐다.#[4] TBC 출신.[5] TBC 출신.[6] TBC 출신.[7] KBS 출신.[8] TBC 출신.[9] 프리랜서 선언 후 SBS와 연출 계약.[10] 배우 원미경의 남편.[11] 前 드라마국 2CP(2005.10~2006.3), 前 드라마2부장(2010.3~9), 前 드라마1국장(2010.9~2011.2), 前 드라마예능본부장(2011.2~5), 前 드라마본부장(2011.5~2013.10 / 2014.3~2017.3), 前 글로벌사업본부 특임국장(2013.10~2014.3).[12] TBC → KBS 출신.[13] 배우 임예진의 남편이다.[14] <주몽>, <야경꾼 일지>, <빛과 그림자> 등지 연출. 2008~2009년 드라마국장, 2015~2016년 드라마4부장, 2016~2017년 드라마1국 부국장, 2017년 드라마본부장까지 역임. 2017년 옥관문화훈장 수훈.[15] 형은 가수 이적이다.[16] 아내는 성우 겸 방송인 서유리.[17] 남편은 MBC 아나운서 허일후.[18] 카이로스 연출.
스포츠(전직)
[ 펼치기 · 접기 ] - 오창식(1982년 입사, 2013년 IHB 인천아시안게임 주관방송사 대표)
- 허연회(1984년 입사, 2013년 iMBC 사장 임명)[1]
- 이도윤(1986년 입사, 2018년 MBC 플러스 이사 임명)
- 황승욱(1991년 입사, 2021년 MBC 플러스 스포츠이사 임명)
- 이민호(2002년 입사, 2016년 퇴사,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 e스포츠 방송총괄을 거쳐 2021년 펍지 주식회사로 이적)
- 함영승(2004년 입사, 2018년 5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 방송팀 리드로 이적)
[1] 前 스포츠국 스포츠제작부장(2004.3~2006.8), 前 스포츠제작단 스포츠기획팀장(2006.8~2009.3), 前 편성제작국 부국장(2009.3~2010.6), 前 스포츠제작국장(2010.6~2013.3). 2017년 3월부터 1년여 간 부산MBC 사장을 지낸 후 2022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5기 위원으로 위촉됐고, TKG휴켐스 사외이사도 역임 중이다.
편성(전직)
[ 펼치기 · 접기 ] - 황선길(1966년 입사, 1995년 정년퇴임)
- 박진홍(1969년 입사, 1999년 광주MBC 사장 임명)
- 여태성(1970년 입사, 1999년 MBC 미술센터 사장 임명, 2015년 작고)
- 윤건호(1973년 라디오PD로 입사, 1987년 편성PD로 전직, 2001년 (구)MBC 플러스 사장 임명)[1]
- 이창우(1977년 입사)
- 한귀현(1978년 입사, 2010년 원주MBC 사장 임명)
- 박순웅(1981년 입사, 1998년 명예퇴직)[2]
- 김세영(1981년 교양PD로 입사, 이후 전직, 2008년 목포MBC 사장 임명, 이후 부사장 역임)
- 이용석(1982년 아나운서로 입사, 이후 전직, 2012년 청주-충주MBC 사장 임명)[3]
- 안광한(1982년 입사, 2011년 본사 부사장 임명, 2014년 사장 승진)[1차]
- 김기상(1984년 입사, 1996년 작고)
- 오명환[4] (1984년 입사, 1999년 여수MBC 사장 임명)
- 이길섭(1984년 입사, 2018년 MBC충북 사장 임명)
- 권오형(1986년 입사, 1998년 명예퇴직, 이후 2012년 TV CHOSUN 이적)
- 한명석(1986년 아나운서 입사, 1992년 전직, 2021년 정년퇴임)
- 윤소연(2006년 입사, 2016년 퇴사 후 창업, 현재 아파트멘터리 대표)
[1] A B 前 라디오제작국 차장대우(1986~1987.2), 前 편성국 편성기획부 차장(1987.2~1989.11), 前 종합기획실 기획연구위원(1989.11~1990.3), 前 편성국 편성기획부장(1990.3~1994.4), 前 영화부장(1995.2~1997.4), 前 편성국 부국장(1996.4~1997.4), 前 편성국장(1997.4~12), 前 홍보국장(1997.12~1998.3), 前 홍보심의국장(1998.3~1999.3), 前 편성실 부실장(1999.3~2000.3), 前 홍보심의국 위원(2000.3~2001.3). 그 외에 마산MBC 사장, TIMF앙상블 이사장 등지 역임.[2] TBC-KBS 출신. 한동안 영화부에서 <은하철도 999>, <천년여왕>, <크미치스>, <매드 맥스>, <대제의 밀사> 등 숱한 외화/애니메이션을 연출했으며, 1983년 차장대우, 1984년 7월 차장, 1988년 1월 부장대우로 각각 올랐다가 1991년 5월 영화부 특선영화담당 부장으로 보직간부 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영화부장(1993.4~1995.2), 방송자료국 조사연구부장(1995.2~1996.9), 정책기획실 영상프로젝트팀장/사업국 영상사업기획팀장(1996.9~1997.11), 사업국 위원(1997.11~1998.3) 등을 거쳤다. 퇴사 후 '알파필름' 대표를 맡으며 1999년 이후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청각장애인 학교 수화교육 강사,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등지 역임.[3] 前 시사교양국 시사교양3CP(2001.2~2002.4), 前 홍보심의국 홍보부장(2002.4~2005.2), 前 홍보심의국 부국장(2007.3~2008.3), 前 홍보심의국장(2008.3~2009.3), 前 편성국 부국장(2009.3~2010.3), 前 특보(2010.3~6), 前 경기인천(서울경인)지사장(2010.6~2012.4), 前 글로벌사업본부장(2012.4~2013.6)[4] TBC 출신.
애니메이션 및 외화 더빙
- 염영돈[268]
5.6. 엔지니어[편집]
- 전직
- 최봉구[272] (1961년 입사, 1993년 명예퇴직)
- 안흥식[273] (1962년 입사, 1983년 부산MBC-부산문화TV 사장 임명)
- 김기일[274] (1962년 입사, 1993년 명예퇴직)
- 이창호[275] (1963년 입사, 1994년 명예퇴직)
- 남궁옥인[276] (1963년 입사, 1995년 MBC 미디어텍 상무 임명)
- 석남수[277] (1963년 입사, 1984년 한국전기통신공사 이직, 1988년 복귀, 1998년 명예퇴직)
- 유근혁[278] (1963년 입사, 1998년 명예퇴직)
- 임두호[279] (1963년 입사, 1998년 명예퇴직)
- 최명구[280] (1963년 입사, 1998년 명예퇴직)
- 노서을[281] (1964년 입사, 1978년 정년퇴임, 2022년 작고)
- 최인열[282] (1964년 입사, 1988년 청주MBC 상무 임명, 2019년 작고)
- 홍기준[283] (1964년 입사, 1992년 정년퇴임, 2015년 작고)
- 황선영[284] (1964년 입사, 1971년 전북텔레비전방송으로 이직 및 복귀, 1992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조영휘[285] (1964년 입사, 1992년 순직)
- 김문기[286] (1964년 입사, 1995년 명예퇴직)
- 김광곤[287] (1964년 입사, 1999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박종규[288] (1964년 입사, 1975년 한국교육개발원 이직, 1978년 복귀, 2000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황윤환[289] (1965년 입사, 1998년 명예퇴직)
- 조구현[290] (1967년 입사, 1994년 KMTV 이직)
- 최오규[291] (1968년 입사, 1994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1997년 작고)
- 윤상도[292] (1968년 입사, 1999년 MBC 미디어텍 이사 임명, 2021년 작고)
- 권태수[293] (1969년 입사, 1989년 안동MBC 사장 임명)
- 김종환[294] (1969년 입사, 1991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윤재덕[295] (1969년 입사, 1991년 MBC 미디어텍 상무 임명)
- 오정수[296] (1969년 입사, 1992년 제주MBC 사장 임명)
- 김순길[297] (1969년 입사, 1993년 명예퇴직)
- 고흥복[298] (1969년 입사, 1993년 정년퇴임)
- 이한익[299] (1969년 입사, 1993년 정년퇴임)
- 조동근[300] (1969년 입사, 1993년 명예퇴직)
- 김윤식[301] (1969년 입사, 1994년 명예퇴직)
- 김순식[302] (1969년 입사, 1994년 명예퇴직)
- 장용[303] (1969년 입사, 1996년 목포MBC 사장 임명)
- 홍환식[304] (1969년 입사, 1997년 정년퇴임)
- 최홍림[305] (1969년 입사, 1998년 명예퇴직)
- 김규수[306] (1969년 입사, 1998년 울산MBC 사장 임명)
- 조정구[307] (1969년 입사, 1998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이종성[308] (1969년 입사, 1999년 정년퇴임)
- 김수량[309] (1969년 입사, 1999년 마산MBC 사장 임명)
- 금기우[310] (1969년 입사, 2000년 퇴사)
- 신원호[311] (1969년 입사, 2003년 퇴사, 2019년 작고)
- 박수효[312] (1971년 입사, 1994년 명예퇴직)
- 김세하[313] (1973년 입사, 2006년 정년퇴임)
- 문정철[314] (1976년 입사, 2003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문병화[315] (1977년 입사, 2005년 MBC 미술센터 사장 임명, 2012년 작고)
- 최천[316] (1977년 입사, 2009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방동희[317] (1980년 입사, 1994년 명예퇴직)
- 박진석[318] (1981년 입사, 2005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이완기[319] (1981년 입사, 2008년 울산MBC 사장 임명)
- 손목헌[320] (1981년 입사, 2014년 MBC C&I 이사 임명)
- 천복용[321] (1981년 입사, 2014년 iMBC 이사 임명)
- 문장환[322] (1982년 입사, 2010년 삼척MBC 사장 임명)
- 이우철[323] (1984년 입사, 2013년 포항MBC 사장 임명)
- 최중억[324] (1984년 입사, 2018년 MBC강원영동 사장 임명)
- 성보영(1985년 입사, 2017년 MBC C&I 부사장 임명)
- 박병완[325] (1985년 입사, 2018년 포항MBC 사장 임명)
- 석원혁[326] (1986년 입사, 2017년 퇴사)
- 김성근[327] (1986년 입사, 2018년 사임)
- 김윤섭[328] (1986년 입사, 퇴사연도 불명)
- 김종규[329] (1986년 입사, 2020년 MBC 플러스 부사장 임명)
- 정각종[330] (1987년 입사, 2006년 정년퇴임)
- 김상훈[331] (1987년 입사, 2021년 MBC ART 사장 임명)
- 김완식(1987년 입사, 2021년 퇴사)
- 이원영(1988년 입사, 2020년 정년퇴임)
- 이성구(2002년 입사, 2022년 블래스트 설립)
5.7. 영상미술직[편집]
- 현직
- 전직
- 박수명[332] (1969년 입사, 1992년 MBC 미술센터 상무 임명, 2022년 작고)
- 김종길(1982년 입사, 2015년 퇴사)
- 조수현(1985년 입사, 1995년 교통사고로 순직): 배우 조재현의 형.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우리들의 천국>, <제4공화국> 등지의 촬영감독이기도 했다. 사후 차장으로 추서.
- 정종훈(1987년 입사, 2022년 정년퇴임): 미술직으로 입사한 후 1989년 <뽀뽀뽀>를 시초로 <MBC 뉴스데스크>, <인기가요 베스트 50>, <퀴즈가 좋다>, <컴백스페셜 서태지>, <복면가왕> 등 스튜디오 디자인을 줄곧 맡아왔고, 1993년 노조 영상미술부문 부위원장을 맡고 2007년부터 2년여 간 영상미술국 미술부장을 맡기도 했다. 2022년 퇴직을 맞아 저서 <TV세트 디자인의 세계>를 냈다. 2013년 제40회 한국방송대상 미술상 수상.
- 송인혁(1996년 입사, 2020년 퇴사): 영상디자인국 촬영감독. <대장금>, <베토벤 바이러스>, <이산>, <아마존의 눈물>등의 촬영담당
5.8. 경영·관리직[편집]
- 현직
- 송윤석[333] (1993년 입사)
- 전직
- 이원호(1970년 입사, 1997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박근학[334] (1970년 입사, 1999년 포항MBC 사장 임명)
- 장근복[335] (1978년 입사, 2004년 (구)MBC 플러스 사장 임명, 2012년 작고)
- 정준[336] (1981년 입사, 2009년 제주MBC 사장 임명)
- 임무혁[337] (1982년 입사, 2010년 강릉MBC 사장 임명)
- 정성채(1982년 입사, 2015년 광주-목포-여수MBC 상무 임명)
- 홍병의[338] (1983년 특채 입사, 2011년 MBC미술센터 이사 임명)
- 김재형[339] (1984년 입사, 2011년 춘천MBC 사장 임명)
- 고민철[340] (1984년 입사, 2012년 원주MBC 사장 임명)
- 류근종(1984년 입사, 2013년 정년퇴임)
- 박영춘[341] (1984년 입사, 2017년 본사 감사 임명)
- 안현덕(1985년 입사, 2010년 MBC 플러스 사장 임명): 기획실에 입사하여 관계회사팀장, 국내사업팀장, 전략프로젝트PM 등지 역임. 그 외에 2012년 4월부터 1년여 간 MBC 아메리카 사장도 맡았다.
- 조규승[342] (1986년 입사, 2011년 MBC나눔 사장 임명)
- 오정우(1986년 입사, 2017년 포항MBC 사장 임명): 총무국에 입사하여 감사실장, 경영본부장, 글로벌사업본부장 등지 역임.
- 이은우[343] (1987년 입사, 1990년 SBS 이직, 2011년 1차 복귀, 2012년 MBC플러스미디어 전보, 2015년 2차 복귀, 2018년 사임)
- 이순임(1989년 입사, 2018년 정년퇴임): 효령대군의 22대손. 경영직으로 입사하여 감사국 부장, 경영지원부 국장, 예능본부 예능운영부 국장, 공정방송노조 위원장 등지 역임. 특히 2004년부터 6년 동안 국제협력부에 몸담던 시절 한중 방송교류 업무 경험 덕에 중국에 관심을 보여 2014년 논문 <현대 한중 방송교류의 역사와 성과>[344] 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2001년부터 12년 간 MBC 중국연구회장도 지냈다. 퇴사 이후 자유한국당 미디어특별위원회 위원, 자유당 대변인, 공영언론미래비전100년위원회 공동대표 역임.
6. 방송현황[편집]
6.1. 프로그램[편집]
자세한 내용은 MBC TV/프로그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2. 유튜브 채널[편집]
한국 방송업계 최초로 유튜브에 진출한 방송사이기도 하다.
2011년 말에 구글 코리아와 파트너쉽을 맺고, 대한민국 방송사 최초로 모든 컨텐츠를 업로드 한 것이다.
그리하여 2012년에 본격적으로 컨텐츠들을 선보였는데, 옛날 프로그램들을 전부 원본급으로 올려주는 패기를 선보였다.[345] 이때 엄청난 화제를 낳으며 꽤나 성공적으로 운영되는듯 했으나...[346]
2014년 말, 지상파 3사 모두 네이버TV와 독점공급을 맺으며 한국 IP를 차단했다.
하지만 한국 컨텐츠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고, 점점 커져가는 유튜브 시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한국 IP를 다시 풀기 시작했다. 사실 2017년부터 공영방송 총파업 등의 영향으로 공영방송이 수백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내며 지상파에 대한 차별적 규제가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수익원을 찾고자 울며 겨자먹기로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컨텐츠들을 방출, 활용하기로 한 것.
특히 여러 유튜브 채널들을 개설하며(오분순삭 등) 다시 한번 큰 관심을 끌었고,[348] 수익을 크게 올리자 이제는 적극적으로 유튜브 채널들을 개설하고 있다.[349]
- withMBC
- 공식 종합 채널: 엠뚜루마뚜루
- 뉴스
- 엠빅뉴스
- 14F
- iMBC 연예
- 오늘비와?
- 모지: 구 똑똑 스튜디오, 엠라운지
- 통일전망대 X 김팀장의 북한 확대경
- 뉴스이즈백: 구 엎어컷
- 소비더머니: 14F에서 독립한 채널
- NEWSGRAPHICS
- 딩딩대학: 엠빅뉴스에서 독립한 채널
- 시사교양
- MSG: 구 다큐하우스
- GO지식: MBC 지식교양 채널
- PD수첩
-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 100분 토론
- 실화탐사대 (실화 On): 구 대한민국 흑역사
- TV예술무대
- 뽀뽀뽀 좋아좋아
- 예능
- K-POP
- 옛송TV - 구 대중가요 1988
- 대학가요제
- 트로트
- MBC C&I 가곡
- 드라마
- 옛드 : 옛날 드라마 (드라맛집) - 구 MBCClassic
- 순식간엠
- M드로메다 스튜디오
- 라디오: 시사, 음악, 사과잼, 아이돌 라디오, 굿모닝FM
- MBC AMERICA
- 스포츠
- 디자인센터
- 아카이브
- MBC나눔
- 키자니아
- 해요TV
- 타M머신: 구 타임머신 코리아
- 플레이브: MBC 사내벤처 1기
6.3. 송신소[편집]
A. 이 문단에는 수도권에 설치된 송신소를 기재하였다. 각 지역에 있는 송신소는 각 지역국의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B. 아날로그 TV 채널은 2012년 12월 31일까지 모두 종료되어 기재하지 않았다.
C. 디지털 TV의 모든 물리채널에 부여된 가상채널은 11-1번이다.
D. 채널과 주파수 앞뒤에 붙는 ch.와 Mhz 등의 단위는 생략한다.
E. 송출이 예정되어 있는 채널과 주파수는 ※로 표기한다.
F. 라디오 송신소는 MBC 표준FM과 MBC FM4U 문서 참고.
7. 특징[편집]
7.1. 정치적 성향[편집]
7.1.1. 2010년 이전[편집]
2010년 이전의 MBC는 보도 논조가 타 방송사에 비해 친민주당계 정당성향이 심했다. 물론 이것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고 사실 설립 초기부터 1980년대 중후반 시절까지는 전형적인 친정부 성향의 방송국이었다. 우선 1960년대 이후로는 정수장학회의 영향도 있고 방송사 확장[356] 도 박정희 정부가 팍팍 밀어주어서 진행했기 때문에 당연히 친정부적인 성향이었고, 5.18 민주화운동 때 광주MBC 건물이 불타버리기도 했다. 이후로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KBS와 마찬가지로 땡전뉴스를 내보냈다. 1987년 6.10 민주 항쟁 및 6.29 선언에 따른 민주화의 바람이 불자 언론자유화, 노동자 대투쟁 등의 영향으로 MBC 노조가 설립되었고, 1988년 8월에는 보도-제작-편성 3개 국장 추천제 관철을 목표로 첫 총파업을 벌여 황선필을 사장직에서 퇴진시켰고, 국장 중간평가제를 관철시켰다. 11월에 선임된 김영수 사장 역시 출근저지 투쟁 탓에 취임식조차 못한 채 3개월 뒤에 사임했다.
동년 말 '방송문화진흥회'가 세워져 KBS 측 주식이 그쪽으로 넘어간 후, 1989년 초에 방송인 출신인 최창봉이 사장이 되면서 당대 기준에서는 나름대로 중도파적인 스탠스를 취했고, 진보적인 젊은 방송인들에 의해 <어머니의 노래>, <MBC를 말한다>, <MBC 리포트(2차)>, <생방송 여론광장>, <PD수첩> 등 정치/사회고발적 프로들의 제작이 늘었다. 그렇다고 마냥 스탠스가 저랬던 것은 아니고 땡전뉴스 시절의 간부진들이 퇴출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과 커넥션을 가졌던 인원이 적지 않았고 그래서 보수적인 논조를 취할 때도 적지 않았다. 취임 첫 해인 1989년 9월에는 노조가 편성-보도국장 직선제 도입, 제작 관련 10개 실/국장에 대한 정기 신임평가 도입을 요구하자, 회사가 이를 수용치 않아 결렬된 후 노동부에 직권중재를 했다. 이에 노조는 중재를 기다리지 않은 채 동월 9일부터 11일 간 파업을 벌여 편성-보도-기술 3개 국장 3배수 추천제를 관철시켰다.
다만 1990년 3당 합당과 KBS 사태 등의 영향으로 최 사장은 <PD수첩> '그래도 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 불방 및 안성일 노조위원장-김평호 노조 사무국장 해고, 1991년 대하드라마 <땅> 조기종영 등으로 정권 눈치보기에 열을 올렸고, 1992년 들어서 본사가 보도-편성-제작 3개 국장 추천제 폐지 및 인건비 부담에 따른 5% 임금 인상안을 제시하자, 9월 2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이에 회사는 노조 집행부 등 15명을 고소했고, 10월 1일 공정방송협의회 강화안이 노사 간의 이견으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결렬되자, 다음 날 여의도 사옥 내에 경찰 병력이 투입되어 조합원 187명이 충돌 끝에 강제 연행되었다. 특히 이완기 노조위원장 대행, 박영춘 노조 사무국장, 손석희 노조 대외협력위원회 부간사, 정찬형 노조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 심재철 기자 등 15명이 구속되는 등 타격이 있었으나, 노사 양측은 51일만에 국장 추천제를 없애는 대신 공정방송협의회의 활동을 강화하는 쪽으로 타결했다. 1993년 1월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은 전 노조위원장 이완기와 심재철 등 2명에 집행유예, 손석희 등 8명에 벌금형을 각각 내렸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후 강성구 사장이 선임된 후, 임기 첫 해에는 시간외 수당 협약과 김평호-안성일 등 해직자 원직 복귀 합의 등으로 '무분규 원년'을 선포했으나, 방송사 논조와 관련해서 윗선의 눈치를 본다는 평을 받았으며 1996년 3월 13일에는 강 사장이 방문진에서 연임되자 노조가 한 달 동안 파업을 전개하다가 최문순 당시 노조위원장이 구속 및 해직됐고, 6월에는 회사가 파업 관계자들에게 징계를 내리자 노조 및 MBC기자회가 집단 사표 제출을 결의하는 등 저항을 했다. 결국 강 사장은 방문진에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MBC가 진보적인 성향의 방송국으로 분류되기 시작되었던 때는 1990년대 후반, 즉 이득렬이 사장을 지냈을 때부터의 일이다. 즉, MBC가 진보적인 성향을 띄게 된 것도 민주화 이후로 단박에 진보화된 것이 아니고 10년 가까운 진통과 노조의 투쟁이 가져온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다만 MBC 사장의 성향이 쭈욱 진보였던 것만은 아니라서 이긍희 사장 시절에 잠깐 논조가 보수화되거나 엄기영 사장이 후에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등 쭈욱 진보 성향만은 아니었다.[357]
김대중 정부 당시에 주요 간부가 호남 인사로 편중된 것 때문에 비판을 산 적이 있었고,[358] 후술할 정수채 전 공정방송노조 위원장이나 김장겸 전 사장 등 일부의 예처럼 너무 친 민주당 보도를 한다고 비난을 하는 시각도 있으나 내부에서 편파보도에 대한 감시가 이뤄져 민주당계 정부도 비난해야 할 건 비난하는 논조도 보였다. 이들은 이명박이 집권한 이후 정권에 크게 타격을 안겨준 광우병 보도 등으로 대립했고 이는 이명박 정권이 MBC에 강경 정책을 취한 원인이 되었다. 심지어 극우단체까지 합세해 여의도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보수 네티즌들은 MBC를 '좌비씨'라고 욕을 무지하게 해댔다.
2007년에는 정수채(당시 시사교양국 시사교양특임1CP), 최도영(당시 라디오본부 라디오편성기획부 부장), 김종길(당시 영상미술국 영상2국 부국장) 등 부장급 이상 간부들이 'MBC 선임자노동조합'을 결성했고, 2008년 2월 'MBC 공정방송노동조합'으로 개편하며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에 가입했다. 초기에는 시니어급 사원들의 권익 옹호와 복지를 중시하며 분기별 퇴임식을 '연말 퇴임식'으로 바꾸자고 하고, '임금피크제 반대'를 이슈로 내세워 2008년 6월부터 석달 간 단체협상을 진행하다가 세계금융위기로 중단되었다.
7.1.2.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편집]
이명박 정부 때까지는 언론노조 파업의 선두 역할을 하고 있어 방송 제작이 중단되는 일이 가장 많았다. 심지어 파업용 정규 편성표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 2008년 12월 26일부터 방송법 등 미디어 관계법 개정안(일명 미디어법) 저지를 위해 파업을 시작, 2009년 1월 8일 파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였다가 미디어법이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다음 날인 2009년 2월 26일부터 더욱 강력하게 파업을 재개하였다. 이 당시 유튜브를 중심으로 미국, 중국 등 각 나라 언어로 MBC의 실상을 알리는 동영상을 배포하였다. 다만 중국 사람들에게 한국의 민주주의를 도와 달라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 탓에[359] 노조에서는 실수를 깨닫고 동영상을 삭제하였으나 네티즌들은 이미 열심히 퍼나른 뒤였다. 동년 3월 인사 때 부임한 전영배 보도국장은 4월 9일 부장단 회의에서 신경민 <뉴스데스크> 앵커를 하차시킬 거라고 피력하자 이에 반대하는 기자들이 'MBC 보도본부 차장-평기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정오부터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13일 회사가 임원회의를 통해 신경민 <뉴스데스크> 앵커를 하차시키고, 교체설이 나돌던 김미화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MC를 잔류시키도록 하자(#), 라디오 PD 측은 업무에 복귀한 반면 비대위 측은 전영배 보도국장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다음날부터 임원실 복도를 점거하며 무기한 농성을 개시하고 19개 지역 MBC 지부도 서울로의 뉴스 송고를 중단하는 등의 저항을 하자, 23일 전영배 보도국장이 보직에서 물러났다.
미국 국내에서 인간광우병 발병이 단 한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간광우병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 PD수첩에서의 오역과 왜곡문제, 생방송 오늘아침 2008년 7월 29일자에서 전의경 부모 단체의 인터뷰를 멋대로 편집하는 문제 등으로 얻어맞았고, 방송 3사 중 최장기간 파업을 주도하며 열심히 이명박 정부와 치고받았다. PD수첩 문제는 대법원까지 가는 혼란 끝에 고의적인 왜곡이라는 것이 입증되지 않아 2011년에야 무죄로 결론났는데, '방송내용이 틀리지 않았다'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같은 시기 공방노도 점차 회사 비판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2009년 2월 4일 <MBC 경영진 경영평가 및 미래 관련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이메일을 통해 이뤄진 설문조사에서 전체 조합원 118명 중 81명이 응답하여 응답자 중 46%가 본사 보도논조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집계되었고, 정수채 위원장 등은 "MBC의 구성원으로서 사과한다"고 밝혔다. 동년 5월 14일에는 보수 언론단체 '방송개혁시민연대' 창설 당시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일산제작센터 비리 의혹 성명 등으로 회사를 겨냥하다가 관련자들로부터 법적 대응 경고까지 받았고, 사내 게시판에서도 정수채 위원장 파면 청원도 이어졌다.(PD저널 기사, 기자협회보 기사(일지 첨부)) 동월 28일에 회사는 인사위원회에서 정수채 위원장 및 최도영 사무국장에게 '해사 행위'로 정직 3개월, 김종길 부위원장에게 근신을 각각 내렸으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취소 처분을 받았다.
7월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 취임 후 점차 장악의 조짐을 보이다 임원 선임 문제로 다시 재점화, 결국 2010년 2월 8일 여당측 추천이사들 6명만이 참여한 이사회에서 엄기영 사장이 제출한 임원 추천 후보가 전부 각하되고 이사회에서 선임한 임원들이 전부 그 자리를 메우며 갈등이 극에 달했다. 결국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엄기영 사장이 사퇴하게 된다.
이후 김종국 기획조정실장이 잠깐 사장 직무대행을 맡다가 친정부 인사로 알려진 김재철 신임 사장이 입성하며 급속도로 우경화하며 후술된 여러 논란들을 야기했다.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관련 축소 보도, 시사프로 축소/폐지, 제작 자율성 침해, 진보 방송인 퇴출 등으로 성향까지 바꾸려 했고, 2010년 10월부터 노사 단체협약 교섭에서 국장 책임제 폐지 및 본부장 책임제 도입, 공정방송위원회의 국장 신임투표 외 일부 조항 수정 등을 요구하다 노조가 거부하자 회사는 '단체협약 파기'를 통보했고, 2012년 10월에는 단협조차 해지되어 2019년 2월 이전까지 1노조 측과는 무단협 상태가 지속됐다.
이러한 내홍은 계속되어 2012년 언론노조 MBC 본부는 MBC 파업 사상 최장기간인 170일간 총파업에 나서기도 하였으며, 여기에 언론노조 KBS본부(2노조)와 YTN지부도 연대하게끔 했지만 파업 이후 사측은 파업 참가자들을 제작 일선에서 쫓아내고 경인지사, 용인 드라미아, 미래전략실, 심의실, 사회공헌실 등지의 비취재/비제작 부서로 쫓아내는 식의 보복 인사를 단행하고, 계약/경력직(시용) 기자와 PD들을 대거 채용하며 뉴스와 시사교양 프로의 질은 더더욱 추락하고 말았다. 당시 수많은 국민들이 파업을 응원했지만 이후 사그라들었는데, 이미 경쟁사 SBS가 정상적으로 방송하고 케이블 방송이 이미 대중화된 상태여서 지상파를 대신할 대체재가 풍부했기 때문이었다.
노조의 장기간 파업 등의 내홍에도 불구하고 2012년 18대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당선으로 새누리당이 재집권에 성공하여 김재철 사장은 임기 끝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을 듯 보였지만,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승인 없이 계열사 임원 인사를 내정한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2013년 3월 26일 방문진에 의해 해임되었다. 주주총회의 과정이 남았으나 방송문화진흥회가 최대 주주라 사실상 김재철 사장의 해임이 확정되었나 싶었는데, 김재철 사장은 이사회 다음 날에 사표를 제출해 자진 사퇴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김재철 사장의 퇴진으로 MBC의 친정부적 보도나 제작 자율성 침해 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기대가 모였으나 MBC 대주주인 방문진의 구조적 한계[360] 와 정권을 쥐고 나면 공영방송을 자기 편으로 만들려는 반복되는 정권의 속성 때문에, 후임 사장들인 김종국, 안광한, 김장겸 3명을 거치면서도 이러한 문제점들은 개선되기는 커녕 심화되었다. 2013년에는 김세의, 최대현, 박상규 등 3명을 주축으로 'MBC 노동조합(3노조)'을 결성해 한국-민주 양대 노총에도 가입하지 않은 채 전체 MBC 구성원의 뜻을 모아 그들 스스로의 권익과 복지를 추구하며 정치적 성격에서 탈피한 새로운 노사문화를 만들려고 했지만, 좌파적 경향이 강한 1노조와 대립 관계로 치달았다. 2015년 12월에 회사는 1노조에 근로시간 면제 제도(타임오프제)를 인정치 않고 노조 전임자들에게 업무 복귀를 명령했고, 각 노조별로 개별 교섭해서 2016년 3노조와 단체협약을 맺었지만, 고용노동부에 단협 신고가 안 돼 있는 데다 단협안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논란이 됐다. 2017년 중앙노동위원회 측은 회사의 타임오프제 불인정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했다.
같은 시기 똑같이 우경화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KBS보다도 더 우경화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당시 야당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나 종북몰이, 심지어 세월호 유가족의 조급증이 잠수부의 죽음을 불렀다는 취지의 보도를 내보내기도 하였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극도의 중립성이 요구되는 개표방송에서조차 투표 시간이 끝나기 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하던 국회 심판론을 그대로 주장하는 내용의 보도를 내보내고,#[* 링크는 총선 당일 오후 보도, 이후 개표방송에도 똑같은 리포트가 방송되었다.] '5.18 유공자가 가산점으로 인해 공무원을 싹쓸이한다'는 식의 극우 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등# 편파적 방송을 했다. 또 2015년부터 2년 동안 방문진 이사장을 맡았던 고영주는 취임 2년 전에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하며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편파적인 주장을 하기도 하였으며 이로 인해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여 2022년에야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기도 하였다.
2016년 말경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에도 방송 3사 중 홀로 태극기 집회 보도를 촛불 집회 보도보다 앞선 순서에 배치하기도 하는 등# MBC가 사실상 극우 세력의 보루가 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촛불집회 현장에서는 현장 사이를 지나려 하던 취재차량이 시위대에 가로막혀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361]
문재인 정부 출범 뒤인 2017년에는 국가정보원 개혁위원회에 의해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2010)> 등 국정원 측 문건의 실체가 밝혀지며 이명박 정부 시기 MBC 장악 및 인위적 개편 시도의 이면이 드러나기도 했다.
7.1.3. 문재인 정부 이후[편집]
MBC가 참 이상해졌네.
- 성완종 리스트 위증 의혹에 대한 MBC 기자의 질문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말한 답변. 불과 몇 달 전에는 "8시는 MBC 뉴스 봐라."라고 말했던 사람이 발언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목을 끌었다.[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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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활 26년 했는데 촛불집회뿐만 아니라 2002년 월드컵,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같은 걸 다 봤다. 100만 정도 되는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이(검찰개혁 촛불문화제) 현장을 딱 보니까 '이건 그 정도 된다. 100만짜리다.'라고 생각했다.
- 박성제 당시 MBC 보도국장이 2019년 10월 1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하여 남긴 발언#[363]
2017년 문재인 정부로의 정권교체 후, 거듭되는 경영진과 간부진의 제작 자율성 침해에 저항하기 위해 PD수첩 제작진으로부터 시작된 제작거부가 MBC 내부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시사제작국, 콘텐츠제작국, 보도국, 아나운서국, 드라마본부, 편성국, 예능본부 등까지 확대되면서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5년 만에 총파업을 실시하였다. 우경화는 단순한 정치 성향의 변화만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데, 워낙 정치적 탄압을 하다 보니 정치관련 사안에 대한 탐사보도를 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거의 말라버리다시피 했다. 실제로 이후 제작된 컨텐츠들의 급격한 질적 저하를 보면 아니라고 하기 어려운 상황. 도무지 지상파에서 나오는 기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내용으로 사람들의 어이없음을 불러일으킨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도 이후에 나온 일.
김장겸 사장에 이어 22대 MBC 사장으로 최승호 PD가 취임하였다. 최승호 사장은 뉴스타파의 정치적 성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분명한 좌편향 성향을 띄는 인물이다. 부임하자마자 논란이 많은 인사였던 배현진을 공개적으로 저격하고 앵커직에서 하차시켰다. 또한 공개적으로 김성주를 MBC에서 기용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364] 과거 정부에서 뚜렷한 정치적 색채로 출연제한을 받던 김미화나 주진우를 기용했고, 2018년 1월 'MBC 정상화위원회'를 꾸려 2008년 2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자행되었던 편파/왜곡보도, 제작 자율성 침해, 부당노동행위 등을 조사하고 관련자를 징계하는 등 정권이 추진하던 적폐청산에 적극 호응하였다. 그러나 방송국 경영과 윤리 부분에서는 실책이 많아 우파 정치권과 본사 제3노조 등지에서 비판이 이어져 왔다. 2019년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이 옛 보도국 간부들 등 파업 불참기자 88명 중 83명을 보도현장에서 배제했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정상화위 활동도 조사 대상자들과의 법적공방 등으로 인해 2019년 서울고법에서 조사/답변 강제 등 일부 효력이 정지됐고, 2021년에 활동을 종료했다.(관련 보고서) 다른 한편 2019년 2월 28일 단체교섭에서 노사는 인사권 남용 금지, 쟁의 기간 중 대체인력 채용 금지, 부당노동행위 가해자의 인사위 회부 의무화, 국장 책임제 복원, 공정방송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 등을 명시한 새 단체협약을 맺었다.
뉴스데스크는 이후 2~4%대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었는데, 이는 기존 진보성향 시청자들을 끌어올 것이라는 일각의 기대(?)와 달리 그닥 최승호 체제가 친정부적이지 않기 때문이란 해석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최승호 사장 체제는 진보 색채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정의당'쪽 색채에 가깝다. 이 때문에 현 정부를 지지하는 리버럴-진보 성향(소위 '친문') 시청자들은 MBC를 소위 '내부총질'하는 사람들로 보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2019년 말부터 반등이 시작되었다. 조국 사태가 일어나자 범친여, 친정부 성향 언론들 중에는 유일하게 상승하였다.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TV조선 뉴스 9과 함께 조국 사태로 시청률이 오른 몇 안 되는 뉴스이다. JTBC는 비판적인 보도로 친문 성향 시청자들의 대규모 이탈이 있었지만 MBC는 조국 일가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을 '수사권 남용'이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여권의 '조국 수호'에 적극 동참, 시청률이 상승했다. 그 결과 JTBC 뉴스룸이나 SBS 8 뉴스에게 시청률이 밀리지 않게 되었다.# 특히 2%대에서 머물던 기존 주말 뉴스 시청률이 크게 올라 평일 시청률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게 되었고, 반대급부로 주말 JTBC 뉴스룸 시청률이 크게 하락하였다.
2022년 기준 전반적인 스탠스는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이어서, 클리앙, 딴지일보, 보배드림, 루리웹 등의 커뮤니티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
한일 무역 분쟁 이후 일본을 비판하는 기사가 많이 나왔다. 중국에 대해서는 홍콩 사태 이후 부정적인 논조를 보이며, 중국 어선의 인도네시아인 선원 착취 문제를 고발하는 등의 비판적인 논조를 어느정도 보이고 있다.
한편 여야 막론하고 타 방송사 대비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을 유독 많이 배출한 언론사다.#[365]
2021년 7월 야권대선후보로 유력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공격하기 위해 MBC 취재진 경찰 사칭 취재 사건을 저지르는 실책을 범했다. 방통위도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 결과를 재허가 심사에 반영시키곘다고 강조할 정도였다.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인 김건희 인터뷰 녹취록 공개와 관련하여 공공의 이익 부합이냐, 사적 대화 공개냐는 논란이 있었으나, 법원은 수사중 사건 등 3가지 특정 발언 방송금지라고 일부 인용하고 나머지 기각을 결정했다.[366] MBC가 직접 취재한 것이 아닌 서울의 소리[367] 에서 취재한 것을 가지고 MBC에서 대신 방영한다고 해서 논란이 또 생겼으나, 그러나 MBC 스트레이트에서 김건희 녹취록을 방영했다.
대중들의 시선이 쏠리면서 17.2%라는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기록했다.[368][369] 다만 당초 기대를 모은 것과 달리 방송이 몇가지 녹취들만 짧게 공개하였고 경위와 맥락을 설명하지 않는 바람에 정치 저관여층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데 실패했다는 평이 대다수여서 보수 진보 양측으로부터 비판 받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다는 촌평이 나오기도. 심지어 본방 사수하라고 SNS 등을 통해 그렇게 독려하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방송이 끝나자마자 MBC에 욕을 했다는 후문이 있다. 결국에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두번째 방송을 취소했으며, 친 민주당 성향의 매체에서 이후 녹취록은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공식선거운동 첫 날이었던 2월 15일 MBC 뉴스데스크 다시보기에는 윤석열 후보의 유세 현장 보도를 삭제하기도 했다. 이 보도는 단독 영상으로만 올라와 있고, 전체 다시보기에서는 삭제되었다. 다음날 오전 1시경 다시 업로드된 다시보기 영상에는 윤 후보의 유세 보도가 포함되었으나, 이미 방송 후 7시간이 지나[370] 이미 뉴스로서의 의미는 없어진 상황이었다.
대선 이후에도 이 기조는 유지되는 추세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인사 비위와 관련해서 하루에 1~3개씩 단독보도를 꾸준히 내보내지만 이재명과 민주당 진영 연관 인물 관련 수사에 대해서는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아주 적게 보도하고 있어서 공정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여권에서는 민주당의 기관지, 가짜뉴스 생산소와 같은 강한 비난을 하고 있다. [371]
2021년 2월 3노조 측은 최승호 사장 등 관련자들을 고소했는데, 2022년 12월 들어 고용노동부 측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라고 밝혔다.
2022년 6월에는 5년 전 파업 불참 기자 80여명을 취재업무에서 배제했다고 주장하며 박성제 사장 등 간부들을 고소했으며, 8월 8일에는 오정환 전 보도본부장 등 기자 6명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낸 인사 발령(부당전보)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재판부는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화해 권고를 냈다.(미디어오늘, 뉴데일리) 10월 26일엔 고용노동부가 3노조 측의 요청에 따라 특별근로감독을 시작한다고 발표하여 12월 23일까지 진행했고, 2023년 1월 10일 조사 결과 체불임금 9억 8,200만원, 유급휴가 미사용 수당 지급 등 노동관계법 위반 9건이 나왔다.
7.2. 프로그램 편성[편집]
7.2.1. 드라마[편집]
소관부서는 한동안 TV제작본부 산하 드라마국이었으나 2011년 2월 조직개편에 따라 TV제작본부가 해체되면서 '드라마예능본부'로 개편됐고, 몇달 후 드라마본부로 명칭을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드라마의 퀄리티와 시청률이 모두 높아 한때 'MBC = 드라마 왕국'이라 불리는 시절이 있었고, 개국 시부터 2008년까지 탤런트 공채제를 해왔기에 조경환, 임현식, 박은수, 박원숙, 김용건, 이계인, 심양홍, 유인촌, 임채무, 김성찬, 고두심, 박윤배, 김동현, 조형기, 이혜숙, 김청, 김주승, 이창환, 장동건, 안재환, 조민기, 김남길 등 숱한 명배우들이 배출됐고, 최불암과 김혜자, 정애란, 박규채, 이영후, 변희봉, 전운, 정욱, 이대근 등 대선배들이 그들을 뒷받침했다.
2010년대 초반부터 방송3사 모두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와중에 MBC 드라마는 이 시기부터 주중과 주말을 구분하지 않고 장편 드라마를 많이 방영했고, 주중 드라마들은 침체기를 맞았다. 특히 2016년. 그 와중에 MBC에서 자체 제작한 아이템이 대박까지는 아니었으나 2049 시청률은 잡았다. 2020년부터 주말특별기획을 폐지하고 월화드라마를 집중적으로 편성하기로 전격 결정했으나, 얼마가지 못했고 아예 2021년에는 일일드라마 2개와 미니시리즈 4개만 방영하기로 결정하면서 요일에 얽메이지 않고 편성하기로 했다. 또 러브씬넘버#같은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도 매주 월요일에 편성하기로 했다. 드라마본부 내에 있던 기획과 제작 부서 역시 2020년에 이미 통합했다. #
주로 인물[372] 이나 어느 한 분야에 집중[373] 하는 드라마에 꽤 높은 완성도를 보이며, 현대 정치사극[374] 분야에서는 타 방송국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다. 사극 뿐 아니라 트렌디 드라마에서도 명작도 많이 쏟아내었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역시 드라마는 MBC라는 평가까지 받았으나...[375]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평준화되면서 큰 의미는 없어졌다. 각 방송사간 스탭이나 PD 작가들이 많이 이동도 했고, 외주 제작의 비중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MBC 주말드라마는 토요일 주말특별기획 연속편성으로 줄이고, 일요일에 방영하는 주말드라마는 2019년 3월 내 사랑 치유기를 끝으로 폐지하고 예능프로그램 연속 블록으로 편성하였다. 내 사랑 치유기의 시청률은 10%대를 꾸준히 유지하였지만 2049 시청률이 미운 우리 새끼 때문에 좋지 못했는데, 폐지하고 편성한 예능 호구의 연애는 2%대, 뒤이어 방영하는 구해줘 홈즈는 5~7%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나 광고시장 타깃층인 2049 대상으로는 호구의 연애는 TV 화제성쪽 순위권으로,
마지막으로 전통적으로 저녁 10시대에 방송하였던 월화드라마, 수목드라마는 검법남녀 시즌2, 봄밤부터 9시로 당겼는데, MBC의 기대작이었던 아이템과 더 뱅커가 2~4% 시청률로 고꾸라졌던 것에 비하면 6~8%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어 성공한 것으로 보이고, 뜬금없이 종편처럼 10시대로 이동한 교양/예능 프로그램들도 큰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이 프로그램이 5~7%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어 이러한 변칙 편성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3월부터 폐지되었던 월화드라마가 공식적으로 부활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이 첫 타자. 월화드라마를 재개하면서 주말 특별기획을 폐지하기로 결정했고, 두 번은 없다를 끝으로 3월 초에 주말 특별기획은 막을 내린다. 사실상 바통을 넘겨 받는 셈. 원래 계획대로라면 2월 마지막 주에 두 번은 없다가 종영하고 바로 3월 첫째 주에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이 방영 예정이었지만, 결방으로 인하여 계획보다 1주 밀리게 되었다.
다만 드라마 쪽은 여전히 별다른 대박작이 없으며 이전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그나마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 그 남자의 기억법, 카이로스 등은 시청률은 낮았지만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작품성은 인정받는데 성공했다. 전체적으론 2018년 말부터 지상파 중 눈에 띌 정도로 막장 드라마의 비중을 줄이고 장르물의 편성[376] 을 대폭 늘렸고, 대부분 작품성 측면에서는 좋은 평을 받았으나, 반대로 시청률은 완전히 놓쳐버린 모양새다.[377][378] 결국 2020년 말 월화 드라마와 수목 드라마가 모두 잠정 휴식에 들어가면서 일일 드라마가 유일한 정규 편성 드라마였던 시기를 보냈다가 2021년 초 오! 주인님을 시작으로 미니시리즈를 재개했다.[379] 그러나 간만에 재개한 미니시리즈도 계속 부진하기 짝이 없어 암울한 상황이 계속되던 차에 2021년 말에 방영한 사극 하나가 하반기 최고의 흥행작으로 거듭나며 그나마 숨은 돌리게 되었다.
2022년 상반기 기준으로 금토드라마와 일일드라마 외에는 방영하지 않고 있다가 지금부터, 쇼타임!으로 오랜만에 주말 드라마 시장에 재진출했다.[380]
7.2.2. 예능[편집]
소관업무는 과거 TV제작본부 산하의 예능국에서 맡았는데 2011년 2월 조직개편으로 TV제작본부가 해체되고 새로 출범한 드라마예능본부에 넘어갔다가, 동년 5월에 예능본부로 분할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예능본부와 콘텐츠협력센터 제작2부 소관이다. '예능 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예능 프로그램이 풍부하며, 지상파 채널 중에서는 컨셉이나 아이디어 등도 타 방송사에 비해서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듣는 방송사이기도 하다.[381] 그 사례를 몇 가지를 꼽자면 공익 예능의 시초인 양심냉장고, 예능의 역사를 바꾼 무한도전, 관찰 예능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우리 결혼했어요, 아빠와 아이의 여행기로 육아 예능을 메이저 계열로 올려놓은 아빠! 어디가?, 이런저런 욕은 먹긴 했지만 군대 예능이라는 새로운 루트를 개척한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크리에이터 열풍의 시발점인 마리텔, 시청률은 말아먹었지만 새로운 컨셉으로 화제성 만큼은 확실히 거며 쥔 두니아, 부동산 예능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장르를 개척한 구해줘! 홈즈, 부캐 전성시대를 연 놀면 뭐하니?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많이 양산하기 때문이다. 또한 MBC 예능국은 말 그대로 MBC의 밥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실제로 한국인이 뽑은 최고의 예능 설문조사에서는 무한도전이 방송되었을 때에는 무한도전이, 본좌가 물러난 자리에는 나 혼자 산다가 연임했고, 무엇보다 대한민국 예능PD 쌍두마차 중에서 김태호 PD가 오랫동안 MBC에서 있어주었기 때문이다.[382] 또한 2001년 MBC 코미디대상을 MBC 방송연예대상으로 바꾸면서 연예대상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만들어 낸 방송사이기도 하다.[383]
1970년대 후반(추정)~1999년까지 음악 프로그램 오프닝에 회차가 나온 후에 (장소) 생방송 혹은 공개녹화라는 자막이 떴었다. 예를 들면 여의도 공개홀에서 생방송하면 '여의도공개홀 생방송'이라는 자막이 오프닝에 떴었다.
2006년에 메탈리카 내한 공연을 보여주었다.[384] 공연 영상[385]
다만 변칙 편성 이후로 시청률 저조로 인해 폐지된 금요일 밤 8시 30분대,
2019년 연말부터 놀면 뭐하니?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2020년 싹쓰리와 환불원정대로 연이어 대박을 터트리며 주말 예능, 나아가 트로트 관련 예능을 제외하고는 전체 예능을 통틀어 최강자 자리에 오르게 된다. 거기에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복면가왕, 구해줘! 홈즈, 백파더 : 요리를 멈추지 마! 등 다른 예능들도 대부분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예능 왕국 MBC의 명성을 되찾았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 가리지 않고 타 방송사에서 유명해진 스타를 제일 먼저 섭외하는 편이다. 프로듀스 101 시즌2의 Wanna One, 프로듀스 48의 IZ*ONE, EBS의 캐릭터 펭수, 내일은 미스트롯의 송가인, 내일은 미스터트롯 TOP 7이 있다. 하다못해 JTBC에서 퇴사한 프리랜서 방송인인 장성규도 타 방송국 중 MBC에 가장 먼저 출연하였다.
음악 예능을 타 지상파와 비교해 상당히 수준급의 퀄리티로 찍어내는 편이다. 2010년대 이후 등장한 나는 가수다 시리즈, 복면가왕, 듀엣가요제가 대표적. 무한도전과 그 정신적 후속작인 놀면 뭐하니? 역시 음악 프로젝트는 내는 것 마다 히트를 쳐 냈다. 다만 이 때문에 방송사의 음원 차트 교란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이 문제 때문에 연예 기획사들은 별로 탐탁치 않아 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실제로 나가수, 무한도전 가요제, 놀면 뭐하니 싹쓰리/MSG 워너비 프로젝트 때에는 가요계가 대놓고 들이박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예 기획사들의 태도는 아이돌 편향의 가요계 판도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일반 대중들에겐 도리어 내로남불로 인식되는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다만 오디션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그닥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시즌 1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진했다. 특히 프로듀스 101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을 열심히 보도하면서도 해당 사건과 관련 있는 인물인 한동철과 손잡고 방과후 설렘을 런칭한 것이 많은 비판을 받았다.
공개홀의 음향이 타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은 편이다. 당장 일산 드림센터 공개홀(ST 6)은 국내 방송사 중 거의 최고 수준의 음향 수준을 자랑하며, 상암동 본사 공개홀(D스튜디오)은 여기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다소 노후화된 KBS 여의도 신관 공개홀(TS-15)과 SBS 등촌동 공개홀에 비하면[387] 우위를 점하는 편이다. 뿐만 아니라 일산과 상암 모두 공개홀 대기실 개수를 넉넉하게 구비해 두었고, 특히 상암으로 온 이후로는 3사 음악방송 중 거의 유일하게 연차가 낮은 신인급 가수들도 무조건 단독으로 대기실을 배정해 주어서 업계에서도 평판이 제일 좋은 편이다.
다만 MBC는 예능은 잘 만들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7.2.3. 스포츠[편집]
소관부서는 보도본부 산하 스포츠국이며, KBS처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다 보니 김충식, 송재익, 임주완, 김창옥, 송인득, 김성주, 허구연, 신문선, 김소식, 이우현, 방열, 차범근, 안정환 등 유수의 캐스터 및 해설위원들을 배출했다.
하계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종합 대회에서는 KBS에는 밀리나 SBS는 제치는 만년 콩라인 이미지가 강하다. 동계 올림픽은 SBS가 강세인 탓에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으나 반대로 월드컵에서는 현재 KBS와 1위 싸움을 놓고 경쟁중이다. 1998년 신문선-송재익 콤비, 2002, 2006년에는 차범근을 앞세워 당당히 시청률 1위를 차지한 적도 있었고 2014, 2018년 월드컵에서는 KBS에 밀려 콩라인이었지만 결승전에서만큼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야구에서도 MBC의 강세가 두드러지는 편. MBC는 1982년 프로야구를 출범시키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자사 야구팀까지 만들었다.[388] 청룡의 존재로 인해 프로야구 초창기 올스타전이나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모두 MBC가 중계를 도맡아 했다. 또한 MBC 야구 중계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게 허구연. 편파중계 등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고는 있으나 가장 대중적인 해설이다 보니 시청률 면에서 성공하고 있다. 다만 캐스터의 경우 2018년 이후 기용되고 있는 김나진에 대한 비판이 많은 편이다.
2020년까지는 MLB 중계권을 MBC가 갖고 있어서 류현진 선발 경기를 꾸준히 중계하고 있었다. 2001~4년에도 MBC가 단독 중계권을 거액에 사간 적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MBC는 이 기간 동안 국내 야구를 중계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계권료를 감당 못할 상황이 되어 재계약에 실패해 2021년부터는 SPOTV가 메이저리그 중계를 맡으며 MBC에서 메이저리그 중계를 최소 2028년까지는 보지 못하게 되었다. 다만 2022년 사직야구장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릴 MLB 월드 투어: 코리아 시리즈 2022는 보편적 시청권 문제로 인해 MBC에서 중계를 맡게 되었지만 시리즈 자체가 취소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골프는 SBS가 개국 초기부터 밀어주고 자사 골프 채널을 따로 두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가려진 감이 없진 않지만 의외로 대회 생중계를 가장 먼저 한 방송국이 MBC다. 1995년 9월 3일 패스포트 오픈 골프대회를 중계한 것이 그 시초. 중계 횟수가 드물지만 매년 오렌지라이프 인비테이셔널 대회를 정기적으로 중계하며 최초 골프 중계방송사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농구는 전신 MBC ESPN 시절부터 올라간다. MBC ESPN으로 시작된 2008-09 시즌부터 본격적인 중계를 시작하면서 2011-2012 시즌부터 알려지더니 2016-17 시즌부터 2020-21 시즌까지 MBC SPORTS+가 KBL 주관방송사가 되었지만[389] 시청률이 극도로 낮아 제작비용이 많이 들었고 결국 2018-19 시즌을 끝으로 중계권을 반납했다. 결국 2019-20 시즌부터는 SPOTV에서 중계한다. 그래도 WKBL 중계는 2019-20 시즌에는 오프튜브로 했다가 MBC 미디어넷에서 당구 그랑프리를 만들어 전파했는데 1~2년만 할 것으로 보이는지 2021-22 시즌부터는 WKBL 중계를 현장과 오프튜브를 모두 포함해서 중계를 하게 된다. 참고로, WKBL 주관방송사는 2013-14 시즌부터 KBS N SPORTS가 맡고 있으나 V-리그 주관방송사까지 맡으면서 일정부분 내준 점도 있다.
프로 스포츠 중계 시 주말 낮경기에서 일요일 경기 중계 편성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방송사다. 이는 토요일의 경우 쇼! 음악중심과 간혹 편성되는 5시대 예능 방송이 있기 때문에 편성이 어려운 반면 일요일은 복면가왕 이외의 예능 프로그램이 없어 편성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KBO 리그[390] 나 K리그1[391] 중계가 일요일에 종종 편성되고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때 네이버 지식iN에서 긁어온 듯한 국가 소개 자막을 보여주어 올림픽 방송의 예능화를 꾀한다는 말도 있었다. 짐바브웨의 "살인적인 인플레"라든가, 가나를 "예수가 처음으로 기적을 일으킨 곳"이라고 하는 병맛을 연출하기도.
7.2.4. 교양[편집]
1969년 TV 개국을 전후해 개설된 TV제작국 산하 제3제작부가 효시이며, 1971년 5월 TV제작국이 TV편성국 및 TV총국으로 분할되면서 TV편성국 중계특집부에 배속되었다가 한달 후 TV편성 및 TV총국이 TV국으로 통합되자, 구 TV편성국 산하였던 제1~2제작부 및 중계특집부가 합쳐져 TV제작부가 되었다. 1973년에는 TV제작부를 제1~2부로 분할시킨 뒤 1976년에 TV국이 TV제작국으로 개편되자 TV제작부도 셋으로 쪼개지면서 제작3부로 다시 출범했다. 1983년에는 별개 조직인 교양제작부도 생겼다.
1984년부터 이 둘이 통합해서 '교양제작국'으로 승격되어 1992년 8월부터 부 단위 조직을 없애고 담당자의 보직명을 'CP'로 고쳐 생활정보, 문화정보, 사회교양1~2, 다큐멘터리1~2로 세분화한 후 1993년에는 사회교양1~2CP를 부장급 PD 1명이 맡도록 했다. 1994년부터 '팀' 단위로 바꿨다가 1998년에 CP로 환원되었으며, 2000년 초에 특임CP제도 도입되었다. 동년 10월부터 구 시사정보국 소속 PD들을 받아들여 시사교양국으로 개칭했다가 2001년 10월 조직개편으로 보도제작국과 합쳐지면서 '시사제작국'으로 출범됐고, 2002년 4월 조직개편 때 시사제작1~2국으로 분할되면서 시사제작2국에 속했다가, 2003년 시사제작1~2국이 시사교양국과 보도제작국으로 다시 개편되어 시교국에 다시 속했다. 2009년 3월부터 CP가 '부' 단위로 변경되었다.
한동안 TV제작본부(구 제작본부)에 남다가 2011년 TV제작본부가 편성본부와 통합되면서 편성제작본부 산하에 속했다. 2012년 시교국의 해체로 다큐 부문이 교양제작국으로 분리됐다가 2014년 안광한 사장 취임 후 10월 들어서 교양제작국이 해체되면서 다큐 제작업무는 콘텐츠제작국(구 콘텐츠협력국), 교양 프로 제작은 예능본부 예능1국 산하 제작4부로 각각 흩어졌지만, 2017년 최승호 사장 취임 후 시사제작국과 함께 '시사교양본부'로 통합/부활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시사교양본부와 콘텐츠협력센터 제작1부 소관이다.
타 장르와는 반대로 교양 프로그램의 비중은 다른 방송사들에 비해 적은편이며, 다큐멘터리는 보기가 힘들다. 대신 가끔 다큐멘터리 면에서 엄청난 수작을 뽑아내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2021년 현재까지도 최고의 다큐멘터리로 꼽히고 있는 눈물 시리즈[392] , 유튜브 조회수 2400만뷰를 기록한 너를 만났다가 있다.
7.3. 여담[편집]
발음하기가 편하다. KBS를 읽으면 "케이비에스" SBS를 읽으면 "에스비에스"인 것에 반해 "엠비씨"로 읽을 수 있다. SBS에 스브스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 중 하나가 발음하기 어려워서이기도 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방송사는 발음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정상이다. 아주 좋은 예로 BBC와 CNN을 들 수 있다.
무한도전에서 나온 "마봉춘"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그 외 멸칭으로는 "엠병신(M Byung Chin)"(혹은 엠빙신)이나
일산 드림센터에 가면 MBC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전시물이나 연표 말고도 모니터가 여러 대 있는데 우측 하단에는 연도가 있고 그 연도에 해당하는 과거 MBC 프로그램의 샘플 영상과 당시 역사적인 빅 뉴스들이 나온다. 지금은 VOD로도 보기 힘든 옛날 TV 영상이니 나름 가치는 있다 할 수 있겠다. 구 MBC 마스코트인 엠비즈의 모습도 저 전시물 중 88올림픽 기념 부분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여담으로 상업광고도 계열사인 MBC 프로덕션과 공동 제작한다. 1980년대의 오리엔트시계와 고려합섬이 대표적인 예시.[393] 실제로 MBC는 과거에 한국연합광고-MBC애드컴으로 이어지는 종합광고대행사를 계열사로 둔 적도 있다. 자체 명의로 된 제작[394] 말고도 촬영시설 제공도 했었는데, 1980년을 기점으로 TV송출이 컬러화될 때 준비를 미처 마치지 못해 컬러촬영 기재와 시설이 부족했던 다른 광고대행사들이나 프로덕션[395] 들에게 직접 촬영시설을 유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당시의 방송 기자재과 시설을 가지고 방송국에서 TV광고를 찍었다[396] 는 이야기다. 물론 KBS도 예외는 아니었으나, 지상파 방송국에서의 광고 제작은 MBC가 단연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 지상파 방송사 광고방송 중에서는 음질이 제일 깨끗하다.
8. 평가[편집]
자세한 내용은 MBC/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해당 채널을 운영하는 기업에 대한 내용은 문화방송 문서 참고하십시오.
9. 개요[편집]
MBC TV는 주식회사 문화방송에 의해 운영되는 수도권 지역[416] 을 가시청권으로 하는 지상파 TV채널로, 준공영방송[417] 이다. 1969년 8월에 개국했으며, 본사 사옥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 위치한다.
대한민국 내 다른 지역의 16개의 문화방송 계열 지상파 방송사와 함께 전국 방송망을 구축하고 있다. 가상채널은 11번대를 사용하고, 호출부호는 HLKV-DTV(DTV) / HLKV-UHDTV(UHD TV) / HLKV-TDMB(DMB)이다.
10. 담당 부서[편집]
1968년 TV 개국 준비 과정에서 'TV편성국'이 신설되었다. 1969년 6월 'TV제작국'이 신설되면서 TV편성국 산하에 있던 제1~2연출부를 그쪽으로 넘겨 '연출부'로 바꾸고, 11월부터 기능에 따라 제1~3제작부로 분할시켰다. 1971년 5월 TV제작국이 폐지되는 대신, TV총국이 새로 생기면서 산하 TV편성국으로 이동되어 제1~2제작부, 중계특집부로 개편되었다가 한달 후 TV총국 및 TV편성국이 합쳐져 'TV국'으로 일원화되자, 예하 3개 제작부서를 통폐합시켜 'TV제작부'로 일원화시켰다. 1972년 TV제작부를 제작 제1~2부로 나눴다.
1974년 운영사인 MBC가 경향신문과 합쳐져 방송부문에 배속된 후, 1976년 10월에 TV국을 TV제작국 및 편성국으로 이원화시켰으며 제작 제1~2부를 제작1~3부로 다시 세분화했다. 1981년 MBC-경향신문 분리 후 1982년 조직개편에 따라 방송부문이 해체되면서 제작부문 예하에 속했고, 1984년 TV제작국에서 교양제작부 및 제작3부를 떼내 '교양제작국'으로 승격시키고 1988년 제작부문에서 편성 업무를 떼내 '편성부문'으로 승격시켰다. 1989년 2월 TV제작국 산하 제작지원부 및 미술1~2부, 제작기술국 카메라기술부를 통합해 '미술영상국'으로 개편했다.
1990년 3월 TV제작국 예하 제작1~2부를 해체시키고 담당제를 도입하면서 기능에 따라 종합·특집극, 연속극, 미니시리즈, 단막극, 음악, 코미디, 특집·행사, 어린이청소년, 공개·가족오락 등 9개로 세분화했고, 미술영상국을 미술-영상 2개 국으로 개편시켰다. 1991년 9월에 음악, 코미디, 특집·행사담당을 예능1~3담당으로 개편하고 1992년 4월 어린이청소년 및 공개·가족오락담당을 예능3담당으로 합친 뒤, 8월에는 담당제 대신 전부 CP제로 바꿨다.
1993년 4월 전무이사가 방송-관리 2개로 나뉘면서 방송전무 예하에 속했고, 미술-영상 2개 국을 '영상미술국'으로 재통합했다. 1994년 3월 방송-관리 2개 전무이사가 전무이사 단일 체제로 통일되었고, 제작부문 산하 TV제작국 및 교양국에 팀제가 도입된 후 1995년에는 팀제가 확대되면서 편성국에도 도입되었다. 같은 해부터 제작부문 산하 각 제작국에 운용팀을 두고 예능 3개 팀을 4개 팀으로 늘렸고, 1996년에 드라마 관련 4개 부서들을 드라마1~4팀으로 통일했다. 1997년 TV제작국을 드라마-예능 2개국으로 이원화시키고 1998년 조직개편으로 본부/실제가 도입되어 제작부문은 '제작본부', 편성부문은 '편성실'이 되면서 예하 팀 단위 부서명을 '부' 내지 'CP'로 고쳤다.
2000년 1월 드라마국부터 먼저 CP제 대신 전문프로듀서제를 도입한 후, 3월부터 편성실을 '편성본부'로 개편하고 각 부서마다 특임CP제를 도입한 후, 10월에는 교양제작국을 '시사교양국'으로 개편했다. 2001년 9월부터 제작부문에서 라디오국을 떼내 '라디오본부', 보도본부로부터 보도제작국을 넘겨받아 시사교양국에 합쳐 '시사제작국'으로 개편한 후, 편성본부도 '편성실'로 개편했다. 또한 드라마국 및 예능국을 'TV1~2국'으로, 영상미술국을 '제작지원국'으로 변경했다.
2002년 4월 시사제작국을 '시사제작본부'로 확대 개편하여 시사제작1~2국으로 재편하고 2003년 시사제작본부를 해체해 시사제작1국을 보도본부로 다시 넘겼다. 이에 따라 시사제작2국이 제작본부로 넘겨져 '시사교양국'으로 고쳤다. TV1~2국도 '드라마국' 및 '예능국'으로 각각 환원되었다. 또한 제작지원국을 '영상미술국'으로 환원시켰다.
2004년부터 전무 대신 부사장제 도입에 따라 그쪽 예하로 바뀐 후, 2006년부터 편성실을 '편성본부', 제작본부를 'TV제작본부'로 고치고 이듬해 예하 CP 보직명을 각자의 프로그램명으로 했다가, 2008년 8월부터 원래 보직명으로 고쳤다. 2009년에는 특임CP, 전문프로듀서 등 유사 보직 53개를 정리해서 '본부-국-부' 단위로 통일했다. 2011년 2월 TV제작본부가 해체되어 드라마국, 예능국, 영상미술국 3개 국을 묶어 '드라마예능본부'로 개편시켰고, 시사교양국은 편성제작본부로 이동되었으며 각 제작부서 산하 기획부서가 '크리에이티브센터'로 출범되었다. 5월에는 드라마예능본부가 드라마-예능 2개 본부로 이원화되었으며 영상미술국은 드라마본부 밑으로 갔다. 2012년 4월 시사교양국이 시사-교양제작 2개 국으로 이원화되었고, 구 보도제작국 산하 보도제작1~2부가 시사제작국으로 흡수되었다.
2014년 10월 편성제작본부 산하 교양제작국이 해체되면서 다큐멘터리 제작기능은 콘텐츠제작국(구 콘텐츠협력국)으로 합쳐졌고, 나머지 기능은 예능1국 제작4부로 넘어갔다. 또한 영상미술국은 드라마본부에서 방송인프라본부로 넘어갔다. 2017년 12월 13일 조직개편에 따라 편성제작본부가 해체되어 편성 기능은 기획본부에 합쳐져 '기획편성본부'가 되었고, 시사제작국과 콘텐츠협력국 등지에 흩어진 시사/교양제작 기능이 '시사교양본부'로 부활/개편된 후 드라마본부, 예능본부와 함께 사장 직속이 되었다. 2018년 11월부터 기획편성본부를 기획조정-전략편성 2개 부서로 이원화하고 각 제작부서들을 콘텐츠총괄부사장 밑에 두었다. 2020년 3월부터 전략편성본부가 '콘텐츠전략본부'로 명칭이 변경되어 역시 콘텐츠총괄부사장 밑으로 들어갔다.
11. 상징[편집]
11.1. 로고[편집]
자세한 내용은 MBC/로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2. 마스코트[편집]
2005년부터 생긴 '로미, 가비, 버티'란 마스코트도 있었으나, 이쪽은 얼마 안 가 묻혔다.
엠빅은 대략 2008년부터 등장했다. 영문명은 MBIC. 2016년 1월에 브랜드 아이덴티티 강화 차원에서 MBig으로 영문명을 개칭했다가 다리 추가 이후에는 다시 MBIC으로 회귀한 듯. 그동안 프로그램 예고 등에서 모습을 보이더니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선 아예 프로그램의 얼굴(?)이 되었다.
나머지는 2013년에 실행한 마스코트 선발 대회에서 뽑힌 작품들이다. 엠빅의 친구는 덩치가 큰 휴와 강아지 캡이다. 첫 번째 줄 마스코트의 첫 번째 글자를 합치면 엠비씨가 된다.
11.3. 연중캠페인 및 슬로건[편집]
11.3.1. 연중캠페인[420][편집]
11.3.2. 슬로건[편집]
12. 마케팅[편집]
12.1. MBC 무브먼트[편집]
자세한 내용은 MBC 무브먼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2. 방송 시작/종료 영상[425][편집]
12.3. ID[편집]
2018년 6월 2일 이후의 ID는 MBC 무브먼트 문서를 참조. 최근 브랜드 디자인 유튜브 채널이 생성되었다.
12.4. NEXT[편집]
- 2004년 이전에는 프로그램별로 NEXT BGM이 달랐으나 이후로는 일괄적인 BGM이 적용되고 있다.
- 2006년부터 NEXT 영상에도 '레파라솔' 4음징글을 적용하였다.
- 2013년에 NEXT BGM이 한 차례 바뀌었고, 2014년 신사옥 이전 후 NEXT BGM이 또 바뀌었다.
- 2015년 9월에 NEXT가 교체되었고 MBC 무브먼트가 적용되기 전까지 계속 쓰였다. 리우 올림픽과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는 다른 영상이 쓰였다.
- 2018년 6월 이후 NEXT는 MBC 무브먼트 문서 참조.
12.5. 로고송[편집]
다른 방송사들에 비해 로고송이 가장 많다. 두번째로 많은 곳은 SBS.
사람들에게 유명한 로고송은 2개 정도 된다. 장구 소리만 들려도 기억나게 하는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1990년대~2005년 초반, 2011년, 2014년~2018년 6월)[426] 과 모두 모여 신나게 외쳐봐 즐거움이 완전 넘쳐나 언제나 MBC(2008~2013). 근데 이렇게 아는 세대들이 많이 다르다. 만나면 좋은 친구는 80 - 90년대, 모두 모여 신나게 외쳐봐는 2000년대로 구분이 된다.
- 1970년대에는 로고송이 없었으며, 'MBC 텔레비전입니다.', '여러분의 문화방송입니다.', '여러분의 MBC 텔레비전입니다' 라는 아나운서의 멘트만 나왔다.[427][428]
- MBC~ MBC~ MBC~ 여러분의 문화방송 (1980년~1983년)[429]
- 여러분의 문화방송~ (뭘까요?)[430] MBC 텔레비전~ (1980년~1983년)[431]
- 새 생활의 길잡이 MBC 문화방송[432] (1980년~1991년)
- 집집마다 고을마다 MBC 문화방송[433] (1980년~1991년)
-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 (1990년 10월 15일~1994년 4월 10일·1995년 9월 4일~2005년 1월 2일·2011년 12월 1일~2018년 6월 1일·2022년 1월 1일~)[434][435][436]
- 오늘의 기쁨 내일의 희망 MBC 문화방송 (1991년~1993년·1994년~1995년[437] )
- 알찬 방송 좋은 방송 MBC 문화방송[438] (1991년~1992년·1994년~1995년)
- 좋은 방송 밝은 사회 MBC 문화방송[439] (1991년~1996년)
- 언제나 MBC 문화방송이 있습니다[440] (1995년)
- 언제나 신선해요 MBC 문화방송 (1995년~2005년 1월 2일[A] )
- 함께 드려요 아름다운 세상 MBC 문화방송 (1995~2005년 1월 2일[A][441] )
- 함께 있으면 좋아요 MBC 문화방송 (1995년~2005년 1월 2일[A] )[442] --<현재 삭제됨]
- (봄봄봄봄봄) 월드컵 코리아 (봄봄봄봄) 그 감격의 MBC (1996년) 영상[443]
- 엄마 세상은 참 따뜻한 거죠 우리 문화방송 (1993년~2005년 1월 2일)[444][445]
- 사랑하면 좋아요 MBC 문화방송 (1997년~2005년 1월 2일)
- 따뜻한 세상 함께 만드는 MBC 문화방송 (1997년~2005년 1월 2일)
- (따따따따) 늘 곁에 있는 (따따따따) 언제나 좋은 친구 MBC (2005년 1월 3일~2005년 11월 30일)
- 행복한 미래 아름다운 세상 MBC 문화방송 (2005년 12월~2007년[B] )
- 함께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 MBC 문화방송 (2005년 12월~2007년[B][446] )
- 우리 함께 나누어요 MBC 문화방송 (2005년 12월~2006년 5월[B][447] )
- 반가운 친구 MBC 문화방송 (지방, 2005년~2007년)[448]
- 모두 모여 신나게 외쳐봐 즐거움이 완전 넘쳐나 언제나 MBC (2008년~2013년)[449]
- 함께 꿈꾸는 세상 언제나 MBC (2008년~2013년)[450]
- 설레는 내일 MBC와 탐험해요~ MBC (2018.06.02~2020.12.31) 풀버전 15초 버전[451][452]
- 고민은 다 버리고 도전해 보자, Let's Go!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와~ (2021.04.06~2021.11.30) [453]
다음은 라디오에서만 나왔던 로고송이다.
- 행복한 오늘과 내일에 소중한 우리의 MBC 희망과 기쁨을 얘기해요 MBC 라디오 (1997년~1999년)[454]
- MBC가 원하는 건 바로 MBC 문화방송 여러분이 원하는 건 바로 MBC 라디오 (1997년~1999년)[455]
- 행복한 세상의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 (지방, 2006년~2007년, 현재(라디오))[456][457]
연도 불명[458] : 일부 지역의 MBC 라디오에서 나온 적이 있는 로고송은 아래에 표시.
- 오늘도 새 소식은 문화방송 MBC 오늘도 새 노래는 문화방송 MBC 언제나 마음의 벗 다정하고 친절하게 밝고 빠르고 알찬 방송 여러분의 문화방송
- 언제나 밝고 언제나 새로운 MBC 아름다운 내일을 연다 아아~ 여러분 여러분의 문화방송[459]
- MBC~ MBC~
- M~B~C~
- 평생나눌 기적의 MBC 문화방송(으으으음 으으으음)평생나눌 기적에는(?)[460] MBC 문화방~송
- MBC 라디오
- 언제나 어디서나 여러분의 MBC 언제나 어디서나 여러분의 MBC(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우리 마음속에는 언제나 행복이 가득하죠 음~ 밝은 세상 만드는 MBC 문화방송
- 건강한 마음 즐거운 기쁨 MBC 문화방송
- 산과 바다 푸르게 우리 만남 이어질 때 MBC 문화방송
- 좋은 방송 언제나 MBC 좋은 친구[461]
- 언제나 밝은마음 밝은생활 MBC (MBC) 문화방송
- 세상은 지금도 따뜻해요 MBC 문화방송[462]
- 문화방송의 작은 발걸음 함~께~ 해요~ 큰~ 기~쁨~ (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463]
- 2002년 월드컵 코리아~(2002년 월드컵기간에)[464]
로고송은 1990년대 이후로 국악장단으로 친숙한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을 쓰다 2005년 1월 3일부터는 쓰지 않았는데, 2011년에 50주년 기념 리메이크 버전으로 부활했다. 1980~90년대 출생이면 모두 알만한 로고송이지만 요즘 세대는 아무래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대신에 모르는 세대들은 모두 모여 신나게 외쳐봐 즐거움이 완전 넘쳐나 언제나 MBC가 더 익숙한 듯하다. 그리고 "함께 꿈꾸는 세상 언제나 MBC" 로고송도 엄청 익숙할 것이다. 단, 1980년대생은 국악단장의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만 익숙하며 1990년대생은 국악단장의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과 모두 모여 신나게 외쳐봐 즐거움이 완전 넘쳐나 언제나 MBC를 모두 아는 세대이다.
그리고 2006년 하반기부터 2018년 6월 1일까지 사용된[465] 4도 음계(레, 파, 라, 솔)[466] 영화 스텝 업에 삽입된 피티 파블로의 Show Me the Money를 샘플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467] 그런데 음계는 저 노래가 맞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2000년대 초 BBC Two 채널에서 사용한 아이덴트(ident, ID)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의 BBC TWO ident 특히 같은 시기 MBC FM4U에서 위 샘플링 로고와는 또 다른 4음 시보음악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BBC의 영향력 확정.[468] 어찌됐든 저 4음 징글은 2006년부터 MBC의 로고송의 베이스로 우려먹었으며 아마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2005년에도 '도시솔미'라는 4음징글을 사용했었으나,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2018년 6월 2일 MBC 무브먼트 도입 이후로 윤종신이 만든 새로운 로고송과 새로운 4음 징글(라솔레솔)을 사용 중이고, 4음 징글의 변경만으로도 새로워진 느낌이 커졌다. 이렇게 해서 지난 12여년간 사용해왔던 4음 징글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2018년 6월 1일까지 일부 지역국은 CI 변경 직후의 멜로디를 사용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광주MBC는 수도권에선 2007년 이후로 사용하지 않은 "함께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 MBC 문화방송" 을 2015년에도 사용했다. #[469] 몇 가지 멜로디를 사용하지만 프레임이 영... 프레임 문제는 2015년에 MBC TV 개편 후 새 템플릿이 쓰이면서 해결되었다. 또한 이와 함께 만나면 좋은 친구의 리메이크 버전이 보컬까지 온전한 버전으로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MBC경남은 정작 NEXT랑 ID, 한술 더 떠서 자체 지역방송에도 본사 15세 이상 시청가 영상을 사용 중이면서 ID음은 그대로다. 그리고 문화방송의 뼈대인 부산MBC도 CI 변경 후 2010년까지 자체 ID로 만나면 좋은친구 리메이크 버전을 사용했다. 그리고 여수문화방송은 2018년 5월까지 만나면 좋은친구, 그것도 영상을 제외하지만 음은 원본 그대로 사용했다.
해외지국의 경우 MBC America에서는 아직도 2006년에 나온 4음 징글(레파라솔) 초기 버전을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사용한 "모두 모여 신나게 외쳐봐 즐거움이 완전 넘쳐나 언제나 MBC"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12.6. 시청연령 안내[편집]
- 일일연속극, 파일럿 프로그램, 시사교양, 연말 시상식들을 제외하면 프로그램 전용 연령고지가 적용되어 있다.
- 오프닝과 연령고지 하단에 '이 프로그램은 간접(광고와 가상)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를, 드라마, 예능 등은 간접 또는 협찬광고를 각각 진행하고 있다.
12.7. MBC 시험방송[편집]
빈 뉴스센터나 스튜디오,사무실을 비추는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며, 오늘의 방송순서로 사용할 영상을 틀어주기도 한다. 간혹 드라마나 예능등을 잠깐 틀어줄때도 있다.
또 선거일 당일같은 중요한 방송하는 날은 스튜디오테스트와 무아레 테스트를 하기도 한다.[471]
2020년 10월 5일에는 기존의 시험방송 대신 재난방송과 CM 위주의 시험방송이 나가기도 했다. #
13. 소속 인물[편집]
1961년 창사 이래 전통적으로 공채제를 유지해왔고, 부수적으로 경력, 촉탁 등의 입사형태가 있다. 2012년 파업으로 인력 공백을 메운다는 명목으로 경력기자를 뽑은 걸 시초로 2017년 8월 기준 총 229명의 경력직원(일명 시용)을 채용했고, 2013년 12월 공채를 끝으로 공채 제도를 중단한 뒤 2015년 5월 '상시 개방형 인재채용 제도'를 도입했고, 10월에는 이사회에서 직종마저 폐지하기로 결의했으나 실제 폐지하지는 않았다. 2017년 12월 최승호 사장 취임 후 2018년 공채제가 부활되었다.
13.1. 기자[편집]
자세한 내용은 MBC NEWS/기자 명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2. 아나운서[478][479][편집]
- 일러두기
- 재직중인 아나운서를 중심으로 나열하며 퇴사한 아나운서도 함께 기재합니다.
- 취소선은 퇴사(프리랜서, 정년퇴임)하거나 재직 중 사망하거나 타 부서로 전향하거나 다른 방송국으로 이적하거나 서울로 복귀한 아나운서입니다.
계약만료
2012년에 입사한 계약직 아나운서 상당수는 순수 계약직이었기 때문에 1~2년 정도만 근무하고 퇴사하였다. 반면 2016~2017년에 선발한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차후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선발한 아나운서였고 사측에서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문제가 있어 이 때문에 부당해고 문제를 두고서 복직 소송이 진행중에 있었고 최종적으로 복직이 확정되었다.
- 박보경(2012년 입사, 2014년 퇴사)[635][636]
- 김원경(2012년 입사, 2013년 퇴사)[637]
- 송지언(2012년 입사, 2013년 퇴사)[638]
- 이혜민(2012년 입사, 2016년 퇴사)[639]
13.3. 전문MC[편집]
13.4. 기상캐스터[편집]
- 일러두기
- 재직중인 기상캐스터를 중심으로 나열하며 퇴사한 기상캐스터도 함께 기재합니다.
- 단, 지역권 기상캐스터는 이 곳에 표기하지 않습니다.
- 취소선은 퇴사(프리랜서, 정년퇴임)하거나 재직 중 사망하거나 다른 방송국으로 이적한 기상캐스터입니다.
13.5. 프로듀서[편집]
시사교양(현직)
[ 펼치기 · 접기 ] - 윤미현(1986년 입사, 콘텐츠전략본부장)[1]
- 박건식(1995년 입사, 기획조정본부장)
- 유해진(1996년 입사, 시사교양본부장)
- 한학수(1997년 입사, 시사교양1부장, PD수첩 CP)
- 김진만(1996년 입사, 시사교양2부장, 다큐플렉스/파일럿 CP)[EtoC][2]
- 김재영(2001년 입사, 시사교양3부장, MBC 100분 토론 CP)
- 장형원(1996년 입사, 시사교양4부장, 실화탐사대/오은영 리포트 - 결혼지옥 CP)
- 오동운(1996년 입사, 시사교양5부장, 심야괴담회 CP)
- 유현(1993년 입사, 콘텐츠협력센터장)
- 김형윤(1995년 입사, 콘텐츠협력1부장, 시사교양부문 CP)[EtoC][3]
- 조준묵(1995년 입사, 편성국장)
- 이동희(1996년 입사, D.크리에이티브스튜디오 대표)
- 김보슬(2003년 입사, M드로메다스튜디오팀장, 말년을 자유롭게/it's Live CP) # #
- 오행운(2004년 입사, 기획국 정책기획부장)[4]
- 전성관(1999년 입사, MBC PD협회장)
- 배연규(1987년 입사, 심의위원)[3차][5]
- 이종현(1984년 입사)
- 민현기(1984년 입사)[EtoC]
- 박정근(1984년 입사)
- 김영호(1986년 입사)
- 김태현(1986년 입사)
- 김학영(1987년 입사)[6]
- 임채유(1987년 입사)
- 전배균(1987년 입사)[EtoC]
- 정성후(1987년 입사)
- 한홍석(1987년 입사)
- 남궁찬(1991년 입사)[EtoC]
- 박상일(1991년 입사)[EtoC]
- 오상광(1991년 입사)
- 이근행(1991년 입사, 2010년 부당해고, 2013년 특별채용으로 복직)
- 이모현(1991년 입사)[EtoC]
- 채환규(1991년 입사)
- 허태정(1991년 입사)
- 이영백(1993년 입사)[EtoC]
- 임남희(1993년 입사)
- 김새별(1995년 입사)
- 민운기(1995년 입사)[7]
- 허진호(1995년 입사)
- 김현철(1997년 입사)
- 김만진(2000년 입사)
- 박상준(2000년 편성PD로 입사, 이후 전직)[8]
- 김인수(2001년 입사)
- 김현기(2002년 입사)
- 성기연(2002년 입사)
- 이춘근(2002년 입사)[9]
- 김종우(2002년 입사)[10]
- 이중각(2003년 입사)
- 유성은(2004년 입사)[11]
- 이지은(2004년 입사)
- 김동희(2005년 입사)
- 김상협(2005년 입사)
- 서정문(2006년 입사, PD수첩 공동 진행)[12]
- 이미영(2006년 입사)
- 임채원(2006년 입사)[13]
- 최우식(2006년 입사)
- 김정민(2007년 입사)
- 조성현(2007년 입사)[14]
- 조진영(2007년 입사)
- 민병선(2008년 입사)
- 김보람(2009년 입사)
- 황순규(2012년 입사)
- 장호기(2015년 입사)[15]
- 최별(2016년 입사) 오느른
- 전준영(2017년 입사)[16]
- 김혜지(2018년 입사)
- 이세진(2018년 입사)
- 강수연(2019년 입사)
- 조유나(2019년 입사)
- 김건우(2020년 입사)
[1] MBC 최초의 여성 공채 TV PD.[EtoC] A B C D E F G H 입사 당시에는 예능PD였으나 시사교양PD로 전직.[2] 아마존의 눈물, 남극의 눈물 연출.[3] A B 2017년 6월 언론부역자 3차 명단에 올랐다.#[4] 2010년 부당해고 통보를 받았다가 인사위원회에서 감봉 1개월로 감경.[5] 前 시사교양국 시사교양2부 팩트체커팀장(2011.10~2012.4), 前 시사제작국 부국장 겸 시사제작3부장(2012.4~2014.3), 前 콘텐츠협력국장(2014.3~10), 前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장(2014.10~2017.3), 前 심의국장(2017.3~12)[6] 前 외주제작국 외주제작2부장(2011.5~9), 前 편성국 편성기획부장(2011.9~2012.4), 前 시사제작국 부국장 겸 시사제작3부장(2014.3~10), 前 콘텐츠제작국장(2014.10~2017.3), 前 신성장사업국장(2017.3~12)[7] 출발! 비디오여행, 뽀뽀뽀 친구친구 기획.[8] 편성PD시절 꼬마마법사 레미 샵 연출.[9] 실화탐사대 연출.[10] 너를 만났다 시리즈 연출.[11] 출발! 비디오여행 CP.[12] 돈벌래 공동연출.[13] 심야괴담회 연출.[14] PD수첩,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연출.[15] PD수첩,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피지컬: 100 연출.[16] MBN 기자 출신. 동생이 전소영 SBS 기상캐스터이다.
예능(현직)
[ 펼치기 · 접기 ] - 김구산(1994년 입사, 예능본부장)
- 전진수(1994년 입사, 예능1센터장 겸 예능1부장, 놀면 뭐하니? CP)[1]
- 박정규(1995년 입사, 예능2센터장 겸 예능6부장, 전지적 참견 시점 CP)
- 강영선(1997년 편성PD로 입사, 이후 전직, 예능2부장, 라디오 스타 CP)[StoE][2]
- 안수영(2000년 입사, 예능3부장, 복면가왕 CP)
- 정윤정(2002년 입사, 예능4부장, 쇼! 음악중심/구해줘! 홈즈/파일럿 CP)[3]
- 김영진(1999년 입사, 예능5부장, 나 혼자 산다 CP)
- 최윤정(2000년 편성PD로 입사, 이후 전직, 예능기획제작부장, 안싸우면 다행이야/물 건너온 아빠들 CP)
- 김지완(1984년 입사)
- 이응주(1986년 입사)
- 한봉근(1987년 입사)[4]
- 사화경(1991년 입사)
- 이흥우(1991년 입사)[5]
- 서창만(1994년 입사)
- 노창곡(1995년 입사)[6]
- 박현석(1995년 입사)
- 박현호(1995년 입사)[7]
- 최원석(1995년 입사)
- 박석원(2000년 입사)[8]
- 선혜윤(2001년 입사)[9]
- 김준현(2002년 입사)[10]
- 박창훈(2003년 편성PD로 입사, 이후 전직)[11]
- 최행호(2004년 입사)
- 김명진(2005년 입사)
- 노시용(2005년 입사)[12]
- 임경식(2005년 시사교양PD로 입사, 2014년 전직)[13]
- 최민근(2005년 입사)[14]
- 강성아(2006년 라디오PD로 입사, 이후 전직)[15]
- 이지현(2006년 입사)
- 황지영(2006년 입사)[16]
- 오미경(2008년 입사)[17]
- 오누리(2008년 입사)[음악중심]
- 임찬(2008년 입사)
- 허항(2008년 입사)
- 정다히(2009년 입사)
- 한영롱(2010년 입사)[18]
- 김선영(2011년 입사)[음악중심]
- 이윤화(2011년 입사)
- 이경원(2012년 입사)[19]
- 김우중(2013년 입사)
- 김지우(2013년 입사)
- 노승욱(2013년 입사)[20]
- 이유리(2013년 입사)
- 현정완(2013년 입사)
- 박수빈(2014년 입사)
- 염여린(2014년 입사)
- 이민지(2014년 입사)
- 김기호(2018년 입사)
- 김진경(2018년 입사)
- 안지선(2019년 입사)
- 이경은(2019년 입사)
- 정동식(2019년 입사)
- 황윤상(2019년 입사)
- 김익환(2020년 입사)[21]
- 박은진(2020년 입사)[22]
- 변다희(2020년 입사)[23]
- 강연주(2021년 입사)
- 양인혜(2021년 입사)
[1]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 연출.[StoE] 입사 당시에는 편성PD였으나 예능PD로 전직.[2] 2010 설특집 스타 천하장사 씨름의 신 연출, 편성PD시절 꼬마마법사 레미 1기, 도라에몽 연출.[3] 토크 노마드, 선을 넘는 녀석들 시리즈 기획 및 연출.[4] <수요예술무대> 연출. 한병삼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아들.[5] <우정의 무대>, <퀴즈여행 달려라 지구촌>, <MBC 인기가요 BEST 50>, <섹션TV 연예통신>, <음악여행 라라라> 등지 연출. 前 예능국 예능4CP(2008.10~2009.3), 前 크리에이티브센터 콘텐츠개발1부장(2011.5~2012.7), 前 예능1부장(2012.7~12), 前 예능2국 부국장(2012.12~2014.10), 前 편성국 부국장(2014.10~2015.3), 前 예능1국장(2015.3~2017.3), 前 예능본부장(2017.3~12). 그 외에 가천대학교 미디어커뮤니티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7년 국민포장 수훈, 2022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한국 예능프로그램의 수용자 획득에 관여하는 요인의 분석 - 생산자 관점에서>란 논문으로 언론학 박사 학위 취득. 2009년에는 경향신문에 <이흥우의 온에어 이야기>를 연재했으며 저서로는 <첼로와 삼겹살(1997)>, <PD스쿨(2008)> 등이 있다.[6] 다시 쓰는 차트쇼, 지금 1위는? CP, 쇼! 음악중심 초대 연출.[7] 2006년 메탈리카 내한 공연 실황 연출.[8] 2018년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 총연출.[9] 대장금이 보고 있다 연출. 신동엽의 배우자이기도 하다.[10] 트로트의 민족 공동 연출.[11] 전지적 참견 시점 연출.[12] 호구의 연애 공동 연출.[13] 언더나인틴, 구해줘! 홈즈 공동 연출.[14]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시리즈, 세상의 모든 방송 연출.[15] 라디오 스타 연출.[16] 나 혼자 산다 공동 연출.[17] MBC every1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의 연출.[음악중심] A B 쇼! 음악중심[18] 끼리끼리 연출.[19] 구내식당 연출.[20] 호구의 연애 공동 연출.[21] 전통의 아웃점, 으이구 사건[22] 前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작가. 56회에서 MBC 합격 사실을 알렸다.[23] 착한 어른이 출신
드라마(현직)
[ 펼치기 · 접기 ] - 김사현(1984년 입사)
- 오현창(1984년 입사)
- 이대영(1984년 입사)[1]
- 김남원(1985년 입사)[2]
- 박성수(1985년 입사)[3]
- 최용원(1985년 입사)
- 최이섭(1985년 입사)[4]
- 임화민(1986년 입사)[EtoD]
- 이창섭(1987년 입사)
- 오경훈(1991년 입사)[5]
- 윤재문(1991년 입사)[6]
- 한희(1991년 입사)[7]
- 최원석(1993년 입사)[8]
- 김진만(1995년 입사)[9]
- 이재동(1995년 입사)[10]
- 주성우(1995년 입사)[11][12]
- 김승모(1996년 입사)[13]
- 신현창(1996년 입사)
- 장재훈(1996년 방송경영직으로 입사, 이후 전직, 드라마2EP)
- 김근홍(1998년 입사)[14]
- 박재범(1999년 입사)[15]
- 김대진(2000년 입사)[16]
- 손형석(2000년 입사)[17]
- 김경희(2001년 입사)[18]
- 여인준(2001년 입사)
- 강대선(2002년 입사)[19]
- 이상엽(2003년 입사)[20]
- 권성창(2004년 입사)[21]
- 김상협(2005년 입사)[22]
- 이재진(2005년 입사)[23]
- 정지인(2005년 입사)[24]
- 장준호(2006년 입사)[25]
- 김성욱(2007년 입사)[26]
- 박상훈(2007년 입사)[27]
- 강인(2008년 입사)[28]
- 진창규(2009년 입사)[29]
- 현솔잎(2010년 입사)[30]
- 김형민(2012년 입사)
- 심소연(2012년 입사)
- 이동현(2012년 입사)[31]
- 노영섭(2013년 입사)
- 박상우(2013년 입사)
- 강학구(2016년 입사)
- 강채원(2018년 입사)
- 김영재(2018년 입사)
- 권지수(2021년 입사)
[1] 로망스, 굳세어라 금순아, 여왕의 꽃,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 황금정원 연출[2] 역전의 여왕, 사랑해서 남주나 연출[3] 맛있는 청혼, 네 멋대로 해라, 불의 여신 정이 연출[4] 미스 리플리, 그대 없인 못살아 연출[EtoD] 입사 당시에는 예능PD였으나 드라마PD로 전직.[5] 러브레터, 불새, 즐거운 나의 집, 도둑놈, 도둑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연출.[6] 장미빛 연인들, 불어라 미풍아, 신과의 약속 연출.[7] 신입사원, 오버 더 레인보우, 닥터 진, 기황후, 굿바이 미스터 블랙 연출.[8] 오자룡이 간다, 소원을 말해봐, 두 번은 없다 연출.[9] 킬미, 힐미,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연출.[10] 고맙습니다, 지고는 못살아, 보고 싶다, 내 생애 봄날, 불야성 연출[11] 입사 당시에는 편성PD였으나 드라마PD로 전직.[12] 애정만만세, 백년의 유산, 전설의 마녀, 몬스터. 밥상 차리는 남자 연출[13] 내조의 여왕 연출[14] 주몽(드라마), 선덕여왕(드라마), 계백(드라마), 구암 허준, 여자를 울려 연출[15] 개과천선(드라마), 병원선 연출[16] 나쁜형사 연출.[17] 개인의 취향, 투윅스, 빛나거나 미치거나, 파수꾼 연출. W 기획.[18] 히어로, 운빨로맨스,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 연출.[19] 아이두 아이두, 황금 무지개, 캐리어를 끄는 여자 연출[20] 빛과 그림자, 제왕의 딸 수백향, 미스터 백, 쇼핑왕 루이, 아는 와이프 연출.[21] 구암 허준, 엄마의 정원, 돌아온 복단지 연출.[22] 동이, 7급 공무원(드라마), 마마, 화려한 유혹, 왕은 사랑한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 연출.[23] 별별 며느리, 더 뱅커, 나를 사랑한 스파이 연출.[24]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 옷소매 붉은 끝동 연출.[25] 시간, 더 게임: 0시를 향하여 연출.[26] 아이템 연출.[27] 내 뒤에 테리우스 연출.[28] 위대한 유혹자 연출.[29] 배드파파, 십시일반 연출.[30] 미치겠다, 너땜에! 연출.[31] 미쓰리는 알고 있다 연출.
스포츠(현직)[663]
[ 펼치기 · 접기 ]
콘텐츠전략(현직)[664]
[ 펼치기 · 접기 ] - 강미영(1996년 입사, 드라마스튜디오 대표)[1]
- 유건욱(2001년 입사, 콘텐츠전략부장)[2]
- 안준식(2001년 입사, 미디어기획국 IP전략부장)
- 박상환#PD(1995년 입사, 이후 시사교양PD로 전직, 콘텐츠협력센터 2부장, 예능부문 CP)[3]
- 이선태(1991년 입사)[CtoE][4]
- 김정규(1995년 입사)
- 한상규(1995년 입사)[5]
- 김예나(1996년 입사)[6]
- 윤석호(1997년 입사)
- 김태훈(2001년 입사)
- 최현종(2002년 입사)
- 문형찬(2004년 입사)
- 박선희(2004년 입사)
- 김신완(2005년 입사)[7][CtoE]
- 이경용(2005년 입사)
- 김영혜(2006년 입사)[8]
- 박선영(2006년 입사)
- 김성진(2007년 입사)
- 최상열(2007년 입사)
- 홍석우(2008년 입사)
- 이우람(2012년 입사)
- 이수인(2018년 입사)
- 이정은(2018년 입사)
- 박채영(2021년 입사)
시사교양(전직)
[ 펼치기 · 접기 ] - 김진희(1964년 라디오PD로 입사, 1978년 전직, 1994년 정년퇴임)
- 이긍희(1970년 예능PD로 입사, 1985년 전직, 1996년 MBC 프로덕션 사장 임명)
- 심우승(1973년 입사, 2002년 여수MBC 사장 임명)
- 박흥영(1973년 입사, 2007년 정년퇴임)
- 고장석(1974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황효선(1974년 예능PD로 입사, 1991년 SBS 이직)
- 김상옥(1974년 입사)
- 은희현(1974년 입사, 2003년 제주MBC 사장 임명)[1]
- 정명규(1974년 입사, 2007년 정년퇴임)[2]
- 강철용(1975년 입사, 2003년 안동MBC 사장 임명)
- 이진섭(1976년 입사)
- 홍종명(1976년 입사, 1994년 퇴사)
- 정문종(1977년 드라마PD로 입사, 이후 전직, 1998년 퇴사)
- 박명규(1977년 입사, 2004년 MBC 아카데미 사장 임명)
- 김윤영(1977년 입사, 2006년 원주MBC 사장 임명)[3]
- 이명기(1978년 입사, 1996년 퇴사)
- 정수채(1978년 입사, 2009년 정년퇴임)[4]
- 김평호(1981년 입사, 1990년 해직, 1993년 복직, 1997년 퇴사)
- 김세영(1981년 입사, 2008년 목포MBC 사장 임명, 이후 부사장 역임)
- 윤영관(1981년 입사, 2008년 광주MBC 사장 임명)
- 박신서(1981년 입사, 2013년 정년퇴임, 2021년 방송문화진흥회 감사 임명)
- 이석형(1981년 입사, 1990년 퇴사)
- 홍종선(1981년 입사, 1994년 퇴사, 2019년 OBS 부사장 임명.)
- 장덕수(1981년 입사, 2008년 MBC 아카데미 사장 임명, 2011년 MBN 이직)
- 윤혁(1981년 입사, 2010년 MBC 프로덕션 사장 임명)
- 이주갑(1982년 입사, 2011년 MBC 아카데미 사장 임명)
- 전연식(1982년 입사)
- 김시리(1983년 입사, 2013년 정년퇴임)
- 조한선(1983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홍성완[5] (1983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신언훈(1984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유창영(1984년 입사, 2008년 목포MBC 사장 임명)
-
이채훈(1984년 입사, 2012년 폭력 사건으로 해고, 2020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비상임이사 임명)[6] - 윤길용(1984년 입사, 2013년 울산MBC 사장 임명)[2차][7]
- 김상균(1984년 입사, 2014년 정년퇴임, 2018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임명)
- 이여춘(1984년 편성PD로 입사, 1992년 교양PD로 전직, 2014년 MBC 플러스 이사 임명)
- 최삼규(1984년 입사, 2014년 정년퇴임)
- 최우철(1984년 입사, 2014년 정년퇴임)
- 김철진(1984년 라디오PD로 입사, 1993년 교양PD로 전직, 2015년 원주MBC 사장 임명)[2차][8]
- 안택호(1984년 편성PD로 입사, 2016년 안동MBC 사장 임명)[9]
- 박노업(1984년 입사)
- 백종문(1984년 편성PD로 입사, 1987년 전직, 2017년 부사장 임명)[10][1차]
- 김현종(1984년 편성PD로 입사, 1987년 드라마PD 전직, 1988년 교양PD 전직, 2017년 목포MBC 사장 임명)[2차][11]
- 송일준(1984년 입사, 2018년 광주MBC 사장 임명)
-
이현숙(1984년 입사, 2018년 외주PD 갑질/폭언 사건으로 해고) - 정길화(1984년 입사, 2021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 임명)
- 권문혁(1985년 입사, 2009년 퇴사)
- 최진용(1985년 입사, 2012년 제주MBC 사장 임명)[12]
- 곽동국(1985년 입사, 2017년 작고)
- 박정훈(1986년 입사, 1991년 SBS 이적)
- 이강국(1986년 입사, 2002년 퇴사)
- 노혁진(1986년 편성PD로 입사, 이후 전직, 2017년 MBC PlayBe 사장 임명)
- 최승호(1986년 입사, 2012년 부당해고, 2017년 복직 확정 및 제34대 대표이사 사장 취임)
- 정호식(1986년 입사, 2018년 MBC 플러스 사장, 2020년 본사 콘텐츠총괄부사장 임명)
- 최병륜(1986년 입사, 2018년 울산MBC 사장 임명)
- 조능희(1987년 입사, 2020년 MBC 플러스 사장 임명)
- 김환균(1987년 입사, 2021년 대전MBC 사장 임명)
-
홍상운(1991년 입사, 2018년 해고)[13] - 이정식(1991년 입사, 2021년 제주MBC 사장 임명)
- 이우환(1993년 입사, 2021년 MBC경남 사장 임명)
- 강지웅(1993년 입사, 2012년 부당해고, 2017년 복직, 2023년 퇴임)
- 김재환(1996년 입사, 2009년 퇴사)
[1] A B 2016년 12월 언론부역자 1차 명단에 올랐다.#[2] A B C D 2017년 5월 언론부역자 2차 명단에 올랐다.#[3] 前 교양제작국 기획제작팀장(1996.9~1998.3), 前 교양제작국 부장(1998.3~1999.3), 前 교양4CP(1999.3~2000.3), 前 교양제작(시사교양)국장(2000.3~2001.9), 前 홍보심의국장(2001.9~2003.1), 前 사업국 미주방송지사장/글로벌사업본부 콘텐츠사업팀 미주지사장(2003.1~2006.3).[4] <역사의 고향>, <명작의 고향>, <TV 문화기행>, <PD수첩> 등의 연출을 맡았으며, 교양제작국 다큐멘터리2CP 차장(1993~1994.3), 생활정보팀장(1994.3~1995.2), 문화정보팀장(1995.2~1997.4), 교양제작국 부국장(1995.10~1998), 교양4CP 부장대우(1998~2000), 교양3CP 부장(2000), 시사교양국/시사제작국 부국장(2000.11~2001), 시사제작국/시사제작2국/시사교양국 제작위원(2001~2005.6), 시사교양특임1CP 국장(2005.6~2006), 시사교양특임2CP/생방송 오늘아침 특임CP 국장(2006~2008), 시사교양특임3CP 국장(2008~2009.3), 시사교양3부 국장(2009.3~6) 등을 거쳤고, 2007년 'MBC 공정방송노동조합(구 선임자노조)' 결성을 주도하며 초대 위원장을 2년 동안 맡았다. 퇴사 후 2010년 MBC 프로덕션 이사로 임명되어 1년여 동안 맡았고, 2012년 총파업 당시 외주제작국으로 돌아와 <공감! 특별한 세상>과 <월화수목>의 기획을 맡은 바 있다.[5] TBC → KBS 출신.[6] 이채훈은 전 아나운서인 배현진을 동물적인 감각밖에 없다고 평을 하였으나, 막상 본인은 술병으로 사람의 머리를 내리치는 모습을 보여서 비웃음을 샀다.[7] <명작의 무대>, <현장체험 주부탐사>, <생방송 아침만들기>, <PD수첩>,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등지 연출. 前 시사제작국 시사제작5CP/시사제작2국/시사교양국 시사제작3CP(2002.3~2004), 前 시사교양1CP 부장대우(2004~2006), 前 시사교양특임3CP/W CP 부장(2006~2008.3), 前 MBC스페셜 CP 부장(2008.3~8), 前 시사교양특임1CP 부장(2008.8~2009.3), 前 시사교양3부 부장(2009.3~2010), 前 시사교양1부 부장(2010~2011.2), 前 시사교양국장(2011.2~11), 前 크리에이티브센터장(2011.11~2012.4), 前 편성국장(2012.4~2013.4), 前 미래전략실 편성전략담당국장(2013.4~5). 2017년부터 MBC NET 사장직으로 옮겨 1년여 간 맡았고, 2022년 '새미래포럼' 설립에 참여하며 메세지특위원장 역임.[8] <생방송 새아침>, <10시! 임성훈입니다>, <이야기속으로>, <다큐멘터리 성공시대>, <MBC 스페셜> 등지 연출. 前 교양제작국 교양2CP 차장대우(1998~2000), 前 교양제작국 교양1CP/시사교양국 시사교양1CP 차장(2000~2002), 前 시사제작2국 시사제작특임1CP 차장(2002~2003), 前 시사교양국 시사교양특임1CP 부장대우(2003~2004.3), 前 시사교양3CP (2004.3~2005.9), 前 시사교양특임1CP 부장대우(2005.9~2006.2), 前 시사교양특임1CP 부장(2006.2~4), 前 시사교양4/휴먼다큐·프로그램개발CP/시사교양4부 부장(2006~2007 / 2008~2010.3), 前 휴먼다큐특임CP 부장(2007~2008), 前 시사교양3부장(2010.3~2011.2), 前 시사교양2부장(2011.2~2012.4), 前 교양제작국장(2012.4~12), 前 시사제작국장(2012.12~2013.4), 前 콘텐츠전략국장(2013.4~5), 前 콘텐츠협력국 콘텐츠협력2부 국장(2013.6~12), 前 콘텐츠협력1부 국장(2013.12~2014.3), 前 편성제작본부장(2014.3~2015.2).[9] 前 편성국 편성기획부장(2003.3~2005.3), 前 편성기획위원(2005.3~6), 前 글로벌사업본부 콘텐츠기획팀장(2005.6~2007.3), 前 해외사업팀장(2007.3~2008.7), 前 국내사업팀장(2008.7~2009.3), 前 편성국 저작권부장(2009.3~2010.3), 前 편성국 부국장(2010.3~2011.2), 前 편성국장(2011.2~2012.4), 前 편성제작본부 특임국장(2012.4~7), 前 미래전략실(미래방송연구소)장(2012.7~2014.3), 前 심의국장(2014.3~2016.3). 방송 외적으로 한국방송콘텐츠수출협회 부회장, 세계유교문화재단 이사 등으로 일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부모가 알아야 할 내 아이의 미래 일자리(2017)>가 있다.[10] 현역 PD 시절에는 노동조합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며 1996년 교양부문 부위원장까지 맡은 바 있고, 같은 해 5월 교양제작국 교양2CP 차장대우로 승진했다가 1997년 미국 미시건 대학교로 연수갔다가 1999년부터 교양1CP로 옮겼고, 이듬해 2월 시사정보국 차장으로 올랐다. 2000년 10월 시사교양국 시사교양4CP를 시초로 간부직을 처음 맡아 시사교양2CP(2001.2~10), 시사제작국 시사제작6CP/시사제작2국 시사제작4CP(2002~2003), 시사교양국 시사교양3CP(2003~2004.3), 시사교양특임2CP(2004.3~2005.3), 홍보심의국 심의부장(2005.3~2007.3), 시청자센터장(2007.3~2008.3), 편성국 TV편성부장(2008.3~2010.3), 편성국장(2010.3~2011.2) 등을 두루 거쳤고, 2011년 2월 편성제작본부장으로 승진하며 임원 자리에 올라 2014년 3월부터 미래전략본부장을 거쳐 2017년 2월 부사장까지 승진했으나, 김장겸 사장이 동년 11월에 경질되면서 사장 권한대행을 맡았으나, 하루 만에 스스로 사임했다. 그는 행정학자 안해균(1928~2012, 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사위이며 2014년부터 여의도클럽 회장도 역임했다.[11] <한민족 러시아 유민사>, <신 인간시대>, <오변호사 배변호사>, <문화특급>, <문화스페셜>, <이야기속으로>, <PD수첩> 등지 연출. 前 교양제작국 교양2CP 차장대우(1997~1999), 前 교양3CP 차장(1999~2000), 前 교양제작국 교양2CP/시사교양국 시사교양2CP 차장(2000~2001.10), 前 TV제작2국 프로듀서1 차장(2001.10~2002) 前 시사제작2국 시사제작특임2CP(2002~2003), 前 시사교양국 시사교양2CP 부장대우(2003~2005.6), 前 시사교양국 부국장(2005.6~2006), 前 시사교양특임3CP 부장(2006), 前 기획조정실 사회공헌팀장/사회공헌센터장(2006.9~2010.9), 前 편성국 심의평가부장(2010.9~2011.2), 前 시사교양국 시사교양3부장(2011.2~2012.4), 前 시사제작국장(2012.4~12), 前 교양제작국장(2012.12~2014.10), 前 경인지사장(2014.10~2015.2), 前 편성제작본부장(2015.2~2017.2).[12] PD수첩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당시 시사교양국장이었다.[13] 前 <PD수첩> MC(2010.4~2011.3), 前 교양제작국 부국장 겸 다큐멘터리제작부장(2014.3~10), 前 편성국 부국장(2015.2~2017.3), 前 편성콘텐츠부장(2015.10~2017.3), 前 콘텐츠제작국장(2017.3~12)
예능(전직)
[ 펼치기 · 접기 ] - 나수성(1964년 입사, 1980년 퇴사, 2011년 작고)[1]
- 차재영[2] (1968년 입사, 1988년 정년퇴임)
- 김경태(1969년 입사, 1973년 퇴사후 TBC 재입사, 1995년 작고)
- 진필홍(1969년 입사, 1973년 퇴사 후 TBC 재입사, 2015년 작고)
- 장두원(1969년 입사, 1988년 충주MBC 사장 임명)
- 진필호(1969년 입사, 1990년 정년퇴임)
- 육창웅(1969년 입사, 1992년 춘천MBC 사장 임명)
- 김행신(1969년 입사, 1980년 강제해직, 1989년 복직, 1993년 퇴사, 2000년 작고)
- 이재휘(1969년 입사, 1995년 퇴사)
- 유수열(1969년 입사, 1996년 춘천MBC 사장 임명, 2021년 작고)
- 이창식(1969년 입사, 1997년 MBC 예술단 사장 임명)
- 심상수(1969년 입사, 1998년 춘천MBC 사장 임명)
- 전우중[3] (1969년 입사, 1980년 강제해직, 1989년 복직, 1996년 정년퇴임)
- 최선규(1970년 입사, 1993년 정년퇴임)
- 민창환(1970년 입사, 2004년 정년퇴임)
- 구종회(1972년 입사, 1997년 정년퇴임)
- 김명수(1973년 입사, 2001년 MBC 미술센터 사장 임명)
- 지석원(1973년 입사, 2003년 청주MBC 사장 임명)
- 배상석(1973년 입사, 2004년 정년퇴임)
- 김영면(1973년 입사, 2005년 정년퇴임)
- 신승호(1973년 입사)
- 홍성(1976년 입사, 1994년 퇴사)
- 이유호(1976년 입사, 2007년 정년퇴임)
- 신종인(1976년 입사, 울산MBC 사장 및 본사 부사장 역임)
- 송창의(1977년 입사, 2000년 퇴사)
- 김영철(1978년 입사, 2005년 진주MBC 사장 임명)
- 황세환(1981년 라디오PD로 입사, 1991년 예능PD로 전직, 1995년 퇴사, 2000년 작고)
- 장태연(1981년 입사, 2008년 전주MBC 사장 임명, 2010년 MBN 이직)
- 최영근(1982년 입사, 2009년 MBC 미주법인 사장 임명)
- 주철환(1983년 입사, 2000년 퇴사)
- 고연도(1983년 입사, 2013년 정년퇴임)
- 윤경진(1983년 입사, 2014년 정년퇴임)
- 김종진(1984년 입사, 1995년 퇴사)
-
은경표(1984년 입사, 2002년 해고) - 송승종(1984년 입사, 2014년 정년퇴임)
- 안우정(1984년 입사, 2012년 MBC 플러스 사장 임명)[4]
- 김정욱(1984년 입사, 2015년 MBC 플러스미디어 이사 임명)
- 방성근(1984년 입사, 2019년 정년퇴임)[5]
- 이원용(1984년 입사)
- 유근형(1985년 입사, 2002년 퇴사)
-
황용우(1985년 입사, 2002년 해고) - 원만식(1985년 입사, 2015년 전주MBC 사장 임명)[6]
- 주창만(1985년 입사, 2018년 MBC 플러스 이사 임명)
-
고재형(1986년 입사, 2008년 해고 및 영구제명)[7] - 김엽(1986년 입사, 2017년 MBC 아카데미 사장 임명)[8]
- 김영희(1986년 입사, 2014년 퇴사 및 중국 진출, 2018년 콘텐츠 총괄 부사장 임명)
- 심승근(1987년 입사, 2002년 뇌출혈로 작고)
- 김승환(1987년 입사, 2009년 퇴사)
- 권익준(1991년 입사, 2011년 CJ E&M 이적)
- 여운혁(1993년 입사, 2011년 JTBC 이적, 2017년 미스틱 엔터테인먼트 이적)
- 이민호(1993년 입사, 2015년 중국 진출)
- 조서윤(1993년 입사, 2017년 YG엔터테인먼트 이적, 2020년 티캐스트 이적)[9]
- 권석(1993년 입사, 2021년 MBC 아메리카 사장 임명)[10]
- 신정수(1995년 입사, 2016년 중국 진출, 2017년 CJ E&M 이적)
- 임정아(1996년 입사, 2011년 JTBC 이적)
- 유호철(1999년 입사, 2016년 중국 진출, 이후 CJ E&M 이적)
- 김유곤(2000년 입사, 2016년 CJ E&M 이적)
- 성치경(2001년 입사, 2011년 JTBC 이적)
- 전성호(2001년 입사, 2016년 CJ E&M 이적)
- 김민종(2001년 입사, 2017년 YG엔터테인먼트 이적, 2019년 카카오M 이적)
- 황교진(2001년 입사, 2017년 JTBC 이적)
- 김태호(2001년 입사, 2021년 퇴사)
- 오윤환(2002년 입사, 2014년 JTBC 이적, 2019년 카카오M 이적)[11]
- 이지선(2002년 입사, 2017년 JTBC 이적, 2020년 티캐스트 이적)
- 제영재(2002년 입사, 2017년 YG엔터테인먼트 이적, 2020년 티캐스트 이적)
-
정창영(2002년 입사, 2020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해고)[12] - 강궁(2003년 입사, 2016년 중국 진출, 이후 CJ E&M 이적)
- 민철기(2003년 입사, 2016년 CJ E&M 이적)
- 조욱형(2003년 입사, 2016년 CJ E&M 이적)
- 이병혁(2004년 입사, 2015년 중국 진출, 2018년 TV CHOSUN 이적, 2020년 티캐스트 이적)
- 문경태(2006년 입사, 2016년 중국 진출, 2018년 TV CHOSUN 이적, 2021년 MBN 이적)
- 김남호(2006년 입사, 2019년 채널A 이적)
- 김노은(2007년 입사, 2011년 JTBC 이적)
- 방현영(2007년 입사, 2011년 JTBC 이적, 2020년 티캐스트 이적)
- 손창우(2007년 입사, 2015년 CJ E&M 이적)
- 박진경(2007년 입사, 2019년 카카오M 이적)
- 이재석(2008년 입사, 2020년 카카오M 이적)
- 조주연(2010년 입사, 2020년 카카오M 이적)
- 마건영(2011년 입사, 2014년 JTBC 이적)
- 권성민(2012년 입사, 2015년 부당해고, 2016년 복직, 2019년 카카오M 이적)[13][14]
- 권해봄(2014년 입사, 2019년 카카오M 이적)[15]
- 손수정(2014년 입사, 2020년 카카오M 이적)
[1] 입사 당시에는 라디오PD였으나 예능PD로 전직.[2] KBS 출신.[3] 본명 전영수[4] 前 예능국 프로듀서5(2000.7~2002), 前 예능 특임1CP(2002~2005.10), 前 예능국 부국장(2005.10~2008.3), 前 《느낌표》 CP(2007.3~2008.3), 前 예능국장(2008.3~2011.5), 前 예능본부장(2011.5~2012.4), 前 예능1국장(2011.9~2012.4). 이후 본사 부사장(2013.5~2014.3), 강릉/삼척MBC 및 MBC강원영동 사장(2014.3~2017.3) 등지 역임.[5] 前 예능국 1CP(2005.10~2006.3), 前 예능국 4CP(2006.3~2008.3), 前 예능국 부국장(2008.3~2011.9), 前 예능1국 부국장(2011.9~2012.4), 前 예능본부장(2012.4~12), 前 미래방송연구실 부국장(2013~2014), 前 DMC페스티벌사무국장(2015.10~2017)[6] 前 예능프로그램개발부장(2009.3~11), 前 예능4부장(2009.11~2010.3), 前 예능1부장(2010.3~2011.9), 前 신사옥건설국장(2011.9~2012.4), 前 예능1국장(2012.4~2015.2), 前 예능본부장(2012.12~2015.2)[7] 2008년에 금품수수 혐의로 연루되어 실형 선고를 받았으며, 영구제명되었다.출처.[8] 前 예능국 《지피지기》 CP(2008.3~7), 前 예능4CP(2008.7~9), 前 예능1CP(부장)(2008.3~2010.3), 前 예능국(예능본부) 부국장(2010.3~2011.9), 前 예능2국장(2011.9~2015.2), 前 예능본부장(2015.2~2017.3)[9] MBC 재직 당시에는 조희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퇴사와 동시에 개명.[10] 공감토크쇼 놀러와와 전파견문록을 연출하기도 했으며 유재석을 무모한 도전을 통해 MBC로 끌어온 사람이기도 하다.[11] 세바퀴, 아육대, 나 혼자 산다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오윤환은 MBC의 흑역사로 꼽히는 대단한 희망의 PD이기도 했다(...).[12] 출처[13] 안광한 경영진 체제 당시 유배 웹툰을 그렸다 해고당한 전적이 있다.[14] 두니아 ~ 처음 만난 세계, 가시나들 연출.[15] CJ E&M에서 이적해 왔다.
드라마(전직)
[ 펼치기 · 접기 ] - 이동희[1] (1968년 입사, 1972년 퇴사후 KBS 재입사)
- 허규[2] (1969년 입사, 1972년 퇴사, 2000년 작고)
- 이기하[3] (1969년 입사, 1971년 퇴사후 KBS 재입사)
- 이효영[4] (1969년 입사, 1978년 퇴사)
- 이대섭[5] (1969년 입사, 1986년 울산MBC 사장 임명)
- 표재순[6] (1969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이연헌(1969년 입사, 1995년 충주MBC 사장 임명)
- 박철[7] (1969년 입사, 1996년 정년퇴임, 2020년 작고)
- 유길촌[8] (1969년 입사, 1991년 MBC 미술센터 사장 임명, 2022년 작고)
- 유흥렬(1969년 입사, 1998년 대구MBC 사장 임명)
- 정문수(1969년 입사, 2000년 정년퇴임, 2005년 작고)
- 강철호(1970년 입사, 1976년 퇴사)
- 이병훈(1970년 입사, 2002년 정년퇴임)
- 고석만(1973년 입사, 1995년 퇴사, 2003년 EBS 사장 임명, 2005년 MBC 특임이사 역임)
- 최종수(1973년 입사, 2001년 MBC 프로덕션 사장 임명, 2022년 작고)
- 김지일(1973년 입사, 2004년 MBC 프로덕션 사장 임명)
- 김승수(1974년 입사, 2003년 춘천MBC 사장 임명)
- 김한영(1976년 입사, 1992년 퇴사)[9]
- 김종학(1977년 입사, 1993년 퇴사, 2013년 작고)
- 박복만(1976년 입사, 2006년 정년퇴임)
- 황인뢰(1977년 입사, 2000년 퇴사)
- 장수봉(1977년 입사, 2002년 퇴사)
- 권이상(1978년 입사, 2008년 정년퇴임)
- 강병문(1978년 입사, 1994년 MBC 프로덕션 이직, 2005년 정년퇴임)
- 정지훈(1978년 입사)
- 이관희(1981년 입사, 1995년 퇴사)
- 이승렬(1981년 입사, 2000년 퇴사)
- 장두익(1981년 입사, 2001년 퇴사)
- 박종(1981년 입사, 2008년 SBS 프로덕션 사장으로 영전)
- 김준호(1982년 입사, 1997년 퇴사)
- 이진석(1982년 입사, 1997년 퇴사)
- 신호균(1982년 입사, 2007년 퇴사)
- 정인(1982년 입사, 2007년 작고)
- 소원영(1982년 입사, 2010년 울산MBC 사장 임명)
- 이은규(1982년 입사, 2014년 정년퇴임)
- 이재갑(1982년 입사, 2011년 정년퇴임)
- 박철수(1982년 입사, 1986년 퇴사)
- 정지영(1982년 입사, 1984년 퇴사)
- 김수룡(1983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이강훈(1984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이장수(1984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최윤석(1984년 입사, 1995년 퇴사)
- 정세호(1984년 입사, 1997년 퇴사)
- 최명규(1984년 입사, 1997년 퇴사)
- 이창순(1984년 입사, 2000년 퇴사)[10]
- 조중현(1984년 입사, 2011년 MBC 미술센터 사장 임명)
- 정운현(1984년 입사, 2014년 MBC 미술센터 사장 임명)
-
장근수(1984년 입사, 2017년 MBC강원영동 사장 임명)[3차][11] - 장용우(1984년 입사)
- 오종록(1985년 입사, 1992년 SBS 이직)
- 곽영범[12] (1986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구본근(1986년 입사, 1992년 SBS 이직)
- 장기홍(1986년 입사, 1992년 SBS 이직)
- 최창욱(1986년 입사, 2021년 MBC C&I 부사장 임명)[13]
- 손홍조(1987년 입사, 1991년 SBS 이직)
- 안판석(1987년 입사, 2003년 퇴사)
- 이주환[14] (1987년 입사, 2018년 MBC C&I 콘텐츠본부 총괄이사 임명)
- 김윤철(1991년 입사, 2006년 퇴사)
- 권석장(1991년 입사, 2014년 퇴사)
- 이태곤(1993년 입사, 2007년 퇴사)
-
고동선(1993년 입사, 2018년 해고) - 이승호(1995년 입사, 1996년 퇴사)
- 유정준(1995년 입사, 2007년 퇴사)
- 이재규(1996년 입사, 2006년 퇴사)
- 김도훈(1996년 입사, 2016년 퇴사)
- 박홍균(1996년 입사, 2017년 퇴사)
- 노도철(1996년 예능PD로 입사, 2007년 전직, 2019년 HB엔터테인먼트 이적)
- 김민식(1996년 예능PD로 입사, 2007년 전직, 2020년 명예퇴직)
- 임태우(1996년 입사)
- 이윤정(1997년 입사, 2014년 퇴사)
- 김상호(1997년 입사, 2016년 퇴사)
- 김진민(1997년 입사, 2016년 퇴사)
- 박성은(1999년 입사, 2019년 퇴사)
- 이동윤(2002년 입사, 2019년 퇴사)[15]
- 최병길(2002년 입사, 2019년 스튜디오드래곤 이적)[16]
- 정대윤(2004년 입사)
- 김상협(2005년 입사)
- 최준배(2005년 입사)
- 김희원(2006년 입사, 2018년 퇴사)
- 최정규(2006년 입사)
- 김지현(2007년 입사, 2019년 퇴사)[17]
- 박원국(2007년 입사)
- 박승우(2009년 입사, 2021년 퇴사)[18]
[1] KBS 출신.[2] KBS → TBC 출신.[3] A B 2017년 6월 언론부역자 3차 명단에 올랐다.#[4] TBC 출신.[5] TBC 출신.[6] TBC 출신.[7] KBS 출신.[8] TBC 출신.[9] 프리랜서 선언 후 SBS와 연출 계약.[10] 배우 원미경의 남편.[11] 前 드라마국 2CP(2005.10~2006.3), 前 드라마2부장(2010.3~9), 前 드라마1국장(2010.9~2011.2), 前 드라마예능본부장(2011.2~5), 前 드라마본부장(2011.5~2013.10 / 2014.3~2017.3), 前 글로벌사업본부 특임국장(2013.10~2014.3).[12] TBC → KBS 출신.[13] 배우 임예진의 남편이다.[14] <주몽>, <야경꾼 일지>, <빛과 그림자> 등지 연출. 2008~2009년 드라마국장, 2015~2016년 드라마4부장, 2016~2017년 드라마1국 부국장, 2017년 드라마본부장까지 역임. 2017년 옥관문화훈장 수훈.[15] 형은 가수 이적이다.[16] 아내는 성우 겸 방송인 서유리.[17] 남편은 MBC 아나운서 허일후.[18] 카이로스 연출.
스포츠(전직)
[ 펼치기 · 접기 ] - 오창식(1982년 입사, 2013년 IHB 인천아시안게임 주관방송사 대표)
- 허연회(1984년 입사, 2013년 iMBC 사장 임명)[1]
- 이도윤(1986년 입사, 2018년 MBC 플러스 이사 임명)
- 황승욱(1991년 입사, 2021년 MBC 플러스 스포츠이사 임명)
- 이민호(2002년 입사, 2016년 퇴사,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 e스포츠 방송총괄을 거쳐 2021년 펍지 주식회사로 이적)
- 함영승(2004년 입사, 2018년 5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 방송팀 리드로 이적)
[1] 前 스포츠국 스포츠제작부장(2004.3~2006.8), 前 스포츠제작단 스포츠기획팀장(2006.8~2009.3), 前 편성제작국 부국장(2009.3~2010.6), 前 스포츠제작국장(2010.6~2013.3). 2017년 3월부터 1년여 간 부산MBC 사장을 지낸 후 2022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5기 위원으로 위촉됐고, TKG휴켐스 사외이사도 역임 중이다.
편성(전직)
[ 펼치기 · 접기 ] - 황선길(1966년 입사, 1995년 정년퇴임)
- 박진홍(1969년 입사, 1999년 광주MBC 사장 임명)
- 여태성(1970년 입사, 1999년 MBC 미술센터 사장 임명, 2015년 작고)
- 윤건호(1973년 라디오PD로 입사, 1987년 편성PD로 전직, 2001년 (구)MBC 플러스 사장 임명)[1]
- 이창우(1977년 라디오PD로 입사, 이후 전직)
- 한귀현(1978년 입사, 2010년 원주MBC 사장 임명)
- 박순웅(1981년 입사, 1998년 명예퇴직)[2]
- 김세영(1981년 교양PD로 입사, 이후 전직, 2008년 목포MBC 사장 임명, 이후 부사장 역임)
- 안광한(1982년 입사, 1984년 교양제작국 이동, 1988년 편성국 복귀, 2011년 본사 부사장 임명, 2014년 사장 승진)[1차]
- 이용석(1982년 아나운서로 입사, 이후 전직, 2012년 청주-충주MBC 사장 임명)[3]
- 김기상(1984년 입사, 1996년 작고)
- 오명환[4] (1984년 입사, 1999년 여수MBC 사장 임명)
- 이길섭(1984년 입사, 2018년 MBC충북 사장 임명)
- 박대환(1985년 드라마PD로 입사)[5]
- 신석균(1985년 라디오PD로 입사, 이후 전직)[6]
- 유한기(1985년 입사)
- 한훈기(1985년 예능PD로 입사, 이후 전직)
- 권오형(1986년 입사, 1998년 명예퇴직, 이후 2012년 TV CHOSUN 이적)
- 김종민(1986년 입사, 2018년 명예퇴직)[7]
- 한명석(1986년 아나운서로 입사, 1992년 전직, 2021년 정년퇴임)
- 이보영(1986년 입사, 前 편성국 편성기획부장(2005~2009), 2016년 퇴사)
- 윤소연(2006년 입사, 2016년 퇴사 후 창업, 현재 아파트멘터리 대표)
[1] A B 前 라디오제작국 차장대우(1986~1987.2), 前 편성국 편성기획부 차장(1987.2~1989.11), 前 종합기획실 기획연구위원(1989.11~1990.3), 前 편성국 편성기획부장(1990.3~1994.4), 前 영화부장(1995.2~1997.4), 前 편성국 부국장(1996.4~1997.4), 前 편성국장(1997.4~12), 前 홍보국장(1997.12~1998.3), 前 홍보심의국장(1998.3~1999.3), 前 편성실 부실장(1999.3~2000.3), 前 홍보심의국 위원(2000.3~2001.3). 그 외에 마산MBC 사장, TIMF앙상블 이사장 등지 역임.[2] TBC-KBS 출신. 한동안 영화부에서 <은하철도 999>, <천년여왕>, <크미치스>, <매드 맥스>, <대제의 밀사> 등 숱한 외화/애니메이션을 연출했으며, 1983년 차장대우, 1984년 7월 차장, 1988년 1월 부장대우로 각각 올랐다가 1991년 5월 영화부 특선영화담당 부장으로 보직간부 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영화부장(1993.4~1995.2), 방송자료국 조사연구부장(1995.2~1996.9), 정책기획실 영상프로젝트팀장/사업국 영상사업기획팀장(1996.9~1997.11), 사업국 위원(1997.11~1998.3) 등을 거쳤다. 퇴사 후 '알파필름' 대표를 맡으며 1999년 이후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청각장애인 학교 수화교육 강사,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등지 역임.[3] 前 시사교양국 시사교양3CP(2001.2~2002.4), 前 홍보심의국 홍보부장(2002.4~2005.2), 前 홍보심의국 부국장(2007.3~2008.3), 前 홍보심의국장(2008.3~2009.3), 前 편성국 부국장(2009.3~2010.3), 前 특보(2010.3~6), 前 경기인천(서울경인)지사장(2010.6~2012.4), 前 글로벌사업본부장(2012.4~2013.6)[4] TBC 출신.[5]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PD.[6]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와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PD. 원래는 라디오PD 출신으로 별이 빛나는 밤에의 연출을 맡은 적이 있다.[7] 前 편성국 시청자연구소장 (2006.3~2007.3), 前 영화부장(2007.3~2009.3), 前 글로벌사업본부 글로벌사업2부장/국제협력팀장(2011.10~2013.3), 前 글로벌사업국 부국장(2013.3~2014.3)
애니메이션 및 외화 더빙
- 염영돈[665]
13.6. 엔지니어[편집]
- 전직
- 최봉구[669] (1961년 입사, 1993년 명예퇴직)
- 안흥식[670] (1962년 입사, 1983년 부산MBC-부산문화TV 사장 임명)
- 김기일[671] (1962년 입사, 1993년 명예퇴직)
- 이창호[672] (1963년 입사, 1994년 명예퇴직)
- 남궁옥인[673] (1963년 입사, 1995년 MBC 미디어텍 상무 임명)
- 석남수[674] (1963년 입사, 1984년 한국전기통신공사 이직, 1988년 복귀, 1998년 명예퇴직)
- 유근혁[675] (1963년 입사, 1998년 명예퇴직)
- 임두호[676] (1963년 입사, 1998년 명예퇴직)
- 최명구[677] (1963년 입사, 1998년 명예퇴직)
- 노서을[678] (1964년 입사, 1978년 정년퇴임, 2022년 작고)
- 최인열[679] (1964년 입사, 1988년 청주MBC 상무 임명, 2019년 작고)
- 홍기준[680] (1964년 입사, 1992년 정년퇴임, 2015년 작고)
- 황선영[681] (1964년 입사, 1971년 전북텔레비전방송으로 이직 및 복귀, 1992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조영휘[682] (1964년 입사, 1992년 순직)
- 김문기[683] (1964년 입사, 1995년 명예퇴직)
- 김광곤[684] (1964년 입사, 1999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박종규[685] (1964년 입사, 1975년 한국교육개발원 이직, 1978년 복귀, 2000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황윤환[686] (1965년 입사, 1998년 명예퇴직)
- 조구현[687] (1967년 입사, 1994년 KMTV 이직)
- 최오규[688] (1968년 입사, 1994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1997년 작고)
- 윤상도[689] (1968년 입사, 1999년 MBC 미디어텍 이사 임명, 2021년 작고)
- 권태수[690] (1969년 입사, 1989년 안동MBC 사장 임명)
- 김종환[691] (1969년 입사, 1991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윤재덕[692] (1969년 입사, 1991년 MBC 미디어텍 상무 임명)
- 오정수[693] (1969년 입사, 1992년 제주MBC 사장 임명)
- 김순길[694] (1969년 입사, 1993년 명예퇴직)
- 고흥복[695] (1969년 입사, 1993년 정년퇴임)
- 이한익[696] (1969년 입사, 1993년 정년퇴임)
- 조동근[697] (1969년 입사, 1993년 명예퇴직)
- 김윤식[698] (1969년 입사, 1994년 명예퇴직)
- 김순식[699] (1969년 입사, 1994년 명예퇴직)
- 장용[700] (1969년 입사, 1996년 목포MBC 사장 임명)
- 홍환식[701] (1969년 입사, 1997년 정년퇴임)
- 최홍림[702] (1969년 입사, 1998년 명예퇴직)
- 김규수[703] (1969년 입사, 1998년 울산MBC 사장 임명)
- 조정구[704] (1969년 입사, 1998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이종성[705] (1969년 입사, 1999년 정년퇴임)
- 김수량[706] (1969년 입사, 1999년 마산MBC 사장 임명)
- 금기우[707] (1969년 입사, 2000년 퇴사)
- 신원호[708] (1969년 입사, 2003년 퇴사, 2019년 작고)
- 박수효[709] (1971년 입사, 1994년 명예퇴직)
- 김세하[710] (1973년 입사, 2006년 정년퇴임)
- 문정철[711] (1976년 입사, 2003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문병화[712] (1977년 입사, 2005년 MBC 미술센터 사장 임명, 2012년 작고)
- 최천[713] (1977년 입사, 2009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방동희[714] (1980년 입사, 1994년 명예퇴직)
- 박진석[715] (1981년 입사, 2005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이완기[716] (1981년 입사, 2008년 울산MBC 사장 임명)
- 손목헌[717] (1981년 입사, 2014년 MBC C&I 이사 임명)
- 천복용[718] (1981년 입사, 2014년 iMBC 이사 임명)
- 문장환[719] (1982년 입사, 2010년 삼척MBC 사장 임명)
- 이우철[720] (1984년 입사, 2013년 포항MBC 사장 임명)
- 최중억[721] (1984년 입사, 2018년 MBC강원영동 사장 임명)
- 성보영(1985년 입사, 2017년 MBC C&I 부사장 임명)
- 박병완[722] (1985년 입사, 2018년 포항MBC 사장 임명)
- 석원혁[723] (1986년 입사, 2017년 퇴사)
- 김성근[724] (1986년 입사, 2018년 사임)
- 김윤섭[725] (1986년 입사, 퇴사연도 불명)
- 김종규[726] (1986년 입사, 2020년 MBC 플러스 부사장 임명)
- 정각종[727] (1987년 입사, 2006년 정년퇴임)
- 김상훈[728] (1987년 입사, 2021년 MBC ART 사장 임명)
- 김완식(1987년 입사, 2021년 퇴사)
- 이원영(1988년 입사, 2020년 정년퇴임)
- 이성구(2002년 입사, 2022년 블래스트 설립)
13.7. 영상미술직[편집]
- 현직
- 전직
- 박수명[729] (1969년 입사, 1992년 MBC 미술센터 상무 임명, 2022년 작고)
- 김종길[730] (1982년 입사, 2014년 정년퇴임)
- 조수현(1985년 입사, 1995년 교통사고로 순직): 배우 조재현의 형.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우리들의 천국>, <제4공화국> 등지의 촬영감독이기도 했다. 사후 차장으로 추서.
- 정종훈(1987년 입사, 2022년 정년퇴임): 미술직으로 입사한 후 1989년 <뽀뽀뽀>를 시초로 <MBC 뉴스데스크>, <인기가요 베스트 50>, <퀴즈가 좋다>, <컴백스페셜 서태지>, <복면가왕> 등 스튜디오 디자인을 줄곧 맡아왔고, 1993년 노조 영상미술부문 부위원장을 맡고 2007년부터 2년여 간 영상미술국 미술부장을 맡기도 했다. 2022년 퇴직을 맞아 저서 <TV세트 디자인의 세계>를 냈다. 2013년 제40회 한국방송대상 미술상 수상.
- 송인혁(1996년 입사, 2020년 퇴사): 영상디자인국 촬영감독. <대장금>, <베토벤 바이러스>, <이산>, <아마존의 눈물>등의 촬영담당
13.8. 경영·관리직[편집]
- 현직
- 송윤석[731] (1993년 입사)
- 전직
- 이원호(1970년 입사, 1997년 MBC 미디어텍 사장 임명)
- 박근학[732] (1970년 입사, 1999년 포항MBC 사장 임명)
- 장근복[733] (1978년 입사, 2004년 (구)MBC 플러스 사장 임명, 2012년 작고)
- 정준[734] (1981년 입사, 2009년 제주MBC 사장 임명)
- 임무혁[735] (1982년 입사, 2010년 강릉MBC 사장 임명)
- 정성채(1982년 입사, 2015년 광주-목포-여수MBC 상무 임명)
- 홍병의[736] (1983년 특채 입사, 2011년 MBC미술센터 이사 임명)
- 김재형[737] (1984년 입사, 2011년 춘천MBC 사장 임명)
- 고민철[738] (1984년 입사, 2012년 원주MBC 사장 임명)
- 류근종(1984년 입사, 2013년 정년퇴임)
- 박영춘[739] (1984년 입사, 2017년 본사 감사 임명)
- 이승염(1984년 입사, 2018년 제주MBC 사장 임명)
- 안현덕(1985년 입사, 2010년 MBC 플러스 사장 임명): 기획실에 입사하여 관계회사팀장, 국내사업팀장, 전략프로젝트PM 등지 역임. 그 외에 2012년 4월부터 1년여 간 MBC 아메리카 사장도 맡았다.
- 조규승[740] (1986년 입사, 2011년 MBC나눔 사장 임명)
- 오정우(1986년 입사, 2017년 포항MBC 사장 임명): 총무국에 입사하여 감사실장, 경영본부장, 글로벌사업본부장 등지 역임.
- 이은우[741] (1987년 입사, 1990년 SBS 이직, 2011년 1차 복귀, 2012년 MBC플러스미디어 전보, 2015년 2차 복귀, 2018년 사임)
- 이순임(1989년 입사, 2018년 정년퇴임): 효령대군의 22대손. 경영직으로 입사하여 감사국 부장, 경영지원부 국장, 예능본부 예능운영부 국장, 공정방송노조 위원장 등지 역임. 특히 2004년부터 6년 동안 국제협력부에 몸담던 시절 한중 방송교류 업무 경험 덕에 중국에 관심을 보여 2014년 논문 <현대 한중 방송교류의 역사와 성과>[742] 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2001년부터 12년 간 MBC 중국연구회장도 지냈다. 퇴사 이후 자유한국당 미디어특별위원회 위원, 자유당 대변인, 공영언론미래비전100년위원회 공동대표 역임.
14. 방송현황[편집]
14.1. 프로그램[편집]
14.2. 유튜브 채널[편집]
한국 방송업계 최초로 유튜브에 진출한 방송사이기도 하다.
2011년 말에 김재철 당시 MBC 사장은 국내 방송사 최초로 구글 코리아와 파트너십을 맺고, 대한민국 방송사 최초로 모든 컨텐츠를 업로드 한 것이다.
그리하여 2012년에 본격적으로 컨텐츠들을 선보였는데, 옛날 프로그램들을 전부 원본급으로 올려주는 패기를 선보였다.[743] 이때 엄청난 화제를 낳으며 꽤나 성공적으로 운영되는듯 했으나...[744]
2014년 말, 지상파 3사 모두 네이버TV와 독점공급을 맺으며 한국 IP를 차단했다.
하지만 한국 컨텐츠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고, 점점 커져가는 유튜브 시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한국 IP를 다시 풀기 시작했다. 사실 2017년부터 공영방송 총파업 등의 영향으로 공영방송이 수백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내며 지상파에 대한 차별적 규제가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수익원을 찾고자 울며 겨자먹기로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컨텐츠들을 방출, 활용하기로 한 것.
특히 여러 유튜브 채널들을 개설하며(오분순삭 등) 다시 한번 큰 관심을 끌었고,[746] 수익을 크게 올리자 이제는 적극적으로 유튜브 채널들을 개설하고 있다.[747]
- withMBC
- 공식 종합 채널: 엠뚜루마뚜루
- 뉴스
- 엠빅뉴스
- 14F
- iMBC 연예
- 오늘비와?
- 모지: 구 똑똑 스튜디오, 엠라운지
- 통일전망대 X 김팀장의 북한 확대경
- 뉴스이즈백: 구 엎어컷
- 소비더머니: 14F에서 독립한 채널
- NEWSGRAPHICS
- 딩딩대학: 엠빅뉴스에서 독립한 채널
- 시사교양
- MSG: 구 다큐하우스
- GO지식: MBC 지식교양 채널
- PD수첩
-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 100분 토론
- 실화탐사대 (실화 On): 구 대한민국 흑역사
- TV예술무대
- 뽀뽀뽀 좋아좋아
- 예능
- K-POP
- 옛송TV - 구 대중가요 1988
- 대학가요제
- 트로트
- MBC C&I 가곡
- 드라마
- 옛드 : 옛날 드라마 (드라맛집) - 구 MBCClassic
- 순식간엠
- M드로메다 스튜디오
- 라디오: 시사, 음악, 사과잼, 아이돌 라디오, 굿모닝FM
- MBC AMERICA
- 스포츠
- 디자인센터
- 아카이브
- MBC나눔
- 키자니아
- 해요TV
- 타M머신: 구 타임머신 코리아
- 플레이브: MBC 사내벤처 1기
14.3. 송신소[편집]
A. 이 문단에는 수도권에 설치된 송신소를 기재하였다. 각 지역에 있는 송신소는 각 지역국의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B. 아날로그 TV 채널은 2012년 12월 31일까지 모두 종료되어 기재하지 않았다.
C. 디지털 TV의 모든 물리채널에 부여된 가상채널은 11-1번이다.
D. 채널과 주파수 앞뒤에 붙는 ch.와 Mhz 등의 단위는 생략한다.
E. 송출이 예정되어 있는 채널과 주파수는 ※로 표기한다.
F. 라디오 송신소는 MBC 표준FM과 MBC FM4U 문서 참고.
15. 특징[편집]
15.1. 정치적 성향[편집]
15.1.1. 2010년 이전[편집]
2010년 이전의 MBC는 보도 논조가 타 방송사에 비해 친민주당계 정당성향이 심했다. 물론 이것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고 사실 설립 초기부터 1980년대 중후반 시절까지는 전형적인 친정부 성향의 방송국이었다. 우선 1960년대 이후로는 정수장학회의 영향도 있고 방송사 확장[754] 도 박정희 정부가 팍팍 밀어주어서 진행했기 때문에 당연히 친정부적인 성향이었고, 5.18 민주화운동 때 광주MBC 건물이 불타버리기도 했다. 이후로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KBS와 마찬가지로 땡전뉴스를 내보냈다. 1987년 6.10 민주 항쟁 및 6.29 선언에 따른 민주화의 바람이 불자 언론자유화, 노동자 대투쟁 등의 영향으로 MBC 노조가 설립되었고, 1988년 8월에는 보도-제작-편성 3개 국장 추천제 관철을 목표로 첫 총파업을 벌여 황선필을 사장직에서 퇴진시켰고, 국장 중간평가제를 관철시켰다. 11월에 선임된 김영수 사장 역시 출근저지 투쟁 탓에 취임식조차 못한 채 3개월 뒤에 사임했다.
동년 말 '방송문화진흥회'가 세워져 KBS 측 주식이 그쪽으로 넘어간 후, 1989년 초에 방송인 출신인 최창봉이 사장이 되면서 당대 기준에서는 나름대로 중도파적인 스탠스를 취했고, 진보적인 젊은 방송인들에 의해 <어머니의 노래>, <MBC를 말한다>, <MBC 리포트(2차)>, <생방송 여론광장>, <PD수첩> 등 정치/사회고발적 프로들의 제작이 늘었다. 그렇다고 마냥 스탠스가 저랬던 것은 아니고 땡전뉴스 시절의 간부진들이 퇴출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과 커넥션을 가졌던 인원이 적지 않았고 그래서 보수적인 논조를 취할 때도 적지 않았다. 취임 첫 해인 1989년 9월에는 노조가 편성-보도국장 직선제 도입, 제작 관련 10개 실/국장에 대한 정기 신임평가 도입을 요구하자, 회사가 이를 수용치 않아 결렬된 후 노동부에 직권중재를 했다. 이에 노조는 중재를 기다리지 않은 채 동월 9일부터 11일 간 파업을 벌여 편성-보도-기술 3개 국장 3배수 추천제를 관철시켰다.
다만 1990년 3당 합당과 KBS 사태 등의 영향으로 최 사장은 <PD수첩> '그래도 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 불방 및 안성일 노조위원장-김평호 노조 사무국장 해고, 1991년 대하드라마 <땅> 조기종영 등으로 정권 눈치보기에 열을 올렸고, 1992년 들어서 본사가 보도-편성-제작 3개 국장 추천제 폐지 및 인건비 부담에 따른 5% 임금 인상안을 제시하자, 9월 2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이에 회사는 노조 집행부 등 15명을 고소했고, 10월 1일 공정방송협의회 강화안이 노사 간의 이견으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결렬되자, 다음 날 여의도 사옥 내에 경찰 병력이 투입되어 조합원 187명이 충돌 끝에 강제 연행되었다. 특히 이완기 노조위원장 대행, 박영춘 노조 사무국장, 손석희 노조 대외협력위원회 부간사, 정찬형 노조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 심재철 기자 등 15명이 구속되는 등 타격이 있었으나, 노사 양측은 51일만에 국장 추천제를 없애는 대신 공정방송협의회의 활동을 강화하는 쪽으로 타결했다. 1993년 1월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은 전 노조위원장 이완기와 심재철 등 2명에 집행유예, 손석희 등 8명에 벌금형을 각각 내렸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후 강성구 사장이 선임된 후, 임기 첫 해에는 시간외 수당 협약과 김평호-안성일 등 해직자 원직 복귀 합의 등으로 '무분규 원년'을 선포했으나, 방송사 논조와 관련해서 윗선의 눈치를 본다는 평을 받았으며 1996년 3월 13일에는 강 사장이 방문진에서 연임되자 노조가 한 달 동안 파업을 전개하다가 최문순 당시 노조위원장이 구속 및 해직됐고, 6월에는 회사가 파업 관계자들에게 징계를 내리자 노조 및 MBC기자회가 집단 사표 제출을 결의하는 등 저항을 했다. 결국 강 사장은 방문진에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MBC가 진보적인 성향의 방송국으로 분류되기 시작되었던 때는 1990년대 후반, 즉 이득렬이 사장을 지냈을 때부터의 일이다. 즉, MBC가 진보적인 성향을 띄게 된 것도 민주화 이후로 단박에 진보화된 것이 아니고 10년 가까운 진통과 노조의 투쟁이 가져온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다만 MBC 사장의 성향이 쭈욱 진보였던 것만은 아니라서 이긍희 사장 시절에 잠깐 논조가 보수화되거나 엄기영 사장이 후에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등 쭈욱 진보 성향만은 아니었다.[755]
김대중 정부 당시에 주요 간부가 호남 인사로 편중된 것 때문에 비판을 산 적이 있었고,[756] 후술할 정수채 전 공정방송노조 위원장이나 김장겸 전 사장 등 일부의 예처럼 너무 친 민주당 보도를 한다고 비난을 하는 시각도 있으나 내부에서 편파보도에 대한 감시가 이뤄져 민주당계 정부도 비난해야 할 건 비난하는 논조도 보였다. 이들은 이명박이 집권한 이후 정권에 크게 타격을 안겨준 광우병 보도 등으로 대립했고 이는 이명박 정권이 MBC에 강경 정책을 취한 원인이 되었다. 심지어 극우단체까지 합세해 여의도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보수 네티즌들은 MBC를 '좌비씨'라고 욕을 무지하게 해댔다.
2007년에는 정수채(당시 시사교양국 시사교양특임1CP), 최도영(당시 라디오본부 라디오편성기획부 부장), 김종길(당시 영상미술국 영상2국 부국장) 등 부장급 이상 간부들이 'MBC 선임자노동조합'을 결성했고, 2008년 2월 'MBC 공정방송노동조합'으로 개편하며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에 가입했다. 초기에는 시니어급 사원들의 권익 옹호와 복지를 중시하며 분기별 퇴임식을 '연말 퇴임식'으로 바꾸자고 하고, '임금피크제 반대'를 이슈로 내세워 2008년 6월부터 석달 간 단체협상을 진행하다가 세계금융위기로 중단되었다.
15.1.2.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편집]
이명박 정부 때까지는 언론노조 파업의 선두 역할을 하던 터라 방송 제작이 중단되는 일이 가장 많았다. 심지어 파업용 정규 편성표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 2008년 12월 26일부터 방송법 등 미디어 관계법 개정안(일명 미디어법) 저지를 위해 파업을 시작, 2009년 1월 8일 파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였다가 미디어법이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다음 날인 2009년 2월 26일부터 더욱 강력하게 파업을 재개하였다. 이 당시 유튜브를 중심으로 미국, 중국 등 각 나라 언어로 MBC의 실상을 알리는 동영상을 배포하였다. 다만 중국 사람들에게 한국의 민주주의를 도와 달라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 탓에[757] 노조에서는 실수를 깨닫고 동영상을 삭제하였으나 네티즌들은 이미 열심히 퍼나른 뒤였다. 동년 3월 인사 때 부임한 전영배 보도국장은 4월 9일 부장단 회의에서 신경민 <뉴스데스크> 앵커를 하차시킬 거라고 피력하자 이에 반대하는 기자들이 'MBC 보도본부 차장-평기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정오부터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13일 회사가 임원회의를 통해 신경민 <뉴스데스크> 앵커를 하차시키고, 교체설이 나돌던 김미화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MC를 잔류시키도록 하자(#), 라디오 PD 측은 업무에 복귀한 반면 비대위 측은 전영배 보도국장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다음날부터 임원실 복도를 점거하며 무기한 농성을 개시하고 19개 지역 MBC 지부도 서울로의 뉴스 송고를 중단하는 등의 저항을 하자, 23일 전영배 보도국장이 보직에서 물러났다.
미국 국내에서 인간광우병 발병이 단 한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간광우병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 PD수첩에서의 오역과 왜곡문제, 생방송 오늘아침 2008년 7월 29일자에서 전의경 부모 단체의 인터뷰를 멋대로 편집하는 문제 등으로 얻어맞았고, 방송 3사 중 최장기간 파업을 주도하며 열심히 이명박 정부와 치고받았다. PD수첩 문제는 대법원까지 가는 혼란 끝에 고의적인 왜곡이라는 것이 입증되지 않아 2011년에야 무죄로 결론났는데, '방송내용이 틀리지 않았다'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같은 시기 공방노도 점차 회사 비판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2009년 2월 4일 <MBC 경영진 경영평가 및 미래 관련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이메일을 통해 이뤄진 설문조사에서 전체 조합원 118명 중 81명이 응답하여 응답자 중 46%가 본사 보도논조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집계되었고, 정수채 위원장 등은 "MBC의 구성원으로서 사과한다"고 밝혔다. 동년 5월 14일에는 보수 언론단체 '방송개혁시민연대' 창설 당시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일산제작센터 비리 의혹 성명 등으로 회사를 겨냥하다가 관련자들로부터 법적 대응 경고까지 받았고, 사내 게시판에서도 정수채 위원장 파면 청원도 이어졌다.(PD저널 기사, 기자협회보 기사(일지 첨부)) 동월 28일에 회사는 인사위원회에서 정수채 위원장 및 최도영 사무국장에게 '해사 행위'로 정직 3개월, 김종길 부위원장에게 근신을 각각 내렸으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취소 처분을 받았다.
7월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 취임 후 점차 장악의 조짐을 보이다 임원 선임 문제로 다시 재점화, 결국 2010년 2월 8일 여당측 추천이사들 6명만이 참여한 이사회에서 엄기영 사장이 제출한 임원 추천 후보가 전부 각하되고 이사회에서 선임한 임원들이 전부 그 자리를 메우며 갈등이 극에 달했다. 결국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엄기영 사장이 사퇴하게 된다.
이후 김종국 기획조정실장이 잠깐 사장 직무대행을 맡다가 친정부 인사로 알려진 김재철 신임 사장이 입성하며 급속도로 우경화하며 후술된 여러 논란들을 야기했다.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관련 축소 보도, 시사프로 축소/폐지, 제작 자율성 침해, 진보 방송인 퇴출 등으로 성향까지 바꾸려 했고, 2010년 10월부터 노사 단체협약 교섭에서 국장 책임제 폐지 및 본부장 책임제 도입, 공정방송위원회의 국장 신임투표 외 일부 조항 수정 등을 요구하다 노조가 거부하자 회사는 '단체협약 파기'를 통보했고, 2012년 10월에는 단협조차 해지되어 2019년 2월 이전까지 1노조 측과는 무단협 상태가 지속됐다.
이러한 내홍은 계속되어 2012년 언론노조 MBC 본부는 MBC 파업 사상 최장기간인 170일간 총파업에 나서기도 하였으며, 여기에 언론노조 KBS본부(2노조)와 YTN지부도 연대하게끔 했지만 파업 이후 사측은 파업 참가자들을 제작 일선에서 쫓아내고 경인지사, 용인 드라미아, 미래전략실, 심의실, 사회공헌실 등지의 비취재/비제작 부서로 쫓아내는 식의 보복 인사를 단행하고, 계약/경력직(시용) 기자와 PD들을 대거 채용하며 뉴스와 시사교양 프로의 질은 더더욱 추락하고 말았다. 당시 수많은 국민들이 파업을 응원했지만 이후 사그라들었는데, 이미 경쟁사 SBS가 정상적으로 방송하고 케이블 방송이 이미 대중화된 상태여서 지상파를 대신할 대체재가 풍부했기 때문이었다.
노조의 장기간 파업 등의 내홍에도 불구하고 2012년 18대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당선으로 새누리당이 재집권에 성공하여 김재철 사장은 임기 끝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을 듯 보였지만,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승인 없이 계열사 임원 인사를 내정한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2013년 3월 26일 방문진에 의해 해임되었다. 주주총회의 과정이 남았으나 방송문화진흥회가 최대 주주라 사실상 김재철 사장의 해임이 확정되었나 싶었는데, 김재철 사장은 이사회 다음 날에 사표를 제출해 자진 사퇴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김재철 사장의 퇴진으로 MBC의 친정부적 보도나 제작 자율성 침해 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기대가 모였으나 MBC 대주주인 방문진의 구조적 한계[758] 와 정권을 쥐고 나면 공영방송을 자기 편으로 만들려는 반복되는 정권의 속성 때문에, 후임 사장들인 김종국, 안광한, 김장겸 3명을 거치면서도 이러한 문제점들은 개선되기는 커녕 심화되었다. 2013년에는 김세의, 최대현, 박상규 등 3명을 주축으로 'MBC 노동조합(3노조)'을 결성해 한국-민주 양대 노총에도 가입하지 않은 채 전체 MBC 구성원의 뜻을 모아 그들 스스로의 권익과 복지를 추구하며 정치적 성격에서 탈피한 새로운 노사문화를 만들려고 했지만, 좌파적 경향이 강한 1노조와 대립 관계로 치달았다. 2015년 12월에 회사는 1노조에 근로시간 면제 제도(타임오프제)를 인정치 않고 노조 전임자들에게 업무 복귀를 명령했고, 각 노조별로 개별 교섭해서 2016년 3노조와 단체협약을 맺었지만, 고용노동부에 단협 신고가 안 돼 있는 데다 단협안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논란이 됐다. 2017년 중앙노동위원회 측은 회사의 타임오프제 불인정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했다.
같은 시기 똑같이 우경화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KBS보다도 더 우경화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당시 야당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나 종북몰이, 심지어 세월호 유가족의 조급증이 잠수부의 죽음을 불렀다는 취지의 보도를 내보내기도 하였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극도의 중립성이 요구되는 개표방송에서조차 투표 시간이 끝나기 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하던 국회 심판론을 그대로 주장하는 내용의 보도를 내보내고,#[* 링크는 총선 당일 오후 보도, 이후 개표방송에도 똑같은 리포트가 방송되었다.] '5.18 유공자가 가산점으로 인해 공무원을 싹쓸이한다'는 식의 극우 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등# 편파적 방송을 했다. 또 2015년부터 2년 동안 방문진 이사장을 맡았던 고영주는 취임 2년 전에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하며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편파적인 주장을 하기도 하였으며 이로 인해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여 2022년에야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기도 하였다.
2016년 말경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에도 방송 3사 중 홀로 태극기 집회 보도를 촛불 집회 보도보다 앞선 순서에 배치하기도 하는 등# MBC가 사실상 극우 세력의 보루가 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촛불집회 현장에서는 현장 사이를 지나려 하던 취재차량이 시위대에 가로막혀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759]
문재인 정부 출범 뒤인 2017년에는 국가정보원 개혁위원회에 의해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2010)> 등 국정원 측 문건의 실체가 밝혀지며 이명박 정부 시기 MBC 장악 및 인위적 개편 시도의 이면이 드러나기도 했다.
15.1.3. 문재인 정부 이후[편집]
"현재 MBC 뉴스가 더불어민주당 편향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계실 것".
MBC 뉴스가 특정 정당에 우호적이라는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시민평가단의 질문에 허태정 MBC 사장 후보(MBC 시사교양본부 콘텐츠협력센터 소속 국장)의 답변. 이러한 평가를 받게 만든 박성제 MBC 사장은 MBC 사장 후보직에서 탈락하며 연임에 실패하였다.#
기자 생활 26년 했는데 촛불집회뿐만 아니라 2002년 월드컵,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같은 걸 다 봤다. 100만 정도 되는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이(검찰개혁 촛불문화제) 현장을 딱 보니까 '이건 그 정도 된다. 100만짜리다.'라고 생각했다.
박성제 당시 MBC 보도국장이 2019년 10월 1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하여 남긴 발언#[760]
2017년 문재인 정부로의 정권교체 후, 거듭되는 경영진과 간부진의 제작 자율성 침해에 저항하기 위해 PD수첩 제작진으로부터 시작된 제작거부가 MBC 내부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시사제작국, 콘텐츠제작국, 보도국, 아나운서국, 드라마본부, 편성국, 예능본부 등까지 확대되면서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5년 만에 총파업을 실시하였다. 우경화는 단순한 정치 성향의 변화만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데, 워낙 정치적 탄압을 하다 보니 정치관련 사안에 대한 탐사보도를 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거의 말라버리다시피 했다. 실제로 이후 제작된 컨텐츠들의 급격한 질적 저하를 보면 아니라고 하기 어려운 상황. 도무지 지상파에서 나오는 기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내용으로 사람들의 어이없음을 불러일으킨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도 이후에 나온 일.
김장겸 사장에 이어 22대 MBC 사장으로 최승호 PD가 취임하였다. 최승호 사장은 뉴스타파의 정치적 성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분명한 좌편향 성향을 띄는 인물이다. 부임하자마자 논란이 많은 인사였던 배현진을 공개적으로 저격하고 앵커직에서 하차시켰다. 또한 공개적으로 김성주를 MBC에서 기용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761] 과거 정부에서 뚜렷한 정치적 색채로 출연제한을 받던 김미화나 주진우를 기용했고, 2018년 1월 'MBC 정상화위원회'를 꾸려 2008년 2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자행되었던 편파/왜곡보도, 제작 자율성 침해, 부당노동행위 등을 조사하고 관련자를 징계하는 등 정권이 추진하던 적폐청산에 적극 호응하였다. 그러나 방송국 경영과 윤리 부분에서는 실책이 많아 우파 정치권과 본사 제3노조 등지에서 비판이 이어져 왔다. 2019년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이 옛 보도국 간부들 등 파업 불참기자 88명 중 83명을 보도현장에서 배제했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정상화위 활동도 조사 대상자들과의 법적공방 등으로 인해 2019년 서울고법에서 조사/답변 강제 등 일부 효력이 정지됐고, 2021년에 활동을 종료했다.(관련 보고서) 다른 한편 2019년 2월 28일 단체교섭에서 노사는 인사권 남용 금지, 쟁의 기간 중 대체인력 채용 금지, 부당노동행위 가해자의 인사위 회부 의무화, 국장 책임제 복원, 공정방송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 등을 명시한 새 단체협약을 맺었다.
뉴스데스크는 이후 2~4%대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었는데, 이는 기존 진보성향 시청자들을 끌어올 것이라는 일각의 기대(?)와 달리 그닥 최승호 체제가 친정부적이지 않기 때문이란 해석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최승호 사장 체제는 진보 색채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정의당'쪽 색채에 가깝다. 이 때문에 현 정부를 지지하는 리버럴-진보 성향(소위 '친문') 시청자들은 MBC를 소위 '내부총질'하는 사람들로 보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2019년 말부터 반등이 시작되었다. 조국 사태가 일어나자 범친여, 친정부 성향 언론들 중에는 유일하게 상승하였다.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TV조선 뉴스 9과 함께 조국 사태로 시청률이 오른 몇 안 되는 뉴스이다. JTBC는 비판적인 보도로 친문 성향 시청자들의 대규모 이탈이 있었지만 MBC는 조국 일가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을 '수사권 남용'이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여권의 '조국 수호'에 적극 동참, 시청률이 상승했다. 그 결과 JTBC 뉴스룸이나 SBS 8 뉴스에게 시청률이 밀리지 않게 되었다.# 특히 2%대에서 머물던 기존 주말 뉴스 시청률이 크게 올라 평일 시청률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게 되었고, 반대급부로 주말 JTBC 뉴스룸 시청률이 크게 하락하였다.
2022년 기준 전반적인 스탠스는 친문, 친민주당 성향이기에, 클리앙, 딴지일보, 보배드림, 루리웹 등의 친문 성향 커뮤니티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
한일 무역 분쟁 이후 일본을 비판하는 기사가 많이 나왔다. 중국에 대해서는 홍콩 사태 이후 부정적인 논조를 보이며, 중국 어선의 인도네시아인 선원 착취 문제를 고발하는 등의 비판적인 논조를 어느정도 보이고 있다.
한편 여야 막론하고 타 방송사 대비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을 유독 많이 배출한 언론사다.#[762]
2021년 7월 야권대선후보로 유력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공격하기 위해 MBC 취재진 경찰 사칭 취재 사건을 저지르는 실책을 범했다. 방통위도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 결과를 재허가 심사에 반영시키곘다고 강조할 정도였다.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인 김건희 인터뷰 녹취록 공개와 관련하여 공공의 이익 부합이냐, 사적 대화 공개냐는 논란이 있었으나, 법원은 수사중 사건 등 3가지 특정 발언 방송금지라고 일부 인용하고 나머지 기각을 결정했다.[763] MBC가 직접 취재한 것이 아닌 서울의 소리[764] 에서 취재한 것을 가지고 MBC에서 대신 방영한다고 해서 논란이 또 생겼으나, 그러나 MBC 스트레이트에서 김건희 녹취록을 방영했다.
대중들의 시선이 쏠리면서 17.2%라는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기록했다.[765][766] 다만 당초 기대를 모은 것과 달리 방송이 몇가지 녹취들만 짧게 공개하였고 경위와 맥락을 설명하지 않는 바람에 정치 저관여층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데 실패했다는 평이 대다수여서 보수 진보 양측으로부터 비판 받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다는 촌평이 나오기도. 심지어 본방 사수하라고 SNS 등을 통해 그렇게 독려하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방송이 끝나자마자 MBC에 욕을 했다는 후문이 있다. 결국에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두번째 방송을 취소했으며, 친 민주당 성향의 매체에서 이후 녹취록은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공식선거운동 첫 날이었던 2월 15일 MBC 뉴스데스크 다시보기에는 윤석열 후보의 유세 현장 보도를 삭제하기도 했다. 이 보도는 단독 영상으로만 올라와 있고, 전체 다시보기에서는 삭제되었다. 다음날 오전 1시경 다시 업로드된 다시보기 영상에는 윤 후보의 유세 보도가 포함되었으나, 이미 방송 후 7시간이 지나[767] 이미 뉴스로서의 의미는 없어진 상황이었다.
대선 이후에도 이 기조는 유지되는 추세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인사 비위와 관련해서 하루에 1~3개씩 단독보도를 꾸준히 내보내지만 이재명과 민주당 진영 연관 인물 관련 수사에 대해서는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아주 적게 보도하고 있다. 특히 여권에서는 민주당의 기관지와 같은 강한 비난을 하고 있다.[768] 정반대의 정치적 입장을 가져 야권에서에 강한 비판을 받는 TV CHOSUN, 채널A와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021년 2월 3노조 측은 최승호 사장 등 관련자들을 고소했는데, 2022년 12월 들어 고용노동부 측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라고 밝혔다.
2022년 6월에는 5년 전 파업 불참 기자 80여명을 취재업무에서 배제했다고 주장하며 박성제 사장 등 간부들을 고소했으며, 8월 8일에는 오정환 전 보도본부장 등 기자 6명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낸 인사 발령(부당전보)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재판부는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화해 권고를 냈다.(미디어오늘, 뉴데일리) 10월 26일엔 고용노동부가 3노조 측의 요청에 따라 특별근로감독을 시작한다고 발표하여 12월 23일까지 진행했고, 2023년 1월 10일 조사 결과 체불임금 9억 8,200만원, 유급휴가 미사용 수당 지급 등 노동관계법 위반 9건이 나왔다.
15.2. 프로그램 편성[편집]
15.2.1. 드라마[편집]
소관부서는 한동안 TV제작본부 산하 드라마국이었으나 2011년 2월 조직개편에 따라 TV제작본부가 해체되면서 '드라마예능본부'로 개편됐고, 몇달 후 드라마본부로 명칭을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드라마의 퀄리티와 시청률이 모두 높아 한때 'MBC = 드라마 왕국'이라 불리는 시절이 있었고, 개국 시부터 2008년까지 탤런트 공채제를 해왔기에 조경환, 임현식, 박은수, 박원숙, 김용건, 이계인, 심양홍, 유인촌, 임채무, 김성찬, 고두심, 박윤배, 김동현, 조형기, 이혜숙, 김청, 김주승, 이창환, 장동건, 안재환, 조민기, 김남길 등 숱한 명배우들이 배출됐고, 최불암과 김혜자, 정애란, 박규채, 이영후, 변희봉, 전운, 정욱, 이대근 등 대선배들이 그들을 뒷받침했다.
2010년대 초반부터 방송3사 모두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와중에 MBC 드라마는 이 시기부터 주중과 주말을 구분하지 않고 장편 드라마를 많이 방영했고, 주중 드라마들은 침체기를 맞았다. 특히 2016년. 그 와중에 MBC에서 자체 제작한 아이템이 대박까지는 아니었으나 2049 시청률은 잡았다. 2020년부터 주말특별기획을 폐지하고 월화드라마를 집중적으로 편성하기로 전격 결정했으나, 얼마가지 못했고 아예 2021년에는 일일드라마 2개와 미니시리즈 4개만 방영하기로 결정하면서 요일에 얽메이지 않고 편성하기로 했다. 또 러브씬넘버#같은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도 매주 월요일에 편성하기로 했다. 드라마본부 내에 있던 기획과 제작 부서 역시 2020년에 이미 통합했다. #
주로 인물[769] 이나 어느 한 분야에 집중[770] 하는 드라마에 꽤 높은 완성도를 보이며, 현대 정치사극[771] 분야에서는 타 방송국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다. 사극 뿐 아니라 트렌디 드라마에서도 명작도 많이 쏟아내었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역시 드라마는 MBC라는 평가까지 받았으나...[772]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평준화되면서 큰 의미는 없어졌다. 각 방송사간 스탭이나 PD 작가들이 많이 이동도 했고, 외주 제작의 비중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MBC 주말드라마는 토요일 주말특별기획 연속편성으로 줄이고, 일요일에 방영하는 주말드라마는 2019년 3월 내 사랑 치유기를 끝으로 폐지하고 예능프로그램 연속 블록으로 편성하였다. 내 사랑 치유기의 시청률은 10%대를 꾸준히 유지하였지만 2049 시청률이 미운 우리 새끼 때문에 좋지 못했는데, 폐지하고 편성한 예능 호구의 연애는 2%대, 뒤이어 방영하는 구해줘 홈즈는 5~7%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나 광고시장 타깃층인 2049 대상으로는 호구의 연애는 TV 화제성쪽 순위권으로,
마지막으로 전통적으로 저녁 10시대에 방송하였던 월화드라마, 수목드라마는 검법남녀 시즌2, 봄밤부터 9시로 당겼는데, MBC의 기대작이었던 아이템과 더 뱅커가 2~4% 시청률로 고꾸라졌던 것에 비하면 6~8%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어 성공한 것으로 보이고, 뜬금없이 종편처럼 10시대로 이동한 교양/예능 프로그램들도 큰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이 프로그램이 5~7%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어 이러한 변칙 편성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3월부터 폐지되었던 월화드라마가 공식적으로 부활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이 첫 타자. 월화드라마를 재개하면서 주말 특별기획을 폐지하기로 결정했고, 두 번은 없다를 끝으로 3월 초에 주말 특별기획은 막을 내린다. 사실상 바통을 넘겨 받는 셈. 원래 계획대로라면 2월 마지막 주에 두 번은 없다가 종영하고 바로 3월 첫째 주에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이 방영 예정이었지만, 결방으로 인하여 계획보다 1주 밀리게 되었다.
다만 드라마 쪽은 여전히 별다른 대박작이 없으며 이전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그나마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 그 남자의 기억법, 카이로스 등은 시청률은 낮았지만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작품성은 인정받는데 성공했다. 전체적으론 2018년 말부터 지상파 중 눈에 띌 정도로 막장 드라마의 비중을 줄이고 장르물의 편성[773] 을 대폭 늘렸고, 대부분 작품성 측면에서는 좋은 평을 받았으나, 반대로 시청률은 완전히 놓쳐버린 모양새다.[774][775] 결국 2020년 말 월화 드라마와 수목 드라마가 모두 잠정 휴식에 들어가면서 일일 드라마가 유일한 정규 편성 드라마였던 시기를 보냈다가 2021년 초 오! 주인님을 시작으로 미니시리즈를 재개했다.[776] 그러나 간만에 재개한 미니시리즈도 계속 부진하기 짝이 없어 암울한 상황이 계속되던 차에 2021년 말에 방영한 사극 하나가 하반기 최고의 흥행작으로 거듭나며 그나마 숨은 돌리게 되었다.
2022년 상반기 기준으로 금토드라마와 일일드라마 외에는 방영하지 않고 있다가 지금부터, 쇼타임!으로 오랜만에 주말 드라마 시장에 재진출했다.[777]
15.2.2. 예능[편집]
소관업무는 과거 TV제작본부 산하의 예능국에서 맡았는데 2011년 2월 조직개편으로 TV제작본부가 해체되고 새로 출범한 드라마예능본부에 넘어갔다가, 동년 5월에 예능본부로 분할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예능본부와 콘텐츠협력센터 제작2부 소관이다. '예능 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예능 프로그램이 풍부하며, 지상파 채널 중에서는 컨셉이나 아이디어 등도 타 방송사에 비해서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듣는 방송사이기도 하다.[778] 그 사례를 몇 가지를 꼽자면 공익 예능의 시초인 양심냉장고, 예능의 역사를 바꾼 무한도전, 관찰 예능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우리 결혼했어요, 아빠와 아이의 여행기로 육아 예능을 메이저 계열로 올려놓은 아빠! 어디가?, 이런저런 욕은 먹긴 했지만 군대 예능이라는 새로운 루트를 개척한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크리에이터 열풍의 시발점인 마리텔, 시청률은 말아먹었지만 새로운 컨셉으로 화제성 만큼은 확실히 거며 쥔 두니아, 부동산 예능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장르를 개척한 구해줘! 홈즈, 부캐 전성시대를 연 놀면 뭐하니?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많이 양산하기 때문이다. 또한 MBC 예능국은 말 그대로 MBC의 밥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실제로 한국인이 뽑은 최고의 예능 설문조사에서는 무한도전이 방송되었을 때에는 무한도전이, 본좌가 물러난 자리에는 나 혼자 산다가 연임했고, 무엇보다 대한민국 예능PD 쌍두마차 중에서 김태호 PD가 오랫동안 MBC에서 있어주었기 때문이다.[779] 또한 2001년 MBC 코미디대상을 MBC 방송연예대상으로 바꾸면서 연예대상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만들어 낸 방송사이기도 하다.[780]
1970년대 후반(추정)~1999년까지 음악 프로그램 오프닝에 회차가 나온 후에 (장소) 생방송 혹은 공개녹화라는 자막이 떴었다. 예를 들면 여의도 공개홀에서 생방송하면 '여의도공개홀 생방송'이라는 자막이 오프닝에 떴었다.
2006년에 메탈리카 내한 공연을 보여주었다.[781] 공연 영상[782]
다만 변칙 편성 이후로 시청률 저조로 인해 폐지된 금요일 밤 8시 30분대,
2019년 연말부터 놀면 뭐하니?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2020년 싹쓰리와 환불원정대로 연이어 대박을 터트리며 주말 예능, 나아가 트로트 관련 예능을 제외하고는 전체 예능을 통틀어 최강자 자리에 오르게 된다. 거기에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복면가왕, 구해줘! 홈즈, 백파더 : 요리를 멈추지 마! 등 다른 예능들도 대부분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예능 왕국 MBC의 명성을 되찾았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 가리지 않고 타 방송사에서 유명해진 스타를 제일 먼저 섭외하는 편이다. 프로듀스 101 시즌2의 Wanna One, 프로듀스 48의 IZ*ONE, EBS의 캐릭터 펭수, 내일은 미스트롯의 송가인, 내일은 미스터트롯 TOP 7이 있다. 하다못해 JTBC에서 퇴사한 프리랜서 방송인인 장성규도 타 방송국 중 MBC에 가장 먼저 출연하였다.
음악 예능을 타 지상파와 비교해 상당히 수준급의 퀄리티로 찍어내는 편이다. 2010년대 이후 등장한 나는 가수다 시리즈, 복면가왕, 듀엣가요제가 대표적. 무한도전과 그 정신적 후속작인 놀면 뭐하니? 역시 음악 프로젝트는 내는 것 마다 히트를 쳐 냈다. 다만 이 때문에 방송사의 음원 차트 교란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이 문제 때문에 연예 기획사들은 별로 탐탁치 않아 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실제로 나가수, 무한도전 가요제, 놀면 뭐하니 싹쓰리/MSG 워너비 프로젝트 때에는 가요계가 대놓고 들이박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예 기획사들의 태도는 아이돌 편향의 가요계 판도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일반 대중들에겐 도리어 내로남불로 인식되는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다만 오디션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그닥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시즌 1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진했다. 특히 프로듀스 101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을 열심히 보도하면서도 해당 사건과 관련 있는 인물인 한동철과 손잡고 방과후 설렘을 런칭한 것이 많은 비판을 받았다.
공개홀의 음향이 타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은 편이다. 당장 일산 드림센터 공개홀(ST 6)은 국내 방송사 중 거의 최고 수준의 음향 수준을 자랑하며, 상암동 본사 공개홀(D스튜디오)은 여기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다소 노후화된 KBS 여의도 신관 공개홀(TS-15)과 SBS 등촌동 공개홀에 비하면[784] 우위를 점하는 편이다. 뿐만 아니라 일산과 상암 모두 공개홀 대기실 개수를 넉넉하게 구비해 두었고, 특히 상암으로 온 이후로는 3사 음악방송 중 거의 유일하게 연차가 낮은 신인급 가수들도 무조건 단독으로 대기실을 배정해 주어서 업계에서도 평판이 제일 좋은 편이다.
다만 MBC는 예능은 잘 만들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785]
15.2.3. 스포츠[편집]
소관부서는 보도본부 산하 스포츠국이며, KBS처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다 보니 김용, 김충식, 송재익, 임주완, 양진수, 고창근, 김창옥, 송인득, 김성주 등의 캐스터, 허구연, 신문선, 김소식, 이우현, 방열, 차범근, 안정환 등 해설위원들을 배출했다.
하계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종합 대회에서는 KBS에는 밀리나 SBS는 제치는 만년 콩라인 이미지가 강하다. 동계 올림픽은 SBS가 강세인 탓에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으나 반대로 월드컵에서는 현재 KBS와 1위 싸움을 놓고 경쟁중이다. 1998년 신문선-송재익 콤비, 2002, 2006년에는 차범근을 앞세워 당당히 시청률 1위를 차지한 적도 있었고 2014, 2018년 월드컵에서는 KBS에 밀려 콩라인이었지만 결승전에서만큼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야구에서도 MBC의 강세가 두드러지는 편. MBC는 1982년 프로야구를 출범시키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자사 야구팀까지 만들었다.[786] 청룡의 존재로 인해 프로야구 초창기 올스타전이나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모두 MBC가 중계를 도맡아 했다. 또한 MBC 야구 중계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게 허구연. 편파중계 등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고는 있으나 가장 대중적인 해설이다 보니 시청률 면에서 성공하고 있다. 다만 캐스터의 경우 2018년 이후 기용되고 있는 김나진에 대한 비판이 많은 편이다. 허구연이 2022년 KBO 총재에 취임하면서 변화를 맞이했다.
2020년까지는 MLB 중계권을 MBC가 갖고 있어서 류현진 선발 경기를 꾸준히 중계하고 있었다. 2001~4년에도 MBC가 단독 중계권을 거액에 사간 적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MBC는 이 기간 동안 국내 야구를 중계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계권료를 감당 못할 상황이 되어 재계약에 실패해 2021년부터는 SPOTV가 메이저리그 중계를 맡으며 MBC에서 메이저리그 중계를 최소 2028년까지는 보지 못하게 되었다. 다만 2022년 사직야구장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릴 MLB 월드 투어: 코리아 시리즈 2022는 보편적 시청권 문제로 인해 MBC에서 중계를 맡게 되었지만 시리즈 자체가 취소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골프는 SBS가 개국 초기부터 밀어주고 자사 골프 채널을 따로 두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가려진 감이 없진 않지만 의외로 대회 생중계를 가장 먼저 한 방송국이 MBC다. 1995년 9월 3일 패스포트 오픈 골프대회를 중계한 것이 그 시초. 중계 횟수가 드물지만 매년 오렌지라이프 인비테이셔널 대회를 정기적으로 중계하며 최초 골프 중계방송사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농구는 전신 MBC ESPN 시절부터 올라간다. MBC ESPN으로 시작된 2008-09 시즌부터 본격적인 중계를 시작하면서 2011-2012 시즌부터 알려지더니 2016-17 시즌부터 2020-21 시즌까지 MBC SPORTS+가 KBL 주관방송사가 되었지만[787] 시청률이 극도로 낮아 제작비용이 많이 들었고 결국 2018-19 시즌을 끝으로 중계권을 반납했다. 결국 2019-20 시즌부터는 SPOTV에서 중계한다. 그래도 WKBL 중계는 2019-20 시즌에는 오프튜브로 했다가 MBC 미디어넷에서 당구 그랑프리를 만들어 전파했는데 1~2년만 할 것으로 보이는지 2021-22 시즌부터는 WKBL 중계를 현장과 오프튜브를 모두 포함해서 중계를 하게 된다. WKBL 주관방송사는 2013-14 시즌부터 KBS N SPORTS가 맡고 있으나 V-리그 주관방송사까지 맡으면서 일정부분 내준 점도 있다.
프로 스포츠 중계 시 주말 낮경기에서 일요일 경기 중계 편성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방송사다. 이는 토요일의 경우 쇼! 음악중심과 간혹 편성되는 5시대 예능 방송이 있기 때문에 편성이 어려운 반면 일요일은 복면가왕 이외의 예능 프로그램이 없어 편성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KBO 리그[788] 나 K리그1[789] 중계가 일요일에 종종 편성되고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때 네이버 지식iN에서 긁어온 듯한 국가 소개 자막을 보여주어 올림픽 방송의 예능화를 꾀한다는 말도 있었다. 짐바브웨의 "살인적인 인플레"라든가, 가나를 "예수가 처음으로 기적을 일으킨 곳"이라고 하는 병맛을 연출하기도.
15.2.4. 교양[편집]
1969년 TV 개국을 전후해 개설된 TV제작국 산하 제3제작부가 효시이며, 1971년 5월 TV제작국이 TV편성국 및 TV총국으로 분할되면서 TV편성국 중계특집부에 배속되었다가 한달 후 TV편성 및 TV총국이 TV국으로 통합되자, 구 TV편성국 산하였던 제1~2제작부 및 중계특집부가 합쳐져 TV제작부가 되었다. 1973년에는 TV제작부를 제1~2부로 분할시킨 뒤 1976년에 TV국이 TV제작국으로 개편되자 TV제작부도 셋으로 쪼개지면서 제작3부로 다시 출범했다. 1983년에는 별개 조직인 교양제작부도 생겼다.
1984년부터 이 둘이 통합해서 '교양제작국'으로 승격되어 1992년 8월부터 부 단위 조직을 없애고 담당자의 보직명을 'CP'로 고쳐 생활정보, 문화정보, 사회교양1~2, 다큐멘터리1~2로 세분화한 후 1993년에는 사회교양1~2CP를 부장급 PD 1명이 맡도록 했다. 1994년부터 '팀' 단위로 바꿨다가 1998년에 CP로 환원되었으며, 2000년 초에 특임CP제도 도입되었다. 동년 10월부터 구 시사정보국 소속 PD들을 받아들여 시사교양국으로 개칭했다가 2001년 10월 조직개편으로 보도제작국과 합쳐지면서 '시사제작국'으로 출범됐고, 2002년 4월 조직개편 때 시사제작1~2국으로 분할되면서 시사제작2국에 속했다가, 2003년 시사제작1~2국이 시사교양국과 보도제작국으로 다시 개편되어 시교국에 다시 속했다. 2009년 3월부터 CP가 '부' 단위로 변경되었다.
한동안 TV제작본부(구 제작본부)에 남다가 2011년 TV제작본부가 편성본부와 통합되면서 편성제작본부 산하에 속했다. 2012년 시교국의 해체로 다큐 부문이 교양제작국으로 분리됐다가 2014년 안광한 사장 취임 후 10월 들어서 교양제작국이 해체되면서 다큐 제작업무는 콘텐츠제작국(구 콘텐츠협력국), 교양 프로 제작은 예능본부 예능1국 산하 제작4부로 각각 흩어졌지만, 2017년 최승호 사장 취임 후 시사제작국과 함께 '시사교양본부'로 통합/부활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시사교양본부와 콘텐츠협력센터 제작1부 소관이다.
타 장르와는 반대로 교양 프로그램의 비중은 다른 방송사들에 비해 적은편이며, 다큐멘터리는 보기가 힘들다. 대신 가끔 다큐멘터리 면에서 엄청난 수작을 뽑아내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2021년 현재까지도 최고의 다큐멘터리로 꼽히고 있는 눈물 시리즈[790] , 유튜브 조회수 2400만뷰를 기록한 너를 만났다가 있다.
15.3. 여담[편집]
- 발음하기가 편하다. KBS를 읽으면 "케이비에스" SBS를 읽으면 "에스비에스"인 것에 반해 "엠비씨"로 읽을 수 있다. SBS에 스브스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 중 하나가 발음하기 어려워서이기도 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방송사는 발음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정상이다. 아주 좋은 예로 BBC와 CNN을 들 수 있다.
- 무한도전에서 나온 "마봉춘"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그 외 멸칭으로는 "엠병신(M Byung Chin)"(혹은 엠빙신)이나
Kae Byung Sin이나 Ssi Bang Sae도 가능하다"엠조선, "엠창병신"을 가지고 있고, 2010년 친정부 성향의 김재철이 사장직에 올랐을 때는 "명박씨", "MB씨" 등도 쓰였다. 물론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수립되고 총파업을 거쳐 최승호가 사장이 된 이래 비판을 목적으로 하는 글이 아닌 이상 명박씨나 MB씨는 잘 쓰이지 않는다.
- 일산 드림센터에 가면 MBC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전시물이나 연표 말고도 모니터가 여러 대 있는데 우측 하단에는 연도가 있고 그 연도에 해당하는 과거 MBC 프로그램의 샘플 영상과 당시 역사적인 빅 뉴스들이 나온다. 지금은 VOD로도 보기 힘든 옛날 TV 영상이니 나름 가치는 있다 할 수 있겠다. 구 MBC 마스코트인 엠비즈의 모습도 저 전시물 중 88올림픽 기념 부분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 과거 상업광고 기획/제작업무를 맡은 바 있는데, 1961년 창사 초기부터 업무부 산하에 CM과를 두고 라디오 광고들을 제작해왔고, 1965년 조직개편에 따라 업무부가 '업무국'으로 승격되면서 CM과도 'CM제작부'로 개편되었으나 1969년에 폐지되었다.
그래서인지 오리엔트시계와 고려합섬 광고 대표적인 예시이며,[791] 위와 같이 실제로 MBC는 과거에 한국연합광고-MBC애드컴으로 이어지는 종합광고대행사를 계열사로 둔 적도 있다. 자체 명의로 된 제작[792] 말고도 촬영시설 제공도 했었는데, 1980년을 기점으로 TV송출이 컬러화될 때 준비를 미처 마치지 못해 컬러촬영 기재와 시설이 부족했던 다른 광고대행사들이나 프로덕션[793] 들에게 직접 촬영시설을 유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당시의 방송 기자재과 시설을 가지고 방송국에서 TV광고를 찍었다[794] 는 이야기다. 물론 KBS도 예외는 아니었으나, 지상파 방송국에서의 광고 제작은 MBC가 단연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 지상파 방송사 광고방송 중에서는 음질이 제일 깨끗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