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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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러시아 제국은 루스 차르국 로마노프 왕조의 제4대 차르였던 표트르 대제가 1721년에 제정을 선포한 이후부터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의해서 군주제가 붕괴될 때까지 197년간 존속했던 전제군주제 국가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표트르 대제 이전 로마노프 왕조의 시작까지, 또는 루스 차르국의 성립 시기까지도 거슬러 올라가 러시아 제국으로 보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스크바 대공국·루스 차르국·러시아 제국 기간은 단절기간이 없는 단일국가이며[4] 시대구분을 위한 분류에 가깝다. 모스크바 대공국 시절에도 이미 '러시아'라는 단어는 많이 쓰였고 반대로 러시아 제국 시절에도 '루스'라는 단어가 많이 쓰였다.
제정시대의 러시아와 이후 소련의 구성 공화국인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현재의 러시아를 구분하기 위해 '제정 러시아'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10세기부터 17세기까지 러시아 땅은 귀족 영주들인 보야르들이 다스리고 있었다. 이반 3세 시절에 왕국의 영토를 3배로 늘리면서 세력을 대대적으로 넓혔고, 1613년에는 후일 러시아 제국의 황가가 되는 로마노프 왕조가 들어섰다.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표트르 대제는 내정을 개혁하여 귀족 세력을 억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며 본격적인 서구화 정책을 펼치면서 러시아의 국력을 몇 배로 증강했다. 그 뒤에 황제가 된 예카테리나 2세가 영토를 넓히면서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인구 면에서도 1900년 기준 전세계 인구의 12분의 1이 러시아 제국의 신민이었다.[5] 알렉산드르 1세 재위기에 나폴레옹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에 성공하며 서방권에서도 인정받는 열강 세력으로 떠올랐다. 알렉산드르 2세는 4천만 명에 달하는 농노를 해방하였고 오스만 제국 내의 동방정교회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강화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제1차 세계 대전 시절 영국과 프랑스의 편을 들어 협상국으로서 참전하였다. 그러나 오랜 전쟁과 피폐한 경제로 인해 제국은 갈수록 파탄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버티다 못한 국민들이 2월 혁명을 일으켜 마지막 차르인 니콜라이 2세를 폐위시키고 러시아 공화국을 세우면서 러시아 제국은 멸망하고 만다. 그러나 공화국 내에서도 파벌이 나뉘어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다가 결국 10월 혁명이 터져 볼셰비키가 집권하고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 들어서게 된다. 새롭게 권력을 잡은 레닌과 공산주의자들은 왕정 복고주의자들을 두려워하여 1918년에 시베리아로 귀양을 갔던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을 총살했고, 1922년에는 소련이 들어섰다.
제국 말미의 혼란으로 인해 부정적인 인상이 강하지만, 러시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이자 인류 역사상 3번째로 넓은 영토를 보유했던 나라이기도 하다. 현재의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인 소련보다도 영토가 더 넓었다.
2. 상징[편집]
2.1. 국기[편집]
러시아 제국의 국기는 현재 러시아의 백청적 삼색기와 모습이 똑같았다. 러시아/국기 참조.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던 1600년대 이래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깃발들 중 하나였던 백청적 삼색기는 1705년에 러시아의 공식 상선기(선박에 게양하는 깃발)로 지정되고 이후 러시아 제국을 상징하는 깃발로 자리잡았다. 백색은 하느님, 청색은 황제, 붉은색은 나라 혹은 국민들을 상징했다.[6] 다만 공식적인 국기는 아니었다.
백청적 삼색기가 국기로 정해지기 이전엔 러시아 제국의 국기는 검은색, 노란색, 백색으로 이루어진 흑황백 삼색기였다. 1858년 6월 11일 알렉산드르 2세의 칙령으로 지정된 국기로, 1858년부터 1896년까지 사용되었다. 현대의 러시아 국기로 친숙한 백색, 청색, 적색으로 이루어진 삼색기는 1883년 4월 28일 알렉산드르 3세의 칙령으로 위의 흑황백 삼색기를 대체하고 새롭게 정해진 국기이다. 다만 백청적 삼색기가 제정된 이후에도 위의 흑황백 삼색기를 계속 혼용해서 썼고, 1896년 니콜라이 2세가 즉위한 이후에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백청적 삼색기를 정식 국기로 인식했다. 참고로 이 백청적 삼색기는 1917년까지 사용했다.
백청적 삼색기의 왼쪽 위에 노란색 방패문을 넣어 만든 깃발은 국기는 아니고 황제가 쓰던 개인용 깃발. 현대 러시아와 똑같은 국기를 러시아 제국의 국기랍시고 내놓으면 구분이 어려운 탓에 러시아 제국을 표현할 때 이 노란 방패문을 넣은 국기를 보통 역사를 설명하는 영상이나 자료에서 시대별 국기를 구별하기 위해 표시된다. 이 깃발은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1914년에 황제와 국민 간 통합을 위해 만들어졌다.참고
2.2. 국장[편집]
러시아 제국의 국장은 기본적으로 3가지였다. 위에 볼 수 있는 형태의 국장은 'Greater Version'이라고 해서 1882년 11월 3일에 제정된 국장으로, 제국을 상징하는 국장들 중 가장 화려하고 복잡한 버전의 국장이었다. 이후 1883년에 이를 간략화해서 만든 중간과 소형 버전의 국장들도 연이어 나왔다. 보면 알겠지만 국장의 장식이 굉장히 많아서 눈이 어지러울 정도인데, 천천히 뜯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가장 한가운데에는 검은빛 쌍두독수리가 그려진 황금빛 방패가 들어가있다. 방패 속의 쌍두독수리는 각 머리에 1개씩, 그리고 두 머리들 중앙에 러시아 제국 황제관을 1개 쓰고 있으며, 발에는 보주와 셉터를 하나씩 쥐고 있다. 독수리의 가슴에 박힌 사각의 문장은 모스크바의 문장으로 기독교의 성 게오르기우스가 사악한 용을 무찌르는 모습이다. 중앙의 왕관에 달린 푸른빛 띠는 성 안드레이 기사단[8] 의 상징이다.
금빛 방패 위에 얹힌 투구는 노브고로드 공국과 키예프 공국의 대공인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투구다. 방패 양 옆으로 대천사 가브리엘과 미카엘이 서있으며, 광채를 내뿜는 천사와 방패를 백색 담비 털로 만든 거대한 금빛 덮개가 뒤에서부터 덮고 있다. 덮개에는 'Съ нами Богъ'[9] 라는 표어가 씌었고, 위에는 러시아 제국 황제관이 얹혔다. 황금 참나무잎이 아래에서부터 빙 둘러 문장을 감싸는데, 이 위에는 여러 도시들의 문장들이 얹혔다.
총 15개 국가들을 상징하는 문장들이 있는데, 개중 9개는 참나무 잎장식 위에 올라가 왕관을 썼고 나머지 6개는 위쪽에 따로 있다. 참나무 잎 위에 놓인 9개 문장들이 상징하는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크기가 크거나 세력이 강한 세력들이었고, 나머지 6개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먼저 참나무 잎 장식 위의 9개 문장들은 맨 왼쪽 위에서부터 반시계 방향으로부터 각각 카잔 칸국, 폴란드 왕국, 타브리다현(크림반도), 키이우와 블라디미르-수즈달과 노브고로드 연합, 로마노프 왕조, 핀란드 대공국, 조지아, 시베리아, 아스트라한을 상징한다. 위쪽에 있는 6개 문장들은 맨 왼쪽부터 벨라루스, 리투아니아의 북동부 지역들, 스몰렌스크 등을 포함한 대러시아의 도시들, 남서부 지역의 도시들, 에스토니아 등을 포함한 발트 해의 지역들, 투르케스탄 지역을 상징했다.
2.3. 국가[편집]
2.3.1. 승리의 천둥이여, 울려라![편집]
1833년까지 불려진 비공식 국가이다.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가브릴 데르자빈(Гавриил Романович Державин, 1743년 7월 14일 ~ 1816년 7월 20일)이 작사했으며 오시프 코즐롭스키(Осип Антонович Козловский, 1757년 ~ 1831년 3월 11일)가 작곡했다. 러시아 장군 알렉산드르 수보로프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이즈마일 요새를 점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노래이다. 1833년에 공식 국가의 등장으로 대체되었다.
2.3.2. 러시아인의 기도[편집]
실제로 1815년 버전의 멜로디는 영국 국가를 차용했다. 러시아의 몇몇 학자들은 작곡가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하기는 하는데 솔직히 너무 비슷하다. 작사가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인 바실리 주콥스키(Василий Андреевич Жуковский, 1783년 2월 9일 ~ 1852년 4월 24일)이다.
러시아에서 국가(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гимн)라고 불릴 만한 노래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1815년경으로 추정되는데, 이때는 알렉산드르 1세가 제위에 있었으며 나폴레옹의 침략을 막아낸 조국전쟁과 같은 큰 전쟁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때문에 자연스레 황제를 중심으로 한 애국적인 가사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2.3.3. 하느님, 황제를 보호하소서![편집]
바실리 주콥스키가 작사했고 알렉세이 리보프(Алексей Фёдорович Львов, 1798년 6월 5일 ~ 1870년 12월 28일)가 작곡했다. 주콥스키는 상기한 〈러시아인의 기도〉를 작사한 사람이기도 하다. 1905년 피의 일요일에 황제의 겨울 궁전을 향해 이콘을 들고 행진했던 시민들이 불렀던 노래가 바로 이 곡이며, 1917년 혁명에 의해 제정이 무너지기 전까지 러시아의 국가로 불렸다. 영화 〈북경의 55일〉에서도 등장한다. 영상.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의 테마로 등장한다.
3.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러시아 제국/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영토[편집]
대영제국, 몽골 제국의 뒤를 이어서 인류 역사상 세 번째로 면적이 넓은 나라였다. 즉 국토가 매우 거대했는데 당시 시대만 해도 대영제국 다음으로[11] 크고 아름다운 국가였다. 그리고 이때가 러시아 역사상 영토가 가장 컸을 때[12] 인데, 영국이 아프리카 종단을 거의 완료한 1895년부터 캐나다가 1931년 독립하기 전까지는 영국에 밀려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가 아니었지만[13] 이보다 영토가 훨씬 작아진 21세기 러시아는 다른 열강이 식민지를 거의 다 잃은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큰 나라이다.[14] 3개 대륙(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에 영토를 가지고 있던 나라였다.
러시아가 북아메리카에서 알래스카만 차지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러시아는 여기서 더 남하해서 오늘날 캐나다의 밴쿠버 지역과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영유권을 두고 영국과 마찰을 빚었으며, 19세기 초에는 캘리포니아 북부까지 남하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5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로스 요새(Форт-Росс, Fort Ross)'를 짓기도 하였다. 스페인령 캘리포니아의 북쪽 경계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기에, 스페인에서는 자기 식민지 근처까지 모피 찾아 내려온 러시아인들을 보고 기겁했다.
심지어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미국이 들어오기 전에 하와이 일부 섬까지 진출해서 요새를 쌓기도 하여 하와이 원주민들이 러시아에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하와이 제도 내부에서 다른 섬의 부족장들끼리 권력 다툼이 일어나던 와중에 오늘날 하와이 제도 서북부 카우아이 섬의 부족장인 카우무알리가 하와이 섬의 부족장인 카메하메하 1세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 제국의 힘을 빌리려 한 것이다.[15] 동아프리카 지부티의 사갈로라는 항구도시를 '신 모스크바(Новая Москва)'로 명명하여 1889년 1월부터 2월까지 약 1개월 동안 식민지로 세운 적도 있다. 다만 둘 다 극히 짧은 기간이었기에 러시아 제국의 영토에서 제외된다.[16]
5. 인구와 민족[편집]
1898년부터 1905년까지 장장 7년 여간 이루어진 러시아 제국의 인구는 다음과 같았다. 다만 당시에는 아직 현대와 같은 공교육에 의한 민족 정체성 확립이 나타나기 전이었으므로, 당시 민족 구분은 주로 언어와 종교에 의해 이루어졌다.
종교 신도수별 통계는 다음과 같다.
6. 군사[편집]
- 러시아 제국군(Вооружённые силы Российской империи)
- 러시아 제국 친위대(Росси́йская импера́торская гвардия)
- 러시아 제국 육군(РИА)
- 척탄병 군단(Гренадерский корпус)
- 독립헌병 군단(Отдельный корпус жандармов)
- 철도엔지니어 군단(Корпус инженеров путей сообщения)
- 러시아 제국 해군[24] (РИФ)
- 러시아 제국 흑해 함대
- 러시아 제국 발트 함대
- 러시아 제국 태평양 함대
- 러시아 제국 카스피해 소함대
- 러시아 제국 해군 보병대(Морская пехота)
- 러시아 제국 공군(РИВВФ)
- 러시아 제국 내의 자치군대
- 폴란드 입헌왕국 왕국군(1814년 ~ 1831년): 러시아 황제가 동군연합을 겸한 폴란드 입헌왕국의 자체적인 군대로 상당한 전력을 보유했지만 1830년 폴란드인들이 러시아에 대항해 일으킨 11월 봉기에 이들이 대거 가담하면서 봉기 진압 후 러시아 당국이 보복으로 해체시켜버렸다.
- 핀란드 대공국 대공국군(1878년 ~ 1901년): 이 군대는 러시아 제국 자치국인 핀란드 대공국의 자치군대이며 1878년 군사개혁이후에 형성되었다. 이 군대는 핀란드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서만 존재했으며, 핀란드인으로 구성되었고 최고사령관은 러시아 제국의 황제이며, 군대의 지휘관은 핀란드 총독이 가진다. 규모는 5,600명, 8개의 소총대대, 1개의 기병연대, 포병은 없었다. 후에 1901년 새로운 병역헌장이 승인된 후 해체되기 시작해서 제3친위 핀란드 소총대대(주둔지: 헬싱키)가 마지막으로 해체(1905년)되었다.
7. 정치[편집]
1905년의 혁명으로 인하여 제국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할 때까지도, 러시아는 황제를 정점으로 운용되는 완벽한 전제군주정 국가였다. 그러나 1905년부터 점차 하나로 딱 잘라 규정하기 어려운 체제를 취하게 된다. 1910년경, 서구 세계의 지식인들은 러시아의 체제를 '권위적인 군주를 모시는 입헌군주정'이라고 정의했다. 과도기로서 모순적인 체제가 양립하였던 것이다. 원래 러시아의 모든 기본법은 황제의 권위가 '무한하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1905년 10월 이후, 이 문장에서 '무한하다'는 단어가 삭제되었으며, 황제의 기본적인 권력에도 형식적이나마 제한이 가해졌다. 그렇다고 하여 황제의 권력이 크게 축소된 것은 아니었다. 황제는 국가 두마에서 의결한 모든 법률안에 완벽한 거부권을 행사하여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으며, 의회의 개회와 폐회 또한 마음대로 선포할 수 있었고 황제의 허가를 받지 않은 그 어떠한 법률도 러시아 내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볼셰비키가 공산 혁명을 일으켜 제정 자체를 뒤집어버리기 전까지 황제의 권력 남용을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안전 장치는 황제 자신의 양심뿐이었다. 이렇게 러시아 제국의 황제는 압도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906~1917년 러시아 제국의 정치체제는 '황제 스스로 제한을 두는 전제군주정' 정도로 해석된다.
러시아 정치계에서는 보수주의가 오랫동안 득세했다. 종종 일부 개혁적인 인사들이 등장하여 정책들을 시도하기는 하였으나, 러시아 엘리트 지배층들 사이에서는 보수적인 색채가 매우 강했다. 러시아의 엘리트층은 기본적으로 반지성주의를 깔고 사고하였으며, 정교회 사이에서는 비과학적인 맹신이, 농노들과 그들을 지배하는 지주들 사이에서는 폐쇄적인 전통주의가, 군대 지도부 사이에서는 경직된 계급주의가 득세하였다. 당시 유럽에서는 지성과 과학을 기반으로 한 '개화', 즉 산업 혁명이 꽃피고 있었던 데에 반하여, 러시아는 이같은 움직임 대부분을 거부하였으며 오직 서구의 발달된 과학기술들을 받아들여 기존의 제도를 뒷받침하는 도구로만 사용하려 하였다. 일부 진보적인 러시아 지식인들은 이같은 보수적, 소극적인 근대화 움직임에 우려를 표했고, 당시의 러시아 정부를 '전보를 가지고 있는 칭기스 칸'에 비유하기도 했다.
8. 경제[편집]
알렉산드르 2세/재위 기간 러시아 제국의 경제 항목 참조.
니콜라이 2세/재위 기간 러시아 제국의 경제 항목 참조.
9. 역대 황제[편집]
10. 외교[편집]
- 영국
- 청나라
- 일본 제국
- 조선
아치에너미 관계였다.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아 흑해를 거쳐 지중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중해로 향하는 입구인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을 차지한 오스만 제국을 뚫어내야 했다. 무엇보다도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차지한 오스만은 동로마 제국의 후계자임을 주장한 러시아 입장에서 반드시 멸망시켜야 할 적이었다. 그리하여 러시아는 발칸 반도 내 정교회 신민들의 해방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복을 최종 목표로 삼아 오스만과 끝없는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두 제국은 동귀어진한다.
11. 대중매체에서의 러시아 제국[편집]
- 도스토옙스키가 쓴 소설들의 배경이 주로 러시아 제국이다. 작가 본인도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나고 죽었다.
- 호사가들에게 흔히 양판소의 모델 국가(정확하게는 약간 근대 배경 양판소나 로판. 좀 더 옛날인 고중세 배경은 동로마 제국에 가깝다.)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절대군주 황제, 강력한 귀족들, 근대식 중앙집권 전제군주국과 중세식 지방분권을 모두 충족시키는 체제의 절묘한 조화, 화려하고 문란한 사교계, 농노 등이 있다는 점에서 완벽히 일치하기 때문이다.[25] 제국을 뒤엎는 혁명이 배경인 경우 무능하고 부패한 러시아 제국의 지배층, 그런 지배층을 상대로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혁명가 등이 대표적인 겹치는 소재로 나온다.
- 이지테크의 유럽전쟁에서도 러시아 제국은 나온다. 어마무시한 영토를 자랑해 난이도는 매우 쉬운 편이다.
- 아이언 하베스트 1920+의 세계관에서는 공산주의 사상을 인정하여 루스비에트 연방이 되어 나온다.
- 웹소설 동방의 라스푸틴에서 21세기 한국인이 어려진 채 떨어진 곳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주인공에 의해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초강대국이 된다.
- 폴란드볼/컨트리볼에서는 역사물에 주로 등장한다. 아무래도 현대 러시아 연방볼에게 인지도가 밀리다보니 일반 만화에서는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 역사물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 시기를 주 배경으로 등장하며, 튀르키예한테서 클레이를 잔뜩 털고 항구나 부동항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며, 거대한 덩치와 몸빵 때문에 자기보다 작은 다른 볼들이 와서 달려들어도 오히려 공격한 볼이 튕겨져나가서 넉아웃 당하는 연출이 종종 나온다. 이건 소련에도 해당한다. 소비에트 러시아와는 러시아 내전에서 혈전을 벌이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 Hearts of Iron IV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국가중점 중 2차 적백내전을 일으켜 러시아 제국을 재건하는 루트가 있다.
- Victoria 시리즈에서 등장한다.
- 토탈 워: 엠파이어와 토탈 워: 나폴레옹에서 플레이어블 국가로 등장한다. 정확히 말하다면 엠토의 러시아는 아직 칭제를 하기 전이라 루스 차르국이라 불리던 시절의 러시아다.
- 한국 대체역사물에서는 19세기가 배경이라면 무조건 등장한다. 소설 내에서는 영국 쪽에 붙기로 했다면 조선의 앞길을 막는 보스몹 느낌으로 묘사되며 그게 아니면 조선의 동맹으로 묘사되기도 한다.[28]
12.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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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철자법 개정 이후의 표기는 'С нами Бог!'이다.[2] 1867년 미국에 판매.(알래스카 조약)[3] 1905년 일본 제국에 할양.(포츠머스 조약)[4] 왕조는 혼란 시대에 잠깐 난립한 황제들을 제외하고 크게 류리크 왕조와 로마노프 왕조로 나뉘지만 왕위를 찬탈한 것이 아니라 귀족회의를 통해 인척이였던 로마노프 가에게 평화적으로 계승한 것이기 때문에 연속성 있는 체제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5] 대영제국과 대청제국에 이어 세계 3위. 유럽의 저출산으로 인해 소련 말기에는 소련인이 전 세계 인구의 1/16, 현재의 러시아는 소련 해체와 지속적 저출산으로 세계 인구의 1/50을 차지할 뿐이다.[6] 이 백청적 색깔의 조합은 슬라브족의 상징색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대되면서 나중에 러시아가 범슬라브주의를 토대로 유럽에 눈독을 들일 때에 범슬라브주의자들이 자주 활용하기도 했다.[7] 'Greater Version'이라고 해서 여러 국장들 중 가장 화려하고 크기가 큰 형태의 국장이다. 이를 간략화해서 만든 중형 국장과 소형 국장 역시 따로 존재한다.[8] 러시아 제국의 첫 기사단이자 최고의 기사단. 1698년에 결성되었으며 당시 러시아에서 누릴 수 있었던 최고의 영예였다.[9] 한국어로 해석하면 '신이 우리와 함께 계시노라' 정도가 된다[10] 제정 러시아어 표기는 Молитва Русскаго народа.[11] 전성기 시절의 이 두 나라가 세계 육지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12] 알래스카에 이어 남사할린이 빠진 1914년 당시의 국경으로도 핀란드와 폴란드도 러시아령으로 포함되어 1945년 이후의 소련 영토보다 조금 더 크다.[13] 이 당시 영국은 수많은 식민지를 보유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나라였다. 다만 굳이 따지자면 그것은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까지의 일이며(이마저도 20세기 전중기에 캐나다와 호주는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거의 독립국급의 자치권을 획득하였다.) 러시아가 훨씬 넓었던 기간이 더 길다. 러시아가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의 일이다. 영국이 캐나다, 호주, 인도를 식민지화한 것은 19세기 전중반의 일이다.[14] 러시아 제국은 지금의 러시아 연방보다 인도 2개 면적만큼 더 컸다.[15] 관련 글.[16] 관련 글 1, 관련 글 2.[17] 언어를 기준으로 분류한다.[18] 편의상 몽골계 칼미크인 등 포함이다.[19] 통계 원문에는 모어가 이디시어인 경우다.[20] 사모기티아인은 별도로 통계냈다.[21] 흑해 그리스인과 우룸인 포함이다.[22] 베사라비아 일대에 이주한 불가리아인 난민 후손[23] 유대교의 일파이지만 당시 러시아 제국에서 유대인들에 대해 병역 등 납세의무를 더 가혹하게 부과하던 상황이라 카라임들은 러시아 제국 정부 측에 자신들은 유대교가 아니라 별개의 종교라고 주장하고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결국 별개의 종교 집단으로 따로 분류되었다.[24] 러시아 제국 당시에는 북방함대는 없었고, 1693년 7월 표트르 1세가 조선소를 건설하기 위해서 그곳을 방문하여 아르한겔스크에 대규모 조선소를 건설했으며, 481척을 건조했다.[25] 로판이 실제로 모티브를 따온 건 아니고 어쩌다가 비슷하게 그려진 거다. 로판은 거의 서양 배경으로 하는데 서양 군주제랑 동양 군주의 차이점을 잘 알지 못하고 동양식 군주에 가깝게 묘사하다보니 러시아 제국과 비슷해졌고, 이런 느낌이 대중적으로 자리잡은 것이다.[26] 제1차 세계 대전, 러시아 내전, 겨울 전쟁, 대조국전쟁 중 2개 이상은 참전했다는 소리.[27] 일례로 르제프 전투를 배경으로 한 1942: 언노운 배틀에서 등장하는 늙은 병사(삐라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죄목으로 후방으로 이송되다가 독일군의 기습에 죽는)는 '그 시절 싸움에서는 무언가 제대로 돌아갔다. 죽으면 신부가 와서 기도도 해주고, 하지만 요즘에는 그냥 대충 넘어가 버린다.'란 대사를 한다.[28] 전제군주정을 유지 중인 근대 유럽 국가라 조선인들이 상대적으로 감정 대입이 편할 뿐더러 일본이나 청나라에 비해 감정의 골이 적을 뿐 아니라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열망은 비교적 약하다고 평가받기 때문. 설령 조선을 지배하려 한다 해도 탈출할 기회가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