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지역별 현황/경기도

덤프버전 :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유치원/지역별 현황




1. 여주시[편집]


1924년 설립된 여주유치원이 최초로, 여주시가 아직 여주군이었던 시절에 지금의 여주시 하동에서 개원되었다. 여주시 인구의 10배나 되는 용인시고양시보다 41년, 4배나 되는 파주시보다 42년, 9배나 되는 성남시보다 46년, 바로 옆 동네인 이천시보다 1년, 광역시가 된 울산시보다 6년, 도청 소재지인 수원시보다 4년이나 먼저 유치원이 설립된 것이다. 같은 시기 유치원이 설립된 지역으로는 제주도 (정확히는 제주시)가 있다. 여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8년~1920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다면 105~106세이다.

2007년생까지는 유치원생 시기에 여주가 군이었으나, 2008년, 2009년, 2010년생은 유치원 재학 도중에 여주가 시로 승격됐으며 2011년생부터는 유치원 입학 이전에 여주군이 시로 승격됐다.

서울시인천시는 현재 각각 특별시광역시이고, 개성시, 개풍군, 장단군은 북한 치하[1]이므로, 여주시대한민국이 실효지배 중인 경기도 지역 중에서 제일 먼저 유치원이 설립된 지역이 된다. (2위는 이천시, 3위는 안성시, 4위는 수원시) 개성시 최초의 유치원은 1916년 개신교 미션스쿨호수돈여학교에 설립된 부설유치원이지만[2], 호수돈여학교는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남쪽으로 피난하여 대전광역시에 새로이 정착했다. 현재는 호수돈여자중학교호수돈여자고등학교만 있고, 유치원은 없다.

여주시에 있는 10곳의 사립유치원 중 2곳은 가남읍 태평리에 있고, 8곳은 시내에 있다. 특히 가남읍의 중앙유치원은 태평리 버스정류장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다. 1960년대 11만 820명이었던 인구가 1985년 9만 3,347명으로 줄어든 뒤 11만 1,897명까지 늘어났는데[3], 인구 대비 사립유치원 개수는 적다.

여주는 전국에서 간씨[4] 인구가 많아서 그나마 간씨 성인 원생을 보기는 쉬운 동네이다. 다만, 여주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조, 윤, 장, 한, 임 순서라 이들 성씨에 비해서는 매우 드문 편이다.

웹툰 작가 기안84가 여주에서 유치원을 다니다가 수원으로 이사를 갔다.[5]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 이천시[편집]


1925년 이천시 창전동에 설립된 이천읍교회 부설유치원이 최초로, 이천시가 아직 이천군이었던 시절에[6] 개원했다. 이천시 관고동 소재로, 1973년 설립된 이천중앙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며,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72년 설립된 장호원유치원이다. 이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9년~1921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다면 104~105세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아이들 중 일부는 이천시 장호원읍으로 원정 통학을 할 정도로 충청북도에서 수도권으로 원정 올 때 가장 많이 가는 동네가 이천[7]이다. 낮에는 이천 시민, 밤에는 음성 군민

1989년생까지는 이천군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으나 1990~1992년생은 유치원 입학 이후 이천군이 시로 승격, 1993년생부터는 시 승격 이후에 유치원을 다녔다.

사립유치원은 23곳 있는데, 시내, 부발읍, 장호원읍, 백사면, 호법면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1930~40년대에는 용인시 (당시 용인군)에서 수려선 기차를 타고 이천의 유치원에 오는 경우도 있었다.[8] 1960년대 11만 9,115명이었던 인구가 1970년 10만 6,253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21만 8,388명으로 늘면서[9], 사립유치원 숫자도 같이 늘어났다. 다만, 대월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원생이 딱 1명밖에 없다.

이천시의 유치원에서는 한씨가 장씨보다 많아 한씨 성을 가진 원생이 장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실제 이천의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조, 윤, 강, 한, 장 순서다.

축구선수 정승현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 안성시[편집]


1925년 안성유치원이 사립으로 설립됐으나 현재 상태는 불명이고 현존하는 곳 중에서는 1963년 설립된 천주교계 안법유치원이 가장 오래됐으며, 모두 안성시가 아직 안성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안성시 구포동에 천주교 수원교구 안성성당 및 안법고등학교와 이웃하여 있는데, 안법고 역시 천주교 미션스쿨이다. 안성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9년~1921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다면 104~105세이다.

1991년생까지는 안성군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으나 1992~1994년생은 유치원 입학 이후 안성군이 시로 승격, 1995년생부터는 시 승격 이후에 유치원을 다녔다.

과거 유치원이 드물었던 시절에는 안성에 살던 유아들이 안성선 열차[10]나 버스를 타고 천안의 유치원으로 가기도 했으며, 지금도 간간히 평택이나 천안으로 가는 경우가 있다. 특히 공도읍[11], 원곡면[12]은 평택으로 많이 가는 편. 이런 이유로 공도읍에서 평택의 유치원 버스를, 미양면에서 천안의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립유치원은 18곳 있는데, 대부분 시내, 공도읍, 미양면, 대덕면 등 옛 안성군・양성군 지역에 몰려 있다. 옛 죽산군 지역은 어지간한 비수도권 군 지역처럼 사립은 매산유치원 1곳뿐이고, 나머지는 공립 병설유치원만 있다. 1960년대에 14만 4,274명이었던 인구가 1990년에 11만 8,260명까지 줄었다가 2021년 18만 7,012명으로 늘었으며[13], 인구 10,237명당 사립유치원이 하나씩 있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오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안성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윤, 장, 조, 오, 강 순서이기 때문이다.

정치인 정혜연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12월 9일 첫 확진자가 보고된 이후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22명 생겼다. 12월 하순에도 유치원발 집단감염이 발생해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졌다.

4. 수원시[편집]


1928년 설립된 진명유치원이 최초로, 수원시가 아직 수원군이었던 시절에 팔달구 교동[14]에서 개원했다. 당시 원생들은 주로 현재의 수원시 팔달구에서 살았고 드물게 수원시 장안구에서 살았거나 화성시, 오산시에서 기차를 타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수원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2년~1924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다면 101~102세이다.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 수원의 유치원은 주로 팔달구에 설립됐으며, 수원시 편입 이후에도 한동안 시골인 지역이 남아 있는 나머지 3개 구에는 1970년대 후반 이후의 대규모 개발과 함께 유치원이 들어왔다. 수원 역시 시가지 팽창에 따라, 기존 팔달구에 있던 유치원들이 다른 구로 이전하기도 했다.

  • 권선구: 1977년 수원복자유치원. 천주교 수원교구 서둔동 성당 부설. 첫 입학생은 1971년~1973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2~53세이다.
  • 장안구: 1982년 수도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6년~1978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7~48세이다.
  • 영통구: 1985년 새싹유치원. 당시 화성군 태안읍[15] 관할. 첫 입학생은 1979년~1981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4~45세이다.

유치원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에는 화성군, 용인군에 살던 아이들이 버스나 기차를 타고 수원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하기도 했다. 화성군의 경우는 주로 매송면태안읍, 용인군은 주로 기흥면에 살던 아이들이 그랬다.[16] 현재는 의왕시화성시 봉담읍에 사는 아이들이 수원으로 오거나,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에 사는 아이들이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의 유치원으로,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사는 아이들이 수원시 광교신도시의 유치원으로 통학하는 경우 말고는 타 지역에서 오거나 타 지역으로 가는 경우가 드물다.

1960년대 12만 7,733명이었던 수원시의 인구가 119만 6,074명으로 늘었다가 118만 6,078명으로 감소하는 등 인구 증감이 반복되지만[17], 사립유치원 숫자도 같이 늘어났다. 수원시는 경기도 남부에서 사립유치원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접경지역특별법에 규정된 접경지역을 제외한 지역 중에서 가장 많은 106곳이나 있다. 이렇게 되어 만약 수원시가 화성시와 통합하면 인구는 204만 1,326명으로 늘고 사립유치원이 166곳으로 늘며 화성시, 오산시와 통합하면 인구가 227만 1,051명[18]까지 늘어남과 동시에 사립유치원도 192곳까지 늘어나, 고양시를 제치고 가장 많은 사립유치원을 보유한 기초자치단체가 된다. (덤으로 200곳을 넘볼 가능성도 있다.)

수원시는 용인과 가깝다는 지리적 특성상 에버랜드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또한 만약 경기도경기남도경기북도로 분도되면, 수원시경기남도에서, 고양시는 경기북도에서 사립유치원이 가장 많은 동네가 될 것이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한씨가 임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수원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윤, 강, 장, 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영통구 이의동의 큰나래유치원은 전직 야구선수 박범열사회복무요원 시절 근무했던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박범열은 고향이 수원이다.

테니스 선수 정현이 1999~2002년 사이에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19]고 한다. 또한 UFC 선수 김동현은 1985~1987년 사이에[20], 수학강사 현우진은 1991~1993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21] 탁구선수 신유빈은 2007~2010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22]

2020년 6월 1일에는 유치원 버스 운전기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같은 해 7월에는 수원의 진아유치원[23]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5. 김포시[편집]


1944년 설립된 김포읍교회 부설유치원이 최초이다. 김포시가 아직 김포군이고 서울 강서구양천구, 인천 서구 검단지구까지 관할하던 시절에 개원했고, 소재지는 지금의 김포시 북변동이다. 4년간 운영하다 1차 폐원, 김포중앙교회로 이름을 바꾼 1988년에 재개원했으나, 최종 폐원되었다. 김포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38년~1940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85~86세이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김포시 북변동, 걸포동, 장기동, 운양동, 사우동, 감정동과 인천광역시 서구 불로동에 살았다고 한다.

김포시에 현존하는 유치원들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은, 1980년 개원한 고촌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사립유치원은 47곳 있는데 시내, 고촌읍, 양촌읍, 통진읍, 월곶면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1960년대 8만 4,990명이었던 인구가 1970년 7만 6,379명까지 줄었다가 2021년 47만 3,970명으로 늘어[24] 사립유치원 숫자도 같이 늘어났다.

과거에는 원생의 대부분이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장교 또는 부사관의 자녀들이었으나, 현재는 학부모들의 직업이 다양해졌다. 다만, 이는 외지인의 유입이 많은 시내와 고촌읍, 양촌읍 정도이고, 통진읍을 시작으로 해서 북부 지역[25]의 유치원에는 아직도 해병대 장교부사관의 자녀가 많이 다니고 있다고 한다. 이는 김포시 남부에 한강신도시 등이 개발되면서 전방 색이 많이 희석됐으나, 북부 지역은 한강만 건너면 북한이라 아직도 전방 색이 강하기 때문이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한씨가 임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김포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이-박-최-정-조-강-윤-장-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연예인 최상학과 개그맨 이종훈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0년 9월에는 김포시 걸포동의 예지유치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9명 발생했고 2021년 6월 15일에도 5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6. 의정부시[편집]


1954년 천주교 의정부교구 주교좌 의정부성당 부설로 설립된 성모유치원이 최초로, 의정부시가 아직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읍이던 시절에 개원한 것이었다. 의정부시 의정부동 소재. 당시 원생들은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 가능동, 호원동과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방학동에 많이 살았다. 설립 당시에는 서울 창동에서 기차를 타고 통학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의정부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8년~1950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5~76세이다. 의정부 성모유치원은 경기도 북부에서 최초로 설립된 유치원이다.[26]

지리적 특성상 양주시, 포천시, 연천군에서 오는 유아들도 있고, 서울특별시에서 오는 경우도 있는데, 서울에서 오는 경우는 수락리버시티 3, 4단지 거주 유아를 제외하고는 잘 없다. 양주시는 주로 백석읍이나 장흥면, 포천시는 소흘읍 서부, 연천군은 거의 군 전체에서 많이 오는 듯.

1980년대까지 의정부시의 유치원들은 대부분 시가지가 개발된 의정부동 일대를 중심으로 설립됐으나 시가지 확장으로 녹양동, 가능동, 호원동, 장암동 등지에도 유치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심지어 장암동의 유치원에는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27]에서도 원아가 오는 경우가 있다. 반면, 의정부에서도 아직도 시골인 고산동, 산곡동, 자일동에는 유치원이 잘 없다.

사립유치원은 32곳 있다. 1960년대 7만 4,842명이었던 인구가 46만 1,710명으로 늘면서, 사립유치원도 늘어났다. 과거에는 전방 지역답게 원생의 대부분이 장교부사관의 자녀였으나, 현재는 학부모의 직업이 다양해졌다.

전국에서 동씨[28]을 가진 원생을 보기 쉬운 곳이라고 한다. 다만 의정부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조-윤-강-장-한 순서로 동씨는 20위 밖이다.

팀 킴의 컬링선수 중 김초희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나머지 4명은 의성에서 유치원을 다녔으므로 김초희는 사립유치원을 다녔을 가능성이 높지만 나머지 넷은 공립 병설유치원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29]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7. 안양시[편집]


1956년 설립된 안양유치원이 최초이다. 안양시가 아직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이던 시절에 지금의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에 개원했다. 안양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0년~195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3~74세이다.

한편, 안양시 독립 후에도 오랫동안 시골이었던 동안구에는 1980년대에야 제대로 된 유치원이 들어왔고 평촌신도시 개발 이후에 사립을 포함해서 본격적으로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 동안구: 1981년 비산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안양시에 일반구가 설치되기 전에 설립되었다.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과천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상 안양시의 유치원에서는 서울대공원(+서울랜드)으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안양유치원 설립 초기에는 유치원이 부족했던 탓에 서울 시흥동(당시 경기도 시흥군 동면)과 군포시, 의왕시에서 기차로 통학하기도 했다(!). 이들 중 군포시와 의왕시는 1970년대까지도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어서 당시 시흥군 남면→군포읍, 시흥군 의왕면→의왕읍에 살던 유아들이 기차나 전철을 타고 안양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시흥군 시기 과천면, 서면→소하읍도 안양에 접하기는 했지만 이들 지역에서 안양으로 향하는 교통편이 미비해 과천에서 안양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는 잘 없었다. 물론 현재는 더 좋은 교육환경 등을 위해 과천시, 군포시, 의왕시 주민들이 자녀들을 자신의 지역에 있는 유치원으로 보내지 않고 안양시의 유치원으로 보내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30]

사립유치원은 53곳 있다. 1960년대 5만 9,871명이던 인구가 2010년 62만 8,831명을 찍은 뒤 55만 27명으로 감소했는데도[31] 인구 대비 사립유치원 숫자는 적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는 전국 순위와 상당히 유사한데 안양시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강, 윤, 장, 임 순서이기 때문. 다만, 조씨가 강씨보다 약간 많아 강씨가 없는 반이 있을 정도이다.

양궁선수 기보배가 1991~1993년 사이에 안양에서 유치원을 다녔다.[32] 출생지는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이지만, 유년기에 안양으로 이사를 와서 그런 것. 스케이트 선수 황대헌은 2002~2005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33]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8. 포천시[편집]


1957년 포천 시내에 포천유치원이 개원했으나, 현재는 폐원됐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포천 시내 (주로 신읍동, 자작동, 어룡동)와 군내면에 살았고 드물게는 소흘읍, 신북면에서 오기도 한다. 현재 영업 중인 곳 가운데는 1977년 설립된 운천유치원이 최초였으며[34], 2곳 모두 포천시가 아직 포천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포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1년~1953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2~73세이다. 특이하게 포천 시내보다 영북면에 있는 유치원이 더 오랫동안 영업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포천 시내보다 영북면이 더 발전됐기 때문이다.[35] 당시 원생들은 포천시 영북면 운천리, 문암리, 야미리, 소회산리, 자일리, 산정리와 관인면 사정리 (당시 연천군)에서 살았다고 한다. 포천 시내에 처음 들어온 유치원은 1981년 선단동에 설립된 선단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이곳의 첫 원생은 1975년~1977년생, 첫 졸업생은 48~49세이다. 여기에 영북면, 관인면은 철원과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철원에 있는 유치원으로 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철원에 사는 아이가 포천의 유치원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36] 포천에 사는 유아들 중 일부는 세종포천고속도로 등을 타고 의정부나, 아예 서울[37]로 가서 유치원을 다니지만, 매우 드문 케이스이다.

1996년생까지는 포천군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고, 1997년~1999년생은 유치원 시기에 포천이 시로 승격, 이후 2000년생부터는 포천이 시로 승격된 이후 유치원에 다녔다.

남북분단만 아니었으면 영중면[38], 영북면[39], 관인면 등 포천시 북부가 (이미 시가 되었을)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게 되면서 포천의 인구가 20만 명 수준까지 늘고, 이로 인해 포천에 유치원이 10년은 일찍 들어왔을 지도 모른다.

사립유치원은 10곳 있는데, 시내에 6곳, 소흘읍에 3곳, 영북면에 1곳 있다. 1960년대 13만 9,498명이었던 인구가 1985년 10만 8,581명으로 최저점을 찍고, 그 후로 계속 늘어 2008년 16만 176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1년 14만 7,274명으로 줄어드는 등 인구 증감을 반복하는데도[40] 인구 대비 사립유치원 숫자가 적다. 포천시 군내면의 늘푸른유치원은 원생이 단 1명밖에 없다.

포천시의 지역적 특성상 포천시의 유치원에서는 신북면 기지리의 포천아트밸리와 포천 시내에 있는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중 한 곳으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매우 많다. 멀리는 남양주시의 광릉수목원, 서울의 북서울 꿈의 숲으로, 더 멀리는 어린이대공원이나 롯데월드로 가기도 한다.

군부대가 산재한 지역 특성상 원생의 대부분이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육군 장교 또는 부사관의 자녀들이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윤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포천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윤, 강, 장, 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트로트 가수 임영웅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41]

2020년 10월 29일에는 포천에 사는 유치원생 2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기도 했다.

9. 평택시[편집]


1960년 평택군 송탄면[42]에 설립된 신흥유치원이 최초이다. 평택시가 아직 평택군이던 시절에 개원했다. 평택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4년~195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69~70세이다. 그 전에는 천안 등지로 원정을 가야 했다.[43] 현재는 안성시 공도읍, 화성시 양감면,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에서 평택으로 원정 오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평택시 서정동, 지산동, 신장동, 이충동, 장당동 일대에서 살았다고 한다.

평택시 자체가 주한미군의 영향을 깊이 받아, 다른 지역에서 할로윈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에 평택시의 유치원생들 중에는 할로윈을 알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심지어 충청도와 가깝다는 지역적 특성상 평택시의 유치원생들의 말에 충청도 사투리 억양이 들어간 경우도 있다.

사립유치원은 51곳 있는데, 옛 송탄시, 평택시 지역 외에 평택군 지역이었던 안중읍, 포승읍, 청북읍, 진위면 등지에도 분산되어 있다. 1960년대 신흥유치원이 송탄면 서정리에 설립된 이후 1990년대까지 유치원은 주로 옛 송탄시와 평택시 지역에 설립됐으며, 2000년대 이후 옛 평택군 지역에도 사립유치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는 과거 송탄읍이 평택읍보다 인구가 많았기 때문[44]이다.


1960년대 18만 8,863명이었던 인구가 53만 7,307명까지 늘면서[45], 사립유치원 숫자도 같이 증가했다. 다만 진위면, 서탄면의 경우 오산시로 많이 가는데, 실제로 아침 시간대에 평택시 진위면, 서탄면 일대를 가면 오산의 유치원 버스들이 오고 시내 남부에서는 충청남도 천안(!!!)의 유치원 버스가 오기도 한다.

전국에서 견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아[46] 그나마 견씨 성의 유치원생을 보기 쉽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 평택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조, 강, 장, 윤, 한 순서이다.

프로게이머 손찬웅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0. 동두천시[편집]


1962년 지금의 동두천시 중앙동에서 천주교 의정부교구 동두천 성당 부설로 설립된 효성(曉星)[47] 유치원이 최초로, 동두천시가 아직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이던 시절에 개원한 것이다. 의정부시가 분리된 1963년부터 1981년까지는 양주군 최초의 유치원이었다. 동두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6년~1958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67~68세이다.

1956년생부터 1975년생까지는 양주군 동두천읍 시기에 유치원에 입학했으나, 1976년생부터는 동두천시 분리 승격 이후에 유치원에 입학했다.

사립유치원은 아랫동네 양주시의 절반 정도인 8곳만 있다. 이는 동두천시 곳곳에 주한미군 부대들이 주둔하고 있어서 시가지가 동두천중앙역[48]이 있는 시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역시 남북분단만 아니었으면 (이미 시가 되었을)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시가지가 여기까지 확장되어 사립유치원이 10곳을 넘어갈 수도 있었다. 1960년대 5만 6,804명이었던 인구가 2020년 9만 4,353명으로 늘었는데도 인구 대비 사립유치원 개수는 적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양주시 은현면[49], 남면, 연천군 청산면, 전곡읍 등지에서 원정 오는 경우도 있었으며, 현재는 교통망의 발달로 군남면, 연천읍, 백학면 등지에서도 오는 경우가 생겼다.

연천, 포천에 인접한 지리적인 특성상 동두천의 유치원에서는 포천아트밸리전곡리 유적 등 포천, 연천에 있는 곳으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많다.

군부대가 산재한 지역 특성상 원생의 대부분이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장교 또는 부사관의 자녀들이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홍씨가 장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동두천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강, 윤, 홍, 장씨 순서이기 때문이다.

배우 정주리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1. 부천시[편집]


1962년 지금의 부천시 심곡본동에 설립된 소사유치원이 최초이다. 당시 부천시는 부천군이었고, 인천광역시 계양구 일부+시흥시 북부까지 관할했으며, 산하에 2개의 읍면(소사읍, 오정면)을 두고 있었다. 당시 소사읍은 인구가 4만 명이 넘었고, 서울특별시 구로구 천왕동, 오류동, 궁동, 항동, 온수동, 개봉동, 고척동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사유치원 개원 초기에는 오류동에서 기차를 타고, 혹은 온수동에서 걸어서 통학하는 원아도 있었다. 부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6년~1958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67~68세이다. 그 전에는 유치원에 가기 위해 서울이나 인천으로 가야 했다. 현재도 아침 시간대에 부천시 작동, 고강동 일대를 가 보면 윤서유치원, 새서울유치원, 빛나유치원 등 서울의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고, 상동에서는 인천의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다.

사립유치원은 78곳 있다. 1960년대 13만 1,961명이었던 인구가 1973년 옹진군에 도서 지역[50]을, 시흥군에 소래면[51]을 넘겨주면서[52] 10만 9,093명까지 감소했다가 계속 늘어 2010년 89만 875명을 찍은 뒤 81만 8,383명으로 감소하는 등 증감을 반복하는데도[53], 인구 대비 사립유치원 숫자는 적다.

사립유치원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대장신도시에 설립되는 모든 유치원은 공립으로 운영된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한씨가 임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부천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강, 장, 윤, 한씨 순서이기 때문이다.

탁구선수 유승민[54]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2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역전골을 넣은 황희찬[55]은 1998~200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2. 용인시[편집]


1930년대에 백암면 석천리의 근영학원에서 유치부가 운영된 적은 있었으나, 정식 유치원은 아니다. 용인 최초의 유치원은 1965년 설립된 경남[56]유치원이며, 용인시가 아직 용인군이었던 시절에 처인구 김량장동 (예전의 용인면→용인읍)에 개원되었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남동, 마평동, 유방동, 고림동, 역북동에 살았다고 한다. 수려선이 있던 시절에는 신갈(당시 기흥면), 양지면에 거주하는 원아들이 기차를 타고 경남유치원에 통학하기도 했다. 현재 경남유치원의 상태는 불명이며, 경남유치원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최소 50대 후반이다. 용인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9년~1961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64~65세이다. 따라서 용인이 고향인 60대 이상은 수원이나 이천 등지로 원정 통학을 해야 했다. 지금도 모현읍 오산리, 능원리, 동림리에 사는 아이들은 광주시 오포읍이나 수지구 죽전동으로 원정 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들 동네를 가 보면 희소유치원, 유정유치원 버스가 오기도 하는데, 이들 동네가 죽전동과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신갈동, 영덕동 일대를 가면 수원의 유치원 버스가, 수지구 죽전동[57]에서는 분당의 유치원 버스가 오기도 하고, 용인의 유치원 버스들이 분당이나 수원에 가기도 한다. 심지어는 동탄신도시에서 용인으로 원정 오는 유아들도 있는데 이들은 거리상 주로 가까운 기흥구 기흥동, 신갈동, 구갈동 일대로 간다.

용인군 시절 유치원은 주로 옛 용인읍, 기흥읍 지역에 설립됐으나 시 승격 이후 사립유치원들이 수지, 구성, 죽전, 동백 등지에도 설립되었다. 1989년생까지는 용인군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으나 1990~1992년생은 유치원 입학 이후 용인군이 시로 승격, 1993년생부터는 시 승격 이후에 유치원을 다녔다.

용인 최초의 공립유치원은 1980년에 세워진 남사읍 봉무리의 남사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며, 현재는 폐원되었다. 한편, 서울공항 등으로 개발제한이 걸려 제대로 된 인구 유입이 이루어지지 못해[58] 오랫동안 시골로 남아 있던 수지구와 기흥구에는 1980년대에야 겨우 유치원이 설립됐다.

  • 수지구: 1981년 수지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용인군 수지면.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 기흥구: 1982년 기흥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용인군 기흥면. 첫 입학생은 1976년~1978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7~48세이다.
  • 구성구 (분구 이전 기흥구 보정동•구성동•동백동•마북동•상하동): 1982년 구성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용인군 구성면. 첫 입학생은 1976년~1978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7~48세이다.

용인에 현존하는 유치원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은, 1978년 처인구 포곡읍 삼계리[59]에 세워진 성체유치원이다. 가톨릭 인보성체수녀회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매우 넓은 부지에 수녀원, 양로원, 장애인 시설 등과 함께 있다. (용인시 외에 서울시성남시에서도 성체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1972년~1974년생을 첫 원생으로 모집했고, 첫 졸업생들은 현재 51~52세이다.

용인시의 지리적 특성상 용인의 유치원에서는 보통 에버랜드로 소풍을 간다. 에버랜드가 전국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테마파크이지만, 유치원 단계에서는 원거리 소풍을 가는 경우가 사실상 없으므로[60] 보통은 용인시와 인근 경기도 지역에서 에버랜드로 소풍을 오는데, 수원, 이천, 분당[61], 광주, 동탄 등지의 유치원에서도 이 곳으로 소풍을 온다.

사립유치원은 77곳 있는데, 시내에만 몰려 있지 않고 수지구 풍덕천1동[62], 수지구 죽전동[63], 구성, 신갈, 보정동, 포곡읍[64], 모현읍, 이동읍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하지만 1979년에 용인면, 1985년에 기흥면, 1996년에 수지면, 2000년에 구성면, 2005년에 포곡면, 2017년 12월 11일에 모현면과 이동면, 2021년 2월 19일에 남사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96년에 용인읍이, 2001년에 수지읍이, 2005년에는 구성읍과 기흥읍이 분동되면서 면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65] 기흥구 영덕동[66]수원시 영통구 영통동과 가까워 영덕동에 사는 아이가 수원의 유치원을 다니거나, 영통에 사는 아이가 기흥구에 있는 유치원을 다니는 경우가 있다.[67] 때문에 백암면, 원삼면에 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병설유치원 출신이며 아주 가끔 시내나 양지면으로 원정 가기도 한다. 또한 남사읍은 용인의 읍 가운데 유일하게 사립유치원이 없다.[68]

미래에 인구가 늘게 되면 사립유치원이 80곳, 더 나아가 100곳을 넘어갈 수도 있다. 심지어 아파트 단지 하나에 유치원이 2곳 이상인 곳도 있다. 1960년대에 10만 5,179명이었던 인구가 1970년에 9만 4,848명까지 추락했다가 다시 늘어 2002년 인구 50만 명을 넘긴 뒤 2021년 107만 4,176명으로 고양시를 거의 따라잡을 정도[70]인데도 인구 대비 사립유치원 숫자가 적은데, 용인시에는 인구 13,728명당 사립유치원이 하나씩 있다. 심지어 처인구 이동읍의 화산성민유치원은 원생이 무려 687명이나 된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조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용인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윤, 강, 장, 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박형식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나왔다고 한다.[71] 체조선수 여서정도 이곳에서 유치원 생활을 했다고 한다. 전설의 에버랜드 캐스트 소울리스좌도 용인에서 유치원 생활을 했다.[72]

2021년 3월 20일 용인시의 한 유치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3월 20~21일 양일에 걸쳐 유치원생과 교사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기도 했다. 같은 해 7월 10일과 11일에도 유치원생 9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기도 했다.


13. 고양시[편집]


1965년 천주교 의정부교구 일산성당 부설로 설립된 성모유치원이 최초로, 고양시가 아직 고양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과거 군청 소재지이던 원당읍에서 설립되었고 시 승격 후에도 한동안 그 위치를 유지하다가 2000년 덕양구 (분구 이후에는 덕양북구)에서 일산서구 일산동으로 이전했다. 유치원이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덕양구 분구 이후 덕양남구가 되는 신도읍, 화전읍에 살았던 아이들이 버스나 기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하기도 했다.[73] 성모유치원 최초의 원생은 1959년~1961년생으로, 첫 졸업생이 현재는 64~65세이다. 당시 원생들은 고양시 원당동, 원흥동, 주교동 일대에서 살았다고 한다.

고양군 시절에는 주로 군청이 있던 원당읍 혹은 인구가 밀집한 신도읍 지역을 중심으로 유치원이 설립됐으나, 화전읍[74], 벽제읍, 일산읍, 지도읍 등이 설립되고 시로 승격되면서 본격적인 사립유치원 설립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고양군 당시에는 시골이었다가 고양시 승격 이후에야 겨우 시가지 개발이 시작된 일산신도시 지역에는 198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유치원이 들어왔다.

  • 일산동구: 1981년 이포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고양군 일산읍.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 일산서구: 1981년 송포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고양군 송포면.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 덕양구 (미래의 덕양남구, 대부분의 고양시 을 선거구 지역): 1981년 삼송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고양군 신도읍.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또한 국내 최초의 유치원인 이화유치원(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유치원)이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잠시 고양군 산하였던 적이 있었다. (당시 신촌 일대는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이 시기 원생은 현재 사망했거나, 생존해 있더라도 80대를 넘은[75] 어르신들이다.

여담으로 깜놀 유치원을 촬영한 이튼유치원이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에 있다.

사립유치원은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데[76] 111곳이나 있다. 이는 일반시들 중 가장 많은 것이며, 접경지역특별법에 의한 접경지역에서도 가장 많은 것이다. (2위 수원이 106곳, 3위 창원이 101곳. 이 3곳을 제외하면 사립유치원 개수가 100곳을 넘는 곳이 없다. 특별시와 광역시도 여러 개의 자치구를 합쳐야 겨우 100곳이 넘는 지역이 나올 정도.) 고양시 일산서구는 파주시와 아주 가까워, 파주의 유치원 버스가 일산으로 오거나, 일산의 유치원 버스가 파주로 가기도 한다. 반면, 덕양구 서부에서는 서울로 많이 가는 편이다.

고양군 시절에는 여름만 되면 홍수로 인한 휴원이 잦았으나[77], 현재는 홍수보다 황사나 전염병에 의한 휴원이 더 많아졌다.

아파트가 많은 지역 특성상, 아파트 단지 하나에 유치원이 2곳 이상 있는 경우도 있다. 인구가 1960년대의 9만 3,741명에서 107만 9,216명으로 급증해서[78] 사립유치원이 엄청나게 늘어났으며 인구 대비 사립유치원 숫자도 많아서 9,587명당 사립유치원이 하나씩 있다. 다만, 사립유치원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창릉신도시에 설립되는 모든 유치원은 공립으로 운영된다.

과거에는 고양시의 유치원생 대부분이 장교부사관의 자녀였으나, 인구 급증으로 전방 이미지가 희석되면서 학부모의 직업이 다양해졌다. 또한 고양시의 지리적 특성상 고양시의 유치원에서는 서오릉이나 일산호수공원으로 소풍을 많이 가며, 멀리 가면 서울경복궁으로 가기도 한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조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고양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강, 윤, 장, 한씨 순서이기 때문이다.

연예인 전소민[79]과 야구선수 김강률[80], 연극배우 판유걸[81]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4. 가평군[편집]


1965년 가평읍 읍내리에 가평교회 부설로 설립된 샛별유치원이 최초였으나 2010년 무기한 휴원에 들어갔고, 이후 1981년 가평목동초등학교, 대성초등학교, 미원초등학교, 상면초등학교, 상색초등학교, 상천초등학교, 연하초등학교, 조종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설립되었다. 가평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9년~1961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64~65세이다. 그 전에는 경춘선 열차를 타고 춘천에 있는 유치원으로 가야 했는데, 당시 남양주시 역시 시골이라 유치원이 들어오기 전이었고, 그렇다고 서울로 가자니 너무 멀기 때문이다.[82] 당시 원생들은 주로 가평읍에서 왔고, 현재 군내 유일한 사립유치원인 청평면의 사립유치원에는 상면 임초리, 덕현리에서 오는 유아들도 있다. 현재 사립유치원은 설악면 미사리의 청심유치원 하나뿐인데, 이 곳이 폐원된다면 수도권 최초의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될 수도 있다.

가평군은 10월과 4, 5월에 일교차가 매우 큰 데다 경기도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라 9월 말이나 5월 초에 후리스, 4월과 10월에는 아예 패딩을 입고 다니는 원생이 있을 정도이다.

사립유치원은 3곳 있지만, 가평읍에는 없고[83] 청평면에 2곳, 설악면에 1곳 있다. 가평읍이 이 두 면보다 인구가 많은데도[84] 말이다. 때문에 가평읍에 사는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춘천까지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남북분단만 아니었으면 시가지가 더 많이 확장되고 인구가 7~8만 명까지 늘어나 유치원이 20년은 일찍 들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1960년대 7만 4,708명이었던 인구가 2005년 4만 9,059명까지 줄었다가 6만 2,377명으로 회복[85]했는데 이 모양이다. 가평군에는 대학교가 없어[86] 가평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서울이나 춘천 등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가평으로 돌아온 케이스이다.

군부대가 산재한 지역 특성상 원생의 대부분이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장교 또는 부사관의 자녀들이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신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가평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장, 신, 조, 윤, 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기도에서 신씨 순위가 가장 높은 곳이 가평이다.

야구선수 정우영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5. 파주시[편집]


1966년 천주교 의정부교구 법원리 성당 부설로 설립된 소화(小花)[87] 유치원이 최초이다. 파주시가 아직 파주군이던 시절에 지금의 파주시 법원읍 법원리 43번지에서 개원했다. 특이하게 파주 시내보다 법원읍 (당시 천현면)에 먼저 설립되었다. 파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60년~196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63~64세이다.

시내에 최초로 설립된 유치원은, 1984년에 설립된 샛별유치원이다. 한편 오랫동안 유치원이 없었던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는 2011년이 되어서야 겨우 유치원이 들어왔다. 남북분단만 아니었으면 개성시의 영향을 깊숙이 받은 문산읍[88] 등지에 유치원이 더 일찍 들어왔을 수도 있었다. 교육기관이 없는 진동면[89]에서는 원정 통학을 할 수밖에 없다.

지역 특성상 파주시의 유치원에서는 임진각으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많다.

파주군 시절에는 여름홍수로 인한 휴원이 잦았으나[90] 현재는 여름의 홍수보다 가을~ 사이의 미세먼지로 인한 휴원이 더 잦아졌다.

사립유치원은 42곳 있으며, 시내 외에 교하지구, 운정지구, 문산읍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하지만 관내 면들의 잇따른 읍 승격 및 동으로의 전환[91]으로 면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 이런 이유로 면에 사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인근 읍, 또는 동 지역으로 가서 유치원을 다니는 실정이며 적성면[92]은 아예 양주시 등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서 다닌다. 인구가 1960년대의 19만 4,441명에서 1985년 16만 4,724명으로 추락했다가 1990년 18만 4,982명으로 늘고, 1995년 16만 2,973명으로 추락해 최저치를 기록한 뒤 46만 5,617명으로 인구가 늘었는데도[93] 이 모양이다.

군부대가 많은 지역 특성상 원생의 대부분이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장교 또는 부사관의 자녀들이다. 이웃한 고양시의 유치원들은 인구의 증가로 전방 색이 옅어지면서 대부분이 직업군인이던 학부모의 직업이 다양해졌고, 파주시도 향후 10~20년 내에 고양시와 같이 학부모의 직업이 다양해질 전망이다. 또한 개성시 출신 실향민 3~4세인 원생들도 있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윤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파주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윤, 조, 강, 장, 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이는 윤씨의 대종이 파평 윤씨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배우 김다미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6. 연천군[편집]


1966년 연천읍 차탄리에 연천읍교회 부설 유치원이 설립됐으나, 현재 무기한 휴원 중이고,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81년 군남초등학교, 궁평초등학교, 대광초등학교, 백학초등학교, 상리초등학교, 연천노곡초등학교, 연천왕산초등학교, 연천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설립되었다. 사립유치원은 본원유치원과 한여울유치원 2곳이 있으며, 2곳 모두 전곡읍 전곡리에 있다. 다만 1930~40년대에는 연천읍, 신서면[94]에 사는 아이들이 경원선 기차를 타고 철원군의 철원유치원으로, 1960~70년대에는 청산면[95], 전곡읍에 사는 아이들이 동두천의 효성유치원 등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다. 연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60년~196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63~64세이다.

이렇게 된 것은 연천읍보다 전곡읍의 인구가 더 많은[96] 도시 구조 때문이다. 남북분단만 아니었으면 연천읍이 철원의 베드타운이 되어 (이미 시가 되었을)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의 영향을 받아 연천군 인구가 8만 명을 찍는 것은 물론, 유치원이 더 일찍 들어왔을지도, 그리고 연천읍교회 부설 유치원이 무기한 휴원을 하지 않고 연천읍에도 사립유치원이 추가로 설립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재는 왕징면[97], 중면[98], 장남면[99]에 교육기관이 없어 이 동네에서도 원정 통학 건수가 늘고 있다. 이들 동네에서는 주로 연천읍이나 전곡읍으로 간다고 한다. 미래에 연천군의 모든 사립유치원이 폐원된다면 이들 역시 동두천시 등지로 가야 사립유치원을 다닐 수 있게 된다.

1960년대 6만 9,859명이었던 인구가 4만 3,516명으로 줄었지만[100], 사립유치원 개수는 늘었다. 그마저도 모두 전곡읍 전곡리 소재인 데다 전곡읍은 조선시대 양주 관할이었으므로 오리지널 연천군과 마전군, 삭녕군 지역에서는 사립유치원을 볼 수 없는 셈. 연천군에는 대학이 없기 때문에 연천군에서 근무하는 유치원 교사들은 거의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연천으로 발령받은 케이스이다. 게다가 연천군 지역에서 근무하는 유치원 교사 중에는 동두천시 등 주변 도시에 살면서 연천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군부대가 산재한 지역 특성상 원생의 대부분이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장교 또는 부사관의 자녀들이다. 또한 연천군은 전방 지역이라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상근예비역에 선발되기 쉬워 유치원 동창이나 선후배가 같은 부대에서 복무하는 일이 서울이나 기타 후방 도시들[101]보다 많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한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연천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윤, 한, 강, 장 순서이기 때문이다.

축구선수 박호진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7. 성남시[편집]


1970년 가톨릭 인보성체수녀회에 의해 설립된 성체유치원이 최초이다. 개원 당시에는 성남시가 아직 경기도 광주군 산하 4개 면[102]이었고, 소재지는 광주군 중부면 수진리였다. 현재 주소는 수정구 수진동이며, 천주교 수원교구 수진동 성당 및 인보의 집(양로원)[103]과 이웃해 있다. 1964년~1966년생을 첫 원생으로 모집했고, 첫 졸업생은 현재 59~60세가 됐다. 그 전에는 성남에 사는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서울에 있는 유치원으로 가야 했다. 이 때문에 성남시는 일반구가 3개 이상 있는 도시들 중 유치원 설립이 가장 늦은 도시가 됐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 태평동, 신흥동, 양지동, 중원구 성남동, 상대원동, 하대원동에 살았다고 한다.

한편 중원구분당구는 성남시 성립 이후에야 뒤늦게 유치원을 설립했고, 사립유치원은 분당신도시판교신도시 개발 이후 본격적으로 증가했다. 성남시 성립 당시 중원구는 도시의 형태를 제법 갖추고 있었으나 분당구는 성남시 독립 이후로도 한동안 시골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판교신도시는 분당구 설립 이후에도 그린벨트에 묶여 오랫동안 시골이라 21세기가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104]

  • 중원구: 1981년 예원유치원. 성남시에 일반구가 설치되기 전에 설립되었다.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 분당구: 1992년 서현유치원. 성남시에 아직 철도가 없을 때 설립되었다. 첫 입학생은 1986년~1989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37~38세이다.
  • 판교신도시: 2009년 낙생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2003년~2006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20~21세이다.

참고로 성남시 분당구의 유치원에는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죽전동, 풍덕천동광주시 거주 유치원생도 있다. 반대로 수정구 신촌동, 오야동, 심곡동, 고등동, 상적동, 금토동, 창곡동, 복정동[105]에 사는 유아들은 서울특별시[106] 원정 통학을 가기도 한다. 아침 시간대에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을 가 보면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의 희소유치원, 유정유치원 버스가 오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서울과 용인 사이에 끼어 있는 지리적 특성상 성남시 수정구, 중원구의 유치원들은 서울 헌인릉이나 롯데월드 어드벤처로, 성남시 분당구의 유치원들은 한국잡월드나 에버랜드로 소풍을 많이 간다.

분당구에는 아파트가 많아서 아파트 단지 하나에 유치원이 2곳 이상인 경우도 있다. 사립유치원은 80곳 있다. 1960년대 1만 9,821명에 불과했던[107] 인구가 2010년 99만 6,524명을 찍은 뒤 94만 64명으로 감소하면서[108], 사립유치원 수도 같이 늘어났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조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성남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강, 윤, 장, 임 순서이기 때문이다.

골프선수 박인비1992년~1994년 사이에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109]고 한다. 이는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110], 축구선수 황의조[111]도 마찬가지.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8. 하남시[편집]


1970년 교회 부설로 설립된 중앙유치원이 최초이다. 하남시가 아직 경기도 광주군 산하 2개 면[112]이던 시절 지금의 하남시 덕풍동인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덕풍리에 개원한 것으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보다 빨리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하남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64년~196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9~60세이다. 그 이전에는 버스를 타고[113] 서울까지 가야 했다. 당시 원생은 주로 현재의 하남시 신장동, 덕풍동, 풍산동, 미사동에 살았다고 한다.

중앙유치원은 소재지인 동부면 덕풍리가 동부읍을 거쳐 하남시로 승격[114]된 뒤에도 한동안 ‘중앙유치원’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다가, 2000년대 들어서 ‘써니힐유치원’으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하남시 중 감북동, 감일동, 초이동 등 아직도 시골이나 다름없는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서울특별시 강동구, 송파구로 원정 가는 경우도 있고, 서울특별시 강동구 강일동에서 하남시로 원정 가는 경우도 있다. 마침 하남시 감북동에서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강동구 둔촌동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성내동이, 거기서 더 가면 송파구 풍납동이 나오며, 감일동에서는 송파구 마천동, 거여동이 나오니 그 곳의 유치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실제 하남시 감일동 등지를 가 보면 서울 올림픽유치원[115], 리아유치원[116], 유정유치원[117] 등 서울의 유치원 버스가 오기도 한다. 하남시 선동[118]의 경우는 강동구 고덕동, 상일동, 강일동의 유치원 버스들이 주로 다닌다. 이런 지리적 특성상 하남시의 유치원들은 서울특별시 송파구롯데월드 어드벤처올림픽공원으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있다.

최순실이 설립했다고 알려진 초이유치원은 하남시 초이동이 아닌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다. 애초에 하남시 초이동은 인구가 3,735명에 불과한[119] 사실상 시골이라 사립유치원이 들어올 수가 없다. 하남시에는 대학이 없기 때문에 하남시에서 근무하는 유치원 교사들은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하남시와 발령받은 케이스이다.

현재 하남시에는 사립유치원이 10곳 있지만, 인구 증가로 인해 추가로 사립유치원이 더 설립될 수도 있다. 1960년대 1만 6,389명에 불과했던[120] 인구가 29만 3,452명으로 늘면서[121], 사립유치원 숫자도 같이 늘어났다. 향후 교산신도시[122]가 개발되면 유치원 숫자는 더 늘어날 예정이다. 다만, 사립유치원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교산신도시에 설립되는 모든 유치원은 공립으로 세워지게 된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한씨가 임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하남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강, 윤, 장, 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야구선수 김인범박주홍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9. 양평군[편집]


1972년 설립된 동산유치원이 최초로, 경기도에서는 제법 오랜 역사의 유치원이다. 양평읍 양근리 소재이며, 양평보다 늦게 유치원이 들어온 지역이 경기도에만 15개나 있다. 하지만 사립유치원은 동산유치원을 포함해서 3곳밖에 없다(양평읍 양근리에 2곳, 창대리에 1곳). 양평군에 무궁화호가 정차하는 역의 개수가 8개[123]나 되는 것을 감안하면 양평군은 봉화군, 정선군, 보성군, 화순군, 영동군, 예천군, 의성군, 영덕군, 하동군, 함평군, 곡성군, 서천군, 군위군, 단양군, 태백시[124]과 함께 무궁화호 정차역이 사립유치원 개수보다 많은 특이한 지역이 되었으며 2022년 11월 5일 이후에는 양평군에 ITX-새마을 정차역이 8개(양평역, 용문역, 지평역, 석불역, 일신역, 매곡역, 양동역, 삼산역.)나 되면서 양평군이 유일하게 ITX-새마을 정차역이 사립유치원보다 많은 지역이 되었다. 원생들은 주로 양평군 양평읍 양근리, 공흥리, 오빈리, 창대리, 원덕리에서 오지만 옥천면 국수리, 아신리, 용문면 다문리, 지평면 지평리 등 원거리에서 오는 유아도 있다. 양평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66년~1968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7~58세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과거 양평군, 가평군 등 수도권 동부 지역이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공장 건설이 제한되면서 인구가 유출된 점이 크다.[125] 인구도 1960년대의 11만 8,697명에서 1990년 7만 7,166명으로 추락했다가 2021년 11만 8,810명으로 회복되었는데도[126], 인구 대비 사립유치원 숫자가 적다. 지방에도 양평군보다 사립유치원이 많이 있는 군이 있을 정도. 유치원이 드물었던 과거에는 양평에 사는 유아들이 서울, 원주 등지로 유치원을 찾아 원정 통학을 가기도 했는데[127], 서울로 가는 경우는 주로 양서면 등 양평군 서부 (옛 양근군 지역)에 살던 아이들이, 원주로 가는 경우는 양동면 등 양평군 동부 (옛 지평군 지역)에 살던 아이들이었다. 현재는 교통의 발달과 양평읍에만 사립유치원이 있는 지역 특성상 면 지역에서 양평읍으로 원정 오는 아이들도 있고 홍천군 서면 굴업리에서 원정 오는 유아들도 있다.

면에 사는 아이들이 사립유치원을 가고 싶으면 원정을 가야 한다. 양서면, 서종면에 사는 아이들은 남양주시로, 옥천면, 용문면, 강하면, 강상면, 개군면, 지평면에 사는 아이들은 양평읍으로, 단월면, 청운면, 양동면에 사는 아이들은 아예 강원특별자치도[128] 가는 경우가 많다. 서종면에서 서울, 남양주 등 인근 도시로 원정 통학을 하는 건수는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 이후 늘어나고 있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장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양평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윤, 장, 강, 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축구선수 이규성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0. 광명시[편집]


1976년 광명시 광명동에 설립된 경기유치원이 최초로, 광명시가 아직 경기도 시흥군 서면이었던 시절에 개원한 것이다. 당시 시흥군 서면의 인구는 10만 명을 넘었는데[129], 이 지경이 되도록 유치원 설립이 늦어진 것은 이 지역의 서울특별시 편입이 도통 결론이 나지 않았던 탓이다.[130] 때문에 시흥군 서면 시절 해당 지역에 살던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안양천 건너 서울 (주로 영등포구)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다. 주로 광명리철산리에 살았던 아이들이 이랬다고 한다. 2020년 현재는 서울 지하철 7호선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주로 광명동, 철산동, 하안동에 사는 유아들이 많이 쓰며[131] 서울특별시 구로구금천구의 유치원으로 간다.[132] 광명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0년~197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3~54세이다.

사립유치원은 26곳 있다. 1960년대 1만 5,985명이었던 인구가 2012년 35만 5,560명을 찍은 뒤 감소해서 2021년 29만 8,599명이 됐는데도[133] 이 모양이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장씨가 윤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광명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강, 조, 장, 윤, 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야구선수 이학주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134]

2021년 7월 17일 광명시의 유치원생 3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21. 오산시[편집]


1977년 설립된 노틀담 유치원이 최초로, 천주교 수원교구 오산성당과 이웃해 있다. 오산시가 아직 경기도 화성군 오산읍이었던 시절, 현재의 오산시 청학동에서 노틀담 수녀회[135]가 가난한 농촌 지역 어린이들을 가르치겠다는 뜻을 품고 설립했다. 1977년부터 1989년까지는 노틀담 유치원이 화성군 최초의 유치원이었다. 그 이전에는 오산에 사는 아이들이 오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수원이나 송탄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다. 오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1년~1973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2~53세이다. 현재는 화성시 정남면과 평택시 진위면에서 오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 오산의 유치원 버스들이 화성시 정남면, 평택시 진위면 거주 유아들을 태우고 가기도 한다.

사립유치원은 26곳 있다. 1960년대 2만 1,162명이었던 인구가 22만 9,725명으로 늘면서 같이 늘어났다.

이 곳의 '근혜유치원'[136] 역시 2017년 박근혜 탄핵 사건 이후 유명세를 탔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전국 순위와 같으면서도 11위 이하로는 좀 다른데, 오산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강, 조, 윤, 장, 임 순서이기 때문이다.

배구선수 한유미한송이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0년 11월 15일 원일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재원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2021년 12월 2일에는 유치원생들이 집단으로 확진 판정을 받은 적이 있었다.


22. 광주시[편집]


1978년 설립된 곤지암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로, 광주시가 아직 광주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한 것이었다. 경안[137]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2년~1974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1~52세이다.

특이하게 시내보다 곤지암읍에 먼저 유치원이 들어왔다. 시내 최초의 유치원은 1981년에 설립된 광주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광주군의 범위가 지금보다 더 넓었던 시절까지 범위를 넓히면, 1956년에 구천면 곡교리(현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동), 1970년에 중부면 수진리와 동부면 덕풍리에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광주군 최초의 유치원이었던 성애유치원(구천면 곡교리 소재)은 1959년에 폐원되었고[138], 1960~80년대를 거치면서 서울로 3개 면[139]이 편입되었고, 5개 읍면[140]성남시하남시로 독립했다. 행정구역 개편의 최대 피해자. 행정구역 개편만 아니었으면 광주시의 인구가 312만 7,840명까지 늘어나고[141] 광주군 최초의 유치원은 1950년대까지 그 기록이 올라갔을 것이다. 또한 1950년~1952년생이 광주군 최초의 유치원생으로 기록에 남고 첫 졸업생의 나이가 73~74세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사립유치원은 14곳 있다. 시내, 오포읍, 초월읍, 곤지암읍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으나 면에는 없다. 이는 남양주시, 용인시, 파주시 등과 비슷하게 유치원이 설립될 당시에는 면이었다가 행정단위가 '읍' 또는 '동'으로 승격되었기 때문이다. 인구가 1960년대의 10만 3,217명[142]에서 38만 2,054명[143]으로 늘어났는데도 이 모양이다. 이 곳 주민들이 영어학원 유치부에 보낼 경우에는 성남시 분당구 등지로 원정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 현재 이 곳은 영어학원 유치부가 없는 지역 중 인구가 가장 많다. 오포읍의 경우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144]에서 원정 오는 수요도 있다. 초월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원생이 단 1명밖에 없다. 인구는 30만 넘는 도시에 원생이 1명뿐인 유치원이라니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10위까지는 전국 순위와 같아도 11위부터는 다른 부분이 있는데, 광주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강, 조, 윤, 장, 임 순서이기 때문이다.

더보이즈의 아이돌 주연과 배우 김민교[145], 축구선수 정성룡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3. 안산시[편집]


1978년 상록수샘골교회[146] 부설로 설립된 해당화유치원이 최초이다. 안산시가 아직 경기도 시흥군 및 화성군 산하 3개 면[147]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안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2년~1974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1~52세이다. 한편, 반월출장소 설립 이후에도 시골로 남아 있던 단원구에는 1982년에야 뒤늦게 유치원이 들어왔다. 이로써 안산시는 일반구가 있는 도시들 중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온 곳이 되었다.[148]

유치원이 드물었던 시절에는 안산에 사는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니기 위해 수원이나 인천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으나[149], 현재는 역으로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150]화성시 매송면 어천리, 야목리, 원리, 시흥시 정왕동, 군포시 대야미동에서 안산으로 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립유치원은 58곳 있다(대부도에는 없다). 1960년대 1만 9,624명[151]이었던 인구가 2011년 71만 6,423명을 찍은 뒤 계속 감소해 65만 1,211명으로 감소했다가 2021년 65만 4,219명으로 반등했는데도[152], 유치원도 같이 늘어났다. 외국인 비율이 높은 지역 특성상 안산의 유치원에는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파키스탄 등지에서 건너온 노동자의 자녀들도 있을 정도이다.

2004년 안산시의 유치원을 졸업한 사람들[153]은 자신의 유치원 친구 중 죽은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피해자들이었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한씨가 임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안산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강, 조, 윤, 장, 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사실 수도권 서부에서 한씨가 임씨보다 많기는 하지만(...).

배구선수 김연경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154] 또한 방송인 랄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최초로 월드컵 멀티골을 넣은 축구선수 조규성[155]도 안산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0년에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 집단 식중독 사건이 발생했다. 참고로 해당 유치원은 비리 감사에도 적발된 전적이 있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4. 화성시[편집]


1980년 송산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로, 화성시가 아직 화성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오산시가 화성군 관할이었던 시절까지 범위를 넓히면 1977년 화성군 오산읍에 개원한 노틀담유치원이 최초이나, 오산읍은 1989년 오산시로 독립했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화성군 매송면, 태안읍에 살던 아이들이 기차를 타고 수원에 있는 유치원으로, 동탄면에서는 농어촌버스를 타고 오산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하기도 했다. 화성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4년~197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9~50세이다. 그래서 화성시가 고향인 50대 이상인 어른들 중 유치원을 다닌 사람들은 대체로 병점역에서 경부선 기차를 타고 수원까지 가야 했다. 서신면[156], 마도면 등지에 사는 경우는 안산이나 인천으로도 갔다고 한다.

특이하게 시내보다 송산면에 유치원이 먼저 들어왔으며, 시청이 있는 남양읍에는 1981년 설립된 남양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수원시 영통구 최초의 유치원인 새싹유치원도 화성군 시절인 1985년에 태안읍 영통리에서 개원했다. 참고로 유치원 원장이 원비로 백화점에서 초고가 명품 브랜드인 루이비통 가방을 구매하고 벤츠 차량 유지비와 아파트 관리비 등을 납부했으며, 성인용품점, 숙박업소, 노래방 등에서 쓴 돈 등 총 7억 여원을 부정하게 사용하다가 적발된 환희유치원이 화성시 동탄신도시에 있다.[157]

급속 성장을 보여 주듯, 30년 만에 사립유치원이 우후죽순으로 설립되었다. 현재 사립유치원은 60곳 있는데 동탄신도시, 병점지구, 남양읍, 향남읍, 우정읍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1960년대[158]에 20만 4,254명이었던 인구가 1995년 15만 8,247명까지 감소했다가 계속 증가해서 2021년 85만 5,248명으로 늘었는데도[159] 이 모양이다. 이런 이유로 동탄에 사는 아이들이 지역 내 유치원 추첨에 다 떨어지면 수원, 용인, 오산이나 멀리는 서울, 성남 등 다른 도시에 있는 유치원을 다니는 수밖에 없다. 화성시 매송면 어천리, 야목리, 원리에서는 안산으로, 양감면은 평택으로 원정 보내는 경우도 많다.

1998년생까지는 단 하루라도 화성시가 화성군이었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으나 1999년생부터는 화성시로 승격된 후에 유치원을 다닌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조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화성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윤, 강, 장, 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그나마 해풍 김씨 성을 가진 유치원생을 보기 쉬운 지역 중 하나이다. 또한 배우 서신애로스앤젤레스 FC의 축구선수 김문환[160]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5. 남양주시[편집]


1981년 설립된 퇴계원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로, 남양주시가 아직 남양주군이던 시절에 설립되었다. (울릉도보다 늦게 유치원이 들어온 시이다.) 특이하게 시내 (옛 미금시)보다 퇴계원읍에 유치원이 먼저 설립되었다. 남양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옛 미금시 지역은 이보다 1년 늦게 들어왔다. 또한 이 곳은 국회의원 선거구가 3개 이상인 지역들 중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왔다.

  • 미금시: 1982년 남양주양정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6년~1978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7~48세이다.

남북분단만 아니었으면 서울 시가지가 남양주로도 확장되어, 1960년대에 이미 진건읍, 진접읍, 퇴계원읍 등지에 유치원이 들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과거 유치원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별내면[161]에 살던 아이들이 경춘선 기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하기도 했다. 1950년대에 노원구 공릉동에 유치원이 있었으니 남양주시 퇴계원읍에서 그 곳으로 가는 원생이 있었을 것이다. 현재 그러는 경우는 드물어졌으나,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을 시키기 위해 팔당대교를 건너 하남시로 가거나, 아예 구리서울로 가는 경우가 드물게나마 있다.

사립유치원은 49곳 있다. 중심지가 딱히 없고[162] 이리저리 찢어진 도시 구조 덕분에, 시내 외에 퇴계원읍, 진건읍, 진접읍, 오남읍, 화도읍, 와부읍 등 여러 개의 읍면동에 분산되어 있다.[163] 1960년대에 7만 8,547명[164]이었던 인구가 71만 3,321명으로 늘면서[165], 사립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다만, 남양주시가 과거 농촌이었고 상수원보호구역에 묶여 개발이 더뎌진 탓에 최초로 유치원이 들어온 시기가 많이 늦어서 인구 50만 명 이상인 도시들 가운데는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온 곳이 되었다.[166]

서울과 가깝다는 남양주시의 지리적 특성상 남양주시의 유치원에서는 광릉수목원이나 어린이대공원으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많으며 드물게는 올림픽공원, 롯데월드 등으로 빠지기도 한다.

과거에는 전방 지역답게 원생의 대부분이 직업군인의 자녀였으나, 현재는 직업군인 자녀가 아닌 원생들이 많아졌는데, 주로 서울의 비싼 집값을 견디지 못하고 이사 온 사람들의 자녀이거나 농어촌특별전형을 노리고 서울에서 관내 읍면 지역[167]으로 이사 온 사람들의 형제자매이다. 현재는 제주도보다 많은 인구[168] 덕에 원생이 많아지고 교육 여건도 좋아지면서 포천시 내촌면, 화현면이나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 양평군 양서면, 서종면, 옥천면에 사는 유아들도 오는데, 실제로 이 동네에서는 자차나 유치원 버스, 혹은 경춘선 열차[169]로 남양주의 유치원에 간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한씨가 임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남양주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윤, 강, 장, 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사립유치원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왕숙신도시에 설립되는 모든 유치원은 공립으로 세워지게 된다.

배우 김소은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6. 양주시[편집]


1981년 설립된 송추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양주시 자체로만 보면 울릉도보다 유치원이 늦게 생겨났으나, 송추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양주시가 아직 양주군이었던 시절에 개원되었다. 특이하게 시내보다 장흥면 교현리[170]에 유치원이 먼저 들어왔다. 양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시내 최초의 유치원은 같은 해 3월 10일에 설립된 유양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그 전에는 양주에 사는 아이들이 경원선 기차를 타고 의정부나 동두천의 유치원으로 가야 했다.

양주군이 서울 도봉구노원구, 중랑구 묵동, 신내동, 망우동, 상봉동, 중화동까지 관할하던 시절에 최초로 개원된 의정부성당 부설 성모유치원은 개원 9년 만에 양주군 의정부읍이 의정부시로 독립하면서 의정부시 관할로 넘어갔고, 동두천성당 부설 효성유치원은 소재지인 양주군 동두천읍이 1981년 동두천시로 독립했다.

사립유치원은 17곳 있는데 시내, 백석읍, 남면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역시 남북분단만 아니었으면 (이미 시가 되었을)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시가지가 연천군, 동두천시를 넘어 여기까지 확장되어, 유치원이 10년은 일찍 들어왔을 수도 있었다. 1960년대 6만 4,410명[171]이었던 인구가 23만 359명으로 늘면서[172] 사립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양주시에 관광지가 많아 관내 유치원들은 그 곳으로 소풍을 많이 가고 멀리는 포천, 서울 등지로 가기도 한다.

행정구역 개편의 피해자. 행정구역 개편만 아니었으면 양주시 인구가 279만 9,235명 (남면 제외 시 279만 2,231명)까지 늘어나고[173] 양주 최초의 유치원은 1950년대까지 기록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조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양주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윤, 강, 장, 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소예은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7. 시흥시[편집]


1981년 설립된 소래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로, 시흥시가 아직 시흥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시흥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이 때문에 시흥시는 국회의원 선거구가 2개 이상인 지역들 중 유치원이 가장 늦게 설립된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이전에는 지금의 시흥시에 사는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기 위해서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인천, 부천 등 주변 도시까지 가야 했다. 지금도 정왕동에 가 보면 안산의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고, 월곶동 등 인천과 가까운 동네에서는 인천으로 가는 유아들이 드물게나마 있다.

시흥군이 서울시 영등포구, 동작구, 금천구, 관악구, 서초구까지 관할하던 시절까지 올라가면, 1927년 영등포읍(현재 서울 영등포구)에 개원한 흥화유치원이 최초이다. 그러나 흥화유치원은 영등포읍이 경성부로 편입되는 1936년에 서울 관할로 넘어갔다. (시흥군 시절에 흥화유치원을 다닌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현재 살아 있을 경우 최소 80대 후반이다.) 역시 행정구역 개편의 피해자. 행정구역 개편만 아니었으면 시흥시의 인구가 406만 2,028명[174]까지 늘고 시흥 최초의 유치원은 1950년대를 넘어 1920년대까지 기록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사립유치원은 30곳 있다. 1960년대 12만 8,254명[175]이었던 인구가 50만 895명[176]으로 늘면서 사립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2010년대 후반 목감지구의 인구가 늘었을 때 유치원 부족으로 관내 거주 원아들이 안양시, 안산시, 광명시 등지로 원거리 통학을 하기도 했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장씨가 윤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시흥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강, 조, 장, 윤, 임 순서이기 때문이다.

배우 경수진과 피아니스트 임윤찬, 아마존 익스프레스 랩의 원조 윤쭈꾸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8. 군포시[편집]


1981년 설립된 군포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로, 군포시가 아직 경기도 시흥군 군포읍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군포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그 전에는 군포에 사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려면 안양까지 가야 했다.[177]

사립유치원은 27곳 있는데, 시흥군 군포읍이 군포시로 승격된 이후 산본신도시를 중심으로 해서 개원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9,086명이었던 인구가 2015년 28만 7,487명을 찍은 뒤[178] 2021년 27만 3,791명으로 줄어드는 등 인구 증감을 반복하는 수준이 되면서[179] 사립유치원 숫자도 늘었다.

군포시의 지리적 특성상 군포의 유치원 중에는 서울대공원으로 소풍을 가는 유치원들이 많다고 한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한씨가 임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군포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강, 조, 윤, 장, 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김연아1994년~1996년[180]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태어난 곳은 부천시 도당동이지만, 어린 시절에 이사를 와서 그런 것이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9. 의왕시[편집]


1981년 설립된 의왕부곡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로, 의왕시가 아직 경기도 시흥군 의왕읍이었던 시절에 개원한 것이었다.[181] 의왕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사립유치원은 13곳 있는데, 시흥군 의왕읍이 의왕시로 승격된 이후 개원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1만 815명이었던 인구가 16만 3,795명으로 늘면서, 사립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의왕에 유치원이 생기기 전에는 의왕에 살던 아이들이 기차를 타고 안양시[182]수원시[183]로 원정 통학을 해야 했다. 지금도 더 나은 교육여건을 만들어 주려는 부모와 유치원 추첨에서 다 떨어진 경우는 안양시 등지로 원정을 가며,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구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개통 이후 성남시로 가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의왕시의 해나라유치원은 과거 원장이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다고 한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조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의왕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이박최정조윤강장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의왕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유명인으로는 야구선수 김주가 있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0. 과천시[편집]


1981년 과천초등학교에 설립된 병설유치원이 최초로, 과천시가 아직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이었던 시절에 개원되었다. 과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그 전에는 과천에 사는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니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서울이나 안양으로 가야 했다.[184] 과천에서 서울로 원정을 보낼 경우 거의 대부분이 지리적으로 교류가 잦은 서초구에 있는 유치원으로 보낸다.

사립유치원은 어지간한 군 수준인 4곳밖에 없는데, 이는 과천시 자체의 적은 인구 때문이다.[185] 심지어 과천시보다 사립유치원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도 7곳이나 있을 정도이다.

과천시의 지역적 특성상 이 지역 유치원에서는 서울대공원이나 서울랜드로 소풍을 가기도 한다.

사립유치원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과천지구에 설립되는 모든 유치원은 공립으로 세워지게 된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조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과천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윤, 강, 장, 임 순서이기 때문이다.

과천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유명인으로는 축구선수 김신욱[186]이 있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1. 구리시[편집]


1982년 설립된 토평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구리시는 이것 때문에 전국에서 가장 늦게 유치원이 들어온 동네가 되었다. 역시 구리시가 아직 남양주군 구리읍이던 시절에 설립되었다. 구리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6년~1978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7~48세이다. 양주군 구리면→구리읍 시절에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서울 동대문구중랑구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고, 구리암사대교 개통 이후에는 강동구 암사동의 예슬유치원 등지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으며 서울 지하철 8호선구리역을 넘어 별내까지 연장되면 서울로 가는 경우가 더 늘어날 예정이다. 아침 시간대에 구리시를 가 보면 서울의 유치원 버스가 와서 구리시 거주 원생을 태우고 가는 경우도 있을 정도. 주로 교문동이나 아천동에 사는 원생들이 이렇게 하는 듯. 드물게 남양주시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187]

구리시보다 유치원이 늦게 설립된 지역은 도시화가 상대적으로 늦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188], 수원시 영통구[189], 인천광역시 서구 중 검단지구를 제외한 지역[190]등이 있다. 하지만 시와 군으로 한정하면 구리시가 전국에서 가장 늦게 유치원이 설립된 지역이다. 다만, 구리시 자체는 의외로 유치원 교육의 혜택을 일찍 받은 지역인데, 1950~60년대에 이미 구리시 갈매동에 살던 아이들이 경춘선 열차를 타고 노원구 공릉동의 공릉유치원에 다닌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구리시의 유치원 추첨에 다 떨어지면 서울특별시 등 다른 지역의 유치원으로 보내는데, 주로 강동구[191]중랑구, 광진구[192]의 유치원으로 보낸다고 한다.

구리시의 지리적 특성상 해당 지역의 유치원에서는 어린이대공원으로 소풍을 많이 간다.

사립유치원은 17곳 있다. 1960년대 1만 1,765명[193]이던 인구가 2018년 20만 2,121명까지 늘었다가 2021년 19만 7,454명으로 줄어드는 등 증감을 반복하지만, 사립유치원 숫자는 늘었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조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구리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강, 장, 윤, 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야구선수 안치홍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4-04-09 10:53:19에 나무위키 유치원/지역별 현황/경기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장단군 중 남한에 남은 지역은 파주시연천군에 편입. 정확히는 장남면연천군에 편입되고, 장단면, 군내면, 진동면, 진서면파주시로 편입됐다.[2] 독립운동가 권애라가 이 곳에서 교사로 근무했다.[3] 시내 인구는 1960년대의 1만 7,910명에서 2021년 4만 422명으로 늘어 시내 비중이 16.2%에서 36.7% (오학동 포함 시 51.8%)로 높아졌다. 여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4만 422명, 오학동 1만 7,989명, 가남읍 1만 5,607명, 대신면 7,075명, 능서면 6,400명, 흥천면 5,121명, 북내면 4,896명, 점동면 4,664명, 강천면 4,184명, 금사면 2,995명, 산북면 2,544명으로 높은 시내 집중도를 보여 준다. 만약 개군면이 여주시 관할이었으면 여주의 인구는 11만 6,994명이었을 것이다.[4] 간씨는 인구 2,920명의 희귀 성인데 그 중 235명이 여주에 살고 있다.[5] 기안84는 1984년 10월 22일생(39세)이므로 유치원은 1988~1990년 사이에 다녔다. 사실상 이들은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개장하던 시기에 유치원생이었고 국군의 날이 마지막으로 공휴일이었던 시기, 아마존 익스프레스KTX가 없고 (심지어 착공조차도 안 했다.) 한국 철도가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 4등급 체계였던 시기, 고졸들이 주로 9급 공무원 시험을 보던 (게다가 당시 9급 공무원 시험 과목은 국어, 한국사, 영어, 사회, 수학, 국민윤리 등 6과목이었고 전문과목인 행정학, 행정법 등은 아직 시험과목이 아니었다.) 시기가 유치원생이었던 셈. (이 때 한글날도 같이 공휴일에서 제외됐으나, 한글날은 1984년생이 성인이 된 후인 2013년에 공휴일로 복귀) 기안84라는 이름은 엄밀히 말해서 성인이 된 이후에 만든 필명이므로 유치원은 본명인 '김희민'이라는 이름으로 다녔다.[6] 이천군의 시 승격은 1996년.[7]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이천군 장호원읍에 살던 아저씨들이 을 마시다가 자정이 되면 다리 건너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으로 가서 술을 마셨을 정도이다. 이런 현상은 2020년 연말 코로나19 사태로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달라지면서 재현되었다.[8] 그 시절 용인과 이천을 잇던 철도인 수려선은 폐선됐고, 그 때의 아이들은 2021년까지 생존해 있더라도 팔순 넘긴 어르신들이다.[9] 시내 인구는 1960년대 1만 8,906명에서 2021년 9만 6,201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15.9%에서 44.5%로 높아졌다. 이천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9만 6,201명, 부발읍 3만 6,065명, 장호원읍 1만 4,699명, 대월면 1만 4,431명, 마장면 1만 4,265명, 신둔면 1만 3,723명, 백사면 1만 1,268명, 호법면 5,900명, 설성면 4,752명, 모가면 4,417명, 율면 2,667명으로 교통의 요충지인 북부의 인구가 더 많다. 심지어 율면은 수도권 지역 중 경상도와 가장 가깝다.[10] 1989년 안성선 폐선.[11] 소사리를 평택에 뺏기고, 진사리는 거의 평택이나 다름없다.[12] 용이리, 죽백리, 청용리, 월곡리를 평택에 뺏겼다.[13] 시내 인구는 1960년대 2만 3,698명에서 2021년 5만 8,840명으로 늘어, 시내 비중은 16.4%에서 30.8%까지 높아졌다. 다만, 시내 인구는 공도읍보다 적다. (2020년 들어 격차가 좁아질 조짐은 보이고 있다.) 안성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공도읍 5만 9,273명, 시내 5만 8,840명, 대덕면 1만 5,332명, 일죽면 7,589명, 금광면 7,540명, 죽산면 6,850명, 원곡면 6,300명, 미양면 5,834명, 보개면 5,368명, 양성면 5,281명, 삼죽면 3,545명, 서운면 3,383명, 고삼면 1,967명으로 면 지역의 인구가 처참하리만큼 적다.[14] 당시 수원군 수원면 교리. 수원면은 1931년 읍으로 승격된다.[15] 충청남도의 태안읍은 '클 태(泰)'자를 쓰고, 경기도의 폐지된 태안읍은 '별 태(台)'자를 썼다.[16] 물론 과거 용인군 수지면, 화성군 반월면, 시흥군 의왕면 등도 수원에 접하기는 했지만 시흥군 의왕면에 살던 아이들은 주로 안양의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했고, 용인군 수지면은 수원으로 향하는 교통편이 부실했고, 화성군 반월면도 수인선이 지나가는 서부는 수원으로 가는 교통 상황이 나았으나 동부 지역은 수원보다 안양이 더 가까운 탓에 수원으로 가는 교통편이 부실했기 때문이다.[17] 권선구 36만 8,645명, 영통구 36만 8,842명, 장안구 27만 3,661명, 팔달구 17만 4,930명. 이는 수원 자체의 지형 때문인데, 광교산 정도를 빼면 산이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을 만한 산이 없어서 인구가 고루 퍼질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일본에는 수원보다 인구가 적은 현이 16개 (이시카와현, 오이타, 미야자키, 야마가타, 도야마, 아키타, 가가와, 와카야마, 사가, 야마나시, 후쿠이, 도쿠시마, 고치, 시마네, 돗토리)나 있고, 미국에도 수원보다 인구가 적은 주가 8개 (몬태나, 로드아일랜드, 델라웨어,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알래스카, 버몬트, 와이오밍)나 있다.[18] 이 정도면 광주광역시대전광역시는 그냥 제치고, 미국의 15개 주 (뉴멕시코, 네브래스카, 웨스트버지니아, 아이다호, 하와이, 뉴햄프셔, 메인, 몬태나, 로드아일랜드, 델라웨어, 사우스다코타, 노스다코타, 알래스카, 버몬트, 와이오밍)보다 인구가 많아지게 된다. 일제강점기 인구대로 조합하면 271만 829명으로 대구광역시보다 많다.[19] 정현은 1996년 5월 19일생(27세)이다. 정현의 또래인 1996년생들은 1999~2002년에 유치원을 다녔고, 1996년 1~2월생들은 1995년생들과 같은 시기인 1998~2001년에 유치원을 다녔다. 즉, 정현황인범이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것이다. (황인범은 1996년 9월 20일생, 27세) 이들은 양평군, 가평군에 고속도로가 없고, KTX가 없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고, 2002 한일 월드컵을 유치원생 신분으로 봤다. 형 정홍과 같은 유치원을 다녔는지는 불명.[20] 김동현은 1981년 11월 17일생이므로 1985~1987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사실상 1981년생들은 경기도 북부에 고속도로가 없고 (심지어 당시 경기도 북부에는 의정부시 단 1곳을 제외한 나머지 (고양군, 남양주군, 구리시, 동두천시, 양주군, 파주군, 포천군, 연천군, 양평군, 가평군)는 모두 인구 20만 미만이었다.) 일본이 월드컵에 한 번도 나가지 못하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닌 셈. 엄밀히 말해서 김동현이라는 이름은 중학교 3학년이던 1996년에 개명한 이름이므로 유치원은 개명 전 이름인 ‘김봉’으로 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김동현은 초등학교부터 대전으로 이사해서 그 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21] 현우진은 1988년 2월 10일생(36세)이므로 본래 1992~199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어야 하나, 빠른 년생을 적용받아 1991~1993년으로 조정되었다. 1987년생과 빠른 1988년생은 황영조의 금메달 획득과 빌 클린턴의 당선, 독수리 요새 개장을 유치원생 시절에 봤던 셈. 현우진에게는 형이 있었는데 형과 같은 유치원을 다녔는지는 불명.[22] 신유빈은 2004년 7월 5일생(19세)이므로 2007~2010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그녀의 유치원 시절은 국내에 판다가 없는 것은 물론 강원특별자치도에 고속철도가 없고, 대체휴일제마저 없어 공휴일 지옥 속에서 (2009년은 설날 연휴 1일, 삼일절, 부처님오신날, 현충일, 광복절, 추석 연휴 이틀, 개천절이, 2010년은 설날 연휴 2일,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 성탄절이 모두 주말에 겹쳤다. 그나마 2010년에는 한글날놀토에 걸리기라도 했지 2009년에는 그마저도 아니었다.) 유치원을 다녀야 했다.[23] 이태원 압사 사고 당시 사람을 5명이나 구한 의인 유아교사 배지터 (본명 채경민)가 근무하는 유치원이기도 하다 [24] 1995년 검단면을 인천에 넘기면서 일시적으로 인구가 줄어든 적이 있었다. 이 때 검단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등 김포의 유치원 몇 곳이 함께 인천으로 넘어갔으며, 만약 김포시가 검단면을 넘기지 않았다면 김포시의 인구는 63만 657명, 양동면과 양서면까지 넘기지 않았다면 166만 5,093명까지 늘었을 지도 모른다. 김포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27만 6,860명, 구래지구 7만 3,661명, 고촌읍 4만 4,389명, 양촌읍 2만 8,880명, 통진읍 2만 6,681명, 대곶면 9,776명, 하성면 8,201명, 월곶면 5,512명으로 최전방인 북부 지역의 인구가 적다.[25] 월곶면, 대곶면, 하성면.[26] 만약 경기북도가 분도되면 1946~1953년까지는 제주도가 유치원이 가장 늦게 설립된 광역자치단체이지만, 1954년~2012년까지 유치원이 가장 늦게 설립된 광역자치단체는 경기북도가 된다.[27] 수락리버시티 3, 4단지 거주 아동.[28] 동씨 자체는 북한에 더 많지만, 남한 동씨들은 의정부에 모여 사는 경우가 많다. 아마 양주에 살던 광천 동씨들이 의정부로 이사를 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29] 김초희는 1996년 9월 7일생(27세)이라 1999~200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는데, 김초희의 고향인 경기도 의정부시는 도시 지역이라 사립유치원이 많지만 나머지 4명 (김영미, 김경애, 김선영, 김은정)의 고향인 경상북도 의성군은 농촌 지역이라 현재 사립유치원이 의성읍 에덴유치원 하나밖에 남지 않은 데다 단설유치원도 없고, 그나마 그 사립유치원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병설유치원 출신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김초희는 KTX가 없고 전한길이 수능 강사였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닌 셈이다.[30] 이들 지역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싶다면 안양시로 가서 타는 경우가 많고, 서울특별시까지 가기도 한다.[31] 동안구 31만 614명 (56.8%), 만안구 23만 9,413명 (43.2%).[32] 기보배1988년 2월 20일생(36세)이므로 1987년생들과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녔다. (때문에 기보배는 손고운, 김현수, 류현진, 최다은과 유치원 동기가 된다.) 이들은 황영조의 금메달과 20세기 마지막 윤3월 (1993년 4월 22일~5월 20일)을 유치원 시기에 경험한 셈.[33] 황대헌은 1999년 7월 5일생이라 2002~2005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황대헌이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에는 국내에서 판다를 볼 수 없었고 공휴일이 주말에 많이 겹쳐 등원 일수가 많았으며 전한길이 수능 강의를 했던 시절이었다. 동생 황대윤과 같은 유치원을 다녔는지는 불명.[34] 1971년~1973년생이 첫 원생이고, 첫 졸업생은 현재 52~53세가 됐다.[35] 1960년대 당시 포천면의 인구는 1만 6,056명, 영북면의 인구는 2만 3,935명이었다.[36] 포천시는 화천군과도 접해 있지만 화천으로 가는 길은 상태가 나빠 화천에서 유치원 원정 통학을 하는 아이들은 99% 이상이 춘천으로 간다.[37] 주로 노원구, 중랑구.[38] 흔히 '영평'이라고 하면 여기를 뜻한다. 실제로 영중면에 영평리가 있다.[39] 흔히 이 곳을 '운천'이라고 부른다. 산정호수가 영북면 산정리에 있다.[40] 시내 인구는 1960년대 1만 6,056명 (당시에는 영북면의 인구가 2만 3,935명이었다.)에서 2021년 3만 3,317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11.5%에서 22.2%로 높아졌다. 이렇게 시내 집중도가 낮은 데에는 소흘읍의 인구가 4만 4,768명으로 포천시 전체 인구의 30,1%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포천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소흘읍 4만 3,812명, 시내 3만 3,317명, 신북면 1만 2,507명, 일동면 9,403명, 군내면 8,661명, 영북면 8,465명, 가산면 7,715명, 이동면 6,222명, 영중면 4,860명, 내촌면 4,588명, 관인면 2,803명, 화현면 2,753명, 창수면 2,168명으로 시내보다 소흘읍의 인구가 더 많다. 소흘읍 송우리에서 잠실역 가는 버스가 있을 정도면 말 다 했다.[41] 임영웅은 1991년 6월 16일생(32세)이므로 1994~1997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유치원 입학 이후 Windows 95 발매와 IMF 사태를 겪고 에버랜드 판다월드에 밍밍(明明)과 리리(莉莉)가 있었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와서야 포천군이 시로 승격했다.[42] 현재는 동으로 전환.[43] 참고로 지금도 평택에 사는 유아들 중 일부는 천안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한다. 천안으로 간 경우는 주로 평택읍에 살던 아이들이었고, 송탄읍, 진위면 등지에서는 수원으로 갔다고 한다.[44] 1970년 당시 평택읍은 4만 1,510명, 송탄읍은 5만 1,527명이었다. 1975년에는 평택읍 5만 1,375명, 송탄읍 5만 7,356명, 1980년 평택읍 6만 815명, 송탄읍 6만 3,911명이었다.[45] 옛 송탄시 13만 7,276명, 옛 평택시 22만 7,968명, 옛 평택군 17만 2,243명. 옛 송탄시 지역은 1960년대 4만 3,916명에서 2021년 13만 7,276명으로, 옛 평택시 지역은 1960년대 3만 2,104명에서 2021년 22만 7,968명으로 늘면서 옛 송탄시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23.3%에서 26.4%로, 옛 평택시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17%에서 41.8%로 늘었으나 옛 평택군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59.7%에서 31.8%로 떨어졌다. (옛 송탄시 지역: 중앙동, 서정동, 송탄동, 지산동, 송북동, 신장1동, 신장2동) 현재 평택시에는 평균 해발 고도가 낮아 개발에 용이하다는 점을 들어 고덕면 등지에 신도시를 개발하고 있어 인구가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평택시의 읍면별 인구는 (舊) 평택시 지역 22만 7,968명, (舊) 송탄시 지역 13만 7,276명, 안중읍 4만 3,668명, 팽성읍 2만 7,696명, 청북읍 2만 6,705명, 포승읍 2만 4,010명, 고덕면(고덕동) 2만 3,052명, 진위면 1만 1,401명, 오성면 6,717명, 현덕면 5,311명, 서탄면 3,683명으로 산이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을 만한 산이 없어서 (평택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무봉산 정상으로 해발 208m밖에 안 된다. 산 없는 나라로 알려진 네덜란드 (팔제르베르크 정상이 해발 322m이다.), (람람 산 정상이 해발 406m이다.), 벨라루스 (드쟈르즌스카야 언덕의 정상이 해발 346m이다.)조차도 이 곳보다 높은 곳이 있을 정도이며, 그나마 일본도쿄 23구오사카시보다는 높은 곳이 있다.) 인구가 퍼질 수 있는 것이다.[46] 견씨 자체도 1,251명만 있는 희성인데 평택에 106명, 안성에 105명이 살고 있다.[47] 샛별(금성). 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48] 구 동두천역.[49] 동두천시 상패동이 과거 은현면 상패리였다.[50] 북도면, 영종면, 용유면, 영흥면, 덕적면, 대부면. 이후 영종면과 용유면은 인천으로, 대부면은 안산으로 넘어간다.[51]시흥시 대야동, 은행동, 신천동, 미산동, 방산동, 포동, 안현동, 매화동, 도창동, 금이동, 무지내동, 과림동, 계수동, 부천시 계수동, 옥길동, 광명시 옥길동[52] 이 때 오정면과 계양면이 김포군으로 함께 넘어갔다. 다만, 오정면은 1975년 부천시로 환원된다.[53]오정구 지역 (오정동, 성곡동) 16만 8,548명 (20.9%), 옛 원미구 지역 (부천동, 신중동, 중동, 상동, 심곡동) 41만 4,337명 (50.5%), 옛 소사구 지역 (소사본동, 대산동, 범안동) 23만 5,498명 (28.6%). 경기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인 신중동 (인구 13만 1,641명)이 이 곳에 있다. 2위는 남양주시 화도읍 (인구 11만 4,733명), 3위는 광주시 오포읍 (10만 8,027명). 다만, 인구 밀도는 가장 높은데, 부천시의 지형만 봐도 답이 나온다. 부천에서 가장 높은 산은 고강동의 지향산 (높이 125.7m)이고 (성주산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가장 높은 곳이 시흥시에 있다.) 그나마도 산이라고 명함을 못 내밀 정도로 심하게 낮다. 거기다 시 전체적으로 산지 비율이 낮게 나오니 (특히 중동, 상동 지역은 산지 비율이 0%에 수렴한다. 부천 아인스월드를 가 보면 그 곳에서는 산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이 동네가 국내에서 산을 하나도 볼 수 없는 거의 유일한 동네이다.) 개발이 용이해서 건설사들이 아파트를 많이 지으니 인구 밀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 그냥 경인선 라인은 산 없는 동네다[54] 유승민1982년 8월 5일생(41세)이라 1986~198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82년생은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유치원생이었고, 그 시절이면 국군의 날이 공휴일이었고 버스와 지하철에서 담배 피우는 것과 대학교 졸업생 중 전과 1~2범 정도는 쉽게 보던 시절이었다. 그와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사람은 조정식, 가애란, 판유걸 등이며, 무려 이지영과도 동갑이다. 여담으로 유승민의 결승전 상대였던 왕하오1983년 12월 15일생이라 유승민보다 1년 늦게 유치원에 입학했다.[55] 황희찬은 1996년 1월 26일생(28세)이라 빠른 년생을 적용받아 1998~200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황희찬의 유치원 시절은 아직 제헌절이 공휴일이고, 어떤 공휴일에도 대체휴일이 적용되지 않았다. 황희찬 본인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출신이지만, 어린 시절 부천으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부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것이다.[56] 경상남도를 의미하는 慶南이 아니라, 경기도 남부를 의미하는 京南이다. (경상남도는 '축하할 경' 자를 쓰고, 경기도는 '서울 경' 자를 쓴다.) 버스회사 경남여객도 이 한자를 쓴다.[57] 수지벽산3단지아파트, 죽전동성아파트 등 주로 죽전동 북부.[58] 1960년대 당시 수지면에는 7,407명, 구성면에는 7,057명, 기흥면에는 8,502명이 거주했다. 현재의 일반구에 대입하면 수지구에는 7,407명, 기흥구에는 1만 5,559명, 처인구에는 8만 2,243명이 살았던 셈이다. 이런 이유로 경부고속도로 개업 당시 죽전휴게소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59] 멀지 않은 거리에 에버랜드캐리비안 베이가 있다.[60]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경기도 포천시, 연천군, 가평군, 양평군, 구리시, 남양주시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의 유치원에서 서울 롯데월드 어드벤처로 소풍을 오거나 울산광역시경상북도 영천시, 포항시의 유치원에서 경주로 소풍을 가는 등 원거리 소풍의 사례가 있기는 있었으나 워낙에 드물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61] 성남시수정구중원구는 오히려 롯데월드 어드벤처로 소풍을 더 많이 간다.[62] 흔히 '수지'라고 부르는 동네이다.[63] 흔히 '죽전'이라고 불린다.[64] 외지인들에게는 에버랜드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에버랜드가 포곡읍 가실리, 유운리, 전대리에 걸쳐 있는데 대부분이 유운리이고 매직랜드는 아예 가실리에 있다. 또한 에버랜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이언트판다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65] 이는 남양주시도 비슷하다. 남양주시양주군에서 분리될 당시 미금읍, 구리읍, 진건면, 진접면, 화도면, 와부면, 수동면, 별내면 등 2읍 6면이었으나 1986년 와부읍에서 조안면이, 1989년 별내면에서 퇴계원면 (2019년 읍으로 승격)이, 1995년 진접읍에서 오남면이 (2001년 읍으로 승격) 분리되고, 1983년 별내면 고산리, 산곡리가 의정부시로 넘어가고, 1986년에 구리읍이 구리시로 독립, 1989년에는 미금읍이 미금시로 독립했지만 미금시는 1995년 남양주시로 통합돼 남양주 시내의 동으로 전환됐다. 1980년 와부면을 시작으로 1989년 진접면, 1991년 화도면, 2001년 진건면과 오남면, 2019년 퇴계원면이 읍으로 승격된 것으로 모자라 2012년 별내면 덕송리와 화접리가 별내동으로 승격되면서 면에는 사립유치원이 없게 되었다.[66] 멀지 않은 거리에 한국민속촌이 있다.[67] 이는 시군구 경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서울특별시의 경우 강동구 성내동천호동의 유치원에 송파구 풍납동 거주 원생이 있는 경우가 대표적이며, 비수도권 지역은 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 거주 아동이 칠곡군 북삼읍의 유치원을 다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평택시, 안성시, 천안시, 포천시, 철원군, 가평군, 춘천시 등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가르는 지역에서는 수도권-비수도권 간 원정 통학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68] 이것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역시 비슷한데, 유가읍은 달성군의 읍 가운데 유일하게 사립유치원이 없다.[69] 구성·마북·동백1·동백2·동백3·상하·보정동[70] 수지구 37만 5,843명 (34.7%), 기흥구 44만 835명 (41.1%), 처인구 25만 7,498명 (24.2%). 구성구[69]까지 반영한다면 수지구 37만 1,857명, 구성구 21만 5,994명, 기흥구 22만 1,817명, 처인구 25만 3,982명이 된다. 용인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舊) 수지읍 지역 37만 5,843명, (舊) 기흥읍 지역 22만 3,697명, (舊) 구성읍 지역 21만 7,138명, 시내 11만 8,387명, 포곡읍 3만 3,300명, 모현읍 2만 6,202명, 남사읍 2만 3,547명, 이동읍 2만 265명, 양지면 1만 9,084명, 백암면 8,461명, 원삼면 8,252명으로 전체적으로 동 지역에 인구가 퍼져 있다. 그만큼 산도 엄청나게 깎여 나갔다. 70년대에는 에버랜드 때문에 산이 한 번 깎여 나가고 (에버랜드가 개장한 시기가 1976년이다.) 90년대 이후에는 수지, 구성 쪽 산이 엄청나게 깎여 나갔고 골프장 때문에 산이 깎여 나가고 또한 2019년에는 진짜로 고양시에 앞선 적도 있다. 만약 광교신도시와 고삼면이 아직도 용인이었다면 용인시의 인구는 115만 8,405명으로 늘고 광교신도시는 수지구에, 고삼면은 처인구에 편제돼 수지구 인구는 45만 8,105명, 처인구 인구는 25만 5,949명으로 늘었을 것이다.[71] 박형식은 1991년 11월 16일생(32세)이므로 1994~1997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박형식과 정대철은 같은 1991년생이지만 정대철이 1월 3일, 박형식이 11월 16일생이라 입학 연도에서 1년 차이가 난다. 1991년생들은 악명높은 1994년 폭염과 IMF 사태를 유치원 시절에 겪었고 그 시절 유치원에 Windows 95를 탑재한 컴퓨터가 설치되는 것, 그리고 캐리비안 베이의 개장을 유치원 시절에 볼 수 있었으며, 무려 에당 아자르 (1991년 1월 7일생)와 비슷한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셈이다.[72] 김한나는 2000년 4월 4일생(24세)이므로 2003~2006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2000년생들은 유치원 시절 KTX 개통을 경험한 셈이며, 양평군, 가평군, 포천시에 고속도로가 없는 것은 기본에, 국내에서 판다를 볼 수 없었고 T 익스프레스, 썬더폴스가 없고 대신 독수리 요새가 있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다. 사실상 소울리스좌는 윤쭈꾸가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에 태어난 셈이며, 그 시절이면 훗날 그녀가 캐스트 생활을 하게 되는 아마존 익스프레스가 개장한 지 단 10년밖에 안 된 신생 어트랙션이었다.[73] 이런 형태의 유치원 원정 통학은 양주군 구리면→구리읍, 시흥군 서면→소하읍에서도 볼 수 있었다. 물론 김포군 고촌면, 김포군 계양면, 시흥군 과천면, 광주군 동부면→동부읍/서부면, 양주군→남양주군 별내면, 광주군 대왕면/중부면도 서울에 접하기는 했지만, 이들 지역에서는 서울로 향하는 교통편이 부실해 서울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가 잘 없었다. 특히 지금의 성남시인 광주군 중부면 일대에는 철거민들이 많이 이주해서 그렇다. 소수의 고양군 중면, 지도면 주민들도 경의선 열차 등을 이용해 원정 통학을 시켰고, 고양군 벽제면의 경우는 교외선의 영향으로 의정부로 가는 원정 통학이 많은 편.[74] 신도읍에서 분리되었고, 구역은 현재의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덕동이다.[75]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사이에 유치원을 다닌 사람들은 1914~1935년생인데, 현재 이들은 88~110세이다. 김수영과 이순재가 대표적이다.[76] 2위인 수원시를 5곳 차로 제쳤다.[77] 당시 수도권에는 이런 경우가 많았다. 서울만 해도 강동구 성내동, 천호동송파구 풍납동에서 이런 경우가 매우 잦았고, 특히 풍납동은 이런 침수 때문에 물납동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붙게 되었다.[78] 덕양구 47만 6,962명 (43.7%), 일산동구 29만 9,715명 (27.9%), 일산서구 30만 2,538명 (28.5%). 분구까지 상정한 경우 덕양북구 24만 8,842명 (23.2%), 덕양남구 22만 829명 (20.6%), 일산동구 29만 8,445명 (27.9%), 일산서구 30만 2,886명 (28.5%)가 된다. 1960년대 신도면 2만 6,065명, 원당면 1만 1,341명, 지도면 1만 2,947명, 벽제면 1만 4,957명, 중면 1만 6,230명, 송포면 1만 2,186명으로 지금의 덕양구 (분구 이후 덕양북구+덕양남구) 지역에 6만 5,310명, 일산동구 지역에 1만 6,230명, 일산서구 지역에 1만 2,186명이 살았던 것에 비하면 일산지구의 성장이 엄청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옛 읍면으로 현재 인구를 계산하면 신도읍 (창릉동, 삼송동, 효자동) 5만 5,820명, 화전읍 (대덕동, 화전동) 2만 9,377명, 지도읍 (화정동, 능곡동, 행주동, 행신동) 20만 6,926명, 원당읍 (원신동, 주교동, 성사동, 흥도동, 식사동) 15만 2,777명, 벽제읍 (고양동, 관산동, 고봉동) 9만 246명, 일산읍 (장항동, 정발산동, 마두동, 백석동, 중산동, 풍산동, 탄현동, 일산동, 주엽동) 43만 2,999명, 송포면 (대화동, 송포동, 송산동) 11만 371명이다. 2019년에는 용인시에 뒤처진 적이 있었고 지금도 엎치락뒤치락하는 실정이다. 이런 이유로 덕양구를 덕양북구, 덕양남구로 분구할 계획도 있다. 분구된다면 덕양북구의 인구는 24만 8,842명, 덕양남구의 인구는 22만 829명이 된다. 대략 옛 지도읍, 벽제읍, 원당읍은 덕양북구, 신도읍과 화전읍은 덕양남구가 된다. 만약 진관동이 고양시 관할이었다면 고양시 인구는 113만 6,238명으로 늘고 진관동은 덕양구 (인구 53만 3,948명)에 편제되고, 분구 시 덕양남구 (인구 27만 7,851명)에 편제될 예정이다.[79] 전소민은 1986년 4월 7일생(38세)이라 1990~199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정황상 병설유치원이나 좀 오래 된 사립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그야말로 전소민은 판유걸이 유치원을 다닐 시기에 태어난 셈.[80] 김강률은 1988년 8월 28일생(31세)이라 1992~199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88년생들은 고양시 승격 직후에 유치원을 다닌 셈이며 정황상 좀 오래된 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81] 판유걸은 1982년 11월 20일생(41세)이므로 1986~198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판유걸을 비롯한 1982년생들은 1986 서울 아시안게임1988 서울 올림픽을 유치원 시절에 봤는데, 해당 대회들이 각각 1986년 9월 20일~10월 5일, 1988년 9월 17일~10월 2일 사이에 열렸으므로 해당 기간에는 유치원들이 단축수업을 했다. (해당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각각 1990~1992년, 1992~1994년 사이에 유치원생이었다.) 참고로 판유걸이 유치원을 다닐 당시 고양시는 고양군이었고, 산하에 신도읍, 화전읍, 벽제읍, 원당읍, 지도읍, 일산읍, 송포면이 있었고, 정황상 병설유치원이나 좀 오래 된 사립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판씨가 인구 300명도 안 되는 매우 희귀한 성씨이기 때문에 판유걸의 유치원 시절 친구들은 유치원에서 ‘판’씨라는 성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셈이다. 사실 이건 판씨만이 아니라 희귀한 성씨를 가진 사람은 유치원 친구들이 자신의 성을 처음으로 들어 보게 되는 것이다[82] 당시 가평역에서 서울로 갈 때는 비둘기호를 타야 했는데, 경춘선은 단선인 데다 역마다 다 서는 탓에 2시간 이상 걸렸고 그마저도 서울 시내도 아닌 청량리역에서 종착했다. 이런 이유로 21세기가 돼서야 가평에서 서울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춘천으로 가는 경우에 비해 그 빈도는 상당히 적다. 실제로 가평역에서 춘천역 방향으로는 굴봉산, 백양리, 강촌, 김유정, 남춘천 등 딱 5개 역만 거치면 되는데 서울로 가려면 청평, 마석 등 굵직한 역들을 거쳐야 한다. 다만, 청평면 대성리에 사는 유아들은 마석에 있는 유치원에 많이 간다.[83] 그나마 있던 샛별유치원은 현재 무기한 휴원 상태이다.[84] 가평읍 1만 9,632명, 청평면 1만 4,161명, 설악면 9,426명. 다만, 설악면은 인구 수 4위이고 3위 조종면은 9,718명, 5위 상면은 5,505명, 꼴찌 북면은 3,973명이다.[85] 가평군의 읍면별 인구는 가평읍 1만 9,496명, 청평면 1만 4,021명, 조종면 9,785명, 설악면 9,598명, 상면 5,586명, 북면 3,891명으로 인구가 대체로 경춘선 연선에 몰려 있다.[86] 그나마 있다는 호산나대학은 지적, 자폐성 장애인 전용 대학이며, 비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대학은 없다.[87] 아기 예수의 성녀 소화(小花) 데레사에서 딴 명칭이다.[88] 매년 명절만 되면 실향민들이 많이 찾는 임진각이 이 곳에 있다. 주로 황해도평안도, 개성시 계통 실향민들이 이곳을 찾는다.[89] 한국전쟁 이후 모든 교육기관이 폐교되었다. 현재 거주하는 주민들도 1998년에 들어왔다.[90] 당시 수도권은 이런 경우가 많았다. 파주군, 고양군은 홍수에서 순위권을 차지했고 서울강동구 천호동, 성내동송파구 풍납동이 침수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풍납동은 잦은 침수 때문에 물납동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91] 1973년 아동면과 임진면이 각각 금촌읍, 문산읍으로 승격, 1980년 주내면이 주내읍으로 승격 (1983년 파주읍으로 개칭), 1989년 천현면을 법원읍으로 승격, 1996년 파주시 승격 및 금촌읍의 분동, 2002년 교하면과 조리면이 각각 교하읍, 조리읍으로 승격, 2011년 교하읍을 4개 동으로 분동.[92] 분단 이전에는 연천군 산하였다.[93] 시내 인구는 1960년대 2만 964명에서 2021년 8만 2,795명으로 늘어 시내 인구의 비중은 10.8%에서 18.6%로, 교하지구의 인구는 같은 시기 1만 6,000명에서 23만 4,225명으로 늘어 교하지구 인구의 비중은 8.2%에서 48.1%로 높아졌다. 반면 예전의 장단군 지역은 민통선 등의 영향으로 인구가 725명밖에 안 된다. 파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교하지구 23만 4,225명, 시내 8만 2,795명, 문산읍 4만 8,475명, 조리읍 3만 81명, 파주읍 1만 3,294명, 탄현면 1만 3,265명, 광탄면 1만 1,425명, 법원읍 1만 810명, 월롱면 9,045명, 적성면 7,567명, 파평면 3,910명, 장단출장소 565명, 진동면 160명이다. 진동면은 경기도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읍면동인데, 인구가 가장 많은 부천시 신중동 (인구 13만 619명)은 이 곳 인구의 842배나 된다. 만약 적성면이 계속 연천군 관할이었다면 파주시의 인구는 45만 8,049명, 장단군 지역마저 빠지면 45만 7,324명이 된다.[94] 당시 철원군 관할.[95] 당시 포천군 관할.[96] 연천읍 8,013명, 전곡읍 1만 9,066명으로, 전곡읍이 더블 스코어로 앞선다. 이건 옛날에도 그랬는데 1970년대 연천읍이 1만 2,502명일 때 전곡읍은 1만 5,236명이었고, 연천에서도 전곡읍 혼자만 인구 2만 명을 찍은 적이 있었다 (2만 758명).[97] 1991년 면내 마지막 교육기관인 왕산초등학교 동중분교, 군남초등학교 북삼분교가 폐교되었다.[98] 1990년대 면내 마지막 교육기관인 횡산분교가 폐교되었다.[99] 2002년 면내 마지막 교육기관인 백학초등학교 고랑포분교가 폐교되었다.[100] 그만큼 연천군에는 군부대만 많지 거주인구는 적다. 연천군의 읍면별 인구는 전곡읍 1만 9,358명, 연천읍 7,869명, 청산면 3,933명, 군남면 3,214명, 신서면 2,762명, 백학면 2,652명, 미산면 1,781명, 왕징면 1,028명, 장남면 719명, 중면 200명으로 면 지역의 인구가 5,000명도 못 넘는다. 만약 적성면과 남면이 넘어가지 않았다면 연천군의 인구는 5만 8,087명 (장남면 제외 시 5만 7,368명)이었을 것이다.[101] 부산, 대구 등.[102] 중부면 (창곡리, 복정리, 수진리, 탄리, 단대리, 상대원리), 대왕면, 돌마면, 낙생면.[103] 할머니들을 모시는 양로원으로, 역시 인보성체수녀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본래 병원에 가기 어려운 가난한 사람들의 출산을 위한 조산원이었다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양로원으로 바뀌었다.[104] 그러니까 Windows 98의 지원이 종료되고 Windows Me, Windows 2000이 아직 현역이며, Windows XP가 전성기를 누릴 때, 전한길, 이하영, 이지영, 이다지, 고아름EBSi를 거쳐 갈 때까지도 판교에 살던 아이들은 동네에 유치원이 없어 유치원 한 번 다니기 위해 버스를 타야 했던 셈이다. 그 시절의 유치원생이 지금은 최소 대학생이지만.[105] 이 동들은 성남시에서도 시골이나 다름없다. 이들 지역의 인구를 모두 합해도 인구가 군 1개 정도에 불과하다. 둔전동, 사송동, 시흥동의 경우는 분당으로 많이 가는 편.[106] 상적동과 금토동은 주로 서초구, 신촌동, 오야동, 심곡동, 고등동은 강남구, 창곡동과 복정동은 송파구.[107] 당시 성남시 일부를 관할했던 중부면은 인구가 9,052명이었다. 현재 성남시로 분리된 창곡리, 복정리, 수진리, 탄리, 단대리, 상대원리, 산성리 일부분을 합치면 1960년대 해당 지역 인구는 2만 4,000~5,000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도 어지간한 군 지역보다 인구가 적었다.[108] 수정구 24만 1,701명 (24.9%), 중원구 21만 6,131명 (23.4%), 분당구 48만 2,232명 (51.7%). 성남시 성립 당시 지금의 분당구에는 서울공항으로 인한 개발제한이 걸려 인구가 2만 명도 안 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분당이 엄청나게 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성남시 성립 이전의 읍면을 따라 인구를 재구성하면 옛 대왕면 지역 1만 6,653명, 옛 중부면 지역 39만 2,177명, 옛 돌마면 지역 35만 5,058명, 옛 낙생면 지역 17만 6,176명이다.[109] 박인비는 1988년 7월 12일생(35세)이며, 1988년생까지는 개정 전 교육법을 적용받아 4세부터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으므로 박인비의 또래인 1988년생들은 1992년에 유치원 입학 대상이 되고, 1995년에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다만, 1988년 1월, 2월생들은 1987년생들과 함께 입학했으므로 1991년부터 1993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110] 하리수는 1975년 2월 17일생(49세)이므로 원래는 1979년부터 유치원을 다녀야 했지만, 빠른 년생이라 1978~1980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75년생들은 유치원 시절에 미니스커트 단속, 박정희 사망, 국기하강식 등을 경험한 셈. 하리수는 성인이 된 이후에 여성이 되었으므로 유치원에 다닐 때는 남자아이였으며, 그 때 사용하던 이름은 이경엽이었다.[111] 황의조는 1992년 8월 28일생(31세)이므로 1995~199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주예지, 손흥민과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녔으며, 1992년생들은 IMF 사태, Windows 9598 발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의 명칭 변경 등을 유치원 시절에 겪은 셈. 황의조에게는 형 황의철이 있는데, 형과 같은 유치원을 다녔는지는 불명.[112] 동부면, 서부면, 중부면 상산곡리.[113] 하남시에 철도가 생긴 것은 2020년 8월이다.[114] 이 때 동부읍과 서부면이 폐지되고 덕풍리는 덕풍동이 된다.[115] 송파구 방이동 소재.[116] 송파구 방이동 소재.[117] 강동구 성내동 소재.[118] 서울에서 강원도 북부로 가는 차량들이 거의 반드시 거치는 곳이다. 종합운동장역이나 천호역에서 오션월드 (강원도 홍천군)로 가는 셔틀버스는 무조건 여기를 지나 미사 교차로에서 국도로 빠진다.[119] 이 정도 인구면 어지간한 면보다도 적고, 일본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도시인 우타시나이시(歌志内市)와 겨우 600명 차이다. 그나마 인구가 가장 적은 읍으로 알려진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보다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립유치원이 들어와도 원아 모집이 어렵다.[120] 지금의 경상북도 영양군보다도 인구가 적었다. 게다가 그 시절이면 잠실동이 섬이고, 강남구 대치동초가집이 있던 시대였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 29% 정도였던 시절이고 유치원은 취원율이 고작 1%대에 머물렀다. 한마디로 당시 초등학교 한 반이 70명 정도였을 때 유치원 나온 사람이 1명 있을까말까 한 시절인 셈.[121] 옛 동부읍 지역 (미사동, 풍산동, 덕풍동, 신장동, 천현동) 25만 26명, 옛 서부면 지역 (춘궁동, 초이동, 감북동, 감일동, 위례동) 4만 3,426명. 이런 인구 분포의 영향으로 하남시에 오래 살았던 어르신들은 하남시 자체를 뭉뚱그려서 '신장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사조정경기장 근처는 아예 '미사리'라고 부른다.[122] 3기 신도시 중 하나. 역사학계에서는 무분별한 택지 개발로 이 곳이 제2의 풍납토성이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123] 양평역, 용문역, 지평역, 석불역, 일신역, 매곡역, 양동역, 삼산역. 과거에는 양수역, 신원역, 국수역, 아신역, 원덕역에도 무궁화호가 정차해 13개나 되었으나 수도권 전철 개업으로 인해 8개로 줄어들었다.[124] 그나마 양평군, 봉화군, 정선군, 보성군, 화순군, 영동군, 예천군, 의성군은 사립유치원이 있지만 태백시, 군위군, 서천군, 곡성군, 하동군, 함평군, 단양군은 사립유치원이 없다. 심지어 가평군ITX-청춘 정차역이 사립유치원보다 많고, 영덕군무궁화호 정차역이 사립유치원보다 많으며, 평창군, 단양군, 곡성군은 KTX, KTX-이음 정차역이 사립유치원보다 많다.[125] 게다가 양평군 동부는 매우 낙후해서 수도권 최후의 오지라고 불릴 정도이다. 오죽하면 이 동네에서는 중앙선 무궁화호를 타고 양평읍으로 가는 사람이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보다 많을 정도.[126] 양평군의 읍면별 인구는 양평읍 3만 635명, 용문면 1만 7,667명, 양서면 1만 3,600명, 강상면 1만 450명, 서종면 9,671명, 옥천면 7,920명, 지평면 6,838명, 개군면 5,097명, 강하면 4,719명, 양동면 4,608명, 단월면 3,853명, 청운면 3,752명인데 동부보다 서부의 인구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127] 양평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남양주조차 당시에는 시골이라 유치원이 없었다.[128] 단월면과 청운면은 주로 홍천군으로 가고, 양동면은 원주시로 간다. 애초에 비발디 파크, 오션월드 방문객을 위한 펜션이 양평군 단월면과 홍천군 서면에 몰려 있어서 단월면 주민들은 자녀나 손자녀를 홍천의 유치원으로 보내기도 한다.[129] 시흥군 서면이 소하읍을 거쳐 광명시로 승격될 당시의 인구는 15만 명이었고 광명리는 무려 36개의 행정리를 거느리고 있을 정도였다.[130] 결국 서울시 편입 대신 광명시 승격으로 결론이 났다.[131] 나머지 일직동, 가학동, 소하동, 노온사동, 옥길동은 서울과 멀기 때문.[132] 하남시는 강동구나 송파구, 과천시는 서초구, 구리시는 중랑구나 광진구로 간다. 과거에는 의정부시, 고양시, 김포시에서도 원정 통학을 왔으나 현재 이들 지역에서는 오히려 자기 지역의 유치원을 다니는 유아들이 많다.[133] 이 추세라면 2024년 총선에서는 광명시도 국회의원 선거구가 하나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134] 이학주는 1990년 11월 4일생(33세)이므로 1993~1996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학주가 유치원을 다닐 당시에는 광명시에 철도가 없었고, 에버랜드판다 밍밍과 리리가 있었으며 컴퓨터는 Windows 95가 막 발매됐을 시점이었다. 말 그대로 김연아와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셈.[135] 오산시 외에도 여러 지역에 어린이집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박문초등학교, 박문중학교, 박문여자고등학교, 대철중학교, 양업고등학교, 가톨릭관동대학교 등등 여러 가톨릭 미션스쿨에서도 교육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다.[136] 근혜유치원은 전국에 2곳 있다.[137] 경기도 광주시의 별칭.[138] 당시 원생은 대체로 현재의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동, 성내동송파구 풍납동에 살았다고 한다. 뜬금없이 송파구 풍납동이 낀 이유는 당시 풍납동이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풍납리였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풍납토성으로 인해 재개발이 제한돼 송파구에서 가장 낙후된 동네라고 평가받는 동네지만, 당시에는 풍납동이 천호동과의 거리 덕에 송파구에서 문명의 혜택을 가장 일찍 받은 동네였다.[139] 언주면 (현 서울 강남구 중 일원동, 수서동, 세곡동을 제외한 부분+서초구 내곡동), 중대면 (현 서울 송파구 중 잠실동과 풍납동을 제외한 부분), 구천면 (현 서울 강동구+송파구 풍납동), 대왕면 일원리, 수서리, 자곡리, 율현리, 세곡리[140] 동부읍, 서부면, 대왕면, 돌마면, 낙생면, 중부면 창곡리, 복정리, 수진리, 단대리, 상대원리, 탄리, 상산곡리[141] 무려 대구광역시, 인천광역시보다도 많다. 참고로 대구의 인구는 약 243만 명 (242만 8,228명), 인천의 인구는 약 294만 명 (294만 3,491명)이다. 심지어는 일본 도도부현 중 30개 이상이 그것보다 인구가 적다.[142] 성남시, 하남시로 분리된 부분 제외 시 6만 7,007명.[143] 광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17만 2,773명, 오포읍 11만 2,080명, 초월읍 4만 6,155명, 곤지암읍 2만 2,967명, 퇴촌면 1만 5,086명, 도척면 9,384명, 남한산성면 2,613명, 남종면 1,496명으로 상대적으로 교통이 발달한 시내-오포 권역으로 몰려 있다. 심지어 남종면의 경우는 서울에서 가까운데도 인구가 처참하리만큼 적은데, 이는 팔당댐의 영향이 크다.[144] 동림리, 오산리, 능원리는 실질월경지이다. 이들 지역에는 유치원이 없다시피한 탓에 오포읍이나 죽전동으로 가야 한다. 참고로 서울시장 오세훈의 본적이 이 곳에 있다.[145] 김민교는 1974년 4월 15일생(50세)이므로 1980~198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김민교가 1970년대 출생인데도 유치원을 다닌 것은 아버지가 의사여서 매우 부유했기 때문이고, 당시 경기도 광주군은 사립유치원이 없어서 병설유치원을 다녔거나 사립유치원이 있는 도시로 이사 가서 거기서 다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1974년생들이 유치원을 다닐 당시에는 한국은 월드컵 1회 진출에 일본은 월드컵 진출조차 하지 못했던 시절이며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었다.[146]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배경이 된 곳.[147] 화성군 반월면, 시흥군 군자면, 시흥군 수암면. 대부도는 옹진군 대부면.[148] 추후 남양주시가 일반구를 가지게 되면 이 타이틀이 넘어갈 수도 있다.[149] 지금도 안산의 유치원들은 지리적 특성상 수원이나 인천으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있다.[150] 영흥면에 있는 유치원은 영흥초등학교 병설유치원 하나뿐이다.[151] 수암면은 1만 4,595명, 두 면을 합치면 3만 4,219명. 지금의 안산시만으로 계산하면 약 2만 명이었다.[152] 상록구 35만 1,888명 (53%), 단원구 30만 3,027명(47%). 단원구 중 본토 인구는 29만 4,227명(단원구 인구의 97.2%, 안산시 인구의 45.7%), 대부도 8,800명(단원구 인구의 2.8%, 안산시 인구의 1.3%)이다. 안산시는 사립유치원이 없는 22개 군 지역의 인구를 모두 합한 것 (65만 9,674명)과 가장 근접한 인구를 가진 도시이다. 옛날 면으로 조합하면 반월면 25만 5,401명, 수암면 9만 6,487명, 군자면 29만 4,227명, 대부면 8,800명이다.[153] 대부분 1997년생. 축구선수 조규성이 여기에 해당한다.[154] 김연경은 1988년 2월 26일생(36세)이므로 1991~1993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MS-DOS+Windows 3.x가 PC의 주류를 차지하고 아직 양평, 가평, 포천, 춘천에 고속도로가 없을 때 유치원을 다닌 셈이다. 김연경에게는 김혜경, 김희경이라는 두 언니들이 있는데, 언니들과 같은 유치원을 다녔는지는 불명.[155] 조규성은 1998년 1월 25일생(26세)이므로 1997년생들과 같이 유치원을 다녔는데 2000~2003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그는 2002 한일 월드컵을 유치원생 신분으로 봤고, 유치원 말미에는 SARS 소식도 들었다. 조규성은 안산에서 유치원을 다녔으므로 그의 유치원 시절 친구 중에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조규성 본인은 안양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참사를 피해 갔다[156] 제부도가 있는 그 동네이다.[157] 이 사건의 여파로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사건이 일어난 것은 물론, 사립유치원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광역자치단체들이 사립유치원을 사들여 공립으로 전환하는 매입형 유치원까지 등장했고, 3기 신도시에 들어서는 모든 유치원은 국공립으로 설립된다.[158] 이때는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 등도 화성군이었다.[159] 6월 기준 87만 341명. 무려 워싱턴 DC보다도 많은데, 이 동네 지형만 봐도 답이 나온다. 국내에서 산지 비율이 가장 낮은 권역이 수도권이고 (특히 서울과 인천은 산지 비율이 매우 낮으며, 그나마 수도권에서 산이라고 명함을 내밀 만한 산들은 거의 가평군, 양평군 등 동부 권역에 있다. 조만간 용인시도 산 없는 도시가 된다. 거기는 건설 회사들이 아파트 짓는다고 산 깎아내리니), 그것도 신도시 개발과 관광 시설 개발로 인해 점차 낮아지고 있다. 또 수도권 서부가 그렇듯이 (북한 황해남도 해주시에서 인천광역시를 거쳐 충청남도 태안군까지 바다로 이어지는 동네들은 산이라고 명함을 내밀 만한 산이 없어서 죄다 산 없는 도시들이다. 이외에는 전라북도 군산시익산시, 전라남도 목포시, 대구광역시 서구도 산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산이라고 명함도 못 내미는 산들만 있어서 산 없는 도시다. 산을 싫어하는데 산 없는 나라로 이민 갈 여건이 안 되면 이런 동네들로 가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동네도 산이라고 명함도 못 내미는 낮은 산 투성이라 (아랫동네 평택시도 산이라고 할 만한 산이 없다. 거의 싱가포르네덜란드 수준.) 개발이 용이해서 인구가 퍼질 수 있는 것. 화성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동탄지구 36만 7,188명, 병점지구 16만 6,218명, 향남읍 8만 5,844명, 봉담읍 8만 1,760명, 남양읍 4만 1,654명, 새솔동 2만 1,561명, 우정읍 1만 7,382명, 정남면 1만 1,420명, 송산면 1만 908명, 장안면 1만 310명, 팔탄면 9,960명, 매송면 7,200명, 서신면 7,126명, 마도면 6,890명, 비봉면 5,854명, 양감면 3,973명으로 전체적으로 개발이 용이한 지역에 퍼져 있다.[160] 김문환은 1995년 8월 1일생(28세)이라 1998~200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그가 유치원을 다닐 당시에는 화성시가 화성군이었다가 유치원생 말미에 시로 승격된 신생 도시이기 때문에 병설유치원이나 오래된 사립유치원을 다녔을 것으로 추정된다.[161] 당시에는 현재의 퇴계원읍이 별내면 퇴계원리였다.[162] 오히려 구리시가 남양주시의 중심지 역할을 할 정도이다. 이를 보여 주는 예로 남양주세무서가 구리시에 있다. 반면, 시외버스고속버스를 타고 싶으면 동서울터미널로 가야 한다.[163] 퇴계원면의 읍 승격으로 면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164] 지금의 남양주시에 해당하는 별내면, 진건면, 진접면, 와부면, 수동면, 화도면, 미금면을 합한 인구. 당시 옛 미금시 인구는 1만 1,687명, 옛 남양주군 인구는 6만 6,860명으로 옛 남양주군 인구의 비중이 컸다. 1980년 분리 당시에는 19만 1,461명이었다.[165] 옛 미금시 지역의 인구는 1960년대 1만 1,687명에서 21만 8,590명으로, 옛 남양주군 지역의 인구는 1960년대 6만 6,860명에서 48만 8,836명으로 늘었다. 이로써 옛 미금시 지역의 비중은 14.9%에서 30.6%로 높아졌지만, 옛 남양주군 지역의 비중은 85.1%에서 69.4%로 낮아졌다. 남양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22만 4,485명, 화도읍 11만 8,521명, 진접읍 9만 3,126명, 별내동 7만 3,938명, 와부읍 6만 2,502명, 오남읍 5만 3,618명, 퇴계원읍 2만 9,764명, 진건읍 2만 4,330명, 별내면 1만 9,766명, 수동면 9,076명, 조안면 4,195명으로 개발이 용이한 서부에 인구 대부분이 몰려 있다. 거기도 용인처럼 건설사들이 산을 엄청나게 깎아 내리고 있다. 특히 다산신도시 주변의 산들은 완전히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다[166] 심지어 옆 동네 가평군보다 16년 늦고, 제주도보다 57년, 울릉도보다 7년 늦다. 광역시들은 1930년대 이전에 모두 유치원이 들어왔고 (부산, 인천, 대구는 대한제국 시기에도 유치원이 있었고, 광주와 대전은 1920년대에, 울산은 1930년에 유치원이 설립됐다.), 전주, 경주 등 지방의 중견급 도시들이 일제강점기~해방 직후에는 유치원이 들어온 것을 감안하면 남양주시가 과거 매우 한적한 농촌이었다가 급성장한 점을 볼 수 있다.[167] 주로 서울에서 가까운 퇴계원읍, 진건읍, 진접읍, 와부읍, 화도읍.[168] 제주도 인구는 67만 2,524명, 남양주시의 인구는 71만 3,321명이다. 과거에는 제주도가 인구가 더 많았으나, 제주도의 인구 증가세가 정체되면서 남양주가 역전했다.[169] 대성리역에서 딱 1정거장만 가면 마석역이다.[170] 흔히 송추라고 부르는 그 곳이다. 과거 방위병이 있던 시절 가장 힘들었다는 '송추방위'가 여기에 있다.[171] 1980년 남양주와 분리된 직후에는 7만 3,780명.[172] 양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회천지구 11만 2,819명, 시내 5만 5,746명, 백석읍 2만 6,431명, 광적면 1만 1,948명, 장흥면 1만 442명, 남면 7,004명, 은현면 5,969명으로 전방 지역인데도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만약 남면이 연천군 관할이었다면 22만 3,355명이었을 것이다.[173] 무려 대구광역시보다도 인구가 많다. 참고로 대구광역시의 인구는 243만 2,883명이다. 일본도도부현 중 35개, 미국의 주 중 15개가 여기보다 인구가 적다.[174] 무려 부산광역시는 물론 서울 강북 지역 자치구 전체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 이 정도 인구면 우루과이 전체 인구보다 많고, 미국 켄터키주보다도 많은 수치다. 소래면까지 포함하면 422만 4명.[175] 지금의 시흥시 부분만을 합치면 2만 5,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176] 옛 소래읍 15만 7,376명, 옛 수암면 8만 4,487명, 옛 군자면 25만 9,032명.[177] 안양시는 1956년에 유치원이 들어왔다. 1956~1973년 (1950년~1969년생까지)에는 경부선 열차를, 1974~1980년 (1968년~1976년생까지)에는 수도권 전철 1호선 전철을 타야 갈 수 있었다.[178] 때문에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잠깐 군포시 갑군포시 을로 선거구가 나뉘었다가 21대에 다시 합쳐졌다.[179] 옛 화성군 반월면 지역 (대야동) 2만 582명 (6.7%), 옛 시흥군 군포읍 지역 25만 3,209명(93.3%).[180] 김연아는 1990년 9월 5일생(33세)이다. 그녀의 또래인 1990년생들은 1993년부터 1996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90년 1, 2월생은 1989년생과 같이 1992~1995년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악명높은 1994년 폭염을 유치원 시절에 경험한 셈. 또한 김연아는 1991년 1월 3일생인 전설적인 롯데월드 캐스트 정대철과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셈이다.[181] 서울구치소도 시흥군 의왕읍 시절에 서대문형무소 부지에서 현 위치로 이전했다. 이 시기에는 의왕시에 제대로 된 사립유치원이 없었던 시절이었다.[182] 과거 의왕시 수험생들이 안양에 가서 수능을 치렀을 정도로 안양과 의왕의 거리는 가깝다.[183] 의왕시 자체도 1962년까지는 수원의 영역이었다.[184] 당시 과천선은 개통되기 전이었다. 지금도 유치원 추첨에 다 떨어진 사람들은 유치원을 찾아 서울이나 안양으로 가기도 한다.[185] 때문에 서울의 위성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국회의원을 뽑지 못하고 의왕시·과천시 선거구로 편성돼 있다.[186] 김신욱은 1988년 4월 14일생(36세)이므로 1992~199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악명높은 1994년 폭염을 유치원 시절에 겪었던 셈. 김신욱과 최다은은 같은 1988년생이지만 최다은은 1월 25일, 김신욱은 4월 14일생이라 생일 차이로 최다은이 김신욱의 유치원 선배가 된 셈이다.[187] 구리시 자체가 과거 남양주군의 영역이었기 때문.[188] 1992년 서현유치원. 판교신도시 지역은 더 늦어서 2009년에야 유치원이 설립됐다.[189] 1985년 새싹유치원. 당시 화성군 태안읍.[190] 1984년 예일유치원. 당시 인천직할시 북구.[191] 구리암사대교 개통 이후 강동구로 가는 경우가 늘었다.[192] 구리 시민들이 시외버스를 타려면 동서울터미널로 가야 하기 때문에 광진구와 교류가 많아 그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193] 양주군 구리면 당시. 읍 승격 이후인 1970년대에는 4만 5,364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