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클럽 플레이어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One Club Player
스포츠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오직 한 클럽에서 보낸 사람을 일컫는 말. 원클럽맨(One Club man)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되며 특히 한국에서는 '플레이어'라는 말보다 훨씬 자주 사용된다. 팀을 많이 옮겨다니는 경우는 저니맨이라고 한다.
선수라면 돈이나 명성을 따라 팀을 옮기는게 예삿일이 되어버리고 클럽의 부익부 빈익빈 추세가 짙어지는 현대에 와선 이적설도 흔한 뉴스가 되어버린 현 세태와 다르게 오직 한 클럽에게만 충성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건 드문 일이다. 선수로서의 충성심과 은퇴까지도 팀에 기여할 수 있는 실력 유지와 더불어 클럽 입장에서도 레전드를 향한 대우 및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안정적인 경영[1] 여러 요소들이 맞물려야만 이룩할 수 있는 경지로서, 선수생활 전체를 통틀어 희귀한 태그나 다름없고 돈과 개인적 명예를 좇는 이적이 난무하는 세태 속에서도 충성과 의리를 지켜낸다는 의미에서 낭만의 영역으로도 불린다.
프랜차이즈 스타와는 개념이 좀 다른데, 한 클럽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며 발자취를 남기는 점은 비슷하지만 원클럽맨은 한 번도 이적 없이 데뷔부터 은퇴까지 한 클럽에서만 선수생활을 해야 성립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 특징[편집]
원 클럽 플레이어는 한 클럽에서만 오랜 시간을 보내므로 자연히 그 클럽의 상징이 되거나 주장을 맡는 일이 많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선수 항목에서도 보이듯 한 팀에만 머문다고 팬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고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2] 프로는 당연히 성적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뛰어난 실력을 기본으로 갖추고 팀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엿보일 때 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원 클럽 플레이어는 대개 본래 실력에 비해 저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팀이 암흑기에 접어들면 이적해버리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팀의 암흑기까지 함께하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원 클럽 플레이어는 유스서부터 시작해 프로 은퇴 때까지 모두 한 클럽에서 뛰는 것이 원칙이지만, 전세계의 축구선수들이 몰려오는 유럽 빅리그의 특성상 유스는 다른 클럽에서 뛰더라도 자국 리그의 A팀 데뷔 이후 한 팀에서 쭉 뛴다면 원 클럽 플레이어로 인정해주는 편이며 임대로 잠시 다른 팀 가서 뛴 선수들도 인정해주는 게 보통이다. 은퇴 후 아마추어 팀이나 세미프로에서 뛰는 것도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는 편. 보통 원 클럽 플레이어의 경우 최소 진골 취급은 해준다.[3] 또한 실업 야구나 독립 리그 경력이 있어도 프로에서 한 팀에서 뛰었다면 원 클럽 플레이어로 인정하는 추세이며, 해외 진출 경력이 있어도 국내에서 한 팀에서만 오래 뛰었다면 인정해 준다. 한국에서 축구는 해외진출이 더 출세한 것으로 간주되므로 이런 경우는 드물고 농구는 해외진출 자체가 어려우므로 주로 야구에서 이런 케이스들이 나온다.
선수 커리어의 초년부터 특정 팀에만 머물러야만 하는 조건이기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리버풀 FC, 바이에른 뮌헨 처럼 유스 시스템이 발달한 클럽에 유독 집약되어있는 편이다. 반대로 선수 매매가 활발한 AFC 아약스, FC 포르투 등 셀링 클럽이나 자금력으로 선수 영입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 FC, 파리 생제르맹 FC 등의 부자 구단들은 원클럽맨이 비교적 드문 편이다. 다만 현대로 올수록 빅클럽들은 이적시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며 외부 영입을 가져가고 그만큼 유스 자체 승격 사례가 줄어들어서 팀을 막론하고 장기 근속하는 원 클럽 맨은 쉽사리 보기 힘들어졌다.
로컬 보이와 더불어 은퇴 이후에 해당 팀의 감독이 되기 쉬운 케이스이기도 하다. 특히 NPB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선수 생활은 물론, 코칭 스태프 커리어까지도 오로지 요미우리에서만 보낸 선수만을 감독으로 선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병역 문제때문에 대다수의 남성 선수는 상무팀 이적이 불가피한 관계로 순도 100%의 원클럽맨이 나오긴 힘든 환경이다. 메달리스트가 되어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하거나 병역판정검사 5급을 받는 등 병역에서 자유로운 경우는 매우 드문고로 안그래도 까다로운 원클럽맨 조건까지 겸하는 경우는 손에 꼽힐 지경이다.[4] 때문에 대다수는 한개의 클럽 커리어 와중에 상무팀 있는 정도로는 원클럽맨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로서 아래 예시 목록에도 K리거는 대개 이런 케이스다.[5]
3. 축구[편집]
※ 기준은 10년 이상으로, 한국인의 경우 군복무를 위해 군경팀이나 하부 리그팀에 소속되어 있었던 기간은 비고란에 별도로 기록하도록 하며 원 클럽 기간은 유지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3.1. 원 클럽 플레이어에 준하는 선수[편집]
- 가비노 소사 - 잠시 군대 문제를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센트랄 코르도바에서 보냈다. 지금까지도 유일한 센트랄 코르도바의 국대급 선수이다.
- 가에타노 시레아 - 유벤투스 FC, 아탈란타 BC에서 데뷔하여 1974년 유벤투스로 이적 후 1988년까지 뛰다가 은퇴했다. 은퇴 직후 유벤투스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며 헌신했지만 부임 1년 만에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 강준우 - 프로축구 선수로 10년 넘게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뛰었지만, 말년에 FC 안양으로 이적했다.
- 게르트 뮐러 - FC 바이에른 뮌헨, TSV 1861 뇌르들링겐으로 데뷔한 뒤 1964년부터 1979년까지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다. 1979년에 포트로더레일 스트라이커즈로 이적했다.
- 곽희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3년 입단 후, 11년간 수원에서 뛰고 FC도쿄와 알 와크라 SC에서 2년간 선수 생활을 한 뒤, 2015년 다시 수원으로 복귀, 이후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 구티 - 레알 마드리드 CF, 1986년 유스 팀부터 시작하여 2010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다가 베식타스 JK로 이적 후 1년 뒤 은퇴했다.
- 김광석 - 포항 스틸러스에 2002년 연습생 신분으로 입단한 이후 군 입대시기를 제외하면 한팀에서만 18년간 400경기 넘게 출장한 포항의 레전드 수비수. 하지만 구단과의 협상에서 난항을 겪으며 2021년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해 2년동안 뛰고 선수생활을 마쳤다.
- 김기동 - 1991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 후 1993년 부천 유공/SK에서 이적하여 2002년까지 9년간 선수 생활을 하였고, 이후 2003년 자신의 입단 팀이었던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여 2012년까지 9년간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하였다.
- 김승대 - 2013 시즌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후 잠시 2년간 옌볜 푸더에서 뛴 후 2017년 다시 포항으로 돌아와서 2년 반 가량을 뛰다 2019년 여름에 이전부터 강력히 김승대를 원했던 전북 현대로 이적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북에서 자리를 못잡고 강원 FC로도 1년간 임대를 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2022년 전북에서 전력 외 취급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다시 포항이 손을 내밀었고 결국 다시 포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포항 스틸러스 50주년인 2023년에 주장 자리까지 받게 되었다.
- 김오규 - 11시즌에 강원에 입단하고 10시즌 반을 지냈다가 20시즌 여름에 제주로 떠났다.
- 김태영 - 1993년 국민은행 축구단에 입단해 2년간 뛴 뒤 1995년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해 2005년까지 10년 동안 소속된 뒤 은퇴하였다.
- 김현석 - 상무에서 군복무 및 2000년 베르디 가와사키 (현 도쿄 베르디)에서 1년 임대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면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오직 울산 현대에서만 프로선수로 뛰었다.
- 네쿠 - SC 코린치안스, 1915년에 계약 문제로 잠시 맥켄지 대학교에서 뛴 것을 제외하면 17년간의 선수 생활을 모두 코린치안스에서 보냈다.
- 다리요 스르나 -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데뷔 후 2003년부터 2018년까지 샤흐타르 도네츠크에서 뛰었다가 칼리아리 칼초로 이적했다.
- 다니엘레 데 로시 - AS 로마. 2001년부터 2019년까지, 18년간 AS 로마에서 뛰었고 CA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후 반시즌을 보낸뒤 은퇴했다. 신태용처럼 데 로시도 구단으로 인해 이적한거라 사실상 원 클럽 플레이어. 전성기의 데 로시는 레알 마드리드 등 유수의 명문 클럽들이 노릴 정도의 선수였다.
-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 AC 밀란, 선수생활 말년의 3시즌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SS 라치오, 아탈란타 BC, FC 바르셀로나 4팀에서 뛴뒤 은퇴했지만 그전까지는 AC 밀란의 유소년출신으로 1990-91시즌 1시즌간 파도바 칼치오로의 임대생활을 제외하면 AC 밀란의 간판 미드필더였다.
- 도메니코 베라르디 - 2012년 데뷔 이후 US 사수올로 칼초의 유니폼만 입었으나 사실 13/14, 14/15 두 시즌 간은 유벤투스 소속이었다. 그 두 시즌마저도 사수올로에서 임대 신분으로 사수올로 유니폼을 입고 뛰었고, 그 후에는 공동소유계약 제도 폐지로 온전한 사수올로 선수로서 뛰고있다.
- 로만 바이덴펠러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FC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데뷔 후 2002년부터 2018년까지 16년간 활약하다 은퇴했다.
- 로베르토 베테가 - 유벤투스 FC, 유소년 선수 시절인 1961년부터 1983년까지 고향팀 유벤투스에서만 뛰다가 토론토 블리자드로 이적하여 1년간 뛴 후 은퇴했다.
- 로베르토 이라녜타 - 힘나시아 에스그리마, 9년간 활약하였다.
- 로베르토 체로 - CA 보카 주니어스. 커리어 초기의 2년을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보카에서 보냈고, 역대 보카 주니어스 득점 랭킹 2위에까지 올랐다.
- 루돌프 노아크 - 함부르크 SV. 2차 대전 시기에 2년간 퍼스트 비엔나에서 뛴 것을 제외하면 커리어를 모두 HSV에서 보냈다.
- 루이장 - SL 벤피카. 2개의 팀을 옮겨 다닌뒤 2003년 부터 2018년까지 SL 벤피카에서 뛰었다.
- 리오넬 메시 - FC 바르셀로나. 2001년 1월 8일 FC 바르셀로나 구단과 계약한 후 유스팀을 거쳐 2004-05 시즌에 1군에 데뷔하여 16시즌 동안 대활약하였고, 2021년 8월 6일 구단의 재정상황 악화라는 피치못할 사정으로 사실상 강제로 자유계약 신분으로 바르셀로나를 떠나 8월 10일 파리 생제르맹 FC로 이적하였다.
- 마렉 함식 - 2007년 SSC 나폴리로 이적한 이후 2018/2019시즌까지 12년을 나폴리에서 활약했다. 520게임 출장으로 나폴리 역대 최다 출장 기록도 갖고 있다. 비슷한 시기 9년을 뛴 드리스 메르턴스와 함께 나폴리팬들에게서 레전드 대우를 받는다. 빅클럽에서 이적설이 나돌때 "나에게 돈은 그저 머리에 왁스 바를 정도만 있으면 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9]
- 마르셀루 - 레알 마드리드 CF. 2007년 1월,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대체자로 영입되어 2022년까지 로스 블랑코스의 수비진을 지탱하다가 올림피아코스 FC로 이적하였다.
- 마르코 로이스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유소년 시절 자신을 버린 클럽에 다시 들어와 2012년부터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며, 현재는 주장 완장까지 차고 있다.
- 마누엘 세오아네 - CA 인데펜디엔테. 커리어 도중 사고를 쳐서 군대 때문에 포르베니르에 갔다온 것을 제외하면 10년 가까이 인데펜디엔테에서 활약하였다.
- 메멧 숄 - FC 바이에른 뮌헨, 카를스루에 SC에서 데뷔한 뒤 1992년부터 2007년까지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다.
- 무함마드 라티프 - 자말렉 SC, 레인저스 FC에서의 한 시즌을 제외하면 모든 선수 생활을 자말렉에서 보냈다.
- 바비 무어 -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1958년 웨스트햄 유스를 시작으로 1974년까지 웨스트햄의 주장이자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으로 잉글랜드의 1966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1974년 풀럼 FC로 이적한 뒤 1978년 시애틀 사운더스 FC, FC 미트윌란을 거쳐 은퇴했고 바비 무어의 6번은 웨스트햄의 영구결번이 되었다.
-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 FC 바이에른 뮌헨, 2002년에서 2015년까지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 후 시카고 파이어로 이적하였다.
- 박창현 - 포항 스틸러스, 1989년 포항에 입단 후 1994년 까지 6시즌을 활약한 뒤 1995년 같은 계열사인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여 8경기를 뛴 뒤 은퇴하였다. 은퇴한 이후 2008년 파리아스 사단에 합류하며 포항으로 돌아와 2010년 감독대행 시절까지 코치와 감독대행으로 동고동락을 함께했다.
- 배일환 - 제주 유나이티드. 2011년에 입단한 이래 2018년까지 상무 축구단에서 병역의무를 해결한걸 빼면 쭉 제주 소속이었고, 선수 은퇴 이후에도 2021년까지 제주 U-18팀 코치를 했다.
- 백기태 - 포항 스틸러스. 1990년 포항 스틸러스 산하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동초등학교에 입단한 이후 포철중-포철공고를 거쳐 1999년 포항 스틸러스에 정식 입단한다. 하지만 2000년, 2시즌 만에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은퇴 직후 2001년 부터 자신의 모교인 포항 스틸러스 산하 유소년 팀인 포철동초 코치를 시작으로 포철중 코치, 포철공고 코치, 포철동초 감독을 거쳐, 현재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을 역임하고 있다. 1990년 부터 축구인으로서 본인의 모든 커리어를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보내고 있는 셈이다.
- 베르나르트 포르호프 - 리르서 SK, 1927년부터 1948년까지 무려 21년을 리르서 SK에서 보냈으며 말년의 3부 리그 활약을 빼면 모든 커리어를 한 팀에서 보냈다. 역대 리르서 SK 팀 내 최다 출전, 최다 득점 기록도 그의 몫이다.
- 보비 찰튼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56년부터 1973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다가 프레스턴 노스엔드, 워터포드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뒤 은퇴했다.
- 빅토르 모랄레스 - 콜로콜로, 초기 선수생활 2년을 제외하면 11년을 콜로콜로에서 활약하였다.
-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 레알 마드리드 CF, 1909년부터 1978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에서 유소년, 프로, 감독, 이사, 부회장, 회장, 명예 회장을 모두 역임했으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1년 임대되었다.
- 설러이 언털 - 위페슈트 FC, 1929년부터 1940년까지 위페슈트에서 뛰었다. 트랜스퍼마크트의 기록에 의하면 원 클럽 플레이어지만 위키피디아의 기록에서는 이후의 선수 기록이 조금 있다.
- 세르히오 라모스 - 고향팀인 세비야에서 데뷔하고 1시즌 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역사를 쓰고 2021년 여름에 파리로 이적했다. 그리고 2시즌 후 고향팀인 세비야로 다시 돌아왔다.
- 세르히오 부스케츠 - 바르사의 레전드로 15시즌동안 살다 계약만료 후 미국으로 떠났다.
- 숄라 아메오비 - 뉴캐슬 유나이티드, 1995년 뉴캐슬 유스로 입단한 후 2000년부터 2014년까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다.
- 쉬츠 죄르지 - 위페슈트 FC, 평생 단 한 클럽에서 뛰었지만 뛴 시즌이 10시즌이 못 된다.
- 슈타니슬라우스 코비에르스키 -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데뷔 시절의 1년과 2차 대전을 제외하면 20년의 세월을 포르투나와 함께했다.
- 스티브 하퍼 - 뉴캐슬 유나이티드, 1993년 뉴캐슬에서 데뷔하여 2013년까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뛰었고, 이후 헐 시티에서 뛰었다.
- 스티븐 제라드 - 리버풀 FC, 1998년에서 2015년까지 16년 동안, 유스 팀 시절까지 합하면 28년 동안 리버풀 FC에서 뛰다가 로스앤젤레스 갤럭시로 이적했다.
- 신태용 - 성남 일화 천마(일화 천마-천안 일화-성남 일화 모두 포함), 1992년 일화 천마(동대문 연고)에서 데뷔하여 2004년까지 뛰었고 이후 A리그 퀸즐랜드 로어에서 1경기만 뛰고 은퇴했다. 퀸즐랜드 이적도 본인 의사가 아닌 프런트가 노장이라고 방출시켜서 한거라 팬들은 사실상 원 클럽 플레이어로 본다.
- 신화용 - 포항 스틸러스, 포항 출신에 포철동초-포철중-포철공고로 이어지는 유스 시스템을 모두 거치고, 군 면제로 인해 상주나 경찰청에서도 뛴 적 없는 진정한 의미의 원 클럽 플레이어이자 포항의 전설 그 자체였다. 2004년부터 2016년까지 13시즌간 원 클럽 플레이어였으나, 2016시즌 종료 후 구단에서 선수 본인과 감독도 모르게 멋대로 이적을 시도한 것이 밝혀져 끝내 2017시즌, 포항 스틸러스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다.[10]
- 아메리코 테소리에레 - 1921년의 단 2경기를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CA 보카 주니어스에서 보냈다.
-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 FC 바르셀로나, 1996년부터 FC 바르셀로나 유스팀에 입단한후 2002년부터 2018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뛰었고 이후 J리그의 비셀 고베로 이적했다.
- 안토니오 디 나탈레 - 우디네세 칼치오, 엠폴리 FC 등 4개 팀을 옮겨다니다가 2004년부터 우디네세 칼치오에서 뛰고 있다가 2016년 은퇴했다
-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 유벤투스 FC, 유소년 시절 칼치오 파도바에서 데뷔 후 1993년부터 2012년까지 유벤투스에서 뛰다가 시드니 FC, 델리 다이모스 FC로 이적 후 은퇴했다.
-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 AC 밀란, 1986-87시즌에 AC 몬차로 1시즌간 임대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유소년 시절 부터 2007년에 은퇴하기에 이르기까지의 27년을 AC 밀란을 위해 헌신하였다.
- 야코프 벤더 -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50년의 키싱언 05에서의 선수 겸 감독 생활을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보냈다.
- 양상민 - 수원 삼성, 2005년, 2006년을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고, 2007년부터 16시즌이나 수원에서 뛰고 거기서 선수 생활을 마쳤다. 2020 시즌 기준 팀내 유일한 마지막 리그 우승 멤버다.
- 에른스트 알브레흐트 -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말년의 선수 겸 감독 생활을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보냈다.
- 에른스트 후프슈미트 - FC 바젤, 1938-39 시즌에 잠시 FC 빌비엔에서 보낸 것을 제외하면 21년의 선수 생활 모두를 바젤에서 보냈다.
-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 유소년 선수 시절부터 레알 마드리드 CF에서만 뛰다가 말년에 멕시코의 클루브 셀라야에서 3년간 활동하고 은퇴했다.
- 에티엔 마틀레르 - FC 소쇼-몽벨리아르, 고향팀 벨포르와 트르와에서 뛰다가 1929년부터 1946년까지 소쇼의 주장으로 활약하였다.
- 오토 지플링 - SV 발트호프 만하임에서 뛴 기간은 8년이지만 27살에 흉막염으로 요절.
- 올리버 칸 - FC 바이에른 뮌헨, 카를루스에 SC에서 데뷔한 뒤 1994년부터 2008년까지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다.
- 위르겐 클롭 - 1.FSV 마인츠 05, 5개 팀을 옮겨다니다가 1990년부터 2001년까지 마인츠에서 뛰었다.
- 유상철 - 선수 시절 3개의 팀에서 뛰었으나,[11] K리그 내에선 오로지 울산에서만 뛴 K리그 한정 원 클럽 플레이어다.
- 유상훈 - 11시즌부터 FC 서울에 입단하여 군 복무 포함해서 11시즌을 뛰고 강원으로 떠났다.
- 이승기 - 2011년부터 2년간 광주 FC 창단 멤버로 뛴 후 당시 전북 감독이던 최강희 감독의 구애로 전북 현대에 입단했다. 이후 군복무 2년을 제외한 8년간 전북에서 뛰었고, 2023년 겨울 이적시장에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했다.
- 이운재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상무와 말년 2시즌을 전남 드래곤즈에서 보낸 것을 제외하면 13시즌을 수원 삼성에서 보냈다.
- 이장관 - 부산 아이파크, 데뷔 이래 부산 외의 다른 팀에서 뛰어 본 역사가 없이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1시즌을 부산에서 보냈으나 2008시즌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해 딱 반 시즌 후 은퇴했다.
- 이케르 카시야스 - 레알 마드리드 CF, 1990년 유스 팀에 입단하여 레알 마드리드 C,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를 거쳐 1군까지 총 26년을 뛰고 2015년에 FC 포르투로 이적했다.
- 이흥실 - 포항 스틸러스, 1985년 입단 후 데뷔 시즌부터 맹활약하며 1985년 신인상, 1986년 K리그 MVP, 1989년 도움왕 등 8시즌 동안 포항에서 화려한 커리어를 보낸다. 1993년 황선홍의 이적과 맞물려 신생팀인 완산 푸마로 트레이드 된 뒤 대통령배 대회에만 1경기 출장한 후, 불과 3개월 만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 제바스티안 켈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하노버 96, SC 프라이부르크에서 뛰다가 2001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입단해 2015년까지 뛰다가 그해에 은퇴했다.
- 젠나로 가투소 - AC 밀란, 페루자, 레인저스, 살레르니타나 등 3개 팀을 옮겨다니다 1999년부터 2012년까지 AC 밀란에서 뛰다가 FC 시옹으로 이적 후 2013년에 은퇴했다.
- 조긍연 - 포항 스틸러스, 1985년 입단 후 1989년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1991년 까지 7시즌간 활약한 후, 1992년 현대 호랑이로 이적 후 10경기를 뛴 뒤 은퇴하였다.
- 조르조 키엘리니 - 유벤투스 FC, AS 리보르노 칼치오, ACF 피오렌티나에서 뛰다가 2005년부터 유벤투스에서 뛰었고 2022년 로스앤젤레스 FC로 이적했다.
- 존 오비 미켈 - 첼시 FC, FK 륀에서 데뷔한 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첼시 FC에서 뛰었고 이후 중국의 텐진 터다로 이적했다.
- 존 테리 - 첼시 FC, 1998년 첼시 FC 에서 데뷔후 2000년 노팅엄 포레스트 임대를 제외하고 2017년 까지 첼시에서 뛰었으며 이후 시즌 종료후 팀을 떠나 아스톤 빌라 FC로 이적했다
- 주세페 바레시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76년부터 시작하여 1992년까지 인테르에서 뛰었다가 모데나 FC로 이적 후 2년 뒤 은퇴했다.
- 차비 에르난데스 - FC 바르셀로나,1991년 유스 팀에 입단하여 1군까지 총 25년을 뛰고 2015년에 알 사드 SC로 이적했다.
- 체사레 말디니 - 프로 데뷔는 트리에스티나 칼초에서 했으나 1953년부터 1966년까지 AC 밀란 에서 뛰었고 토리노 FC에서 은퇴하였다. 아들인 파올로 말디니는 AC 밀란 에 영구결번을 가진 원 클럽 플레이어이다.
- 최동일 - 대전 한국철도 축구단, 한국철도 축구단이 인천광역시를 연고로 하던 2011년에 입단하여 2020년까지 뛰며 대한축구협회 FA컵 결승전까지도 올라본 전설이다.
- 최문식 - 포항 스틸러스, 1989년 부터 1998년 까지 10시즌을 포항에서 활약한 후, 전남, 수원, 부천 SK 등을 거쳐 2002년을 끝으로 은퇴. 은퇴 후 2007년 포항 유소년 코치로 친정팀에 복귀해 2008년까지 15세 이하 선수들을 지도했고 2009년부터 2010년까지는 2군 코치로 활동.
- 최은성 - 1997년 대전 시티즌 창단 때부터 2011년까지 대전의 유니폼만 입고 뛰었으나, 구단 측의 실책으로 인해 2012년에 방출되었다가 전북 현대로 이적한 후 그곳에서 은퇴했다.
- 크누트 크룬 - 헬싱보리 IF, 데뷔 첫 시즌을 빼면 모든 커리어를 고향팀 헬싱보리에서 보냈다.
- 크리스티안 아비아티 - AC 밀란, 2개의 팀에서 뛰다가 1998년 AC 밀란에 입단한 이후 2008년까지 유벤투스, 토리노 FC,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에서 임대 생활을 했고 2016년까지 AC 밀란에서 뛰다가 은퇴했다.
-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 유벤투스 FC, 유소년 선수 시절인 1993년부터 2018년까지 고향팀 유벤투스에서만 뛰다가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적하여 1년간 뛴 후 은퇴했다.
- 클레멘스 프리츠 - SV 베르더 브레멘, 3개의 팀을 옮겨다니다가 2006년에 SV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했고 2017년에 은퇴했다.
- 팀 보로프스키 - SV 베르더 브레멘에서 10년 넘게 뛰며, 중흥기를 이끌었으나,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08~09 한 시즌을 뛴 경험이 있다. 서로에게 루즈-루즈 한 결과였던 만큼 베르더 브레멘에 남았다면 원 클럽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다.
- 페르난도 이에로 -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바야돌리드에서 데뷔 후 1989년부터 2003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다가 알 라이얀, 볼턴 원더러스에서 뛰었다.
- 펠레 - 산투스 FC, 1956년부터 1974년까지 산투스에서 뛰다가 뉴욕 코스모스로 이적한 뒤 1977년 은퇴했다.
- 프란시스코 헨토 -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라싱에서 단 10경기만 뛰고 1953년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1971년 은퇴 때까지 뛰었다.
- 프란츠 베켄바워 - FC 바이에른 뮌헨, 1964년부터 1977년까지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다가 이후 3개의 팀에서 활약했다.
- 프랑크 벨스 - GVV 유니타스,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서의 1년을 제외하면 1926년부터 1951년까지 유니타스에서만 커리어를 보냈다.
- 필립 람 - FC 바이에른 뮌헨, 2002년부터 2017년까지 바이에른 소속이었지만 중간에 2002년부터 2005년까지 VfB 슈투트가르트로 임대를 다녀왔다.
- 하비에르 사네티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타예레스, CA 반필드에서 뛰다가 1995년부터 2014년까지 인테르에서 뛰었다.
- 헤수스 나바스 - 세비야 FC, 2000년 세비야 FC의 유소년 팀에 입단했으며 2003년 1군 데뷔 후 2013년 까지 뛰다가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했지만 2017년 다시 세비야 FC로 이적하였다.
- 호르헤 사르미엔토- 알리안사 리마. 페루 축구 역사 초기의 스타로 알리안사 리마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냈다.
- 홍정남 - 전북 현대 모터스. 2007년부터 2020년까지 군복무 시절을 제외하면 전북현대에서만 뛰었으며 2021 시즌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FA 상태로 1년 동안 선수 생활을 쉬었다가, 전북 감독 대행 출신인 파비우 레푼지스와의 인연으로 마두라 유나이티드에서 2022 시즌 1년 동안 뛰고 은퇴하였다. 은퇴식 역시 전주성에서 진행되었다.
- 황진성 - 포항 스틸러스. 2001년 포항 유스 팀인 포철공고에 입학하며 포항과 연을 맺은 후 2013년 까지 13년 동안 포항 소속으로 활약했다. 2013 시즌 이후 재계약에 실패해 포항을 떠난 뒤 AFC 튀비즈와 일본 J리그에서 뛴 뒤, 2015년 K리그로 복귀하여 성남에서 1시즌, 강원에서 2시즌을 보내고 2019년 은퇴를 선언했다.
- 에르네스트 파버르 - PSV 에인트호번, 14시즌간 에인트호번 소속으로 있으면서 3시즌간 임대를 다님
- 안토니오 발렌시아 - 위건 애슬레틱 FC 에서 20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으로 이적 하여 10년동안 커리어를 보낸뒤 2019년 에콰도르 리그 소속 팀인 LDU 키토 이적이 확정되어 고국에 귀국한다.
- 마리오 가스파르 - 모든 커리어를 비야레알에 보냈지만, 2022년 7월 29일 계약해지로 팀을 떠나게 되었다.
- 요나스 헥토어 - 데뷔 초반 1년만 6부리그 팀에서 보냈고 2010년 쾰른 B팀에 입단 이후 2023년 은퇴까지 쾰른의 주전으로 뛰었다.
- 슈테판 라두 - 2008년 라치오에 입단한 이후 2023년 은퇴할때까지 425경기에 출전하며 사실상 원클럽맨으로 활약했다.
- 세르히오 부스케츠 - 바르샤의 성골 유스로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명으로 뛰며 약 2008년부터 2023년까지 713경기에 출전했고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 한교원 - 2011년에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 후 2년간 뛰다 2014년 전북 현대로 입단, 군 복무를 위해 잠시 화성 FC로 갔던 2017-2018 시즌 중반을 제외하곤 계속 전북에서 뛰고 있다. 2023년 여름 이적시장에 재계약을 맺었다.
- 해리 케인 - 토트넘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로, 임대 기간을 포함하여 2011년부터 2023년까지 12년을 토트넘에서 뛰었고, 2023년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였다.
- 우고 마요 - 1999년부터 셀타 비고 유스팀에서 활동하면서 2023년까지 활약한 RC 셀타 데 비고의 레전드로, 2023년 브라질 2부리그 SC 인테르나시오나우로 이적하였다.
- 민상기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년 입단 후 군복무 아산 무궁화 FC 시절을 제외하면 원클럽맨 이었으나, 2023년 부산 아이파크로 임대 이적하였다.
4. 야구[편집]
자세한 내용은 원 클럽 플레이어/야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농구[편집]
※ 기준은 10년 이상으로, 한국인의 경우 군복무를 위해 군경팀이나 하부 리그팀에 소속되어 있었던 기간은 비고란에 별도로 기록하도록 하며 원 클럽 기간은 유지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5.1. 전미 농구 협회[편집]
자유계약과 트레이드가 활성화된 리그이며, 축구처럼 선수가 이적을 거부할 권리가 없는 탓에 76년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원 클럽 플레이어의 수가 적다. 타 리그에서 뛴 경력은 원 클럽 플레이어의 기준에서 고려하지 않는다.
5.1.1. 원 클럽 플레이어에 준하는 선수[편집]
이 선수들은 원 클럽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한 팀에서 오래 활약하며 뚜렷한 족적을 남겨 해당 선수 얘기가 나오면 바로 그 팀이 연상될 정도로 다른 팀에서 활약한 시기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웬만한 원 클럽 플레이어 이상의 위상을 지닌 선수들이다. 물론 전원이 해당 팀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 데이비드 톰슨 - 덴버 너기츠에서 데뷔해 1975년부터 1982년까지 12시즌을 뛰었고, 이후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이적해 2시즌을 뛰고 은퇴했다.
- 도미니크 윌킨스 - 애틀랜타 호크스에서 데뷔해 1982년부터 1994년까지 12시즌을 뛰었고, 구단이 트레이드 해버리는 바람에 다른 팀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보스턴 셀틱스,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거쳐 올랜도 매직에서 은퇴했다.
- 드웨인 웨이드 - 마이애미 히트에서 데뷔해 2003년부터 2016년까지 13시즌을 뛰었고, 연봉 협상의 이견으로 시카고 불스로 이적한 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거쳐 2018년 시즌 도중 다시 친정팀 마이애미로 되돌아와 2019년까지 한 시즌 반을 활약하고 은퇴했다.
- 마이클 조던 - 시카고 불스에서 데뷔해 1984년부터 1998년까지 중간에 은퇴했던 한 시즌을 제외하고 13시즌을 뛰고 은퇴했다. 이후 2001년에 다시 복귀해서 2003년까지 2시즌을 워싱턴 위저즈에서 뛰는 바람에 원 클럽 플레이어로 남지 못했다.
- 마크 가솔 - 멤피스 그리즐리스에서 데뷔해 2008년부터 2019년까지 11시즌을 뛰었고, 이후 토론토 랩터스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거쳐 다시 멤피스로 돌아와 은퇴했다.
- 밥 쿠지 - 보스턴 셀틱스에서 데뷔해 1950년부터 1963년까지 13시즌을 뛰었고, 마지막 시즌은 신시내티 로열스에서 뛰었다.
- 빌 레임비어 -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서 1981년부터 1994년까지 13시즌을 뛰고 은퇴했다. 첫 데뷔는 1980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했으며 여기서 한 시즌 반을 뛰었다.
- 스카티 피펜 - 시카고 불스에서 데뷔해 1987년부터 1998년까지 11시즌을 뛴 후 휴스턴 로키츠와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거치며 총 5시즌을 뛰었다. 그리고 커리어 마지막 시즌이 된 2003년 친정팀 불스에 다시 복귀해서 불스 선수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 앨런 아이버슨 -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서 데뷔해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시즌을 뛰었고, 이후 3시즌 동안 덴버 너기츠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거쳤다. 커리어 마지막 시즌인 2009년 멤피스 그리즐리스에서 겨우 3경기를 뛰고 방출당한 후 극적으로 필라델피아에 돌아와 필라델피아 소속으로 NBA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 칼 말론 - 유타 재즈에서 데뷔해 1985년부터 2003년까지 18시즌을 뛰었고, 마지막 시즌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서 뛰었다.
- 크리스 멀린 -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데뷔해 1985년부터 1997년까지 12시즌을 뛰었고, 이후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이적해 3시즌 동안 뛰었다. 커리어 마지막 시즌에 골든스테이트로 돌아와 은퇴했다.
- 토니 파커 -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데뷔해 2001년부터 2018년까지 17시즌을 뛰었고, 마지막 시즌은 샬럿 호네츠에서 뛰었다.
- 패트릭 유잉 - 뉴욕 닉스에서 데뷔해 1985년부터 2000년까지 15시즌을 뛰었고, 마지막 2시즌은 각각 시애틀 슈퍼소닉스와 올랜도 매직에서 1시즌씩 뛰었다. 뉴욕의 극성맞은 언론과 싸워가면서 15년을 버틴 유잉은 결국 자신의 무용론을 지껄여대는 언론에 지쳐버렸고 자의로 시애틀로 떠나버렸다. 하지만 유잉은 훗날 이 트레이드에 대해 후회했다고...
- 폴 피어스 - 보스턴 셀틱스에서 데뷔해 1998년부터 2013년까지 15시즌을 뛰었고, 이후 4시즌 동안 브루클린 네츠, 워싱턴 위저즈,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를 거쳐가며 뛰었다. 마지막 시즌 후 친정팀 셀틱스와 1일 계약을 맺고 은퇴를 발표해 끝내 셀틱스 소속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 하킴 올라주원 - 휴스턴 로키츠에서 데뷔해 1984년부터 2001년까지 17시즌을 뛰었고, 마지막 시즌은 토론토 랩터스에서 뛰었다. 로키츠는 은퇴를 앞둔 올라주원을 위해 충분한 재계약 조건을 준비했지만 에이전트가 튕겨버리는 바람에(...) 로키츠의 올타임 넘버원 플레이어는 토론토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5.2. WNBA[편집]
5.3. 한국프로농구[편집]
- 프로 생활 도중 상무 입단으로 잠시 팀을 떠난 선수도 포함된다.
5.4. 한국여자프로농구[편집]
6. 배구[편집]
※ 기준은 10년 이상으로, 한국인의 경우 군복무를 위해 군경팀이나 하부 리그팀에 소속되어 있었던 기간은 비고란에 별도로 기록하도록 하며 원 클럽 기간은 유지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6.1. V-리그[편집]
6.1.1. 남자부[편집]
6.1.2. 여자부[편집]
7. 미식축구[편집]
7.1. 내셔널 풋볼 리그[편집]
NFL의 경우, 선수 생명이 상대적으로 짧아서 한 팀에서 오래 뛰는 경우가 많지 않고, 하드 샐러리캡 제도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쿼터백 같은 포지션이 아니면[33] , 선수들의 방출, 이적이 활발한 편이다. 따라서 원 클럽 플레이어로 남아있기 어려운 구조이고, 쿼터백이 아닌 경우임에도 원 클럽 플레이어로 남는다면 더더욱 대단한 경우라 볼 수 있다.
2020년 3월에는 영원히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심장으로 남아있을 것만 같았던 톰 브래디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로 이적하면서 원 클럽 플레이어의 대열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하였다. 브래디 외에도 필립 리버스, 제이슨 위튼, 애런 로저스 등의 레전드들도 오랫동안 몸담은 팀을 떠나 새출발을 선택하며 원 클럽 플레이어의 대열에서 탈락하였다.
추가기준은 해당 팀에서 10년 이상 뛴 경우로, 볼드체는 현역
7.1.1. 쿼터백[편집]
- 바트 스타 - 그린베이 패커스
- 로저 스타우벅 - 댈러스 카우보이스
- 밥 그리시 - 마이애미 돌핀스
- 테리 브래드쇼 - 피츠버그 스틸러스
- 필 심스 - 뉴욕 자이언츠
- 존 엘웨이 - 덴버 브롱코스
- 짐 켈리 - 버팔로 빌스[34]
- 댄 마리노 - 마이애미 돌핀스
- 트로이 에이크만 - 댈러스 카우보이스
- 토니 로모 - 댈러스 카우보이스
- 일라이 매닝 - 뉴욕 자이언츠
- 벤 로슬리스버거 - 피츠버그 스틸러스
7.1.2. 러닝백[편집]
7.1.3. 와이드 리시버[편집]
- 마이클 어빈 - 댈러스 카우보이스
- 마빈 해리슨 -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 하인스 워드 - 피츠버그 스틸러스
- 래리 피츠제럴드 - 애리조나 카디널스
- 줄리안 에들먼 -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7.1.4. 타이트엔드[편집]
7.1.5. 라인맨[편집]
7.1.6. 라인배커[편집]
7.1.7. 코너백[편집]
7.1.8. 세이프티[편집]
- 트로이 폴라말루 - 피츠버그 스틸러스
7.1.9. 원 클럽 플레이어에 준하는 선수[편집]
1. 쿼터백
NFL 역대 최고의 쿼터백.
뉴잉글랜드에서만 6번의 우승을 하며 20년을 뛰고 탬파베이 이적 후 첫해 우승을 한 케이스며, 아직 경력에서 패트리어츠 시절이 기간으로는 훨씬 길다.
말년엔 좀 안 좋게 끝났지만, 아직도 패커스 선수로 기억되고 팬들에게 사랑받는다.
팀 선배 쿼터백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8. e스포츠[편집]
8.1.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스타크래프트 2[편집]
8.2. 리그 오브 레전드[편집]
8.3. 크레이지레이싱 카트라이더[편집]
후속작인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는 반영하지 않는다.
9. 기타 종목[편집]
- 엄하진 - 구례군청반달곰씨름단
현재 장사급 선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원클럽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10. 관련 문서[편집]
[1] 일례로 리오넬 메시는 충성심과 실력 개인으로서 갖출 수 있는 FC 바르셀로나의 원클럽맨 자질을 전부 갖췄지만, 구단의 재정 악화로 메시의 봉급을 챙길 수 없는 형편이 되자 작별을 택해야만 했던 사례도 있었다. 단순히 메시 측에서 봉급을 양보해주면 될 문제가 아니었던게 주급을 너무 내려치다간 이적 시장에서 주급 체계가 문란해질 가능성까지 있었기에 넉넉치 못한 구단 재정을 탓할 수 밖에 없던 것이었다.[2] 세르지는 FC 바르셀로나 유스부터 밟고 온 성골이지만 형편없는 실력으로 인해 현지 꾸레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질타를 받고 있다. 이재원은 입단 당시 류현진을 거르고 뽑혔을 만큼 지역 성골로 평가받았는데 입단 10년이 지나 그나마 괜찮은 성적도 올렸지만 4년 69억 무옵션 FA 계약 이후 리그 최악의 타격 및 수비, 워크에씩, 이른바 "초상집" 발언 등으로 SSG팬들에게는 사실상 없는 선수 취급이다.[3] 코치를 다른 팀에서 하면 진골, 선수로 뛰었던 데에서만 하면 성골. 또한 그 구단의 연고 도시에서 출생해 원 클럽 플레이어로 선수 생활을 보내면 이 또한 성골이라 부른다.[4] 고요한, 김진현, 페이커 등이 이러한 희귀한 경우에 해당된다.[5] 해외에서 뛰는 한국 선수의 경우 위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다면 마찬가지로 국방의 의무상 상무팀에 입단해야 하는데, K리그 클럽 멤버만이 상무팀에 입단할 수 있다는 조항에따라 K 리그 팀으로 완전 이적이 불가피하다. 한국영, 권창훈, 구성윤이 이렇게 해외 활동을 접고 국내로 복귀해야만 했던 케이스.[예외] A B C D 예전에는 선수생활이 짧기도 했고, 특히 당시 국내에서는 대학 졸업 후 입단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프로 경력이 길지 않다. 때문에 10시즌 기준에 부합하지 않지만 상무나 경찰청도 거치지 않은 명백한 원 클럽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기록한다.[6] 은퇴 후 영국으로 유학을 가 있는 동안 세미프로인 7부 리그 예딩 FC에서 조기축구하는 정도로 축구를 했으나, 공식적인 프로경력은 포항 뿐이다.[7] 23-24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2023년 7월~8월 이적시장 도중, 구단의 인색한 지원을 비판하며 선수 영입을 위한 지원을 요구했다가 구단주에 의해 경질되었다. 이로 인해 구단주는 많은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8] 2001년, 성남 일화로 이적하였으나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하고 부상으로 은퇴하였다.[9] 보통 원클럽맨이나 이에 준하는 선수들은 이적이 덜 활발했던 과거의 선수이거나, FC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처럼 더 올라갈 필요가 없는 빅클럽에서 뛴 경우이거나, 애매한 클럽에서 애매한 활약을 해서 이적 시장에서 별 관심을 못 받은 경우가 흔한데, 마렉 함식은 세리에 A 베스트 일레븐에 세 번, 도움왕을 두 번 차지할 정도라 많은 빅클럽의 관심을 받았음에도 나폴리에 남았다. 구체적으로는 첼시에서 두 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두 번, 리버풀, 맨시티, 아스날에서 각각 한 번씩 관심을 표명한 적이 있다.[10] 신화용은 몇 시즌간 재계약에서 포항만을 선택했으며, 2017시즌에는 연봉을 억 단위로 삭감하면서도 남으려 했다. 최순호 감독도 이후에서야 이적 사건의 전말을 알고 급히 재계약 협상을 요청했으나, 프런트의 막장으로 인해 팀의 레전드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11] 울산, 요코하마, 카시와[A] A B C D E F G H I J K 클럽의 연고 이전.[12] NBA 역사상 최장 기간 활동한 원 클럽 플레이어(21시즌).[13] 1999년 사망 후 등번호 10번은 영구결번 되었다.[14] 은퇴 후 등번호 14번 영구결번[15] 은퇴 후 등번호 10번 영구결번. 다만 이 결번은 본인이 현역으로 활동한적 없는 고양시로 연고이전 후 지정되었고, 2022년 오리온스가 해체하면서 신규 창단된 고양 캐롯 점퍼스로 바뀌면서 결번은 해제됐다.[16] 은퇴 후 등번호 4번 영구결번[17] 은퇴 후 등번호 32번 영구결번[18] 은퇴 후 등번호 6번 영구결번[19] 은퇴 후 등번호 0번 영구결번[20] 은퇴 후 등번호 11번 영구결번[21] 은퇴 후 등번호 5번 영구결번[22] 대구광역시 체육회 실업팀을 거쳤으나 프로팀 안에서는 원클럽 선수라고 봐야한다.[23] 원년시즌 이후 은퇴하고 트레이너로 있다가 2006-07시즌에 복귀하여 리베로로 뛰었다.[24] 이후 실업팀에서 뛰었기 때문에 은퇴가 아니라 퇴단이다.[25] 퇴단 후 실업팀인 화성시청에서 뛰었다.[26] 지명은 LIG에서 했지만 얼마 안 되어 우리캐피탈로 이적했기에 사실상 원 클럽 플레이어이다.[27] 입단전에 독일 프로팀에서 뛰었다.[28] 2001년 은퇴 후 2011년 잠시 선수로 복귀했다가 재차 은퇴했다.[29] 개명 전 김혜진[30] 개명 전 하준임[31] 2016년 은퇴 후 2021년 복귀, 2022년 방출.[32] 영구결번[33] 쿼터백의 경우도 몸값이 너무 오르면 오히려 팀차원에서 재계약이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몸값을 깎으면 자신의 가치도 하락한다는 미국의 사고방식에 따라 이런경우의 이적은 팬들도 쉽게 납득하는 편이다.[34] NFL 한정.[35] 정확히는 스타테일과 kt는 별개의 팀이나 kt가 스타테일 LoL 팀 해체 직후 소속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시드권이 계승되었기에 한 팀에 계속 있었던 것으로 보는 편이다.[36] 전역 후 2022-2에 복귀해 아마추어팀으로 참여하려 했으나(원래는 Team GP에 입단했지만 팀에 논란이 터져 이틀 만에 해체) 개인전만 진출하고 팀전은 예선 탈락.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1 09:53:06에 나무위키 원 클럽 플레이어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