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덤프버전 : (♥ 3)
분류
<^|1><height=34><color=#fff><bgcolor=#006a4a,#1f2023>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 펼치기 · 접기 ]
}}}
1. 개요[편집]
인도 동북 지역 벵골 만 연안에 자리잡은 국가이다. 수도는 다카(ঢাকা, Dhaka).
국경선의 95% 이상이 인도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으로 미얀마와 접하는 국경은 매우 협소하다. 방글라데시가 북쪽과 동쪽으로 접하는 인도는 오랫동안 사회주의 경제 정책을 유지해온 데다 인도 측 입장에서도 개발이 잘 안 되는 낙후 지역이기에 경제 교류 상 무의미하고, 남동쪽 끝에서 접하는 미얀마도 쇄국 정책이 길었기 때문에 방글라데시는 수십년간 인접국과의 교류가 미미했다고 한다.
2. 국가 상징[편집]
2.1. 국호[편집]
방글라데시는 현지 벵골어 명칭을 영어식으로 읽은 것으로, 벵골어 명칭은 '방라데시(বাংলাদেশ / baṅladeś, [ˈbaŋlaˌd̪eʃ])'에 좀 더 가깝다. 국명의 어원은 벵골어로 벵골 지역이나 벵골어를 가리키는 말인 방라(বাংলা)와 국가를 의미하는 데시(দেশ)를 합친 단어인데, 벵골이라는 단어에 비해 방글라데시라는 단어는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20세기 초에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나 카지 나즈룰 이슬람(Kazi Nazrul Islam) 같은 벵골 문학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이 말을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1940년대 말 파키스탄 자치령 시절에 현 방글라데시에 민족주의 정당들이 생기면서 방글라데시라는 말을 정치적인 수사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에서 독립하면서 국호가 되었다. "데시"라는 단어는 일상에서도 자주 쓰이는데, 예를 들어 "국산-국산 아닌 물건"을 현지어에서 "데시-비데시"라고 부른다.[1]
정식 국호는 '방글라데시인민공화국(গণপ্রজাতন্ত্রী বাংলাদেশ / gônôprôjatôntri baṅladeś)'. 인민공화국을 표방한 것은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독립 진영에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와는 다르게 사회주의적 경제체제를 세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2.2. 국기[편집]
자세한 내용은 라알 쇼부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3. 국장[편집]
자세한 내용은 방글라데시/국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4. 국가[편집]
자세한 내용은 나의 황금빛 벵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인구[편집]
국토 면적은 약 148,460km²로 한반도보다도 작고, 대한민국(남한)보다 1.5배가 조금 안되는 그다지 크지 않은 면적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무려 약 174,701,211명(대한민국의 약 3.4배)이라는 그야말로 나라 크기에 비해 믿기지가 않을정도의 어마어마한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로 꼽힌다.[2] 모나코·싱가포르·바티칸·바레인·몰타·몰디브에 이어 7위이나, 저 여섯 나라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싱가포르가 고작 5,800,000여 명(약 1/29), 면적이 가장 넓은 바레인이 겨우 778km²(약 1/185)이다. 그 뒤로 대만(km²당 651명), 레바논(km²당 596명), 대한민국(km²당 513명) 순서. 다만 국토 대부분이 평야 지역인 데다 국토 면적의 60% 이상이 경작지라서 경지 면적당 인구 밀도는 km²당 2,040명으로, 국토 면적 10,000km²를 넘는 국가 혹은 인구 10,000,000명 이상 국가들 중에서는 세계 6위로 대한민국·대만·일본보다 낮다.[3]
이는 방글라데시 국토 전체가 삼각주로 국토 정중앙이 수많은 강으로 나뉘어 있어 인구 부양력이 높은 벼농사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토 전체가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농경에 매우 불리한 아이슬란드와는 상반되는 특징이다.
1970년대만 해도 가구당 6.6명의 출산율로 당시 중국의 5.1명이나 인도의 4.5명보다 높았지만, 산아제한의 적극적인 실행 등으로 출산율을 급속히 떨어뜨리는데에는 성공해서 2020년대 현재는 2.1명 정도. 출산율은 2020년대 들어서면서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가임기 여성이 많고 노인 인구 비중이 적어 출생아 수가 높고 사망자 수는 낮기 때문에 상당한 인구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4. 민족[편집]
방글라데시인 항목 참조.
5. 기후[편집]
아열대 및 열대 기후대에 위치한 국가이다.
6. 자연[편집]
6.1. 자연재해[편집]
일단 다우지(多雨地)인데다 과도한 플랜테이션으로 인한 환경 훼손, 빈국의 열악한 인프라로 인해 홍수와 비바람에 취약하다.[4][5] 게다가 대홍수가 나서 하구의 삼각지들을 휩쓸때마다 식량난도 증가하며, 지구 온난화에 의한 해수면 상승으로 매년 서울특별시 면적 정도인 영토의 약 0.4%씩 수몰되기에 이 추세라면 2030년까지 2,000만 명의 기후 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나마 슌도르본 세계자연유산 등 맹그로브 숲을 잘 관리해 둔 덕분에 이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한편 발상의 전환으로 부레옥잠 수상 농법을 실험하고 있다. 즉, 홍수로 매번 호수가 생겨나니 그런 곳에 수상가옥과 부레옥잠밭을 조성하고, 식용 호박까지 심어 생계수단으로 삼자는 것. 더불어 부레옥잠은 소나 양이나 염소 같은 가축 먹이로도 나쁘지 않다. 또한 갠지스 강 상류에서 인도인들이 흘려보내는 각종 생활하수와 오폐수/산업폐기물들이 그대로 흘러오고, 방글라데시 역시 상수도 시설이 빈약하다 보니 이를 생활용수나 농사에 그대로 쓰며, 인도가 갠지스 강 유역에 댐을 건설할 때마다 내려오는 수자원도 줄어서 작물 생산에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6.2. 생태계[편집]
몇백 년 전에는 코끼리나 코뿔소, 물소 등 큰 짐승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멸종하고 중소형 동물만 남아 있다. 남아있는 가장 큰 포식자인 호랑이도 150~175kg 수준으로 작은 편이지만 그래도 맹수라 사람을 해치는 일도 생긴다. 주로 벌꿀 채집이나 고기잡이를 위해 호랑이 영역으로 갔다가 변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현재 방글라데시의 호랑이는 개체 수의 감소로 멸종위기에 놓여있다.#
그 밖에 포식자로는 표범, 킹코브라나 왕도마뱀이 있으며 사슴이나 멧돼지, 원숭이, 사향고양이등 포유류가 주류고 황새나 오리 등 민물 조류나 공작, 코뿔새도 서식한다.
습지 주변에는 악어나 강상어도 있으며 어패류도 많아서 어민들이 수달이나 가마우지를 이용해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한다.
6.3. 지리[편집]
전체적으로 직소퍼즐 한 조각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세로로 약간 긴 직사각형에서 북쪽으로 작게 튀어 나간 부분이 있고, 동쪽에는 약간 파먹힌 부분이 있는 모양. 남쪽엔 벵골만에 접해 있고 여기를 통해 인도양으로 향한다. 그리고 국경의 대부분이 인도와 접해 있지만 동남쪽에는 미얀마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고, 직접 국경을 접하지 않지만 가까운 주변국으로는 네팔, 부탄, 중국 등이 있다.
초견에 대충 보기에는 서쪽에만 인도와 접하고, 그 외 다른 여러 나라과 국경선(네팔, 부탄, 중국 등)을 접할 것 같아 보이나 알고보면 희한하게도 인도로 둘러싸인 나라이다. 남동쪽 끄트머리에서 미얀마와도 접하지만 전체 국경선의 5%정도밖에 안된다. (95%가 인도와의 국경)
방글라데시 국토의 북서쪽 코너 국경선에서 네팔 국경선까지의 거리는 20여 km로 매우 가깝지만 서로 붙어있지 않다. 이 부분은 인도의 영토로서, 방글라데시의 서쪽에 주로 위치한 인도가 방글라데시의 북쪽 영토와 동쪽 영토까지 차지하여 방글라데시를 감싸는 형국이 되도록 인도의 땅을 이어주는 협곡 같은 형상이다. 인도 본체 쪽에서 볼 때에 방글라데시 너머에 존재하는 이 또 하나의 작은 인도 땅덩어리는 방글라데시 국토보다 넓으며 8개 이상의 주가 있다.
방글라데시의 국경선이 인도와 희한하게 구성된 이유는, 결국 방글라데시는 옛날에 인도의 북동부 지역이었다가 영국의 분할령에 의해 파키스탄이 강제 분리될 때에 함께 (동)파키스탄으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분리 직후에 정치 주도권이 서쪽 멀리 떨어진 파키스탄의 주도로 진행되었기에 동쪽에는 정치력이 확고하지 못했으며, 곧 이어서 이곳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는 전쟁(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의 과정을 겪으며 거버넌스를 상실한 기간이 있었던 것이다.
7. 행정구역[편집]
<^|1><height=34><bgcolor=#ffffff,#1f2023>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 펼치기 · 접기 ]
}}}
- 랭푸르주
- 랏사시주
- 다카주: 정중앙에 위치한 주. 수도인 다카가 이 곳에 있다.
- 실헷 주: 동부 내륙지대.
- 쿨나주: 남서부 해안지대.
- 바리사이 주: 남부 해안지대. 방글라데시의 주 중에서 유일하게 국경지대가 없는 지역이다.
- 치타공주: 남동부 지대. 이 곳의 동부지역인 힐 트랙스(Chittagong Hill Tracts)[6] 는 출국권고 지역이다. 주로 불교를 믿는 줌머(Jumma)인이 거주하는 이 지역은 카라카스와 같은 수준의 우범지역이다. 치타공은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과 같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이며 선박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폐선 처리장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선박 해체 작업이 매우 힘든 작업이라[7] 인건비가 싼 방글라데시에 그 수요가 많이 몰리는 듯하다. 치타공 도심에 큰 시장이 있고 이동은 아직도 오토바이 택시나 자전거 택시에 많이 의존한다. 여행경보 3단계이니만큼 위험한 지역이기도 한데,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도심을 활보하면 손해를 입을 정도로 치안수준이 매우 좋지 않다. 가끔 시장통에서 한국말을 잘 하는 상인을 볼 수도 있는데 한국에 취업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가 많아서 항상 건물보다 사람들이 많은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Why] 하루에 1달러… 맨손으로 폐선을 뜯어내는 노동자들(조선일보 기사) 또한 로힝야 난민이 거주하는 세계 최대의 난민촌이 이곳에 있다.
8.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방글라데시/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군사[편집]
방글라데시군 문서 참고.
10. 정치[편집]
국가 형태는 입헌공화국이며, 정치 체제는 내각책임제다. 1972년 1월 ~ 1975년 1월 내각책임제로 출발했다가 1975년 1월 대통령중심제로 바뀌었다. 그러다 1991년 9월에 개헌을 통해 다시 내각책임제로 복귀하였다. 1972년 12월 26일 헌법이 공포되었고, 1991년 9월 제10차 개헌을 했다.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이며 의석은 345석이다. 주요 정당은 아와미 연맹(AL, Awami League),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 Bangladesh Nationalist Party), 자티야당(Jatiya Party)이다. 그 밖에 자티야 사마지탄트리크당(Jatiya Shamajtantrik Dal), 자마티이슬라미당(JI, Jamaat-e-Islami), 노동당(Workers Party) 등이 있다.
2001년 방글라데시 제8차 총선에서 구군부 세력의 후신인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이 3분의 2에 가까운 의석(297석 가운데 193석)을 확보하면서 집권하였다.
2006년 10월 구군부 세력의 후신인 칼레다 지아의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 정권 퇴진 후 혼란이 심화되자 이를 명분으로 삼아 신군부 세력이 정권 찬탈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신군부 중심으로 정국을 관리할 과도정부(Non-party Caretaker Government)가 구성되었다.
과도정부는 헌법상 총선 전 3개월만 존속하도록 되어 있으나, 신군부의 정권찬탈이 생각보다 쉽게 진행되지 않자 총선을 2008년 말까지 강압적으로 연기시키면서 따라 약 2년간 과도정부가 방글라데시를 통치하였다. 과도정부는 당초 부패 척결과 정치 개혁을 명분으로 하나 실제로는 권력 찬탈을 목적으로 베굼 칼레다 지아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 당수와 셰이크 하시나 아와미 연맹 당수를 배제하고자 했으나 국민의 반발이 극심하였다. 그렇기에 이들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고, 2008년 12월 29일 총선을 실시했다.
총선 결과 셰이크 하시나 당수가 이끄는 아와미 연맹이 총 300석 가운데 230석을 획득하여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을 누르고 압승하였다. 2009년 1월 6일 정식 출범한 셰이크 하시나 정부는 과도정부 기간 동안 폭등하였던 쌀값을 안정화하는 한편 방글라데시의 만성적인 전력 및 교통난 해소를 위한 다양한 국가 사업을 추진하였다.
2014년 총선에 구 군부 독재 세력의 후신인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 등 야권 18개 정당이 참여를 거부하면서 300개 선거구 가운데 154개에서 후보가 한 명 뿐인 상황이 벌어졌다. 아와미 연맹은 이들 154개 비경쟁의석 가운데 127개를 차지한 것을 포함해 모두 231석을 획득했다.[8] 하지만 투표율은 40%에 불과했기에 이에 대해 야권은 선거 조작이며 재선거를 바라는 국민의 마음이 표현된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아와미 연맹은 낮은 투표율이 선거의 합법성을 부정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2024년에 있었던 선거에서도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과 야권 정당들이 또 다시 투표를 거부하고 아와미 연맹이 반대파를 탄압하는 등 정치적 혼란이 생겨 투표율이 40%로 다시 곤두박질 쳤다.
방글라데시 정치의 특징은 각 정당 지도자 가운데 여성이 많다는 점이다. 현 총리 셰이크 하시나, 하시나 총리의 주적 칼레다 지아,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을 제치고 제1야당이 된 자티야당(에르샤드)의 대표 로샨 에르샤드까지 모두 여성 정치인이다. 대개 유력 남성 정치인이 죽은 뒤 부인이나 딸이 후광을 업고 정계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으며, 그 때문에 여성 총리가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1991년 이후로 정권은 바뀌어도 총리는 계속 여성이다. WEF 같은 곳에서는 이를 근거로 하여 의사결정권을 남녀가 양성평등하게 나누어 갖는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에 대해서 엘리트 계층이 친인척들을 동원하여 그 사회의 실권을 장악하는 사례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가족관계로 얽히고설킨 뇌물과 낙하산, 정경유착 등의 문제도 크다고. 또한 정계에 진출한 여성들이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자기 의견을 내지 못하고 그저 거수기 수준의 역할에만 그친다는 비판도 있다. # 단순히 여성 정치인의 수를 가지고 그 사회의 양성평등의 정도를 판단하기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11. 사회[편집]
21세기 들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들 중 하나다. 과거에 언급되었던 세계 최빈국의 위치에서 벗어나 개발도상국의 위치에 있다. 특히 의류 산업의 경우 거의 10년 동안 6%씩 꾸준한 성장을 했다. 이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성장세였다. 2015년 6월부터 하반기 의류산업의 성장률은 7.86%에 달했다. 1974년의 대기근 이래 현재 방글라데시는 1억 6,000만 명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사회로 변모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은 2009년 이래 2017년에는 3배나 뛰었다. 2020년 코로나 19에도 3.8% 성장을 이룩하였다. 이는 아시아에서는 제일 높고 전세계에서는 3위에 해당하는 성장률이다. 남아시아에서 가장 미래가 기대되는 나라라 할 수 있다. 성장에 힘입어 2010년 중반에는 파키스탄의 1인당 GDP를 추월했고, 2020년에는 방글라데시의 1인당 GDP가 사상 최초로 인도를 추월했다.[9]
그러나, 이런 성장세만 보고 무조건 좋다라고 속단할 수도 없다. 세계은행(WB, World Bank)은 2023년 방글라데시의 지속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과 대외 부채 문제로 인해 경제적 토대가 흔들린다면서 저런 성장세만 보고 긍정적으로 보기에는 여러 모로 큰 문제점이 있다고 분석했다.빈부격차 문제야 말할 거 없고, 저임금으로 인한 열악한 공장 노동 문제와 기후 문제로 인하여 지방이 파멸적으로 산업이 무너져 대도시로 와서 빈민가를 이루는 사회적 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저임금 문제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도 네팔이나 스리랑카같이 해외로 나가서 일하는 외노자가 많다.
방글라데시의 이런 저임금 문제는 심각하여 일본인 차 연구가인 오사다 사치코[10] 가 쓴 <세계의 차>에서도 방글라데시 차 농장에 취재하러 가서 무척 우려한 게 나오는데 방글라데시 여성들이 찻잎을 하루에 12시간 가까이 따는 일을 하면서 받는 돈이 시간당 5타카 수준, 우리 돈으로 약 70원(2017년 4월 한화 추산액)이라고 한다. 햇볕에 노출되면서 그 넓은 농장에서 찻잎을 따는 힘든 일에 이런 가공할 푼돈을 받고 일하고 있었다. 차이 항목에 나오듯이 차이를 물처럼 마시는 터키에서도 돈 많이 줘도 너무나도 힘들다고 차이 농장에 사람이 일하러 오지 않아 외노자로 버티다가 에르도안 정권의 외노자 고용 금지로 인하여 차농장에 터키인들은 오지 않아 찻잎을 딸 사람이 없는 통에 아주 난리가 나서 결국 에르도안도 물러나 외노자 고용을 다시 허가할 정도였다. 그만큼 힘들다. 찻잎을 따서 수십 kg짜리 찻잎을 담은 통을 메고 종일 서서 따는 일이니 웬만한 막노동 이상급으로 몸이 고달픈 직업이다. 그런 일을 이렇게 터무니없는 푼돈을 주고 일을 시키게 하는데, 방글라데시 물가를 고려해도 엄청난 푼돈이다. 10시간 일해봐야 50타카인데 벽돌공장에서 가마 미장이 일을 하는 여성조차도 벽돌 일에서 가장 적게 준다고 하는 돈이 시간당 25타카가 넘는걸 생각하면 엄청나게 푼돈으로 부려먹는 걸 알 수 있다.
오사다 사치코는 네팔이나 스리랑카, 케냐 같은 다른 나라 차농장에서 여성들도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적은 돈을 받고 일해도 방글라데시보다 훨씬 많이 받고 직업환경도 더 좋았다고 쓸 정도였다. 네팔이나 인도 차 농장에서는 몇몇 인기 좋은 농장은 여직원들에게 햇볕을 가릴 양산을 기본으로 주고 식사 제공에 상여금에 쉬는 시간도 주고 명절에 특별 보너스, 우수 직원에게는 커피 포트나 TV나 오디오같은 그 나라에서 꽤 비싼 가전제품을 준다든지 그 나라 여성 인력 고용상황에서 엄청나게 우대하는 경우도 종종 봤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농장에는 빈 자리가 정말 없다고 한다. 여기 일하는 여성들은 아파서 죽기 전이 아니면 일하기에 간혹 사람이 그만둬서 새롭게 1명이라도 고용하자면 수십:1에서 수백:1 경쟁률이 벌어질 정도로 오려는 여성이 많다고 한다. 반면 방글라데시에는 그런 거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방글라데시에서 취재한 그 농장이 잘 팔리는 농장임에도 대우가 이렇다. 인도나 파키스탄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을 헐값에 부려먹는 차 농장(그리고 그 농장들조차도 당연히 방글라데시보다 훨씬 돈도 많이 주고 일할 환경도 좋다고 한다.)도 많지만 여긴 작은 시골 농장 같이 벌이도 시원치 않기에 더 주고 싶어도 줄 수도 없다는 변명이 통할만하지 방글라데시는 엄청 크고 해외 수출로 벌이가 좋은 농장임에도 이런 막돼먹은 대우를 하고 있으니 문제다. 여성들은 대충 스스로 낡은 모자를 쓰거나 대충 천을 붙여서 햇빛가리기를 하고 찻잎을 따고 식사도 대충 도시락을 싸와 맹물과 같이 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당연하지만 현지 여성들도 아주 푼돈을 받고 일해서 분노하면서도 도무지 다른 직업이 없어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11] 고 울며 겨자먹기로 한다며 하소연했으니 말 다했다.
아동노동도 엄청나다. 이웃 파키스탄,인도, 스리랑카와 더불어 아동노동이 극심한 나라인데, 10살도 안되는 아이들부터가 돌을 깨부수고 무거운 것을 나르고 안전장비도 없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죽거나 장애인이 되는 일도 수두룩하다. 세계는 지금에서 취재당시,이런 공장에서 아이들을 관리하던 28살 어른은 자신도 17년전부터 여기서 어릴적부터 일해서 이젠 애아빠가 되었다고. 지금은 어른이 되고 중간 관리자가 되어 돈은 훨씬 많이 받지만 자신이 어릴적이랑 전혀 달라진게 없어서 안타깝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여기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서는 11세의 아동도 일 최대 14시간에 달하는 중노동을 독성 물질에 노출되면서도 억지로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세계보건기구에서 1984년의 보팔과 1986년의 체르노빌보다도 심각한, 역사상 최대의 집단 중독이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비소 중독으로 최대 7700만 명이 수년에서 수 십년의 수명 단축을 겪을지도 모르며 심각한 보건상의 문제도 초래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상황이 좀 낫다는 어린이들 역시 주로 축구공의 인구를 꿰매는 일을 하는데 이게 얼마나 참담하냐 하면 대한민국 원으로 환산했을 경우 고작 200원 남짓한 푼돈을 하루 급여로 받기 위해서 이 어린이들이 하루종일 축구공만 꿰매고 있다는 점이다.
빈자들에게 무담보 저이자 소액대출을 해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의 개념이 처음 나오기도 한 나라이기도 하다. 창시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그라민 은행 총재는 이러한 빈자 구제 극복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유누스 그라민 총재가 정치에 진출하려고 했다가 현 총리와 집권당 아와미 연맹에 밉보이는 바람에 견제를 받아 그라민 총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기사 방글라데시 헌법상 총재직은 정년이 60세인데 유누스는 이를 훨씬 넘긴 70세에도 총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가 이를 방글라데시 고등법원에 고소하여 그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유누스 지지자들이 반발하며 무려 300여만 명이 얽히면서 반정부 시위를 벌일 정도였으니 사회적, 경제적으로 정부에도 타격을 줬다.
이슬람이 주류이기에 주말은 금요일과 토요일이고 일요일은 그냥 평일이다.
막장인 사회임에도 성매매는 2000년대 초반 이후로 합법화되어 18세 이상 청소년들은 성매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성매매의 현실 미성년자들의 성매매가 빈번하다.
인도에 이어 방글라데시에서 성폭행 피해자가 속출하면서 시위가 발생되고 있다.# 이에 방글라데시 정치권에선 강간범들을 사형시키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종교학교가 문을 열었다.#
방글라데시 당국이 영화속의 경찰 묘사가 문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영화 배우와 감독을 체포, 기소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방글라데시 법원이 셰이크 하시나 총리에 대한 암살 시도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슬람 급진단체 조직원 14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
방글라데시에서 SNS 스타가 모스크 내에서 여성과 춤추는 동영상을 찍어 올렸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전형적인 이슬람교 국가답게 여성 인권 유린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1 #2 여성 학대 비율과 강도가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까지 포함해서 전 세계 최고 수준이며 심지어 남편이 아내와 자식을 상습적으로 폭행과 학대는 물론 고문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다 보니 현 총리가 틈만 나면 신경쓰는게 여성과 아동 인권이다.
현재 실권자인 총리 셰이크 하시나의 성별은 비록 여성이기는 하나, 여성 인권이 낮은 국가에서도 가문의 힘으로 유력 정치인이 되는 경우는 꽤 많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셰이크 하시나는 초대 대통령인 셰이흐 무지부르 라흐만의 딸이고, 가장 큰 야당 BNP의 칼레다 지아는 4대 대통령이자 군부 독재자인 지아우르 라만의 아내다. 여성 인권 지수를 결정하는 데 고위직 여성의 수를 고려할 경우 실질적으로는 여성 인권 최악인 나라가 여권이 높은 나라로 판단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성평등과는 무관하게 유력 가문 출신, 유력 가문의 유력 인사 누구의 딸, 누구의 부인 이런 간판이 더 중요하게 작용해서 여성이 고위직에 올라선 경우가 많기 때문. 방글라데시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여성 인권이 최악이라는 남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서구 국가들보다도 이른 시기에 여성 총리급을 배출한 바 있다.[12] 그리고 2018년 1월 30일에 아시아개발은행은 방글라데시의 여성차별이 매우 심각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방글라데시 내 소수민족들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심각한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를 막거나 할 생각을 안하고 오히려 소수민족들을 차별하며 탄압을 하고 있다.#
이슬람이 주류이기에 주말은 금요일과 토요일이고 일요일은 그냥 평일이다.
12. 문화[편집]
▲ 수도 다카에 있는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জাতীয় সংসদ ভবন)이 유명한 편이다. 루이스 칸이 설계한 것으로, 건물이 독특한 게 특징이다. 외국인은 허가 없이 즉석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인터넷으로 사전 방문 신청을 하면 들어갈 수 있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대다수로, 사회 주류다. 그 중에서도 수니파가 가장 다수이며, 수피즘, 시아파, 아흐마디야 등 다른 종파를 믿는 이들도 있다. 인도 문화권의 영향으로 힌두교 인구도 9%로 상당한 숫자가(힌두교도 자체집계로는 인구 12%까지 추산) 있다. 하지만 이슬람의 박해로 인해 이를 못 견딘 나머지 힌두교 신자들이 이웃의 힌두교 국가 인도로 많이 탈출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얀마 접경 산악지역 쪽에는 불자도 소수 있다. 불자는 대체로 줌머인이나 벵골인 불자도 있다. 방글라데시의 불자들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경기도 김포시에는 방글라데시인 불교 사원인 보타사가 있다.[13] 그 외에 소수의 시크교 신자와 크리스천도 존재하는데, 기독교의 경우 영국의 영향으로 성공회 신자가 가장 많다. 일단 정부는 세속주의를 중시하면서 이슬람주의적인 모습을 배척하려고 하고는 있지만 나라자체가 혼란스러워서 그런지 이슬람주의적 사건사고가 자주 터지는 편이다. 그래도 1971년 까지 같은 국가였던 파키스탄의 북서부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세속주의를 어느정도 추구하는탓에 젊은이들은 이슬람원리하고 거리둔체 생활하며 술의 수요도 꽤 있는 편이다.
옆나라 인도처럼 영화도 여럿 만들지만 수준과 퀄리티는 인도 영화들보다 극히 엉망이다. 2010년대 영화 방글라데시 킹콩은 그야말로 막가파 대충 만들기 진수였다. 한국에서는 모스타파 사르와르 파루키가 감독, 각본, 제작을 맡은 영화 텔레비전(2012)이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하고 2013년에 소리소문없이 극장 개봉한 바 있다.
12.1. 언어[편집]
공용어는 벵골어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벵골어를 방글라라고 말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처럼 교육받은 사람들과 상류층들은 영어를 할 줄 안다. 그리고 영국의 영향으로 영어가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영어는 정규과정에서도 필수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다만 방글라데시는 이 두 나라와 달리 영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여러 민족과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는 인도, 파키스탄과는 달리 벵골인이 전체 인구의 98% 이상을 차지하므로 벵골어만으로도 소통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TOEFL에선 인도하고 파키스탄보단 조금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있다. 방글라데시에서 가르치는 영어는 영국식 영어이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노년층 중에서도 영어가 유창한 사람들이 있다.
1947년 인도, 파키스탄 분할 당시 벵골 지방이 아닌 인도의 비하르, 동부 우타르프라데시의 바라나시, 발리야, 차프라 등지에서 피난온 사람들은 비하리라 불리며 이들은 힌디어, 우르두어, 보지푸리어, 마이틸리어 등을 사용한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학교에서는 아랍과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아랍어를 영어와 함께 주요 외국어로 가르치고 있다.
인도 영화나 미디어의 영향으로 의외로 힌디어가 통한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잘하는데 아무래도 여자가 드라마를 더 많이 보니까 많이 배운다. 인도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힌디어가 오히려 영어보다 통하는 경우가 많다.
벵골어의 경우, 인도 북동부(꼴까따, 캘커타)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뱅골어이므로 서로 언어가 잘 소통된다. 다만 서로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고 시골로 갈수록 다소의 방언적 차이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로 ছ 문자를 인도 벵골(꼴까따)에선 '츠' 로 발음하고 방글라데시에서는 '스' 로 발음하며 여러 단어, 발음의 차이가 있다.
- 예: '나는 밥을 먹게 앉을테니 나중에 얘기할게'
- 인도(꼴까따) - আমি এখন খেতে বসছি, পরে কথা বলব(아미 에콘 케떼 보스치- 뽀레 꺼타 볼보)
- 방글라데시(사투리) - আমি এখন খাইতে বসতেছি, পরে কথা বলমু (아미 에콘 카이떼 보스떼씨- 뽀레 꺼타 볼무)
- 방글라데시(표준어) - আমি এখন খেতে বসছি, পরে কথা বলব (아미 에콘 케떼 보쉬치, 뽀레 꼬타 볼보)
인도 사람들은 방글라데시 벵골어에 대해 '굉장히 시골에서 쓰이는 구어적 사투리' 라고 생각하고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인도 콜카타에서 쓰이는 벵골어에 대해 '매우 교과서적이고 문어체적인 언어' 라고 생각한다. 방글라데시의 벵골어는 동사, 단어 중간중간에 '이' 발음이 자주 첨가되며 동사의 현재진행형 중간에 '떼' 발음이 추가된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내에서 쓰이는 벵골어는 사투리가 굉장히 많다. 이를 벵골어로 আন্চলিক ভাষা(안촐릭 바샤) 라고 부르며 통상 조쇼르(제쇼르), 라즈샤히 부근의 언어가 제일 공식적이고 표준어에 가깝다 여겨지고 동쪽으로 갈수록 사투리가 심화되며 치타공의 언어는 도저히 같은 벵골어라고 할수 없을 정도로 다른 경지에 도달해 버린다.[14] 그 외에도 방글라데시 내에도 로힝야족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로힝야어가 일부 쓰이고 있다.
파키스탄이 1971년만 해도 동파키스탄이던 동벵골에서 벵골어를 공용어로 인정하지 않고 우르두어만 공용어로 사용할 것을 강요한 바 있는데[15] , 이에 반발한 방글라데시 지식인들이 1952년 2월 21일 언어 수호 운동을 일으켰다. 이는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으로 발전해 방글라데시가 독립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2월 21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 기념하는데, 한국의 삼일절과 비슷한 날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유네스코에서도 방글라데시의 언어 수호 운동을 기념해서 2월 21일을 ‘국제 모어의 날’로 지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미안하다.’는 표현이 없다는 말이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영어의 Sorry 와 비슷한 느낌인 দুখিঃত (두킷또)를 쓰긴 한다. 빈도가 적긴 하지만.
1280년대 본격적으로 아랍 상인, 페르시아계 지배층 세력으로부터 이슬람을 받아들이다보니 언어적으로도 아랍·페르시아의 영향을 받기도 했는데 그래서 도바시라는 언어도 있기도 했었다.
12.2. 요리[편집]
자세한 내용은 방글라데시 요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3. 관광[편집]
결론적으로 관광하기에 좋은 나라는 아니다. 인구 밀도가 세계 1위인데도 불구하고 치안은 썩 좋지 않다는 평이 다수지만 다녀온 사람에 의하자면 밤에 돌아다녀도 괜찮은 정도로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라고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그냥 인도 하위호환이다.[16] 일단 영국령 인도에 포함되어있었기에 영어가 통하는건 어느 정도 문제 없지만 간판에 영어가 적다. 혹시라도 물건을 산다고 하면 절반을 깎아도 손해다. 뚝뚝이를 탈 때도 조심하자.
현지도착비자는 초청장(관광목적 시에도 여행사 또는 호텔 초청장이 원칙이나, 여행일정표 제출하는 경우도 있음) , 숙박예약증, 출국티켓 출력본 , 51달러 현금 제시 시 가능. 한국에서도 비자 발급 가능하며, 도착비자보다 저렴하다.
방글라데시 여행 일정표 양식
도착비자 발급 공항/육로 안내 지도
방글라데시에 관광자원들로는 모스크들이 많은 편이다. 아산만질 박물관, 다케슈와리, 라마크리슈나와 같은 것들도 있고, 콕스바자르 해변정도가 있다. 랄바그 성채와 국립 순교자 기념관도 유명하다. 다카의 국회의사당 건물이 특이하다고 보자고 하는데 생각보다 독특하게 생겨 볼 만 하다. 역사유적을 보고 싶다면 남부 지역에 있는 바게르하트의 모스크 도시 유적도 괜찮다.
개발도상국답게 자연환경도 많이 파괴되고 있다. 시골 지역은 괜찮지만 다카 중심부는 미세먼지가 심각하다.
특히 방글라데시인에게 이스라엘 얘기는 삼가야 한다. 방글라데시도 극단적이진 않지만 인도네시아 정도의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17]
주류는 법에서 마약관리법에 따라 관리하므로 주류 반입 등은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얀마 국경지대는 치안이 최악이며 로힝야 관련 문제가 빈번하다. 아예 출국권고 지역.
12.4. 스포츠[편집]
영연방 나라답게 크리켓에 환장하는 나라다. 정전이 자주 일어나지만 크리켓 월드컵 땐 정전이 없다고 한다. 정전이 나면 사람들이 국영전기 관계자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웃 인도나 스리랑카, 파키스탄이 크리켓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과 달리 크리켓 월드컵 최고성적은 8강 토너먼트 진출이다. 그러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정식 종목이 된 남자 크리켓으로 마침내 염원하던 금메달을 따냈다. 이는 방글라데시 역사상 첫 구기 종목 국제대회 우승 기록이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남자 크리켓에서 동메달을 받았으며 여자 크리켓은 두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받았다. 인구가 1억 명이 넘는 나라 중 올림픽 메달을 하나도 못 따 본 나라가 방글라데시다.
축구 실력과 달리 이 나라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극성스런 축구팬들로 알려져 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자국 팀도 아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졌다고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다. 1994 미국 월드컵 당시 디에고 마라도나가 약물 검사에 걸려 월드컵 출전이 금지당하자 방글라데시 축구팬 수천여 명이 피파 본부가 있는 스위스 대사관 앞으로 몰려들어서 돌을 내던지며 분노했었고 1998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 vs 아르헨티나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가 네덜란드에 패하자 아르헨티나 축구팀을 응원하던 한 방글라데시인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해외 토픽으로 실리기도 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선 프랑스가 탈락하자 방글라데시에서 분노하면서 작은 폭동이 벌어졌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정전으로 월드컵 중계가 중단되자 다카 거리에서 수천여 명이 폭동을 일으켜 수백여 명이 다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독일이 우승하자 리오넬 메시의 우승을 막았다는 이유로 독일 국기에 모독하고 침뱉고 찢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세한 건 방글라데시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
13. 경제[편집]
자세한 내용은 방글라데시/경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4. 외교[편집]
자세한 내용은 방글라데시/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5. 대중매체에서의 방글라데시[편집]
15.1. 방글라데시 국적, 출신 캐릭터[편집]
※ 해당국 작품 인물은 제외한다.
- 애쉬 파룩 - 프론트 미션 2nd : 해당 작품의 주인공. 작중에서는 알로르데시 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으로 나온다. 처음엔 방글라데시로 O.C.U에 가입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분리독립하며 국명을 바꾼 것이다.
- 반두비 - 카림
15.2. 한국 방송 및 영화[편집]
- KBS 이웃집 찰스에 2016년 6월, 방대한 씨가 출연했다.(방글라데시 이름은 칸 모하마드 아사드주만) 방글라데시 출생, 20대에 한국으로 취직 이후 귀화. 영화 "방가방가(방가? 방가! - 감독 육상효. 2010년 작. 코미디.)"로 방송을 타게 되었다. 이후 1박 2일 외국인 근로자 특집 편에 출연하여, 능숙한 한국어 솜씨와 카레 요리 실력을 뽐냈다.[18] 원래 노래를 잘 했으며 트로트 음반도 냈다(알고보면 고국에서 로스쿨 지망생이었다는 사연도 소개됨). 현재는 고국의 여성과 결혼하여 딸 1명을 두었다.
- EBS 글로벌 아빠 찾아 삼만리에 한국에서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방글라데시인 출연자가 여럿 나온다. 윗 문단의 방대한 씨가 일부 출연자와의 친분으로 방송에 함께 등장하기도 했다.
15.3. 기타[편집]
- 엄밀히 따지면 대중 매체라 말하긴 어렵지만, 후원을 받고 해당 한국어를 어눌하게 읽어주는 선생과 그것을 따라 읽는 학생들을 컨셉으로 영상을 보내주는 방글라데시 단체 Team Azimkiya가 유튜브 및 SNS 등지에서 방글라데시라는 나라의 이름을 알렸다. 물론 좋은 쪽으로 말이다.
- 유로트럭2로 유명한 SCS 소프트웨어 사에서 2011년 개발한 18 wheels of steel - extreme trucker 2 작품에 방글라데시 맵이 등장한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4-06-13 02:42:53에 나무위키 방글라데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참고로 이 데시(Desi/Deshi)라는 표현은 산스크리트어로 토지나 국가를 의미하는 단어 देश (deśá)에서 기원한 표현이라, 인도나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아대륙 출신 국가에서 이민온 외국의 디아스포라 공동체들에서도 자민족이나 국산품 등을 데시라고 부르기도 한다.[2] 대한민국(남한) 보다 2배 이상 면적이 더 넓지 않으면서도 한국보다 인구가 천만명 이상 더 많은 유일무이한 나라다. 한반도 전체 면적으로 따지면 영프독등 여러 나라들이 해당된다.[3] 1위인 대만이 km²당 3,600명, 2위는 국토 대부분이 사막인 이집트로 km²당 3,300명이 거주한다. 3위는 일본으로 km²당 3,150명, 4위는 대한민국으로 km²당 2,960명, 5위는 레바논이고 km²당 2,350명이다.[4] 열대저기압에서 발달된 사이클론의 경우 연평균 1.6건 정도 발생한다. 하지만 아무 대책도 없다보니 한번 휩쓸때마다 사상자가 속출한다. 일례로 1970년 11월 사이클론 '볼라'가 당시 동파키스탄이었던 방글라데시와 인도 서벵골 지역을 강타했는데, 이 때 발생한 사망자 및 실종자는 약 50만명에 달했다.[5] 설상가상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악명높은 토네이도 다발 지역이기도 하다. 인도 데칸 고원에서 오는 건조한 공기와 벵골 만의 습기, 그리고 히말라야 산맥의 찬 공기가 만나면서 엄청난 대기 불안정을 일으켜 슈퍼셀과 격렬한 뇌우를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의 핵심 원인이었던 1970년 볼라가 가장 유명하고, 1989년 4월 26일 다카 구에서 발생한 토네이도로 1,300여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내면서 사상 최악의 토네이도 인명피해를 냈고, 이후에도 1996년도에 5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6] 치타공 구릉지대라고도 불린다.[7] 쥐꼬리만도 못한 일당을 벌기 위해 매일 12-16시간씩 일하는데 해체 과정에서 석면, 납, 폐기름 등 온갖 유해성 물질에 그대로 노출되는데다가 폐선 조각에 깔려 사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8] 이미 2008년에 야권 연대의 의석 총합이 33석에 불과할 정도로 참패한 상황이라, 야권이 불참한 선거였지만 아와미 연맹의 의석이 늘기보다는 아와미 연맹에 협력하는 다른 정당이 의석을 나눠가졌다. 그 뒤 8석의 재선거를 거쳐 아와미 연맹의 의석은 234석으로 늘어났다.[9] 다만 2024년에는 인도에 역전당했다.[10] 현재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서 살고 있다.[11] 다른 직업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직업조차도 찻잎따는 일보다 더 고달프고 돈도 짠 벽돌 만들기라든지 벽돌을 나르는 여자 홀로 하기 벅찬 직업투성이였다고 한다. 이 벽돌 나르는 일만 해도 하루에 40kg 이상을 나르고 수십여번을 산길을 오르고 내리니 건장한 남자들도 벅차한다.[12] 인도: 인디라 간디, 파키스탄: 베나지르 부토, 스리랑카: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그 중에서도 반다라나이케는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이기도 하다.[13] 줌머인 불교도와 벵골인 불교도가 같이 사용한다.[14] 반대로 로힝야어는 치타공어와 매우 가까워서 치타공어 화자와 로힝야어 화자와는 대화가 통한다. 그리고 로힝야어, 벵골어, 치타공어는 방언연속체에 속해 있다.[15]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지금의 파키스탄 땅인 서파키스탄의 주민들 대다수는 우르두어가 아니라 펀자브어가 모어였으며, 오늘날 파키스탄에서도 우르두어가 국어인 것과 별개로 모어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는 펀자브어다. 우르두어 사용 강요에 순응한 쪽이 오늘날의 파키스탄이 되고 그렇지 않은 쪽이 오늘날의 방글라데시가 된 셈이다.[16] 오히려 그 인도도 방글라데시에 비하면 천국이다.[17] 사실 세속적이고 정부가 이스라엘에 그렇게까지 적대적인 나라는 아니더라도 이슬람 국가에서 이스라엘 관련 얘기는 안 꺼내는 게 좋다. 싫어하진 않더라도 탐탁치 않게 보는 세속적 무슬림도 매우 많다.[18] 특히 저온가열 방식으로 물 한 방울 없이 국물을 내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링크 물론 인도식 카레와는 달리, 국내 카레는 가루에 전분이 섞여있어서 저온가열 방식을 쓰다간 다 타버리므로 주의할 것.